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로라 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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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엘로라 석굴은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에 위치하며, 아우랑가바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29km 떨어진 곳에 있는 암벽을 깎아 만든 사원군이다.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세 종교의 석굴이 혼재되어 있으며, 각 종교의 건축 양식과 조각 양식의 특징을 보여준다. 특히 16굴에 있는 카일라사 사원은 하나의 바위를 깎아 만든 거대한 건축물로 유명하다. 석굴들은 7세기부터 10세기 사이에 걸쳐 조성되었으며, 초기 불교 굴, 힌두교 굴, 후기 힌두교 및 자이나교 굴 순으로 제작되었다. 엘로라 석굴은 13세기 이후 이슬람 세력의 침략으로 인해 훼손되었지만, 현재는 관광 명소로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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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라 석굴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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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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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아우랑가바드, 마하라슈트라 주, 인도 |
좌표 | 북위 20.0268도, 동경 75.1771도 |
유형 | 모놀리식 석굴 |
면적 | 인도 |
지정 연도 | 1983년 |
지정 번호 | 243 |
지정 기준 | (i), (iii), (vi) |
지정 유형 | 문화유산 |
유네스코 지역 | 아시아-태평양 |
지리 | |
위치 | 마하라슈트라 주의 아우랑가바드에서 북서쪽으로 29km 떨어진 곳 |
거리 | 뭄바이에서 약 300km |
역사 | |
건설 시기 | 기원후 600년 ~ 1000년 |
종교 |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
설명 | |
특징 | 34개의 석굴 사원과 수도원으로 구성 차라나드리 언덕의 현무암 절벽을 깎아 만듦 12개의 불교 석굴 (1~12굴) 17개의 힌두교 석굴 (13~29굴) 5개의 자이나교 석굴 (30~34굴) |
카일라사 사원 | 제16굴에 위치 단일 암석을 깎아 만든 세계 최대의 모놀리식 굴착 구조물 |
중요성 | 인도 고대 문화와 종교 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 |
관리 | |
관리 주체 | 인도 고고학 조사국 (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 |
2. 어원
엘로라는 베룰 또는 엘루라라고도 불리며, 고대 이름 '''엘루르푸람'''의 줄임말이다.[8] 더 오래된 형태는 서기 812년 바 로다 비문에 "이 건물의 웅장함"과 "이 위대한 건물은 엘라푸라의 크리슈나라자에 의해 언덕에 지어졌다"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여기서 언급된 건물은 카일라사 사원이다.[2] 인도 전통에서 각 동굴에는 이름이 붙여지며, 동굴을 의미하는 "구하"(산스크리트어), "레나" 또는 "레니"(마라티어)라는 접미사가 붙는다.[2]
엘로라 석굴 건축물은 영국 식민 통치 시대부터 연구되었다. 그러나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석굴 간의 양식이 중첩되어 있어 석굴 건설 연대기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가 어려웠다.[11] 이러한 논쟁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쟁점에 집중된다. 첫째, 불교 석굴과 힌두교 석굴 중 어느 것이 먼저 조각되었는가, 둘째, 특정 종교 전통 내의 석굴들의 상대적 연대는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지역을 지배했던 아수라 일발라가 현자 아가스티야에게 패배한 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일발라푸람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9]
3. 위치
엘로라 석굴은 마하라슈트라 주에 위치해 있으며, 아우랑가바드 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29km, 뭄바이에서 동북동쪽으로 약 300km, 푸네에서 약 235km 떨어져 있다. 또한 아잔타 석굴에서 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져 있고, 그리슈네슈와르 사원(인도)에서 2.3km 떨어져 있다.[10]
엘로라는 서고츠의 비교적 평평한 암석 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고대 화산 활동으로 인해 다층 구조의 현무암 지층이 형성되었는데, 이는 데칸 트랩으로 알려져 있다. 엘로라 석굴을 품고 있는 서쪽을 향한 절벽을 형성한 화산 활동은 백악기 시대에 발생했다. 그 결과 수직으로 깎인 절벽은 여러 층의 암석 지층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고, 건축가들이 더 정교한 조각을 위해 더 고운 입자의 현무암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10]
엘로라는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의 아우랑가바드에서 약 30km 떨어진 마을이다. (현지에서는 에-로-라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4. 연대기
현재까지 나타난 광범위한 합의는 엘로라의 조각 양식을 데칸 지역의 다른 연대 측정된 석굴 사원, 다양한 왕조의 기록, 그리고 엘로라 및 마하라슈트라, 마디아 프라데시, 카르나타카 인근의 다양한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견된 금석문 증거를 비교하여 이루어졌다. 게리 혹필드 말란드라와 다른 학자들은 엘로라 석굴이 세 개의 중요한 건설 시기를 거쳤다고 말한다.
가장 초기의 석굴들은 트라이쿠타카스 왕조와 바카타카 왕조 시대에 건설되었을 수 있으며, 후자는 아잔타 석굴을 후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9번 힌두교 석굴과 같은 일부 초기 석굴들은 시바를 숭배한 칼라추리 왕조에 의해 건설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불교 석굴은 찰루키아 왕조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여겨진다. 후기 힌두교 석굴과 초기 자이나교 석굴은 라스트라쿠타 왕조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마지막 자이나교 석굴은 다른 자이나교 석굴 사원들을 후원했던 야다바 왕조에 의해 건설되었다.[13]
석굴 사원군은 남서쪽을 향한 절벽에 굴착되어 있다. 동쪽에 굴착된 것일수록 오래되었고, 서쪽으로 갈수록 새롭다. 동쪽의 것은 대부분 불교 석굴이며, 중앙 부근의 것은 힌두교, 서쪽의 것은 자이나교 석굴 사원이다. 연대도 불교 석굴이 가장 오래되었고, 다음이 힌두교, 자이나교 순으로 새롭게 된다.
