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테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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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피테아스는 기원전 4세기 말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이다. 그는 브리튼 제도와 툴레를 탐험한 최초의 기록된 지중해 항해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피테아스는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여 포르투갈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항해했으며, 브리튼 섬의 둘레를 측정하고 툴레까지 도달하여 북극권에 대한 정보를 기록했다. 그의 항해에 대한 기록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후대의 작가들이 인용한 내용을 통해 그의 업적을 추정할 수 있다. 피테아스는 천문학적 관측과 측정을 통해 위도를 계산하고, 북해와 서유럽의 아한대 지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후대에 다양한 평가를 받았으며, 그의 항해에 대한 논란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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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테아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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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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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그리스 |
직업 | 지리학자 |
생애 | |
출생 | 기원전 350년경 |
출생지 | 마살리아 |
학문 분야 | |
분야 | 지리학, 탐험, 항해 |
알려진 업적 | 기록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인의 브리튼 섬, 발트 해 및 북극권 탐험, Periplus의 저자. |
2. 항해의 배경
피테아스는 자신의 여행에 대해 기록했지만, 이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대신 후대 작가들의 인용이나 번역을 통해서만 그의 여행에 대해 알 수 있다.[2] 피테아스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그의 여행 이후 수백 년이 지난 고전 시대 역사가들의 주석에서 비롯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스트라본의 ''지리학''(기원전 1세기 말 또는 서기 1세기 초),[3] 디오도로스 시쿨로스의 세계사(기원전 60년에서 30년 사이),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서기 77년) 등이 있다.
피테아스는 브리튼 제도에 도달한 최초의 지중해 항해자로 기록되어 있다.[10] 항해 시작 시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카르타고가 지브롤터 해협을 봉쇄했기 때문에 육로로 이동했거나 밤에만 항해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10] 기원전 4세기에는 서부 그리스인, 특히 마살리아인들이 카르타고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자유롭게 활동했을 것이라는 이론도 있다.[11]
피테아스는 툴레를 브리튼 섬에서 북쪽으로 6일 항해한 거리에 있는 섬으로 묘사했으며, 얼어붙은 바다(''pepēguia thalatta'', "굳어진 바다") 근처에 있다고 했다.[33] 플리니우스는 태양이 게자리를 지나는 한여름(하지)에는 밤이 없다고 덧붙였는데,[5] 이는 툴레가 북극권에 있다는 것을 재확인해준다. 그는 툴레로 가는 여정이 "가장 큰" 섬인 ''베리체''에서 시작되었으며, 이 섬은 루이스 섬 (아우터 헤브리디스)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만약 ''베리체''가 아우터 헤브리디스에 있었다면, 피테아스는 노르웨이의 Møre og Romsdal 또는 트뢰넬라그 해안에 도착했을 것이며, 그가 스카게라크 해협을 놓친 이유를 설명해준다. 만약 이것이 그의 항로라면, 그는 실제로 브리튼 섬을 일주하지 않고 독일 해안을 따라 돌아왔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이 그의 둘레가 더 컸던 이유를 설명한다.
스트라본은 피테아스가 "라인강을 넘어 스키타이까지" 도달했다고 언급했지만, 이를 거짓으로 보았다.[46]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를 비롯한 로마 제국 초기 지리학자들은 스키타이가 비스툴라강 하구 동쪽에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피테아스가 언급한 곳은 발트해 남쪽 해안 지역으로 추정된다. 페리플러스는 항해 일지의 일종으로, 이를 신뢰한다면 피테아스는 비스와 강 하구까지 도달한 것이 된다.
