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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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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채널 터널은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해저 철도 터널로, 1986년 착공하여 1994년 개통되었다. 총 연장 50.45km, 해저 구간 37.9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 터널이며, 3개의 터널(두 개의 철도 터널과 하나의 서비스 터널)로 구성된다. BOT 방식으로 건설되었으며, 유로터널이 운영을 담당한다. 유로터널 셔틀, 유로스타, 화물 열차가 운행되며, 겟링크가 운영한다. 건설 과정에서 지질 조사와 굴착 기술이 활용되었으며, 운영 중 화재, 사고, 불법 이민 등의 문제점도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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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터널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위치영국 해협 (도버 해협)
좌표포크스톤:
코켈:
상태운행 중
시작점영국 케트 포크스톤
종점프랑스 파드칼레 주코켈
개통1994년 5월 6일 (터널)
1994년 6월 1일 (화물)
1994년 11월 14일 (여객 서비스)
소유주겟링크
운영자겟링크
유로스타
DB 솅커
프랑스 국철
특징여객 열차, 화물 열차, 차량 셔틀 열차
선로 수2개의 단선 터널, 1개의 서비스 터널
궤간표준궤 1,435 mm
전철화25 kV AC 가공선 5.87m
속도(선로 안전 제한)
(선로 구조상 가능, 아직 허용되지 않음)
상세 정보
노선도[[파일:Course Channeltunnel en.svg|영불 해협 터널의 경로도]]
고도최대:
최저:
노선도 설명[[파일:TGV_TMST_3011-2_-_Sortie_Tunnel_sous_la_Manche_à_Coquelles.jpg|영불 해협 터널 코켈 출구]]
명칭
영어Channel Tunnel
프랑스어Tunnel sous la Manche
역사
개통1994년 5월 6일
사고
주요 사고1996년 11월 18일 화재
2008년 9월 11일 화재
2009년 12월 18일 열차 고장
기타
관련 정보하이 스피드 1
LGV 노르
포크스톤 셔틀 터미널
칼레 셔틀 터미널
돌런즈 무어 화물 야적장
레 폰티네트 역
참고 자료BBC - 건설되지 않은 채널 터널
포크스톤 유로터널 기차
터키, 세계에서 가장 깊은 침매 터널 건설
채널 터널 - 바닷속을 여행하다
겟링크 그룹 교통량 수치
도버 항구 성과
채널 터널
채널 터널 - 사례 연구
채널 터널 건설 방법
채널 터널 화재, 최악의 사고
열차 고장 후 채널 터널에서 수천 명 해방
채널 터널에서 붙잡힌 네 남자
상가트 난민 캠프

2. 역사

1869년 해저 터널 위원회가 발족하여 1878년 굴착을 시작했으나 곧 중지되었다. 100여 년 후인 1986년 영국·프랑스 양국 정부에 의해 사업인가를 받고 그해 5월 착공했다. 1990년 터널을 관통하고 1994년 5월 6일 완공되었다.[235][236] 1996년 11월 18일 이 터널 내에서 화재가 일어났으나 이듬해 5월 15일 전면 복구되었다.

채널터널 안전청(Channel Tunnel Safety Authority)과 IGC의 승인에 따라 1994/1995년 기간 동안 여러 서비스가 시작되었다.[63]

채널터널 운행 시작일
교통 흐름서비스 시작일
대형트럭 셔틀1994년 5월 19일[64]
화물1994년 6월 1일[64]
유로스타 여객열차1994년 11월 14일[65]
승용차 셔틀1994년 12월 22일[66]
버스 셔틀1995년 6월 26일[67]
자전거 서비스1995년 8월 10일[68]
오토바이 서비스1995년 8월 31일[69]
캠핑카/카라반 서비스1995년 9월 30일[69]



채널 터널과 관련된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연도사건
1751년아미앵(Amiens) 학원이 새로운 해협 횡단 교통 아이디어를 모집.
1752년광산 기술자 알베르 마튀(Albert Mathieu)가 해협 터널 계획을 제출.
1802년알베르 마튀가 나폴레옹 1세에게 해저터널 건설을 최초로 제안.
1833년톰 뒤 가몽(Thome du Gamond)이 최초의 지질 조사를 실시.
1855년파리 만국 박람회에 해협 터널 모형이 전시.
1868년영국 해협 터널 위원회(British Channel Tunnel Committee) 발족.
1869년영국 해협 터널 위원회가 시험 터널 굴착을 결정.
1872년해협 터널 회사(Channel Tunnel Company) 설립.
1881년해협 터널 회사가 영국 측에서 터널 굴착을 시작.
1883년공사 중지.
1956년해협 터널 연구회(Channel Tunnel Study Group) 발족.
1969년“해저 터널 위원회” 발족.
1978년굴착 시작 후 중지.
1986년2월: 영국과 프랑스 양국 정부의 사업 승인, 5월: 공사 착공.
1990년12월 1일 : 터널 관통.
1994년5월 6일 : 개통식, 11월 14일 : 유로스타 영업 개시.[230]
1996년11월 18일 : 화물 셔틀 열차 위 트럭에서 화재 발생.[227]
1997년5월 15일 : 완전 복구.[231]
2006년8월 2일 : 운영 회사 유로터널 그룹 파산, 8월 11일 : 화물 셔틀 열차 위 트럭에서 화재 발생, 일시 폐쇄.[232]
2007년1월 30일 : 상설중재재판소에서 승소 판결, 5월 25일 : 부채 감액 및 신규 회사로 주식 교환 승인.
2008년9월 11일 : 화물 셔틀 열차 위 트럭에서 화재 발생, 일시 폐쇄.
2009년12월 18일: 유럽 한파로 터널 전기 시스템 고장, 유로스타 5대 멈춤 사고.
2012년7월 : 프랑스 측 사업자에 의한 2G 및 3G 통신 서비스 개시.
2014년5월 : 북쪽 터널에서 영국 측 사업자에 의한 2G 및 3G 통신 서비스 개시.
2017년11월 20일: 터널 소유·관리 회사가 그룹 유로터널에서 겟링크로 개칭.



터널에서 제공하는 운송 서비스는 다음과 같다.


  • 유로터널 르 셔틀(Eurotunnel Le Shuttle): 도로 차량 셔틀 서비스
  • 유로스타(Eurostar): 여객 열차
  • 화물 열차[111]


영국 터미널(체리턴, 켄트). M20 고속도로와 연결.


터널 건설 전 예측된 교통량은 과대평가되었으며,[125] 경쟁 심화와 관세 인하로 수익이 저조했다.[118][112] 유럽 연합(European Union)의 철도 서비스 자유화로 2010년부터 경쟁이 개방되었고,[113] 독일철도(Deutsche Bahn) 등이 관심을 보였으나, 2018년 프랑크푸르트행 서비스 계획은 중단되었다.[114]

승객 수는 1998년 1840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감소했다가, 고속철도 1호선 완공 후 증가했다.[130] 2008년에는 화재에도 불구하고 911만 명을 수송했으며,[115] 이후 계속 증가 추세이다.

연도수송 승객 수
유로스타[116][117]승객
셔틀[118][116]
총계
(추정, 백만 명)
1994~100,000[118]0.20.3
19952,920,3094.47.3
19964,995,0107.912.9
19976,004,2688.614.6
19986,307,84912.118.4
19996,593,24711.017.6
20007,130,4179.917.0
20016,947,1359.416.3
20026,602,8178.615.2
20036,314,7958.614.9
20047,276,6757.815.1
20057,454,4978.215.7
20067,858,3377.815.7
20078,260,9807.916.2
20089,113,3717.016.1
20099,220,2336.916.1
20109,528,5587.517.0
20119,679,7649.319.0
20129,911,64910.019.9
2013[130]10,132,69110.320.4
2014[130]10,397,89410.621.0
2015[130]10,399,26710.520.9
2016[119]10,011,33710.620.6
2017[120]10,300,62210.420.7
2018[121]11,000,000|
2019[122]11,046,608|
2020[122]2,503,419|
2021[123]1,637,687|
2022[123]8,295,005|
영국 해협을 횡단하기 위해 유로스타를 이용한 승객만 해당



화물 운송량은 불규칙했으며, 1997년 화재로 큰 감소가 있었다.[124] 터널은 시장 점유율 목표를 달성했지만, 초기 예측은 과대평가였다.

연도운송 화물량 (톤)
직통 화물 열차유로터널 트럭 셔틀 (추정)
[118][130][116]
총계 (추정)
19940800,000800,000
1995[117]1,349,8025,100,0006,400,000
1996[117]2,783,7746,700,0009,500,000
1997[117]2,925,1713,300,0006,200,000
1998[117]3,141,4389,200,00012,300,000
1999[117]2,865,25110,900,00013,800,000
2000[117]2,947,38514,700,00017,600,000
2001[117]2,447,43215,600,00018,000,000
2002[117]1,463,58015,600,00017,100,000
2003[126]1,743,68616,700,00018,400,000
2004[127]1,889,17516,600,00018,500,000
2005[127]1,587,79017,000,00018,600,000
2006[128]1,569,42916,900,00018,500,000
2007[128]1,213,64718,400,00019,600,000
2008[129]1,239,44514,200,00015,400,000
2009[129]1,181,08910,000,00011,200,000
2010[130][131]1,128,07914,200,00015,300,000
2011[132]1,324,67316,400,00017,700,000
2012[133]1,227,13919,000,00020,200,000
2013[134]1,363,83417,700,00019,100,000
2014[135]1,648,04718,700,00020,350,000
2015[130]1,420,00019,300,00020,720,000
2016[119]1,040,00021,300,00022,340,000
2017[120]1,220,00021,300,00022,550,000
2018[136]1,301,460|
2019[122]1,390,303|
2020[122]1,138,213|
2021[123]1,041,140|
2022[123]864,058|



1987년 유로터널 주식 발행 후 주가는 큰 변동을 겪었고, 1995년 부채 상환 중단, 1997년 운영권 연장, 1998년 재정 구조조정 등을 거쳤다.[139][140] 비용편익 분석 결과, 터널 건설이 영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118][141]

1999년 도로 터널 제안이 있었으나, 수요 부족으로 보류되었다.[142] 영국, 프랑스, 벨기에 간 3자 조약으로 국경 통제가 이루어지며, 양국 비상 계획이 있다.[143][144] 1999년 유로스타는 첫 순이익을 기록했고,[50] 2013년 영업 이익은 5400만파운드였다.[146]

2. 1. 초기 제안 (1802년 ~ 1980년대)

1802년, 프랑스 광산 기술자 알베르 마튀외-파비에르(Albert Mathieu-Favier)는 기름 램프로 조명하고, 말이 끄는 마차를 이용하며, 해협 중간에 인공섬을 설치하여 말을 갈아탈 수 있도록 하는 영국 해협 해저터널 계획을 제안했다.[19] 그의 설계는 상부 터널은 교통, 하부 터널은 지하수 흐름에 사용하는 2층 터널로 구상되었다.[20]

1802년 알베르 마튀외-파비에르가 제안한 해협 횡단 마차 서비스 계획(대형 환기굴뚝 포함).


