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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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자역학의 역사는 19세기 말 고전 물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20세기 초에 등장한 획기적인 이론이다. 1877년 루트비히 볼츠만은 에너지 준위의 이산성을 제시했고, 1900년 막스 플랑크는 흑체 복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 양자화 개념을 도입했다.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광전 효과를 설명하며 빛의 입자성을 주장했고, 1913년 닐스 보어는 양자화된 전자 궤도를 갖는 원자 모형을 제시했다. 1920년대에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에르빈 슈뢰딩거 등이 현대 양자역학의 기초를 다졌으며, 루이 드 브로이의 물질파 가설, 불확정성 원리, 코펜하겐 해석 등이 발전했다. 이후 양자 전기역학, 양자 색역학 등 장(場)의 양자론이 발전했고, 양자 정보 과학 분야가 등장했다. 양자역학은 원자 물리학, 핵 물리학, 입자 물리학, 양자 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며, 이중 슬릿 실험, 흑체 복사 실험, 광전 효과 실험, 슈테른-게를라흐 실험 등 여러 실험을 통해 이론적 기반이 다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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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아인슈타인 논쟁은 닐스 보어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간의 양자역학 해석에 대한 논쟁으로, 불확정성 원리, 양자 얽힘, 양자역학의 완전성 등을 둘러싸고 벌어졌으며, 아인슈타인의 불완전성 주장과 보어의 상보성 원리 옹호로 이어져 양자역학 발전과 해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양자역학의 역사 | |
---|---|
주요 내용 | |
개요 | 양자역학은 20세기 초반에 등장하여 물리학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이론으로, 고전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원자 및 아원자 수준의 현상을 다룬다. |
초기 발전 | 1900년 막스 플랑크의 흑체 복사 연구에서 양자 개념이 처음 도입되었다.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광전 효과를 설명하며 빛의 입자성 (광양자)을 주장했다. 1913년 닐스 보어는 보어 모형을 통해 원자 내 전자의 에너지 준위가 양자화되어 있음을 제시했다. |
행렬 역학 | |
주요 인물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막스 보른 파스쿠알 요르단 |
설명 | 1925년 하이젠베르크, 보른, 요르단은 행렬 역학을 발표하여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를 확립했다. 행렬 역학은 물리량을 행렬로 표현하고, 행렬 연산을 통해 물리적 현상을 설명한다. |
파동 역학 | |
주요 인물 | 에르빈 슈뢰딩거 |
설명 | 1926년 슈뢰딩거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표하여 양자역학의 또 다른 중요한 기초를 세웠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입자의 파동성을 기술하며, 파동 함수를 통해 입자의 상태를 나타낸다. |
코펜하겐 해석 | |
주요 인물 |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설명 | 코펜하겐 해석은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해석을 강조하며, 측정 행위가 물리적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불확정성 원리: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를 통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밝혔다. |
디랙 방정식 | |
주요 인물 | 폴 디랙 |
설명 | 디랙 방정식은 특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한 방정식으로, 스핀을 가진 입자를 기술한다. 디랙 방정식은 반입자의 존재를 예측했다. |
양자장론 | |
주요 인물 | 파울 디랙 볼프강 파울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줄리언 슈윙거 도모나가 신이치로 리처드 파인만 |
설명 | 양자장론은 양자역학을 장에 적용한 이론으로, 입자를 장의 양자화된 형태로 다룬다. 양자 전기역학, 양자 색역학, 전약력 이론 등이 양자장론의 중요한 분야이다. |
기타 발전 | |
양자 정보 이론 | 양자 정보 이론은 양자역학적 현상을 이용하여 정보를 처리하고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
양자 컴퓨터 | 양자 컴퓨터는 양자역학적 원리를 이용하여 계산을 수행하는 컴퓨터로, 기존 컴퓨터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참고 문헌 | |
서적 | 앨리스 인 원더랜드 거울 나라의 앨리스 |
2. 역사적 배경
1877년, 루트비히 볼츠만은 분자 등의 물리적 계의 에너지 레벨이 이산적이라고 제안하였다. 이는 통계열역학과 통계역학 이론에 기반을 두었으며, 수학적인 증명으로 뒷받침되었다. 이러한 바탕에서 20년 뒤에 막스 플랑크에 의해 양자 이론이 나오게 된다.
1900년,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흑체에서 관측된 주파수가 방출되는 에너지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식을 유도하면서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 법칙은 플랑크의 법칙으로 불리며, 고전적인 극한에서 볼츠만 분포를 포함한다. 플랑크의 법칙[79]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
여기에서:
- ''I''(''ν'',''T'')는 흑체가 온도 ''T''일 때 단위 진동수, 단위 입체각에서 표면에 법선 방향으로 방출되는 단위 면적, 단위 시간당 에너지(또는 일률)이다.
- ''h''는 플랑크 상수이다.
- ''c''는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이다.
- ''k''는 볼츠만 상수이다.
- ''ν'' (뉴)는 전자기 복사의 진동수이다.
- ''T''는 흑체의 온도를 켈빈으로 나타낸 값이다.
더 일찍 등장한 빈 근사는 플랑크의 법칙에서 으로 가정함으로써 유도될 수 있다.
1911년부터 1913년까지 슈테판 프로코피우가 플랑크의 양자 이론을 전자에 적용했고, 1913년 닐스 보어는 전자의 자기 모멘트(마그네톤)를 계산하였다. 이후 중성자와 양성자의 자기 모멘트에 대한 유사한 양자 계산이 가능해졌다.
2. 1. 고전 물리학의 한계
19세기 발견은 빛의 파동 이론, 원자 이론, 열역학 등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몇 가지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나면서 고전 물리학은 한계에 직면했다.- '''빛의 파동성''': 아이작 뉴턴은 빛의 입자설을 주장했지만,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오귀스탱장 프레넬 등이 파동 이론을 발전시켰고, 토머스 영의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빛의 파동 간섭 현상이 발견되면서 파동 이론이 우세해졌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맥스웰 방정식을 통해 빛이 전자기파의 일종임을 밝혀냈다.
