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슈뢰더
1. 개요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1944년생으로, 나치 독일 시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독일 연방 총리를 역임했으며, 사회민주당(SPD) 소속으로 '아젠다 2010' 개혁을 추진했다. 퇴임 후에는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에서 요직을 맡아 친러 행보를 보였으며, 2014년 크림 반도 병합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러시아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었다. 또한, 한국인 김소연과의 불륜 및 결혼 과정에서 법적 문제에 휘말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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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게르하르트 프리츠 쿠르트 슈뢰더 |
|---|---|
| 로마자 표기 | Geregareuteu Peuricheu Kureuteu Syureodeo |
| 출생일 | 1944년 4월 7일 |
| 출생지 | 블롬베르크, 독일 |
| 거주지 | 동물원, 하노버-미테 |
| 소속 정당 | 독일 사회민주당 (1963년 이후) |
| 배우자 | 에바 슈바흐 (1968년–1972년, 이혼) 안네 타셴마허 (1972년–1984년, 이혼) 힐트루트 슈베체 (1984년–1997년, 이혼) 도리스 쾨프 (1997년–2018년, 이혼) 소연 슈뢰더-김 (2018년–현재) |
| 자녀 | 2명 |
| 모교 | 괴팅겐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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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
| 훈장 | 독일 연방 공로 훈장 |
| 직책 | 독일 연방총리 |
|---|---|
| 대통령 | 로만 헤어초크 요하네스 라우 호르스트 쾰러 |
| 부총리 | 요슈카 피셔 |
| 임기 시작 | 1998년 10월 27일 |
| 임기 종료 | 2005년 11월 22일 |
| 이전 총리 | 헬무트 콜 |
| 다음 총리 | 앙겔라 메르켈 |
| 직책 | 독일 사회민주당 대표 |
|---|---|
| 임기 시작 | 1999년 3월 12일 |
| 임기 종료 | 2004년 3월 21일 |
| 총무 | 프란츠 뮌테페링 올라프 숄츠 |
| 이전 대표 | 오스카 라퐁텐 |
| 다음 대표 | 프란츠 뮌테페링 |
| 직책 | 니더작센 주 주총리 |
|---|---|
| 임기 시작 | 1990년 6월 21일 |
| 임기 종료 | 1998년 10월 27일 |
| 부주총리 | 게르하르트 글로고프스키 |
| 이전 주총리 | 에른스트 알브레히트 |
| 다음 주총리 | 게르하르트 글로고프스키 |
| 직책 | 독일 연방참의원 의장 |
|---|---|
| 제1 부의장 | 에르빈 토이펠 |
| 임기 시작 | 1997년 11월 1일 |
| 임기 종료 | 1998년 10월 27일 |
| 이전 의장 | 에르빈 토이펠 |
| 다음 의장 | 한스 아이헬 |
| 직책 | 니더작센 주의회 야당 대표 |
|---|---|
| 주총리 | 에른스트 알브레히트 |
| 임기 시작 | 1986년 7월 9일 |
| 임기 종료 | 1990년 6월 21일 |
| 이전 대표 | 카를 라벤스 |
| 다음 대표 | 위르겐 간제우어 |
| 직책 | 독일 연방의회 의원 (니더작센) |
|---|---|
| 임기 시작 | 1998년 10월 26일 |
| 임기 종료 | 2005년 11월 24일 |
| 다음 의원 | 클레멘스 볼렌 |
| 이전 의원 | 다수 의원 선거구 |
| 선거구 | 사회민주당 명부 |
| 임기 시작 (1983년) | 1983년 3월 29일 |
| 임기 종료 (1986년) | 1986년 7월 1일 |
| 선거구 (1983년) | 사회민주당 명부 |
| 이전 의원 (1983년) | 다수 의원 선거구 |
| 다음 의원 (1986년) | 헬무트 뫼링 |
| 임기 시작 (1980년) | 1980년 11월 4일 |
| 임기 종료 (1983년) | 1983년 3월 29일 |
| 선거구 (1980년) | 하노버-란트 I |
| 이전 의원 (1980년) | 선거구 신설 |
| 다음 의원 (1983년) | 디트마르 칸시 |
| 직책 | 니더작센 주의회 의원 (레어테) |
|---|---|
| 임기 시작 | 1986년 7월 9일 |
| 임기 종료 | 1998년 10월 26일 |
| 이전 의원 | 한스-위르겐 멜렌틴 |