5. 힌두교 석굴 (13~29번)
엘로라의 힌두교 석굴(13~29번)은 6세기 중반부터 8세기 말까지 두 단계에 걸쳐 건설되었다. 초기에는 6세기 초에 9개의 석굴 사원이 발굴되었고, 이후 4개의 석굴(17~29번)이 추가되었다. 작업은 28, 27, 19, 29, 21번 굴 순서로 시작되었으며, 20번과 26번 굴은 동시에 발굴되었다. 17번과 28번 굴은 가장 나중에 만들어졌다.[14]
후기 석굴인 14, 15, 16번 굴은 라슈트라쿠타 왕조 시대에 건설되었으며, 일부는 8세기에서 10세기 사이로 추정된다.[14] 14번과 15번 굴에서 작업이 시작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석조 구조물"인 16번 굴이 마지막으로 건설되었다.[14] 이 석굴들은 크리슈나 1세 왕의 지원을 받아 8세기에 완공되었다.[15]
힌두교 석굴은 굴착 기술과 미술적 관점에서 다양한 양식을 보여준다. 일부 석굴은 매우 복잡하여 여러 세대에 걸쳐 완공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5. 1. 초기 힌두교 사원
초기 힌두교 사원 건축은 불교 또는 자이나교 사원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이 초기 사원들은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신 시바에게 봉헌되었지만, 도상학은 장인들이 힌두교의 다른 신과 여신들에게도 중요하고 동등한 경의를 표했음을 시사한다. 이 석굴 사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신전의 핵심 부분에 바위로 깎아 만든 링가-요니가 있고, 각각은 순례 공간(''parikrama'')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제29굴은 ''Dhumar Lena''라고도 불리며, 엘로라에서 가장 초기에 발굴된 곳 중 하나이자 가장 큰 곳 중 하나이다.[2] 이 굴의 초기 힌두교 사원 건축은 기념물에 통합된 자연 폭포인 "발레 강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폭포는 남쪽의 바위 조각 발코니에서 볼 수 있으며, 특히 우기에는 "위대한 시바의 눈썹 위로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 굴의 조각들은 실물보다 크지만, 다른 엘로라 굴에서 발견되는 것과 비교하여 "뚱뚱하고, 다리가 불균형하게 짧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21굴은 '라메스와르 레나(Rameshwar Lena)'라고도 불리며, 칼라추리 왕조가 건설했다고 여겨지는 또 다른 초기 발굴지이다.[2] 이 동굴은 엘로라의 동굴을 확장해 나간 라슈트라쿠타 왕조가 등장하기 전에 완공되었다.[2]
이 동굴은 다른 엘로라 동굴과 유사한 작품들을 특징으로 하지만, 여신 파르바티가 시바를 추구하는 이야기를 묘사한 조각상과 같은 독특한 작품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파르바티와 시바가 여가를 즐기는 모습, 시바와 파르바티의 결혼, 시바의 춤, 카르티케야(스칸다)를 묘사한 조각들이 다른 동굴에서도 발견되었다. 이 동굴은 또한 힌두교의 샥티 전통에서 일곱 어머니 여신인 사프타 마트리카를 크게 전시하고 있으며, 양옆에는 가네샤와 시바가 자리 잡고 있다. 사원 내부에는 샥티 전통에 중요한 다른 여신들, 예를 들어 두르가가 있다. 제21굴 입구 양옆에는 주요 히말라야 강 두 곳과 인도 문화에 대한 그들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여신 갠가와 야무나의 대형 조각상이 있다.
이 동굴은 만다파 사각형 원리에 따라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동굴 전체에 반복되는 기하학적 패턴이 내장되어 있다. 사원의 성소에 있는 시바 링가는 갠가 여신과 야무나 여신의 주요 조각상으로부터 동일한 거리에 있으며, 이 세 조각상은 모두 정삼각형 안에 놓여 있다. 카멜 버크슨에 따르면, 이러한 배치는 브라만과 프라크리티의 관계, 즉 힌두 신학의 핵심인 남성적 에너지와 여성적 에너지의 상호 의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힌두교 석굴은 7세기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힌두교 석굴에서는 굴착 기술과 미술적 관점의 두 가지 측면에서 몇 가지 다른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석굴들은 위에서 아래로 굴착된 경우가 많다. 몇몇 석굴 사원은 매우 복잡하며, 그 완공에는 여러 세대에 걸친 기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제16굴'''은 '''카일라사나타 사원(Kailasanatha Temple)''' 또는 카일라사 사원(Kailasa Temple)이라고 불리며, 엘로라에서 가장 중요한 석굴 사원이다. 엘로라를 대표하는 석굴로, 엘로라 하면 카일라사나타 사원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이 거대한 '조각'은 '''라슈트라쿠타 왕조'''의 군주 '''크리슈나 1세'''(재위 756년 - 775년)의 명에 따라, '''카일라스 산'''(수미산, 힌두교에서는 시바 신이 사는 곳으로 여겨짐)을 본떠 굴착된 것으로 생각된다. 크리슈나 1세는 파타다칼의 바다미 찰루키아 왕조의 건축을 모델로 하고, 바위산에서 사원을 조각해내는 아이디어는 팔라바 왕조의 마하발리푸람의 '라타'에서 힌트를 얻어, 그것을 능가하는 사원을 만듦으로써 시바 신을 모시고 왕조의 권위를 나타내려 했다.
카일라사나타 사원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의 2배 정도 규모이며, 석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고층 건축물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하나의 바위에서 굴착된 것이다.[52]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나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사원도 마찬가지로 카일라스 산을 본떠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모든 조각은 2층 이상의 층에 있다. 2층 출입구는 U자형 안뜰로 되어 있고, 안뜰은 조각이 있는 3층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회랑은 거대한 조각 패널로 구분되어 있으며, 다양한 신의 거대한 조각을 포함하는 하나의 여성기상으로 되어 있다. 원래 이 회랑은 중앙 사원과 몇 개의 공중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붕괴되어 없어졌다.