- '''원자 이론''': 존 돌턴과 아메데오 아보가드로의 화학 연구는 물질의 원자설을 뒷받침했고,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루트비히 볼츠만 등은 기체 운동론을 확립하여 원자 이론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기체 운동론은 양자역학의 발달로만 해결될 수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 '''통계 열역학''': 루트비히 볼츠만은 1877년 분자와 같은 물리 시스템의 에너지 준위가 불연속적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통계 열역학 및 통계역학 이론에 기원을 두며, 20년 후 막스 플랑크가 제시한 최초의 양자론과 마찬가지로, 수학적 논의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 '''흑체 복사''': 1900년 막스 플랑크는 흑체에서 방출되는 빛의 주파수가 에너지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플랑크의 법칙을 제시하고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개념을 도입했다. 플랑크의 법칙[79]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
:여기서,
:* ''I''(''ν'',''T'')는 흑체가 온도 ''T ''일 때 단위 진동수, 단위 입체각에서 표면에 법선 방향으로 방출되는 단위 면적, 단위 시간당 에너지(또는 일률)이다.
:* ''h'' 는 플랑크 상수이다.
:* ''c'' 는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이다.
:* ''k''는 볼츠만 상수이다.
:* ''ν'' (뉴)는 전자기 복사의 진동수이다.
:* ''T'' 는 흑체의 온도를 켈빈으로 나타낸 값이다.
- '''광전 효과''':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빛이 "에너지 양자"라는 불연속적인 에너지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하여 광전 효과를 설명했다. 이 "에너지 양자"는 후에 광자로 불리게 되었으며, 길버트 루이스에 의해 1926년에 도입되었다.
- '''원자의 안정성''': 1913년 닐스 보어는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선을 설명하기 위해 원자 내 전자의 에너지 준위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개념을 도입했다.
특히 흑체 복사에서 발생하는 자외선 파탄 문제는 고전 물리학의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2. 2. 양자 가설의 등장
루트비히 볼츠만은 1877년에 물리계의 에너지 준위가 이산적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통계역학 이론에 기반한 것으로, 20년 후 막스 플랑크의 양자 이론으로 이어진다.1900년,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흑체 복사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개념을 도입, 플랑크의 법칙을 제시했다. 플랑크의 법칙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79]
:
여기서,
- ''I''(''ν'',''T'')는 흑체가 온도 ''T''일 때 단위 진동수, 단위 입체각에서 표면에 법선 방향으로 방출되는 단위 면적, 단위 시간당 에너지이다.
- ''h''는 플랑크 상수이다.
- ''c''는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이다.
- ''k''는 볼츠만 상수이다.
- ''ν''는 전자기 복사의 진동수이다.
- ''T''는 흑체의 온도를 켈빈으로 나타낸 값이다.
이보다 앞서 나온 빈의 복사 법칙은 플랑크 법칙에서 를 가정하여 유도할 수 있다.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광전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빛이 공간에 국한된 에너지 양자(후에 "광자"로 불림)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했다. 아인슈타인은 이 "에너지 양자" 개념은 빛이 파동으로만 설명될 때 발생하는 자외선 파탄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았다.
2. 3. 초기 양자 이론
19세기 초, 존 돌턴과 아메데오 아보가드로의 화학 연구는 물질의 원자설에 힘을 실어주었고,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루트비히 볼츠만 등은 기체 운동론을 확립했다. 기체 운동론의 성공은 물질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믿음을 주었지만, 양자역학의 발달로만 해결될 수 있는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5]루트비히 볼츠만은 1877년에 분자와 같은 물리 시스템의 에너지 준위가 불연속적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의 이론은 통계 열역학과 통계 역학 이론에 기반을 두었으며, 20년 후 막스 플랑크가 제시한 최초의 양자론과 마찬가지로 수학적 논증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1900년,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흑체에서 관측된 주파수가 방출되는 에너지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식을 유도하면서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생각을 제시했다. 이 법칙은 플랑크의 법칙으로 불리며, 볼츠만 분포를 포함한다. 플랑크의 법칙[79]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
여기에서:
- ''I''(''ν'',''T'')는 흑체가 온도 ''T''일 때 단위 진동수, 단위 입체각에서 표면에 법선 방향으로 방출되는 단위 면적, 단위 시간당 에너지이다.
- ''h''는 플랑크 상수이다.
- ''c''는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이다.
- ''k''는 볼츠만 상수이다.
- ''ν'' (뉴)는 전자기 복사의 진동수이다.
- ''T''는 흑체의 온도를 켈빈으로 나타낸 값이다.
빈 근사는 플랑크의 법칙에서 으로 가정함으로써 유도될 수 있다.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광전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빛이 공간에 국한된 "에너지 양자"로 분할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이 "에너지 양자"는 후에 길버트 루이스에 의해 광자로 불리게 되었다.
1911-1913년에 슈테판 프로코피우에 의해 플랑크의 양자 이론이 전자에 적용되었고, 그 뒤 1913년 닐스 보어는 전자의 자기 모멘트를 계산하였다.
