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트 F4U 콜세어
1. 개요
보우트 F4U 콜세어는 1938년 미국 해군의 고속 함상 전투기 개발 요구에 따라 찬스 보우트 사가 개발한 전투기이다. 2,000마력급 엔진을 탑재하고 역갈매기 날개를 특징으로 하며,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에서 미국, 영국, 뉴질랜드 등 여러 국가에서 운용되었다. 초기에는 함상 운용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설계 변경과 기술적 문제 해결을 통해 성능을 향상시켰다. F4U 콜세어는 뛰어난 기동성과 내구성을 바탕으로 공중전과 지상 공격 임무에서 활약했으며, 다양한 파생형이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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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종 | 함상 전투폭격기 |
|---|---|
| 제작 국가 | 미국 |
| 제작사 | 챈스 보우트 |
| 하청 제작사 | 굿이어 브루스터 |
| 최초 비행 | 1940년 5월 29일 |
| 도입 | 1942년 12월 28일 |
| 퇴역 | 1953년 (미국) 1979년 (온두라스) |
| 주요 운용국 | 미국 해군 |
| 기타 운용국 | 미국 해병대 영국 해군 뉴질랜드 공군 |
| 생산 기간 | 1942년–1953년 |
| 생산 대수 | 12,571대 이상 |
| 파생형 | 굿이어 F2G 콜세어 |
| 다른 이름 | F3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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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 | 렉스 베이젤 |
|---|---|
| 첫 비행 (XF4U-1) | 1940년 5월 29일 |
| 첫 비행 (F4U-1) | 1942년 6월 25일 |
| 퇴역 시기 | 1953년 (미국 해군) 1979년 (온두라스) |
| 운용 국가 | 미국 (해군, 해병대) 영국 (해군 항공대) 뉴질랜드 (공군) 아르헨티나 (해군 항공대) 프랑스 (해군 항공대) 엘살바도르 (공군) 온두라스 (공군)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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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량 | 12,571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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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미국 군용기 -
그러먼 F6F 헬캣
그러먼 F6F 헬캣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 해군의 주력 함상 전투기로, 견고한 구조와 강력한 엔진을 바탕으로 뛰어난 운동 성능과 방어력을 갖춰 일본 항공 전력 격멸에 기여하고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으며, 높은 격추 대 손실 비율을 기록하며 태평양 전쟁에서 맹활약, 수많은 에이스를 배출했다. -
제2차 세계 대전의 미국 군용기 -
그러먼 F4F 와일드캣
그러먼 F4F 와일드캣은 미국 해군이 개발한 함상 전투기로, 튼튼한 기체 구조와 12.7mm 기관총 6정을 장착했으며, 태평양 전쟁 초기와 영국 해군에서 활약했다. -
1940년 첫 비행한 항공기 -
호커 타이푼
호커 타이푼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 공군에서 운용된 단발 전투기 겸 전투 폭격기로, 호커 허리케인의 후속 기종으로 개발되어 네이피어 세이버 엔진을 탑재, 초기 결함에도 불구하고 지상 공격기로 활약하며 연합군을 지원했다. -
1940년 첫 비행한 항공기 -
하인켈 He 280
하인켈 He 280은 하인켈사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제트 전투기 중 하나로, 쌍발 터보제트 엔진과 사출 좌석을 갖추었으나 엔진 문제와 개발 중단으로 인해 총 9대의 시제기만 제작되었다. -
국기 -
중구 (부산광역시)
부산광역시 중구는 부산의 중심지로, 과거 왜관이 위치했으며 부산부청과 부산시청이 있었고 현재는 교통의 요지이자 다양한 관광 명소를 보유하고 있다. -
국기 -
아시아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인구가 많은 대륙으로, 유라시아 동쪽 4/5를 차지하며, 4대 문명 중 3개의 발원지이고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발전했으며 경제 성장과 분쟁을 동시에 겪고 있다.
2. 개발
1938년 2월, 미국 해군 항공국은 쌍발 및 단발 엔진 전투기에 대한 제안 요청을 공지했다. 단발 엔진 전투기에 대해서는 최고 속도와 110kmh를 넘지 않는 최대 실속 속도를 가지면서 1600km의 작전 반경을 충족하는 전투기를 제안하도록 하였다. 또한, 4정의 기관총 또는 3개의 추가 무장을 요구하였고, 날개에 대공 폭탄을 장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1938년 6월, 미국 해군은 보우트의 시제 디자인 V-166B에 대한 공급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시제품은 완성 후 XF4U-1로 명명되었으며, 렉스 베이셀이 커세어 설계팀을 이끌었다. 1939년 2월에는 목업(Mockup, 실물 크기 모형)이 제작되었고, 시제품에는 1850hp을 내는 프랫 앤 휘트니 R-2800 더블 와스프 엔진의 시제품 XR-2800-4가 탑재되었다. R-2800 더블 와스프 엔진은 18개의 실린더가 두 겹의 원형을 이루고 있는 성형 엔진이었다. 커세어는 더블 와스프 엔진을 탑재하기 시작한 초기 전투기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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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시제품은 당시 미국 해군 역사상 가장 큰 엔진과 그에 따른 가장 큰 프로펠러, 주익을 지닌 전투기였다. XF4U-1의 첫 비행은 1940년 9월 29일에 이루어졌으며, 조종은 리먼 A. 불러드 주니어가 맡았다. 시험 비행은 무난하게 진행되었으나, 상승 시 플러터 현상이 발생하여 서둘러 착륙해야 했다.
