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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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르타뉴반도는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반도로, 프랑스에서 가장 큰 반도이며, 영국 해협, 비스케이만과 접한다. 브르타뉴어, 갈로어 등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며, 카르나크 열석과 같은 거석 문화 유적과 중세 시대 건축물 등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한다. 1956년 브르타뉴 지방으로 재구성되었으나, 낭트를 포함한 루아르아틀랑티크는 제외되었다. 주요 산업은 어업, 농업, 식품 가공, 조선 등이며, 관광 산업도 발달했다. 렌, 브레스트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대중교통이 발달했으며, 축구, 사이클, 요트 등 스포츠도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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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반도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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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명칭 | |
프랑스어 | Bretagne |
브르타뉴어 | Breizh |
갈로어 | und |
영어 | Brittany, Little Britain |
로마자 표기 (프랑스어) | beureutanyu |
로마자 표기 (브르타뉴어) | beureijeu |
로마자 표기 (갈로어) | beoteoaeinyu |
기본 정보 | |
유형 | 역사적 지방 |
모토 | Kentoc'h mervel eget bezañ saotret (불명예스럽게 사느니 죽음을 택하겠다) |
국가 | 프랑스 |
주요 도시 | 낭트 렌 브레스트 생나제르 캥페르 로리앙 반 생말로 생브리외 라니옹 |
지리 | |
면적 | 34,023 제곱킬로미터 (13,136 제곱마일) |
인구 | |
2021년 | 4,829,968명 |
민족 | 브르타뉴인 |
행정 | |
시간대 | CET (UTC+1) |
서머타임 | CEST (UTC+2) |
ISO 3166-2 | FR-E |
상징 | |
![]() | |
국가 (비공식) | Bro Gozh ma Zadoù(우리 아버지의 땅) |
언어 | |
주요 언어 | 브르타뉴어, 프랑스어, 갈로어 |
2. 어원
프랑스어의 브르타뉴(Bretagne), 브르타뉴어의 브레이스(Breizh), 갈로어의 브르태이뉴(Bertaèyn)는 모두 라틴어 브리타니아에서 유래한 말이다.[172] 브리타니아는 기원전 320년경 브리튼 제도를 여행한 마르세이유 출신의 탐험가 피테아스가 이 지역을 Πρεττανικη (프레타니케) 또는 Βρεττανίαι (브레타니아이)라고 부른 것에서 연원한다.[172] 고대 로마 시기엔 주로 로마의 속주였던 그레이트브리튼섬 남부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브르타뉴반도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반도로, 대서양을 향해 북서쪽으로 뻗어 있다. 면적은 약 34,030 km2이다. 북쪽으로는 영국 해협, 남쪽으로는 비스케이만과 접하며, 서쪽 이롸즈해에는 웨상섬이 있다. 브르타뉴 해안은 곶과 만이 복잡하게 드나드는 형태이며, 모르비앙만은 자연적인 항만을 형성한다. 반도 주변에는 8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으며, 그 가운데 가장 큰 섬은 남부의 베이유일섬이다. 전체 해안선은 약 2,860 km에 달한다.[175]
구석기 시대부터 브르타뉴반도에는 사람이 살았다.[177] 브르타뉴에 살았던 가장 오래된 인류는 네안데르탈인으로, 이들의 인구 수는 그리 많지 않았으며 서유럽 전역에서 발견되는 네안데르탈인들과 유사한 문화를 지녔다. 다만, "콜롬바니안"이라 불리는 브르타뉴 네안데르탈인 특유의 문화도 존재했다.[177][22][109]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난로 중 하나가 플루에넥 (피니스테르주)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45만 년 전의 것이다.
로마인들은 오늘날의 영국과 구분하여 영국 해협 이남의 지역을 아르모리카라고 불렀는데,[172] 이 명칭은 골어로 "바다에 면한"을 의미하는 aremorica에서 파생된 것이다.[106]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많은 콘월인 브리튼족이 색슨족을 피해 서부 아르모리카에 정착하면서 이 지역은 ''Britannia''로 불리기 시작했고, 6세기 또는 5세기 말에는 ''Armorica''를 대체했다.[20] 중세 영국의 연대기 작가 몬머스의 제프리는 영국 지역을 브리타니카 메이저, 브르타뉴 지역을 브리타니카 마이너로 구분하기도 하였다.[174]
3. 지리
브르타뉴반도는 아르모니카 육괴 위에 있어 낮은 구릉이 많은 지형이다. 아르모니카 육괴는 브르타뉴, 노르망디, 페이드라루아르까지 뻗어 있다.[175] 브르타뉴와 노르망디 사이에는 몽생미셸섬으로 유명한 쿠에농강이 흘러 자연적인 경계를 이룬다.
브르타뉴반도는 온대 서안 해양성 기후에 속하며, 여름철 한낮 기온은 30 °C 정도이고 겨울에도 온화하다.[176]
해안 지역은 보통 ''아르모르'' 또는 ''아르보르''(브르타뉴어로 '바다 근처')라고 불리고, 내륙 지역은 ''아르고아트''(브르타뉴어로 '숲 근처')라고 불린다. 파팽 숲과 같은 숲이 남아있으며, 이 숲은 아서 왕 전설의 브로셀리앙드라고도 불린다. 척박하고 바위가 많은 지역은 황무지와 황야로 덮여 있으며, 브리에르와 같은 늪은 지역 자연 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몽 다르레와 이롸즈 해안을 포함하는 또 다른 지역 공원도 있다. 이롸즈 해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이기도 하다.
브르타뉴반도는 카도미안 조산운동 기간에 나타났으며, 갱강과 푸제르 사이에 북부 해안선이 형성되었다. 남부는 헤르키니아 조산운동 기간에 융기했고, 격렬한 화산 활동으로 대량의 화강암이 남았다. 카도미안기와 헤르키니아기 사이에 이 지역은 여러 번 침수되었고, 바다는 편암과 사암으로 구성된 화석과 퇴적암을 남겼다. 석회암이 없어 브르타뉴의 토양은 산성이다.
아모리칸 고원은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 형성 과정에서 여러 번 융기하고 평평해졌다. 해수면과 기후 변화는 침식을 유발하여 더 많은 퇴적암을 형성했다. 변성 작용은 그루아 섬의 풍부한 지하토를 만들었는데, 이는 남섬석과 녹렴석으로 구성된다.[48]
제4기 빙하기 동안 브르타뉴는 뢰스로 덮였고, 강은 계곡을 충적층으로 채웠다. 계곡은 아프리카 판과 유라시아 판 사이의 지각 활동 결과였다. 현재 브르타뉴 지형은 백만 년 전까지 최종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브르타뉴의 지하토는 대수층을 형성하는 균열로 특징지어진다.[48]
브르타뉴는 북온대 기후대에 위치하며, 콘월과 유사한 변덕스러운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비가 자주 내리지만 맑은 날도 흔하다. 여름철 기온은 30℃까지 올라가지만 쾌적하며, 여름과 겨울의 온도 차는 약 15도 정도지만, 바다와의 거리에 따라 다르다. 해안 지역은 내륙보다 온화하지만, 강수량은 두 지역 모두 동일하다. 아레 산맥은 고도가 낮음에도 강수량이 많다. 로리앙과 포르니크 사이의 남부 해안은 연간 2,000시간 이상 햇볕이 쨍쨍하다.[49]
브르타뉴의 야생동물은 프랑스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이며, 긴 해안선으로 인해 풍부한 해양 동물군을 보유하고, 일부 조류는 다른 프랑스 지역에서는 볼 수 없다. 내륙 종들은 프랑스에서 흔하며, 브르타뉴반도는 서쪽 끝에서는 동쪽 지역보다 종의 수가 적다.
가마우지, 갈매기, 바다쇠오리, 바다제비, 바다오리, 대서양바다오리 등 다양한 바닷새들이 해변 근처에서 관찰되며, 외딴 섬과 바위에서 번식한다. 내륙에는 꿩, 제비, 멧도요, 칼새, 회색 멧닭을 포함한 일반적인 유럽 종들이 서식한다.[50]
브르타뉴 해역에는 혹등상어, 회색물범, 장수거북, 돌고래, 상괭이, 해파리, 게, 바다가재를 포함한 해양 동물들이 서식한다. 농어는 해안을 따라 흔하며, 점박이 고양이상어는 대륙붕에, 쥐노래미와 아귀는 깊은 바다에 서식한다. 강물고기로는 송어, 대서양 연어, 강꼬치고기, 섀드, 칠성장어가 있다. 브르타뉴 강에는 유럽비버와 수달이 서식하며, 뉴트리아와 같은 침입성 미국 종도 서식한다.[51]
무척추동물 중 브르타뉴에는 특히 캥페르 달팽이, 담수진주조개, 흰발가락 가재가 서식한다.[52] 브르타뉴의 더 큰 포유류는 근대에 멸종되었으며, 늑대가 포함된다. 현재 포유류로는 노루, 멧돼지, 여우, 토끼 및 여러 종의 박쥐가 있다.[53]
브르타뉴는 현지 품종의 드래프트 말인 브르타뉴 말과 브르타니 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는 자체 품종의 소도 있으며, 브르토니 피 누아르, 프로몽 뒤 레옹, 아모리칸, 낭테즈가 있다.
