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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슈뢰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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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르빈 슈뢰딩거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빈 출신의 이론물리학자이다. 그는 파동역학의 기본 방정식을 제시한 공로로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양자역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슈뢰딩거는 슈뢰딩거 방정식,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 등으로 유명하며, 생명 현상에 대한 물리학적 탐구를 담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저술하기도 했다. 그는 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동서양 사상을 융합하려 시도했으며, 말년에는 아일랜드로 이주하여 더블린 고등연구소 설립에 기여했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과 관련하여 미성년자 성 학대 혐의가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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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슈뢰딩거
기본 정보
슈뢰딩거 (1933년)
슈뢰딩거 (1933년)
본명에르빈 루돌프 요제프 알렉산더 슈뢰딩거
출생일1887년 8월 12일
출생지오스트리아-헝가리
사망일1961년 1월 4일
사망지오스트리아
국적오스트리아
시민권오스트리아
아일랜드 (1948년–1961년)
학력 및 경력
모교빈 대학교 (박사, 교수 자격)
박사 지도 교수프리드리히 하젠외를
학문 지도 교수프란츠 S. 엑스너
근무 기관브로츠와프 대학교
취리히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
그라츠 대학교
더블린 고등연구소
헨트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제목습한 공기에서 절연체 표면의 전기 전도에 대하여
박사 학위 논문 URLhttps://www.univie.ac.at/zbph/ausstellung/schroedinger/dokumente/dissertationpromotion.htm
박사 학위 취득 년도1910년
업적
주요 업적슈뢰딩거 방정식
슈뢰딩거의 고양이
슈뢰딩거 장
슈뢰딩거 범함수
슈뢰딩거 군
슈뢰딩거 방법
슈뢰딩거 묘사
슈뢰딩거의 순수 아핀 이론
레일리-슈뢰딩거 섭동
슈뢰딩거-HJW 정리
로버트슨-슈뢰딩거 불확정성 관계
고양이 상태
결맞는 상태
에너지 준위
엔트로피와 생명
네겐트로피
양자역학의 해석
양자생물학
양자 얽힘
양자 스티어링
치터베베궁
개인 정보
배우자안네마리 베르텔 (1920년 결혼)
부모루돌프 슈뢰딩거
게오르기네 바우어
친척테리 루돌프 (손자)
수상
수상 내역하이팅거상 (1920년)
마테우치 메달 (1927년)
노벨 물리학상 (1933년)
막스 플랑크 메달 (1937년)
왕립학회 회원 (1949년)
푸르 르 메리트 (1956년)
에르빈 슈뢰딩거상 (1956년)
서명
에르빈 슈뢰딩거 서명

2. 생애



에르빈 슈뢰딩거는 1887년 8월 12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에서 태어나, 1961년 1월 4일 에서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는 물리학자로서, 양자 역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슈뢰딩거 방정식을 창안하여 파동 역학을 정립했으며,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슈뢰딩거는 김나지움에서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고전어와 독일 시,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공부했다. 1906년 빈 대학교에 입학하여 물리학을 전공했고, 루트비히 볼츠만의 학설에 큰 영향을 받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포병 장교로 복무했다.

1920년 4월 6일 안네마리 베르텔과 결혼했다. 이후 여러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역임하며 고체 비열, 열역학, 원자 스펙트럼 등을 연구했다. 1925년부터 1926년 사이에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표하여 파동 역학을 확립, 양자 역학의 기초를 다졌다.

1927년 훔볼트 대학교 베를린 교수가 되었으나, 1933년 나치의 유대인 탄압에 반대하여 영국으로 망명, 옥스퍼드 대학교 펠로우가 되었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다시 망명길에 올라, 아일랜드 더블린 고등연구소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1944년에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저술하여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1956년 오스트리아로 귀국하여 빈 대학교 교수가 되었으며, 1958년에는 『정신과 물질』을 통해 인간 의식에 대한 탐구를 시도했다.

2. 1. 초기 생애 (1887-1910)

에르빈 슈뢰딩거는 1887년 8월 12일 오스트리아 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루돌프 슈뢰딩거는 납포 제작자이자 식물학자였고,[86][87] 어머니 게오르긴 에밀리아 브렌다 슈뢰딩거는 빈 공과대학교 화학교수 알렉산더 바우어의 딸이었다.[88] 그는 외동아들이었다.

슈뢰딩거의 어머니는 오스트리아와 영국 혈통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는 가톨릭 신자, 어머니는 루터교 신자였다. 슈뢰딩거는 루터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무신론자였다.[89] 그러나 그는 이후 동양의 종교와 범신론에 관심을 갖고, 연구에서 종교적 상징주의를 사용했다.[90] 그는 또한 자신의 과학적 작업이 지적 의미에서 신성에 대한 접근이라고 믿었다.[91]

영국인 외할머니 덕분에 학교 밖에서도 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92] 1906년과 1910년 사이에 슈뢰딩거는 빈 대학교에서 프란츠 S. 엑스너와 프리드리히 하젠외를 밑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하젠외를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카를 빌헬름 프리드리히 프리츠 클라우슈와도 실험했다. 1911년 슈뢰딩거는 엑스너의 조수가 되었다.

2. 2. 청년기 및 학문적 성장 (1911-1926)

1906년 빈 대학교에 입학하여 물리학을 전공했다. 당시 빈 대학교에는 루트비히 볼츠만이 물리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지만, 슈뢰딩거가 입학하기 직전인 9월 5일 볼츠만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그 후임으로 프리드리히 하제노어가 교수직을 맡았다.

슈뢰딩거는 하제노어를 통해 볼츠만의 학설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이론 물리학자를 지망하게 된 것도 볼츠만의 영향이 컸다. 훗날 슈뢰딩거는 볼츠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 ''볼츠만이 생각한 길이 과학에서 나의 첫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빈 대학교 재학 중에는 연속체 역학의 고유값 문제에 매달렸고, 1910년 박사 과정 지도 교수는 하제노어였다.

