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대니얼 디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대니얼 디포는 1660년경 런던에서 태어난 영국의 소설가, 팸플릿 제작자,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비국교도였기에 사업가로 시작했으나 실패를 거듭했고, 이후 글쓰기를 통해 활동했다. 디포는 《로빈슨 크루소》, 《몰 플랜더스》 등 다양한 소설을 썼으며, 정치적 팸플릿과 에세이를 통해 사회 현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1707년 연합법을 홍보하는 등 정치적 활동도 활발히 펼쳤으며, 1731년 런던에서 사망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니얼 디포 - 조너선 스위프트
    조너선 스위프트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이자 사제로, 풍자와 사회 비판으로 유명하며 '걸리버 여행기', '드레이피어 서한', '겸손한 제안' 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 본성과 사회 부조리를 풍자적으로 비판했고 더블린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의 학장으로도 활동했다.
  • 정치 평론가 - 앙드레 말로
    앙드레 말로는 아시아 배경 소설 3부작으로 명성을 얻고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대전 레지스탕스 참여, 드골 정권 문화부 장관 역임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현대 프랑스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친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지식인, 정치인이다.
  • 정치 평론가 - 에리크 제무르
    에리크 제무르는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정치 평론가로서, 보수적인 입장에서 사회 문제에 대한 논쟁적인 주장을 펼치며 202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극우 성향의 정치인이다.
  • 영국의 장로교도 - 고든 브라운
    고든 브라운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정치인으로, 영국 의회 하원 의원, 재무장관을 거쳐 총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유엔 교육 담당 특사로 활동한다.
  • 영국의 장로교도 - 월터 스콧
    월터 스콧은 스코틀랜드의 시인이자 소설가로, 소아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스코틀랜드 민속과 전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역사 소설 장르를 개척하여 19세기 문학계와 스코틀랜드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말년에 재정적 파탄과 아내의 죽음을 겪었다.
대니얼 디포 - [인물]에 관한 문서

2. 생애

본명은 '''대니얼 포'''(Daniel Foe)로, 1660년런던비국교도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나중에 귀족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성에 'De'를 붙여 '''대니얼 디포'''(Daniel Defoe)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다.[8] 비국교도 신분으로 인해 옥스퍼드케임브리지 같은 대학 진학이나 특정 전문직 종사가 어려웠고, 뉴잉턴 그린의 비국교도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다.[20][21]

초기에는 상업에 종사하며 양말, 모직물, 포도주 등 다양한 사업을 시도했으나 여러 차례 실패와 파산을 경험했다.[17][2] 사업 실패 후, 그는 타고난 글재주를 살려 저널리스트이자 팸플릿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의 글쓰기는 생계 수단이자 정치적, 사회적 의견을 표현하는 통로였다. 그는 명예 혁명 이후 윌리엄 3세를 열렬히 지지했으며, 왕의 정책을 옹호하는 글을 다수 발표했다. 특히 그의 풍자시 ''진정한 영국인''(''The True-Born Englishman'', 1701)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앤 여왕 즉위 후 비국교도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자, 디포는 1702년 발표한 풍자 팸플릿 ''반체제자들을 다루는 가장 짧은 방법''(''The Shortest Way with the Dissenters'')으로 인해 체포되어 1703년 사형 기둥에 서는 형벌을 받았다.[17][25] 이때 온건파 토리당 정치인 로버트 할리의 도움으로 석방되었고, 이후 할리를 위해 비밀 정보원으로 활동하며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는 글을 썼다.[17] 그는 1707년 연합법 체결 과정에서 스코틀랜드에 파견되어 연합을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으며,[28][29] 이 경험은 훗날 ''대영 제국 연합사''(''The History of the Union of Great Britain'', 1709) 저술의 바탕이 되었다.[31]

정치적 부침 속에서도 디포는 왕성한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50대 후반인 1719년부터 약 5년간 소설 창작에 몰두하여 영국 소설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1719년 발표한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는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며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37] 이후 《캡틴 싱글턴》(''Captain Singleton'', 1720), 《몰 플랜더스》(''Moll Flanders'', 1722), 《페스트의 해의 기록》(''A Journal of the Plague Year'', 1722), 《록사나: 운 좋은 정부》(''Roxana: The Fortunate Mistress'', 1724) 등 다수의 소설을 연이어 발표하며 '영국 소설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게 된다. 그의 소설들은 사실적인 묘사와 평범한 인물들의 현실적인 삶을 다루며 근대 소설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말년에도 디포는 소설 외에 사회 비평, 행동 지침서, 역사서, 여행기 등 다양한 분야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상업과 사회상을 상세히 기록한 《영국 전체 섬 여행기》(''A tour thro' the whole island of Great Britain'', 1724–1727)가 있다. 그는 평생 500편이 넘는 방대한 저작물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포는 평생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렸으며, 말년에는 채권자들을 피해 숨어 지내기도 했다.[57][58] 1731년 4월 24일, 런던에서 뇌졸중으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사망했으며,[2] 번힐 필즈 묘지에 안장되었다.[59]

2. 1. 초기 생애

본명은 '''대니얼 포'''(Daniel Foe)이다. 런던의 크리플게이트 교구에 있는 포 스트리트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7] 그의 정확한 출생일과 출생지는 불확실하며, 여러 자료에서 1659년부터 1662년까지 다양한 날짜를 제시하지만, 1660년 여름 또는 초가을이 가장 유력한 시기로 여겨진다.[10]

그는 나중에 자신의 이름에 귀족적인 느낌을 주는 "De"를 추가하여 '''대니얼 디포'''(Daniel Defoe)라는 필명을 사용했다.[8] 이는 원래 성 '포'(Foe)가 영어로 "적", "반대자", "장애물" 등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때로는 자신이 드 보 포(De Beau Faux)라는 귀족 가문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8] "De"는 플랑드르 성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접두사이기도 하다.[9]

아버지 제임스 포(James Foe)는 부유한 수지 양초 상인이었으며, 경건한 정육점 회사의 회원이었다.[11][12] 아버지는 플랑드르 출신으로 추정되며[11][12], 데포 자신도 이러한 플랑드르 혈통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3][15] 그의 부모는 장로교 비국교도였다.

데포는 어린 시절 런던의 주요 사건들을 겪었다. 1665년에는 런던 대역병으로 도시 인구의 상당수(약 7만 명)가 사망했고[16], 이듬해인 1666년에는 런던 대화재가 발생하여 그의 집이 있던 동네에서는 데포의 집을 포함한 단 세 채의 집만 남았다.[16] 1667년, 그가 아마 7살쯤 되었을 때, 네덜란드 함대가 템스 강을 거슬러 올라와 메드웨이 강에서 채텀 마을을 공격하는 메드웨이 강 습격 사건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 앨리스(Alice)는 그가 약 10살 때 세상을 떠났다.[17][18]

데포는 서리주 도킹의 픽스햄 레인에 있는 제임스 피셔 목사의 기숙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19] 그의 부모가 비국교도였기 때문에, 그는 14세쯤 런던 북부 뉴잉턴 그린에 위치한 찰스 모튼의 비국교도 아카데미에 보내졌다.[20][21] 이 시기 그는 비국교도 교회에 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20][21] 당시 잉글랜드 정부는 잉글랜드 국교회 외의 종교 활동을 하는 비국교도들을 박해하고 있었다. 데포는 스토크 뉴잉턴의 처치 스트리트 95-103번지에 살기도 했다.[22]

비국교도라는 신분 때문에 옥스퍼드케임브리지 같은 명문 대학에 진학하거나 목사, 변호사 등 전통적인 고급 전문직에 종사하기 어려웠다. 이로 인해 그는 사업가의 길을 택했지만 여러 차례 실패를 겪었다. 이후 그는 글쓰기 재능을 살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게 된다.