안뜰에는 두 개의 거대한 조각이 있는데, 하나는 전통적인 시바 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신성한 수컷 난디(Nandi, 시바의 탈것인 암소)의 상이 중앙 사원의 '''링가'''를 마주 보고 있다. 제16굴에서는 난디 만다프(Nandi Mandap)와 중앙 사원(시바 사원)이 각각 약 7m 높이의 2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난디 만다프의 낮은 층은 이중 구조로 되어 있으며, 정교하고 회화적인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사원의 토대는 코끼리가 건물을 받치고 있는 듯한 조각으로 되어 있다.

바위의 공중 회랑은 난디 만다프와 중앙 사원의 현관을 잇는 것만이 현존한다. 중앙 사원은 남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라미드형 구조를 하고 있다. 신전은 열주, 창, 내실과 외실, 계단식 홀, 거대한 링가를 갖추고 있으며, 소실, 벽, 창, 신상이 안치된 신단, 미투나상(Mithunas, 에로틱한 남녀상), 기타 상 등이 바위를 굴착하여 만들어져 공간을 채우고 있다. 입구 오른쪽에는 비슈누파 신자들(Vaishnavaites), 왼쪽에는 시바파 신자들(Shaivaite)의 상이 만들어져 있다.
안뜰에는 2개의 Dhvajastambhas(깃대 기둥)가 있다. 카일라스 산을 들어 올리려는 라바나의 웅장한 조각은 인도 예술에서 기념비적인 존재이다.
이 '석굴'을 만들기 위해서는 20만 톤의 바위를 굴착하고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제15굴''' 다샤 아바타라 굴(Dasa Avatara)도 인상적인 힌두 석굴이다. 넓은 안뜰에는 카일라사나타와 마찬가지로 노출된 신전이 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투각 창이 있으며, 이것도 암반에서 조각된 지구의 일부이다. 안뜰 주변에는 아파트와 같은 석굴이 빙 둘러싸고 있으며, 여기에는 10개의 비슈누 신의 화신과 황소상, 시바 신의 상이 있다.
'''제21굴''' 라메슈와라 굴(Ramesvara)에는 입구에 여신의 강이 굴착되어 있다.
'''제29굴''' 두마르 레나(Dhumar Lena)도 인상적인 석굴이다. 힌두 석굴로는 가장 서쪽에 있는 석굴이다. 이 굴은 언덕 능선 부분에 만들어졌으며, 큰 입구가 2개 있는데, 한쪽은 강을 마주 보고 있으며 테라스 모양으로 되어 있다. 다른 한쪽은 암반의 큰 갈라진 틈으로 이어져 있으며, 몇 개의 조상이 배치되어 있다. 푸른 하늘 아래에 있는 다른 석굴의 입구와 달리, 매우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다.
석굴 내부는 넓고, 특히 천장이 높다. 이 넓은 공간에 거대한 힌두 신들의 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5. 2. 카일라사나타 사원 (제16굴)
엘로라 석굴의 16번 굴은 카일라사 사원(Kailasa temple)으로 알려져 있으며, 하나의 바위에서 전체를 조각해 낸 인도 동굴 사원 건축의 주목할 만한 예시이다.[16][17]카일라사 사원은 카일라시 산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시바에게 헌정되었다.[18] 이 사원은 정문, 집회소, 여러 층의 본당 등 다른 힌두 사원들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며, 정사각형 원리에 따라 배치된 여러 신사들로 둘러싸여 있다.[19] 또한 순례 공간, 링가-요니가 있는 성소, 카일라시 산과 같은 첨탑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바위에서 조각되었다.[17][23] 같은 바위에서 조각된 다른 신사들은 갠지스, 야무나, 사라스바티 등과 같은 베다 신들과 여신들, 그리고 가네샤, 아르다나리슈바라 (반은 시바, 반은 파르바티), 하리하라 (반은 시바, 반은 비슈누) 등과 같은 비베다 신들에게 헌정되었다.[16][17] 사원의 지하층에는 샤이바, 바이슈나바 및 샤크티 작품들이 있으며, 특히 크리슈나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 12개를 포함한 조각품 세트가 주목할 만하다.[20]
이 구조물은 아테네의 파르테논의 두 배 크기이며,[21] 약 200,000톤의 돌을 제거하여 만들어졌다.[18][17] 라슈트라쿠타 왕 크리슈나 1세 (재위: 756–773 CE)에 의해 건설되었으나, 팔라바 건축 요소도 보인다.[22] 안뜰의 크기는 기저부에서 82미터 x 46미터이고 높이는 30미터이다.[23] 입구에는 낮은 고푸람이 있다. 링감을 모시는 중앙 신사에는 16개의 기둥으로 지지되는 평평한 지붕의 만다파와 드라비다 시카라가 있다. 시바의 탈것인 난디 황소 (신성한 황소)의 이미지가 사원 앞 현관에 있다.[16] 본당의 두 벽에는 북쪽 면에는 마하바라타, 남쪽 면에는 라마야나를 묘사한 조각물들이 있다.
카일라사 사원은 서기 1천년 인도 역사에서 사원 건축의 주목할 만한 예로 여겨지며,[24][18] 카르멜 버크슨은 이 사원을 암석 조각 기념물 중 "세계의 불가사의"라고 불렀다.
