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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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이슬란드 요리는 스칸디나비아 요리의 영향을 받아 9세기부터 시작되었으며, 아이슬란드 기독교화와 소빙하기 등 역사적 사건을 거치며 발전했다. 중세 시대에는 발효를 이용한 음식 보존법과 스카이르와 같은 유제품, 장방형 가옥의 요리 방식이 특징이었다. 근대 초기에는 덴마크의 무역 독점과 문화적 영향으로 요리 전통이 변화했으며, 채소 재배가 시작되고 여자 학교를 통해 요리법이 기록되었다. 현대에는 어업의 발달과 협동조합의 설립이 아이슬란드 요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다양한 종류의 생선, 육류, 유제품, 빵, 페이스트리, 채소 등이 식재료로 사용된다. 크리스마스 요리, 토라마투르와 같은 특별한 음식과 축제 또한 아이슬란드 요리의 중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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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요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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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요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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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국가별 요리 |
문화적 중요성 | 아이슬란드 |
주요 특징 | |
주재료 | 양고기 해산물 유제품 |
일반적인 요리 | |
주식 | 스카이르 퓌슬뤼파누쿠르 플로크피스퀴르 항기쿄트 클레이나르 룬드바기 하르드피스쿠르 케스튀르 하카를 슬라투르 |
음료 | |
주류 | 브렌니빈 아이슬란드 맥주 |
기타 음료 | 커피 아이슬란드 물 |
2. 역사
아이슬란드 요리는 스칸디나비아 요리 전통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9세기 아이슬란드 정착 이후 아이슬란드 문화는 북유럽 국가와 매우 흡사했으며, 자급자족 농업에 기반한 전통 경제를 유지했다.
아이슬란드의 역사에서 1000년 아이슬란드 기독교화는 단식 전통을 가져왔고, 말고기 소비를 금지했다. 14세기에 시작된 소빙하기는 농부들이 보리 재배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곡물 수입에 의존하게 했다. 기후 냉각은 주택과 난방에도 변화를 가져와, 초기 정착민들의 장방형 가옥은 아이슬란드 토탄 가옥으로 대체되었으며, 이는 20세기까지 사용되었다.
역사가들은 1517년 시작된 종교 개혁을 아이슬란드 역사에서 중세와 근세 사이의 전환점으로 간주한다. 아이슬란드의 농업은 14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어졌으며,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개혁이 이루어졌다. 1602년 덴마크 왕이 시행한 덴마크-아이슬란드 무역 독점은 요리 전통에 영향을 미쳤다. 덴마크 요리는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아이슬란드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초, 경제 호황은 전통적인 유제품과 육류 기반 음식에서 생선과 뿌리채소 소비로의 변화를 가져왔고, 보존 식품은 신선한 재료를 강조하면서 대체되기 시작했다.
2. 1. 중세
아이슬란드 요리의 기원은 스칸디나비아 요리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9세기 아이슬란드 정착 이후 아이슬란드 문화는 북유럽 국가의 문화와 매우 흡사하며, 전통 경제는 자급자족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역사에서 1000년 아이슬란드 기독교화와 함께 단식 전통이 생겨 말고기 소비가 금지되었고, 14세기 소빙하기로 인해 농부들은 더 이상 보리를 재배할 수 없어 곡물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기후 냉각은 주택과 난방에도 변화를 가져와, 초기 정착민들의 장방형 가옥은 아이슬란드 토탄 가옥으로 대체되었으며, 이러한 유형의 주거는 20세기까지 사용되었다.역사가들은 1517년 시작된 종교 개혁을 아이슬란드 역사에서 중세와 근세 사이의 전환점으로 본다. 아이슬란드의 농업은 14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어졌으며, 계몽주의 영향으로 개혁이 이루어졌다. 1602년 덴마크 왕이 시행한 덴마크-아이슬란드 무역 독점은 요리 전통에 영향을 미쳤다. 덴마크 요리는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아이슬란드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초, 경제 호황은 전통적인 유제품과 육류 기반 음식에서 생선과 뿌리채소 소비로의 느린 변화를 가져왔고, 보존 식품은 신선한 재료에 대한 강조가 커지면서 대체되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가 아이슬란드 정착에 의해 스칸디나비아와 바이킹의 영국 제도 식민지에서 온 이주민들에 의해 정착되었을 때, 그들은 노르드인 세계의 농업 방식과 음식 전통을 가져왔다. 연구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기후는 중세 시대에 현재보다 온화했으며, 보리와 귀리 재배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곡물들은 대부분 죽이나 묽은 죽으로 소비되었거나 맥주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소는 주요 농장 동물이었지만, 농장에서는 가금류, 돼지, 염소, 말, 양도 길렀다. 아이슬란드로 처음 가져온 가금류, 말, 양, 염소는 현대적인 선택적 육종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고립된 상태에서 발전해 왔으며, 이들은 "정착 품종" 또는 "바이킹 품종"이라고도 불린다.