1839년, 프랑스인 Aimé Thomé de Gamond는 칼레와 도버 사이 해협에 대한 최초의 지질 및 수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는 여러 가지 계획을 조사했고, 1856년 나폴레옹 3세에게 그리뇌즈 곶에서 이스트 웨어 포인트까지 채굴 방식의 철도 터널을 바른 사주에 항구/통풍구를 설치하는 계획을 제안했다.[21][22] 비용은 (약 700만파운드) 미만이었다.[23]

토메 드 가몽이 1856년 제안한 해협 연결 계획(해협 중간에 항구/통풍구 설치).


1865년, 조지 워드 헌트가 이끄는 대표단이 당시 재무장관 윌리엄 에워트 글래드스톤에게 터널 건설 구상을 제안했다.[24]

1866년, 헨리 마크 브루넬은 도버 해협 해저를 조사했다. 그의 조사 결과, 해저는 인근 절벽과 마찬가지로 백악으로 구성되어 터널 건설이 가능함이 입증되었다.[25] 그는 이 조사를 위해 지질학에서 아직도 사용되는 중력 코어러를 발명했다.

1866년경, 윌리엄 로우(William Low) 경과 존 혹쇼 경이 터널 구상을 제안했지만,[26] 예비 지질 조사[27] 외에는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았다.

1876년, 해협 횡단 철도 터널 건설을 위한 영국-프랑스 공식 의정서가 체결되었다.

미국 만화(약 1885년): 해저터널의 가장 강력한 반대자 중 한 명인 울슬리 장군이 도망치는 사자를 타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1881년, 영국의 철도 사업가인 에드워드 워킨 경과 프랑스 수에즈 운하 계약자인 알렉상드르 라발레(Alexandre Lavalley)는 영국-프랑스 해저 철도 회사(Anglo-French Submarine Railway Company)에서 해협 양쪽에서 탐사 작업을 수행했다.[28][29] 1882년 6월부터 1883년 3월까지 영국의 터널 굴착기가 백악을 뚫고 총 1840m를 굴착했고, 라발레는 프랑스 측 상가트에서 유사한 기계를 사용하여 1669m를 굴착했다.[30] 그러나 해저터널이 침략 경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영국 군부의 우려로 1883년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31] 1883년 이 TBM은 버켄헤드와 리버풀 사이의 머지 강 아래 사암을 통과하는 직경 약 2.13m, 길이 약 2057.40m의 철도 환기 터널을 굴착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초기 공사는 1세기 이상 지난 후 영불해협 고속철도(TML) 프로젝트에서 다시 발견되었다.

1907년, 영화 제작자 조르주 멜리에스가 제작한 영화 ''영국 해협 터널링''[32]에드워드 7세 국왕과 아르망 팔리에르 대통령이 영국 해협 아래 터널 건설을 꿈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19년, 파리 평화 회의에서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독일의 재침략에 대한 영국의 방어 의지를 확인시키는 수단으로 해저터널 구상을 반복적으로 제기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 구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제안은 무산되었다.[33]

1920년대, 윈스턴 처칠은 그의 에세이 "전략가들이 터널을 거부해야 하는가?"에서 "영국 해협 터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해저터널을 옹호했다. 1924년 7월 27일 ''위클리 디스패치''에 실린 이 글은 대륙의 적이 터널을 이용하여 영국을 침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 강력하게 반박했다. 처칠은 1936년 2월 12일 ''데일리 메일''에 실린 기사 "왜 영국 해협 터널이 아닌가?"에서 다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열정을 표명했다.[34]

1929년에도 또 다른 제안이 있었지만, 논의는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했고, 구상은 포기되었다. 건설 비용은 1.5억달러로 추산되었다. 기술자들은 각 국가의 해안 근처에 두 개의 집수조를 설치하여 필요에 따라 터널을 막을 수 있도록 설계하여 양국 군 지도자들의 우려를 해소하려 했지만, 군부를 달랠 수는 없었고, 영국 생활을 혼란스럽게 할 관광객의 홍수에 대한 우려도 해소되지 않았다.[35]

고몽 스튜디오의 영국 영화 ''터널''(또는 ''대서양 횡단 터널'')은 1935년 대서양 횡단 터널 건설에 관한 공상과학 프로젝트로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맥앨런(McAllan) 씨가 5년 후인 1940년에 영국 해협 터널을 성공적으로 완공했다고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군사적 우려는 계속되었다. 프랑스 항복 후, 영국이 예상되는 독일 침공에 대비하던 중, 다양한 무기 개발국의 영국 해군 장교는 히틀러가 강제 노동을 이용하여 18개월 만에 두 개의 해저터널을 건설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이 추정치 때문에 독일이 이미 굴착을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았다.[36]

1955년까지 공중전력의 우세로 인해 방어 논리는 덜 중요해졌고,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기술 및 지질 조사를 지원했다. 1958년 영국 해협 터널 연구 그룹(Channel Tunnel Study Group)의 100000GBP 규모 지질 조사를 위해 1881년 작업이 정리되었다. 자금의 30%는 영국 남동부 철도의 후신인 영국 교통 위원회가 최대 주주인 영국 해협 터널 회사(Channel Tunnel Co Ltd)에서 제공했다.[37] 1964년과 1965년에 상세한 지질 조사가 실시되었다.[38]

두 국가가 1964년 터널 건설에 합의했지만, 1단계 초기 연구와 2단계를 담당하는 두 번째 합의 체결은 1973년까지 이어졌다.[39] 이 계획은 서비스 터널 양쪽에 자동차 셔틀을 수용할 수 있는 두 개의 터널을 건설하는 정부 지원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1974년 해협 양쪽에서 공사가 시작되었다.

1975년 1월 20일, 당시 영국의 노동당 정부는 당시 경제 위기 속에서 영국의 유럽 경제 공동체 회원 자격에 대한 불확실성과 비용 추산의 두 배 증가로 인해 프랑스 파트너들의 실망 속에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당시 영국 터널 굴착기가 준비되었고 교통부는 300m 규모의 실험적인 주행을 수행했다. (A1 갱도라고 명명된 이 짧은 터널은 결국 영국 측 터널 공사의 시작 및 접근 지점으로 재사용되었고, 서비스 터널의 접근 지점으로 남아 있다.) 취소 비용은 1700만파운드로 추산되었다.[39] 프랑스 측에서는 터널 굴착기가 지하 터널에 설치되어 있었다. 1988년까지 14년 동안 그곳에 있던 이 기계는 이후 판매, 해체, 개조되어 터키로 운송되었고, 이스탄불 하수 처리 계획을 위한 모다 터널 굴착에 사용되었다.

채널 터널의 초기 제안과 관련된 주요 연혁은 다음과 같다.

연도사건
1751년아미앵(Amiens) 학원이 새로운 해협 횡단 교통 아이디어를 모집하다.
1752년광산 기술자 알베르 마튀(Albert Mathieu)가 아미앵 학원에 해협 터널 계획을 제출하다.
1802년알베르 마튀가 나폴레옹 1세에게 해저터널 건설을 최초로 제안.
1833년톰 뒤 가몽(Thome du Gamond)이 최초의 지질 조사를 실시하다.
1855년파리 만국 박람회에 해협 터널 모형이 전시되다.
1868년영국 해협 터널 위원회(British Channel Tunnel Committee) 발족.
1869년영국 해협 터널 위원회가 시험 터널 굴착을 결정하다.
1872년해협 터널 회사(Channel Tunnel Company) 설립.
1875년영국 해협터널 회사(The Channel Tunnel Company Ltd)[18]가 예비 시험을 시작함.
1881년해협 터널 회사가 영국 측에서 터널 굴착을 시작하다.
1882년애벗 클리프(Abbot's Cliff) 측 터널이 약 820.22m (약 820m), 셰익스피어 클리프(Shakespeare Cliff) 측 터널이 약 1865.38m (약 1864m) 진행됨.
1883년공사 중지.
1956년해협 터널 연구회(Channel Tunnel Study Group) 발족.
1969년“해저 터널 위원회” 발족.
1975년1974년에 시작된 영국-프랑스 정부 지원 사업이 취소됨.
1978년굴착 시작 후 중지.
1986년해저터널 건설을 허용하는 캉터베리 조약이 체결됨.


2. 2. 프로젝트 시작 (1980년대 ~ 1994년)

1986년 영국과 프랑스 양국 정부는 채널 터널 건설 사업을 승인하고 그해 5월 착공했다. 1990년 터널을 관통하고 1994년 5월 6일 완공되었다.[235][236]

1979년 영국에서 보수당 집권 후 "마우스홀 프로젝트(Mouse-hole Project)"가 제안되었다. 이는 서비스 터널은 있지만 셔틀 터미널이 없는 단선 철도 터널이었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민간 자금으로 조성되는 프로젝트에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자동차보다는 열차를 위한 프로젝트를 원했다. 1981년, 대처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민간 자금 프로젝트 평가를 위한 실무 그룹 설립에 합의했다. 1982년 6월, 영불 합동 연구팀은 기존 열차와 차량 셔틀 서비스를 수용할 수 있는 이중 터널을 선호했다. 1985년 4월, 사업 제안서 제출을 위한 공모가 발표되었고, 네 개의 제안이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다.

제안설명
해저터널(Channel Tunnel)1975년 해저터널 그룹/프랑스-망슈(Channel Tunnel Group/France–Manche, CTG/F–M)가 제시한 계획을 기반으로 한 철도 제안.
유로브리지(Eurobridge)길이 35km의 현수교로, 길이 5km의 경간 여러 개로 이루어지며, 도로는 밀폐된 튜브 내부에 있다.[40]
유로루트(Euroroute)인공섬 사이를 연결하는 길이 21km의 터널로, 교량으로 접근한다.
해저 고속도로(Channel Expressway)중간 지점에 환기탑이 있는 대구경 도로 터널 세트.



해협을 오가는 페리 업계는 "플렉실링크(Flexilink)"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반발했다. 1975년 당시에는 고정식 연결에 대한 반대 운동이 없었으며, 가장 큰 페리 운영업체 중 하나인 Sealink는 국영 기업이었다. 플렉실링크는 1986년과 1987년 내내 반대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여론은 차량 통과가 가능한 터널을 강력하게 지지했지만, 환기, 사고 관리, 운전자의 졸음 운전에 대한 우려로 인해 1986년 1월 최종 후보에 오른 철도 제안인 CTG/F-M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되었다.[41] 선정 이유로는 해협의 선박 운항에 대한 방해와 환경 훼손이 가장 적고, 테러로부터 가장 잘 보호되며, 충분한 민간 자금을 유치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점이 포함되었다.

프로젝트에 사용된 조직 구조를 설명하는 블록 다이어그램. 유로터널은 터널의 건설 및 운영(양허를 통해)을 위한 중앙 조직이다.


영국의 채널 터널 그룹(Channel Tunnel Group)은 두 개의 은행과 다섯 개의 건설 회사로 구성되었고, 프랑스의 대응 기관인 프랑스-망슈(France–Manche)는 세 개의 은행과 다섯 개의 건설 회사로 구성되었다. 은행의 역할은 자금 조달에 대한 자문과 대출 약정 확보였다. 1985년 7월 2일, 이 그룹들은 채널 터널 그룹/프랑스-망슈(CTG/F–M)를 결성했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에 제출된 보고서는 1975년 프로젝트에서 가져온 것으로, 11권의 보고서와 상당한 환경 영향 평가서를 포함했다.

