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이어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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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롱이어비엔은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 위치한 도시로, 1906년 미국인 존 먼로 롱이어에 의해 석탄 채굴을 위해 설립되었다. 1920년 스발바르 조약에 따라 노르웨이의 주권이 확립되었으며, 현재는 석탄 산업 외에도 관광, 연구, 교육 중심지로 발전했다. 롱이어비엔은 세계 최북단의 대학, 종자 저장고 등 다양한 연구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독특한 법률과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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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이어비엔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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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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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롱이어비엔 |
현지 이름 (노르웨이어) | Longyearbyen |
로마자 표기 | Longyearbyen |
러시아어 이름 | Лонгйир |
유형 | 도시 (사실상의 수도) |
모토 (노르웨이어) | unikt, trygt og skapende (독특하고, 안전하고, 창조적임) |
설립 | 1907년 |
법인화 | 2002년 1월 1일 |
행정 | |
속령 | 스발바르 제도 |
섬 | 스피츠베르겐섬 |
ISO 3166-2 | NO-2100 |
시장 | 라스 파우세 (2021년부터) |
지역 행정부 의장 | 셸 모르크 |
소속 정당 | 노르웨이 노동당 |
명칭 유래 | 존 먼로 롱이어 |
지리 | |
면적 | 10km² |
총 면적 | 242.86km² |
인구 | |
총 인구 (2020년 기준) | 1,753명 |
총 인구 (2008년 기준) | 2,040명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추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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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 |
공식 웹사이트 | 롱이어비엔 공식 웹사이트 |
2. 역사
스발바르 제도는 1596년 네덜란드 탐험가 빌렘 바렌츠에 의해 발견되었다. 17세기 전반에는 유럽 각국이 스발바르 제도에서의 포경권을 두고 다툼을 벌였다. 이후 덴마크-노르웨이와 영국이 영유권을 주장했지만, 어느 쪽도 실효 지배하지 못하고 무주지 상태로 남았다.[3]
19세기에는 주로 관광 목적으로 사람들이 어드벤트만을 방문했다. 1896년, 현재 공항이 있는 근처의 호텔네세트(호텔 곶)에 호텔이 세워졌지만 수익성이 없어 1897년 시즌 이후 문을 닫았다. 1898~99년에 두 가족이 겨울을 보냈고,[3] 노르웨이 우편은 1897년부터 1899년까지 호텔네세트에서 우체국을 운영했다.[3] 스발바르에서 상업적으로 채굴된 최초의 석탄은 1899년 쇠렌 자카리아센에 의해 채취되었다.[3] 1901년, 베르겐-스피츠베르겐 쿨그루베-콤파니는 아벤토펜에서 석탄 채굴을 시작했다.[3]
1901년, 미국인 사업가 존 먼로 롱이어는 관광객으로 스피츠베르겐을 방문하여 석탄 탐사를 위한 탐험대와 만났다. 1903년 그는 스피츠베르겐으로 돌아와 아벤토르피오르에서 헨릭 B. 네스를 만나 석탄 매장량에 대한 샘플과 정보를 받았다. 롱이어는 그의 동료 프레더릭 에이어와 함께 아벤토르피오르 서쪽의 노르웨이 채굴권을 사들였고, 이듬해에 채굴권을 크게 확장했다. 1906년, 보스턴에 본사를 둔 Arctic Coal Company는 에이어와 롱이어를 주요 주주로 하여 부두와 주택을 건설한 후 광산 1a에서 채굴을 시작했다.[4] 이 회사는 미국인 경영진을 두고 있었지만 대부분 노르웨이 노동자들을 고용했고, 마을 이름을 롱이어 시티(Longyear City)로 명명했다.[3] 석탄은 아돌프 블레이허트 & Co.의 공중 케이블 회사에서 건설한 공중 케이블카를 사용하여 광산에서 항구까지 1.2km 운송되었다.[3] 1913년, 회사는 광산 2a를 개통하기 위한 예비 작업을 시작했다.[3]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재정적 어려움을 겪은 후,[3] 채굴 사업은 1916년 11월 30일 오슬로에 설립된 스토레 노르스케(Store Norske)에 인수되었다.[3] 그해 스토레 노르스케는 병원을 포함하여 5개의 새로운 막사를 건설했다. 스토레 노르스케는 노르게스 방크의 승인을 받아 노르웨이 크로네와 동일한 가치의 지폐를 자체 발행했다.[3] 미국인 커뮤니티는 호텔네세트에 그들의 죽은 자들을 묻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11명이 사망했고 롱이어 시티에 공동묘지가 세워졌다.[3] 1920년에는 광산 1에서 석탄 먼지 폭발로 26명이 사망하여 광산이 폐쇄되었고,[3] 광산 2가 전철화되었다.[3] 같은 해, 첫 번째 트럭이 채굴 작업에 사용하기 위해 인도되었다.[3]
노르웨이 교회는 1920년 토르레이프 외스텐스타드를 스발바르 최초의 목사이자 교사로 임명했다.[3] 1921년 교회와 스토레 노르스케가 공동으로 학교를 설립했고, 첫해에 8명의 학생이 입학했다.[3] 스발바르 최초의 교회는 1921년 8월 28일에 문을 열었고,[3] 교회 독서실은 그 이후 학교로 사용되었다.[3] 1926년 롱이어 시티는 롱이어비엔으로 개명되었다.[3]
노르웨이 통신 관리국은 1911년 피네세트에 해안 무선 기지인 스발바르 라디오를 설립했으며, 1930년 롱이어비엔으로 이전했다.[3] 1935년 SS ''린겐''이 여름 시즌에 정기적으로 운항하면서 마을의 관광 산업이 시작되었다.[3] 1937년, 스토레 노르스케는 광산 1b의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해 스베르드루프비엔을 설립했고, 1939년 광산 운영을 시작했다.[3] 1938년, 롱이어비엔 최초의 도로가 마을 중심부와 스베르드루프비엔 사이에 완공되었다.[3] 1939년에는 광산 2a로 가는 다른 입구인 광산 2b에서의 작업이 시작되었다.[3]
