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엘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자크 엘륄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신학자, 법학자로, 기술 사회, 정치, 선전, 기독교 등에 대한 비판적 사상으로 20세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12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나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레지스탕스 활동과 유대인 보호에 기여하여 '열방의 의인' 칭호를 받았다. 그는 보르도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칼 마르크스, 쇠렌 키르케고르, 칼 바르트 등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기술의 자율성과 정치의 환상, 선전의 폐해 등을 비판했다. 엘륄은 스스로를 기독교 무정부주의자로 규정하며, 폭력의 거부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그의 저서로는 『기술 사회』, 『선전』, 『기독교의 전복』 등이 있으며, 프랑스, 미국, 한국 등지에서 그의 사상이 재조명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프랑스계 열방의 의인 - 질베르 뒤랑
질베르 뒤랑은 프랑스의 철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로서, 상징적 상상력에 대한 독창적인 이론 정립, 신화 비평에서 신화 분석으로의 전환 시도, 프랑스 레지스탕스 참여, 그르노블 II 대학교 교수 재직, 상상의 연구 센터 공동 설립 등의 활동을 했으며, 《상상의 인류학적 구조》라는 대표 저서를 남기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훈했다. - 프랑스의 기독교 평화주의자 - 알베르트 슈바이처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독일 태생의 신학자, 음악가, 철학자, 의사, 선교사, 인도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로서, '생명에 대한 경외심' 철학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평화 운동에 참여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삶과 사상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 프랑스의 기독교 평화주의자 - 프레데리크 파시
프레데리크 파시는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평화 운동가로, 자유 무역과 노동자 권익 보호를 옹호하며 국제 평화 연맹 등을 설립하여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한 공로로 190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 반소비주의자 - 프레드릭 제임슨
프레드릭 제임슨은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학 평론가이자 문화 이론가로,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정치적 무의식』,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 등의 저서를 통해 문학, 문화, 역사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제시했다. - 반소비주의자 - 허먼 데일리
허먼 데일리는 정상 상태 경제 이론의 선구자이자 지속 가능한 경제 후생 지수(ISEW) 개발에 기여한 경제학자로서, 지속 가능한 발전과 사회적 형평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며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자크 엘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자크 엘륄 |
출생일 | 1912년 1월 6일 |
출생지 | 보르도, 프랑스 |
사망일 | 1994년 5월 19일 |
사망지 | 페사크, 프랑스 |
학문 | |
분야 | 서양 철학 |
시대 | 20세기 철학 |
사상적 경향 | 기독교 아나키즘 대륙 철학 1930년대 비순응주의자 |
영향 | 마르틴 루터 장 칼뱅 쇠렌 키르케고르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카를 마르크스 표트르 크로폿킨 미하일 바쿠닌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카를 바르트 니콜라이 베르댜예프 막스 베버 베르나르 샤르보노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
영향을 받은 인물 | 그레그 보이드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버나드 엘러 이반 일리치 시어도어 카진스키 랜달 말린 토머스 머턴 윌리엄 스트링펠로 폴 비릴리오 랭던 위너 존 저잔 빌렘 H. 반더버그 장클로드 기유보 패트릭 샤스테네 호세 보베 세르주 라투슈 |
주요 아이디어 | 기술 사회 |
교육 | 보르도 대학교 파리 대학교 |
기타 정보 | |
홀로코스트 관련 |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유대인 구조 의로움 노아의 일곱 가지 법 야드 바솀 |
관련 목록 | 국가별 의인 목록 오스트리아의 의인 목록 크로아티아의 의인 목록 체코의 의인 목록 독일의 의인 목록 헝가리의 의인 목록 리투아니아의 의인 목록 노르웨이의 의인 목록 폴란드의 의인 목록 (목록) 루마니아의 의인 목록 세르비아의 의인 목록 우크라이나의 의인 목록 |
2. 생애
자크 엘륄은 20세기 기술 문명을 비판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으며, 역사학, 사회학, 신학을 넘나들며 60여 권의 저서와 수백 편의 논문을 저술했다. 사회학자로서 파리의 사상계와 신학자로서 개신교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기술과 성서 텍스트에 대한 연구 및 ‘윤리에 관한 삼부작’[28]으로 인해 그의 사상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함께 거의 모든 저서가 번역되었다.[29]
최근 프랑스에서도 엘륄의 사상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으며, 엘륄과 관련된 학회와 심포지엄이 활발히 개최되고 있다. 엘륄이 사후에 프랑스에서 인정받는 이유는 현시대에 심각하게 부각되는 다양한 문제 및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전 세계적 금융 위기, 통제되지 않는 개발에 의한 환경 파괴,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기후 변화와 이상 기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핵 재난, 유전자변형 식품과 광우병, 동물 복제로부터 시작된 인간 복제의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위기와 위험에 직면하여 해결책을 찾고자 하지만,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상가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엘륄의 사상이 해결의 실마리와 단서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30]
엘륄은 "글로벌하게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한다"(Penser globalement, agir localement)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실천했다. 1960년대에는 프랑스 정부가 아키텐 지방에서 착수하려던 개발 사업에 항의하기 위해 베르나르 샤르보노와 연계하여 "아키텐 연안 보호 위원회(Comité de Défense de la Côte Aquitaine)"를 조직하고, 선구적인 환경 보호 활동을 전개했다. 이 활동으로 엘륄은 생태주의 사상가로도 알려지게 된다. 조제 보베는 이 시기에 엘륄의 사상, 특히 그 기술 사회 비판에서 영향을 받았다. 또한 같은 시기에 엘륄은 기 드보르의 "상황주의"(상황주의 운동)에 공감하여 이 운동에 접근하려 했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1912년 프랑스 보르도 근교 페삭에서 태어났다. 1930년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했다.[8] 1936년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930년대 양차 대전 사이 기간 동안, 지적 동료인 베르나르 샤르보노와 함께 "가스코뉴 인격주의"라고 불리는 활동을 전개했다. 이 시기에 프루동, 바쿠닌 등 아나키즘의 저작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1930년대 초, 엘륄의 세 가지 주요 영감의 원천은 칼 마르크스, 쇠렌 키르케고르, 카를 바르트였다. 엘륄은 조셉 벤자카르가 가르친 경제학 강의를 통해 칼 마르크스의 사상을 처음 접했다. 엘륄은 마르크스를 연구했고 그의 이론의 다작 해석가가 되었다. 같은 시기에 그는 또한 키르케고르의 기독교 실존주의에 접하게 되었다. 엘륄에 따르면 마르크스와 키르케고르는 그의 가장 큰 두 영향력이며, 그가 모든 작품을 읽은 유일한 두 작가였다.[5]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몽펠리에 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1938년부터 1940년까지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강사로 재직했다. 1940년 비시 정권에 대한 비판 연설로 강사직에서 면직되었다. 1943년 법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1940년부터 1944년까지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다.[4]
대학 시절 카를 마르크스와 기독교 양쪽과의 결정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그는 이후 항상 이 둘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사고하게 되었다. 신학적으로는 칼 바르트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으며, 후에 엘륄이 평신도로서 전개하게 되는 신학 사상은 바르트 신학과의 대화, 그 비판적 계승이라는 측면을 지녔다.
