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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8번 (브루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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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교향곡 8번 (브루크너)은 안톤 브루크너가 작곡한 교향곡으로, 1884년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1890년에 완성되었다. 7번 교향곡의 성공에 힘입어 작곡되었으나, 초고를 검토한 헤르만 레비의 비평에 따라 개정을 거쳐 1892년 출판되었다. 1887년 판본과 1890년 판본,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하스판 등 여러 판본이 존재하며, 1892년 빈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교향곡은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주 시간은 약 80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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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8번 (브루크너)
작품 정보
제목교향곡 8번
조성다단조
헌정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
작곡가안톤 브루크너
작품 목록 번호WAB 108
악장4개
작곡 시기1884년–1892년
초연일1892년 12월 18일
초연 장소무지크페라인, 빈
초연 지휘자한스 리히터
초연 연주빈 필하모니 관현악단
출판1892년
안톤 브루크너
브루크너의 그림 (1889년)
악장 구성
1악장Allegro moderato (다단조)
2악장Scherzo. Allegro moderato - Trio. Langsam (다단조)
3악장Adagio. Feierlich langsam; doch nicht schleppend (내림마장조)
4악장Finale. Feierlich, nicht schnell (다단조)

2. 작곡 및 출판 과정

교향곡 7번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브루크너는 1884년 7월부터 8번 교향곡 작곡에 착수했다.[2] 빈 대학교와 빈 국립 음악원 교수직 때문에 주로 여름 휴가 기간을 이용해 작업했으며, 1887년 여름 첫 번째 판본(제1고)을 완성했다.[2]

브루크너는 완성된 악보를 7번 교향곡의 성공적인 초연을 이끌었던 지휘자 헤르만 레비에게 가장 먼저 보냈다. 그는 레비를 "나의 예술상의 아버지"라 부르며 깊이 신뢰했고 8번 교향곡의 초연도 맡기려 했으나, 악보를 검토한 레비는 연주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완곡히 초연을 거절했다.[4]

이에 크게 낙담한 브루크너는 작품의 전면 개정을 결심했다. 이 시기는 1번, 3번, 4번 등 다른 교향곡 개정 작업과 겹쳐 '2차 개정 파동'이라 불리기도 하며, 이로 인해 8번 교향곡의 개정은 다소 지연되었다.[31] 개정 작업은 1889년부터 본격화되어 1890년 3월에 최종 완료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주로 연주되는 제2고이다.[5]

개정된 교향곡은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헌정되었으며, 황제는 악보 출판 비용 지원을 약속했다.[6][7] 브루크너의 동료 요제프 샬크와 막스 폰 오버라이트너의 도움으로 1892년 3월, 하슬링어-슐레징어-리에나우 출판사를 통해 악보가 출판되었다.[8] 이는 브루크너 교향곡 중 유일하게 초연 전에 출판된 경우이다.[9]

초연은 레비가 거절한 후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에게 의뢰되었으나 그 역시 연주에 어려움을 느껴 지연시켰고, 결국 1892년 12월 18일 한스 리히터 지휘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에서 초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청중석에는 요하네스 브람스, 후고 볼프 등 저명한 음악가들도 있었으며, 특히 스케르초와 아다지오 악장이 호평받았다. 그러나 브람스나 비평가 한슬릭 등은 여전히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이 교향곡은 작곡과 개정, 출판 과정에서 여러 판본이 파생되었다. 브루크너 자신이 완성한 1887년판(제1고)과 1890년판(제2고) 외에도, 1892년 제자들이 일부 수정하여 출판한 초판(샬크판), 그리고 후대에 로베르트 하스와 레오폴트 노바크가 편집한 여러 판본(하스판, 노바크판 제1고, 노바크판 제2고 등)이 존재한다.[54] 각 판본은 세부적인 내용에서 차이를 보여 연주 시 어떤 판본을 선택할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2. 1. 작곡 배경

교향곡 7번은 브루크너에게 진정한 첫 성공을 안겨주었고, 이에 크게 자신감을 얻은 그는 곧바로 8번 교향곡 작곡에 착수했다.[2] 작곡은 1884년 7월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시 브루크너는 빈 대학교와 빈 국립 음악원 교수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여름 휴가 기간을 이용해 작곡에 몰두했다.[2] 네 악장의 초고는 1885년 8월에 완성되었고,[2] 오케스트레이션 작업은 1887년 4월에 마무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래 2악장이었던 아다지오와 3악장이었던 스케르초의 순서가 현재와 같이 스케르초 2악장, 아다지오 3악장으로 바뀌었다.[2]

곡을 완성한 브루크너는 기쁨에 차서 가장 먼저 지휘자 헤르만 레비에게 악보를 보냈다.[3] 레비는 이전에 뮌헨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을 성공적으로 지휘하여 브루크너에게 큰 성공을 안겨준 인물이었고,[3] 브루크너는 그를 "나의 예술상의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존경했다. 브루크너는 8번 교향곡이 완성되면 레비에게 초연을 맡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1887년 9월 악보를 검토한 레비는 뜻밖에도 "현재 형태로 교향곡 8번을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주제는 훌륭하고 직접적이지만, 그 전개 방식은 의심스러워 보입니다. 실제로 관현악법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4] 라며 회의적인 답변과 함께 완곡하게 초연을 거절했다.

레비의 반응에 브루크너는 크게 상심했지만, 1888년 1월경에는 레비의 의견대로 작품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게 되었다.[5] 그는 작품을 전면적으로 개작하기 시작했으며, 이 시기에 1번, 3번, 4번 교향곡 등 다른 작품들의 개정 작업도 병행했다.[31] 이 때문에 8번 교향곡의 개정 작업은 지연되어 실질적으로는 1889년에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1890년 3월 10일에 최종적으로 완료되었다.[5] 이 개정된 악보가 현재 주로 연주되는 "1890년 제2고"이다.

