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나카 노부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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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쓰나카 노부히코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1997년부터 2015년까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활동했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만루 홈런을 기록하며 일본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프로에서도 2000년 퍼시픽 리그 MVP를 수상하는 등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2004년에는 타격 3관왕을 달성했으며,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으로 우승에 기여했다.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가 및 지도자로 활동하며, 2024년부터 주니치 드래건스의 타격 코치로 활동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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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나카 노부히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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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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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73년 12월 26일 |
출생지 | 구마모토현 야쓰시로시 |
신장 | 183cm |
체중 | 97kg |
포지션 | 좌익수, 지명타자, 코치 |
투구/타석 | 좌투/좌타 |
프로 입단 | 1996년 |
드래프트 순위 | 드래프트 2위 (역지명) |
첫 출장 | 1997년 5월 31일 |
마지막 출장 | 2015년 10월 1일 |
선수 경력 | |
선수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997년~2015년) |
코치 | 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스 (2022년) 주니치 드래건스 (2025년~현재) |
국가대표 경력 | |
국가 | 일본 |
올림픽 | 1996년 2000년 |
WBC | 2006년 |
수상 내역 | |
주요 수상 | 2× 퍼시픽 리그 MVP (2000년, 2004년) 일본 트리플 크라운 (2004년) 5× 베스트 나인 수상 (2000년, 2003년–2006년) 2004년 골든 글러브 수상 8× NPB 올스타 (1999년–2001년, 2003년–2005년, 2007년–2008년) |
올림픽 메달 | |
획득 메달 | }} |
아시안 게임 메달 | |
획득 메달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메달 | |
획득 메달 | |
인터컨티넨탈컵 메달 | |
획득 메달 | |
타격 성적 (NPB) | |
타율 | 0.296 |
안타 | 1767 |
홈런 | 352 |
타점 | 1168 |
2. 선수 경력
구마모토현 출신으로 사회인 야구팀 신일본제철 시절인 1996년 1996년 하계 올림픽 일본 대표팀 선수로 활약했다. 같은 해 드래프트 2위(역지명)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당시)에 입단하여 1997년부터 2015년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프로 입단 후 팀의 중심 타자로 활약하며 2000년 퍼시픽 리그 MVP, 2004년 타격 3관왕 등 주요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6년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하여 우승에 기여했다.
주요 경력은 아래와 같다.
구분 | 소속/대회 | 기간 |
---|---|---|
사회인 야구 | 신일본제철 | |
프로 야구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1997년 ~ 2015년 |
국가 대표 | 1996년 하계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팀 | 1996년 |
2000년 하계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팀 | 2000년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 | 2006년 |
아내는 프리 아나운서인 하야시 게이코이다.
2. 1. 아마추어 시절
마쓰나카는 구마모토현 야쓰시로시에서 태어나 지역의 야쓰시로 제1고등학교(현재 슈가쿠칸 고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야쓰시로 시립 다이요 초등학교 야구 클럽에 입단하여 투수와 1루수를 맡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1년에는 춘계 큐슈 대회 현 예선 결승에 진출했지만, 결승전에서 토카이 대학 부속 구마모토 세이쇼 고등학교에 완봉패를 당했다.고등학교 졸업 후 신일본제철 키미츠에 입사했다. 사회인 야구 선수로 활동하던 1996년, 당시 22세였던 마쓰나카는 신일본제철 키미츠의 1루수로서 애틀랜타 올림픽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는 결승전에서 쿠바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쳐내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서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NTT 간토에서 보강) 등과 함께 중심 타자로 활약했지만, 준준결승에서 아사히 생명에 패배했다.
1996년 NPB 드래프트 회의에서, 당시 존재했던 역지명 제도를 통해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를 역지명했고, 다이에 호크스에 2라운드로 지명되어 외야수로 입단했다. 입단 당시 등번호는 '''26'''번이었다.
2. 2. 프로 선수 시절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997년 ~ 2015년)
구마모토현 야츠시로시 출신으로, 슈가쿠칸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 신일본제철 키미츠에 입사했다. 사회인 야구 시절인 1996년에는 애틀랜타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활약했다. 올림픽 이후 참가한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서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과 함께 중심 타자로 팀을 이끌었으나 준준결승에서 패배했다. 같은 해 NPB 드래프트 회의에서 당시 존재했던 역지명 제도를 통해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를 지명했고, 드래프트 2순위로 지명받아 외야수로 입단했다. 입단 당시 등번호는 '''26'''번이었다.1997년 루키 시즌에는 금속 배트에서 목제 배트로의 전환에 어려움을 겪으며 1군 공식전 20경기 출전에 그쳐 타율 .209를 기록했다.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정규 시즌 경기에서 1루수 겸 7번 타자로 1군 무대에 데뷔했다. 1998년에는 1군 34경기에 출전하여 3개의 홈런을 기록했으며, 프로 첫 홈런은 9월 5일 세이부 라이온스의 투수 니시구치 후미야를 상대로 기록했다. 2군 웨스턴 리그에서는 19홈런으로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999년에는 루이스 로페스의 퇴단으로 주전 1루수와 좌익수 자리를 확보했다(1루는 요시나가 코이치로와, 좌익수는 멜빈 니에베스와 병용). 주로 7번 타자로 출전하며 타율 .268, 23홈런(팀 내 고쿠보 히로키에 이어 2위), 71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35년 만의 퍼시픽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8월 18일 오릭스 블루웨이브전에서는 연장 10회 끝내기 안타를 치기도 했다.[25]
2000년에 등번호를 '''3'''번으로 변경하고 정식으로 내야수로 등록되어 1루수로 고정되었다. 개막은 7번으로 맞이했지만, 타격 호조로 고쿠보 다음인 5번에 정착. 고쿠보가 부재한 경기에서는 4번으로도 기용되었다. 5월 4일 세이부 라이온스전(후쿠오카 돔)에서는 7회에 기무라 게이지로부터[26], 9월 3일 오릭스전(후쿠오카 돔)에서는 3회 1사 만루 타석에서 카를로스 푸리도로부터 각각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27] 시즌에서는 개인 첫 3할인 .312(리그 6위), 33홈런(리그 3위), 106타점(리그 2위)을 기록하며 리그 2연패에 기여했다. 베스트 나인, MVP에 빛났다.[28]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전년까지 팀 동료였던 구도 기미야스로부터 홈런을 기록했지만, 총 6경기에서 이 1안타에 그쳐,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을 놓쳤다. 이 해 오프에 연예인 미즈시마 신타로의 중매로 교제를 시작한 프리 아나운서 하야시 게이코와 결혼했다.