| 다음 의원 | 베르나데트 슈스터-바르카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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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제15대 연방의회 의원 -
올라프 숄츠
올라프 숄츠는 1958년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함부르크 시장과 연방 재무장관 겸 부총리를 역임하고 2021년부터 독일의 연방총리를 맡고 있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단호하게 대응하며 독일 외교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
독일의 제15대 연방의회 의원 -
그레고어 기지
그레고어 기지는 [그레고어 기지에 대한 정의]이며, [그레고어 기지의 주요 특징 1], [그레고어 기지의 주요 특징 2], [그레고어 기지의 주요 특징 3] 등을 포함하고, 한국 사회에 [정치적 영향], [경제적 영향], [사회문화적 영향]을 미치는 주제이다. -
독일의 제14대 연방의회 의원 -
헬무트 콜
헬무트 콜은 1982년부터 1998년까지 서독과 통일 독일의 연방총리를 역임하며 냉전 종식과 독일 통일을 이끌고 유럽 연합 통합에 기여했으나, 정치자금 스캔들, 건강 악화, 가족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독일의 정치인이다. -
독일의 제14대 연방의회 의원 -
올라프 숄츠
올라프 숄츠는 1958년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함부르크 시장과 연방 재무장관 겸 부총리를 역임하고 2021년부터 독일의 연방총리를 맡고 있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단호하게 대응하며 독일 외교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
게르하르트 슈뢰더 -
2005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
2005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는 사회민주당의 패배 이후 조기 총선으로 실시되어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이 사회민주당을 근소하게 앞섰지만 과반수 확보에 실패, 대연정 구성으로 앙겔라 메르켈이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 -
게르하르트 슈뢰더 -
2002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
2002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는 603명의 의원을 선출한 선거로, 사회민주당이 기독교민주연합과의 접전 끝에 제1당을 유지하며 녹색당과의 연정을 통해 정권을 재창출했다.
2. 어린 시절과 교육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1944년 나치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모센베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프리츠 슈뢰더는 베르마흐트 상병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슈뢰더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루마니아에서 전사했다. 어머니 에리카는 농업 노동자로 일하며 자신과 두 아들을 부양했다.
전쟁 후, 슈뢰더는 1958년부터 1961년까지 렘고의 철물점에서 소매 판매 견습 과정을 마쳤고, 이후 라게의 소매점에서 일했다. 괴팅겐에서 고등학교 졸업 증서를 받기 위해 야간 학교에 다니는 동안 건설 노동자와 판매원으로 일했다. 1966년 빌레펠트의 베스트팔렌콜레크에서 아비투어 시험에 합격하고 괴팅겐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76년 두 번째 사법 고시에 합격한 후 1990년까지 변호사로 일했다.
3. 초기 정치 경력
1963년 사회민주당(SPD)에 입당했다. 1978년 사회민주당의 청년 조직인 청년 사회주의자(Jusos) 연방 의장이 되었다. 1980년 독일 연방의회(Bundestag) 의원으로 당선되었는데, 이때 전통적인 정장 대신 스웨터를 입어 눈길을 끌었다. 헤르베르트 베너(1980~83)와 한스-요헨 포겔(1983~86)의 지도하에 사회민주당(SPD) 의원단에서 활동했으며, SPD 하노버 지역위원장을 역임했다.