피테아스는 천문학적 관측을 통해 위도와 관련된 정보를 얻었다. 스트라본은 피테아스의 연구를 언급할 때 직접 화법("피테아스가 말하길...")을 사용했지만, 천문 관측에 대해서는 간접 화법("히파르코스는 피테아스가 말하길...")을 사용했다.[59] 이는 스트라본이 피테아스의 원본을 직접 보지 못했거나, 지구를 360°로 표현한 히파르코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함으로 보인다.[122]
[1]
간행물
Pytheas
2006
플리니우스는 기원전 350년경에 태어난 역사가 티마이오스가 피테아스의 호박 발견 이야기를 믿었다고 전했고,[88] 스트라본은 기원전 285년경에 사망한 디케아르코스는 피테아스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고 전한다.[104] 이를 바탕으로 피테아스의 항해는 기원전 330년에서 300년 사이로 추정된다.[89]
피테아스 이전에도 지중해 항해자들이 브리튼 제도에 도착한 기록이 있다. 아비에누스가 인용한 마살리아 페리플루스는 기원전 6세기 마르세유에서 출항한 배의 기록으로, 알비온 (브리튼 섬의 옛 이름)을 경유하여 "성스러운 섬"(아일랜드 섬)을 방문했다는 내용이 있다.
피테아스의 출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카르타고가 지브롤터 해협을 통제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육로 이동설, 야간 항해설 등이 제기되었다.[94] 그러나 기원전 4세기 마살리아(현재의 마르세유)가 카르타고와 우호 관계였고, 로마와도 동맹 관계였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95] 기원전 348년 카르타고와 로마의 휴전 협정으로 로마는 시칠리아 시장을, 카르타고는 로마에서 상업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로마 동맹국 시민은 석방되었다. 마살리아는 이 조항에 포함되지 않아 자유로운 항해가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스트라본은 에라토스테네스를 인용하여 피테아스가 "성스러운 곶"(현재 포르투갈 사그레스 곶)에서 카디스까지 5일이 걸렸다고 언급했다.[96] 이는 피테아스가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해 포르투갈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항해했음을 보여준다.
3. 브리튼 제도 탐험
피테아스 항해의 초반부는 에라토스테네스의 진술을 통해 간략하게 설명된다.[12] 피테아스는 조수가 "성스러운 곶"(''Hieron akrōtērion'', 사그레스 곶)에서 끝나고, 거기에서 카디스까지 5일 항해 거리라고 말했다.[12] 이는 피테아스가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여 포르투갈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항해했음을 나타낸다.
스트라본은 피테아스가 "접근 가능한 브리타니아 전역을 여행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14] 피테아스는 브리타니아의 둘레(''perimetros'')를 40,000 스타디온 이상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실제 해안선 길이보다 짧지만, 어떤 표준 피트가 적용되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42,500 스타디온, 플리니우스는 4,875 로마 마일이라고 기록했다.[16] 프리드쇼프 난센은 티마이오스의 실수로 인해 피테아스의 보고가 왜곡되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17] 폴리비오스는 피테아스가 브리타니아 전역을 걸어서 여행했다고 말했지만, 이는 의심스럽다.[18]
"브리튼"이라는 단어는 피테아스의 주항기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19] 스트라본에 따르면, 피테아스는 브리튼을 "브레타니케"라고 불렀는데, 이는 현대 켈트어파의 철자와 유사하다.[20] "브리튼"은 웨일스어의 ''Ynys Prydein''(브리튼 섬)과 가장 유사하며, "형태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25] 이는 문신이나 전쟁 그림을 그리는 관습을 의미한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피테아스를 인용하여 브리튼이 춥고 서리가 많이 내리며, 원주민들이 초가지붕 오두막에 살며 곡물을 지하 저장고에 저장한다고 기록했다.[27] 그들은 "단순한 예절"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왕과 공주들이 통치하고, 전차를 사용해 싸웠다.
디오도로스는 유럽 맞은편에 칸티온(Kantion, 켄트) 곶이 있고, 나흘 항해 거리에 벨레리온(Belerion, 콘월) 곶이 있다고 기록했다. 콘월 주민들은 주석 잉곳을 제조하여 이티스 섬으로 운송했고, 상인들은 그곳에서 주석을 구매하여 론 강까지 운송했다. 디오도루스 시쿨루스는 콘월 주민들이 외국 상인들과의 거래 때문에 예절이 바르고 이방인에게 호의적이라고 말했다.