1940년 10월 1일, XF4U-1은 스트랫퍼드에서 하트퍼드까지 평균 시속 652kmh로 비행하여 역대 최고 속력의 단발 엔진 비행기가 되었다. 상승률 시험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였으나, 다이브 테스트에서는 시속 890kmh를 기록하던 중 엔진이 오버랩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유럽 전선의 보고에 따라, 미국 해군은 1940년 11월에 더 강력한 무장을 장착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커세어는 주익 양쪽에 각각 3정의 .50 캘리버 기관총을 장착하여 화력을 크게 강화했다.
미국 해군의 XF4U-1 초도 시험 구매는 1941년 2월에 승인되었다. 이후 미국 해군은 1941년 3월 3일 취의서를 발급하고, 4월 2일 보우트의 생산 제안서를 접수하여 F4U-1 584대의 생산 계약을 체결하였다. 새로운 전투기에는 1920년대에 제작되었던 해군 복엽기 보우트 O2U 커세어의 이름을 계승하여 '커세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첫 양산은 1942년 6월 24일에 완료되었다.
커세어는 항공모함 함상 착륙 시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더욱 견고하고 무겁게 만들어야 했다. 초기에는 함상 운용을 위한 기술적 문제, 특히 시야 불량과 착륙 시 불안정 등의 문제가 있었으나, 영국 해군이 개발한 착륙 방식 도입 등으로 해결되었다.
2.1. 엔진
F4U 커세어는 당시 사용 가능한 가장 큰 엔진인 2000마력의 18기통 프랫 & 휘트니 R-2800 더블 와스프 성형 엔진을 장착했다. 이 엔진은 18개의 실린더가 두 겹의 원형을 이루고 있는 형태로, 최대 출력은 2000 마력이었으며 2단 2속 슈퍼차저와 밴딕스 스툼버그 카뷰레이터를 통해 중력이나 관성, 냉각 현상 등에 영향받지 않고 높은 고도에서도 강력한 출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커세어는 더블 와스프 방식의 엔진을 탑재하기 시작한 초기 전투기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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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의 출력을 얻기 위해 약 3.96m의 비교적 큰 해밀턴 스탠다드 하이드로매틱 3엽 프로펠러가 사용되었다. F4U의 디자이너는 주익을 역 갈매기형으로 꺽이도록 설계하였는데, 이는 대형 프로펠러를 장착한 상태에서 랜딩기어의 강도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2.2. 착륙 기어와 주익
F4U 콜세어의 설계자들은 접는 날개를 수용하기 위해 주 착륙 장치를 뒤로 접는 방식을 고려했다. 그러나 선택된 날개 익현 때문에 대형 프로펠러와 지면 사이의 간격을 확보하려면 착륙 장치 지주를 충분히 길게 만들어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갈매기 날개를 채택하여 지주 길이를 줄였다. 역갈매기 날개는 날개 안쪽 부분의 반각을 통해 날개 뿌리 페어링 없이도 날개와 동체가 항력을 최소화하는 최적의 각도로 만나도록 했다. 다만, 굽은 날개는 더 무겁고 제작하기 어려워 이러한 장점을 상쇄했다.
F4U는 착륙 장치가 완전히 밀폐된 휠웰 안으로 접혀 들어가는 최초의 미국 해군 항공기였다. 착륙 장치 완충 지주는 접힐 때 90° 회전하여 바퀴가 지주 하단 위에 놓이도록 했다. 각 휠웰은 한 쌍의 직사각형 덮개로 덮여 유선형 날개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회전식 후방 수납 착륙 장치 설계는 커티스 P-40 워호크와 그루먼 F6F 헬캣에도 적용되었다. 오일 쿨러는 과급기 공기 흡입구와 함께 날개 안쪽의 심하게 굽은 부분에 장착되었으며, 돌출된 스쿱 대신 날개 앞전의 개구부를 사용했다.
2.3. 설계 변경
F4U 콜세어는 기술 발전과 기존 해군 항공기보다 빠른 최고 속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전에 투입되기 전 여러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특히 항공모함 적합성이 주요 개발 문제였다.
유럽 전역에서 엔진과 연동된 .30 구경 기관총과 주익 양쪽에 장착된 .50 구경 기관총의 성능이 불충분하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에 미국 해군은 1940년 11월 더 강력한 무장을 요구했다. 그 결과 커세어는 주익 양쪽에 각각 3정의 .50 캘리버 기관총을 장착하여 화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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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F4U-1은 역갈매기 날개 형태 때문에 승강타 조작에 지장을 받아 개발된 스핀에서 회복하기 어려웠다. 또한, 콜세어의 왼쪽 날개가 실속될 수 있고, 느린 항공모함 착륙 시 경고 없이 빠르게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게다가 스로틀을 갑자기 전진시키면(예: 착륙 중단 시) 왼쪽 날개가 실속하여 급격한 출력 증가로 전투기가 뒤집힐 수 있었다. 이러한 잠재적 문제는 나중에 총구 포트 바로 바깥쪽 오른쪽 날개 앞전에 작은 실속 스트립을 추가하여 해결되었다. 이로써 오른쪽 날개가 왼쪽 날개와 동시에 실속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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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항공모함 시험 중 다른 문제도 발생했다. 후방에 장착된 조종석과 긴 기수(nose)의 조합으로 인한 시야 문제는 갓 훈련받은 조종사에게 착륙을 위험하게 만들었다. 착륙 접근 중 유압으로 작동되는 카울 플랩이 열리면서 뿜어져 나온 오일이 앞 유리에 튀어 시야를 심각하게 감소시켰고, 착륙 장치 올레오 스트럿은 착륙 시 반동 특성이 좋지 않아 항공기가 항공모함 갑판에서 튀어 오르게 했다. 첫 번째 문제는 앞 유리의 상단 카울 플랩을 영구적으로 고정시킨 후, 고정 패널로 교체하여 해결되었다.
