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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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 독감은 1918년부터 1919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인플루엔자 A형(H1N1) 바이러스에 의한 대규모 유행병으로, 최대 1억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역사상 최악의 팬데믹 중 하나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에서 처음 보도되어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1918년 봄, 가을, 1919년의 세 차례 유행과 1920년까지 네 차례의 유행을 겪었다. 미국 캔자스, 프랑스, 중국 등 다양한 기원설이 존재하며, 젊은 층의 높은 사망률과 세균성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이 특징이다. 스페인 독감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종결과 강화 조약에 영향을 미쳤으며, 의료 및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다.

스페인 독감
지도 정보
기본 정보
[[포트 라일리]], [[캔자스]]의 [[캠프 펀스턴]] 병동에서 스페인 독감으로 아픈 군인들
포트 라일리, 캔자스의 캠프 펀스턴 병동에서 스페인 독감으로 아픈 군인들
질병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변종H1N1
발생 위치전 세계
첫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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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첫 발생미확정
첫 사례미확정
기간1918년 – 1920년
발병 규모
추정 확진자5억 명
사망자1,700만 ~ 1억 명 (추정)
기타 정보
관련 웹사이트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1918년 팬데믹 바이러스 발견 및 재구성
참고 자료Our World in Data의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 사망률 재평가
참고 도서존 M. 배리의 "The Great Influenza: The Story of the Deadliest Pandemic in History"
참고 논문지구 건강(GeoHealth) 저널의 기후 이상 현상과 스페인 독감 팬데믹 영향 연구
추가 정보1918년 독감 팬데믹에 대한 미신을 반박하는 골격 유적 연구 (콜로라도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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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칭

스페인 독감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연합국이 붙인 이름이다. 당시 참전국들은 전시 검열을 통해 자국의 피해 상황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지만, 스페인은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언론에서 이 사태가 깊이 있게 다뤄졌다. 1918년 5월 28일, 마드리드의 엘 솔 신문은 "3일 열병 – 마드리드에서 8만 명이 감염 – 폐하 알폰소 13세 국왕도 병들다"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엘 솔 (마드리드), 1918년 5월 28일: "3일 열병 – 마드리드에서 8만 명이 감염 – 폐하 알폰소 13세 국왕도 병들다"
엘 솔 (마드리드), 1918년 5월 28일: "3일 열병 – 마드리드에서 8만 명이 감염 – 폐하 알폰소 13세 국왕도 병들다"


이 팬데믹은 장소, 시기, 맥락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바이러스인플루엔자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다양한 어원을 가진 명칭들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시에라리온 위클리 뉴스(프리타운)는 1918년 7월 구약성서의 출애굽기 16장에 나오는 질문인 "마안 후?"({?מן הוא}, "무엇인가?")를 인용하여 이 질병을 표현했다.

1918년, '유행병 인플루엔자'는 '그립'(프랑스어 la grippe)으로도 알려졌으며, 미국 캔자스와 스페인에서는 '삼일열'(스페인어 fiebre de los tres días)이라고 불렸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많은 국가들이 전시 검열을 실시하여 팬데믹 관련 보도를 억압했다. 가짜뉴스도 퍼져나갔는데, 아일랜드에서는 플랑드르 전장의 집단 무덤에서 유독 가스가 발생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독일이 바이엘이 생산한 아스피린에 독을 넣거나 잠수함에서 독가스를 살포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질병관리청 등에서는 “스페인 인플루엔자”라고 표기한다. 스패니시 인플루엔자(영어 Spanish Flu에서 유래)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는 (인플루엔자의 총칭인) “인플루엔자(류코세이칸보)”라고도 표기한다.

2015년 이후, WHO는 인간의 신종 감염병에 지명이나 동물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미국의 CDC에서는 “1918년 팬데믹”, “1918-19년 인플루엔자 팬데믹(H1N1)”, “1918년 인플루엔자” 등으로 표기한다.

3. 역사

스페인 독감은 1918년부터 1919년까지 크게 세 차례의 유행을 거쳤다.

스페인 독감의 감염 확대에 있어서 세 가지 파동. 그래프는 영국에서 1918년 6월–1919년 4월의 인플루엔자 및 폐렴에 의한 인구 1000명당 사망자 수
스페인 독감의 감염 확대에 있어서 세 가지 파동. 그래프는 영국에서 1918년 6월–1919년 4월의 인플루엔자 및 폐렴에 의한 인구 1000명당 사망자 수


새로운 감염병을 외국 질병으로 보이게 하려는 관행에서 유래한 외래어들이 많다. 이러한 패턴은 '러시아 독감'으로도 알려진 1889년-1890년 독감 유행 이전에도 관찰되었는데, 당시 러시아에서는 유행성 독감을 '중국 카타르', 독일에서는 '러시아 전염병', 이탈리아에서는 '독일 질병'이라고 불렀다. 1918년 유행병에서도 이러한 별칭들이 다시 사용되었다.