1986년 캔터베리 조약은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양국 정부가 체결했다. 이 조약은 민간 기업에 의한 고정 링크의 건설 및 운영에 대한 양허를 준비하고, 분쟁 발생 시 사용될 중재 방법을 개략적으로 설명했다. 또한 영국과 프랑스 정부를 대신하여 터널 건설 및 운영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모니터링하는 정부 간 위원회(IGC)와 IGC에 자문하는 안전 당국을 설립했다. 이 조약은 해저터널 중앙에 영국과 프랑스 간의 육지 국경을 설정했는데, 이는 최초의 사례였다.[42][43][44]

설계 및 건설은 CTG/F-M 그룹의 10개 건설 회사가 담당했다. 상가트(Sangatte)에서의 프랑스 터미널과 터널 굴착은 합작 투자 그룹인 GIE Transmanche Construction의 프랑스 건설 회사 5곳이 담당했고, 셰익스피어 절벽(Shakespeare Cliff)에서의 영국 터미널과 터널 굴착은 Translink Joint Venture의 영국 건설 회사 5곳이 담당했다. 두 파트너십은 TransManche Link(TML)라는 양국 프로젝트 조직에 의해 연결되었다. ''메트르 도브르''(Maître d'Oeuvre)는 양허 조건에 따라 유로터널이 고용한 감독 엔지니어링 기관으로, 프로젝트를 모니터링하고 정부와 은행에 보고했다.[45]

프랑스는 오랜 기간 인프라 투자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프랑스 국회는 1987년 4월 만장일치로 이를 승인했고, 공개 조사 후 상원도 6월에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영국에서는 특별 위원회가 이 제안을 검토했으며, 켄트에서 의회 청문회를 개최함으로써 역사를 만들었다. 1987년 2월, 영국 하원(House of Commons of the United Kingdom)에서 채널 터널 법안 3차 독회가 열렸고, 94대 22표로 통과되었다. 1987년 채널 터널 법은 왕실 재가를 얻어 7월에 법률로 제정되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의회의 지지는 부분적으로 실현되지 않은 유로스타 지역 직통 열차 서비스에 대한 약속을 바탕으로 한 지방 의원들로부터 나왔다. 이 약속은 채널 터널 철도 링크 건설 계약이 체결된 1996년에 반복되었다.[46]

2. 3. 운영 역사 (1994년 ~ 현재)

1986년 영국·프랑스 양국 정부에 의해 사업인가를 받고 그해 5월 착공했다. 1990년 터널을 관통하고 1994년 5월 6일 완공되었다.[235][236] 1996년 11월 18일 이 터널 내에서 화재가 일어났으나 이듬해 5월 15일 전면 복구되었다.

터널에서 제공하는 운송 서비스는 다음과 같다.

  • 유로터널 르 셔틀(Eurotunnel Le Shuttle): 도로 차량과 운전자 및 승객을 위한 롤온롤오프 셔틀 서비스
  • 유로스타(Eurostar): 여객 열차
  • 화물 열차[111]


터널 건설 전에 예측된 화물 및 여객 교통량은 모두 과대평가되었으며, 특히 유로터널이 의뢰한 예측은 과장된 것이었다.[125] 영국 해협 횡단 교통량 점유율 예측은 정확했지만, 높은 경쟁(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빠르게 확장된 저가 항공사)과 관세 인하로 인해 수익이 저조했다. 전체 영국 해협 횡단 교통량은 과대평가되었다.[118][112]

유럽 연합(European Union)의 국제 철도 서비스 자유화로 2010년부터 터널과 고속철도 1(High Speed 1)이 경쟁에 개방되었다. 터널과 고속철도 1선을 따라 런던까지 열차를 운행하는 데 관심 있는 여러 운영업체가 있었다.[113] 2013년 6월, 수년 만에 독일철도(Deutsche Bahn)는 프랑크푸르트-런던 열차 운행 허가를 받았지만, 주문 제작 열차의 인도 지연으로 2016년 이전에는 운행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114] 프랑크푸르트행 서비스 계획은 2018년에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114]

영국 해협 해저터널을 통과하는 승객 수는 1998년 1840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2003년 1490만 명으로 감소했으며, 그 이후로 크게 증가했다.[130]

터널 건설 결정 당시, 유로스타 열차의 첫해 승객 수는 1590만 명으로 예측되었다. 1995년(첫해) 실제 승객 수는 290만 명을 약간 상회했고, 2000년에는 710만 명으로 증가했다가 2003년에는 630만 명으로 감소했다. 유로스타는 초기 영국 측의 고속 연결망 부족으로 인해 제한을 받았다. 2003년과 2007년 두 단계에 걸쳐 고속철도 1호선(High Speed 1)이 완공된 후 통행량이 증가했다. 2008년 유로스타는 2008년 영국 해협 터널 화재로 인한 통행 제한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10% 증가한 9,113,371명의 승객을 수송했다.[115] 유로스타 승객 수는 계속 증가했다.

연도수송 승객 수
유로스타[116][117]승객
셔틀[118][116]
총계
(추정, 백만 명)
1994~100,000[118]0.20.3
19952,920,3094.47.3
19964,995,0107.912.9
19976,004,2688.614.6
19986,307,84912.118.4
19996,593,24711.017.6
20007,130,4179.917.0
20016,947,1359.416.3
20026,602,8178.615.2
20036,314,7958.614.9
20047,276,6757.815.1
20057,454,4978.215.7
20067,858,3377.815.7
20078,260,9807.916.2
20089,113,3717.016.1
20099,220,2336.916.1
20109,528,5587.517.0
20119,679,7649.319.0
20129,911,64910.019.9
2013[130]10,132,69110.320.4
2014[130]10,397,89410.621.0
2015[130]10,399,26710.520.9
2016[119]10,011,33710.620.6
2017[120]10,300,62210.420.7
2018[121]11,000,000|
2019[122]11,046,608|
2020[122]2,503,419|
2021[123]1,637,687|
2022[123]8,295,005|
영국 해협을 횡단하기 위해 유로스타를 이용한 승객만 해당



화물 운송량은 불규칙적이었으며, 1997년 화물 셔틀의 화재로 인한 운행 중단으로 큰 감소가 있었다. 해상 운송으로의 대체 가능성을 나타내는 기간 동안 화물 통과량은 증가했다. 터널은 유로터널의 1980년대 예측치에 근접하거나 그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달성했지만, 유로터널의 1990년과 1994년 예측은 과대평가였다.[124]

직통 화물 열차의 경우, 첫해 예측치는 720만 톤이었지만, 실제 1995년 수치는 130만 톤이었다.[125] 직통 화물량은 1998년 310만 톤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는 2007년 121만 톤으로 감소했고, 2008년에는 약간 증가하여 124만 톤이 되었다.[115] 화물 셔틀을 통해 운송된 화물량과 함께, 개통 이후 화물량은 증가하여 1995년 640만 톤, 2003년 1840만 톤[118], 2007년 1960만 톤이 기록되었다.[116] 2008년 화재 이후 수치는 감소했다.

연도운송 화물량 (톤)
직통 화물 열차유로터널 트럭 셔틀 (추정)
[118][130][116]
총계 (추정)
19940800,000800,000
1995[117]1,349,8025,100,0006,400,000
1996[117]2,783,7746,700,0009,500,000
1997[117]2,925,1713,300,0006,200,000
1998[117]3,141,4389,200,00012,300,000
1999[117]2,865,25110,900,00013,800,000
2000[117]2,947,38514,700,00017,600,000
2001[117]2,447,43215,600,00018,000,000
2002[117]1,463,58015,600,00017,100,000
2003[126]1,743,68616,700,00018,400,000
2004[127]1,889,17516,600,00018,500,000
2005[127]1,587,79017,000,00018,600,000
2006[128]1,569,42916,900,00018,500,000
2007[128]1,213,64718,400,00019,600,000
2008[129]1,239,44514,200,00015,400,000
2009[129]1,181,08910,000,00011,200,000
2010[130][131]1,128,07914,200,00015,300,000
2011[132]1,324,67316,400,00017,700,000
2012[133]1,227,13919,000,00020,200,000
2013[134]1,363,83417,700,00019,100,000
2014[135]1,648,04718,700,00020,350,000
2015[130]1,420,00019,300,00020,720,000
2016[119]1,040,00021,300,00022,340,000
2017[120]1,220,00021,300,00022,550,000
2018[136]1,301,460|
2019[122]1,390,303|
2020[122]1,138,213|
2021[123]1,041,140|
2022[123]864,058|



유로터널의 화물 자회사는 유로포르트 2(Europorte 2)이다.[137] 2006년 9월, 영국의 최대 철도 화물 운영업체인 EWS는 영국-프랑스 정부의 연간 5200만파운드의 터널 "최소 사용 요금"(연간 4000대의 열차 운행 수준에서 열차당 약 1.3만파운드의 보조금)에 대한 보조금 중단으로 인해 11월 30일 이후 화물 열차 운행이 중단될 것이라고 발표했다.[138]

유로터널 주식은 1987년 12월 9일 주당 3.5GBP에 발행되었다. 1989년 중반에는 주가가 11GBP로 상승했다. 그러나 지연과 비용 초과로 인해 주가는 하락하여 1994년 10월 시험 운행 중 최저점을 기록했다. 유로터널은 파산을 피하기 위해 1995년 9월 부채 상환을 중단했다.[139] 1997년 12월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유로터널의 운영권을 2086년까지 34년 연장했다. 1998년 중반에는 유로터널의 재정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와 재정 부담을 줄였다. 그러나 이에도 불구하고, ''이코노미스트''는 1998년 유로터널이 손익분기점을 달성하려면 지속 가능성을 위해 요금, 교통량 및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고 보도했다.[140] 터널의 비용편익 분석 결과, 광범위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프로젝트와 관련된 개발이 거의 없었으며, 영국 경제는 터널이 건설되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118][141]

양허 계약 조건에 따라 유로터널은 해저 도로 터널에 대한 조사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했다. 1999년 12월 도로 및 철도 터널 제안이 영국과 프랑스 정부에 제출되었지만, 두 번째 터널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강조되었다.[142] 영국, 프랑스, 벨기에 간 3자 조약은 국경 통제를 규정하며, 다른 국가의 공무원이 제한된 관세 및 법 집행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통제 구역"을 설정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통제 구역은 터널의 양 끝에 있으며, 프랑스 국경 통제는 영국 쪽 터널에, 영국 국경 통제는 프랑스 쪽 터널에 위치한다. 일부 도시 간 열차의 경우 열차 자체가 통제 구역이 된다.[143] 영국과 프랑스의 비상 활동을 조정하는 양국 비상 계획이 있다.[144]

1999년 유로스타는 1995년 9.25억파운드의 손실을 기록한 후 첫 순이익을 기록했다.[50] 2005년 유로터널은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설명되었다.[145] 2013년 영업 이익은 2012년 대비 4% 증가한 5400만파운드를 기록했다.[146]

3. 건설

채널 터널 건설은 1988년에 시작되어 1994년에 완료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양측에서 총 11대의 터널 굴착기(TBM)가 동원되어 백악질 이암을 뚫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50] TBM은 주로 TBM 공법으로 굴착했지만, 쉴드 공법도 가능한 기계를 사용하여 지반이 약한 구간에서는 쉴드 공법을 사용했다. 영국 측에서는 6대, 프랑스 측에서는 5대의 TBM이 굴착 작업을 수행했다.