2. 1. 1. 보존 방법
생선은 소금에 절여 보관했으며, 흑사병 이전 아이슬란드는 건어물을 베르겐의 어시장에 수출했다. 그러나 노르웨이보다 아이슬란드에서 소금이 덜 풍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닷물을 끓이거나 해초를 태워 소금을 만드는 염전 기술은 14세기 대부분의 지역에서 과도한 방목으로 인해 장작 부족을 겪으면서 점차 사라졌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소금에 절이는 대신 발효된 유청에 고기를 보존하기 시작했다. 이 방법은 노르웨이에서도 알려졌지만 그곳에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중세 농장의 고고학 발굴에서 젖산이 담긴 통을 보관했던 저장실에서 크고 둥근 구멍들이 발견되었다. 두 개의 중세 이야기는 불타는 집에서 산성을 담은 통 안에 잠수하여 목숨을 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중세 아이슬란드인들은 생선과 고기를 모두 보존하기 위해 발효를 사용했는데, 이 방법은 음식의 맛을 크게 바꾸어 매우 강한 치즈와 유사하게 만들었다. 발효는 여전히 상어(하우카르), 가오리, 청어를 절이는 데 사용된다. 발효된 달걀은 오늘날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지역 별미이다. 고기와 생선을 훈제하고 건조하는 것도 시행되었지만, 고기 건조는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졌다.[1]
2. 1. 2. 치즈
치즈는 염소, 양, 그리고 소의 젖으로 만들어졌다. 숟가락으로 떠먹는 부드러운 요구르트 같은 치즈인 스카이르는 원래 노르웨이에서 아이슬란드로 전해진 전통이었으며, 아이슬란드에서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스카이르를 만들고 남은 유청은 시게 하여 고기를 보관하는 데 사용되었다. 아이슬란드 요리에서 스카이르가 우세해진 것은 20세기 전반에 산업적 치즈 제조가 시작되기 전까지 현대 시대에 다른 치즈 제조 전통이 사라지게 된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치즈 제조는 늦봄에 고산 지대 산장에서 생활하는 세테르 농업(seljabúskapur)의 일부였다. 여기서 농부들은 젖을 짜기 위해 새끼 염소나 양을 어미로부터 떼어 놓을 수 있었다. 그들은 종종 고산 지대에서 치즈를 만들었으며, 풍미는 새로운 풀의 영향을 받았다.2. 1. 3. 요리 및 식사
정착 시기, 스칸디나비아와 바이킹의 영국 제도 식민지에서 온 이주민들은 노르드인의 농업 방식과 음식 전통을 아이슬란드에 가져왔다. 연구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기후는 중세 시대에 현재보다 온화하여 보리와 귀리 재배 기록이 남아있다. 이 곡물들은 죽이나 묽은 죽, 맥주 제조에 사용되었다. 소가 주요 가축이었지만, 가금류, 돼지, 염소, 말, 양도 길렀다. 초기 가금류, 말, 양, 염소는 현대적 품종 개량 없이 고립되어 "정착 품종" 또는 "바이킹 품종"으로 불린다.초기 정착민의 장방형 가옥에는 중앙에 긴 불 구덩이가 있었고, 주변 바닥에는 빵과 고기를 굽는 흙 가마솥용 구멍이 있었다. 여성들은 반죽이나 고기를 뜨거운 숯과 함께 구멍에 넣고 덮었다. 뜨거운 돌을 액체에 넣어 나무 통에서 끓이기도 했다(이 관행은 현대까지 이어짐). 낮은 돌 화덕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요리는 바닥에서 이루어졌다.
14세기 아이슬란드 토탄 가옥이 개발되어 장방형 가옥을 대체했다. ''hlóðir''라는 돌 화덕이 있는 주방이 있었다. 소빙기로 기후가 냉각되자 보리 재배가 불가능해졌고, 양이 소를 대체했다. 아이슬란드는 곡물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고, 장작 부족으로 토탄, 똥, 마른 헤더를 연료로 사용했다.

중세 아이슬란드인들은 하루 두 끼(정오 점심 ''dagverður'', 저녁 ''náttverður'')를 그릇에 담아 먹었다. 뚜껑 달린 나무 술통으로 술을 마셨고, ''askar''라는 불룩한 통이 음식 제공에 사용되었다. 상류층은 특별한 날 조각된 술잔을 사용했다. 뿔이나 뼈로 만든 숟가락이 가장 흔했고, 연회를 제외하면 침대에 앉아 무릎에서 음식을 먹었다. 농부의 아내가 음식 가공, 요리, 분배를 담당했고, 부유한 가정에서는 ''bryti''라는 집사가 이 역할을 맡았다.
2. 2. 근대 초기
아이슬란드의 역사에서 여러 사건들이 아이슬란드 요리에 특별한 영향을 미쳤다. 1000년 아이슬란드 기독교화와 함께 단식 전통이 생겼고, 말고기 소비가 금지되었다. 14세기에 시작된 소빙하기로 인해 농부들은 보리 재배가 불가능해졌고, 곡물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기후 냉각은 주택과 난방에도 변화를 가져와, 초기 정착민들의 넓은 홀이 있는 장방형 가옥은 주방을 포함한 여러 작은 방이 있는 아이슬란드 토탄 가옥으로 대체되었으며, 이는 20세기까지 사용되었다.역사가들은 1517년에 시작된 종교 개혁을 아이슬란드 역사에서 중세와 근세 사이의 전환점으로 본다. 아이슬란드의 농업은 14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어졌으며,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개혁이 이루어졌다. 1602년 덴마크 왕이 시행한 덴마크-아이슬란드 무역 독점은 요리 전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지만, 덴마크 요리는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아이슬란드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초, 상업적 어업과 가공에 기반한 경제 호황은 전통적인 유제품과 육류 기반 음식에서 생선과 뿌리채소 소비로의 변화를 가져왔고, 보존 식품은 신선한 재료에 대한 강조가 커지면서 대체되기 시작했다.