3.1. 제1차 유행 (1918년 봄)

1918년 3월 4일, 미국 캔자스주미국 육군 펀스턴 기지에서 알버트 기첼(Albert Gitchell)이라는 병사가 발열, 두통, 인후통을 호소한 것이 기록된 최초의 스페인 독감 유행 사례로 여겨진다. 같은 날 기첼의 동료를 포함한 100명 이상의 병사들도 같은 증상을 호소했고, 며칠 안에 펀스턴 기지에서 총 522명의 환자가 보고되었다.

당시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 중이었으며, 유럽으로 파병될 미국 원정군의 대규모 훈련장이었던 캔자스주 펀스턴 육군 기지에서 시작된 인플루엔자 유행은 다른 미국 군 기지와 유럽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1918년 4월, 미국 중서부와 동부 해안, 프랑스의 여러 항구에서 유행병이 발생했고, 4월 중순까지 서부 전선에 도달했다. 이후 프랑스 전역,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확산되었고, 5월 중순에는 러시아령 오데사, 독일령 브로츠와프까지 도달했다. 5월에는 북아프리카, 인도, 일본으로도 감염이 확대되었고, 6월에는 중국에서 발병이 보고되었다.

1918년 1분기에 시작된 스페인 독감의 제1파는 비교적 가벼운 수준이었다. 사망률은 평시와 비교하여 크게 높지 않았으며, 미국에서 1918년 1월부터 6월까지 보고된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자는 최대 7만 5,000명이었다(1915년 같은 시기에는 최대 6만 3,000명).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1918년 5월~6월의 사망자 수도 1,000명 미만이었다.

3.2. 제2차 유행 (1918년 가을)

1918년 8월, 프랑스 브레스트, 시에라리온 프리타운,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독성이 더 강해진 스페인 독감이 나타났다. 이 2차 유행은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명에서 8천만 명 사이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어 인류 역사상 대재앙으로 기록되었다. 세계보건기구는 당시 세계 인구 16억 명의 약 1/30에 해당하는 4천만~5천만 명이 독감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인도 등 아시아 국가에서 피해가 컸다.

1918년 유행의 특이한 점은 젊은 층의 사망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전체 사망자의 대부분이 65세 이하였으며, 특히 20~45세가 전체 사망자의 60%를 차지했다. 사망 직전 환자에게 나타나는 특징적인 청자색 청색증은 '자주색 죽음'이라는 이름을 붙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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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감염병과 일반 감염병 간의 인플루엔자 사망자 연령 분포: 1911년 ~ 1917년(점선)과 1918년(실선) 대유행 기간 동안 미국의 각 연령대에서 100,000명당 사망자 수
1918년 감염병과 일반 감염병 간의 인플루엔자 사망자 연령 분포: 1911년 ~ 1917년(점선)과 1918년(실선) 대유행 기간 동안 미국의 각 연령대에서 100,000명당 사망자 수

3.3. 제3차 유행 (1919년)

1919년 1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작하여 유럽과 미국에서 재유행하였다. 일본에서는 1920년 1월부터 2월에 걸쳐 제3차 유행이 발생하였다. 제1차 유행보다는 강하고, 제2차 유행보다는 약한 독성을 보였다.

3.4. 제4차 유행 (1920년)

1920년, 북반구에서 독감이 다시 유행하여 일부 지역에 피해를 입혔다. 일본, 한국, 대만 등에서 뚜렷한 유행이 관찰되었다.

4. 기원

스페인 독감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하며, 2024년 현재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 영국 기원설: 1918년 프랑스 북부 도시 에타플(Étaples)에 있었던 영국군 임시 병원에서 발생하였다는 가설이다. 이 병원에서는 10만 명의 군인들이 치료를 받았고, 영국군은 식량 공급을 위해 근처 마을의 돼지와 닭을 정기적으로 가져왔다. 조류에서 발생한 독감 바이러스가 돼지로 이동하여 발생했다고 가정한다. 바이러스학자 존 옥스퍼드(John Oxford)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에타플에 있었던 대규모 영국 육군 주둔지를 스페인 독감의 기원으로 추정한다. 옥스퍼드의 연구에 따르면, 1916년 말 에타플 주둔지에서 스페인 독감과 증상이 유사한 높은 치사율의 신종 질병이 유행했고, 1917년 3월에는 영국 본토 올더숏(Aldershot)에 있는 육군 병영에서도 유사한 유행이 발생했다. 영국군 병리학자들은 나중에 에타플과 올더숏에서 유행한 질병이 1918년 스페인 독감과 동일한 것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옥스퍼드는 에타플 주둔지에 대해, 항상 약 10만 명의 병사들이 밀집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구내에 대규모 돼지 사육장이 있었고, 주변 시장에서 산 닭, 오리, 거위가 반입되는 등 호흡기 바이러스가 유행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었다고 지적한다.

