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 도모에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사와 도모에는 1960년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계 일본인 가수로, 1990년대 초 한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 일본어로 된 노래를 발표한 최초의 일본인 가수로 주목받았다. 도쿄 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으며, 음악 활동 외에도 한센병 요양소에서 무료 콘서트를 여는 등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녀는 찬송가, 흑인 음악, 가사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악적 특징을 가지며, 다양한 음반과 미디어 활동을 통해 활동하고 있으며, 여러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일본의 개신교도 - 미우라 아야코
일본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는 1964년 《빙점》으로 데뷔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발표하며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했으며, 결핵 투병 중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후 남편의 지원 속에 집필 활동을 이어가 대한민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일본의 개신교도 - 노구치 히데요
노구치 히데요는 1876년 일본에서 태어나 2살 때 화상을 입었지만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미국에서 매독과 황열병 연구를 수행하며 매독 스피로헤타를 발견하는 등 업적을 남겼지만 황열병으로 사망한 세균학자이다. - 도쿄 예술대학 동문 - 장수철 (음악가)
장수철은 숭실대학교와 중앙신학교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강사를 역임하고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을 창단하여 세계 순회공연을 지휘했으며, 킹스 칼리지 명예음악박사 학위와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은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 도쿄 예술대학 동문 - 권옥연
권옥연은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서양화가로, 앵포르멜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추상화를 그렸으며, 194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청회색 톤의 작품을 선보이고 무의자박물관을 운영하다 2011년 작고했다. - 일본의 여자 싱어송라이터 - 모리야마 료코
모리야마 료코는 1967년 데뷔하여 가수, 배우, 성우, 작사가, 작곡가, 라디오 퍼스널리티로 활동하며, 「금지된 사랑」으로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고, NHK 홍백가합전에 10회 출연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일본 레코드 대상, 예술선장 등을 수상했다. - 일본의 여자 싱어송라이터 - 야노 아키코
야노 아키코는 1955년 도쿄에서 태어난 일본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피아니스트로, 1976년 데뷔 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지브리 스튜디오 등과 협업하고 사카모토 류이치 등 유명 뮤지션과 협연하며 일본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와 도모에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沢 知恵 (사와 도모에) |
출생 | 1971년 2월 14일 |
출생지 |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
혈액형 | 불명 |
학력 | 오카야마 대학 대학원 교육학 연구과 석사 과정 수료 |
직업 | 싱어송라이터 |
장르 | 피아노 탄키어가 특징인 J-POP. 재즈, 록, 포크, 민요, 동요, 엔카, 찬송가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을 다룬다. |
활동 시작 | 1991년 |
레이블 | 코스모스 레코즈 |
제작 | 유한회사 코모에스타 |
웹사이트 | 사와 도모에 공식 웹사이트 |
2. 인물
1971년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사쿠라모토(현 가와사키구)에서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양친 모두 목사이다.[1] 아버지는 전후 최초로 한국에 유학한 일본인 목사 사와 마사히코(澤正彦, 1939년 ~ 1989년)이다.[2] 외할아버지는 한국에서 문화훈장을 수훈하고 일본에서는 기타하라 하쿠슈 등에게 높이 평가받아 『조선동요선』, 『조선민요선』, 『조선시집』(이와나미 문고) 등을 남긴 문학가 김소운(1907년 ~ 1981년)이다. 외할머니 김한림은 한국에서 '민주화의 어머니'로 불리며 정치범 가족을 지원했다.[2]
1971년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사쿠라모토(현 가와사키구)에서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모두 목사이다.[1] 아버지는 전후 최초로 한국에 유학한 일본인 사와 마사히코(澤正彦, 1939년 ~ 1989년)[2]이다. 외할아버지는 한국에서 문화훈장을 받은 문학가 김소운(1907년 ~ 1981년)으로, 일본에서는 기타하라 하쿠슈 등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조선동요선』, 『조선민요선』, 『조선시집』(이와나미 문고) 등을 남겼다. 외할머니는 한국에서 "민주화의 어머니"로 불리며 정치범 가족을 지원했던 김한림[2]이다.
