가톨릭 세키구치 교회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가톨릭 세키구치 교회는 일본 도쿄에 위치한 가톨릭 교회로, 1899년에 고딕 양식의 목조 건물로 처음 지어졌다.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소실된 후, 1964년 단게 겐조의 설계로 재건되었으며, 쾰른 교구의 지원을 받아 건설되었다. 현재 건물은 십자형 구조에 스테인리스강 외관을 특징으로 하며, 2003년 DOCOMOMO JAPAN 선정 일본의 모던 무브먼트 건축으로 선정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일본의 로마 가톨릭 대성당 - 가톨릭 우라카미 교회
나가사키에 위치한 가톨릭 우라카미 교회는 박해를 이겨낸 잠복 기독교인들이 건설한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원폭으로 파괴된 후 재건되었으며, 당시의 유물과 흔적들이 보존되어 있다. - 1899년 설립된 종교 단체 - 국제 기드온 협회
국제 기드온 협회는 1899년에 설립된 기독교 단체로, 전 세계에서 성경을 보급하며, 기드온의 이야기를 상징으로 삼아 다양한 곳에 성경을 배포하는 활동을 한다.
가톨릭 세키구치 교회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위치 정보 | |
기본 정보 | |
![]() | |
일본어 명칭 | 東京カテドラル聖マリア大聖堂 (Tōkyō katedoraru sei Maria daiseidō) |
다른 이름 | 関口教会 (세키구치 교회) |
종류 | 대성당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교구 | 도쿄 대교구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상세 정보 | |
위치 | 일본 도쿄도분쿄구세키구치 3-15-16 |
크기 | |
건축 | |
건축가 | 겐조 단게 |
구조 엔지니어 | 요시카쓰 쓰보이 |
완공 | 1967년 |
개보수 | 2007년 |
역사 | |
설립자 | 피에르 마리 오즈프 |
이전 명칭 | 성모 교회 |
교구 정보 | |
신자 수 (2011년 12월 31일 기준) | 2276명 |
주임 신부 | 파울로 고이케 료타 |
2. 역사
1899년 처음 지어졌을 당시에는 목조로 된 고딕 건축 양식의 건물이었다.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소실되었고, 1963년 독일 쾰른 교구의 지원으로 지금의 건물이 건설되었다.[1] 현재의 교회는 단게 겐조가 설계했으며 1964년 12월에 봉헌되었다.[2]
1877년(메이지 10년), 일본 북위 사도좌 대리구의 초대 주교로 일본에 온 피에르 마리 오즈프는 교회 발전을 위해 도쿄 중심지에 토지를 구했다. 당시 외국인의 토지 취득은 법으로 금지[6]되어 있었기 때문에, 1886년(메이지 19년) 5월 22일, 토지 소유자로부터 아사쿠사 교회 신자 명의로 고이시카와 세키구치 마을(현재의 분쿄구세키구치)의 토지[7]를 구입했다.
1888년(메이지 21년), 아사쿠사 교회 구내에 있던 '매괴(마이카이) 학교'의 사제 장 피에르 레이는 고아들이 청년으로 성장하여 직업 훈련 등이 필요하게 되자 더 큰 시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미 구입한 세키구치 마을의 토지에 다카기 진자부로 등 아사쿠사 교회 신자들의 협력을 얻어 '성모 불어 학교'를 설립했다. 1899년(메이지 32년) 9월 10일, 이 학교 부지 내에 부속 성당인 무원죄의 성모 성당이 건립되었다. 1900년(메이지 33년) 1월 7일에는 소교구 성당으로 인정받았고, 같은 해 10월 8일에 독립했다. 1912년(다이쇼 원년) 도쿄 대주교로 취임한 레이는 1920년(다이쇼 9년) 대주교좌를 쓰키지 교회에서 세키구치 교회로 이전했다.
1923년 간토 대지진에도 붕괴되지 않았지만, 1945년(쇼와 20년) 5월 25일 도쿄 대공습으로 소실되었다. 불에 타 남은 건물을 성당으로 사용했지만, 1947년(쇼와 22년) 컨셋 하우스[9] (반원통형)가 세워져 성당이 되었다. 1951년(쇼와 26년)에는 아동 회관 2층을 개조하여 가성당으로 했지만, 주교좌 성당(카테드랄)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워 고지마치 교회의 새 성당을 이용했다. 1953년(쇼와 28년)부터 1964년(쇼와 39년)까지 간다 교회를 임시 주교좌 성당(프로카테드랄)으로 했다.
