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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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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굽타 미술은 1세기부터 4세기까지 인도 북부의 굽타 제국 시대에 번성한 예술 양식이다. 쿠샨 미술의 영향을 받아, 정교함, 우아함, 영광의 절정을 이룬 독특한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마투라와 사르나트를 중심으로 불교와 힌두교 조각, 테라코타, 금속 조각, 주화 등이 제작되었으며, 굽타 시대의 연대가 기록된 조각품들을 통해 양식의 발전을 추적할 수 있다. 이 예술은 동남아시아 불교 미술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손다니 조각품을 마지막으로 중세 인도 미술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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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타 미술
굽타 미술
5세기 마투라의 불상
굽타 제국 시대, 기원후 5세기경의 마투라 미술의 불상. 인도 뉴델리 라슈트라파티 바반 대통령 궁.
위치 지도 설명굽타 미술의 세 주요 학파는 마투라, 바라나시, 날란다에 위치함.
주요 특징
시기기원후 4세기 ~ 6세기
지역인도
특징이상적인 형태, 우아함, 고전주의
주요 중심지마투라
사르나트
날란다
영향이전의 쿠샨 미술과 이후의 인도 미술
재료사암
청동
테라코타
주제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예시사르나트 불상
아잔타 석굴
우다야기리 석굴
개요
설명굽타 미술은 고전적인 인도 미술의 정점으로 여겨지며, 이상적인 형태와 우아함이 특징임. 이 시기의 미술은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사암, 청동, 테라코타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함.
주요 양식
설명굽타 미술은 이전의 쿠샨 미술과 이후의 인도 미술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불상의 표현에서 이상적인 형태와 균형미를 추구함. 또한, 아잔타 석굴과 우다야기리 석굴과 같은 건축물에서도 굽타 미술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음.
굽타 시대의 사원 건축
설명굽타 시대의 사원은 벽돌이나 돌로 지어졌으며, 단순한 외관과 정교한 조각 장식이 특징임. 대표적인 예로는 비타르가온 사원과 데오가르 석조 사원이 있음.
굽타 미술의 영향
설명굽타 미술은 이후의 인도 미술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미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불교 미술에서 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음.

2. 역사적 배경

사무드라굽타(재위 약 335/350-375 CE)와 찬드라굽타 2세(재위 약 380 – 약 415 CE)의 정복으로 굽타 제국은 펀자브와 아라비아 해까지 중앙, 북부 및 북서부 인도의 광대한 지역을 통합하게 되었으며, 이전의 예술 전통을 발전시키고 확장하여 "정교함, 우아함, 영광의 절정"에 이르는 독특한 굽타 양식을 개발했다.[15][16][17][18] 굽타 황실은 이전과 이후의 다른 인도 왕조와 달리, 동전에 새겨진 이미지를 제외하고는 그들이 제작한 예술과의 관계를 비문으로 홍보하거나 초상화를 제작하지 않았다.[19]

2. 1. 초기 연대기

굽타 미술은 인도 북부 쿠샨 제국쿠샨 미술에서 시작되었으며, 서기 1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번성하여 간다라 미술의 전통과 헬레니즘 예술 규범의 영향을 받은 마투라 미술을 혼합했다.[11] 서인도에서는 데브니모리에서 볼 수 있듯이 서 사트라프(서기 1~4세기)가 굽타 미술 부상 이전에 서인도 예술 전통을 발전시켰으며, 이는 굽타 미술뿐만 아니라 아잔타 석굴, 사르나트 및 5세기 이후 다른 지역의 미술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12][13][14] 중앙 인도에서는 사타바하나의 미술이 이미 산치에서 볼 수 있듯이 풍부한 인도 예술 어법을 만들어 냈으며, 이는 굽타 미술에도 영향을 미쳤다.[14]



사무드라굽타(재위 약 335/350-375 CE)와 찬드라굽타 2세(재위 약 380 – 약 415 CE)의 정복으로 굽타 제국은 펀자브와 아라비아 해까지 중앙, 북부 및 북서부 인도의 광대한 지역을 통합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전의 예술 전통을 계속 발전시키고 확장하여 "정교함, 우아함, 영광의 절정에 도달"하는 독특한 굽타 양식을 개발했다.[15][16][17][18]

굽타 시대 조각품 중에는 연대가 새겨진 작품이 몇 점 있다.[20] 이들은 굽타 시대 연대기와 양식 발전을 위한 척도로 작용한다. 이러한 굽타 조각상들은 굽타 시대(318–319 CE 시작)부터 제작되었으며, 때로는 당시 통치자를 언급하기도 한다.[20] 조각상 외에도, 주화 또한 중요한 연대기적 지표이다.[21]

굽타 제국은 3세기 후반 굽타 왕 이후에 시작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굽타 미술의 가장 초기 조각품은 사무드라굽타 치하의 북서부 인도 정복 이후 약 1세기 후에 비교적 늦게 등장한다. 가장 초기의 예로는 -- 치하에 마투라에 두 개의 시바 링가를 세운 기록이 새겨진 기둥이 있다.[22] 또 다른 희귀한 예로는 보드가야에서 출토된, 마투라 미술 양식의, 왼 어깨에 도티와 숄을 걸친 앉아 있는 보디사트바 조각상이 있는데, 이 조각상은 굽타 시대 "64년"으로 추정되는 384 CE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23]

주화 또한 사무드라굽타의 북서부 정복 이후 비교적 늦게 발전했다.[24][91][25] 굽타 주화는 처음에는 쿠샨 양식을 모방했다.[26][27][28]