브르타뉴 숲, 사구, 황야, 습지에는 고유한 시스투스, 국화, 꽃창포 품종, 말발굽살갈퀴 및 갯버들과 같은 상징적인 식물이 서식한다.[54]
4. 역사
호모 사피엔스는 약 3만 5천년 전에 브르타뉴반도에 나타났다.[177] 이들은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하거나 흡수했으며, 샤텔페롱 문화와 유사한 석기를 사용하였다. 최후 빙하기 이후, 더 따뜻해진 기후로 인해 이 지역은 울창한 숲이 우거지게 되었다. 그 당시 브르타뉴반도는 비교적 큰 공동체에 의해 인구가 증가했고, 수렵과 채집 생활에서 정착된 농부로 생활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기원전 5천년 동안 남쪽과 동쪽에서 온 이주민에 의해 농업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브르타뉴반도의 신석기 혁명은 급격한 인구 변화로 인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느린 이민과 기술 교환을 통해 일어났다.[23]
신석기 시대 브르타뉴반도는 카르낙 열석과 로크마리아케르 거석에 있는 에르 그라의 부러진 멘히르를 포함한 중요한 거석 건축 요소와 켈페넥과 같은 유적지로 특징지어지며, 때로는 거석 문화의 "핵심 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한다.[24] 가장 오래된 기념물인 고인돌에 이어 왕족의 무덤과 열석이 등장했다.
4. 1. 선사 시대
브르타뉴반도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177] 브르타뉴에 살았던 가장 오래된 인류는 네안데르탈인으로, 이들의 인구 수는 그리 많지 않았으며 서유럽 전역에서 발견되는 네안데르탈인들과 유사한 문화를 지녔다. 다만, "콜롬바니안"이라 불리는 브르타뉴 네안데르탈인 특유의 문화도 존재했다.[177][22][109]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난로 중 하나가 플루에넥 (피니스테르주)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45만 년 전의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약 3만 5천년 전에 브르타뉴반도에 나타났다.[177] 이들은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하거나 흡수했으며, 샤텔페롱 문화와 유사한 석기를 사용하였다. 최후 빙하기 이후, 더 따뜻해진 기후로 인해 이 지역은 울창한 숲이 우거지게 되었다. 그 당시 브르타뉴반도는 비교적 큰 공동체에 의해 인구가 증가했고, 수렵과 채집 생활에서 정착된 농부로 생활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기원전 5천년 동안 남쪽과 동쪽에서 온 이주민에 의해 농업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브르타뉴반도의 신석기 혁명은 급격한 인구 변화로 인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느린 이민과 기술 교환을 통해 일어났다.[23]
신석기 시대 브르타뉴반도는 카르낙 열석과 로크마리아케르 거석에 있는 에르 그라의 부러진 멘히르를 포함한 중요한 거석 건축 요소와 켈페넥과 같은 유적지로 특징지어지며, 때로는 거석 문화의 "핵심 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한다.[24] 가장 오래된 기념물인 고인돌에 이어 왕족의 무덤과 열석이 등장했다.
4. 2. 갈리아 시대
원사시대 브르타뉴반도에는 켈트족에 속하는 다섯 부족이 살았다.[178] 이들은 오늘날 도서 켈트어군에 속하는 브리튼 제도의 여러 켈트 부족들과 경제적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179]
선사 시대 동안 브르타뉴는 큐리오솔리테스(Curiosolitae), 남네테스(Namnetes), 오시스미이(Osismii), 레도네스(Redones), 베네티(Veneti)의 다섯 켈트 부족이 거주했다. 이 부족들은 주석 무역에서 도서 켈트족과 강한 경제적 유대를 맺었다. 또한, 여러 부족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언급한 "아모리카 연맹(confederation)"에 속해 있었다.[27]
브르타뉴 지역은 기원전 51년 무렵 로마 공화정의 일부로 편입되기 시작하였으며, 기원전 13년 무렵에는 로마의 속주 가운데 하나인 갈리아 루그두넨시스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켈트족의 도시들은 로마식으로 재건축되었다. 당시의 주요 도시로는 콘다테(렌), 보르지움(카라이-플로게), 다리오리툼(반), 콘데빈쿰(낭트)와 같은 도시들이 있다.[180] 로마 지배하의 브르타뉴 인구 대다수는 농촌에 거주하며, 갈리아의 신들을 계속 숭배했고, 종종 로마의 신들과 동화되었다.[114]
3세기에 들어 브르타뉴는 프랑크족, 알레만니와 같은 게르만족들과 여러 해적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지역 경제는 붕괴되고 렌, 낭트, 반과 같은 도시들은 버려지게 되었다.[180][114]
4. 3. 브리튼인 이주
4세기 말 오늘날의 웨일스와 영국 남서 반도에 살던 브리튼인들이 아르모리카로 이주해 왔다.[181] 연원은 불확실하지만, 이주해온 브리튼인과 앙주 지역 유력자들은 코난 메리아독을 중심으로 결집하였다. 중세 브르타뉴, 앙주, 웨일스 자료는 코난 메리아도크라는 인물과 연결 짓는다. 웨일스 문헌에 따르면 코난은 로마의 찬탈자 마그누스 막시무스의 명령에 따라 아르모리카로 왔으며, 그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브리튼 군대를 갈리아로 파견하여 아르모리카에 정착시켰다. 앙주 백작들은 마그누스의 명령에 따라 코난에게 하부 브르타뉴에서 추방된 로마 군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5세기 말 브리튼계 지도자 리오타무스는 로마 법학자 시도니우스 아폴리나리스로부터 서신을 받았으며, 요르다네스에 의해 "브리튼인의 왕"으로 불렸다. 일부는 그가 브르타뉴인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가 브리튼 출신이라고 믿으며, 그가 비투르게스 땅에 "대양을 통해" 도착했다는 구절을 지적하는데, 이는 브르타뉴인에게는 효율적이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두 역사가 모두 리오타무스가 470년경 데올에서 서고트족의 왕 에우리크와 벌인 전투에서 패배한 것을 묘사한다.
로마 황제 안테미우스의 간청에 따라 리오타무스는 1만 2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중앙 갈리아의 부르주에 군사적 주둔지를 구축했지만, 갈리아의 아르반두스 행정장관의 배신을 받아 에우리크의 군대에 기습당했다. 오랜 전투 끝에 아모리카 생존자들은 부르고뉴의 아발론으로 탈출했고, 그 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브르타뉴 왕 목록에 따르면 리오타무스는 살아남아 500년에서 520년 사이에 도므노니아의 왕자로 통치했지만, 이는 다른 인물일 수도 있다.
5세기와 6세기에 걸친 앵글로-색슨의 영국 도래는 브리튼 지역에 살던 켈트 부족들을 압박하였고, 상당수의 브리튼인들은 브르타뉴를 비롯한 영국해협 남쪽 지역으로 이주하였다.[181] 이 때문에 브르타뉴어는 기록된 콘월어와 더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레옹 플뢰리오와 같은 학자들은 브리튼에서 두 차례의 이주 모델을 제시했는데, 이 모델은 독립적인 브르타뉴인들이 등장하고 아르모리카에서 브리튼어인 브르타뉴어가 지배하게 되었다고 보았다.[32] 그들의 소왕국들은 현재 그들을 계승한 군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 돔노네 (데번), 코르누아이유 (콘월), 레옹 (카에르레온).[31] 그러나 브르타뉴어와 라틴어로 된 이 이름들은 대부분의 경우 브리튼 본토와 동일하다. 세부 사항은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이러한 식민지는 켈트족 상속 관행에 따라 다시 분열되기 전에 반복적으로 통일(7세기 생 쥐디카엘에 의해)된 관련되고 상호 결혼한 왕조로 구성되었다.
840년 무렵 브르타뉴의 노미외는 브르타뉴 공국의 첫 번째 공작이 되었고 프랑크 왕국의 신하가 되었다.[182] 이주한 브리튼인들 사이에서, 특히 농촌 지역에 이교 숭배가 남아있는 브르타뉴에서 복음 전도를 돕는 성직자들이 나타났다.
4. 4. 중세
중세 시기 브르타뉴반도는 브르타뉴 공국의 영지였다. 브르타뉴 공국은 형식상 프랑스의 신하이자 영토였으나, 실제로는 독립적인 자치를 행사하였다.[183] 851년 젱랑 전투를 통해 프랑스에서 독립하여 브르타뉴 왕국이 되기도 하였으나, 942년 루이 4세에게 항복하고 다시 공국이 되었다.
중세 초 브르타뉴는 돔노네 왕국, 코르누아이유 왕국, 브로에레크 왕국의 세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다.[117][118] 9세기에 이 왕국들은 통일되었는데,[33][34] 845년부터 851년까지 재위한 노미노에가 브르타뉴 통합을 이끌었으며, 그는 브르타뉴인들에게 Pater Patriae(국부)로 여겨진다.[35] 그의 아들 에리스포에는 샤를 대머리왕을 쟁글랑 전투에서 물리치고 브르타뉴 왕국의 독립을 확립했다. 867년의 또 다른 전투에서도 브르타뉴가 승리하여 왕국의 영토는 노르망디 일부, 메느, 앙주 그리고 채널 제도를 차지할 정도로 최대로 확장되었다.
