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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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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장군은 혹독한 겨울 날씨가 전쟁에 미치는 영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를 풍자한 영국 만화에서 유래되었다. 러시아는 혹독한 겨울을 활용하여 여러 차례 외세의 침략을 막아냈으며, 대북방 전쟁,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시베리아 출병, 독소전 등에서 겨울의 추위가 교전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몽골 제국은 한겨울에 러시아를 침공하여 주요 도시를 점령하기도 했다. 겨울은 전술, 물자, 병력 운용에 영향을 미치며, 방어에 유리하고, 보급과 이동을 어렵게 만드는 등 다양한 군사적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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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

2. 어원

러시아에 대한 여러 외국으로부터의 군사 침공은, 동국에서의 겨울의 혹독한 기후로 인해 과거에 여러 번 실패한 역사가 있다.

"동장군"의 어원은, 1812년의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의 프랑스군 패퇴를 영국의 풍자 화가가 GENERAL FROST Shaveing Little BONEY|제너럴 프로스트 셰이빙 리틀 보니eng(프로스트 장군이 작은 보니[나폴레옹의 애칭]를 면도하다)라고 표현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여겨진다.[10] 실제로는, 모스크바 철수는 10월 19일부터 시작되었으며, 이 해의 모스크바에서의 첫 눈은 11월 5일이었다.

3. 동장군과 역사

러시아에 대한 외국의 군사적 침공은 과거 여러 차례 러시아 겨울의 혹독한 기후로 인해 실패한 역사가 있다. 이러한 겨울의 추위를 의인화하여 "동장군"이라고 부른다.

"동장군"이라는 표현의 어원은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당시 프랑스군의 패배를 영국의 한 풍자 화가가 GENERAL FROST Shaveing Little BONEY|제너럴 프로스트가 작은 보니(나폴레옹)를 면도하다영어라고 묘사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10] 하지만 실제 나폴레옹 군대의 모스크바 철수는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10월에 시작되었다.

러시아의 겨울 전쟁을 연구한 작가 앨런 F. 추(Allen F. Chew)는 "동장군"이 나폴레옹의 러시아 제국 침공과 히틀러소련 침공 모두에서 군사적 실패의 '상당한 기여 요인'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는 두 침공 모두에서 해당 군대가 겨울이 오기 전부터 이미 보급 부족, 질병, 탈영, 전투 사상자 등으로 상당한 손실을 겪고 있었다고 지적한다.[6]

역사적으로 러시아(러시아 제국 및 소비에트 연방 시대 포함)는 혹독한 기후를 이용하여 여러 차례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 도움을 받았다. 18세기 대북방 전쟁에서의 스웨덴,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중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의 프랑스, 20세기 러시아 내전 시기 시베리아 출병에서의 연합군(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 중화민국),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소전에서의 독일 군대는 모두 러시아의 겨울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격퇴되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13세기에 침공한 몽골 제국은 한겨울에 침공하여 동장군의 영향을 덜 받았고, 주요 도시들을 점령했다. 또한 대북방 전쟁 초기에는 스웨덴군이 겨울 전투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몽골인이나 스웨덴인이 동장군을 상대적으로 덜 두려워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고향인 몽골 고원이나 북유럽의 겨울 역시 매우 추웠기 때문이다.

3. 1. 스웨덴의 침공 (1708년)

대북방 전쟁 당시 스웨덴칼 12세는 1708년 1월 1일 비스툴라강을 건너 러시아 제국을 침공했다. 이에 맞서 러시아군은 초토화 전술을 펼치며 후퇴했다. 그해 겨울, 즉 1708년에서 1709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은 18세기 동안 가장 혹독한 추위를 기록했으며, 이는 1709년 대혹한기로 알려져 있다. 당시 추위는 매우 심각하여 베네치아의 항구가 얼어붙을 정도였다. 이러한 극한의 추위 속에서 칼 12세가 이끌던 35,000명의 스웨덴 병력은 큰 타격을 입었고, 1709년 봄에는 불과 19,000명만이 남게 되었다. 결국 1709년 6월 말, 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에 위치했던 코사크 헤트만국 영토에서 벌어진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군은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으며, 이는 강력했던 스웨덴 제국의 몰락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3. 2. 프랑스의 침공 (18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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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동안 나폴레옹 군대의 야간 야영 모습.