2. 2. 굽타 미술의 특징

굽타 미술은 인도 북부 쿠샨 제국쿠샨 미술에서 시작되었으며, 서기 1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번성하여 간다라 미술의 전통과 헬레니즘 예술 규범의 영향을 받은 마투라 미술을 혼합했다.[11] 서인도에서는 데브니모리에서 볼 수 있듯이 서 사트라프(서기 1~4세기)가 굽타 미술 부상 이전에 서인도 예술 전통을 발전시켰으며, 이는 굽타 미술뿐만 아니라 아잔타 석굴, 사르나트 및 5세기 이후 다른 지역의 미술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12][13][14] 중앙 인도에서는 사타바하나의 미술이 이미 산치에서 볼 수 있듯이 풍부한 인도 예술 어법을 만들어 냈으며, 이는 굽타 미술에도 영향을 미쳤다.[14]

사무드라굽타(재위 약 335/350-375 CE)와 찬드라굽타 2세(재위 약 380 – 약 415 CE)의 정복으로 굽타 제국은 펀자브와 아라비아 해까지 중앙, 북부 및 북서부 인도의 광대한 지역을 통합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전의 예술 전통을 계속 발전시키고 확장하여 "정교함, 우아함, 영광의 절정에 도달"하는 독특한 굽타 양식을 개발했다.[15][16][17][18]

굽타 시대의 조각품 중에는 연대가 새겨진 작품이 몇 점 있다.[20] 이들은 굽타 시대의 연대기와 양식의 발전을 위한 척도로 작용한다. 이러한 굽타 조각상들은 굽타 시대(318–319 CE 시작)부터 제작되었으며, 때로는 당시의 통치자를 언급하기도 한다.[20] 조각상 외에도, 주화 또한 중요한 연대기적 지표이다.[21]

굽타 제국은 3세기 후반 굽타 왕 이후에 시작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굽타 미술의 가장 초기의 알려진 조각품은 사무드라굽타 치하의 북서부 인도 정복 이후 약 1세기 후에 비교적 늦게 등장한다. 가장 초기의 예로는 -- 치하에 마투라에 두 개의 시바 링가를 세운 기록이 새겨진 기둥이 있다.[22] 또 다른 희귀한 예로는 보드가야에서 출토된, 마투라 미술 양식의, 왼 어깨에 도티와 숄을 걸친 앉아 있는 보디사트바 조각상이 있는데, 이 조각상은 굽타 시대의 "64년"으로 추정되는 384 CE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23] 이러한 유형은 드문 경우로 남아 있었는데, 이후의 대부분의 굽타 조각상에서는 부처가 두 어깨를 덮는 ''삼가티'' 승복을 입고 묘사되었다.[23]

주화 또한 사무드라굽타의 북서부 정복 이후 비교적 늦게 발전했다.[24][91][25] 굽타 주화는 처음에는 쿠샨 양식을 모방했다.[26][27][28]

굽타 조각 양식, 특히 불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꽃과 보석 무늬가 있는 화려한 광배, 얇고 투명한 옷감의 드레이핑, 특정한 머리카락 컬, 명상적인 눈, 길게 늘어진 귓불, 비교적 두꺼운 아랫입술, 그리고 종종 목에 세 개의 선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29]

3. 주요 유파

굽타 조각의 주요 유파로는 마투라, 바라나시/사르나트[30] 있으며, 날란다에서도 어느 정도 발달했다.[31] 이들 중심지에서 만들어져 수출된 조각에 사용된 돌들이 서로 뚜렷하게 달라, 유파를 식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32]

불교와 힌두교 조각은 모두 주요 신들의 크고 실물 크기에 가까운 형상에 집중하며, 각각 붓다, 비슈누, 시바를 표현한다. 굽타 왕조는 쿠샨 제국 황실이 시바를 선호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비슈누를 특히 선호했다. 이전 시대에 많이 보였던 야크시와 같은 작은 인물들은 이제 더 작고 덜 자주 표현되며, 붓다의 전생을 다룬 자타카 이야기의 복잡한 장면도 드물다.[33] 주요 인물과 덜 중요한 인물들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주요 인물이 훨씬 더 크게 표현되는 등 크기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는 이전에는 모든 인물을 동일한 크기로 묘사했던 것과는 다른 점이다.[34]

링감은 대부분의 사원에서 중심적인 무르티였다. 갠지스 강과 야무나 강을 의인화한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숭배 대상은 아니었지만 입구 양쪽에 배치되었다. 이들은 "굽타의 심장부를 둘러싼 두 개의 위대한 강"을 상징한다.[35] 주요 보살아잔타 석굴의 그림에서처럼 조각에서도 처음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36]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조각은 모두 동일한 스타일을 보여주며,[37] 굽타 시대 이후에도 서로 다른 종교의 인물들 사이에서 "형태의 유사성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인도 조각의 전통은 "부드럽고 매우 단순화된 평면"으로 몸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많은 입상에서 포즈가 미묘하게 기울어지고 다양해지면서 이전의 "기둥 같은 강성"과는 대조를 이룬다.[38] 얼굴, 머리카락, 머리 장식, 보석, 후광 등의 세부 사항은 매우 정밀하게 조각되어, 몸의 넓고 부푼 덩어리와 대조를 이룬다.[39] 모든 종교의 신들은 차분하고 장엄한 명상적인 스타일로 묘사된다. "아마도 이것이 굽타 및 굽타 이후 시대가 더 높은 정신적 상태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견줄 데 없는 능력을 갖게 된 이유일 것이다."

