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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 운동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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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란 리본 운동 (세월호)은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희생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시작된 온라인 캠페인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사회 각계각층으로 확산되어 희생자 추모와 진실 규명 요구를 상징하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노란 리본을 활용한 추모 활동이 전개되었으며,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노란 리본은 정치적 상징으로 변질되면서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재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에서 노란 리본은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2. 역사적 배경

노란 리본은 이전부터 돌아오기를 바라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 유래는 미국에서 감옥에 간 남편의 귀환을 바라며 아내가 집 앞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묶었다는 내용의 노래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상징성이 사용된 사례가 있는데, 1987년 동진호 납치 사건 당시 피랍된 선원의 딸이 아버지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근처 소나무에 노란 손수건 400장을 내걸기도 했다.[10]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에는 희생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의미에서 카카오톡 등에서 사용될 노란 리본 이미지가 대학 동아리 ALT에 의해 처음 디자인되었다.[11]

세월호 추모에 사용된 노란 리본의 모양은 배가 좌초할 당시 레이다에 잡혔던 비정상적인 항적을 형상화한 것이다.

2. 1. 서구권의 노란 리본

노란 리본은 이전부터 누군가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이러한 상징성은 토니 올란도 앤 던이 부른 1973년 히트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1] 서구권에서 노란 리본의 사용은 1970년대에 미국, 캐나다, 독일, 스웨덴, 덴마크와 같은 국가의 반군사주의 평화 운동가들이 군대를 지원하는 상징으로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1] "우리 군대를 지지하자/전쟁에 반대한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노란 리본 캠페인은 베트남 전쟁에서 군인들이 귀환하면서 이미 시작되었지만, 노란 리본을 다는 것은 1979년부터 1981년까지의 이란 인질 사태 동안 더욱 널리 퍼진 국가적 현상이 되었다. 이때 노란색은 무사 귀환에 대한 희망을 상징했다.[1]

2. 2. 필리핀의 노란 리본

필리핀의 시민 운동가들은 노란 리본을 군인과의 연관성보다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사용하며 아시아에서 노란 리본 운동의 의미를 다르게 형성했다.[1] 1983년, 3년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가 마닐라로 돌아오자 그의 지지자들은 귀환을 환영하며 거리에 노란 리본을 내걸었다.[1] 그러나 아키노는 귀국 직후 암살되었고, 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는 남편의 정치적 유지를 이어받아 1986년 피플 파워 혁명을 이끌었다. 이때 노란 리본은 코라손 아키노의 주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1] 이 혁명을 계기로 노란 리본은 필리핀 민주주의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1]

2. 3. 대한민국의 노란 리본

노란 리본은 이전부터 돌아오기를 바라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 유래는 미국에서 감옥에 간 남편의 귀환을 바라며 아내가 집 앞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묶었다는 내용의 노래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87년 피랍된 동진호 선원의 딸이 아버지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근처 소나무에 노란 손수건 400장을 내건 사례가 있다.[10] 세월호 침몰 이후에는 대학 동아리 ALT가 희생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의미에서 최초로 카카오톡용 노란 리본 이미지를 디자인하기도 했다.[11]

1986년, 필리핀에서 피플 파워 혁명이 일어난 해에 대한민국에서도 활동가들이 민주화를 지지하며 직선제 도입을 요구하는 의미로 노란 리본을 나누어 주었다.[1] 1980년대 후반에는 서울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 중 학생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의미로 노란색이 두드러지게 사용되었으며, 이때 노란 리본은 진보적인 야당 정치를 상징하기도 했다.[1] 또한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피랍되었을 때, 이들의 안전한 귀환을 기원하며 수천 명의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다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3]

3. 세월호 침몰 사고

2014년 4월 16일, 인천항에서 제주항으로 향하던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12][2] 이 사고로 배에 타고 있던 476명 중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2] 희생자 가운데 250명은 제주도로 2박 3일 일정의 현장체험학습(수학여행)을 가던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었다.[12][2]

사고 당시 생존자 174명 중 상당수는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 지시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 탈출하여 구조될 수 있었다.[3] 한편, 해양경찰의 초기 구조 대응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정부와 일부 언론에서는 구조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발표하여 현장의 혼란과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을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3] 이 사건은 단순한 해상 사고를 넘어 한국 사회의 안전 시스템과 재난 대응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4. 노란 리본 캠페인의 전개