개정판이 완성되자 브루크너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이 교향곡을 헌정해도 될지 허락을 구했다.[6] 황제는 이를 수락하고 작품 출판 비용 지원까지 제안했다.[7] 브루크너는 출판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나, 1890년 말 하슬링어-슐레징어-리에나우 출판사가 출판을 맡기로 했다. 그의 동료인 요제프 샬크와 막스 폰 오버라이트너가 악보 준비, 교정, 재정 지원 등으로 출판 과정을 도왔다.[8] 교향곡은 1892년 3월에 출판되었는데, 이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중 유일하게 초연 전에 출판된 사례이다.[9]

이 교향곡은 1887년1890년에 작성된 두 개의 주요 필사본이 존재하며,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작곡 과정의 스케치가 많이 남아있다. 이 스케치들을 통해 특히 시작 부분 주제의 발전 과정을 엿볼 수 있는데, 원래는 다단조의 명확한 윤곽을 가졌던 주제가 최종적으로는 조성의 모호성을 띠며 내림 나 장조를 암시하는 형태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2. 2. 헤르만 레비의 비평과 개정

교향곡 7번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브루크너는 1884년 7월부터 교향곡 8번 작곡에 착수하여 1887년 여름에 오케스트레이션을 포함한 첫 번째 원고(제1고)를 완성했다. 브루크너는 7번 교향곡의 뮌헨 초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지휘자 헤르만 레비를 "나의 예술상의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깊이 존경했으며, 완성된 8번 교향곡의 초연 지휘도 그에게 맡기고자 했다.

브루크너는 완성 소식을 가장 먼저 레비에게 알리고 총보를 보냈다. 그러나 총보를 검토한 레비는 작품이 "연주 불가능하다"고 느꼈고, 브루크너의 제자였던 프란츠 샤르크를 통해 초연을 맡기 어렵다는 의견을 정중하게 전달했다.

레비의 회의적인 답변에 브루크너는 크게 낙담했지만, 이내 작품의 전면적인 개정 작업에 착수하기로 결심한다. 개정 작업은 1889년에 실질적으로 시작되어 1890년 3월 10일에 최종적으로 완료되었다. 이 개정된 판본이 오늘날 주로 연주되는 '1890년 제2고'이다.

이 시기 브루크너는 8번 교향곡뿐만 아니라 1번, 3번, 4번 교향곡의 개정 작업도 병행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8번 교향곡의 개정 작업 완료가 다소 늦어졌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시기를 '2차 개정 파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레비의 비평이 없었다면 1887년 판본이 그대로 남았을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의견은 브루크너가 작품을 다시 손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2. 3. 출판

1890년 교향곡의 새로운 버전이 완성되자, 브루크너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이 교향곡을 헌정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다.[6] 황제는 브루크너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작품 출판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7] 브루크너는 이 작품의 출판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1890년 말 하슬링어-슐레징어-리에나우 회사가 출판을 맡기로 동의했다.[8]

브루크너의 제자인 요제프 샬크와 막스 폰 오버라이트너는 출판 과정에 참여했다. 샬크는 인쇄소로 보낼 악보를 준비했고, 오버라이트너는 교정을 보고 재정적 지원도 제공했다.[8] 이 교향곡은 결국 1892년 3월에 출판되었다. 이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중 유일하게 초연 전에 출판된 작품이었다.[9]

이렇게 1892년에 출판된 판본은 브루크너가 직접 완성한 1890년 판본(제2고)을 바탕으로 요제프 샬크와 막스 폰 오버라이트너가 일부 수정을 가한 것이다. 이 판본은 교향곡의 첫 출판본이자 초연에서 사용된 버전이었다.[35] 1890년 원고와 비교하면 비교적 사소한 변화가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마지막 악장에서 6마디가 삭제되고 2마디가 반복된 것이다. 이러한 수정은 샬크와 오버라이트너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브루크너가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출판 전에 작곡가의 승인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36] 이 판본은 1944년 로베르트 하스가 편집한 하스판이 출판되기 전까지 교향곡 8번의 유일한 악보였다. 편찬을 주도한 요제프 샬크의 이름을 따서 흔히 '샬크판'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후 하스나 노바크가 편집한 원전판들이 출판되면서, 1892년 판본(샬크판)은 제자들이 임의로 브루크너의 원본을 수정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현재는 연주 빈도가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루크너 생전에 출판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개입이나 허락 없이 수정 및 출판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있다. 오늘날 연구에 따르면 이 수정 작업에 브루크너가 직접 참여했거나 최소한 승인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36] 음악학자 벤저민 코르스트베트는 "1892년 판이 '순수한 브루크너'는 아닐 수 있지만, 브루크너가 이를 승인한 것으로 보이므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평가했다.[36] 이 판본은 때때로 '개정판'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브루크너 본인이 직접 개정한 다른 판본들과 혼동될 수 있어 현재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3. 초연과 반응

1890년 개정 작업이 완료된 후, 초연 지휘는 헤르만 레비의 추천으로 그의 제자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에게 맡겨질 예정이었으나 여러 차례 연기되었다.[10][11] 결국 빈 필하모닉의 한스 리히터가 지휘를 맡아 1892년 12월 18일 빈에서 초연이 이루어졌다. 초연 당시 청중의 반응은 엇갈렸는데, 일부 보수적인 청중은 각 악장이 끝날 때마다 자리를 뜨기도 했지만 후고 볼프요한 슈트라우스 등 브루크너 지지자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12]

저명한 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는 교향곡에 대해 비판적인 평론을 남겼으나,[12] 후고 볼프와 같은 지지자들은 작품의 위대함을 극찬했다.[13][14] 이처럼 초연 당시 평가는 엇갈렸으며, 교향곡이 오늘날과 같이 주요 오케스트라 레퍼토리로 자리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15]