'''제16굴'''은 '''카일라사나타 사원(Kailasanatha Temple)''' 또는 카일라사 사원(Kailasa Temple)이라고 불리며, 엘로라에서 가장 중요한 석굴 사원이다. 라슈트라쿠타 왕조의 군주 '''크리슈나 1세'''(재위 756년 - 775년)의 명에 따라, 카일라스 산(수미산, 힌두교에서는 시바 신이 사는 곳으로 여겨짐)을 본따 굴착된 것으로 생각된다. 크리슈나 1세는 바다미 찰루키아 왕조의 건축을 모델로 하면서, 바위산에서 사원을 조각해내는 아이디어는 팔라바 왕조의 마하발리푸람의 '라타'에서 힌트를 얻어, 그것을 능가하는 사원을 만듦으로써 시바 신을 모시고, 왕조의 권위를 나타내려 했다.
카일라사나타 사원은 파르테논 신전의 2배 정도 규모이며, 석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고층 건축물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바위에서 굴착된 것이다.[52]
모든 조각은 2층 이상의 층에 있다. 2층 출입구는 U자형 안뜰로 되어 있고, 조각이 있는 3층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회랑은 거대한 조각 패널과 다양한 신의 거대한 조각을 포함하는 하나의 여성기상으로 구분되어 있다. 원래 이 회랑은 중앙 사원과 몇 개의 공중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붕괴되어 없어졌다.
안뜰에는 신성한 수컷 난디(Nandi, 시바의 탈것인 암소) 상이 중앙 사원의 '''링가'''를 마주보고 있다. 제16굴에서 난디 만다프(Nandi Mandap)와 중앙 사원(시바 사원)은 각각 약 7m 높이에 2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난디 만다프의 낮은 쪽 층은 이중 구조로, 정교하고 회화적인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사원 토대는 코끼리가 건물을 받치고 있는 듯한 조각으로 되어 있다.
바위의 공중 회랑은 난디 만다프와 중앙 사원 현관을 잇는 것만이 현존한다. 중앙 사원은 남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라미드형 구조를 하고 있다. 신전은 열주, 창, 내실과 외실, 계단식 홀, 거대한 링가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소실, 벽, 창, 신상이 안치된 신단, 미투나상(Mithunas, 에로틱한 남녀상), 기타 상 등이 바위를 굴착함으로써 만들어져 공간을 채우고 있다. 입구 오른쪽에는 비슈누파 신자들(Vaishnavaites), 왼쪽에는 시바파 신자들(Shaivaite)의 상이 만들어져 있다.
안뜰에는 2개의 Dhvajastambhas(깃대 기둥)가 있다. 카일라스 산을 들어올리려는 라바나의 웅장한 조각은 인도 예술에서 기념비적인 존재이다. 이 '석굴'을 만들기 위해 20만 톤의 바위를 굴착하고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5. 3. 다샤바타라 (제15굴)

다샤바타라 사원(제15굴)은 제14굴(라반 키 카이, 힌두교) 이후에 완공된 또 다른 중요한 굴이다. 제15굴은 제11굴 및 제12굴(불교)과 유사한 구조와 배치 계획을 가지고 있어, 불교 굴로 의도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입구의 '나트야 만다파'(인도 고전 무용 파빌리온)와 같은 비불교적 특징은 그렇지 않음을 나타낸다. 제임스 할레에 따르면, 힌두교 이미지가 불교 제11굴에서 발견되었으며, 이 지역의 불교 굴에는 많은 힌두교 신들이 통합되었다. 이러한 불교 굴과 힌두교 굴 사이의 이질적인 디자인 중복은 동일한 건축가와 작업자들이 작업했거나, 계획된 불교 굴이 힌두교 기념물로 개조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게리 말란드라에 따르면, 엘로라의 모든 불교 굴은 이미 확립된 브라만교 티르타(힌두교 순례지)에 침입한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었다. 힌두교 굴과 불교 굴 모두 익명성이 강했고, 불교 엘로라 굴에 대한 기증 명문은 굴을 건설한 힌두 왕조 외에는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이 굴 사원의 원래 의도와 특성은 추측에 불과하다.

제15굴에 있는 힌두교 사원은 중앙에 독립형 석조 '만다파'와 후면에 2층으로 굴착된 사원이 있는 열린 안뜰을 가지고 있다. 윗층 벽 기둥 사이의 대형 조각 패널은 비슈누의 열 아바타를 포함한 광범위한 주제를 보여준다. 사원의 연대를 확정하는 데 중요한 단티두르가의 명문이 앞 '만다파'의 뒷벽에 있다. 쿰마라스와미에 따르면, 이 굴의 가장 훌륭한 부조는 인간 사자(나라심하) 형태로 기둥에서 나와 그의 어깨에 치명적인 손을 얹는 비슈누가 히라냐카시푸를 죽이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것은 라슈트라쿠타 왕조 조각이다. 제15굴의 다른 부조에는 강가다라, 시바와 파르바티의 결혼, 샤크티 전통의 트리푸란티카, 마르켄데이아, 가루다, 삶의 모습, 만다파의 난디, 춤추는 시바, 안다카수라, 고바르다나다리, 가젠드라바라 등이 있다. 패널은 쌍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카멜 버크슨은 이것이 서로 협력적이면서도 적대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며 상호적인 힘의 이동을 통해 서로를 강화한다고 말한다.

다샤 아바타라 굴(Dasa Avatara, 제15굴)도 인상적인 힌두 석굴이다. 넓은 안뜰에는 카일라사나타와 마찬가지로 노출된 신전이 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투각 창이 있으며, 이것도 암반에서 조각된 지구의 일부이다. 안뜰 주변에는 아파트와 같은 석굴이 빙 둘러싸고 있으며, 여기에는 10개의 비슈누 신의 화신과 황소상, 시바 신의 상이 있다.
