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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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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이슬란드인은 아이슬란드 섬에 거주하는 민족으로,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온 바이킹의 후손이 주를 이룬다. 아이슬란드어는 고립된 환경으로 인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다른 언어와 소통이 어렵다. 지리적 고립과 제한적인 이민으로 인해 유전적으로 동질성을 유지하며, 유전학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아이슬란드는 930년 알싱기 설립, 1262년 노르웨이 지배, 1380년 덴마크 지배를 거쳐 1918년 독립 왕국이 되었고, 1944년 공화국을 수립했다. 아이슬란드 문화는 아이슬란드어, 고대 문학, 기독교, 전통 요리, 공연 예술, 스포츠 등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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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란드는 라이프 에이릭손이 북아메리카 일부 지역에 붙인 이름으로, "포도주 땅" 또는 "목초지"를 뜻하는 고대 노르드어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랑스 오 메도스 유적 발견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위치는 여전히 불확실하며, 사가 기록과 고고학적 발견에도 불구하고 여러 미스터리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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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인
지도 정보
기본 정보
민족아이슬란드인
로마자 표기Íslendingar
인구388,900명
주요 거주 지역아이슬란드 321,246명
기타 거주 지역덴마크 9,308명
노르웨이 8,274명
스웨덴 5,454명
미국 42,716명
영국 2,225명
독일 1,802명
프랑스 1,500명
스페인 1,122명
캐나다 101,795명
브라질 1,046명
오스트레일리아 980명
폴란드 492명
핀란드 223명
기타 국가 약 3,000명
언어아이슬란드어
종교루터교 (주로 아이슬란드 교회)
네오-이교 (아사트루아르펠라기드)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등 소수 종교
세속주의
역사적으로 노르드 신화와 가톨릭교회 (약 1000년~1551년)
관련 민족노르웨이인
덴마크인
스웨덴인
페로 제도인
아일랜드인
스코틀랜드인
세계 아이슬란드인 분포 지도
세계 아이슬란드인 분포 지도
아이슬란드인의 기원
민족 구성스칸디나비아인 (주로 노르웨이인)
켈트족 (스코틀랜드인 및 아일랜드인)
유전적 다양성상대적으로 낮은 유전적 다양성
다른 유럽인들에 비해 독특한 유전적 특징
아이슬란드인과 관련된 정보
아이슬란드 의회Alþingi
추가 정보
참고 사항아이슬란드 국적법에 따른 아이슬란드 시민
아이슬란드 인구는 아이슬란드 국적을 가진 사람을 의미함.

2. 역사

아이슬란드 섬에는 원래 사람이 살지 않았고, 최초로 발을 들인 것은 아일랜드켈트족이었다. 이후 오늘날의 노르웨이스웨덴 지역에서 활동하던 바이킹족의 일부가 아이슬란드에 진출하면서 이들 두 민족이 아이슬란드 민족의 주축이 되었다. 아이슬란드어는 노르드인의 언어를 사용하였는데, 아이슬란드의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오늘날 스칸디나비아반도의 국가 언어와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리적 고립, 이주민 유입 제한, 적은 인구는 아이슬란드인을 지구상에서 가장 동질적인 혈통을 가진 사람들로 만들었다. 아이슬란드인은 유전학이나 질병 등의 의학적 연구에서 좋은 표본 집단이다. 아이슬란드는 지역적으로 고립된 섬으로 최근 100년은 몇 안 되는 이민과 세대에 의한 인구 증가만 있었을 뿐이었다. Eurostat 통계에 따르면, 아이슬란드는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이 2를 넘는 유일한 유럽 국가이다.

아이슬란드는 지질학적으로 약 2천만 년 전 대서양 중앙 해령화산 폭발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르웨이덴마크 등 북방 게르만 민족이 바이킹으로서 아이슬란드에 상륙하여 정착했다.