2. 2. 학문 및 사회 활동
1930년,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하였다.[31]1936년,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37년-1938년, 몽펠리에 대학교 강사로 재직하였다.
1938년-1940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강사로 재직하였다.
1940년, 비시 정권에 대한 비판 연설로 인해 강사직에서 면직되었다.[32]
1943년, 법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였다.
1940년-1944년,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하였다.[32]
1944년-1945년, 보르도 시 부시장을 역임하였다.[33]
1945년-1980년, 보르도 대학교 법학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1947년-1980년, 보르도 정치대학(IEP) 교수로 재직하였다.
1956년-1970년, 프랑스 개혁교회 ‘전국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31]
1958년-1977년, 청소년 범죄 예방 활동에 참여하였다.[34]
1973년-1977년, 아키텐 연안 개발 반대 환경보호 투쟁에 참여하였다.[35]
1994년, 페삭에서 82세의 나이로 서거하였다.
엘륄은 프랑스 개신교 내에서 프랑스 개혁교회 전국위원을 맡아 프랑스 개혁교회를 변혁시키려는 운동을 이끌었으며, 평신도 사역자로서 고향 페삭에서 작은 교회를 맡아 목회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31]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강사 시절 학생들 앞에서 독일의 괴뢰 정부인 비시 정권의 수반 필리프 페탱 원수를 비판하여 면직되었다.[32] 보르도로 돌아온 그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32] 이후 보르도 시청에서 부시장을 잠시 역임하였으나 관료주의의 한계를 느끼고 사임하였다.[33] 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꼈지만, 해방 직후에는 정치 활동에 잠시 참여하기도 하였다.[33]
엘륄은 프랑스에서 최초로 청소년 범죄 예방 클럽을 만들어 청소년 범죄 예방 활동에 참여하였다.[34] 또한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 연안 개발에 반대하는 환경보호 투쟁에 가담하여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35] 그는 젊은 시절 인격주의 운동에 참여하여, 프랑스 남서부 지방을 중심으로 인격주의 운동 소그룹들을 결성하고, 개인과 집단의 변화를 통해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였다.[36]
2. 3. 말년
엘륄은 1994년 5월 19일 페삭에서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5] 1991년 4월 16일 아내 이베트가 사망한 후 깊은 슬픔에 빠져있었다.[14]3. 사상
엘륄은 20세기 기술 문명을 비판한 사상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학, 사회학, 신학을 넘나들며 60여 권의 저서와 수백 편의 논문을 저술했다.[28] 파리 사상계와 개신교계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기술과 성서 텍스트 연구, '윤리에 관한 삼부작'[28]으로 인해 그의 사상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거의 모든 저서가 번역되었다.[29]
최근 프랑스에서도 엘륄 사상 연구가 활발해지고 관련 학회와 심포지엄이 개최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 금융 위기, 환경 파괴, 기후 변화, 핵 재난, 유전자 변형 식품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30]에 대한 해결책을 엘륄 사상에서 찾으려는 노력[30]으로 볼 수 있다.
엘륄의 사상은 사회학적 측면과 신학적 측면으로 나뉘지만,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르크스 사상과 성서에서 동시에 영향[37]을 받았으며, 변증법적 접근 방식[37]을 통해 자신의 연구를 진행했다.
엘륄은 "존재한다는 것은 저항하는 것이다"[47]라는 신조를 가지고 기술 체계에 순응하는 삶을 비판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자유'[48]를 추구했다.
3. 1. 사회학적 측면
엘륄의 저서와 사상은 사회학적 측면과 신학적 측면으로 뚜렷이 구분되지만, 이 두 측면은 하나의 전체를 이루면서 통일성과 일관성을 유지한다. 그는 마르크스 사상과 성서라는 두 가지 영향[37]을 받았다. 마르크스 사상은 현실을 해석하는 도구[37]가 되었고, 성서는 개인적인 문제와 삶에 대한 설명을 제시[37]했다. 그는 이 둘을 변증법적 접근 방식으로 통합하여 연구를 진행했다.[37]사회학적 측면에서 엘륄은 기술, 정치, 선전, 혁명, 국가, 예술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분석[38]했다. 신학적 측면에서는 성서 연구와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었다.[38] 엘륄은 사회학적 연구를 통해 현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신학적 연구를 통해 현대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망했다.[38]
엘륄은 마르크스의 저서를 탐독한 혁명 이론가[40]였지만, 마르크스 사상의 주요 동향과는 거리를 두었다.[40] 그는 마르크스 사상에서 이데올로기와 ‘화석화된 사상’만을 보았기 때문이다.[40]
엘륄에게 '자유'는 그의 삶과 저작 전체의 중심 개념[41]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확신[41]했으며, 과학적 낙관주의, 기술적 진보에 대한 맹목적 신뢰 등에 맞선 개인의 지속적인 투쟁을 강조했다.[41]
엘륄은 사회학적 저서를 통해 현대 사회의 현상들을 분석하고, 그 현상들이 종속된 숨겨진 논리에 관심을 집중했다.[43]
3. 1. 1. 기술 비판
엘륄의 사회학적 측면에서의 중심 사상은 기술 또는 기술 현상과 관련된다. 그는 현시대와 세상에서 결정 요인이 되어 버린 기술의 위상을 설명하고,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체계가 되어버린 기술 체계 속에서의 인간의 상황을 묘사하며, 기술 발달과 진보지상주의를 옹호하는 ‘기술 담론’의 거짓을 지적한다.[39]엘륄의 논쟁적인 주저인 『기술 사회』는 현재 과학기술학(STS) 및 기술 철학 분야에서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참조 틀이 되고 있다. 이 책에서 엘륄은, 글로벌한 확장력을 가진 "기술"의 다이내믹스가 사회의 모든 영역 구석구석까지 침투하여 인간 존재가 그 구조 연관에 강제적으로 편입되어 가는 상황을 묘사했다. 기술의 "자율성", 그 자기 추진적・자기 생산적인 발전력에 대해 거의 전면적인 "부정"을 던지는 그의 주장은, 현대에서의 인간 존재의 "수평화"를 철저하게 비판한 쇠렌 키르케고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 소외의 문제를 날카롭게 통찰한 청년 마르크스, 근대 사회의 합리화의 역설을 일찍이 냉철하게 투시한 막스 베버, 근대의 "계몽"과 "야만"의 변증법을 꿰뚫어 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등, 모더니티의 행방을 근본적으로 질문한 사상가들의 사상과 일치한다.