10세기 초, 브르타뉴는 바이킹의 공격을 받았다. 왕국은 동쪽 영토인 노르망디와 앙주를 잃었고, 909년에는 낭트 백작령이 앙주 백작 풀크 1세에게 넘어갔다. 914년 낭트가 바이킹에게 점령당했으나, 937년 알랭 2세가 낭트를 해방하고 바이킹을 완전히 몰아내면서 강력한 브르타뉴 국가를 재건했다. 이후 알랭 2세는 프랑스의 루이 4세에게 신종의 맹세를 하여 브르타뉴는 왕국에서 공국으로 바뀌었다.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침공할 당시 브르타뉴 공국은 노르망디의 동맹군으로 참전하였으며,[185] 몇몇 브르타뉴 영주들은 잉글랜드에서 광대한 영지를 받기도 했다. 중세 브르타뉴는 통일된 국가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프랑스 왕은 브르타뉴에 사절을 유지했고, 브르타뉴 영주들은 종종 중복된 동맹을 맺었다. 브르타뉴는 13세기에 라틴어를 대신해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는데, 이는 프랑스 왕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브르타뉴어는 공식적인 지위를 갖지 못했다. 공작들은 독립적이었지만, 때에 따라 잉글랜드나 프랑스와 동맹을 맺으며 외교 정책을 변경했다.
[[File:Battle_of_La_Roche-Derrien.jpg|섬네일|아 로크데리앙 전투 당시의 모습 ( 브르타뉴 왕위 계승 전쟁 )]
백년전쟁의 여파로 전쟁이 일어났다.[186] 잉글랜드의 후원을 받은 몽포르 가와 프랑스 국왕의 후원을 받은 블루아 가(샤티용 가문) 사이의 전쟁에서 몽포르 가문이 1364년에 승리하였고, 장 4세가 브르타뉴 공작으로 인정받아, 백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브르타뉴 공국은 완전한 독립을 누렸다.
장 5세, 프랑수아 1세, 피에르 2세 치세 동안 브르타뉴는 프랑스와 협조하며 독립을 유지했다. 아르튀르 3세는 프랑스 왕국의 대원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수아 2세 대에 루이 11세 및 샤를 8세와 충돌했고, 1488년 광란의 전쟁(또는 도화 전쟁)에서 브르타뉴군은 패배했다. 이 패배에는 일부 브르타뉴 영주가 프랑스 편에 선 내부 분열이 원인이었다.[188]
4. 5. 프랑스 합병
광기 전쟁 이후, 브르타뉴 공작 프랑수아 2세는 프랑스 국왕의 허락 없이는 자신의 딸 안을 결혼시킬 수 없었다.[189] 그럼에도 안은 1490년 신성 로마 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하였다. 프랑스 국왕 샤를 8세는 랭을 포위하고 결혼을 취소시킨 후 안과 결혼하였다.[37] 샤를 8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안은 그의 사촌이자 후계자인 루이 12세와 결혼해야 했다.
안은 브르타뉴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1514년에 사망했다. 안과 루이 12세 사이의 두 딸 중 장녀인 클로드는 발루아 가의 프랑수아와 결혼하였다. 1532년 프랑수아 1세는 브르타뉴와 프랑스의 동군연합을 선포하고, 브르타뉴에 소금세 면제 등의 특혜를 부여하였다.[37][119] 앙시앵 레짐 시기 프랑스 국왕은 브르타뉴 공작을 겸했지만, 브르타뉴는 독자적인 자치권을 유지했으며, 브르타뉴 귀족들은 프랑스 궁정 내에서 프린스 에트랑제(Prince étranger, 외국의 귀족) 신분을 지녔다.[189]
근세 프랑스 시기 브르타뉴는 프랑스 해양 무역로의 주요 거점으로서 경제적 전성기를 맞았다. 브레스트와 생브리외 같은 항구가 빠르게 확장되었고, 로리앙이 설립되었다. 생말로는 프랑스 사략선으로 유명했고, 브레스트는 프랑스 해군의 주요 기지였으며, 낭트는 대서양 노예 무역으로 번성했다. 내륙에서는 대마 로프와 캔버스, 린넨 시트 등을 제공했다. 그러나 콜베르주의는 브르타뉴 산업을 선호하지 않았고, 여러 갈등으로 인해 영국이 무역을 억제하면서 18세기 브르타뉴 경제는 불황에 빠졌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종이 인지세 반란(1675년)과 퐁칼렉 음모(1719년) 등 중앙 집권에 저항하고 세금에 대한 브르타뉴의 헌법상 예외를 주장하려는 반란이 일어났다.[38][120]
4. 6. 1789년 이후
1789년 프랑스 혁명의 결과 브르타뉴 공국은 해체되고 브르타뉴는 코트다르모르, 피니스테르, 일-에-빌렌, 루아르아틀랑티크, 모르비앙의 다섯 개 데파르트망으로 분리되었으며, 앙시앵 레짐 시기에 주어졌던 염세 면제 혜택 역시 철회되었다.[190] 혁명 후 3년이 지나자 브르타뉴는 왕당파와 가톨릭 세력의 반혁명 거점이 되었고, 이는 슈앙느리 기간 동안 일어났다. 브르타뉴의 반혁명 활동은 18세기 말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191]
19세기에 들어 브르타뉴는 무역 거점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었고 많은 수의 주민들이 프랑스 내의 다른 레지옹으로 이주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20세기 초까지 강세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새로운 도로와 철도가 건설되고 일부 지역이 산업화되면서 근대화되기도 했다. 낭트는 조선업과 식품 가공업(설탕, 이국적인 과일 및 채소, 생선 등)에 특화되었고, 푸제르는 유리와 신발 생산에, 샤토브리앙과 로크리스트와 같은 작은 마을에서는 야금이 행해졌으며, 이 지역은 노동 운동으로 유명했다.
프랑스 제2제정 시대 동안 브르타뉴 지역은 깊이 가톨릭 신앙을 유지했고 보수적인 가치가 강력하게 재확인되었다. 1871년 공화국이 재건되었을 때, 브르타뉴 군인들이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중 콩리 캠프에서 공화국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불신과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40]
19세기 동안 브르타뉴어는 주로 프랑스화 정책으로 인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제3 공화국에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브르타뉴어를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그렇게 하면 교사로부터 처벌을 받았다. 학교의 표지판에는 "브르타뉴어를 사용하고 바닥에 침을 뱉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Il est interdit de parler Breton et de cracher par terre")라고 적혀 있었다.[41]
동시에 켈트 부흥은 브르타뉴 지역주의 연합 (URB)의 창설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영국 내 아일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및 콘월 독립 정당과 범켈트주의와 연결된 독립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의 청중은 매우 적었고, 그들의 아이디어는 20세기까지 대중에게 널리 퍼지지 않았다. 1923년에 창설된 세즈 브뢰르 운동은 브르타뉴 예술의 부흥을 허용했지만[42],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즘과의 연관성과 브르타뉴 국민당의 협력주의는 전후 브르타뉴 민족주의를 약화시켰다.
브르타뉴는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24만 명의 남성을 잃었다.[43] 제2차 세계 대전 또한 이 지역에 재앙이었다. 1940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되었고 1944년 8월 코브라 작전 이후 해방되었다. 그러나 생나제르와 로리앙 주변 지역은 독일의 항복 며칠 후인 1945년 5월 10일과 11일에 항복했다. 두 항구 도시는 브레스트, 생말로와 마찬가지로 연합군의 공습으로 사실상 파괴되었고, 낭트와 렌과 같은 다른 도시들도 피해를 입었다.
1956년 브르타뉴는 법적으로 브르타뉴 지방으로 재구성되었지만, 이 지역은 공작 수도인 낭트와 그 주변 지역인 루아르아틀랑티크를 제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르타뉴는 문화적 독자성을 유지했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새로운 문화 부흥이 나타났다. 이중 언어 학교가 개설되었고, 가수들은 브르타뉴어로 노래를 쓰기 시작했으며, 아모코 카디즈 원유 유출 사고나 에리카 원유 유출 사고와 같은 생태 재앙과 집중적인 돼지 사육으로 인한 수질 오염은 자연 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운동을 선호했다.
5. 인구
2012년 조사를 기준으로 브르타뉴 전체의 인구는 319만 5,317명이다. 근대 이전에는 브르타뉴에 속하였던 루아르아틀랑티크주의 인구는 130만 3,103명으로, 이 둘을 합하여 전통적으로 브르타뉴로 불리는 지역의 인구는 총 4,552,918 명이 된다.[192][193] 2017년에는 역사상 최대 인구인 4,713,813명으로 추산되었다.[67]
브르타뉴의 데파르트망 별 인구는 2008년 조사 당시 일에빌렌주 967,588 명, 모르비앙주 710,034 명, 피니스테르주 890,509 명, 코트다르모르주 581,570 명 이었다. 도시화로 인구 집중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대부분 지역은 적은 인구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194] 렌은 206,655명, 브레스트 142,097 명, 캥페르 63,929 명, 로리앙 58,148 명, 반 52,983 명, 생말로 48,211 명, 생브리외 45,879 명 등이다.[194] 1990년대 이후 렌은 프랑스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수도권 중 하나이다.