* 미국 기원설: 2000년 역사학자 알프레드 크로스비캔자스주에서 독감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존 베리도 2004년 기사에서 캔자스주에서 독감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당시 캔자스주의 사망자 수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역사학자 알프레드 크로스비(Alfred Crosby)는 1918년 팬데믹이 미국의 캔자스주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존 베리는 1918년 1월 캔자스주 허스켈군에서 발생한 질병 유행이 스페인 독감의 기원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미국에서 1915년과 1916년에 이미 인플루엔자와 폐렴으로 인한 사망률 급증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이 현상과 1918년 팬데믹의 연관성은 불명확하며, 팬데믹의 지리적 발생지를 특정하기에는 역사적·역학적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 외에도, 캐나다오리 바이러스일리노이주의 돼지에 감염되었다는 추정도 있다. 2018년, 애리조나 대학교의 마이클 월로비(Michael Worobey)는 캔자스의 사례가 동시기 뉴욕의 감염과 비교하여 증상이 경미하고 사망자도 적었던 점을 들어 캔자스 발원설을 부정하는 근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조직편의 계통 분석 결과,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북미에서 기원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은 1918년보다 훨씬 이전에 발생했음을 시사하며, 다른 연구에서는 H1N1 바이러스의 재조합은 1915년경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 중국 기원설: 1917년 11월에 중국 북부를 강타한 호흡기 질환이 있었고, 1년 후 중국 당국에 의해 스페인 독감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9만 6천명의 중국 노동자들이 영국과 프랑스 전선에서 일을 했었고, 이것이 스페인 독감의 팬데믹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군벌 시대였던 중국과 관련된 자료가 적기 때문에 분쟁의 여지가 있다. 파스퇴르 연구소의 클로드 아누운(Claude Hannoun)은 1993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아누운은 중국에서 유래한 바이러스가 미국의 보스턴 근교에서 변이된 후, 프랑스 브레스트로 건너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이후 제1차 세계 대전 연합국 병사들을 주요 매개체로 하여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역사가 마크 험프리스(Mark Humphries)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과 프랑스군 후방에서 약 9만 6천 명의 중국인 노동자가 동원된 것이 1918년 팬데믹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험프리스에 따르면, 1917년 11월 중국 북부에서 유행한 호흡기 질환은 중국의 검역관에 의해 나중에 스페인 독감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진화 생물학자 마이클 워로비(Michael Worobey)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은 2019년, 스페인 독감의 중국인 노동자 기원설에 대한 반증을 제시했다. 유럽으로 건너간 중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플루엔자 사례가 보고된 시기는 같은 지역의 다른 집단에 비해 늦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그들이 최초 감염원이었을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2016년 중국 의학 협회지(Journal of the Chinese Medical Association)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중국과 동남아시아 출신 병사들과 노동자들을 통해 유럽으로 유입되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팬데믹 이전에 유럽에서 이 바이러스의 순환에 대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중국 및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 사이에서 발견된 낮은 독감 사망률(1,000명 가운데 1명)은 치명적인 스페인 독감이 이들로부터 전파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5. 피해 상황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약 5억 명을 감염시켰으며, 이는 당시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사망자 수는 적게는 1,700만 명에서 많게는 1억 명 이상으로 추정되며,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팬데믹 중 하나로 기록된다.

1918년~1919년 팬데믹 주요 시기에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유럽의 과잉 사망자 수는 총 264만 명으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당시 유럽 인구(약 2억 5천만 명)의 약 1.1%에 해당한다. 영국의 과잉 사망률은 이보다 훨씬 낮은 0.28~0.4%로 추산되었다.