1987년부터 1993년 사이에 터널 굴착 작업 중 10명의 작업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부분 굴착 초기 몇 달 동안 발생했으며, 이 중 8명은 영국인이었다.[52][53][54]

1990년 10월 30일, 직경 50mm의 시험 구멍을 통해 서비스 터널이 관통되었고,[55] 12월 1일에는 영국인 그레이엄 페이그(Graham Fagg)와 프랑스인 필립 코제트(Phillippe Cozette)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서비스 터널을 관통했다.[56] 이때 양측 터널 공사는 36.2cm의 오차로 만났다.[57]

터널 완공 후, 프랑스 측 TBM 중 일부는 영국까지 진입하여 지상에 전시된 후 해체되었지만, 영국 측 TBM은 터널 경로 아래에 매립되었다.

프랑스 측 굴착에는 가와사키 중공업이 제작한 TBM 2대가 참여하여 난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며, 이는 2001년 9월 25일 일본 NHK 프로그램 『프로젝트X』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3. 1. 개요

남쪽 터널 굴착기 중 하나


채널 터널은 영국과 프랑스 양쪽에서 11대의 터널 굴착기(TBM)를 이용하여 백악질 이암을 뚫어 건설되었다. 두 개의 철도 터널과 하나의 서비스 터널로 구성되어 있으며, 차량 셔틀 터미널은 체리턴(폴크스톤의 일부)과 코켈에 위치하고, 각각 영국의 M20 고속도로와 프랑스의 A16 고속도로와 연결된다.

터널 공사는 1988년에 시작되어 1994년에 개통되었다.[50] 공사가 한창일 때는 15,000명이 고용되었고, 일일 경비는 300만파운드가 넘었다.[51] 1987년부터 1993년 사이에 10명의 작업자(그중 8명은 영국인)가 사망했는데, 대부분 굴착 초기 몇 달 동안 발생했다.[52][53][54]

1994년 5월 7일, 샌들링 역에서 319형 전동차가 시험 운행으로 해저터널을 통과하였다. 이는 해저터널을 통과한 최초의 여객 열차였다.


직경 50mm의 시험 구멍을 통해 1990년 10월 30일, 서비스 터널이 관통되었다.[55] 1990년 12월 1일, 영국인 그레이엄 페이그(Graham Fagg)와 프랑스인 필립 코제트(Phillippe Cozette)가 언론의 시선 속에 서비스 터널을 관통하였다.[56] 유로터널(Eurotunnel)은 예정대로 터널 공사를 완료하였다.[47] 두 터널 공사는 36.2cm의 오차로 만났다.[57]

1994년 5월 6일,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칼레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터널을 공식 개통하였다. 여왕은 유로스타 열차를 타고 터널을 통과하여 칼레에 도착하였는데, 이 열차는 파리에서 온 미테랑 대통령이 탑승한 열차와 마주섰다.[58] 기념식 후, 미테랑 대통령과 여왕은 르 셔틀(Le Shuttle)을 타고 폴크스톤에서 열린 유사한 기념식에 참석하였다.[58] 정식 운영은 몇 달 후에 시작되었다. 최초의 화물열차는 1994년 6월 1일에 운행되었으며, 이탈리아로 수출되는 로버와 미니 자동차를 실었다.

현재 하이 스피드 1이라고 불리는 해저터널 철도 연결선(Channel Tunnel Rail Link, CTRL)은 런던의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켄트주 폴크스톤의 터널 입구까지 이어진다. 2003년 9월 16일, 총리 토니 블레어가 폴크스톤에서 북켄트까지의 하이 스피드 1 첫 구간을 개통하였다. 2007년 11월 6일, 여왕은 기존의 느린 워털루 국제역 연결선을 대체하는 하이 스피드 1과 세인트 판크라스 국제역을 공식 개통하였다.[59] 하이 스피드 1 열차는 최고 속도로 운행되며, 런던에서 파리까지는 2시간 15분, 브뤼셀까지는 1시간 51분이 소요된다.[60]

1994년, 미국토목학회는 이 터널을 7대 현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선정하였다.[61] 1995년, 미국 잡지 ''Popular Mechanics''가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62]

주로 TBM 공법으로 건설되었지만, 쉴드 공법도 가능한 TBM이 사용되어 지반이 약한 구간 등에서는 쉴드 공법이 사용되었다.

총 11대(영국제 6대, 일본제 4대, 미국제 1대)의 TBM이 발주되었고, 영국 측에서 6대, 프랑스 측에서 5대가 굴착 작업을 진행했다. 일본제 중 2대는 가와사키 중공업 제작이다.

프랑스 측 굴착에 참여한 가와사키 중공업이 상당한 난공사를 해낸 것으로, 『프로젝트X』에서도 소개되었다(방송은 2001년9월 25일). 그 외, 조지 윔피와 벡텔이 시공에 참여했다.

일반적으로 터널 양쪽 끝에서부터 굴착하는 TBM은 터널 중앙부에 도달하면 자신을 터널 구조물의 일부로 만들거나, 좌우로 굴착하여 터널 경로를 벗어나 그대로 매립하여 폐기한다.

3. 2. TBM



영국과 프랑스 양쪽에서 11대의 터널 굴착기(TBM)가 백악질 이암을 뚫고 두 개의 철도 터널과 하나의 서비스 터널을 건설했다.[85] 이 중 영국 측 서비스 터널 및 본선 터널용 TBM은 스코틀랜드 제임스 하우든 앤드 컴퍼니(James Howden) 유한회사에서 설계 및 제작했다.[86]

주로 TBM 공법으로 건설되었지만, 쉴드 공법도 가능한 TBM이 사용되어 지반이 약한 구간 등에서는 쉴드 공법이 사용되었다. 총 11대(영국제 6대, 일본제 4대, 미국제 1대)의 TBM이 발주되었고, 영국 측에서 6대, 프랑스 측에서 5대가 굴착 작업을 진행했다. 일본제 중 2대는 가와사키 중공업 제작이다.

프랑스 측 굴착에 참여한 가와사키 중공업은 상당한 난공사를 해낸 것으로, 『프로젝트X』에서도 소개되었다(2001년9월 25일 방송).

일반적으로 터널 양쪽 끝에서부터 굴착하는 TBM은 터널 중앙부에 도달하면 자신을 터널 구조물의 일부로 만들거나, 좌우로 굴착하여 터널 경로를 벗어나 그대로 매립하여 폐기한다. TBM은 각 건설 사업별 주문 제작으로 다른 공사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지상까지 운반하는 것보다 매립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이 사용된다. 영국 측 TBM은 굴착 완료 후 터널 경로보다 아래 방향으로 매립되었지만, 프랑스 측 로빈스/코마츠, 로빈스/가와사키 중공업의 TBM은 영국까지 진입하여 지상에 기념 전시된 후 해체되었다.

3. 3. 지질

건설 전 20년간 진행된 현장 조사는 백악질 마르(marl) 지층을 통해 터널을 굴착할 수 있다는 이전의 추측을 확인해 주었다. 백악질 마르는 불투수성, 굴착 용이성, 강도 등으로 터널 굴착에 적합한 지질이다. 백악질 마르는 터널 영국 측 전체 길이에 걸쳐 분포하지만, 프랑스 측에서는 약 5km 구간에서 지질이 불규칙하고 굴착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75] 터널은 세 개의 구멍으로 구성되는데, 두 개의 직경 7.6m 철도 터널은 서로 30m 떨어져 있으며, 길이 50km이고, 그 사이에 직경 4.8m의 서비스 터널이 있다.

터널 건설 당시 터널을 따라 나타나는 지질 단면도. 대부분 구간에서 터널은 백악 마르 지층(층)을 통과한다.


터널 공사의 성공은 지형과 지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굴착에 가장 적합한 암석 지층의 선택을 필요로 했다. 이 지역의 지질은 일반적으로 북동쪽으로 경사진 백악기 지층으로, 위얼든-불로뉴 돔의 북쪽 지맥에 속한다.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75]

  • 해협 양쪽 절벽에서 관찰되는 연속적인 백악층으로, 1605년 베르스테간이 관찰했듯이 주요 단층이 없다.
  • 90~100백만 년 전에 퇴적된 해양 퇴적물인 4개의 지질 지층: 투수성이 있는 상부 및 중부 백악층 위에 약간 투수성이 있는 하부 백악층,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투수성 가우트 점토가 있다. 백악 마르와 가우트 점토 사이에는 녹니석 마르(토르티아)의 사암층이 존재한다.
  • 하부 백악층의 아래쪽 3분의 1에 나타나는 약 25m 두께의 백악 마르(프랑스어: ''craie bleue'') 층이 최적의 터널링 매체로 여겨졌다.


영국 측에서는 지층의 경사가 5° 미만인 반면, 프랑스 측에서는 20°까지 증가한다. 양쪽 모두에 절리와 단층이 존재한다. 영국 측에는 2m 미만의 변위를 가진 사소한 단층만 존재하는 반면, 프랑스 측에는 켄옥스 배사 습곡으로 인해 최대 15m의 변위가 존재한다. 단층의 폭은 제한적이며 방해석, 황철석 및 재성형된 점토로 채워져 있다. 경사와 단층의 증가로 인해 프랑스 측의 노선 선택이 제한되었다. 프랑스 측, 특히 해안 근처에서는 백악이 영국 측보다 더 단단하고, 더 취성이며, 더 많이 파쇄되었다. 이로 인해 양쪽에서 서로 다른 터널링 기술이 채택되었다.[76]

플라이스토세 해저 계곡인 포스 댕제르와 영국 측 입구의 캐슬 힐 사면 붕괴가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1964~1965년 지구물리학 조사에 의해 확인된 포스 댕제르는 해저 아래 80m까지 확장되는 매립된 계곡 시스템으로, 해협 중간의 터널 경로 남쪽 500m에 위치한다. 1986년 조사에 따르면 지류가 터널 경로를 가로지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따라서 터널 경로는 가능한 한 북쪽으로 그리고 깊게 만들어졌다. 영국 측 종착역은 하부 백악, 녹니석 마르 및 가우트 잔해의 변위된 그리고 기울어진 블록으로 구성된 캐슬 힐 사면 붕괴 지역에 위치해야 했다. 따라서 이 지역은 버터싱과 배수 갱도 설치를 통해 안정화되었다.[76]

토메 드 가몽(Thomé de Gamond)은 1833년부터 1867년까지 해저 음향 탐사 및 표본 채취를 실시하여 최대 수심이 55m임을 확인하고 지층의 연속성을 밝혔다. 수년간에 걸쳐 탐사가 계속되었으며, 해양 시추공 166개와 육상 시추공 70개가 시추되었고 4,000km가 넘는 해양 지구 물리 탐사가 완료되었다.[77] 1958년~1959년, 1964년~1965년, 1972년~1974년, 그리고 1986년~1988년에도 탐사가 이루어졌다.