스발바르는 1940년 독일의 노르웨이 점령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1941년부터 이 군도는 연합국 간의 공급망에서 전략적 중요성을 갖게 되었고, 절실히 필요한 석탄의 원천이 되었다. 노르웨이 망명 정부는 소련-영국 점령을 거부했고;[5] 대신 영국군은 스피츠베르겐을 긴급 대피시키기 위해 작전 건틀릿을 시작했다. 1941년 8월 29일, 뉴올레순 전체 인구가 롱이어비엔으로 대피했고, 9월 3일 765명이 롱이어비엔에서 스코틀랜드로 대피했다. 이후 마지막 150명의 사람들도 대피했다.[3] 롱이어비엔에 인구가 없는 상태에서, 소규모 독일 수비대와 활주로가 아벤토르달렌에 설치되었고, 주로 기상 데이터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영국군의 작전 프리덤이 바렌츠부르크를 다시 장악한 후, 독일군은 전투 없이 롱이어비엔을 떠났다.[5]
1943년 9월, ''크리그스마리네''는 전함 2척, ''티르피츠''와 ''샤른호르스트'' 및 구축함 9척을 롱이어비엔, 바렌츠부르크 및 그루만트에 포격하도록 파견했다.[5] 롱이어비엔에서는 병원, 발전소, 사무실 건물 및 주거용 건물 등 4채의 건물만 살아남았다. 롱이어비엔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사람이 살지 않았고, 본토에서 온 첫 번째 배는 1945년 6월 27일에 떠났다.[3]
1948년까지 석탄 생산량은 연간 전쟁 전 수준에 도달했다.[5] 1949년에는 롱이어비엔이 하르스타 간의 무선 통신을 통해 본토와 전화 연결을 맺었다.[3] 1959년 한 남자가 심각하게 병에 걸려 아드벤달렌에 착륙장이 마련되었다. 같은 해부터 브라덴스 SAFE는 불규칙적인 겨울 비행으로 툰드라 공항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7] 1957년에는 초등학교 교장이 고용되었고, 1958년 8월 24일에는 새로운 교회가 문을 열었다.[3]
1960년대에는 마을의 농장이 문을 닫고 분유의 산업 액화 시설로 대체되었다.[3] 1969년에는 텔레비전 방송 장비가 설치되었으며, 노르웨이 방송 공사의 프로그램이 2주 지연되어 방송되었다.[3]
1971년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통합한 새로운 학교 건물과 새로운 체육관 및 수영장이 개장했다.[3] 스발바르 의회는 1971년 11월 1일에 설립되었다.[3] 1975년에는 공항이 개장했으며, 처음에는 노르웨이 본토로 주 4회, 러시아로 주 2회 운항했다.[3] 1978년에는 지역 사회가 본토와 위성 통신을 맺었다.[3]
1980년대부터 스토레 노르스케는 점진적인 변화를 겪었다. 1980년부터 스피츠베르겐 통화가 유통에서 제외되고 일반적인 노르웨이 통화로 대체되었다.[3] 1990년대에 당국은 롱이어비엔을 "정상화"하기 위해 회사 도시 계획을 폐지하고, 다양한 서비스, 다양한 경제 및 지역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과정을 시작했다.[5] 2002년에는 롱이어비엔 지역 의회가 설립되어 스발바르 의회를 대체하고 SSD를 통합했으며, 지방 자치 단체의 많은 책임과 구조를 수행했다.[8]
이 기간에는 또한 많은 과학 기관이 부상했다. 스발바르 대학교는 1993년 9월 6일에 개교했으며, 첫 학기에 30명의 학생이 있었다.[3] 2004년에는 스발바르 해저 케이블 시스템이 개통되어 본토와 광섬유 케이블 연결을 제공했다.[10] 2008년에는 스발바르 글로벌 종자 저장고가 개설되었다.[11]
2021년 1월, 노르웨이 측의 석탄 채굴 회사가 석탄 채굴을 완전히 중단한다고 발표했다.[96]
2. 1. 초기 역사 (19세기 이전)
스발바르 제도는 1596년 네덜란드 탐험가 빌렘 바렌츠에 의해 발견되었다. 17세기 전반에는 유럽 각국이 스발바르 제도에서의 포경권을 두고 다툼을 벌였다. 이후 덴마크-노르웨이와 영국이 영유권을 주장했지만, 어느 쪽도 실효 지배하지 못하고 무주지 상태로 남았다.[3]19세기에는 주로 관광 목적으로 사람들이 어드벤트만을 방문했다. 최초의 여행기는 18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이후 소형 선박 소유자나 배를 빌린 사람들이 많이 방문했다. 1893년에는 함부르크 아메리카 항로의 여객선 콜롬비아(7600톤)가 어드벤트만을 방문했는데, 100명의 승객과 17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태운 호화로운 여객선이었다. 노르웨이 선주가 스발바르로 관광선을 운항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외국적 선박이 더 많았다. 1896년, 현재 공항이 있는 근처의 호텔네세트(호텔 곶)에 호텔이 세워졌다. 경영자는 노르웨이 연안 항로를 확립한 리차드 위트(Richard With)였다.[3]
17세기 포경 시대에 이미 스발바르에 석탄 광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트롬쇠 출신의 뱃사람 쇠렌 자카리아센이 이 섬의 석탄 산업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자카리아센은 1899년 여름에 이스트피요르드를 사이에 둔 북쪽의 Bohemanneset 등에서 60㎥의 석탄을 트롬쇠로 운반했다. 자카리아센의 석탄은 모나코 대공 알베르 1세의 유람선에서 사용되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경제적인 이익을 올릴 수 없었다.[3]
2. 2. 미국 시대 (1906-1915)
1901년, 미국의 사업가 존 먼로 롱이어는 관광객으로 스피츠베르겐을 방문하여 석탄 탐사를 위한 탐험대와 만났다. 1903년 그는 스피츠베르겐으로 돌아와 아벤토르피오르에서 헨릭 B. 네스를 만나 석탄 매장량에 대한 샘플과 정보를 받았다. 롱이어는 그의 동료 프레더릭 에이어와 함께 아벤토르피오르 서쪽의 노르웨이 채굴권을 사들였고, 이듬해에 채굴권을 크게 확장했다.[4] 1906년, 보스턴에 본사를 둔 Arctic Coal Company는 에이어와 롱이어를 주요 주주로 하여 부두와 주택을 건설한 후 광산 1a에서 채굴을 시작했다.[4] 이 회사는 미국인 경영진을 두고 있었지만 대부분 노르웨이 노동자들을 고용했고, 마을 이름을 롱이어 시티(Longyear City)로 명명했다.[3] 석탄은 아돌프 블레이허트 & Co.의 공중 케이블 회사에서 건설한 공중 케이블카를 사용하여 광산에서 항구까지 운송되었다.[3] 1913년, 회사는 광산 2a를 개통하기 위한 예비 작업을 시작했다.[3]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고,[3] 1915년 9월에 북극 석탄 회사는 조업을 중단하고 모든 직원을 해고했다.