『기술 사회』는 1954년 출간 당시 프랑스에서는 거의 반향을 얻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64년에 로버트 머튼의 서문이 붙은 『기술 사회』 영문판이, 멋진 신세계의 저자 올더스 헉슬리의 주선으로 간행되었고, 동시대의 미국에서 계몽적인 기술 비판의 서적으로, 테오도어 로작, 허버트 마르쿠제 등에 의한 일련의 체제 비판 서적과 함께, 널리 주목을 받게 되었다. 기술의 자율성과 인간의 에이전시 상실을 주제로 하는 엘륄의 사상은, 현대 사회의 기본적인 성격과 그곳에서 인간이 처한 조건을 고찰하기 위한, 다양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엘륄의 가차 없는 사회 비판은, 기술 사회의 막다른 골목으로부터의 명쾌한 탈출구나 그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고,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 점진적인 사회 개량에 대한 지향도 기본적으로 결여되어 있다는 이유로, 종종 격렬한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미래 쇼크』에서, 엘륄을 "일군의 미래 혐오자들과 기술 공포증 환자"의 "가장 극단적인" 논자, "프랑스의 종교 신비가"로 일축하고 있다. 현재에도, 사회 구성주의의 입장에서 테크놀로지를 논하는 STS 논자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엘륄의 기술론은 테크놀로지의 자율성과 구속력을 부당하게 과장한 기술 결정론의 전형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기술 사회』 이후, 엘륄의 기술 비판은, 1962년의 『선전』 (''Propagandes''), 1965년의 『정치적 환상』 (''L'illusion politique''), 1977년의 『기술 시스템』 (''Le système technicien''), 1988년의 『기술론의 허세』 (''Le bluff technologique'') 등의 저작에서 전개되었다.
3. 1. 2. 정치 비판
엘륄은 정치를 통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기를 권고한다.[39] 그는 현대 기술 사회에서 기술과 이미지에 의해 짓밟힌 말, 현대 세상의 새로운 신화와 정치적 종교, 교묘하게 모습을 바꾼 부르주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통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의 소외 현상 등을 분석하고 비판한다.[40]엘륄은 자유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문화적 동화(또는 사회학적 속박)를 통해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에 저항하면서, 이것이 인류와 관련된 어떤 우월한 중요성 때문이라는 개념을 거부한다. 그는 현대적 노예화는 권위, 의미 부여, 가치가 인류와 인류가 만들어내는 신념과 제도(국가, 국가, 돈, 기술, 예술, 도덕, 정당 등)에 어떻게 부착되는지를 표현한다고 말한다. 인류의 업적은 숭배되고 찬양되는 동시에 인류를 노예로 만든다.
3. 1. 3. 선전 비판
엘륄은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선전: 인간의 태도 형성''에서 미디어의 힘을, 기술이 인간의 운명을 통제하는 또 다른 예로 보았다.[39] 그는 변화의 메커니즘으로서 미디어는 시장이나 국가의 특정 이익에 의해 거의 예외 없이 조작된다고 주장했다.[39]엘륄은 ''선전''에서 "과도한 데이터는 독자나 청취자를 계몽하지 못하고 그를 압도한다. 그는 모든 것을 기억하거나, 조정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정신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면, 그는 단지 그것들로부터 일반적인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리고 사실이 더 많이 제공될수록, 이미지는 더 단순해진다"라고 주장한다.[39] 또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사실의 그물에 걸려든다. 그들은 다른 영역이나 다른 주제에 대해 선택이나 판단을 할 수도 없다. 따라서 현대 정보의 메커니즘은 개인에게 일종의 최면을 유발하여 정보가 그를 위해 제시한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라고 지적한다.[39] 엘륄은 "진실로 제시된 것에 대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합리적인 선전은 이처럼 비합리적인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선전, 즉 사회적 힘에 의한 개인에 대한 내부 통제로 남게 되며, 이는 그를 그 자신으로부터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결론짓는다.[39]
엘륄은 "모든 개인적인 열정은 그 열정의 대상에 대한 모든 비판적 판단을 억누르는 것으로 이어진다"라고 말한 쥘 모네로에 동의했다.[39]
엘륄은 개신교 협회의 초청으로 1934년과 1935년 두 차례 독일을 방문했다. 그는 두 번째 방문에서 호기심으로 나치 회의에 참석했는데, 이는 훗날 그의 선전 연구와 그룹 통합 능력에 대한 고찰에 영향을 미쳤다.[40]
3. 2. 신학적 측면
엘륄의 저서와 사상은 사회학적 측면과 신학적 측면으로 뚜렷이 구분되지만, 이 두 측면은 하나의 전체를 이루며 통일성과 일관성을 유지한다.[37] 그는 마르크스 사상과 성서라는 두 가지 영향을 동시에 받았다. 마르크스 사상은 이 세상의 현실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도구였고, 성서는 마르크스 사상이 설명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문제와 삶에 대한 설명을 제시했다. 그는 이 둘을 종합하지 않고 변증법적 접근 방식으로 자신의 연구를 이끌었다.[37]엘륄은 신학적 측면에서 창세기, 열왕기상하, 전도서, 요나서, 복음서, 요한계시록 같은 신구약성서 몇 권을 대상으로 성서 연구를 했다. 또한 기도, 자유, 소망, 돈, 폭력 같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신학적, 윤리적 고찰을 했다. 그는 신학적 연구 없이는 현대 사회를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없지만, 사회학적 고찰 없이는 신학적 연구를 수행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38]
엘륄은 기독교 신앙이 기술 체계 밖에 존재하며, 닫힌 세상에 돌파구를 열 수 있는 초월적인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에 의거한다고 보았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기술적 지배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강조했다.[46] 엘륄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해방은 인간이 결정지어짐과 소외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해방되도록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46]
엘륄은 프랑스 개혁 교회의 존 칼뱅과 울리히 츠빙글리와 같은 사상가들의 정신적 계승자였지만, 개혁 교리 전통에서 상당히 벗어났다. 그는 칼 바르트의 저작과 쇠렌 키에르케고르가 비판한 유럽 국가 기독교 비판을 활용했으며, 일부에서는 그를 변증법적 신학의 열렬한 해설자 중 한 명으로 평가하기도 한다.[16] 엘륄은 신은 죽었다 신학을 비판하고, 원죄에 대한 전통적인 기독교적 이해를 비법률적으로 갱신하며 인간 능력에 대한 철저한 비관주의를 옹호했다. 그는 스스로를 기독교 보편주의자로 선언하며,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았다고 주장했다.
