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원
행주 기씨 족보에 따르면 기자의 48대손 '''기우성'''을 시조로 한다. 《행주기씨보》 및 《청주한씨세보》에 따르면 마한 8대 원왕(元王) 한훈(韓勳)에게는 우평(友平)·우량(友諒)·우성(友誠) 세 아들이 있었는데, 우평은 태원 선우씨, 우량은 청주 한씨, '''우성'''은 행주 기씨가 되었다고 한다.[8]
3. 역사
행주 기씨(幸州 奇氏)의 시조 '''기순우'''(奇純祐)는 고려 인종 때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지냈다. 기순우의 아버지는 기우성의 후예 기문유(奇文儒)이다. 1688년(조선 숙종 14) 족보를 간행할 때 이곡(李穀)이 지은 기황후(奇皇后)의 아버지 영안왕(榮安王) 기자오(奇子敖)의 행장(行狀)을 근거로 기자오의 5대조인 '''기순우'''를 1세로 하였다. 상계에 대해서는 조선 선조 때 영의정 기자헌(奇自獻)의 동생 기윤헌(奇允獻) 집에 기록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이괄의 난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1]
4. 인물
- 고려
- 기탁성(奇卓誠, ? ~ 1179) :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고 판병부사(判兵部事),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판이부사(判吏部事)를 역임했다.
- 기홍수(奇洪壽, 1148 ~ 1209) : 1194년(명종 24)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1197년 참지정사 판병부사(參知政事判兵部事), 수사도 중서시랑 평장사감수국사 판병부사 태자태부(守司徒中書侍郎平章事監修國史判兵部事太子太傅), 1199년(신종 2) 수태위 문하시랑 평장사(守太尉門下侍郎平章事), 1200년 수태사 주국(守太師柱國), 1201년 문하시랑 동중서문하 평장사(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를 거쳐 1203년 벽상삼한삼중대광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이부사(壁上三韓三重大匡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判吏部事)에 이르렀다.
- 기윤숙(奇允肅, ? ~ 1257) :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했다.
- 기철(奇轍, ? ~ 1356) : 고려 후기 권문세족이었다.
- 기황후 (? ~ 1370) : 원나라의 마지막 황후로, 기철의 여동생이다.
- 기중평(奇仲平) : 고려 후기 권문세족이며, 기면(寄勉)의 부친이다.
- 조선
- 기면(?~?): 공조전서를 지냈으며, 조선 정종의 후궁 숙의 기씨의 부친이다. 고려 권문 세족 기중평(奇仲平)의 아들이다.[1]
- 기건(?~1460): 조선의 문신으로, 전라도관찰사 겸 전주부윤, 호조참판, 개성부유수를 역임하였다. 계유정난 이후 관직을 버리고 은둔하였다.[1]
- 기준(1492~1521): 호는 복재이며, 1514년(중종 9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1519년 응교를 지내다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교살되었다. 1545년(인종 1)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민(文愍)이다.[1]
- 기대항(1519~1564): 복재 기준의 아들로, 1546년(명종 1)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 이조참판을 거쳐 1564년 공조참판·한성부윤에 올랐다. 시호는 정견(貞堅)이다.[1]
- 기대승(1527~1572): 1558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때 성균관 대사성, 대사간, 공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성리학 이론에 큰 업적을 남겼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1]
- 기효간(1530~1593): 호는 금강(錦江)이며, 하서 김인후의 문인으로 호남의 은덕군자(隱德君子)로 불렸다. 서태수·변이중·변성온·변성진 등과 교유하였으며, 죽은 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공으로 선무원종공신에 책봉되고, 호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장성 추산서원에 배향되었다.[1]
- 기효증(1550~1616): 문헌공 기대승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동복현감으로 의병장에 추대되어 군사와 군량을 의주까지 수송하였다.[1]
- 기자헌(1562~1624): 한성부윤 기대항의 손자로, 1590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고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614년 영의정에 올랐다. 1620년 덕평부원군(德平府院君)에 봉해졌다.[1]
- 기윤헌(1575~1624): 영의정 기자헌의 동생으로 1605년(선조 38)에 증광 문과에 급제하고, 세자시강원문학, 장령, 안악군수를 역임하였다.[1]
- 기준격(1594~1624): 영의정 기자헌의 아들로, 정언, 병조좌랑, 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에 내응하려 하였다는 혐의로 사형당하였다.[1]
- 기정익(1627~1690): 호는 송암(松巖)이다. 금강 기효간의 현손, 우암 송시열 문인, 제릉참봉에 제수되고, 뒤이어 효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출사하지 않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장성 추산서원에 배향되었다.[1]
- 기언관(1706~?): 기대승의 6세손, 헌납, 사간 등을 역임하였다.[1]
- 기언정(1716~1797): 사간 기언관의 동생으로 대사간, 대사헌,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1]
- 기학경(1741~1809): 기대승의 7세손이며, 사간 기언관의 삼남이다. 사간원 정언, 무장현감, 홍문관 수찬을 역임하였다.[1]
- 기정진(1798~1879):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진원 고산서원에 배향되었다.[1]
- 기양연(1827~1895):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사헌부 장령, 부교리, 부수찬을 역임하였다.[1]
- 기우만(1846~1916): 유학자, 항일의병장이다.[1]
- 기삼연(1851~1908): 항일의병장이다.[1]
- 기동준(1860~1918): 기대승의 후예로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귀향하여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기대승의 문집을 발간하였다.[1]
- 기산도(1878~1928): 독립운동가이다.[1]
4. 1. 고려
- 기탁성(奇卓誠, ? ~ 1179) :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여 판병부사(判兵部事),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판이부사(判吏部事)가 되었다.