3. 1. 마투라 유파

마투라는 바라나시 및 인근 사르나트와 함께 굽타 미술의 주요 유파 중 하나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40] 굽타 시대에 마투라는 주로 불교 미술 활동과 예배의 중심지였지만, 바이슈나비파를 비롯한 소수의 힌두교 조각품도 나타나기 시작했다.[41] 마투라 조각품은 지역의 카리에서 채석된 얼룩덜룩한 붉은 돌을 사용하며, 간다라 미술쿠샨 미술의 전통을 이어받아 외래적 영향이 나타난다.[42]

마투라 미술은 굽타 제국 시대에 더욱 정교해졌다. 마투라의 분홍색 사암 조각품은 굽타 시대에 이르러 매우 높은 정교함과 섬세함을 보여주며, 평온함과 고요함을 드러낸다. 옷자락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고 분홍색 사암을 사용하여 일종의 광채를 강화하는 등 우아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보인다.[43] 부처의 헤어스타일을 상징적인 조개껍데기 모양의 컬로 표현하고, 부처의 머리 주위에 화려한 후광을 사용하는 등 예술적 세부 사항은 덜 현실적인 경향을 보인다. 굽타 미술은 종종 인도 불교 미술의 정점으로 여겨지며, 불교적 이상을 아름답게 표현해냈다.[44]

굽타 미술은 불교 판테온의 확장을 특징으로 하며, 부처 자신과 아발로키테스와라와 같은 보살 또는 브라만교에서 영감을 받은 신들에게 높은 중요성을 부여하고, 자타카 이야기를 통해 풍부하게 묘사되었던 부처의 생애에 관한 사건에 대한 초점은 줄어들었다.[45]

마투라의 굽타 미술은 북부 인도 전역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외래적 영향은 줄어들었다. 그 스타일은 동쪽의 알라하바드까지 굽타 조각상에서 볼 수 있으며, 448년 쿠마라굽타 1세 치세의 만쿠와르 부처가 그 예이다.[46]

마투라에서 출토된 불교 및 자이나교 이미지 중에는 연대 측정이 불확실한 이미지들이 있다. 많은 이미지가 낮은 연도로 연대 측정되었지만, 어떤 시대가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들은 초기 굽타 시대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3. 2. 사르나트 유파

바라나시/사르나트 양식은 주로 불교 미술을 제작했으며, "사르나트의 불상은 아마도 인도 조각가들의 가장 위대한 단일 업적"으로 평가받는다.[51] 이 양식은 수세기 동안 동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불상 표현의 기준이 되었으며, 인체 표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51] 많은 연대가 기록된 예시들을 통해, 성숙한 양식은 450~475년에 이르러서야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52]

사르나트 유파는 Chunar 채석장의 황색 사암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며, 마투라에서 보이는 외래의 영향은 찾아볼 수 없다. 옷 주름은 사라졌고, 옷 자체는 매우 얇아 투명하게 보일 정도이다.[53] 후광은 커졌으며 종종 정교하게 장식된다.[53] 눈구멍의 윗부분 가장자리는 매우 뚜렷하게 표시되어 날카로운 가장자리를 형성한다.[54]



사르나트 양식은 , 캄보디아, 자바의 불상 기원이 되었다.[55]

다음은 사르나트 양식의 주요 불상들이다.

3. 3. 날란다 유파

술탄간지 불상 (500–700 CE), 구리, 높이 . 버밍엄 미술관.


굽타 조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쇠퇴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6세기 비하르의 날란다에서 인물들은 더 육중해지고 금속으로 제작되는 경향을 보였다.[31] 이러한 발전은 마투라, 바라나시 외에 날란다와 파탈리푸트라 지역에 굽타 미술의 세 번째 학파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파탈리푸트라 지역의 거대한 구리 술탄간지 불상은 이 학파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대형 작품이지만, 양식은 전형적이다. 같은 수도원에서 두 개의 유사하지만 훨씬 작은 (그리고 약간 늦은) 석상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현재 대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59]

3. 4. 기타 중심지

비슈누, 5세기, 마투라


굽타 조각의 주요 유파는 마투라, 바라나시/사르나트[30] 외에 날란다[31] 등 세 곳이었다. 이들 중심지에서 수출된 조각에 사용된 독특한 돌들은 식별에 큰 도움이 된다.[32]

;날란다

6세기 비하르의 날란다에서 발견된 조각들은 더 육중하고 금속으로 제작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마투라와 바라나시 외에 날란다와 파탈리푸트라 지역에 굽타 미술의 세 번째 학파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파탈리푸트라 지역의 거대한 구리 술탄간지 불상은 이 학파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대형 작품이지만, 양식은 전형적이다. 같은 수도원에서 이와 유사하지만 훨씬 작은 두 개의 석상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현재 대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59]

;우다야기리 동굴/비디샤

"완전한 초기 굽타 양식으로 제작된 최초의 조각품"은 마디아프라데시의 우다야기리 동굴과 비디샤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다.[60] 동굴 입구 주변에는 많은 수의 암벽 부조 패널이 있으며, 그중 일부는 거대한 신을 묘사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7m x 4m 크기의 거대한 멧돼지 바라하의 형태로 비슈누가 원시의 물에서 지구를 들어올리는 모습을 묘사한 부조이다. 한 동굴에는 찬드라굽타 2세의 대신의 기증을 기록하고 있는 비문이 있다.[61] 델리 철기둥은 원래 동굴 밖에 세워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에란

