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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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악은 중국에서 유래하여 한국에 전래된 궁중 음악으로, 고려 시대에 처음 도입되었다. 송나라에서 고려로 아악이 전해졌으며, 조선 세종 때 박연에 의해 중국 주나라 제도를 참고하여 아악을 정비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쇠퇴했으나, 현재는 국립국악원에서 보존 및 전승되며 문묘 제례악 등 특정 의식에서 연주된다. 아악은 편종, 편경 등 중국 고대 악기로 편성되며, 느린 속도로 연주되고 문묘일무라는 춤이 수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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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악 | |
|---|---|
| 기본 정보 | |
| 한자 표기 | 雅樂 |
| 로마자 표기 | Aak |
| 분야 | 한국 음악 |
| 종류 | 궁중 음악 |
| 관련 용어 | 향악, 당악 |
| 설명 | 한국의 궁중 음악 중 하나로, 중국에서 유래된 아악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음악이다. 제례악과 연례악으로 나뉜다. |
| 역사 | |
| 기원 | 중국 송나라 시대의 음악을 수입하여 한국적으로 변형 |
| 사용 시기 |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궁중 행사에서 사용 |
| 특징 | |
| 악기 | 편경, 편종, 특경, 특종, 건고, 절고, 축, 어, 방향, 당피리, 대금, 해금, 아쟁, 생, 소, 훈, 지, 약, 우, 퉁소 등 |
| 음악 형식 | 느리고 장중하며, 음계는 5음계를 기본으로 한다. |
| 연주 목적 | 제사 의식, 연회 등 궁중 행사 |
| 종류 | |
| 제례악 | 문묘 제례악, 종묘 제례악 |
| 연례악 | 보태평, 정대업 |
| 현대적 의의 | |
| 전승 | 국립국악원에서 아악을 전승하고 있으며,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
| 영향 | 한국 전통 음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현대 음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
2. 역사
한국 아악의 역사는 여러 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문무왕 4년(664년)에 당악을 배우게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12] 『송사』에는 고려 시대에 북송 휘종이 제정한 대성악이 전래되었다고 하나, 상세한 내용은 불분명하다.[13]
조선 세종은 박연에게 명하여 고려 시대에 들어온 송악을 정리하고, 당나라 시대의 아악을 연구하여 복원하도록 했다.[14] 성종 때에는 『악학궤범』(1493년)이 편찬되어 궁중 음악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10] 그러나 임진왜란과 여진의 침입으로 국력이 약화되면서 아악은 축소되었다.[15] 고종은 세종 시대의 아악을 부활시키려 노력했으나, 대한제국이 멸망하면서 궁중 음악은 쇠퇴하게 되었다.[14]
대한제국 시기 궁내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궁내성 산하 이왕직으로 개편되어 명맥을 유지했지만, 규모는 축소되었다.[17] 이왕직 소속 아악대(1925년부터 아악부)가 아악을 관할했으며,[18] 1919년에는 아악부원 양성소가 설치되었다.[20] 1928년부터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고,[22] 1940년에는 기원 2600년 기념 행사를 위해 "황화만년지무", "황화만년지곡"이 만들어졌다.[25]