1911년 빈 대학교 물리학 연구실 실장인 프란츠 S. 엑스너(Franz S. Exner)로부터 실험 물리학을 배우면서 조교를 맡았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1914년부터 1918년까지 포병 장교로서 고리치아, 두이노, 시스티아나(Sistiana), 프로세코, 빈 전선에서 복무했다. 1915년 10월 7일 하제노어는 남티롤에서 이탈리아군과 교전 중 전사했다.

1920년 4월 6일 안네마리 베르텔(Annemarie Bertel, 1896년 12월 3일 - 1965년 10월 3일)과 결혼했다.

같은 해 1920년, 프리드리히 실러 대학교 예나에서 막스 빈의 조교를 맡았다. 같은 해 9월에는 슈투트가르트 대학교의 준교수를 역임했고, 1921년에는 실레시아(당시 독일령)의 브레슬라우 대학교(현 브로츠와프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다. 같은 해 1921년에는 스위스취리히 대학교에서 막스 폰 라우에의 후임으로 6년간 수리 물리학 교수를 역임했다. 취리히 대학교 동료로는 피터 데바이와 헬만 바일이 있었으며,[77] 특히 바일과는 친밀하게 교류했다.

취리히 대학교 재학 중 주요 연구는 고체 비열, 열역학, 원자 스펙트럼이었다. 또한 엑스너와 헬만 폰 헬름홀츠의 영향을 받아 색의 생리학 연구도 수행했다.

1925년부터 1926년까지 슈뢰딩거는 루이 드 브로이물질파 개념을 바탕으로 양자역학의 기본 방정식인 슈뢰딩거 방정식해밀턴-야코비 방정식 등을 이용하여 유도하고 파동 역학을 전개했다. 이때 역학광학 사이의 대응 관계를 지적하는 해밀턴의 유추가 지침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행렬 역학과 자신의 파동 역학이 수학적으로 동등함을 증명했다. 슈뢰딩거는 양자역학 확립에 크게 기여하여 닐스 보어의 양자론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다.

2. 3. 전성기 및 망명 (1927-1939)

1927년, 에르빈 슈뢰딩거는 막스 플랑크의 뒤를 이어 베를린의 훔볼트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14] 1933년 나치의 반유대주의에 강하게 반대하여 독일을 떠나 옥스퍼드 대학교의 마그달렌 칼리지 연구원이 되었다.[19] 옥스퍼드에 도착한 직후, 폴 디랙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옥스퍼드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는데, 두 여성과 함께 생활하는 그의 비전통적인 가정 환경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19]

1934년, 슈뢰딩거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강의했고, 정규직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19] 1936년에는 에든버러 대학교의 직위를 제안받았지만 비자 문제로 결국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학교의 직위를 수락했다.[20] 그는 인도 알라하바드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직 제안도 받았었다.[20]

193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의 서신 왕래 끝에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21]

1938년, 앙슐루스 이후 슈뢰딩거는 1933년 독일 탈출과 나치즘 반대로 인해 그라츠에서 어려움을 겪었다.[22] 그는 반대 의견을 철회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23] 이후 후회하며 아인슈타인에게 그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자유롭고 싶었고, 큰 위선 없이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23] 하지만, 그라츠 대학교는 그를 정치적 불신뢰를 이유로 해임했고, 그는 괴롭힘을 당하고 출국 금지 지시를 받았다. 결국, 그와 그의 아내는 이탈리아로 도망쳤고, 옥스퍼드와 겐트 대학교의 방문 교수직을 역임했다.[23][22]

2. 4. 아일랜드 시절과 말년 (1939-1961)

1938년 앙슐루스 이후, 슈뢰딩거는 1933년 독일 탈출과 알려진 나치즘 반대로 인해 그라츠에서 어려움을 겪었다.[22] 그는 이러한 반대 의견을 철회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23] 나중에 아인슈타인에게 "나는 자유롭고 싶었고, 큰 위선 없이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라며 후회했다.[23] 그러나 이것으로 새로운 권력을 완전히 달랠 수는 없었고, 그라츠 대학교는 그를 정치적 불신뢰성으로 해임했다. 그는 괴롭힘을 당했고 출국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그와 그의 아내는 이탈리아로 도망쳤다. 거기서 그는 옥스퍼드와 겐트 대학교의 방문 교수직을 역임했다.[23][22]

1942년 더블린 고등연구소에 있는 슈뢰딩거(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드 발레라(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같은 해, 그는 아일랜드의 총리이자 수학자인 에이먼 드 발레라로부터 아일랜드에 거주하며 더블린에 고등연구소 설립을 돕자는 개인적인 초청을 받았고 이를 수락했다.[24] 그는 더블린 클론터프의 킨코라 로드로 이사하여 검소하게 살았다. 그의 클론터프 주택과 메리언 광장의 직장 주소에는 기념비가 세워졌다.[25][26][27] 슈뢰딩거는 오스트리아인으로서 아일랜드와 독특한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 1940년 10월, ''Irish Press''의 한 기자가 슈뢰딩거를 인터뷰했는데, 그는 오스트리아인의 켈트 유산에 대해 "저는 오스트리아인과 켈트족 사이에 더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지명은 켈트어 기원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1940년 이론물리학 학교의 소장이 되었고 17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1948년 아일랜드 시민권을 취득했지만 오스트리아 시민권도 유지했다.[28] 그는 통일장 이론 탐구를 포함한 다양한 주제에 관한 50편 정도의 논문을 더 발표했다.[29]

1944년 그는 생명체의 유전 암호를 지닌 복잡한 분자의 개념과 네겐트로피에 대한 논의를 담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저술했다. 제임스 D. 왓슨의 회고록 ''DNA, 생명의 비밀''에 따르면 슈뢰딩거의 책은 왓슨에게 유전자 연구에 대한 영감을 주었고, 이는 1953년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으로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프랜시스 크릭은 그의 자서전 ''미친 추구''에서 유전 정보가 분자에 어떻게 저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슈뢰딩거의 추측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했다.[30]