3. 1. 초연 과정

1890년 개정 작업이 완료될 무렵, 헤르만 레비는 더 이상 뮌헨에서 지휘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제자인 만하임카펠마이스터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에게 교향곡 초연 지휘를 추천했다. 1891년 바인가르트너의 지휘로 초연이 두 차례 예정되었으나, 매번 마지막 순간에 다른 작품으로 대체되었다.[10] 바인가르트너는 브루크너에게 베를린 오페라의 새로운 직책 때문에 연주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레비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작품이 너무 어렵고 리허설 시간이 부족하며, 특히 오케스트라의 바그너 튜바 연주자들이 경험이 부족한 것이 진짜 이유라고 인정했다.[11]

뮌헨 공연이 콜레라 발병 우려로 취소된 후, 브루크너는 빈에서의 초연을 추진했다. 마침내 빈 필하모닉의 정기 연주회 지휘자 한스 리히터가 지휘를 수락하여, 1892년 12월 18일 빈 무지크페라인 대홀에서 초연이 이루어졌다. 초연에는 후고 볼프, 요한 슈트라우스, 요하네스 브람스 등 많은 브루크너 지지자들이 참석했지만, 일부 보수적인 청중은 각 악장 끝에 자리를 뜨기도 했다.[12]

저명한 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는 느린 악장(제3악장) 후에 자리를 떠났으며, 그의 평론은 교향곡을 "세부적으로는 흥미롭지만 전체적으로는 이상하고, 심지어 혐오스럽다"고 묘사하며 바그너의 극적인 스타일을 교향곡에 도입한 점을 특이점으로 지적했다.[12] (음악학자 코르스트베트는 이것이 한슬리크의 이전 브루크너 교향곡 평론보다는 덜 부정적이었다고 지적한다.) 반면, 브루크너 지지자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한 익명의 작가는 "우리 시대 음악의 정점"이라고 평했으며,[13] 후고 볼프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성의 범위, 웅장함, 위대함에서 이 거장의 다른 교향곡들을 능가하는 거인의 작품"이라고 극찬했다.[14] 볼프는 초연 일주일 후 이 작품의 성공을 "어둠에 대한 빛의 완전한 승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교향곡은 오케스트라 레퍼토리로 자리 잡는 데 시간이 걸렸다. 브루크너 생전에는 단 두 번의 추가 공연만 열렸으며,[15] 미국 초연은 1909년,[15] 런던 초연은 1929년에야 이루어졌다.[16] 일본 초연은 1959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도쿄 공연에서 이루어졌다.

한편, 제1고(1887년 판본)는 노바크 판본 출판 이전인 1954년 5월 2일 뮌헨에서 오이겐 요훔 지휘로 1악장만 초연되었다. 전곡 초연은 1973년 9월 2일 런던에서 한스 후베르트 쇤첼러(Hans-Hubert Schönzeler)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노바크 판 제1고의 초연은 1980년 2월 29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엘리아후 인발의 지휘로 이루어졌으며, 인발은 1998년 7월 8일 요미우리 일본 교향악단을 지휘하여 일본 초연도 진행했다. 제3악장의 이고(異稿, 1888년경 작곡)는 2004년 도쿄에서 나이토 아키라 지휘, 도쿄 뉴 시티 관현악단에 의해 초연되었다(이 이고 악장을 포함하는 형태로 교향곡 8번이 연주되었다).

3. 2. 초연 당시 반응

1890년 개정 작업이 완료될 무렵, 레비는 더 이상 뮌헨에서 지휘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제자였던 펠릭스 바인가르트너, 당시 만하임카펠마이스터에게 교향곡 초연 지휘를 추천했다. 1891년, 바인가르트너의 지휘로 초연이 두 차례 예정되었으나, 그는 매번 마지막 순간에 다른 작품으로 대체했다.[10] 바인가르트너는 브루크너에게 베를린 오페라 부임을 이유로 들었지만, 레비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작품이 너무 어렵고 리허설 시간이 부족하며, 특히 바그너 튜바 연주자들의 경험 부족 때문에 연주할 수 없다고 실토했다.[11]

뮌헨 공연이 콜레라 발병 우려로 취소된 후, 브루크너는 빈 초연 성사에 집중했다. 마침내 빈 필하모닉의 정기 연주회 지휘자 한스 리히터가 지휘를 맡기로 동의했고, 초연은 1892년 12월 18일에 열렸다. 초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일부 보수적인 청중들은 각 악장이 끝날 때마다 자리를 뜨기도 했다. 반면, 후고 볼프요한 슈트라우스를 포함한 많은 브루크너 지지자들이 참석하여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12]

저명한 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는 느린 악장 연주 후에 자리를 떠났다. 그는 평론에서 교향곡을 "세부적으로는 흥미롭지만 전체적으로는 이상하고, 심지어 혐오스럽다"고 평하며, "이 작품의 특이점은 바그너의 드라마틱한 스타일을 교향곡에 도입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12] (음악학자 코르스트베트는 이것이 한슬리크가 브루크너의 이전 교향곡들에 대해 썼던 평론보다는 덜 부정적인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반면, 브루크너를 숭배하는 이들로부터는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졌다. 한 익명의 작가는 이 교향곡을 "우리 시대 음악의 정점"이라고 묘사했으며,[13] 후고 볼프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성의 범위, 웅장함, 위대함에서 이 거장의 다른 교향곡들을 능가하는 거인의 작품"이라고 극찬했다.[14]

이처럼 초연 당시 반응은 엇갈렸지만, 교향곡이 오케스트라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브루크너 생전에는 단 두 번의 추가 공연만 이루어졌을 뿐이다.[15] 미국 초연은 1909년에야 이루어졌고,[15] 런던 초연은 1929년까지 기다려야 했다.[16]

4. 악기 편성

이 교향곡은 브루크너가 작곡한 교향곡 중 가장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 편성을 요구한다. 이는 제9번 교향곡과 동일한 규모이며, 브루크너의 교향곡 중 유일하게 하프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연주되는 1890년 판본의 악기 편성은 다음과 같다.



(*) 3번 바순은 제1악장과 제4악장에서 콘트라바순으로 바꾼다.