사와 도모에의 음악은 크게 찬송가, 흑인 음악, 그리고 '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 앨범 ===
어린 시절부터 일본, 한국, 미국을 오가며 생활했고[1], 3개 국어를 익혔다. 1973년(2세)에는 한국 서울로 이주했고, 3세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2] 1977년(6세)에는 아버지의 유학에 동행하여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으로 이주했다.[1] 이곳에서 현대 음악과 가스펠, 흑인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1979년(8세)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불안정한 정세 속에 아버지가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여 출국 명령을 받았고, 가족은 도쿄 에도가와구로 이주하여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1] 이 기간 동안 소송이 된 일요 수업 참관 사건의 원고가 되었다.
1986년(15세) 도쿄도립 료고쿠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다시 아버지의 유학에 동행하는 형태로 미국으로 건너가[1]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 고등학교에 편입하여 재즈를 접하게 된다. 1987년(16세) 일본으로 돌아와 복학했고, 록 밴드를 결성하여 보컬을 맡았다.
1990년(19세) 도쿄 예술대학 음악학부 악리학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 라이브 하우스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것을 계기로 스카우트되어 음악 사무소와 계약했다.[1] 1991년(20세) 조지 듀크가 프로듀스한 앨범 〈토모에 싱스〉(BMG 빅터)로 데뷔했다. 이후 FM802, FM아이치, NACK5 등 여러 라디오 방송국에서 레귤러 프로그램을 다수 담당했다. 1995년(24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음악 - 이데올로기와 음악"이라는 졸업 논문이 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어 도쿄 예술대학을 졸업했다.
1996년(25세) 처음으로 한국 서울에서 콘서트를 개최했다. 1997년(26세)에는 유한회사 코모에스타를 설립했다. 1998년(27세)에는 NHK 교육 텔레비전의 '한글 강좌' 노래 코너에 레귤러로 출연했다. 같은 해, 한국 광주에서 열린 "KWANGJU JAPAN WEEK" 행사에서 일본 국적을 가진 가수로서는 전후 처음으로 한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 일본어로 노래했다. 허가된 곡은 외할아버지 김소운이 번역한 시에 곡을 붙인 こころ|마음일본어과 故郷|고향일본어이었다. 이 공로로 같은 해 제40회 일본 레코드 대상 아시아 음악상을 수상했다. 또한, 한국 KBS 텔레비전의 국민적 프로그램인 '열린음악회' 특집에 일본인으로서 처음 출연했다. 같은 해, 직접 펜을 든 계간 『코모에스타 프레스』를 창간했다(2008년 휴간).
1999년(28세)부터는 도쿄 시모키타자와의 라이브 클럽 라 카냐(La Cana)에서 계절마다 공연을 시작하여, 활동 거점으로 삼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0년(29세)에는 코스모스 레코즈를 설립하여, 이후 자작 작품은 모두 이 레이블에서 발표하고 있다.
2001년(30세)부터 매년 가가와현의 한센병 국립 요양소 오시마 세이쇼엔에서 무료 콘서트를 열고 있다.[1] 같은 해 피스보트에 참여하여 평양에서 노래했으며, 2002년(31세)에도 피스보트를 통해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노래했다.
2014년(43세) 지바현에서 오카야마현으로 이주했다. 2018년(47세)에는 오카야마 대학 대학원 교육학 연구과에 입학하여 "한센병 요양소의 음악 문화 연구"를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고[3], 2021년에 수료했다.[4] 현재 유한회사 코모에스타 대표이사 및 코스모스 레코즈, 토모에 기금 대표이다. 1남 1녀의 어머니다.
사와 도모에의 음악은 목사인 부모의 영향으로 접한 찬송가와 교회 음악, 미국 생활 중 접한 재즈, 소울 음악, 가스펠 등 흑인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시인이었던 외할아버지 김소운의 영향으로 가사의 의미와 전달력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3. 생애
어린 시절 일본, 한국, 미국 등지를 오가며 성장했고[1], 3개 국어를 익혔다. 1973년 (2세) 한국 서울로 이주했으며, 3세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2] 1977년 (6세) 아버지의 유학을 따라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으로 이주했다.[1] 이곳에서 피아노 교사를 통해 현대 음악을 접하고, 흑인 교회에서 가스펠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1979년 (8세)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아버지가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일로 인해 출국 명령을 받아 일본 도쿄도 에도가와구로 이주하여 중학교 졸업 때까지 거주했다.[1] 이 시기 일요 수업 참관 사건 소송의 원고가 되기도 했다.