5. 4. 기타 힌두교 석굴
다른 주목할 만한 힌두 석굴로는 《라반 키 카이》(14굴)와 《닐칸타》(22굴)가 있으며, 두 석굴 모두 수많은 조각상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25굴은 천장에 수르야 조각이 새겨져 있다.[51]힌두교 석굴은 7세기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힌두교 석굴은 굴착 기술과 미술적 관점의 두 가지 측면에서 몇 가지 다른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석굴들은 위에서 아래로 굴착된 경우가 많다. 몇몇 석굴 사원은 매우 복잡하며, 그 완공에는 여러 세대에 걸친 기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51]
'''15굴''' 다샤 아바타라 굴(Dasa Avatara)도 인상적인 힌두 석굴이다. 넓은 안뜰에는 카일라사나타와 마찬가지로 노출된 신전이 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투각 창이 있으며, 이것도 암반에서 조각된 지구의 일부이다. 안뜰 주변에는 아파트와 같은 석굴이 빙 둘러싸고 있으며, 여기에는 10개의 비슈누 신의 화신과 황소상, 시바 신의 상이 있다.[51]
'''21굴''' 라메슈와라 굴(Ramesvara)에는 입구에 여신의 강이 굴착되어 있다.[51]
'''29굴''' 두마르 레나(Dhumar Lena)도 인상적인 석굴이다. 힌두 석굴으로는 가장 서쪽에 있는 석굴이다. 이 굴은 언덕 능선 부분에 만들어졌으며, 큰 입구가 2개 있다. 한쪽은 강을 마주보고 있으며, 테라스 모양으로 되어 있다. 다른 한쪽은 암반의 큰 갈라진 틈으로 이어져 있으며, 몇 개의 조상이 배치되어 있다. 푸른 하늘 아래에 있는 다른 석굴의 입구와 달리, 매우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다.[51]
석굴 내부는 넓고, 특히 천장이 높다. 이 넓은 공간에 거대한 힌두 신들의 입상이 배치되어 있다.[51]
6. 불교 석굴 (1~12번)
엘로라의 불교 석굴(1~12번)은 남쪽에 위치하며, 서기 630년에서 700년 사이[28], 또는 600년에서 730년 사이에 지어졌다. 초기에는 5세기에서 8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불교 굴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졌으나, 현대 학자들은 힌두교 굴이 불교 굴보다 먼저 건설되었다고 본다. 가장 오래된 불교 굴은 6번 굴이며, 그 다음은 5, 2, 3, 5(오른쪽 날개), 4, 7, 8, 10, 9번 굴이다.[28] 11번 굴(Do Thal)과 12번 굴(Tin Thal)은 가장 나중에 지어졌다.
12개의 불교 굴 중 11개는 비하라 (수도원)로, 기도실이 있고 산허리를 깎아 만든 여러 층 건물이다. 거실, 침실, 주방 등이 있으며, 고타마 붓다, 보살 등의 신상이 있는 신사가 있다. 일부 굴에서는 조각가들이 돌에 나무의 모습을 부여하려 노력했다.
5, 10, 11, 12번 굴은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불교 굴이다. 5번 굴은 중앙에 나란한 식당 벤치 한 쌍과 뒷면에 부처상이 있는 홀로 설계되어 독특하다. 이 굴과 칸헤리 석굴의 11번 굴은 이러한 방식으로 배열된 인도 내 유일한 불교 굴 두 곳이다. 1번부터 9번 굴은 모두 수도원이며, 10번 굴(비슈바카르마 석굴)은 주요 불교 기도실이다.
11번과 12번 굴은 벽에 조각된 아이돌, 만다라, 여신, 금강승 불교의 보살 관련 도상이 있는 3층 대승 수도원 굴이다. 이는 금강승과 불교의 탄트라 사상이 서기 8세기까지 남아시아에 잘 정착되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다.
6. 1. 비슈바카르마 석굴 (제10굴)
엘로라 석굴의 불교 석굴 중 주목할 만한 곳은 서기 650년경에 지어진 '비슈바카르마 석굴'이라고 불리는 차이티야 예배당인 제10굴이다.[28] 이 석굴은 바위에 나무 기둥과 같은 마감을 하여 '목수의 석굴'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여러 층으로 된 입구 너머에는 대성당과 같은 탑 홀이 있으며, 이는 '차이티야-그리하'(기도실)로도 알려져 있다. 이 석굴의 중심에는 설법 자세로 앉아 있는 약 4.57m 높이의 부처상 조각이 있다.

제10굴은 8개의 부속실이 있는 예배당과 같은 예배당을 결합하고 있는데, 뒤쪽 벽에 4개, 오른쪽에 4개가 있으며, 정면에 현관이 있다.[28] 이 석굴은 불교 석굴 중 유일하게 전용 차이티야 그리하이며, 아잔타 석굴의 19번, 26번 석굴과 유사한 형태로 건설되었다. 제10굴에는 또한 가박샤 또는 찬드라샬라, 아치형 창문이 있으며 엘로라의 9번 석굴과 측면 연결이 있다.
비슈바카르마 석굴의 본당은 앱시달 형태이며, 단순한 브래킷 기둥이 있는 28개의 팔각형 기둥으로 중앙 통로와 측면 통로로 나뉜다. 차이티야 홀의 앱시달 끝에는 탑이 있으며, 그 표면에는 '비야카야나 무드라'(설법 자세)로 앉아 있는 거대한 부처상이 있다. 그의 뒤에는 큰 보리수가 새겨져 있다. 홀에는 나무를 모방한 갈비뼈(트라이포리움이라고 함)가 바위에 조각된 아치형 지붕이 있다.[31] 기둥 위의 프리즈에는 나가 여왕이 있으며, 광범위한 릴리프 미술 작품은 연예인, 무용수, 음악가와 같은 인물을 보여준다.