대한민국에서는 이왕직 아악부를 모체로 국립국악원이 1951년에 창립되어 전통 음악 전반을 관장하고 있으며, 아악은 이 기관에서 다룬다.[15][16]
2. 1. 한국의 아악
1116년, 고려 예종에게 송나라 휘종 황제가 대량의 악기, 의상, 의례 무용 도구 등을 선물하면서 중국에서 한국으로 아악이 전해졌다.[1][2] 아악은 한국 궁중 음악의 세 가지 유형 중 하나로, 당악, 향악과 함께 연주되었다. 아악은 중국에서 유래되었으며, 사용되는 악기 또한 대부분 중국에서 온 것이다. 다른 종류의 전통 한국 음악에는 이러한 악기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7] 아악은 처음 고려 시대에는 궁중 의례 음악으로 종묘에서 연주되었으며, 이후 유교 의례를 위한 음악으로 그 의미가 좁혀졌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아악은 당악과 향악을 포함하는 세련되고 우아한 모든 종류의 음악을 의미하기도 한다.[4]조선 세종은 박연(1378-1458)에게 명하여 고려 시대에 들어온 송악을 정리하고, 당나라 시대의 아악을 연구하여 복원하도록 했다.[14] 이 시기에 궁중 음악의 기초가 확립되었지만, 박연의 개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10]
성종 때에는 『악학궤범』(1493년)이 편찬되어 궁중 음악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10] 그러나 임진왜란과 여진의 침입으로 국력이 약화되면서 아악은 축소되었다.[15] 고종은 세종 시대의 아악을 부활시키려 노력했으나, 대한제국이 멸망하면서 궁중 음악은 쇠퇴하게 되었다.[14]
대한제국 시기 궁내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궁내성 산하 이왕직으로 개편되어 명맥을 유지했지만, 그 규모는 축소되었다.[17] 한일 병합 조약 이후 궁중 행사가 축소되면서 일반 공모를 통해 선발된 악사들이 여러 역할을 겸하게 되었다.[19] SP 레코드 93매가 발매되기도 했다.[23]
현재 아악은 국립국악원 단원들이 연주하고 있다.[7]
2. 1. 1. 아악의 도입
1116년(고려 예종 11년) 송나라 휘종이 고려에 대성아악(大晟雅樂)을 보내면서 아악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1][2] 이때 편종, 편경, 축, 어 등 희귀한 중국 고대 악기들이 함께 들어왔다. 아악은 4자 1구, 8구 1장으로 된 한문 악장(漢文樂章)의 노래를 연주하는 음악이었다. 초기에는 종묘 제례에서 처음 채택되어 연주되었으며, 고려 의종 때에는 원구, 사직, 선농, 태묘, 문선왕묘, 선잠 등 다른 제례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1188년(고려 명종 18년) 당시에는 아악만 사용되지 않고 향악이 섞여 연주되었기 때문에, 고려의 아악은 아직 미비한 점이 있었다.2. 1. 2. 대성아악
1116년(고려 예종 11년) 송나라 휘종이 고려에 아악(大晟雅樂)을 보내왔다.[1] 이때 편종, 편경, 축, 어와 같은 희귀한 중국 고대 악기들이 함께 들어왔으며, 4자 1구, 8구 1장으로 된 한문 악장(漢文樂章)의 노래를 연주하는 아악이 종묘에서 처음으로 채택되었다.송나라 대의 아악은 송 태조 때부터 휘종 때까지 6회에 걸쳐 수정되었다. 1105년에는 구악(舊樂)을 사용하지 않고 대성부(大晟府)를 세워 아악을 관장하게 하였다. 고려에는 1116년(고려 예종 11년) 송 휘종이 사신 왕자지, 문공미 편으로 대성아악을 보내왔다.
이후 조선 세종 때 박연 등이 중국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의 전적을 참고하여 중국 주나라 제도에 가깝게 아악을 새로 제정하였다.[3]
2. 2. 조선 전기의 아악
고려 때부터 쓰여온 아악은 악기·제도·악률 등에서 여러 가지 불비한 점이 있었으므로, 세종 때 박연 등이 《주례》, 《석전악보(釋奠樂譜)》 등 중국 고대 악서(樂書)를 참고하여 아악을 엄격하게 바로 잡았다.[14]- 고려 때 제례악에 아악만을 쓰지 않고 아헌(亞獻)·종헌(終獻)과 송신(送神)에 향악을 섞어 쓰던 것을 세종 10년부터 그 향악을 없애고 순전히 아악만을 썼다.
