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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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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익선동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처음 등장한 서울 종로구의 동으로, 누동궁의 익랑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조선 시대에는 돈녕부와 누동궁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정세권에 의해 한옥 단지로 조성되어 예술인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다. 1960~70년대에는 요정 정치의 중심지였으며, 20세기 후반부터는 성소수자 문화가 형성되기도 했다. 21세기 들어 재개발 논란과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으며 한옥과 현대적 업종이 결합된 관광지로 발전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인구 감소와 상업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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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
지도
개요
종류법정동
위치서울특별시 종로구
유래
명칭 유래한성부의 동쪽 경계에 있던 고을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역사
1914년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일부가 관철동, 견지동, 낙원동, 훈정동, 묘동, 봉익동, 돈의동에 편입되었다.
지리
특징익선동은 경복궁창덕궁, 종묘 사이에 위치해 있다.
좁은 골목길과 1920년대에 지어진 한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젊은 세대들이 이 곳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카페, 음식점, 공방 등을 열기 시작했다.
현재는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교통
지하철수도권 전철 1호선: 종로3가역
서울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서울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문화
명소익선동 한옥마을
종로3가역

2. 지명 유래

익선동의 유래가 된 누동궁의 모습 (1924년).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익선동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였다. 당시 경성부 중부 정선방(貞善坊) 돈녕계(敦寧契) 궁동(宮洞), 익동(益洞), 돈녕동(敦寧洞), 니동(泥洞) 일부, 한동(漢洞) 일부를 합쳤으므로[1] 정선방의 ‘선’과 익동의 ‘익’을 따 익선동이라 하였다. 익동은 누동궁의 익랑(翼廊, 좌우의 행랑)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누동궁은 ‘줄행랑’이라 불리는 긴 행랑이 유명하여[2] 주변 지역을 익랑골(翼廊―)이라 불렀으며, 익랑골이 익동으로 줄어든 것이다.

2. 1. 어원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익선동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였다. 당시 경성부 중부 정선방(貞善坊) 돈녕계(敦寧契) 궁동(宮洞), 익동(益洞), 돈녕동(敦寧洞), 니동(泥洞) 일부, 한동(漢洞) 일부를 합쳤으므로[1] 정선방의 ‘선’과 익동의 ‘익’을 따 익선동이라 하였다. 익동은 누동궁의 익랑(翼廊, 좌우의 행랑)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누동궁은 ‘줄행랑’이라 불리는 긴 행랑이 유명하여[2] 주변 지역을 익랑골(翼廊―)이라 불렀으며, 익랑골이 익동으로 줄어든 것이다.

3. 역사

3. 1. 고려 시대

최종현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명예교수는 태종 이방원이 “향교동 동쪽 주변의 땅에 이궁(창덕궁)을 지으라.”라고 한 기록을 두고 조선 초기에 이미 교동은 궁궐을 지을 때 이곳을 피해 지을 정도로 큰 규모로 형성된 마을이었으리라 추정하였다.[1] '교동’이라는 지명은 흔히 향교가 있는 곳에 붙는데, 향교는 지역의 중심지에 위치한다. 또 종로돈화문로, 그 좌우의 피마길이 조선 시대에 직선으로 개설된 도로임을 감안할 때, 이들 도로와 교차하는 사선의 골목은 그 이전인 고려 시대부터 존재하였다고 보았다. 그 중 하나의 흔적이 익선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돈화문로11나길로, 고려 시대에 이 골목은 금위영천이었으며 그 왼쪽으로 하천을 따라 길이 나 있었을 것이다.[1]

3. 2. 조선 시대

익선동에는 돈녕부(敦寧府)와 누동궁(樓洞宮)이 있었다. 돈녕부는 종친부에 속하지 않는 왕의 친족을 관리하던 부서였다.[3] 누동궁은 전계대원군의 사손(嗣孫)들이 살던 집으로, 철종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철종은 즉위 후 자신의 옛 집터에 집을 지어 형 영평군 이경응이 살도록 하였는데, 그 집이 바로 누동궁이다. 누동궁 안에는 전계대원군, 완양부대부인 최씨, 용성부대부인 염씨 등 셋을 모신 사당인 전계궁(全溪宮)이 있었다.