브르타뉴의 외국 출신 거주자는 전체 인구의 2% 정도로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고, 그 외에 옛 식민지였던 모로코, 알제리, 베트남, 코트디부아르, 세네갈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있으며 일부 터키 출신도 살고 있다.[195]
브르타뉴 주민들은 문화적 정체성이 뚜렷하다. 2008년 조사에서 브르타뉴 주민 가운데 50%는 자신을 프랑스인이자 브르타뉴인이라고 여겼고, 22.5%는 프랑스인 보다는 브르타뉴인의 정체성이 강하다고 여겼으며, 15.4%가 자신을 브르타뉴인이기 보다는 프랑스인이라 여겼다. 1.5%는 자신을 프랑스인이 아닌 브르타뉴인이라고 여겼고, 9.3%는 어느쪽도 속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정치적으로는 51.9%가 브르타뉴가 좀더 정치 권력을 획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31.1%는 현 상태면 족하다고 응답했으며, 단지 4.6%만이 분리 독립을 지지하였다.[196] 2012년 조사에서는 젊은층에서 브르타뉴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할수록 좌익 계열의 정당을 지지하는 성향을 보였다.[197]
6. 언어
프랑스의 유일한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며, 오늘날 브르타뉴에서는 누구나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브르타뉴인이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198] 그러나 19세기 이전에는 프랑스어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고, 브르타뉴에는 브르타뉴어와 갈로어라는 두 지역어가 존재했다.[198] 이 두 언어는 마치 스코틀랜드 게일어와 스코트어의 차이와 같이 서로 다른 어파에 속해있다.[198] 브르타뉴어가 켈트어파에 속하는 것에 반해 갈로어는 오일어에 속한다.[198] 2004년 브르타뉴 지역 의회는 브르타뉴어와 갈로어 둘 모두를 지역의 공용어로 지정하였다.[198]
두 언어는 언어의 경계선으로 구분되며, 그 경계는 중세 이후 끊임없이 뒤로 밀려났다. 실제 경계는 영국 해협의 풀루아에서 비스케이 만의 뤼이 반도까지 뻗어 있다.
19세기 이래 프랑스 중앙정부는 강력한 표준어 사용 정책을 시행하였고, 이때문에 브르타뉴어, 갈로어, 코르시카어, 프로방스어와 같은 지역어의 사용은 감소하였다.[199] 프랑스 혁명이후 정치가들은 민족주의에 기대어 국가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자 하였고, 프랑스 각지의 지역어는 이러한 통합의 방해물로 여겨졌다.[199] 동화정책을 추진한 정치가들은 브르타뉴어를 미신적이고 야만적인 언어라고 폄훼하였고[200] 20세기 초까지도 브르타뉴 공공건물엔 "침뱉기와 브르타뉴어 사용 금지"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201]
브르타뉴어는 콘월어, 웨일스어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켈트어이다.[155] 1950년경에는 브르타뉴어 사용자가 100만 명 이상이었지만, 21세기 첫 10년 동안 약 20만 명으로 화자 수가 감소했고, 화자의 61%가 60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브르타뉴어는 유네스코의 위기 언어 레드 북(en)에 의해 "심각한 절멸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이중 언어 교육 학급에 재적하는 아동 수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전체의 33%, 14,709명에 달했다[155][156]。
갈로어는 브르타뉴의 동쪽 절반에서 사용된다. 로망스어 계통인 오일어에 속하며, 특히 어휘에서 켈트어의 영향을 일부 찾아볼 수 있다. 브르타뉴어와는 달리, 갈로어는 장려되어 온 오랜 역사가 없다. 지금도 가난한 농촌의 언어로 인식되고 있다. 게다가 갈로어와의 유사성 때문에 프랑스어는 브르타뉴어 지역보다 오트브르타뉴에서 주요 언어로서 더 쉽게 지위를 구축했다. 갈로어는 방언이나 언어라기보다는, 구어체 프랑스어가 잘못 사용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갈로어가 계승되는 경우는 더욱 드물며, 표준어화 노력이 진행되고 갈로어 서적이 출판되고 있지만, 언어의 쇠퇴와 위신의 부족을 막을 수 없었다[157]。 갈로어 화자 공동체는 대략 28,300명에서 20만 명 사이로 추산된다.[157][158]
7. 문화
브르타뉴반도는 선사 시대 거석 문화 유적이 많은 곳으로, 고인돌을 뜻하는 'dolmen'이나 선돌을 뜻하는 'menhir'와 같은 말은 브르타뉴어에서 비롯되었다.[206] 카르나크 열석은 브르타뉴에 있는 거대한 거석 유적이다.
중세 시대 건축물도 많이 남아있는데, 로마네스크 양식이나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들은 주로 이 지역에서 나는 사암이나 화강암으로 지어졌다. 게랑드, 콩카르뉴, 생말로, 반, 푸제르, 디낭과 같은 도시는 아직도 중세 시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206] 주요 교회로는 생폴드레옹 대성당, 트레기에 대성당, 돌 대성당, 낭트 대성당, 크라이스케르 예배당 등이 있다. 브르타뉴의 성 대부분은 13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재건되었는데, 쉬시니오 성, 디낭 성, 콩부르 성, 라르고에 성, 통케데크 성, 조슬랭 성, 트레세송 성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와의 경계선을 따라 푸제르 성, 비트레 성, 샤토브리앙 성, 클리송 성과 같은 인상적인 성들을 볼 수 있다.
프랑스 르네상스는 브르타뉴가 독립을 잃었을 때 일어났기 때문에, 르네상스 건축은 이 지역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프랑스와의 경계선 근처인 상부 브르타뉴에서는 예외적으로 르네상스 건축을 볼 수 있다. 주요 유적지로는 공작의 마지막 영구 거주지인 브르타뉴 공작 성이 있으며, 고딕 후기에서 르네상스 양식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이전 요새였던 샤토브리앙 성은 이탈리아 양식의 거대한 궁전으로 변모했다. 하부 브르타뉴에서는 중세 양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지역 혁신으로 일부 변화가 가능해졌고 특정 스타일이 탄생했다. 가장 독특한 특징은 교구 경계로, 완전히 담으로 둘러싸인 교회 마당으로 둘러싸인 정교하게 장식된 교회를 보여준다.
17세기와 18세기 동안, 주요 항구와 도시는 바로크 및 신고전주의 건축 건물이 있는 전형적인 프랑스 모습을 갖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 최대 항구였던 낭트는 극장, 넓은 대로와 부두를 갖게 되었고, 렌은 1720년 화재 이후 재설계되었다. 같은 시대에 생말로의 부유한 선주들은 도시 주변에 "말로이니에르"라고 불리는 많은 저택을 지었다. 해안을 따라 보방과 다른 프랑스 건축가들은 르 팔레와 포르 루이와 같은 여러 요새를 설계했다. 농촌 지역에서는 브르타뉴 가옥이 단층과 롱하우스 패턴으로 단순하게 유지되었으며, 현지 재료(주로 하부 브르타뉴의 화강암과 상부 브르타뉴의 편암)로 지어졌다. 일반적으로 지붕에는 슬레이트와 초가가 사용되었다. 19세기 동안 브르타뉴 건축은 주로 고딕 리바이벌과 절충주의로 특징지어졌으며, 브르타뉴 최남단 도시인 클리송은 1820년경 이탈리아 낭만주의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브르타뉴 등대는 주로 19세기에 건설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곳은 아르 멘, 에크뮐 등대, 라 비에유, 라 주망이다. 일 비에르주의 등대는 77미터로 유럽에서 가장 높다.
19세기 말에는 해안을 따라 여러 해변 리조트가 조성되었고, 역사주의 (예술), 아르누보, 그리고 나중에는 아르데코 양식의 빌라와 호텔이 건설되었다. 이러한 건축물은 특히 디나르, 라 볼 및 베노데에 많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파괴된 후 재건된 세 도시인 생나제르, 브레스트, 로리앙과 자메 부이에와 올리에 모르드렐과 같은 브르타뉴 민족주의 건축가의 작품에서 20세기 건축을 볼 수 있다.
19세기까지 가톨릭교는 브르타뉴 예술가들에게 주요 영감을 제공했다. 이 지역에는 17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제작된 많은 수의 바로크 제단화가 있다. 또한, 브르타뉴 조각가들은 서원으로 사용된 배 모형과 소박한 브르타뉴 인물과 전통적인 패턴을 특징으로 하는 풍부하게 장식된 가구로 유명했다. 상자 침대는 가장 유명한 브르타뉴 가구이다. 브르타뉴 양식은 1900년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에 강력하게 부활했으며 세이즈 브뢰르 운동에 의해 사용되었다. 세이즈 브뢰르 예술가들은 프랑스 기준을 거부하고 전통적인 기술과 새로운 재료를 혼합하여 현대 브르타뉴 예술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이 시대의 주요 예술가로는 디자이너 르네-이브 크레스톤, 일러스트레이터 잔 말리벨과 자비에 하스, 조각가 라피그 툴루, 프란시스 르노, 조르주 로뱅, 조셉 사비나, 쥘-샤를 르 보제크 및 장 프레우르가 있다.