2.4. 기술적 문제
F4U 콜세어는 개발 당시 최고 속도가 기존 해군 항공기보다 빨랐음에도 불구하고, 실전에 투입되기까지 여러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특히 항공모함 적합성이 주요 문제였는데, 주 착륙 장치, 테일 휠, 테일 후크 등에 대한 개선이 필요했다.
초기 F4U-1은 역갈매기 날개 형태가 승강타 조작에 영향을 주어, 개발된 스핀에서 회복하기 어려웠다. 또한, 콜세어의 왼쪽 날개가 실속될 수 있고, 느린 항공모함 착륙 시 경고 없이 빠르게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점도 발견되었다. 게다가, 스로틀을 갑자기 전진시키면 (예: 착륙 중단 시) 왼쪽 날개가 실속하여 급격하게 기체가 뒤집힐 수 있었다. 이러한 치명적인 특성은 나중에 오른쪽 날개 앞전에 약 15.24cm 길이의 작은 실속 스트립을 추가하여 오른쪽 날개도 동시에 실속하도록 함으로써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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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항공모함 시험에서는 다른 문제들도 나타났다. 후방에 장착된 조종석과 긴 기수(노즈) 때문에 시야 확보가 어려워 착륙을 위험하게 만들었다. 착륙 접근 중, 유압으로 작동되는 카울 플랩이 열리면서 뿜어져 나온 오일이 앞 유리에 튀어 시야를 가렸고, 착륙 장치 올레오 스트럿의 반동 특성이 좋지 않아 항공기가 항공모함 갑판에서 튀어 오르기도 했다. 앞 유리의 상단 카울 플랩은 영구적으로 고정시킨 후, 고정 패널로 교체하여 오일 문제를 해결했다. 착륙 장치 문제는 "블리드 밸브"를 통해 유압 압력이 점차적으로 방출되도록 하여 해결했다.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기 전까지 콜세어는 항공모함 사용에 부적합한 것으로 여겨졌다.
한편, 더 다루기 쉽고 단순하게 제작된 F6F 헬캣이 항공모함 기반 전투기로 실전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해군은 한 종류의 항공모함 전투기를 표준화하길 원했고, 헬캣은 콜세어보다 느렸지만, 경험이 부족한 조종사가 항공모함에 착륙시키기 더 쉽다고 판단하여 헬캣을 선택했다. 이로 인해 콜세어는 미 해병대에 인도되어 육상 기지에서 운용되었다. 콜세어의 미국 항공모함 탑재는 1944년 말까지 지연되었으며, 그 무렵 콜세어의 긴 기수와 관련된 마지막 항공모함 착륙 문제는 영국 해군이 개발한 착륙 기술을 통해 해결되었다.
2.5. 성능
F4U 콜세어는 개발 당시 가장 빠른 전투기 중 하나였다. 그루먼 F6F 헬캣보다 훨씬 빨랐으며, 리퍼블릭 P-47 썬더볼트보다 13mph 느릴 뿐이었다. 세 기종 모두 R-2800 엔진을 사용했지만, P-47은 인터쿨러가 장착된 터보과급기의 도움을 받아 약 9150.10m에서 최고 속도를 냈고, F4U-1은 기계식 과급 엔진을 사용하여 약 6065.52m에서 최대 속도에 도달했다.
F4U는 속도와 기동성이 뛰어난 전투기였다. 속도에서 열세인 적에게는 기동성으로, 기동성에서 열세인 적에게는 속도로 맞서 싸울 수 있었다. 특히 에일러론과 승강타의 부스트 탭으로 인해, 고속과 순간 기동성이 우수했다. 1943년 5월 21일, 플로리다주의 엘긴 AAFB에서 육군 조종사들은 F4U-1을 2만 피트 이하에서는 어떤 육군 전투기도 상대가 될 수 없다고 평가했다. 2만 피트 이상에서는 P-47과 P-51이 우세했다.
F4U는 튼튼한 기골과 뛰어난 내탄성을 가졌다. 자전의 공격으로 탑재 탄약이 폭발하여 주익의 3할이 날아가거나, 40mm 포에 의해 주익 중앙 구획이 거의 손실된 상태에서도 생환한 사례가 있었다.
3. 제2차 세계 대전
미국 해군은 1942년 7월 31일 F4U-1 초도기를 인수했으나, 초기형은 함상 운용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초기형의 버드케이지(Birdcage, 새장) 스타일 캐노피는 시야가 불량했고, 착함 시 스톨 특성과 테일 섹션이 튀어 오르는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조종사들은 F4U를 경멸하는 별명으로 불렀다. 1942년 9월 25일 호위항공모함 USS 생거먼에서 시행된 함상 운용 실험 이후 항모 운용 부적합 판정이 내려져, 대부분의 F4U-1은 미국 해병대로 인계되었다. 첫 실전 배치는 1942년 말이었다.
1943년 2월, 미 해병대는 솔로몬 제도 과달카날섬에 F4U를 투입하였다. 2월 12일, VMF-124 비행대 12대의 F4U-1 커세어가 핸더슨 비행장(오늘날 호니아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조종사들의 평균 비행시간은 20시간에 불과했다. 1943년 2월 14일, VMF-124 중대는 P-40, P-38과 함께 B-24 리버레이터 호위 임무를 수행했다. B-24는 파푸아뉴기니 부건빌섬의 일본군 카힐리 비행장을 폭격했다. 이 작전에서 미군은 P-38 4기, P-40 2기, 커세어 2기를 잃었고, B-24 역시 2기가 파괴되었다. 일본 제로센은 4기 정도만 격추되어 미군 측 손실이 컸다. 이 교전은 '세인트 발렌타인의 학살'로 기록되었고, 솔로몬 전역 주간 폭격이 당분간 중지되었다. 그러나 이후 미 해병대는 커세어 운용 방법을 개선하여 4월 이호 작전에 맞서 활약하고, 5월에는 첫 커세어 에이스를 배출하며 일본 항공 세력을 밀어붙였다.
