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스 발차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아그네스 발차는 그리스 출신의 저명한 메조소프라노 성악가이다. 1968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에서 데뷔했으며,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궁정가수와 명예 회원으로 활동했다. 모차르트, 로시니, 베르디 등 다양한 작곡가의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특히 비제의 《카르멘》은 대표적인 배역으로 꼽힌다. 또한, 베토벤, 말러 등의 콘서트에도 출연했으며, 그리스 민요 가수로도 활동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그리스의 오페라 가수 - 마리아 칼라스
마리아 칼라스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오페라 가수 중 한 명으로, 폭넓은 음역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벨칸토 오페라를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그리스계 미국인 소프라노이다. - 그리스의 여자 배우 - 소피아 밀로스
스위스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와 그리스 혈통의 배우이자 모델인 소피아 밀로스는 10대 시절 모델 활동을 시작해 텔레비전 드라마 단역 출연 후 《[[CSI: 마이애미]]》의 옐리나 살라스 형사 역으로 인지도를 얻었으며, 영화 출연과 더불어 킴벌리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 그리스의 여자 배우 - 마리넬라
마리넬라는 1957년 데뷔하여 다양한 앨범과 공연으로 인기를 얻은 그리스의 가수이자 배우이며, 스텔리오스 카잔치디스와 협업하고 국제 대중가요 페스티벌에서 4위를 차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아그네스 발차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Aγνή Mπάλτσα (아그니 발차) |
출생일 | 1944년 11월 19일 |
출생지 | 레프카다 섬 |
국적 | 그리스 |
직업 | 성악가(메조소프라노) |
활동 분야 | 오페라 가수 배우 |
모교 | 아테네 음악원 |
2. 생애
그리스 레프카스섬에서 태어나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이후 성악에 전념했다. 1958년 부모와 함께 아테네로 이주하여 1965년까지 아테네 음악원에서 누누카 프라가-스피리오풀로스에게 성악을 배웠다.[7] 1965년 마리아 칼라스 장학금을 받아 독일 뮌헨으로 유학하여 셰너에게 배웠고[7], 프랑크푸르트에서는 헤르베르트 참파인에게 사사받았다.
그리스 출신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는 1968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극장에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케루비노 역으로 데뷔하며 국제적인 경력을 시작했다. 이듬해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옥타비안 역을 당시 최연소로 맡아 주목받았다.[7]
1968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에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케루비노 역으로 데뷔했다. 이듬해인 1969년에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중 옥타비안 역을 맡았는데, 이는 당시 최연소 옥타비안 역 기록이었으며, 이 역할은 그녀가 즐겨 부르는 배역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시기 그녀는 남성 역할을 맡는 이른바 "바지 역" 가수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70년부터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도를 받으며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정기적으로 참여했다. 발차는 베토벤의 장엄 미사 녹음 오디션에서 카라얀을 만났으며, 카라얀은 그녀의 음악적 성장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된다. 카라얀의 지휘 아래 발차는 잘츠부르크 음악제와 잘츠부르크 부활절 음악제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중 헤로디아스, 비제의 카르멘 타이틀 롤, 베르디의 돈 카를로 중 에볼리 공녀(1986년) 등 주요 역할을 맡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그녀의 활동 무대는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미국의 여러 오페라 극장(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포함),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극장,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취리히 오페라 극장, 파리 오페라 극장 등으로 확장되었다. 그녀의 레퍼토리는 모차르트(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 로시니(세비야의 이발사, 라 체네렌톨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마스카니(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베르디(아이다, 운명의 힘, 일 트로바토레, 돈 카를로, 레퀴엠), 벨리니(카풀레티가와 몬테키가), 도니체티(종지기, 마리아 스투아르다) 등 다양하다.
특히 카르멘의 타이틀 롤은 그녀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대표적인 역할이다. 돈 호세 역의 호세 카레라스와의 공연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듀엣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녀의 자유분방하고 강렬한 연기와 노래는 동양적인 외모를 강조한 분장과 어우러져, 섬세한 카레라스의 돈 호세와 인상적인 대비를 이루었다. 이후 플라시도 도밍고, 닐 쉬코프와도 여러 차례 카르멘을 공연했다.
1979년에는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일본 공연에 동행하여 베르디의 레퀴엠 독창자로 참여했다. 1980년에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궁정가수(Kammersängerin) 칭호를 받았고, 1988년에는 이 극장의 명예 단원이 되었다.