슈뢰딩거는 1955년 은퇴할 때까지 더블린에 머물렀다. 이 시기에 쓰여진 "갈릴레오의 미발표 대화 단편"[31]이 더블린 킹스 병원 기숙학교에서 발견되었다.[32] 이것은 빈 대학교의 물리학과장으로 임명되기 위해 더블린을 떠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학교의 1955년판 블루 코트를 위해 쓰여졌다.[33]

1956년 그는 빈으로 돌아왔다(개인 자격의 의장). 세계 에너지 회의에서 중요한 강연에서 그는 핵 에너지에 대한 회의론 때문에 핵 에너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 철학적 강연을 했다. 이 기간 동안 슈뢰딩거는 주류 양자역학의 파동-입자 이중성 정의에서 벗어나 파동만의 개념을 옹호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34][35]

안네마리와 에르빈 슈뢰딩거의 묘소; 이름표 위에는 슈뢰딩거의 양자역학적 파동 방정식이 원형 명판에 새겨져 있음


슈뢰딩거는 결핵을 앓았고, 1920년대에 여러 차례 스위스 아로사의 요양원에 머물렀다.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파동 방정식을 공식화했다. 1961년 1월 4일, 슈뢰딩거는 73세의 나이로 에서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는 안니를 미망인으로 남겨두고 오스트리아 알프바흐의 가톨릭 묘지에 매장되었다. 그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지만, 묘지 관리 사제는 슈뢰딩거가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 회원임을 알게 된 후 매장을 허락했다.[36]

3. 주요 업적

슈뢰딩거는 전기 공학, 대기 전기, 대기 방사능 분야에서 실험 연구를 수행했으며, 주로 그의 스승이었던 프란츠 엑스너와 함께 연구했다. 그는 또한 분자 진동 이론, 브라운 운동 이론 및 수리 통계학을 연구했다. 1912년에는 『전기와 자기의 편람』 편집자의 요청으로 "유전체(Dielectrism)"라는 제목의 논문을 작성했다. 같은 해, 슈뢰딩거는 관측된 대기 방사능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방사성 물질의 높이 분포에 대한 이론적 추정치를 제시했고, 1913년 8월 체하메에서 여러 실험을 수행하여 자신의 이론적 추정치와 빅토르 프란츠 헤스의 추정치를 확인했다. 이 연구로 슈뢰딩거는 1920년 오스트리아 과학 아카데미의 하이팅거상을 수상했다.[130] 1914년에는 친구 프리츠 콜라우쉬와 함께 기포 내 모세관 압력 공식을 확인하고 금속 표면에 충돌하는 감마선에 의해 생성된 연성 베타선의 특성을 연구했다. 1919년 결맞는 빛에 대한 마지막 물리 실험을 수행한 후 이론 연구에 집중했다.

1926년, 슈뢰딩거는 《물리학 연보》에 "고유값 문제로서의 양자화"[132]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슈뢰딩거 방정식을 제시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시간-독립 시스템에 대한 파동 방정식을 유도하고, 이것이 수소-유사 원자에 대한 올바른 에너지 고유값을 제공함을 보였다. 이 논문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로 널리 알려졌으며, 양자역학뿐만 아니라 물리학 및 화학의 대부분의 영역에 혁명을 일으켰다. 4주 후 제출된 두 번째 논문에서는 양자 조화 진동자, 강체 회전자 및 이원자 분자 문제를 해결하고 슈뢰딩거 방정식의 새로운 유도를 제시했다. 5월에 발표된 세 번째 논문은 그의 접근 방식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접근 방식과 동등함을 보였고 슈타르크 효과를 다루었다. 이 시리즈의 네 번째 논문은 산란 문제와 같이 시스템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이 논문에서 그는 4차 및 6차 미분 방정식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파동 방정식에 대한 복소수 해를 도입했다.[133] 그는 미분 방정식의 차수를 낮추기 위해 복소수를 도입했고, 그 결과 모든 파동 역학이 그의 발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 논문들은 그의 핵심 업적이었고 물리학계에서 즉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인정받았다.

슈뢰딩거는 자신의 이론을 "파동 역학"이라고 부르는 양자 이론의 의미에 완전히 만족하지 않았다.[134][135] 그는 양자역학의 확률 해석에 대해 "나는 그것을 싫어하고, 내가 그것과 관련된 적이 있어서 미안하다"라고 썼다.[136] 그는 코펜하겐 해석을 조롱하기 위해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을 고안했으며, 학생들에게 "이제 빌어먹을 괴팅겐 물리학자들은 그들의 똥같은 행렬 요소를 계산하기 위해 내 아름다운 파동 역학을 사용한다"라고 불평했다고 한다.[137]

양자역학 연구 이후, 슈뢰딩거는 일반 상대성이론의 기본 틀 내에서 중력, 전자기력, 핵력을 통합하는 통일장 이론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서신을 교환하며 연구를 진행했다.[138] 1947년, 그는 왕립 아일랜드 아카데미에서 "아핀장 이론"[139]이라는 결과를 발표했지만,[138] 아인슈타인은 이 발표를 "예비적"이라고 비판했고, 원하는 통일 이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통일 이론 연구 실패 후, 슈뢰딩거는 다른 주제로 관심을 돌렸다.

슈뢰딩거는 심리학, 특히 색채 지각과 색채측정법(Farbenmetrik|파르벤메트리크de)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이 분야에 관한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색채 지각 심리학 연구는 아이작 뉴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헤르만 폰 헬름홀츠의 연구를 따랐다. 그가 발표한 색채 관련 논문은 다음과 같다.

제목출판물연도
"최대 휘도의 안료 이론"물리학 연보(Annalen der Physik)1920
"주광 시력을 위한 색채 측정 이론의 개요"물리학 연보1920
"색채 측정"물리학 저널(Zeitschrift für Physik)1920
"사색이론과 삼색이론의 관계에 관하여"수리·자연과학부, 빈 과학 아카데미1925
"복사 에너지에 관한 강의"뮐러-푸이예 물리학 및 기상학 교재1926



이 논문들 중 일부는 영어로 번역되어 ''색채 과학의 원천''(데이비드 L. 맥아담 편집, MIT 출판부, 1970)과 ''에르빈 슈뢰딩거의 색채 이론, 현대적 해설과 함께 번역''(키스 K. 니알 편집, 스프링어, 2017)에서 볼 수 있다.