(**) 5번부터 8번 호른은 제1악장, 제3악장, 제4악장에서 바그너 튜바로 바꾸어 연주하며, 테너 튜바 2대와 베이스 튜바 2대로 구성된다.

1887년 초고 버전의 경우, 제3악장까지는 2관 편성(목관악기 각 2대)을 사용하다가 제4악장에서 처음으로 3관 편성이 사용된다. 또한 1887년 버전에서는 제3플루트 주자가 제3악장과 제4악장에서 피콜로를 함께 연주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1890년 판본에서는 피콜로 파트가 삭제되었다. 호른의 사용 방식에도 차이가 있는데, 1890년 버전은 전 악장에 걸쳐 8대의 호른을 사용하지만 1887년 버전에서는 5번부터 8번 호른이 마지막 악장에서만 등장한다.

5. 구성

이 교향곡은 완전한 자필 악보로 1887년판과 1890년판 두 가지가 있으며, 두 가지 판본 모두 브루크너 사후 노바크가 출판하였다. 샬크 등 제자들이 주도하여 수정되어 1892년에 최초로 출판된 1892년판(샬크판, 개정판), 로베르트 하스가 1890년판을 바탕으로 제자들의 압력 때문에 삭제되었다고 판단한 부분을 복원한 하스판도 있다. 완성된 판본 이외에도 브루크너의 다른 많은 작품들처럼 스케치들이 다수 존재하며, 이를 통해 시작하는 주제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 수 있다.

교향곡은 총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연주 시간은 연주자와 사용된 악보 판본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약 80분 정도 소요된다.

I. 알레그로 모데라토 (다단조)

II. 스케르초: 알레그로 모데라토 — 트리오: 랑잠 (다단조 → 다장조, 트리오는 내림가장조)

III. 아다지오: 장중하게 랑잠, 그러나 너무 느리지 않게 (내림 라장조)

IV. 피날레: 장중하게, 빠르게 않게 (다단조 → 다장조)

1888년으로 추정되는 아다지오 악장의 중간 버전 사본이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트리플 목관 편성을 요구하는 이 아다지오는 데르모트 골트와 타카노부 가와사키에 의해 편집되었고[28], 나이토 아키라가 지휘하는 도쿄 뉴 시티 오케스트라에 의해 녹음되었다.[29] MIDI 버전도 이용 가능하다.[30]

다른 악장들의 중간 버전은 윌리엄 캐러건에 의해 편집되었으며[31], 게르트 샬러가 연주했다.[32] 캐러건은 이 편집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여덟 번째 교향곡에 대한 설명은 하나의 완전한 사본이 아닌 개별적이고, 아마도 동시대가 아닌 원고를 기반으로 했다. ... 따라서 이 버전은 1887년과 1890년의 확고하게 확립된 원고 버전 및 1892년의 인쇄 버전과 같은 편집 수준이 아닌 실험적인 것으로 항상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브루크너, 즉 그의 고상한 생각과 멜로디에서 가장 표현력 있는 실현을 찾고 있는 영원한 수정가로서의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매혹적인 관점이 있다.[31]

5. 1. 제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Allegro moderato)

다단조. 2/2 박자. 3개의 주제를 가진 소나타 형식이다. (주의: 이 해설은 노바크판 제2고에 기초한다.)

현악기트레몰로로 시작하여, 낮은 현악기에서 무겁고 비극적인 제1주제가 나타난다. 이 제1주제의 리듬과 동기는 교향곡 전체를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짧은 경과구를 거쳐 곡은 잠시 고요해지지만, 갑작스러운 투티(총주)로 주제가 다시 강조된다. 경과구에서는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어 정점에 이른 후 제1주제 부분이 마무리된다.

제2주제는 사장조로 제시되며, 악보에는 '밝고 분명하게'(breit und markigde) 연주하라는 지시가 있다. 서정적인 성격을 띤 이 주제 역시 전조를 반복하며 발전한다.

오보에가 연주하는 경과구 이후에는 제3주제가 내림마단조로 나타난다. 현악기의 피치카토 반주 위에서 관악기가 이 주제를 제시하는데, 분주한 움직임 뒤에 강렬하게 하강하는 음형이 등장하여 다소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시부는 124마디부터 시작되는 내림마장조의 웅장한 총주로 마무리된다. 제시부 전체적으로는 으뜸음조인 다단조의 느낌이 약하고 조성적으로 불안정한 특징을 보인다.

전개부는 제128마디부터 시작된다. 제1주제가 모방되고,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아래로 뒤집힌 형태로 전개되지만 이 부분은 비교적 짧다. 반전된 제2주제를 이용한 브루크너 특유의 동형진행(시퀀스)이 반복된 후, 제225마디에서는 두 개의 주제가 격렬하게 겹쳐지며 포르티시시모(fff)의 강렬한 불협화음에 도달한다.

긴 경과구를 지나 재현부는 제291마디에서 시작된다. 제1주제가 다시 등장하지만 상당히 변형되었고 길이도 짧아졌다. 제2주제와 제3주제는 비교적 원래 형태대로 재현된다. 제369마디에서는 제1악장의 클라이맥스가 찾아오는데, 금관 악기군이 '다' 음을 반복적으로 강하게 연주한다. 브루크너 자신은 이 신호와 같은 강렬한 연주를 "죽음의 예고"라고 설명했다.

이 클라이맥스가 가라앉은 후, 제393마디부터 시작되는 코다에서는 제1주제가 점차 사라지듯 약해지며 악장이 마무리된다. 브루크너는 피아니시시모(ppp)로 끝나는 이 코다를 "포기" 또는 "체념"이라고 설명했다.

참고로, 1887년 판본(제1고)에서는 이 코다 부분이 다르다. 여기서는 제1주제가 다장조로 바뀌어 투티로 힘차게 연주되며 악장이 마무리된다. 하지만 현재 주로 연주되는 1890년 판본(노바크판 제2고)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조용하고 어둡게 끝난다.