3. 4. 굴착 방식

영국과 프랑스 양쪽에서 11대의 터널 굴착기(TBM)가 백악질 이암을 뚫고 두 개의 철도 터널과 하나의 서비스 터널을 건설했다.[50] 터널 공사는 1988년에 시작되어 1994년에 개통되었다.[50] 공사가 한창일 때는 15,000명이 고용되었고, 일일 경비는 300만파운드가 넘었다.[51] 1987년부터 1993년 사이에 10명의 작업자(그중 8명은 영국인)가 사망했는데, 대부분 굴착 초기 몇 달 동안 발생했다.[52][53][54]

두 개의 철도 터널 사이에 있는 서비스 터널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단면도.


터널 공사는 주요한 기술적 과제였다. 유일한 선례는 1988년에 개통된 일본의 세이칸 터널이었다.

목표는 지름 7.6m의 철도 터널 두 개를 30m 간격으로 50km 길이로 건설하는 것이었다. 두 개의 주요 터널 사이에는 지름 4.8m의 서비스 터널이 있고, 지름 3.3m의 교차 통로 쌍이 375m 간격으로 철도 터널을 서비스 터널에 연결한다. 지름 2m의 피스톤 배출관은 250m 간격으로 철도 터널을 연결하고, 철도 터널을 연결하는 두 개의 해저 크로스오버 동굴[78]이 있다. 서비스 터널은 지반 조건을 확인하기 위해 주요 터널보다 항상 1km 앞서 있었다.

서비스 도로에서 본 터널 중간 지점


주요 터널 굴착기(TBM) 구동부에는 프리캐스트 분절 라이닝이 사용되었지만, 프랑스와 영국 양측은 다른 솔루션을 사용했다. 프랑스 쪽에서는 네오프렌과 그라우트로 밀봉된 볼트 체결 라이닝이 주철 또는 고강도 철근 콘크리트로 제작되어 사용되었고, 영국 쪽에서는 속도가 주요 요구 사항이었으므로 주철 라이닝 세그먼트의 볼트 체결은 지질이 불량한 지역에서만 수행되었다. 영국 철도 터널에서는 8개의 라이닝 세그먼트와 1개의 키 세그먼트가 사용되었고, 프랑스 쪽에서는 5개의 세그먼트와 1개의 키가 사용되었다.[79]

Trans Manche Link 건설 열차를 위한 2대의 Hunslet 900mm 게이지 배터리 기관차


프랑스 쪽에서는 물에 대한 투수성이 더 높기 때문에 개방형 및 폐쇄형 모드를 갖춘 토압 균형 TBM이 사용되었다. TBM은 처음 5km 동안 폐쇄 모드로 사용되었지만, 그 후 백악질 마르네층을 뚫고 개방형으로 작동했다.[78] 프랑스 측 작업에는 5대의 TBM이 필요했다. 주요 해양 기계 2대, 육상 기계 1대(3km의 짧은 육상 구간으로 인해 한 대의 TBM이 첫 번째 구간을 완료한 후 방향을 바꾸어 다른 구간을 완료할 수 있었다.), 서비스 터널 기계 2대였다.

영국 쪽에서는 간단한 지질로 인해 더 빠른 개방형 TBM을 사용할 수 있었다.[80] 6대의 기계가 사용되었고, 모두 셰익스피어 절벽에서 굴착을 시작했다. 해양용 3대와 육상 터널용 3대였다.[78] 해저 구간 공사가 완료될 무렵, 영국 TBM은 가파르게 아래쪽으로 굴착되어 터널에서 분리되어 매설되었다. 이 매설된 TBM은 그런 다음 접지를 제공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 후 프랑스 TBM이 터널을 완성하고 해체되었다.[81] 영국 쪽에서는 건설 중에 900mm 게이지 철도가 사용되었다.[82]

영국 기계는 기술적인 이름을 가진 반면, 프랑스 터널링 기계는 모두 여성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브리지트, 유로파, 캐서린, 버지니아, 파스칼린, 세베린이다.[83]

터널 공사 후 한 대의 기계는 폴크스톤의 M20 고속도로 옆에 전시되었는데, 유로터널이 이 기계를 이베이에서 고철 상인에게 £39,999에 매각했다.[84] 또 다른 기계(T4 "버지니아")는 프랑스 쪽 D243E3/D243E4 회전 교차로 중앙, A16의 41번 교차로 인근에 아직 남아 있다.

영국 포크스톤 쪽 출구 원경(사진 중앙에서 약간 왼쪽이 출구)


주로 TBM 공법으로 건설되었지만, 쉴드 공법도 가능한 TBM이 사용되어 지반이 약한 구간 등에서는 쉴드 공법이 사용되었다.

총 11대(영국제 6대, 일본제 4대, 미국제 1대)의 TBM이 발주되었고, 영국 측에서 6대, 프랑스 측에서 5대가 굴착 작업을 진행했다. 일본제 중 2대는 가와사키 중공업 제작이다.

프랑스 측 굴착에 참여한 가와사키 중공업은 상당한 난공사를 해낸 것으로, 『프로젝트X』에서도 소개되었다(방송은 2001년9월 25일). 그 외, 조지 윔피와 벡텔이 시공에 참여했다.

일반적으로 터널 양쪽 끝에서부터 굴착하는 TBM은 터널 중앙부에 도달하면 자신을 터널 구조물의 일부로 만들거나, 좌우로 굴착하여 터널 경로를 벗어나 그대로 매립하여 폐기한다.

4. 구조



영국의 채널 터널 그룹(Channel Tunnel Group)은 은행 2곳과 건설 회사 5곳으로, 프랑스의 프랑스-망슈(France–Manche)는 은행 3곳과 건설 회사 5곳으로 구성되었다. 은행은 자금 조달 자문과 대출 약정 확보를 담당했다. 1985년 7월 2일, 이들은 채널 터널 그룹/프랑스-망슈(CTG/F–M)를 결성했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에 제출된 보고서는 1975년 프로젝트에서 가져온 것으로, 11권의 보고서와 상당한 환경 영향 평가서를 포함했다.

1986년 캔터베리 조약은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체결되었으며, 민간 기업에 의한 고정 링크 건설 및 운영 양허를 준비하고 분쟁 발생 시 중재 방법을 개략적으로 설명했다. 이 조약은 영국과 프랑스 정부를 대신하여 터널 건설 및 운영을 모니터링하는 정부 간 위원회(IGC)와 IGC에 자문하는 안전 당국을 설립했다. 또한 해저터널 중앙에 영국과 프랑스 간의 육지 국경을 설정했는데, 이는 최초의 사례였다.[42][43][44]

설계 및 건설은 CTG/F-M 그룹의 10개 건설 회사가 담당했다. 프랑스 터미널과 터널 굴착은 GIE Transmanche Construction의 프랑스 건설 회사 5곳이, 영국 터미널과 터널 굴착은 Translink Joint Venture의 영국 건설 회사 5곳이 담당했다. 두 파트너십은 TransManche Link(TML)라는 양국 프로젝트 조직에 의해 연결되었다. ''메트르 도브르''(Maître d'Oeuvre)는 유로터널이 고용한 감독 엔지니어링 기관으로, 프로젝트를 모니터링하고 정부와 은행에 보고했다.[45]

프랑스는 인프라 투자의 전통으로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고, 1987년 4월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되었다. 영국에서는 특별 위원회가 제안을 검토했고, 1987년 2월 하원에서 채널 터널 법안이 통과되어 7월에 법률로 제정되었다. 의회의 지지는 실현되지 않은 유로스타 지역 직통 열차 서비스 약속을 바탕으로 한 지방 의원들로부터 나왔다.[46]

터널은 BOT 방식(build-own-operate-transfer) 프로젝트로 건설되었다.[47] TML은 터널을 설계 및 건설했고, 자금 조달은 유로터널을 통해 이루어졌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최종 설계 및 안전 결정권을 가졌으며, 현재는 채널 터널 안전 당국이 관리하고 있다. 유로터널은 55년간의 운영 특허권을 부여받았다. 영국철도, 프랑스철도와의 철도 이용 계약으로 철도 회사들은 터널 용량의 절반을 확보하고 향후 수익을 보장받았다.

민간 자금 조달 총 투자 비용은 1985년 가격 기준으로 26억파운드였다. 1994년 완공 당시 실제 비용은 1985년 가격 기준으로 46.5억파운드로, 80%의 예산 초과였다.[48] 예산 초과의 원인은 안전, 보안 및 환경 요구 사항 강화 때문이었다.[47] 자금 조달 비용은 예상보다 140% 높았다.[49]

4. 1. 개요

1990년 10월 30일, 직경 50mm의 시험 구멍을 통해 서비스 터널이 관통되었다.[55] 1990년 12월 1일에는 영국인 그레이엄 페이그(Graham Fagg)와 프랑스인 필립 코제트(Phillippe Cozette)가 언론의 주목 속에 서비스 터널을 관통하였다.[56] 유로터널(Eurotunnel)은 예정대로 터널 공사를 완료하였다.[47] 두 터널 공사는 36.2cm의 오차로 만났다.[57]

1994년 5월 6일,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칼레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터널을 공식 개통하였다. 정식 운영은 몇 달 후 시작되었지만, 최초의 화물열차는 1994년 6월 1일에 운행되었다.[58]

현재 하이 스피드 1이라고 불리는 해저터널 철도 연결선(Channel Tunnel Rail Link, CTRL)은 런던의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켄트주 폴크스톤의 터널 입구까지 약 111.04km에 걸쳐있다. 2007년 11월 6일, 하이 스피드 1과 세인트 판크라스 국제역이 공식 개통하였다.[59] 하이 스피드 1 열차는 최고 300km/h의 속도로 운행되며, 런던에서 파리까지는 2시간 15분, 브뤼셀까지는 1시간 51분이 소요된다.[60]

1994년, 미국토목학회는 채널 터널을 7대 현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선정하였다.[61]

해저 중앙 부분에 크로스오버(분기기#형태에 따른 분류|渡り線)를 가진 직경 7.6m의 레일 터널(철도 터널) 2개와 그 중간에 직경 4.8m의 서비스(보수용) 터널 1개, 총 3개의 터널로 구성되며, 3개의 터널을 연결하는 연락 통로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2개의 레일 터널에는 또한 열차의 진행에 따라 발생하는 풍압을 해소하기 위한 덕트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다. 해저부 총 거리는 세계 제일의 37.9km이지만, 육상부를 포함한 총 연장은 50.5km로, 이는 스위스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 세이칸 터널에 이어 세계 3위이다.