스코틀랜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320년, 피테아스가 브리튼 섬 북쪽 끝을 "오르카스"(오크니 제도)라고 부른 것이다.[28][29]
4. 툴레 탐험
툴레의 위치에 대한 데이터 불일치는 후대의 지리학자들을 괴롭혔고, 프톨레마이오스가 스코틀랜드를 왜곡하게 된 원인이 되었을 수 있다. 스트라보는 에라토스테네스가 툴레를 보리스테네스 강 어귀에서 북쪽으로 11500 스타디아(1305마일 또는 16.4°) 떨어진 곳에 위치시켰다고 보고했다.[33] 그 어귀를 통과하는 평행선은 켈티카도 지나가며 피테아스의 기준선이 된다. 마르세유에서 북쪽으로 3700 또는 3800 스타디아(약 420–430마일 또는 5.3°–5.4°)를 기준선으로 사용하면 툴레의 위도는 64.8° 또는 64.9°가 되며, 북극권에 훨씬 못 미친다. 실제로 피테아스가 육지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있는 트론헤임의 위도이다.
로도스의 게미누스는 ''대양에 관하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34]
> ... 야만인들이 우리에게 태양이 쉬러 가는 곳을 보여주었다. 그 이유는 이 지역에서는 밤이 매우 짧았고, 어떤 곳에서는 두 시간, 다른 곳에서는 세 시간밖에 되지 않아 태양이 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난센은 이 진술에 따르면, 피테아스가 그곳에 직접 있었으며, 21시간과 22시간의 낮이 가장 긴 날의 길이에 따른 위도의 일반적인 진술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위도를 64° 32′와 65° 31′로 계산하며, 툴레의 위도에 대한 히파르코스의 진술을 부분적으로 확인한다. 그러나 스트라보는 이렇게 말했다:[31]
> 마살리아의 피테아스는 툴레가... 가장 북쪽에 있으며, 그곳의 여름 열대선은 북극[35]권과 같다고 말한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마살리아에서 켈티카까지의 위도 거리를 5000 스타디아(7.1°)로 늘려 기준선을 노르망디에 위치시켰다. 브리튼 섬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곳은 현재 스코틀랜드 북부의 클라이드 만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스트라보의 피테아스 해석에 맞게 브리튼 섬 남쪽에 있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스코틀랜드를 90° 회전시켜야 했다.
5000 스타디아는 할인해야 한다. 이는 보리스테네스 강 어귀가 아니라 키이우 근처의 강 상류를 지난다.[36] 이는 피테아스를 북극권에 위치시키며, 노르웨이에서는 로포텐 제도 남쪽에 위치한다. 에라토스테네스는 기준선을 켈티카의 최북단을 지나도록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히파르코스가 언급한 바와 같이 피테아스는 켈티카에서 처음 육지에 도착한 지점을 언급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노르웨이에서 같은 관행을 사용했다면, 툴레는 적어도 Møre og Romsdal에서 로포텐 제도까지 노르웨이 북서 해안 어딘가에 위치한다.
탐험가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은 툴레에 대한 연구에서 지난 수 세기 동안 여러 정의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피테아스를 기억하는 사람들보다 툴레에 대해 글을 쓴 저자가 훨씬 많다. 피테아스의 툴레의 위치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고대 저술가들이 제시한 위도를 조정할 수 있다. 위치를 고정하는 데 필요한 누락된 데이터는 경도이다: "분명히 경도에 의존할 수 없다."[37]
피테아스는 브리튼 제도 북부의 베리체에서 북쪽으로 바다를 건넜지만, 우현으로 갔는지, 좌현으로 갔는지, 아니면 정면으로 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로마 제국 시대부터 모든 가능성이 여러 세대의 작가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제시되었다: 아이슬란드, 셰틀랜드 제도, 페로 제도, 노르웨이 그리고 나중에는 그린란드. 플리니우스의 한 필사본에서 이름이 변경되어 아이슬란드 설을 뒷받침했다: ''베리체'' 대신 ''네리곤'', 이는 노르웨이처럼 들린다. 노르웨이에서 서쪽으로 항해하면 아이슬란드를 만난다. 버턴 자신도 이 설을 지지했다.
