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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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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거듭남은 헬라어 팔링게네시아(palingenesia)에서 유래된 용어로, 기독교 신학에서 영적인 재탄생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요한복음에서 예수와 니고데모의 대화에서 처음 등장하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거듭남은 죄로부터의 해방, 새로운 삶, 성령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로 이해되며,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등 다양한 교파에서 세례, 회심, 성령 세례 등과 연관되어 각기 다른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미국에서는 "거듭난" 기독교인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복음주의 기독교 갱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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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

2. 어원 및 성경적 근거

거듭남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팔링게네시아(palingenesia)"는 "다시"를 뜻하는 팔린(palin)과 "탄생"을 뜻하는 게네시스(genesis)로 이루어져 있다(Vine's). 그러므로 "거듭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이다. 스트롱 성구사전(Strong Concordance)에 따르면 이 단어는 신약에서 일부 구절을 제외하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딛3:5, 마19:28). 위클리프(Wycliffe)는 그의 성경사전(Bible Dictionary)에서 "신약에서 여러 가지 다른 표현들이 동일한 진리를 지칭하는데 사용되었지만, 다시 태어남 또는 위로 부터 태어남(요 3:3, 벧전 1:23), 하나님께로서 태어남(요 1:13) 같은 이러한 표현들은 새로운 출생 같은 역동적인 변화의 사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알렉상드르 비다의 그림, 1874년, ''예수와 니고데모''


이 용어는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와 유대인 바리새인 니고데모의 대화에서 유래되었다.[10]

요한 복음서는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여졌으며, 원문은 '다시' 또는 '위로부터'라는 의미를 모두 가질 수 있는 아노텐/ἄνωθενgrc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중 의미를 낳는다.[11] 니고데모는 예수의 말을 문자적으로 이해했지만, 예수는 영적인 거듭남을 의미한다고 명확히 한다. 영어 번역본에서는 주로 "거듭남"(NIV, 킹 제임스 성경, 개정역) 또는 "위로부터 태어남"(신 개정 표준역[12], 신 영어 번역[13])으로 번역되며, 대부분 다른 의미를 각주에 기록한다.[14] 에드윈 호스킨스는 "위로부터 태어남"이 근본적인 의미이며, "성령으로 태어남"[15],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남"[16]과 같은 구절은 하나님 자신이 주신 새로운 삶을 강조한다고 주장했다.[17]

베드로전서에서는 아나게겐네메노이/ἀναγεγεννημένοιgrc라는 단어가 '거듭남'으로 번역되었다.[19]

2. 1. 어원

거듭남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팔링게네시아(palingenesia)"는 "다시"를 뜻하는 팔린(palin)과 "탄생"을 뜻하는 게네시스(genesis)로 이루어져 있다(Vine's). 그러므로 "거듭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이다. 스트롱 성구사전(Strong Concordance)에 따르면 이 단어는 신약에서 일부 구절을 제외하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딛3:5, 마19:28). 위클리프(Wycliffe)는 그의 성경사전(Bible Dictionary)에서 "신약에서 여러 가지 다른 표현들이 동일한 진리를 지칭하는데 사용되었지만, 다시 태어남 또는 위로 부터 태어남(요 3:3, 벧전 1:23), 하나님께로서 태어남(요 1:13) 같은 이러한 표현들은 새로운 출생 같은 역동적인 변화의 사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용어는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와 유대인 바리새인 니고데모의 대화에서 유래되었다.[10]

요한 복음서는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여졌으며, 원문은 '다시' 또는 '위로부터'라는 의미를 모두 가질 수 있는 아노텐/ἄνωθενgrc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중 의미를 낳는다.[11] 니고데모는 예수의 말을 문자적으로 이해했지만, 예수는 영적인 거듭남을 의미한다고 명확히 한다. 영어 번역본에서는 주로 "거듭남"(NIV, 킹 제임스 성경, 개정역) 또는 "위로부터 태어남"(신 개정 표준역[12], 신 영어 번역[13])으로 번역되며, 대부분 다른 의미를 각주에 기록한다.[14] 에드윈 호스킨스는 "위로부터 태어남"이 근본적인 의미이며, "성령으로 태어남"[15],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남"[16]과 같은 구절은 하나님 자신이 주신 새로운 삶을 강조한다고 주장했다.[17]

베드로전서에서는 아나게겐네메노이/ἀναγεγεννημένοιgrc라는 단어가 '거듭남'으로 번역되었다.[19]

2. 2. 요한복음의 기록

거듭남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팔링게네시아(palingenesia)"는 팔린(palin, "다시")과 게네시스(genesis, "탄생")란 단어로 이루어져 있어, 문자 그대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갖는다.[29] 이 단어는 신약에서 딛3:5, 마19:28을 제외하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위클리프(Wycliffe)는 그의 성경사전(Bible Dictionary)에서 "다시 태어남 또는 위로 부터 태어남(요 3:3, 벧전 1:23), 하나님께로서 태어남(요 1:13) 같은 표현들은 새로운 출생 같은 역동적인 변화의 사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학자들은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예수와 니고데모의 대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다. 이 대화는 예수와 니고데모 사이의 사적인 대화로 묘사되어 있으며, 제자들이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 이 대화의 기록이 어떻게 입수되었는지 불분명하다. 또한, 이 대화는 요한복음과 요한복음을 바탕으로 한 저작 외에는 다른 고대 기독교 자료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29]

바트 어먼에 따르면, 성경의 영어 번역본이 그리스어 아노텐/ἄνωθενgrc에 대해 겪는 것과 동일한 문제가 아람어에서도 나타난다. 아람어에는 '다시'와 '위로부터'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나타내는 단어가 없는데, 이 대화는 니고데모가 이러한 오해를 한다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28] 이 대화는 예루살렘에서 두 명의 유대인 사이에서 이루어졌으며, 아람어가 모국어였으므로 그들이 그리스어로 말했을 이유가 없다.[29] 이는 비록 실제 대화에 기반한 것이라 할지라도, 요한복음의 저자가 그리스어의 말장난과 관용구를 포함시키기 위해 내용을 크게 수정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29]

성경요한의 복음서 3장 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교 랍비이자 지도자인 니고데모에게 영적인 거듭남이 필요함을 설하고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1-8, 개역개정)

2. 3. 베드로전서의 기록

거듭남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팔링게네시아(palingenesia)"는 팔린(palin, "다시")과 게네시스(genesis, "탄생")란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거듭난다"는 의미는 문자 그대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 단어는 신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지만, 스트롱 성구사전(Strong Concordance)에 따르면 이 단어는 일부 구절을 제외하면 신약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딛3:5, 마19:28). 위클리프(Wycliffe)는 그의 성경사전(Bible Dictionary)에서 "신약에서 여러 가지 다른 표현들이 동일한 진리를 지칭하는데 사용되었지만, 다시 태어남 또는 위로 부터 태어남(요 3:3, 벧전 1:23), 하나님께로서 태어남(요 1:13) 같은 이러한 표현들은 새로운 출생 같은 역동적인 변화의 사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3. 신학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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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관점=

요한복음에서 거듭남은 새 생명을 가져오는 재출생으로, 절대적으로 생명의 문제이지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거듭남은 이미 갖고 있는 생명 외에 또 다른 생명, 즉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갖는 것이다. 이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부모의 생명을 갖는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의 생명, 즉 영원한 생명(요3:15-16)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복음은 거듭남에 대한 진리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요한은 거듭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요1:13), 다시 태어나는 것(요3:3),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요3:5-6)이라고 설명한다.