본래 이 지역은 정선방(貞善坊)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동국여지비고》에는 정선방 하위에 돈녕부 상계(敦寧府上契), 돈녕부 하계 등이 속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4], 익선동은 돈녕부계 일부에 해당한다. 《육전조례》에는 정선방에 돈녕상계, 하계 등이 속한다고 되어 있으며, 익선동은 돈녕계 일부에 해당한다.

갑오개혁으로 오부를 폐지하고 오서(五署)를 설치하면서, 중서(中署) 정선방(貞善坊) 아래에 돈녕계(敦寧契)가 설치되었고, 돈녕계에는 '''돈녕동'''(敦寧洞), '''한동'''(漢洞), 누동(樓洞), '''익동'''(益洞), '''궁동'''(宮洞), '''니동'''(泥洞), 승문동(承文洞) 등이 속했다.

3. 3. 일제 강점기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까지 익선동은 부동산개발업자 정세권에 의하여 한옥 단지로 조성되었다. 청계천 남쪽인 남촌에 모여 살던 일본인들이 1920년대 들어 조선인이 다수이던 청계천 북쪽으로 세력을 넓히려 하자, 정세권이 북촌, 익선동, 봉익동, 체부동, 창신동 등지에 조선인을 위한 한옥 단지를 건설함으로써 이를 저지하였다. 그는 주로 넓은 한옥 저택 하나를 사 허물고 작은 한옥을 빼곡하게 지었다. 익선동에서는 1929년에 익선동 33번지(옛 완화군의 사저, 완화궁)를, 이듬해에 익선동 166번지(옛 누동궁), 33-16번지, 19번지 일대를 개발하였다. 한편, 누동궁을 판 누동궁의 마지막 주인 이해승은 그 돈으로 홍은동에 땅을 샀으며 1988년에 손자 이우영이 호텔을 지었다.[8]

좌측 하단에 계획적으로 개발된 익선동 한옥 지구가 잘 드러나 있다.


익선동에는 예술인도 많이 살고 있었다. ‘팔홍문 집’으로 불린 홍명희의 집을 비롯하여 김억, 박진, 이기영, 이해조 등의 집이 있던 곳이 익선동이었다.[9] 서화가 김용진과 이병직이 살던 집은 훗날 요정 오진암이 된다.[10][11] 명창 김초향도 익선동에 살다가, 1931년에 자신의 집을 조선음률협회가 사무실로 쓰도록 기증하였다. 또 1937년에 김종익이 익선동에서 집 한 채를 사들여 조선음률협회의 후신인 조선성악연구회의 사무실로 주면서 송만갑박록주도 사용하게 하였다. 이 집은 익선동 159번지에 있었는데, 연구회 사무실 방과 명인·명창들이 사용하던 방은 1994년 당시 이미 헐렸고, 명인·명창들이 연습하던 한옥만 지금까지 남아 ‘한옥’이라는 음식점으로 쓰였다. 한편, 박록주의 1974년 회고에 의하면 김종익은 1937년에 그의 집도 함께 사 주었는데, 박록주는 말년에 익선동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둔 돈의동 21-4번지 한옥에서 살았다.

3. 3. 1. 정세권의 한옥 단지 조성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까지 익선동은 부동산개발업자 정세권에 의하여 한옥 단지로 조성되었다. 청계천 남쪽인 남촌에 모여 살던 일본인들이 1920년대 들어 조선인이 다수이던 청계천 북쪽으로 세력을 넓히려 하자, 정세권이 북촌, 익선동, 봉익동, 체부동, 창신동 등지에 조선인을 위한 한옥 단지를 건설함으로써 이를 저지하였다. 그는 주로 넓은 한옥 저택 하나를 사 허물고 작은 한옥을 빼곡하게 지었다. 익선동에서는 1929년에 익선동 33번지(옛 완화군의 사저, 완화궁)를, 이듬해에 익선동 166번지(옛 누동궁), 33-16번지, 19번지 일대를 개발하였다. 한편, 누동궁을 판 누동궁의 마지막 주인 이해승은 그 돈으로 홍은동에 땅을 샀으며 1988년에 손자 이우영이 호텔을 지었다.[8]