브르타뉴는 또한 수많은 머리 장식 모델에서 볼 수 있는 바늘뜨기와 18세기 초에 시작된 파이앙스 생산으로도 유명하다. 캥페르 파이앙스는 손으로 그린 그릇과 접시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포르니크와 같은 다른 도시들도 이와 유사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도자기에는 일반적으로 전통 의상을 입은 소박한 브르타뉴 인물과 일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디자인은 강력한 전통적인 브르타뉴 영향을 받지만 오리엔탈리즘과 아르 데코도 사용되었다.
독특한 문화와 자연 경관으로 인해 브르타뉴는 19세기부터 많은 프랑스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850년대에 등장하여 20세기 초까지 지속된 퐁타방파는 현대 회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퐁타방에 정착한 예술가들은 의 아카데미즘과 나중에 쇠퇴하기 시작한 인상주의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그들 중에는 폴 고갱, 폴 시냐크, 마르크 샤갈, 폴 세뤼지에 및 레몽 윈츠가 있었다. 그 이전에는 브르타뉴를 장 앙투안 테오도르 드 구댕과 쥘 아킬 노엘과 같은 아카데믹 및 낭만주의 화가들이 방문하여 극적인 풍경과 폭풍을 찾았다.
1970년대에 이르러 브르타뉴의 전통 민요가 다시 조명되면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206] 백파이프, 켈트 하프와 같은 악기의 연주와 함께 노래하는 켈트 음악은 유럽의 근대 음악과는 다른 독특함이 묻어난다. 1999년 8월 브르타뉴의 로리앙에서 켈트 페스티벌이 열렸다.[206] 1970년대 초부터 브르타뉴는 민속 음악의 엄청난 부흥을 경험했다. 수많은 축제와 소규모의 ''페스트노즈''(대중적인 축제)가 생겨났다. 백파이프, 봄바드, 드럼(스네어 드럼 포함)으로 구성된 밴드인 ''바가드'' 또한 스코틀랜드 파이프 밴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현대적인 창작물이다. 가장 잘 알려진 바가드 중 하나인 Lann-Bihoué는 프랑스 해군 소속이다. 켈트 하프도 흔하며, 보컬과 춤도 흔하다. 칸 아 디스칸은 가장 일반적인 유형의 노래이다. 공연자들은 춤을 추면서 응답과 호출을 노래한다. 브르타뉴 춤은 일반적으로 원, 사슬 또는 커플을 포함하며, 각 지역마다 다르다.
1960년대에 몇몇 브르타뉴 예술가들은 현대적인 패턴을 사용하여 브르타뉴 팝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중 앨런 스티벨은 켈트 하프와 브르타뉴 음악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그는 또한 미국 록을 자신의 작품에 사용했으며, 전통 노래를 부활시키고 프랑스 전역에서 인기를 얻은 코르노그, 및 트리 얀과 같은 1970년대 브르타뉴 밴드에 영향을 미쳤다. 솔다 루이는 주요 브르타뉴 록 밴드이고, 브르타뉴 가수에는 질 세르바, 글렌모르, 단 아르 브라, 얀-파흐 케메네르, 데네 프리지엔, 놀웬 코르벨 및 놀웬 르루아가 있다. 파리 출신의 마노 힙합 그룹은 강한 브르타뉴 및 켈트 영감을 가지고 있다. 브레스트 출신의 유명한 그룹 마타타도 찾을 수 있다.
아멜리에의 사운드트랙을 작곡한 얀 티에르센, 아리에티의 작곡가 세실 코르벨, 일렉트로 밴드 옐, 아방가르드 가수 브리지트 퐁텐도 브르타뉴 출신이다. 19세기의 작곡가 루이-알베르 부르골-두쿠드레는 현재 월드 뮤직으로 알려진 음악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서유럽 작곡가 중 한 명이었다.
브르타뉴는 브리튼의 문제 및 아서 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스에 따르면, 브로셀리앙드는 브르타뉴에 위치해 있으며, 오늘날에는 팽퐁 숲으로 여겨진다. 그곳에는 호수로 둘러싸인 성의 폐허가 호수의 여인과 연관되어 있으며, 돌멘은 멀린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며, 길은 모르간 르 페이의 발 상 르투르로 제시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또한 브르타뉴에서 살았다고 한다. 또 다른 주요 브르타뉴 전설은 바다에 잠긴 도시 이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19세기 이전의 브르타뉴 문학은 대부분 구전되었다. 중세 시인들이 이어온 구전 전통은 15세기에 쇠퇴했으며, 1850년 이전에는 브르타뉴어로 된 책이 매우 드물었다. 그 시기에 지역 작가들이 지역 이야기와 전설을 수집하고 출판하기 시작했으며, 독창적인 작품을 썼다. 1925년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에 출판된 문학 저널 괄라른은 현대 브르타뉴 문학을 선호했으며, 널리 알려진 소설을 브르타뉴어로 번역하는 데 기여했다. 전쟁 이후, 저널 ''알 리암''이 그 사명을 이어갔다. 브르타뉴어로 글을 쓴 작가로는 낭만파 시인 오귀스트 브리즈 , 네오드루이드 바드 에르완 베르투 , 테오도르 에르사르 드 라 빌마르케, 그는 아서 왕에 대한 지역 전설을 수집했으며, 로파르 헤몬, 괄라른의 창시자, 페르-자크 엘리아스, 글렌모르, 페르 데네즈 및 메아벤 등이 있다.
브르타뉴 문학에는 에밀 수베스트르의 19세기 역사 소설, 아나톨 르 브라즈의 여행 일지, 샤를르 르 고피크의 시와 소설, 싱어송라이터 테오도르 보트렐과 해양 작가 앙리 케펠렉의 작품이 포함된다. 브르타뉴는 또한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 쥘 베른, 에르네스트 르낭, 펠리시테 로베르 드 라메네, 피에르 아벨라르, 막스 자코브, 알프레드 자리, 빅토르 세갈렌, 자비에 그랄, 장 루오, 이렌 프랭, 에르브 자우앙,[83] 알랭 로브-그리예, 피에르-자케 엘리아스, 트리스탄 코르비에르, 폴 페발, 장 게엔노, 아르튀르 베르네드, 앙드레 브르통, 패트릭 푸아브르 다르보르 와 같은 많은 작가의 출생지이다.
브르타뉴 박물관은 렌(Rennes)에 위치하고 있으며 1856년에 설립되었다. 이 박물관의 소장품은 주로 지역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선사 시대와 지역의 거석 기념물에 관한 박물관은 카르낙(Carnac)과 팽마르슈(Penmarch)에 위치해 있으며, 반(Vannes)과 낭트(Nantes)와 같은 여러 도시들은 자체 역사를 소개하는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
렌 미술관은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시대의 많은 고대 유물과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파르미지아니노, 알브레히트 뒤러, 렘브란트의 드로잉과 판화를 소장하고 있다. 프랑스 미술품 컬렉션에는 조르주 드 라 투르, 프랑수아 부셰, 폴 고갱, 오귀스트 로댕, 카미유 코로, 로베르 들로네의 작품이 있다. 또한 파블로 피카소, 루벤스, 피터 릴리, 파올로 베로네세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 낭트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de Nantes)의 소장품은 현대 미술에 더 중점을 두고 있으며, 에드워드 번 존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외젠 드라크루아, 귀스타브 쿠르베, 폴 시냐크, 타마라 드 렘피카, 바실리 칸딘스키, 막스 에른스트, 피에르 술라주, 피에로 만초니의 작품을 포함한다. 브레스트(Brest)와 캥페르(Quimper)의 미술관은 프랑스 회화 작품과 이탈리아 및 네덜란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비슷한 컬렉션을 제공한다. 퐁타방 미술관은 퐁타방파에 헌정되었다. 현대 조각품은 비냥(Bignan)에 있는 케르게네넥 성 주변 공원에서 볼 수 있다.
생말로(Saint-Malo), 로리앙(Lorient), 두아르네네(Douarnenez)의 박물관은 선박, 해양 전통 및 역사에 헌정되었다. 해군 국립 박물관(Musée national de la Marine)은 브레스트에 큰 부속 건물을 가지고 있으며, 로리앙에는 잠수함이 일반에 공개되어 있다. 같은 도시에서는 케로망 잠수함 박물관과 항해에 헌정된 박물관인 ''에릭 타바르(Éric Tabarly) 항해 도시''(Cité de la voile)를 방문할 수도 있다. 생나제르(Saint-Nazaire)는 호와 호를 포함한 많은 대양 정기선이 건조된 곳으로, 제2차 세계 대전 기지에 대서양 횡단 인테리어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설치되었다. 낭트에는 쥘 베른 박물관과 낭트 자연사 박물관, 도브레 박물관이라는 고고학 및 디자인 박물관이 있다.
브르타뉴 반도는 활기찬 축제와 행사 일정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생말로의 라 루트 뒤 록, 카레의 비에이 샤르뤼, 렌의 트랑스 뮤지컬 만남, 크로종의 페스티벌 뒤 부 뒤 몽드, 클리송의 헬페스트, 브레스트의 아스트로폴리스, 또는 랑데르노와 생놀프의 라 페트 뒤 브뤼와 같은 프랑스 최대 규모의 현대 음악 축제가 열린다. 로리앙 켈트 축제는 매년 모든 켈트족 국가와 그 디아스포라의 참가자들을 환영한다. 낭트의 라 폴르 주르네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클래식 음악 축제이다.