1684년에 결혼했으며, 이듬해인 1685년에는 몬머스 공작 제임스 스콧이 일으킨 몬머스 반란에 가담했으나 처벌을 면했다. 이는 그의 정치 활동의 시작점으로 여겨진다. 1688년 명예 혁명이 일어나 윌리엄 3세메리 2세가 공동 왕으로 즉위하자, 데포는 런던에서 그들을 맞이하며 혁명을 지지했다. 1691년에는 풍자시를 출판했고, 윌리엄 3세가 단독 군주가 된 1694년 이후에는 '국책을 타이르며', '상비군론'(1698년), '순수한 잉글랜드인'(1701년) 등의 논문을 발표하며 윌리엄 3세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2. 2. 사업 활동

비국교도였기 때문에 고급 전문직에 종사하기 어려워 사업을 시작했다.[23] 그는 일반 상인으로서 양말, 일반 모직물, 포도주 등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며 사업에 뛰어들었다.[17] 큰 야망을 품고 사업을 벌였으나 빚을 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럼에도 시골 영지와 배를 소유하기도 했다. 이 배에는 향수 제조를 위한 사향고양이도 포함되어 있었다.[17] 1684년 1월 1일, 세인트 보톨프 교회에서 런던 상인의 딸인 메리 터플리와 결혼했으며, 그녀는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액수인 3700GBP의 지참금을 가져왔다.[23][17]

윌리엄 3세 즉위 이후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프랑스와의 갈등이 생기면서 데포의 무역 활동은 타격을 입었다.[17] 결국 1692년, 700GBP의 빚으로 체포되었고, 총 부채가 1.7만파운드에 달해 파산을 선언해야 했다.[17][2] 채무자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는 유럽과 스코틀랜드를 여행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 시기에 카디스, 포르투, 리스본 등지에서 포도주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24]

1695년경 잉글랜드로 돌아온 그는 공식적으로 "데포"라는 성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유리세 징수 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24] 1696년에는 현재 에식스의 틸버리 지역에서 타일 및 벽돌 공장을 운영했다.[24]

사업에서는 거듭 실패했지만, 데포는 평생 큰돈을 버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사업 실패 후에는 글재주를 살려 저널리스트와 작가로 활동하며 생계를 유지했다.[23] 그는 사망 당시 재산이 거의 없었으며, 왕실 재무부와 소송에 휘말렸던 것으로 보인다.[2]

1726년에 출판한 ''The Complete English Tradesman''에서 데포는 상업 활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영국의 상인과 무역 시스템이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며, 무역이 영국 경제의 근간("지주는 연못과 같지만 무역은 샘과 같다")이라고 강조했다.[36] 또한 무역이 사회 계층 상승에도 기여한다고 보았는데, 영국의 젠트리귀족 가문 역시 무역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상인 계층에 대한 높은 존경심을 표했다.[36] 데포는 무역이 전쟁보다 사회 및 경제 변화를 이끄는 더 나은 동력이며,[36] 대영 제국의 확장과 상업적 영향력 증대가 국내 무역 활성화로 이어져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비를 늘려 결국 빈곤층의 임금 상승과 생활 개선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36]

2. 3. 저술 활동

비국교도였기 때문에 당시 사회에서 고급 전문직으로 나아갈 길이 막혔던 디포는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이후 그는 타고난 글재주를 살려 생계를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저널리스트 활동과 팸플릿 저술에 매진했다. 그의 주된 목표 중 하나는 경제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었다.

디포는 일생 동안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글을 썼는데, 풍자시, 정치 및 종교 팸플릿, 소설, 역사서, 행동 지침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500편이 넘는 저작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그는 당대의 정치적, 종교적 논쟁에 활발히 참여하며 날카로운 시각이 담긴 팸플릿을 다수 발표했다. 이러한 활동은 때때로 그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했으며(팸플릿 제작과 투옥 참고), 정부를 위한 정보원으로 활동하며 글을 쓰기도 했다(1707년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연합 참고).

만년에는 소설 창작에 몰두하여 영국 소설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대표작으로는 《로빈슨 크루소》를 비롯하여 여러 편의 소설이 있으며, 이 시기에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소설 참고).

본명은 '대니얼 포'(Daniel Foe)였으나, '포'(foe)가 가진 부정적인 의미를 피하고 귀족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성에 '디'(De)를 붙여 '대니얼 디포'(Daniel Defoe)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는 최소 198개 이상의 필명을 사용했으며[51] 많은 작품을 익명으로 발표했기 때문에, 오늘날 그가 쓴 모든 작품을 정확히 가려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52][53]

2. 3. 1. 팸플릿 제작과 투옥

대니얼 디포가 사형 기둥에 묶여 있는 모습, 1862년 제임스 찰스 아미티지가 에어 크로의 그림을 바탕으로 제작한 선화


1702년 윌리엄 3세의 죽음은 앤 여왕의 즉위로 이어지며 또 다른 정치적 격변을 가져왔다. 앤 여왕은 즉시 비국교도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다.[17]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디포는 이전부터 팸플릿을 통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왔기에 자연스럽게 표적이 되었다.

결국 그의 팸플릿 저술과 정치 활동은 1703년 7월 31일 사형 기둥에 묶이는 결과를 낳았다. 직접적인 원인은 1702년 12월에 익명으로 출판한 팸플릿 ''반체제자들을 다루는 가장 짧은 방법, 즉 교회의 설립 제안'' (''The Shortest Way with the Dissenters; or, Proposals for the Establishment of the Church'')이었다. 이 팸플릿은 표면적으로는 비국교도들을 절멸시켜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을 담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고교회파 토리당의 편협함과, 소위 '상황적 순응'(occasional conformity)을 실천하며 종교적 신념보다 세속적 이익을 따르는 위선적인 반체제자들을 풍자하려는 목적이었다.[25][17] 하지만 곧 실제 저자가 디포임이 밝혀졌고, 그는 선동적 명예 훼손 혐의로 체포되었다.[17]

디포는 올드 베일리에서 악명 높은 판사 살라시엘 러블 앞에서 재판을 받았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6] 판결 내용은 200 마르크의 벌금, 세 차례의 공개적인 사형 기둥형, 그리고 벌금을 납부할 때까지 뉴게이트 감옥에 투옥되는 것이었다.[6] 전설에 따르면, 디포가 사형 기둥에 묶이기 전 발표한 시 ''사형 기둥에 대한 찬가'' (''Hymn to the Pillory'') 때문에, 군중들이 관례대로 오물 대신 꽃을 던지며 그의 건강을 기원하는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하지만, 역사가 존 로버트 무어는 "디포 외에는 잉글랜드에서 사형 기둥에 묶였다가 동료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은 사람은 없었다"고 평가하며 이 사건이 디포의 명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했다.[18]