기도실의 정면은 계단을 통해 들어가는 암석 절단 법정이다. 석굴 입구는 압사라스와 명상하는 승려를 포함한 수많은 인도 모티프로 장식된 조각된 파사드로 되어 있다.[30] 상층의 양쪽에는 뒷벽에 작은 방이 있는 기둥 현관이 있다. 기둥이 있는 '베란다' '차이티야'에는 양쪽 끝에 작은 신사가 있고, 뒷벽의 맨 끝에 단일 세포가 있다. 복도 기둥에는 거대한 사각형 샤프트와 '가타-팔라바'(화병과 잎) 양식이 있다. 제10굴의 다양한 층에는 마이트레야, 타라, 아발로키테스바라(바즈라다르마), 만주슈리, 브르쿠티, 마하마유리와 같은 남성 및 여성 신의 우상이 있으며, 인도의 동부 지역에서 발견되는 팔라 왕조 양식으로 조각되었다. 이 석굴의 다양한 작품에서도 남부 인도 스타일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제10굴은 차이티야 굴로 불교 석굴 중에서는 가장 후기 것이다. 이 굴의 천장이 높은 홀에 들어가면, 안쪽에 있는 스투파가 눈에 들어온다. 스투파를 등지고, 약 4.57m 높이의 설법하는 부처의 상이 자리하고 있다.
6. 2. 기타 불교 석굴
엘로라 석굴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5세기부터 7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불교 유적이다. 인근 아잔타 석굴군의 불교 석굴과 마찬가지로, 엘로라에도 두 종류의 불교 석굴이 있다. 하나는 '''비하라 굴'''로, 엘로라 불교 석굴 대부분이 이 양식이다. 비하라 굴은 일본어로 '''승방''' 또는 '''승원'''에 해당하며, 수행승이 생활하며 명상을 하던 곳이다. 비하라 굴에는 명상실을 중심으로 부엌, 침실 등 부대 시설이 있고, 층상 구조로 된 큰 굴이 많다.[51]다른 하나는 불탑(또는 불당)이 있는 '''차이티야 굴'''이다. 차이티야 굴에는 '''보살'''과 성자를 거느린 '''부처''' 상이 조각되어 있다. 현재의 '''불전''' 또는 '''본당'''이다.[51]
초기, 중기의 차이티야 굴은 가장 안쪽에 불당이 있고, 불당 중앙에 불상(대부분 석가상)이 조각되어 있다. 중앙 불상 주위에는 여러 보살상이나 천녀가 조각되어 있다. 이러한 불상들은 잡다하게 늘어서 있다. 일본 호류지 오중탑 초층 내진에 있는 열반상과 입멸 장면 조상군에서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51]
후기에는 트인 홀이 있으며, 가장 안쪽에 '''스투파'''를 등진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51]
비하라 굴이든 차이티야 굴이든, 원래 목조인 승원과 불전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에, 석굴 내부에는 목조 구조를 흉내 낸 기둥과 빔이 조각되어 있다.[51]
'''제10굴'''은 비슈바카르마 굴(Visvakarma)이라고 하며, '''대목장의 석굴'''이라고도 불리며 불교 석굴 중 가장 유명하다.[51]
제10굴은 차이티야 굴로 불교 석굴 중에서는 가장 후기 것이다. 이 굴의 천장이 높은 홀에 들어가면, 안쪽에 있는 스투파가 보인다. 스투파를 등지고, 높이 약 4.57m의 설법하는 부처 상이 있다.[51]
7. 자이나교 석굴 (30~34번)
엘로라 북쪽 끝에는 9세기와 10세기 초에 만들어진 디감바라 종파에 속하는 5개의 자이나교 석굴이 있다.[32][33] 이 석굴들은 불교 및 힌두교 석굴보다 작지만, 매우 상세한 조각을 특징으로 한다. 후기 힌두교 석굴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으며, 기둥이 있는 베란다, 대칭적인 만다파, 그리고 ''푸자''(숭배)와 같은 건축 및 신앙적 아이디어를 공유한다.[34] 그러나 힌두교 사원과는 달리, 24명의 티르탄카라 (끊임없는 윤회에서 벗어난 영적 정복자)의 묘사에 중점을 둔다. 이러한 지나 외에도 자이나교 사원의 작품에는 1세기 CE 자이나교 신화에 널리 퍼져 있는 신과 여신, ''약샤''(남성 자연 신), ''약시''(여성 자연 신) 및 인간 신자들의 조각이 포함되어 있다.
호세 페레이라에 따르면, 다섯 개의 석굴은 실제로 여러 시기에 걸쳐 23개의 별개의 발굴이었다. 이 중 13개는 인드라 사바에, 6개는 자간나타 사바에, 나머지는 초타 카일라시에 있다. 페레이라는 여러 자료를 사용하여 엘로라의 자이나교 석굴이 8세기 후반에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지었다. 건축 및 발굴 활동은 10세기를 넘어 델리 술탄국의 이 지역 침략으로 중단되기 전인 13세기까지 이어졌다. 이는 1235 CE에 제작된 봉헌 비문으로 입증되는데, 거기에서 기증자는 군주 지나의 발굴을 기증함으로써 자이나교 신자들을 위해 "차라나드리를 거룩한 ''티르타''로 개종"시켰다고 언급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자이나교 신전으로는 ''초타 카일라시''(석굴 30), ''인다라 사바''(석굴 32) 및 ''자간나트 사바''(석굴 33)가 있다. 석굴 31은 미완성된 4개의 기둥이 있는 홀과 신사이다. 석굴 34는 작은 석굴로, 석굴 33의 왼쪽 측면에 있는 입구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자이나교 석굴에는 신앙적 조각들 중 가장 초기의 ''사마바사라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 사마바사라나는 티르탄카라가 ''케발라 즈나나''(해방된 전지)를 얻은 후 설교하는 홀이므로 자이나교 신자에게 특히 중요하다. 이 석굴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흥미로운 특징은 자이나교의 성스러운 인물인 파르스바나타와 바후발리의 쌍을 이루는 것으로, 19번 나타난다. 그 외 중요한 작품으로는 여신 사라스바티, 스리, 사우드하르멘드라, 사르바누부티, 고묵하, 암비카, 차크레스와리, 파드마바티, 크세트라팔라 및 하누만의 작품이 있다.