3. 3. 2.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익선동에는 예술인도 많이 살고 있었다. ‘팔홍문 집’으로 불린 홍명희의 집을 비롯하여 김억, 박진, 이기영, 이해조 등의 집이 있던 곳이 익선동이었다.[9] 서화가 김용진과 이병직이 살던 집은 훗날 요정 오진암이 된다.[10][11] 명창 김초향도 익선동에 살다가, 1931년에 자신의 집을 조선음률협회가 사무실로 쓰도록 기증하였다. 또 1937년에 김종익이 익선동에서 집 한 채를 사들여 조선음률협회의 후신인 조선성악연구회의 사무실로 주면서 송만갑박록주도 사용하게 하였다. 이 집은 익선동 159번지에 있었는데, 연구회 사무실 방과 명인·명창들이 사용하던 방은 1994년 당시 이미 헐렸고, 명인·명창들이 연습하던 한옥만 지금까지 남아 ‘한옥’이라는 음식점으로 쓰였다. 한편, 박록주의 1974년 회고에 의하면 김종익은 1937년에 그의 집도 함께 사 주었는데, 박록주는 말년에 익선동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둔 돈의동 21-4번지 한옥에서 살았다.

3. 4. 해방 후 20세기

오진암의 역사 표지판.


익선동 거주자의 증언에 따르면, 1960~70년대 익선동에는 요정이 곳곳에 자리하였다. 1969년 12월 당시 서울특별시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던 오진암(월 123만 원), 옥류장(월 102만 원), 대하가 모두 익선동에 있었다.[13] 이 가운데 오진암(梧珍庵)은 1900년대 초에 건립된 한옥에 1953년경 들어선 요정으로,[14] 1972년에 이후락과 박성철이 7·4 남북 공동 성명을 논의하고, 정재계 인사들이 자주 찾는 등 삼청각, 대원각과 함께 1970-80년대 요정 정치의 산실로 유명하였다. 전성기에는 종업원과 하루 손님이 각각 70-80명에 이를 정도였다.[15] 이러한 요정 문화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익선동에는 한복집과 점집이 남아 있다.[16]

탑골공원부터 종로5가까지에는 해방 직후 종삼(鍾三)이라는 대규모 성매매 밀집지역이 있었는데, 이곳은 김현옥 서울시장 시절이던 1968년 9월에서 10월 사이에 ‘나비작전’이라는 계획으로 모두 사라졌다.[17] 종삼이 없어지면서 성매매 업소로 쓰이던 공간이 비게 되었고,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파고다극장을 중심으로 게이바가 들어서면서 낙원동, 익선동, 돈의동 등에 걸치는 성소수자 문화 공동체가 형성되었다.[18][19] 1960년대 이래 신당동이나 을지로 등에서도 모여 왔던 게이들은 1990년대 초반에 신당동의 성동극장이 폐관하면서 낙원동 일대로 유입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이태원에서 모이기 시작한 20-30대들도 2000년대 들어 게이 업소가 줄어들면서 이 일대로 모여들게 되었다.[18]

3. 4. 1. 요정 정치



익선동 거주자의 증언에 따르면, 1960~70년대 익선동에는 요정이 곳곳에 자리하였다. 1969년 12월 당시 서울특별시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던 오진암(월 123만 원), 옥류장(월 102만 원), 대하가 모두 익선동에 있었다.[13] 이 가운데 오진암(梧珍庵)은 1900년대 초에 건립된 700평 규모의 한옥에 1953년경 들어선 요정으로,[14] 1972년에 이후락과 박성철이 7·4 남북 공동 성명을 논의하고, 정재계 인사들이 자주 찾는 등 삼청각, 대원각과 함께 1970-80년대 요정정치의 산실로 유명하였다. 전성기에는 종업원과 하루 손님이 각각 70-80명에 이를 정도였다.[15] 이러한 요정 문화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익선동에는 한복집과 점집이 남아 있다.[16]