인도에서는 약 1,200만~1,700만 명이 사망하여 당시 인구의 약 5%가 희생되었다. 영국 통치 지역의 사망자 수는 1,388만 명이었다. 핀란드에서는 21만 명 중 2만 명이, 스웨덴에서는 3만 4천 명이 사망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 인도네시아)에서는 3천만 명의 주민 중 15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타히티에서는 한 달 만에 인구의 13%가, 서사모아 신탁통치령에서는 두 달 만에 인구의 22%가 사망했다.

오스만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에서는 6,403명에서 1만 명이 사망하여, 도시의 사망률은 최소 0.56%에 달했다. 뉴질랜드에서는 6주 만에 약 6,400명의 파케하(유럽계 뉴질랜드인)와 2,500명의 원주민 마오리족이 사망했는데, 마오리족의 사망률은 파케하의 8배였다. 호주에서는 약 1만 2천 명에서 2만 명이 사망했다.

미국에서는 약 50만 명에서 85만 명이 사망했다. 알래스카 준주에서는 전체 이누이트알래스카 원주민 마을 공동체가 사망했다. 캐나다에서는 5만 명이 사망했다.

브라질에서는 대통령 로드리게스 알베스를 포함하여 30만 명이 사망했고, 영국에서는 최대 25만 명, 프랑스에서는 4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골드코스트(가나)에서는 독감 유행으로 최소 10만 명이 사망했다.

5.1. 전 세계

1918년 8월, 프랑스의 브레스트,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 미국의 보스턴에서 독성이 더욱 강해진 스페인 독감이 나타났다. 이 2차 유행은 인류 역사에 대재앙으로 기록되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적게는 2천만 명, 많게는 8천만 명이 독감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는 당시 세계 인구 16억 명의 약 1/3에 해당하는 4~5천만 명이 독감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 인구의 약 1/3 (약 5억 명)을 감염시켰다. 감염자 중 사망자 수에 대한 추정치는 다양하지만, 이 독감은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팬데믹 중 하나로 여겨진다.

존 M. 배리(John M. Barry)는 2021년에 사망자 수가 1억 명을 훨씬 넘는다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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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독감 주요 국가별 사망자 수
국가사망자 수
인도1,200만~1,700만 명
미국50만~85만 명
브라질30만 명 (대통령 로드리게스 알베스 포함)
영국최대 25만 명
프랑스40만 명 이상

5.2. 일본

1918년(다이쇼 7년) 4월, 당시 일본이 통치하던 대만에서 순회 공연 중이던 진사세키 등의 스모 선수 3명이 수수께끼의 전염병으로 급사했다. 같은 해 5월 여름 장소에서는 고열 등으로 휴식하는 선수가 속출하여 세간에서는 "스모 감기" 또는 "선수 감기"라고 불렀다. 후쿠오카현 구루메시에서는 5월, 오사카 가부키계의 인기 배우였던 간지로가 시내에서 공연한 지 며칠 후에 유행성 감기가 유행하여 "간지로 감기"라고 불렸다.

이후 같은 해 8월 일본에 상륙, 10월에 대유행이 시작되어 세계 각지에서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과 국내에서도 각 도도부현의 학교와 병원을 중심으로 많은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보도되었다. 제1차 대유행은 1918년 10월부터 1919년(다이쇼 8년) 3월, 제2차는 1919년 12월부터 1920년(다이쇼 9년) 3월, 제3차는 1920년 12월부터 1921년(다이쇼 10년) 3월에 걸쳐 있었다.

당시 인구 5500만 명에 대해 약 2380만 명(인구 비율: 약 43%)이 감염되어 약 39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명인사로는 1918년에 시마무라 호우게츠, 1919년에 오야마 스테마츠, 타케다노미야 쓰네히사왕, 도쿠다이지 사네노리, 타츠노 킹고, 1920년에 스에마츠 켄스이가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일본 각지에 수용되어 있던 일독전 독일군 포로에도 감염자가 속출하여, 1919년 1월 1일에는 슈시노 포로 수용소 소장이었던 사이고 토라타로도 병사했다.

제1차 유행에서 환자 수·사망자 수가 가장 많았다. 제2차 유행에서는 환자 수가 감소하는 한편, 치사율은 상승했다. 제3차 유행의 환자 수·사망자 수는 비교적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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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스페인 독감(스페인 인플루엔자) 피해
유행 시기환자사망자치사율
제1차 유행1918년(다이쇼 7년) 8월 - 1919년(다이쇼 8년) 7월2116만 8398명25만 7363명1.22%
제2차 유행1919년(다이쇼 8년) 8월 - 1920년(다이쇼 9년) 7월241만 2097명12만 7666명5.29%
제3차 유행1920년(다이쇼 9년) 8월 - 1921년(다이쇼 10년) 7월22만 4178명3698명1.65%
합계1918년(다이쇼 7년) 8월 - 1921년(다이쇼 10년) 7월2380만 4673명38만 8727명1.63%


감염자 수 2380만 명, 사망자 약 39만 명은 내무성 위생국 편찬 『유행성 감기』(다이쇼 11년/1922년)에 의한 통계 수치이다.