표준 텍스트에는 현재 ''베리체''와 동일한 섬 목록에 있는 ''베르고스''도 있다. ''스칸디아'' 섬은 더 큰 문제인데, 스칸디나비아일 수도 있지만, 다른 섬들도 그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로코피우스는 (''고트 전쟁'' 15장) 스칸디나비아의 이전 이름이 툴레였으며 고트족의 고향이었다고 말한다. 피테아스가 발트해 부근에서 돌아왔다는 사실은 프로코피우스의 의견에 무게를 실어준다. 피테아스가 유럽 농부들이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수 세기 전에 살았다는 사실은 그를 덜 가능성 있는 후보로 만든다. 그는 툴레가 인구가 많았고 토지가 경작되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툴레의 사람들에 대해 스트라보는 피테아스에 대해 언급했지만, 마지못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38]
> ... 그는 빙하 지대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사실을 적절하게 사용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들은 기장과 다른 풀, 열매와 뿌리를 먹고 살고, 곡물과 꿀이 있는 곳에서는 음료도 거기서 얻는다. 곡물에 관해서 그는 - 햇빛이 전혀 없기 때문에 - 큰 창고에 넣고 빻아내는데, 먼저 이삭을 거기에 모은 후이다. 햇빛 부족과 비 때문에 타작 마당은 쓸모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가 묘사하는 것은, 헛간을 사용하여 곡물을 타작하고, 지붕이 없는 지면을 사용하여 햇볕에 말리는 지중해 대신 음료(아마도 미드일 것이다)를 제조하는 농업 국가인 것으로 보인다.[39]
플리니우스는 "베리체"에서 "툴레"로의 항해(navigatio)를 언급한 후 다음과 같이 짧게 언급했다.
> "툴레에서 하루 항해 거리에 바다가 얼어붙은 곳이 있는데, 일부에서는 크로니안 해라고 부른다."
"mare concretum"은 스트라보의 "pepēguia thalatta"와 일치하며, 스트라보가 봄철 유빙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토포이"(places)와 동일한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그의 북쪽 항해를 막았고 그에게는 세상의 궁극적인 한계였다. 스트라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피테아스는 또한 툴레 주변의 물과, 땅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곳, 바다도 공기도 없는 곳, 이 모든 것의 혼합물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마치 "해양 폐"와 같아서, 그 안에서 흙과 물과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고, 마치 이 무언가가 이 모든 요소들을 연결하는 고리와 같아서, 그 위를 걷거나 항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해양 폐"(''pleumōn thalattios'')라는 용어는 고대인들이 바다 폐라고 불렀던 종류의 해파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후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 부분론》에서 자유롭게 떠다니고 감각이 없는 것으로 언급된다.[41] 아리스토텔레스의 언급만으로는 더 이상 식별할 수 없지만, 일부 "pulmones"는 감각이 없는 바다 동물 종류로 플리니우스에 등장한다.[42] 구체적으로는 "halipleumon"("짠물 폐").[43]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번역자이자 주석가인 윌리엄 오글은 해양 폐라는 이름을 해파리류의 일종인 자포동물인 해파리의 움직임 동안 폐처럼 팽창하고 수축하는 것에 기인한다.[44] 얼음은 물 위에 떠 있는 원처럼 보였다. 이 현상에 대한 현대 영어 용어는 팬케이크 얼음이다.
피테아스의 관찰과 유빙의 연관성은 나다니엘 보디치의 《미국 실용 항해자》를 포함하여 오랫동안 항해 문헌의 표준이 되었으며, 제33장 "얼음 항해"를 피테아스로 시작한다.[45] 그 가장자리에는 바다, 슬러시, 얼음이 섞여 있고, 안개로 둘러싸여 있다.
5. 발트해 탐험 (논란의 여지 있음)
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7]
> 피테아스에 따르면, 게르만족의 일파인 구토네스족(Gutones)이 멘토노몬(Mentonomon)이라는 해안 지역에 살고 있으며, 그 영역은 6000 스타디아에 달한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하루 항해하면 아발루스(Abalus) 섬에 도달하는데, 그 해안에는 봄에 파도에 의해 호박이 밀려온다. 호박은 바다의 산물이며, 주민들은 이것을 연료로 사용하고, 인근의 테우토네스족(Teutones)에게 판매한다.