1964년(쇼와 39년) 12월, 현재의 성당이 완성되어 주교좌 성당(카테드랄)이 되었다. 이 성당은 1966년(쇼와 41년) 제7회 BCS상을 수상했고, 2003년(헤이세이 15년) DOCOMOMO JAPAN 선정 일본의 모던 무브먼트의 건축에 선정되었다.
1967년(쇼와 42년) 10월 23일, 요시다 시게루 전 내각총리대신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도쿄 카테드랄 성 마리아 대성당 설계자 단게 겐조의 장례식도 이곳에서 거행되었다.[3]
최근 에큐메니즘 운동의 주요 무대 중 하나이며, 2009년(헤이세이 21년) 9월 23일 일본 성공회 150주년 기념 예배가 거행되었다.
1990년 4월 8일 도쿄 내 한국인 가톨릭 신자 수 증가로 이곳에서 첫 미사를 봉헌한 이래 2012년까지 이 성당 시설을 빌려쓰고 있다.[26]
2. 1. 초기 역사 (1899년 ~ 1945년)
1899년(메이지 32년) 9월 10일, 세키구치 지역에 '성모 불어 학교' 부속 성당으로 무원죄의 성모 성당이 처음 건립되었다. 이 성당은 고딕 건축 양식의 목조 건물이었다.[1] 1900년(메이지 33년) 1월 7일 소교구 성당으로 인정받았고, 같은 해 10월 8일 '성모 교회'로 독립했다. 1920년(다이쇼 9년)에는 쓰키지 교회에서 세키구치 교회로 대주교좌가 이전되었다.1945년(쇼와 20년) 5월 25일 도쿄 대공습으로 소실되기 전까지[1], 1923년 간토 대지진에도 붕괴되지 않고 건재했다. 소실 이후 컨셋 하우스[9] (반원통형) 건물, 아동 회관 2층 개조 건물 등을 임시 성당으로 사용했다. 1951년 (쇼와 26년)에는 아동 회관 2층을 개조하여 가성당으로 했지만, 주교좌 성당(카테드랄)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워 고지마치 교회의 새 성당을 이용했다. 1953년 (쇼와 28년)부터 1964년 (쇼와 39년)까지는 간다 교회를 임시 주교좌 성당(프로카테드랄)으로 사용했다.
2. 2. 재건 (1945년 ~ 1964년)
1899년에 처음 지어진 목조 고딕 건축 양식의 건물은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소실되었다.[1] 1947년에는 컨셋 하우스[9] (반원통형)를 세워 성당으로 사용했고, 1951년에는 아동 회관 2층을 개조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했지만, 주교좌 성당의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1953년부터 1964년까지 간다 교회를 임시 주교좌 성당으로 사용하였다.1962년 5월, 일본에 대한 가톨릭 재선교 10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독일 쾰른 대교구의 지원을 받아 가톨릭 도쿄 대교구 주최로 도쿄 카테드랄 성 마리아 대성당의 공모전이 진행되었다.[11] 마에카와 구니오, 다니구치 요시로, 단게 겐조 3명이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현대적인 건축을 원했던 쾰른 측의 요청에 따라 특별한 설계 조건은 없었다.[11]
심사 결과, HP 쉘의 현대적인 구조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교회 건물 자체가 정점에서 십자가 형태를 띠는 단게의 설계안이 채택되었다. 단게의 설계안은 서양 교회 건축의 전형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일본 전통 건축 양식을 차용하여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12][13]
1964년 12월, 단게 겐조가 설계한 현재의 성당이 완공되어 주교좌 성당이 되었다.[2] 이 성당은 1966년에 제7회 BCS상을 수상했고, 2003년에는 DOCOMOMO JAPAN 선정 일본의 모던 무브먼트의 건축에 선정되었다. 1970년에는 단게 겐조가 대성당 설계 공로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성 그레고리오 만냐 훈장을 받았다.[15]
1967년 10월 23일에는 요시다 시게루 전 내각총리대신의 장례식이 거행되었고, 2005년 3월에는 성당 설계자인 단게 겐조의 장례식이 이곳에서 거행되었다.[3]
2. 3. 현대 (1964년 ~ 현재)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소실된 후, 1963년에 독일 쾰른 교구의 지원으로 현재의 건물이 건설되었다.[1] 현재의 교회는 단게 겐조가 설계했으며 1964년 12월에 봉헌되었다.[2] 단게 겐조의 장례식은 2005년 3월에 이곳에서 거행되었다.[3]1964년(쇼와 39년) 12월, 현재의 성당이 완성되어 주교좌 성당(카테드랄)이 되었다. 이 성당은 1966년(쇼와 41년)에 제7회 BCS상을 수상, 2003년(헤이세이 15년)에는 DOCOMOMO JAPAN 선정 일본의 모던 무브먼트의 건축에 선정되었다.