4. 2. 제원

착공해저공사 완료개통총 길이해저 구간해저 깊이최저 지점건설 비용공사 인원
1986년 5월1990년 12월 1일1994년 5월 6일50.45km37.9km (해저 구간 세계 최고 길이 터널)평균 수심 45m해발 -75m150억달러 (18조)15,000명


  • 총 연장: 50.49km
  • 해저 구간 연장: 37.9km
  • 최대 수심: 60m
  • 궤간: 표준궤 (1,435mm)
  • 구조: 본선 터널 2개와 서비스 터널 1개
  • 굴착 방법: TBM 공법 및 쉴드 공법
  • 건설 비용: 약 1.8조


해저 중앙 부분에 크로스오버(渡り線)를 가진 직경 7.6m의 레일 터널(철도 터널) 2개와 그 중간에 직경 4.8m의 서비스(보수용) 터널 1개, 총 3개의 터널로 구성되며, 3개의 터널을 연결하는 연락 통로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2개의 레일 터널에는 또한 열차의 진행에 따라 발생하는 풍압을 해소하기 위한 덕트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다. 해저부 총 거리는 세이칸 터널을 넘어 세계 제일의 37.9km이지만, 육상부를 포함한 총 연장은 50.5km로, 이는 스위스고트하르트 베이스 터널, 세이칸 터널에 이어 세계 3위이다.

5. 운영

채널 터널 안전청(Channel Tunnel Safety Authority)과 IGC의 승인에 따라 1994년과 1995년에 걸쳐 다양한 서비스가 시작되었지만, 실제 운영 시작일은 며칠 후였다.[63]

채널 터널 운행 시작일
교통 흐름서비스 시작일
대형 트럭 셔틀1994년 5월 19일[64]
화물1994년 6월 1일[64]
유로스타 여객 열차1994년 11월 14일[65]
승용차 셔틀1994년 12월 22일[66]
버스 셔틀1995년 6월 26일[67]
자전거 서비스1995년 8월 10일[68]
오토바이 서비스1995년 8월 31일[69]
캠핑카/카라반 서비스1995년 9월 30일[69]



1994년 이후 영국 해협 터널을 통해 운송된 연간 승객 수와 화물량(톤)은 아래 표와 같다.

1994년 이후 영국 해협 터널을 이용한 승객/화물량(톤)
연도승객 (명)화물량 (톤)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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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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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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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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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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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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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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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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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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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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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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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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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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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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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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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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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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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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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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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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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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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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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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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 ||

|}

터널에서 제공하는 운송 서비스는 유로터널 셔틀 도로 차량 롤온롤오프 셔틀 서비스, 유로스타 여객 열차, 화물 열차이다.[111]

터널 건설 전 예측된 화물 및 여객 교통량은 과대평가되었으며, 특히 유로터널의 예측은 더욱 그러했다.[125] 영국 해협 횡단 교통량 점유율 예측은 정확했지만, 경쟁 심화(특히 저가 항공사)와 관세 인하로 수익이 저조했다. 전체 영국 해협 횡단 교통량 또한 과대평가되었다.[118][112]

2010년부터 유럽 연합의 국제 철도 서비스 자유화로 터널과 고속철도 1이 경쟁에 개방되었다. 여러 운영업체가 터널과 고속철도 1선을 통해 런던까지 열차 운행에 관심을 보였다. 프랑크푸르트행 서비스 계획은 2018년에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114]

유로터널 주식은 1987년 12월 9일 주당 3.5GBP에 발행되었다. 1989년 중반에는 주가가 11GBP로 상승했지만, 지연과 비용 초과로 인해 주가는 하락하여 1994년 10월 시험 운행 중 최저점을 기록했다. 유로터널은 파산을 피하기 위해 1995년 9월 부채 상환을 중단했다.[139] 1997년 12월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유로터널의 운영권을 2086년까지 34년 연장했다. 1998년 중반 유로터널의 재정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와 재정 부담을 줄였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1998년 유로터널이 손익분기점을 달성하려면 요금, 교통량 및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고 보도했다.[140] 터널의 비용편익 분석 결과, 영국 경제는 터널이 건설되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118][141]

양허 계약 조건에 따라 유로터널은 해저 도로 터널에 대한 조사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했다. 1999년 12월 도로 및 철도 터널 제안이 영국과 프랑스 정부에 제출되었지만, 두 번째 터널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강조되었다.[142] 영국, 프랑스, 벨기에 간 3자 조약은 국경 통제를 규정하며, 다른 국가의 공무원이 제한된 관세 및 법 집행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통제 구역"을 설정한다. 대부분 터널 양 끝에 있으며, 프랑스 국경 통제는 영국 쪽에, 영국 국경 통제는 프랑스 쪽에 위치한다. 일부 도시 간 열차의 경우 열차 자체가 통제 구역이 된다.[143] 영국과 프랑스의 비상 활동을 조정하는 양국 비상 계획이 있다.[144]

1999년 유로스타는 1995년 9.25억파운드의 손실을 기록한 후 첫 순이익을 기록했다.[50] 2005년 유로터널은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설명되었다.[145] 2013년 영업 이익은 2012년 대비 4% 증가한 5400만파운드를 기록했다.[146]

터널을 통과하는 열차를 운행하는 회사는 겟링크에 궤도사용료를 지불한다. 궤도사용료는 2008년 이후 화물열차 1대당 평균 3000GBP 또는 4500EUR이다. 이는 2006년 유로터널 그룹(2007년 6월 27일 이전의 회사명)의 경영 파탄과 그 이후 재건 계획의 일환으로 사용료를 감액하여 통과량 증대를 도모한 것으로, 2007년까지는 열차 1대당 평균 5300GBP 또는 8000EUR였다.[229]

5. 1. 개요

영국의 폴크스톤과 프랑스의 칼레를 잇는다. 운영은 겟링크이다. 터널 내를 통과하는 열차는 유로스타, 차량 수송용 셔틀 열차, 화물열차이다.

5. 2. 운행 열차

upright


차량 종류이미지차량 형식편성당 차량 수최고 속도대수운행 노선제작 시기
mphkm/h
겟링크
9형
전기 기관차자동차 수송열차: 2 × 28량
트럭 수송열차: 2 × 30량 또는 32량
9916057폴크스톤 ~ 칼레1992년–2003년
자동차 수송열차
여객차99160252
트럭 수송열차
99160430
클럽카
유로스타
373형
Eurostar e300
170px전동차2 × 1818630028런던–파리
런던–브뤼셀
런던–마른라발레-셰시
런던–부르생모리스
런던–마르세유 생샤를
1992년–1996년
374형
Eurostar e320
1620032017런던–파리
런던–마른라발레-셰시
런던–암스테르담
2011년–2018년
화물: DB 카고
92형
전기 기관차18714046영국과 프랑스 간 화물 노선1993년–1996년
유로터널 서비스 기관차
0001형
디젤 기관차16210010차량 정비1991년–1992년
0031형13150111988년 (900mm궤간 기관차로서);
1993년-1994년 (정비차로 개조)



등급이미지별칭/명판제작제작사참고
SNCF BB 22200형/영국철도 22형
옐로우 서브마린1976년–1986년알스톰9형이 인도되기 전인 1994년/1995년에 사용된 전기 기관차[98][99]
영국철도 319형 전동차
1987년요크 차량 공장1993년/1994년 시험 운행에 사용된 전동차[100]



겟링크는 해당 터널을 통과하는 차량 수송 서비스인 르 셔틀(LeShuttle)을 운영한다.

승용차 수송 열차는 두 개의 별개의 절반으로 구성된다. 단층과 복층이며, 각 절반에는 두 대의 적재/하역 차량과 12대의 운반 차량이 있다. 유로터널의 최초 주문은 승용차 수송 열차 9대였다.

화물차 수송 열차 또한 두 개의 절반으로 구성되며, 각 절반에는 한 대의 적재 차량, 한 대의 하역 차량, 그리고 14대의 운반 차량이 있다. 선두 기관차 뒤에는 클럽카가 있으며, 운전자는 여행 중에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유로터널은 처음에 화물차 수송 열차 6대를 주문했다.

처음에는 38대의 르 셔틀 기관차가 위탁되었으며, 수송 열차의 양쪽 끝에 각각 한 대씩 배치되었다.

화물열차와 심야 여객열차(폐지된 나이트스타 프로젝트) 운송을 위해 46대의 92형 기관차가 주문되었으며, 상부 AC 전력과 제3궤조 DC 전력 모두에서 운행되었다. 그러나 RFF는 이 기관차들이 프랑스 철도에서 운행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터널에서 사용하기 위해 알스톰 프리마 II 기관차의 인증을 받을 계획이다.[101]

프랑스 TGV를 기반으로 하여 영국의 적재궤간에 맞춰 건설되었고, 터널 내 안전을 위해 많은 수정이 가해진 31대의 유로스타 열차가 운영을 시작했다. 이 열차들의 소유권은 영국철도, SNCF, NMBS/SNCB가 공유했다. 영국철도는 런던 북쪽 노선을 위해 7대를 추가 주문했다.[102] 2010년경 유로스타는 지멘스사의 벨라로 제품을 기반으로 한 10대의 열차를 주문했다. 374형 열차는 2016년 운행을 시작하여 현재 373형과 함께 채널 터널을 통해 운행되고 있다.

DB는 2005년경부터 런던까지 열차 운행 허가를 받으려고 시도했다. 2009년 말, 광범위한 내화 요건이 삭제되면서 DB는 독일 ICE 시험 열차를 터널로 운행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2013년 6월 DB는 터널 접근 권한을 부여받았지만, 이 계획은 최종적으로 중단되었다.[103][104]

2021년 10월, 에스파냐 국영철도회사인 렌페는 기존 열차를 이용하여 파리와 런던 간 해협횡단 노선 운영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며 유로스타와 경쟁할 의지를 드러냈다. 어떤 열차를 사용할지는 공개되지 않았다.[105]

2023년 10월과 11월 사이에 런던과 여러 유럽 도시 간 서비스 운영에 관심을 표명한 3개의 회사가 더 있었다.


  • 에스파냐에 본사를 둔 신생기업인 "에볼린"(Evolyn)은 2026년까지 런던과 파리 간 서비스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이 회사는 알스톰이 국제 운영을 위해 건설한 새롭게 개발된 "아벨리아"(Avelia) 고속열차를 주문했다고 밝혔다.[106] 그러나 알스톰은 어떤 차량에 대한 확정 주문도 없었지만, 잠재적 조달에 대해 신생기업과 논의 중이라고 언급했다.[107]
  • 버진 그룹 창업주인 리처드 브랜슨은 전 버진 트레인즈(Virgin Trains) 상무이사를 고용하여 런던, 파리, 브뤼셀, 암스테르담을 운행하는 유로스타와 경쟁할 잠재적 국제 서비스에 대한 인프라 논의를 시작했다고 알려졌다.[108]
  • 네덜란드 신생기업 "헤우로"(Heuro)는 암스테르담에서 파리와 런던으로 운행하는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을 발표했다. 헤우로는 2027년 12월부터 운행 시간표를 공식적으로 신청했으며, 유럽과 미국에서 투자 자금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109][110]


구조 및 차량 조작을 위한 디젤 기관차는 유로터널 0001형과 유로터널 0031형이다.