요한복음 1장 12절과 13절은 거듭나는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것임을 계시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듯이,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우리 역시 하나님의 생명을 갖는다. 거듭남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것 외에 다른 수단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온 우주 가운데 가장 위대한 기적이다.

요한복음 3장 3절에서 예수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선포했다. 여기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갖는 것 이상으로, 생명의 새로운 근원과 출발점에서 "완전히 새롭게"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거듭남은 생명의 새로운 근원이며 새로운 시작이고, 이 생명의 "새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다. 이는 고린도전서 2장 11-12절에서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과 부합한다. 즉, 거듭남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생명의 새로운 시작이다.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물로 태어나는 것은 침례 요한의 사역인 "종결"의 사역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죄악된 상태를 회개하고 영적 죽음과 장사를 의미하는 침례를 받음으로써 주님께서 구원을 가져오실 수 있는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마 3:11).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의 사역, 즉 "발아"의 사역을 언급한다(요 3:6, 요 12:24). 6절에서 주님은 거듭나는 것이 사람의 영 안에서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임을 계시하셨다. 거듭날 때 성령은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사람의 영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한 영이 되고, 우리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고린도전서 6:17; 롬 8:16).

거듭남은 옛 창조에 속한 사람을 그의 모든 행위와 함께 종결하고, 신성한 생명으로 새 창조 안에서 그들을 발아시킨다. 회개와 믿음이 모두 필요하며,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의 의미이자 거듭남이다.

구원의 약속에 대한 전통적인 유대교의 이해는 "아브라함의 씨", 즉 아브라함으로부터의 육체적 혈통에 근거한 것으로 해석되었다.[20] 그러나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이 교리가 잘못되었으며, 모든 사람은 육체의 자연적 출생과 물과 성령으로 인한 또 다른 출생, 즉 두 번의 출생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20] 이 담론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의 영적 씨앗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기독교 신념을 확립했으며,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서 더욱 강화된다.[21][19]

찰스 호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혼 안에서 이루어지는 주관적인 변화"를 "새로운 출생", "부활", "새 생명", "새로운 창조", "마음의 새롭게 함",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사는 것", "어둠에서 빛으로의 옮김"과 같은 다양한 용어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23]

예수는 영적인 새 생명을 신성한 시작에 연결하기 위해 "출생"의 비유를 사용했다. 현대 기독교 신학자들은 "위로부터 난"이 원어 그리스어 단어 아노텐/ánōtʰengrc을 더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라고 설명한다.[24] 신학자 프랭크 스태그는 "위로부터"(에서)의 강조는 "새 생명"의 근원에 주목하게 하고, 개인적인 개선 이상의 것이 필요하며, "새로운 운명은 새로운 기원을 필요로 하며, 새로운 기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한다"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를 제시한다.[25]

존 웨슬리는 '새로운 출생'이라는 설교에서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도 거룩할 수 없고, 이 세상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하며, "거듭나서 구원의 상속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웨슬리는 또한 세례를 받은 유아는 거듭난다고 말하지만, 어른의 경우에는 다르다고 언급했다.[26]

유니테리언주의의 저서인 ''복음 닻''은 1830년대에 이 구절이 베드로전서를 제외하고는 어떤 복음서에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요한이 없었다면 "우리는 한 사람이 거듭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본문과 문맥이 특히 니고데모에게 적용되도록 의도되었으며 세상에 적용되도록 의도된 것은 아니다"라고 시사한다.[27]

|바울 서신의 관점=

바울은 거듭남이 "새로운 창조"[115]이며, 하나님의 역사로 죄 많은 과거의 생활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맺고, 생명력 있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구원론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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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요한복음의 관점

요한복음에서 거듭남은 새 생명을 가져오는 재출생으로, 절대적으로 생명의 문제이지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거듭남은 이미 갖고 있는 생명 외에 또 다른 생명, 즉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갖는 것이다. 이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부모의 생명을 갖는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의 생명, 즉 영원한 생명(요3:15-16)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복음은 거듭남에 대한 진리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요한은 거듭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요1:13), 다시 태어나는 것(요3:3),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요3:5-6)이라고 설명한다.

요한복음 1장 12절과 13절은 거듭나는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것임을 계시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듯이,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우리 역시 하나님의 생명을 갖는다. 거듭남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것 외에 다른 수단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온 우주 가운데 가장 위대한 기적이다.

요한복음 3장 3절에서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선포했다. 여기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갖는 것 이상으로, 생명의 새로운 근원과 출발점에서 "완전히 새롭게"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거듭남은 생명의 새로운 근원이며 새로운 시작이고, 이 생명의 "새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다. 이는 고린도전서 2장 11-12절에서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과 부합한다. 즉, 거듭남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생명의 새로운 시작이다.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물로 태어나는 것은 침례 요한의 사역인 "종결"의 사역을 가리키며, 사람들이 죄악된 상태를 회개하고 영적 죽음과 장사를 의미하는 침례를 받음으로써 주님께서 구원을 가져오실 수 있는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마 3:11).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의 사역, 즉 "발아"의 사역을 언급한다(요 3:6, 요 12:24). 6절에서 주님은 거듭나는 것이 사람의 영 안에서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임을 계시하셨다. 거듭날 때 성령은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사람의 영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한 영이 되고, 우리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고전 6:17; 롬 8:16).

거듭남은 옛 창조에 속한 사람을 그의 모든 행위와 함께 종결하고, 신성한 생명으로 새 창조 안에서 그들을 발아시킨다. 회개와 믿음이 모두 필요하며,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의 의미이자 거듭남이다.