1967년(쇼와 42년) 10월 23일에는 요시다 시게루 전 내각총리대신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또한 도쿄 카테드랄 성 마리아 대성당의 설계자 단게 겐조의 장례식도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최근의 에큐메니즘 운동의 주요 무대 중 하나이기도 하며, 2009년(헤이세이 21년) 9월 23일에는 가톨릭 교회와는 다른 기독교 교파인 일본 성공회의 150주년 기념 예배가 거행되었다.
1899년(메이지 32년)에 처음 건립된 목조의 고딕 양식 성당은 1945년(쇼와 20년)에 전쟁으로 소실되었고, 가톨릭 세키구치 교회는 패전 후의 물자 부족으로 인한 경제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재건되지 못했다.[10] 그리하여 일본에 대한 가톨릭 재선교 10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독일 쾰른 대교구의 지원을 받아 가톨릭 도쿄 대교구 주최로 도쿄 카테드럴 성 마리아 대성당의 공모전이 1962년(쇼와 37년) 5월 마감으로 진행되었다.[11]
마에카와 구니오, 다니구치 요시로, 단게 겐조 3명으로 압축된 지명 공모였으며, 설계 기간은 6개월이었다. 현대적인 것을 원한다는 쾰른 측의 요청에 따라 설계 조건은 특별히 없었고, 종교 행사를 거행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을 갖추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11] 심사위원은 건축계에서 요시타케 야스미, 이마이 겐지, 스기야마 히데오, 교회 측에서는 3명의 사제와 쾰른에서 파견된 교회 건축 전문 건축가가 맡았다.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육중한 사각형 정육면체의 마에카와 안, 평면 계획은 샤미센의 바치를 연상시키는 은행나무 형이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역시 공회당이나 음악당을 연상시키는 상자형의 다니구치 안과 비교해, HP 쉘의 현대적인 구조 기술을 사용하면서, 교회의 건물 자체가 정점에서 십자가형이 되는 단게 안이 이채를 띠었고, 단게가 1등으로 당선되었다. 서양의 교회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거리에서 직접 들어가는 형식의 건축 계획이 아니라, 일단 부지 안쪽 「루르드의 동굴」을 향해 나아가, 거기서부터 방향을 돌려 계단을 올라 성당에 이르는 동선은, 먼저 도리이나 산문을 지나 참도를 걸으며 서서히 마음을 가다듬고, 거기서 본존에 마주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수법이며, 건물 자체의 기념비성뿐만 아니라 「장소」의 힘으로 성스러움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교회에 부속된 주변 시설과의 배치 밸런스가 뛰어난 전체 계획도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였다.[12][13]
이들 3개의 설계안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가톨릭 도쿄 대주교인 도이 다쓰오 추기경이며, 반드시 추천된 안을 채택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되어 있었다. 그는 "저는 여러분이 선택한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겠습니다. 저는 위원 여러분을 신뢰합니다"라고 말했고, 시라야기 세이이치 신부(후의 도쿄 대주교·추기경)가 모형이나 청사진을 보라고 부탁했지만,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훗날 실제로 건축 플랜과 모형을 보고, 순간 매우 놀랐다고 한다.[14]
단게는 대성당 설계의 공적으로 1970년(쇼와 45년)에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성 그레고리오 만냐 훈장을 수여받았다.[15]