1913년, 닐스 보어는 양자화된 전자 궤도를 포함하는 원자의 새로운 모형을 제안했다. 전자들은 특정 궤도에만 존재할 수 있었고,[18] 원자가 에너지를 방출(또는 흡수)할 때, 전자는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즉시 점프하며 광자의 형태로 방출된 빛을 방출했다.[19] 보어 모형은 수소의 방출 스펙트럼에서 관찰된 스펙트럼 선을 이전의 상수와 관련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궤도가 왜 양자화되어야 하는지, 하나 이상의 전자를 가진 원자에 대한 예측, 일부 스펙트럼 선이 더 밝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보어 모형의 핵심은 방출 스펙트럼의 불연속선이 원자 내 전자의 어떤 속성이 양자화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4. 현대 양자 역학의 발전

1924년 루이 드 브로이는 물질이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는 획기적인 가설을 발표했다.[37][38] 드 브로이는 보어 원자 모형을 확장하여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가 파동과 같은 성질을 갖는다고 생각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허용되는 전자 궤도가 궤도의 원주가 파장의 정수 배가 되는 궤도라고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어떤 값보다 작은 원자핵으로부터의 거리에서는 궤도를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이 최소 가능한 거리를 보어 반지름이라고 했다.[39]
파동처럼 행동하는 물질은 전자에 대해 실험적으로 입증되었는데, 전자빔은 빛의 빔이나 물결과 마찬가지로 회절을 나타낼 수 있었다. 드 브로이가 그의 가설을 발표한 지 3년 후 애버딘 대학교에서 조지 패짓 톰슨과 알렉산더 리드는 얇은 셀룰로이드 필름과 금속 필름을 통해 전자빔을 통과시켜 간섭 패턴을 관찰했고, 벨 연구소에서 클린턴 조셉 데이비슨과 레스터 할버트 거머는 니켈 샘플에서 전자빔을 반사시켜 결정에서 반환되는 파동 모델로 예측된 빔을 관찰했다.[8] 드 브로이는 그의 가설에 대해 192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톰슨과 데이비슨은 그들의 실험 작업으로 1937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드 브로이의 접근 방식에 기초하여, 1925년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막스 보른, 파스쿠알 요르단[41][42]이 행렬 역학을 개발하고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파동 역학과 비상대론적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명하면서 현대 양자 역학이 탄생했다.[43] 슈뢰딩거는 나중에 두 접근 방식이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이젠베르크는 1927년에 초기 버전의 불확정성 원리를 공식화했으며, 사고 실험을 분석하여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하려고 시도했다.[47][48] 1926년 상반기에 드 브로이의 가설을 바탕으로 에르빈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적 파동의 행동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개발했다.[49] 슈뢰딩거의 이름을 딴 수학적 모델인 슈뢰딩거 방정식은 양자역학의 핵심이며, 양자 시스템의 허용된 정지 상태를 정의하고 물리 시스템의 양자 상태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설명한다.[50] 파동 자체는 "파동 함수"라고 알려진 수학적 함수로 설명된다. 슈뢰딩거는 파동 함수가 "측정 결과의 확률을 예측하는 수단"을 제공한다고 말했다.[51]
1926년 5월, 슈뢰딩거는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역학과 자신의 파동 역학이 전자의 속성과 행동에 대해 동일한 예측을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상호 이론의 해석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52][53] 결국 하이젠베르크의 접근 방식이 승리했고, 양자 도약은 확인되었다.[54]

보어, 하이젠베르크 등은 이러한 실험 결과와 수학적 모델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용어는 그들 사이의 차이점을 간과한다.[55][56][57][58][59][60]
1927년경부터 폴 디랙은 전자에 대한 디랙 방정식을 제안하여 특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는 과정을 시작했다. 디랙 방정식은 슈뢰딩거가 얻지 못한 전자의 파동 함수에 대한 상대론적 설명을 달성하고, 전자의 스핀을 예측했으며 디랙이 양전자의 존재를 예측하도록 이끌었다. 그는 또한 브라-켓 표기법을 포함한 연산자 이론의 사용을 개척했다. 같은 시기에 존 폰 노이만은 힐베르트 공간의 선형 연산자 이론으로서 양자역학의 엄밀한 수학적 기초를 정립했다.
3. 주요 개념
양자역학은 1900년대 초, 기존의 고전역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다. 특히 열 복사와 관련된 실험 결과는 당시 물리학자들에게 큰 난제였다.
물체가 뜨거워지면 빛을 내는 현상인 열 복사는 온도가 높아질수록 빨간색에서 노란색, 흰색, 파란색으로 색이 변한다. 이는 빛의 파장이 짧아지기 때문인데, 당시의 레일리-진스 법칙은 낮은 주파수에서는 실험 결과와 잘 맞았지만, 높은 주파수에서는 무한대의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이른바 '자외선 파탄'이라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8]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00년 막스 플랑크는 에너지가 연속적인 값이 아니라, 특정한 값의 정수배로만 존재한다는 '양자 가설'을 제시했다.[9] 이 가설은 실험 결과와 정확하게 일치했으며, 양자역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플랑크는 이 공로로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10]
3. 1. 양자화
루트비히 볼츠만은 1877년에 분자와 같은 물리 시스템의 에너지 준위가 불연속적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는 통계 열역학과 통계 역학 이론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20년 후 막스 플랑크가 제시한 최초의 양자론처럼 수학적 논증으로 뒷받침되었다.[7]1900년 막스 플랑크는 열 복사의 전체 스펙트럼을 설명하는 모델을 제시했다.[9] 그는 열 복사가 일련의 조화 진동자와 평형을 이루는 수학적 모델을 제안하면서, 각 진동자가 임의의 양이 아닌, 특성 주파수에서 정수 단위의 에너지만을 방출한다고 가정했다. 즉, 진동자가 방출하는 에너지가 "양자화"되었다고 보았다. 각 진동자의 에너지 양자는 진동자의 주파수에 비례하며, 이 비례 상수는 현재 플랑크 상수로 알려져 있다.
