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 모리슨
1. 개요
밴 모리슨(Van Morrison)은 1945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싱어송라이터로, 포크, 블루스, 소울,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한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을 선보였다. 1960년대 초 밴드 뎀(Them)으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으며, 1967년 솔로 데뷔 후 "Brown Eyed Girl"을 발표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앨범 《Astral Weeks》(1968), 《Moondance》(1970) 등을 통해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으며, 《Into the Music》(1979)과 같은 앨범에서는 음악의 치유력에 대한 믿음을 표현했다. 200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고 공연 활동을 이어가며, 2021년에는 영화 《벨파스트》에 그의 곡들이 사용되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대영 제국 훈장을 수여받는 등 음악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 이름 | 밴 모리슨 |
|---|---|
| 본명 | 조지 아이번 모리슨 |
| 별칭 | 밴 더 맨, 벨파스트 카우보이 |
| 출생일 | 1945년 8월 31일 |
| 출생지 |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블룸필드 |
| 직업 | 싱어송라이터, 음악가 |
| 활동 기간 | 1958년–현재 |
| 악기 | 보컬, 기타, 하모니카, 색소폰 |
| 장르 | 블루 아이드 소울, 켈틱, 록, R&B, 포크, 블루스, 재즈, 컨트리, 가스펠, 기독교 |
| 관련 활동 | 뎀, 더 휠스 |
|---|---|
| 음반 목록 | 밴 모리슨 음반 목록 |
| 레이블 | 데카, 패럿, 뱅, 워너 브라더스, 런던, 머큐리, 엑자일, 폴리도르, 버브, 포인트 블랭크, 버진, 유니버설 뮤직 그룹, 블루 노트, 로스트 하이웨이, 리슨 투 더 라이온, EMI, 맨해튼, RCA, BMG, 소니 레거시 |
| 훈장 | 기사 작위, OBE |
|---|---|
| 그래미상 | 수상 |
|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 헌액, 조니 머서 상 |
| 로큰롤 명예의 전당 | 헌액 |
| 웹사이트 | https://www.vanmorrison.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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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기 생애 및 음악 활동 (1945-1964)
밴 모리슨은 벨파스트 출신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가정에서 자랐다. 15세에 '더 몬아크스(the Monarchs)'라는 밴드에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63년 11월에는 '조지 앤 더 몬아크스(Georgie and the Monarchs)'라는 이름으로 싱글 "부주 훌리 걸리(Boozoo Hully Gully)"/"트윙기 베이비(Twingy Baby)"를 녹음했는데, 이는 모리슨의 첫 녹음이었다.
2.1. 출생 및 가족 배경
조지 아이반 모리슨은 1945년 8월 31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블룸필드의 하인드포드 스트리트 125번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소 전기 기술자 조지 모리슨이었고, 어머니 바이올렛 모리슨은 젊은 시절 가수이자 탭댄스를 했던 사람이었다. 모리슨의 가족은 벨파스트에 정착한 얼스터 스코트인의 후손인 노동자 계급 얼스터 개신교도였다.
2.2. 어린 시절 및 음악적 영향
조지 아이반 모리슨은 1945년 8월 31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으며, "밴(Van)"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950년부터 1956년까지 엘름그로브 초등학교에 다녔다.
어린 시절, 모리슨은 아버지의 방대한 음반 컬렉션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했다. 특히 젤리 롤 모턴, 레이 찰스, 리드 벨리, 솔로몬 버크 등의 음악은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모리슨은 "만약 레이와 솔로몬 같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그의 아버지는 머디 워터스의 블루스, 마할리아 잭슨의 가스펠 음악, 찰리 파커의 재즈, 우디 거스리의 포크 음악, 행크 윌리엄스와 지미 로저스(컨트리 가수)의 컨트리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소개했고, 모리슨이 처음 구입한 음반은 소니 테리의 음반이었다. 로니 도네건의 "록 아일랜드 라인(노래)" 히트 당시, 모리슨은 이미 리드 벨리를 알고 있었기에 스키플 음악에 친숙함을 느꼈다.
11세 때, 모리슨의 아버지는 그에게 첫 어쿠스틱 기타를 선물했고, 앨런 로맥스가 편집한 카터 패밀리 스타일 노래집을 통해 코드(음악)를 익혔다.
2.3. 초기 밴드 활동
모리슨은 12세 때 첫 밴드인 "스푸트니크스(The Sputniks)"를 결성했다. 이 밴드는 그해 10월 소련이 발사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지역 영화관에서 공연했다. 모리슨은 리드 보컬을 맡고 대부분의 노래와 편곡을 담당했다. 14세 때에는 또 다른 스키플 밴드인 '미드나잇 스페셜'을 결성하여 학교 콘서트에서 연주했다.
그 후, 지미 지우프레가 "The Train and The River"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아버지에게 테너 색소폰을 사달라고 졸랐으며, 재즈 뮤지션 조지 캐시디(재즈 뮤지션)에게 색소폰과 악보 읽는 법을 배웠다. 모리슨은 캐시디를 "큰 영감"으로 여겼고, 그와 친구가 되었다.
색소폰을 연주하게 된 모리슨은 '데이니 샌즈 앤 더 자벨린스(Deanie Sands and the Javelins)' 등 다양한 지역 밴드에 합류하여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이 밴드는 리드 보컬 데이니 샌즈, 기타리스트 조지 존스(라디오 진행자), 드러머이자 보컬 로이 케인으로 구성되었다. 이후 자벨린스의 주요 멤버 네 명은 피아니스트 웨슬리 블랙을 추가하여 '더 몬아크스(the Monarchs)'를 결성했다.
17세 때, 모리슨은 '인터내셔널 몬아크스(International Monarchs)'로 이름을 바꾼 더 몬아크스와 함께 유럽 투어를 했다. 이 아일랜드 쇼밴드는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독일의 클럽과 미 육군 기지를 순회하며 공연했다. 모리슨은 색소폰, 기타,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베이스와 드럼을 백업했다. 독일에서 이 밴드는 '조지 앤 더 몬아크스(Georgie and the Monarchs)'라는 이름으로 싱글 "부주 훌리 걸리(Boozoo Hully Gully)"/"트윙기 베이비(Twingy Baby)"를 녹음했다. 이것은 1963년 11월 쾰른의 아리올라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모리슨의 첫 녹음이었으며, 독일 차트 하위권에 진입했다.