사형 기둥에서 3일을 보낸 후 디포는 뉴게이트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때 토리당의 온건파 정치인 로버트 할리가 개입하여 디포가 토리당을 위한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조건으로 그의 석방을 중재했다. 할리는 디포의 미납된 벌금 일부를 대신 지불해주어 그의 재정적 어려움을 상당 부분 해소해주었다.[17]

감옥에서 풀려난 지 일주일 만인 1703년 11월 26일 밤, 디포는 1703년 대폭풍을 목격했다. 이 폭풍은 런던과 브리스톨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고,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디포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생존자들의 증언을 모아 ''폭풍'' (''The Storm'', 1704)을 출판했는데, 이는 현대 저널리즘의 효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26][27]

같은 해, 디포는 할리의 후원을 받아 정기간행물 ''프랑스 문제 검토'' (''A Review of the Affairs of France'')를 창간했다. 이 간행물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1702–1714)의 경과를 기록하며 할리 내각의 입장을 대변했고, 1713년까지 주 3회 발행되었다. 디포는 할리가 중요한 국가 문서를 허술하게 관리하는 것을 보고 정보 유출의 위험성을 경고했는데, 이는 훗날 윌리엄 그레그 사건으로 현실화되었다.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디포의 활동 방향도 바뀌었다. 1708년 할리가 실각하자 고돌핀을 지지하는 글을 썼고, 1710년 할리가 다시 권력을 잡자 그와 토리당을 지지했다. 1714년 앤 여왕이 사망하고 휘그당이 집권하자, 디포는 다시 휘그 정부를 위해 비밀 정보원으로 활동하며 토리당의 입장을 약화시키는 글들을 발표했다.[17]

디포의 팸플릿 활동이 모두 정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1706년 익명으로 출판된 ''1705년 9월 8일 캔터베리의 한 미세스 바그레이브에게 죽은 다음 날 미세스 벨의 환영에 대한 진실된 이야기'' (''A True Relation of the Apparition of one Mrs. Veal the next Day after her Death to one Mrs. Bargrave at Canterbury the 8th of September 1705'')는 사후 세계와 현실 세계의 교류를 다룬 초자연적인 이야기로, 샤를 드렐린코트의 종교 서적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쓰여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처럼 디포의 저술 활동은 정치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었다.

2. 3. 2. 1707년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연합

대니얼 디포의 저서 ''대영 제국의 통합 역사''(1709년) 표지


1703년 사형 기둥에서의 처벌과 뉴게이트 감옥 투옥 이후, 로버트 할리는 디포가 토리스를 위한 정보 요원으로 협력하는 대가로 그의 석방을 중재했다. 할리는 디포의 미결제 부채 일부를 해결해 주며 그의 재정 상황을 개선시켰다.[17] 디포는 런던 출신 스코틀랜드인이자 잉글랜드 은행 설립자 중 한 명인 윌리엄 패터슨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청했고, 패터슨은 할리에게 디포를 추천했다. 할리는 디포의 능력을 인정하여 1703년 그를 석방했다.

석방 직후 디포는 주간지로 시작하여 이후 주 3회 발행된 정기간행물 ''프랑스 문제 검토''(''The Review'')를 창간했다. 이 매체는 대부분 디포 자신이 직접 작성했으며, 할리 내각을 지지하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경과를 기록하는 한편, 1707년 연합법을 홍보하는 영국 정부의 주요 선전 도구 역할을 했다.[28] 디포는 ''The Review''와 여러 팜플렛을 통해 영국 여론을 상대로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연합이 북쪽 국경의 위협을 종식시키고, 영국 재무부에 "고갈되지 않는 인력의 보고"를 제공하며, 영국의 힘을 증대시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706년 9월, 할리는 디포를 비밀 요원으로 에든버러에 파견하여 "스코틀랜드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뒷거래를 사용"하도록 지시했다.[29] 디포는 스코틀랜드에서의 활동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의 첫 보고서에는 연합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담겨 있었다. 그는 "스코틀랜드 폭도들은 최악의 부류다"라고 보고했으며, "흥분한 군중이 '연합 반대! 영국 개는 안 돼!'라고 외치며 하이 스트리트를 덮치자 린치를 당할까 두려워했다"고 술회했다.[29] 당시 연합주의 지도자였던 페니쿠이크의 존 클러크 경은 훗날 자신의 회고록에서 디포가 고돌핀에 의해 파견된 스파이라는 사실이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만약 알려졌다면 "폭도들이 에든버러에서 그를 찢어 죽였을 것"이라고 기록했다.[30]

디포는 자신도 장로교 신자였기에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와 스코틀랜드 의회 위원회로부터 신뢰를 얻어 고문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는 할리에게 자신이 "그들의 모든 어리석음을 잘 알고" 있지만 "영국에 있는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아 의심을 받지 않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를 통해 그는 의회에 제출된 연합 관련 제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으며, 특히 옥수수와 보조금, 소비세 비율 문제에서 스코틀랜드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치를 이끌어냈다고 자평했다.

스코틀랜드에서 디포는 연합을 설득하기 위해 영국에서 사용했던 주장과는 정반대의 논리를 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영국 의회 주권 원칙을 내세우는 대신 스코틀랜드인들에게는 조약의 보증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익명으로 작성한 일부 팜플렛은 스코틀랜드인이 쓴 것으로 오인되어, 후대의 역사가들조차 당시 스코틀랜드 여론의 증거로 인용하기도 했다.

1709년, 디포는 자신의 경험과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방대한 저서 ''대영 제국 연합사''(''The History of the Union of Great Britain'')를 저술하여 에든버러에서 출판했다.[31][32][33] 이 책은 1604년 제임스 1세에게 처음 통일 제안이 제출된 시점부터 1707년 연합법 체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34] 디포는 책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연합 반대 주장을 일부 소개했지만, 항상 자신의 관점에서 결론을 내렸다. 그는 연합의 주요 반대자인 솔튼의 앤드루 플레처를 의도적으로 무시했으며, 연합 반대파의 지도자였던 해밀턴 공작이 결정적인 순간에 입장을 바꿔 연합을 지지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또한, 1703년부터 1705년까지 강력하게 독립을 주장했던 스코틀랜드 의회가 1706년에 왜 갑자기 연합을 수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다. 디포는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 충분한 보상이나 인정을 받지 못했다.

18세기 디포가 보았을 글래스고 다리


이후 디포는 1726년에 출판된 ''대영 제국 일주 여행기''(''A tour thro' the Whole Island of Great Britain'')를 집필하기 위해 다시 스코틀랜드를 방문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연합의 결과로 예측했던 스코틀랜드의 무역과 인구 증가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반대"였다고 인정했다. 그가 글래스고를 방문했을 때, 현지 주민들의 적대감은 "그들이 영국인이고, 거의 모든 사람이 반대했던 연합 때문"이었다고 기록했다.[35] 그가 글래스고를 묘사한 "친애하는 녹색 장소"(Dear Green Place)라는 표현은 종종 도시 이름의 게일어 번역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한다. 당시 글래스고를 포함한 스코틀랜드의 많은 지역은 연합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으며, 정부는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야 했다.