7. 1. 초타 카일라사 (제30굴)
초타 카일라사(Chhota Kailasha)는 카일라사 사원 조각과 유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사원은 카일라사 사원 완공 후 수십 년이 지난 시점인 9세기 초에 인다라 사바 하층부 건설과 함께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28] 춤추는 인다라의 실물보다 큰 부조 2개가 있는데, 하나는 팔이 8개, 다른 하나는 12개이며, 둘 다 장식과 왕관으로 장식되어 있다. 인드라의 팔은 인근 힌두교 동굴에서 발견되는 춤추는 시바 조각과 유사한 다양한 무드라(mudra)를 보이고 있다.[29] 그러나 이 동굴이 춤추는 시바가 아닌 춤추는 인드라를 보여준다는 것을 나타내는 몇 가지 도상학적 차이점이 있다. 입구에 있는 인드라 패널은 또한 다른 신, 천상, 음악가, 무용수를 묘사하고 있다.[30]미술사학자 리사 오웬(Lisa Owen)은 자이나교 신학이 명상적인 금욕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음악과 춤이 9세기 자이나교의 일부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라잔(Rajan)은 동굴 30이 원래 힌두교 기념물이었으나 나중에 자이나교 사원으로 개조되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오웬은 이 사원의 축제 분위기의 예술 작품은 자이나교의 ''사마바사라나''(Samavasarana) 교리의 일부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낫다고 제안한다.[31]
힌두교와 자이나교의 신화가 중복되어 혼란을 야기하는데, 힌두교 마하바라타(Mahabharata) 3권은 인드라의 거처를 영웅, 궁녀, 장인으로 가득 찬 낙원과 같은 환경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32] 이 이미지는 힌두교 동굴과 유사하게 동굴 30 전체에서 반복되어 사원의 맥락을 설정한다.[33] 그러나 사원의 중심부에 가까운 상징주의는 자이나교의 핵심 사상에 더 부합하며, 명상하는 이미지와 지나(Jinas)가 더 많이 나타난다. 즉, 자이나교 신도가 의례적인 ''아비셰카(abhisheka, 예배)''를 수행하는 장소이다.[34]

7. 2. 인드라 사바 (제32굴)
인다라 사바(제32굴)는 9세기에 굴착된 이중 구조의 자이나교 석굴로, 안뜰에는 일체식 사당이 있다. 19세기 역사가들은 자이나교 야크샤를 인다라의 대체 이미지로 오인하여 "인다라 사바"라는 이름이 붙었다.[40] 인드라는 세 주요 종교 모두에서 중요한 신이지만, 자이나교에서는 특히 첫 번째 자이나교 천국인 ''사우다르마칼파''의 왕이자 천상의 회의장 주 건축가로 더욱 중요하다.
인다라 사바 자이나교 사원은 자이나교 신도들이 내부에서 활발하게 예배를 드렸다는 증거가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특히, 예술 작품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을 수 있는 상층에서 의례가 거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로라의 많은 석굴과 마찬가지로, 천장에는 연꽃과 같은 수많은 조각이 사원을 장식하고 있다. 안뜰 뒤쪽에 굴착된 사당 상층에는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망고 나무 아래 사자 위에 앉아 있는 Neminath의 yakshini인 Ambika의 이미지가 있다. 사당 중앙에는 자이나교의 4명의 티르탄카라인 Rshibha(1번째), Neminatha(22번째), Parsvanatha(23번째) 및 Mahavira(24번째)가 방위를 따라 정렬되어 신자들의 예배 장소를 형성하는 ''Sarvatobhadra''가 있다.[40]
제32굴은 '''초타 카일라사나타'''(소 카일라사나타)라고도 불리며, 석굴 정면 뜰에 제16굴과 마찬가지로 외부에 나타난 신전이 있다. 제32굴 석굴 안은 자이나교 신전으로, 천장에는 연꽃 조각이 보인다.
7. 3. 자간나트 사바 (제33굴)
자간나타 사바(Jagannatha Sabha, 제33굴)는 엘로라 석굴에서 두 번째로 큰 자이나교 굴이며, 기둥의 비문에 따르면 9세기에 지어졌다. 이 굴은 2층 구조로, 12개의 거대한 기둥과 코끼리 머리가 현관을 향해 튀어나와 있으며, 모두 하나의 바위에서 조각되었다. 홀 앞에는 두 개의 육중한 사각형 기둥이 있고, 중간 부분에는 4개가 있으며, 내부에는 홈이 파인 기둥이 있는 사각형의 주요 홀이 있고, 모든 기둥은 정교하게 조각된 머리장식, 능선 및 괄호로 장식되어 있다. 주요 조상으로는 자이나교의 마지막 두 티르탕카라인 파르슈바나타와 마하비라가 있다.[41]
자이나교 석굴은 다른 석굴에 비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섬세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일종의 예술 작품이 되었다. 자이나교 석굴 사원은 뜰의 신전과 그것을 둘러싼 충실한 석굴 사원군으로 구성되는데, 이 구성은 현대 자이나교 사원의 특징이 되고 있다.