3. 4. 2. 성소수자 공동체의 형성



탑골공원부터 종로5가까지에는 해방 직후 종삼(鍾三)이라는 대규모 성매매 밀집지역이 있었는데, 이곳은 김현옥 서울시장 시절이던 1968년 9월에서 10월 사이에 ‘나비작전’이라는 계획으로 모두 사라졌다.[17] 종삼이 없어지면서 성매매 업소로 쓰이던 공간이 비게 되었고,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파고다극장을 중심으로 게이바가 들어서면서 낙원동, 익선동, 돈의동 등에 걸치는 성소수자 문화 공동체가 형성되었다.[18][19] 1960년대 이래 신당동이나 을지로 등에서도 모여 왔던 게이들은 1990년대 초반에 신당동의 성동극장이 폐관하면서 낙원동 일대로 유입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이태원에서 모이기 시작한 20-30대들도 2000년대 들어 게이 업소가 줄어들면서 이 일대로 모여들게 되었다.[18]

3. 5. 21세기

wikitext

한옥과 현대적인 업종이 결합한 익선동 골목.


익선동은 1997년 당시 주민의 63%가 재개발에 찬성하였고[20], 1999년에 한옥 보존을 이유로 재개발이 한 차례 무산되었지만[21], 오피스텔이 들어서며 부분적으로 개발되었다.[22][23] 종로구청은 익선동의 전면적인 재개발을 추진하였고[24], 2004년 5월 6일 익선동 165번지 일대 31,121.5 m2가 익선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다.[25] 사업을 추진한 주민들은 돈화문로와 인접한 곳에 5층짜리 상가를 건설하고, 그 안쪽에 13~14층의 오피스텔, 호텔,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었으며,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이곳이 인사동 등과 가까운 점을 고려하여 한국의 전통미를 건물에 가미하도록 권하였다.[26]

2008년 12월, 서울특별시는 한옥 밀집 지역 개발 시 한옥을 일부 보존하도록 유도하고, 체부동, 명륜동, 사직동, 익선동 일대의 한옥을 보전하는 구상을 내놓았다.[27] 2010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위원회는 한옥 보전과 관련하여 익선동의 재개발 계획을 부결하였다.[28] 2013년 3월, 주민의 52%가 찬성하여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해산되고, 2014년 7월 도시환경정비구역 해제가 신청되나, 세 달 뒤 도시계획위원회는 구역 해제 후 난개발이 이루어질 것을 우려하였다.[29] 서울특별시는 지구단위계획 수립에 나섰으나,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 행정 공백이 더해지면서 익선동은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29]

일명 ‘중앙로’라 불리는 수표로28길의 17번 종속구간(구 누동궁1길)을 중심으로 2014년 말에서 2015년 초 사이에 주민 생활과 무관한 카페, 주점 등이 들어오면서 익선동은 상업화되기 시작하였고[30], 한옥의 겉모습 안에 내부를 새롭게 고친 업장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도심 속 관광지로 인기를 끌었다.[31] 2018년 5월 10일에는 도시환경정비구역의 해제와 동시에 일대의 역사성·장소성 보전을 위한 익선 지구단위계획구역이 지정되었다.[32][33]

한편, 익선동에 마지막으로 남은 요정이었던 오진암은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고, 2006년부터 경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건물주의 건강 문제로 2010년 7월 말에 폐업하였다.[15] 오진암은 2010년 9월에 철거되었고[34], 그 자리에는 2013년 10월 25일 ‘이비스 앰배서더 서울 인사동’ 호텔이 개관하였다.[35] 종로구청에서는 부암동 무계정사 터에 오진암의 부재 일부를 활용한 문화공간 무계원(武溪園)을 2014년 3월 20일에 개원하였고[36],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오진암의 현판을 소장 중이다.[37] 익선동의 유동인구가 증가하자 이비스 호텔 이후에도 익선동과 주변 지역에 호텔이 들어서면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38]

3. 5. 1. 재개발 논란

|섬네일|한옥과 현대적인 업종이 결합한 익선동 골목.]]