2. 3. 3. 소설

비국교도였기 때문에 당시 사회에서 고급 전문직으로 나아갈 길이 막혔던 디포는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이후 그는 타고난 글재주를 살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만년에는 소설 창작에 몰두했다. 그의 주된 목표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경제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놀라울 정도로 많은 글을 썼다. 특히 주요 소설을 집중적으로 발표한 1719년부터 1724년 사이에는 300쪽이 넘는 책만 21편을 출간했고, 이후 1731년 사망할 때까지 5년여 동안 12권을 더 저술했다.[37]

1714년 토리당의 몰락부터 1719년 《로빈슨 크루소》 출판까지의 기간 동안 디포의 저술 활동 범위와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이 있다. 디포 자신도 《명예와 정의에 대한 호소》(An Appeal to Honour and Justice, 1715)라는 변명서에서 자신의 글이 잘못 귀속되는 경향이 있음을 언급했고, 할리의 토리 내각(1710–1714)에서 자신이 맡았던 역할을 옹호했다. 이 시기 그의 소설가적 경력을 예고하는 작품들로는 종교적 의무에 대한 행동 지침서인 《가족 교사》(The Family Instructor, 1715), 위트레흐트 조약(1713) 협상에 참여한 프랑스 전권대사 니콜라 메스나제를 가장하여 쓴 《메스너 씨의 협상 기록》(Minutes of the Negotiations of Monsr. Mesnager, 1717), 파리의 무슬림이 쓴 것처럼 꾸며 유럽의 정치와 종교를 풍자한 《터키 스파이가 쓴 편지(속편)》(Continuation of Letters Written by a Turkish Spy, 1718) 등이 있다.

런던 버로우 오브 이즐링턴의 번힐 필즈, 시티 로드에 있는 "다니엘 드-포" 기념비


1719년부터 1724년까지 디포는 그의 명성을 확립한 주요 소설들을 연이어 출판했다.

  • 로빈슨 크루소 (Robinson Crusoe, 1719): 디포가 50대 후반에 발표한 이 소설은[37] 한 남자가 무인도에 28년간 표류하며 겪는 모험을 다룬다. 주인공 크루소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마다 신과 거래하려 하지만, 위기를 넘기면 다시 신을 외면하는 모습을 반복한다. 사회와 단절된 극한 상황 속에서 그는 결국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게 된다. 이 소설은 스코틀랜드 출신 표류자 알렉산더 셀커크의 실화를 부분적으로 바탕으로 한 것으로 여겨지지만,[17] 세부 내용은 실제와 차이가 있다. 셀커크가 머물렀던 칠레의 마스 아 티에라 섬은 1966년 로빈슨 크루소 섬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안달루시아-아랍의 박식가 이븐 투파일이 쓴 《철학자 독학자》(Philosophus Autodidactus)의 번역본에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38][39][40][41] 《로빈슨 크루소의 그 후의 모험》(The Farther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서문에서는 크루소가 베드퍼드셔에 정착해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으나, 아내가 죽은 뒤 다시 모험을 떠났다고 묘사된다. 베드퍼드는 《페스트의 해의 기록》의 화자인 "H. F."의 형제가 역병을 피해 은둔한 곳이기도 하다.
  • 《캡틴 싱글턴》 (Captain Singleton, 1720): 전반부는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탐험을 예견하는 듯한 아프리카 횡단 모험을, 후반부는 당시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던 해적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과 그의 종교적 멘토인 퀘이커교도 윌리엄 월터스 사이의 관계를 섬세하게 묘사한 점이 특징이다. 아프리카 지리와 동식물에 대한 묘사가 매우 상세하여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 《기사의 회고록》 (Memoirs of a Cavalier, 1720): 30년 전쟁잉글랜드 내전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이다.
  • 《페스트의 해의 기록》 (A Journal of the Plague Year, 1722): 1665년 런던 대역병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한 작품으로, 소설과 논픽션의 경계에 있다. 디포는 사건 발생 당시 겨우 다섯 살이었지만, 삼촌 헨리 포(Henry Foe)를 주요 정보원으로 삼고 방대한 조사를 통해 마치 목격자("H. F.")가 서술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구성했다.[42][43][44][45]
  • 《대령 잭》 (Colonel Jack, 1722): 가난과 범죄 속에서 자란 고아 소년이 식민지에서 부를 쌓고 군인으로서 복잡한 결혼 생활을 거치며, 결국 종교적 귀의를 통해 "신사"가 되고자 하는 과정을 그린다.
  • 몰 플랜더스 (Moll Flanders, 1722): 17세기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여성의 타락과 궁극적인 구원 과정을 그린 1인칭 악한 소설이다. 주인공 몰은 매춘부, 중혼자, 도둑으로 살아가며 민트 자유구역에 거주하고 간통과 근친상간까지 저지르지만, 독자의 연민을 자아낸다. 남성과 부를 영리하게 이용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지만 결국 회개하고 보상받는다. 이 작품은 당시 여성성과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며 소설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23] 후대에는 에로티카로 간주되기도 했다.[46][47]

대니얼 디포가 한때 살았던 잉글랜드 런던 근처의 집

  • 《록사나: 운 좋은 정부》 (Roxana: The Fortunate Mistress, 1724): 디포의 마지막 소설로, 상류 사회 고급 창부의 도덕적, 정신적 타락을 다룬다. 주인공 록사나는 말년에 자신의 이야기를 회고하며 참회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과 달리 뚜렷한 회심의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48]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디포는 소설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썼다. 《종교적 구애》(Religious Courtship, 1722), 《완전한 영국 상인》(The Complete English Tradesman, 1726), 《새로운 가족 교사》(The New Family Instructor, 1727)와 같은 행동 지침서를 비롯하여, 《종속의 대법》(The Great Law of Subordination Consider'd, 1724)과 《모두의 일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일》(Everybody's Business Is Nobody's Business, 1725)처럼 사회 질서 붕괴를 비판하는 책들도 출판했다. 또한 《악마의 정치사》(The Political History of the Devil, 1726), 《마법의 체계》(A System of Magick, 1727), 《유령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에세이》(An Essay on the History and Reality of Apparitions, 1727) 등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작품과 《발견과 개선의 일반적인 역사》(A General History of Discoveries and Improvements, 1727), 《해양 및 상업 지도》(Atlas Maritimus and Commercialis, 1728)와 같은 외국 여행 및 무역 관련 저술도 남겼다. 소설 외에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영국 전체 섬 여행기》(A tour thro' the whole island of Great Britain, 1724–1727)로, 산업 혁명 직전 영국의 무역 상황을 폭넓게 조망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2. 4. 후기 활동 및 사망

1714년 휘그당이 정권을 잡고 로버트 할리가 실각한 후, 디포는 휘그당 정권 하에서 비밀 활동을 계속하는 조건으로 작가 활동을 이어갔다.