비슈누가 셰샤의 보호를 받으며 잠을 자고 있다, 다샤바타라 사원, 데오가르


마디아프라데시의 에란에는 붓다굽타의 비문에 의해 484/5년으로 추정되는 "기둥"이 있는데, 굽타 시대의 유일한 현존하는 예이며, 꼭대기에는 두 개의 가루다 조각상이 있다. 굽타 사원 폐허 외부에 두 개의 대형 바라하 조각상이 있었다. 여전히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은 네 다리로 서 있는 거대하고 인상적인 멧돼지 조각상이다. 현재 사갈의 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진 것은 우다야기리의 조각상과 동일한 몸과 포즈를 가진 조각상으로, 두 조각 모두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65]

;기타

미르푸르 카스의 브라흐마, 세부 묘사


6세기 초의 다샤바타라 사원, 데오가르에 남아 있는 성소는 전형적으로 훌륭한 출입구와 다른 세 벽에 거대한 부조 패널이 있다. 이것들은 "초기 굽타 조각의 견고함이 더 부드럽고 섬세하며 결국 더 약한 스타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66]

굽타 조각의 다른 소규모 중심지로는 다사푸라와 만다소르 지역이 있으며, 강에서 발견된 거대한 팔면 무칼링가(아마 6세기 초)가 파슈파티나트 사원, 만다소르에 재설치되었다.[68]

간다라 미술의 그리스-불교 미술은 굽타 시대 대부분을 통해 후기 단계를 이어갔으며, 또한 형성적인 영향을 미쳤다.

엘레판타 동굴, 시바의 삼중 흉상 (''트리무르티''), 높이, c. 550.


굽타 제국 외부에 있는 매우 중요한 암벽 조각 유적지로는 남쪽에 있는 아잔타 석굴과 엘레판타 석굴이 있는데, 둘 다 대부분 굽타 시대에 만들어졌다. 아잔타 석굴의 후기 조각 양식은 다소 육중하지만, 때로는 거대한 좌상 사원 부처에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다른 소규모 인물들은 종종 매우 훌륭하다.[69]

엘레판타 석굴의 주요 관심사는 가장 큰 동굴, 거대한 시바 사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대한 시바의 삼중 흉상 (''트리무르티'')이다.[71] 뭄바이 지역에서 온 파렐 부조 또는 (파렐 시바)는 7가지 형태로 시바를 묘사한 중요한 후기 굽타 시대의 단일 암석 부조이다.[72]

굽타 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연대가 밝혀진 가장 초기의 테라코타는 서기 375년에서 400년경 서사트라프 시대의 구자라트주 데브니모리 불교 유적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는 간다라 미술의 남부로의 확장을 나타낸다. 이러한 영향은 1세기 동안 미르푸르 카스 유적에서 지역적으로 지속되었다.[77][78]

굽타 시대에는 매우 훌륭한 품질의 테라코타 조각상이 많이 제작되었으며, 이는 석조 조각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제국 전역에서 유사한 스타일을 보인다. 일부는 비타르가온의 벽돌 사원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80] 아히치차트라의 사원에서 발굴된 매우 우아한 쌍을 이루는 강 여신상은 1.47m이다.

거대한 구리 술탄간지 불상(높이 2.3m)은 굽타 시대의 "현존하는 유일한 대형 금속 조상"으로, 당시에는 석상이나 회반죽 조각상만큼이나 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82] 밀랍 주조(lost-wax casting) 방식으로 제작된 술탄간지 불상의 양식은 사르나트에서 제작된 초기 석조 불상과 비교할 수 있다. 이 조각상은 "균형을 잃은 자세와 몸을 감싸는 옷자락의 부드러운 윤곽선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으로 생동감을 준다."

4. 조각

굽타 미술은 인도 북부의 쿠샨 제국의 미술인 쿠샨 미술에서 시작되었으며, 간다라 미술의 전통과 헬레니즘 예술 규범의 영향을 받은 마투라 미술을 혼합했다.[11] 사무드라굽타 (재위 약 335/350-375 CE)와 찬드라굽타 2세 (재위 약 380 – 약 415 CE)의 정복으로 굽타 제국은 중앙, 북부 및 북서부 인도의 광대한 지역을 통합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전의 예술 전통을 계속 발전시키고 확장하여 "정교함, 우아함, 영광의 절정에 도달"하는 독특한 굽타 양식을 개발했다.[15][16][17][18]

굽타 조각 양식은 꽃과 보석 무늬가 있는 화려한 광배, 얇고 투명한 옷감, 명상적인 눈, 길게 늘어진 귓불, 비교적 두꺼운 아랫입술, 목에 세 개의 선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29]

굽타 조각의 세 가지 주요 유파는 마투라, 바라나시/사르나트[30], 날란다이다.[31] 불교 및 힌두교 조각 모두 주요 신들의 크고, 종종 실물 크기에 가까운 형상에 집중하며 각각 붓다, 비슈누, 시바를 표현한다. 야크시와 같은 소규모 인물들은 이제 더 작고 덜 자주 표현되며, 붓다의 전생에 대한 자타카 이야기를 묘사하는 복잡한 장면은 드물다.[33] 주요 인물이 여러 배나 더 크게 표현되는 등 규모에 큰 차이가 있다.[34]

링감은 대부분의 사원에서 중심적인 무르티였다. 갠지스 강과 야무나 강의 의인화를 포함하여 몇몇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난다.[35] 주요 보살은 조각에서 처음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36]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조각은 모두 동일한 스타일을 보여준다.[37]