나폴레옹의 대육군프랑스어 약 61만 명은 1812년 6월 24일, 초여름에 러시아 원정을 시작하여 현재의 벨라루스 영토를 지나 모스크바로 향했다. 러시아군은 프랑스군 앞에서 후퇴하며 청야 전술을 사용해 농작물과 마을을 불태워 적이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침공 초기부터 보급 부족, 질병, 탈영 등으로 인해 큰 손실을 입었다. 작가 앨런 F. 추(Allen F. Chew)는 "동장군"이 나폴레옹 군대의 실패에 '상당한 기여 요인'이었지만, 겨울이 오기 전인 침공 첫 8주 동안 이미 병력의 절반이 손실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손실은 보급 기지 주둔, 질병, 탈영, 소규모 교전 등으로 발생했다.[6]

1812년 9월 7일, 모스크바에서 약 110km 떨어진 보로디노 전투는 러시아 원정 중 유일한 대규모 교전이었다. 나폴레옹은 약 13만 5천 명의 병력으로 전투에 임했으나, 최소 3만 명의 사상자를 내며 피로스의 승리를 거두었다.[6] 이후 모스크바를 점령했지만, 도시의 대부분은 화재로 파괴된 상태였다. 결국 나폴레옹 군대는 10월 19일, 첫 심한 추위가 오고 11월 5일 첫눈이 내리기 전에 모스크바에서 철수를 시작했다.[6] 철수 과정에서 군대는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러시아군의 계속된 공격으로 인해 더욱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여러 자료는 겨울 날씨가 나폴레옹의 패배와 철수에 기여한 여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분석한다.[2][2][6] 리벤(Lieven)은 특히 겨울철 식량과 말 먹이 확보의 어려움을 중요한 패배 요인으로 지적했다.[7]

한편, 러시아 제국의 군인이었던 데니스 다비도프는 프랑스군의 패배가 전적으로 겨울 날씨 때문이라는 주장에 반박하며, 프랑스군이 비교적 온화한 날씨 속 전투에서도 많은 사상자를 냈음을 지적하고 패배의 다른 원인들을 제시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외국 기록들을 근거로 삼았다.[5]

"동장군"이라는 표현은 1812년 프랑스군의 패배를 묘사한 영국의 풍자 만화 'GENERAL FROST Shaveing Little BONEY영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0]

3. 3. 연합군의 개입 (1918-1919년)

러시아 내전에서의 연합국 개입 중 하나인 북러시아 원정 당시, 아르한겔스크 현에서는 연합군과 볼셰비키붉은 군대 양측 모두 겨울 전쟁의 원리를 알고 있었거나 빠르게 습득하여 이를 활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양측 모두 자원 부족에 시달렸고, 때로는 준비 부족으로 심각한 결과를 겪기도 했다. 앨런 F. 추는 겨울이 이 교전에서 어느 한쪽에게 결정적인 이점을 제공하지는 못했다고 결론지었다.[6]

3. 4. 독일의 침공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 국방군은 소련 침공 작전인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했으나, 군대의 이동 지연으로 인해 겨울 제복과 같은 필요한 물품이 부족한 상황에 직면했다.[8] 히틀러와 독일군 참모본부는 1941년 겨울까지 전쟁이 길어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따뜻한 옷을 충분히 보급하거나 차량과 윤활유를 혹한에 대비하는 등 겨울 작전에 대한 적절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8]

작가 앨런 F. 추는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 이른바 "동장군"이 히틀러의 소련 침공 실패에 '상당한 기여 요인'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는 독일 국방군이 1941년 11월,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심각한 상태였다고 지적한다. 침공 초기 5개월 동안 독일군은 평균 병력 3,200,000명 중 약 23%에 달하는 734,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으며, 보급품 부족 문제도 겪고 있었다.[6]

1941년 11월 27일, 독일군 병참총감이었던 에두아르트 바그너는 "우리는 인력과 물자 모두에서 자원 부족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깊은 겨울의 위험에 직면하려 한다"고 보고하며 당시 독일군이 처한 어려움을 인정했다.[6] 흥미롭게도 1941년의 겨울은 이례적으로 일찍 찾아왔는데, 이는 가을의 진흙탕 시기인 ''라스푸티차''를 단축시켜 11월 초 독일군의 물류 상황을 일시적으로 개선하는 예상치 못한 효과를 낳기도 했다. 당시 날씨는 아직 약간 쌀쌀한 정도였다.[6]

결론적으로, 독일군의 미흡한 준비 상태와 예상보다 길어진 전쟁 기간, 그리고 결국 닥쳐온 혹독한 겨울 날씨는 바르바로사 작전 실패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3. 5. 몽골의 침공 (13세기)

13세기러시아를 침공한 몽골 제국에게는 혹한의 날씨가 큰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몽골군은 타이가 지대가 얼어붙어 이동이 용이해지는 한겨울을 택해 침공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의 자연적 방어선 역할을 하던 혹독한 겨울 날씨, 이른바 동장군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모스크바나 키예프 같은 주요 도시들이 몽골군에게 점령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몽골인들이 이처럼 겨울 추위에 강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살던 몽골 고원의 겨울이 러시아 이상으로 매우 추웠기 때문에 추위에 익숙하고 잘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이다.