2. 4. 도쿄 한인 성당
1990년 4월 8일 도쿄 내 한국인 가톨릭 신자 수 증가로 이곳에서 첫 미사를 봉헌한 이래 2012년까지 이 성당 시설을 빌려쓰고 있다.[26]3. 건축
1899년에 처음 건립된 목조 고딕 양식 성당은 1945년 전쟁으로 소실되었고, 가톨릭 세키구치 교회는 패전 후 물자 부족으로 인한 경제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재건되지 못했다.[10] 이후, 일본 가톨릭 재선교 10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독일 쾰른 대교구의 지원을 받아 가톨릭 도쿄 대교구 주최로 도쿄 카테드럴 성 마리아 대성당 공모전이 1962년에 진행되었다.[11]
마에카와 구니오, 다니구치 요시로, 단게 겐조 3명이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현대적인 건축을 원했던 쾰른 측의 요청에 따라 종교 행사에 필수적인 요소를 갖추는 것 외에는 특별한 설계 조건은 없었다.[11] 심사위원으로는 요시타케 야스미, 이마이 겐지, 스기야마 히데오 등 건축계 인사들과 3명의 사제, 그리고 쾰른에서 파견된 교회 건축 전문 건축가가 참여했다.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육중한 사각형 정육면체 형태의 마에카와 안, 샤미센의 바치를 연상시키는 은행나무 형태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콘서트홀과 유사한 상자형의 다니구치 안에 비해, HP 쉘의 현대적인 구조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교회 건물 자체가 정점에서 십자가형이 되는 단게 안이 채택되었다. 단게 안은 서양 교회에서 흔히 보이는, 거리에서 바로 들어가는 형식이 아니라, 부지 안쪽 「루르드의 동굴」을 향해 나아가다가 방향을 돌려 계단을 올라 성당에 이르는 동선을 채택했다. 이는 도리이나 산문을 지나 참도를 걸으며 마음을 가다듬고 본존을 마주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수법을 따른 것으로, 건물 자체의 기념비성뿐만 아니라 「장소」의 힘으로 성스러움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점이 교회 부속 시설과의 배치 균형과 함께 높은 평가를 받았다.[12][13]
최종 결정은 가톨릭 도쿄 대주교인 도이 다쓰오 추기경이 내렸으며, 그는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훗날 그는 건축 계획과 모형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14] 단게는 대성당 설계 공로로 1970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성 그레고리오 만냐 훈장을 수여받았다.[15]
유럽의 전형적인 대성당과 비슷한 음향 특성을 가진 대공간은 일본에서는 드물다고 여겨지며, 가끔 개최되는 파이프 오르간이나 오라토리오, 그레고리오 성가 등의 연주회에서는 현대적인 콘서트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교회 특유의 울림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긴 잔향과 변칙적인 벽면 형상에 의한 반사의 주파수 특성 때문에, 사제의 설교는 알아듣기 어렵고, 음악에 따라서는 소리가 혼탁한 인상을 준다. 현재의 파이프 오르간은 2대째로, 2004년에 완성되었으며, 이탈리아제 '마쇼니 오르간'으로 주로 매주 금요일에 오르간 명상(콘서트)이 개최되고 있다.[22][23]
3. 1. 건축 구조
건물 배치는 십자형으로, 여덟 개의 쌍곡 포물면이 위로 열려 빛의 십자가를 형성하며, 이는 네 개의 정면 전체를 따라 수직으로 이어진다. 단게 겐조의 이 설계는 나중에 샌프란시스코의 성 마리아 대성당 설계에 영감을 주었다.[4]능마름모 형태의 건물에는 세례당과 세례반을 포함한 부속 구조물이 추가되었다. 직사각형 모양은 대성당의 상징적인 특징과 대조를 이룬다. 종탑은 61.6m 높이로, 본 건물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 외부 마감은 스테인리스강으로 되어 있다.[4] 2004년에는 이탈리아 마시오니(Mascioni)사(社)가 제작한 대형 오르간이 설치되었다.[5]