디포는 1707년 연합법과 관련된 저술 활동도 했는데, 1709년에는 방대한 저서인 ''대영 제국 연합사''를 출판했다.[31][32][33] 이 책에서 그는 제임스 1세 시대부터 연합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히 다루었다.[34] 그러나 그는 연합을 지지했던 스코틀랜드 의회가 갑자기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후 1726년에 출판된 ''대영 제국 일주 여행기''에서는 스코틀랜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합 이후 기대했던 무역과 인구 증가가 실현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35]

그는 글래스고를 "친애하는 녹색 장소"(Dear Green Place)라고 묘사했는데, 이는 당시 연합에 대한 불안감이 감돌던 스코틀랜드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디포는 1720년대 중반 방문 시 영국인이라는 이유와 연합에 대한 반감 때문에 적대감을 느꼈다고 기록했다.[35]

1714년 토리당 몰락 이후부터 1719년 로빈슨 크루소 출판 이전 시기에는 자신의 정치 활동을 변호하는 글(명예와 정의에 대한 호소, 1715)을 비롯해, 종교적 지침서(가족 교사, 1715), 위트레흐트 조약 협상 과정을 다룬 글(메스너 씨의 협상 기록, 1717), 유럽 정치와 종교를 풍자한 글(터키 스파이가 쓴 편지(속편), 1718) 등을 발표했다.

1719년부터 1724년까지 디포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설들을 집중적으로 발표했다. 59세에 출판하여 큰 성공을 거둔 로빈슨 크루소(1719)를 시작으로, 싱글턴 선장(Captain Singleton, 1720), 로빈슨 크루소 반성록(Serious Reflections During the Life and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With his Vision of the Angelick World, 1720), 몰 플랜더스(1722), 흑사병 연도의 일지(A Journal of the Plague Year, 1722), 자크 대령(Colonel Jack, 1722), 록새너(Roxana: The Fortunate Mistress, 1724) 등이 이 시기에 나왔다.[66] 이 기간 동안 300쪽이 넘는 책만 21권을 출판했으며, 이후 사망까지 5년여 동안 12권을 더 집필하는 등 놀라운 저술 활동을 보였다.

소설 외에도 말년에는 다양한 주제의 글을 썼다. 《종교적 구애》(Religious Courtship, 1722), 《완전한 영국 상인》(The Complete English Tradesman, 1726), 《새로운 가족 교사》(The New Family Instructor, 1727)와 같은 처세 지침서, 사회 질서 붕괴를 비판하는 《종속의 대법》(The Great Law of Subordination Consider'd, 1724)과 《모두의 일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일》(Everybody's Business is Nobody's Business, 1725), 그리고 《악마의 정치사》(The Political History of the Devil, 1726), 《마법의 체계》(A System of Magick, 1727), 《유령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에세이》(An Essay on the History and Reality of Apparitions, 1727) 등 초자연적 현상에 관한 저작도 남겼다. 또한 《발견과 개선의 일반적인 역사》(A General History of Discoveries and Improvements, 1727)와 《해양 및 상업 지도》(Atlas Maritimus & Commercialis, 1728) 같은 해외 여행 및 무역 관련 저술도 있다. 소설 외에 그의 중요한 작품으로는 산업 혁명 직전 영국의 무역 상황을 보여주는 ''대영 제국 일주 여행기''(A tour thro' the whole island of Great Britain, 1724–1727)가 있다.

1726년에 출판된 《완전한 영국 상인》에서 디포는 영국의 상인이 다른 나라의 상인보다 우월하며, 무역이 영국 경제의 근간이라고 주장했다("지주는 연못과 같지만 무역은 샘과 같다").[36] 그는 상인 계층을 높이 평가하며, 영국의 젠트리 계층 역시 무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36] 또한 무역이 전쟁보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더 효과적이며, 대영 제국의 확장을 통해 국내 무역을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여 빈곤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36]

번힐 필즈 기념비 상세 모습


디포는 1731년 4월 24일, 태어난 곳에서 멀지 않은 런던 로프메이커스 앨리(Ropemaker's Alley)에서 사망했다. 당시 그는 채권자들을 피해 숨어 지냈던 것으로 추정된다.[57][58] 사망 원인은 무기력증(lethargy)으로 기록되었으나, 뇌졸중이었을 가능성이 있다.[2] 그의 나이는 71세였다. 그는 런던 시 경계 밖 번힐 필즈 묘지에 안장되었으며, 1870년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59]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De Foe Place)가 있다.[60]

3. 주요 작품

비국교도였던 대니얼 디포는 사업 실패 후 생계를 위해 글쓰기에 전념했다. 그는 저널리스트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방대한 양의 글을 썼고, 만년에는 소설 창작에도 힘을 쏟았다. 디포는 놀라울 정도로 다작한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1719년부터 1724년 사이에 주요 소설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발표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단연 ''로빈슨 크루소''(1719)이며, 이 외에도 ''싱글턴 선장''(1720), ''몰 플랜더스''(1722), ''역병의 해 저널''(1722), ''잭 대령''(1722), ''록사나: 행운의 애인''(1724) 등 다수의 중요한 소설을 남겼다. 소설 외에도 디포는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는 다양한 논픽션, 팸플릿, 에세이 등을 저술하여 폭넓은 지적 활동을 펼쳤다.

3. 1. 소설



비국교도였기 때문에 고급 전문직의 길이 막혀 사업을 시작했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이후 타고난 글재주를 활용하여 생계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만년에는 소설 창작에 몰두했다. 디포는 놀라울 정도로 다작이었는데, 주요 소설을 집중적으로 발표한 1719년부터 1724년 사이에는 300쪽이 넘는 책만 21편을 출간했고, 이후 1731년 사망할 때까지 5년여 동안 12권을 더 저술했다.