2.4. 학창 시절 및 직업
모리슨은 오렌지필드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1960년 7월에 졸업하지 못했다. 노동자 계급 출신이었기 때문에 정규직 직업을 갖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는 몇 개의 짧은 견습 과정을 거친 후 창문 청소부로 정착했다. 이 직업은 나중에 그의 노래 "창문 청소(Cleaning Windows)"와 "세인트 도미닉의 미리 보기(노래)"에서 언급되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키워왔고, 더 몬아크스와 함께 파트타임으로 계속 연주했다. 또한 직장 동료였던 조디(G. D.) 스프로울과 함께 해리 맥 쇼밴드, 더 그레이트 에이트에서 연주했는데, 그는 나중에 모리슨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혔다.
3. 뎀 (Them) 시절 (1964-1966)
1964년 4월, 밴 모리슨은 벨파스트 마리타임 호텔의 R&B 클럽 광고를 보고 밴드를 결성했다. 밴드 이름은 공포 영화 《Them!》에서 따왔다. 뎀은 즉흥적인 R&B 공연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그들의 대표곡 "Gloria"는 록의 명곡으로 자리 잡았다.
뎀은 데카 레코드와 계약하여 2개의 앨범과 10개의 싱글을 발매했다. "Baby, Please Don't Go", "Here Comes the Night", "Mystic Eyes" 등이 히트했다. 1966년, 뎀은 미국 투어를 진행했고, 위스키 어 고고에서 레지던시 공연을 했다. 이 공연은 도어스의 짐 모리슨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매니저와의 갈등과 비자 문제로 인해 밴드는 해체되었다.
4. 솔로 활동 초기 (1967-1968)
1966년 미국 투어 후, 모리슨은 밴드 잼을 탈퇴하고 벨파스트로 돌아왔지만, 버트 번스의 제안으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1967년 방 레코드에서 발매된 싱글 「브라운 아이드 걸」은 빌보드 10위에 오르는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프로듀서 버트 번즈는 모리슨의 의향을 무시하고 솔로 앨범 『블로잉 유어 마인드』를 발매했고, 같은 해 말 번즈가 사망하면서 모리슨은 방 레코드를 떠났다.
1968년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로 이적한 후 첫 앨범 『애스트럴 위크스』를 발매했다. 발매 당시에는 1만 5천 장 정도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이후 팝 음악사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평가받았으며, 2001년에는 미국 내 판매량이 50만 장을 돌파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4.1. Bang Records 시절 (1967)
1966년 미국 투어 종료 후, 모리슨은 잼을 탈퇴하고 귀국했지만, 버트 번스의 제안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1967년 방 레코드에서 발매된 싱글 「브라운 아이드 걸」은 빌보드 10위에 올랐지만, 프로듀서인 버트 번즈는 모리슨의 의향을 무시하고 솔로 앨범 『블로잉 유어 마인드』를 발매했으며, 같은 해 말 번즈가 사망하면서 모리슨은 방 레코드를 떠났다.
4.2.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 이적 (1968)
1966년 미국 투어가 끝난 후, 모리슨은 잼을 탈퇴하고 벨파스트로 돌아왔지만, 버트 번즈의 제안으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솔로로 전향했다. 1967년 방 레코드에서 발매된 싱글 「브라운 아이드 걸」이 빌보드 10위에 오르는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프로듀서 버트 번즈는 모리슨의 의향을 무시하고 솔로 앨범 『블로잉 유어 마인드』를 발매했고, 같은 해 말 번즈가 사망하면서 모리슨은 방 레코드를 떠나게 되었다.
1968년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로 이적 후 첫 앨범인 『애스트럴 위크스』를 발매했다. 발매 당시에는 1만 5천 장 정도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이후 팝 음악사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평가받았으며, 2001년에는 미국 내 판매량이 50만 장을 돌파했다.
5. 전성기 (1968-1979)
1966년 미국 투어 종료 후, 모리슨은 잼을 탈퇴하고 귀국했지만, 버트 번즈의 제안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솔로로 전향했다. 1968년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에서 첫 앨범 《애스트럴 위크스》를 발표했다. 발매 당시에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이후 팝 음악사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평가받았고, 2001년 미국 내 판매량 50만 장을 돌파하며 골드 인증을 받았다.
1970년 《문댄스》는 Billboard 200에서 29위를 기록했고, 같은 해 11월 《스트리트 콰이어》를 발표했다. 1971년 4월, 아내 재닛 플래닛과 캘리포니아주마린 군으로 이주, 더 밴드를 방문해 로비 로버트슨과 〈4% 판토마임〉을 작곡했다. 1971년 10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녹음한 《튜펠로 허니》를 발표, 빌보드 27위를 기록했다. R&B, 재즈, 포크 음악, 브리티시 트래드, 켈트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가 섞인 그의 음악성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73년 벨파스트로 돌아간 모리슨은 1974년 《비든 프리즈》 발매 후 활동을 중단했다가, 1977년 복귀작 《안식으로의 여행》을 발매했다. 1979년 앨범 《인트 투 더 뮤직》 발표 이후에는 재즈와 뉴에이지 요소를 도입한 명상적인 스타일의 앨범을 다수 발표했다.
5.1. 《Astral Weeks》(1968)
1967년 방 레코드에서 발매된 싱글 브라운 아이드 걸은 빌보드 10위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프로듀서 버트 번즈는 모리슨의 의향을 무시하고 솔로 앨범 블로잉 유어 마인드를 발매했고, 같은 해 말 번즈가 사망하면서 모리슨은 방 레코드를 떠났다.
1968년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로 이적 후 첫 앨범 《애스트럴 위크스》를 발매했다. 발매 당시에는 1만 5천 장 정도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후에 팝 음악사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평가받았으며, 2001년에는 미국 내 판매량이 50만 장을 돌파했다.
5.2. 《Moondance》(1970)
Moondance영어』는 1970년에 발매된 밴 모리슨의 세 번째 솔로 앨범이자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 이적 후 두 번째 앨범이다. 이 앨범은 모리슨의 첫 밀리언 셀러가 되었으며, Billboard 200에서 29위를 기록했다.
이 앨범은 이전 앨범인 『애스트럴 위크스』보다 낙천적이고 쾌활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며, "Moondance", "Into the Mystic", "Come Running" 등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Moondance』는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에서 65위에 오르는 등 여러 매체에서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5.3. 《His Band and the Street Choir》(1970)
《His Band and the Street Choir》(히즈 밴드 앤 더 스트리트 콰이어)는 1970년 11월에 발표되었다. 이 앨범은 문댄스보다 더 자유롭고 편안한 사운드를 담고 있으며, "Domino"가 히트하여 빌보드 핫 100에서 9위를 기록했다.