또한 45만 명이 사망했다고도 하며, 하야스이 토우루는 사망자를 약 45만 명(폐결핵, 기관지염 등이 사인으로 되어 있던 자 포함)으로 추계하고 있다.

5.3. 한국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였던 1918년 한국에서는 무오년 독감(戊午年 毒感) 또는 서반아 감기(西班牙 感氣)라고 불렸다.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 인구 1,678만 3,510명 가운데 약 16.3%인 742만 2,113명이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었고, 그 중 13만 9,128명이 사망했다. 사망률은 전체 인구 수 대비 0.83%이다.

당시 상하이의 인구는 200만 명이 넘었지만 사망자는 266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한국의 사망자 수는 월등히 많았다. 중국 내륙의 의료 기록에 따르면 농촌 지역의 사망률이 상당히 높았다.

6. 특징

스페인 독감은 H1N1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했으며, 감염자 대부분은 인후통, 두통, 발열 등 전형적인 독감 증상을 보였다. 그러나 두 번째 유행 기간 동안에는 세균성 폐렴과 같은 합병증으로 인해 질병이 더욱 심각해졌다. 이로 인해 피부가 파랗게 변하는 '헬리오트로프 청색증'이 나타나기도 했으며, 심한 경우 폐에 체액이 차서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코피, 구취, 유산, 섬망, 어지러움, 불면증, 청력 또는 후각 상실, 시력 저하 등 다양한 증상이 보고되었다. 사망 원인의 대부분은 이차 감염인 세균성 폐렴이었으며, 바이러스가 폐에 대량의 출혈과 부종을 일으켜 직접 사망에 이르게 하기도 했다.

미 육군의 독감 증상
미 육군의 독감 증상


스페인 독감은 H1N1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이었으나, 다른 인플루엔자 유행과는 다른 특징을 보였다. 다만, 제1차 세계 대전 중의 유행이었고 당시 기록에는 여러 가지 혼란 요소가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6.1. 젊은층 사망률

일반적으로 인플루엔자는 2세 미만의 영아, 70세 이상의 노인, 그리고 면역결핍 환자에게 가장 치명적이다. 그러나 스페인 독감은 젊은 성인층에서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는 점에서 이례적이었다. 1918년에서 1919년 사이에 미국에서 발생한 스페인 독감 사망자의 99%는 65세 미만이었으며, 거의 절반이 20세에서 40세 사이의 젊은 성인이었다. 1920년에는 65세 미만 인구의 사망률이 감소했지만, 여전히 사망자의 92%는 65세 미만이었다. 일본의 기록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관찰되었다.

1918년 감염병과 일반 감염병 간의 인플루엔자 사망자 연령 분포: 1911년 ~ 1917년(점선)과 1918년(실선) 대유행 기간 동안 미국의 각 연령대에서 100,000명당 사망자 수
1918년 감염병과 일반 감염병 간의 인플루엔자 사망자 연령 분포: 1911년 ~ 1917년(점선)과 1918년(실선) 대유행 기간 동안 미국의 각 연령대에서 100,000명당 사망자 수


이러한 현상에 대해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사이토카인 폭풍이 젊은 성인의 강한 면역 체계를 파괴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반면, 어린이와 중년 성인의 약한 면역 반응은 이 그룹의 사망자 수가 적은 결과로 이어졌다.

임산부의 사망률도 매우 높았다. 역사가 존 M. 배리에 따르면, 팬데믹 당시 입원한 여성에 대한 13건의 연구에서 사망률이 23%에서 71%에 이르렀다. 출산에서 살아남은 임산부 중 4분의 1(26%) 이상이 아이를 잃었다.

1889년에 유행했던 러시아 독감으로 면역을 획득했기 때문에 고령자의 사망률이 낮았다는 가설도 있다.

한편, 실제로는 스페인 독감 희생자 대부분이 영양실조, 과밀한 의료 캠프 및 병원, 열악한 위생 상태로 인한 세균성 중복 감염으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가혹한 군 복무, 군수 산업 동원이 젊은 성인의 사망률을 높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6.2. 유행 시기

일반적인 인플루엔자는 겨울에 유행하지만, 스페인 독감은 여름과 가을에 대유행하였다.