1985년에는 도니체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에서 엘리자베타 역을 맡아 에디타 그루베로바와 함께 아담 피셔의 지휘로 오스트리아 초연 무대에 섰다. 1987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장 피에르 포넬 연출,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로 공연된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중 이사벨라 역 역시 그녀의 대표적인 역할 중 하나이다. 발차는 야나체크의 예누파 중 코스텔니치카(브루히의 할머니), 베르디의 돈 카를로 중 에볼리 공녀, 비제의 카르멘 타이틀 롤이 자신의 경력에서 중요한 세 역할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역할들은 심리적으로 깊이 있는 인물들이며, 이 시기를 거치며 그녀는 초기의 "바지 역" 이미지를 벗어나게 되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올림픽 기 입장 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한 올림픽 찬가 '헬레니즘'을 불렀다. 같은 해 ORF는 그녀가 주연한 서스펜스 드라마 '듀엣'(''Duett'')을 제작했는데, 여기서 발차는 과거 비밀 정보기관 활동 때문에 협박받는 헝가리 오페라 가수 역을 오토 쉥크, 카를하인츠 하클과 함께 연기했다.
1999년 빈 페스티벌(Wiener Festwochen)에서는 오랫동안 부르지 않았던 R. 슈트라우스의 박쥐 중 오를로프스키 공작 역을 다시 맡았다. 2000년 2월에는 취리히 오페라 극장에서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함께 코지 판 투테의 데스피나 역으로 성공적인 무대를 가졌다. 같은 해,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일본 투어 공연에서는 이전에 포기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나크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중 작곡가 역을 다시 맡아 공연했다. 이는 1985년 같은 역할로 큰 성공을 거두었던 발차에게 극장 측이 특별히 요청한 것이었다. 이 공연에는 에디타 그루베로바, 셰릴 스튜더가 함께 출연했고 주세페 시노폴리가 지휘했다.
2001년 3월, 스페인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레알에서 바그너의 파르지팔 중 쿤드리 역으로 매우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카라얀, 무티 등 여러 지휘자들이 그녀에게 쿤드리 역을 제안했지만, 오랫동안 고심 끝에 2001년에야 이 역할을 맡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이 공연에는 플라시도 도밍고, 마티 살미넨, 프란츠 그룬트헤버가 함께 출연했다. 2002년 2월에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야나체크의 예누파 중 코스텔니치카 역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이 외에도 조르다노의 '페도라', 마스네의 '에로디아드', 마이어베어의 '예언자' 중 피데스 역 등을 레퍼토리에 추가했다.
2017년 10월 15일, 새로 개관한 아테네의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재단 문화 센터에서 열린 그리스 국립 오페라 극장 오프닝 공연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 중 클리템네스트라 역을 맡아 고국 무대에 복귀했다.
개인적으로는 1974년 베이스 가수 귄터 미센하르트(1938년생)와 결혼했다.[7]
3. 주요 활동 및 업적
1970년부터는 명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도를 받으며 잘츠부르크 음악제 등 주요 무대에서 활약했고, 이는 그녀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7] 이후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 코번트 가든, 파리 오페라 극장 등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에서 강렬한 연기와 개성 있는 목소리로 명성을 쌓았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했지만, 특히 비제의 《카르멘》 타이틀 롤은 그녀의 대표적인 배역으로, 호세 카레라스와의 공연은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녀는 뛰어난 활동을 인정받아 1980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궁정가수(Kammersängerin) 칭호를 받았고, 1988년에는 명예 단원이 되었다.[7]
오페라 외에도 콘서트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 찬가를 부르고 같은 해 영화 '듀엣'(''Duett'')에 출연하는 등 다방면에서 업적을 남겼다. 또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등의 작품을 포함한 그리스 음악을 알리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녀의 상세한 오페라 활동과 콘서트 및 기타 활동은 아래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1. 오페라
그리스 레프카스섬 출신으로,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나 후에 성악에 전념했다. 1958년부터 1965년까지 아테네 음악원에서 누누카 프라가-스피리오풀로스에게 성악을 공부했으며[7], 1965년 마리아 칼라스 장학금을 받아 독일 뮌헨으로 유학하여 셰너에게 사사받았다.[7] 프랑크푸르트에서도 헤르베르트 참파인에게 수학한 후,[7] 1968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극장에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 케루비노 역으로 데뷔했다. 이듬해 1969년(자료에 따라 1970년[7])에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의 옥타비안 역을 불렀는데, 이는 당시 최연소 옥타비안 기록이었으며[7] 이른바 "바지 역" 가수로 알려지게 되었다. 옥타비안은 이후 그녀가 즐겨 부르는 역이 되었다.