익선동은 1997년 당시 주민의 63%가 재개발에 찬성하였고[20], 1999년에 한옥 보존을 이유로 재개발이 한 차례 무산되었지만[21], 오피스텔이 들어서며 부분적으로 개발되었다.[22][23] 종로구청은 익선동의 전면적인 재개발을 추진하였고[24], 2004년 5월 6일 익선동 165번지 일대 31,121.5 m2가 익선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다.[25] 사업을 추진한 주민들은 돈화문로와 인접한 곳에 5층짜리 상가를 건설하고, 그 안쪽에 13~14층의 오피스텔, 호텔,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었으며,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이곳이 인사동 등과 가까운 점을 고려하여 한국의 전통미를 건물에 가미하도록 권하였다.[26]

2008년 12월, 서울특별시는 한옥 밀집 지역 개발 시 한옥을 일부 보존하도록 유도하고, 체부동, 명륜동, 사직동, 익선동 일대의 한옥을 보전하는 구상을 내놓았다.[27] 2010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위원회는 한옥 보전과 관련하여 익선동의 재개발 계획을 부결하였다.[28] 2013년 3월, 주민의 52%가 찬성하여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해산되고, 2014년 7월 도시환경정비구역 해제가 신청되나, 세 달 뒤 도시계획위원회는 구역 해제 후 난개발이 이루어질 것을 우려하였다.[29] 서울특별시는 지구단위계획 수립에 나섰으나,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 행정 공백이 더해지면서 익선동은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29] 2018년 5월 10일, 도시환경정비구역의 해제와 동시에 일대의 역사성·장소성 보전을 위한 익선 지구단위계획구역이 지정되었다.[32][33]

3. 5. 2. 젠트리피케이션



익선동은 도심에 있음에도 근현대 한옥과 낡은 주택들이 1990년대 말까지 남아 있었다.[20] 1997년 주민 63%가 재개발에 찬성했고,[20] 1999년 한옥 보존을 이유로 재개발이 무산되었지만,[21] 오피스텔이 들어서는 등 부분 개발되었다.[22][23] 2004년 익선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되어, 돈화문로 인근에 상가, 오피스텔, 호텔, 아파트를 건설할 예정이었고, 서울특별시는 인사동 등과 가까운 점을 고려하여 한국 전통미를 건물에 가미하도록 권했다.[26]

2008년 서울시는 한옥 밀집 지역 개발 시 한옥 일부 보존을 유도하는 구상을 발표했고,[27] 2010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한옥 보전을 이유로 익선동 재개발 계획을 부결시켰다.[28] 2013년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해산되고, 2014년 도시환경정비구역 해제가 신청되었으나, 도시계획위원회는 난개발을 우려했다.[29] 서울시는 지구단위계획 수립에 나섰지만, 행정 공백 속에 익선동은 빠르게 상업화되기 시작했다.[29] ‘중앙로’(수표로28길 17번 종속구간, 구 누동궁1길)를 중심으로 2014년 말에서 2015년 초 사이 카페, 주점 등이 들어섰고, 한옥 내외부를 개조한 업장들이 들어서며 관광지로 인기를 끌었다.[31] 2018년 도시환경정비구역 해제와 함께 익선 지구단위계획구역이 지정되었다.[32][33]

한편, 익선동 마지막 요정이었던 오진암은 2010년 7월 말 폐업 후 철거되었고,[15][34] 그 자리에 ‘이비스 앰배서더 서울 인사동’ 호텔이 들어섰다.[35] 종로구청은 부암동 무계정사 터에 오진암 부재를 활용한 무계원(武溪園)을 개원했고,[36] 서울역사박물관은 오진암 현판을 소장 중이다.[37] 익선동 유동인구 증가로 주변 지역에 호텔이 들어서며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38]

3. 5. 3. 새로운 문화 트렌드의 중심지



익선동은 2010년대 중반부터 이른바 '뉴트로' 열풍을 타고 새로운 문화 트렌드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2004년 익선동 일대가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되어 오피스텔, 호텔, 아파트 등이 들어설 예정이었으나,[25][26] 2010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위원회는 한옥 보전을 이유로 재개발 계획을 부결하였다.[28] 이후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해산되고 도시환경정비구역 해제가 신청되었으나, 난개발을 우려한 도시계획위원회는 이를 보류하였다.[29]

이러한 행정 공백 속에서 익선동은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수표로28길의 17번 종속구간(구 누동궁1길)을 중심으로 2014년 말에서 2015년 초 사이에 카페, 주점 등이 들어서면서 상업화되기 시작하였고,[30] 한옥의 겉모습 안에 내부를 새롭게 고친 업장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도심 속 관광지로 인기를 끌었다.[31] 이는 전통적인 한옥의 외관과 현대적인 내부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8년 5월 10일에는 도시환경정비구역의 해제와 동시에 일대의 역사성·장소성 보전을 위한 익선 지구단위계획구역이 지정되었다.[32][33] 이러한 변화는 익선동이 단순한 주거 지역을 넘어, 역사와 현대 문화가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4. 문화