2. 3. 노르웨이 시대 (1916-현재)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재정적 어려움을 겪은 후,[3] 채굴 사업은 1916년 11월 30일 오슬로에 설립된 스토레 노르스케(Store Norske)에 인수되었다.[3] 그해 스토레 노르스케는 병원을 포함하여 5개의 새로운 막사를 건설했다.[3] 스토레 노르스케는 노르게스 방크의 승인을 받아 노르웨이 크로네와 동일한 가치의 지폐를 자체 발행했다.[3] 미국인 커뮤니티는 호텔네세트에 그들의 죽은 자들을 묻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11명이 사망했고 롱이어 시티에 공동묘지가 세워졌다.[3] 1920년에는 광산 1에서 석탄 먼지 폭발로 26명이 사망하여 광산이 폐쇄되었고,[3] 광산 2가 전철화되었다.[3] 같은 해, 첫 번째 트럭이 채굴 작업에 사용하기 위해 인도되었다.[3]
노르웨이 교회는 1920년 토르레이프 외스텐스타드를 스발바르 최초의 목사이자 교사로 임명했다.[3] 교회와 스토레 노르스케가 공동으로 학교를 설립했고, 첫해에 8명의 학생이 입학했다.[3] 스발바르 최초의 교회는 1921년 8월 28일에 문을 열었고,[3] 교회 독서실은 그 이후 학교로 사용되었다.[3] 1926년 롱이어 시티는 롱이어비엔으로 개명되었다.[3]
노르웨이 통신 관리국은 1911년 피네세트에 해안 무선 기지인 스발바르 라디오를 설립했으며, 1930년 롱이어비엔으로 이전했다.[3] 1935년 SS ''린겐''이 여름 시즌에 정기적으로 운항하면서 마을의 관광 산업이 시작되었다.[3] 1937년, 스토레 노르스케는 광산 1b의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해 스베르드루프비엔을 설립했고, 1939년 광산 운영을 시작했다.[3] 1938년, 롱이어비엔 최초의 도로가 마을 중심부와 스베르드루프비엔 사이에 완공되었다.[3] 1939년에는 광산 2a로 가는 다른 입구인 광산 2b에서의 작업이 시작되었다.[3]
스발바르는 1940년 독일의 노르웨이 점령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1941년부터 이 군도는 연합국 간의 공급망에서 전략적 중요성을 갖게 되었고, 절실히 필요한 석탄의 원천이 되었다. 노르웨이 망명 정부는 소련-영국 점령을 거부했고;[5] 대신 영국군은 스피츠베르겐을 긴급 대피시키기 위해 작전 건틀릿을 시작했다. 1941년 8월 29일, 뉴-올레순 전체 인구가 롱이어비엔으로 대피했고, 9월 3일 765명이 롱이어비엔에서 스코틀랜드로 대피했다. 이후 마지막 150명의 사람들도 대피했다.[3] 롱이어비엔에 인구가 없는 상태에서, 소규모 독일 수비대와 활주로가 아벤토르달렌에 설치되었고, 주로 기상 데이터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영국군의 작전 프리덤이 바렌츠부르크를 다시 장악한 후, 독일군은 전투 없이 롱이어비엔을 떠났다.[5]
1943년 9월, ''크리그스마리네''는 전함 2척, ''티르피츠''와 ''샤른호르스트'' 및 구축함 9척을 롱이어비엔, 바렌츠부르크 및 그루만트에 포격하도록 파견했다.[5] 롱이어비엔에서는 병원, 발전소, 사무실 건물 및 주거용 건물 등 4채의 건물만 살아남았다. 롱이어비엔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사람이 살지 않았고, 본토에서 온 첫 번째 배는 1945년 6월 27일에 떠났다.[3]
전쟁 중에는 빠른 재건과 채탄 재개를 보장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졌다. 1948년까지 석탄 생산량은 연간 전쟁 전 수준에 도달했다.[5] 뉘뷔엔은 1946년에 설립되었으며, 각 72명이 수용된 5개의 막사로 구성되었다.[3] 최초의 ''스발바르포스텐''은 1948년 11월에 발행되었다. 그 전까지는 다양한 벽 신문이 불규칙적으로 발행되었다.[3] 1949년에는 롱이어비엔이 스발바르 라디오와 하르스타 간의 무선 통신을 통해 본토와 전화 연결을 맺었다.[3] 같은 해, 소(우유용), 돼지, 닭을 기르기 위한 농장이 롱이어비엔에 건설되었다.[3] 1950년에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이 방송을 시작했다.[3] 묘지는 1950년까지 사용되었으며, 44명이 매장되었다.[3] 그러나 시신이 영구 동토층으로 인해 부패하지 않고 다양한 미생물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이후 시신은 매장을 위해 본토로 보내졌다.[6] 1951년에는 지역 사회 센터인 후세트가 개장했다.[3]

1958년에 1광산의 채탄은 종료되었지만,[3] 다음 해에 5광산의 운영이 시작되었다. 4광산에 대한 예비 작업은 1954년에 시작되었으며, 1960년부터는 예비 광산으로 사용되었다.[3] 노르웨이 공군은 1950년대에 우편 비행으로 롱이어비엔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1959년 한 남자가 심각하게 병에 걸려 아드벤달렌에 착륙장이 마련되었다. 같은 해부터 브라덴스 SAFE는 불규칙적인 겨울 비행으로 툰드라 공항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7] 1957년에는 초등학교 교장이 고용되었고, 1958년 8월 24일에는 새로운 교회가 문을 열었다.[3] 1961년부터는 초등학교에 사립 중학교가 추가되었다.[3] 1959년에는 트롬쇠 스파레방크 지점이 개점했다.[3]
1960년대에는 마을의 농장이 문을 닫고 분유의 산업 액화 시설로 대체되었다.[3] 최초의 양산형 스노우모빌이 1961년에 사용되었다. 1969년까지 등록된 스노우모빌은 140대였고 등록된 자동차는 33대에 불과했다.[3] 1962년부터 1984년까지 스베르드루프뷔엔에서 레크리에이션 센터가 운영되었다.[3] 1966년에는 4광산의 일반 운영이 시작되었지만, 2광산이 폐쇄된 지 2년 후인 1970년까지 종료되었다.[3] 1969년에는 6광산의 운영이 시작되었다.[3] 텔레비전 방송 장비는 1969년에 설치되었으며, 노르웨이 방송 공사의 프로그램이 2주 지연되어 방송되었다.[3]
1971년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통합한 새로운 학교 건물과 새로운 체육관 및 수영장이 개장했다.[3] 스발바르 의회는 1971년 11월 1일에 설립되었다. 이 의회는 스토레 노르스케 직원, 정부 직원 및 기타 세 그룹으로 선출 또는 임명된 17명의 비당파 위원으로 구성되었지만, 그 비율은 여러 번 변경되었다.[3] 1971년 3월에는 3광산의 운영이 시작되었고,[3] 다음 해에는 7광산의 운영이 시작되었다.[3] 1973년에는 노르웨이 통상산업부가 스토레 노르스케의 3분의 1을 매입했다. 이 부서는 1976년까지 99.94%의 소유권을 달성할 때까지 추가 주식을 계속 매입했다.[8] 1975년에는 공항이 개장했으며, 처음에는 노르웨이 본토로 주 4회, 러시아로 주 2회 운항했다.[3] 1978년에는 지역 사회가 본토와 위성 통신을 맺었다.[3] 같은 해 공립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이 도입되었다.[3] 1984년부터는 위성을 통해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생방송으로 방송되었다.[3]