3. 1. 슈뢰딩거 방정식

에르빈 슈뢰딩거는 초기 경력 동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닐스 보어, 아르놀트 조머펠트와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의 연구에서 발전된 구 양자론의 개념에 익숙했다.[49] 이러한 지식은 그가 이론 물리학의 여러 문제들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당시 오스트리아의 과학자였던 슈뢰딩거는 아직 고전 물리학의 전통적인 방법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49]

슈뢰딩거의 원자 이론과 스펙트럼 이론에 관한 첫 번째 논문들은 아르놀트 조머펠트볼프강 파울리와의 개인적인 친분, 그리고 독일로 이주한 후인 1920년대 초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1921년 1월, 슈뢰딩거는 알칼리 금속의 스펙트럼 특징에 대한 전자의 상호작용을 보어-조머펠트 양자화 틀 안에서 다룬 첫 번째 논문을 완성했다. 그는 특히 양자 이론에 상대론적 고찰을 도입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1922년 가을, 그는 그의 친구 헤르만 바일이 개발한 방법을 사용하여 기하학적 관점에서 원자 내 전자 궤도를 분석했다. 이 연구는 양자 궤도가 특정 기하학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파동 역학의 몇 가지 특징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단계였다. 같은 해 초, 그는 빛 양자 가설과 에너지 및 운동량 고려 사항을 기반으로 스펙트럼 선에 대한 상대론적 도플러 효과의 슈뢰딩거 방정식을 만들었다. 그는 그의 스승 엑스너의 보존 법칙의 통계적 본질에 대한 아이디어를 좋아했기 때문에, 개별 원자 과정(예: 방사선 방출 과정)에서 이러한 법칙의 위반 가능성을 시사한 보어, 한스 크라머르스, 존 클라크 슬레이터의 BKS 이론을 열렬히 받아들였다. 비록 보테-가이거 일치 실험이 곧 이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에너지의 통계적 개념이라는 아이디어는 슈뢰딩거에게 평생 매력적인 것이었고, 그는 몇몇 보고서와 출판물에서 이를 논의했다.[50]

3. 2. 파동역학

슈뢰딩거는 1920년대 초부터 원자 이론과 스펙트럼 이론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21년 1월, 알칼리 금속의 스펙트럼 특징에 대한 전자의 상호작용을 보어-조머펠트 양자화 틀 안에서 다룬 첫 논문을 완성했다. 그는 특히 양자 이론에 상대론적 고찰을 도입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1922년 가을에는 헤르만 바일의 방법을 사용하여 기하학적 관점에서 원자 내 전자 궤도를 분석했다. 이 연구는 양자 궤도가 특정 기하학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파동역학의 특징을 예측하는 중요한 단계였다.[49] 같은 해 초, 그는 빛 양자 가설과 에너지 및 운동량 고려 사항을 기반으로 스펙트럼 선에 대한 상대론적 도플러 효과의 슈뢰딩거 방정식을 만들었다. 그는 개별 원자 과정에서 에너지 보존 법칙이 위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BKS 이론을 지지했다. 비록 보테-가이거 일치 실험이 곧 이 이론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에너지의 통계적 개념은 슈뢰딩거에게 평생 매력적인 아이디어로 남았다.[50]

3. 3. 슈뢰딩거의 고양이

Ephemeridae|에페메리다de는 일기를 의미하는데, 슈뢰딩거는 자신이 성적으로 학대한 아이들을 포함하여 성적 접촉에 대한 기록을 이 일기에 남겼다. 그는 이 일기에서 "십대 소녀들의 순수함이 그의 타고난 천재성과 이상적으로 어울린다"는 이유로 10대 소녀들을 선호한다고 밝혔다.[118]

슈뢰딩거는 39세 때 14세의 "이티Ithi" 융거Junger를 가르쳤다. 존 그리빈이 2012년 슈뢰딩거 전기에 썼듯이, "수업에는 수학뿐만 아니라 '적당한 양의 애무와 껴안기'도 포함되었고, 슈뢰딩거는 곧 자신이 이티와 사랑에 빠졌다고 확신했다."[119] 슈뢰딩거는 융거에게 임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며 17세에 그녀를 유혹했다. 융거는 나중에 임신했고, 불임이 되는 낙태를 했다.[118][120] 슈뢰딩거는 곧 그녀를 떠나 다른 대상을 찾았다.[121] 피해자 보호를 위해 유족이 사용하는 가명인 케이트 놀란Kate Nolan도 동의 없이 슈뢰딩거에게 임신되었다.[118]

카를로 로벨리는 저서 《헬골란트(Helgoland)》에서 슈뢰딩거가 "항상 많은 관계를 동시에 유지했으며 사춘기 이전의 소녀들에 대한 그의 매력을 숨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로벨리는 아일랜드에서 《데어 슈탄다르트》 기사에서 26세와 결혼 5년 차의 정치 활동가로 확인된 두 명의 학생[122]과 각각 한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썼다.[120] 버나드 비가르Bernard Biggar는 가계도 연구 중 슈뢰딩거가 12세 때 그의 사촌인 바바라 매켄티Barbara MacEntee를 그루밍(grooming)했다는 보고서를 발견했다.[118] 그녀의 삼촌이자 수학자이자 신부인 파드라그 드 브룬Pádraig de Brún은 슈뢰딩거에게 더 이상 그녀를 쫓지 말라고 충고했고,[120] 슈뢰딩거는 나중에 일기에 그녀가 그의 "짝사랑" 중 하나라고 썼다.[123] 매켄티는 1995년에 세상을 떠났고 사후에 기록이 공개되었다.[124]