해병 비행대들은 점차 커세어로 기종 전환을 했고, 1943년 중후반부터 개선된 F4U-1A가 배치되면서 솔로몬 전역 일본군 항공 세력은 빠르게 위축되었다. 커세어 조종사들은 '솔로몬 사다리'를 올라가는 과정에서 일본군 라바울 항공대를 소모전으로 고사시키는 데 기여했다. 전후 교차 검증 결과, 라바울 전역에서 가장 활약한 전투기는 커세어였으며, 라바울 기지 지휘관 및 조종사들도 커세어를 가장 우수한 기체로 꼽았다.
1944년 초, 야간전투기형 F4U-2가 USS 엔터프라이즈와 USS 인트레피드에서 운용되어 야간함대방공 영역을 개척했다. 해병 비행대는 커세어 폭장을 향상시키기 위해 야전 개수를 했고, 찰스 린드버그에 의해 약 1814.37kg 폭장 능력을 완성했다. 1944년 5월 16일 항모 운용 테스트에서 F6F 헬켓보다 우수한 기체로 인정받으며, 커세어의 본격적인 항모 배치가 시작되었다.
이오지마 전투나 오키나와 전투에서 커세어는 지상군 근접 항공 지원과 가미카제 및 호위기 상대 함대 방공 임무를 수행했다. 일본 본토 공격 시에는 343 항공대에 기습을 허용하여 피해를 입었으나, 통상 교전에서는 우세했다. 미군 통계로는 F6F 헬켓이 더 나은 전과를 거둔 것으로 기록되었으나, 현대 교차 검증 결과 당시 커세어 비행대 보고서에 Ki-44, Ki-61, A6M 등으로 분류된 항공기 대부분이 Ki-84와 N1K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F4U-1D는 다양한 지상 공격 무장으로 뛰어난 지상 지원 능력을 선보였다. F4U-4는 Ki-84와의 교전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보였으나, 배치가 늦어 활약할 기회가 적었다. F4U-4는 2차 대전 투입 미 전투기 중 전반적인 고도에서 가장 빨랐다.
커세어는 포케볼프 Fw 190와 비교되기도 했다. 1944년 초 비교 테스트에서 F4U-1A는 저고도에서 Fw 190보다 빨랐으나, 고고도에서는 약간 느렸다. 상승력은 저속에서 우수, 고속에서 열세였으며, 기동성으로는 압도했다.
2차 대전 동안 미 해군/해병대 커세어 출격은 F4U와 FG 합계 64,051 소티였고, 이 중 함상 작전은 9,581기(15%)였다. 격추 적기 2,140대, 피격 189기로 격추율은 약 11.3:1이다. 투하 폭탄은 총 14,171톤으로, 2차 대전 미 전투기 투하 폭탄의 70%였다.
3.1. 미국
미국 해군은 1942년 7월 31일 F4U-1 초도기를 인수하였다. 그러나 초기형은 함상 운용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캐노피는 시야가 불량했고, 착함 시 스톨 특성과 테일 섹션이 튀어 오르는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조종사들은 F4U를 경멸하는 별명으로 불렀다. 1942년 9월 25일 호위항공모함 USS 생거먼에서의 실험 이후 항모 운용 부적합 판정이 내려져, 대부분의 F4U-1은 미국 해병대로 인계되었다. 첫 실전 배치는 1942년 말이었다.
1943년 2월, 미국 해병대는 솔로몬 제도 과달카날섬에 F4U를 투입했다. 2월 12일, 12기의 F4U-1이 핸더슨 비행장(오늘날 호니아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조종사들의 평균 비행시간은 20시간에 불과했다. 첫 교전은 1943년 2월 14일, VMF-124 중대가 B-24 리버레이터 호위 임무를 수행하면서 벌어졌다. 이 작전에서 미군은 큰 손실을 입었고, 일본의 제로센은 4기 정도만 격추되었다. '세인트 발렌타인의 학살'로 기록된 이 교전 결과, 솔로몬 전역의 주간 폭격이 당분간 중지되었다. 그러나 미국 해병대는 빠르게 커세어 운용 방법을 개선하여, 4월 이호 작전에 맞서 활약하고 5월에는 첫 커세어 에이스를 배출했다. 첫 에이스인 케네스 A. 월시 소위는 2차 대전 기간 동안 21대의 적기를 격추했으며, 그 중 17기가 제로센이었다. 월시는 커세어의 빠른 속도와 상승 능력을 활용하여 1대1 격추전을 벌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해병 비행대들은 점차 커세어로 기종 전환을 하였고, 1943년 중후반부터는 문제점들이 개선된 F4U-1A가 배치되면서 솔로몬 전역의 일본군 항공 세력은 빠르게 위축되었다. 커세어 조종사들은 소모전으로 일본군 라바울 항공대를 고사시키는 데 기여했다. 전후 교차 검증에 의하면 라바울 전역에서 가장 활약한 전투기는 커세어였으며, 라바울 기지의 지휘관 및 조종사들도 커세어를 가장 우수한 기체로 꼽았다. VMF-214 '검은양' 비행대나 VF-17 '졸리 로저스' 등의 에이스 비행대는 높은 전투력으로 널리 알려졌다. VF-17은 USS 벙커힐에 착함하여 보급 후 일본군을 성공적으로 요격함으로서 실전에서 처음으로 함상작전을 성공시켜, 커세어의 함상 운용 능력을 증명하였다.