역사 기록과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정착민 남성의 60~80%는 노르웨이 서부 출신의 노르드인 기원이며, 여성의 경우도 거의 비슷한 비율로 아일랜드스코틀랜드게일인 기원임이 밝혀졌다.[56][50] 고대 문헌에는 최초로 아이슬란드에 상륙한 사람은 아일랜드인 수도사였다고 전해진다. 본격적인 정착은 870년경 바이킹 시대의 북방 게르만인(노르만인)이 처음이었으며, 아일랜드인 노예들과 함께 정착했다고 여겨진다.[58]

2. 1. 초기 정착

아이슬란드를 처음 발견한 바이킹은 가르다르 스바바르손으로, 노르웨이에서 페로 제도로 항해하던 중 악천후로 항로를 이탈했다. 그의 보고는 아이슬란드 정착의 첫 시도로 이어졌다. 플로키 빌게르다르손은 아이슬란드를 의도적으로 항해한 최초의 노르드인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Landnámabók|란드나우마보크is 사본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가 이 섬에 Ísland(아이슬란드)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아이슬란드 최초의 정착민은 일반적으로 잉골푸르 아르나르손이라는 노르웨이 출신의 게르만 족장으로 여겨진다. 그는 약 874년에 가족과 함께 "연기의 만" 혹은 아이슬란드어로 레이캬비크라고 이름 붙인 곳에 정착했다.[14]

잉골푸르 이후, 874년에 또 다른 노르웨이인 집단이 가족, 가축, 노예, 재산을 가지고 북대서양을 건너 아이슬란드 섬으로 항해했다. 이들은 최초의 노르웨이 왕 하랄드 파어헤어의 지배를 피해 도망쳤다. 그들은 바이킹 롱쉽을 타고 섬까지 항해했다. 이 사람들은 주로 노르웨이, 아일랜드 또는 게일계 스코틀랜드 출신이었다. 아이슬란드 사가에 따르면 아일랜드인과 스코틀랜드 게일인은 노르드인 족장들의 노예나 하인이었거나, "노르드인 집단"의 후손이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아일랜드에 정착하여 게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혼인했다.[15] 유전적 증거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모계 유전자 풀의 약 62%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다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보다 훨씬 높은 수치이며, 페로 제도와 비슷하다. 반면 37%는 북유럽 출신이다.[16] 아이슬란드 부계 유전자 풀의 약 20~25%는 게일계 출신이며, 나머지는 북유럽 출신이다.[17]

아이슬란드 정착 시대()는 874년부터 930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간주되며, 이 시점에 섬의 대부분이 점유되었고 아이슬란드 연방의 의회인 Alþingi|알싱is이 싱크베틀리르에 설립되었다.[18]

역사 기록과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정착민 남성의 60~80%는 노르웨이 서부 출신의 노르드인 기원이며, 여성의 경우도 거의 비슷한 비율로 아일랜드스코틀랜드게일인 기원임이 밝혀졌다.[56][50] 원래 아이슬란드에는 원주민이 없었다. 지층을 조사해 보아도 가장 오래된 유적의 지층[57]은 식민이 이루어진 시대의 "식민 지층"이라 불리는 지층 바로 근처에서 발견된다. 고대 문헌에는 최초로 아이슬란드에 상륙한 사람은 아일랜드인 수도사였다고 전해진다. 본격적인 정착은 870년경 바이킹 시대의 북방 게르만인(노르만인)이 처음이었으며, 아일랜드인 노예들과 함께 정착했다고 여겨진다.[58] (바이킹은 켈트계 아일랜드인을 노예나 하인으로 데리고 갔다[59]). 중세의 역사 기록자인 아리 쏜손에 따르면, 860년경부터 노르만인이 섬으로 이주해오자, 먼저 거주하고 있던 아일랜드 수도사들이 아이슬란드를 떠났는데, 그들은 새로 이주해 온 이교도와의 공존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60] 아일랜드인은 아이슬란드에서 소수가 되었고, 이후 노르만인의 정착에 의해 아이슬란드인이 형성되어 갔다.