1970년부터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도를 받았으며[7], 카라얀은 베토벤의 장엄 미사 오디션을 통해 만난 이후 그녀에게 특히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의 지휘 아래 잘츠부르크 음악제와 잘츠부르크 부활절 음악제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의 헤로디아스, 비제의 《카르멘》 타이틀 롤, 베르디의 《돈 카를로》(1986년)의 에볼리 공녀 등을 연기했다.
그녀의 경력은 빠르게 발전하여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 미국의 여러 오페라 하우스(특히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극장, 런던의 코번트가든 왕립오페라극장, 취리히 오페라 극장, 파리 오페라 극장 등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동하며 강렬한 연기와 개성 있는 노래로 명성을 얻었다.
처음에는 모차르트 등 독일 오페라로 경력을 시작했으나, 점차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 베르디 등 이탈리아 오페라의 주요 배역들을 레퍼토리에 추가했다. 그녀의 레퍼토리는 모차르트(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 로시니(세비야의 이발사, 라 체네렌톨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마스카니(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베르디(아이다, 운명의 힘, 일 트로바토레, 돈 카를로), 벨리니(카풀레티와 몬테키), 도니체티(일 캄파넬로, 마리아 스투아르다) 등 다양하다.
그러나 그녀를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게 만든 역할은 비제의 《카르멘》 타이틀 롤이다. 특히 돈 호세 역의 호세 카레라스와의 호흡은 전례 없이 훌륭한 듀엣으로 평가받으며 전 세계적인 극찬을 받았다. 카르멘 역에서 그녀의 자유분방하고 농후한 노래와 연기는 동양적인 용모를 강조한 메이크업과 어우러져, 섬세한 카레라스의 돈 호세와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그녀는 플라시도 도밍고, 닐 쉬코프와도 여러 차례 카르멘을 공연했다.
1980년 아그네스 발차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궁정가수(Kammersängerin)가 되었고, 1988년에는 이 오페라 하우스의 명예 단원이 되었다.[7] 1985년에는 도니체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에서 엘리자베타 역을 에디타 그루베로바와 함께 아담 피셔 지휘로 오스트리아 초연했다. 1987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장 피에르 포넬 연출,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로 공연한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의 이사벨라 역은 그녀의 대표적인 역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야나체크의 예누파의 코스텔니치카(Kostelnička, 원문은 브루히의 할머니로 오기), 베르디의 돈 카를로 에볼리 공녀, 비제의 카르멘 타이틀 롤 세 역할이 자신의 경력을 결정지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조르다노의 《페도라》, 마스네의 《에로디아드》(빈 국립 오페라 극장 실황 녹음 발매), 마이어베어의 《예언자》의 피데스 역 등을 레퍼토리에 추가했다. 1999년 빈 페스티벌 주간(Wiener Festwochen)에서는 오랫동안 부르지 않았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박쥐》의 오를로프스키 공작 역을 다시 불렀다.
2000년 2월에는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함께 취리히 오페라 극장에서 《코지 판 투테》의 데스피나 역을 성공적으로 불렀다. 같은 해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일본 투어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나크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의 작곡가 역을 재공연했다. 이는 1985년 빈 국립 오페라 극장과의 공연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역할로, 극장 측의 특별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이 공연에는 에디타 그루베로바, 셰릴 스튜더가 함께 출연했고 주세페 시노폴리가 지휘했다.
2001년 3월에는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레알에서 바그너의 《파르지팔》의 쿤드리 역으로 매우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이 역할은 카라얀, 리카르도 무티 등 거장 지휘자들이 오랫동안 그녀에게 제안했지만, 오랜 고심 끝에 맡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이 공연에는 플라시도 도밍고, 마티 살미넨, 프란츠 그룬트헤버가 함께 출연했다. 2002년 2월에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야나체크의 《예누파》의 코스텔니치카 역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2017년 10월, 새로운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재단 문화 센터에서 열린 그리스 국립 오페라 개관 공연에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에서 클리템네스트라 역으로 출연하여 개선 공연을 펼쳤다.
주요 오페라 배역3. 2. 콘서트 및 기타 활동
발차는 오페라 무대뿐만 아니라 콘서트와 다른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주요 콘서트 출연 및 기타 활동은 다음과 같다.