구원의 약속에 대한 전통적인 유대교의 이해는 "아브라함의 씨", 즉 아브라함으로부터의 육체적 혈통에 근거한 것으로 해석되었다.[20] 그러나 예수는 니고데모에게 이 교리가 잘못되었으며, 모든 사람은 육체의 자연적 출생과 물과 성령으로 인한 또 다른 출생, 즉 두 번의 출생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20] 이 담론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의 영적 씨앗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기독교 신념을 확립했으며,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서 더욱 강화된다.[21][19]

찰스 호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혼 안에서 이루어지는 주관적인 변화"를 "새로운 출생", "부활", "새 생명", "새로운 창조", "마음의 새롭게 함",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사는 것", "어둠에서 빛으로의 옮김"과 같은 다양한 용어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23]

예수는 영적인 새 생명을 신성한 시작에 연결하기 위해 "출생"의 비유를 사용했다. 현대 기독교 신학자들은 "위로부터 난"이 원어 그리스어 단어 아노텐/ánōtʰengrc을 더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라고 설명한다.[24] 신학자 프랭크 스태그는 "위로부터"(에서)의 강조는 "새 생명"의 근원에 주목하게 하고, 개인적인 개선 이상의 것이 필요하며, "새로운 운명은 새로운 기원을 필요로 하며, 새로운 기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한다"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를 제시한다.[25]

존 웨슬리는 '새로운 출생'이라는 설교에서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도 거룩할 수 없고, 이 세상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하며, "거듭나서 구원의 상속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웨슬리는 또한 세례를 받은 유아는 거듭난다고 말하지만, 어른의 경우에는 다르다고 언급했다.[26]

유니테리언주의의 저서인 ''복음 닻''은 1830년대에 이 구절이 베드로전서를 제외하고는 어떤 복음서에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요한이 없었다면 "우리는 한 사람이 거듭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본문과 문맥이 특히 니고데모에게 적용되도록 의도되었으며 세상에 적용되도록 의도된 것은 아니다"라고 시사한다.[27]

3. 2. 바울 서신의 관점

바울 서신에서 거듭남은 새 생명을 가져오는 재출생으로, 절대적으로 생명의 문제이지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20] 거듭남은 이미 갖고 있는 생명 외에 또 다른 생명, 즉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받는 것이다.[21][19] 이는 부모에게서 받은 사람의 생명 외에 하나님의 생명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복음은 거듭남에 대해 명확히 설명한다. 요한은 거듭남이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요1:13), 다시 태어나는 것(요3:3),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요3:5-6)이라고 말한다.[22]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것은 혈통이나 육정, 사람의 뜻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로서만 가능하다. 이는 생명의 관계를 의미하며, 아들이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듯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을 갖는다.

찰스 호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혼 안에서 이루어지는 주관적인 변화"를 "새로운 출생", "부활", "새 생명", "새로운 창조" 등 다양한 용어로 표현했다.[23] 예수는 영적인 새 생명을 신성한 시작에 연결하기 위해 "출생"의 비유를 사용했다. 현대 기독교 신학자들은 "위로부터 난"이 원어 그리스어 단어 을 더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라고 설명한다.[24] 신학자 프랭크 스태그는 "위로부터"(에서)라는 강조가 "새 생명"의 근원에 주목하게 하고, 개인적인 개선 이상의 것이 필요하며, "새로운 운명은 새로운 기원을 필요로 하며, 새로운 기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한다"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25]

존 웨슬리는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도 거룩할 수 없고, 이 세상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하며, 거듭남을 통해 구원의 상속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세례 받은 유아는 거듭난 것으로 가정하지만, 성인의 경우는 다르다고 보았다.[26]

유니테리언주의 저서 ''복음 닻''은 1830년대에 이 구절이 베드로전서 1장을 제외한 어떤 복음서에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이는 본문이 니고데모에게만 적용되고 세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시사했다.[27]

4. 교파별 이해

## 개신교

재세례파와 같은 메노나이트 교단은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인한 새로운 탄생, 영적인 거듭남을 수반한다. '신자'는 하나님의 영적인 자녀가 된 사람들이다."라고 가르친다.[30] 재세례파 신학에서 구원의 길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한 법정적 이해가 아니라, 회개, 자기 부인, 믿음의 거듭남과 순종의 전 과정으로 특징지어진다."[30] 이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거듭난 후에 세례를 받는다.[30]

성공회의 39개 신조 제15조 "오직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죄는, 요한이 말한 바와 같이, 그에게 있지 아니하다. 그러나 우리 남은 자는, 비록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고 거듭났을지라도, 많은 점에서 죄를 범한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다."라고 언급한다.[31]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고 거듭났다"라는 문구는 요한복음 3장 3절의 성경 구절을 가리킨다.[32] 1662년 공동기도문의 세례식은 세례와 새 생명을 직접 연결하여 "거듭남"이라는 문구의 의미에 대한 세례를 통한 중생 관점을 확언하며, 회심 경험이 아닌 세례를 통한 중생을 의미한다.

침례교는 사람들이 예수께서 그들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을 때 거듭난다고 가르친다. 예수를 믿고 그의 죽음, 매장 및 부활을 신뢰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질 것이며, 거듭난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고 있는데 이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증언하시기 때문이다" (참조: 구원의 확신).[34]

여호와의 증인은 개인이 거듭나는 것을 선택할 힘이 없으며, 하나님이 자신의 추종자들을 "위로부터" 부르고 선택한다고 믿는다.[51] 오직 "144,000명"에 속한 사람들만이 거듭난 것으로 여겨진다.[52][53]

텍사스주 갤버스턴의 제1 복음주의 루터교회. 독일 이민자들이 1850년 갤버스턴에 제1 독일 복음주의 루터교회로 설립. 그림은 1957년에 지어진 두 번째 건물로, 현재 교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루터교는 "우리는 죄에서 깨끗해지고 성령으로 거룩한 세례를 통해 다시 태어나 새롭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일부 루터교인들은 또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매일의 참회와 회개를 통해 옛 아담을 익사시켜 매일 의와 순수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걸어갈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일어날 것을 가르친다. 보수적인 루터교인들은 세례 후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세례의 은혜를 다시 잃는다고 가르친다.[54]

새로운 거듭남과 관련하여, 모라비안 교회는 개인적인 기독교로의 개종이 기쁜 경험이라고 여기며, 개인은 그 후 믿음이 "매일 사람 안에서 자라나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다.[55] 모라비안 신자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미래 세대를 위한 청사진을 제공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인간으로 살았으며" "개종한 사람은 그의 모습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고 매일 예수님과 더 닮아가게 된다."[55] 이와 같이, "마음의 종교"는 모라비안 기독교의 특징이다.[55]

[[파일:Camp_meeting_of_the_Methodists_in_N._America_J._Milbert_del_M._Dubourg_sculp_(cropped).jpg|thumb|감리교 목회자들은 거듭남과 온전한 성화의 교리를 텐트 부흥회와 야외 집회와 같은 행사에서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존재하게 하신 이유라고 믿는다.[57]]

감리교에서 "거듭남은 구원에 필수적인데, 이는 거룩함을 향한 움직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는 믿음과 함께 온다."[58] 존 웨슬리는 거듭남이란 "하나님께서 영혼을 생명으로 인도하시고, 죄의 죽음에서 의의 삶으로 일으키실 때 영혼 안에서 행하시는 위대한 변화이다."라고 하였다.[59][58] 기독교인의 삶에서 거듭남은 은혜의 첫 번째 사역으로 여겨진다.[60] 웨슬리-알미니안 언약 신학에 따라, ''종교 조항'' 제17조 – 세례에 관하여, 세례는 "중생 또는 거듭남의 징표"라고 명시한다.[61] ''The Methodist Visitor''는 이 교리를 설명하면서 개인에게 "'너희는 거듭나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서 그리고 당신을 위해 이 일을 행하시도록 하라. 그분을 당신의 마음에 받아들여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훈계한다.[62][63] 감리교 신학은 거듭남이 칭의와 중생이라는 두 단계로 이루어져 동시에 일어난다고 가르친다.[64] 사람이 거듭남을 경험하는 순간, 그는 "하나님의 가족 안으로 입양"된다.[65][66]