플랑크의 법칙은 물리학 최초의 양자 이론이었고, 플랑크는 1918년 "에너지 양자의 발견을 통해 물리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다.[10] 그러나 당시 플랑크는 양자화가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 휴리스틱한 수학적 구성물이라고 생각했다.[11]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빛이 유한한 수의 에너지 양자 형태로 발생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14] 아인슈타인은 "빛의 방출 및 변환에 대한 발견적 관점" 논문에서 "빛줄기가 한 지점에서 퍼져 나갈 때 에너지는 연속적으로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특정 지점에 국한된 유한한 수의 "에너지 양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분할 없이 움직이며 전체로서만 흡수되거나 생성될 수 있다"고 기술했다. 이는 20세기 물리학자가 쓴 가장 혁명적인 문장으로 불린다.[15]
주파수 인 빛의 단일 양자 에너지는 주파수에 플랑크 상수 를 곱한 값()이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양자가 자신의 에너지를 단일 전자에 전달하여 최대 의 에너지를 부여한다고 가정했다. 빛의 주파수만이 전자에 부여될 수 있는 최대 에너지를 결정하며, 광방출 세기는 빛의 세기에 비례한다.[14]
아인슈타인은 금속에서 전자를 제거하는 데 필요한 "일함수"()라는 특정 에너지 양이 각 금속마다 다르다고 주장했다.[16] 빛 양자의 에너지가 일함수보다 작으면 전자를 제거할 충분한 에너지를 전달하지 못한다. 문턱 진동수()는 에너지()가 일함수와 같은 빛 양자의 진동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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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가 보다 크면, 에너지 는 전자를 제거하기에 충분하다. 방출된 전자는 최대 운동 에너지()를 갖는다.
에너지 양자로 구성된 빛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설명은 주어진 진동수 의 단일 양자가 불변의 에너지량 를 전달한다는 플랑크의 양자화된 에너지 개념을 확장한 것이다.
3. 2. 파동-입자 이중성
루이 드 브로이는 1924년에 물질이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는 획기적인 가설을 제시했다.[37][38]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광전 효과와 특수 상대성 이론에 기반하여, 드 브로이는 운동하는 물질이 파장 (는 물질의 운동량)를 갖는 파동처럼 행동한다고 제안했다.[37][38] 이 가설은 빛의 파동적 거동이 양자 효과임을 보여주었다.[8]드 브로이는 보어 원자 모형을 확장하여,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가 파동과 같은 성질을 가지며, 정상파를 허용하는 상황에서만 관찰된다고 보았다. 그는 허용되는 전자 궤도가 궤도의 원주가 파장의 정수 배가 되는 궤도라고 제안했다. 이는 원자핵으로부터 특정 거리에서만 보어 궤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39]
파동처럼 행동하는 물질은 전자에 대한 실험으로 처음 입증되었다. 전자빔은 빛이나 물결처럼 회절을 나타낼 수 있었다. 애버딘 대학교의 조지 패짓 톰슨과 알렉산더 리드는 얇은 셀룰로이드 및 금속 필름을 통해 전자빔을 통과시켜 간섭 패턴을 관찰했다.[40] 벨 연구소의 클린턴 조셉 데이비슨과 레스터 할버트 거머는 니켈 결정에서 전자빔을 반사시켜 파동 모델로 예측된 빔을 관찰했다.[8] 드 브로이는 이 가설로 1929년 노벨 물리학상을, 톰슨과 데이비슨은 실험 작업으로 1937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드 브로이의 접근 방식에 기초하여, 1925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막스 보른, 파스쿠알 요르단이[41][42] 행렬 역학을 개발하고, 에르빈 슈뢰딩거가 파동 역학과 비상대론적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명하면서 현대 양자 역학이 탄생했다.[43]
3. 3. 불확정성 원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1927년에 사고 실험을 통해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하려는 시도를 분석하면서 초기 버전의 불확정성 원리를 공식화했다.[47] 그러나 하이젠베르크는 이러한 측정에서 "불확정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수학적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이 정의는 곧 얼 헤세 케너드, 볼프강 파울리, 헤르만 바일에 의해 수행되었다.[47][48] 불확정성 원리는 위치와 운동량, 에너지와 시간처럼 서로 짝을 이루는 물리량들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원리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특성을 나타낸다.3. 4. 파동 함수
루이 드 브로이는 1924년에 물질이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는 획기적인 가설을 발표했다.[37][38] 그는 보어 원자 모형을 확장하여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가 파동과 같은 성질을 갖는다고 보았다. 특히, 전자는 원자핵 주위에 정상파를 허용하는 상황에서만 관찰된다고 하였다. 드 브로이는 허용되는 전자 궤도가 궤도의 원주가 파장의 정수 배가 되는 궤도라고 제안했다. 그의 가설은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의 출발점이 되었다.물질이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전자에 대한 실험으로 처음 입증되었다. 전자빔은 빛의 빔이나 물결과 마찬가지로 회절을 나타낼 수 있다. 애버딘 대학교에서 조지 패짓 톰슨과 알렉산더 리드는 얇은 셀룰로이드 필름과 금속 필름을 통해 전자빔을 통과시켜 예측된 간섭 패턴을 관찰했고,[40] 벨 연구소에서 클린턴 조셉 데이비슨과 레스터 할버트 거머는 니켈 샘플에서 전자빔을 반사시켜 결정에서 반환되는 파동 모델로 예측된 명확한 빔을 관찰했다.[8]
1926년 상반기에 드 브로이의 가설을 바탕으로 에르빈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적 파동의 행동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개발했다.[49] 슈뢰딩거 방정식은 양자 시스템의 허용된 정지 상태를 정의하고 물리 시스템의 양자 상태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설명한다.[50] 파동 자체는 "파동 함수"라고 알려진 수학적 함수로 설명된다. 슈뢰딩거는 파동 함수가 "측정 결과의 확률을 예측하는 수단"을 제공한다고 말했다.[51]
슈뢰딩거는 수소 원자의 전자를 양성자가 생성한 전기적 전위 우물에서 움직이는 고전적인 파동으로 취급하여 수소의 에너지 준위를 계산할 수 있었다. 이 계산은 보어 모형의 에너지 준위를 정확하게 재현했다.