3. 2. 1. 기독교 비판
엘륄은 자신의 신학적 저서들을 통해 기독교에 대해 근본적이고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한다.[44] 그는 기독교가 기원후 3세기부터 국가와 결탁함으로써 복음적인 메시지를 완전히 와해시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독교는 본래 모습에서 벗어나 세상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순응하고, 그리스도인에게 그러한 맹목적인 순응 행위를 강요하면서 모순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엘륄은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44]엘륄에게 기독교 신앙은 기술적인 지배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46]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해방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결정지어짐과 소외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엘륄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인간을 참된 자유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기술의 신성함을 더는 숭배하지 않고 기술 사회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이 도구들을 섬기는 대신 이 도구들을 인간을 위해 사용할 수 있고,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은 도구들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엘륄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해방되고, 기술 사회의 모든 우상에 대해 그 신성함을 떨어뜨리는 길로 들어가며, 자신의 삶의 방식을 통해 모든 희망과 절망을 넘어서는 소망을 증언하게 된다고 말한다.[46]
엘륄은 존 칼뱅과 울리히 츠빙글리와 같은 사상가들의 정신적 계승자였지만, 개혁 교리의 전통에서 상당히 벗어났다. 그는 칼 바르트의 저작과 쇠렌 키에르케고르가 비판한 유럽 국가 기독교 비판을 활용했으며, 일부에서는 그를 변증법적 신학의 열렬한 해설자 중 한 명으로 평가하기도 한다.[16]
엘륄은 신은 죽었다 신학을 비판했다. 그는 이 학파와 하비 콕스와 같은 추종자들이 기독교 교리가 아닌 현실, 즉 인간의 종교성, 국가, 물질주의, 과학주의, 기술, 경제와 같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엘륄은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 그러한 타락한 이미지나 권력을 사용하며, 그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죄에 대한 전통적인 기독교적 이해를 비법률적으로 갱신하고 인간 능력에 대한 철저한 비관주의를 옹호했다.
엘륄은 구원, 하나님의 주권, 윤리적 행위에 대한 견해를 옹호하며, "주류" 의견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했다. 그는 스스로를 기독교 보편주의자로 선언하며, "태초부터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았으며, 그들이 무엇을 했든 간에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그분의 은혜를 주셨다"고 썼다. 그는 하나님의 극도로 높은 초월성,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행할 수 있는 완전히 자유로우신 분이라는 점을 근본적으로 받아들여 이러한 입장을 형성했다.
3. 2. 2. 기독교적 가치
엘륄은 기독교인이 추구해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로 '소망'과 '자유'를 제시한다.[45] 그는 이 세상에 순응하지 않고 특별한 역할을 하도록 부름받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향한 소명과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엘륄의 신학 사상은 그의 사회학적 사상, 특히 기술 사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의 기술 사상에서 제기되는 주요 문제점은 기술 체계가 전체성과 통일성을 지향하며, 모든 활동을 포괄하고 자체 논리를 가지며 모든 문화를 동화시키는 전체적인 체계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술 체계와 관련된 변증법적 요인이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엘륄은 기술 체계가 전체적이라면 변증법적 요인은 그 외부에 존재해야 하며, 오직 '초월자'만이 기술 체계 외부에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45]엘륄은 자신의 신학 사상을 통해 기독교 신앙이 기술 체계 밖에 존재하며 닫힌 세상에 돌파구를 열 수 있는 초월적인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에 의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기술적 지배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보았다. 엘륄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해방은 인간이 결정지어짐과 소외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만이 인간을 참된 자유로 이끌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기술의 신성함을 숭배하지 않고 기술 사회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즉, 도구를 섬기는 대신 인간을 위해 사용하고, 유용하지 않은 도구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엘륄은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해방되도록 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인간은 기술 사회의 모든 우상에 대해 그 신성함을 떨어뜨리는 길로 들어가야 하며, 자신의 삶을 통해 모든 희망과 절망을 넘어서는 소망을 증언해야 한다고 말한다.[46]
엘륄은 "존재한다는 것은 저항하는 것이다"라는 신조[47]를 가지고 기술 체계 속에서 세상에 순응하는 삶의 태도를 비판하고, 이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하는 삶을 실천했다. 그는 기술 체계에 사로잡힌 인간의 상황에 직면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자유'를 제시하고, 이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자신의 삶과 사상의 바탕이라고 여겼다.[48]
엘륄은 프랑스 개혁 교회 사상가들인 존 칼뱅과 울리히 츠빙글리의 정신적 계승자였지만, 개혁 교리 전통에서 상당히 벗어났다. 그는 칼 바르트의 저작과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유럽 국가 기독교 비판을 활용하여 자신의 신학적 아이디어를 명확히 했다. 그는 변증법적 신학의 열렬한 해설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16] 엘륄은 신은 죽었다 신학 운동을 비판했는데, 이 운동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전통적인 기독교 개념을 원시적인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은 긍정했지만 그가 인간 이상을 대표한다는 생각은 거부했다. 엘륄은 이 학파와 하비 콕스와 같은 추종자들이 기독교 교리가 아닌 현실, 즉 인간의 종교성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18]
엘륄은 원죄에 대한 전통적인 기독교적 이해를 비법률적으로 갱신하고 인간 능력에 대한 철저한 비관주의를 옹호했다. 그는 『도시의 의미』에서 이러한 관점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냈다. 또한, 기독교 보편주의를 선언하며,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았다고 주장했다.