노란 리본은 이전부터 귀환을 바라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미국에서는 감옥에 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가 집 앞에 노란 리본을 거는 내용의 노래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가 있으며, 한국에서는 1987년 피랍된 동진호 선원의 딸이 아버지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근처 소나무에 노란 손수건 400장을 내건 사례가 있다.[10]

2014년 4월 16일, 인천항에서 제주항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여 단원고등학교 학생과 교사를 포함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12], 대학 동아리 ALT는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카카오톡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노란 리본 이미지를 처음 디자인하여 온라인 캠페인을 시작했다.[11][3] ALT는 "작은 움직임 하나가 큰 기적을 가져오기를"이라는 문구와 함께 노란 바탕에 검은 리본이 그려진 이미지를 공유했다.[3] 이들이 디자인한 리본의 모양은 세월호가 좌초할 당시 레이다에 포착된 비정상적인 항적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실종자들의 생환을 바라는 희망의 상징으로 시작된 노란 리본 캠페인은[4] 온라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곧 오프라인으로도 확산되었다.[16][3]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존자 구조 소식이 들려오지 않자, 노란 리본은 점차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의미를 담게 되었다.[4] 더 나아가, 사고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정부의 대응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노란 리본은 정부에 대한 비판과 항의의 상징으로까지 의미가 확장되었다.[4][3] 특히 희생자 가족들이 정부에 대한 항의의 주요 상징으로 노란 리본을 사용하면서 이러한 의미는 더욱 강화되었다.[3] 노란 리본은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적 운동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으며, 이는 이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3]

4. 1. 온라인 캠페인

2014년 4월 22일부터 대학 동아리 ALT(Active Autonomous Alter Life Together)가 제작한 노란 리본 디자인을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의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는 캠페인이 시민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11][3] ALT는 희생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작은 움직임 하나가 큰 기적을 가져오기를"이라는 문구와 함께 노란색 바탕에 검은 리본 그림이 있는 디자인을 온라인에 게시했다.[3] 이 상징은 소셜 미디어 프로필 사진 변경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3] 처음에는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는 희망의 의미였으나, 생존자 구조 실패가 분명해지면서 노란 리본은 애도와 추모의 상징으로 변화했다.[4] 나아가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정부 대응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노란 리본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로까지 확장되었다.[4][3]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K팝 연예인을 포함한 유명인들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자신의 소셜 미디어 프로필 사진을 노란 리본 이미지로 바꾸거나 관련 사진을 게시하면서 캠페인 확산에 기여했다.[6] 대한민국의 주요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 역시 메인 화면에 "작은 발걸음, 큰 기적"이라는 문구와 함께 노란 리본 이미지를 게재했으며, 전국재해구호협회와 함께 피해자 가족을 위한 기금 마련 온라인 캠페인을 시작하기도 했다.[6] 일부 사용자들은 'R=VD' (Realization=Vivid dream, 생생하게 꿈꾸면 현실이 된다)라는 문구를 함께 게시하는 방식으로 캠페인에 참여했다.[14] 또한,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단식 농성과 연대하여 유튜브페이스북 등 가상 공간에 자신의 단식 모습이나 노란 리본 사진, 영상을 게시하는 이들도 있었다.[2]

이러한 온라인에서의 움직임은 큰 반향을 일으켜, 캠페인을 처음 제안했던 ALT 회원조차 JT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커질 줄은 우리도 생각 못했다"고 말할 정도였다.[13] 노란 리본 캠페인은 4월 25일 미국 CNN 방송에도 보도되며 국제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15] 온라인에서 시작된 이 캠페인은 이후 오프라인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16] 이는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참여가 활발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5]

4. 2. 오프라인 캠페인

노란 리본 캠페인은 처음에는 온라인에서 시작되었으나, 곧 오프라인으로 확산되었다[16].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서울광장, 청계천, 종로구 청운효자동, 마포구 망원동·동교동, 동대문구 전농동 등 서울의 여러 장소와 전국 각지에서 노란 리본을 달거나 나누며 캠페인을 진행했다[40][41]. 4월 22일에는 안산의 한 슈퍼마켓과 광주의 상무고등학교에서도 노란 리본이 걸렸으며[19][20], 4월 23일에는 중부대학교 교직원[42], 4월 24일에는 광주 상무고등학교, 조선대학교 등 광주 지역 학교들이 캠페인에 동참했다[43]. 5월 7일에는 청주흥덕초등학교에서도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을 열어 희생자들을 애도했다[48]. 해외에서도 참여가 이어져, 4월 28일에는 미국 LA 총영사관 앞에서 대학생 50여 명이 추모 행사를 열고 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았다[44].