5.4. 《Tupelo Honey》(1971)
1971년 10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녹음한 《튜펠로 허니》를 발표했다(빌보드 27위). 이 음반은 R&B, 재즈, 포크 음악, 브리티시 트래드, 켈트 음악 등의 요소가 짙은 음악성이 특징이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5.5. 《Saint Dominic's Preview》(1972)
Saint Dominic's Preview영어는 이전 스타일에서 벗어나 대담하고 명상적인 측면을 강조한 음반이다. 이 앨범에서 재키 윌슨의 곡을 커버한 〈Jackie Wilson Said (I'm in Heaven When You Smile)〉와 〈Redwood Tree〉가 히트했다.
5.6. 《Hard Nose the Highway》(1973)
Hard Nose the Highway영어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으며,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이 앨범에는 〈Warm Love〉가 수록되어 있다.
5.8. 활동 중단 및 복귀 (1974-1977)
1973년 벨파스트로 돌아간 모리슨은 이듬해 1974년에 앨범 《비든 프리즈》를 발매한 후 활동을 중단했다. 1977년 복귀작 《안식으로의 여행》을 발매했다.
5.9. 《Wavelength》(1978)
《Wavelength영어》는 1978년에 발매된 밴 모리슨의 열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이 앨범은 당시 그의 경력에서 가장 빠르게 판매된 앨범으로, 골드 인증을 받았다. 타이틀곡은 신시사이저를 사용하여 밴 모리슨의 이전 앨범들과는 다른 사운드를 보여주었으며, 싱글 차트에서 42위를 기록했다.
5.10. 《Into the Music》(1979)
《Into the Music》은 1979년에 발매된 앨범으로, 음악의 치유력을 암시하며 종교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앨범에는 〈Bright Side of the Road〉가 수록되어 있으며, 재즈와 뉴에이지 요소를 도입한 명상적인 스타일의 앨범이다.
6. 1980년대 (1980-1989)
1980년대에 밴 모리슨은 재즈와 뉴에이지 요소를 도입한 명상적인 스타일의 앨범을 다수 발표했다. 1988년에는 더 치프턴스와 함께 아일랜드 전통 음악 앨범 《Irish Heartbeat》를 발표하여 영국 앨범 차트에서 18위를 기록했다. 1989년 앨범 《아발론 선셋》에는 클리프 리처드와 함께 부른 히트곡 "Whenever God Shines His Light"와, 로드 스튜어트가 커버하여 히트한 〈하브 아이 톨드 유 레이틀리〉가 수록되어 있다. 밴 모리슨은 1995년 더 치프턴스와 함께 이 곡을 다시 불러 그래미상 최우수 팝 협업 보컬상을 수상했다.
6.1. 《Common One》(1980)
1980년에 발매된 《Common One》은 논쟁적인 앨범으로,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앨범에는 15분 30초 길이의 곡 〈Summertime in England〉가 수록되어 있다. 이후 비평가들은 이 앨범을 재평가하였다.
6.2. 《Beautiful Vision》(1982)
Beautiful Vision영어은 1982년에 발매된 밴 모리슨의 열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이 앨범은 모리슨이 그의 북아일랜드 뿌리의 음악으로 돌아간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앨범 수록곡 중 하나인 "Cleaning Windows"는 벨파스트에서 보낸 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인기를 얻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연주곡 "Scandinavia"는 그래미상 최우수 록 연주 부문 후보에 올랐다.
6.3. 《Inarticulate Speech of the Heart》(1983)
Inarticulate Speech of the Heart영어는 신시사이저와 이언 파이프, 플루트가 사용되었으며, 대부분의 곡이 연주곡이었다. 이 앨범은 영성과 믿음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사이언톨로지의 창시자인 L. 론 허버드에게 감사를 표했다.
6.4. 《A Sense of Wonder》(1985)
A Sense of Wonder영어는 영적인 주제를 다루었으며, 아르튀르 랭보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었다.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영화 《Lamb》의 음악 작곡에 사용되었다.
6.5. 《No Guru, No Method, No Teacher》(1986)
No Guru, No Method, No Teacher영어는 1986년에 발매된 밴 모리슨의 열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이 앨범은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앨범 제목은 언론이 모리슨에게 영적 스승(구루)의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시도에 대한 반박으로, 모리슨은 "나는 영적 스승이 없고, 특정한 수련 방법도 없으며, 가르침을 줄 스승도 없다"는 의미를 담았다.
6.6. 《Poetic Champions Compose》(1987)
1987년에 발매된 《Poetic Champions Compose》는 호평을 받았으며, 로맨틱 발라드 〈Someone Like You〉가 수록되어 있다.
6.7. 《Irish Heartbeat》(1988)
1988년 더 치프턴스와 협업하여 아일랜드 민요 모음집인 《Irish Heartbeat》를 발표했으며, 영국 앨범 차트에서 18위를 기록했다.
6.8. 《Avalon Sunset》(1989)
1989년 앨범 《아발론 선셋》에는 클리프 리처드와 듀엣으로 부른 "Whenever God Shines His Light"가 수록되어 히트했으며, 〈하브 아이 톨드 유 레이틀리〉는 로드 스튜어트가 커버하여 1993년에 히트했다. 1995년에는 더 치프턴스와의 협연으로 이 곡을 셀프 커버하여 그래미상 최우수 팝 협업 보컬상을 수상했다.
7. 1990년대 (1990-1999)
모리슨은 1990년대에 들어서도 활발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1993년 1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나,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았고 더 밴드의 로비 로버트슨이 대리 수상했다. 1999년 9월에는 아일랜드 음악 명예의 전당에 처음으로 헌액되었으며, 밥 겔도프가 상을 수여했다. 2003년 6월에는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레이 찰스와 "Crazy Love"를 함께 공연한 후 상을 받았다.
1994년 2월에는 브릿 어워드에서 '영국 음악에 대한 뛰어난 공헌' 상을 수상했다. 전 베이루트 인질 존 맥카시는 "Wonderful Remark"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상을 수여했다.
이 시기 모리슨은 히트 싱글 모음집 《The Best of Van Morrison》(1990), 라이브 앨범 《A Night in San Francisco》(1994), 정규 앨범 《Days Like This영어》(1995), 《The Healing Game》(1997), 미발표곡 모음집 《The Philosopher's Stone영어》(1998), 《Back on Top》(1999) 등을 발매했다.