3. 2. 3. 변증법적 신학
엘륄은 마르크스 사상과 성서라는 두 가지 영향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변증법적 접근 방식으로 자신의 연구 전체를 이끌었으며, 사회학적 측면과 신학적 측면 두 영역에서 연구를 진행했다.[37]엘륄의 신학적 저술은 기독교에 대한 근본적이고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한다. 그는 기독교가 기원후 3세기부터 국가와 결탁하여 복음적 메시지를 완전히 와해시켰다고 주장한다. 엘륄은 그리스도인이 추구할 가장 소중한 가치로 '소망'과 '자유'를 제시한다.[44] 그의 신학 사상은 기술 사상으로 대표되는 사회학적 사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기술 체계가 전체성과 통일성을 지향하며, 모든 활동을 포괄하고 자체의 고유한 논리를 갖고 있으며 모든 문화를 점진적으로 동화시키는 전체적인 체계라면, 기술 체계와 관련된 변증법적 요인은 외부에 존재해야 하는데, '초월자'만이 기술 체계 외부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45]
엘륄의 기독교 신앙은 기술 체계 밖에 존재하고 닫힌 세상에 돌파구를 열 수 있는 초월적인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에 의거한다. 그에게 기독교 신앙은 기술적인 지배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해방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결정지어짐과 소외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인간을 참된 자유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해방되도록 되어 있으며, 기술 사회의 모든 우상에 대해 그 신성함을 떨어뜨리는 길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통해 모든 희망과 절망을 넘어서는 소망을 증언하기로 되어 있다.[46]
엘륄은 “존재한다는 것은 저항하는 것이다”[47]를 신조로 삼아 기술 체계 속에서의 세상에 순응하는 삶과 태도를 비판하면서, 거기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하는 삶을 실천한다. 그는 존 칼뱅과 울리히 츠빙글리와 같은 사상가들의 정신적 계승자였지만, 개혁 교리의 전통에서 상당히 벗어났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아이디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주로 칼 바르트와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저작을 활용했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은 그를 변증법적 신학의 더 열렬한 해설자 중 한 명으로 여겼다.[16]
엘륄은 신은 죽었다 신학을 비판했다. 그는 원죄에 대한 전통적인 기독교적 이해를 비법률적으로 갱신하고 인간 능력에 대한 철저한 비관주의를 옹호했다. 엘륄은 스스로를 기독교 보편주의자로 선언하며, "태초부터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았으며, 그들이 무엇을 했든 간에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그분의 은혜를 주셨다"고 썼다.
3. 3. 아나키즘과의 관계
자크 엘륄은 스스로를 기독교 무정부주의자로 규정했다. 그는 무정부주의를 폭력의 절대적인 거부로 보았으며, 예수를 사회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로 간주했다.[37] 엘륄은 국가를 현대 시대의 주요 폭력 원인으로 지목하고, 국가를 칭송하거나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37] 그는 인간의 정부는 대체로 무의미하며,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계시가 충분하고 배타적이라고 주장했다. 즉,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며, 이는 다른 법들을 불필요하거나 심지어 하나님의 계시에 반하는 것으로 만든다고 보았다.엘륄은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을 국가와 정치 권력으로 해석했다.[21] 그는 ''무정부주의와 기독교''에서 현재(1991년 기준) 국가의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인 부정적 입장, 즉 무정부주의로만 대응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엘륄은 비현실적인 무정부주의 사회나 국가의 완전한 파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나코-생디칼리즘과 유사하게 대안적인 풀뿌리 제도를 창출함으로써 폭력의 절대적 거부에 대한 헌신을 통해 현실적인 형태의 무정부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10]
엘륄은 모든 기독교인이 모든 상황에서 폭력을 삼갈 것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폭력이 사랑의 하나님과 화해될 수 없으며, 따라서 진정한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폭력을 선택하는 기독교인은 자유의 길을 포기하고 필연성의 길을 선택하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보았다.[37]
엘륄은 사회 정의와 진정한 자유가 양립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는 기독교인이 정의를 위한 운동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정의를 위한 투쟁이 필연적으로 모든 형태의 자유에 대한 투쟁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3] 그는 기독교인이 행동할 때, 그것이 특별히 기독교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엘륄은 오직 하나님만이 정의를 세울 수 있으며, 종말에 왕국을 세울 분도 하나님뿐이라고 믿었다. 그는 사회주의가 정의를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이며, 사회주의는 선택적인 정의만을 추구한다고 비판했다.[24]
4. 영향
엘륄은 20세기 기술 문명을 비판한 사상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학, 사회학, 신학을 넘나들며 60여 권의 저서와 수백 편의 논문을 저술했다.[28] 파리 사상계와 프랑스 개신교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기술과 성서 텍스트에 대한 연구 및 ‘윤리에 관한 삼부작’[28]으로 인해 그의 사상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더불어 거의 모든 저서가 번역되었다.[29]
최근 프랑스에서도 엘륄 사상 연구가 활기를 띠고, 관련 학회와 심포지엄이 활발히 개최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적 금융 위기, 통제되지 않는 개발에 의한 환경 파괴,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기후 변화와 이상 기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핵 재난, 유전자 변형 식품과 광우병, 동물 복제로부터 시작된 인간 복제의 가능성 등 현시대에 심각하게 부각되는 다양한 문제 및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위기, 위험, 재난에 직면하여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술을 중심축으로 하는 엘륄의 사상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와 단서가 발견되었다고 볼 수 있다.[30]
영국에서 활동하는 프랑스-그리스 출신 정치학자이자 톨스토이계 기독교 아나키스트인 알렉상드르 크리스토야노풀로스(Alexandre Christoyannopoulos)도 현대 기독교 아나키즘과 평화주의에 미친 엘륄의 공헌을 인정하며, 그를 톨스토이 이후 기독교 아나키즘 사상의 핵심 인물로 평가한다.