2001년에는 8월 25일 세이부전(후쿠오카 돔)에서 1점을 추격하는 9회 1사 1루 타석에서 도요다 기요시로부터 개인 첫 사요나라 홈런인 역전 사요나라 2점 홈런을 기록했다.[29] 시즌에서는 타율 .334(리그 3위), 36홈런(리그 7위), 122타점(리그 5위)로 타격 3개 부문 모두에서 자기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같은 해에는 마쓰나카에 더해 고쿠보가 44홈런(리그 4위), 조지마 겐지가 31홈런(리그 9위), 이구치 타다히토가 30홈런(리그 12위)을 기록해 퍼시픽 리그 사상 첫 30홈런 쿼텟을 달성(일본인 타자만의 30홈런 쿼텟은 프로 야구 사상 처음)했고, 팀 홈런도 203홈런으로 팀 기록을 갱신했다.[3] 그러나 호크스는 팀으로서 203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구단 기록을 경신했지만,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스에 밀려 리그 우승을 놓치며 3년 연속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2002년에는 새로운 스트라이크 존의 영향도 있어 타격 부진으로 레귤러 정착 후 최저 타율 .260(리그 23위)으로 끝났다. 홈런도 3년 만에 30홈런을 밑돌았고(28홈런, 리그 8위), 타점도 3년 만에 100타점을 밑도는 83타점(리그 7위)을 기록했다. 같은 해 4월 10일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스전(후쿠오카 돔)에서는 3-3 동점 연장 11회 무사 무주자 타석에서 미사와 고이치로부터 사요나라 홈런[30], 5월 14일 오릭스전(타이베이 시립 톈무 야구장)에서는 4-4 동점 9회 무사 무주자 타석에서 가세 토시히로로부터 프로 야구 공식전의 대만 개최에서 첫 사요나라 홈런을 기록했다.[31] 5월 3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100호 홈런을 기록했다.
2003년에는 고쿠보의 장기 이탈에 따라 개막부터 4번으로 기용되었고, 다이 하드 타선을 견인했다. 타율 .324(리그 9위), 30홈런(리그 9위), 그리고 타점은 123타점으로 첫 타격 타이틀인 타점왕을 획득했다.[4] 그는 호크스를 또 한 번의 페넌트 우승으로 이끌었고, 한신 타이거스를 꺾고 4년 만에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오랜 기간 클린업 히터였던 코쿠보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호크스는 팀 타율 0.297(NPB 역사상 최고)을 기록했으며, 4명의 타자가 100타점 이상을 기록했다("100타점 콰르텟").
2004년에는 7월 17일부터 7월 23일까지 역대 8번째 퍼시픽 리그 타이인 6경기 연속 홈런[32], 레귤러 시즌에서 '''헤이세이 시대 유일의 트리플 크라운'''(최다 안타, 최고 출루율 포함 타격 5관왕)을 달성(홈런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페르난도 세기놀과 동수). 베스트 나인, 골든 글러브 상, MVP에 선정되었다. 같은 해부터 도입된 플레이오프 제도에 의해 열린 플레이오프에서는 세이부 라이온스와 대전. 1차전에서는 홈런을 기록했지만, 그 후 2차전부터 4차전까지 무안타에 묶였다. 5차전 3번째 타석에서 중전 안타를 때려내고, 9회에는 팀이 동점으로 따라붙었지만, 2사 2, 3루 찬스에서 주자가 돌아오면 역전 사요나라 리그 우승이 되는 5번째 타석이었지만, 2루 땅볼에 물러나 동점에서 멈춰 최대 찬스를 놓쳤다. 이것이 영향을 미쳐 연장 10회에 점수를 내주며 팀도 리그 2연패를 놓쳤다. 전체적으로는 19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으로 부진했고 플레이오프 패배의 한 요인이 되었다.[33] 10월 13일, 급성 간염으로 입원했다.[34]
2005년에는 무릎 등에 불안을 안게 되어 훌리오 즈레타와 포지션이 바뀌어 주로 지명 타자로 타격에 전념. 4월 20일 오릭스 버팔로스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에서는 3회에 유우키로부터 역전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35] 지명 타자 제도가 없는 교류전 원정 경기에서는 좌익수로 기용되었다. 7월 15일 세이부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에서는 마쓰자카 다이스케로부터 사요나라 홈런을 포함해 개인 첫 1경기 3홈런을 기록했다.[36] 시즌에서는 리그 최다인 76사구를 기록했다. 2년 연속 홈런왕, 3년 연속 타점왕을 획득. 3년 연속 120타점 이상과 그것을 4번 달성은 프로 야구 사상 처음이었다.[37] 46홈런으로 후쿠오카 돔을 본거지로 삼은 이후의 호크스 최다 홈런 기록을 갱신했다. 그러나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5경기에서 16타수 1안타로 부진했고, 또다시 팀은 리그 우승을 놓쳤다.[38]
2006년 1월에는 구단과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장의 복수년 계약인 7년 계약을 맺었다. 이 7년간 계약은 큰 부상이나 극심한 부진에 빠져 연봉에 걸맞은 활약을 할 수 없게 된 경우를 고려하여 10가지 항목 이상에 달하는 성과급 계약이 존재하며, 5년차 이후 계약 해제권이나 야구 협약에 규정된 40%를 초과하는 최대 50% 다운 제시권 등도 계약에 포함되어 있지만, 모든 성과급 계약을 클리어하는 활약을 계속할 경우 7년간 총액 45억엔이 된다.