2. 2. 알싱기 성립과 노르웨이, 덴마크 지배

930년, 레이캬비크 근처 싱벨리르(Thingvellir영어) 평원에서 족장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모여 아이슬란드 최초의 국회인 알싱기(Alþingi)를 설립했다. 그러나 알싱기는 자신들이 제정한 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다.[19] 1262년, 경쟁 족장들 간의 갈등으로 아이슬란드는 심하게 분열되었고, 모든 분쟁의 최종 중재자로 노르웨이 하콩 4세 왕에게 개입을 요청하게 되었다. 이는 구약정의 일부였다. 이 시대는 스투를룽 시대로 알려져 있다.[19]

아이슬란드는 1380년 노르웨이 왕가가 멸망할 때까지 노르웨이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점에서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는 모두 덴마크 왕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덴마크에 절대 군주제가 도입되면서 아이슬란드인들은 입법에 대한 발의 및 동의권을 포함한 왕관에 대한 자치권을 포기했다. 이는 아이슬란드의 독립 상실을 의미했고, 거의 300년간의 쇠퇴로 이어졌다. 이는 덴마크와 덴마크 왕관이 아이슬란드를 지원하고 도와야 할 식민지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방위에 대한 지원 부족으로 아이슬란드 해안을 따라 약탈하는 해적들의 습격이 끊이지 않았다.[20]

노르웨이와 달리 덴마크는 아이슬란드의 어업과 모직물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아이슬란드의 무역에 심각한 적자가 발생했고, 그 결과 새로운 배가 건조되지 않았다. 1602년,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정부의 명령에 따라 다른 국가와의 무역이 금지되었고, 18세기에는 기후 조건이 정착 이후 최악의 상태에 달했다.[20]

1783~1784년, 섬 남쪽의 라키(Laki)라는 화산 열극이 분출했다. 이 분출로 약 15km3현무암 용암이 분출되었고, 방출된 테프라의 총량은 0.91 km3였다.[21] 생성된 에어로졸은 북반구의 냉각 효과를 야기했다. 아이슬란드에 미친 결과는 참혹하여 1783년과 1784년의 기근으로 인구의 약 25~33%가 사망했다. 양의 약 80%, 소의 50%, 말의 50%가 방출된 800만 톤의 불소로 인한 불소증으로 사망했다.[22] 이 재난은 안개 고난(아이슬란드어: ''Móðuharðindin'')으로 알려져 있다.

1798~1799년, 알싱기는 수십 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1844년에 결국 복원되었다. 9세기 이상 싱벨리르에서 개최된 후 수도 레이캬비크로 이전되었다.

2. 3. 라키 화산 분화와 독립 운동

1783~1784년, 섬 남쪽의 라키(Laki)라는 화산 열극이 분출했다. 이 분출로 약 의 현무암 용암이 분출되었고, 방출된 테프라의 총량은 0.91 km3였다.[21] 생성된 에어로졸은 북반구의 냉각 효과를 야기했다. 아이슬란드에 미친 결과는 참혹하여 1783년과 1784년의 기근으로 인구의 약 25~33%가 사망했다. 양의 약 80%, 소의 50%, 말의 50%가 방출된 800만 톤의 불소로 인한 불소증으로 사망했다.[22] 이 재난은 안개 고난(아이슬란드어: ''Móðuharðindin'')으로 알려져 있다.

1798~1799년, 알싱기는 수십 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1844년에 결국 복원되었다. 9세기 이상 싱벨리르에서 개최된 후 수도 레이캬비크로 이전되었다.