2. 2. 1. 해외 무역
중세부터 20세기 초까지 아이슬란드는 짧은 여름 동안 생산된 식량으로 긴 겨울을 나야 했기 때문에 자급자족 농업에 제약이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자급자족 방식으로 아이슬란드가 약 6만 명의 인구를 부양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수 세기 동안 농업 방식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어업은 농번기를 피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생선은 단순한 식료품을 넘어 외국 상선이 가져온 곡물 등과 교환하는 무역 상품으로도 사용되었다.[1]아이슬란드는 자급자족 농업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농장 간 전문화나 국내 무역은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외국과의 무역은 활발했는데, 유럽 각지에서 온 배들이 아이슬란드에 정박하여 식량을 조달하고 현지인들과 물건을 교환했다. 이들은 주로 말린 대구를 구매했으며, 낡은 맥주,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비스킷, 씹는 담배 등을 양모 장갑, 담요 등과 교환했다.[1]
1602년, 덴마크 국왕은 아이슬란드에 무역 독점권을 설정하여 덴마크 상인들에게만 무역을 허용했다. 17세기에는 불법 무역이 성행하기도 했지만, 1685년부터 덴마크 정부는 독점권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했고, 이는 1787년까지 이어졌다. 이로 인해 아이슬란드 농부들은 덴마크에서 주로 생산되는 호밀을 재배하게 되었고, 호밀로 만든 아쿠아비트인 브렌니빈이 도입되어 다른 곡물과 맥주를 대체했다.[1]
2. 2. 2. 곡물

일반인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빵은 사치품이었지만, 드물게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 상인에게서 구입한 곡물은 맷돌(아이슬란드어로는 ''kvarnarsteinn'')을 사용하여 갈았으며, 말린 돌김과 지의류를 곁들였다. 때로는 우유에 삶아 묽은 죽으로 먹기도 했다. 이 죽에 스키르를 섞어 ''스키르흐레이닝구르''를 만들기도 했다. 가장 흔한 종류의 빵은 루그브라우드라고 불리는 냄비 빵으로, 독일의 펌퍼니클과 덴마크의 루그뢰드를 연상시키는, 짙고 밀도가 높은 호밀빵이지만 더 촉촉했다. 이 빵은 반죽을 온천 근처 땅에 특별한 나무 통에 묻어 다음 날 꺼내 굽기도 했다. 이렇게 구운 빵은 약간 유황 맛이 난다. 버터를 곁들인 말린 생선은 하루 종일 모든 식사에 제공되었으며, 유럽의 "매일의 빵"과 같은 역할을 했다.
2. 2. 3. 요리 및 식사
초기 정착민들의 장방형 가옥에는 집을 따뜻하게 하기 위한 중앙의 긴 불 구덩이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빵을 굽고 고기를 요리하기 위한 흙 가마솥으로 사용되는 구멍이 있었다. 여성들은 반죽이나 고기를 뜨거운 숯과 함께 구멍에 넣고 덮어두었으며, 뜨거운 돌을 액체에 직접 넣어 끓이기도 했다. 14세기에 아이슬란드 토탄 가옥이 개발되면서 ''hlóðir''라고 불리는 요리용 돌 화덕이 있는 주방이 나타났다. 소빙기 동안 기후가 냉각되면서 보리 재배가 불가능해졌고, 양이 주요 가축이 되었으며, 아이슬란드는 곡물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장작 부족으로 토탄, 똥, 마른 헤더를 연료로 사용했다.중세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하루에 두 끼(정오의 점심 ''dagverður''와 저녁 ''náttverður'')를 먹었다. 음식은 그릇에서, 술은 뚜껑이 달린 나무 술통에서 마셨다. 나중에는 ''askar''라고 불리는 불룩한 통이 음식을 제공하는 데 사용되었다. 상류층은 특별한 날에 정교하게 조각된 술잔을 사용했고, 숟가락은 가장 흔한 식사 도구였다. 연회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침대에 앉아 무릎에서 음식을 먹었다. 농부의 아내는 음식을 분배했고, 부유한 가정에서는 ''bryti''라고 불리는 집사가 이 역할을 맡았다.
중세부터 20세기 초까지 아이슬란드의 자급자족 농업은 짧은 생산 기간으로 인해 제약받았다. 여름 석 달 동안 생산된 음식으로 겨울 아홉 달을 버텨야 했다. 연구자들은 아이슬란드가 약 6만 명을 부양할 수 있었다고 추정한다. 농업 방식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어업은 노를 젓는 배에서 낚싯바늘과 낚싯줄을 사용하여 이루어졌다. 농부들이 배를 소유했기 때문에 어업은 농사일에 인력이 필요하지 않은 기간으로 제한되었다. 생선은 무역 상품이었고, 외국 상선이 가져온 곡물과 교환되었다. 19세기까지 대다수의 아이슬란드 농부들은 덴마크 국왕 등이 소유한 토지의 소작농이었고, 잉여 생선 등으로 세금을 지불했다.
자급자족 농업에는 지역적 차이가 있었다. 북부에서는 주요 어업 기간이 건초 만들기 기간과 겹쳐 어업이 덜 발달했다. 반대로 남부에서는 주요 어업 기간이 2월부터 7월까지였다. 일부 역사가들은 아이슬란드 사회를 매우 보수적인 농업 사회로 묘사했다. 짧은 여름에 농장 일꾼에 대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소작농과 지주들은 어촌 형성에 반대했다. 어업은 농업에 비해 위험하다고 여겨졌고, 알싱은 토지 없는 소작농의 어업을 제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4세기부터 음식은 부엌의 "hlóðir"에서 조리되었다. 솥을 불 위에 걸 수 있도록 고리가 설치되었다. 오븐은 장작이 많이 필요해 드물었다. 굽기, 굽기, 삶기는 주철 솥에서 이루어졌다.
중세 시대의 두 끼 식사는 근대 초기에 세 끼(아침 식사 ''morgunskattur'', 점심 ''nónmatur'', 저녁 ''kvöldskattur'')로 대체되었다. 아이슬란드 토탄집에서 사람들은 방을 따라 늘어선 침대에 앉아 식사했다. 음식은 아스쿠르에 담겨 제공되었으며, 국물 음식은 통에서, 마른 음식은 뚜껑에 놓였다. 각 구성원은 개인 아스쿠르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깨끗하게 유지할 책임이 있었다.
2. 3. 현대
아이슬란드 요리의 기원은 스칸디나비아 요리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으며, 9세기부터 시작된 아이슬란드 문화는 아이슬란드 정착 이후 북유럽 국가의 문화와 매우 흡사하며 전통적인 경제는 자급자족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역사에서 여러 사건들이 아이슬란드 요리에 특별한 영향을 미쳤는데, 1000년 아이슬란드 기독교화와 함께 단식 전통이 생기고 말고기 소비가 금지되었다. 농업과 식량 공급 측면에서 더 중요한 사건은 14세기에 시작된 소빙하기였다. 농부들은 더 이상 보리를 재배할 수 없었고, 곡물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기후 냉각은 주택과 난방에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는데, 초기 정착민들의 넓은 홀이 있는 장방형 가옥은 제대로 된 주방을 포함한 많은 작은 방들이 있는 아이슬란드 토탄 가옥으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유형의 주거는 20세기까지 사용되었다.역사가들은 종종 1517년에 시작된 종교 개혁을 아이슬란드 역사에서 중세 시대와 근세 사이의 전환점으로 사용한다. 아이슬란드의 농업은 14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어졌으며,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개혁이 이루어졌다. 1602년 덴마크 왕이 시행한 덴마크-아이슬란드 무역 독점은 요리 전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지만, 덴마크 요리는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아이슬란드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초, 상업적 어업과 가공에 기반한 경제 호황은 전통적인 유제품과 육류 기반 음식에서 생선과 뿌리채소 소비로의 느린 변화를 가져왔으며, 보존 식품은 신선한 재료에 대한 강조가 커지면서 대체되기 시작했다.