4. 1. 관광

일제 강점기에 돈화문 주변, 특히 익선동에는 권번에 속한 기생들이 거주했다.[40] 이들은 판소리창극을 공연하며 여성 판소리 연행자들을 양성했다.[41][42] 장악원의 후신이자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이왕직 아악부가 1926년부터 익선동 인근 운니동에 위치했고,[43] 아악부의 일소당(佾韶堂)에서 국악 공연이 열렸기 때문에, 명인들은 좁은 골목에서 방음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며 판소리를 연습했다고 전해진다.[40]

해방 이후 익선동에는 국악을 전승하는 기생들과 밀매음 여성들이 공존했다.[40][44][45] 1953년 오진암을 필두로 여러 요정들이 익선동에 자리를 잡았고,[14][46][47] 1970년대 초 관광 요정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46] 특히 오진암은 1972년 외국인 접객 관광 요정으로 지정되었으며,[48] 국악인들의 공연 장소로도 활용되었다.[40] 현재 명창 임방울의 손녀 임향님이 익선동에 판소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49] 종로1·2·3·4가동 주민센터에는 우리소리도서관이 개관하여 국악의 흔적이 남아있다.[50]

섬네일


1990년대 이후 요정 문화는 쇠퇴했으나,[46][49] 관광객들은 북촌, 서촌과 달리 상업화되지 않은 익선동의 ‘사람 사는 골목’ 느낌에 주목했다.[12] 2009년 문을 연 전통찻집 '뜰안'은 익선동에 처음으로 생긴 외지인 가게였다.[51][29] '뜰안'은 한일 합작 영화 《카페 서울》(2010)의 촬영지로, 영화에 등장하는 떡집 '모란당'으로 알려져 많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방문했다.[51]

2014년 말부터 카페 ‘식물’, 가맥집 ‘거북이슈퍼’ 등 청년 창업가들의 가게가 생겨나고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익선동은 상업화되기 시작했다.[53] 2016년 다큐멘터리 3일에 방영된 후,[54] 한옥을 리모델링한 다양한 가게들이 들어섰다.[55][56] 2010년대 후반부터 뉴트로 열풍이 불면서 익선동은 을지로, 홍대 등과 함께 뉴트로의 중심지로 알려졌다.[57][58] 익선동은 2019~2020년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되었지만,[59]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발생했다.[60] 2017년 국토연구원은 익선동 일대 임대료가 6년 동안 4배 상승했고, 2017년에는 전년 대비 50% 상승했다고 발표하며, 익선동이 젠트리피케이션 3단계에 해당한다고 진단했다.[61]

4. 2. 한옥

2018년 1월 현재 익선동에는 119동의 한옥이 있으며, 그 중 37동이 거주용이다.[62] 2006년과 2014년의 조사에 따르면, 익선동 33번지 일대는 한옥의 수가 감소하는 추세이며, 익선동 166번지 일대 역시 한옥 수가 줄고 있다.[63][64]

익선동에서 한옥마을로 널리 알려진 166번지는 이해승의 소유였다가 박영효 외 2인을 거쳐 창덕궁으로 소유주가 변경되었다.[62] 이후 여러 차례 필지가 분할되었는데, 남북 방향으로 쪼개진 필지는 건넌방이나 부속채를 임대할 때 각 가구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었다.[63]

정세권은 166-14~166-60번지까지 분할된 상태에서 개발에 참여하였다. 이 때문에 정세권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던 익선동 166번지의 동쪽 지역은 필지가 비교적 크지만, 166-52번지에서 분할된 서쪽 지역은 좁은 편이다.[63] 이곳의 한옥들은 ‘부엌-안방-마루-건넌방’의 네 칸을 기본으로 하며, 좁은 땅에 최대한 많은 집을 짓기 위해 ㄷ자나 ㅁ자로 꺾인 형태를 하고 있다.[65] 지붕은 대부분 맞배지붕이다.[63]

익선동에는 거실을 중앙에 두고 방들이 감싸는 구조로 지어진 중당식(中堂式) 한옥 두 동이 남아 있다.[63] 이 중 166-53번지에서는 장면이 1932년부터 1936년까지 거주하였다.[63]