7. 4. 제34굴

제34굴은 몇몇 비문이 아직 해독되지 않았지만, 역사학자 호세 페레이라에 따르면 서기 800년에서 850년 사이에 새겨졌을 가능성이 높다. 스리 나가바르마의 비문과 같은 다른 비문은 9세기 또는 10세기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51]
이 동굴에는 네 명의 ''차마라'' 시종과 함께 앉아있는 파르슈바나타 지나가 있는데, 그 중 두 명은 파리채를 들고 있으며 지나의 왕좌 뒤에서 솟아오르는 듯하다. 다른 많은 자이나교 조각물과 마찬가지로 이 동굴에서도 지나 근처에서 큰 한 쌍의 ''약샤-약시''가 발견된다. 동굴 뒤편에는 둥근 제물을 담은 그릇을 들고 있는 수염 난 인물이 있는데, 그 모양은 ''핀다''(쌀 경단) 또는 ''라두'' (과자)를 연상시킨다. 이는 자이나교 경건한 예배, 아마도 ''슈라다'' 의식과 관련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동굴의 파르슈바나타는 서 있는 곰테스와라와 짝을 이루며, 뿔피리, 북, 소라, 트럼펫, 심벌즈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들을 묘사한 다른 조각과 함께 있다. 동굴의 특히 주목할 만한 특징은 천장과 옥상에 거대한 연꽃 조각이 새겨져 있다는 점인데, 이는 엘로라의 다른 자이나교 조각물과 힌두교 동굴 25에서만 발견된다. 동굴의 조각이 아닌 연꽃의 배치는 사원이 신성한 장소임을 상징한다.
제34굴(제32굴, 제33굴과 연결되어 있음)에는 아름다운 여신 암비카가 풍성하게 열린 망고 나무 아래에서 사자 위에 앉아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신상이 벽을 채우고 있다.
8. 훼손과 보존
엘로라 석굴은 완성된 후 수 세기 동안 정기적으로 방문객들이 찾던 곳이다. 특히 무역로에서 눈에 띄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9~10세기에는 불교 승려들이 자주 찾았고, 10세기 바그다드 거주민 알마수디는 이곳을 위대한 사원이 있는 인도 순례의 장소로 언급했다. 1352년에는 알라 웃 딘 바흐만 샤가 이곳에서 야영했다는 기록이 있다.[44] 무굴 제국 시대에는 황제 아우랑제브가 가족과 함께 소풍을 즐기던 곳이기도 했다. 아우랑제브의 측근은 사람들이 모든 계절에 이곳을 방문했지만, 특히 우기에 자주 방문했다고 기록했다. 그는 또한 모든 천장과 벽에 새겨진 다양한 이미지들을 언급했지만, 기념물 자체는 황폐한 상태라고 언급했다.[45]
13세기 말에 쓰여진 마라티어 텍스트인 ''릴라차리트라''는 13세기에 엘로라의 활발한 사용이 중단되었다고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슬람 궁정 기록에 따르면, 야다바 왕조의 수도인 데오기리(엘로라에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곳)가 이 기간 동안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고, 1294년에 델리 술탄국에 함락되었다.[46] 엘로라의 자이나교 석굴은 13세기까지 자이나교 방문객과 신자들이 사용했지만, 이 지역이 이슬람 통치 하에 들어간 후 종교 활동은 중단되었다.
엘로라의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기념물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우상들이 훼손되었는데, 이는 15~17세기 이슬람 군대에 의한 우상 파괴의 결과였다.[47] 이러한 파괴는 힌두교와 불교 사원의 이미지가 이슬람교도들에게 모욕감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슬람 술탄국 시대의 무슬림 역사가들은 엘로라의 광범위한 피해와 우상 파괴를 언급했으며, 일부 무슬림들은 이를 "미의 침해"로 비난하기도 했다.[48]
동굴 단지 북동쪽 언덕에는 라슈트라쿠타 시대의 파르스바나트 경의 약 4.88m 바위 조각상이 있는 자이나교 사원이 있다. 이 조각상에는 서기 1234년의 비문이 새겨져 있으며, 잘 보존된 조각상 옆에는 다르네드라와 파드마바티가 있다. 비문은 이 장소를 성지인 차라나 언덕이라고 언급하고 있다.[42] 이곳은 여전히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어 인도 고고학 조사국의 보호를 받지 않는다. 600개의 계단을 올라야 도달할 수 있으며, 마을의 자이나교 구루쿨에서 관리하고 있다.[43]
9. 교통
엘로라는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 아우랑가바드에서 약 30km 떨어진 마을이다. 아우랑가바드는 엘로라 관광의 거점이다. 아우랑가바드는 뭄바이에서 내륙으로 들어간 도시로, 뭄바이에서 열차와 버스가 다수 운행된다. 뭄바이에서 항공편도 하루 4편 정도 운항한다. 아우랑가바드에서 엘로라까지는 버스나 택시로 30~40분 정도 걸리며, 도중에 유명한 다울라타바드 요새 바로 앞을 지나간다.
10. 대중문화 속 엘로라
유명한 벵골 영화 제작자이자 작가인 사티야지트 레이는 1974년 소설 ''카일라세이 켈렌카리''를 썼는데, 이 소설에는 가상의 탐정 펠루다가 등장한다. 소설에서 펠루다는 엘로라 석굴로 가서 카일라사 사원을 포함한 인도 사원의 역사적 유물의 불법 거래와 관련된 밀수 조직을 밝혀낸다. 사티야지트의 아들 산딥 레이는 2007년에 이 소설을 각색하여 같은 이름의 영화로 만들었다.[50]
피셔의 드로잉 룸 스크랩 북, 1832년에는 조지 캐터몰이 제작하고 W. 켈살이 판화한 '엘로라 동굴의 라메드워르의 해골 그룹, 시바와 파르바티의 결혼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이라는 판화가 수록되어 있으며, 레티시아 엘리자베스 랜던의 시적 삽화가 함께 실려 있는데, 이는 시바 푸라나의 번역문을 인용한 것이다.[50] 이 작품은 21번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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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TBS 2008年12月28日放送 エローラ石窟群(参考となる情報は番組中)
http://www.tbs.co.jp[...]
200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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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NHK 夢の美術館 世界の名建築100選
신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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