모드하르딘딘은 아이슬란드 정착 이후 아이슬란드를 강타한 가장 큰 자연 재해로 꼽히며, 1783년에 발생했다. 10년 전에는 아이슬란드에 거주하는 덴마크 상인에 대한 금지가 해제되었고, 5년 후에는 무역 독점이 종료되었다. 일부 덴마크 상인들은 거주자가 되었고, 일부 아이슬란드인들은 스스로 상인이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1803–1815) 동안에는 상선이 전쟁으로 인해 우회되면서 무역 상품이 부족해졌다. 자급자족을 강요받은 아이슬란드인들은 짧은 재배 기간 동안 생산된 지역 채소의 생산과 소비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19세기에 민족주의와 여성 학교는 전통적인 방식을 공식화하고 현대 아이슬란드 요리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2. 3. 1. 덴마크의 영향

18세기에 출판된 최초의 아이슬란드어 요리책은 덴마크 레시피 모음집이었다. 이 책들은 덴마크-노르웨이의 상류층 요리를 아이슬란드의 동료들에게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다. 레시피에는 때때로 농부와 하녀를 위해 덜 비싼 재료를 사용한 "서민 버전"이 포함되기도 했다. 덴마크 요리는 그 이전부터 무역을 통해 아이슬란드에 영향을 미쳤다.
1770년에 금지령이 해제된 후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덴마크 상인들은 덴마크와 아이슬란드 관습이 혼합된 대규모 가정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18세기 말에 마을로 발전한 레이캬비크는 성장하기 시작하여 아이슬란드와 덴마크의 요리 전통이 융합된 중심지가 되었다. 19세기에 어촌이 형성되었는데, 이 중 많은 곳이 이전에는 자연 항구와 근처의 잠긴 창고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던 무역 항구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덴마크의 영향은 이 분야에 토착 전통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제과 제조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20세기 초부터 레이캬비크와 아쿠레이리에서 덴마크계 제빵사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일부 덴마크식 제과 제조 전통은 덴마크보다 아이슬란드에서 더 오래 살아남았다.
2. 3. 2. 채소
아이슬란드는 북극권에 속하지만, 대서양 난류의 영향으로 비교적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이러한 기후 덕분에 밭이나 작은 정원에서 채소를 재배할 수 있으며, 감자나 양배추가 많이 생산된다. 온실에서는 화훼나 과일류도 재배한다.나폴레옹 전쟁(1803~1815) 기간 동안에는 상선 운항이 어려워져 무역 상품이 부족해졌다. 이로 인해 아이슬란드인들은 자급자족을 위해 지역 채소 생산과 소비를 늘리기 시작했다. 19세기에 덴마크 거주민들이 채소 정원 문화를 들여왔으며, 이들이 주로 재배한 채소는 내한성이 강한 양배추, 순무, 스웨덴 순무, 감자 등이었다. 이러한 채소들은 주로 삶아서 고기나 생선 요리에 곁들여 먹거나, 버터와 함께 으깨어 먹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순무, 루타바가, 루바브, 양배추, 감자와 같은 전통적인 채소 외에도 온실에서 재배된 따뜻한 지역의 작물도 유통되고 있다.
2. 3. 3. 여자 학교
20세기 전반, 아이슬란드에는 소녀들을 위한 중등 교육 기관인 가정 경제 학교가 많이 세워졌다. 이러한 학교에서 민족주의 열풍이 불던 시기에 많은 아이슬란드 요리 전통이 학생들에 의해 공식화되고 기록되었다. 몇 년 후, 이 내용들은 대규모 요리책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식품 위생과 신선한 재료 사용에 대한 강조는, 장기 보존에 기반을 둔 아이슬란드 요리 전통에서는 새로운 것이었다.2. 3. 4. 협동조합
20세기 초, 도시 근처의 농부들은 상품을 상점이나 가정에 직접 판매했는데, 종종 구독 계약을 맺었다. 이는 20세기 후반부터 미국의 일부 도시에서 나타난 공동체 지원 농업의 개념과 유사하다.[1] 1930년대 대공황에 대처하기 위해 아이슬란드 정부는 채소를 포함한 다양한 수입품에 대한 국가 독점 체제를 도입했다.[1] 그들은 20세기 초에 설립된 대부분의 지역 농부 협동조합에게 소비 시장을 위한 유제품 및 육류 생산 독점권을 부여했다.[1] 이는 소규모 개인 생산자가 사업을 중단해야 함을 의미했다.[1]대규모 협동조합은 농업 생산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1] 그들은 현대적인 식품 위생 기준을 충족하는 생산 시설에 투자했다.[1] 이 협동조합들은 여전히 아이슬란드 농업 생산을 지배하고 있으며 거의 경쟁자가 없다.[1] 그들은 고다 치즈, 블루 치즈, 까망베르 치즈 등 인기 있는 유럽 품종을 기반으로 새로운 치즈 제조 기술을 개척했다.[1] 치즈 제조(스카이르 제외)는 18세기 이후 아이슬란드에서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1] 협동조합은 특히 유제품에서 제품 개발을 주도해 왔다.[1] 예를 들어, 그들은 유청 기반의 달콤한 음료와 전통 제품의 변형을 판매하고 있다.[1] 그중 하나는 "Skyr.is"로, 더 크리미하고 달콤한 스카이르로, 이 오래된 주요 식품의 인기를 높였다.[1]
2. 3. 5. 어업
북대서양에서 잡힌 신선한 생선으로 요리할 수 있어 세계적으로도 아이슬란드의 어획량이나 이를 토대로 한 음식이 정평이 나 있다. 신선한 생선은 연중 내내 잡히는데 간하지 않은 대구도 이에 포함된다. 대개 유럽산 가자미, 해덕, 새우, 청어를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즐긴다. 심지어 삭힌 상어도 먹는다.[1]제1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트롤 어선을 이용한 대규모 상업적 어업이 시작되었다. 신선한 생선은 아이슬란드에서 저렴한 상품이 되었고, 아이슬란드 주변의 어촌 요리의 주식이 되었다. 1990년경까지 연구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인들은 다른 유럽 국가보다 1인당 훨씬 더 많은 생선을 소비했다. 그러나 그 이후, 급격한 생선 가격 상승으로 인해 소비량이 감소했다.[1]