4. 1. 프랑스
엘륄은 20세기 기술 문명을 비판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으며, 역사학, 사회학, 신학 분야에서 60여 권의 저서와 수백 편의 논문을 저술하였다.[28] 파리의 사상계와 프랑스 개신교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그의 사상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함께 거의 모든 저서가 번역되었다.[29]최근 프랑스에서도 엘륄의 사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관련 학회와 심포지엄이 개최되고 있다. 이는 현시대에 심각하게 부각되는 다양한 문제 및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30] 전 세계적 금융 위기, 환경 파괴, 기후 변화, 핵 재난, 유전자변형 식품, 광우병, 인간 복제 가능성 등 다양한 위기에 직면하여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엘륄의 사상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가 발견되었다고 볼 수 있다.[30]
엘륄은 프랑스 개신교 내에서 프랑스 개혁교회 전국위원을 맡아 교회를 변혁시키려는 운동을 이끌었으며, 평신도 사역자로서 고향에서 작은 교회를 맡아 목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31]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강사 시절 비시 정부의 수반 페탱 원수를 비판하여 면직된 후,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해방을 맞이했다.[32] 해방 직후 보르도 부시장을 잠시 역임했으나 관료주의의 한계를 느끼고 사임했으며, 정치에 대해 환멸을 드러냈지만 해방 직후에는 정치 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33]
엘륄은 프랑스 최초로 청소년 범죄 예방 클럽을 만들어 청소년 범죄 예방 활동에 참여했으며,[34] 아키텐 연안 개발에 반대하는 환경보호 투쟁에도 가담하여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35] 젊은 시절에는 인격주의 운동에 참여하여 개인과 집단의 변화를 통해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했다.[36]
프랑스에서는 보르도 대학교 법학대학 및 보르도 정치대학과 연계된 학구적 서클, 소규모 개신교 사회, 성장 반대론자를 포함한 급진적 환경 운동권에서 엘륄의 사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엘륄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유럽의회 의원 조제 보베, 정치가 노엘 마메르, 작가 장클로드 기유보, 철학자 도미니크 부르, 경제학자 세르주 라투슈 등이 있다.[49]
4. 2. 미국
20세기 기술 문명을 비판한 사상가로 알려진 엘륄은 미국에서 그의 기술과 성서 텍스트에 대한 연구 및 '윤리에 관한 삼부작'[28]으로 인해 그의 사상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더불어 거의 모든 저서가 번역되었다.[29]미국에서는 기술에 의해 생겨난 인간성 말살, 소음, 오염, 삶의 기계화 등 기술적 진보의 폐해가 이미 간파되었기 때문에, 미국 지식인들은 기술에 대한 엘륄의 뛰어난 분석에 주목했다. 미국인들이 엘륄의 저서들과 사고들을 발견하기 위해 따른 길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신학적인 길이다. 존 하워드 요더와 베르나드 엘러 같은 재세례파 교도들과 메노파 교도들이 엘륄의 논지를 논의했으며, 이들과 엘륄의 논지는 "기독교 아나키즘"이라는 형태에 수렴한다. 또한 서저너즈 공동체 운동의 짐 월리스 같은 상당수의 젊은 복음주의자들도 엘륄을 발견하고, 자신들의 급진적인 기독교 전통에 엘륄을 더하여 그 전통을 키워나갔다. 특히, 미국에서 엘륄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집단 중에는 급진적인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으며, 엘륄은 그들의 영감의 원천 중 하나이다. 두 번째는 ‘기술 사회학’이라는 길이다. 미국 전역에는 정치학, 사회학, 매스미디어, 기술 철학 같은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엘륄의 관점과 논지에 깊이 영향을 받은 작가와 교수, 사회 활동가들이 나타난다.[50]
이반 일리치는 엘륄의 대표적인 저서 『기술 혹은 시대의 쟁점』을 영어로 번역한 『기술 사회』를 읽고 충격을 받아 엘륄 저작의 진가를 발견한다. 이후 10년간 그는 환경, 사회 구조, 문화, 종교 등에 대한 기술 수단의 지배에서 비롯된 사회적 결과들을 연구한다. 그는 30여 년 전부터 자신의 행로에서 결정적으로 방향을 바꾸게 한 것이 엘륄이며, 자신은 엘륄이 앞서간 족적을 따라온 것이라고 밝힌다.[51]
4. 3. 한국
엘륄은 미국에서 기술과 성서 텍스트에 대한 연구 및 ‘윤리에 관한 삼부작’[28]으로 인해, 그의 사상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더불어 거의 모든 저서가 번역되었다.[29]미국에서는 기술로 인해 발생한 인간성 말살, 소음, 오염, 삶의 기계화 등 기술적 진보의 폐해가 이미 나타났기 때문에, 미국 지식인들은 기술에 대한 엘륄의 뛰어난 분석에 주목했다. 미국인들이 엘륄의 저서들과 사상을 접하게 된 경로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신학적인 길이다. 존 하워드 요더와 베르나드 엘러 같은 재세례파 교도들과 메노파 교도들이 엘륄의 논지를 논의했으며, 이들과 엘륄의 논지는 "기독교 아나키즘"이라는 형태로 수렴된다. 또한 서저너즈 공동체 운동의 짐 월리스 같은 젊은 복음주의자들도 엘륄을 자신들의 급진적인 기독교 전통에 더하여 발전시켜 나갔다. 특히, 미국에서 엘륄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집단 중에는 급진적인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으며, 엘륄은 그들에게 영감의 원천 중 하나였다. 두 번째는 ‘기술 사회학’이라는 길이다. 미국 전역에는 정치학, 사회학, 매스미디어, 기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엘륄의 관점과 논지에 깊이 영향을 받은 작가, 교수, 사회 활동가들이 나타났다.[50]
이반 일리치는 엘륄의 대표적인 저서 『기술 혹은 시대의 쟁점』을 영어로 번역한 『기술 사회』를 읽고 충격을 받아 엘륄 저작의 진가를 발견한다. 이후 10년간 그는 환경, 사회 구조, 문화, 종교 등에 대한 기술 수단의 지배에서 비롯된 사회적 결과를 연구한다. 그는 30여 년 전부터 자신의 행로를 결정적으로 바꾸게 한 것이 엘륄이며, 자신은 엘륄이 앞서간 족적을 따라온 것이라고 밝힌다.[51]
5. 저서
출판 연도 | 원제 | 한국어 번역 출판 |
---|---|---|
1936 | Étude sur l'évolution et la nature juridique du Mancipium (thèse de doctorat) | 만시피움의 변화와 사법적 성격에 대한 연구(박사학위 논문) |
1946 | Le fondement théologique du droit | 『자연법의 신학적 의미』, 대장간, 2013, 강만원 옮김 |
1948 | Présence au monde moderne, Problèmes de la civilisation post-chrétienne |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대장간, 2010, 박동열 옮김 |
1952 | Le livre de Jonas | 『요나의 심판과 구원』, 대장간, 2010, 신기호 옮김 |
1954 | Lhomme et largent | 『하나님이냐 돈이냐』, 대장간, 2019, 양명수 옮김 |
1954 | La Technique ou l'Enjeu du siècle | 『기술의 역사』, 한울, 1996, 박광덕 옮김 |
1955 | Histoire des institutions, t. 1 & 2, L'Antiquité | 제도사 1-2권,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