스포츠계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4월 19일 전남 드래곤즈 서포터즈는 관중석에 무사 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을 매달았고[17], 4월 22일에는 롯데 자이언츠 구단이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를 앞두고 선수단 유니폼에 노란 리본을 부착했으며[21], 전북 현대 모터스 서포터즈도 캠페인에 참여했다[22]. 미국 메이저리그의 LA 다저스는 4월 23일 경기 전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 시간을 갖고, 전광판을 통해 노란 리본 캠페인을 알렸다[23]. KBO는 5월 3일 경기부터 선수들 헬멧에 노란 리본 패치를 부착하기로 결정했다[28]. 탁구 선수 주세혁은 5월 2일 2014 도쿄 세계탁구선수권 경기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출전했으며[45],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는 5월 6일 아이스 쇼 기자회견에서 동료 선수들과 함께 노란 리본을 달고 나왔다[32].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홍명보는 5월 8일 대표팀 엔트리 발표 자리에[33], 축구 선수 박지성은 5월 14일 은퇴 기자회견에 노란 리본을 달고 참석했다[34].

연예계와 문화계 인사들의 참여도 활발했다. 배우 이영애는 4월 25일 홍콩에서 열린 주얼리 행사에 노란 리본을 달고 참석했고[24], 아이돌 그룹 유키스는 4월 26일 일본 후쿠오카 공연에서 노란 리본 캠페인을 알렸다[25]. 방송인 김상중은 4월 27일 그것이 알고 싶다 세월호 편 진행 시 노란 리본을 착용했으며[26], 같은 날 가수 코니 탤벗은 내한 공연에서 노란 리본과 노란색 티셔츠로 추모의 뜻을 표했다[27]. 배우 이승기는 4월 30일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제작발표회에[29], 배우 손태영은 같은 날 중국 시상식에 노란 리본을 달고 참여했다[30]. 5월 3일 악동뮤지션은 'GIVE LOVE' 뮤직비디오에 노란 리본을 그려 넣었고[46], 5월 6일 무한도전 멤버들은 방송 시작 전 검은 정장에 노란 리본을 달고 애도의 메시지를 전했다[47]. 방송인 김미화 부부는 5월 14일 좋은 아침 방송을 통해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35], 가수 유희열은 5월 10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추모곡 '엄마의 바다'를 공개했다[49]. 5월 25일 방송을 재개한 개그콘서트 출연진들도 오프닝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등장했으며[50], 6월 3일 부산 모터쇼에서는 레이싱 모델들이 정숙한 옷차림에 노란 리본을 착용했다[51]. 드라마 꽃할배 수사대[36], 영화 역린[37], 드라마 닥터 이방인[38], 영화 경주[39]의 제작진과 배우들도 캠페인에 동참했다.

정치권에서도 노란 리본을 통해 애도를 표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선거 유세 포스터에서 웃는 표정을 빼고 노란 리본 이미지를 넣었으며[18], 진보 정당 소속 정치인들도 노란 리본을 착용하며 연대의 뜻을 나타냈다.

시민들은 직접 노란 리본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광장"과 참여연대 건물 내 "노란 리본 공장" 등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수많은 노란 리본을 제작했다. 이 리본들은 폭 7mm 너비로 잘린 노란색 폼 보드를 꼬아서 리본 모양으로 접착하고 금속 체인에 부착하여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란 리본은 시민 단체 등을 통해 무료로 배포되었고[1][4], 사람들은 가방, 자전거, 지갑, 자동차 창문 등 일상 곳곳에 노란 리본을 달아 추모와 연대의 마음을 표현했다[7]. 노란색은 리본 외에도 모자, 팔찌, 스티커, 풍선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었다[1][7][6].

5. 노란 리본의 의미 변화

세월호 침몰 사고 초기, 대학생 그룹 ALT(Active Autonomous Alter Life Together)는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문구와 함께 노란 리본 그림을 온라인에 공유했다.[3] 이 노란 리본은 소셜 미디어 프로필 사진 변경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3] 처음에는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희망의 상징이었으나[4], 희생자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 분명해지면서 점차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의미로 변화했다.[4][3]

시간이 흐르면서 노란 리본의 의미는 더욱 확장되었다. 많은 시민들은 이 참사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이며, 정부의 미흡한 대처와 구조 과정에서의 문제점들이 참사를 키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4] 이에 노란 리본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비판과 저항, 그리고 사고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4][3] 희생자 유가족들이 정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노란 리본을 사용하면서 이러한 의미는 더욱 강화되었다.[3]