브르타뉴 문화는 생 이브의 날(5월 19일)을 전후하여 여러 곳에서 열리는 ''브르타뉴 축제''와 캥페르에서 열리는 코르누아유 축제 기간에 강조된다. 몇몇 도시에서는 또한 역사 재현과 콩카르노의 피셔리를 기념하는 파일레 블루와 같은 지역 전통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한다.
브르타뉴는 또한 낭트의 세 대륙 영화제와 같은 몇몇 영화제도 개최한다. 유토피알 국제 SF 축제가 같은 도시에서 열린다. 브레스트와 두아르느네는 모두 대규모 범선 모임을 개최한다(브레스트 해양 축제 참조).
브르타뉴반도에서 축구, 사이클, 요트는 세 가지 인기 스포츠이다. 주요 축구팀으로는 FC 낭트, 스타드 렌 FC, FC 로리앙, 스타드 브레스투아 29, 반 OC, 앙 방 드 갱강이 있다. 이 지역 출신의 프로 축구 선수들로 구성된 브르타뉴 축구 국가대표팀은 때때로 다른 국가대표팀과 경기를 치른다.
투르 드 프랑스에서 베르나르 이노, 루이종 보베, 장 로빅, 루시앙 프티브르통이 선수로, 시릴 기마르가 ''스포츠 디렉터''로 우승을 차지했다.
럭비 유니온은 프랑스 남부보다 북부에서 덜 인기가 있지만, 반 럭비 클럽은 프랑스 북부의 몇 안 되는 프로 팀 중 하나이다. 현재 프랑스 럭비 최상위 리그인 톱 14에서 활약하고 있다.
요트는 라 트리니테 쉬르 메르, 포르니셰, 콩카르노, 로리앙, 글레낭 제도와 같은 해양 휴양지에서 특히 중요하며, 명망 있는 학교가 위치해 있다. 많은 브르타뉴 출신들이 에릭 타바를리, 로익 페이롱, 장 르 캄, 미셸 데조요, 올리비에 드 케르소송, 토마 코빌, 뱅상 리우, 마크 파조와 같은 유명한 요트 선수로 성장했다. 럼 루트, 트란사트 퀘벡-생말로, 쥘 베른 트로피는 주요 브르타뉴 요트 대회이다. 솔리테르 뒤 피가로 스테이지는 종종 브르타뉴에서 시작된다.
구렌은 민속 레슬링의 한 형태로, 브르타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불 브르토네는 페탕크와 관련이 있다. 오트 브르타뉴와 다른 프랑스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팔레''는 페탕크와 관련이 있지만, 선수들은 공 대신 철 디스크를 사용하고 나무 판에 던져야 한다.
게일 축구 또한 이 지역에서 성장하는 스포츠이며,[84] 클럽 팀과 브르타뉴를 대표하는 '카운티' GAA 팀이 갈리시아와 같은 다른 유럽 '카운티'를 상대로 경기를 펼칩니다.
루아르강 남쪽에서 뮈스카데와 그로 플랑 백포도주가 생산되지만, 브르타뉴의 전통 음료는 사과주이다. 브르타뉴는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사과주 생산 지역이다.[85] 브르타뉴 사과주는 전통적으로 사발 또는 컵에 담아 제공된다. 브르타뉴는 또한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맥주 양조 전통을 가지고 있다. 젊은 수제 맥주 양조업자들이 ''Coreff de Morlaix'', ''Tri Martolod'' 및 ''Britt''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유지하고 있다.[86] 더 독한 술로는 야생 꿀로 만든 일종의 벌꿀술인 ''슈쉔''과 ''람비그''라는 사과 오드비가 있다.
크레페와 갈레트는 가장 잘 알려진 브르타뉴 요리 두 가지이다. 버터로 만들어 제공되는 크레페는[87] 디저트로 먹고, 갈레트는 일반적으로 짭짤하며 메밀로 만든다. 전통적으로 기본적인 음식으로 빵을 대체했으며, 치즈, 소시지, 베이컨, 버섯 또는 계란과 함께 제공될 수 있다. 브르타뉴의 버터밀크인 ''레 리보''를 곁들일 수 있다. 브르타뉴는 또한 포토푀와 유사한 요리인 키그 하 파르즈가 있는데, 이는 메밀 경단과 함께 돼지고기 또는 소고기를 끓인 것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브르타뉴는 신선한 해산물과 생선, 특히 홍합과 굴을 다양하게 제공한다. 해산물 특산품 중에는 코트리아드라고 하는 생선 스튜가 있다. 낭트 근처 생 쥘리앙 드 콩셀에서 발명된 뵈르 블랑 소스는 종종 생선과 함께 제공된다. 브르타뉴는 또한 주로 게랑드 주변에서 수확되어 버터와 밀크 캐러멜에 사용되는 소금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비스킷 공장으로 유명하며 많은 도시가 자체 공장을 가지고 있다: 캥페르, 로리앙, 퐁타벤, 생 브리외, BN 및 LU(낭트), 라 트리니테인(라 트리니테쉬르메르) 및 갈레트 생 미셸(생 미셸 셰프 셰프). 그들은 일반적으로 짭짤한 버터로 비스킷을 만들고 철제 상자에 담아 판매한다. 유명한 브르타뉴 페이스트리에는 빵 반죽과 많은 양의 버터와 설탕으로 만든 ''쿠이냐망''("브르타뉴어로 버터 케이크")과 마른 자두로 만드는 달콤한 요크셔 푸딩의 일종인 ''파르''가 있다.
브르통 정당은 광범위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의 선거에서의 성공은 미미하다. 그러나 브르통인들은 강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2008년 여론 조사에 따르면, 브르타뉴 지역권 주민의 50%가 스스로를 프랑스인인 동시에 브르통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22.5%는 프랑스인이라기보다는 브르통인이라고 느낀다.[153] 스스로를 브르통인이지만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이며 1.5%이고, 반면에 9.3%는 스스로를 브르통인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153]
여론 조사 응답자의 51.9%가 브르타뉴가 더 많은 정치적 권력을 갖는 것을 지지하고, 31.1%가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독립을 원하는 것은 불과 4.6%이며, 9.4%는 생각이 불분명했다.[153]
역사적인 브르타뉴 5개 현에서 실시된 2012년 여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8%가 스스로를 먼저 브르타뉴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프랑스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37%, 유럽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10%였다. 브르통인 정체성은 35세 이하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강하게 나타났으며, 그들의 53%는 스스로가 먼저 브르타뉴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연령대가 높은 응답자의 50%는 스스로가 먼저 프랑스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브르통인 의식은 65세 이상 응답자들 사이에서 가장 낮았다. 58%가 스스로를 먼저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인 의식 또한 고령자들 사이에서 높았으며, 65세 이상 응답자의 21%가 스스로를 먼저 유럽인이라고 생각했다. 최종적으로, 브르통인 의식은 좌익 지지자들 사이에서 더욱 높았고, 고학력자들보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높았다.[154]
브르타뉴인은 주로 가톨릭 신자이며, 기독교의 포교는 갈로-로마 시대와 프랑크 왕국 시대에 이루어졌다. 브리톤인의 브르타뉴 이주 시대, 웨일스 출신 기독교 선교사가 주체가 되어 브르타뉴에 전도하고 주교좌를 창설했다. 그들은 브르타뉴 창설 7성인으로 알려져 있다.
- 생폴드레옹의 폴 오렐리앙
- 트레기에의 튀드와르
- 생브리외의 브리오크
- 생말로의 말로
- 돌드브르타뉴의 삼손
- 반느의 파달른
- 캉페르의 코랑탱
그 외 주목할 만한 복음 전파자로는 길다스와 아일랜드의 성인 콜룸바가 있다. 총 브르타뉴에는 300명 이상의 성인이 있다(가톨릭 교회가 인정하는 성인은 극히 소수이다). 적어도 19세기 이후, 인접한 페이드라루아르 지역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가톨릭 신앙이 독실한 지역 중 하나이다. 가톨릭 사립학교에 재학하는 학생의 비율이 국내에서 가장 높다. 브르타뉴의 수호 성인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 안나이다. 그러나 13세기 성직자 케르마르탱의 이브(en)도 수호 성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의 축일은 5월 19일이며, 국가 기념일로서 브르타뉴의 날로 지정되어 있다.
많은 독특한 전통과 관습이 브르타뉴에 남아 있다. 그 중 하나인 파르동 축제는 서민 가톨릭 신앙 중 가장 전통적인 행진이다. 파르동은 바스브르타뉴의 일부 마을에서 교구의 성인의 축일에 행해지는 고해이다. 고해자는 예배 행진의 형태를 취하며, 그들은 교회 또는 성스러운 장소를 성인과 관련된 물건과 함께 행진한다. 일부 파르동은 그 길이로 명성이 높다. 파르동은 마지막에 모두 함께 만찬을 먹고 마무리되며, 인기 있는 축제이다.