스토르 노르스케는 1980년대에 점진적인 변화를 겪었다. 1980년부터 스피츠베르겐 통화가 유통에서 제외되고 일반적인 노르웨이 통화로 대체되었다.[3] 6광산은 다음 해에 폐쇄되었다.[3] 1982년부터 스토레 노르스케는 개인의 자동차 소유 및 운영을 허용했다. 1990년까지 등록된 자동차는 353대, 스노우 스쿠터는 883대였다.[3] 1983년 7월 1일, 스토레 노르스케는 본사를 베르겐에서 롱이어비엔으로 이전했다.[3] 스발바르 삼푼스드리프트(SSD)는 공공 인프라 및 서비스를 담당하는 유한 회사로, 1989년 1월 1일에 스토레 노르스케에 의해 설립되었다. 책임에는 의료 서비스, 소방대, 유치원, 도로, 쓰레기 처리, 전력 생산, 상수도 및 하수도 시스템, 영화관, 문화 활동 및 도서관이 포함되었다. 소유권은 1993년 1월 1일에 통상산업부로 이전되었다.[9]
1990년대에 당국은 롱이어비엔을 "정상화"하기 위해 회사 도시 계획을 폐지하고, 다양한 서비스, 다양한 경제 및 지역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과정을 시작했다.[5] 상업 기업으로는 1992년에 스토레 노르스케의 공급 창고를 대체하는 쇼핑몰이 있었다.[3] 마찬가지로 에소는 1994년에 상업용 주유소를 개점했다.[3] 스발바르 의회는 1993년부터 규정을 변경하여 정당이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3] 관광객 유치를 위해 1995년에는 스발바르 폴라 호텔이 개장했고,[3] 1년 후에는 3광산의 채탄이 종료되었다.[3] 2002년에는 롱이어비엔 지역 의회가 설립되어 스발바르 의회를 대체하고 SSD를 통합했으며, 지방 자치 단체의 많은 책임과 구조를 수행했다.[8]
이 기간에는 또한 많은 과학 기관이 부상했다. 노르웨이 농업 대학교는 1984년에 원시적인 종자 은행을 설립했다.[3] 스발바르 대학교는 1993년 9월 6일에 개교했으며, 첫 학기에 30명의 학생이 있었다.[3] 텔레노르 모빌은 1995년에 GSM 커버리지를 구축했고,[3] 2004년에는 스발바르 해저 케이블 시스템이 개통되어 본토와 광섬유 케이블 연결을 제공했다.[10] 유럽 비간섭 산란 과학 협회(EISCAT)는 1996년에 레이더를 개설했고,[3] 1999년에는 스발바르 위성 기지가 개설되었으며,[3] 2008년에는 스발바르 글로벌 종자 저장고가 개설되었다.[11]
2021년 1월, 노르웨이 측의 석탄 채굴 회사가 석탄 채굴을 완전히 중단한다고 발표했다[96]。
1916년 북극 석탄 회사가 노르웨이 자본에 매각되어 대 노르웨이 스피츠베르겐 석탄 회사(Store Norske Spitsbergen Kullkompani; SNSK)가 경영하게 되었다. 당시 SNSK는 사기업이었지만, 노르웨이 정부에 경제적으로 의존했다. 스발바르 조약에 의해 노르웨이의 영유권이 확립되면서 명실공히 노르웨이 시대가 열렸다.
3. 지리
롱이어비엔은 스피츠베르겐 섬 서쪽의 이스피요르드 남쪽에 위치하며, 롱이어 강이 흐르는 롱이어 계곡 하단부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 하단부는 Isfjorden의 지류인 Adventfjorden 만 남서쪽 해안을 따라 뻗어 있다.[12] 롱이어비엔은 스발바르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스피츠베르겐 섬의 Nordenskiöld Land 반도에 위치한다.[4] 만 건너편에는 유령 도시인 Advent City[13]와 Hiorthhamn이 있다.[12] 이곳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북쪽에 위치한 도시이며, Ny-Ålesund를 제외한 더 북쪽의 정착지는 연구 또는 기상 관측소이다.[14]
롱이어비엔은 여러 구역으로 나뉜다. 강 서쪽에는 항구와 부속 시설, 산업 서비스가 있는 Bykaia와 Sjøområdet가 있다. 그 위에는 총독 관저가 있는 Skjæringa가 있다. 계곡 위 서쪽에는 Gamle Longyearbyen("올드 롱이어비엔")과 교회가 있고, 더 위에는 묘지, Huset, 영화관, Sverdrupbyen이 있다.
대부분의 주거, 상업, 문화 시설은 강의 동쪽에 있다. 만을 따라 Sjøskrenten이 있고, 더 위에는 대학교 센터와 가장 큰 주거 지역인 Gruvedalen이 있다. 남쪽으로 주요 쇼핑 지역과 시청이 있으며, 동쪽에는 주거 지역 Lia와 학교가 있는 Haugen이 있다. 계곡 가장 위쪽에는 Mine 2b와 학생 기숙사로 사용되는 Nybyen이 있다. 도시 서쪽 Hotellneset 방향에는 공항과 Mine 3이 있고, 나머지 광산은 도시 동쪽 Adventdalen에 있다.[16]
이스피요르드 남쪽 36km 지점에는 러시아인 탄광 마을 바렌츠부르크가 있지만, 도로는 연결되지 않는다.
3. 1. 지형
롱이어비엔은 롱이어 강을 따라 뻗어 있는 전형적인 U자곡인 롱이어 계곡 하단부에 위치해 있다. 계곡 절벽면에는 사암과 셰일로 구성된 제3기 지층이 노출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약간 기울어진 석탄층이 있다.[16] 계곡 가장 깊은 곳에는 빙하가 남아 있으며, 양쪽은 대지이다.3. 2. 기후

스발바르의 기후는 북대서양 해류의 영향으로 같은 위도의 다른 지역보다 온화한 툰드라 기후(쾨펜: ET)를 보인다. 롱이어비엔은 북극권 내 다른 정착지보다 습도가 낮다. 4월 18일부터 8월 23일까지 백야, 10월 27일부터 2월 15일까지 극야 현상이 나타난다. 산의 그늘 때문에 3월 8일경까지 태양을 볼 수 없다.[17] 1986년 3월에는 -46.3°C로 가장 추운 온도가 기록되었고, 2020년 7월에는 21.7°C로 가장 따뜻한 온도가 기록되었다.[17]
2021년 현재 롱이어비엔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온난화되는 도시이다. 1971년 이후 스발바르의 기온은 지구 평균보다 5배 빠르게, 대략 4°C 상승했다. 현재 겨울은 1970년대보다 7°C 이상 따뜻하다. 노르웨이 기상 연구소에 따르면, 스발바르의 연간 강수량은 지난 50년 동안 30~45% 증가했으며, 주로 겨울 비의 형태로 나타났다. 2009년 이후 심층 영구 동토층 온도는 연간 0.06~0.15도씩 상승했다.[18]
롱이어비엔은 지구상에서 평균 UV 지수가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이다. 4월과 9월 사이의 UV 지수는 일반적으로 1~2 사이이며, 5월, 6월, 7월이 2로 가장 높다. 다른 모든 달은 평균 0으로, 롱이어비엔의 12개월 평균 UV 지수는 0.75이다.[19]
롱이어비엔은 섬 서쪽을 흐르는 난류와 빈번하게 통과하는 저기압의 영향으로 같은 위도 지역에 비해 온화하다. 겨울에는 매우 춥고, 여름에도 월평균 기온이 7°C인 툰드라 기후이며, 연평균 기온은 -4°C이다. 겨울에는 강풍이, 여름에는 안개가 자주 낀다. 강수량은 노르웨이 본토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보다도 적어 연간 190mm로 노르웨이의 강우 관측소 중 최저 기록을 가지고 있다.