개막 전에는 3월에 개최된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4번 지명 타자로 전 경기에 출전. 라이너성 타구를 연발하며 대회 최다 안타 및 최다 득점을 기록하며 초대 세계 챔피언에 기여했다(그러나 홈런은 0개로 끝나, 이것이 시즌의 홈런 수에도 반영되는 원인이 되었다). 시즌에서는 전반전 부상으로 지명 타자는커녕 대타로 나서는 경우도 많았지만, 교류전 이후에는 팀 사정으로 타가미 히데노리를 지명 타자로 기용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에 주로 좌익수로 출전했다. 6월에 오른쪽 엉덩이의 농양으로 경기에 결장. 그 후 근육 조직의 감염증의 일종인 가스 괴저로 판명되어 수술을 받았고, 올스타를 결장하게 되었다. 시즌에서는 2년 만에 수위 타자를 획득(교류전에서도 수위 타자를 획득)했지만, WBC 때처럼 라이너성 타구가 많아 홈런과 타점은 전년과 비교해 급감했다. 1999년 규정 타석 도달 후 처음으로 20홈런을 밑돈 반면, 그다지 승부를 걸지 않는 경우도 늘어, 자기 최고인 102사구로 출루율 .453을 기록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개인적으로 18타수 7안타 7타점으로 활약했지만, 제2 스테이지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에 패퇴했다. 4년 연속 5번째 베스트 나인에 외야수로 선출. 1루수로 3회, 지명 타자로 1회 동상을 수상해, 다른 3개 포지션에서의 수상은 마유미 아키노부, 오치아이 히로미쓰 이후 3번째. 11월에는 다시 오른쪽 엉덩이 수술을 위해 미일 야구를 사퇴하는 등, 부상을 안고 시즌을 치렀다.
2007년에는 트레이드로 이적한 타무라 히토시, FA로 팀에 복귀한 고쿠보와의 클린업 트리오 "TMK포"가 화제가 되었지만, 5월 이후에는 세 명 모두 부상과 부진에 시달렸다. 본인도 타율 .266, 15홈런, 68타점으로 레귤러 정착 후 최악의 성적으로 끝났다. 이 해에는 좌익수가 아닌 다시 1루수로 기용되었다.
2008년에는 시즌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려 개인 3년 만에 20홈런을 넘겼고(21홈런), 8월 29일에는 통산 300홈런을 달성했지만, 막바지에는 성적이 떨어졌다. 시즌 최종전이 되었고, 최하위 전락이 걸린 10월 7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는 연장 12회 초 1사 1, 2루 상황에서 타석이 돌아왔지만 병살타에 물러나, 왕정치 감독 체제에서의 마지막 타자가 되었다.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전 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2009년에는 지명 타자보다 좌익수를 지킬 때 타율이 좋다는 이유로 외야수 등록이 되었다. 개막전에서는 3안타 5타점의 활약을 보이며 통산 1000타점(역대 34명)을 달성. 게다가 4월 21일 닛폰햄전에서 스나가 히데키로부터 통산 100사구(역대 11명), 5월 6일 오릭스전에서 통산 1500안타(역대 100명)를 달성하며 전반전은 기록 러시였다. 5월 20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사요나라 홈런, 7월 10일 라쿠텐전에서는 사요나라 안타를 쳤다. 7월 25일 올스타전 제2전에서는 2홈런을 기록하며 MVP를 수상했다. 중반 이후에는 팔꿈치, 무릎 상태가 악화되어 클라이맥스 시리즈 출전을 포기하고 치료에 전념하게 되었다. 시즌 오프에 아팠던 오른쪽 무릎의 반월상 연골 수술을 받았다.
2010년에는 무릎 회복이 늦어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다. 승격 후에도 타격은 부진했고, 게다가 왼쪽 손목 부상까지 겹쳐 12년 만에 출전 경기 수가 100을 밑돌았고(98경기), 규정 타석에도 미치지 못했다. 레귤러 정착 후 처음으로 시즌 타율이 2할 5푼을 밑도는(.245) 등 불만족스러운 성적으로 끝났지만, 9월 후쿠오카 돔에서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3연전에서는 장타가 부활했다. 첫 경기 10호 동점 3점 홈런, 제2전 11호 역전 솔로 홈런으로 역전 우승을 도왔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1할대에 묶여 팀도 패퇴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종료 직후인 10월 22일에 왼쪽 손목 수술을 받았다. 오프의 계약 갱신에서는 50% 다운인 2억엔 감액을 제시받았다.
2011년에는 부상의 영향, 우치카와 세이이치와 알렉스 카브레라의 가세에 따른 경쟁의 격화도 있어, 출전은 88경기에 그쳤다. 개막부터 한동안은 대타로만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7월에 컨디션을 끌어올려 우치카와, 타무라의 부상 이탈[39] 시에는 3번에 정착해 규정 타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타율 .308을 기록하는 등 출전한 경기에서는 결과를 남겼다. 4월 14일에는 역대 48번째 3000루타를 달성. 11월 4일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2전에서는 8회에 마키타 카즈히사로부터 대타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40] 다음 날에도 승리하며 8년 만의 일본 시리즈 진출을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그 만루 홈런이 지금까지의 플레이오프 CS의 부진을 모두 떨쳐버리는 한 방이 되었다. 그리고 8년 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12년에는 개막전을 4번·좌익수로 맞이했지만, 부상도 있어 65경기 출전에 그쳐, 전년에 이어 규정 타석 달성은 이루지 못했다. 타율 .221, 4홈런과 함께 전년을 밑도는 성적으로 끝났다. 계약 갱신에서는 개인 3번째인 1억 엔 이상의 대폭 감봉인 1.3억엔 감액된 7000만엔으로 계약했다.