1986년 니더작센 주 선거에서 니더작센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SPD 의원단 대표를 맡았다. 1990년 주 선거에서 SPD가 승리한 후, SPD-그린당 연정의 수장으로 니더작센 주지사가 되었다. 1994년과 1998년 주 선거에서도 승리했다. 이후 니더작센 주가 주요 주주인 폭스바겐 감사위원회에 임명되었다.
1990년 주지사 선출 후 슈뢰더는 연방 SPD 이사회 구성원이 되었다. 1997년과 1998년에는 연방참사원 의장을 역임했다.
4. 독일 연방 총리 (1998-2005)
1998년 총선에서 SPD(사회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새로운 중도 정치"를 표방하며 녹색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 16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루고 독일 연방 공화국 제7대 총리에 취임했다. 고급 양복과 시가를 즐기는 모습 때문에 "보스 동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9년에는 정책 대립으로 사임한 오스카어 라퐁텐을 대신하여 SPD 당수가 되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코소보 전쟁에 독일 연방군을 파병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군이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다. 미국 동시다발 테러 사건 이후 "미국과의 무제한 연대"를 선언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독일군을 파병했다. 2000년에는 IT 기술자 확보를 위해 그린카드 제도를 도입했고, 하노버에서 만국박람회를 개최했으나 큰 실패로 끝났다.
2002년 총선에서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간신히 승리하여 총리에 재임했다. 경제 침체가 지속되는 구 동독 지역 개발을 위해 노력했다. 2003년에는 경제 성장과 개혁을 위한 '아젠다 2010'을 발표했으나, 신자유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라크 전쟁에는 프랑스와 함께 반대하여 파병하지 않았다.
2004년에는 높은 실업률과 사회보험 제도 개혁에 대한 반발로 시위가 빈발하고 SPD 지지율이 하락하여 당수직에서 사퇴했다. EU가 동유럽까지 확대되면서 독일의 역할이 커졌으며, 이민 수용 관련 새 법률을 통과시켰다.
2005년에는 실업자가 500만 명을 넘어서고, 러시아와 노르트스트림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 합의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지방 의회 선거에서 연패하자 연방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으나, 기독교민주연합(CDU)에 패배하여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안겔라 메르켈 총리는 슈뢰더의 외교 정책 노선인 "파리-베를린-모스크바 축"을 삭제했다.
총리 퇴임 직전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와 함께 이슬람교 축제에 참여하는 등 이슬람권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4.1. 국내 정책
슈뢰더 정부는 첫 임기 동안 원자력 발전 단계적 폐지, 재생에너지 지원, 동성 시민연합 제도 도입, 귀화 법 완화를 결정했다.
슈뢰더 집권 기간 동안 경제 성장률은 2002년 0.2%로 둔화되었고, 2003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했으며, 독일 실업률은 10%를 넘었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슈뢰더를 아젠다 2010 개혁 프로그램과 연관짓게 되었는데, 이 프로그램에는 사회 복지 시스템 (국민 건강 보험, 실업 수당, 연금) 축소, 감세, 고용 및 임금 규정 개혁이 포함되었다. 그는 또한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기업 주식 매각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폐지했다.
2002년 선거 이후, SPD는 여론 조사에서 지지율이 꾸준히 하락했다. 많은 사람들은 슈뢰더의 제3의 길 프로그램을 독일 복지 국가 해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독일의 높은 실업률은 정부에 심각한 문제로 남았다.
슈뢰더의 세금 정책 또한 인기가 없었다. 풍자 라디오 프로그램인 더 게르드 쇼가 슈뢰더의 목소리(성대모사 전문가 엘마르 브란트가 연기)를 사용하여 독일의 간접세를 풍자한 세금 노래(Der Steuersong독일어)를 발표했는데, 이 노래는 2002년 독일 크리스마스 차트 1위를 차지하며 100만 장 이상 팔렸다.