매우 오래된 순례인 트로브레이스가 있다. 이것은 브르타뉴 창설 7성인의 묘를 순서대로, 브르타뉴 전역을 걸어서 순례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순례는 왕복으로 이루어졌다(총 거리 약 600km). 그러나 현재는 순례가 수년에 걸쳐 완성되는 코스로 진행된다. 2002년, 트로브레이스에는 웨일스로의 특별 순례가 포함되었다. 웨일스 출신의 성인, 폴, 브리그, 삼손의 여정을 반대 방향으로 상징적으로 행한 것이다[159]。
가장 강력한 민속적 상징은 앙쿠(fr) 또는 죽음의 신이다. 해골이 브르타뉴 특유의 평평한 모자가 달린 흰색 수의를 입고, 때로는 진짜 인간처럼 묘사되어(그 해 마지막 죽은 자는 죽음의 신에게 바쳐졌다), 그는 위로 향한 낫을 들고 밤에 여행하며, 낫으로 먹잇감을 잡는다. 때로는 발이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앙쿠는 두 마리의 소가 끄는 카리그 안 앙쿠라는 수레로 이동했다. 두 명의 수행원이 앙쿠와 같은 수의와 모자를 쓰고, 수레에 죽은 자를 쌓았다. 밤에 수레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그 소리를 들은 인간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했다[160]。
공식적인 종교 통계는 프랑스에서 금지되어 왔기 때문에, 브르타뉴에서의 종교적 실천에 대한 공식적인 숫자는 없다. 그러나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는, 지역권이 점점 비종교화되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톨릭 신앙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브르타뉴의 도시화가 진행됨과 동시에 쇠퇴하기 시작했다. 2006년의 여론 조사에서는, 강력한 가톨릭 인구를 가진 곳은 총 인구의 70%가 가톨릭에 속하는 모르비앙 현뿐이다. 루아르아틀란티크 현과 코트다르모르 현은 간신히 가톨릭 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가톨릭 신자의 비율은 인구의 50%이다. 한편 일에빌렌과 피니스테르에서는 약 인구의 65%가 가톨릭 신자이다.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이슬람 인구가 일에빌렌과 루아르아틀란티크에서 인구의 1%에서 3%를 모으고 있다[161]。

현대적인 브르타뉴의 기는 1923년에 디자인되었다. 브르통어로 흰색과 검은색을 의미
8. 행정 구역
브르타뉴는 1790년 정치적 실체로서 소멸되었고, 5개의 데파르트망으로 분할되었다. 이 데파르트망은 중세 초기에 등장한 9개의 가톨릭 교구와 거의 일치하며, 재정 및 군사 지구의 역할도 했다.[44] 브르타뉴는 전통적으로 브르타뉴어가 사용되는 서쪽의 ''바스 브르타뉴''(Breizh Izel)와 갈로어가 사용되는 동쪽의 ''오트 브르타뉴''(Breizh Uhel)로 나뉜다.[125]
역사적인 브르타뉴 교구는 다음과 같다.
- 오트 브르타뉴:
- *낭트 주변의 ''페이 낭테''(Pays nantais)는 루아르아틀랑티크 ''데파르트망''에 해당한다.
- *렌 주변의 ''페이 렌네''(Pays rennais)는 일에빌렌 ''데파르트망''의 일부를 형성한다.
- *돌드브르타뉴 주변의 ''페이 드 돌''(Pays de Dol)은 일에빌렌 ''데파르트망''의 북부에 해당한다.
- *생브리외 주변의 ''페이 드 생브리외''(Pays de Saint-Brieuc)는 코트다르모르 ''데파르트망''의 일부를 형성한다.
- *생말로 주변의 ''페이 드 생말로''(Pays de Saint-Malo)는 일에빌렌, 코트다르모르, 모르비앙으로 나뉜다.
- 바스 브르타뉴:
- *반 주변의 ''페이 바네테''(Pays vannetais)는 모르비앙 ''데파르트망''에 해당한다.
- *캥페르 주변의 ''코르누아이유''(Cornouaille)는 피니스테르와 코트다르모르로 나뉜다.
- *생폴드레옹 주변의 ''레옹''(Léon)은 피니스테르 ''데파르트망''의 북부에 해당한다.
- *트레기에 주변의 ''트레고르''(Trégor)는 코트다르모르 ''데파르트망''의 일부를 형성한다.
프랑스 혁명 동안 4개의 교구가 폐지되었고, 나머지 5개는 데파르트망과 동일한 행정 경계를 갖도록 수정되었다.[125]

브르타뉴는 여러 역사적인 수도를 가지고 있다. 브르타뉴가 독립 공국이었을 때, 브르타뉴 신분회는 디낭, 플로에르멜, 레돈, 렌, 비트레, 게랑드, 반(19번), 낭트(17번) 등 여러 도시에서 열렸다. 궁정과 정부는 유동적이어서 각 왕조는 자체적인 성과 영지를 선호했다. 공작들은 주로 낭트, 반, 레돈, 렌, 푸제르, 돌드브르타뉴, 디낭, 게랑드에 거주했다. 반과 게랑드를 제외한 이 모든 도시는 오트 브르타뉴에 위치해 있으며, 브르타뉴어 사용 지역에는 속하지 않는다.
낭트, 렌, 반만이 진정한 수도 지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공작들은 렌에서 대관식을 치렀고 그곳에 큰 성이 있었지만 15세기에 파괴되었다. 반은 프랑스와의 통합 전까지 회계원과 의회의 소재지였다. 이후 의회는 렌으로, 회계원은 낭트로 이전되었다. 브르타뉴 공작 성이 있는 낭트는 "브르타뉴 공작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마지막 공작들의 영구 거처였다. 오늘날 렌은 브르타뉴 레지옹의 유일한 공식 수도이다. 또한 브르타뉴와 루아르 지방을 포괄하는 교회 관구의 소재지이다.

프랑스 혁명 동안 브르타뉴는 5개의 ''데파르트망''으로 나뉘었고, 각 데파르트망은 3~4개의 ''아롱디스망''으로, 아롱디스망은 캉통으로, 캉통은 하나 이상의 코뮌으로 구성된다. 코뮌과 데파르트망은 시민들이 선출한 지방 의회를 갖고 있지만, 아롱디스망과 캉통은 선출된 공무원이 운영하지 않는다. 캉통은 데파르트망 의회 선거를 위한 선거구 역할을 하며, 아롱디스망은 프랑스 대통령이 임명한 부현청장이 운영한다. 대통령은 또한 각 데파르트망에 현청장을 임명한다.
프랑스 정부는 데파르트망이 작고 수가 많아 20세기에 더 넓은 지방을 만들려고 했다. 브르타뉴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브르타뉴를 정치적, 행정적 실체로 재창조할 기회였지만, 새로운 지방은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어야 했다. 낭트와 루아르아틀랑티크는 루아르 계곡과 더 통합되어 브르타뉴 반도와 거리가 멀어 우려를 낳았다. 프랑스 정부와 지역 정치인들은 낭트가 인구와 이전 브르타뉴 수도의 지위 때문에 렌과 경쟁할 것을 우려했다.
1920년대부터 프랑스 지방에 대한 여러 초안이 제안되었으며, 최종 지방은 1956년에 확정되었다. 새로운 브르타뉴는 4개의 데파르트망을 가졌고, 루아르아틀랑티크는 앙주, 메인, 푸아투의 일부와 함께 페이 드 라 루아르 지방을 형성했다. 1972년, 지방은 선출된 지역 의회를 통해 현재의 권한을 받았다. 그 이후로, 브르타뉴 지방은 자체 의회와 행정 기구를 갖게 되었다.

브르타뉴 지방이 창설되었을 때, 여러 지역 정치인들은 루아르아틀랑티크의 배제를 반대했고, 이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재통합의 장애물은 1956년과 동일하다. 브르타뉴에 낭트가 포함되면 렌의 입지가 훼손될 수 있으며, 바스와 오트 사이에 경제적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페이드라루아르 지방은 루아르아틀랑티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치적, 경제적 수도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루아르아틀랑티크가 없다면, 다른 데파르트망은 더 이상 효율적인 지방을 형성하지 못하고, 상트르발드루아르와 누벨아키텐과 같은 인접 지방에 통합되어야 할 것이다.