월터 무어의 과학자 전기는 슈뢰딩거의 여성에 대한 태도가 "본질적으로 남성 우월주의자의 태도"라고 설명했다.[125] 헬게 크라Helge Kragh는 무어의 전기에 대한 리뷰에서 이 평가를 확증하며,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의 정복은 이 진심으로 낭만적이며 남성 쇼비니스트에게 삶의 소금이었다고 말했다.[126] 월터 무어는 슈뢰딩거의 소녀들과의 관계를 사용하여 무어가 슈뢰딩거의 "로리타 콤플렉스"라고 부른 것을 특징지었다.[118] 슈뢰딩거의 손자와 그의 어머니는 무어의 비난에 불만을 품었고, 전기가 출판되자 그들의 가족은 그와의 연락을 끊었다.[120]

2021년 《아이리시 타임스》 기사에서 슈뢰딩거의 연쇄 학대 패턴은 "그 용어의 널리 이해되는 의미에서 소아성애자의 프로필에 맞는 행동"으로 식별되었다.[118]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물리학과는 2022년 1월에 1990년대부터 슈뢰딩거의 이름을 붙인 강의실을 그의 성적 학대 이력을 고려하여 이름을 바꿀 것을 권장하고[127] 과학자의 사진을 삭제하고, 동명의 강의 시리즈의 개명이 고려될 것이라고 밝혔다.[128] 대학 웹페이지 "물리학 학교의 역사"에는 현재 "물리 강의실에서 프런트 데스크와 칠판의 모습"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있다.[129]

3. 4. 생명이란 무엇인가

1944년,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저술했는데, 이 책은 생명체의 유전 암호를 지닌 복잡한 분자의 개념과 네겐트로피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 제임스 D. 왓슨의 회고록 ''DNA, 생명의 비밀''에 따르면, 슈뢰딩거의 책은 왓슨에게 유전자 연구에 대한 영감을 주었고, 이는 1953년 DNA의 이중나선 구조 발견으로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프랜시스 크릭은 그의 자서전 ''미친 추구''에서 유전 정보가 분자에 어떻게 저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슈뢰딩거의 추측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했다.[30]

3. 5. 기타 연구

슈뢰딩거는 전기 공학, 대기 전기, 대기 방사능 분야에서 실험을 했지만, 대개 그의 전임 교수인 프란츠 엑스너와 함께 연구했다. 그는 또한 분자 진동 이론, 브라운 운동 이론 및 수리 통계학을 연구했다. 1912년, 슈뢰딩거는 『전기와 자기의 편람』(Handbook of Electricity and Magnetism) 편집자들의 요청으로 "유전체(Dielectrism)"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다. 같은 해, 슈뢰딩거는 관측된 대기 방사능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방사성 물질의 높이 분포에 대한 이론적 추정치를 제시했고, 1913년 8월에는 체하메(Zeehame)에서 여러 실험을 수행하여 자신의 이론적 추정치와 빅터 프란츠 헤스의 추정치를 확인했다. 이 연구로 슈뢰딩거는 1920년 오스트리아 과학 아카데미의 하이팅거 상(Haitinger-Preis)을 수상했다.[48] 1914년 젊은 연구원이 수행한 다른 실험 연구로는 기포 내 모세관 압력 공식 확인과 금속 표면에 충돌하는 감마선에 의해 생성된 연성 베타선의 특성 연구가 있다. 마지막 연구는 그의 친구 프리츠 콜라우슈와 함께 수행했다. 1919년 슈뢰딩거는 결맞는 빛에 대한 마지막 물리 실험을 수행한 후 이론 연구에 집중했다.

양자역학 연구 이후 슈뢰딩거는 통일장 이론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중력, 전자기력, 그리고 핵력을 일반 상대성 이론의 기본 틀 안에서 통합하는 이론으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의 광범위한 서신 교류를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57] 1947년 그는 아일랜드 왕립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통해 "아핀 장 이론"이라는 결과를 발표했지만,[58] 아인슈타인은 이를 "예비적인" 것이라고 비판했고, 원하는 통일 이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57] 통일 이론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후, 슈뢰딩거는 통일 이론 연구를 포기하고 다른 주제로 눈을 돌렸다. 또한 슈뢰딩거는 이후 연구 생활 동안 주요 물리학자와 협력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57]

슈뢰딩거는 심리학에, 특히 색채 지각과 색채측정법(독일어: ''Farbenmetrikde'')에 강한 관심을 가졌다. 그는 삶의 몇 년 동안 이러한 문제에 매달려 이 분야에 관한 일련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색채 지각 심리학에 대한 연구는 같은 분야에서 아이작 뉴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헤르만 폰 헬름홀츠의 연구를 따른 것이다.

그가 발표한 색채 관련 논문은 다음과 같다.

제목출판물연도비고
"최대 휘도의 안료 이론"(“Theorie der Pigmente von größter Leuchtkraft”)물리학 연보(Annalen der Physik)1920
"주광 시력을 위한 색채 측정 이론의 개요"(“Grundlinien einer Theorie der Farbenmetrik im Tagessehen”)물리학 연보(Annalen der Physik)1920
"색채 측정"(“Farbenmetrik”)물리학 저널(Zeitschrift für Physik)1920
"사색이론과 삼색이론의 관계에 관하여"(“Über das Verhältnis der Vierfarben- zur Dreifarben-Theorie”)수리·자연과학부(Mathematisch-Naturwissenschaftliche Klasse), 빈 과학 아카데미(Akademie der Wissenschaften, Wien)1925
"복사 에너지에 관한 강의"(“Lehre von der strahlenden Energie”)뮐러-푸이예 물리학 및 기상학 교재(Müller-Pouillets Lehrbuch der Physik und Meteorologie)1926색차 역치



이러한 논문 중 일부는 영어로 번역되었으며, ''색채 과학의 원천(Sources of Colour Science)'', 편집: 데이비드 L. 맥아담(David L. MacAdam), MIT 출판부(1970)와 ''에르빈 슈뢰딩거의 색채 이론, 현대적 해설과 함께 번역(Erwin Schrödinger’s Color Theory, Translated with Modern Commentary)'', 편집: 키스 K. 니알(Keith K. Niall), 스프링어(2017)에서 찾아볼 수 있다.