북위 약 80도에 위치해 연중 대부분이 백야나 극야가 된다. 백야는 4월 20일부터 8월 23일까지이며, 하지의 태양 고도는 하루 종일 11°~35° 사이이다. 암흑기(Mørketidenno, 태양이 뜨지 않는 극야)는 10월 26일부터 2월 15일까지이며, 이 중 11월 11일부터 1월 30일까지는 박명조차 없으므로 계속 밤이 이어진다(polarnattno "극야"라고 부른다). 암흑기에는 날씨가 맑으면 빈번하게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다.
3. 3. 생태
스발바르는 같은 위도의 다른 지역보다 기후가 온화하여 생물 다양성이 높은 편이며, 적색 목록에 등재된 희귀종도 많이 서식한다. 2007년 롱이어비엔 의회의 의뢰로 노르웨이 자연과학 연구소(NINA)에서 실시한 다양성 조사에 따르면, 노르웨이 적색 목록 또는 카테고리 3(스발바르에서 1~4곳에서만 발견되는)에 해당하는 희귀종은 178종이었다. 이 중에는 균류(100종)와 지의류(44종)가 가장 많았고, 선태식물(18종)과 관다발식물(16종)도 있었다.[93]스발바르의 자연은 기후, 지질학적 과정, 생물의 분포 확산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활동 역시 롱이어비엔의 식생과 경관에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영양분 공급으로 인해 풀이 무성하게 자라게 되었다. 1990년대 '롱이어비엔 녹화 계획'으로 중심부 언덕길에 씨앗이 뿌려지면서 녹색으로 덮였지만, 이로 인해 외래 유전자원이 유입되기도 했다. 이후 2002년 스발바르 환경 보호법에 따라 자생 가능한 생물의 유입은 규제되고 있다.
롱이어비엔 주변에는 스발바르순록, 스발바르바위새, 북극여우 등이 서식한다. 강, 연못, 습지는 조류의 서식 및 번식지가 된다. 북극여우 서식지는 비욘달렌, 뉘비엔, 교회 배후지가 등록되어 있다. 수렵 허가 기간에도 롱이어비엔 일대에서 북극여우 사냥은 금지된다.
4. 인구
, 롱이어비엔의 인구는 1,753명이었다. 노르웨이인 중 가장 큰 지역 집단은 노르웨이 북부 출신으로, 특히 노르드란과 트롬스 출신이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27] 비노르웨이 국적자는 약 300명(16%)이며, 태국, 스웨덴, 러시아, 우크라이나 국적자가 가장 많다.[28]
광산업의 영향으로 성인 남성이 60%를 차지하는 등 성별 불균형이 나타난다. 25~44세 인구 비율은 평균 이상이지만, 66세 이상 거주자는 거의 없다. 어린이 수는 전국 평균 수준이지만, 10대 수는 전국 평균보다 훨씬 적다.[27]
2014년 기준으로 태국인은 120명으로 노르웨이인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거주 그룹이었다.[29] 이들은 1970년대에 남편들이 태국에서 아내를 데려오면서 스발바르에 처음 왔다.[30] 2007년에는 롱이어비엔 학교 학생 10명이 태국인이었다.[31]
롱이어비엔은 전출입이 매우 활발하다. 2008년에는 427명(23%)이 도시를 떠났다.[28] 평균 거주 기간은 6.3년이지만, 노르웨이인은 6.6년, 외국인은 4.3년이다. 2009년 기준 인구의 약 1/4이 2000년 이전부터 거주하여 영구적인 인구로 간주될 수 있다. 가장 오래 거주하는 사람들은 광산업 종사자이며, 그 다음은 지방 정부 공무원이다. 학생, 고등 교육, 관광 및 국가 부문 직원들은 재직 기간이 가장 짧다.[27] 이러한 전출입은 노르웨이 정부가 "회전문 사회"라고 부르는 현상을 야기했으며, 젊은 신규 이주민 대부분은 7년 이내에 떠난다.[18]
가구의 70%는 1인 가구로, 가구당 평균 1.6명이다. 이는 본토(41%)와 비교해 낮은 수치인데, 주로 스발바르에서 일하는 동안 가족이 본토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롱이어비엔의 인구는 전국 평균보다 교육 수준이 높다. 54%가 고등학교 졸업 이상, 30%가 대학교 졸업 이상이다. 여성의 경우 40%가 고등 교육을 받았다.[27]
2008년 말 인구는 약 2,060명이었으며, 그 중 약 6분의 1은 노르웨이 외 국적자였다. 대표적인 국적은 타이, 스웨덴, 덴마크,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였다.
5. 정치 및 행정
롱이어비엔 공동체 위원회는 지방 자치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8] 2015년부터 노동당 소속 아릴드 올센 시장이 이끌고 있으며,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32] 위원회는 전력, 토지 이용, 지역 사회 계획,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 아동 복지 등 다양한 인프라 및 공공 시설을 책임진다. 13학급 규모의 롱이어비엔 학교와 3개의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33]
노르웨이 거주자는 본토의 지방 자치체를 통해 연금 및 의료 혜택을 유지하지만, 롱이어비엔에서는 간호 서비스나 복지 수당이 제공되지 않는다.[34] 노르웨이 북부 대학 병원은 롱이어비엔 병원이라는 진료소를 운영한다.[8] 이 외에도 노르웨이 광산국, 노르웨이 극지 연구소, 노르웨이 국세청, 노르웨이 교회 등이 롱이어비엔에 위치해 있다.[35] 롱이어비엔은 트로므쇠에 있는 노르-트로므스 지방 법원과 홀로갈란 항소 법원의 관할이다.[36]
1920년 스발바르 조약은 노르웨이의 주권을 확립했으며, 1925년 스발바르 법에 따라 스발바르 총독 제도가 시행되었다. 총독은 현 지사이자 경찰청장이며, 환경 정책, 가족법, 법 집행, 수색 및 구조, 관광 관리, 정보 서비스, 외국 정착촌과의 연락, 해상 조사 및 사법 심사 등 다양한 권한을 행사한다.[35][37] 2015년부터 케르스틴 아스크홀트가 총독직을 수행하고 있으며,[38] 26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직원이 지원한다. 총독 기관은 법무 및 경찰부의 지휘를 받지만, 필요에 따라 다른 부처에 보고하기도 한다.[39]
스발바르 조약에 따라 롱이어비엔은 노르웨이 법률을 따르지만, 모든 조약 서명국 시민은 상업 활동을 하고 거주할 수 있다.[40] 단, 소득이 없는 사람은 총독에 의해 거부될 수 있다.[41] 노르웨이는 스발바르 서비스 자금 조달에 한해 세금을 징수할 수 있어, 롱이어비엔은 소득세가 낮고 부가가치세가 없다. 또한, 이 조약으로 롱이어비엔은 비무장 지대이며,[40] 유럽 경제 지역이나 솅겐 지역에 속하지 않는다.[42]
2023년 노르웨이 지방 선거부터 롱이어비엔 공동체 위원회 선거권은 노르웨이 본토에 최소 3년 이상 거주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43][44] 이전에는 롱이어비엔에 3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도 투표가 가능했으나, 이 변경으로 많은 주민이 선거권 박탈되었다.