2장씩 4종류, 총 8장의 RC 구조의 HP 쉘을 세워 맞댄 형태로 세로로 사용하여, 정점에서 톱 라이트를 위한 간극을 십자 형태로 열면서, 보에 의해 서로 지지하는 형태로, 중심부와 단부의 5곳에서 연결되어 있다. 또한 주변부를 제외하고 두께 12cm의 쉘의 강성을 높이기 위해, 바깥쪽에 2m 간격으로 세로 및 가로로 리브가 설치되어 있으며, 밑바닥에서는 다리 부분을 벌려 건물을 붕괴시키는 골조의 스러스트하중에 대항하는 인장재로서, 정점 중심에 있는 십자형 연결 보와 동일한 크로스 타이 빔이 지하에 설치되어 있어, 구조역학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HP 쉘의 구조체로서는 성립되지 않는다.[16]
미학적으로는 외부 디자인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성당에 걸맞게, 바위 물 표면에 내려온 은색 백조가 날개를 떨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인테리어에서는, 8장의 노출 콘크리트의 HP 쉘 벽면이, 시각적으로 겹쳐지고 서로 얽히면서 물결치며, 머리 부분의 십자형 톱 라이트까지 완만하게 기어 올라가, 시선은 그대로 천장에 도달하는 듯한 상승 감각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17]
톱 라이트가 중앙을 향해 경사 강하하고 있다는, 비를 막는 지붕의 원리에 반하는 구조상의 결함과 스테인리스강 외장의 기술상의 문제로 인해, 준공 후 비교적 빠른 시기부터 누수가 발생하여, 유리 위에 다시 아크릴 수지판으로 덮는 등, 보수 공사가 여러 번 이루어졌다.[18] 그 후 2007년의 대개수 공사에서, 톱 라이트와 스테인리스 외장을 일신하는 새로운 공법을 채택함으로써, 누수 문제는 거의 해결되었다.[19]


상공에서 내려다본 신의 시선을 의식한 듯 나타나는 정점부의 특징적인 형태는 십자가 형이지만, 밑바닥은 마름모꼴로 열려 넓어져, 현실적인 교회의 공간으로서의 쓰임을 해치지 않았다. 외장은 부식에 강한 스테인리스 스틸 판으로 마감되었으며, 내부 바닥면에는 화려한 대리석이 깔려 있다. 구조 자체는 전혀 다르지만, 관능적인 곡선을 다용한 외관의 형태는 단게 겐조의 동시대 작품인 국립 요요기 경기장과의 유사성이 자주 지적된다. 두 작품 모두 구조 기술자인 쓰보이 요시카쓰와 협업했지만, 설계 기간이 겹쳐 쓰보이는 요요기에 매달려 있었고, 실제 구조 설계는 도쿄 대학 쓰보이 연구실 담당자였던 나스카와 료헤이가 거의 혼자서 진행했다.[16]
세로로 사용된 2장의 HP 쉘 벽면 사이에 끼워진 슬릿 형태의 측면에는 무색 투명한 유리가 끼워져 있어, 외부의 빛을 받아들이는 하이 사이드 라이트 역할을 한다. 이와 유사한 십자가 모양의 톱 라이트와 함께, 노출 콘크리트 벽면에 흰색 빛을 드리워, 모더니즘 건축의 금욕적인 모노톤 미학을 돋보이게 한다. 몇 단의 계단을 사이에 두고 약간 높아진 내진 안쪽의 제단 부분만은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대리석을 얇게 슬라이스 한 것이 끼워져 있어,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거대한 십자가 뒤편에서 광배로서 품격 있는 웅장한 황금빛 빛을 내부 공간에 뿜어낸다.[20]
콘크리트로 쳐진 그대로의 내벽은 금욕적이고 정갈한 인상을 주며, 그 흔적은 근대 건축에 남겨진 약간의 수작업을 느끼게 한다. 가장 높은 곳에서 40m 가까이 이르는[21] 내부 공간은 전통적인 고딕 교회 건축의 상승 감각을 표상함과 동시에, 기독교의 전신인 구약의 고대 유대교회의 성막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조형으로 되어 있다.[12] 잔향은 7초(빈자리)에 이르며, 전형적인 중세유럽의 대성당보다 길다.