4. 철학 및 사상

양자 역학 연구 이후, 슈뢰딩거는 일반 상대성 이론의 기본 틀 안에서 중력, 전자기력, 핵력을 통합하는 통일장 이론 연구에 매진했으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연구를 진행했다.[138] 1947년 아일랜드 왕립 아카데미에서 "아핀 장 이론"을 발표했지만,[139] 아인슈타인은 이를 "예비적"이라고 비판했고, 원하는 통일 이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138] 통일 시도가 실패한 후, 슈뢰딩거는 통일 연구를 포기하고 다른 주제로 관심을 돌렸다.

슈뢰딩거는 심리학, 특히 색 지각과 측색(Colorimetry, Farbenmetrikde)에 강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평생 동안 이 문제들을 연구하여 이 분야에 관한 일련의 논문을 발표했다. 색채 지각 심리학에 대한 그의 작업은 아이작 뉴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헤르만 폰 헬름홀츠의 연구를 계승한다.

하위 섹션에서 이미 다루고 있기 때문에, 철학에 관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언급만 하고 넘어간다.

슈뢰딩거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바뤼흐 스피노자에게 영향을 받은 철학적 사상을 전개했으며, 의식, 심신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탐구했다. 그는 동서양 사상의 융합에도 관심을 보였으며, 특히 인도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4. 1. 동서양 철학의 융합

슈뢰딩거는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바뤼흐 스피노자의 저술에서 영향을 받았다. 1956년 강연 "마음과 물질"에서 "시간과 공간 속에 펼쳐진 세계는 단지 우리의 표상일 뿐이다."라고 말했다.[140] 이는 쇼펜하우어의 주요 저서의 첫머리 말을 반복한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저술들은 그에게 인도 철학, 특히 우파니샤드와 아드바이타 베단타의 해석을 소개했다. 그는 한때 "만약 세계가 실제로 우리의 관찰 행위에 의해 창조되었다면, 우리 각자를 위해 수십억 개의 그러한 세계가 있어야 한다. 당신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같은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나의 세계에서 무언가가 일어난다면, 당신의 세계에서도 일어나는가? 무엇이 이 모든 세계들을 서로 동기화하게 하는가?"라는 특별한 사고방식을 취했다.

> "분명히 하나의 대안만이 존재하는데, 바로 마음이나 의식의 통합이다. 그들의 다양성은 단지 외관상일 뿐이며, 사실상 하나의 마음만이 존재한다. 이것이 우파니샤드의 교리이다.[141]

슈뢰딩거는 그의 강연과 저술에서 의식, 심신 문제, 감각 지각, 자유 의지, 객관적 실재와 같은 주제들을 논의했다.[141][142][143]

슈뢰딩거의 동양 사상과 서양 사상의 관계에 대한 태도는 신중함을 보였으며, 동양 철학에 대한 감사를 표하면서도 일부 아이디어가 자연 철학에 대한 경험적 접근 방식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했다.[144] 일부 해설가들은 슈뢰딩거가 비이원론적 베단타적 관점에 깊이 몰입하여 이것이 그의 이론 물리학을 포함한 많은 작업의 광범위한 틀이나 잠재의식적인 영감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144] 슈뢰딩거는 ''Tat Tvam Asi''라는 생각에 공감을 표하며, "당신은 자신이 대지의 어머니와 하나이며, 대지의 어머니도 당신과 하나라는 확신을 가지고 대지에 납작하게 누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145]

슈뢰딩거는 "의식은 물리적 용어로 설명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의식은 절대적으로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의 용어로도 설명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146]

4. 2.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



슈뢰딩거는 심리학, 특히 색 지각과 측색(Farbenmetrikde)에 강한 관심을 보였다.[57] 그는 평생 동안 이 문제들을 연구하여 다음과 같은 논문들을 발표했다.

  • "Theorie der Pigmente von größter Leuchtkraft", ''물리학 연보(Annalen der Physik)'', (4), 62, (1920), 603–22 (가장 높은 광도를 가진 안료 이론)
  • "Grundlinien einer Theorie der Farbenmetrik im Tagessehen", ''물리학 연보(Annalen der Physik)'', (4), 63, (1920), 397–456; 481–520 (일광 시력을 위한 색 측정 이론의 개요)
  • "Farbenmetrik", ''물리학 저널(Zeitschrift für Physik)'', 1, (1920), 459–66 (색상 측정)
  • "Über das Verhältnis der Vierfarbenzur Dreifarben-theorie", ''Mathematisch-Naturwissenschaftliche Klasse'', 134, 471 (4색 이론과 3색 이론의 관계)
  • "Lehre von der Strahlenden Energie", ''뮐러-푸이예 물리학 및 기상학 교재(Müller-Pouillets Lehrbuch der Physik und Meteorologie)'', Vol 2, Part 1 (1926) (색채 차이의 경계)


색채 지각 심리학에 대한 그의 작업은 아이작 뉴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헤르만 폰 헬름홀츠의 연구를 계승한다. 이 논문들 중 일부는 영어로 번역되어 《색채 과학의 원천 (Sources of Colour Science)》 (데이비드 L. 맥애덤David L. MacAdam 편저, MIT Press, 1970)과 《현대 주석과 함께 번역된 에르빈 슈뢰딩거의 색채 이론 (Erwin Schrödinger’s Color Theory, Translated with Modern Commentary)》 (케이스 K. 니올Keith K. Niall 편저, Springer, 2017)에서 찾을 수 있다.