4. 겨울이 전쟁에 미치는 영향

러시아인들은 세 번째 모스크바-리투아니아 전쟁 (1507–1508)에서 스키를 사용했다.


혹독한 겨울 날씨, 이른바 '동장군'은 역사적으로 전쟁의 승패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러시아와 관련된 전쟁에서 겨울은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작가 앨런 F. 추는 그의 연구에서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과 히틀러소련 침공 실패 모두에 겨울 날씨가 '상당한 기여 요인'이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나폴레옹의 군대나 히틀러의 국방군 모두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보급 부족, 질병, 탈영, 전투 사상자 발생 등으로 상당한 손실을 입고 있었다는 점도 지적했다.[6]

러시아(러시아 제국 및 소비에트 연방 시기 포함)는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자국의 혹독한 겨울 기후를 이용하여 침략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18세기 대북방 전쟁에서는 칼 12세가 이끄는 스웨덴군을 상대로, 19세기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는 나폴레옹이 이끈 프랑스군을 상대로 겨울의 이점을 활용했다. 20세기에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시베리아 출병에 개입한 연합군(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 중화민국)과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소전쟁에서 히틀러나치 독일군에게 큰 타격을 주며 이들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겨울이 항상 러시아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략 당시, 몽골군은 오히려 타이가 지대가 얼어붙는 한겨울을 이용하여 기동력을 확보하고 모스크바와 키예프 등 러시아의 주요 도시들을 점령했다. 이는 한겨울의 몽골 고원이 러시아 못지않게 혹독하여 몽골인들이 추위에 매우 익숙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또한 대북방 전쟁 초기 겨울 전투에서는 오히려 러시아군이 스웨덴군에게 크게 패하기도 했다. 결국 러시아군은 겨울과 봄에 걸친 소모전을 통해 스웨덴군의 전력을 약화시킨 후 여름에 공세를 펼쳐 승리할 수 있었다. 이처럼 몽골인이나 스웨덴인(그리고 그들의 말)이 동장군을 상대적으로 덜 두려워했던 이유는 그들의 본거지인 몽골 고원이나 북유럽의 겨울 역시 러시아만큼이나 혹독했기 때문이다.

겨울의 영향은 러시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해군 기동부대 사령관이었던 샌디 우드워드 제독은 남대서양의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전쟁이 끝나자 안도하며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그때 처음으로 동장군의 도래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열흘 전에 여기에 있었다면, 하늘에 공군을 투입할 기회가 없는 고지대에 참호를 파고 있던 아르헨티나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우리를 끝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9] 이는 혹한의 날씨가 전쟁 수행 능력과 병력 생존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4. 1. 전술

1981년 앨런 F. 츄(Allen F. Chew)의 논문 ''겨울에 러시아와 싸우기: 세 가지 사례 연구''는 1918-19년 겨울 북러시아 연합군 개입, 소련 제44기계화소총사단의 궤멸,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소련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겨울 전쟁의 주요 요소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6]

  • '''전술''': 겨울철에는 방어 진지가 공격 측에 비해 보온과 보호 측면에서 매우 유리하다. 눈은 기동성과 물류 지원을 크게 제약하므로, 넓은 궤도를 가진 차량이나 썰매를 사용하려면 길을 치우거나 다져야 한다. 깊은 눈 속에서 보병이 이동하려면 피로를 줄이기 위해 스키나 설피가 필수적이다. 소리는 눈 위에서 잘 전달되어 기습 효과를 감소시킨다. 얼어붙은 땅에 참호나 은신처를 팔 때는 폭발물이 유용하다. 야전 부엌이나 야영지를 공격하면 적의 식량과 피난처를 빼앗을 수 있다. 부상병이 추위 속에서 생존하려면 신속한 후방 후송이 매우 중요하다.
  • '''물자''': 무기와 차량은 낮은 온도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특수 윤활유가 필요하다. 지뢰는 깊은 눈이 신관을 막거나 기폭 장치 위에 얼음 다리를 형성할 수 있어 겨울철에는 신뢰도가 떨어진다.
  • '''병력''': 체온을 유지하고 동상과 같은 추위로 인한 부상을 피하려면 적절한 겨울 의복이 필수적이다. 병력의 효율성과 생존은 확보된 피난처를 활용하거나 휴대용 피난처를 제공하는 것에 달려있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해군 기동부대 사령관이었던 샌디 우드워드 제독은 남대서양의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을 치르면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그때 처음으로 동장군의 도래를 생각했다. 그가 열흘만 일찍 왔더라면, 하늘의 지원 없이 고지대에 참호를 파고 있던 아르헨티나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우리를 끝장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9]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혹독한 겨울 기후를 이용하여 여러 차례 외세의 침략을 막아냈다. 18세기 대북방 전쟁에서는 칼 12세가 이끄는 스웨덴군에게,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중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는 나폴레옹프랑스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20세기에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시베리아 출병에 개입한 연합군(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 중화민국)과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소전쟁에서 히틀러나치 독일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기며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겨울 날씨가 항상 러시아에게 유리했던 것은 아니다.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공 당시, 몽골군은 오히려 타이가 지대가 얼어붙는 한겨울을 이용해 침공하여 모스크바와 키예프 등 주요 도시를 점령했다. 이는 한겨울의 몽골 고원이 러시아보다 더 혹독한 추위를 보여 몽골인들이 추위에 매우 익숙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대북방 전쟁 초기 겨울 전투에서는 오히려 러시아군이 스웨덴군에게 크게 패배하기도 했다. 결국 러시아군은 겨울과 봄에 걸친 공성전을 버텨내고 지친 스웨덴군을 상대로 여름에 공세를 펼쳐 승리할 수 있었다.