166번지 일대는 좁은 골목으로 인해 보존될 수 있었으나[66], 익선동의 상업화에 따라 많은 부분 훼손되었다. 초기에는 내부 인테리어만 바꾸는 정도였으나, 점차 외벽과 대문을 유리로 교체하고 기와지붕 위에 유리 천장을 덮는 등 한옥의 원형이 훼손되는 사례가 늘었다.[63]

4. 3. 성소수자

익선동은 20세기 후반부터 성소수자들이 모여온 곳이었다. 낙원동·익선동 일대의 게이 업소들은 홍보 없이도 게이 남성 집단 내부의 입소문으로 손님이 찾아오기 때문에 보통 게이 업소임을 나타내는 간판 없이 영업하며, 일대는 늦은 저녁부터 밤까지 한시적으로 게이 남성들이 많아지는 경관을 보인다. 만일 비성소수자가 오인하여 들어가는 것을 막고자 무지개 깃발을 걸거나, 그 밖에 성소수자들만이 알 수 있는 표식을 단다. 클럽이 중심이 된 이태원과 달리 이 일대는 술집이 대부분이다. 이곳들은 코로나19 범유행 당시에도 영업하였는데[67], 이태원의 게이 클럽을 경유한 코로나19 확진자가 익선동을 방문한 사실이 밝혀진 뒤 여러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성소수자가 인권 침해 없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냈다.[68]

성소수자들 사이에서 ‘게로수길’(게이+가로수길)로 통하던 익선동 골목에 비성소수자들이 늘면서, 성소수자들은 그들의 편견적 시선을 부담스러워하고 아웃팅을 우려하기까지 하였다.[69] 서울특별시는 돈화문로를 중심으로 삼일대로와 서순라길 사이의 지역에 역사인문재생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하고 있으나, 엄연히 이곳에 존재하던 성소수자 역사를 고려하지 않아 비판을 샀다.[19][70] 이에 2018 한국퀴어영화제에서는 익선동 일대의 성소수자 공동체를 다룬, 권욱의 독립 기록영화 《다다-익선》(2018)이 상영되었다.[71]

5. 인구

익선동의 거주 인구는 2010년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겪으며 1000명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73] 2014년부터 3년 동안에만 377명이 줄었으며[74], 이 자리는 대부분 상업 시설로 대체되었다.[75]

'''익선동 거주인구 통계'''[72]
시기 (연월)인구 (명)
2014-071259
2015-101152
2016-101103
2017-101054
2018-101041
2019-101014
2020-10997



젠트리피케이션 초기(2014~2016년)에는 주민 이용 시설이 다른 업종으로 바뀌는 정도였으나, 2017년부터는 세입자가 줄고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업종과 체인점이 급증했다. 2019년 9월 기준, 익선동 166번지 일대 건물의 대다수는 식당, 카페, 주점 등이었으며, 전통문화 관련 점포는 7.9%, 주거용은 9.5%에 불과했다.

2013년에는 익선동 방문객이 소수였으나, 2014~2015년 사이 방문객이 늘고 2015년 12월에는 11~14시 사이 평균 유동인구가 3만여 명에 달했다.[53] 2016~2017년에는 신규 방문객이 크게 늘었고, 2018~2019년에는 유동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주민들은 초기에는 긍정적이었으나, 관광객 증가와 소음 등으로 부정적으로 변했다. 상인들은 유동인구 증가에 따른 매출 증가를 기대했으나, 인건비 및 임대료 상승, 경쟁 심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변화는 익선다다라는 업체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지적이 있다.[76] 이들은 상권 형성에 기여했지만, 부동산 수익 사업 모델은 비판받았다.[81] 또한, 익선동의 다양한 문화적 자원보다는 한옥의 '전통스러움'만을 강조하는 담론이 주를 이루었다는 평가도 있다.

서울대학교 김경민 교수는 공동체 가치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보존이라며 행정 지원을 제안했고,[82]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는 상업화와 전통문화 보존의 조화를 주장했다.[83] 익선동은 전주 한옥마을처럼 한옥만 보존되고 고유한 정체성을 잃어간다는 평가를 받는다.[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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