디포가 50대 후반인 1719년에 출판한[37] ''로빈슨 크루소''는 한 남자가 무인도에 난파되어 28년간 겪는 모험을 다룬다. 주인공 크루소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신과 거래하며 고뇌하지만, 위기를 벗어나면 번번이 신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사회와 단절된 채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며 자신의 삶에 만족하게 된다. 이 소설은 스코틀랜드 출신 조난자 알렉산더 셀커크의 실화를 부분적으로 바탕으로 한 것으로 여겨지지만,[17] 세부 내용은 셀커크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다. 셀커크가 머물렀던 마스 아 티에라 섬은 1966년 로빈슨 크루소 섬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디포가 안달루시아-아랍의 박식가 이븐 투파일(유럽에서는 "아부바체르"로 알려짐)의 저서 번역본에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븐 투파일의 책은 라틴어 판으로 ''Philosophus Autodidactus|필로소푸스 아우토디닥투스la''[38][39][40][41]라는 제목으로 알려졌으며, 사이먼 오클리가 1708년 "인간 이성의 향상, 하이 이븐 욕단의 삶에서 전시됨(The Improvement of Human Reason, Exhibited in the Life of Hai Ebn Yokdhan)"이라는 제목으로 영어 번역본을 출판했다. 디포는 ''로빈슨 크루소의 더 먼 모험''에서 크루소가 베드퍼드셔에 정착해 가정을 꾸렸다가 아내가 죽은 뒤 다시 모험을 떠났다고 묘사했는데, 이 지역은 ''역병의 해 저널''에서 주인공 "H. F."의 형제가 역병을 피해 은퇴한 장소이기도 하다. 디포는 뉴잉턴 그린에서 카루소(Carusoe)라는 친구와 함께 학교를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디포의 다음 소설인 ''싱글턴 선장''(1720)은 전반부에서 아프리카 횡단 모험을 다루고 후반부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해적 행위를 묘사한다. 특히 주인공과 그의 종교적 멘토인 퀘이커교도 윌리엄 월터스 사이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프리카 지리와 동물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이어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같은 해에 발표된 ''기사의 회고록''(1720)은 30년 전쟁잉글랜드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역병의 해 저널''(1722)은 1665년 런던 대역병을 다룬 작품으로, 소설과 논픽션의 경계에 있다. 디포는 당시 다섯 살에 불과했지만, 삼촌 헨리 포(Henry Foe)를 주요 정보원으로 삼아 "H. F."라는 이니셜로 서명하고,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마치 목격자가 쓴 것처럼 생생하게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42][43][44][45]

''잭 대령''(1722)은 빈곤과 범죄 속에서 자란 고아 소년이 식민지에서 부를 쌓고 군인으로서 복잡한 결혼 생활을 거치며 종교적으로 개종하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은 "신사"가 되고자 하는 모호한 열망에 이끌린다.

같은 해에 출판된 ''몰 플랜더스''(1722)는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타락과 궁극적인 구원을 그린 1인칭 악한 소설이다. 주인공 몰은 창녀, 중혼자, 도둑으로 살아가며 민트 자유구역에 거주하고 간통과 근친상간을 저지르지만, 독자의 동정심을 얻는 데 성공한다. 그녀는 남성과 부를 영리하게 이용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지만 결국 보상을 받는다. 몰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도덕적으로 고뇌하지만, 이야기 대부분에서 종교는 큰 관심사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로빈슨 크루소처럼 그녀 역시 결국 회개한다. ''몰 플랜더스''는 당시 영국 사회의 여성성과 성 역할에 대한 통념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소설 발달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23] 후대에는 에로티카로 간주되기도 했다.[46][47]

디포의 마지막 소설인 ''록사나: 행운의 애인''(1724)은 상류 사회 고급 창부의 도덕적, 정신적 타락을 다룬다. 주인공 록사나는 말년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며 참회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작품들과 달리 뚜렷한 회심의 경험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48]

=== 주요 소설 목록 ===

  • ''콘솔리데이터, 또는 달 세계의 다양한 거래의 회고록: 달의 언어에서 번역됨'' (The Consolidator, or Memoirs of Sundry Transactions from the World in the Moon: Translated from the Lunar Language, 1705)[61]
  • ''미시즈 빌의 유령 이야기의 진실된 보고서'' (A True Relation of the Apparition of one Mrs. Veal, 1706) - 소문 기록
  • ''로빈슨 크루소'' (1719) – 원래 두 권으로 출판됨:[61]
  • *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삶과 놀라운 모험: 28년 동안 살았던 자[...]'' (The Life and Strange Surpriz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 Mariner: Who Lived Eight and Twenty Years [...])
  • * ''로빈슨 크루소의 더 먼 모험: 그의 삶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부분[...]'' (The Farther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Being the Second and Last Part of His Life [...])
  • ''로빈슨 크루소의 삶과 놀라운 모험 동안의 진지한 고찰: 천사의 세계에 대한 그의 비전'' (Serious Reflections During the Life and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With his Vision of the Angelick World, 1720)
  • ''싱글턴 선장'' (Captain Singleton, 1720)
  • ''기사의 회고록'' (Memoirs of a Cavalier, 1720)
  • ''역병의 해 저널'' (A Journal of the Plague Year, 1722)
  • ''잭 대령'' (Colonel Jack, 1722)
  • ''몰 플랜더스'' (Moll Flanders, 1722)
  • ''록사나: 행운의 애인'' (Roxana: The Fortunate Mistress, 1724)
  • ''조지 로버츠 선장의 4년간의 항해'' (The Four Years Voyages of Capt. George Roberts, 1726)

3. 2. 논픽션

비국교도였기 때문에 고급 전문직에 종사하기 어려웠던 디포는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이후 타고난 글재주를 활용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방대한 양의 글을 썼고, 만년에는 소설도 집필했지만, 그의 주된 목표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경제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었다.[1] 디포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글을 남겼는데, 특히 1719년부터 1724년까지 집중적으로 작품을 발표했으며, 이후 사망 시까지 꾸준히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1]

디포의 주요 논픽션 작품은 다음과 같다.

  • ''https://www.gutenberg.org/ebooks/73564 아메리카의 해적과 마론''(The History of the Pyrateseng)(1684) - 1891년에 출판된 삽화가 포함된 버전이며, 책의 역사에 대한 상세 내용을 담고 있다.
  • ''프로젝트에 대한 에세이''(An Essay Upon Projectseng)(1697): "프로젝트의 역사", "프로젝트 기획자", "은행", "고속도로", "보증", "친목회", "연금 사무소 제안", "도박", "바보", "자선 복권", "파산자", "아카데미"(여성을 위한 아카데미 제안 포함), "상업 법정", "선원" 등의 하위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2]
  • ''폭풍''(The Stormeng)(1704): 1703년 대폭풍을 기록한 책으로, 목격자들의 증언을 포함하고 있다.[3]
  • ''미시즈 빌의 유령 이야기의 진실된 보고서''(A True Relation of the Apparition of one Mrs. Vealeng)(1706): 당시 떠돌던 유령 목격담을 기록한 글이다.
  • ''아틀란티스 메이저''(Atlantis Majoreng)(1711)
  • ''가족 지도자''(The Family Instructoreng)(1715)
  • ''스코틀랜드 교회사 회고록''(Memoirs of the Church of Scotlandeng)(1717)
  • ''존 셰퍼드의 놀라운 삶의 역사''(The History of the Remarkable Life of John Sheppardeng)(1724): 악명 높은 도둑 존 셰퍼드의 범죄 행각과 그의 극적인 탈옥 과정을 다루고 있다.[4]
  • ''존 셰퍼드의 모든 강도, 탈출 등에 대한 이야기''(A Narrative of All The Robberies, Escapes, &c. of John Sheppardeng)(1724): 셰퍼드 본인이 교수형 집행 직전 감옥에서 직접 썼거나 구술한 내용을 받아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셰퍼드는 처형장으로 이송되는 마차 안에서 출판업자 애플비에게 이 원고를 넘겼다고 전해진다. 원고에는 사실 관계 수정과 탈옥 방법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었다.[5]
  • ''영국 섬 전체를 일주하는 여행, 순회 또는 여정으로 나뉜다''(A tour thro' the whole island of Great Britain, divided into circuits or journieseng)(1724–1727)
  • ''새로운 세계 일주 항해''(A New Voyage Round the Worldeng)(1724)
  • ''악마의 정치사''(The Political History of the Devileng)(1726)
  • ''완전한 영국 상인''(The Complete English Tradesmaneng)(1726)
  • ''결혼 침대의 사용과 오용에 관한 논문''(Conjugal Lewdness or Matrimonial Whoredomeng)(1727)
  • ''영국 상업 계획''(A Plan of the English Commerceeng)(1728): 영국의 모직물 산업 기반이 튜더 왕가 시대, 특히 잉글랜드의 헨리 7세와 엘리자베스 1세의 보호주의 정책을 통해 어떻게 발전했는지 설명한다. 여기에는 완제품 모직물 수입에 대한 높은 관세 부과, 영국산 생모직 수출에 대한 높은 세금 부과, 저지대 국가에서 모직물 기술을 가진 장인 초빙, 선택적 정부 독점권 부여, 정부 주도의 산업 스파이 활동 등의 정책이 포함된다.[6]