또한, 더 치프턴스와 앨범 《아이리시 하트비트》를 작업했고, 존 리 후커의 앨범 《돈 룩 백》(1997년)을 프로듀스하는 등 다양한 협업을 진행했다.
7.1. 《The Best of Van Morrison》(1990)
《The Best of Van Morrison》(1990)은 밴 모리슨의 히트 싱글을 중심으로 편집된 앨범으로, 여러 차례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7.2. 《A Night in San Francisco》(1994)
《A Night in San Francisco》는 1994년에 발매된 라이브 앨범으로, 2CD로 구성되어 있다. 이 앨범은 영국 차트에서 8위를 기록하며 호평을 받았다.
7.3. 《Days Like This》(1995)
Days Like This영어는 1995년에 발매된 밴 모리슨의 음반이다. 이 음반은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지만, 평론가들로부터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7.4. 사이드 프로젝트
1988년 앨범 《아이리시 하트비트》에서 더 치프턴스와 함께 공연했다. 1995년에는 더 치프턴스와 협연하여 아발론 선셋의 수록곡 하브 아이 톨드 유 레이틀리를 셀프 커버로 녹음해 그래미상 최우수 팝 협업 보컬상을 수상했다. 또한, 존 리 후커의 앨범 《돈 룩 백》(1997년)을 프로듀스하는 등, 폭넓은 장르의 뮤지션과 함께 공연했다.
2018년 4월에는 와의 콜라보레이션 앨범 《유어 드라이빙 미 크레이지》를 발표했으며, 같은 해 12월 발매 앨범 《더 프로핏 스피크스》에서도 드프란체스코가 이끄는 쿼텟을 기용했다.
7.5. 《The Healing Game》(1997)
《The Healing Game》은 엇갈린 평가를 받았지만, 음악적 복잡성은 칭찬받았다.
7.6. 《The Philosopher's Stone》(1998)
The Philosopher's Stone영어은 미발표 스튜디오 녹음으로 구성된 2CD 세트이다.
7.7. 《Back on Top》(1999)
1999년에 발매된 《Back on Top》은 미국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8. 2000년대 이후 (2000-현재)
2006년에는 커버곡을 중심으로 한 커리어 첫 본격적인 컨트리 음악 앨범 『페이 더 데빌』을 발표했다。2008년 앨범 『킵 잇 심플』은 솔로 데뷔 후 41년 만에 처음으로 빌보드 10위권 안에 든 앨범이 되었다。 2018년 4월에는 조이 드프란체스코와의 콜라보레이션 앨범 『유어 드라이빙 미 크레이지』를 발표했으며, 같은 해 12월 발매 앨범 『더 프로핏 스피크스』에서도 드프란체스코가 이끄는 쿼텟을 기용했다。
2020년 코로나19 범유행에 대한 락다운 정책을 비판하며, 락다운으로 인해 곤궁에 처한 뮤지션을 지원하기 위한 자선 싱글 「Born to Be Free」(9월 25일), 「As I Walked Out」(10월 9일), 「No More Lockdown」(10월 23일)을 발표했다。 북아일랜드 보건부 장관 로빈 스완은 『롤링 스톤』지와의 인터뷰에서 모리슨의 행보를 "문제 제기 수준을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2020년 12월 4일에는 에릭 클랩튼이 참여한 반 락다운 자선 싱글 4탄 「Stand and Deliver」가 릴리스되었다。
8.1. 2000년대
모리슨은 자신의 앨범 제작을 관리하기 위해 Exile Productions Ltd를 설립했다. 2000년에는 린다 게일 루이스와 협업한 앨범 《You Win Again》을 발매했다. 2002년에는 앨범 《Down the Road》를 발매했는데, 이 앨범에는 그의 아버지를 헌정하는 곡이 수록되어 있다. 2005년 발매된 《Magic Time》은 Billboard 200에서 25위를 기록했다. 2006년에는 커리어 첫 본격적인 컨트리 음악 앨범인 《Pay the Devil》을 발표했다. 같은 해, 《Live at Montreux 1980/1974》를 발매했는데, 이는 그의 첫 상업 DVD였다. 2007년에는 《The Best of Van Morrison Volume 3》와 《Still on Top – The Greatest Hits》를 발매했다. 2008년 앨범 《Keep It Simple》은 솔로 데뷔 후 41년 만에 처음으로 빌보드 10위권 안에 든 앨범이 되었다. 2009년에는 《Astral Weeks Live at the Hollywood Bowl》을 발매했다.
8.2. 2010년대
2012년, 모리슨은 앨범 《Born to Sing: No Plan B》를 발매했다. 2014년에는 가사 모음집 《Lit Up Inside》를 출판했다. 2015년에는 레거시 레코딩스와 계약하여 33개 앨범을 디지털로 발매했다. 같은 해, 《Duets: Re-working the Catalogue》를 발매하고, 70세 생일을 기념하여 벨파스트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2016년에는 앨범 《Keep Me Singing》을 발매했다. 2017년에는 《Roll with the Punches》와 《Versatile》을 발매했다. 2018년 4월에는 조이 드프란체스코와의 협업 앨범 《유어 드라이빙 미 크레이지》를 발표했으며, 같은 해 12월 발매 앨범 《더 프로핏 스피크스》에서도 드프란체스코가 이끄는 쿼텟을 기용했다. 2019년에는 《Three Chords & the Truth》를 발매했고, 2020년에는 가사 선집 2권 《Keep 'Er Lit》를 출판했다.