2002년, 선거로 선출된 의회가 운영하는 지역 행정부(lokalstyreno)가 신설되었다. 지역 행정부는 도시 인프라(전력, 수도, 도로, 항만, 소방 등), 토지 이용 계획, 교육 및 복지(수영장, 영화관 등)를 담당하며, 지역 의회는 15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4년마다 10월에 선거를 치른다.
2006년 노르웨이 도시·지역 문제 연구소(Norsk institutt for by- og regionforskningno)의 평가에 따르면, 지역 행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는 낮았으며, 특히 스발바르 장기 거주자들 사이에서 제도에 대한 반대가 컸다.
2007년 10월 21일과 22일에 실시된 지역 의회 선거에는 5개 정당이 참여했고, 유권자 수는 1563명, 투표율은 40.27%였다. 노동당이 7석, 연립 후보 명부가 4석, 보수당이 3석, 스발바르 지역 후보 명부가 1석을 차지했으며, 진보당은 의석을 얻지 못했다.
5. 1. 특수한 법률
롱이어비엔은 외딴 지역에 위치해 있어,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법률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고양이 사육 금지, 개인이 매달 구매할 수 있는 알코올 양 제한, 극지방 곰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외부로 나갈 때 소총을 휴대해야 하는 의무 등이 있다.[45][46] 롱이어비엔에서 사망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지만, 이는 오해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실제로는 마을에서 사망하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시신 매장 옵션은 없다(정부 허가를 받으면 유골 매장은 가능). 불치병으로 간주되는 주민은 일반적으로 본토로 이주해야 한다. 매장을 허용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1950년에 내려졌는데, 1918년 인플루엔자 대유행으로 사망한 주민들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영구 동토층에 보존된 이러한 시신들이 20세기 초 전 세계 인구의 1%에서 6%를 사망하게 한 바이러스의 생존 균주를 여전히 품고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47]6. 문화
지역 의회는 영화관, 청소년 클럽, 도서관 및 갤러리 등 여러 문화 시설을 운영한다.[48] 노르웨이 교회 소속의 스발바르 교회는 세계 최북단의 교회이다.[3] 스발바르 박물관[49]과 스피츠베르겐 비행선 박물관 두 개의 박물관이 있다.[50] 솔페스투카(태양 축제 주간)는 매년 3월 8일 전후 주에 열리는데, 이는 전년 10월에 시작된 극야 이후 도시 대부분에서 처음으로 햇빛이 보이는 날짜이다.[51] 다크 시즌 블루스는 2003년부터 매년 10월에 개최되었고,[52] 폴라재즈는 1998년 이후 1월 말/2월 초에 개최되었다.[53] 북극 영화제는 도시의 상영 장소인 문화 회관에서 매년 열리는 영화제이다.[54][55]
7. 스포츠
롱이어비엔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조직적인 스포츠 클럽은 스발바르 턴이다.[3] 스발바르홀렌은 핸드볼 경기장, 배드민턴 코트 3개, 사격장, 암벽 등반 벽, 25m 수영장을 갖춘 실내 스포츠 센터이다.[3]
롱이어비엔에는 야외 스포츠 경기장이 없으며, 노르웨이컵과 같은 노르웨이 전국 대회에 참가하는 (실내외 스포츠) 시니어 팀은 알려진 바 없다. 스발바르 턴을 대표하는 16세 미만 남자 풋살 팀은 2020년 3월 호르텐에서 열린 이틀간의 소규모 ''페르 브레데센 컵''에 참가했다.[56]
스발바르 턴은 스발바르홀렌 외에도 스피츠베르겐 마라톤, 스발바르 스키마라톤(42.0km 자유형, 많은 참가자가 클래식 스타일 사용),[57] 연례 오리엔티어링 대회를 개최한다고 주장한다.
8. 미디어 및 통신
스발바르포스텐은 매주 금요일 발행되는 주간 신문이다. 인쇄는 트롬쇠에서 이루어지며, 구독자 대다수는 본토에 거주한다. 영어로 발행되는 대안 신문인 ''Icepeople''도 주간으로 발행된다.[3]
텔레비전의 경우, NRK1의 편집된 방송이 1969년 2주 지연되어 방송되기 시작했다. 이 방송은 1984년 12월 22일에야 생방송을 시작했으며,[58] 그 결과 스발바르가 전국 뉴스 방송의 일기 예보에 추가되었다.
라디오의 경우, NRK P1[60], P4 (노르웨이), Radio Norge[61]를 이용할 수 있다.
스발바르 해저 케이블 시스템은 광섬유 광대역 통신을 제공한다.
GSM 휴대전화는 롱이어비엔과, 아드벤트 계곡 및 이스트 피요르드의 대부분, Svea 탄광과의 사이인 Rein 계곡에서 통화가 가능하다. 2003년에 3세대 휴대전화 UMTS가 도입되었고, 2008년에는 모바일 광대역 연결 HSDPA가 도입되었다.
9. 경제
롱이어비엔의 경제는 석탄 채굴, 관광, 연구 및 교육 활동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1896년 호텔네세트에 관광객을 위한 조립식 호텔이 건설되었으나 수익성이 낮아 1897년 문을 닫았다. 1935년 SS ''린겐''호가 여름 시즌에 정기적으로 운항하면서 마을의 관광 산업이 시작되었다.[3] 현재 롱이어비엔은 군도의 관광 중심지 역할을 하며, 스발바르부티켄 (이 지역의 유일한 식료품점)을 포함한 물품, 숙박 시설, 박물관 등을 제공한다.[82]
스발바르 대학교 센터(UNIS)는 350명의 학생, 40명의 교수진, 120명의 객원 강사로 구성된 연구 기관이다. UNIS는 학위 과정을 제공하지 않지만, 생물학, 물리학, 지질학 분야의 학기별 강좌를 제공한다. 학생 기숙사는 뉴비엔에 위치해 있다. 이 대학은 12000m2 규모의 스발바르 과학 센터의 일부이며, 노르웨이 극지 연구소, EISCAT, 스발바르 과학 포럼도 함께 위치해 있다.[78] 2006년에는 약 9,000일에 걸쳐 롱이어비엔에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대부분 노르웨이인이 수행했다. 롱이어비엔은 스발바르에서 뉴올레순드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연구 기지이다. 롱이어비엔에서는 거의 노르웨이 연구만 진행되는 반면, 뉴올레순드는 노르웨이와 외국 연구가 거의 균등하게 나뉜다.[79]