3. 3. 팸플릿 및 에세이


  • 가난한 자의 간청 (The Poor Man's Plea) (1698)
  • 켄티시 탄원서의 역사 (The History of the Kentish Petition) (1701)
  • 이단자 처벌의 가장 짧은 방법 (The Shortest Way with the Dissenters) (1702)
  • 종속의 위대한 법에 대한 고찰 (The Great Law of Subordination Consider'd) (1704)
  • 자선은 자비가 아니며, 가난한 자를 고용하는 것 (Giving Alms No Charity, and Employing the Poor) (1704)
  • 최근 폭풍에 대한 에세이 (An Essay on the Late Storm) (1704)
  • 미세스 빌의 유령 (The Apparition of Mrs. Veal) (1706)
  • 미시즈 빌의 유령 이야기의 진실된 보고서 (1706)
  • 명예와 정의에 대한 호소, 비록 그의 가장 심한 적이라 할지라도, 대니얼 디포의 공적 활동에 대한 진실된 설명 (An Appeal to Honour and Justice, Tho' it be of his Worst Enemies, by Daniel Defoe, Being a True Account of His Conduct in Publick Affairs) (1715)
  • 언론의 변호: 또는 글쓰기의 유용성, 비평, 그리고 저자의 자격에 관한 에세이 (A Vindication of the Press: Or, An Essay on the Usefulness of Writing, on Criticism, and the Qualification of Authors) (1718)
  • 모두의 일은 아무도 안 한다 (Every-body's Business, Is No-body's Business) (1725)
  • 개신교 수도원 (The Protestant Monastery) (1726)
  • 문학에 관한 에세이 (An Essay Upon Literature) (1726)
  • 단순한 본성의 묘사 (Mere Nature Delineated) (1726)
  • 교구의 폭정 (Parochial Tyranny) (1727)
  • 부부의 음란함 (Conjugal Lewdness) (1727) – 반(反) 피임 에세이
  • 아우구스타 트라이엄판스 (Augusta Triumphans) (1728)
  • 재고가 최선이다 (Second Thoughts are Best) (1729)

4. 작품의 특징 및 영향



디포가 50대 후반에 출판한[37] ''로빈슨 크루소''는 한 남자가 무인도난파되어 28년간 홀로 살아가며 겪는 모험을 다룬다. 주인공 크루소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위기 상황에서는 과 거래하며 고뇌하지만, 위기를 벗어나면 번번이 신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결국 사회와 단절된 상태에서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며 자신의 삶에 만족하게 된다. 이 소설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난파자 알렉산더 셀커크의 실화를 부분적으로 바탕으로 한 것으로 여겨지지만,[17] 세부 내용은 셀커크의 경험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디포가 안달루시아 출신의 아랍 무슬림 박식가 이븐 투파일의 저서 번역본에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븐 투파일의 책은 유럽에서 "아부바체르"로 알려졌으며, 라틴어판 제목은 ''철학자 독학자''였다.[38][39][40][41] 1708년 사이먼 옥클리가 "인간 이성의 향상, 하이 이븐 욕단의 삶에서 전시됨"이라는 제목으로 영어 번역본을 출판했다.

1722년에 발표한 ''몰 플랜더스''는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타락과 궁극적인 구원(물질적, 정신적 모두)을 다룬 1인칭 악한 소설이다. 주인공 몰 플랜더스는 매춘부, 중혼자, 도둑으로 살아가며 민트 자유구역에 거주하고 간통근친상간을 저지르지만, 독자의 동정심을 잃지 않는다. 그녀는 남성과 부를 영리하게 이용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지만 결국 보상을 받는다. 몰은 자신의 행동과 결정의 도덕성에 대해 고뇌하지만, 이야기 대부분에서 종교는 그녀의 주된 관심사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로빈슨 크루소처럼 그녀 역시 마지막에는 회개한다. ''몰 플랜더스''는 18세기 영국 사회의 여성성과 성 역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소설 발전에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23] 본래 에로티카로 의도된 작품은 아니었으나, 후대에는 그렇게 간주되기도 했다.[46][47]

디포의 작품, 특히 소설에는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그는 작품 대부분을 통해 독자에게 특정 메시지, 주로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도덕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교훈주의적 경향을 보였다.[49] 이러한 교훈주의와 관련하여, 특히 ''로빈슨 크루소''에서는 영적 자서전 장르의 형식을 사용하기도 했다.[50] 또한 디포는 자신의 소설이 실제 인물의 진실한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니얼 디포는 최소 198개의 필명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51] 18세기에는 소설을 출판할 때 필명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흔한 관행이었으며, 당시 대부분의 작가들도 익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52] 디포의 작품 상당수가 익명으로 출판되었기 때문에, 학자들은 오랫동안 그가 쓴 모든 작품의 저작권을 정확히 밝히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디포 자신의 이름이나 그의 잘 알려진 필명 "진정한 영국인의 저자"로 출판된 작품만 고려하면, 그에게 귀속될 수 있는 작품은 약 75편 정도이다.[53]

이 75편 외에 익명으로 출판된 작품 중 어떤 것이 디포의 것인지를 밝히기 위해 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작가 조지 찰머스는 이러한 작업을 처음 시작한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연합사(History of the Union)''에서 디포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100개 이상의 제목 목록과 "디포의 것으로 추정되는 책" 20편을 추가로 제시했다.[54] 찰머스는 디포 특유의 문체와 사고방식을 보이는 작품들을 목록에 포함시켜 총 174편의 작품을 디포의 것으로 귀속시켰다.[53] 디포 소설의 저작권 귀속은 그의 사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몰 플랜더스''와 ''록사나''는 출판된 지 50년이 넘도록 익명으로 간행되다가, 1775년과 1774년 판에서 프랜시스 노블이 표지에 대니얼 디포의 이름을 명시하면서 비로소 그의 작품으로 알려지게 되었다.[55]