8.3.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2020-2022)
모리슨은 2020년 코로나19 범유행에 대한 락다운 정책을 비판하며, 락다운으로 인해 곤궁에 처한 뮤지션을 지원하기 위한 자선 싱글로 9월 25일에 「Born to Be Free」, 10월 9일에 「As I Walked Out」, 10월 23일에 「No More Lockdown」과 같은 프로테스트 송을 발표했다。 북아일랜드의 보건부 장관 로빈 스완은, 일련의 곡 릴리스에 앞서, 『롤링 스톤』지와의 인터뷰에서 "문제 제기 수준을 넘어섰다. 그는 '파시스트에 의한 괴롭힘'에 대해 노래하고, 정부가 사람들을 속여 노예로 만들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해 12월 4일에는 반 락다운 자선 싱글 4탄 「Stand and Deliver」(작사・작곡은 모리슨, 퍼포머는 취지에 찬동한 에릭 클랩튼)가 릴리스되었다。
8.4. 2023년 이후
2020년, 모리슨은 코로나19 범유행에 대한 락다운 정책을 비판하며, 락다운으로 인해 곤궁에 처한 뮤지션을 지원하기 위한 자선 싱글로 9월 25일에 「Born to Be Free」, 10월 9일에 「As I Walked Out」, 10월 23일에 「No More Lockdown」과 같은 프로테스트 송을 발표했다. 북아일랜드의 보건부 장관 로빈 스완은, 일련의 곡 릴리스에 앞서, 『롤링 스톤』지와의 인터뷰에서 "문제 제기 수준을 넘어섰다. 그는 '파시스트에 의한 괴롭힘'에 대해 노래하고, 정부가 사람들을 속여 노예로 만들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해 12월 4일에는 반 락다운 자선 싱글 4탄 「Stand and Deliver」(작사・작곡은 모리슨, 퍼포머는 취지에 찬동한 에릭 클랩튼)가 릴리스되었다.
9. 라이브 공연
1973년 벨파스트로 돌아간 모리슨은 이듬해 1974년에 앨범 《비든 프리즈》를 발매한 후 활동을 중단했다. 1976년 11월 24일, 샌프란시스코의 윈터랜드에서 열린 더 밴드의 해산 콘서트 "라스트 왈츠"에 참가했다. 1977년 복귀작 《안식으로의 여행》을 발매했다.
10. 협업
1988년 앨범 《아이리시 하트비트》에서 더 치프턴스와 함께 공연했다. 1995년에는 더 치프턴스와의 협연으로 〈하브 아이 톨드 유 레이틀리〉를 녹음해 그래미상 최우수 팝 협업 보컬상을 수상했다. 또한, 존 리 후커의 앨범 《돈 룩 백》(1997년)을 프로듀싱하는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과 함께 공연했다.
2018년 4월에는 조이 드프란체스코와의 협업 앨범 《유어 드라이빙 미 크레이지》를 발표했으며, 같은 해 12월 발매 앨범 《더 프로핏 스피크스》에서도 드프란체스코가 이끄는 쿼텟을 기용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범유행에 대한 락다운 정책을 비판하며, 에릭 클랩튼과 함께 락다운으로 인해 곤궁에 처한 뮤지션을 지원하기 위한 자선 싱글 〈Stand and Deliver〉를 발표하였다.
다음은 밴 모리슨과 협업한 아티스트 및 앨범 목록이다.
| 아티스트 | 앨범명 | 발매 년도 |
|---|---|---|
| 버디 가이 | Born to Play Guitar | 2015년 |
| B.B. 킹 | Deuces Wild | 1997년 |
| B.B. King & Friends: 80 | 2005년 | |
| 더 치프턴스 | Irish Heartbeat | 1988년 |
| The Long Black Veil | 1995년 | |
| 레이 찰스 | Genius Loves Company | 2004년 |
| 마크 노플러 | Sailing to Philadelphia | 2000년 |
| 더 밴드 | Cahoots | 1971년 |
| 라스트 왈츠 | 1978년 | |
| 조지 페임 | Cool Cat Blues | 1991년 |
| 존 리 후커 | Never Get Out Of These Blues Alive | 1972년 |
| Born in Mississippi, Raised Up in Tennessee | 1973년 | |
| 미스터 럭키 | 1991년 | |
| Chill Out | 1995년 | |
| 돈트 룩 백 | 1997년 | |
| 빌 와이먼 | 스톤 얼론 | 1976년 |
| 조이 드프란체스코 | 유어 드라이빙 미 크레이지 | 2018년 |
11. 예술성
밴 모리슨은 포크 음악, 블루스, 소울 음악, 재즈, 가스펠 음악, 얼스터 스코틀랜드인의 켈트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음악 스타일을 구축했다. 그의 으르렁거리는 보컬은 로큰롤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영향력 있는 보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평론가 그레일 마커스는 "백인이 밴 모리슨처럼 노래하는 사람은 없다"고 평했다.
모리슨은 벨파스트에서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노래들을 작곡했으며, 그의 노래 제목 중 일부는 어린 시절의 익숙한 장소에서 따왔다. 그의 음악과 가사에는 음악의 치유력과 신비주의적 기독교가 결합된 주제가 자주 등장한다. 또한, 그의 가사는 윌리엄 블레이크, W. B. 예이츠,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윌리엄 워즈워스와 같은 시인들의 영향을 받았다.
모리슨의 공연 스타일은 즉흥성과 초월적인 분위기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과 밴드 사이의 즉흥적인 역동성을 구축하고, 음악과 보컬을 통해 최면적이고 트랜스 같은 상태를 만들어낸다. 모리슨은 어떤 노래도 두 번 똑같이 연주하지 않으며, 미리 정해진 세트 리스트 없이 공연한다.
그의 음악은 블루스와 리듬 앤 블루스를 기반으로 팝 음악, 재즈, 록, 포크 음악, 컨트리 음악, 가스펠 음악, 아일랜드 포크 음악, 아일랜드 전통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한다. 모리슨은 자신을 소울 싱어라고 정의하며, 그의 음악은 "켈트 소울" 또는 "켈리도니아 소울"로 불리기도 한다.
11.1. 보컬
포크 음악, 블루스, 소울 음악, 재즈, 가스펠 음악, 얼스터 스코틀랜드인 켈트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영향을 받은 밴 모리슨 특유의 으르렁거리는 보컬은, 많은 록 역사가들에게 로큰롤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영향력 있는 보컬리스트 중 한 명으로 널리 평가받게 했다. 평론가 그레일 마커스는 "백인이 밴 모리슨처럼 노래하는 사람은 없다"고 언급했다. 마커스는 2010년 자신의 저서에서 "물리적인 사실로서, 모리슨은 엘비스 프레슬리 이후 팝 음악이 만들어낸 가장 풍부하고 표현력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엘비스에게는 항상 거부되었던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2008년, 모리슨이 40년 된 앨범 Astral Weeks의 라이브 공연을 시작하면서 1968년의 젊은 목소리와 비교가 이루어졌다. 그의 초기 목소리는 "단단하고 부드럽고, 간청하고 애절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40년 후, 음역과 성량의 차이는 눈에 띄었지만 평론가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모리슨의 목소리는 그의 몸을 채울 정도로 확장되었다; 그의 젊은 시절의 푸른 눈의 소울 보컬보다 더 깊고 큰 포효—발음은 더 부드럽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으로 강력하다." 모리슨은 또한 노래에 대한 접근 방식의 변화에 대해 "이제는 목소리를 망치지 않기 위해 [횡격막]에서 더 낮게 노래한다. 전에는 목구멍의 위쪽 부분에서 노래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대를 망치는 경향이 있다. 배에서 더 낮게 노래하면 공명이 멀리 전달될 수 있다. 나는 마이크에서 약 1.22m 떨어져서도 매우 공명하게 들릴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11.2. 작곡 및 작사
밴 모리슨은 경력 동안 수백 곡의 노래를 작곡했으며, 그중에는 벨파스트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한가로운 날들에 대한 향수를 반영하는 주제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의 노래 제목 중 일부는 "사이프러스 애비뉴"(근처 거리), "오렌지필드"(그가 다녔던 남자 학교), "온 힌드퍼드 스트리트"(그가 태어난 곳)와 같이 어린 시절의 익숙한 장소에서 유래되었다. 또한 모리슨의 최고의 러브송에는 "Into the Mystic"과 "So Quiet in Here"에서 볼 수 있듯이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의 조화가 자주 나타난다.