5. 2. 제2악장

다단조, 4분의 3박자, A - B - A의 복합 3부 형식으로 구성된다. 스케르초 주부(A)와 트리오(B) 역시 각각 3부 형식을 따른다.

스케르초의 '독일의 야인(미헬)' 주제 첫 등장


스케르초 주부(A)는 알레그로 모데라토(Allegro moderato) 빠르기지만, 브루크너는 주요 주제를 '독일의 야인(미헬)'이라고 설명했다. 이 가상의 인물을 통해 브루크너는 악장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호른의 짧은 도입 후 현악기가 주요 주제를 연주하며 시작된다. 이후 긴 경과구를 거치고 주제가 발전하며 곡은 큰 절정을 맞이한다. 제2부에서는 팀파니의 조용한 연주 속에 주요 주제가 다뤄지다가 현악기와 목관악기로 이어진다. 호른 도입부가 다시 나타나면 제1부를 거의 반복하는 제3부로 들어간다.

트리오(B)는 내림 가장조, 4분의 2박자로 바뀌고, ''Langsam''(느리게)이라는 지시어가 붙는다. 브루크너에 따르면 이 부분은 '야인(미헬)이 시골을 꿈꾸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 트리오는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 트리오에 비해 규모가 크며, 중간 부분(제57마디~제60마디) 저음 현악기의 선율은 '야인의 기도'를 나타낸다고 전해진다.

트리오는 1887년 판본(제1고)과 1890년 판본(제2고)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다. 특히 1890년 판본에서는 하프가 추가되고 템포가 더 느려졌다. 반면 1887년 판본에는 하프가 사용되지 않았다. 두 판본 모두 스케르초 악장의 연주 시간은 약 15분으로, 브루크너의 스케르초 중 가장 길다.

트리오(B)가 끝난 후 다시 스케르초 주부(A)로 돌아와 악장을 마무리한다.

5. 3. 제3악장

아다지오(Adagio). 내림 라장조, 4/4박자. 악장 지시어는 "Feierlich langsam, doch nicht schleppend|장엄하게 느리게, 그러나 질질 끌지 않도록de"이다. 형식적으로는 A - B - A - B - A - 코다의 5부 구조를 가지며, 각 주제는 다시 두 개의 요소로 나눌 수 있어 (A1・2 - B1・2 - A1 - B1・2 - A1・2 - 코다)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특히 세 번째 A 부분(A1 부분)은 매우 길게 확장된다.

현악기의 짧은 도입 후, 제1주제(A)의 첫 번째 요소(A1) 주요 선율이 제1 바이올린에 의해 제시된다. 이 선율은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주제를 인용했다. 이 선율이 반복되면서 사장조로 바뀌고, 상행하는 음형이 특징적인 동기가 나타나 고조된다. 이후 저음 현의 비극적인 경과구를 거쳐, 내림 라장조로 두 번째 요소(A2)가 등장하며, 하프가 더해져 상행 아르페지오를 연주한다.

제47마디부터는 마장조로 제2주제(B)가 시작된다. 첫 요소(B1)는 첼로가 두 번 반복하여 연주하고, 이어지는 두 번째 요소(B2)는 바그너 튜바가 연주한다. B1 주제가 전개되면서 음계 위를 상행하고, 금관악기가 팡파르풍 선율을 더한다. 다른 브루크너 교향곡의 아다지오 악장과 달리, 두 번째 주제가 첫 번째 주제보다 빠르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이후 두 주제가 번갈아 재현된다. 첫 번째 A주제 재현(제95마디~)은 극적인 조바꿈을 동반하며, A2 요소는 나타나지 않는다(1887년 제1고에서는 재현됨). 팀파니가 추가되어 고조되지만 비교적 짧게 끝난다. 이어지는 B주제 재현(제129마디~)은 ''poco a poco accel.''(조금씩 점점 빠르게) 지시와 함께 조성을 바꾸며 B1, B2 요소가 거의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이후 바이올린비올라피치카토를 배경으로 한 무곡풍 경과구가 연주되다 사라진다.

두 번째 A주제 재현(제185마디~)은 12/8박자로 바뀌며 ''a tempo (wie anfangs)''(처음 빠르기대로) 지시가 있다. 현악기의 6연음표가 지속적으로 흐르는 가운데, A1의 시작 부분이 내림 라단조로 강하게 연주된다(투티). 장3화음 상행 동기는 내림 가장조로 나타난다.

긴 경과구를 거쳐 악장은 정점(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제239마디~). 1890년 판본에서는 심벌즈 타격과 트라이앵글 트레몰로, 하프 아르페지오와 함께 포르티시시모(fff)로 내림 마장조의 사륙화음이 울린 뒤, 장3화음 상행 동기가 같은 조로 연주된다. "Etwas bewegter|약간 움직임을 더하여de" 지시가 있으며, 제243마디의 내림 다장조 화음에서 두 번째 심벌즈가 울린다. 이후 A2 요소도 재현된다.

코다(제259마디~)는 주조인 내림 라장조로 돌아와 B1 주제 전반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호른이 선율을 이끌고 현악기가 응답하며 전체적으로 온화하게 진행되다가 조용히 악장을 마친다.