1944년 초에는 야간전투기형인 F4U-2가 USS 엔터프라이즈와 USS 인트레피드에서 정식으로 운용되어 야간함대방공의 영역을 개척하였다. 한편 커세어의 잠재력에 주목한 해병 비행대는 커세어의 폭장을 향상시키기 위해 야전 개수를 거쳤으며, 찰스 린드버그에 의해 약 1814.37kg의 폭장 능력을 완성하게 된다. 1944년 5월 16일 항모 운용 테스트에서는 운용 적합 판정을 받고, F6F 헬켓보다 우수한 기체로 인정받으면서 커세어의 본격적인 항모 배치가 시작된다. 1944년 말부터 일부 해병 비행대가 항모에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커세어로 기종 전환을 하는 해군 비행대들이 나타났다.
이오지마 전투나 오키나와 전투 등에서 커세어는 지상군에 근접 항공 지원을 제공하고, 가미카제 공격에 대한 함대 방공 임무를 수행하였다.
일본 본토 공격 시에는 일본군 343 항공대에게 기습을 허용하여 피해를 입기도 했으나, 통상 교전에서는 우세했다. 미군 통계로는 전쟁 말에 등장한 N1K나 Ki-84 등의 고성능 적기를 상대로는 F6F 헬켓이 더 나은 전과를 거둔 것으로 기록되었으나, 현대의 교차 검증 결과 당시 본토에서 작전한 커세어 비행대의 교전 보고서에 Ki-44나 Ki-61, A6M 등으로 분류된 항공기들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Ki-84와 N1K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VF-17 출신 VF-84 소속 에이스 파일럿이었던 로저 핸드릭은 F4U-1D를 Ki-84나 N1K보다 우수한 성능을 가진 것으로 언급하였다.
F4U-1D는 우수한 공중전 성능과 더불어 다양한 지상 공격 무장으로 뛰어난 지상 지원 능력을 선보였다. F4U-4는 Ki-84와의 교전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주었으나, 배치가 늦어 활약할 기회가 적었다. F4U-4는 2차 세계대전에서 실전에 투입된 미국 전투기 중 전반적인 고도에서 가장 빠른 기종이었다.
커세어는 미국이 노획한 포케볼프 Fw 190와 비교되기도 했다. 1944년 초 비교 테스트에서 F4U-1A는 저고도에서는 Fw 190보다 훨씬 빨랐으나, 고고도에서는 약간 더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상승력은 저속에서는 우수했으나 고속에서는 열세였으며, 기동성으로는 압도했다.
2차 세계 대전 동안 미국 해군과 해병대의 커세어 출격은 F4U와 FG를 합하여 누계 64,051 소티였고, 이 가운데 함상 작전은 9,581기(15%)에 불과했다. 격추한 적기는 2,140대, 피격된 수는 189기로 격추율은 약 11.3:1이다. 투하한 폭탄은 총 14,171톤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 전투기에서 투하된 폭탄의 70%가 커세어에 의해 투하되었다.
3.2. 영국 해군
1943년 11월부터 커세어를 도입하여 함상 전투기로 운용했다. 영국 해군은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 격납고 크기에 맞추기 위해 주익 끝을 잘라낸 모델을 사용했다. 영국 해군의 조종사들은 착륙시 갑판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좌현 방향으로 돌아서 접근하면서 하반각을 이루는 날개뿌리 너머로 활주로를 확인하는 곡선 접근 방식을 사용했고, 이는 미국 해군의 함상 커세어 운용에도 전파되었다.
영국 해군은 총 2,012기의 커세어를 공급받았다. 세부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이 가운데 실제 전투에 투입된 기종은 MK II와 MK IV 뿐이었다.
1945년 7월에서 8월사이, 영국 함대 항공단 소속 1834, 1836, 1841, 1842 비행 중대는 일본 본토 공격에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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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뉴질랜드 공군
뉴질랜드 공군은 태평양 전쟁 초기 커티스 P-40 워호크를 운용하였다. 뉴질랜드 공군은 미군보다 좋은 실적을 냈으며, 이에 미국 정부는 항공모함이 없던 뉴질랜드의 육상 비행장에 배치할 커세어를 제공하였다. 뉴질랜드 공군은 미국으로부터 총 424대의 커세어를 인수하여 새로운 주력 전투기로 사용하였다. 처음 인도받은 F4U-1A는 공식적인 전시 디자인은 아니었고, 이후 F4U-1B가 추가로 배치되었다.
3.4. 노획 및 운용 (독일, 일본)
1944년 7월 18일, 영국 해군 1841 비행 중대 소속 F4U-1A 커세어(JT404)가 독일 전함 티르피츠를 공격하는 마스코트 작전의 후속 임무 중 기체 결함으로 노르웨이 보되 북쪽 하마뢰이에 불시착했다. 조종사는 포로가 되었고, 기체는 손상 없이 독일군에 노획되었다. 독일군은 조종사에게 날개 접는 방법을 물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이 커세어는 추가 조사를 위해 나르빅으로 옮겨졌고, 레흘린-라르츠 비행장에서 독일 공군이 조사했다. JT404는 전쟁 중 독일군에 노획된 유일한 커세어였다.
1945년, 미국 해군 F4U 커세어 2기가 일본 가스미가우라 비행 학교 인근에서 격추되었다. 일본 항공대는 두 기체의 부품을 조합하여 비행 가능한 한 대를 만들었고, 시험 비행을 실시했다.