"구토네스"는 고트족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47] "멘토노몬"은 "만" 또는 "넓은 하구"를 의미하며, 폭이 6000 스타디아라고 한다. 헤로도토스가 정한 1 스타디온당 600피트로 환산하면 681마일이 된다. 이 값은 스카게라크 해협에서 비스와 강 하구까지의 거리에 해당하지만, 6000 스타디아라는 거리가 구체적으로 어디를 지칭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대 플리니우스는 스키타이 해안에서 3일 항해 거리에 람프사쿠스의 크세노폰(Xenophon of Lampsacus)이 발키아(Balcia), 피테아스가 바실리아(Basilia)라고 부르는 큰 섬이 있다고 기록했다.[49] 이는 일반적으로 앞서 언급된 아발루스와 동일한 섬으로 해석된다. 호박 산지로 알려진 곳으로는 헬골란트섬, 셸란섬, 그단스크만 해안, 삼비아반도, 쿠로니아 석호 등이 있다.
피테아스는 비스와 강 하구에서 귀환길에 올랐다. 그가 더 탐험했다면 당시 스키타이로 여겨졌던 고대 발트족을 만났을 것이다. 폴리비오스는 "피테아스는 그곳(북방)에서 돌아와 카디스에서 타나이스까지 유럽 해안 전체를 여행했다"고 기록했다.[57] 타나이스는 일반적으로 돈강의 고대 명칭으로 여겨지며, 이 구절이 피테아스가 지중해를 동쪽으로 항해하여 흑해 북안까지 도달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명확한 증거는 없다. 오히려 타나이스가 돈 강이 아닌 엘베강과 같은 북쪽 강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58]
6. 천문학적 관측 및 측정
스트라본은 히파르코스의 도(°) 단위를 사용했지만,[60] 피테아스가 도 단위를 사용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피테아스는 그노몬(해시계 바늘)을 이용하여 천체의 고도각을 측정하고, 이를 삼각 함수의 탄젠트 값으로 표현하여 위도를 계산했다.[124]
피테아스는 마살리아에서 하지 정오에 태양 고도를 측정하여 탄젠트 값이 120 (그노몬 높이) 대 41과 5분의 4 (그림자 길이)의 비율임을 알아냈다.[61] 히파르코스는 이 비율이 비잔티움과 같으므로 두 지역이 같은 위도에 있다고 말했다. 난센 등은 코탄젠트 209/600을 선호했지만,[63] 각도는 45°보다 컸고, 스트라본은 탄젠트라고 언급했다. 당시에는 소수 표현이 없었지만, 탄젠트는 약 2.87이다.
현대에는 표를 통해 각도를 쉽게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히파르코스가 각도 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고도는 70° 47′ 50″였지만,[125] 이는 위도가 아니다.
하지 정오에 마르세유를 지나는 경도면은 태양의 가장자리에 있다. 지구 축이 기울지 않았다면 적도의 막대는 그림자가 없을 것이다. 북쪽으로 갈수록 그림자가 생기고, 고도 90°는 위도 0°가 된다. 따라서 고도의 보수가 위도를 나타낸다. 태양은 기울어져 더 높이 뜨는데, 이 각도를 황도 경사각이라 하며 당시에는 23° 44′ 40″였다.[125] 고도의 보수에서 황도 경사각을 빼면 43° 13′로, 마르세유의 실제 위도 43° 18′와 5′ 차이가 난다.[64] 피테아스가 수평선이 보이는 마실리아 남쪽에서 측정했을 가능성도 있다.[126]
관측자의 위도를 결정하는 또 다른 방법은 천구의 북극의 고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위도 0°에서 북극 고도는 0°이며, 지평선 위의 점이다. 관측자의 천정 적위도 0°이며, 위도와 같다.