품질 좋은 해산물이 풍부하며, 아이슬란드 한 나라가 세계 어획량의 약 2%를 차지한다. 대구, 연어, 청어, 해덕, 바닷가재, 장어, 새우, 둑중개의 생선알, 아귀, 가오리, 상어, 고래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최근에는 잘 먹지 않지만, 과거에는 바다표범 등 해수류도 귀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1]
일본에 열빙어를 수출하고 있지만, 아이슬란드에서는 풍미가 떨어진다며 그다지 식용하지 않는다. 일본으로의 고래고기 수출은 여러 차례 계획되었고, 일본 측의 기대도 높지만, 외부 압력으로 인해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다.[1]
어류에 관해서는 건어물도 잘 만들어지며, 소금에 절인 대구는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이다. 옛날에는 두드려 부드럽게 한 생선 건어물(하르즈피스크르)에 버터나 어유를 발라 빵 대신 먹기도 했다. 생선은 생선회나 타타키, 마리네처럼 해서 날 것으로 먹기도 한다. 날로 먹는 것은 식재료의 신선도가 높고, 생선을 감별하는 안목이 확실해야만 가능한 요리이다.[1]
담수어로는 송어, 연어, 잉어, 메기 등도 먹지만, 이쪽은 통째로 튀기는 등 신중하게 가열한다.[1]
3. 음식의 종류
아이슬란드 각 지방은 특산물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제공한다. 좋은 환경 덕분에 오염되지 않은 재료로 만든 질 좋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종류 | 설명 |
---|---|
생선 | 아이슬란드는 북대서양에서 잡히는 신선한 생선 요리로 세계적인 명성이 높다. 대구, 유럽산 가자미, 해덕, 새우, 청어 등 다양한 생선을 즐겨 먹으며, 삭힌 상어도 먹는다.[1] 건어물도 잘 만들어지며, 소금에 절인 대구는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이다.[1] |
육류 | 아이슬란드는 양고기 소비가 많은 편이며, 육류 생산에 매우 엄격하다. 가금류 농장도 많으며 닭, 오리, 칠면조를 많이 기른다. 양 고환도 먹는다.[1] 가공육으로는 바이킹 유래의 훈제 외에도 블러드 소시지나 간 소시지 등이 있다.[1] |
사냥감 | 바닷새(바다오리, 가마우지, 큰재갈매기)와 물새(청둥오리, 회색기러기, 분홍발기러기)가 주로 잡힌다. 기각류(물개) 사냥, 특히 바다물범 사냥도 이루어졌으나, 현재는 물개 고기를 먹는 경우가 드물다. 순록은 18세기에 도입되어 야생에서 서식하며, 매년 가을 사냥꾼에 의해 사냥된다. |
유제품 | 스키르(Skyr)는 바이킹들이 발명한 요구르트와 비슷한 유제품으로, 지방이 적고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하다. |
과일과 채소 | 대서양 난류의 영향으로 심하게 춥지 않아 밭이나 작은 정원에서 채소를 많이 재배하며, 감자나 양배추가 대표적이다. 온실에서는 화훼나 과일류도 재배한다.[3] |
빵과 페이스트리 | 다양한 종류의 빵은 일반인들에게는 사치품으로 여겨졌지만, 드물게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4] 현대 아이슬란드 빵집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빵과 페이스트리를 판매한다. |
3. 1. 생선
아이슬란드는 북대서양에서 잡히는 신선한 생선으로 요리하는 것으로 세계적인 명성이 높다. 연중 내내 신선한 생선을 구할 수 있으며, 대구, 유럽산 가자미, 해덕, 새우, 청어 등을 즐겨 먹는다. 삭힌 상어도 먹는다.[1]아이슬란드는 세계 어획량의 약 2%를 차지할 정도로 해산물이 풍부하다. 대구, 연어, 청어, 바닷가재, 장어, 새우, 둑중개의 생선알, 아귀, 가오리, 상어, 고래 등 다양한 해산물을 섭취한다. 과거에는 바다표범과 같은 해수류도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1]
건어물도 잘 만들어지며, 소금에 절인 대구는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이다. 과거에는 두드려 부드럽게 한 생선 건어물(하르즈피스크르)에 버터나 어유를 발라 빵 대신 먹기도 했다. 생선은 생선회나 타타키, 마리네처럼 날 것으로 먹기도 하는데, 이는 신선도가 높고 생선을 감별하는 안목이 확실해야 가능하다.[1]
열빙어는 일본에 수출되지만, 아이슬란드에서는 풍미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잘 먹지 않는다. 일본으로의 고래고기 수출은 여러 차례 계획되었지만, 외부 압력으로 인해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1]
담수어로는 송어, 연어, 잉어, 메기 등을 먹으며, 통째로 튀기는 등 신중하게 가열하여 조리한다.[1]
3. 1. 1. 하우카르
하우카르(Hákarl)는 아이슬란드어로 '상어'를 의미하며, 부패된 상어고기를 보존한 음식이다. 이는 토라마트르의 일부로, 전통적인 아이슬란드 계절 음식이다. 보통 현지 슈냅스인 브렌니빈과 함께 먹는다.[1]3. 2. 육류
아이슬란드는 산악 지역에서 양을 자유롭게 방목하기 때문에 양고기 소비가 많은 편이다. 육류 생산에 매우 엄격하며, 동물에게 호르몬 주사를 주입하여 인위적으로 생산하는 것은 엄중 처벌 대상이다. 가금류 농장도 많으며 닭, 오리, 칠면조를 많이 기른다. 양 고환도 먹는다.[1]
전통적으로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흔한 농장 동물인 양은 주요한 고기 공급원이었다. 양은 우유와 양털을 위해서도 사육되었으며, 도살할 때는 사체의 대부분 또는 전부를 꼼꼼하게 보존하고 소비하였다. 아이슬란드 기독교화 이후, 말고기는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흔하게 먹기 시작했다. 말고기는 보통 소금에 절여 삶거나 훈제 소시지 형태인 ''bjúgu''로 제공된다.