7. 병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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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독감의 병원체는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H1N1 아형)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바이러스 분리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고, 마우스나 토끼 같은 실험동물에게는 병원성을 보이지 않아 병원체의 정확한 정체는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다.

1933년 페릿을 이용한 실험으로 인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병원성이 증명되었다. 이후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채취된 환자 혈청에서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발견되면서, 1930년대에 유행했던 인플루엔자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스페인 독감의 병원체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1997년 8월, 요한 풀틴이 미국 알래스카주의 영구 동토층에서 발굴한 4구의 유체에서 폐 조직 검체를 채취하여 바이러스 게놈을 분리함으로써 스페인 독감의 병원체 정체가 H1N1 아형이며,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연구에서는 현재의 H1N1 아형이 모두 이 당시의 병원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있다.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신종 감염병이었고, 스페인 독감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팬데믹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 분석 결과,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는 마우스에게 괴사성 기관지염, 출혈을 동반하는 중등도에서 중증의 폐포염, 폐포 부종을 일으키는 강한 병원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강한 병원성은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단백질인 HA(적혈구 응집소, 헤마글루티닌)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는 일반적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보다 30배나 더 빠르게 증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증식을 관장하는 3개의 DNA 중합효소 때문이다.

일반적인 유행에서는 소아와 노인에게서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지만, 스페인 독감에서는 청년층의 사망자가 많았다. 2005년 5월, 마이클 오스터홀름은 사이토카인 폭풍이 원인이라는 가설을 제시했지만,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2007년 1월, 과학기술진흥기구와 도쿄대학교 의학과학연구소는 인공 합성한 바이러스를 이용해 원숭이 실험을 한 결과,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강한 치사율의 폐렴면역 반응 조절 이상을 일으키는 병원성을 가지고 있음을 발표했다.

팬데믹 이후 수년 동안 스페인 독감의 병원체인 H1N1 아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독성은 크게 약해졌고, 이후 대규모 감염 유행은 발생하지 않았다. 2008년 12월, 도쿄대학교의 카와오카 요시히로 등은 H1N1 아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서 강한 병원성을 설명하는 3개의 유전자를 특정했다고 발표했다.

8. 영향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약 1,500만 명이 사망한 것에 비해, 스페인 독감으로는 1,700만~5,000만 명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제1차 세계 대전은 서둘러 종결되었고,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사건은 독감 예방 접종 문화의 시작을 알렸다.

앤드루 프라이스-스미스(Andrew Price-Smith)는 이 바이러스가 전쟁 후반부 연합국의 승리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바이러스 유행이 연합국보다 중앙강국(Central Powers)에 먼저 영향을 미쳤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질병률과 사망률이 영국과 프랑스보다 훨씬 높았다는 데이터를 제시했다. 2006년 랜싯(Lancet) 연구는 독일(0.76%)과 오스트리아(1.61%)의 과잉 사망률이 영국(0.34%)과 프랑스(0.75%)보다 높았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옥스퍼드대학교 컴퓨팅 서비스(Oxford University Computing Services)의 케네스 칸(Kenneth Kahn)은 "많은 연구자들은 전쟁 상황이 질병 확산을 크게 도왔다고 제안했으며, 다른 연구자들은 전쟁의 경과(그리고 그 이후의 평화 조약)가 이러한 팬데믹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라고 언급했다. 칸은 이러한 이론을 검증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가정용 컴퓨터 모델을 개발했다.

스페인 독감은 1918년 독일군의 봄 공세 실패와 연합국의 승리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독일군 지휘관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독일 육군을 약하게 만든, 저 지긋지긋한 인플루엔자 때문이다"라고 한탄했다.

파리 강화 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어 회의에 불참하면서, 독일에 대한 가혹한 배상 요구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독일 경제의 파탄, 히틀러 정권의 탄생,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오락 및 서비스업의 많은 기업들은 수익 감소를 겪었지만, 의료 산업은 이익 증가를 보고했다. 역사학자 낸시 브리스토우(Nancy Bristow)는 이 전염병이 대학 진학 여성의 증가와 결합하여 간호 분야에서 여성의 성공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주로 남성이 대다수였던 의사들이 질병을 억제하고 예방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주로 여성이었던 간호 직원들은 환자 치료의 성공을 기념했고 질병의 확산을 자신의 업무와 연관짓지 않았다.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초기이고 광범위한 비의료적 조치(격리 등)를 시행한 미국 도시들은 그러한 조치 시행으로 인한 추가적인 부정적인 경제적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연구의 타당성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우연한 일치와 데이터 신뢰성의 다른 문제점 때문에 의문을 제기받았다. 2006년 정치경제 저널(Journal of Political Economy)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동안 태아기에 있었던 코호트는 다른 출생 코호트와 비교하여 교육 수준 저하, 신체 장애율 증가, 낮은 소득,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 그리고 더 높은 이전 지급금 수령을 보였다."라고 한다. 2018년 연구에서는 팬데믹으로 인해 인구의 교육 수준이 저하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1920년대 뇌염 발생과도 관련이 있다.