플리머스 형제단은 거듭남이 구원을 가져오며, 거듭나고, 회개하고, 성경에 대한 믿음을 증언하는 사람들에게 교제의 악수를 주고, 그 후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67]

성결 오순절교는 역사적으로 중생(은혜의 첫 번째 역사), 전적인 성화 (은혜의 두 번째 역사)와 방언 현상으로 입증되는 성령 세례를 은혜의 세 번째 역사로 가르친다.[68][69] 오순절교 교리에 따르면, 중생은 "영적인 생명"을 부여한다.[70]

대다수의 퀘이커는 교리적으로 복음주의적이며 거듭남의 경험을 가르친다(cf. 복음주의 프렌즈 교회 국제연맹).[71][72] 프렌즈 중앙 연례 회의는 성결 퀘이커 교단으로, 거듭남을 "최초 구원의 신성한 사역(딛 3:5), 즉 회심으로, 칭의(롬 5:18)와 입양(롬 8:15, 16)의 수반되는 사역을 포함한다"고 가르친다.[73] 거듭남은 새 출생에서 일어나며, 이는 "믿는 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로, 그 안에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됨을 발견한다(고후 5:17; 골 1:27)"[73] 새 출생 이후, 조지 폭스는 "새 출생 이후 성령으로 즉각적인 세례를 통해 마음과 삶의 성결함"의 가능성을 가르쳤다(cf. 기독교 완전함).[74]

개혁신학에서, 세례는 신자의 위로가 되는 거듭남의 표징이자 인장이다.[75] 그러나, 도르트 신조에 따르면, 거듭남의 시기는 자신에게 신비이다.[75] 개혁교회에 따르면, 거듭나는 것은 "죄인으로 하여금 효력 있는 부름에 응답하게 하는 성령의 내적 역사"를 의미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Q 88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유익을 전달하시는 외적이고 통상적인 수단은, 그분의 규례, 특히 말씀, 성례, 기도이며, 이 모든 것은 선택된 자에게 구원을 위해 효력 있게 된다."[76] 효력 있는 부르심은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로 우리의 마음을 밝히시며,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심으로써,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자유롭게 제공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이다.[77][78] 개혁신학에서, "거듭남은 믿음에 앞선다."[79]

''몰몬경''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나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81] 말일성도들은 거듭나는 것이 진정한 회개를 의미한다고 믿는다. 즉, 인간의 육신적이고 죄 많은 본성을 거부하고, 의로운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과 성약을 맺는 것이다. 이 성약은 처음에는 8세 또는 책임 연령에 침수로 침례를 받거나, 새로 개종할 때 맺어진다. 그리고 교회 모임에서 성찬을 취함으로써 매주 갱신된다.[82]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가 이러한 의식들이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행위라고 가르친다는 것은 흔한 오해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모든 인류를 육체적인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셨고, 죽음과 부활 이후, 심판의 날에 회개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함을 통해 영적인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라고 가르친다.[83] 침례와 성찬은 하나님을 섬기고 의로운 삶을 살겠다는 내면의 헌신에 대한 외적인 표현으로서, 그 사람의 신앙에 따라 행해진다.[84]

성령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영적인 세례를 가리킨다. 복음주의 및 성령파에서는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을 고백하며, 성령에 의해 거듭난 자만이 크리스천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교회에 출석하여 세례를 받는 것만으로는 거듭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116]。성령에 의해 거듭난 크리스천은 자각적인 회심을 경험한다고 여겨지지만, 이는 반드시 극적인 회심 체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거듭남은 하나님의 일이며, 회심은 인간의 일이다[117]"라고 말한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회중에게 "거듭남의 체험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다"라고 말했다[118]

웨슬리안 알미니안 신학을 지지하는 교회(홀리니스파나 오순절교파)에서는 거듭남과 구분하여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체험인 "두 번째 회심"과 "성화"를 강조한다. 웨슬리안 알미니안 신학을 지지하는 교회에서는 성령 세례라고도 한다. 거듭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이 자기 안에 거한다는 성령의 내주를 나타낸다.[122]

## 가톨릭교회

역사적으로, 요한 복음서 3장의 본문은 초기 교부들에 의해 세례를 언급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35] 가톨릭 해석자들은 '위로부터 태어남' 또는 '거듭남'[36]이라는 구절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남'으로 명확히 설명된다고 보았다.[37]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기독교 입문의 필수 요소로 "말씀의 선포, 회개를 수반하는 복음의 수용, 신앙 고백, 세례 자체, 성령의 부어짐, 성찬례 친교에의 참여"를 언급한다.[39]

존 F. 맥휴는 "거듭남과 이 새로운 삶의 시작은 ἐξ ὕδατος καὶ πνεύματοςgrc, 즉 물과 성령으로부터 온다고 한다. 이 구절은 초기 교회가 세례를 통해 일어나는 것으로 여겼던 거듭남을 가리킨다."라고 언급한다.[38]

세례는 모든 이전 죄에 대한 용서의 은총을 주고, 새로 세례받은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과 하느님의 입양된 자녀로 만들며,[40] 그리스도의 몸에 결합시키고,[41] 사람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표식을 남기는 성사적 연합을 창조한다.[42]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결합된 세례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일치한다. 세례는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에 속한다는 지울 수 없는 영적 표식(인격)으로 봉인한다. 죄가 세례가 구원의 열매를 맺는 것을 방해하더라도, 어떤 죄도 이 표식을 지울 수 없다. 한 번으로 끝나는 세례는 반복될 수 없다."[43]

성령은 은총의 모든 측면에 관여한다. "성령의 은총의 첫 번째 활동은 회심이다. [...] 은총에 감동받아 인간은 하느님을 향하고 죄로부터 돌아서서 위로부터 용서와 의를 받아들인다."[44] 가톨릭교회는 특별한 상황에서, 성령에 의해 물 세례의 필요성이 대체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는 세례 지원자가 세례 전에 죽거나 순교하는 경우와 같은 '원의 세례'이다.[45]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Catechesi Tradendaela에서 "어린 시절에 세례를 받았지만 신앙에 대한 다른 입문을 받지 않고,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시적인 개인적 애착 없이 본당에서 교리 교육을 받는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 썼다.[46]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예'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 '예'에는 두 가지 수준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굴복하고 의지하는 것으로 구성되지만, 또한 나중 단계에서 이 말씀의 더 깊은 의미를 더 잘 알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언급했다.[47]