3. 2. 건축 의장
건물 배치는 십자형으로, 여덟 개의 쌍곡 포물면이 위로 열려 빛의 십자를 형성하며, 이는 네 개의 정면 전체를 따라 수직으로 이어진다. 단게 겐조의 이 설계는 나중에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 대성당인 성 마리아 대성당과 유사한 설계를 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4]능마름모 형태의 건물에는 세례당과 세례반을 포함한 다른 부속 구조물이 추가되었다. 직사각형 모양은 대성당의 상징적인 특징과 대조를 이룬다. 종탑은 61.6m 높이로, 본 건물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외부 마감은 스테인리스강으로 되어 있다.[4] 2004년에는 이탈리아 회사 마시오니(Mascioni)가 제작한 대형 오르간이 설치되었다.[5]
2장씩 4종류, 총 8장의 RC 구조의 HP 쉘을 세로로 사용하여, 정점에서 톱 라이트를 위한 간극을 십자 형태로 열면서, 보에 의해 서로 지지하는 형태로, 중심부와 단부의 5곳에서 연결되어 있다. 또한 주변부를 제외하고 두께 12cm의 쉘의 강성을 높이기 위해, 바깥쪽에 2m 간격으로 세로 및 가로로 리브가 설치되어 있으며, 밑바닥에서는 다리 부분을 벌려 건물을 붕괴시키는 골조의 스러스트하중에 대항하는 인장재로서, 정점 중심에 있는 십자형 연결 보와 동일한 크로스 타이 빔이 지하에 설치되어 있어, 구조역학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HP 쉘의 구조체로서는 성립되지 않는다.[16]
미학적으로 외부 디자인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성당에 걸맞게, 바위 물 표면에 내려온 은색 백조가 날개를 떨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인테리어에서는 8장의 노출 콘크리트의 HP 쉘 벽면이 시각적으로 겹쳐지고 서로 얽히면서 물결치며, 머리 부분의 십자형 톱 라이트까지 완만하게 기어 올라가, 시선은 그대로 천장에 도달하는 듯한 상승 감각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17]
톱 라이트가 중앙을 향해 경사 강하하고 있다는, 비를 막는 지붕의 원리에 반하는 구조상의 결함과 스테인리스강 외장의 기술상의 문제로 인해, 준공 후 비교적 빠른 시기부터 누수가 발생하여, 유리 위에 다시 아크릴 수지판으로 덮는 등, 보수 공사가 여러 번 이루어졌다.[18] 그 후 2007년의 대개수 공사에서, 톱 라이트와 스테인리스 외장을 일신하는 새로운 공법을 채택함으로써, 누수 문제는 거의 해결되었다.[19]
상공에서 내려다본 신의 시선을 의식한 듯 나타나는 정점부의 특징적인 형태는 십자가 형이지만, 밑바닥은 마름모꼴로 열려 넓어져, 현실적인 교회의 공간으로서의 쓰임을 해치지 않았다. 외장은 부식에 강한 스테인리스 스틸 판으로 마감되었으며, 내부 바닥면에는 화려한 대리석이 깔려 있다. 구조 자체는 전혀 다르지만, 관능적인 곡선을 다용한 외관의 형태는 단게 겐조의 동시대 작품인 국립 요요기 경기장과의 유사성이 자주 지적된다.
세로로 사용된 2장의 HP 쉘 벽면 사이에 끼워진 슬릿 형태의 측면에는 무색 투명한 유리가 끼워져 있어, 외부의 빛을 받아들이는 하이 사이드 라이트 역할을 한다. 이와 유사한 십자가 모양의 톱 라이트와 함께, 노출 콘크리트 벽면에 흰색 빛을 드리워, 모더니즘 건축의 금욕적인 모노톤 미학을 돋보이게 한다. 몇 단의 계단을 사이에 두고 약간 높아진 내진 안쪽의 제단 부분만은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대리석을 얇게 슬라이스 한 것이 끼워져 있어,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거대한 십자가 뒤편에서 광배로서 품격 있는 웅장한 황금빛 빛을 내부 공간에 뿜어낸다.[20]
콘크리트로 쳐진 그대로의 내벽은 금욕적이고 정갈한 인상을 주며, 그 흔적은 근대 건축에 남겨진 약간의 수작업을 느끼게 한다. 가장 높은 곳에서 40m 가까이 이르는[21] 내부 공간은 전통적인 고딕 교회 건축의 상승 감각을 표상함과 동시에, 기독교의 전신인 구약의 고대 유대교회의 성막을 동시에 연상시키는 조형으로 되어 있다.[12]
3. 3. 부속 시설
이 능마름모 형태의 건물에 세례당과 세례반을 포함한 다른 부속 구조물이 추가되었다. 직사각형 모양은 대성당의 상징적인 특징과 대조를 이룬다. 종탑은 61.6m 높이로, 본 건물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외부 마감은 스테인리스강으로 되어 있다.[4] 2004년에는 이탈리아 회사 마시오니(Mascioni)가 제작한 대형 오르간이 설치되었다.[5]경내에서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미켈란젤로)의 정교한 레플리카와, 성 유물의 전시를 볼 수 있다. 전시된 성 유물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유골(흉상형 성 유물 용기의 가슴에 삽입되어 있다)[24], 동방 박사의 성 유물 등이다.