2013년 4월 6일 닛폰햄전(삿포로 돔)에서 시즌 첫 1군 공식전 출전을 했지만, 종아리를 다쳐[41] 도중 교체되었다. 다음 날 7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42] 6월 3일에 다시 등록되자, 6월 13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후쿠오카 야후오쿠! 돔) 8회말에 대타로 적시타를 쳤다. 팀은 이 경기에 승리하며 세·퍼 교류전 우승을 결정했지만, 마쓰나카는 경기 후 우승 기념 세레모니에 불참. 1군 감독 아키야마 고지에 의한 기용법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구단에서는 다음 날 14일에 마쓰나카의 등록을 다시 말소했다.[43][44] 이 말소 이후 1군 복귀를 이루지 못해 1군 공식전 출전은 불과 9경기에 그쳤고, 입단 1년차 이후 홈런 0개로 끝났다.[45] 이 때문에 시즌 종료 후 계약 협상에서는 전년에 이어 구단으로부터 감액 제한을 넘는 연봉을 제시. 결국 전년 대비 50% 삭감된 추정 연봉 3500만엔으로 계약을 갱신했다.[46][47] 그 한편, 케빈 야마자키의 지도에 의한 트레이닝으로, 체지방률을 종래에서 6% 감량한 16%에 머물렀다.[48]
2014년에는 오픈전에서는 중반까지 심각한 타격 부진에 시달린 점에서, 아키야마의 지시로, 타격 폼을 스리발에서 한 발로 개조[49]했다. 이 폼 개조가 효험을 보았기[50] 때문에, 대타 요원으로 공식전의 개막을 1군에서 맞이했다. 5월 19일에 출전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지만[51], 8월 10일 닛폰햄전(후쿠오카 야후오쿠! 돔)에서는 동점으로 맞이한 5회말에 대타로 오타니 쇼헤이로부터 적시 2루타를 기록. 팀의 8연승에 기여하는 동시에, 경기 후에 개인 2년 만의 히어로 인터뷰를 받았다.[52] 레귤러 시즌 전체적으로는, 1군 공식전 33경기 출전으로 타율 .111, 0홈런, 4타점으로 부진했다. 그 한편, 한신과의 웨스턴 리그 최종전(9월 30일)에서 5호 홈런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53]했고, 10월 초순에는 피닉스 리그에 참가했다. 한편, 1군의 리그 우승으로 맞이한 포스트 시즌에는 다시 1군에 합류[54][55]했다. 닛폰햄과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출전 기회가 없었고, 한신과의 일본 시리즈에서도 제1전(10월 25일·고시엔)에 대타로 출전하는 데 그쳤지만, 시리즈 후의 계약 협상에서는 현상 유지라는 조건으로 잔류를 결정했다.[56]
2015년에는 오픈전까지 1군에 동행했지만, 왼쪽 어깨 통증의 영향으로 타율이 .111에 그쳤기 때문에, 공식전을 2군에서 시작[57]했다. 웨스턴 리그 공식전에서는, 7월 초순에 2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58] 등, 77경기 출전으로 타율 .299, 11홈런이라는 성적을 남겼다. 9월 21일에 시즌 첫 출전 선수 등록을 했지만[59], 타 구단으로의 현역 속행을 시야에 두고, 같은 달 29일에 퇴단을 발표[60]했다. 발표 후에는 레귤러 시즌에서의 홈 최종전(10월 1일 대 라쿠텐전)에 "7번·지명 타자"로 선발 출전했지만, 4타석 연속 삼진을 기록하며 19년간의 호크스 생활을 마쳤다.[61] 결국 1군 공식전에는 이 경기를 포함해 9경기에 출전. 타율 .067, 1안타, 1타점이라는 성적으로 3년 연속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다. NPB(일본 프로 야구)의 다른 구단에서 현역 연장을 염두에 두고 퇴단 직후부터 자율 훈련에 전념했다. 하지만 2015년 11월 10일에 구사나기 구장에서 열린 12개 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같은 해 12월 2일자로 NPB에서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62]되었다.
2. 3. 소프트뱅크 퇴단 후
은퇴 기자 회견에서 "야구밖에 모르는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야구와 관련된 일밖에 할 수 없다. 언젠가는 (현역 시절의 자신처럼) 3관왕을 차지할 수 있는 선수를 키우고 싶다. 또한, 지역인 구마모토현 출신의 프로 야구 선수가 예전에 비해 적어졌기 때문에, 현 내 아이들 중에서 프로 야구 선수를 배출하는 데 힘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69]。야구 지도자로의 전향을 염두에 두고, 야구 이외의 업종에서 성공을 거둔 인물과의 교류나, "베이브 루스가 활약하는 등, 야구의 역사가 있는" 뉴욕 체류 등을 계획했다。2016년부터는 야구 해설자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활동 방송사는 다음과 같다.
2019년 9월 30일, 2020년 시즌부터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plus 소속 구단인 가와가 올리브 가이너스의 제너럴 매니저(GM) 겸 총감독으로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70]。이는 같은 해 8월, 가가와 구단과 소프트뱅크 3군과의 교류전에 마쓰나카가 초청받았을 때 보여준 야구에 대한 자세를 보고 가가와 구단 측에서 영입을 제안했고, 마쓰나카 또한 "야구에 은혜를 갚고 싶다"며 수락하면서 이루어졌다[71]。 10월 31일 열린 취임 기자 회견에서는 2020년 시즌 감독직도 겸임할 것을 발표했으며, 등번호는 3번으로 결정되어 2020년 2월 10일에 발표되었다[72]。 당시 직함은 '총감독'이었고, 일부 언론에서는 '감독으로서의 지휘를 겸한 제너럴 매니저 겸 총감독'으로 보도하기도 했다[73]。 그러나 2020년 3월 25일, 야수 코치였던 곤도 토모카츠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마쓰나카는 총감독직에 전념하게 되었다[74][75]。 시코쿠 신문 보도에 따르면, 2월 합동 자율 훈련 시작 후 마쓰나카가 일정상 훈련에 충분히 참여하지 못하자 감독 권한을 위임하고 "팀 편성 및 젊은 선수 지도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76]。 마쓰나카는 구단 발표를 통해 "GM 겸 총감독으로서 감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구단 안팎을 불문하고 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스에게 최상의 형태를 찾고 있었다. 앞으로도 리그 제패를 향해 곤도 신임 감독을 현장 책임자로서 전력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77]。 2020년 시즌에는 홈 경기에서만 벤치에 들어가 곤도 감독을 지원하는 형태로 활동했다[78]。
2020년 2월 1일, 에이전시인 하네다 엑스퍼트 에이전시(HADA Expert Agency)와 매니지먼트를 포함한 포괄적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7월 1일에는 주식회사 제스트와 업무 제휴 계약을 맺었으며, 이 때 발표문에는 하네다 엑스퍼트 에이전시가 이적 등의 에이전트 업무를 담당한다고 기재되어 있다[79]。
2020년 8월 24일에는 일본 핸드볼 리그의 공인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80][81]。
2020년 10월 1일, 계약 만료로 인해 전날짜로 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스의 GM 겸 총감독직에서 퇴임했다는 사실이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82][83]。
2021년에는 지바 롯데 마린스의 춘계 캠프에서 임시 코치를 맡았다. 당초 캠프 기간 동안만 활동할 예정이었으나, 3월 26일 구단과 계약을 연장하여 임시 타격 코치로서 시즌 중에도 정기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했다[84]。 해당 계약은 11월 14일 만료되었다[85]。
2023년 7월, 일본 핸드볼 리그의 이사로 취임했다[86]。
2024년 10월 28일, 2025년 시즌부터 주니치 드래건스의 타격 코치로 활동하게 되었음을 발표했다[87]。
3. 국가대표 경력
마쓰나카는 사회인 야구팀 신일본제철 소속이던 1996년에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전 일본의 4번 타자를 맡았다. 이 대회에서 5개의 홈런과 16타점을 기록하며[15] 일본의 은메달 획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14] 특히 결승전에서 쿠바를 상대로 기록한 동점 만루 홈런은 비록 팀은 9-13으로 패배했지만 그의 대표적인 활약으로 꼽힌다.