1986년 (15세) 도쿄도립 료고쿠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다시 아버지의 유학에 동행하여 미국으로 건너가[1]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 고등학교에 편입하여 재즈를 접했다. 1987년 (16세) 일본으로 돌아와 복학하고, 록 밴드를 결성해 보컬을 맡았다.
1990년 (19세) 도쿄 예술대학 음악학부 악리학과에 입학했다. 라이브 하우스에서 연주하던 중 스카우트되어 음악 사무소와 계약했다. 1991년 (20세) 조지 듀크가 프로듀싱한 앨범 《토모에 싱스》(Tomoe Sings, BMG 빅터 발매)로 데뷔했다. FM802, FM아이치, NACK5 등 여러 라디오 방송의 고정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995년 (24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음악 - 이데올로기와 음악〉이라는 졸업 논문이 우수 논문으로 선정되며 도쿄 예술대학을 졸업했다.
1996년 (25세) 처음으로 한국 서울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1997년 (26세) 유한회사 코모에스타를 설립했다. 1998년 (27세) NHK 교육 텔레비전 "한글 강좌"의 노래 코너에 고정 출연했다. 한국 광주에서 열린 'KWANGJU JAPAN WEEK' 행사에서 일본 국적자로는 전후 처음으로 한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 일본어 노래를 불렀다. 당시 허가된 곡은 〈마음(こころ)〉과 〈고향(故郷)〉이었다. 같은 해 제40회 일본 레코드 대상 아시아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KBS의 열린음악회 특집에 일본인 최초로 출연했다. 또한 직접 글을 쓰는 계간지 《코모에스타 프레스》를 창간했다(2008년 휴간).
1999년 (28세) 도쿄 시모키타자와의 라이브 카페 라 카냐(La Cana)에서 계절별 공연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활동 거점으로 삼고 있다. 2000년 (29세) 자신의 레이블인 코스모스 레코즈를 설립하고, 이후 자신의 작품은 모두 이 레이블을 통해 발매하고 있다.
2001년 (30세) 가가와현의 한센병 국립요양소 오시마 청송원에서 첫 무료 콘서트를 열었으며, 이후 매년 방문하여 공연하고 있다.[1] 같은 해 피스보트에 참여하여 북한 평양에서 공연했다. 2002년 (31세) 다시 피스보트에 참여하여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노래했다.
2014년 (43세) 지바현에서 오카야마현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2018년 (47세) 오카야마 대학 대학원 교육학 연구과에 입학하여 "한센병 요양소의 음악 문화 연구"를 주제로 연구했다.[3] 2021년 과정을 수료했다.[4]
현재까지 28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유한회사 코모에스타 대표이사, 코스모스 레코즈 및 토모에 기금 대표를 맡고 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4. 음악성
'''찬송가'''
사와 도모에의 음악적 뿌리 중 하나는 찬송가를 포함한 기독교 교회 음악이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프로테스탄트 교회 목사였으며(아버지는 사와가 18세 때 별세),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며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찬송가를 접하고 불러왔다.[1] 이러한 배경은 그녀의 음악 전반에 영향을 미쳐, 남녀 간의 사랑이나 동요를 노래할 때에도 그 바탕에는 찬송가 특유의 투명함과 신에 대한 경외심, 경건함이 느껴진다.
'''흑인 음악'''
교회 음악과 더불어 사와 음악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은 재즈, 서울, 가스펠과 같은 흑인 음악이다. 조지 듀크가 프로듀싱한 1991년 데뷔 앨범 《토모에 싱스》(Tomoe Sings)나 1993년 두 번째 앨범 《블랙 컴플렉스》(Black Complex) 등 초기 작품에서는 이러한 흑인 음악의 색채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사와는 어린 시절과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미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데, 이때 흑인 교회에서 가스펠을 접하는 등 생생한 흑인 음악을 가까이했던 것이 그녀의 음악적 표현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1] 특히 그녀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그루비한 백 비트 중심의 뛰어난 리듬감에서는 한국계 혈통의 영향도 엿볼 수 있다.