전기 작가 P. N. 퍼뱅크와 W. R. 오웬스는 절대적인 확신 없이, 디포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기반으로 목록을 구축했다.[56] 윌리엄 피터필드 트렌트가 쓴 ''케임브리지 영문학사''의 디포 관련 부분에서는 370편의 작품을 그의 것으로 보았다. J. R. 무어는 약 550편에 달하는 가장 방대한 디포 작품 목록을 만들었다.[54]

참조

[1] 학술지 Limits of self-organization: Peer production and "laws of quality" https://firstmonday.[...] 2006-10-02
[2] 웹사이트 Daniel Defoe (1660?–1731) http://www.oxforddnb[...] 2008-01
[3] 서적 Defoe Oxford University Press 1996
[4] 문서 Backscheider (2008/2004). "Even the most conservative lists of Defoe's works include 318 titles, and most Defoe scholars would credit him with at least 50 more."
[5] 학술지 Daniel Defoe, Journalist. 1928
[6] 서적 Letters to John Law https://books.google[...] Newton Page
[7] 서적 The London Encyclopaedia https://books.google[...] Pan Macmillan
[8] 서적 The Secrets of Generation Reproduction in the Long Eighteenth Century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Toronto Press
[9] 웹사이트 Daniel Defoe https://www.baroque.[...]
[10] 서적 Defoe's Early Years https://books.google[...] Macmillan Press 2017-10-23
[11] 서적 Handbook of British Travel Writing https://books.google[...] De Gruyter
[12] 백과사전 Daniel Defoe – English author https://www.britanni[...] 2021-10-17
[13] 서적 The Life of Daniel Defoe Volume 1 https://books.google[...] Cassell 1894
[14] 서적 De comptabiliteit door de eeuwen heen tentoonstelling in de Koninklijke Bibliotheek Albert I https://books.google[...] Royal Library of Belgium
[15] 서적 Screening Difference How Hollywood's Blockbuster Films Imagine Race, Ethnicity, and Culture https://books.google[...] Rowman & Littlefield
[16] 서적 Daniel Defoe: The 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Carroll & Graf 1998
[17] 서적 The Broadview Anthology of Literature: The Restoration and the Eighteenth Century Broadview Press
[18] 서적 The Life of Daniel Defoe
[19] 학술지 Defoe's Journal of the Plague Year Reconsidered 1965
[20] 웹사이트 Biography of Daniel Defoe (1659?–1731) http://www.gradesave[...] 2013-08-01
[21] 문서 Defoe in Stoke Newington 1951
[22] 웹사이트 Daniel Defoe – Blue Plaques https://www.english-[...] 2020-10-13
[23] 서적 Daniel Defoe : master of fictions : his life and ideas https://archive.org/[...] Oxford University Press
[24] 서적 Daniel Defoe : his lif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5] 웹사이트 The shortest way with the Dissenters http://www.bartleby.[...] 2010-09-18
[26] 문서 The Storm: or, a collection of the most remarkable casualties and disasters which happen'd in the late dreadful tempest, both by sea and land 1704
[27] 뉴스 Writing Up a Storm https://www.wsj.com/[...] 2011-08-13
[28] 웹사이트 Robert Harley and the Press https://theses.ncl.a[...] University of Newcastle 2019-01-24
[29] 서적 Queen Anne: The Politics of Passion Willaim Collins 2012
[30] 서적 Memoirs of the life of Sir John Clerk of Penicuik, baronet, baron of the Exchequer, extracted by himself from his own journals, 1676–1755 https://archive.org/[...] Scottish Historical Society 1892
[31] 웹사이트 The History Of The Union Of Great Britain, 1709; Edinburgh, Heirs of Anderson https://truescans.co[...]
[32] 웹사이트 First Defoe book author reference – cited as DANIEL DEFOE http://truescans.com[...]
[33] 웹사이트 Second Defoe book author reference – cited as D. DE FOE http://truescans.com[...]
[34] 웹사이트 Book reference to 6th December of 1604 http://truescans.com[...]
[35] 서적 Essential Scots and the Idea of Unionism in Anglo-Scottish Literature, 1603–1832 Bucknell University Press 2015
[36] 서적 The complete English tradesman Tegg 1841
[37] 서적 Daniel Defoe https://archive.org/[...] Harper & Bros.
[38] 서적 Hayy bin Yaqzan and Robinson Crusoe: A study of an early Arabic impact on English literature Al-Rashid House for Publication 1980
[39] 서적 The New Encyclopedia of Islam Rowman Altamira 2001
[40] 학술지 Psychology from Islamic Perspective: Contributions of Early Muslim Scholars and Challenges to Contemporary Muslim Psychologists
[41] 뉴스 Desert island scripts http://books.guardia[...] The Guardian 2003-03-22
[42] 학술지 H. F.'s Meditations: A Journal of the Plague Year 1972
[43] 학술지 The Reception of a Journal of the Plague Year and the Nexus of Fiction and History in the Novel 1990
[44] 학술지 Lies, Damned Lies, and Statistics: Epistemology and Fiction in Defoe's "A Journal of the Plague Year" 2008
[45] 서적 The Historical Sources of Defoe's Journal of the Plague Year The Stratford Co. 1919
[46] 웹사이트 Moll: The Life and Times of Moll Flanders https://www.historye[...] 2018-05-30
[47] 학술지 Monstrous Generation: The Birth of Capital in Defoe's Moll Flanders and Roxana 1995
[48] 서적 Dangerous Women, Libertine Epicures, and the Rise of Sensibility, 1670–1730 Taylor & Francis 2016
[49] 학위논문 Defoe as a Puritan Novelist
[50] 서적 Defoe & spiritual autobiography Gordian Press
[51] 서적 A Dictionary of Pseudonyms and Their Origins, with Stories of Name Changes Mcfarland & Co Inc Pub. 1998
[52] 학술지 Attribution and Repetition: The Case of Defoe and the Circulating Library 2012-04-01
[53] 서적 The Oxford Handbook of Danirel Defoe 2023
[54] 학술지 The Defoe Canon: Attribution and De-Attribution 1996
[55] 간행물 Anonymous Defoe https://www.cambrid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3-11-22
[56] 웹사이트 LC Catalog - Item Information (Full Record) https://catalog.loc.[...]
[57] 웹사이트 Daniel Defoe https://islingtongui[...] 2022-11-13
[58] 학술지 Defoe in the Fleet Prison
[59] 뉴스 Burial ground of Bunyan, Defoe and Blake earns protected status https://www.theguard[...] 2015-01-21
[60] 서적 History in Asphalt Harbor Hill Books 1991
[61] 백과사전 Defoe, Daniel The Encyclopedia of Science Fiction 2011
[62] 학술지 Daniel Defoe and Captain Caneton's Memoirs of an English Officer 1972
[63] 웹사이트 The life and adventures of Mrs. Christian Davies, commonly call'd Mother Ross http://collections.s[...] 2019-03-16
[64] 서적 紳士の国のインテリジェンス 集英社新書 2007
[65] 서적 ダニエル・デフォーの世界
[66] 서적 ダニエル・デフォーの世界
[67] 서적 世界文学全集 10 スウィフト デフォー 集英社 1981
[68] 문서 성을 뒤포 (Dufoe)에서 디포 (Defoe)로 바꾼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