생존자들은 사망 위험이 높았다. 일부 생존자들은 감염으로 인한 생리적 상태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1918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독감 희생자 대규모 매장지
1918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독감 희생자 대규모 매장지


1918년 스페인 독감은 높은 이환율과 사망률을 기록했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조류 독감 및 다른 팬데믹 관련 뉴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대중의 인식에서 희미해졌다. 이로 인해 일부 역사가들은 스페인 독감을 "잊혀진 팬데믹"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역사가 가이 베이너에 의해 도전받았다. 그는 사회적, 문화적 망각의 복잡한 역사를 추적하여, 이 팬데믹이 제1차 세계 대전 추모에 가려지고 주류 역사학에서 대부분 간과되었지만, 전 세계의 사적인 기록과 지역 전통에는 기억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스페인 독감이 "잊혀진" 이유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제시된다. 우선, 미국에서 9개월도 채 되지 않아 대부분의 희생자를 앗아간 팬데믹의 빠른 속도는 언론 보도를 제한했다. 또한, 일반 대중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유행병 패턴(장티푸스, 황열병, 디프테리아, 콜레라 등)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인플루엔자 팬데믹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독감이 보도되지 않았고, 치료법이라고 주장하는 약 광고만 언급되기도 했다.

더불어, 이 발병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사망자와 언론의 집중과 시기적으로 일치했다. 전쟁과 유행병 모두에서 대부분의 사망자가 젊은 성인이었기에, 전쟁 관련 사망자 수가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가렸을 수 있다는 설명도 존재한다. 특히 전쟁의 희생이 컸던 유럽에서는 독감이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주지 않았거나 전쟁의 비극의 연장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8.1. 사회/문화적 영향

일본에서는 스페인 독감을 계기로 마스크(マスク)가 일반인에게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9. 연구

191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는 알래스카 영구 동토층에 매장된 이누이트 여성 희생자의 유해에서 추출한 조직 샘플과, 미국 병사들에게서 보존된 샘플을 통해 유전자 서열이 밝혀졌다. 이 연구는 병리학 군 의학 연구소, 미국 농무부 ARS 남동부 가금류 연구소, 뉴욕시 마운트 시나이 의과대학의 공동 연구로 진행되었다.

191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재구성 모습을 보여주는 전자 현미경 사진
191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재구성 모습을 보여주는 전자 현미경 사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재구성 버전을 조사하는 Terrence Tumpey 박사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재구성 버전을 조사하는 Terrence Tumpey 박사


과학자들은 유전자 분석과 동물 실험을 통해 바이러스의 특성과 병원성을 연구하고 있다. 2007년에는 재구성된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가 1918년 유행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이며 면역 체계의 과잉 반응으로 사망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는 스페인 독감이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2008년에는 위스콘신 대학교 연구팀이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특정 유전자(PA, PB1, PB2, 핵 단백질)가 폐 침투 및 폐렴 유발 능력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2008년의 한 조사에서는 1918년 독감 유행 생존자 32명에게서 혈구응집소(HA) 항원에 대한 면역 반응이 나타났으며, 이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면역 기억이 유지됨을 보여주었다.

2010년, 마운트 시나이 의과대학 연구팀은 2009년 독감 유행 백신이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일부 교차 방어 효과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10. 진화

2005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 A형, H1N1형으로 밝혀졌다. 2009년 신종플루는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와 같은 인플루엔자 A, H1N1형이다.

191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재구성 모습을 보여주는 전자 현미경 사진
191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재구성 모습을 보여주는 전자 현미경 사진

스페인 독감 유행의 기원과 인간과 돼지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한 발병의 관계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 가설은 바이러스 변종이 캔자스주 포트 라일리에서 기원했으며, 이곳에서 식용으로 사육하던 가금류와 돼지의 바이러스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 후 병사들이 포트 라일리에서 전 세계로 파병되면서 질병이 확산되었다. 바이러스 재구성과 조류 바이러스 간의 유사성과 인간 유행이 돼지 인플루엔자 최초 보고보다 앞섰다는 점을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조류에서 인간으로 직접 전염되었고, 돼지는 인간으로부터 질병에 감염되었다고 결론지었다.