'''말에 대한 고집'''
1990년대 후반부터 사와는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하며 노래하는 스타일을 추구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특히 '말/가사'의 표현력을 갈고 닦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노력의 중요한 계기가 된 곡은 조선의 서정 시인 김동명의 시를 그녀의 외할아버지이자 근대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김소운이 일본어로 번역한 시에 직접 곡을 붙인 「마음」이다. 이 곡은 1998년 한국에서 일본어 가사 그대로 발표된 첫 작품으로,[1] 제40회 일본 레코드 대상 아시아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와는 가사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지닌 의미, 울림, 그리고 이미지를 깊이 탐구하여 듣는 이에게 진솔하게 전달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는 동시대 일본 음악계에서 가장 의식적이고 독보적인 가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마도 미치오, 이바라키 노리코, 도와 가코, 타니카와 슌타로 등 여러 시인의 작품에 곡을 붙여 노래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전시 중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간 중국인들의 탈출 이야기를 다룬 이바라키 노리코의 장편 서사시를 노래한 앨범 《류리엔렌 이야기》(リュリエンレンの物語, 2007년)나, 이토 세이코의 포에트리 리딩과 협업하여 미얀마 군사 정권에 항의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 《QUIET》(2009년) 등은 말과 이야기의 힘에 대한 사와의 신념과 그녀의 음악 저변에 깔린 휴머니즘이 잘 드러나는 결과물이다.
'''커버곡 작업'''
사와 도모에는 다양한 곡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커버곡 작업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녀는 앨범과 라이브 공연을 통해 사다 마사시, 마츠다 세이코, 아라이 유미, 미소라 히바리, 시마쿠라 치요코, 나가부치 츠요시, 오구라 케이, 이즈미야 시게루, 몽골800, 블루 하츠, 야마구치 히로시(히트웨이브) & 소울 플라워 유니온, 오자키 유타카, 타케미츠 토루, 니나 시몬, 샘 쿡, 마빈 게이, 밥 딜런, 조니 미첼, 신디 로퍼, 캐롤 킹, 존 레논 등 일본 국내외 수많은 아티스트의 작품을 커버해왔다.
그녀의 커버는 일본 동요나 창가부터 포크, 펑크, 서양 팝, 소울, 찬송가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장르를 아우른다. 이러한 커버 작업에서도 그녀는 가사의 전달과 표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 결과 원곡이 가진 본래의 매력과 메시지가 원곡 가수 버전 이상으로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원곡 가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5. 음반 목록
=== 싱글 ===
=== 참여 앨범 ===
6. 미디어 출연
'''텔레비전'''
- NHK 가요 신인 콘테스트
- NHK 〈가족이 선택하는 일본의 노래〉
- NHK NHK 가요 콘서트 미소라 히바리 특집
- TV 아사히 제목 없는 음악회
- NHK 갑자기 클라이맥스 쇼
- NHK 스튜디오 파크에서 안녕하세요
- TV 아사히 "테츠코의 방"
- NHK 하트넷 TV "관여하지 않으면 ~ 싱어송라이터 사와 토모에"
'''라디오'''
- FM NACK5 "MISS BROADCAST" (1992년 10월 - 1993년 9월)
- RSK 라디오 "사와 토모에 일요일의 음악실" (2020년 4월 - )
7. CM 음악 제공
- 버퍼린: 작은 사랑의 노래
- 오므론 헬스케어: 인생의 선물
8. 저서
사와 도모에가 저술하거나 번역한 주요 서적은 다음과 같다.
구분 | 제목 | 저자/역자 | 그림 | 출판사 |
---|---|---|---|---|
번역 | 바부슈카의 선물 | 샌드라 앤 혼 (글) | 소피 파타스 | 일본 기독교단 출판국 |
공저 | 세계가 무대 | (공저) | 이와나미 주니어 신서 | |
저서 | 그것만으로 아름다워 | 사와 도모에 | 오쿠 카츠미 | 생명의 말씀사 |
저서 |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 사와 도모에 | 일본 기독교단 출판국 | |
번역 | 이새의 나무 크리스마스까지의 24가지 이야기 | 제럴딘 매코클랜 (글) | 이케가야 요코 | 일본 기독교단 출판국 |
저서 | 나의 가스펠 크로니클 | 사와 도모에 | 신교출판사 |
9. 관련 인물
참조
[1]
웹사이트
思い込め「こころ」を生きる 歌手沢知恵さん
https://www.mindan.o[...]
2022-11-09
[2]
웹사이트
沢知恵さんのコンサートを聴いて
https://www.keisen.a[...]
2022-11-09
[3]
웹사이트
歌手ママ 沢 知恵「ハンセン病療養所の音楽文化研究」で大学院を修了したい
https://camp-fire.jp[...]
2022-11-09
[4]
웹사이트
Profile
https://comoesta.co.[...]
2024-05-3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