초기의 추모 집회는 점차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정치적 시위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3] 시위대는 KBS 본사로 행진하여 재난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2], 청와대 앞으로 이동하여 박근혜 정부가 제안한 진상규명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기도 했다.[2] 이후 시위의 중심지는 광화문광장으로 옮겨졌고, 이곳에서 76일간 농성이 이어졌다.[2] 유가족들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였다.[2]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연대와 슬픔을 표했으며, 유튜브페이스북 등 온라인 공간에서도 단식 동참 인증 사진이나 노란 리본 관련 게시물을 올리며 지지를 보냈다.[2] 광화문광장 농성장 한편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노란 리본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리본 공장'이 운영되기도 했다.[3] 전국 각지에서는 '생명 우선', '돈보다 사람'과 같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시위가 열렸다.[2]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민들의 슬픔은 분노로 바뀌었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1,000만 명 서명 운동이 시작되기도 했다.[3] 노란 리본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핵심 상징으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이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3]

6. 노란 리본 캠페인의 영향

노란 리본 캠페인은 대학생 동아리 ALT 회원들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으며, 회원들은 JTBC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커질 줄은 우리도 생각 못했다"고 심정을 밝혔다.[13] 일부 참여자들은 'R=VD' (Realization=Vivid dream, 생생하게 꿈꾸면 현실이 된다)라는 문구를 공유하며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방식으로 캠페인에 동참하기도 했다.[14]

처음에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캠페인은 곧 오프라인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16]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서울광장, 청계천, 광화문광장 등 전국 각지의 공공장소에 모여 노란 리본을 만들고 나누며 나무나 난간 등에 매달아 추모와 연대의 뜻을 표했다.[40][41] 스포츠계, 연예계, 정치계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 역시 유니폼, 의상, 기자회견장 등 다양한 방식으로 노란 리본을 착용하며 캠페인에 동참했고, 이는 캠페인이 더욱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

노란 리본 캠페인은 국제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4월 25일 미국 CNN 방송은 이 캠페인을 보도했으며,[15] 4월 23일 미국 프로야구팀 LA 다저스는 경기 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갖고 전광판을 통해 노란 리본 캠페인을 알렸다.[23]

시간이 흐르면서 노란 리본은 단순한 추모의 상징을 넘어,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안전한 사회를 요구하는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상징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3][2]

6. 1. 정치적 영향

노란 리본은 세월호 참사 추모 운동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3] 운동 초기에는 희생자들의 생존을 기원하는 의미였으나, 생존자가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지면서 슬픔과 애도의 상징으로 바뀌었다.[3] 이후 노란 리본은 정부의 대응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커지면서 반정부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정부가 책임을 다하고 부패하지 않았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3]

참사 이후 시위대는 공영 방송사인 KBS 본사로 행진하여 재난 보도의 문제점을 비판했으며,[2]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안한 진상 규명 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며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로 시위 장소를 옮겼다.[2] 청와대 앞 시위는 76일간 이어졌고, 이후 시위대는 역사적, 정치적 상징성이 큰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했다.[2] 유가족들은 참사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정치 개혁을 요구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2] 시민들은 연대와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에 모였을 뿐 아니라,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온라인 공간에서도 단식 동참 인증 사진이나 노란 리본 관련 게시물을 올리며 참여했다.[2] 광화문광장의 한 단식 농성장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노란 리본을 대량으로 제작하여 배포하는 '리본 공장'이 운영되기도 했다.[3] 전국적으로 사람들은 '생명 우선', '돈보다 사람'과 같은 구호를 내걸고 시위를 벌였는데, 이는 정부가 희생자들의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담고 있었다.[2]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시위대의 슬픔은 점차 정부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고, 천만 명 서명을 목표로 하는 청원 운동이 시작되었다.[3]

노란 리본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상징으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이후 3년간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3]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노란 리본은 탄핵 촉구 집회의 주요 상징물로 꾸준히 등장했다.[3] 세월호 유가족들은 집회를 이끌었으며, 그들의 발언은 집회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3] 2016년에는 광화문광장에 높이 약 9.14m의 '희망 촛불'이라는 예술 설치물이 세워졌는데, 이 조형물은 세월호 추모와 탄핵 요구를 결합한 상징물로, 시민들이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염원과 희생자들에 대한 메시지를 적은 노란 리본으로 뒤덮였다.[3]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문과 정부 대응의 투명성 부족 문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주요 동력 중 하나로 작용했다.[6] 이처럼 노란 리본의 의미는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사회의 재민주화를 상징하는 의미로까지 확장되었다.[1]