4. 한국 전쟁
한국 전쟁에서 커세어는 주로 지상 공격기로 활약했다. F4U-5를 기반으로 개발된 AU-1 커세어는 저공 비행과 대지 공격에 특화된 모델이었다. 엔진은 프랫 앤 휘트니 R-2800-83W를 사용했고, 수동으로 조작되는 슈퍼차저를 장착했다. 한국 전쟁 기간 동안 AU-1, F4U-4B, -4P, -5N, -5NL 기종의 커세어가 사용되었다. F4U 커세어는 전쟁 초기 북한군의 야코블레프 Yak-9와 교전하여 승리했으나, 소련이 미코얀-구레비치 MiG-15를 투입하면서 공중전에서는 열세에 놓였다. 1952년 9월 10일, 미 해병대 제시 G. 폴머 대위가 MiG-15와 교전 중 조종사의 실수로 MiG-15를 격추했으나, 곧 다른 MiG-15의 공격으로 격추되어 탈출 후 가벼운 부상을 입고 구조되었다.
F4U-5N와 -5NL는 야간 작전에 투입되어 기차, 트럭 등 보급로를 공격하고, 더글라스 C-47 스카이트레인 수송기를 호위했다. C-47은 야간 전투에서 적 위치를 표시하는 마그네슘탄 투하 임무를 맡았다. 커세어는 대포, 탱크 등 지상 목표물에 폭탄과 로켓 공격을 가했으며, 대전차 로켓 티니 팀으로 무장했다.
5. 전후 운용
한국 전쟁 동안 콜세어는 주로 근접 지원 임무에 사용되었다. AU-1 콜세어는 F4U-5를 기반으로 개발된 지상 공격기로, 저고도 운용에 적합하도록 프랫 & 휘트니 R-2800-83W 엔진에 2단 자동 과급기 대신 단일 단계의 수동 제어 과급기를 장착했다. 한국 전쟁에는 AU-1, F4U-4B, -4P, -5N, -5NL 버전의 콜세어가 투입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F4U와 소련제 야코블레프 Yak-9 간의 공중전이 벌어졌으나, 미코얀-구레비치 MiG-15의 등장으로 콜세어는 열세에 놓였다. 1952년 9월 10일, 제시 G. 폴마 해병대 대위가 MiG-15를 격추했지만, 폴마 자신도 곧이어 다른 MiG-15에 의해 격추되었다. 폴마는 무사히 탈출했다.
F4U-5N 및 -5NL 야간 전투기 콜세어는 적 보급선(트럭, 열차) 공격 및 야간 폴리카르포프 Po-2 ("Bedcheck Charlies") 요격에 투입되었다. C-47 '조명기'가 조명탄을 투하하여 F4U의 작전을 지원하기도 했다.
가이 보델론 중위는 USS 프린스턴에서 VC-3 Det D(분견대 D) 지휘관으로 복무하며, 한국 전쟁에서 미 해군 유일의 에이스이자 피스톤 엔진 항공기로 적기를 격추한 유일한 미국인 에이스가 되었다. "럭키 피에르"라는 별명을 가진 보델론은 1952년 6월 29일과 7월 16/17일 사이에 라보킨 La-9 또는 La-11 3대와 야코블레프 Yak-18 2대를 격추했다. 해군과 해병대의 콜세어는 총 12대의 적기를 격추했다.
콜세어는 캐넌, 네이팜탄, 각종 폭탄 및 비유도 로켓으로 지상 공격을 수행했다. 5인치 HVAR 로켓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소련제 장갑에 대한 관통력 부족으로 약 16.51cm 성형 작약 탄두를 사용하는 대전차 항공기 로켓(ATAR)이 개발되었다. 약 27.94cm 타이니 팀 로켓도 사용되었다.
토마스 J. 허드너 주니어 중위는 USS 레이테에서 F4U-4를 조종하던 중, 장진호 전투에서 격추된 자신의 편대원을 구출하려다 추락하여 명예 훈장을 받았다. 허드너의 편대원 제시 L. 브라운 소위는 미 해군 최초의 흑인 해군 조종사였으나, 안타깝게도 구조되지 못하고 전사했다.
5.1. 프랑스 해군 항공단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 해군은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항공기를 인수받아 프랑스 해군 항공단을 창설하였다. 프랑스에 인도된 커세어는 F4U-7로 커세어 시리즈의 최종 모델이었다. 시작기인 XF4U-7은 1952년 7월 2일 비행 시험을 거쳤으며 프랑스 해군은 총 94 기의 커세어를 항공단에 배치하였다. 1953년 1월 31일 마지막 출고를 끝으로 커세어는 단종되었다. F4U-7은 애초에 미국 해군이 발주한 것이었으나 미국의 군사 원조 프로그램에 따라 프랑스로 인도되었다. 프랑스 해군은 F4U-7 커세어를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투입하였다. 커세어 조종사들 가운데 최소 25명은 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에서 경험을 쌓은 미국 해병대 출신이었다.
1953년 프랑스 해군 항공단의 14 비행 중대는 튀니지 인근의 카루바 비행기지에서 첫 커세어를 인수받았다. 이들은 1954년 4월 17일 베트남의 다낭에 비행기 없이 도착하였고, 커세어는 다음날 미국의 항공모함 USS 사이판에 실려왔다. 프랑스 항공모함 딕스무드는 남베트남을 돌아 1954년 9월에 도착하였고 커세어를 탑재하였다. 이들은 베트남의 독립을 막고자 벌인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패전 후 미국 해병대 출신의 조종사들은 필리핀의 미국 해군 기지로 돌아갔고, 프랑스 해군 항공단도 커세어로 구성된 15 비행 중대를 남베트남으로 이동시켜 주둔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프랑스의 커세어는 유선 유도 방식의 대전차 미사일인 SS.11을 사용하였다.