3. 5. 슈뢰딩거 방정식
에르빈 슈뢰딩거는 1926년 상반기에 루이 드 브로이의 가설을 바탕으로 양자역학적 파동의 행동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개발했다.[49] 이 슈뢰딩거 방정식은 양자역학의 핵심이며, 양자 시스템의 허용된 정지 상태를 정의하고 물리 시스템의 양자 상태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설명한다.[50] 파동 자체는 "파동 함수"라고 알려진 수학적 함수로 설명된다. 슈뢰딩거는 파동 함수가 "측정 결과의 확률을 예측하는 수단"을 제공한다고 말했다.[51]슈뢰딩거는 수소 원자의 전자를 양성자가 생성한 전기적 전위 우물에서 움직이는 고전적인 파동으로 취급하여 수소의 에너지 준위를 계산할 수 있었다. 이 계산은 보어 모형의 에너지 준위를 정확하게 재현했다.
1926년 5월, 슈뢰딩거는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역학과 자신의 파동 역학이 전자의 속성과 행동에 대해 동일한 예측을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수학적으로 두 이론은 공통적인 기본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상호 이론의 해석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하이젠베르크는 원자 내 궤도 간의 전자의 도약에 대한 이론적 예측을 받아들였지만,[52] 슈뢰딩거는 연속적인 파동과 같은 속성에 기반한 이론이 (빌헬름 빈에 의해 재해석된) "양자 도약"을 피할 수 있기를 바랐다.[53] 결국 하이젠베르크의 접근 방식이 승리했고, 양자 도약은 확인되었다.[54]
3. 6. 겹침과 얽힘
오토 슈테른과 발터 게를라흐는 1922년에 전자의 궤도 각운동량 양자화와 자기 모멘트 결합을 검증하는 실험을 했다.[34] 이들은 은 원자 빔을 비균질 자기장에 통과시켜 두 개의 덩어리로 분리되는 것을 확인했다. 고전 역학에서는 자석이 다양한 각도로 굴절될 수 있지만, 원자는 항상 일정 거리만큼 위 또는 아래로만 굴절되었다. 이는 원자의 속성이 양자화되어 두 가지 값(위 또는 아래) 중 하나를 가져야 함을 의미했다.슈테른-게를라흐 실험에서 자기장 방향은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기장이 수직이면 원자는 위아래로, 자기장을 1/4 회전시키면 원자는 좌우로 굴절된다. 이는 수직 자기장에서는 수직 축을 따라 스핀이 양자화되고, 수평 자기장에서는 수평 축을 따라 스핀이 양자화됨을 보여준다.
이 실험 결과는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아인슈타인과 파울 에렌페스트 등은 원자가 임의 방향을 가져야 하므로 양자화가 관찰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34] 이 문제는 5년 후에야 해결되었는데, 양자화는 궤도 각운동량이 아닌 다른 요인, 즉 전자의 "스핀" 때문이었다.
1925년 랄프 크로니히는 전자가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스핀"을 가진다고 제안했다.[35] 스핀은 에너지 준위를 분리하여 작은 자기 모멘트를 생성하고, 같은 궤도의 두 전자는 반대 방향으로 "스핀"하여 배타 원리를 만족하는 다른 양자 상태를 차지한다. 그러나 크로니히의 계산값은 2배 차이가 났고, 동료들의 만류로 발표되지 않았다.
10개월 후, 조지 유흘렌벡과 사뮤엘 구드스미트는 전자의 자체 회전에 대한 이론을 발표했다.[36] 이 모델은 고전적이었지만 양자적 예측을 가져왔다.
1925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보어 모형이 해결하지 못한 수소 방출 스펙트럼 선의 세기를 설명하기 위해 양자역학적 계산을 시도했다.[46] 막스 보른은 하이젠베르크의 방법이 행렬로 표현될 수 있음을 알아냈다. 1927년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 초기 버전을 발표했고,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하는 사고 실험을 분석했다. 얼 헤세 케너드, 볼프강 파울리, 헤르만 바일은 이 측정에서 "불확정성"의 정확한 수학적 정의를 제시했다.[47][48]
4. 양자역학의 응용
양자역학은 현대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1926년 에르빈 슈뢰딩거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개발하여 양자 시스템의 정지 상태와 시간에 따른 변화를 설명했다.[50] 그는 파동 함수가 "측정 결과의 확률을 예측하는 수단"을 제공한다고 말했다.[51]
슈뢰딩거는 수소 원자의 전자를 양성자가 생성한 전기적 전위 우물에서 움직이는 파동으로 취급하여 에너지 준위를 계산했고, 이는 보어 모형과 일치했다. 1926년 5월,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역학과 자신의 파동 역학이 전자의 속성과 행동을 동일하게 예측함을 증명했다.[52] 그러나 두 사람은 이론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이젠베르크는 전자의 양자 도약을 받아들였지만,[52] 슈뢰딩거는 파동 기반 이론이 양자 도약을 피할 수 있기를 바랐다.[53] 결국 하이젠베르크의 접근 방식이 승리했다.[54]
4. 1. 원자 물리학
아이작 뉴턴이 빛의 입자성을 주장한 이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맥스웰 방정식을 수정하여 빛이 전자기파임을 밝혔다. 이는 양자역학의 시작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8] 19세기 초, 존 돌턴과 아메데오 아보가드로의 화학 연구는 물질의 원자설에 힘을 실어주었고,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루트비히 볼츠만 등은 기체 운동론을 확립했다.[5]루트비히 볼츠만은 1877년에 분자와 같은 물리 시스템의 에너지 준위가 불연속적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7] 1800년대 말, J. J. 톰슨은 전자가 수소 이온과 크기는 같지만 반대 부호의 음전하를 띠며 질량은 천 배 이상 작다는 것을 밝혀냈다. 모든 원자에는 수많은 전자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8]
20세기 초,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가이거-마스덴 금속 박막 실험을 통해 원자핵의 존재를 증명하고, 원자핵 주위를 전자들이 흩어져 있는 원자 모형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모형은 원자가 불안정하다는 문제가 있었다.[18]
기체를 가열하면 특정 주파수에서만 빛을 방출하는 원자의 방출 스펙트럼 또한 수수께끼였다. 19세기 말 발머 공식이 이 현상을 설명했다. 1913년, 닐스 보어는 양자화된 전자 궤도를 포함하는 원자의 새로운 모형을 제안했다. 전자들은 특정 궤도에만 존재할 수 있었고,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즉시 점프하며 광자를 방출했다.[19] 보어 모형은 수소의 방출 스펙트럼에서 관찰된 스펙트럼 선을 설명할 수 있었지만, 몇 가지 기본적인 가정은 곧 틀린 것으로 증명되었다.