굽타 시대의 서 있는 부처, 마투라


; 마투라 양식

오랜 역사를 지닌 마투라 학파는 굽타 제국 미술의 주요 학파 중 하나로, 바라나시와 인근 사르나트 학파와 합류했다.[40] 굽타 시대에 마투라는 주로 불교 미술 활동과 예배의 중심지였다.[41] 마투라 조각품은 지역의 카리에서 채석된 얼룩덜룩한 붉은 돌을 사용하고, 간다라 미술과 쿠샨 미술의 전통을 이어받은 외래적 영향이 특징이다.[42]

마투라 미술은 굽타 제국 시대에 더욱 정교해졌다. 분홍색 사암 조각품은 매우 높은 정교함과 섬세한 모델링을 보여주며, 평온함과 고요함을 드러냈다. 옷자락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했으며 분홍색 사암을 사용하여 광채를 강화했다.[43] 상징적인 조개껍데기 모양의 컬을 사용하여 부처의 헤어스타일을 표현하고, 부처의 머리 주위에 화려한 후광을 사용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덜 현실적인 경향이 있다. 굽타 미술은 종종 인도 불교 미술의 정점으로 여겨진다.[44]

굽타 미술은 또한 불교 판테온의 확장을 특징으로 하며, 아발로키테스와라와 같은 보살 또는 브라만교에서 영감을 받은 신들에게 높은 중요성을 부여하고, 자타카 이야기를 통해 묘사되었던 부처의 생애에 관한 사건에 대한 초점은 줄어들었다.[45] 마투라의 굽타 미술은 북부 인도 전역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외래적 영향은 줄어들었다. 그 스타일은 동쪽의 알라하바드까지 굽타 조각상에서 볼 수 있다.[46]

; 바라나시/사르나트 양식

바라나시/사르나트 양식은 주로 불교 미술을 제작했으며, "사르나트의 불상은 아마도 인도 조각가들의 가장 위대한 단일 업적"이다.[51] 이 양식은 Chunar 채석장의 황색 사암으로 특징지어지며, 마투라에서 보이는 외래의 영향은 찾아볼 수 없다. 옷 주름은 사라졌고, 옷 자체가 투명할 정도로 매우 얇다. 후광은 커졌으며 종종 정교하게 장식된다.[53] 눈구멍의 윗부분 가장자리는 매우 뚜렷하게 표시되어 날카롭게 조각된 가장자리를 형성한다.[54]

사르나트 양식은 , 캄보디아, 자바의 불상 기원이 되었다.[55]

; 날란다

굽타 조각의 특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쇠퇴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6세기 비하르의 날란다에서 인물들은 더 육중해지고 금속으로 제작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발전은 마투라와 바라나시의 두 주요 중심지 외에 날란다와 파탈리푸트라 지역에 굽타 미술의 세 번째 학파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파탈리푸트라 지역의 거대한 구리 술탄간지 불상은 이 학파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대형 작품이다.

; 우다야기리 동굴/비디샤

"완전한 초기 굽타 양식으로 제작된 최초의 조각품"은 마디아프라데시의 우다야기리 동굴과 비디샤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다.[60] 동굴 입구 주변에는 많은 수의 암벽 부조 패널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거대한 신을 묘사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7 x 4 미터 크기의 거대한 멧돼지 바라하의 형태로 비슈누가 원시의 물에서 지구를 들어올리는 모습을 묘사한 부조이다. 한 동굴에는 굽타 궁정에 관련된 매우 희귀한 비문이 있는데, 찬드라굽타 2세의 대신의 기증을 기록하고 있다.[61]



; 에란

마디아프라데시의 에란에는 붓다굽타의 비문에 의해 484/5년으로 추정되는 "기둥" 또는 대형 단일 열주가 있는데, 굽타 시대의 유일한 현존하는 예이며, 꼭대기에는 두 개의 가루다 조각상이 있다.

; 기타

6세기 초의 다샤바타라 사원, 데오가르에 남아 있는 성소는 전형적으로 훌륭한 출입구와 다른 세 벽에 거대한 부조 패널이 있다.

굽타 제국 외부에 있는 매우 중요한 암벽 조각 유적지로는 남쪽에 있는 아잔타 석굴과 엘레판타 석굴이 있는데, 둘 다 대부분 굽타 시대에 만들어졌다. 아잔타 석굴의 후기 조각 양식은 다소 육중하지만, 때로는 거대한 좌상 사원 부처에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다른 소규모 인물들은 종종 매우 훌륭하다.

아잔타의 일련의 동굴과는 달리, 엘레판타의 주요 관심사는 가장 큰 동굴, 거대한 시바 사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약 5.49m 높이의 거대한 시바의 삼중 흉상 (''트리무르티'')이다.[71]

시바 무칼링가, 부마라 사원, 5세기 또는 6세기, 마디아프라데시


파렐 부조의 석고상, 차트라파티 시바지 마하라지 바스투 상그라할라야


축제 장면이 있는 은 접시

5. 테라코타 조각

굽타 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연대가 밝혀진 가장 초기의 테라코타는 서기 375년에서 400년경 서사트라프 시대의 구자라트주 데브니모리 불교 유적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는 간다라 미술의 남부로의 확장을 나타낸다.[77][78] 이러한 영향은 아잔타사르나트로 더 확장되기 전인 1세기 동안 미르푸르 카스, 샤말라지 또는 단크 유적에서 지역적으로 지속되었다.[77][78] 서사트라프와 데브니모리의 미술이 굽타의 물질 문화의 기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79]

굽타 시대에는 매우 훌륭한 품질의 테라코타 조각상이 많이 제작되었으며, 이는 석조 조각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제국 전역에서 유사한 스타일을 보인다. 일부는 비타르가온의 벽돌 사원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데, 대형 부조 패널은 거의 닳아 없어졌지만, 다양한 머리와 인물상은 더 높은 수준에서 남아 있다.[80] 아히치차트라의 사원에서 발굴된 매우 우아한 쌍을 이루는 강 여신상은 높이가 1.47m이다.