2. 4. 아이슬란드 왕국과 공화국 수립

레이캬비크의 욘 시귀르드손 동상


19세기는 아이슬란드인들의 상황에 있어 상당한 개선을 가져왔다. 정치가이자 역사가이며 아이슬란드 문학 권위자였던 욘 시귀르드손(Jón Sigurðsson)이 주도하는 저항 운동이 일어났다. 유럽 본토의 낭만주의와 민족주의 사조에 영감을 받은 욘은 정치 저널과 자체 출판물을 통해 '국가 의식으로의 회귀'와 아이슬란드의 발전을 가속화하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강력히 주장했다.[23]

1854년, 덴마크 정부는 1602년에 부과된 무역 금지 조치를 완화했고, 아이슬란드는 점차 경제적, 사회적으로 서유럽에 재참여하기 시작했다. 다른 민족들과의 접촉이 재개되면서 아이슬란드의 예술, 특히 문학이 다시 각성했다. 20년 후인 1874년, 아이슬란드는 헌법을 부여받았다. 오늘날 아이슬란드인들은 경제적, 사회적 부흥에 대해 욘의 노력이 크게 기여했다고 인정한다.[23]

아이슬란드는 제1차 세계 대전 후인 1918년 덴마크로부터 완전한 자주권과 독립을 획득하여 아이슬란드 왕국이 되었다. 덴마크 국왕이 아이슬란드 국왕직도 겸임했지만,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왕실과 형식적인 관계만 유지했다. 1944년 6월 17일, 욘 시귀르드손의 133번째 생일에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로써 거의 6세기에 걸친 덴마크와의 관계가 종식되었다.[23]

3. 인구 통계 및 사회

아이슬란드 섬에는 선주민이 없었고, 최초로 이 땅에 발을 디딘 것은 아일랜드켈트족이었다. 그 후, 오늘날의 노르웨이스웨덴 지역에서 활동하던 바이킹 족의 일부가 아이슬란드에 진출하면서 이들 양대 종족이 아이슬란드 민족의 주축이 되었다.[33] 노르드인의 언어를 사용하였는데, 아이슬란드의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아이슬란드어는 오늘날 스칸디나비아반도의 국가 언어와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리적인 고립, 이주민 유입 제한, 적은 인구는 아이슬란드인을 지구상에서 가장 동질적인 혈통을 가진 사람들로 만들었다. 실제로 아이슬란드인은 유전학이나 질병 등의 의학적 연구에서 흥미로운 대상이자 좋은 표본집단이다. 캐나다, 미국, 영국, 덴마크 등에는 아이슬란드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지역적으로 고립된 섬으로 최근 100년은 몇 안 되는 이민과 세대에 의한 인구증가가 있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인구는 증가 경향에 있다. Eurostat 통계에 따르면, 이 나라는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이 2를 넘는 유일한 유럽 국가이다.

아이슬란드 정착(settlement of Iceland) 시기의 소규모 정착민 집단과 상대적인 고립의 역사로 인해, 아이슬란드인들은 다른 유럽 인구 집단에 비해 유전적으로 매우 동질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아이슬란드인의 Y염색체는 해프로그룹 R1b가 41.44%, 해프로그룹 I가 34.25%, 해프로그룹 R1a가 23.76%이다.[61]

현재 아이슬란드인의 대부분의 DNA 계통은 아이슬란드 정착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이후 이민은 비교적 적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이슬란드 정착민들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스칸디나비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유전자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 미토콘드리아 DNA(모계 조상)는 62%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출신(나머지는 대부분 스칸디나비아 출신)이며, Y염색체(부계 조상)는 75%가 스칸디나비아 출신(나머지는 대부분 아일랜드와 영국 제도 출신)이다.[62]

3. 1. 유전적 특징

아이슬란드인은 지리적 고립, 적은 인구, 제한적인 이주민 유입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가장 동질적인 혈통을 가진 사람들 중 하나로 여겨진다.[24][25] 이러한 특성 때문에 아이슬란드인은 유전학 및 질병 연구에서 중요한 표본 집단이 된다.