관측자가 북쪽으로 이동하면 적위도 증가한다. 북극은 같은 각도만큼 지평선 위로 솟는다. 지구 북극에서 고도는 90°(바로 위)이고, 천구 북극 적위도 같으며, 위도도 90°이다.[127]
현대에는 북극성이 천구 북극 근처에 있어 위치를 알 수 있지만, 세차 운동 때문에 피테아스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피테아스는 극이 사각형 모서리의 빈 공간이며, 다른 세 변은 별로 표시되어 있다고 했다.[66] 별은 용자리 α와 κ, 작은곰자리 β로 추정된다.[128]
피테아스는 북극권을 찾고 극지방 "냉동 지대"를 탐험하려 북쪽으로 항해했다. 그는 북극권 위도를 몰랐고, 천구 북극권이 북회귀선과 같은 선 북쪽 위도라는 정의를 따랐다. 스트라본의 24° 각도 보고는 피테아스의 접선에 기반했을 수 있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피테아스는 극 고도를 주기적으로 측정하여 북극권 도착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사분원으로 배에서 고도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전자 항법 시스템은 이 측정조차 필요 없게 한다. 경도는 피테아스 시대에 불가능했지만, 육지에서 멀리 벗어나는 일이 드물어 중요하지 않았다. 동서 거리는 지리학자들의 논쟁 대상이었고, 스트라본이 자주 다루는 주제이다. 그노몬으로 남북 거리는 1도 이내 정확도를 보였다.
작은 배 갑판이 흔들리는 밤에는 그노몬 측정이 어려웠을 것이다. 피테아스는 밤에 정차하여 그노몬을 사용하고 원주민과 대화했을 것이며, 통역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살아남은 조각들은 '주항기'가 중요했으며, 항해 일지로 보관되었을 것이다. 원주민 적대감에 대한 힌트는 거의 없다. 켈트족과 게르만족이 그를 도운 것으로 보아, 원정은 과학적 목적이었을 것이다. 모든 항해는 음식, 물, 수리를 위해 정차해야 했다. 여행자 대우는 방문객에 대한 "손님" 윤리에 따랐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천체 관점은 바빌로니아에서 이오니아계 그리스인들에게 전래되었고, 이들은 그리스 고전기 동안 상인과 식민지 건설자들의 해양 국가로 성장했다. 마살리아는 이오니아 식민지였다. 탈레스는 삼각비를 이용하여 바다의 배와 절벽 사이 거리를 측정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항해의 기초가 된 천문 모형은 오늘날에도 사용되며, 피테아스 시대에도 존재했고, 도(degree) 개념만 없었다. 이 모형[129]은 우주를 천구와 지구구로 나누고, 각 구는 극에 직각인 평면의 원(''kukloi'')에 의해 구역(''zonai'')으로 나뉘었다. 천구 구역은 지구 구역을 더 크게 반복했다.
구역 분할 기초는 별의 경로와 해와 달의 경로였다. 천문학자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축이 기울어져 각 반구가 태양에 더 가까워지거나 멀어진다는 것을 안다. 그리스인들은 별과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반대 모델을 가졌다. 별들은 극 주위 고정된 원을 따라 움직였다. 태양은 원에 대해 비스듬한 각도로 움직여 북쪽, 남쪽으로 이동했다. 태양의 원은 황도이며, 황도대 띠 중심이었다.
정오 수직 막대 그림자가 구역 설정 기초였다. 황도 최북단 또는 최남단 지점 교차점은 해당 지점을 통과하는 축의 원을 열대 (''tropikoi kukloi'', "회전점의 원")로 정의했는데, 나중에 황도대 별자리인 게자리와 염소자리 이름을 땄다. 하지 정오(therinē tropē)에 그곳 막대는 그림자가 없었다.[130] 열대 사이 위도는 불모 지대(''diakekaumenē'', "불타는")였다.