6. 금속 조각



술탄간지 불상(높이 2.3m)은 굽타 시대의 거대한 구리 불상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대형 금속 조상"이다. 당시에는 석상이나 회반죽 조각상만큼이나 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82] 이와 거의 동일한 형상이지만 훨씬 작은 불상(높이 약 50cm)이 여러 점 있으며, 그중 몇 점은 미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미르푸르 카스의 브라흐마는 술탄간지 불상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크기는 절반 정도이다. 자이나교의 아코타 청동상과 몇몇 다른 유물들은 훨씬 작으며, 부유한 집안의 사당에 놓였을 조각상으로 추정된다.[83]

밀랍 주조 방식으로 제작된 술탄간지 불상의 양식은 사르나트에서 제작된 초기 석조 불상과 비교할 수 있다. "매끄럽고 둥근 몸과 사지", 그리고 아주 얇고 달라붙는 의복 묘사가 특징이다. 이 조각상은 "균형을 잃은 자세와 몸을 감싸는 옷자락의 부드러운 윤곽선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으로 생동감을 준다."

7. 주화 및 금속 공예

굽타 시대 주화는 사무드라굽타 통치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했으며, 초기에는 쿠샨 제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굽타 제국 금화는 다양한 유형과 디자인을 가지며, 산스크리트어로 새겨져 있어 인도적인 특징을 강하게 드러낸다.[87] 찬드라굽타 2세는 서부 사트라프의 영향을 받은 은화를 생산하기도 했다.[88]

장식적인 세속 금속 공예품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84]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은 접시는 축제 장면을 묘사한 정교한 부조를 보여준다.[85] 대영 박물관에는 청동 처리된 철로 만들어진 건축용 추로 추정되는 유물도 있다.[86]

7. 1. 주화

사무드라굽타(335/350-375 CE) 통치 시기부터 굽타 미술의 주화가 시작되었으며, 아버지 찬드라굽타 1세 통치 말기에도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찬드라굽타 1세의 이름으로 알려진 동전은 단 한 종류("찬드라굽타 1세와 그의 왕비")뿐인데, 아마도 아들이 주조한 기념 주화일 것이다.[89][91][25][90]

굽타 제국 주화는 처음에는 쿠샨 제국 주화에서 파생되었으며, 사무드라굽타의 북서쪽 정복 이후 무게 표준, 기술, 디자인을 채택했다.[91][25][92] 굽타는 쿠샨으로부터 주화 이름으로 ''디나라''(Dinar)를 채택했는데, 이는 로마 이름 ''데나리우스 아우레우스''(Denarius aureus)에서 유래했다.[93][94][95] 굽타 동전 이미지는 처음에는 쿠샨 유형에서 파생되었지만, 이전 왕조(주로 그리스-로마 및 페르시아 스타일)에 비해 스타일과 주제 모두에서 더 인도적으로 변했다.[96][97][98]

일반적인 구성은 앞면에 왕의 초상화(일반적으로 전신, 서 있는 모습, 앉아 있는 모습, 말을 타고 있는 모습)가 있고, 뒷면에는 여신(대부분 왕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 있다. 종종 왕은 희생을 치르고 있다. 이미지 선택은 정복과 지역적 취향을 언급하며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유형은 제국 지역마다 종종 다르다.[99]

왕이 사자("사자 사냥꾼" 유형), 호랑이, 코뿔소를 사냥하여 죽이는 모습은 해당 동물들이 발견되었던 지역에서의 새로운 정복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산조 페르시아 은 제품의 영향을 반영할 수도 있다.[100] 왕이 서서 한쪽으로 활을 들고 있는 모습("궁수" 유형)은 최소 8명의 왕이 사용했으며, 왕을 라마와 연관시키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 왕의 옆모습은 제국에 추가된 서부 지역 일부 은화에 사용된다.[101]

일부 금화는 굽타 왕들이 행했던 베다 시대 아슈바메다 말 희생 의식을 기념한다. 앞면에는 희생된 말이, 뒷면에는 여왕이 새겨져 있다.[102] 사무드라굽타는 거대한 귀걸이를 착용하고 현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지만, 간단한 도티만 걸치고 있다. 찬드라굽타 1세 시대에 제작된 유일한 유형은 그와 그의 왕비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슈누의 운반자인 새 가루다는 많은 은화에서 왕조 상징으로 사용된다.[103] 이 중 일부는 과거에 화제단으로 오인되기도 했다.[104]

찬드라굽타 2세가 서부 사트라프를 전복한 후 굽타 은화는 그들의 주화를 모방하여 만들어졌으며, 뒷면에 굽타 공작새 상징을 삽입했지만, 그리스 전설과 통치자 초상화는 앞면에 그대로 유지했다.[105][106] 쿠마라굽타 1세스칸다굽타는 구형 동전 유형(가루다와 공작새 유형)을 계속 사용했으며, 다른 새로운 유형도 도입했다.[87] 구리 주화는 주로 찬드라굽타 2세 시대에 국한되었으며, 디자인이 더 독창적이었다. 그가 주조한 것으로 알려진 아홉 가지 유형 중 여덟 가지 유형에는 가루다 형상과 왕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금화 디자인과 제작의 점진적인 악화와 은화 소멸은 영토 축소를 보여준다.[87]

말을 탄 찬드라굽타 2세



8. 건축

굽타 시대의 건축은 다양한 양식과 특징을 보여준다.