1956 | Histoire des institutions, t. 3, Le Moyen Age | 제도사 3권, 중세 |
1956 | Histoire des institutions, t. 4, XVIe siècle-XVIIIe siècle | 제도사 4권, 16-18세기 |
1956 | Histoire des institutions, t. 5, Le XIXe siècle | 제도사 5권, 19세기 |
1962 | Propagandes | 『선전』, 대장간, 2012, 하태환 옮김 |
1963 | Fausse présence au monde moderne | 현대 세상에서 잘못된 현존 |
1964 | Le vouloir et le faire, Recherches éthiques pour les chrétiens | 『원함과 행함』, 대장간, 2018, 김치수 옮김 |
1965 | L'Illusion politique | 『정치적 착각』, 대장간, 2011, 하태환 옮김 |
1966 | Exégèse des nouveaux lieux communs | 새로운 사회 통념에 대한 주석 |
1966 | Politique de Dieu, politiques de l'homme | 『하나님의 정치와 인간의 정치』, 대장간, 2012, 김은경 옮김 |
1967 | Histoire de la propagande | 선전의 역사 |
1967 | Métamorphose du bourgeois | 부르주아의 변신 |
1969 | Autopsie de la révolution | 『혁명의 해부』, 대장간, 2012, 황종대 옮김 |
1971 | L'impossible prière | 『우리의 기도』, 대장간, 2015, 김치수 옮김 |
1971 | Jeunesse délinquante, Une expérience en province (avec Yves Charrier) | 비행 청소년, (이브 샤리에와) 지방에서 경험 |
1972 | Contre les violents | 『폭력에 맞서』, 대장간, 2012, 이창헌 옮김 |
1972 | De la Révolution aux Révoltes | 『혁명에서 반란으로』 , 대장간, 2019, 안성헌 옮김 |
1972 | L'Espérance oubliée | 『잊혀진 소망』, 대장간, 2009, 이상민 옮김 |
1973 | Éthique de la liberté, volume 1. | 『자유의 윤리1:현대의 인간 소외와 그리스도의 자유』 , 대장간, 2019, 김치수 옮김 |
1973 | Les nouveaux possédés | 『새로운 신화에 사로잡힌 사람들』 , 대장간, 2021, 박동열 옮김 |
1974 | Éthique de la liberté, volume 2. | 『자유의 윤리 2: 참여와 이탈』, 대장간, 2019, 김치수 옮김 |
1975 | Sans feu ni lieu: signification biblique de la Grande Ville | 『머리 둘 곳 없던 예수』, 대장간, 2013, 황종대 옮김 |
1975 | L'Apocalypse: Architecture en mouvement | 『요한계시록 주석』, 한들, 유상현 옮김 |
1975 | Trahison de l'Occident | 『서구의 배반』, 솔로몬, 2008, 박건택 옮김 |
1977 | Le Système technicien | 『기술 체계』, 대장간, 2013, 이상민 옮김 |
1979 | L'idéologie marxiste chrétienne |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 대장간, 2011. 곽노경 옮김 |
1980 | Lempire du non-sens, Lart et la société technicienne | 『무의미의 제국』, 대장간, 2013, 하태환 옮김 |
1980 | La foi au prix du doute, « Encore quarante jours...» | 『의심을 거친 믿음』, 대장간, 2013, 임형권 옮김 |
1981 | La Parole humiliée | 『굴욕당한 말:하나님은 말한다』, 대장간, 2014, 박동열, 이상민 옮김 |
1982 | Changer de révolution, L'Inéluctable Prolétariat | 『인간을 위한 혁명』, 대장간, 2012, 하태환 옮김 |
1984 | Éthique de la Liberté, volume 3: « Les Combats de la liberté » | 『자유의 투쟁』, 솔로몬, 2008, 박건택 옮김 |
1984 | La Subversion du christianisme | 『뒤틀려진 기독교』, 대장간, 2012, 박동열, 이상민 옮김 |
1985 | Conférence sur l'Apocalypse de Jean | 요한계시록 강연 |
1986 | Un chrétien pour Israël | 이스라엘을 위한 그리스도인 |
1987 | Ce que je crois | 『개인과 역사와 하나님』, 대장간, 2015, 김치수 옮김 |
1987 | La raison dêtre, Méditation sur lEcclésiaste | 『존재의 이유: 전도서 묵상』, 대장간, 2016, 김치수 옮김 |
1987 | La Genèse aujourd'hui | 오늘날의 창세기 |
1988 | Anarchie et Christianisme. | 『무정부주의와 기독교』, 대장간, 2011, 이창헌 옮김 |
1988 | Le bluff technologique | 기술담론의 허세 |
1991 | Ce Dieu injuste...? Théologie chrétienne pour le peuple d'Israël | 『하나님은 불의한가?』, 대장간, 2010, 이상민 옮김 |
1991 | Si tu es le Fils de Dieu: Souffrances et tentations de Jésus |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대장간, 2010, 김은경 옮김 |
1992 | Déviances et déviants dans notre société intolérante | 너그럽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일탈과 일탈자 |
1992 | L'Homme à lui-même, correspondance avec Didier Nordon | 참 모습 그대로의 인간, 디디에 노르동과의 서신 교환 |
1995 | Silences, Poèmes | 침묵, 시 |
1996 | Oratorio, Les quatre cavaliers de l'Apocalypse | 오라토리오, 요한계시록의 네 기사 |
2003 | La pensée marxiste | 『마르크스 사상』, 대장간, 2013, 안성헌 옮김 |
2004 | Islam et judéo-christianisme | 『이슬람과 기독교』, 대장간, 2009 |
2007 | Les successeurs de Marx | 『마르크스의 후계자』, 대장간, 2015, 안성헌 옮김 |
2007 | Penser globalement, agir localement | 총체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
2008 | Ellul par lui-même, Entretiens avec Willem H, Vanderburg (Perspectives on our age, Jacques Ellul speaks on his life and work) |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대장간, 2010, 신광은, 김재현 옮김 |
2008 | Israël, Chance de civilisation | 이스라엘, 문명의 기회 |
2013 | Pour qui, pour quoi travaillons-nous ? |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우리는 일하는가? |
2014 | Théologie et Technique, Pour une éthique de la non-puissance | 신학과 기술: 비능력의 윤리를 위하여 |
2014 | Nous sommes des révolutionnaires, malgré nous. Textes pionniers de l'écologie politique | 『생태 감수성의 혁명적 힘: 인격주의, 자연감성, 기술비판』, 비공, 2021, 안성헌 옮김 |
2018 | Les classes sociales | 사회 계급들(보르도 정치연구소 강의록) |
2021 | La nature du combat pour une révolution écologique | 생태 혁명을 위한 싸움의 본질(베르나르 샤르보노와 공저) |
- 박건택, 『자끄 엘륄 사상 입문』, 다산글방, 2003.