2000년에는 시드니 올림픽 야구 일본 대표로 선발되어 프로 선수로서 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야구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16] 그러나 일본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한민국에 패하여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2006년에는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 이 대회에서 그는 일본의 선발 좌익수이자 4번 타자로 출전하여[17] 8경기에서 타율 .433을 기록하며(홈런은 없음)[18][88] 일본의 초대 WBC 우승에 공헌했다.
=== 주요 국가대표 경력 ===
대회 | 연도 | 당시 소속 | 결과/주요 활약 |
---|---|---|---|
애틀랜타 올림픽 | 1996 | 신일본제철 (사회인) | 은메달, 4번 타자, 5홈런 16타점, 결승 쿠바전 동점 만루 홈런[14][15] |
시드니 올림픽 | 2000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프로) | 4위 (동메달 결정전 한국에 패배), 프로 선수 첫 올림픽 참가[16]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6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프로) | 우승, 4번 타자, 타율 .433[17][18][88] |
4. 은퇴 후
은퇴 기자 회견에서 "야구밖에 모르는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야구와 관련된 일밖에 할 수 없다. 언젠가는 (현역 시절의 자신처럼) 3관왕을 차지할 수 있는 선수를 키우고 싶다. 또한, 지역인 구마모토현 출신의 프로 야구 선수가 예전에 비해 적어졌기 때문에, 현 내 아이들 중에서 프로 야구 선수를 배출하는 데 힘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69]。야구 지도자로의 전향을 염두에 두고, 야구 외 분야의 성공 인사들과 교류하거나, "베이브 루스가 활약하는 등, 베이스볼의 역사가 있는" 뉴욕 체류 등을 계획하기도 했다.
동시에 2016년부터 후쿠오카 방송, TOKYO MX, FOX 스포츠 & 엔터테인먼트 (2019년까지), 스포츠 라이브+ (2020년 이후), 후지 텔레비전 (2022년 이후)의 야구 해설자를 맡고 있다.
2019년 9월 30일, 2020년 시즌부터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plus 소속 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스의 제너럴 매니저(GM) 겸 총감독으로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70]。마쓰나카는 이에 앞서 8월 가가와와 소프트뱅크 3군과의 교류전에 초청되었는데, 이때의 야구에 임하는 자세를 본 가가와 구단 측이 제안했고, 마쓰나카도 "야구에 은혜를 갚고 싶다"며 수락했다[71]。같은 해 10월 31일 취임 기자 회견에서 2020년 시즌 감독 겸임을 발표했으며, 등번호는 3번으로 2020년 2월 10일에 발표되었다[72]。하지만 2020년 3월 25일, 야수 코치였던 곤도 토모카츠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마쓰나카는 총감독직에 전념하게 되었다[74][75]。이는 마쓰나카가 스케줄상 훈련에 충분히 참여하기 어려워지자, 감독 권한을 위임하고 팀 편성 및 유망주 육성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었다[76]。마쓰나카는 "GM 겸 총감독으로서 감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곤도 신임 감독을 현장 책임자로서 전력으로 서포트하겠다"고 말했다[77]。2020년 시즌에는 홈 경기에만 벤치에 들어가 곤도 감독을 지원했다[78]。2020년 10월 1일, 계약 만료로 GM 겸 총감독직에서 퇴임했다[82][83]。
2020년 2월 1일, 에이전트 회사인 하네다 엑스퍼트 에이전시(HADA Expert Agency)와 매니지먼트를 포함한 포괄적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7월 1일에는 주식회사 제스트와 업무 제휴 계약을 맺었으며, 이적 등 에이전트 업무는 하네다 엑스퍼트 에이전시가 담당하는 것으로 발표되었다[79]。
2020년 8월 24일 일본 핸드볼 리그의 공인 홍보대사로 임명되었고[80][81], 2023년 7월에는 리그 이사로 취임했다[86]。
2021년에는 지바 롯데 마린스의 춘계 캠프 임시 코치를 맡았다. 당초 캠프 기간 한정이었으나, 3월 26일 구단과 계약을 연장하여 임시 타격 코치로서 시즌 중에도 정기적으로 지도를 이어갔다[84]。해당 계약은 11월 14일 만료되었다[85]。
2024년 10월 28일, 2025년 시즌부터 주니치 드래건스의 타격 코치로 부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87]。
5. 수상 및 타이틀 경력
2000년에는 타율 .312, 33홈런, 106타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퍼시픽 리그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었다.[2] 2003년에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팀 동료 조지마를 제치고 123타점으로 첫 타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4] 2006년에는 타율 .324를 기록하며 두 번째 수위 타자 타이틀을 획득했고,[10] 4회 연속(통산 5회)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는데, 이번에는 외야수 부문에서 수상하여 아키노부 마유미와 오치아이 히로미쓰에 이어 세 개의 다른 포지션(1루수, 지명 타자, 외야수)에서 베스트 나인을 수상한 세 번째 선수가 되었다.
이 외에도 여러 타이틀과 상을 수상했으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하위 섹션의 목록과 같다.