아이슬란드 정착(settlement of Iceland) 시기의 소규모 정착민 집단과 상대적인 고립의 역사로 인해, 아이슬란드인들은 다른 유럽 인구 집단에 비해 유전적으로 매우 동질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방대한 족보 기록은 생명공학(biotechnology) 회사와 학계 및 의학 연구자들의 유전체학(genomics)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24][25]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아이슬란드 최초의 흑인 거주자인 한스 요나탄(Hans Jonatan)의 모계 게놈 상당 부분을 현대 후손들의 DNA에서 재구성할 수 있었다.[26]

유전적 증거에 따르면, 오늘날 아이슬란드인의 대부분의 DNA 계보는 아이슬란드 정착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이후로는 이민이 거의 없었다. 건국 집단은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 아일랜드(Ireland), 스코틀랜드(Scotland) 출신이었다. Y염색체(Y-chromosomes)와 미토콘드리아 DNA(mitochondrial DNA) 연구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인의 부계 혈통 75%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유래했고(나머지 대부분은 아일랜드와 영국 제도), 모계 혈통 62%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유래했다(나머지 대부분은 스칸디나비아).[27]

하지만, 다른 연구에서는 다른 조상들이 확인되기도 했다. 미토콘드리아 DNA(mitochondrial DNA), 혈액형(blood groups), 아이소자임(isozyme) 연구는 예상보다 다양한 인구를 보여주는데, 이는 다른 유럽인들의 다양성과 비교할 만하다.[28]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현대 아이슬란드인 샘플의 아주 작은 비율은 해플로그룹 C1e에 속하는 더 먼 계보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아메리카 정착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소수의 아이슬란드인들이 그린란드와 북아메리카의 노르드 식민지화(Norse colonization of Greenland and North America)로부터 유래한 아메리카 원주민 조상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29]

아이슬란드인들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데니소바인(Denisovan) 유전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30]

아이슬란드의 역사적 고립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이슬란드인의 유전적 구성은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s)와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으로 인해 건국 집단과는 상당히 다르다.[31] 한 연구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정착민들 사이에서 노르드인 조상의 평균은 56%였던 반면, 현재 인구에서는 그 수치가 70%였다. 이는 노르드인 조상의 수준이 높은 아이슬란드인들이 더 높은 생식 성공률을 보였다는 것을 의미한다.[32]

역사 기록과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정착민 남성의 60~80%는 노르웨이 서부 출신의 노르드인 기원이며, 여성의 경우도 거의 비슷한 비율로 아일랜드스코틀랜드게일인 기원임이 밝혀졌다.[56][50]

아이슬란드인의 Y염색체는 해프로그룹 R1b가 41.44%, 해프로그룹 I가 34.25%, 해프로그룹 R1a가 23.76%이다.[61]

3. 2. 이민

아이슬란드 섬에는 선주민이 없었고, 최초로 이 땅에 발을 딛은 것은 아일랜드켈트족이었다. 그 후, 오늘날의 노르웨이스웨덴 지역에서 활동하던 바이킹 족의 일부가 아이슬란드에 진출하면서 이들 양대 종족이 아이슬란드 민족의 주축이 되었다.[33]

캐나다, 미국, 영국, 덴마크 등에는 아이슬란드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기근과 인구 과밀을 피해 미국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아이슬란드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주로 그레이트 레이크스 지역에 정착했다.[37] 캐나다 매니토바주의 짐리는 아이슬란드 본토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아이슬란드인 인구가 거주하는 곳이다.[38]

1990년대 중반부터 아이슬란드는 이민이 증가했다. 2017년 기준으로 1세대 이민자 인구는 35,997명(거주자의 10.6%)이었고, 2세대 이민자 인구는 4,473명이었다. 아이슬란드 국적을 취득하는 외국인 출생자 수는 1990년대보다 현저히 늘어 2016년에는 703명에 달했다.[39][40] 이에 따라 아이슬란드 정체성은 점차 다문화주의적인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41]

외국 배경을 가진 아이슬란드의 유명인인 운슈테인 마누엘 스테판손(Unnsteinn Manuel Stefánsson)은 레트로 스테프손과 함께 연주하고 있다.