- 손화철, 『토플러&엘륄:현대기술의 빛과 그림자』, 김영사, 2006.
- 정원범, 『자끄 엘륄의 윤리 사상』, 대장간, 2008.
- 신광은, 『자끄 엘륄 입문』, 대장간, 2010.
- 프레데릭 호뇽, 『자끄 엘륄, 대화의 사상』- 대장간, 2011, 임형권 옮김.
- 박건택, 『자끄 엘륄의 생애와 사상』, 솔로몬, 2012.
- 하상복, 『자크 엘륄』, 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 이상민, 『자크 엘륄,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 고북이, 2020.
- 이상민, 『자크 엘륄 읽기 시리즈1ㅡ기술,선전,정치,혁명』, 고북이, 2022.
- 意志と行爲 - キリスト敎倫理の硏究일본어, 모리카와 하지메 역, 현대 기독교 사상 총서 제12권, 백수사, 1974년
- 暴力考 - キリスト敎的見地からの省察일본어, 우타노 타카시 역, 스구 서방, 1974년
- 技術社會・上일본어, 시마오 나가야스・타케오카 케이온 역, 스구 서방, 1975년 / 技術社會・下일본어, 토리스 미치로우・쿠라하시 시게시 역, 스구 서방, 1976년
- 現代公式文句評釋일본어, 타나베 타모츠 역, 스구 서방, 1976년
- 都市の意味일본어, 타나베 타모츠 역, 스구 서방, 1976년
- 現代人は何を信ずべきか - 「技術環境」時代と信仰일본어, 이토 아키라 역, 슌주사, 1989년
- アナ-キズムとキリスト敎일본어, 신교 출판사 편집부 역, 신교 출판사, 2021년
6. 연구서
출판 연도 | 저자 | 제목 | 출판사 |
---|---|---|---|
2003 | 박건택 | 자크 엘륄 사상 입문 | 다산글방 |
2006 | 손화철 | 토플러&엘륄:현대기술의 빛과 그림자 | 김영사 |
2008 | 정원범 | 자크 엘륄의 윤리 사상 | 대장간 |
2010 | 신광은 | 자크 엘륄 입문 | 대장간 |
2011 | 프레데릭 호뇽 | 자크 엘륄, 대화의 사상 | 대장간 |
2012 | 박건택 | 자크 엘륄의 생애와 사상 | 솔로몬 |
2018 | 하상복 | 자크 엘륄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20 | 이상민 | 자크 엘륄,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 | 고북이 |
2022 | 이상민 | 자크 엘륄 읽기 시리즈1ㅡ기술,선전,정치,혁명 | 고북이 |
참조
[1]
서적
The Unnecessary Pastor: Rediscovering the Call
Wm. B. Eerdmans Publishing
[2]
서적
Perspectives On Our Age: Jacques Ellul Speaks On His Life And Work
House of Anansi Press Inc.
[3]
웹사이트
About
http://ellul.org/?pa[...]
International Jacques Ellul Society
2013-11-30
[4]
웹사이트
Righteous Among the Nations Recognized by Yad Vashem as of 1 January 2011 – France
http://www.yadvashem[...]
Yad Vashem
2011-01-01
[5]
간행물
Karl Barth: Against Hegemony
Oxford University Press
[6]
간행물
Jacques Ellul: Interpretive Essays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7]
간행물
Jacques Ellul: A Systematic Exposition
Edwin Mellen Press
[8]
서적
Anarchy and Christianity
WIPF & Stock
[9]
서적
Anarchy and Christianity
WIPF & Stock
[10]
서적
Anarchy and Christianity
WIPF & Stock
[11]
서적
Perspectives On Our Age: Jacques Ellul Speaks On His Life And Work
House of Anansi Press Inc.
[12]
서적
Anarchy and Christianity
WIPF & Stock
[13]
간행물
Propaganda and the Ethics of Persuasion
Broadview Press
[14]
서적
Jacques Ellul on Politics, Technology, and Christianity: Conversations with Patrick Troude-Chastenet
https://books.google[...]
Wipf and Stock Publishers
2005-06-16
[15]
서적
Understanding Jacques Ellul
https://books.google[...]
ISD LLC
2013-07-25
[16]
간행물
Dialectical Theology and Jacques Ellul: An Introductory Exposition
Fortress Press
[17]
간행물
Jacques Ellul's View of Scripture
[18]
간행물
Prayer and Modern Man
Seabury Press
[19]
간행물
Digital Matters: The Theory and Culture of the Matrix
Routledge
[20]
간행물
The Thought of Jacques Ellul: A Systematic Exposition
Edwin Mellen Press
[21]
서적
Christian Anarchism: A Poli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Imprint Academic
[22]
서적
Les Racines libertaires de l'écologie politique
L'échappée
[23]
기타
[24]
기타
[25]
기타
[26]
논문
The Unabomber and the origins of anti-tech radicalism
2021-05-07
[27]
웹사이트
Jacques Ellul, technology doomsdayer before his time - Ideas
http://www.bostonglo[...]
The Boston Globe
2012-07-08
[28]
문서
[29]
서적
Générations Jacques Ellul. Soixante héritiers de la pensée de Jacques Ellul
Labor et Fides
[30]
기타
[31]
기타
[32]
기타
[33]
기타
[34]
기타
[35]
기타
[36]
서적
"Biographie de Jacques Ellul (1912-1994)"
[37]
서적
Perspectives on our age, Jacques Ellul speaks on his life and work
[38]
서적
Entretiens avec Jacques Ellul
[39]
서적
La Technique ou l'enjeu du siècle
Economica
[40]
서적
La pensée marxiste. Cours professé à l’Institut d’études politiques de Bordeaux de 1947 à 1979
La Table Ronde
[41]
서적
Entretiens avec Jacques Ellul
[42]
문서
[43]
서적
Présence au monde moderne
Presses Bibliques Universitaires
[44]
서적
La Subversion du christianisme
Éditions du Seuil
[45]
서적
Ce que je crois
[46]
논문
자크 엘륄의 신학 사상과 그 사상에 대한 평가
[47]
서적
L’illusion politique
La Table Ronde
[48]
서적
À temps et à contretemps, Entretiens avec Madeleine Garrigou-Lagrange
[49]
서적
Générations Jacques Ellul. Soixante héritiers de la pensée de Jacques Ellul
[50]
서적
Ibid.
[51]
서적
Préface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