스발바르 위성 기지는 극궤도 위성에서 데이터를 다운로드하기에 완벽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롱이어비엔에 건설되었다. 호텔네세트 위의 플라토베르겟에 위치하며, NASA와 노르웨이 우주 센터 간의 협력으로 건설되었지만 2001년부터 콩스베르그 위성 서비스에서 운영하고 있다.[80] EISCAT은 비간섭 산란 레이더를 운영하여 오로라를 연구한다.[3] 글로벌 작물 다양성 신탁에서 관리하는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는 수백만 개의 작물 종자를 저장할 수 있는 안전한 지하 시설이다. 이 시설은 지구 온난화, 홍수, 화재 및 핵 홀로코스트를 포함한 자연 및 인적 재해로부터 보호하도록 설계되었다. 이 부지는 외딴 위치, 견고한 지질 및 영구 동토층의 주변 온도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선택되었다.[81]
최근 스발바르 어업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대서양 대구, 고등어, 눈게 등 어종이 유입되면서 어획량이 증가하고 있다. 2020년대에 노르웨이는 스발바르 어업 무역의 가치를 연간 약 9,400만 달러로 평가한다.[18]
9. 1. 석탄 산업


스발바르에서 상업적으로 채굴된 최초의 석탄은 1899년 소렌 자카리아센이 채취했다.[3] 1901년, 베르겐-스피츠베르겐 쿨그루베-콤파니는 아벤토펜에서 석탄 채굴을 시작했다.[3]
미국의 사업가 존 먼로 롱이어는 1901년 관광객으로 스피츠베르겐을 방문하여 석탄 탐사를 위한 탐험대를 만났다. 1903년 그는 스피츠베르겐으로 돌아와 아벤토르피오르에서 헨릭 B. 네스를 만나 석탄 매장량에 대한 샘플과 정보를 받았다. 롱이어는 그의 동료 프레더릭 에이어와 함께 아벤토르피오르 서쪽의 노르웨이 채굴권을 사들였고, 이듬해에 채굴권을 크게 확장했다. 1906년, 보스턴에 본사를 둔 Arctic Coal Company는 에이어와 롱이어를 주요 주주로 하여 부두와 주택을 건설한 후 광산 1a에서 채굴을 시작했다.[4] 이 회사는 미국인 경영진을 두고 있었지만 대부분 노르웨이 노동자들을 고용했고, 마을 이름을 롱이어 시티로 명명했다.[3] 석탄은 아돌프 블레이허트 & Co.의 공중 케이블 회사에서 건설한 공중 케이블카를 사용하여 광산에서 항구까지 운송되었다.[3] 1913년, 회사는 광산 2a를 개통하기 위한 예비 작업을 시작했다.[3]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재정적 어려움을 겪은 후,[3] 채굴 사업은 1916년 11월 30일 오슬로에 설립된 Store Norske에 인수되었다.[3] 그해 SNSK는 병원을 포함하여 5개의 새로운 막사를 건설했다.[3] SNSK는 노르게스 방크의 승인을 받아 노르웨이 크로네와 동일한 가치의 지폐로 구성된 자체 화폐를 도입했다.[3] 1920년, 광산 1에서 석탄 먼지 폭발로 26명이 사망하여 광산이 폐쇄되었고,[3] 광산 2가 전철화되었다.[3]
1943년 9월, ''크리그스마리네''는 전함 2척, 티르피츠와 샤른호르스트 및 구축함 9척을 롱이어비엔, 바렌츠부르크 및 그루만트에 포격하도록 파견했다.[5] 롱이어비엔에서는 병원, 발전소, 사무실 건물 및 주거용 건물 등 4채의 건물만 살아남았다.[3]
1948년까지 석탄 생산량은 연간 에 달하는 전쟁 전 수준에 도달했다.[5] 1광산의 채탄은 1958년에 종료되었지만,[3] 다음 해에 5광산의 운영이 시작되었다. 4광산에 대한 예비 작업은 1954년에 시작되었으며, 1960년부터는 예비 광산으로 사용되었다.[3]
1960년대에는 마을의 농장이 문을 닫고 분유의 산업 액화 시설로 대체되었다.[3] 4광산의 일반 운영은 1966년에 시작되었지만, 2광산이 폐쇄된 지 2년 후인 1970년까지 종료되었다.[3] 6광산의 운영은 1969년에 시작되었다.[3]
1971년 3광산의 운영이 시작되었고,[3] 다음 해에는 7광산의 운영이 시작되었다.[3] 1973년에는 노르웨이 통상산업부가 SNSK의 3분의 1을 매입했다. 이 부서는 1976년까지 99.94%의 소유권을 달성할 때까지 추가 주식을 계속 매입했다.[8]
스토르 노르스케는 1980년대에 점진적인 변화를 겪었다. 1980년부터 스피츠베르겐 통화가 유통에서 제외되고 일반적인 노르웨이 통화로 대체되었다.[3] 6광산은 다음 해에 폐쇄되었다.[3]
석탄 생산량은 2007년 410만 톤으로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2015년에는 110만 톤으로 감소했다.[72] 현재 롱이어비엔에서 유일하게 진행 중인 채광은 아벤달렌에서 떨어진 7광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12년에는 연간 의 석탄을 생산했으며, 이 중 은 노르웨이의 유일한 석탄 발전소인 롱이어 전력 발전소의 연료로 사용된다.[71][72][73]
스토르 노르스케의 생산량 대부분은 롱이어비엔 남쪽 떨어진 반 미옌피요르덴의 스베아그루바에서 이루어졌다. 이 지역 사회를 연결하는 도로는 없으며,[75] 대신 광부들은 2017년 폐쇄될 때까지 스베아의 기숙사에서 생활했다.[76]
9. 2. 관광 산업
롱이어비엔은 군도의 관광 중심지이지만, 대부분의 관광은 도시 자체를 방문하는 것보다는 자연 체험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롱이어비엔은 스발바르부티켄 (이 지역의 유일한 식료품점)을 포함한 물품, 숙박 시설 및 여러 박물관을 제공한다.[82]주요 관광 현황
- 2008년 롱이어비엔 숙박: 89,000건 (1995년 30,000건에서 증가)
- 평균 투숙객 체류 기간: 2.2일
- 관광객 사용 시설 비율: 60%
- 롱이어비엔 방문 관광객 수: 약 4만 명
- 관광객 출신 국가: 노르웨이 (2/3), 스웨덴, 덴마크, 독일, 영국 등
- 2007년 관광 산업 수익: 2.91억노르웨이 크로네
- 관광 산업 일자리 창출: 200명-년[82]
관광객들은 주로 봄부터 여름에 방문하며, 2월부터 11월까지 여러 여행 기획 회사에서 다양한 가이드 투어를 제공하고 있다. 봄은 스노모빌을 특별 허가 없이 운전할 수 있어 노르웨이에서 매우 인기가 많다. 그러나 환경 보호를 위해 출입할 수 없는 장소도 많이 있다.
1950년대에는 북극곰 사냥이 성행하였으나, 1973년에 북극곰이 보호되면서 중단되었다. 현대에도 마을을 나설 때는 북극곰의 습격에 대비해 총기 소지가 의무화되어 있다.
과거 스발바르 관광은 여객선 여행이 주를 이루었으나, 1975년 스발바르 공항 개항 이후 항공편을 이용한 관광객이 증가하였다. 1985년에는 신선 식품이 판매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이후 관광업이 급성장하였다. 현재 연간 4만 명의 관광객이 롱이어비엔을 방문하고 있지만, Nordkalottenno(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 전체의 1%에 미치지 못한다.
스발바르는 면세 지역이며, 노르웨이 본토와의 물품 수송은 외국으로 취급된다.