5. 1. 타이틀
- 타격 부문 3관왕 : 1회(2004년)
- 수위 타자 : 2회(2004년, 2006년)
- 홈런왕 : 2회(2004년, 2005년)
- 타점왕 : 3회(2003년 ~ 2005년)
- 최다 안타 : 1회(2004년)
- 최고 출루율 : 3회(2004년 ~ 2006년)
5. 2. 수상
- 최우수 선수(MVP) : 2회 (2000년, 2004년)
- 베스트 나인 : 5회 (1루수: 2000년, 2003년, 2004년 / 지명 타자: 2005년 / 외야수: 2006년)
- 골든 글러브상 : 1회 (1루수: 2004년)
- 월간 MVP : 6회 (야수 부문: 2001년 9월, 2003년 8월, 2004년 5월, 2005년 7월, 2005년 9월, 2006년 6월)
- 센트럴·퍼시픽 교류전 우수 선수상 (닛폰 생명상) : 1회 (2006년)
- 올스타전 MVP : 1회 (2009년 제2차전)
- 올스타전 베스트 플레이상 : 1회 (2008년 제1차전)
- 퍼시픽 리그 연맹 특별 표창 : 2회 (특별상: 2000년 - 시드니 올림픽 출전에 의한 회장 특별상, 3관왕: 2004년 - 타격 3관왕 달성)
- 센트럴 리그 연맹 특별 표창 : 1회 (3관왕 기념상: 2004년 - 타격 3관왕 달성)
- 일본 프로 스포츠 대상 수훈상 : 1회 (2004년)
- 지바현 지사 표창 : 2회 (1994년 - 아시안 게임 출전, 1996년 -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
- 야쓰시로시 시민 영예상 : 1회 (2004년, 제1호 수상자)
- 구마모토현 스포츠 우수 대상 특별상 : 1회 (2006년 - WBC 출전)
- 후쿠오카현 현민 영예상 : 1회 (2006년 - WBC 출전)
- 후쿠오카시 스포츠 영예상 : 1회 (2006년 - WBC 출전)
- 베스트 파더 옐로우 리본상 in 규슈 (스포츠 부문) : 1회 (2007년)
6. 주요 기록
마쓰나카는 2000년에 타율 .312, 33홈런, 106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하여 생애 처음으로 퍼시픽 리그 MVP를 수상했다.[2] 소속팀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리그 우승 후 일본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패했다. 마쓰나카는 이 시리즈에서 20타수 1안타(1홈런)로 부진했다.
2001년 시즌에는 타율 .334, 36홈런, 122타점을 기록하며 2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 이상을 달성했다. 당시 호크스는 마쓰나카를 비롯해 고쿠보(44개), 포수 조지마 겐지(31개), 2루수 이구치 타다히토(30개)까지 4명의 타자가 30홈런 이상을 기록하는 강력한 타선을 구축했고, 이들은 '30홈런 쿼텟'으로 불렸다.[3] 이는 퍼시픽 리그 최초의 기록이었다. 하지만 팀은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에 밀려 리그 우승에는 실패했다.
2002년에는 새로운 스트라이크 존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타율 .260, 28홈런으로 다소 주춤했다. 2003년에는 타율 .324, 30홈런, 123타점으로 반등하며[4]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팀 동료 조지마를 제치고 처음으로 리그 타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호크스는 다시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한신 타이거스를 꺾고 4년 만에 일본 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이 해 호크스는 팀 타율 .297(NPB 역대 최고)을 기록했으며, 4명의 타자가 100타점 이상을 기록하는 '100타점 콰르텟'을 이루었다.
이후 2004년에는 타율, 홈런, 타점 부문에서 모두 리그 1위를 차지하며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7번째이자 헤이세이 시대 유일의 타격 3관왕을 달성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일본 프로 야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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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나이 | 팀 | 경기수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97 | 23 | 다이에 소프트뱅크 | 20 | 43 | 4 | 9 | 1 | 0 | 0 | 10 | 6 | 0 | .209 | .255 | .232 | .488 |
1998 | 24 | 34 | 71 | 9 | 19 | 6 | 0 | 3 | 34 | 10 | 2 | .268 | .361 | .479 | .840 | |
1999 | 25 | 126 | 395 | 57 | 106 | 20 | 4 | 23 | 203 | 71 | 5 | .268 | .359 | .514 | .873 | |
2000 | 26 | 130 | 471 | 76 | 147 | 26 | 1 | 33 | 274 | 106 | 0 | .312 | .387 | .582 | .969 | |
2001 | 27 | 130 | 479 | 81 | 160 | 29 | 0 | 36 | 297 | 122 | 2 | .334 | .412 | .620 | 1.032 | |
2002 | 28 | 136 | 485 | 75 | 126 | 23 | 1 | 28 | 235 | 83 | 1 | .260 | .348 | .485 | .833 | |
2003 | 29 | 135 | 494 | 99 | 160 | 31 | 1 | 30 | 283 | 123 | 2 | .324 | .429 | .573 | 1.002 | |
2004 | 30 | 130 | 478 | 118 | 171 | 37 | 1 | 44 | 342 | 120 | 2 | .358 | .464 | .715 | 1.179 | |
2005 | 31 | 132 | 483 | 109 | 152 | 26 | 2 | 46 | 320 | 121 | 2 | .315 | .412 | .673 | 1.075 | |
2006 | 32 | 131 | 447 | 79 | 145 | 32 | 1 | 19 | 236 | 76 | 2 | .324 | .453 | .528 | .981 | |
2007 | 33 | 123 | 440 | 60 | 117 | 26 | 1 | 15 | 190 | 68 | 1 | .266 | .366 | .432 | .798 | |
2008 | 34 | 144 | 538 | 79 | 156 | 28 | 2 | 25 | 263 | 92 | 3 | .290 | .382 | .489 | .871 | |
2009 | 35 | 126 | 448 | 62 | 125 | 21 | 0 | 23 | 215 | 80 | 2 | .279 | .374 | .480 | .854 | |
2010 | 36 | 79 | 238 | 28 | 56 | 5 | 1 | 11 | 96 | 35 | 3 | .235 | .311 | .403 | .714 | |
2011 | 37 | 88 | 266 | 26 | 82 | 16 | 0 | 12 | 134 | 36 | 0 | .308 | .383 | .504 | .887 | |