현대적인 표현인 "거듭남"은 "회심"의 개념과 관련이 있다. 미국 가톨릭 주교 회의(USCCB)에서 발행한 전국 교리 교육 지침서는 회심을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받아들이고, 그분께 진실하게 순종하며, 자신의 삶을 그분께 맞추려는 의지"로 정의한다.[48] "그리스도께로의 회심은 그분께 진정한 헌신을 하고 그분의 제자로서 그분을 따르겠다는 개인적인 결정을 포함한다."[48]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글을 인용하며, ''전국 교리 교육 지침서''는 현대 세계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중재를 "새로운 복음화"라고 묘사한다. 이것은 교회, 이전에 효과적으로 복음화되지 않은 세례받은 자,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 세속 문화의 가치관에 의해 형성된 사람들, 신앙의 감각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49]

가톨릭 남성 친교회의 공동 창립자이자 몰타 기사단 기사인 데클란 오설리반은 "새로운 복음화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만남을 강조한다. 거듭남의 경험은 단지 감정적이고 신비로운 기쁨만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변화의 순간 또는 기간 후에 회심자의 삶에서 일어난 일이다."라고 썼다.[50]

가톨릭교회에서는, 세례에 대해 신약성서의 「디도서」 3장 5절을 근거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고 새롭게 하는 씻음"이라고 표현하며,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의 복음서」3-5)라고 하고 있다.[136] 또한, 세례는 구원에 필수적인 것으로 하고 있지만[137], "거듭남"이라는 말·표현은 사용되지 않는다.

## 정교회

정교회에서 세례성사는 낡은 자아가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여겨진다.[112] 세례성사에 사용되는 성수는 이전의 자기 욕망, 육체, 물질 중심의 삶을 죽이는 물이며, 새로운 사람을 낳는 생명의 물로 여겨진다.[112]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새롭게 태어나, 성령의 은사를 받아 신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하느님의 형상을 얻어가는 과정에 들어선다고 여겨진다.[110]

4. 1. 개신교

재세례파와 같은 메노나이트 교단은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인한 새로운 탄생, 영적인 거듭남을 수반한다. '신자'는 하나님의 영적인 자녀가 된 사람들이다."라고 가르친다.[30] 재세례파 신학에서 구원의 길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한 법정적 이해가 아니라, 회개, 자기 부인, 믿음의 거듭남과 순종의 전 과정으로 특징지어진다."[30] 이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거듭난 후에 세례를 받는다.[30]

성공회의 39개 신조 제15조 "오직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죄는, 요한이 말한 바와 같이, 그에게 있지 아니하다. 그러나 우리 남은 자는, 비록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고 거듭났을지라도, 많은 점에서 죄를 범한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아니하다."라고 언급한다.[31]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고 거듭났다"라는 문구는 요한복음 3장 3절의 성경 구절을 가리킨다.[32] 1662년 공동기도문의 세례식은 세례와 새 생명을 직접 연결하여 "거듭남"이라는 문구의 의미에 대한 세례를 통한 중생 관점을 확언하며, 회심 경험이 아닌 세례를 통한 중생을 의미한다.

침례교는 사람들이 예수께서 그들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을 때 거듭난다고 가르친다. 예수를 믿고 그의 죽음, 매장 및 부활을 신뢰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질 것이며, 거듭난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고 있는데 이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증언하시기 때문이다" (참조: 구원의 확신).[34]

여호와의 증인은 개인이 거듭나는 것을 선택할 힘이 없으며, 하나님이 자신의 추종자들을 "위로부터" 부르고 선택한다고 믿는다.[51] 오직 "144,000명"에 속한 사람들만이 거듭난 것으로 여겨진다.[52][53]

루터교는 "우리는 죄에서 깨끗해지고 성령으로 거룩한 세례를 통해 다시 태어나 새롭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일부 루터교인들은 또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매일의 참회와 회개를 통해 옛 아담을 익사시켜 매일 의와 순수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걸어갈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일어날 것을 가르친다. 보수적인 루터교인들은 세례 후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세례의 은혜를 다시 잃는다고 가르친다.[54]

새로운 거듭남과 관련하여, 모라비안 교회는 개인적인 기독교로의 개종이 기쁜 경험이라고 여기며, 개인은 그 후 믿음이 "매일 사람 안에서 자라나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다.[55] 모라비안 신자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미래 세대를 위한 청사진을 제공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인간으로 살았으며" "개종한 사람은 그의 모습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고 매일 예수님과 더 닮아가게 된다."[55] 이와 같이, "마음의 종교"는 모라비안 기독교의 특징이다.[55]

[[파일:Camp_meeting_of_the_Methodists_in_N._America_J._Milbert_del_M._Dubourg_sculp_(cropped).jpg|thumb|감리교 목회자들은 거듭남과 온전한 성화의 교리를 텐트 부흥회와 야외 집회와 같은 행사에서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존재하게 하신 이유라고 믿는다.[57]]

감리교에서 "거듭남은 구원에 필수적인데, 이는 거룩함을 향한 움직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는 믿음과 함께 온다."[58] 존 웨슬리는 거듭남이란 "하나님께서 영혼을 생명으로 인도하시고, 죄의 죽음에서 의의 삶으로 일으키실 때 영혼 안에서 행하시는 위대한 변화이다."라고 하였다.[59][58] 기독교인의 삶에서 거듭남은 은혜의 첫 번째 사역으로 여겨진다.[60] 웨슬리-알미니안 언약 신학에 따라, ''종교 조항'' 제17조 – 세례에 관하여, 세례는 "중생 또는 거듭남의 징표"라고 명시한다.[61] ''The Methodist Visitor''는 이 교리를 설명하면서 개인에게 "'너희는 거듭나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서 그리고 당신을 위해 이 일을 행하시도록 하라. 그분을 당신의 마음에 받아들여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훈계한다.[62][63] 감리교 신학은 거듭남이 칭의와 중생이라는 두 단계로 이루어져 동시에 일어난다고 가르친다.[64] 사람이 거듭남을 경험하는 순간, 그는 "하나님의 가족 안으로 입양"된다.[65][66]

플리머스 형제단은 거듭남이 구원을 가져오며, 거듭나고, 회개하고, 성경에 대한 믿음을 증언하는 사람들에게 교제의 악수를 주고, 그 후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67]

성결 오순절교는 역사적으로 중생(은혜의 첫 번째 역사), 전적인 성화 (은혜의 두 번째 역사)와 방언 현상으로 입증되는 성령 세례를 은혜의 세 번째 역사로 가르친다.[68][69] 오순절교 교리에 따르면, 중생은 "영적인 생명"을 부여한다.[70]