1979년 앨범 Into the Music과 수록곡 "And the Healing Has Begun"부터, 그의 음악과 가사에는 음악의 치유력에 대한 그의 믿음과 일종의 신비주의 기독교가 결합된 주제가 자주 등장했다. 이 주제는 그의 작품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그의 가사는 선구적인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와 W. B. 예이츠,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윌리엄 워즈워스와 같은 다른 이들의 영향을 보여준다. 전기 작가 브라이언 힌턴은 "블레이크부터 셰이머스 히니에 이르기까지 모든 훌륭한 시인처럼, 그는 단어를 마법의 기원으로 되돌린다... 실제로 모리슨은 시를 가장 초기의 뿌리, 즉 호머나 베오울프와 같은 고대 영어 서사시, 시편, 민요에서처럼 단어와 음악이 결합하여 새로운 현실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되돌리고 있다"고 믿는다. 또 다른 전기 작가 존 콜리스는 모리슨의 재즈 창법과 구절 반복이 그의 가사가 시로 간주되는 것을 방해한다고 믿으며 "그는 주문처럼 구절을 반복하거나 스캣을 부를 가능성이 더 높다. 단어는 종종 산문적일 수 있으며, 시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모리슨은 그의 작곡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다른 곳에서 글을 쓴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불리는지, 이름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냥 오면 조각하지만, 조각하는 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11.3. 공연 스타일
평론가 그레일 마커스는 모리슨의 작품이 진정 독특한 폭과 복잡성을 가져, 다른 사람의 작품과 비교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모리슨은 록앤롤 역사상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수, 꼼짝 못하게 할 수 없고, 일축할 수 없으며, 누구의 기대에도 부합할 수 없는 가수이다." 제이 콕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만 자신을 확장한다. 록의 위대한 인물들 중에서, 심지어 그들과 함께 있어도 그는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하나인데, 모리슨은 단호하게 내향적이다. 그리고 독특하다. 그는 자유롭게 음악적 경계를 넘나들지만 – R&B, 켈트 멜로디, 재즈, 레이브 업 록, 찬송가, 지저분한 블루스 – 그는 항상 같은 이상한 곳, 즉 자신의 파장에 있다."
그의 영적인 주제를 가진 음악 스타일은 1968년 애스트럴 위크스(Astral Weeks)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표현을 얻었고, 2009년에 애스트럴 위크스 곡들을 라이브로 연주하면서 "자신의 초월 기술의 달인"으로 언급되었다. 이 음악적 예술 형식은 일반적인 구조나 대칭에 근거하지 않는 의식의 흐름 작곡과 감정적인 가창을 기반으로 했다. 그의 라이브 공연은 자신과 밴드 사이의 즉흥적인 역동성을 구축하는 데 의존하며, 손짓으로 통제하고 때로는 선택된 밴드 멤버의 즉흥적인 솔로를 신호한다. 음악과 보컬은 순간적인 창의성에 의존하는 최면적이고 트랜스 같은 상태로 고조된다. LA 위클리(LA Weekly)의 스콧 파운다스는 "그는 주어진 곡의 명백한 경계를 초월하고, 완전한 형태의 자유를 달성하며, 자신, 그의 밴드, 그리고 청중을 목적지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여정으로 데려가려 한다"고 썼다. 그레일 마커스는 모리슨의 음악에서 그가 이러한 초월의 상태에 도달하는 순간을 연구하는 데 전념한 책을 썼다. 그는 "모리슨 음악에서 평범한 한계로부터의 탈출감, 즉 폭력적인 초월을 향한 도달 또는 성취는 주저, 단어나 구절의 반복, 일시 정지, 다른 음악가의 음악적 변화가 모리슨에 의해 밴드 리더로서 바뀌거나 그가 가수로 붙잡아 자체적으로 사건이 되는 소리로 변하는 방식에서 비롯될 수 있다. 이러한 순간에 자아는 뒤로 남겨지고, 그 "야라"(yarragh)는 능동적인 에이전트가 된다: 자신의 마음, 자신의 몸을 가진 음악적인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한 서평가는 이를 "노래와 가수가 둘이 아닌 하나가 되는 이 초월적인 음악의 순간, 서로에게 의존하거나 서로 분리되지 않고 숨결과 생명처럼 서로 융합된 것..."으로 묘사했다.
모리슨은 어떤 노래도 두 번 똑같이 연주하지 않는 재즈 즉흥 연주 기법을 믿는다고 말했으며, 애스트럴 위크스 곡들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독특한 연주를 제외하고는 미리 정해진 세트 리스트로 콘서트를 공연하지 않는다. 그는 좋은 음향을 갖춘 소규모 공연장이나 심포니 홀에서 공연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2008년에 연예 뉴스에 보도된 그의 알코올 음료 금지령은 공연 중에 청중들이 자리를 뜨는 방해적이고 산만한 움직임을 방지하기 위한 시도였다. 2009년 인터뷰에서 모리슨은 "나는 의식적으로 청취자를 어디든 데려가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내 음악으로 나 자신을 거기에 데려가려고 한다. 만약 청취자가 내가 말하거나 노래하는 것의 파장을 잡거나, 어떤 구절이 그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이해한다면, 작가로서 나는 하루의 일을 한 셈이다."라고 말했다.