슈뢰더가 폭스바겐 이사회에 재직했고(하노버 주지사로서의 직책과 함께 맡은 직책), 친 자동차 정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던 사실 때문에 그는 '자동차 총리'(Auto-Kanzler독일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4.2. 외교 정책
슈뢰더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작전의 일환으로 코소보와 아프가니스탄에 독일군을 파병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군이 전투 행위에 참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9.11 테러 이후, 슈뢰더는 테러리즘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과의 연대를 선언했고, 독일은 아프가니스탄에 2,000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이는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병력이었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세계 지도자들과 함께 슈뢰더는 2003년 이라크 침공에 강력히 반대하며 군사 지원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미국과 독일 간의 정치적 마찰이 발생했고, 슈뢰더는 독일 내 반미 정서를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4년 8월 1일, 바르샤바 봉기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슈뢰더는 폴란드 국민의 고통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이 기념식에 초청받은 최초의 독일 총리였다. 슈뢰더와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은 터키의 유럽 연합 가입을 지지했다.
슈뢰더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베를린과 모스크바 간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려 했다. 여기에는 발트해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이 포함되었다. 슈뢰더는 오렌지 혁명 당시 푸틴이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축하하기 며칠 전, 푸틴을 "완벽한 민주주의자"라고 칭해 앙겔라 메르켈 등에게 비판받았다.
2008년 2월, 슈뢰더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코소보를 인정한 일부 유럽 국가들을 비판하며, 이는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에 대해서는 미하일 사카슈빌리와 서방에 책임을 돌렸다.
슈뢰더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독일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했다.
4.2.1. 대한민국과의 관계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2002년 6월 제28회 주요 7개국 정상회의(서밋) 종료 후, 2002년 FIFA 월드컵 결승전 관전을 위해 일본 정부 전용기에 탑승하여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당시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 오토 쉴리 내무장관, 야당 지도자인 에드문트 슈토이베르 바이에른 주지사까지 일본에서 함께 경기를 관전했는데, 이는 독일 수뇌부가 모두 한국에 온 듯한 인상을 주었다. 라우 대통령을 제외한 이들은 독일 대표팀의 결승 진출을 계기로 급히 방한을 결정했다 (라우 대통령은 2006년 월드컵 개최국 수반으로서 독일 대표팀의 결과와 관계없이 방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브라질에 0-2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2018년에는 한국인 여성 김소연과 결혼했다.
5. 총리 퇴임 이후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스위스 출판사 링기어 AG의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그는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즈프롬과 로스네프트에서 요직을 맡아 친러 행보를 보였다. 2006년 3월,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 회사 가즈프롬(Газпром)의 자회사인 "노르트 스트림 AG"(독일어판, 영어판)의 이사회에 취임했다.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발트해 해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인 노르트 스트림 1과 노르트 스트림 2의 이사직을 2017년 시점까지 장기간 역임하며 이익을 얻은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옹호하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여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다.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러시아와 나토 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슈뢰더의 "푸틴 이해자(Putinversteher)" 입장은 비판을 받았다.
독일 내에서도 그의 친러 행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져, 사회민주당에서 제명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서방 국가의 정재계 인사들이 러시아에 매수되는 것을 풍자하는 "슈뢰더라이제이션(Schröderisierung)"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2017년 9월 11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특별시에 있는 "나눔의 집"을 방문한 슈뢰더는 자서전 한국어판 판매액 중 10을 기부하고, "일본 정부가 위안부에 대해 사과할 용기가 없다"고 말했다.
6. 비판과 논쟁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총리 재임 시절 '아젠다 2010' 개혁을 추진하여 노동계와 좌파 진영의 반발을 샀다. 퇴임 후에는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에서 활동하며 친러 행보를 보여 가장 큰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도 러시아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여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다.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과 관련하여 슈뢰더는 전쟁의 책임을 조지아 대통령 미하일 사카슈빌리와 "서방"에 돌리며, 미국이 사전에 알고 있었음을 암시했다.