2012 | 38 | 65 | 136 | 10 | 30 | 2 | 0 | 4 | 44 | 13 | 1 | .221 | .354 | .324 | .677 | |
2013 | 39 | 9 | 10 | 0 | 2 | 0 | 0 | 0 | 2 | 1 | 0 | .200 | .200 | .200 | .400 | |
2014 | 40 | 33 | 27 | 0 | 3 | 1 | 0 | 0 | 4 | 4 | 0 | .111 | .242 | .148 | .391 | |
2015 | 41 | 9 | 15 | 0 | 1 | 0 | 0 | 0 | 1 | 1 | 0 | .067 | .125 | .067 | .192 | |
통산 | 1780 | 5964 | 972 | 1767 | 330 | 15 | 352 | 3183 | 1168 | 28 | .296 | .392 | .534 | .925 | ||
'''''굵게'''는 리그 1위; 2015년 1월 기준 통계''
6. 1. 첫 기록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1997년 5월 31일, 대 세이부 라이온스 9차전(후쿠오카 돔), 7번·1루수로 선발 출장
- 첫 안타·첫 타점: 동일, 4회말 이시이 다케히로로부터 중전 동점 적시타
- 첫 사구: 1997년 6월 18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14차전(도쿄 돔), 7회초 시바쿠사 히로시로부터
- 첫 홈런: 1998년 9월 5일, 대 세이부 라이온스 22차전(후쿠오카 돔), 3회말 니시구치 후미야로부터 우월 솔로
- 첫 도루: 1998년 9월 13일, 대 긴테쓰 버펄로스 27차전(후쿠오카 돔), 3회말 2루 도루 (투수: 아카호리 모토유키, 포수: 야마사키 테츠야)
6. 2. 기록 달성 경력
; 첫 기록- 첫 출장·첫 선발 출장 : 1997년 5월 31일, 대 세이부 라이온즈 9차전(후쿠오카 돔), 7번·1루수로서 선발 출장
- 첫 안타·첫 타점 : 상동, 4회말에 이시이 다케히로로부터 중전 동점 적시타
- 첫 사구 : 1997년 6월 18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14차전(도쿄 돔), 7회초에 시바쿠사 히로시로부터
- 첫 홈런 : 1998년 9월 5일, 대 세이부 라이온스 22차전(후쿠오카 돔), 3회말에 니시구치 후미야로부터 우월 솔로 홈런
- 첫 도루 : 1998년 9월 13일, 대 긴테쓰 버펄로스 27차전(후쿠오카 돔), 3회말에 2루 도루(투수 : 아카호리 모토유키, 포수 : 야마사키 데쓰야)
; 이정표 기록
- 통산 100홈런 : 2002년 5월 3일, 대 닛폰햄 파이터스 6차전(도쿄 돔), 5회초에 쇼다 이쓰키로부터 우중간 솔로 홈런 ※역대 219번째[2]
- 통산 150홈런 : 2003년 9월 27일, 대 오릭스 블루웨이브 27차전(Yahoo! BB스타디움), 5회초에 구보타 준으로부터 우월 솔로 홈런 ※역대 128번째
- 통산 200홈런 : 2005년 4월 17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6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 9회말에 와타나베 슌스케로부터 우월 솔로 홈런 ※역대 82번째
- 통산 1000안타 : 2005년 7월 30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12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 6회말에 단 세라피니로부터 좌중간 적시 2루타 ※역대 235번째
- 통산 1000경기 출장 : 2006년 4월 28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6차전(삿포로 돔), 4번·지명 타자로서 선발 출장 ※역대 410번째
- 통산 250홈런 : 2006년 5월 6일, 대 세이부 라이온스 7차전(인보이스 세이부 돔), 8회초에 야마기시 미노루로부터 우월 2점 홈런 ※역대 48번째
- 통산 300홈런 : 2008년 8월 29일, 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0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 3회말에 와쿠이 히데아키로부터 우월 2점 홈런 ※역대 34번째[11]
- 통산 1000타점 : 2009년 4월 3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1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 3회말에 고마쓰 사토시로부터 중월 2점 적시 2루타 ※역대 34번째
- 통산 100사구 : 2009년 4월 21일, 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4차전(도쿄 돔), 6회초에 스나가 히데키로부터 ※역대 11번째[13]
- 통산 1500안타 : 2009년 5월 6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6차전(교세라 돔 오사카), 6회초에 야마모토 쇼고로부터 중전 안타 ※역대 100번째
- 통산 300개의 2루타 : 2009년 8월 6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15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 1회말에 나루세 요시히사로부터 우익선상 2루타 ※역대 52번째
- 통산 1500경기 출장 : 2010년 3월 28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3차전(후쿠오카 Yahoo! JAPAN 돔), 5번·지명 타자로서 선발 출장 ※역대 168번째
- 통산 3000루타 : 2011년 4월 14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3차전(교세라 돔 오사카), 2회초에 알프레도 피가로로부터 중전 안타를 쳐서 달성 ※역대 48번째
- 통산 350홈런 : 2012년 5월 10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9차전(홋토못토 필드 고베), 9회초에 나카니시 겐타의 대타로 출장, 기시다 마모루로부터 중월 동점 2점 홈런 ※역대 27번째
; 기타 기록
- 3관왕 : 1회(2004년) ※'''헤이세이 시대 유일''', 역대 7번째
- 3년 연속 120타점(2003년 ~ 2005년) ※일본 프로 야구 기록
- 시즌 7개 부문(타율, 홈런, 타점, 안타, 출루율, 득점, 루타) 1위(2004년) ※역대 2번째
- 장타율 .715(2004년) ※퍼시픽 리그 좌타자 기록[107]
- 2004년에 기록한 118득점, 342루타, 82장타는 호크스의 연간 최다 기록, 시즌 장타율, OPS는 구단 최고 기록.
- 올스타전 출장 : 9회(1999년, 2000년, 2001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06년에도 감독 추천으로 출전 선수로 발탁되었지만 부상 때문에 출전을 포기했다.
6. 3. 기타
- 3년 연속 120타점(2003년 ~ 2005년)은 일본 프로 야구 기록이다.
- 2004년에는 타율, 홈런, 타점, 안타, 출루율, 득점, 루타 등 시즌 타격 7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역대 2번째 기록이다.
- 2004년에 기록한 118득점, 342루타, 82개의 장타는 호크스 구단 역사상 연간 최다 기록이며, 통산 타율은 구단 역대 1위이다.