보어, 하이젠베르크 등은 이러한 실험 결과와 수학적 모델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들의 견해를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하였다.[55]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시스템은 양자 상태로 완전히 설명되고, 양자 상태는 슈뢰딩거 방정식에 의해 시간에 따라 변하며, 원자 상호작용은 불연속적이다. 또한, 자연에 대한 설명은 확률적이며, 시스템의 양립 불가능한 속성 쌍의 값은 동시에 알 수 없고, 물질은 파동-입자 이중성을 나타낸다.
원자의 보어 모형은 전자가 핵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 모형이었지만,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전자는 정확한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가질 수 없었다. 대신, 전자는 ''원자 궤도''에 존재하며, 이는 확률 분포의 "구름"으로 묘사된다.[63] 에르빈 슈뢰딩거는 수소 원자의 전자를 우물에 있는 파동으로 취급하여 수소의 에너지 준위를 계산할 수 있었고, 이는 보어 모형의 에너지 준위와 정확히 일치했다.
슈뢰딩거의 그림에서 각 전자는 네 가지 속성, 즉 주양자수, 방위 양자수, 자기 양자수, 스핀 양자수를 갖는다. 이러한 속성을 통칭하여 전자의 양자 상태라고 하며, 파울리 배타 원리에 의해 원자 내의 두 전자가 네 가지 숫자 모두 동일한 값을 가질 수 없다. 원자 궤도의 기본 구조와 대칭, 그리고 전자가 이를 채우는 방식이 주기율표의 구성을 이끌며, 서로 다른 원자의 원자 궤도가 결합하여 분자 궤도를 형성하는 방식은 원자 간의 화학 결합의 구조와 강도를 결정한다.
4. 2. 핵 물리학
20세기 초, 과학자들은 작고 밀도가 높은 양전하를 띤 원자핵 주위를 음전하를 띤 전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의 원자 모형을 제시하였다. 이 모형은 전자들이 행성처럼 원자핵 주위를 공전한다는 점에서 러더퍼드 모형이라고도 불렸다. 1911년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가이거-마스덴 금속 박막 실험을 통해 원자핵의 존재를 처음으로 증명했다.[8] 그러나 고전 이론에 따르면, 공전하는 전자는 전자기파를 방출하며 에너지를 잃고 핵으로 나선형으로 움직여 충돌해야 했기에, 이 모형은 불안정하다는 문제가 있었다.4. 3. 입자 물리학
1927년경부터 폴 디랙은 전자에 대한 디랙 방정식을 제안하여 특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는 과정을 시작했다.[8] 디랙 방정식은 슈뢰딩거가 얻지 못한 전자의 파동 함수에 대한 상대론적 설명을 달성했으며, 전자의 스핀을 예측하고 양전자의 존재를 예측하도록 이끌었다. 디랙은 1930년 교과서에서 브라-켓 표기법을 포함한 연산자 이론의 사용을 개척했다. 같은 시기에 존 폰 노이만은 1932년 출간된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에서 힐베르트 공간의 선형 연산자 이론으로서 양자역학의 엄밀한 수학적 기초를 정립했다. 이 연구들은 초기 시기의 다른 많은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유효하며 널리 사용되고 있다.4. 4. 양자 화학
존 돌턴과 아메데오 아보가드로의 화학 연구는 물질의 원자설에 힘을 실어주었고,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루트비히 볼츠만 등은 기체 운동론을 확립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양자역학으로만 해결 가능한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5] 1877년 루트비히 볼츠만은 분자의 에너지 준위가 불연속적일 수 있다는 것을 제안했으며, 이는 통계 열역학과 통계 역학 이론으로 뒷받침되었다.[7]4. 5. 양자 정보 과학
양자 정보 과학은 20세기 후반 호레보 정리, 일반화된 측정 또는 POVM의 개념, 베넷과 브라사드의 양자 암호 분배 제안, 쇼어의 알고리즘 등 이론적 결과를 바탕으로 발전했다.[8]5. 양자역학과 한국
Quantum mechanics영어와 한국에 대한 내용은 아직 한국어 위키백과에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의 양자역학 연구는 주로 대학교와 정부 출연 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양자 컴퓨팅, 양자 통신, 양자 센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양자 기술을 국가 핵심 전략 기술로 선정하고, 관련 연구 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투자는 한국의 양자역학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미래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한국의 양자역학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전문 인력 양성과 기초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중요하며, 국제 협력을 통한 기술 교류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6. 이론의 기반이 된 실험들
토머스 영의 이중 슬릿 실험(약 1805년), 앙리 베크렐의 방사능 발견(1896), 조지프 존 톰슨의 음극선 튜브 실험을 통한 전자 발견(1897) 등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여러 실험들은 기존의 물리학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보여주었다. 1850년에서 1900년 사이에 이루어진 흑체 복사 연구는 양자적 개념 없이는 설명할 수 없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광전 효과를 빛의 양자화된 에너지를 갖는 광자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로버트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1909)은 전하가 양자화되어 있음을 보여주었고,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금박 실험(1911)은 원자 내부에 양전하를 띤 원자핵이 존재함을 밝혔다. 제임스 프랑크와 구스타프 헤르츠의 전자 충돌 실험(1914)은 수은 원자의 에너지 흡수가 양자화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오토 슈테른과 월터 게를라흐의 슈테른-게를라흐 실험(1920)은 입자의 스핀이 양자화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클린턴 데이비슨과 레스터 거머의 전자 회절(1927) 실험은 전자의 파동성을 입증했다.[87] 클라이드 카원과 프레더릭 라이네스의 중성미자 실험(1955)은 중성미자의 존재를 입증했다.