3. 2. 1. 그린란드

10세기 후반 에이리크 라우드(Erik the Red)의 지휘 아래 아이슬란드에서 온 약 500명의 사람들이 그린란드에 정착한 최초의 유럽인들이었다.[33] 이 척박한 땅의 고립된 피오르(fjord)는 소와 양을 기르기에 충분한 목초지를 제공했지만, 기후는 곡물 재배에는 너무 추웠다. 노르웨이 왕실의 무역선은 가끔 그린란드에 가서 바다코끼리 상아와 매를 거래했다. 인구는 결국 두 개의 공동체에서 3,000명에 달하는 정점에 이르렀고, 15세기에 사라지기 전에 독립적인 제도를 발전시켰다.[33] 1492년, 즉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아시아로 가는 더 짧은 향신료 무역로를 찾으려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해에 교황 특사(Papal legate) 사절단이 그곳에 파견되었다.

3. 2. 2. 북아메리카

《에리크 적색의 사가》에 따르면, 북아메리카로의 아이슬란드 이민은 빈란드로 거슬러 올라가며, 약 1006년경으로 추정된다.[34] 이 식민지는 수명이 짧았던 것으로 여겨지며 1020년대에 버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까지는 유럽인들의 이 지역 정착에 대한 고고학적 및 역사적 증거가 확인되지 않아 전설 이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현재 란스오메도로 알려진 이전 노르드인 유적지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 거의 500년 전의 것이다.

북아메리카로의 아이슬란드 이민의 최근 사례는 1855년에 발생했는데, 소규모 집단이 유타주 스패니시 포크에 정착했다.[35] 또 다른 아이슬란드 식민지는 위스콘신주 워싱턴 아일랜드에 형성되었다.[36] 미국캐나다로의 이민은 187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처음에 그레이트 레이크스 지역에 정착했다. 이 이민자들은 아이슬란드기근과 인구 과밀을 피해 이주했다.[37] 오늘날 미국과 캐나다에는 상당한 규모의 아이슬란드계 후손 공동체가 있다. 캐나다 매니토바주의 짐리는 아이슬란드 본토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아이슬란드인 인구가 거주하는 곳이다.[38]

3. 2. 3. 아이슬란드로의 이민

아이슬란드 섬에는 선주민이 없었고, 최초로 이 땅에 발을 딛은 것은 아일랜드의 켈트족이었다. 그 후, 오늘날의 노르웨이스웨덴 지역에서 활동하던 바이킹 족의 일부가 아이슬란드에 진출하면서 이들 양대 종족이 아이슬란드 민족의 주축이 되었다. 언어는 노르드인의 언어를 사용하였는데, 아이슬란드의 지리적 고립에 의하여 아이슬란드어는 오늘날 스칸디나비아반도의 국가 언어와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리적인 고립과 이주민 유입의 제한, 적은 규모의 인구는 아이슬란드인을 지구상에서 가장 동질적인 혈통을 보유한 사람들로 만들고 있다. 실제로 아이슬란드인은 유전학이나 질병 등의 의학적 연구에서 흥미로운 대상이자 좋은 표본집단이다. 아이슬란드 국외에는 캐나다, 미국, 영국, 덴마크 등에 거주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지역적으로 고립된 섬으로 최근 100년은 몇 안 되는 이민과 세대에 의한 인구증가가 있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인구는 증가 경향에 있다. Eurostat 통계에 따르면, 이 나라는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이 2를 넘는 유일한 유럽 국가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아이슬란드는 이민 증가를 경험했다. 2017년 기준으로 1세대 이민자(해외 출생으로 부모와 조부모 모두 외국인인 사람으로 정의됨) 인구는 35,997명(거주자의 10.6%)이었고, 2세대 이민자 인구는 4,473명이었다. 이에 따라 아이슬란드 국적을 취득하는 외국인 출생자 수는 1990년대보다 현저히 높아 2016년에는 703명에 달했다.[39][40] 따라서 아이슬란드 정체성은 점차 더 다문화주의적인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41]