이집트와 리비아 남쪽 불모 지대 경험으로 그리스 지리학자들은 그곳이 거주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대칭성은 북쪽에 거주 불가능한 한대(''katepsugmenē'', "얼어붙은")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고, 호메로스 시대부터 보고서가 이를 확인하는 듯했다. 한대 가장자리는 북극에서 위도상 하지가 적도에서 떨어진 거리만큼 남쪽에 있어야 했다. 스트라본은 24°로 언급했는데, 피테아스의 접선에 기반했을 수 있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북극권은 66°에 위치하며, 1° 이내 정확도이다.[131]
적도에서 보면 천구 북극(''boreios polos'')은 지평선 위 점이다. 관찰자가 북쪽으로 이동하면 극이 상승하고 주극성이 나타나며, 지구에 가려지지 않는다. 북회귀선에서 주극성 반경은 24°이다. 가장자리는 지평선에 있다. ''mikra arktos'' (작은곰자리) 별자리는 주극성 영역 내에 포함되었다. 위도는 ''arktikos kuklos'', "곰의 원"이라 불렸다. 지구 북극권은 이 위도에서 고정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천구 북극권은 주극성 둘레와 동일하므로 변수였다.
관찰자가 지구 북극권에 있고 주극성 반경이 66°일 때 천구 북극권은 천구 북회귀선과 동일하다.[132] 피테아스가 툴레가 북극권이 북회귀선과 동일한 지점에 있다고 말하는 의미이다.[105] 그 지점에서 하지 날 그노몬 수직 막대는 태양이 지지 않으므로 이론적으로 지평선 너머 360°까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극 아래에서 북극권은 적도와 동일하며 태양은 지지 않고 지평선에서 뜨고 진다. 그노몬 그림자는 영원히 주위를 맴돈다.
스트라본은 천문학적 큐빗(''pēchus'', 팔뚝 길이)을 태양 고도 측정 단위로 사용했다. "큐빗"은 모호하다. 직선이나 호 거리와 관련 없고, 천체 거리, 그노몬과도 무관하다. 히파르코스는 바빌로니아에서 빌려왔는데, 2°를 의미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고대 수메르에서 가져왔는데, 큐빗과 도 관계가 바빌로니아나 이오니아에서 알려졌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스트라본은 도를 큐빗이나 대원 비율로 나타냈다. 그리스인들은 하지 낮 길이를 위도 척도로 사용했다. 낮 길이는 적도 시(''hōrai isēmerinai'')로 표시되었는데, 춘분에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시간의 1/12이다.
히파르코스는 피테아스 데이터를 기반으로 동지 정오 태양 고도 큐빗, 하지 낮 길이 시간으로 나타낸 위도, 지역 위도 간 스타디아 거리를 연관시켰다.[133] 피테아스는 마르세유와 비잔티움이 같은 평행선 상에 있다고 증명했다(상기 참조). 히파르코스는 스트라본을 통해[134] 비잔티움과 드네프르 강 하구가 같은 자오선에 있고 3700 스타디아(자오선 호 1도당 700 스타디아 기준 5.3°) 떨어져 있다고 덧붙였다. 강 하구를 지나는 위선이 "켈티카" 해안도 지나가 마르세유에서 켈티카까지 북쪽 거리는 3700 스타디아였고, 피테아스가 위도와 거리 계산에 사용한 기준선으로 보인다.[135]
스트라본은 아일랜드(이에르네/Ἰέρνη)[75]가 이 선에서 북쪽으로 5000 스타디아(7.1°) 아래에 있다고 말했다. 이 수치는 켈티카가 루아르 강 하구 부근이며, 영국 주석 무역 중심지였음을 나타낸다. 언급된 아일랜드 지역은 벨파스트 인근이다. 피테아스는 비스케이 만을 건너 스페인 해안에서 루아르 강 하구까지 갔거나, 해안을 따라 도달하여 브레스트 인근에서 영국 해협을 건너 콘월까지 갔으며, 아일랜드 해를 지나 오크니 섬에 도달했을 것이다. 스트라본이 에라토스테네스 말을 인용하여 피테아스가 이베리아 반도 북쪽이 대양을 건너는 것보다 켈티카로 가는 더 쉬운 길이라고 말한 것[135]은 모호하다. 그는 두 경로를 모두 알고 있었지만, 어느 경로를 택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동지 정오에 태양은 9 큐빗, 하지 최장 낮 길이는 켈티카 기준선에서 16시간이다.[136] 켈티카에서 북쪽으로 약 2500 스타디아(약 283마일, 3.6°) 떨어진 곳에 히파르코스가 켈트족, 스트라본이 영국인이라 부른 사람들이 있는데, 스트라본이 차이점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영국인도 켈트족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그 위치는 콘월이다. 태양은 6 큐빗, 최장 낮 길이는 17시간이다. 마르세유 북쪽 약 9100 스타디아(약 1032 마일), 켈티카 북쪽 5400 스타디아(7.7°)에서 고도는 4 큐빗, 최장 낮 길이는 18시간이다. 이 위치는 클라이드 만 부근이다.