클라우스 죈슨의 전자를 이용한 이중 슬릿 실험(1961), 클라우스 폰 클리칭이 발견한 양자 홀 효과, 존 클라우저와 스튜어트 프리드먼의 양자 얽힘의 실험적 입증(1972), 마흐-젠더 간섭계 실험(1994) 등은 양자역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6. 1. 이중 슬릿 실험
토머스 영은 1801년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빛의 파동 간섭 현상을 발견하여 빛의 파동성을 입증하였다.[3] 이는 빛이 입자라는 아이작 뉴턴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결과였다. 1924년 루이 드 브로이는 물질이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는 가설을 제시하였고,[37][38] 이는 벨 연구소에서 클린턴 조셉 데이비슨과 레스터 할버트 거머가 수행한 전자 회절 실험을 통해 전자의 파동성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8] 애버딘 대학교의 조지 패짓 톰슨과 알렉산더 리드 또한 얇은 셀룰로이드 필름과 금속 필름을 통해 전자빔을 통과시켜 간섭 패턴을 관찰하여 전자 회절을 시연하였다.[40] 1961년 클라우스 욘손은 전자를 이용한 이중 슬릿 실험을 수행하였다.6. 2. 흑체 복사 실험
19세기 말, 열 복사는 실험적으로 상당히 잘 특징지어졌다. 열 복사의 일부 실험적 측정을 설명할 수 있는 몇 가지 공식이 만들어졌다. 복사가 가장 강한 파장이 온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는 빈의 변위 법칙에 의해 주어졌고, 단위 면적당 방출되는 총 전력은 슈테판-볼츠만 법칙에 의해 주어졌다. 실험 결과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은 레일리-진스 법칙으로, 긴 파장(또는 그에 상응하는 낮은 주파수)에서는 실험 결과와 잘 일치했지만 짧은 파장(또는 높은 주파수)에서는 크게 일치하지 않았다. 짧은 파장에서 고전 물리학은 뜨거운 물체가 무한한 속도로 에너지를 방출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 결과는 명백히 잘못되었으며, 자외선 파탄으로 알려졌다.[8] 물리학자들은 모든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단일 이론을 찾았다.열 복사의 전체 스펙트럼을 설명할 수 있었던 최초의 모델은 1900년 막스 플랑크에 의해 제시되었다.[9] 그는 열 복사가 일련의 조화 진동자와 평형을 이루는 수학적 모델을 제안했다. 실험 결과를 재현하기 위해 그는 각 진동자가 임의의 양의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일 특성 주파수에서 정수 단위의 에너지를 방출해야 한다고 가정해야 했다. 즉, 진동자가 방출하는 에너지는 "양자화"되었다. 플랑크에 따르면 각 진동자에 대한 에너지 양자는 진동자의 주파수에 비례했으며, 그 비례 상수는 현재 플랑크 상수로 알려져 있다.
플랑크의 법칙은 물리학에서 최초의 양자 이론이었고, 플랑크는 1918년에 "에너지 양자의 발견을 통해 물리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10] 그러나 당시 플랑크의 견해는 양자화가 (현재 믿어지는 것처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 순전히 휴리스틱한 수학적 구성물이라는 것이었다.[11]
6. 3. 광전 효과 실험
1887년, 하인리히 헤르츠는 충분한 주파수를 가진 빛이 금속 표면에 닿으면 표면에서 음극선이 방출된다는 것을 관찰했다.[8] 10년 후, J. J. 톰슨은 음극선에 대한 많은 보고가 실제로는 "입자"이며, 곧 전자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02년, 필리프 레나르트는 방출된 전자의 최대 가능 에너지가 빛의 세기와 무관하다는 것을 발견했다.[12] 이 관찰은 전자의 에너지가 입사 방사선의 세기에 비례해야 한다고 예측하는 고전 전자기학과 상반되었다.[13]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빛의 연속적인 모델이 시간 평균 광학 현상에는 매우 잘 작동하지만, 순간적인 전이의 경우 빛의 에너지는 유한한 수의 에너지 양자 형태로 발생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14] 아인슈타인은 1905년 3월 양자 논문 "빛의 방출 및 변환에 대한 발견적 관점"의 서론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 여기에서 고려할 가정에 따르면 빛줄기가 한 지점에서 퍼져 나갈 때 에너지는 끊임없이 증가하는 공간에 연속적으로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특정 지점에 국한된 유한한 수의 "에너지 양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분할 없이 움직이며 전체로서만 흡수되거나 생성될 수 있다.