'''판본 문제'''

이 3악장은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의 여러 판본 중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며, 이로 인해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주요 판본과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 1887년 판본 (원판): 정점이 다장조로 설정되었고, 심벌즈를 총 6번 사용한다. 노바크가 브루크너 사후 출판했다.
  • 1890년 판본 (개정판): 브루크너 자신이 수정한 판본으로, 정점을 내림 마장조로 바꾸고 심벌즈 사용을 2번으로 줄였다. 이 판본의 아다지오는 1887년 원판보다 더 짧다. 노바크가 자필 악보를 기반으로 출판했다.
  • 1892년 판본 (샬크판): 샬크 등 제자들이 주도하여 수정하고 최초로 출판된 판본이다.
  • 하스판 (1939년): 로베르트 하스가 1890년 판본을 기반으로 하되, 1887년 판본에서 삭제되었다고 판단한 부분(특히 아다지오의 클라이맥스 이전 부분과 피날레 일부)을 복원하여 포함시킨 '혼합 형태'(Mischform|미슈포름de)이다.[37][38] 하스는 헤르만 레비의 비평이 브루크너에게 큰 충격을 주어 수정을 감행했다고 주장하며[39](명확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함), 브루크너가 삭제한 부분을 복원하는 것을 정당화하려 했다. 예를 들어, A주제 두 번째 재현부에서 제1주제 주요부 강주와 장3화음 상행 동기 사이에 온화한 경과구를 삽입했는데, 이는 제1고(1887년 판)에서 가져온 것이다.[40] 이러한 편집 방식은 "학문적 책임의 합리적인 한계를 초과"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41] 그럼에도 하스판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귄터 반트 등 많은 지휘자들에게 선호되었으며 가장 자주 연주되는 판본 중 하나이다.[38][42]
  • 노바크판: 하스의 뒤를 이어 브루크너 전집 편집자가 된 노바크는 하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브루크너의 수정이 예술적 완벽주의의 결과라고 보았다. 따라서 1887년판과 1890년판 자필 악보를 각각 충실히 재현하여 별도로 출판했다. 노바크는 레비의 비평에 대한 브루크너의 심리적 붕괴 주장에 대한 증거가 거의 없으며, 당시 편지들은 브루크너가 좌절감을 느꼈지만 심리적으로는 건강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오이겐 요훔(후기 녹음),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말년, 1892년 판 사용) 등이 노바크 판본(또는 1892년 판본)을 사용했다.


하스판과 노바크판(1890년판)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부분의 처리 방식이다. 하스판은 두 개의 큰 주제 부분 사이에 1887년 판본의 조용하고 장엄한 부분을 삽입했지만, 노바크판은 이를 생략하고 두 부분을 직접 연결한다. 이 때문에 클라이맥스로 도약하는 부분에서 두 판본은 상당히 다른 음악적 인상을 준다.

5. 4. 제4악장

다단조다장조, 2/2박자, 소나타 형식.

4악장은 복잡한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 개의 주요 주제를 가진다. 브루크너는 이 악장이 이전 악장들의 주제(또는 리듬)를 종합하여 승리의 결론에 도달한다고 설명했다.
제시부현악기들이 전타음이 붙은 4분 음표를 강하게 연타하는 가운데, 금관악기가 코랄 풍으로, 트럼펫팡파르처럼 제1주제를 연주하며 시작한다. 브루크너는 이 부분을 "올로모우츠에서의 황제 폐하와 차르의 회견"을 묘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현악기는 코사크의 행진, 금관악기는 군악대, 트럼펫은 황제와 차르가 만날 때 울리는 팡파르를 상징한다고 한다.[43][45]

잠시 멈춘 후, 내림가장조로 바뀌며 현악기를 중심으로 노래와 같은 제2주제가 제시된다. 이 주제는 1악장의 대응되는 주제와 3악장 아다지오를 연상시키며, 중간(제93마디 이후)에는 교향곡 7번에서 사용된 모티프가 나타난다. 이후 목관악기의 악구가 연주되고 팀파니가 행진곡풍 리듬을 연타하며 제3주제를 이끈다.

제3주제는 내림마단조의 행진곡풍 악상으로, 1악장의 세 번째 주제 그룹을 다시 가져온 것이다. 악보에는 'nicht gebunden'(음표를 잇지 않고 연주하라는 의미)라는 지시가 있다.
발전부제3주제가 쉼표로 중단된 후, 발전부는 주로 제3주제와 제1주제를 교대로 다루며 진행된다. 처음에는 현악기가 제3주제를, 이어서 금관악기가 제1주제를 코랄처럼 연주한다. 곡은 점차 비극적인 분위기를 더해가며 금관악기의 강렬한 연주로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재현부제437마디부터 재현부가 시작된다. 잠시 경과적인 악구가 이어진 후, 제시부 처음의 전타음 붙은 4분 음표 리듬이 다시 나타나며 곡의 기세를 더하고, 제1주제의 코랄과 팡파르가 웅장하게 돌아온다.

제2주제는 제547마디부터 재현되는데, 제시부보다 약간 축약된 형태이다. 하스 판본에서는 브루크너가 초고에서 삭제했던 부분을 복원하여 삽입했기 때문에 다른 판본과 다른 인상을 주며, 이 부분에서 교향곡 2번 1악장 제시부 종결부의 인용이 나타나기도 한다.[40][41]

제3주제는 다단조로 짧게 재현된 후, 제617마디부터 제1악장의 제1주제가 전 합주로 힘차게 재현된다. 다시 제3주제의 리듬과 교대하고, 플루트의 짧은 경과구를 거쳐 금관악기에 교향곡 3번 제1주제의 단편이 나타난다. 목관악기가 제1주제의 단편을 연주하고 팀파니가 호응하며 금관악기도 가세하여 제1주제의 리듬이 명확해지면, 트럼펫이 제1주제를 연주하며 코다로 넘어간다.
코다제647마디부터 코다가 시작된다. 제1, 제2 바이올린이 상승하는 음형을 연주하고 테너 튜바가 장엄함을 더한다. 먼저 제679마디부터 호른이 제2악장 스케르초 주제를 연주한다. 이윽고 곡은 밝은 다장조로 바뀌며, 이전 네 개 악장의 주요 주제 음형들이 동시에 겹쳐져 나타난다.

모든 악기가 참여하여 교향곡 전체를 힘차고 웅장하게 마무리한다. 브루크너는 이 결말을 "어둠에 대한 빛의 완전한 승리"라고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이 마지막 부분은 매우 장엄하지만, 브루크너의 다른 작품, 예를 들어 교향곡 5번의 피날레 코다보다는 간결하게 마무리된다.

6. 판본 문제

교향곡 8번은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 자신이 작곡하고 개정한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크게 1887년에 완성된 초고(제1고)와 이를 1890년에 개정한 악보(제2고)로 나눌 수 있다.[54] 이 외에도 출판 과정에서 여러 판본이 등장했다.