11.4. 장르
밴 모리슨의 음악은 블루스와 리듬 앤 블루스 가수로서 벨파스트에서 활동하던 초기 시절부터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 수년에 걸쳐 그는 다양한 영향과 관심사에서 파생된 여러 장르의 노래를 녹음해 왔다. 블루스와 R&B 외에도, 그의 작곡과 커버 곡은 팝 음악, 재즈, 록, 포크 음악, 컨트리 음악, 가스펠 음악, 아일랜드 포크 음악, 아일랜드 전통 음악, 빅 밴드, 스키플, 로큰롤, 뉴에이지, 클래식, 때로는 스포큰 워드 ("코니 아일랜드") 및 기악곡을 넘나들었다. 모리슨은 자신을 소울 싱어라고 정의한다.
모리슨의 음악은 음악 저널리스트 앨런 라이트에 의해 "켈트 소울"로 묘사되었고, 전기 작가 브라이언 힌턴은 이를 "켈리도니아 소울"이라는 새로운 연금술이라고 불렀다. 또 다른 전기 작가 리치 요크는 모리슨이 "그의 영혼에 켈리도니아의 정신이 있으며 그의 음악이 그것을 반영한다"고 믿는다고 인용했다. 요크에 따르면, 모리슨은 스코틀랜드를 처음 방문했을 때 (그의 벨파스트 조상은 얼스터 스코틀랜드인 후손) "특정한 소울의 질"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으며, 소울 음악과 켈리도니아 사이에 어떤 연결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요크는 모리슨이 "그의 노래 중 일부가 백파이프 연주자와 옛 아일랜드 및 스코틀랜드 민속 음악에서 사용되는 것과 동일한 스케일(7음 제외)인 독특한 장조 음계에 적합하다는 것을 음악 작곡을 시작한 지 여러 해 후에 발견했다"고 말했다.
12. 영향력
밴 모리슨의 영향력은 여러 주요 아티스트들의 음악에서 나타난다. 《롤링 스톤 록 앤 롤 백과사전》(The Rolling Stone Encyclopedia of Rock and Roll, Simon & Schuster, 2001)은 "록 가수/송라이터들 사이에서 그의 영향력은 살아있는 아티스트 중 밥 딜런(Bob Dylan)을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그의 거친 문학적 표현과 걸걸하고 열정적인 감성 보컬은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부터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에 이르는 후대 아이콘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U2(U2)를 포함한 수많은 최정상급 연주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보노(Bono)는 "나는 밴 모리슨과 같은 음악가에게 경외심을 느낀다"라고 회상했다.
밴 모리슨은 존 멜렌캠프(John Mellencamp), 짐 모리슨(Jim Morrison), 조안 아마트레이딩(Joan Armatrading), 닉 케이브(Nick Cave),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톰 페티(Tom Petty), 리키 리 존스(Rickie Lee Jones), 엘튼 존(Elton John), 그레이엄 파커(Graham Parker), 시네이드 오코너(Sinéad O'Connor), 씬 리지(Thin Lizzy)의 필 라이넛(Phil Lynott), 밥 시거(Bob Seger), 덱시스 미드나잇 러너스(Dexys Midnight Runners)의 케빈 로울랜드(Kevin Rowland),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닉 드레이크(Nick Drake)를 비롯한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카운팅 크로우즈(Counting Crows)의 《Mr Jones》의 "sha-la-la" 시퀀스는 모리슨에 대한 오마주이다.
모리슨의 영향력은 컨트리 음악 장르에도 미쳐, 할 케첨(Hal Ketchum)은 "그(밴 모리슨)는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라고 인정했다. 도어즈(Doors)의 레이 만자렉(Ray Manzarek)은 밴 모리슨을 "우리 [도어즈]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라고 묘사했다.
모리슨은 데미안 라이스, 레이 라몬테인, 제임스 모리슨, 파올로 누티니, 에릭 린델, 데이비드 그레이, 에드 시런 등 젊은 세대의 싱어송라이터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 프레임스의 글렌 한사드는 밴 모리슨을 밥 딜런, 레너드 코헨과 함께 자신의 성스러운 삼위일체의 일부로 꼽으며 콘서트에서 그의 노래를 커버한다. 더 월플라워스는 "Into the Mystic"을 커버했다. 콜린 제임스 또한 콘서트에서 이 곡을 자주 커버한다. 로버트 패틴슨은 밴 모리슨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13. 수상 및 유산
모리슨은 그래미 상 2회 수상(총 5회 후보), 로큰롤 명예의 전당 (1993년),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2003년), 아일랜드 음악 명예의 전당 (1999년)에 헌액되었다. 브릿 어워드 (1994년)를 수상했다. 대영 제국 훈장 4등급(OBE, 1996년),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오피시에 (1996년)를 수여받았다. 얼스터 대학교 (1992)와 벨파스트 퀸스 대학교 (2001년)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에는 벨파스트 자유 시민 훈장을 받았고, 2015년에는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다.
1995년 아이보 노벨로 상 평생 공로상, 2004년 BMI 아이콘상, 2007년 오스카 와일드: 영화 속 아일랜드 문학 존경 상, 2010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헌액, 2014년 GQ 올해의 남성 시상식 레전드 상, 2017년 아메리카나 음악 협회 작곡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모리슨의 노래 "Brown Eyed Girl", "Madame George", "Moondance"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 선정한 로큰롤을 형성한 500곡에 선정되었다. 타임 선정 역대 최고의 100개 앨범에 Astral Weeks와 Moondance가 포함되었고, WXPN 역대 최고의 아티스트 885인 중 13위, VH1 록앤롤 100대 아티스트 25위, 롤링 스톤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명의 아티스트 42위, Paste 가장 위대한 생존 작곡가 100인 20위, Q 100대 보컬 22위, 롤링 스톤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대 보컬 24위에 선정되었다.
14. 사생활
밴 모리슨은 1964년까지 벨파스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다가 록 그룹 뎀과 함께 런던으로 이주했다. 3년 후, 뱅 레코드와 계약을 맺은 후 뉴욕으로 이주했다. 비자 문제로 추방 위기에 놓였지만, 이전 관계에서 아들 피터를 둔 미국인 여자친구 자넷(플래닛) 릭스비와 결혼하기로 동의하면서 미국에 머물 수 있었다. 결혼 후, 모리슨과 그의 아내는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지역 클럽에서 공연하는 일을 찾았다. 1970년에 딸 샤나 모리슨을 낳았는데, 그녀는 싱어송라이터가 되었다. 모리슨과 그의 가족은 보스턴, 뉴욕주 우드스톡, 캘리포니아주 페어팩스 등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그의 아내는 앨범 터펄로 허니의 표지에 등장했다. 그들은 1973년에 이혼했다.