이 진술은 20세기의 물리학자가 쓴 가장 혁명적인 문장이라고 불린다.[15] 주파수 인 빛의 단일 양자의 에너지는 주파수에 플랑크 상수 를 곱하여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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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빛의 양자가 자신의 에너지를 단일 전자로 전달하여 전자에 최대 의 에너지를 부여한다고 가정했다. 따라서 빛의 주파수만 전자에 부여될 수 있는 최대 에너지를 결정하며, 광방출의 세기는 빛의 세기에 비례한다.[14]
아인슈타인은 금속에서 전자를 제거하는 데 필요한 "일함수"라고 불리는 특정 양의 에너지 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16] 이 에너지 양은 각 금속마다 다르다. 빛 양자의 에너지가 일함수보다 작으면 금속에서 전자를 제거할 충분한 에너지를 전달하지 못한다. 문턱 진동수 는 에너지 가 일함수와 같은 빛 양자의 진동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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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가 보다 크면, 에너지 는 전자를 제거하기에 충분하다. 방출된 전자는 최대, 금속에서 전자를 제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뺀 빛의 에너지와 같은 운동 에너지 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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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양자로 구성된 빛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설명은 주어진 진동수 의 단일 양자가 불변의 에너지량 를 전달한다는 플랑크의 양자화된 에너지 개념을 확장한 것이다. 자연에서는 단일 양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태양과 19세기에서 사용 가능했던 방출원은 매초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플랑크 상수 는 너무 작아서 각 양자의 에너지량 가 매우 작다. 우리가 보는 빛은 수많은 그러한 양자를 포함한다.
6. 4. 밀리컨의 기름 방울 실험
로버트 밀리컨의 기름 방울 실험은 전하가 양자 (전체 단위)로 발생함을 보여주었다.[8]6. 5. 러더퍼드의 금박 실험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제안한 금박 실험은 원자핵의 존재를 처음으로 증명한 실험이다. 20세기 초, 여러 증거들을 통해 작고 밀도가 높은 양전하를 띤 원자핵 주위를 음전하를 띤 전자들이 흩어져 있는 형태의 원자 모형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특성은 전자들이 행성이 별 주위를 공전하는 것처럼 원자핵 주위를 공전하는 모형을 제시했다. 이 원자의 고전적 모형은 행성 모형이라고 불리며, 러더퍼드 모형이라고도 불린다.[8]6. 6. 프랑크-헤르츠 실험
제임스 프랑크와 구스타프 루트비히 헤르츠가 수행한 프랑크-헤르츠 실험은 수은 원자의 에너지 흡수가 양자화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77] 이는 원자의 에너지 준위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다.6. 7. 슈테른-게를라흐 실험
1922년, 오토 슈테른과 발터 게를라흐는 전자의 궤도 각운동량 양자화와 자기 모멘트의 결합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그들은 좁은 슬릿이 장착된 진공관에서 은을 가열하여 은 원자 빔을 만들고, 이 빔을 비균질 자기장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은 원자의 연속적인 패턴 대신 두 개의 덩어리가 나타났다.[34]고전 역학에서는 자석이 자기장을 통과하면서 다양한 거리만큼 굴절될 수 있지만,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에서 원자는 항상 위 또는 아래로 일정한 거리만큼만 굴절되었다. 이는 자석의 방향과 일치하는 원자의 속성이 두 값(위 또는 아래) 중 하나로 양자화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에서 사용된 자기장의 방향은 임의적이다. 예를 들어, 자기장이 수직이면 원자는 위 또는 아래로 굴절되고, 자기장을 1/4 회전시키면 원자는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굴절된다. 이는 수직 자기장을 사용하면 수직 축을 따라 스핀이 양자화되고, 수평 자기장을 사용하면 수평 축을 따라 스핀이 양자화됨을 보여준다.
이 실험 결과는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특히 아인슈타인과 파울 에렌페스트를 포함한 주요 과학자들은 실험 조건에서 은 원자가 임의의 방향을 가져야 하므로 양자화가 관찰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34] 이 미스터리가 해결되기까지 최소 5년이 걸렸는데, 양자화는 관찰되었지만 궤도 각운동량 때문은 아니었다.
1925년 랄프 크로니히는 전자가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스핀"을 가진다고 제안했다.[35] 이 스핀은 에너지 준위를 분리하여 작은 자기 모멘트를 생성하고, 같은 궤도에 있는 두 전자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스핀"하면 배타 원리를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이론에는 두 가지 결함이 있었고, 크로니히의 선배 동료들은 그의 연구를 만류하여 출판되지 않았다.
10개월 후, 라이덴 대학교의 네덜란드 물리학자 조지 유흘렌벡과 사뮤엘 구드스미트는 전자의 자체 회전에 대한 이론을 발표했다.[36] 이 모델은 크로니히의 모델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고전적이었지만, 양자적 예측을 가능하게 했다.
6. 8. 콤프턴 산란 실험
아서 콤프턴이 1923년에 수행한 실험으로, 빛의 입자성을 보여주는 실험이다.[77]6. 9. 전자 회절 실험
루이 드 브로이가 1924년에 물질파 가설을 발표한 지 3년 후, 전자가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두 그룹의 과학자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전자 회절 실험을 진행했다.[8]애버딘 대학교의 조지 패짓 톰슨과 알렉산더 리드는 얇은 셀룰로이드 필름과 금속 필름을 통해 전자빔을 통과시켜 파동 간섭 패턴을 관찰했다.[40] 벨 연구소의 클린턴 조셉 데이비슨과 레스터 할버트 거머는 니켈 결정에 전자빔을 반사시켜 회절 패턴을 관찰했다.[8]
이러한 전자 회절 실험 결과는 전자가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는 드 브로이의 가설을 뒷받침했다. 톰슨과 데이비슨은 이 실험적 공로로 1937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8]
6. 10. 양자 홀 효과 실험
클라우스 폰 클리칭은 1980년에 양자 홀 효과를 발견했다.[8] 이는 홀 효과의 양자화된 버전으로, 전기 저항에 대한 새로운 실용적인 표준을 정의하고 미세 구조 상수를 매우 정확하고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했다.[8]6. 11. 벨 부등식 실험
존 클라우저와 스튜어트 프리드먼은 양자 얽힘을 실험적으로 검증했다.(1972년)[8]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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