5. 3. 열차 최고 속도

영국 해협 해저터널(채널 터널)을 운행하는 유로스타의 영업 최고 속도는 시속 300km이다.[228] 그러나 터널 구간에서는 안전을 위해 속도가 시속 160km로 제한된다.[228] 이는 유로터널 셔틀 및 화물열차와의 최고 속도 차이(시속 140km)를 고려한 조치이다.[228] 청함 터널과 달리 채널 터널은 단선 병렬 터널이 아니므로 열차 간 스침에 의한 영향은 고려할 필요가 없지만, 터널 구간에서도 속도 제한은 동일하게 적용된다.[228]

5. 4. 선로 사용료

터널을 통과하는 열차를 운행하는 회사는 겟링크(Getlink)에 궤도사용료를 지불한다. 궤도사용료는 2008년 이후 화물열차 1대당 평균 3000GBP 또는 4500EUR이다. 이는 2006년 유로터널 그룹(2007년 6월 27일 이전의 회사명)의 경영 파탄과 그 이후 재건 계획의 일환으로 사용료를 감액하여 통과량 증대를 도모한 것으로, 2007년까지는 열차 1대당 평균 5300GBP 또는 8000EUR였다. 또한 화물의 종류와 톤수에 따른 복잡한 과금 체계였던 것을 열차의 속도와 시간대에 따른 단순한 과금 체계로 변경하였다.[229]

6. 안전

채널터널 안전청(Channel Tunnel Safety Authority)은 터널 안전 규제의 일부를 담당하며, 정부간위원회(Intergovernmental Commission, IGC)에 보고한다.[210]

서비스 터널은 횡단 통로와 장비실의 기술 장비에 접근하고, 신선한 공기를 환기하며, 비상 대피를 위해 사용된다. 서비스 터널 수송 시스템(STTS)을 통해 터널의 모든 영역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서비스 차량은 고무 타이어를 사용하며 매설된 와이어 유도 시스템을 사용한다.

24대의 STTS 차량은 주로 유지보수에 사용되지만, 소방 및 비상 상황에도 사용된다. 최대 2.5tonne에서 5tonne의 탑재량을 가진 다양한 용도의 "포드"가 차량 측면에 장착된다. 차량은 터널 내에서 회전할 수 없으며 양쪽 끝에서 운전된다. 조향이 고정될 때 최대 속도는 80km/h이다. STTS를 보완하기 위해 15대의 경량 서비스 터널 차량(LADOGS)이 도입되었다. LADOGS는 회전 반경이 3.4m인 짧은 축거를 가지고 있어 서비스 터널 내에서 두 지점 회전이 가능하다. STTS 차량과 같이 조향을 고정할 수 없으며 최대 속도는 50km/h이다. 최대 1tonne의 포드를 차량 후면에 적재할 수 있다. 터널 내 운전자는 오른쪽에 앉고 차량은 왼쪽으로 주행한다. 프랑스 직원이 고유한 오른쪽 차선으로 운전할 위험 때문에 차량의 센서가 차량이 오른쪽으로 치우치면 운전자에게 경고한다.[211]

세 개의 터널에는 쾌적함과 안전을 위해 조절해야 하는 6000tonne의 공기가 있다. 셰익스피어 절벽(Shakespeare Cliff)과 상가트(Sangatte)의 환기 건물에서 공기를 공급하며, 각 건물은 100% 대기 용량을 제공할 수 있다. 터널 양쪽에 보조 환기도 있다. 화재 발생 시 환기 시스템은 연기를 서비스 터널에서 차단하고 주 터널에서 한 방향으로 연기를 이동시켜 승객에게 깨끗한 공기를 제공한다. 이 터널은 특수 냉각 장비를 갖춘 최초의 주요 철도 터널이었다. 열은 견인 장비와 마찰에서 발생한다. 양쪽에 있는 냉동 설비를 사용하는 기계식 냉각 시스템을 사용하여 터널 내 파이프를 순환하는 냉각수를 통해 설계 한계는 30°C로 설정되었다.[212]

고속으로 주행하는 열차는 피스톤 효과로 인한 압력 변화를 생성하여 승객의 편안함, 환기 시스템, 터널 문, 팬 및 열차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열차에 저항을 발생시킨다.[212]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m 직경의 피스톤 완화 덕트를 선택했으며, 최적의 결과를 얻기 위해 킬로미터당 4개의 덕트를 설치했다. 그러나 이러한 설계는 열차에 극단적인 횡력을 유발했으므로 열차 속도를 줄이고 덕트에 제한 장치를 설치해야 했다.[213]

승객 차량 셔틀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재의 안전 문제는 많은 관심을 끌었으며, 유로터널(Eurotunnel)은 1994년 안전 사례에서 세 가지 이유로 화재가 가장 주목받는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첫째, 여객선 회사들이 승객이 차량에 남아 있는 것을 반대했고, 둘째, 내무부(Home Office) 통계에 따르면 10년 만에 차량 화재가 두 배로 증가했으며, 셋째, 터널의 길이가 매우 길었기 때문이다. 유로터널은 영국 화재 연구소(현재 건설 연구소(Building Research Establishment)의 일부)에 차량 화재 보고서를 의뢰하고 켄트 소방대와 협력하여 1년 동안 차량 화재 통계를 수집했다. 프랑스 광산 연구소에서 차량 화재 실험이 이루어졌으며, 모의 차량을 사용하여 차량이 어떻게 연소되는지 조사했다.[214] 웨건 도어 시스템은 27분의 통과 시간보다 긴 30분 동안 웨건 내부 화재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웨건 에어컨 장치는 여행 전에 웨건 내부에서 위험한 유독가스를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각 웨건에는 이온 또는 자외선 감지, 연기 및 가스 감지 기능이 있는 화재 감지 및 소화 시스템이 있으며, 할론 가스를 사용하여 화재를 진압할 수 있다.

HGV 웨건은 덮개가 없기 때문에 화재 센서는 적재 웨건과 터널에 있다. 서비스 터널의 약 25.40cm 수도관은 125m 간격으로 주 터널에 물을 공급한다.[215] 환기 시스템은 연기 이동을 제어할 수 있다. 특수 도착선은 화재가 발생한 열차를 수용하며, 여행을 계속하는 것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한 열차는 터널에서 화재 발생 중에 정지할 수 없다. 소방 포드가 장착된 두 대의 STTS(서비스 터널 수송 시스템)[216] 차량이 항상 근무 중이며, 화재 열차에 도착하기 전 최대 10분의 지연이 있다.[185] 유로터널은 터널 내 위험물 운송을 광범위하게 금지했다.

1996년 11월 18일, 유로터널(Eurotunnel)을 운행 중이던 셔틀 열차(카트레인, 유로터널 셔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향하던 열차의 뒤쪽에서 4번째 화차에 실린 트럭의 폴리우레탄(Polyurethane) 적재물에서 발화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열차는 프랑스 측 터널 입구에서 17km 떨어진 지점에 멈춰섰고, 프랑스 소방대에 의해 승객 31명과 승무원 3명 전원이 구조되었으나, 19명이 연기를 흡입하여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매뉴얼에는 화재 발생 시 터널 내에 정차하지 않고 터널 외부의 대피선까지 주행하여 소화 활동을 벌이거나, 화재 발생 차량을 분리하여 여객차를 화재로부터 멀리 이동시키거나, 터널 내에 정차하여 작업용 터널로 대피하여 환기 장치로 연기로부터 보호하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모든 방법에 실패했다.[227]

7. 사고

채널 터널에서는 대형 화물차(HGV) 수송용 셔틀 열차에서 발생한 세 건의 대규모 화재를 포함해 여러 건의 크고 작은 화재 사고가 있었다. 이러한 대규모 화재로 인해 터널이 폐쇄되기도 했다.


  • 1994년 12월 9일: 관광객 셔틀 열차 상층 갑판에 포드 에스코트 차량을 싣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폴크스톤 터미널에 정차 중이던 셔틀 열차에서 오전 10시경 화재가 발생했으며, 약 40분 만에 진화되었고 승객들은 다치지 않았다.[183]
  • 1996년 11월 18일: HGV 셔틀 열차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중상자는 없었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184] 유로터널 장비나 차량 문제는 아니었고, 대형 화물차 방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화재 중심부 온도는 약 1000°C에 달했으며, 46m 구간이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500m 구간도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다. 화재 발생 6개월 후에 터널 운영이 완전히 재개되었다.[185]
  • 2006년 8월 21일: HGV 셔틀 열차의 트럭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터널이 수 시간 동안 폐쇄되었다.[186][187]
  • 2008년 9월 11일: 그리니치 표준시(GMT) 13시 57분에 채널 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프랑스 방향으로 이동 중이던 HGV 셔틀 열차에서 시작되었으며,[188] 프랑스 터널 입구에서 11km 지점에서 발생했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연기를 흡입하거나 경미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터널은 모든 교통이 통제되었고, 손상되지 않은 남쪽 터널은 이틀 후 제한적으로 운행을 재개했다.[189] 수리비 6000만유로를 들여 2009년 2월 9일 터널 운영이 완전히 재개되었다.[190]
  • 2012년 11월 29일: HGV 셔틀 열차의 트럭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터널이 수 시간 동안 폐쇄되었다.[191]
  • 2015년 1월 17일: 북쪽 터널 중간 부분을 연기로 가득 채운 트럭 화재로 인해 양쪽 터널이 모두 폐쇄되었다. 유로스타는 모든 운행을 취소했다.[192] 폴크스톤에서 코켈 방향으로 향하던 셔틀 열차는 세계 표준시(UTC) 12시 30분 직전에 교차 통로 CP 4418 근처에 정차했다. 38명의 승객과 유로터널 직원 4명은 서비스 터널로 대피하여 특수 STTS 도로 차량을 이용해 프랑스로 이동했다. 이들은 프랑스 터널 입구 근처의 유로터널 화재/긴급 관리 센터로 이송되었다.[193]
  • 1996년 2월 19일~20일 밤: 런던발 유로스타(열차)의 전자 회로 고장으로 약 1,000명의 승객이 해저 터널에 갇혔다. 눈과 얼음이 회로 기판에 쌓였다가 녹으면서 고장이 발생했다.[194]
  • 2007년 8월 3일: 6시간 동안 지속된 전기 고장으로 승객들이 셔틀 열차 안에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다.[195]
  • 2009년 12월 18일 저녁: 2009년 12월 유럽 대설 기간 중 런던행 유로스타 열차 5대가 해저 터널 안에서 고장 나면서 약 2,000명의 승객이 8년 만의 최저 기온 속에서 약 16시간 동안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다.[196] 유로터널 대변인은 눈이 열차의 동절기 방호막을 뚫고 들어갔다며,[197] 외부의 차가운 공기에서 터널의 따뜻한 대기로 이동하면서 눈이 녹아 전기 고장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198][199][200][201] 한 열차는 터널에 도착하기 전에 되돌아갔고, 두 열차는 유로터널 0001형 디젤 기관차에 의해 터널 밖으로 이동되었다. 터널 봉쇄로 인해 작전 스택(Operation Stack)이 시행되었고, M20 고속도로가 대규모 주차장으로 변했다.[202] 이 사건은 유로스타 열차가 터널 안에서 대피한 최초의 사례였으며, 네 대의 열차가 동시에 고장 난 것은 "전례 없는" 일로 묘사되었다.[203] 해저 터널은 다음날 아침에 재개통되었다.[204] 영국 남동부 지역의 유럽 의회 의원인 니르제 데바(Nirj Deva)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유로스타 최고경영자 리처드 브라운(Richard Brown)의 사퇴를 요구했다.[205] 2009년 12월 18일/19일 사고에 대한 크리스토퍼 가넷(Christopher Garnett)(
  • 2010년 1월 7일: 브뤼셀-런던 유로스타 열차가 터널에서 고장 났다. 236명의 승객이 탑승한 열차는 애시포드(Ashford)까지 견인되었고, 터널에 도착하지 않은 다른 열차들은 되돌아갔다.[208][209]