1970년대 후반, 모리슨은 영국으로 돌아와 처음에는 런던의 노팅힐 게이트 지역에 정착했다. 이후 배스로 이사했고, 1994년 1월에 더 울 홀 스튜디오를 구입했다. 그는 또한 더블린 근처 아일랜드 해안 마을 달키에 집을 가지고 있는데, 모리슨이 차도를 넓히려다 이웃 주민들과 갈등을 빚었다. 2001년, 두 이웃이 모리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초기 판결은 모리슨에게 불리하게 나왔다. 모리슨은 이 문제를 아일랜드 대법원까지 끌고 갔지만, 항소는 기각되었다. 2010년에는 모리슨의 당시 아내 미셸이 다른 이웃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그 이웃이 모리슨의 집을 내려다보는 발코니를 지어 사생활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은 2015년에 취하되었다.
1992년 여름, 모리슨은 아일랜드 사교계 명사 미셸 로카를 만났고, 그들은 더블린 가십 컬럼에 자주 등장했는데, 이는 은둔형인 모리슨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로카는 그의 앨범 데이즈 라이크 디스 커버에도 등장했다. 부부는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다. 딸은 2006년 2월, 아들은 2007년 8월에 태어났다. 2018년 3월, 그들은 이혼했다.
2009년 12월, 모리슨의 투어 매니저 지지 리는 아들을 낳았고, 모리슨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리는 모리슨의 공식 웹사이트에 아이의 출생을 발표했지만, 모리슨은 친자 관계를 부인했다. 리의 아들은 2011년 1월에 당뇨병 합병증으로 사망했고, 리는 그 직후 2011년 10월에 인후암으로 사망했다.
모리슨의 아버지는 1988년에, 어머니 바이올렛은 2016년에 사망했다. 모리슨과 그의 가족은 동 벨파스트에 위치한 아일랜드 교회의 성공회 교구인 세인트 도나드 교구 교회와 연관되어 있다. 분쟁 기간 동안 이 지역은 "호전적인 개신교"로 묘사되었지만, 모리슨의 부모는 항상 자유 사상가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공개적으로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선언했고 그의 어머니는 한때 여호와의 증인과 연관되어 있었다. 반 모리슨은 잠시 사이언톨로지와 연관되었고, 그의 노래 중 하나에서 창시자인 L. 론 허바드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종교에 대해 "10피트짜리 장대라도 만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거리를 두었다. 그는 영성과 종교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영성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종교는 조직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5. 음반 목록
밴 모리슨은 블루 아이드 소울, 록, 재즈, 포크, 켈트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폭넓은 음반 목록을 가지고 있다.
| 음반 종류 | 음반 제목 | 발매 연도 |
|---|---|---|
| 스튜디오 앨범 | ||
| 라이브 앨범 | ||
| 컴필레이션 앨범 | ||
1967년 첫 솔로 앨범 Blowin' Your Mind! 발매 이후, 1968년 명반으로 평가받는 Astral Weeks를 발표했다. 1970년대 Moondance, Tupelo Honey 등 히트 앨범으로 상업적, 비평적 성공을 거두었다. 1988년 더 치프턴스와 협업 앨범 Irish Heartbeat를 발매, 1995년 그래미상 최우수 팝 협업 보컬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 이후 2006년 첫 컨트리 음악 앨범 Pay the Devil 발매, 2008년 Keep It Simple 빌보드 10위권 진입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8년 조이 드프란체스코와 협업 앨범 You're Driving Me Crazy를 발표했다.
15.1. 스튜디오 앨범
* Blowin' Your Mind! (1967)
* Astral Weeks (1968)
* Moondance (1970)
* His Band and the Street Choir (1970)
* Tupelo Honey (1971)
* Saint Dominic's Preview (1972)
* Hard Nose the Highway (1973)
* Veedon Fleece (1974)
* A Period of Transition (1977)
* Wavelength (1978)
* Into the Music (1979)
* Common One (1980)
* Beautiful Vision (1982)
* Inarticulate Speech of the Heart (1983)
* A Sense of Wonder (1985)
* No Guru, No Method, No Teacher (1986)
* Poetic Champions Compose (1987)
* Irish Heartbeat (더 치프턴스와 협업) (1988)
* Avalon Sunset (1989)
* Enlightenment (1990)
* Hymns to the Silence (1991)
* Too Long in Exile (1993)
* Days Like This (1995)
* How Long Has This Been Going On (1995)
* Tell Me Something: The Songs of Mose Allison (1996)
* The Healing Game (1997)
* Back on Top (1999)
* You Win Again (2000)
* Down the Road (2002)
* What's Wrong with This Picture? (2003)
* Magic Time (2005)
* Pay the Devil (2006)
* Keep It Simple (2008)
* Born to Sing: No Plan B (2012)
* Duets: Re-working the Catalogue (2015)
* Keep Me Singing (2016)
* Roll with the Punches (2017)
* Versatile (2017)
* You're Driving Me Crazy (2018)
* The Prophet Speaks (2018)
* Three Chords & the Truth (2019)
* Latest Record Project, Volume 1 (2021)
* What's It Gonna Take? (2022)
* Moving On Skiffle (2023)
* Beyond Words: Instrumental (2023)
* Accentuate the Positive (2023)
* New Arrangements and Duets (2024)
15.2. 라이브 앨범
* 영혼의 여정 (1974년)
* 벨파스트 그랜드 오페라 하우스 라이브 (1984년)
*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 (1994년)
* 스키플 세션즈 (2000년)
* Astral Weeks Live at the Hollywood Bowl (2009년)
* 오렌지필드 라이브: 정당하게 행하고 두려워하지 말라 (2024년)
15.3. 컴필레이션 앨범
* The Best of Van Morrison (1990년)
* The Best of Van Morrison Volume Two (1993년)
* The Philosopher's Stone (1998년) ※ 아웃테이크 모음
* Van Morrison at the Movies – Soundtrack Hits (2007년)
* The Best of Van Morrison Volume 3 (2007년)
* Still on Top – The Greatest Hits (2007년)
* The Authorized Bang Collection (2017년) ※ 1967년 녹음을 수록한 3CD
16. 서훈
* 1996년 대영 제국 훈장 4등급(OBE)
* 1996년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오피시에
* 2015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 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