슈뢰딩거는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바뤼흐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았다. 1956년 《마음과 물질》에서 그는 "공간과 시간이 확장된 세계는 우리의 표상일 뿐이다"라고 말했다.[59] 이는 쇼펜하우어의 주요 저서 첫머리를 반복한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저술은 그에게 인도 철학, 특히 우파니샤드와 아드바이타 베단타를 소개했다. 그는 "만약 세계가 우리의 관찰 행위에 의해 창조된다면, 우리 각자를 위해 수십억 개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 당신의 세계와 내 세계는 어떻게 같은가? 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당신의 세상에서도 일어나는가? 이 모든 세계를 동기화시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사고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 "분명히 하나의 대안, 즉 마음이나 의식의 통일이 있을 뿐이다. 그들의 다양성은 겉보기일 뿐이며, 사실은 오직 한 마음뿐이다. 이것이 우파니샤드의 교리이다."[60]

그는 강의와 저술에서 의식, 심신 문제, 감각 지각, 자유 의지, 객관적 실재와 같은 주제를 다루었다.[60][61][62]

슈뢰딩거는 동서양 사상의 관계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동양 철학에 감사하면서도 일부 사상은 자연 철학에 대한 경험적 접근과 맞지 않음을 인정했다.[63] 일부 해설가들은 슈뢰딩거가 비이원론적 베단타 관점에 깊이 몰입하여 그의 이론 물리학을 포함한 많은 작업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63] 그는 ''Tat Tvam Asi''("당신은 대지의 어머니와 하나이며, 대지의 어머니도 당신과 하나라는 확신을 가지고 대지에 엎드릴 수 있다")라는 생각에 공감했다.[64]

슈뢰딩거는 "의식은 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의식은 절대적으로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65]

양자역학 연구 이후, 슈뢰딩거는 일반 상대성이론의 기본 틀 안에서 중력, 전자기력, 핵력을 통합하는 통일장 이론 연구에 매진했다. 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연구를 진행했다.[57] 1947년 아일랜드 왕립 아카데미에서 "아핀 장 이론"을 발표했지만,[58] 아인슈타인은 이를 "예비적"이라고 비판했고, 원하는 통일 이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57] 통일 시도가 실패한 후, 슈뢰딩거는 통일 연구를 포기하고 다른 주제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이후 연구 생활 동안 주요 물리학자와 협력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57]

5. 사생활 및 논란

에르빈 슈뢰딩거는 1920년 안네마리 베르텔과 결혼했지만,[37] 복잡한 여성 관계와 미성년자 성 학대 혐의로 논란이 되었다. 1938년 아일랜드로 이주할 때, 그는 아내 외에 다른 여성 힐데 마르크의 비자를 얻었으며, 1934년 마르크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다.[38]

그의 복잡한 여성 관계와 미성년자 성 학대 혐의에 대해서는 하위 섹션을 참고하라.

5. 1. 복잡한 여성 관계

슈뢰딩거는 1920년 4월 6일에 안네마리(애니) 베르텔과 결혼했다.[37] 1938년 아일랜드로 이주할 때, 그는 자신과 아내, 그리고 또 다른 여성 힐데 마르크의 비자를 얻었다. 마르크는 오스트리아 동료의 아내였고 슈뢰딩거는 1934년에 그녀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다.[38] 슈뢰딩거는 마르크의 비자를 얻기 위해 에먼 드 발레라 총리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1939년 10월, 세 사람은 더블린에 거주하게 되었다.[38] 그의 아내 애니(1896년 12월 3일 출생)는 1965년 10월 3일에 사망했다.

39세의 슈뢰딩거는 "이티(Ithi)" 융거라는 14세 소녀를 가르쳤는데, 1989년 슈뢰딩거 전기에 따르면 이 수업은 "상당한 애무와 포옹을 포함했으며" 슈뢰딩거는 "제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40] 또한 "열일곱 번째 생일이 지난 얼마 후, 그들은 연인이 되었다"고 하며, 이들의 관계는 계속되어 1932년에 이티는 임신했다(당시 20세).[41] 어빈은 아이를 낳도록 설득하려 했고, 자신이 돌볼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내 애니와 이혼할 의향은 없었다. 절망한 이티는 낙태를 결정했다.

슈뢰딩거에게 '롤리타 콤플렉스'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으며,[42] 그의 일기에는 "강하고 진정한 지성을 가진 남성들은 지적 능력의 시작 단계에 있는, 자연의 선호하는 샘과 거의 연결된 여성들에게만 엄청나게 매료된다"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2021년 아일랜드 타임스 기사는 이를 "10대 소녀에 대한 편애"로 요약하며 슈뢰딩거를 "그의 행동이 널리 알려진 의미에서의 소아성애자의 특징에 부합하는 연쇄 성범죄자"라고 비난했다.[42]

칼로 로벨리는 그의 저서 ''헬골란트''에서 슈뢰딩거가 "항상 여러 관계를 동시에 유지했고, 사춘기 이전의 소녀들에게 대한 매료됨을 숨기지 않았다"고 언급한다.[43] 로벨리는 아일랜드에서 슈뢰딩거가 두 명의 학생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썼다.[43] ''데어 슈탄다르트'' 기사에서는 그들이 26세 여성과 나이가 알려지지 않은 기혼 정치 활동가라고 밝혔다.[44] 다른 전기에서는 아일랜드에 있을 때 12세 소녀에게 "열중"했던 슈뢰딩거에 대한 에피소드를 설명한다.[44]

월터 무어는 슈뢰딩거의 여성에 대한 태도가 "남성 우월주의자의 것"이었다고 말했지만, 여성을 사회적으로 배제했던 옥스퍼드의 "공식적인 여성 혐오"는 싫어했다고 한다. 헬게 크라흐는 전기 서평에서 "특히 매우 어린 여성에 대한 정복은 이 진실된 낭만주의자이자 남성 우월주의자에게 삶의 소금과 같았다"고 말했다.[45]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물리학과는 2022년 1월, 1990년대부터 슈뢰딩거의 이름을 따 명명된 강의실을 그의 성적 학대 전력을 고려하여 이름을 바꿀 것을 권고했으며,[46] 과학자의 사진을 제거하고, 그의 이름을 딴 강의 시리즈의 이름 변경도 고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47]

5. 2. 미성년자 성 학대 혐의

39세의 에르빈 슈뢰딩거는 "이티(Ithi)" 융거라는 14세 소녀를 가르쳤다. 월터 무어는 1989년 슈뢰딩거 전기에 그 수업이 "상당한 애무와 포옹을 포함했으며" 슈뢰딩거는 "제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적었다.[40] 무어는 "열일곱 번째 생일이 지난 얼마 후, 그들은 연인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1932년, 20세가 된 이티는 임신했다.[41] 슈뢰딩거는 아이를 낳도록 설득하며 자신이 돌볼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내 애니와 이혼할 의향은 없었다. 절망한 이티는 낙태를 결정했다.