대다수의 퀘이커는 교리적으로 복음주의적이며 거듭남의 경험을 가르친다(cf. 복음주의 프렌즈 교회 국제연맹).[71][72] 프렌즈 중앙 연례 회의는 성결 퀘이커 교단으로, 거듭남을 "최초 구원의 신성한 사역(딛 3:5), 즉 회심으로, 칭의(롬 5:18)와 입양(롬 8:15, 16)의 수반되는 사역을 포함한다"고 가르친다.[73] 거듭남은 새 출생에서 일어나며, 이는 "믿는 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로, 그 안에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됨을 발견한다(고후 5:17; 골 1:27)"[73] 새 출생 이후, 조지 폭스는 "새 출생 이후 성령으로 즉각적인 세례를 통해 마음과 삶의 성결함"의 가능성을 가르쳤다(cf. 기독교 완전함).[74]

개혁신학에서, 세례는 신자의 위로가 되는 거듭남의 표징이자 인장이다.[75] 그러나, 도르트 신조에 따르면, 거듭남의 시기는 자신에게 신비이다.[75] 개혁교회에 따르면, 거듭나는 것은 "죄인으로 하여금 효력 있는 부름에 응답하게 하는 성령의 내적 역사"를 의미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Q 88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유익을 전달하시는 외적이고 통상적인 수단은, 그분의 규례, 특히 말씀, 성례, 기도이며, 이 모든 것은 선택된 자에게 구원을 위해 효력 있게 된다."[76] 효력 있는 부르심은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로 우리의 마음을 밝히시며,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심으로써,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자유롭게 제공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이다.[77][78] 개혁신학에서, "거듭남은 믿음에 앞선다."[79]

''몰몬경''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나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81] 말일성도들은 거듭나는 것이 진정한 회개를 의미한다고 믿는다. 즉, 인간의 육신적이고 죄 많은 본성을 거부하고, 의로운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과 성약을 맺는 것이다. 이 성약은 처음에는 8세 또는 책임 연령에 침수로 침례를 받거나, 새로 개종할 때 맺어진다. 그리고 교회 모임에서 성찬을 취함으로써 매주 갱신된다.[82]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가 이러한 의식들이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행위라고 가르친다는 것은 흔한 오해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모든 인류를 육체적인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셨고, 죽음과 부활 이후, 심판의 날에 회개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함을 통해 영적인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라고 가르친다.[83] 침례와 성찬은 하나님을 섬기고 의로운 삶을 살겠다는 내면의 헌신에 대한 외적인 표현으로서, 그 사람의 신앙에 따라 행해진다.[84]

성령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영적인 세례를 가리킨다. 복음주의 및 성령파에서는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을 고백하며, 성령에 의해 거듭난 자만이 크리스천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교회에 출석하여 세례를 받는 것만으로는 거듭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116]。성령에 의해 거듭난 크리스천은 자각적인 회심을 경험한다고 여겨지지만, 이는 반드시 극적인 회심 체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거듭남은 하나님의 일이며, 회심은 인간의 일이다[117]"라고 말한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회중에게 "거듭남의 체험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다"라고 말했다[118]

웨슬리안 알미니안 신학을 지지하는 교회(홀리니스파나 오순절교파)에서는 거듭남과 구분하여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체험인 "두 번째 회심"과 "성화"를 강조한다. 웨슬리안 알미니안 신학을 지지하는 교회에서는 성령 세례, 성령 세례라고도 한다. 거듭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이 자기 안에 거한다는 성령의 내주를 나타낸다.[122]

4. 2. 가톨릭교회

역사적으로, 요한 복음서 3장의 본문은 초기 교부들에 의해 세례를 언급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35] 가톨릭 해석자들은 '위로부터 태어남' 또는 '거듭남'[36]이라는 구절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남'으로 명확히 설명된다고 보았다.[37]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기독교 입문의 필수 요소로 "말씀의 선포, 회개를 수반하는 복음의 수용, 신앙 고백, 세례 자체, 성령의 부어짐, 성찬례 친교에의 참여"를 언급한다.[39]

존 F. 맥휴는 "거듭남과 이 새로운 삶의 시작은 ἐξ ὕδατος καὶ πνεύματοςgrc, 즉 물과 성령으로부터 온다고 한다. 이 구절은 초기 교회가 세례를 통해 일어나는 것으로 여겼던 거듭남을 가리킨다."라고 언급한다.[38]

세례는 모든 이전 죄에 대한 용서의 은총을 주고, 새로 세례받은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과 하느님의 입양된 자녀로 만들며,[40] 그리스도의 몸에 결합시키고,[41] 사람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표식을 남기는 성사적 연합을 창조한다.[42]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결합된 세례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일치한다. 세례는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에 속한다는 지울 수 없는 영적 표식(인격)으로 봉인한다. 죄가 세례가 구원의 열매를 맺는 것을 방해하더라도, 어떤 죄도 이 표식을 지울 수 없다. 한 번으로 끝나는 세례는 반복될 수 없다."[43]

이탈리아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 정면


성령은 은총의 모든 측면에 관여한다. "성령의 은총의 첫 번째 활동은 회심이다. [...] 은총에 감동받아 인간은 하느님을 향하고 죄로부터 돌아서서 위로부터 용서와 의를 받아들인다."[44] 가톨릭 교회는 특별한 상황에서, 성령에 의해 물 세례의 필요성이 대체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는 세례 지원자가 세례 전에 죽거나 순교하는 경우와 같은 '원의 세례'이다.[45]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Catechesi Tradendaela에서 "어린 시절에 세례를 받았지만 신앙에 대한 다른 입문을 받지 않고,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시적인 개인적 애착 없이 본당에서 교리 교육을 받는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 썼다.[46]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예'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 '예'에는 두 가지 수준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굴복하고 의지하는 것으로 구성되지만, 또한 나중 단계에서 이 말씀의 더 깊은 의미를 더 잘 알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언급했다.[47]

현대적인 표현인 "거듭남"은 "회심"의 개념과 관련이 있다. 미국 가톨릭 주교 회의(USCCB)에서 발행한 전국 교리 교육 지침서는 회심을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받아들이고, 그분께 진실하게 순종하며, 자신의 삶을 그분께 맞추려는 의지"로 정의한다.[48] "그리스도께로의 회심은 그분께 진정한 헌신을 하고 그분의 제자로서 그분을 따르겠다는 개인적인 결정을 포함한다."[48]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글을 인용하며, ''전국 교리 교육 지침서''는 현대 세계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중재를 "새로운 복음화"라고 묘사한다. 이것은 교회, 이전에 효과적으로 복음화되지 않은 세례받은 자,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 세속 문화의 가치관에 의해 형성된 사람들, 신앙의 감각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49]

가톨릭 남성 친교회의 공동 창립자이자 몰타 기사단 기사인 데클란 오설리반은 "새로운 복음화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만남을 강조한다. 거듭남의 경험은 단지 감정적이고 신비로운 기쁨만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변화의 순간 또는 기간 후에 회심자의 삶에서 일어난 일이다."라고 썼다.[50]

가톨릭교회에서는, 세례에 대해 신약성서의 「디도서」 3장 5절을 근거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고 새롭게 하는 씻음"이라고 표현하며,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의 복음서」3-5)라고 하고 있다.[136] 또한, 세례는 구원에 필수적인 것으로 하고 있지만[137], "거듭남"이라는 말·표현은 사용되지 않는다.