- 전에는 등가(登歌)와 헌가(軒架)의 음악이 모두 양률(陽律)의 궁(宮, 중심음)만을 썼었는데, 세종 12년경에 《주례》에 따라 등가에는 음려(陰呂)의 궁, 헌가에는 양률의 궁을 써서, 음양지합(陰陽之合) 또는 합성(合聲)의 격에 맞게 고쳤다.
- 세종 9년에 박연이 처음으로 율관과 편경을 국내에서 제작하였다.
- 제례에 사용되었던 아악곡, 즉 봉상시에 전래된 《조선국악장(朝鮮國樂章)》은 그 출처가 미심하여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하여, 세종 12년에 그것을 버리고, 임우(林宇)의 《대성아악보(大成雅樂譜)》를 바탕으로 새로 아악보를 제정하고 그것을 제례악으로 사용하였다. 이 혁신된 아악곡이 오늘날까지 연주되고 있다.
- 그전에는 조하(朝賀)와 회례(會禮)에 당악과 향악이 사용되었는데, 세종 12년에는 《의례시악경전통해(儀禮詩樂經傳通解)》의 소아편(小雅篇)의 악보에 기하여 조하에 쓸 아악보(雅樂譜)를 제정하고, 세종 13년 정월에 처음으로 조하에서 당악 대신에 아악 《융안지악(隆安之樂)》, 《서안지악(舒安之樂)》이 연주되었고, 세종 15년 정월에 회례에서 당악과 향악에 아악 《문명지곡(文明之曲)》, 《무열지곡(武烈之曲)》이 추가 연주되었다.
이같이 세종 때에는 아악이 제례에서 조하, 회례에까지 확장되었지만 세종 이후 다시 중국제도의 제례에만 국한되었고, 조회와 회례에서는 다시 후퇴하였다.
2. 3. 조선 후기의 아악
임진왜란(1592년)과 병자호란(1636년) 두 차례의 외침으로 궁중음악은 큰 타격을 받았다. 병자호란 이후 국력이 약해져 10년 동안 종묘제향을 비롯한 모든 제향과 조정 의식에서 음악이 빠졌다가, 1647년 인조 25년에야 겨우 종묘제향에 이전처럼 음악이 사용되었다. 인조 때 제례 아악의 규모는 헌가(軒架) 22인, 등가(登歌) 20인으로, 성종 때의 헌가 124인, 등가 64인에 비해 매우 작았으며, 이후에도 크게 회복되지 못하였다.2. 4. 대한민국의 아악
오늘날 아악은 문묘 제례악에서만 쓰인다.[1] 편종, 편경, 금, 슬, 지, 훈, 부, 어 같은 희귀한 중국 고대 악기로 편성되었다.[1] 12율 4청성으로 제한해 쓰고 7음계로 되었으며, 주음(主音)으로 시작해서 주음으로 마친다. 4/2박자에 8소절로 한 곡을 이룬다.현재 이 음악은 대한민국 국립국악원의 단원들이 연주한다.[7]
3. 특징
아악은 한국 전통 음악과 구별되는 독특한 악기 편성과 연주 방식을 가지고 있다. 악기 편성은 편종, 편경, 금, 슬, 지, 훈, 부, 어와 같이 희귀한 중국 고대 악기를 포함한다. 12율 4청성으로 제한하여 사용하며, 7음계로 구성되어 있다. 주음(主音)으로 시작해서 주음으로 끝나는 특징을 보인다.
3. 1. 연주 방식
아악은 매우 느리게 연주된다. 각 음표는 약 4초 동안 길게 이어지며, 관악기는 음표의 끝에서 음높이가 높아지는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7]문묘제례악에는 '문묘일무'라고 불리는 춤이 수반될 수 있다.[6] 문묘일무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8x8 대형으로 64명의 무용수가 추는 "문무"이고, 다른 하나는 "무무"이다.[7][6]
3. 2. 악기 편성



오늘날에는 문묘 제례악에서만 쓰인다. 편종, 편경, 금, 슬, 지, 훈, 부, 어 같은 희귀한 중국의 고대 악기로 편성되었다. 12율 4청성으로 제한해 쓰고 7음계로 되었다. 주음(主音)으로 시작해서 주음으로 마친다.