1956년 수에즈 사태가 발생하자 프랑스 해군 항공단은 커세어를 운용하는 14 비행 중대와 15 비행 중대를 총사 작전에 투입하였다. 작전에 투입된 커세어는 표식을 위해 노란색과 검은색 띠무늬를 날개와 동체에 그려넣었다. 이들은 알렉산드리아에 정박 중인 이집트 해군의 전함을 폭격할 예정이었으나 미국 해군의 전함이 임무를 먼저 달성하여 실재 폭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1월 3일 16 기의 F4U-7 커세어가 나일강 삼각주에 있던 이집트측 비행장을 공격하였다.
수에즈 사태가 끝난 뒤 프랑스 해군 항공단은 커세어를 항공모함 보아 벨뢰에 탑재하여 알제리 전쟁에 투입하였다. 알제리 전쟁에서 커세어는 1962년까지 운용되었다.
프랑스는 1956년 튀니지의 독립을 인정하였지만 1961년까지 비행 기지를 주둔시켰다. 튀니지는 비행 기지의 철수를 요청하였으나 프랑스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1961년 7월 비행장을 공격하였다. 3일간 치루어진 전투에서 프랑스 공병대는 12 비행 중대와 17 비행 중대의 커세어로부터 엄호를 받으며 기지 탈환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튀니지군은 비행장을 점령하고 격납고의 커세어들을 파괴하였다.
5.2. 축구 전쟁
1969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사이에서 벌어진 축구 전쟁에서 양측 공군은 모두 커세어를 운용했다. 두 나라는 모두 미국으로부터 커세어를 인도받아 전쟁에 투입하였다.
온두라스 공군의 페르난도 소토 대위는 1969년 7월 17일 엘살바도르 공군의 전투기 세 대를 격추했다. 그가 격추한 전투기는 캐벌리어 무스탕 1기와 FG-1 커세어 2기였다. 이 격추전은 피스톤 엔진을 장착한 전투기 사이에 일어난 마지막 격추전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토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3번의 격추를 기록한 조종사가 되었다. 엘살바도르 공군은 온두라스 측 전투기를 한 대도 격추하지 못했다.
축구 전쟁 발발 당시 엘살바도르는 P-51과 F4U 운용 경험이 있는 여러 미국 조종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밥 러브(한국 전쟁 에이스), 척 라이포드, 벤 홀, 그리고 린 개리슨이 실전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린 개리슨은 1964년 프랑스 MAAG 사무소에서 프랑스 해군에서 퇴역한 F4U-7 133693을 구매했다. 이 항공기는 N693M으로 등록되었으며, 1987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추락 사고로 파괴되었다.
6. 파생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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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콜세어는 보우트사 외에도 브루스터, 굿이어에서 생산되었고, 미국 해군, 미국 해병대, 영국 해군, 프랑스 해군 항공단에서 사용되었다. 전체 제조량은 12,500 기로 16 종의 파생 모델이 있었다.
* F4U-1B: 영국 해군용 커세어의 비공식 명칭.
* F4U-1P: 사진 정찰용으로 소수 제작.
* XF4U-2: 야간 전투용으로 개발, 보조 탱크 2개 장착.
* XF4U-3: 다른 엔진을 장착한 시작기. FG-3 개발에 참조되었으나 양산되지는 않음.
* XF4U-4: 엔진과 환기용 갓을 변경한 시작기.
* F4U-4B: 4문의 AN/M3 캐논으로 무장을 교체한 F4U-4 300대 주문.
* F4U-4E 및 F4U-4N: 제2차 세계 대전 후반 개발된 야간 전투기. 오른쪽 날개 끝에 레이다돔 장착. -4E는 APS-4 수색 레이다, -4N은 APS-6 형식 장착. F4U-1C와 유사한 4문의 20mm M2 캐논으로 재장착된 경우도 있음. 제2차 세계 대전에는 투입되지 않았지만, 한국 전쟁에서 야간 전투기로 널리 사용.
* F4U-4K: 실험용 무선 조종 목표 드론 (1대 제작).
* F4U-4P: F4U-4 기반의 희귀 사진 정찰기.
* XF4U-5: 새로운 엔진 카울링 등 광범위한 변경 적용.
* F4U-5NL: 동계형 버전 (72대 생산, F4U-5N에서 29대 개조, 총 101대). 날개 및 꼬리 앞전에 고무 제빙 부츠 장착.
* F4U-5P: 장거리 사진 정찰 버전 (30대 생산)
* F4U-6: 미 해병대용 지상 공격기. AU-1으로 재지정.
* F4U-7: 프랑스 해군용으로 개발. -43W 엔진이 장착된 AU-1 동체 사용.
* FG-1E: 레이다 장비를 갖춘 굿이어 FG-1.
* FG-1K: 드론으로 사용된 굿이어 FG-1.
* FG-3: FG-1D에서 개조된 터보과급기 버전.
* FG-4: 굿이어 F4U-4. 인도되지 않음.
1956년 10월, 14.F 비행대와 15.F 비행대는 수에즈 운하 점령을 위한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의 머스킷티어 작전에 참여했다. 이들은 노란색과 검은색 식별 줄무늬로 도색되었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이집트 해군 함정 파괴 임무를 맡았으나, 미 해군 함정의 존재로 인해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 11월 3일, 16대의 F4U-7이 삼각주 지역 비행장을 공격했으며, 이 중 콜세어 1대가 대공포화에 격추되었다. 콜세어 2대가 항공모함 착륙 중 손상되었다. 머스킷티어 작전에서 콜세어는 총 25톤의 폭탄, 500발 이상의 로켓, 16,000발의 20mm 탄환을 발사했다.