4. 문화

아이슬란드의 문화는 북게르만어군에 속하는 아이슬란드어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아이슬란드어는 고대 노르드어와 매우 유사하며, 13세기 이후 거의 변화가 없어 현대 아이슬란드인들은 아이슬란드 사가와 같은 고대 문학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42][43]

《시적 에다》의 한 시


13세기에 쓰여진 《락스달라 사가》의 등장인물인 키아르탄 오라프손과 볼리 토를레이크손


아이슬란드는 1000년경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현재는 대부분 세속적이지만 여전히 문화적으로는 기독교, 특히 루터교가 주류를 이룬다.[44]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가톨릭을 대체했지만, 현재는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 특히, 초기 정착민들의 북유럽 종교를 부흥시킨 아사트루아르펠라그(Ásatrúarfélagið)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46]

후사비크(Húsavík)의 후사비크르키르캬(Húsavíkurkirkja) 교회


아이슬란드 요리생선류, 양고기, 유제품을 중심으로 하며, 최근에는 쇠고기, 돼지고기, 가금류의 소비도 증가하고 있다. Þorramatur와 같은 전통 음식도 여전히 즐겨 먹는다.

아이슬란드의 국가는 "Ó Guð vors lands" (Our Country's God|우리나라의 신영어)이며, 1874년 아이슬란드 정착 10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다.[48]

아이슬란드는 스포츠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2018년 FIFA 월드컵에 처음으로 진출하였고, UEFA 유로 2016에서는 8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49] 아이슬란드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은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49]

4. 1. 언어 및 문학



북게르만어군에 속하는 아이슬란드어(Íslenska)는 아이슬란드의 공식 언어이다(사실상의 공식 언어이며, 법률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아이슬란드어라틴어, 고대 그리스어와 비슷한 굴절어 형태소를 가지고 있으며, 고대 영어와 거의 동일하고 고대 노르드어와 매우 유사하다.

고대 아이슬란드 문학은 에다 시가, 스칼드 시가, 사가 문학(넓은 의미로 해석될 때)의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에다 시가는 영웅 서사시와 신화 시가로 구성되어 있다. 특정 인물을 칭송하는 시가는 스칼드 시가 또는 궁정 시가로 간주된다. 사가 문학은 순수한 허구부터 상당히 사실적인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문을 포함한다.[42]

13세기 이후로 아이슬란드어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이 때문에 현대 독자들은 아이슬란드 사가를 이해할 수 있다. 사가는 10세기와 11세기 초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아이슬란드 문학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여겨진다.[43]

《시적 에다》(Elder Edda), 《산문 에다》(Younger Edda), 그리고 사가는 아이슬란드 문학의 주요 작품이다. 《시적 에다》는 10세기 후반의 시와 이야기 모음집인 반면, 《산문 에다》는 노르드 신화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시에 대한 설명서이다.

4. 2. 종교

아이슬란드는 1000년경에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이 사건은 "크리스티니타카(kristnitaka)"라고 불린다. 아이슬란드는 대부분 세속적이지만 여전히 문화적으로는 기독교가 주류이다. 루터교회는 전체 인구의 약 84%를 차지한다고 주장한다.[44] 초기 아이슬란드 기독교는 전통적인 가톨릭보다 관행이 느슨했지만, 18세기에 덴마크에서 수입된 경건주의 운동은 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종교적 여가 활동 이외의 모든 것을 억제함으로써, 오랫동안 아이슬란드의 고정관념으로 여겨졌던 어떤 침울함을 조장했다. 동시에 인쇄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아이슬란드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문해율을 가진 사회 중 하나이다.[23][45]