- 기홍수(奇洪壽, 1148 ~ 1209) : 1194년(명종 24)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1197년 참지정사 판병부사(參知政事判兵部事), 수사도 중서시랑 평장사감수국사 판병부사 태자태부(守司徒中書侍郎平章事監修國史判兵部事太子太傅), 1199년(신종 2) 수태위 문하시랑 평장사(守太尉門下侍郎平章事), 1200년 수태사 주국(守太師柱國), 1201년 문하시랑 동중서문하 평장사(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를 거쳐 1203년 벽상삼한삼중대광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판이부사(壁上三韓三重大匡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判吏部事)가 되었다.
- 기윤숙(奇允肅, ? ~ 1257) : 문하시랑평장사
- 기철(奇轍, ? ~ 1356) : 고려 후기 권문세족
- 기황후 (? ~ 1370) : 원나라의 마지막 황후, 기철의 여동생
- 기중평(奇仲平) : 고려 후기 권문세족이며, 기면(寄勉)의 부친
4. 2. 조선
- 기면(?~?): 공조전서를 지냈으며, 조선 정종의 후궁 숙의 기씨의 부친이다. 고려 권문 세족 기중평(奇仲平)의 아들이다. 외조모는 고려 태자태사 진위 이씨 이중육(李仲育)의 딸이다.[1]
- 기건(?~1460): 조선의 문신이다. 전라도관찰사 겸 전주부윤, 호조참판, 개성부유수를 역임하였다.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관직을 버리고 두문불출하였다.[1]
- 기준(1492~1521): 호는 복재이다. 1514년(중종 9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1519년 응교를 지내다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교살되었다. 1545년(인종 1)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민(文愍)이다.[1]
- 기대항(1519~1564): 1546년(명종 1) 복재 기준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 이조참판을 거쳐 1564년 공조참판·한성부윤에 올랐다. 시호는 정견(貞堅)이다.[1]
- 기대승(1527~1572): 1558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선조 때 성균관 대사성, 대사간, 공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성리학 이론에 대한 큰 업적이 있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1]
- 기효간(1530~1593): 호는 금강(錦江)이다. 하서 김인후의 문인으로 호남의 은덕군자(隱德君子)이다. 서태수·변이중·변성온·변성진 등과 교유하였으며, 죽은 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공으로 선무원종공신에 책봉되고, 호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장성 추산서원에 배향되었다.[1]
- 기효증(1550~1616): 문헌공 기대승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동복현감으로 의병장에 추대되어 군사와 군량을 의주까지 수송하였다.[1]
- 기자헌(1562~1624): 한성부윤 기대항의 손자로, 1590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고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614년 영의정에 올랐다. 1620년 덕평부원군(德平府院君)에 봉해졌다.[1]
- 기윤헌(1575~1624): 영의정 기자헌의 동생으로 1605년(선조 38)에 증광 문과에 급제하고, 세자시강원문학, 장령, 안악군수를 역임하였다.[1]
- 기준격(1594~1624): 영의정 기자헌의 아들로 정언, 병조좌랑, 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에 내응하려 하였다는 혐의로 사형당하였다.[1]
- 기정익(1627~1690): 호는 송암(松巖)이다. 금강 기효간의 현손, 우암 송시열 문인, 제릉참봉에 제수되고, 뒤이어 효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출사하지 않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장성 추산서원에 배향되었다.[1]
- 기언관(1706~?): 기대승의 6세손, 헌납, 사간 등을 역임하였다.[1]
- 기언정(1716~1797): 사간 기언관의 동생으로 대사간, 대사헌,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1]
- 기학경(1741~1809): 기대승의 7세손이며, 사간 기언관의 삼남이다. 사간원 정언, 무장현감, 홍문관 수찬을 역임하였다.[1]
- 기정진(1798~1879):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진원 고산서원에 배향되었다.[1]
- 기양연(1827~1895):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사헌부 장령, 부교리, 부수찬을 역임하였다.[1]
- 기우만(1846~1916): 유학자, 항일의병장이다.[1]
- 기삼연(1851~1908): 항일의병장이다.[1]
- 기동준(1860~1918): 기대승의 후예로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귀향하여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기대승의 문집을 발간하였다.[1]
- 기산도(1878~1928): 독립운동가이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