지하에 납골당 및 소성당(소예배당)을 가지고 있으며, 성당 옆에는 철근 콘크리트로 된 종탑이 날카로운 형태를 보이며 우뚝 서 있다. 또한 교회 부지 안쪽에는 성모 마리아가 성 베르나데트에게 "원죄 없이 잉태되심"을 알렸다고 전해지는 프랑스의 루르드의 샘의 동굴의 암반이 재현되어 있으며[25], 이 암반 안에는 큰 성 마리아상이 있다.
4. 교통
- 도영 버스 백61계통 호텔 츠바키산소 도쿄 앞 하차, 도보 1분
- 도쿄 메트로 유라쿠초 선 고코쿠지 역 도보 10분, 에도가와바시 역 도보 15분
- 도쿄 메트로 부도심선 조시가야 역
- 야마노테 선 메지로 역
- 도덴 아라카와 선 히가시이케부쿠로 4초메 정류장, 키시모진마에 정류장
5. 갤러리
참조
[1]
웹사이트
Archdiocese of Tokyo
http://www.tokyo.cat[...]
2010-03-14
[2]
웹사이트
Archdiocese of Tokyo
https://web.archive.[...]
2020-06-10
[3]
웹사이트
NBM Media
https://web.archive.[...]
2010-10-15
[4]
서적
Kenzo Tange: Works and Projects
Gustavo Gili, S.A.
[5]
웹사이트
TOKYO (Japan) – St. Mary's Cathedral
https://web.archive.[...]
2010-12-16
[6]
문서
地所質入書入規則
[7]
문서
常陸国茨城郡宍所の藩主、[[松平頼徳]]の屋敷跡4800坪の土地。
[8]
문서
東京都公文書館所蔵(資料番号624.D3.12)『聖母教会堂設立願』(明治33年2月26日提出)
[9]
문서
米軍の簡易兵舎。戦後、米軍より払い下げられた。
[10]
문서
日経BP 2005、127頁
[11]
문서
丹下健三・藤森照信 2002、281頁
[12]
문서
丹下健三・藤森照信 2002、282頁
[13]
문서
「『東京カテドラル』指名設計競技丹下案にきまる」『建築文化』1962年7月号。
[14]
문서
カテドラルと土井枢機卿 白柳誠一 『カトリックグラフ』1970年 No.2, 49頁。
[15]
뉴스
丹下健三氏に法王庁から勲章
朝日新聞
1970-02-10
[16]
문서
日経BP 2005、128頁
[17]
문서
丹下健三・藤森照信 2002、282-284頁
[18]
문서
日経BP 2005、129頁
[19]
웹사이트
東京カテドラル聖マリア大聖堂 大改修工事
http://www.tokyo.cat[...]
2010-09-04
[20]
문서
日経BP 2005、126頁
[21]
서적
知識ゼロからの教会入門
幻冬舎
[22]
웹사이트
コンサート等
http://cathedral-sek[...]
[23]
웹사이트
新パイプオルガン計画 ~スケジュール~
http://tokyo.catholi[...]
[24]
문서
堂内の別の一角に掲げられている日独併記の「献堂式記念胸像贈呈文」によると、ザビエルの胸像(聖遺物容器)は銀箔をかぶせた木彫であり1620年-1621年の制作。嵌め込まれている聖遺物はザビエルの腕(の遺骨の小片)である。ドイツ・ケルンの{{仮リンク|聖母被昇天教会|de|St._Mari%C3%A4_Himmelfahrt_(K%C3%B6ln)|preserve=1}}から寄贈されたもの。
[25]
웹사이트
東京カテドラル聖マリア大聖堂の歴史
http://www.tokyo.cat[...]
파리외국선교회
2010-10-08
[26]
웹인용
한인교회
https://web.archive.[...]
2009-11-2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