4. 3. 정교회

정교회에서 세례성사는 낡은 자아가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여겨진다.[112] 세례성사에 사용되는 성수는 이전의 자기 욕망, 육체, 물질 중심의 삶을 죽이는 물이며, 새로운 사람을 낳는 생명의 물로 여겨진다.[112]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새롭게 태어나, 성령의 은사를 받아 신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하느님의 형상을 얻어가는 과정에 들어선다고 여겨진다.[110]

5. 한국 사회와 거듭남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은유를 사용하여 기독교 의식의 시작, 즉 물과 성령의 힘을 통한 세례 성사를 통한 영적 중생을 묘사해 왔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교,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루터교[54], 성공회[90] 및 기타 역사적인 개신교 분파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기독교 세계에서 일반적인 이해로 남아 있다.[91][92] 감리교 교리의 필수적인 부분[93][94]이기도 하며, 칭의 교리와 연결되어 있다.[95]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재탄생'은 종종 확실하고 시간적으로 측정 가능한 형태의 '회심'과 동일시되었다. 자발적인 유형, 지적 유형등 여러 유형의 재탄생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신의 삶을 "새로운 삶"으로 인식하게 한다.[96] J. 고든 멜턴은 거듭남은 많은 개신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얻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구절이며, 하나님과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경험이라고 설명한다.[97] 앤드루 퍼브스와 찰스 파티에는 이 구절이 판단적인 것처럼 보이며 진정한 기독교인과 명목상의 기독교인을 구별하며, 구원에 대한 인간의 선택의 개념을 포함하고 은혜만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견해를 배제한다고 보았다.[98]

"거듭남"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적으로 복음주의 기독교 갱신과 널리 연관되었고,[14] 1970년대 중반까지 "거듭난" 기독교인은 주류 언론에서 거듭남 운동의 일환으로 점점 더 많이 언급되었다. 1976년, 워터게이트 사건의 공모자 척 콜슨의 저서 ''Born Again''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고, ''타임'' 잡지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99] 콜슨은 자신의 범죄 감옥 생활과 관련하여 믿음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고, 미국에서 "거듭난" 정체성을 문화적 구성물로 굳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00]

지미 카터는 1976년에 자신이 거듭났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었다.[101] 1980년 선거까지 세 명의 주요 후보 모두 자신이 거듭났다고 밝혔다.[102] 사이더와 니퍼스[103]로널드 레이건의 선거는 '거듭난' 백인 개신교인의 61%의 표로 지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갤럽 기구는 2003년에 미국 성인의 42%가 자신이 거듭났거나 복음주의자라고 답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자신이 거듭났거나 복음주의자라고 밝힐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고, 공화당원민주당원이나 무소속보다 자신이 거듭났다고 말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다고 보고했다.[104] ''The Oxford Handbook of Religion and American Politics''는 여러 연구를 언급하면서 "거듭난" 정체성은 정부의 빈곤 퇴치 프로그램에 대한 지지율 저하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105] 거듭남을 강조하는 선교 단체 중에는 고등학생 대상 전도 단체인 하이.B.A고등학생성서전도협회(High School Born Again)가 있다.[129]

5. 1. 개신교의 영향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은유를 사용하여 기독교 의식의 시작, 즉 물과 성령의 힘을 통한 세례 성사를 통한 영적 중생을 묘사해 왔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교,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루터교[54], 성공회[90] 및 기타 역사적인 개신교 분파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기독교 세계에서 일반적인 이해로 남아 있다.[91][92] 감리교 교리의 필수적인 부분[93][94]이기도 하며, 칭의 교리와 연결되어 있다.[95]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재탄생'은 종종 확실하고 시간적으로 측정 가능한 형태의 '회심'과 동일시되었다. 자발적인 유형, 지적 유형등 여러 유형의 재탄생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신의 삶을 "새로운 삶"으로 인식하게 한다.[96] J. 고든 멜턴은 거듭남은 많은 개신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얻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구절이며, 하나님과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경험이라고 설명한다.[97] 앤드루 퍼브스와 찰스 파티에는 이 구절이 판단적인 것처럼 보이며 진정한 기독교인과 명목상의 기독교인을 구별하며, 구원에 대한 인간의 선택의 개념을 포함하고 은혜만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견해를 배제한다고 보았다.[98]

"거듭남"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적으로 복음주의 기독교 갱신과 널리 연관되었고,[14] 1970년대 중반까지 "거듭난" 기독교인은 주류 언론에서 거듭남 운동의 일환으로 점점 더 많이 언급되었다. 1976년, 워터게이트 사건의 공모자 척 콜슨의 저서 ''Born Again''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고, ''타임'' 잡지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99] 콜슨은 자신의 범죄 감옥 생활과 관련하여 믿음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고, 미국에서 "거듭난" 정체성을 문화적 구성물로 굳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00]

지미 카터는 1976년에 자신이 거듭났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었다.[101] 1980년 선거까지 세 명의 주요 후보 모두 자신이 거듭났다고 밝혔다.[102] 사이더와 니퍼스[103]로널드 레이건의 선거는 '거듭난' 백인 개신교인의 61%의 표로 지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갤럽 기구는 2003년에 미국 성인의 42%가 자신이 거듭났거나 복음주의자라고 답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자신이 거듭났거나 복음주의자라고 밝힐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고, 공화당원민주당원이나 무소속보다 자신이 거듭났다고 말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다고 보고했다.[104] ''The Oxford Handbook of Religion and American Politics''는 여러 연구를 언급하면서 "거듭난" 정체성은 정부의 빈곤 퇴치 프로그램에 대한 지지율 저하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105] 거듭남을 강조하는 선교 단체 중에는 고등학생 대상 전도 단체인 하이.B.A고등학생성서전도협회(High School Born Again)가 있다.[129]

5. 2. 사회적 의미의 확장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은유를 사용하여 기독교 의식의 시작, 즉 물과 성령의 힘을 통한 세례를 묘사해왔다.[54] 로마 가톨릭교,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루터교[54], 성공회[90] 등 대부분의 기독교 세계에서 이것은 영적 중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종교 개혁 이후 복음주의는 "거듭남"이라는 표현[91]에 종교적 회심의 경험[92]으로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에 대한 헌신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믿음이며, 감리교 교리의 필수적인 부분[93][94]이기도 하다.[95]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재탄생'은 종종 확실하고 시간적으로 측정 가능한 형태의 '회심'과 동일시되었다.[96] J. 고든 멜턴은 거듭남을 많은 개신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얻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구절이라고 설명한다.[97] 앤드루 퍼브스와 찰스 파티는 이 구절이 판단적인 것처럼 보이며 진정한 기독교인과 명목상의 기독교인을, 때로는 자유주의적 기독교인과 보수적 기독교인, 가톨릭과 개신교 기독교인을 구별한다고 설명한다.[98]