아이슬란드 쇠고기는 추운 기후 덕분에 일반적으로 품질이 최상급이며 마블링이 좋다. 아이슬란드 소는 풀을 먹고 성장 호르몬과 약물 없이 사육된다. 그러나 쇠고기를 먹는 전통이 부족하여 품질이 낮은 고기가 판매될 수 있으므로 구매자는 주의해야 한다.

아이슬란드에서 생산된 양고기는 국내에서 소비되는 것은 물론, 프랑스 등에도 수출되고 있다. 양은 머리부터 내장까지 모든 부위를 이용하는데, 양 머리를 2개로 쪼개 구운 스비드(Svið), 통째로 삶은 스마울라호우베(Smalahove), 내장 요리 등이 있다. 양머리 요리는 눈 부분이 가장 영양가가 높다고 여겨진다.
가공육으로는, 바이킹 유래의 훈제 외에도 맛이 좋은 블러드 소시지나 간 소시지 등도 만들어진다. 민간 전승에서는, 어떤 요정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집주인의 주의를 피해 훔쳐내려 한다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사냥으로 얻은 바닷새 고기도 훈제(냉훈) 등으로 해서 먹어왔다.
3. 2. 1. 사냥감
아이슬란드에서 사냥감으로는 바닷새(바다오리, 가마우지, 큰재갈매기)와 물새(청둥오리, 회색기러기, 분홍발기러기)가 주로 잡힌다. 일부 바닷새 고기에는 어유가 포함되어 있어 요리 전에 우유에 담가 기름을 추출한다. 바위도요새는 한때 크리스마스 메인 코스로 인기가 있었지만, 개체 수 감소로 사냥이 금지되었다.
기각류(물개) 사냥, 특히 바다물범 사냥도 이루어졌으나, 현재는 물개 고기를 먹는 경우가 드물다.
19세기 후반까지는 체계적인 아이슬란드의 포경이 불가능했지만, 해안 근처에서 작은 고래를 사냥하거나 좌초된 고래를 먹었다. 20세기 초 상업적 포경(주로 밍크고래)이 시작되면서 고래 고기가 저렴한 가격에 인기를 얻었으나, 1992년 국제포경위원회 탈퇴로 중단되었다. 2002년 재가입 후 2006년 상업적 포경이 재개되어 고래 고기를 다시 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가격이 비싸다.
순록은 18세기에 도입되어 야생에서 서식하며, 매년 가을 사냥꾼에 의해 사냥된다. 순록 고기는 진미로 여겨져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
지비에(사냥 요리)로는 순록, 바다꿩, 회색 기러기, 큰꼬리 기러기, 넓적부리바다오리, 바다오리, 큰바다오리 등이 제공된다.[1]
3. 2. 2. 육류 수입 제한
아이슬란드로의 생고기 수입은 엄격하게 규제되며, 수입업체에 발급되는 특정 면허에 따라 달라진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오염을 우려해 왔다. 아이슬란드의 고립된 환경으로 인해 아이슬란드에서 사육되는 대부분의 가축은 주변 국가에서 흔한 일부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관광객은 햄이나 소시지와 같은 가공육 제품도 반입할 수 없으며, 세관 공무원에게 압수된다.3. 3. 유제품
유제품은 아이슬란드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아이슬란드인은 연간 평균 400L의 유제품을 소비한다.
스키르(Skyr)는 바이킹들이 발명한 요구르트와 비슷한 유제품으로, 지방이 적고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하여 장수 식품으로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여름에 짠 우유나 양젖의 대부분이 스키르 제조에 사용된다. 스키르를 만든 후 남은 유청은 미사(Mysa)라고 불리며, 졸여서 미스오스투르(Mysuostur)라는 갈색의 달콤한 치즈를 만들거나, 발효시켜 시라(Sýra)를 만들어 고기나 생선을 저장하는 데 사용하거나, 물에 희석하여 마시기도 한다.
3. 4. 과일과 채소
아이슬란드는 북극권에 속하지만, 대서양 난류의 영향으로 심하게 춥지 않다. 밭이나 작은 정원에서 채소를 많이 재배하며, 감자나 양배추가 대표적이다. 하우스에서는 화훼나 과일류도 재배한다.[3]17세기 후반, 일부 농부들이 채소 정원을 처음 일구었지만, 채소 재배가 일반화된 것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상선 유입이 막힌 19세기 초였다. 덴마크 거주민들이 채소 정원 문화를 도입하여, 내한성이 강한 양배추, 순무, 스웨덴 순무, 감자 등을 재배했다. 이러한 채소들은 주로 고기나 생선 요리에 곁들여 삶거나, 버터와 함께 으깨어 먹었다.[3]
채소 생산과 소비는 꾸준히 증가하여 1977년 약 8,000톤에서 2007년에는 약 30,000톤에 달했다. 추운 기후 덕분에 농부들은 농약을 사용할 필요성이 적다. 순무, 양배추, 무와 같은 채소는 보통 이른 봄에 온실에서 재배를 시작하며, 토마토와 오이는 완전히 실내에서 생산한다. 아이슬란드는 딸기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종류의 단 과일을 수입에 의존한다. 20세기 초부터 중세 이후 처음으로, 몇몇 지역에서 식용 보리 재배가 다시 가능해졌다.[3]
채소로는 북유럽 공통의 순무, 루타바가, 루바브, 양배추와 감자 외에도 온실 재배된 따뜻한 지역의 작물도 최근 유통되고 있다.