6. 2. 사회문화적 영향

노란 리본은 세월호 침몰 사고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3] 처음에는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희망의 상징으로 시작되었으나,[3] 생존자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슬픔과 애도의 의미로 변화했다.[3] 이후 노란 리본은 정부의 미흡한 대응과 진상 규명 지연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정부에 책임을 묻는 정치적 저항의 상징으로 발전했다.[3][2] 이는 정부가 재난 대응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에 대한 국민적 실망과 분노가 반영된 결과였다.[3]

노란 리본 캠페인은 2014년 4월 16일 참사 이후 온라인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되어 빠르게 오프라인으로 확산되었다.[16] 시민들은 서울광장, 청계천, 광화문광장 등 전국의 주요 장소에서 노란 리본을 나누고 나무에 매달며 추모와 연대의 뜻을 표현했다.[40][41] 특히 광화문광장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작은 노란 리본을 대량으로 제작하는 "리본 공장"이 운영되기도 했으며,[3] 제작된 리본은 주로 무료로 배포되어 더 많은 시민의 참여를 이끌었다.[1][4] 사람들은 가방, 옷, 차량 등 일상 곳곳에 노란 리본을 달았고, 노란색 모자, 팔찌, 스티커 등 다양한 형태의 상징물이 등장하며 추모 분위기를 확산시켰다.[7][1][6]

온라인 공간에서의 확산도 두드러졌다. 인터넷소셜 미디어는 노란 리본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5] 많은 시민들과 유명인들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 프로필 사진을 노란 리본 이미지로 바꾸거나 관련 게시물을 올리며 캠페인에 동참했다.[6] K팝 스타들을 포함한 연예인들의 참여는 청년층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6] 포털 사이트 네이버는 "작은 발걸음, 큰 기적"이라는 문구와 함께 노란 리본 이미지를 게재하고 전국재해구호협회와 함께 온라인 모금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6] 이러한 온라인 활동은 오프라인 시위와 상호작용하며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지속시키는 동력이 되었다.[2]

스포츠계, 연예계, 정치계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도 노란 리본 달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사회적 연대를 보여주었다. 전남 드래곤즈 서포터즈[17],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21], 전북 현대 모터스 서포터[22], LA 다저스[23], KBO[28], 김연아[32], 홍명보[33], 박지성[34], 주세혁[45] 등 스포츠계 인사들이 동참했고, 배우 이영애[24], 김상중[26], 이승기[29], 손태영[30], 가수 유키스[25], 코니 탤벗[27], 악동뮤지션[46], 유희열[49], 방송인 김미화[35], 무한도전[47], 개그콘서트[50] 출연진 등 연예계 인사들도 노란 리본을 달고 추모의 뜻을 밝혔다. 김황식 전 총리는 선거 포스터에서 노란 리본으로 애도를 표했으며,[18] 진보 정당 소속 정치인들도 노란 리본을 착용하며 연대 의사를 나타냈다. CNN 등 외신에서도 노란 리본 캠페인을 보도하며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다.[15]

노란 리본 운동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한국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시민들은 '돈보다 사람', '생명 우선'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정부의 책임을 묻고 안전 사회 건설을 요구했다.[2] 유가족들은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고,[2] 이는 많은 시민들의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냈다. 노란 리본은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도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3] 촛불 집회 현장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발언이 이어졌고,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희망 촛불' 조형물은 시민들이 남긴 노란 리본으로 뒤덮였다.[3]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행적과 정부 대응에 대한 의문은 탄핵의 주요 동력 중 하나가 되었으며,[6] 이 과정에서 노란 리본은 국가 시스템 개혁과 재민주화를 요구하는 상징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1]

7. 논란

노란 리본의 의미와 사용을 둘러싸고 여러 논란이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한때 노란 리본이 '무속에서 저승으로 가는 나비를 뜻한다'는 잘못된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53] 이 외에도 저작권 문제나 정치적 해석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이 제기되었으며, 이는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7. 1. 저작권 논란

한때 노란 리본 이미지에 저작권이 있다는 소문이 퍼졌으나, 이미지를 처음 제안했던 대학동아리 연합 ALT 측은 이를 즉시 반박하며 오히려 더 많이 사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11]

한편 일베저장소에서는 노란 리본 이미지를 'ㅇㅂ'라는 일베 마크로 변형하거나 '노알라' 이미지를 합성한 가짜 노란 리본을 만들어 퍼뜨리는 등, 본래의 추모 의미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어 비판을 받았다.[52]