무어는 슈뢰딩거에게 '롤리타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기술했다. 그는 슈뢰딩거의 일기를 인용하며, "강하고 진정한 지성을 가진 남성들은 지적 능력의 시작 단계에 있는, 자연의 선호하는 샘과 거의 연결된 여성들에게만 엄청나게 매료된다"고 썼다. 2021년 ''Irish Times''는 이를 "10대 소녀에 대한 편애"로 요약하며 슈뢰딩거를 "행동이 널리 알려진 의미에서의 소아성애자의 특징에 부합하는 연쇄 성범죄자"라고 비난했다.[42] 슈뢰딩거의 손자와 어머니는 무어의 주장에 불만을 느껴, 전기 출판 후 무어와의 관계를 끊었다.[44]

칼로 로벨리는 저서 ''헬골란트''에서 슈뢰딩거가 "항상 여러 관계를 동시에 유지했고, 사춘기 이전의 소녀들에게 대한 매료됨을 숨기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로벨리는 아일랜드에서 슈뢰딩거가 두 명의 학생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썼다.[43] ''데어 슈탄다르트'' 기사에서는 그들이 26세 여성과 나이가 알려지지 않은 기혼 정치 활동가라고 밝혔다.[44] 무어의 책은 두 사건을 모두 설명하며, 첫 번째 여성의 가명으로 케이트 놀란, 다른 여성의 이름으로 셰일라 메이를 사용했지만, 둘 다 학생은 아니었다. 무어의 책은 또한 아일랜드에 있을 때 12세 소녀 바바라 맥엔티에게 "열중"했던 슈뢰딩거에 대한 일화를 설명한다. 그는 누군가의 "심각한 충고" 후 관심을 그만두었고, 나중에 그녀를 "자신의 짝사랑 목록에 추가했다." 이 일화는 ''아일랜드 타임스'' 기사 등에서 강조되었다.[44]

월터 무어는 슈뢰딩거의 여성관이 "남성 우월주의자의 것"이었다고 말했지만, 여성을 사회적으로 배제했던 옥스퍼드의 "공식적인 여성 혐오"는 싫어했다고 한다. 헬게 크라흐는 무어의 전기 서평에서 "특히 매우 어린 여성에 대한 정복은 이 진실된 낭만주의자이자 남성 우월주의자에게 삶의 소금과 같았다"고 말했다.[45]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물리학과는 2022년 1월, 1990년대부터 슈뢰딩거의 이름을 따 명명된 강의실을 그의 성적 학대 전력을 고려하여 이름을 바꿀 것을 권고했으며,[46] 과학자의 사진을 제거하고, 그의 이름을 딴 강의 시리즈의 이름 변경도 고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47]

6. 평가 및 유산

슈뢰딩거는 전기 공학, 대기전기학, 대기 방사능 분야에서 실험을 했고, 진동 이론, 브라운 운동 이론, 수리통계학을 공부했다. 1920년에는 이 작업으로 오스트리아 과학 아카데미의 하이팅거상을 수상했다.[130] 1919년에는 결맞음에 대한 마지막 물리적 실험을 수행한 후 이론 연구에 집중했다.

원자론스펙트럼 이론에 관한 슈뢰딩거의 첫 번째 출판물은 1920년대 초 볼프강 파울리와 개인적으로 친분을 맺고 독일로 이주한 후에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양자 이론에 상대론적 고려 사항을 도입하는 것에 특히 관심을 가졌다. 1922년 가을, 그는 헤르만 바일이 개발한 방법을 사용하여 기하학적 관점에서 원자의 전자 궤도를 분석했다. 이 연구는 파동 역학의 일부 특징을 예측하는 중요한 단계였다. 그는 보존 법칙의 통계적 성격에 대한 스승 액스너의 아이디어를 좋아했고, 통계적 개념으로서의 에너지 개념은 슈뢰딩거에게 평생 동안 끌렸던 것이었고 그는 일부 보고서와 출판물에서 이에 대해 논의했다.[131]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제기한 철학적 문제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며, 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슈뢰딩거 방정식이 그의 가장 지속적인 유산이지만, 대중 과학 분야에서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그의 가장 지속적인 유산으로 남아 있다. 슈뢰딩거는 "양자 역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여러 인물 중 한 명이다. 달 뒷면에 있는 큰 크레이터 슈뢰딩거[66]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국제 수리물리학 연구소(Erwin Schrödinger 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thematical Physics)는 1992년 빈에 설립되었다.[67]

슈뢰딩거의 초상화는 1983년부터 1997년까지 유통된 오스트리아 1000실링 지폐 디자인의 주요 특징이었다.[68]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들은 다음과 같다.

명칭설명
리머릭 대학교(University of Limerick)의 건물[69]아일랜드 리머릭 소재
에르빈 슈뢰딩거 센터(Erwin Schrödinger Zentrum)[70]베를린 아들러스호프 소재
슈뢰딩거 길(Route Schrödinger)프랑스 프레베생(Prévessin)에 있는 CERN의 도로



2013년 슈뢰딩거의 126번째 생일 기념으로 구글 두들(Google Doodle)이 공개되었다.[71][72]

7. 슈뢰딩거의 이름을 딴 것들

슈뢰딩거[66]는 달의 뒷면에 있는 큰 크레이터이다. 1992년 빈에는 국제 수리물리학 연구소(Erwin Schrödinger 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thematical Physics)가 설립되었다.[67]

슈뢰딩거의 초상화는 1983년부터 1997년까지 유통된 오스트리아 1000실링 지폐의 주요 디자인이었다.[68]

리머릭 대학교(University of Limerick)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건물이 있으며,[69] 베를린 아들러스호프에는 '에르빈 슈뢰딩거 센터(Erwin Schrödinger Zentrum)'가,[70] 프랑스 프레베생에 있는 CERN의 슈뢰딩거 길(Route Schrödinger)이 있다.

2013년 슈뢰딩거의 126번째 생일 기념으로 구글 두들(Google Doodle)이 공개되었다.[71][7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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