'''1887년 판본 (제1고)'''

1884년에 작곡을 시작하여 1887년에 완성된 첫 번째 판본이다. 브루크너는 완성된 악보를 지휘자 헤르만 레비에게 보냈으나, 레비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대대적인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만약 레비의 부정적인 견해가 없었다면 이 판본이 최종본으로 남았을 수도 있다. 이 판본은 레오폴트 노바크가 1972년에 출판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지만, 오랫동안 연주되지 않고 묻혀 있었다.

1890년 판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1악장과 3악장의 전개가 다르며, 2악장 트리오는 거의 새로 쓰였다. 4악장이 비교적 원래 형태와 유사하지만 역시 많은 부분이 삭제되었다. 전체적으로 1890년판보다 길이가 길고, 악기 편성도 2관 편성(1890년판은 3관 편성)으로 더 간결한 소리를 낸다.

오늘날 이 판본은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대부분 1890년 판본이나 이를 기반으로 한 하스판이 선호되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1887년 판본을 지지하기도 한다. 브라이언 길리엄(Bryan Gilliam)은 후대의 판본(1890년판 이후)이 브람스 추종자들의 취향에 맞춰 더 짧고 부드럽게 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정작 브람스 본인은 1892년 초연을 듣고 혹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은 다소 떨어진다.

'''1890년 판본 (제2고)'''

헤르만 레비의 비판 이후 브루크너는 3년에 걸쳐 개정 작업을 진행하여 1890년에 완료했다. 오늘날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이라고 하면 보통 이 판본이나 이를 바탕으로 한 하스판을 가리킨다. 이 판본은 1887년 판본과 차이가 크다.

개정 과정이 전적으로 브루크너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있었다. 데릭 쿡과 같은 학자들은 브루크너가 요제프 샬크와 같은 동료들의 압박을 받아 개정한 부분이 있다고 보며, 이 판본을 "브루크너-샬크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55] 로베르트 하스 역시 제자들이 여러 부분의 삭제를 요구하는 외압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반면 레오폴트 노바크는 1890년 자필 악보에 브루크너 외의 필체가 보이지 않으며, 브루크너가 외부 간섭을 극도로 꺼렸다는 친구들의 증언을 근거로[55] 개정이 브루크너 본인의 의사였다고 주장한다. 노바크는 이러한 관점에서 1890년 자필 악보를 그대로 정리하여 1955년에 출판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노바크판'이라고 불리는 판본이다(정확히는 '1890년 노바크판').

1890년 판본의 관현악 편성은 1887년 판본보다 더 완전하고 풍부하며, 목관악기의 사용과 화성이 특징적이다.[56]

'''1892년 판본 (초판 / 샬크판)'''

브루크너 생전인 1892년에 처음으로 출판된 악보이다. 1890년 판본(제2고)을 바탕으로 제자인 요제프 샬크와 막스 폰 오버라이트너(Max von Oberleithner)가 일부 수정을 가했다. 1944년 하스판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교향곡의 유일한 악보였다.

하지만 이후 하스판과 노바크판 같은 '원전판'들이 출판되면서, 1892년 판본은 제자들이 임의로 원본을 수정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현재는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그러나 브루크너 생전에 출판되었으므로 그의 개입이나 허락 없이 수정 및 출판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으며, 오늘날 연구에서는 브루크너가 직접 참여했거나 승인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판본은 처음 출판되었다는 의미에서 '''초판'''이라고 불리며, 제자들이 수정했다는 점에서 '''개정판'''이라고도 불렸으나, 브루크너 자신의 개정(1887년 → 1890년)과 혼동될 수 있어 현재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편찬을 주도한 요제프 샬크의 이름을 따 '''샬크판'''이라고도 한다.

'''하스판'''

로베르트 하스가 1890년 판본(제2고)의 자필 악보를 바탕으로 편찬하여 1944년 출판한 악보이다. 하스는 1890년 판본을 기본으로 삼았지만, 개정 과정에서 샬크 등 제자들의 압력으로 삭제되었다고 판단한 1887년 판본의 일부 구절들을 복원했다.

이러한 편집 방식 때문에 일부 음악학자들은 하스의 기준이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하스판을 1887년판과 1890년판을 혼합한 판본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노바크판 역시 일부 수정이 있어 완전히 논란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하스판은 음악적인 가치를 높이 평가받으며 많은 지지자를 가지고 있다. 많은 음악가들이 음악적으로 하스판이 노바크판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하며, 노바크를 단순히 악보를 정리한 기술자로 보는 반면, 하스를 브루크너의 음악적 의도를 이해한 진정한 음악인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지휘자 게오르크 틴트너(Georg Tintner)는 하스판을 "가장 뛰어난 판본(The best)"이라 칭하며 하스를 "훌륭하다(brilliant)"고 평했다. 오늘날 많은 지휘자들이 비판을 우려하여 노바크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귄터 반트, 다니엘 바렌보임, 라파엘 쿠벨릭, 쿠르트 마주어,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에두아르드 판 베이눔, 크리스티안 틸레만, 피에르 불레즈 등 저명한 지휘자들이 하스판을 사용했다. 칼 뵘이나 칼 슈리히트처럼 두 판본을 절충하여 사용한 경우도 있다.

'''노바크판'''

레오폴트 노바크는 로베르트 하스의 뒤를 이어 브루크너 전집 편집을 맡아, 1890년 판본(제2고)을 1955년에, 1887년 판본(제1고)을 1972년에 각각 출판했다. 노바크는 하스와 달리, 선택한 자필 악보(1887년 또는 1890년)를 최대한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특히 1890년 판본 편집 시, 하스가 복원했던 1887년 판본의 구절들을 다시 삭제했다. 노바크는 하스의 편집 방식을 "여러 판본을 절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늘날 가장 엄격한 의미의 1890년 판본은 노바크가 1955년에 출판한 것을 말한다.

