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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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세영은 1845년 황해도 서흥에서 태어난 한국 천주교 신자로, 1866년 순교했다. 그는 18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천주교에 귀의하여 신앙생활을 하던 중 체포되었고, 고문으로 배교했으나 곧 뉘우치고 자수하여 순교했다.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우세영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우세영 알렉시오
출생일1845년
사망일1866년 3월 11일
축일9월 20일
출생지황해도 서흥
사망지서울 새남터
매장지절두산 순교성지
상세 정보
직업순교자
교파로마 가톨릭교회
시복일1968년 10월 6일
시복자교황 바오로 6세
시성일1984년 5월 6일
시성자교황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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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우세영 알렉시오는 1845년 황해도 서흥의 유복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총명하여 18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교리 교사 김기호 요한의 권유로 천주교 신앙에 뜻을 두게 되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63년 베르뇌 주교에게 알렉시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 후 가족의 냉대를 견디고 분가하여 한양으로 올라와 정의배와 함께 지내며 교리 서적 번역과 기도문 편찬 등 신앙 활동에 힘썼다. 이후 고향으로 내려가 가족과 이웃들에게 교리를 전파하여 스무 명을 입교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로 인해 평양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평양 감영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잠시 배교하였다. 그러나 즉시 깊이 뉘우치고 속죄한 뒤, 감옥에 있던 베르뇌 주교에게 고해하고 사죄를 받았다. 이후 스스로 포졸에게 자수하여 다시 체포되었고, 이번에는 모든 고문을 이겨내며 신앙을 굳건히 지켰다. 결국 1866년 3월 11일 새남터에서 푸르티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 정의배 등 여러 천주교 신자들과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2.1. 출생과 가문

1845년 황해도 서흥에서 부유한 양반 가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들과 함께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으며, 매우 총명하여 16세에 이미 과거 시험 준비를 마쳤다. 18세에는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교리 교사 김기호 요한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에게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지만,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베르뇌 주교는 젊은 우세영을 교리 교사 정의배 마르코에게 보내 세례를 위한 신앙생활과 영성을 배우도록 하였다. 1863년 베르뇌 주교는 마침내 우세영에게 직접 세례를 주었고 알렉시오라는 세례명을 부여했다. 세례를 받은 후 집으로 돌아왔으나 가족들에게 매우 냉혹한 대우를 받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견뎌냈다.

2.2. 천주교 입교

우세영은 1845년 황해도 서흥의 부유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총명하여 16세에 과거 시험 준비를 마쳤고, 18세에는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교리 교사 김기호 요한의 권면을 받고 천주교에 입교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에게 세례를 받겠다고 청했지만,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에 베르뇌 주교는 젊은 우세영을 교리 교사 정의배 마르코에게 보내 세례 준비를 위한 신앙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1863년, 마침내 베르뇌 주교에게 직접 세례를 받고 알렉시오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세례 후 집으로 돌아온 우세영은 가족들로부터 심한 냉대를 받았지만, 신앙을 지키며 어려움을 견뎌냈다. 결국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분가하여 한양으로 상경했고, 정의배 회장과 함께 지내며 가족들의 개종을 위해 기도했다. 또한 교리 서적을 번역하고 십이단 기도문을 편찬하는 등 신앙 활동에 힘썼다.

얼마 후, 우세영의 아버지가 천주교에 대해 알고 싶어 하자, 그는 고향으로 내려가 가족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그의 노력으로 온 가족과 이웃을 포함하여 스무 명이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가족의 신앙이 지역에 알려지면서 평양의 논재라는 곳으로 이사해야 했다.

2.3. 신앙 활동

18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교리 교사 김기호 요한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강한 반대가 있었으나, 베르뇌 주교는 젊은 우세영을 교리 교사 정의배 마르코에게 보내 세례를 위한 신앙생활과 영성을 배우도록 하였다. 마침내 1863년 베르뇌 주교에게 직접 세례를 받고 알렉시오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세례 후 집으로 돌아왔으나 가족들에게 매우 냉혹한 대우를 받았지만, 그는 모든 어려움을 신앙으로 견뎌냈다.

이후 우세영은 아버지에게 분가를 허락받아 한양으로 상경했다. 그는 정의배 회장과 함께 살면서 자신의 가족들이 천주교로 개종하기를 바라며 기도에 힘썼다. 또한 정의배 회장과 함께 교리 서적들을 번역하고 십이단 기도문을 편찬하는 등 천주교 신앙 전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얼마 후, 우세영의 아버지가 천주교에 대해 알고 싶어 하자, 우세영은 고향으로 내려가 가족들에게 직접 교리를 가르쳤다. 그의 노력으로 온 가족과 이웃을 포함하여 스무 명이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일로 가족의 신앙이 그 지역에 널리 알려지게 되자, 박해를 피해 평양의 논재로 이사해야 했다.

2.4. 체포와 배교, 그리고 순교

1866년 음력 설날, 우세영은 정의배 회장을 찾아가 세배를 하고 고둔리 공소에서 축일을 보냈다. 그러던 중 포졸들이 마을을 습격하여 우세영과 교리 교사 유정률 회장 등 6명의 남성 천주교인들을 체포하였다. 당시 평양 감영으로 끌려간 이들 중 유정률은 죽을 때까지 매를 맞고 그의 시신은 대동강에 던져져 순교했지만, 우세영은 모진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배교하였다.

그러나 그는 즉시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속죄를 위해 단식하였다. 또한 자신의 재산을 모두 불태우고, 감옥에 갇혀 있던 베르뇌 주교를 찾아가 평양에서의 배교 사실을 고해하였다. 베르뇌 주교에게 사죄를 받은 우세영은 정의배의 집을 지키던 포졸들에게 자수하여 다시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용감하게 모든 고문을 견뎌내며 신앙을 굳건히 지켰고, 배교를 강요하는 요구를 끝까지 거부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형리들의 배교 유혹이 있었지만, 우세영은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결국 우세영은 1866년 3월 11일 새남터에서 푸르티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 정의배 등과 함께 참수당하고 군문효수되었다. 순교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3. 시복 · 시성

우세영 알렉시오는 1968년 10월 6일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가 집전한 24위 시복식을 통해 복자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대한민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특별시 여의도 광장에서 집전한 미사 중에 거행된 103위 시성식을 통해 성인으로 선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