7. 2. 정치적 해석 논란

일베저장소와 같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노란 리본 이미지를 'ㅇㅂ'라는 일베 마크로 변형하거나 '노알라'(노무현 전 대통령과 코알라를 합성한 비하 이미지)를 합성한 가짜 노란 리본을 유포하며 본래의 추모 의미를 훼손하려는 시도를 하여 비판을 받았다.[52]

2014년 5월 5일, 공화당 창당준비위원회는 노란 리본이 과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상징이었다고 주장하며, "불순한 세력이 뒤에서 조문객들에게 정체불명의 노란리본을 달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검정리본달기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54]

정부 당국은 노란 리본 착용 행위를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의 부재와 실패"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한 형태로 간주했다.[3] 정부는 노란 리본이 단순한 추모의 상징을 넘어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되었다고 주장했으며,[3] 이에 따라 대한민국 교육부는 각급 학교에 공문을 보내 교내에서 노란 리본의 사용이나 전시를 금지하도록 지시했다.[3] 일부 학생 단체들은 이러한 조치가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으나, 위원회는 이를 기각했다.[3]

노란 리본은 학교 밖에서도 사회적 갈등의 요소가 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는 일부 박근혜 지지자들이 노란 리본을 착용한 시민들을 표적으로 삼아 시비를 걸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년이 지난 뒤에도 노란 리본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시기 서울의 한 보수 성향 교회에서는 교인이 노란 리본을 착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교회를 떠나야 했던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1] 또한 노란 리본이 정부에 비판적인 시위와 강하게 연관되면서, 정부를 지지하는 성향의 사람들은 노란 리본 착용을 꺼리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3]

8. 현재의 노란 리본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시간이 흘렀음에도, 노란 리본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참사를 잊지 않으려는 기억의 상징으로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이는 단순한 애도의 표시를 넘어, 진실 규명을 촉구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염원과 연대를 나타내는 중요한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다.

8. 1. 기억 공간

노란 리본은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수개월, 수년에 걸쳐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세월호 침몰 희생자들의 교실을 뒤덮었다.[8] 침몰 사고로 희생된 250명 학생들의 10개 교실은 유가족, 친척, 급우들이 칠판에 그림과 메시지를 남기고 책상을 제단으로 바꾸면서 "기억 교실"로 알려지게 되었다.[8][3]

세월호 참사 기억 운동의 또 다른 주요 장소는 서울 중심부의 광화문 광장이었다.[8] 이곳에서는 시민들이 매일 자원하여 대형 텐트("세월호 광장")에서 노란 리본을 직접 만들어 지지자들에게 배포하며 연대 의식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사건의 진실 규명을 요구했다.[8]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역시 침몰 사고 이후 몇 주 동안 노란 물결로 뒤덮이며 추모의 공간이 되었다.[8]

세월호가 침몰한 지점과 가장 가까운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의 추모 장소에 있는 철조망과 나무는 노란 리본으로 빽빽하게 덮여 세월호 기억 운동의 또 다른 주요 장소로 기능했다.[1]

이 외에도 광주 망월동 구묘역과 제주 강정마을의 활동가 공동체를 포함한 두 곳의 추모 시위 장소 역시 희생자 가족에게 연대감을 표시하기 위해 노란 리본으로 뒤덮였다.[1] 광주 망월동 구묘역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이 처음 묻혔던 장소이며, 강정마을 활동가들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활동을 이어왔다.[1]

8. 2. 지속적인 추모 활동

세월호 참사 이후, 작은 노란 리본들은 배낭, 자전거, 지갑, 카페 창틀, 문, 울타리, 자동차 창문 등 대한민국 전역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발견되며 추모의 의미를 이어갔다.[7] 진보 정당 소속 정치인들 역시 노란 리본을 착용하며 연대 의식을 나타냈다. 이러한 리본들은 주로 두 곳의 주요 제작소에서 무료로 배포되었는데, 하나는 참여연대 건물 내의 "노란 리본 공장" 작업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울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광장"이었다. 특히 노란 리본 공장에서는 매주 수요일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여 한 번에 수백 개의 리본을 제작했으며, 이는 다른 시민 단체들을 통해 대중에게 무료로 배포되었다. 이 리본들은 주로 폭 7mm 너비의 노란색 폼 보드를 꼬아 만들고 금속 체인을 부착한 형태였다.