"거듭남"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적으로 복음주의 기독교 갱신과 널리 연관되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 "거듭난" 기독교인은 주류 언론에서 거듭남 운동의 일환으로 언급되었다. 1976년, 워터게이트 사건의 공모자 척 콜슨의 저서 ''Born Again''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99] 척 콜슨은 자신의 범죄 감옥 생활과 관련하여 믿음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고, 미국에서 "거듭난" 정체성을 문화적 구성물로 굳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00]

지미 카터는 1976년에 자신이 거듭났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었다.[101] 1980년 선거까지 세 명의 주요 후보 모두 자신이 거듭났다고 밝혔다.[102] 사이더와 니퍼스[103]는 "그 해 가을 로널드 레이건의 선거는 '거듭난' 백인 개신교인의 61%의 표로 지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갤럽 기구는 2003년과 2004년 미국 성인의 약 41~42%가 자신이 거듭났거나 복음주의자라고 답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백인보다, 공화당원민주당원이나 무소속보다 자신이 거듭났다고 말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했다.[104] ''The Oxford Handbook of Religion and American Politics''는 여러 연구를 언급하면서 "거듭난" 정체성은 정부의 빈곤 퇴치 프로그램에 대한 지지율 저하와 관련이 있으며, "자신이 거듭났다고 보고한" 기독교가 "경제 정책에 대한 태도를 강력하게 형성한다"고 언급하고 있다.[105]

6. 논쟁점

"거듭남"이라는 용어는 여러 기독교 교파에서 사용되지만, 그 의미와 다른 교파의 구성원이 거듭난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이견이 존재한다.

가톨릭 응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톨릭 신자는 [복음주의] 개신교인에게 "성경이 이해하는 방식대로 거듭났는가?"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만약 복음주의자가 적절하게 물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성경적인 방식"으로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85]

반면에, 한 복음주의 사이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많은 예시 중 하나는 자신도 "거듭났다"고 주장하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 하지만, 헌신적인 가톨릭 신자가 의미하는 바는 그가 유아 세례를 받거나 성인이 되어 가톨릭으로 개종했을 때 영적인 탄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가 니고데모에게 "너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을 때 의미했던 바가 아닙니다.
[86] 가톨릭 신자들이 다른 의미를 가진 성경적 용어를 의도적으로 채택하는 것은 로마의 에큐메니컬 의제에서 효과적인 도구가 되었다.[87]

개혁주의의 중생관은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다른 관점과 구분될 수 있다.

첫째, 고전적 로마 가톨릭교는 중생이 세례 시에 일어난다고 가르치는데, 이를 세례 중생이라고 한다. 개혁신학은 중생이 사람의 삶의 어느 때, 심지어 모태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것은 세례의 자동적인 결과가 아니다. 둘째, 다른 많은 복음주의 교회에서 회개와 믿음이 중생으로 이어진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즉, 사람들은 구원하는 믿음을 행사한 후에야 거듭난다). 반면에, 개혁신학은 원죄와 전적 타락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하는 믿음을 행사할 도덕적 능력과 의지를 빼앗는다고 가르친다. ... 중생은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며,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얻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만이 택함을 받은 자들을 영적인 죽음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명으로 일으키신다.
[88][89]

6. 1. 세례를 통한 중생(거듭남) 논쟁

"거듭남"이라는 용어는 여러 기독교 교파에서 사용되지만, 그 의미와 다른 교파 구성원의 거듭남 주장에 대한 정당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가톨릭 신자는 복음주의 개신교인에게 "성경이 이해하는 방식대로 거듭났는가?"라고 질문해야 하며, 만약 복음주의자가 적절하게 물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그는 "성경적인 방식"으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고 가톨릭 응답은 말한다.[85] 반면, 한 복음주의 사이트는 헌신적인 가톨릭 신자가 유아 세례나 성인 개종 시 영적 탄생을 받았다는 의미로 "거듭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가 니고데모에게 말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의미와 다르다고 주장한다.[86] 가톨릭 신자들이 다른 의미를 가진 성경적 용어를 채택하는 것은 로마의 에큐메니컬 의제에서 효과적인 도구가 되었다고 본다.[87]

개혁주의의 중생관은 세례 시에 중생이 일어난다고 보는 고전적 로마 가톨릭교와 다르다. 개혁신학은 중생이 사람의 삶의 어느 때, 심지어 모태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세례의 자동적인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많은 복음주의 교회에서 회개와 믿음이 중생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반면, 개혁신학은 원죄와 전적 타락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구원하는 믿음을 행사할 능력을 잃었으며, 중생은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가르친다.[88][89]

정교회, 가톨릭교회, 성공회, 루터교회 등에서는 세례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복음주의는 "세례를 통한 중생"을 이단으로 간주하며 배척하고,[130][131][132][133][134] 개혁교회에서도 "세례를 통한 구원"은 이단으로 여겨진다.[135] 찰스 호지는 세례가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의무이지 구원의 수단은 아니며,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가르치는 자는 비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한다.[130]

하지만, 정교회나 가톨릭교회 등에서는 "중생"이라는 단어 자체나 "세례를 통한 중생"이라는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강조하지도 않는다.

6. 2. 거듭남과 회심 경험

"거듭남"이라는 용어는 여러 기독교 교파에서 사용되지만, 그 의미와 타 교파 구성원의 거듭남 주장에 대한 정당성에 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85]

가톨릭에서는 복음주의 개신교인에게 "성경이 이해하는 방식대로 거듭났는가?"라고 질문하며, 만약 복음주의자가 적절하게 물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성경적인 방식"으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85]

반면, 복음주의에서는 가톨릭 신자가 "거듭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유아 세례나 성인이 되어 가톨릭으로 개종했을 때 영적인 탄생을 받았다는 의미이며, 이는 예수가 니고데모에게 말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의미와 다르다고 주장한다.[86] 또한, 가톨릭 신자들이 다른 의미를 가진 성경적 용어를 채택하는 것은 로마의 에큐메니컬 의제에서 효과적인 도구가 되었다고 비판한다.[87]

개혁주의의 중생관은 세례 중생을 가르치는 가톨릭과 구별되며, 중생이 사람의 삶의 어느 때, 심지어 모태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88] 또한, 회개와 믿음이 중생으로 이어진다는 일반적인 복음주의 교회와 달리, 개혁신학은 원죄와 전적 타락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구원하는 믿음을 행사할 능력을 잃었으며, 중생은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가르친다.[88][89]

6. 3. 정치, 사회적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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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서적 페테코스테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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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서적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 플레이즈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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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서적 카톨릭이란 무엇인가 - 로마 카톨릭교와 성서적 기독교
[131] 서적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의 단결입니까? ICM출판
[132] 서적 결혼한다는 것의 의미
[133] 서적 一問一答 いのちのことば社
[134] 서적 岡田稔著作集 いのちのことば社
[135] 서적 개혁파교리학교본
[136] 서적 카톨릭교회의 카테키즘 카톨릭중앙협의회
[137] 서적 카톨릭교회의 카테키즘 카톨릭중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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