3. 3. 종류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전통 음악을 통칭하여 "국악"이라고 하며, 이를 궁중이나 지식 계층 사이에서 연주된 "정악"과 일반 서민의 "민속악"으로 나눈다. 아악은 정악 중 중국을 기원으로 하는 궁정 음악을 말한다.[8]주요 아악으로는 문묘악과 종묘악이 있으며,[9] 그 외에 연례악과 군례악이 있다.[9]
4. 현대의 아악
오늘날 아악은 국립국악원에서 보존 및 전승하고 있다.[15][16] 주로 문묘제례악과 종묘제례악 등 특정 의식에서 연주된다.[9]
음악은 현재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으며, 특히 공자를 기리기 위해 서울 성균관대학교 경내의 문묘에서 매년 봄과 가을에 열리는 석전대제를 비롯한 특정 의식에서만 연주된다.[5] 특별한 콘서트에서도 연주될 수 있다.
두 개의 기악 앙상블이 있는데, 하나는 본당의 툇마루에 위치한 "헌가" 앙상블이고, 다른 하나는 본당 건물 앞 정문 근처에 위치한 "등가" 앙상블이다. 음악 연주 또는 ''문묘제례악''에는 ''문묘일무''라고 불리는 춤이 수반될 수 있다.[6]
현대 ''아악''의 레퍼토리는 단 두 개의 다른 생존 멜로디로 구성된다. 두 곡 모두 연주 시 약 4분 동안 지속되는 32개의 음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중 하나는 여러 조옮김으로 연주된다. 음악은 매우 느리게 연주된다. 각 음표는 약 4초 동안 길게 끌어지고, 관악기는 음표의 끝에서 음높이가 높아져 독특한 특징을 부여한다.[7]
주요한 아악은 제례악으로, 문묘악과 종묘악이 있다.[9] 문묘악은 공자묘의 제례(석전)의 음악이고, 종묘악은 종묘 제례악의 음악이다.[10]
5. 주요 인물
이주환
참조
[1]
웹사이트
Korean Music
http://www.worldmusi[...]
2005-03-27
[2]
서적
Music A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Policy Ideology and Practice in the Preservation of East Asian Traditions
https://books.google[...]
Ashgate
[3]
논문
The Treatise on Ceremonial Music (1430) in the Annals of the Korean King Sejong
1974-01
[4]
웹사이트
Korean ritual music
http://www.sapaan.co[...]
2004-06-05
[5]
서적
World Musics in Context: A Comprehensive Survey of the World's Major Musical Cultures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6]
뉴스
Confucius to be honored in ancient ceremony
https://www.koreatim[...]
2016-03-14
[7]
서적
The Concise Garland Encyclopedia of World Music, Volume 2
https://books.google[...]
Routledge; 1 edition
[8]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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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서적
『新版 韓国 朝鮮を知る事典』p.175「国楽」
[10]
문서
兼常(2008) pp.356-361
[11]
문서
山本(2012) pp.136-137
[12]
문서
『三国史記』新羅本紀巻6「(文武王四年)遣星川・丘日等二十八人於府城、学唐楽。」
[13]
문서
『宋史』楽志四「(政和七年二月)中書省言、高麗賜雅楽、乞習教声律・大晟府撰楽譜辞。」
[14]
문서
田辺(2014) pp.340-345
[15]
서적
『新版 韓国 朝鮮を知る事典』pp.48-51「音楽」
[16]
문서
山本(2012) pp.16-1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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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문서
山本(2012) p.232
[22]
문서
山本(2012) pp.102-1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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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Korean Music
http://www.worldmusi[...]
2005-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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