'''판본 간 주요 차이점'''


  • '''1887년판 vs 1890년판:''' 1악장 코다가 1887년판은 장조의 포르티시모로 끝나지만, 1890년판은 단조로 조용히 끝난다. 2악장 스케르초 트리오의 특정 부분(연습 번호 R) 화성이 1887년판은 Ges-Dur, 1890년판은 A-Dur로 다르며, 오케스트레이션 등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전반적으로 1890년판이 더 압축적이다.
  • '''하스판 vs 1890년 노바크판:''' 하스판은 1890년판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1887년판에서 삭제된 일부(특히 3악장과 4악장)를 복원하여 노바크판보다 길이가 더 길다. 예를 들어 4악장의 특정 부분(연습 번호 O, Oo 등)에서 하스판은 1887년판의 요소를 포함하여 노바크판 제2고와 다른 구성을 보인다.


'''연주 실제'''

하스판 출판 이전에는 주로 1892년 초판(샬크판)이 사용되었다. 하스판 출판 이후 한동안은 하스판이 주류였으나, 현재는 1890년 노바크판의 사용 빈도가 더 높다. 이는 노바크의 비판적 견해와 학계의 원전 중시 경향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히나 타카시, 귄터 반트 등 음악적 내용을 중시하여 하스판을 선호하고 연주하는 지휘자들도 꾸준히 있다.

1887년 노바크판(제1고)은 연주되는 경우가 드물지만, 엘리아후 인발, 게오르크 틴트너,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 시모네 영, 켄트 나가노 등이 녹음을 남겼다.

'''기타 판본 및 자료'''

  • '''1888년경 3악장 이고:''' 1887년판과 1890년판 사이 시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3악장(Adagio)의 다른 버전이 1999년에 발견되었다. 아직 국제 브루크너 협회에서 공식 출판되지는 않았으나, 악보가 일부 공개되어 있으며 연주 녹음도 존재한다.
  • '''쿠세비츠키판:'''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가 독자적으로 대폭적인 컷과 변경을 가한 판본도 있으며, 자신의 지휘 녹음이 남아있다. 이 판본은 전곡 연주 시간이 50분 정도로 매우 짧다.

7. 연주 시간

교향곡 8번의 연주 시간은 실제 연주자, 사용하는 악보, 그리고 어떤 판본을 따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악장별 연주 시간은 다음과 같다.

악장일반적인 연주 시간
제1악장약 14분 ~ 17분
제2악장약 13분 ~ 16분
제3악장약 24분 ~ 28분
제4악장약 21분 ~ 25분



판본에 따라서도 평균적인 연주 시간이 달라지는데, 국제 브루크너 협회의 자료 등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판본평균 연주 시간
노바크판 제1고 (1887년 판)약 90분
노바크판 제2고 (1890년 판)약 82분
하스판약 78분 (악보 자체에 명기됨)



하지만 이는 평균적인 시간이며,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세르게이 쿠세비츠키는 독자적으로 악보를 수정하여 약 51분 만에 연주한 기록이 있고, 반대로 세르주 첼리비다케는 만년에 약 100분에 걸쳐 연주하기도 했다.

총 연주 시간이 80분을 넘는 경우가 많아, CD로 발매될 때는 2장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흔하다.

참조

[1] 서적 The Oxford Companion to Music Oxford University Press
[2] 문서 Korstvedt
[3] 문서 Korstvedt
[4] 문서 Korstvedt
[5] 문서 Korstvedt
[6] 문서 Korstvedt
[7] 문서 Korstv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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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문서 Korstvedt
[11] 문서 Korstv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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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서적 Bruckner's Symphonies: Analysis, Reception and Cultural Politics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7] 웹사이트 Leaflet of Unicorn LP UNS-210 by H. Schönzeler, Hubert http://www.abruckner[...]
[18] 서적 The second golden age of the Viennese symphony: Brahms, Bruckner, Dvořák, Mahler, and selected contemporaries https://books.google[...] Indiana University Press
[19] 웹사이트 Simon Rattle on Mastering Bruckner https://www.limeligh[...]
[20] 서적 Symphony no. 8/1, C minor, 1887 version Ernst Eulenburg (musical editions)
[21] 간행물 leaflet of LP - Jubal 5003/4: Georg Tintner, National Youth Orchestra of Canada ''Symphony No. 8'' 1982-08-31
[22] 논문 "The Two Versions of Bruckner's Eighth Symphony."
[23] 웹사이트 Obituary: Hans-Hubert Schonzeler https://www.independ[...] 202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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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웹사이트 Latest News!! - Anton Bruckner https://www.abruckne[...]
[27] Youtube Bruckner Symphony No 8 https://www.youtube.[...]
[28] 웹사이트 Dermot Gault and Takanobu Kawasaki, Anton Bruckner, Symphony No 8 – Intermediate Adagio (1888) https://www.abruck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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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문서 Korstv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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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서적 VIII. Symphonie Haslinger-Schlesinger-Lien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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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서적 Underground Humour in Nazi Germany, 1933–1945 https://books.google[...] Routledge
[45] 문서 Korstvedt
[46] 문서 Korstvedt
[47] 서적 The Cambridge Companion to Bruckner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48] 문서 Korstvedt
[49] 문서 Korstvedt
[50] 기타 Sergiu Celibidache http://www.abruckner[...] EMI
[51] 웹사이트 Symphony No. 8: Georg Tintner with the National Youth Orchestra of Canada http://www.abruckner[...]
[52] 웹사이트 Symphony No. 8 (1887) by Gennady Rozhdestvensky with the Bolshoi Theater Orchestra https://www.abruckne[...]
[53] 웹사이트 The 1888 Bruckner 8th Performed at Ebrach http://www.abruckner[...]
[54] 서적 こだわり派のための名曲徹底分析・ブルックナーの交響曲 音楽之友社
[55] 문서 Korstvedt
[56] 서적 Symphony No. 8/2, c minor, 1890 version Eul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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