3. 5. 빵과 페이스트리
다양한 종류의 빵은 일반인들에게는 사치품으로 여겨졌지만, 드물게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 상인에게서 구입한 곡물은 맷돌을 사용하여 갈았으며, 말린 돌김과 지의류를 곁들였다. 때로는 우유에 삶아 묽은 죽으로 먹기도 했다. 이 죽에 스키르를 섞어 ''스키르흐레이닝구르''를 만들기도 했다. 가장 흔한 종류의 빵은 루그브라우드라고 불리는 냄비 빵으로, 독일의 펌퍼니클과 덴마크의 루그뢰드를 연상시키는, 짙고 밀도가 높은 호밀빵이지만 더 촉촉했다. 이 빵은 반죽을 온천 근처 땅에 특별한 나무 통에 묻어 다음 날 꺼내 굽기도 했다. 이렇게 구운 빵은 약간 유황 맛이 난다. 버터를 곁들인 말린 생선은 하루 종일 모든 식사에 제공되었으며, 유럽의 "매일의 빵"과 같은 역할을 했다.


현대 아이슬란드 빵집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빵과 페이스트리를 판매한다. 아이슬란드 최초의 전문 제빵사는 덴마크인이었고, 이는 여전히 아이슬란드 제빵사들의 전문적인 전통에 반영되어 있다. 오랫동안 현지에서 인기 있는 메뉴로는 보통 글레이즈나 녹인 초콜릿을 얹은 시나몬 롤의 일종인 ''스누르''(snúður)와 로스팅 팬에 구운 단층 초콜릿 케이크인 ''스쿠푸카카''(skúffukaka)가 있는데, 초콜릿 글레이즈로 덮고 간 코코넛을 뿌린다.
19세기부터 아이슬란드에서는 ''란달린''(randalín), ''란다브뢰이드''(randabrauð) 또는 간단히 ''라그카카''(lagkaka)라는 다양한 종류의 레이어 케이크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약 1.27cm 두께의 케이크 5겹과 과일 통조림, 잼 또는 아이싱을 번갈아 가며 사용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9세기 후반에 인기를 끌었던 자두 층이 있는 비나르테르타(vínarterta)라는 버전은 미국과 캐나다에 정착한 아이슬란드 이민자들의 요리 전통의 일부가 되었다.[4]
아이슬란드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전통 빵으로는 루그브뢰이드(rúgbrauð)가 있는데, 이것은 온천 근처에 파 놓은 구멍에서 굽는 데 사용되는 냄비나 특별한 상자에 구워 만든 빽빽하고 어둡고 촉촉한 호밀빵이다. 그리고 부드러운 갈색 호밀 플랫브레드인 플랫카카(flatkaka)가 있다. 항기쾨트(hangikjöt)를 제공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플랫카카에 얇게 썰어 내는 것이다. 다른 빵으로는 부드러운 빵인 스콘과 웨스트피요르드 밀 케이크(Vestfirskar hveitikökur)가 있다.
전통 페이스트리로는 반죽을 납작하게 하여 특수 절단 휠(''클레이나야른''(kleinujárn))로 작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자른 다음, 가운데를 째서 한쪽 끝을 틈으로 당겨 "매듭"을 만드는 작은 튀긴 반죽 식품 번인 클레이나(kleina)가 있다. 그런 다음 이것을 기름에 튀긴다.[5] 라우파브뢰이드(Laufabrauð) (직역: "잎빵")는 매우 얇은 웨이퍼로, 날카로운 칼과 굴곡진 절단 휠로 무늬를 새겨서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것으로,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음식이며, 때로는 항기쾨트와 함께 제공된다.
이름 | 설명 |
---|---|
루그브로이스(Rúgbrauð) | 껍질(크러스트)이 없고 촉촉하며 밀도가 높은 어두운 호밀빵. 저온에서 장시간 조리되기 때문에 단맛이 난다.[9] |
루이바브로이스(Laufabrauð) | 납작하고 매우 얇은 튀김빵으로, 오려내거나 칼집을 내어 잎맥과 같은 기하학적 무늬를 내기 때문에 "아이슬란드의 잎사귀 빵(Icelandic Leaf Bread)"이라고도 불린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한기쿄트와 함께 먹는 경우가 많다.[10] |
플랫브라우즈(Flatbrauð) | 호밀로 만든 얇은 빵. |
4. 축제
아이슬란드에서는 여러 축제와 행사 때 특별한 음식을 즐기는 전통이 있다.
크리스마스에는 양고기를 훈제한 항기키요트,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갈비인 햄버거흐리구르, 그리고 뇌조 스튜, 바다오리, 구운 회색 거위 등 다양한 종류의 사냥감 요리를 먹는다. 이러한 요리에는 베샤멜 또는 버섯 소스, 삶은 감자, 완두콩, 절인 사탕무나 적채, 잼 등이 곁들여진다. 건포도를 넣은 쌀 푸딩에 계피 가루와 설탕을 뿌린 "요울라그뢰이튀르"는 전통적인 디저트이다.
12월 23일 성 토르락 축일에는 발효된 가오리를 녹인 수지와 삶은 감자와 함께 먹는 전통이 있다. 크리스마스 전에는 여러 가정에서 ''피파르쾨퀴르''라는 생강 비스킷을 굽고, 라우파브뢰이드를 튀겨 장식하는 가족 모임을 갖기도 한다.