종교 개혁 기간 동안 가톨릭이 프로테스탄티즘으로 대체되었지만, 현재는 섬에서 다른 세계 종교들이 대부분 대표된다. 소규모 프로테스탄트 자유교회와 가톨릭 공동체, 그리고 이민자와 지역 개종자들로 구성된 초기 무슬림 공동체도 있다. 아마도 아이슬란드 고유의 것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사트루아르펠라그가 있는데, 이는 초기 정착민들의 기독교 이전 북유럽 종교의 법적으로 인정된 부흥 운동이다. 레이캬비크 로마 가톨릭 교구에 따르면, 2001년 기준으로 아이슬란드에는 약 30명의 유대인만 있었다고 한다.[46] 전 아이슬란드 대통령 배우자 아이슬란드 영부인 도리트 무사이에프(Dorrit Moussaieff)는 이스라엘 태생의 부하라 유대인이었다.

4. 3. 요리

아이슬란드 요리는 주로 생선류, 양고기, 그리고 유제품으로 구성된다. 과거에는 생선이 아이슬란드인의 식단에서 주요 부분을 차지했지만, 최근에는 쇠고기, 돼지고기, 그리고 가금류와 같은 육류의 소비가 증가했다.

아이슬란드에는 Þorramatur라고 불리는 많은 전통 음식이 있다. 이러한 음식에는 훈제 및 염장한 양고기, 그을린 머리, 건조시킨 생선, 훈제 및 절인 연어, 그리고 숙성시킨 상어가 포함된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자신의 쇼 ''기묘한 음식들: 앤드류 지머른과 함께''에서 요리를 선보이는 셰프인 앤드류 지머른은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 가장 역겨운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아이슬란드에서 먹었던 발효 상어 지느러미일 겁니다"라고 답했다. 발효 상어 지느러미는 Þorramatur의 한 형태이다.[47]

4. 4. 공연 예술

가장 초기 아이슬란드 고유 음악은 바이킹 시대의 서사시인 ''리무르''로, 종종 무반주로 공연되었다. 기독교는 아이슬란드 음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많은 찬송가가 현지 방언으로 쓰였다. 시인이자 사제였던 할그림르 페투르손은 17세기에 이러한 많은 찬송가를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섬의 상대적인 고립은 음악이 지역적 특색을 유지하도록 했다. 유럽 종교 음악에서 흔한 파이프 오르간이 처음으로 이 섬에 등장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48]

많은 가수, 그룹, 그리고 음악 형태가 아이슬란드에서 나왔다. 대부분의 아이슬란드 음악에는 활기찬 민속 음악과 팝 음악 전통이 담겨 있다. 최근 그룹과 가수로는 보체스 툴레스, 더 슈거큐브스, 비요크, 시규르 로스, 오브 몬스터스 앤 멘이 있다.

아이슬란드국가는 "Ó Guð vors lands"(Our Country's God|우리나라의 신영어)이며, 마티아스 요쿰손이 작사하고 스베인비외른 스베인비외른손이 작곡했다. 이 노래는 1874년, 아이슬란드가 섬 정착 1000주년을 기념하면서 만들어졌다. 원래는 ''아이슬란드 천년을 기념하는 찬가''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48]

4. 5. 스포츠

아이슬란드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2018년에 첫 FIFA 월드컵에 참가하였다. 이는 첫 주요 국제 대회인 UEFA 유로 2016에서 8강에 진출한 후 이루어낸 성과이다.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직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하였다. 주요 국제 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은 UEFA 여자 유로 2013에서 8강 진출이다. 아이슬란드의 첫 올림픽 참가는 1912년 하계 올림픽이었지만, 1936년 하계 올림픽까지 다시 참가하지 않았다. 동계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것은 1948년 동계 올림픽이었다. 1956년 빌야우무르 아이나르손은 세단뛰기에서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했다.[49] 아이슬란드 핸드볼 국가대표팀은 상대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 팀은 2008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2010년 유럽 남자 핸드볼 선수권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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