2014년 3월, 슈뢰더는 러시아의 크림 반도 개입을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폭격에 비유하며 두 사례 모두 국제법과 유엔 헌장 위반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또한 냉전 종식 이후 전 소련 연방 외곽에서 "불행한 사건"들이 발생하여 푸틴이 포위될 것이라는 정당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2017년 11월 조사에서 슈뢰더가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관련 의혹에 대한 정치인 명단에 포함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외에도 김소연과의 불륜 및 결혼 과정에서 발생한 법적 문제도 논란이 되었다.
6.1. 가즈프롬 및 로스네프트 관련 논란
2005년 퇴임 직전, 러시아 국영 기업 가즈프롬 간의 노르트 스트림 1 건설 계약에 서명했고, 거의 즉시 파이프라인 회사 이사회에 합류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불과 며칠 만에 노르트 스트림 합작 투자 회사의 이사회에 합류하여 그의 이전 객관성에 대한 새로운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2006년 3월,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 회사 가즈프롬(Газпром)의 자회사인 "노르트 스트림 AG"(독일어판, 영어판)의 이사회에 취임했다.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발트해 해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인 노르트 스트림 1과 노르트 스트림 2의 이사직을 2017년 시점까지 장기간 역임하며 이익을 얻은 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
2005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 당시,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의 릭 노악(Rick Noak)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슈뢰더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기 몇 주 전인 2005년 10월 24일, 독일 정부는 가즈프롬(Gazprom)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노르트스트림 프로젝트 비용 10억 유로를 보장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 보증은 사용되지 않았다. 슈뢰더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직후 가스프롬의 제안을 받아들여 노르트스트림 AG(Nord Stream AG) 주주위원회 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이해충돌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2016년 슈뢰더는 가스프롬이 단독 주주인 원래 파이프라인의 확장판인 노르트스트림 2(Nord Stream 2)의 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
2017년 러시아는 슈뢰더를 러시아 최대 석유 생산업체 로스네프트(Rosneft) 이사회의 독립 이사로 임명했다. 당시 로스네프트는 우크라이나 위기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이유로 국제 제재를 받고 있었다. 그의 결정은 특히 2017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 속에서 독일과 해외에서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안젤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2017년 8월 전임자를 비판하며 "슈뢰더 씨가 하고 있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행동으로, 서방 국가의 정재계 인사들이 러시아에 매수되는 것을 풍자하는 "슈뢰더라이제이션(Schröderisierung)"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2022년 2월 5일,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Gazprom) 이사회 멤버로 임명되었다. 이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생했다.
슈뢰더는 침공 발생 후에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SNS 게시글을 올렸으며, 러시아 국영 기업 임원직도 사임하지 않았다. 서방의 전직 정상들 중 비슷한 입장에 있던 인물들은 잇달아 직책을 사퇴했기 때문에, 슈뢰더의 친러 성향이 두드러지게 되었고, 여러 분야에서 그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5월 19일 유럽 의회(Europäisches Parlament)는 슈뢰더가 로스네프트(Rosneft) 이사직을 사임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 제재 대상에 포함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5월 20일 로스네프트는 슈뢰더가 감사위원회 의장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8월 5일, 7월 하순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면담했던 사실을 공개하면서 "좋은 소식은 크렘린이 협상을 통한 해결을 원한다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의 전 지도자가 러시아를 위해 일하는 것은 매우 불쾌하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6.2. 김소연과의 불륜 및 소송
슈뢰더는 도리스와 이혼하기 전, 전문 통역인인 한국인 김소연과 불륜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김소연의 전 남편은 슈뢰더와 김소연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파탄주의를 채택한 독일 법에 따르면 기혼자와 불륜에 빠진 사람은 배상 책임이 없으나, 유책주의인 대한민국 법에 따르면 혼인 파탄에 대한 손해배상을 지기 때문에 슈뢰더는 김소연의 전 남편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하였다. 대한민국의 1심 법원은 대한민국 국제사법에 따라 대한민국 법이 준거법인 혼인관계를 상간자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 국가의 외국인이 불륜을 저질러 파탄낸 경우에도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