2008년 이후 브르타뉴 지방 의회와 2001년 이후 루아르아틀랑티크 의회와 같은 여러 기관이 재통합을 지지해 왔다.[45] 전 프랑스 총리이자 전 시장인 장마르크 에로와 같은 일부 정치인들은 브르타뉴와 페이드라루아르 지방을 포함하는 "그레이터 웨스트 지방"의 창설을 선호한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브르통인의 58%와 루아르아틀랑티크 주민의 62%가 재통합을 지지한다.[126]
9. 정치
20세기 말까지 브르타뉴는 강력한 가톨릭과 보수적 영향력으로 특징지어졌다.[127] 그러나 생나제르와 로리앙 주변의 산업 지역과 트레기에 주변과 같은 일부 지역은 전통적인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의 거점이다.[127] 좌파 정당, 주로 사회당과 녹색당은 1970년대 이후 더 강력해졌으며, 2004년부터 브르타뉴 지방 평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127] 루아르아틀랑티크와 일에빌렌 평의회 또한 2004년부터 좌파가 장악하고 있다.[127]
사회당은 1976년부터 코트다르모르 평의회를, 1998년부터 피니스테르 평의회를 장악해왔다.[127] 한편, 모르비앙은 여전히 우파의 거점으로 남아 있다.[127] 지역 정당들은 브르타뉴 민주 연합을 제외하고는 매우 적은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이 단체는 지방 평의회와 다른 지역 의회에서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127] 브르타뉴 민주 연합은 지역의 더 많은 자치를 옹호하며, 그 입장은 사회당과 매우 유사하다.[127] 또한 강한 생태적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127] 극우 정당의 지지율은 브르타뉴가 프랑스 다른 지역보다 낮다.[127]
10. 경제
브르타뉴는 로리앙, 낭트, 생나자르와 같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산업화가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업과 농업은 여전히 중요한 활동으로 남아 있다. 브르타뉴는 40,000개 이상의 농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부분 소, 돼지, 가금류 사육과 곡물 및 채소 생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농장의 수는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매우 큰 규모로 합병되고 있다. 브르타뉴는 채소(녹두, 양파, 아티초크, 감자, 토마토 등) 생산에서 프랑스 내 1위이다.[59][60] 곡물은 주로 가축 사료용으로 재배된다. 뮈스카데 와인은 낭트 남쪽의 작은 지역에서 생산된다. 브르타뉴는 프랑스에서 어업이 가장 활발한 지역으로, 약 15,000명의 사람들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2,500개 이상의 회사가 어류 및 해산물 가공에 종사하고 있다.[59][60]
1980년 이후 식품 가공(고기, 채소 등) 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으며, 산업 일자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상업 및 군사 조선은 생나자르 (아틀랑티크 조선소(Chantiers de l'Atlantique)), 로리앙, 브레스트에 위치해 있으며, 에어버스는 생나자르와 낭트에 공장을, 푸조는 렌에 대규모 공장을 가지고 있다. 브르타뉴는 통신 분야에서 프랑스 2위, 전자 분야에서 5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두 활동은 주로 렌, 라니옹 및 브레스트에서 발전했다.
브르타뉴의 실업률은 다른 프랑스 지역보다 낮으며, 일반적으로 활동 인구의 6~7% 수준이다.[61] 2007-2008년 금융 위기로 인해 2012년 말에는 브르타뉴 (레지옹)(Region Brittany)에서 실업률이 8.7%로, 루아르아틀랑티크에서 8.4%로 상승했지만, 프랑스 전국 실업률(같은 기간 9.9%)보다는 낮다.[62][63] 건설, 산업, 요식업 또는 운송과 같은 일부 산업은 일반적으로 직원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61]
2018년, 브르타뉴 (레지옹)(Region Brittany)의 국내총생산(GDP)은 990억 유로로, 프랑스에서 아홉 번째로 부유한 지역이었으며, 국가 GDP의 4%를 생산했다. 브르타뉴의 1인당 GDP는 2018년에 약 29,694유로였으며,[64] 이는 프랑스 평균 30,266유로, 유럽 연합 평균 30,900유로보다 낮았다. 루아르아틀랑티크 ''데파르트망(département)''의 GDP는 약 260억 유로이며, 5개의 역사적인 브르타뉴 데파르트망의 GDP는 약 1,080억 유로에 달할 것이다.[65]
10. 1. 주요 산업
10. 2. 관광 산업
관광 산업은 특히 해안가를 중심으로 브르타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프랑스 내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지역 중 하나이다.[60] 2019년 4월, 가디언지의 여행 섹션에서는 브르타뉴의 두 곳을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20곳'에 포함시켰다.[66] 선정된 곳은 로슈포르앙테르와 로크로낭이었다.[66] 로슈포르앙테르는 "덮인 시장, 12세기 교회, 중세 성, 19세기 샤토, 16세기와 17세기 저택"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66] 로크로낭은 "동인도 회사의 사무실이 여전히 마을 광장에 서 있으며, 17세기 상인들의 저택도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66]10. 3. 실업률
11. 교통
브르타뉴는 사이클링이 주요 스포츠 중 하나였지만, 레저 사이클링과 이를 지원하는 인프라는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광범위한 자전거 도로 네트워크와 추천 자전거 경로는 이 지역 전체에 걸쳐 개설되었다. 이러한 경로는 주로 작은 도로를 사용하며, 각 코뮌에서 표지판을 설치하고 유지 관리하지만, 대부분은 사용하지 않는 철도 트랙을 개조하여 만든 전용 자전거 도로를 기반으로 한다. 이는 로스코프에서 낭트까지의 '벨로디세(Vélodyssée)'와 'V' 라벨(V1, V2 등의 표지판을 따름) 아래 여러 주요 경로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91] 낭트-브레스트 운하의 오래된 견인로는 이제 전체 385km 길이를 따라 자전거를 탈 수 있지만, 철도 기반 자전거 도로와 달리, 몇몇 구간에서는 매우 구불구불하며, 경로를 벗어나면 거리를 단축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92]
낭트-브레스트 운하와 같은 표지 자전거 도로는 안전하고, 쉬운, 교통 없는 사이클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브르타뉴의 진정한 '풍요로움'은 놀라운 시골길 네트워크에 있다. 지형은 '구릉지'라고 할 수 있지만, 경사는 일반적으로 완만하며(5%를 넘는 경우는 드물고, 보통 훨씬 적음) 운하 길과 달리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작은 마을들을 연결한다. 사이클링 휴가객의 증가는 과거에 경제가 어려움을 겪었던 내륙 지역을 중심으로 작은 캠프장과 호텔/샹브르 도트(chambre d'hôtes, 프랑스식 민박/chambre d'hôtes프랑스어) 네트워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93] 일반적으로 이 지역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은 매우 존중받으며, 많은 큰 도시에는 자전거 전용 차선이 있다. 그러나 자전거 전용 차선이 없더라도 교통은 '자전거 친화적'이다.
11. 1. 도로
1970년대까지 브르타뉴 지방의 도로망은 해상 교통과 철도 교통이 우세하여 열악했다. 샤를 드 골 프랑스 대통령은 1970년대에 대규모 도로 건설 계획을 시행했고, 브르타뉴 지방은 25년 동안 100억 프랑 이상의 투자를 받았다.[88][164] 10,000km 이상의 고속도로가 건설되어 브르타뉴 지방의 도로 운송량이 4배로 증가했다. 브르타뉴의 고속도로는 일반적인 프랑스 고속도로와 달리 유료 도로가 아니다.[89][90][165][166]북부 해안을 따라 도시와 기타 정착지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 간선은 렌, 생브리외, 모를레, 브레스트를 연결하는 국도 12호선이다. 또한 남부 노르망디로 연결되어 파리에서 종착한다. 남부 브르타뉴에서는 낭트, 반, 로리앙, 캥페르, 브레스트를 연결하는 국도 165호선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 국도 164호선은 반도의 중앙을 가로질러 렌과 루데악, 카르에, 샤토랭을 연결하며, 국도 166호선은 렌과 반을 연결한다. 국도 137호선은 생말로, 렌, 낭트를 연결하며 보르도에서 끝난다.
낭트는 A11 고속도로를 통해 파리와 연결되며, 렌은 파리로 가는 A81 고속도로와 캉으로 가는 A84 고속도로에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 고속도로는 일반적인 프랑스 유료 도로이다.

11. 2. 항공
낭트 아틀란티크 공항은 브르타뉴에서 가장 큰 공항이다. 영국, 이탈리아, 독일, 아일랜드, 모로코 등으로 가는 노선이 운항 중이다. 브레스트 브르타뉴 공항은 브르타뉴에서 두 번째로 큰 공항이다. 그 다음으로는 렌 – 생 자크, 로리앙 남부 브르타뉴, 디나르 – 생말로 공항이 있다. 생 브리외 – 아모르 공항은 브르타뉴와 채널 제도 간 항공편을 운행한다. 캥페르 및 라니옹과 같은 소규모 공항에서는 국내선을 운항한다.
11. 3. 철도
브르타뉴에는 2개의 주요 TGV 노선이 있다. 하나는 파리에서 낭트와 남해안의 르 크로아지크를 연결하고, 다른 하나는 파리에서 렌과 브레스트를 연결한다. LGV 아틀랑티크의 연장선은 르망에서 종착하며, 2017년에 완공되어 렌까지 이어졌다. 이 연장선은 LGV 브르타뉴-페이 드 라 루아르로 알려져 있다. TGV는 또한 리옹, 스트라스부르, 마르세유, 릴과 같은 프랑스의 주요 도시들과 이 지역을 연결한다.TER 브르타뉴는 반, 카르에, 로스코프, 팽폴과 같은 소도시 간의 연결을 제공하는 지역 노선을 운행한다. TER 브르타뉴는 또한 렌과 낭트 간의 코치 노선과 연결을 관리한다. TER 페이 드 라 루아르는 낭트와 루아르아틀랑티크의 작은 마을 간에 기차를 운행한다.
11. 4. 해상
아일랜드, 잉글랜드, 채널 제도 간에는 여객, 차량, 화물 운송 페리 서비스가 운행된다. 주요 업체로는 브리타니 페리가 있으며, 플리머스-로스코프, 포츠머스-생말로, 로스코프-코크 노선을 운영한다. 아일랜드 페리는 로슬레어-로스코프 노선을, 콘도르 페리는 생말로-저지 섬 노선을 운영한다.12. 대한민국과의 관계
12. 1. 역사적 관계
12. 2. 현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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