- 장타율 .715 (2004년)는 퍼시픽 리그 좌타자 기록이다.[107]
=== 국제 대회 성적 ===
=== 첫 기록 ===
- 첫 출장·첫 선발 출장: 1997년 5월 31일,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9회전 (후쿠오카 돔), 7번·1루수로 선발 출장
- 첫 안타·첫 타점: 동일 경기, 4회말 이시이 다케히로로부터 중전 동점 적시타
- 첫 사구: 1997년 6월 18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14회전 (도쿄 돔), 7회초 시바쿠사 히로시로부터
- 첫 홈런: 1998년 9월 5일,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22회전 (후쿠오카 돔), 3회말 니시구치 후미야로부터 우월 솔로
- 첫 도루: 1998년 9월 13일, 킨테츠 버팔로즈와의 27회전 (후쿠오카 돔), 3회말 2루 도루 (투수: 아카호리 모토유키, 포수: 야마사키 테츠야)
=== 이정표 기록 ===
- 100홈런: 2002년 5월 3일, 니혼햄 파이터즈와의 6회전 (도쿄 돔), 5회초 쇼다 이쓰키로부터 우중간 솔로 ※역대 219번째
- 150홈런: 2003년 9월 27일, 오릭스 블루웨이브와의 27회전 (Yahoo!BB 스타디움), 5회초 쿠보타 쥰으로부터 우월 솔로 ※역대 128번째
- 200홈런: 2005년 4월 17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6회전 (후쿠오카 Yahoo!JAPAN 돔), 9회말 와타나베 슌스케로부터 우월 솔로 ※역대 82번째
- 1000안타: 2005년 7월 30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12회전 (후쿠오카 Yahoo!JAPAN 돔), 6회말 단 세라피니로부터 좌중간 적시 2루타 ※역대 235번째
- 1000경기 출장: 2006년 4월 28일, 홋카이도 니혼햄 파이터즈와의 6회전 (삿포로 돔), 4번·지명 타자로 선발 출장 ※역대 410번째
- 250홈런: 2006년 5월 6일,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7회전 (인보이스 SEIBU 돔), 8회초 야마기시 미노루로부터 우월 2점 홈런 ※역대 48번째
- 300홈런: 2008년 8월 29일,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20회전 (후쿠오카 Yahoo!JAPAN 돔), 3회말 와쿠이 히데아키로부터 우월 2점 홈런 ※역대 34번째
- 1000타점: 2009년 4월 3일,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1회전 (후쿠오카 Yahoo!JAPAN 돔), 3회말 고마츠 사토시로부터 중월 2점 적시 2루타 ※역대 34번째
- 100사구: 2009년 4월 21일, 홋카이도 니혼햄 파이터즈와의 4회전 (도쿄 돔), 6회초 스나가 히데키로부터 ※역대 11번째
- 1500안타: 2009년 5월 6일,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6회전 (교세라 돔 오사카), 6회초 야마모토 쇼고로부터 중전 안타 ※역대 100번째
- 300 2루타: 2009년 8월 6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15회전 (후쿠오카 Yahoo!JAPAN 돔), 1회말 나루세 요시히사로부터 우익선 2루타 ※역대 52번째
- 1500경기 출장: 2010년 3월 28일,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3회전 (후쿠오카 Yahoo!JAPAN 돔), 5번·지명 타자로 선발 출장 ※역대 168번째
- 3000루타: 2011년 4월 14일,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3회전 (교세라 돔 오사카), 2회초 알프레도 피가로로부터 중전 안타로 달성 ※역대 48번째
- 350홈런: 2012년 5월 10일,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9회전 (핫토못토 필드 고베), 9회초 나카니시 켄타의 대타로 출장, 기시다 마모루로부터 중월 동점 2점 홈런 ※역대 27번째
=== 기타 기록 ===
- 3관왕: 1회 (2004년) ※ 헤이세이 시대 유일, 역대 7번째
- 올스타전 출장: 9회 (1999년, 2000년, 2001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7년, 2008년, 2009년) ※ 2006년에도 감독 추천으로 선출되었으나 부상으로 불참.[108]
=== 은퇴 과정 ===
2015년 시즌 후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퇴단한 마쓰나카는 NPB(일본 프로 야구)의 다른 구단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자 자율 훈련에 매진했다. 하지만 2015년 11월 10일 구사나기 구장에서 열린 12개 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같은 해 12월 2일자로 NPB에서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62] 2016년 1월에는 소프트뱅크 시절 후반기와 마찬가지로 전 팀 동료인 마쓰다 노부히로, 후쿠다 슈헤이 등과 함께 괌에서 자율 훈련을 실시했다.[63]
마쓰나카는 처음에는 NPB 구단만을 대상으로 영입 제안을 기다렸으나[64], 2015년 내에 제안이 없자 2016년에 들어 방침을 바꾸었다. 2016년 2월 스프링 캠프 기간 중 NPB 11개 구단의 편성 담당자에게 직접 입단 테스트 실시를 타진하겠다고 밝혔다.[65]
이후 2016년 2월 말까지를 기한으로 정하고, 친정팀 신일본제철 기미쓰의 후신인 사회인 야구팀 신일본제철 가즈사 매직에서 훈련을 이어갔다. 물밑 접촉이 있었던 NPB 7개 구단 중, 자신과 같은 40대 선수가 전년 말 일제히 은퇴한 주니치 드래건스를 제외한 6개 구단에 입단 테스트를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같은 달 19일에는 친정팀 소프트뱅크와의 연습 경기를 앞둔 신일본제철 가즈사 매직 선수들과 함께 소프트뱅크의 미야자키 스프링 캠프에서 타격 훈련에 참가하기도 했다. 연습 경기에는 참가하지 않는 조건이었지만, 다른 NPB 구단 관계자들의 시선을 의식한 참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입 제안을 한 구단은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의 무사시 히트 베어스뿐이었고, 결국 마쓰나카는 설정한 기한을 계기로 현역 은퇴를 결심했다.[66][67] 2016년 3월 1일, 토탈 워크아웃 후쿠오카점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68]
7. 출신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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引退表明の松中にソフトバンク本多、福田から花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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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三冠王・松中さん、ハンドボールに熱 競技指導術学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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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ーシャンカップ 松中氏らが舟券バトル! 節間ユーチューブで生配信 バーチャルオープニング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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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2006년에는 감독 추천으로 선정되었지만, 부상 때문에 출전하지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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