다른 연구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최근 연구에서는 그 변종이 비인간 포유류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포유류 숙주에 나타난 추정 시기는 1882년~1913년으로 추정된다. 이 조상 바이러스는 1913년~1915년경에 두 개의 클레이드(공통 조상에서 유래한 생물학적 그룹)로 분기되어 고전적인 돼지 및 인간 H1N1 인플루엔자 계통을 낳았다. 인간 계통의 최근 공통 조상은 1917년 2월과 1918년 4월 사이에 존재했다. 돼지는 인간보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더 쉽게 감염되기 때문에, 1913년과 1918년 사이에 어느 시점에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전달한 최초 수용체로 여겨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재구성 버전을 조사하는 Terrence Tumpey 박사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재구성 버전을 조사하는 Terrence Tumpey 박사

스페인 독감 변종(인플루엔자 A형 H1N1 아형의 변종)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은 병리학 군 의학 연구소, 미국 농무부 ARS 남동부 가금류 연구소, 그리고 뉴욕시의 마운트 시나이 의과대학 간의 공동 연구였다. 이 연구는 2005년 10월 5일, 병리학자 요한 훌틴이 알래스카 영구 동토층에 매장된 이누이트 여성 독감 희생자로부터 회수한 역사적 조직 샘플과 미국 병사들 Roscoe Vaughan과 James Downs로부터 보존된 샘플을 사용하여 이 그룹이 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을 성공적으로 결정했다는 발표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마운트 시나이 의과대학의 연구자들은 Terrence Tumpey 박사의 주도하에 H1N1 바이러스의 RNA 세그먼트를 합성하고 궁극적으로 감염성 바이러스 입자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이후 실험적으로 생쥐, 족제비, 마카크에 감염시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생물학과 발병 기전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미래의 유행을 예방하고 통제하는 방법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2007년 1월 18일, Kobasa 외.(2007)는 재구성된 독감 변종에 감염된 원숭이(마카카 파실리컬리스)가 1918년 유행의 고전적인 증상을 보이고 면역 체계의 과잉 반응으로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이것은 스페인 독감이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놀라운 영향을 미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데, 더 강한 면역 체계를 가진 사람은 잠재적으로 더 강한 과잉 반응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 요시히로 카와오카가 이끄는 위스콘신 대학교의 연구는 스페인 독감 샘플에서 유래한 세 가지 특정 유전자(PA, PB1, PB2로 명명됨)와 핵 단백질의 존재를 1918년 독감 바이러스가 폐에 침투하고 폐렴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과 연결했다. 이 유전자들은 현대 H1N1 변종에 삽입되어 동물 실험에서 유사한 증상을 유발했다.

2008년 한 조사에서는 바이러스 서열을 사용하여 혈구응집소(HA) 항원을 얻고 1918년 독감 유행의 생존자 32명에서 적응 면역을 관찰했는데, 모두 혈청 반응성을 나타냈고 8명 중 7명은 HA 항원에 결합하는 항체를 생성할 수 있는 기억 B 세포를 보여주어 수십 년 후에도 면역 기억의 능력을 강조했다.

2010년 6월, 마운트 시나이 의과대학의 한 연구팀은 2009년 독감 유행 백신이 스페인 독감 유행 변종에 대한 일부 교차 방어를 제공한다고 보고했다.

2013년, AIR Worldwide Research and Modeling Group은 "역사적인 1918년 유행을 특징짓고 AIR Pandemic Flu Model을 사용하여 오늘날 발생하는 유사한 유행의 영향을 추정했다". 이 모델에서 "현대판 '스페인 독감' 사건은 미국에서만 15300~27800의 추가 생명 보험 손실을 초래할 것이며", 미국에서 18만 8천~33만 7천 명이 사망할 것이다.

2018년, 1918년 유행의 역사를 조사하고 있는 애리조나 대학교의 진화 생물학 교수 Michael Worobey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영국 군대의 병리학자로서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높은 호흡기 질환에 대해 보고한 의사 William Rolland가 만든 조직 슬라이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Rolland는 1917년 랜싯에 1916년 프랑스 에타플에서 시작된 호흡기 질환 발병에 대한 기사를 작성했다. Worobey는 그 기사에 대한 최근 언급을 추적하여 Rolland가 당시 준비한 슬라이드를 보관한 가족 구성원에게 도달했다. Worobey는 슬라이드에서 조직을 추출하여 병원체의 기원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