희망과 연대를 상징하는 노란색은 리본 외에도 노란 모자, 부채, 손수건, 팔찌, 휴대폰 스티커, 열쇠 고리, 풍선, 나비 그림, 종이 구명 보트, 티셔츠, 리넨 브로치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었으며, 참사 날짜인 '4.16' 숫자가 함께 새겨지기도 했다.[1][7][6] 일부 단체는 유가족 지원 기금 마련을 위해 관련 물품을 판매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노란 리본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진실 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되었다.[1][4]

노란 리본은 참사 이후 수개월, 수년에 걸쳐 안산 단원고등학교 희생 학생들의 교실을 뒤덮었다.[8] 참사로 희생된 250명 학생들의 비어있는 10개의 교실은 유가족과 친구들이 남긴 그림과 메시지, 제단으로 변한 책상 등으로 채워져 "기억 교실"로 불리게 되었다.[8][3] 서울 광화문 광장 역시 세월호 기억 운동의 주요 장소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는 시민들이 매일 자원하여 대형 텐트에서 노란 리본을 직접 만들고 배포하며 지속적인 연대와 진상 규명 요구를 이어갔다.[8] 서울광장 또한 참사 이후 몇 주 동안 노란 물결로 덮이며 추모의 공간이 되었다.[8] 배가 침몰한 지점과 가장 가까운 진도 팽목항의 추모 공간에 설치된 철조망과 나무에도 노란 리본이 빽빽하게 매달려 또 다른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1]

나아가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망월동 구묘역)제주 강정마을 등 다른 사회적 아픔과 연대하는 장소들에서도 희생자 가족과의 연대를 표하며 노란 리본이 걸렸다.[1] 망월동 묘역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이 처음 묻힌 곳이며, 강정마을 활동가들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활동을 이어왔다.[1]