여기서 스트라본은 또 다른 트집을 잡았다. 스트라본에 따르면 히파르코스는 피테아스에 의존하여 이 지역을 브리튼 섬 남쪽에 위치시켰지만, 스트라본은 그곳이 아일랜드(이에르네/Ἰέρνη) 북쪽에 있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피테아스는 스코틀랜드가 아일랜드 북쪽임에도 브리튼 일부, 픽트족 땅임을 올바르게 알았다. 스코틀랜드 남부 북쪽에서 최장 낮 길이는 19시간이다. 스트라본은 이론에만 근거하여 이에르네가 너무 춥기[105] 때문에 그 북쪽 땅은 사람이 살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대 관점에서 현장 관찰에 의존한 피테아스는 다른 사람 발견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무시한 스트라보보다 과학적이다. 그의 회의론 원인은 스칸디나비아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불신은 피테아스 데이터를 변경하는 원인이 되었을 수 있다.
7. 피테아스의 영향과 평가
피테아스는 북해와 서유럽의 아한대 지역에 대한 주요 정보원이었으며, 아마도 유일한 정보원이었다. 그의 여행기는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스트라본의 ''지리학'',[3] 디오도로스 시쿨로스의 세계사,[4] 플리니우스의 ''박물지''[4] 등 후대 작가들의 인용과 의역을 통해 그 내용이 전해진다.[2]
스트라본은 폴리비오스를 인용하여 피테아스가 사비를 들여 여행할 만큼 부유하지 않았고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했다.[30] 그러나 마컴은 피테아스가 정부의 원정을 맡았거나 마르세유 상인들의 의뢰를 받았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전문 지리학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사기꾼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84][85]
스트라본은 피테아스가 켄트의 위치를 잘못 기술했다는 점 등을 들어 그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46] 하지만 스트라본의 주장은 켈티카의 위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피테아스가 말한 켈티카는 루아르 강 하구 부근으로 며칠 항해하는 것이 정당하다.[86]
피테아스의 항해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논쟁거리이지만, 그는 대담한 모험가이자 발견자로 평가받기도 하고, 반대로 큰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나 거짓말쟁이로 여겨지기도 한다.[87] 그의 이야기는 역사 소설이나 시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며, 현대에도 찰스 올슨의 『맥시무스 시』와 같은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뤄진다. 맨디 해기스의 스톤 스토리 3부작(『바다코끼리 중얼거림』, 2018; 『호박 탐구자』, 2019; 『리라 댄서』, 2020)은 마살리아의 피테아스의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 플리니우스는 티마이오스가 피테아스의 호박 발견 이야기를 믿었다고 전하며,[88] 스트라본은 디케아르코스는 피테아스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고 전한다.[104]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피테아스의 항해 시기는 기원전 330년에서 기원전 300년 사이로 추정된다.[89]
피테아스의 저작은 "페리플루스"(περίπλους|periplousel)라고 불리는 항해기로, "On the Ocean"(『대양』)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90] 시켈리아의 디오도로스는 피테아스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주석이 거래되는 섬을 Ictis라고 칭하며, 엠포리움이 있다고 기록했다. 스트라본은 루아르 강 하구에 Corbulo라는 섬이 있고 거기에 엠포리움이 있으며,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피테아스와 브리튼의 관계가 깊다고 기록했다.[93] Ictis, Mictis, Corbulo가 같은 섬을 가리킨다면, 디오도로스가 티마이오스의 저서를 읽었고, 티마이오스와 폴리비오스도 피테아스의 저작을 읽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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