'''콘서트 활동'''
연도 | 작품 | 지휘자/오케스트라 | 비고 |
---|---|---|---|
1978년 | 말러 교향곡 8번 | [7] | |
1979년 | 베토벤 교향곡 9번 | [7] | |
1979년 | 베르디 레퀴엠 |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일본 공연 솔리스트[7] |
1980년 | 베르디 레퀴엠 | [7] | |
1983년 | 로시니 스타바트 마테르 | [7] | |
1984년 | 베르디 레퀴엠 | [7] | |
1985년 | J.S. 바흐 b단조 미사 | [7] | |
1987년 | 모차르트 레퀴엠 | 카라얀 추도[7] | |
1992년 | 말러 대지의 노래 | 클라우스 텐슈테트 /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레코딩 (테너: 클라우스 쾨니히)[7] |
2001년 5월 | 다양한 콘서트 | 오스트리아, 독일[7] |
'''기타 활동'''
-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 올림픽 기 입장에 맞춰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한 올림픽 찬가 "헬레니즘"을 불렀다.
- 영화 출연: 1992년 ORF가 제작한 서스펜스 드라마 '듀엣'(''Duett'')에서 오토 쉥크와 카를하인츠 하클과 함께 출연하여, 과거 비밀 정보 기관 활동 때문에 협박받는 헝가리 오페라 가수 역할을 연기하였다.
- 그리스 음악: 클래식 오페라 외에도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나 마노스 하지다키스 같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포함한 그리스 음악 가수로도 명성을 얻었다. 2004년 봄 일본 방문 시 도쿄에서 그리스 민요와 포크송을 부르기도 하였다.
4. 수상 및 명예
- 1980년: 궁정가수 (오스트리아)[6]
- 1988년: 명예 회원 (빈 국립 오페라)
- 1993년: 회원 (유럽 예술 과학 아카데미)
- Prix du Prestige Lyrique|프릭스 뒤 프레스티지 리리크fra
- 독일 음반상
- 빈 시 금메달
- 아테네 시 금메달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상
5. 평가
아그네스 발차는 초기에 모차르트 등 독일 오페라를 중심으로 경력을 시작했으나, 점차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 베르디 등 이탈리아 오페라로 영역을 넓혀 다양한 주요 역할을 소화했다.[7] 그녀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타이틀 롤이었다. 특히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한 공연에서 보여준 자유분방하고 강렬한 연기와 노래는 그녀의 동양적인 외모와 어우러져 큰 호평을 받았으며, 섬세한 카레라스의 돈 호세와 인상적인 대비를 이루었다.[7]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의 만남은 발차의 음악적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카라얀은 베토벤의 장엄 미사 녹음 오디션을 통해 그녀를 발탁했으며, 이후 그의 지휘 아래 잘츠부르크 음악제와 잘츠부르크 부활절 음악제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중 헤로디아스, 베르디의 돈 카를로 중 에볼리 공녀 등 중요한 역할을 맡아 음악적 깊이를 더했다.[7]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은 그녀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1970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에서 당시 최연소로 옥타비안 역을 맡아 주목받았으며, 1980년에는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궁정가수(Kammersängerin) 칭호를 받았고, 1988년에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명예 단원으로 선정되었다.[7] 발차 스스로 자신의 경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역할로 야나체크의 예누파 중 코스텔니치카, 베르디의 돈 카를로 중 에볼리 공녀, 그리고 비제의 카르멘을 꼽았는데, 이들은 모두 심리적으로 복잡하고 깊이 있는 여성상을 보여주는 역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7] 1987년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장 피에르 포넬 연출로 공연된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중 이사벨라 역 또한 그녀를 대표하는 성공적인 역할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7]
오페라 무대 외에도 콘서트 가수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말러, 베토벤, 베르디, 로시니, 바흐 등 다양한 작곡가의 주요 성악곡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특히 1992년 클라우스 텐슈테트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말러의 대지의 노래는 명반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7] 또한 클래식 레퍼토리뿐만 아니라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마노스 하지다키스와 같은 그리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노래하며 그리스 현대 음악을 알리는 데에도 기여했다.[7]
참조
[1]
웹사이트
When Agni Baltsa sang Stavros Xarchakos
https://www.ogdoo.gr[...]
2023-09-05
[2]
웹사이트
Μπάλτσα Αγνή - Εθνική Λυρική Σκηνή
https://virtualmuseu[...]
2024-04-18
[3]
뉴스
Athens Festival - New look for familiar favourites
1984-09-26
[4]
뉴스
Review of Samson Et Dalila at Covent Garden
1985-05-20
[5]
웹사이트
Ο θρίαμβος της Ηλέκτρας
https://www.andro.gr[...]
2017-10-23
[6]
웹사이트
Συντελεστές
https://www.tch.gr/d[...]
2024-04-18
[7]
웹사이트
OPERISSIMO
https://web.operissi[...]
2020-08-23
[8]
웹사이트
Amazon.co.jp : アグネス・バルツァ
https://www.amazon.c[...]
2020-08-2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