참조

[1] 학술지 Candlelight and the Yellow Ribbon: Catalyzing ReDemocratization in South Korea https://apjjf.org/20[...] 2017-07
[2] 서적 New Worlds from Below: Informal life politics and grassroots action in twenty-first-century Northeast Asia 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Press
[3] 학술지 Affective Protest Symbols: Public Dissent in the Mass Commemoration of the Sewŏl Ferry's Victims in Seoul 2018-10-02
[4] 학술지 The Color of Dissent and a Vital Politics of Fragility in South Korea 2018
[5] 서적 Igniting the Internet: Youth and Activism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University of Hawai’i Press
[6] 학술지 The Evolution of South Korean Student Protests 2017-07-03
[7] 웹사이트 The Color Yellow http://harvardpoliti[...] 2014-05
[8] 학술지 The Color of Dissent and a Vital Politics of Fragility in South Korea 2018-11
[9] 뉴스 세월호 침몰 희생자 무사기원…SNS 노란리본달기 확산 https://news.naver.c[...] 중앙일보 2014-04-22
[10] 뉴스 세월호 침몰, 노란리본 캠페인…과거 피랍된 선원 딸이 임진각에 내걸기도 https://news.naver.c[...] 중앙일보 2014-04-22
[11] 뉴스 "[단독]노란리본에 저작권이?… “사실 아니다” ALT 측, 직접 밝혀"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14-04-22
[12] 뉴스 "[진도 여객선 침몰] 안산단원고등학교 수학여행단 왜 제주행 배를 탔나?" http://www.kyeongin.[...] 경인일보 2014-04-16
[13] 뉴스 "'노란리본' 운동 시작한 대학생 힘이 되길 바랄 뿐" https://news.naver.c[...] JTBC 2014-04-23
[14] 뉴스 카톡 노란리본 캠페인 급속 확산, 'R=VD'의 뜻과 리본 의미 알고보니… https://news.naver.c[...] 스포츠한국 2014-04-22
[15] 뉴스 "[세월호 참사] CNN 韓 노란리본은 희망의 상징" https://news.naver.c[...] 노컷뉴스 2014-04-25
[16] 뉴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노란리본 오프라인서도 넘실"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14-04-24
[17] 뉴스 "<여객선침몰> 숙연한 분위기 속 프로축구 경기 진행" http://sports.news.n[...] 연합뉴스 2014-04-19
[18] 뉴스 웃는 포스터 교체, 로고송도 금지 https://news.naver.c[...] 중앙일보 2014-04-21
[19] 뉴스 "[세월호 침몰] 노란리본 매달린 안산" https://news.naver.c[...] 뉴시스 2014-04-22
[20] 뉴스 "[세월호 참사]광주 상무고, 교직원-학생 '노란 리본'" https://news.naver.c[...] 뉴시스 2014-04-22
[21] 뉴스 노란리본 캠페인, 롯데 선수단 동참 '목동구장에 핀 염원' https://news.naver.c[...] 스포츠서울 2014-04-22
[22] 뉴스 노란리본 캠페인, '무사기환' 전 국민적인 염원 확산 https://news.naver.c[...] OSEN 2014-04-22
[23] 뉴스 노란리본 달기 캠페인 다저스타디움까지…애도 물결 [MK그래픽] http://sports.news.n[...] MK스포츠 2014-04-23
[24] 뉴스 "[세월호]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이영애' 동참…홍콩 행사 내내 '노란리본' 애도"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5-01
[25] 뉴스 "[세월호] 유키스,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동참…일본 4만 관중 앞 '애도'"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4-28
[26] 뉴스 "'그것이 알고 싶다' 세월호 편, 김상중도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4-27
[27] 뉴스 코니탤벗,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동참…희생자 '애도' https://news.naver.c[...] News1 2014-04-28
[28] 뉴스 KBO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3일 경기부터 헬멧에 리본 붙인다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4-29
[29] 뉴스 "‘너포위 이승기’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참여로 “세월호 애도”"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4-30
[30] 뉴스 "[세월호]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손태영' 동참…中 시상식서 '노란 리본'"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5-01
[31] 뉴스 "[세월호] 김연아, 은퇴 메달 수익금 기부…노란리본달기 캠페인 동참"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4-29
[32] 뉴스 김연아, ‘노란리본달기 캠페인’으로 은퇴 무대 빛내…“39명 돌아오길”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5-06
[33] 뉴스 "[세월호]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홍명보' 동참…월드컵이 희망 되도록"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5-08
[34] 뉴스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동참…박지성 은퇴 기자회견서 ‘세월호 참사 애도’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5-20
[35] 뉴스 김미화, 남편 윤승호와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동참 “희생자 위로”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14-05-14
[36] 뉴스 "[세월호]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꽃할배수사대' 동참…"노란리본 애도""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5-14
[37] 뉴스 "[세월호] 영화 '역린'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동참…"노란리본 애도"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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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뉴스 "'경주' 제작보고회에서 신민아·박해일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동참"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5-21
[40] 뉴스 "[세월호 한달] 리본 묶고, 촛불 들며…"끝까지 함께할게요"" https://news.naver.c[...] News1 2014-05-15
[41] 뉴스 학교·공원·거리마다… 노란 리본 물결 https://news.naver.c[...] 세계일보 2014-05-14
[42] 뉴스 중부대,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https://news.naver.c[...] News1 2014-04-23
[43] 뉴스 "\"아픔 함께 나누자"… 광주지역 학생들 추모 동참" https://news.naver.c[...] News1 2014-04-24
[44] 뉴스 "[세월호 침몰] '기적을 염원하는 마음으로'…"노란리본달기 캠페인 미국까지""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4-28
[45] 뉴스 주세혁,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동참…애도의 뜻 품고 경기에 '뭉클' http://sports.news.n[...] MBN 2014-05-02
[46] 뉴스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악동뮤지션 뮤직비디오에 '노란리본' 새긴 사연?"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5-03
[47] 뉴스 세월호 노란리본달기캠페인 무한도전, 비밀리 기부 '무한감동' https://news.naver.c[...] 아시아경제
[48] 뉴스 청주 흥덕초 '노란 리본으로 퍼지는 애도의 울림' http://www.inews365.[...] 충북일보
[49] 뉴스 "[세월호] 작곡가 유희열 노란리본달기 캠페인…"추모곡 '엄마의 바다' 공개"" https://news.naver.c[...] 조선일보 2014-05-12
[50] 뉴스 세월호 참사 애도 특집 개콘 오프닝서…노란리본달기 캠페인 참여 https://news.naver.c[...] 조세일보 2014-05-26
[51] 뉴스 부산 모터쇼 레이싱걸 의상, 정숙해진 이유는? https://web.archive.[...] 월스트리트저널 2014-06-03
[52] 뉴스 일베, 노란리본 의미 무시 이유?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https://news.naver.c[...] 한국일보 2014-04-23
[53] 뉴스 노란리본달기 캠페인이 귀신 주술? “터무니없는 악성 루머”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14-04-25
[54] 뉴스 노란리본달기 캠페인, 난데없이 ‘종북 논쟁’ 휩싸여 https://news.naver.c[...] 서울신문 201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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