날란다에서는 6세기경 불상 조각이 더 육중해지고 금속으로 제작되는 경향을 보였다. 술탄간지 불상은 이 시기 날란다와 파탈리푸트라 지역에서 발전한 굽타 미술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대영 박물관에는 이와 유사한 양식의 작은 석상이 전시되어 있다.[59]

마디아프라데시의 우다야기리 동굴과 비디샤 인근에서는 초기 굽타 양식의 조각품들이 발견된다. 동굴 입구 주변의 암벽 부조 패널에는 거대한 신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비교적 조잡하지만 강력한 인상을 준다. 특히 4호 동굴의 무칼링가는 "초능력으로 맥동한다"라고 묘사될 정도로 생동감이 넘친다.[62] 바라하의 형태로 비슈누가 원시의 물에서 지구를 들어올리는 모습을 묘사한 부조는 굽타 미술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델리 철기둥은 원래 이 동굴 밖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란에는 붓다굽타의 비문에 의해 484/5년으로 추정되는 대형 단일 열주가 있는데, 굽타 시대의 유일한 현존하는 예이며, 꼭대기에는 두 개의 가루다 조각상이 있다. 굽타 사원 폐허 외부에는 두 개의 대형 바라하 조각상이 있었는데, 그 양식은 다소 지방색을 띤다.

6세기 초의 다샤바타라 사원, 데오가르는 훌륭한 출입구와 세 벽에 거대한 부조 패널이 남아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다사푸라와 만다소르 지역에서도 굽타 조각의 중심지가 발견되었는데, 강에서 발견된 거대한 팔면 무칼링가는 파슈파티나트 사원, 만다소르에 재설치되었다.[68]

굽타 제국 외부에 있는 아잔타 석굴과 엘레판타 석굴은 굽타 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암벽 조각 유적지이다. 엘로라 석굴은 굽타 시대 말쯤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잔타 석굴의 후기 조각 양식은 다소 육중하지만, 거대한 좌상 사원 부처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엘레판타의 주요 관심사는 거대한 시바 사원과 약 5.49m 높이의 시바 삼중 흉상 (''트리무르티'')이다.[71]

굽타 시대는 인도 암굴 건축에서 잠시 중단을 보였지만, 인도에서 거의 최초로 남아있는 독립 구조물을 남겼다. 특히 힌두 사원 건축의 시작과 함께, 밀로 비치가 말했듯이 "굽타 시대에 인도 는 스타일화된 건축 틀에 귀중한 물건을 보관하는 데 열정적으로 중세 세계에 합류했다".[114]

우다야기리 석굴 이후 살아남은 초기 북인도 힌두 사원의 예로는 티가와 사원(5세기 초),[116] 산치 사원 17, 데오가르, 나치나의 파르바티 사원 (465),[118] 비타르가온, 락슈만 벽돌 사원, 시르푸르 (서기 600–625년) 등이 있다.

8. 1. 석주

굽타 시대 통치자들의 주요 업적을 기록하기 위해 명문이 새겨진 기둥들이 세워졌다. 아쇼카 석주가 원통형에 매끄럽고 유명한 마우리아 광택으로 마감된 반면, 굽타 시대 기둥은 종종 기하학적 면으로 모양을 낸 거친 표면을 가지고 있었다.[123]

찬드라굽타 2세(c.375-415 CE)의 비문이 있는 델리 철기둥

9. 회화

굽타 시대에는 회화가 주요 예술 형태로 자리 잡았던 것으로 보이며,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작품들은 아잔타 석굴에서 발견된다.[124] 이 석굴의 다양한 그림들은 매우 성숙한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는데, 이는 잘 발달된 회화 전통이 있었음을 시사한다.[124] 굽타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초상화를 포함한 아마추어 회화 기술이 높이 평가되었다는 기록도 있다.[124]

아잔타 석굴은 굽타 제국의 영토 밖에 있던 바카타카 왕조의 통치 하에 있었지만, 굽타의 수도 양식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바그 석굴과 바다미 석굴 사원의 석굴 3호에서도 굽타 시대 회화 유물이 발견되었다.[125]

아잔타에서는 궁궐과 사원을 장식하는 데 익숙한 화가들이 석굴 벽화를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 석굴(10호, 11호)의 벽화 조각들은 고대 인도 회화의 독특한 유물로, 인도 화가들이 이미 사타바하나 시대부터 자연주의적인 스타일을 숙달했음을 보여준다.[126]

후기 석굴 4곳에는 크고 잘 보존된 벽화들이 있는데, 이들은 "굽타뿐만 아니라 모든 인도 예술의 위대한 영광"으로 여겨진다.[127] 이 벽화들은 두 개의 양식 그룹으로 나뉘며, Spink가 제안한 새로운 연대기에 따르면 모두 5세기, 아마도 478년 이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128]

아잔타의 그림들은 젖은 회반죽이 아닌 마른 회반죽 표면에 그려진 "건식 프레스코"이다.[129] 모든 그림은 안목 있는 감식안과 세련된 도시적 분위기의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은 화가들의 작품으로 보인다. 구도는 수평 띠 형태가 아니라, 중앙의 인물이나 그룹에서 모든 방향으로 펼쳐지는 큰 장면을 보여준다.[130] 천장 또한 정교한 장식 모티프로 칠해져 있다.[131] 하리세나가 의뢰한 석굴 1호의 그림은 왕으로서의 부처의 전생을 보여주는 자타카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132]

아잔타 그림은 1819년 재발견된 이후 심하게 훼손되어 현재 현장에서 감상하기 어렵다. 초기 복사 시도들은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벽화 외에도, 문헌 자료를 통해 초상화를 포함한 휴대용 그림과 삽화가 있는 필사본이 흔했음을 알 수 있다.

