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육군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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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육군대신은 일본 내각의 육군성을 담당하는 직책이었다. 1885년 일본 내각 제도 발족 당시 장관이 육군대신을 맡도록 규정되었으며, 군부대신 현역 무관제를 통해 육군대신의 반대가 내각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도록 했다. 1913년에는 현역 규정이 삭제되어 임용 자격이 확대되었으나, 1936년 부활하여 육군의 영향력을 강화했다.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 이후 육군성이 폐지되면서 육군대신 직책도 사라졌다. 현재는 방위성이 자위대를 관할하며, 방위대신은 문민 국회의원이 맡는 것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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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혁
1885년 내각 제도 발족 당시에는 장관이 육군대신을 하도록 규정했다. 1890년 3월 27일 〈직원은 무관에 한한다〉라는 규정을 삭제했고, 1900년 군부대신 현역 무관제 도입으로 육군대신은 현역 장관(将官)이 맡도록 규정되었다. 이 제도로 육군대신이 반대하면 내각회의를 결정할 수 없고, 육군이 대신을 천거하지 않으면 내각을 조직할 수 없어 일본 정치는 육군에 크게 좌우되었다.
1913년 '현역'이라는 문구를 삭제하여, 예비역, 후비역, 퇴역 장관도 육군대신을 맡을 수 있게 되어 내각 조직이 상대적으로 용이해졌다.
1936년 히로타 내각 때 2·26 사건을 계기로 '현역'이라는 문구가 부활하여, 일본 내각은 육군의 견해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1945년 8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12월에 육군성이 제일복원성으로 개편되면서 육군대신은 폐지되었다.[2]
2. 1. 군부대신 현역 무관제
1900년(메이지 33년) 일본은 군부대신 현역 무관제를 도입하여 육군대신은 현역 장관(将官)만이 맡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제도로 인해 육군대신이 반대하면 내각 회의를 결정할 수 없었고, 육군이 대신을 천거하지 않으면 내각을 조직할 수 없게 되어, 일본 정치는 육군에 의해 크게 좌우되었다.[2]2. 2. 군부대신 현역 무관제 폐지 및 부활
1913년(다이쇼 2년) 6월 13일 정원표에서 '현역'이라는 문구를 삭제하여, 예비역, 후비역, 퇴역 장관도 육군대신을 맡을 수 있게 되어 내각 조직의 어려움이 줄어들었다.[2]1936년(쇼와 11년) 히로타 내각 때 2·26 사건을 계기로 '현역'이라는 문구가 부활하면서, 일본 내각은 육군의 견해를 거스르기 힘들게 되었다.[2]
2. 3. 육군대신 폐지
1945년(쇼와 20년) 8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12월에 육군성이 제1복원성으로 개편됨에 따라 육군대신은 폐지되었다.[2]현재 자위대(육상·해상·항공)를 관할하는 방위성의 방위대신(구 방위청 장관)은 원칙적으로 문민인 현직 국회의원이 맡는다.[2] (일본국 헌법 제66조 2항 및 제68조에 근거).
3. 역대 육군대신
4. 평가
육군경일본어은 일본 군부의 정치 개입과 군국주의화를 상징하는 직책으로, 일본의 근대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고 침략 전쟁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4. 1. 부정적 평가
군부대신 현역 무관제는 일본 군부의 정치 개입을 제도화하여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했다.[2] 육군대신은 일본의 군국주의화와 팽창 정책을 주도하며, 아시아·태평양 전쟁 등 침략 전쟁을 일으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한국의 입장에서 육군대신은 일제강점기 한국에 대한 억압과 수탈을 자행한 일본 군부의 핵심 인물로 인식된다.1900년에 시행된 군부대신 현역 무관제는 육군대신이 반대하면 내각 회의를 결정할 수 없고, 육군이 대신을 천거하지 않으면 내각을 조직할 수 없게 만들어 일본 정치가 육군에 의해 크게 좌우되게 만들었다.[2] 1936년 히로타 내각 때 이 제도가 부활하여 일본 내각은 육군의 견해를 거스르기 힘들게 되었다.[2]
5. 같이 보기
참조
[1]
서적
大艦巨砲主義の盛衰
朝日ソノラマ
1992
[2]
문서
[3]
간행물
歴代職員表(陸軍大臣・次官・総長等) 明治2年~昭和16年
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
防衛省防衛研究所
[4]
날짜
[5]
날짜
1897-09-02
[6]
날짜
1908-08-27
[7]
날짜
[8]
날짜
1942-02-17
[9]
날짜
[10]
날짜
[11]
날짜
194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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