9. 3. 연구 및 교육
스발바르 대학교 센터(UNIS)는 350명의 학생과 40명의 교수진, 120명의 객원 강사가 있는 연구 기관이다. UNIS는 학위를 제공하지 않고 생물학, 물리학, 지질학 분야의 학기별 강좌를 제공하며, 학생 기숙사는 뉴비엔에 있다. 이 대학은 12000m2 규모의 스발바르 과학 센터의 일부이며, 노르웨이 극지 연구소, EISCAT, 스발바르 과학 포럼도 갖추고 있다.[78] 2006년에는 약 9,000일에 걸쳐 롱이어비엔에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대부분 노르웨이인이 수행했다. 롱이어비엔은 스발바르에서 뉴올레순드 다음으로 큰 연구 기지이다. 롱이어비엔에서는 거의 노르웨이 연구만 진행되는 반면, 뉴올레순드는 노르웨이와 외국 연구가 거의 균등하게 나뉜다.[79]
스발바르 위성 기지는 극궤도 위성에서 데이터를 다운로드하기에 완벽한 위치인 롱이어비엔에 건설되었다. 호텔네세트 위의 플라토베르겟에 위치하며, NASA와 노르웨이 우주 센터의 협력으로 건설되었지만 2001년부터 콩스베르그 위성 서비스에서 운영하고 있다.[80] EISCAT은 비간섭 산란 레이더를 운영하여 오로라를 연구한다.[3] 글로벌 작물 다양성 신탁이 관리하는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는 수백만 개의 작물 종자를 저장할 수 있는 안전한 지하 시설이다. 이 시설은 지구 온난화, 홍수, 화재, 핵 홀로코스트 등 자연 및 인적 재해로부터 식량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외딴 위치, 견고한 지질, 영구 동토층의 주변 온도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부지가 선택되었다.[81]


롱이어비엔 학교는 6세부터 18세까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 최북단의 초·중·고등학교이다.[83] 16세 또는 17세가 되면 많은 가족들이 노르웨이 본토로 이주한다. 롱이어비엔에는 학위 과정이 없는 고등 교육 기관인 스발바르 대학교 센터(UNIS)가 있으며, 노르웨이 극지 연구소, 스발바르 박물관, 스발바르 과학 포럼과 공동으로 운영된다.[84]
체코 북극 연구 기지도 롱이어비엔에 있으며, 체코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연구원과 학생들에게 시설을 제공한다.[85]
1993년 가을, 스발바르 대학교 교육 과정(Universitetsstudia på Svalbard, UNIS)이 개설되었다. 이후 스발바르 대학교 센터(Universitetssenteret på Svalbard)로 이름이 바뀌고 독립적인 조직이 되었지만, 오슬로 대학교, 베르겐 대학교, 트론헤임 대학교, 트롬쇠 대학교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2006년 4월에는 스발바르 리서치 파크로 이전했다.
세계 최북단의 고등 교육 기관으로, 북극권 관련 생물학, 지질학, 지구물리학, 공학 등의 과정을 제공하며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수여한다. 교육은 영어로 진행되며, 약 350명의 학생 중 절반은 노르웨이 출신이고 나머지 절반 이상은 북유럽 국가 출신이다. 20명의 정교수, 21명의 조교, 120명의 객원 강사가 있다.

1990년대 노르웨이 정부는 롱이어비엔에 석탄 채굴 외의 활동을 유치하고자 연구와 관광에 집중하기로 했다. 현재 연구와 고등 교육은 지역 경제의 기둥 중 하나이며, 직간접적으로 많은 고용이 창출되었다. 핵심 시설은 스발바르 연구 공원, EISCAT 스발바르 레이더, 스발바르 위성 통신국, UNIS, 노르웨이 극지 연구소이다. 노르웨이와 국제 연구를 조정하는 스발바르 과학 포럼도 설립되었다.
스발바르 연구 공원은 극지 연구와 교육 관련 문제를 롱이어비엔 연구자 간 국제 협력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장 조사 등을 위한 공통 인프라가 마련되어 있다.
유럽 비간섭 산란 연구 협력 기구(EISCAT)는 국제 공동 연구 조직으로, 롱이어비엔 동쪽 8km 떨어진 브레이노사 산에 레이더 시설을 운영한다. 반경 32m의 가동식 파라볼라와 지구 자기장 방향으로 향하는 반경 42m 고정식 파라볼라 2기로 구성된다. 이 레이더는 대기, 특히 오로라와 오존 연구에 사용된다.
스발바르 위성 통신국(SvalSat)은 롱이어비엔 서쪽, 스발바르 공항을 내려다보는 고원에 위치한 세계 최북단 위성 지상국으로, 극궤도 위성의 제어 및 데이터 수신을 수행한다. 콩스베르그 위성 서비스와 EUMETSAT 안테나가 2기씩, NASA와 NOAA 안테나가 1기씩, 총 6기이다. 이 통신국은 남극 드론닝 모드 랜드의 TrollSat 위성 통신국과 함께 극궤도 위성과 매 궤도마다 연결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위성 통신국이다.[97]
글로벌 작물 다양성 트러스트가 관리하는 스발바르 세계 종자 저장고도 있다. 이 저장고는 온난화, 홍수, 대화재, 핵전쟁 등 자연적/인위적 재해로부터 보호되도록 설계되었다. 주변과 격리되어 있고, 영구 동토 내에서 온도가 안정적이라는 점 때문에 이곳이 선택되었다.[98]
10. 교통
롱이어비엔에는 50km의 도로망이 있지만, 다른 정착지와 연결되는 도로는 없다.[87] 2008년에는 1,481대의 차량이 등록되었으며, 전체 가구의 49%가 자동차를 소유했다.[86] 자동차는 ZN 번호판으로 등록된다.[3] 토요타를 판매하는 유일한 딜러인 스발바르 오토(Svalbard Auto)는 수리도 제공한다.[88]
스노모빌은 인기 있는 교통 수단이며, 거주자보다 스노모빌이 더 많다. 2008년에는 2,672대의 스노모빌이 등록되었으며, 롱이어비엔 가구의 69%가 최소 한 대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다.[86] 오프로드 동력 수송은 맨땅에서는 금지되지만, 스노모빌은 상업 및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위해 겨울철에 널리 사용된다. 롱이어비엔에서 바렌츠부르크(45km)와 피라미덴(Pyramiden)(100km)까지는 겨울에는 스노모빌로, 연중으로는 배로 이동할 수 있다.[87]
스발바르 공항, 롱이어(Svalbard Airport, Longyear)은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3km 떨어진 호텔네세에 있다. 2483m 길이의 활주로가 있으며, 스발바르 제도에서 항공기를 운행할 수 있는 유일한 공항이다.[89][90] 스칸디나비아 항공(Scandinavian Airlines)은 오슬로와 트롬쇠로 매일 운항하며,[91] 러시아로 가는 부정기 항공편도 있다. 루프트트란스포르트(Lufttransport)는 스베아 공항(Svea Airport)과 뉘-올레순 공항, 함네라벤(Ny-Ålesund Airport, Hamnerabben)으로 정기 전세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르크티쿠골(Arktikugol)은 바렌츠부르크와 피라미덴으로 헬리콥터를 운행한다.[90] 롱이어비엔에는 석탄 수출용과 일반 상품용 부두가 있다.[92] 1907년부터 1987년까지 광산 회사는 광산에서 항구로 석탄을 운송하기 위해 공중 케이블카 네트워크를 운영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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