; 아잔타 그림

아잔타 석굴 17호의 외국인


아잔타 석굴 17, 상인방 위의 프레스코화

10. 동남아시아에의 영향

인도 미술, 특히 동인도에서 기원한 굽타 미술과 굽타 이후의 미술은 서기 6세기부터 동남아시아의 불교 미술과 힌두교 미술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148] 현대 태국의 몬족은 불교를 처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 중 하나였으며, 독특한 불교 미술 양식을 발전시켰다. 몬-드바라바티 시대의 부처 조각상은 마투라 미술을 연상시키는 얼굴 특징과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148]

7세기부터의 앙코르 이전 시대 캄보디아에서는 시바비슈누의 특징을 융합한 ''하리하라'' 조각상이 알려져 있다.[148]

태국 중부, 드바라바티, 몬-드바라바티 양식, 7~9세기

11. 연대기

굽타 미술은 인도 북부 쿠샨 제국쿠샨 미술에서 시작되어 서기 1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번성했으며, 간다라 미술헬레니즘 예술의 영향을 받은 마투라 미술을 혼합했다.[11] 서인도에서는 데브니모리에서 볼 수 있듯이 서 사트라프가 굽타 미술 이전에 서인도 예술 전통을 발전시켰고, 중앙 인도에서는 사타바하나의 미술이 산치에서 볼 수 있듯이 풍부한 인도 예술을 만들어 냈다.[14] 이들은 모두 굽타 미술에 영향을 주었다.

사무드라굽타찬드라굽타 2세의 정복으로 굽타 제국은 중앙, 북부 및 북서부 인도의 광대한 지역을 통합했으며, 이전의 예술 전통을 발전시켜 독특한 굽타 양식을 개발했다.[15][16][17][18] 굽타 시대 조각품 중에는 연대가 새겨진 작품이 몇 점 있으며, 이들은 굽타 시대 연대기와 양식 발전을 위한 척도로 작용한다.[20] 조각상 외에도 주화 또한 중요한 연대기적 지표이다.[21]

굽타 제국은 3세기 후반 굽타 왕 이후에 시작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굽타 미술의 가장 초기의 알려진 조각품은 사무드라굽타 치하의 북서부 인도 정복 이후 약 1세기 후에 등장한다. 초기 예로는 380 CE에 찬드라굽타 2세 치하에 마투라에 두 개의 시바 링가를 세운 기록이 새겨진 기둥과,[22] 보드가야에서 출토된 마투라 미술 양식의 보디사트바 조각상이 있는데, 384 CE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23]

주화 또한 사무드라굽타의 북서부 정복 이후 비교적 늦게 발전했다.[24][91][25] 굽타 주화는 처음에는 쿠샨 양식을 모방했다.[26][27][28]

11. 1. 굽타 시대의 연대 측정 조각상

굽타 미술의 연대기는 이 지역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도 굽타 제국의 다양한 통치자들을 언급하고 그들의 통치 연도를 굽타 시대로 표시하는 비문을 바탕으로 여러 조각상들의 정확한 연대가 밝혀졌다.

굽타 시대의 연대 측정 조각상 (319–543 CE)


11. 2. 말기: 손다니 (525 CE)

야소다르만(재위 515 – 545 CE)이 약 525 CE에 알촌 훈의 왕 미히라쿨라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손다니와 만다소르 주변 지역의 조각품들을 의뢰하였다.[144][145] 이는 아대륙에서 굽타 문화와 정치적 통일성이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며, 그 이후 수 세기 동안 인도 정치는 매우 분열되어 영토가 더 작은 왕조들로 나뉘었다.[146] 손다니의 미술은 굽타 미술과 중세 인도 미술 사이의 과도기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굽타 미술의 고전적인 격식과 더 나아가 인물을 더 큰 종교적 목적에 종속시키는 중세 규범 사이에서 맴도는 미학"을 나타낸다.[147]

비디아다라, 손다니, 약 525 CE. 국립 박물관, 뉴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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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문서 Mookerji, 144; Harle, 114
[69] 문서 Harle, 118–120 (120 quoted), 12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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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문서 Sircar, 215–217; Pal, 74–75. The alternative explanation is that these animals were still more widespread than is usually thought.
[101] 문서 Mookerji, 139–141; Pal, 73–74
[102] 문서 Glucklich, 111–113; Mookerji, 140; Pal, 79–80 suggests instead the female figure may represent [[Ashta Lakshmi#Jaya/Vijaya Lakshmi|Vijaya]], the goddess of victory.
[103] 문서 Mookerji, 139–141; Pal, 7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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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문서 Harle, 89
[153] 문서 Rowland, 215
[154] 문서 Harle, 199
[155] 문서 Harle, 89; Rowland, 216
[156] 문서 Harle, 88, 355–361
[157] 문서 Rowland, 25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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