'''토라마투르'''는 전통 시골 음식들을 모아놓은 플래터로, 1958년 레이캬비크의 한 레스토랑에서 시작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생일, 결혼식, 세례식, 견진 성사 등의 행사에서는 확대가족을 초대하여 점심이나 ''카피''(주로 커피를 제공하는 애프터눈 티)를 대접한다.[6] 덴마크에서 유래된 크란세카카와 스웨덴의 스뫼르가스토르타와 비슷한 ''브라우테르타''(새우, 훈제 연어, 항기쾨트, 마요네즈 등을 넣은 흰 빵)를 비롯하여, 과일, 휘핑 크림, 마지팬, 머랭을 얹은 다양한 스펀지 케이크 등이 제공된다.[6]
4. 1. 크리스마스 요리
아이슬란드에서는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크리스마스 만찬을 제공한다. 전통적인 주요 요리는 hangikjöt(훈제 양고기(lamb and mutton)), 햄버거흐리구르(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갈비)와 다양한 종류의 사냥감(Game (hunting)), 특히 뇌조 스튜, 바다오리(가끔 가볍게 훈제), 구운 회색 거위(greylag goose) 등이다. 이러한 요리에는 보통 베샤멜 또는 버섯 소스, 삶은 감자, 완두콩, 절인 사탕무 또는 적채, 그리고 잼이 함께 제공된다. 전통적인 디저트는 쌀 푸딩에 건포도를 넣고, 계피 가루와 설탕을 뿌린 "jólagrautur"(율 푸딩)이다.12월 23일(성 토르락 축일)에는 발효된 가오리(Skate (fish))를 녹인 수지와 삶은 감자와 함께 제공하는 전통(원래 웨스트피요르드)이 있다. 크리스마스에 hangikjöt을 삶아 가오리를 먹은 후 며칠 동안 집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강한 냄새를 없앤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전 몇 주 동안 많은 가정에서는 휴일 동안 친구와 가족을 위해 다양한 쿠키를 굽는다. 여기에는 종종 색깔있는 유약으로 장식된 생강 비스킷의 일종인 ''piparkökur''가 포함된다. Laufabrauð도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튀겨지며, 장식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 모임을 갖는 기회가 된다.
4. 2. 토라마투르
'''토라마투르'''(Þorramatur)는 1958년 레이캬비크의 한 레스토랑에서 토라블로트(Þorrablót) 전통과 연관하여 전통 시골 음식들을 모아놓은 플래터를 광고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아이디어는 매우 인기를 얻었고, 기성세대들에게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과 도시화 붐이 일어나기 전 시골에서 성장하거나 여름을 보냈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최근 '''토라마투르'''는 전통 아이슬란드 음식의 기이함과 특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는데, 실제로는 많은 흔한 음식들이 '''토라마투르''' 범주에 속하지 않음에도 전통 음식이라는 이유로 포함되기도 한다.
- 항기키요트(hangikjöt): 아이슬란드의 크리스마스 요리. 어린 양고기를 훈제한 것으로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 중 하나로 여겨진다.
- 하르즈피스크르(harδfiskur): 두드려서 부드럽게 만든 생선 건어물. 간식 등으로 먹는다.
- 그라블락스(graflax): 연어 살을 절여 생선알을 곁들인 요리.
- 리브라르피르사(lifrarpýlsa): 아이슬란드식 간 소시지. 독일 등과 달리 돼지가 아닌 양의 간을 사용한다.
- 브로즈몰(broðmór): 아이슬란드식 블러드 소시지. 양의 피와 고기를 사용한다.
4. 3. 생일, 결혼식, 세례식 및 견진 성사
이러한 행사들은 아이슬란드에서 확대가족을 점심 또는 "애프터눈 티"라고 불리는 ''카피''에 초대하는 다양한 경우에 해당하며, 아이슬란드에서는 주로 차보다는 필터 커피를 제공한다.[6] 전통적인 음식으로는 덴마크에서 유래된 크란세카카와 다양한 종류의 ''브라우테르타''가 있는데, 이는 스웨덴의 스뫼르가스토르타와 비슷하며, 새우, 훈제 연어 또는 항기쾨트와 마요네즈를 넉넉하게 넣은 흰 빵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대규모 가족 모임에 인기 있는 것은 신선하거나 통조림으로 된 과일, 휘핑 크림, 마지팬, 머랭을 얹은 다양한 종류의 스펀지 케이크이다. 이러한 전통은 할도르 락스네스의 소설, ''빙하 아래''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에서 풍자되는데, 여기서 등장인물인 흐날토라는 주교의 사절에게 모든 식사에 여러 종류의 호화로운 케이크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이러한 유형의 케이크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참조
[1]
간행물
Tillaga til þingsályktunar um aðgerðir til að bæta heilbrigði Íslendinga með hollara mataræði og aukinni hreyfingu.
http://www.althingi.[...]
Acts of the 131st Legislature of Iceland
2004-05
[2]
서적
Eldamennska í íslensku torfbæjunum
Byggðasafn Skagfirðinga
2000
[3]
간행물
Heyfengur og uppskera grænmetis, korns og garðávaxta 1977-2007
http://www.hagstofa.[...]
Hagstofa Íslands
2008
[4]
웹사이트
Lagterta
http://www.arnastofn[...]
Stofnun Árna Magnússonar í íslenskum fræðum
2002
[5]
문서
Kleina is mentioned in one of the first cookbooks printed in Icelandic, Einfaldt Matreidslu Vasa-Qver fyrir heldri manna Húss-freyjur by Marta María Stephensen from 1800
[6]
잡지
The Coffee of Civilization in Iceland
http://www.newyorker[...]
2015-04-16
[7]
문서
Kæstur hákarl
[8]
문서
製塩には日照と燃料が必要である。海水をそのまま煮詰めて塩を得るには多量の木材や[[石炭]]等の燃料が必要となる。海水を天日で蒸発させ塩分を取り出す[[塩田]]は豊富な日照量が必要不可欠である。高緯度の地域では日照不足となり、いずれの方法でも製塩は困難であった。
[9]
웹사이트
Seytt rúgbrauð
https://www.mbl.is/g[...]
2021-12-19
[10]
웹사이트
Laufabrauð - Icelandic Leaf bread
https://www.icelandf[...]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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