8. 논란 및 문제점

채널 터널은 완공 이후 여러 논란과 문제점에 직면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불법 이민 문제이다. 1997년부터 불법 이민자와 망명 신청자들이 해저터널을 통해 영국으로 들어가려는 시도가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9년 프랑스 적십자사는 상가트에 첫 번째 이민자 센터를 열었으며, 2002년에는 최대 1,500명이 이곳에 머물렀다. 이들은 주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란 등 중동 국가 출신이었으나, 아프리카 국가 출신들도 있었다.[159][160]

유로터널은 2015년 1월부터 7월까지 3만 7천 명이 넘는 이민자들이 단속되었다고 발표했다.[161] 같은 해 7월 공식 집계에 따르면, 약 3,000명의 이민자가 칼레에 설치된 임시 수용소에 거주하고 있었다.[162] 당시 영국으로 가기 위해 칼레에서 기회를 기다리는 이민자는 약 3,000~5,000명으로 추산되었다.[163]

이민자들은 주로 화물 열차를 이용하여 영국 입국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하거나, 철도 장비가 손상되어 지연 및 수리가 발생하기도 했다.[165] 유로터널은 이 문제로 매달 500만파운드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166] 2001년과 2002년에는 상가트에서 여러 차례 폭동이 발생했고, 이민자 집단이 울타리를 넘어 집단으로 입국을 시도하기도 했다.[167]

프랑스 정부는 500만파운드을 들여 이중 울타리를 설치하고, CCTV 카메라 설치와 경찰 순찰 강화 등의 조치를 취했다.[171][172] 2002년 말, 영국이 일부 난민을 수용하기로 합의한 후 상가트 센터는 폐쇄되었다.[173][174]

2015년에는 마이페리링크 관련 파업 노동자들이 선로를 파손하여 열차 운행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틈을 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영국으로 향하는 화물 트럭에 숨어 영국에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추가적인 보안 조치로 탐지 기술 업그레이드, 마약 탐지견 검색, 칼레 항구 주변 보안 강화 등에 1500만파운드가 투입되었다.

2002년, 12명의 이주민이 통과 시도 중 사망했다.[159] 2015년 6월부터 7월까지 두 달 동안은 10명의 이주민이 프랑스 터널 터미널 근처에서 사망했다.[176][177]

기타 사건으로는 1999년 '코소보 생명을 위한 열차' 통과, 2009년 전 F1 챔피언 존 서티스의 자선 행사, 2014년 팀 스카이의 크리스 프룸의 서비스 터널 자전거 통과 등이 있다.

8. 1. 불법 이민 문제

불법 이민자와 망명 신청자들은 해저터널을 통해 영국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해 왔다. 1997년부터 이 문제는 국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1999년 프랑스 적십자사는 해저터널 건설에 사용되었던 창고를 이용하여 상가트에 첫 번째 이민자 센터를 열었다. 2002년에는 한때 최대 1,500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머물렀는데, 대부분 영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이었다.[159] 이들은 주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란 출신이었으나, 아프리카 국가 출신들도 있었다.[160]

해저터널 운영업체인 유로터널은 2015년 1월부터 7월까지 3만 7천 명이 넘는 이민자들이 단속되었다고 밝혔다.[161] 2015년 7월 공식 집계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수단,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민자 약 3,000명이 칼레에 설치된 임시 수용소에 거주하고 있었다.[162] 영국으로 가기 위해 칼레에서 기회를 기다리는 이민자는 약 3,000~5,000명으로 추산되었다.[163]

영국과 프랑스는 이민 및 세관에 대한 병행 통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조사는 여행 전에 이루어진다. 프랑스는 대부분의 EU 회원국 간 국경 검문을 없애는 솅겐 이민 지역에 속해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별도의 공동여행 지역 이민 지역을 구성한다.

영국에 입국한 대부분의 불법 이민자와 망명 신청자들은 화물 열차를 이용했다. 트럭은 화물 열차에 실리는데, 일부 이민자들은 액체 초콜릿 탱크에 밀항하여 여러 차례 시도 끝에 살아남기도 했다.[164] 시설에 울타리가 쳐져 있었지만 완벽한 보안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이민자들은 다리에서 움직이는 열차로 뛰어내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부상을 입거나, 철도 장비를 손상시켜 지연 및 수리를 유발하기도 했다.[165] 유로터널은 이 문제로 매달 500만파운드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166]

2001년과 2002년에는 상가트에서 여러 차례 폭동이 발생했고, 이민자 집단(2001년 12월 최대 550명)이 울타리를 넘어 집단으로 입국을 시도하기도 했다.[167] 영국에 영주권을 얻으려는 다른 이민자들은 유로스타 여객열차를 이용했다. 이들은 방문객인 척하거나(필요한 방문 비자를 발급받거나, 진짜 의도를 숨기고 위조하여 최대 6개월의 항구 스탬프를 받는 경우), 다른 사람의 서류, 위조 또는 변조된 여권을 사용하기도 했다.[168] 이러한 위반은 신원 확인 후 영국 입국이 거부되는 결과를 초래하며, 영국 입국 신청을 고집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169]

해저터널 주변 보안 강화로 인해, 2018년 이후 대부분의 이주는 소형 보트로 옮겨졌다. 프랑스와 영국 지방 당국은 모두 상가트 난민 캠프 폐쇄를 요구했고, 유로터널은 두 차례 금지 명령을 요청했다.[159] 2006년 영국은 상가트 캠프 개설을 허용한 프랑스를 비난했고, 프랑스는 영국의 느슨한 난민 규정/법과 통일된 이민 정책이 없는 EU를 비난했다.[166] 이 문제의 ''유명한 사건'' 성격 때문에 기자들이 난민들을 따라 철도 부지로 들어가다 구금되는 사건도 발생했다.[170]

2002년, 유럽 집행위원회는 프랑스가 열악한 보안으로 인한 지연 및 폐쇄 때문에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에 관한 유럽 연합 규정을 위반했다고 통보했다. 프랑스 정부는 500만파운드을 들여 이중 울타리를 설치하여, 화물 열차를 타고 영국에 도착하는 난민 수를 주당 250명에서 거의 0명으로 줄였다.[171] CCTV 카메라 설치와 경찰 순찰 강화 등의 조치도 취해졌다.[172] 2002년 말, 영국이 일부 난민을 수용하기로 합의한 후 상가트 센터는 폐쇄되었다.[173][174]

2015년 6월 23일과 30일,[175] 마이페리링크 관련 파업 노동자들이 자동차 타이어를 태워 선로 일부를 파손, 모든 열차 운행이 취소되고 차량이 대거 체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영국으로 향하는 화물 트럭 안과 아래에 숨어 영국에 들어가려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추가적인 보안 조치로는 탐지 기술 업그레이드에 200만파운드, 마약 탐지견 검색에 100만파운드, 칼레 항구 주변 보안을 위한 프랑스와의 공동 기금에 3년 동안 1200만파운드가 투입되었다.

2002년, 12명의 이주민이 통과 시도 중 사망했다.[159] 2015년 6월부터 7월까지 두 달 동안, 매일 1,500건의 보안 조치 회피 시도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프랑스 터널 터미널 근처에서 10명의 이주민이 사망했다.[176][177] 2015년 7월 6일, 한 이주민이 프랑스 쪽에서 화물 열차에 올라타려다 사망했고,[178] 그 전 달에는 에리트리아인 남성이 비슷한 상황에서 사망했다.[179] 2015년 7월 28일 밤, 1,500~2,000명의 이주민이 유로터널 터미널 진입을 시도한 밤에 25~30세의 한 사람이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180] 이후 터널 안에서 수단 이주민의 시신이 발견되었다.[181] 2015년 8월 4일, 또 다른 수단 이주민은 터널의 거의 전체 길이를 걸어간 후 영국 쪽에 가까워졌을 때 체포되었다.[182]

8. 2. 기타

1999년, 코소보의 프리슈티나로 향하던 '코소보 생명을 위한 열차(Kosovo Train for Life)'가 이 터널을 통과했다.

2009년, 전 F1 레이싱 챔피언 존 서티스는 자선 행사의 일환으로 영국에서 프랑스까지 서비스 터널을 이용하여 지네타 G50 EV 전기 스포츠카 프로토타입을 운전했다. 그는 시속 50km/h의 속도 제한을 준수해야 했다.[217] 2014년 7월, 2014 투르 드 프랑스의 영국 출발 구간에서 프랑스로의 이동을 기념하기 위해 팀 스카이의 크리스 프룸은 서비스 터널을 자전거로 통과하여 이를 단독으로 최초로 달성했다.[218][219] 횡단에는 1시간 미만이 걸렸으며, 시속 65km/h의 속도에 도달하여 대부분의 해협 횡단 페리보다 빨랐다.[220]

9. 문화적 영향


  • National Geographic Channel(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 다큐멘터리 「유로터널: 도버 해협을 잇는 테크노 파워」에 등장했다.
  • 애니메이션 「루팡 3세: 할리마오의 보물을 쫓아라!!」에 등장했다.
  • 라이트 노벨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17권에 유로터널로 등장한다.
  • 수요일 도와줘의 「유럽 21개국 완주 여행」에 등장했다.
  • 영국과 프랑스 합작 텔레비전 드라마 「The Tunnel」의 원작인 드라마 「터널 ~국경에 떨어진 피」에 등장했다.
  •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 등장했다.
  • FPS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III」 최종 미션에서 마카로프가 이끄는 PMC와 TF141, CTSFO가 전투를 벌인다.

참조

[1] 서적 The Channel Tunnel: Transport systems, Volume 4 https://books.google[...] Thomas Telford
[2] 서적 The Channel Tunnel: Terminals https://books.google[...] Thomas Telford
[3] 뉴스 The Channel Tunnel that was never built https://www.bbc.com/[...] 2022-07-21
[4] 웹사이트 Folkestone Eurotunnel Trains http://www.ferryto.c[...] Transworld Leisure Limited 2017-02-11
[5] 간행물 Turkey Building the World's Deepest Immersed Tube Tunnel http://www.popularme[...] 2009-10-01
[6] 웹사이트 The Channel Tunnel – Traveling Under the Sea http://www.autoevolu[...] 2014-08-02
[7] 웹사이트 Traffic figures https://www.getlinkg[...] GetLink Group 2018-07-11
[8] 웹사이트 About/Performance http://www.doverport[...] Port of Dover 2018-07-11
[9] 웹사이트 The Channel Tunnel http://library.think[...] library.thinkquest.org 2009-07-19
[10] 서적 Paddy at Home ("Chez Paddy") Chapman & Hall 1887
[11] 웹사이트 The Channel Tunnel – A Case Study http://apps.dtic.mil[...] The Industrial College of the Armed Forces, National Defense University 2016-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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