6.1. 주요 파생 모델 목록
| 형식 | 설명 |
|---|---|
| F4U-1 (Corsair Mk I) | 초기 생산형. "버드케이지"형 캐노피 장착, 조종석 낮음. 6정의 브라우닝 기관총 무장, 폐쇄형 연료 탱크를 조종석 앞으로 이동. |
| F4U-1A (Corsair Mk II) | 2차 대전 중에는 F4U-1으로 불렸으나, 초기 제작과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사후 명명. 말콤 후드 형태의 아크릴 수지 캐노피(프레임 2개)로 시야 개선. |
| F3A-1 (Corsair Mk III) | 브루스터 항공사 제조 F4U-1 모델 (700기 생산). 제조 기술 부족으로 날개 실속 현상 발생, 전선 미투입. |
| FG-1 (-1A & -1D) (Corsair Mk IV) | 굿이어 제조, 보우트 F4U-1과 동일 규격. 전후 4,006기 생산. |
| F4U-1C | 200기 제작. 6정의 12.7mm 브라우닝 기관총 대신 4정의 히스파노-수이차 20mm 기관포 장착. |
| F4U-1D (Corsair Mk II) | 1944년 4월부터 생산. 물 분사기 장착, 엔진 출력 증가. 전폭기로 사용, 로켓탄 장착. |
| F4U-2 | 야간 전투용. 32기 생산, USS 엔터프라이즈, USS 인터레피드 탑재. |
| F4U-4 | 제2차 세계 대전 중 마지막 개발 모델. 1944년 후반부터 미 해군 배치. 2,100마력(1,600kW) 엔진 장착. |
| F4U-5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5년 12월 첫 시험 비행. R-2800-32(E) 엔진, 2,760마력(2,060kW). |
| AU-1 | 미 해병대 지상 공격용. 조종석/연료 탱크 보호 외부 장갑 추가. 1952년 첫 배치, 1957년 퇴역. |
| 슈퍼 커세어 (굿이어 F2G 커세어) | 프랫 앤 휘트니 R-4360 엔진 교체 모델. |
7. 운용국
| 국가 | 운용 기관 | 비고 |
|---|---|---|
| 아르헨티나 | 아르헨티나 해군 해군 항공대 | 1956년부터 1968년까지 ARA Independencia에서 26대의 F4U-5/5N/5NL 콜세어를 운용 |
| 엘살바도르 | 엘살바도르 공군 | 1957년부터 1976년까지 5대의 F4U와 20대의 FG-1D를 운용 |
| 프랑스 | 프랑스 해군 Aéronavale | 1954년부터 1964년까지 69대의 AU-1과 94대의 F4U-7을 운용 |
| 온두라스 | 온두라스 공군 | 1956년부터 1979년까지 9대의 F4U-4와 10대의 F4U-5N/-5NL/-5P를 운용 |
| 뉴질랜드 | 왕립 뉴질랜드 공군 | 1944년부터 1949년까지 368대의 F4U-1과 60대의 FG-1D를 운용 |
| 영국 | 영국 해군 함대 항공대 | 2차 세계대전 중 95대의 콜세어 I (F4U-1), 510대의 콜세어 II (F4U-1A), 430대의 콜세어 III (F3A-1D) 및 977대의 콜세어 IV (FG-1D)를 포함하여 모든 유형의 콜세어 2,012대를 운용 |
| 미국 | 미국 해군, 미국 해병대 |
* 프랑스 해군 소속 비행대:
Flottille 12F프랑스어
Flottille 14F프랑스어
Flottille 15F프랑스어
Flottille 17F
Escadrille 10S
Escadrille 57S
* 왕립 뉴질랜드 공군 소속 비행대:
제14 비행대 RNZAF
제15 비행대 RNZAF
제16 비행대 RNZAF
제17 비행대 RNZAF
제18 비행대 RNZAF
제19 비행대 RNZAF
제20 비행대 RNZAF
제21 비행대 RNZAF
제22 비행대 RNZAF
제23 비행대 RNZAF
제24 비행대 RNZAF
제25 비행대 RNZAF
제26 비행대 RNZAF
* 영국 해군 함대 항공대 소속 비행대:
제700 해군 항공대
제703 해군 항공대
제706 해군 항공대
제715 해군 항공대
제716 해군 항공대
제718 해군 항공대
제719 해군 항공대
제721 해군 항공대
제723 해군 항공대
제731 해군 항공대
제732 해군 항공대
제736 해군 항공대
제738 해군 항공대
제748 해군 항공대
제757 해군 항공대
제759 해군 항공대
제760 해군 항공대
제767 해군 항공대
제768 해군 항공대
제771 해군 항공대
제778 해군 항공대
제787 해군 항공대
제791 해군 항공대
제794 해군 항공대
제797 해군 항공대
제885 해군 항공대
제1830 해군 항공대
제1831 해군 항공대
제1833 해군 항공대
제1834 해군 항공대
제1835 해군 항공대
제1836 해군 항공대
제1837 해군 항공대
제1838 해군 항공대
제1841 해군 항공대
제1842 해군 항공대
제1843 해군 항공대
제1845 해군 항공대
제1846 해군 항공대
제1848 해군 항공대
제1849 해군 항공대
제1850 해군 항공대
제1851 해군 항공대
** 제1852 해군 항공대
8. 현존하는 커세어
미국 연방항공국(FAA)에 따르면, 미국 내에 45기의 F4U 커세어가 개인 소유로 등록되어 있다. 레드불의 비행팀인 플라잉 불스도 F4U-4 커세어(시리얼 넘버 96995)를 보유하고 있다. 이 외에도 과거 운용 국가인 아르헨티나, 뉴질랜드, 영국 등에도 커세어가 남아있다.
9. F4U-4 제원
| 일반 특성 |
|---|
| 성능 |
| 무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