몽골인이나 스웨덴인(그리고 그들의 말)이 동장군을 상대적으로 덜 두려워했던 이유는 그들의 본거지인 몽골 고원이나 북유럽의 겨울 역시 러시아 못지않게 혹독했기 때문이다.

4. 2. 물자

무기군용 차량은 낮은 온도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특수한 윤활유가 필요하다. 지뢰는 깊은 눈이 퓨즈를 완충시키거나 기폭 장치 위에 얼음 다리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신뢰성이 떨어진다.[6]

4. 3. 병력

체온을 유지하고 동상과 같은 추위로 인한 부상을 피하려면 적절한 겨울 의류가 필요하다.[6] 병력의 효율성과 생존을 위해서는 사용 가능한 피난처를 활용하거나 휴대용 피난처를 제공해야 한다.[6]

혹한의 기후에 익숙하지 않은 군대는 겨울철 전투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 역사적으로 러시아대북방 전쟁, 1812년 러시아 원정, 독소전쟁 등에서 자국의 혹독한 겨울 날씨를 이용하여 침략군에게 막대한 병력 손실을 입힌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추위에 익숙하거나 대비가 된 병력에게는 겨울이 반드시 결정적인 약점은 아니다. 13세기 몽골 제국침공 당시, 몽골 고원의 혹독한 겨울에 단련된 몽골군은 한겨울에 러시아를 침공하여 모스크바나 키예프 등 주요 도시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몽골군이 러시아의 추위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웨덴군 역시 북유럽의 추위에 익숙하여 대북방 전쟁 초기에는 겨울 전투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기도 했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해군 기동부대 사령관이었던 샌디 우드워드는 남대서양의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이 끝나 안도하며, 만약 겨울 장군(Winter General, 혹한)이 열흘만 일찍 도착했다면 고지대 참호 속 아르헨티나군은 물론 영국군에게도 치명적이었을 것이라고 술회했다.[9] 이는 혹한이 병력의 생존과 전투 수행 능력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보여준다.

5. 한국의 관점

동장군은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의인화하여 부르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를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다' 등으로 표현하며, 자연의 위력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대비의 필요성을 나타냈다. 전통 농경 사회에서는 겨울 추위가 병충해를 줄여 다음 해 농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인식도 있었지만, 동시에 혹한은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큰 시련이기도 했다.

현대에 이르러 동장군으로 표현되는 혹한은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난방 수요 급증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량 증가와 에너지 가격 부담, 수도관 동파와 같은 기반 시설 피해, 도로 결빙으로 인한 교통 사고 위험 증가 등이 대표적인 문제로 꼽힌다. 특히 에너지 빈곤층과 같이 추위에 취약한 계층에게 겨울철 혹한은 건강과 생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작용하며,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체계적인 지원 방안 마련이 중요한 과제로 여겨진다. 최근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겨울철 이상 한파의 발생 빈도나 강도가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경향을 보이면서, 혹한에 대한 사회적 대응 능력 강화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참조

[1] 서적 Энциклопедический словарь крылатых слов и выражений Локид-Пресс (Lokid Press)
[2] 서적 A General History of the Civil War: The Southern Point of View https://books.google[...] Pelican Publishing 2008
[3] 서적 New York Times Book of World War II 1939–1945: The Coverage from the Battlefield to the Home Front https://books.google[...] Hachette Books 2013-11-05
[4] 서적 The Northern Wars, 1558–1721 Pearson Education Limited
[5] 서적 Мороз ли истребил французскую армию в 1812 году? (Was it Frost that Devastated the French Army in 1812?) https://books.google[...] IQ Publishing Solutions LLC 1835
[6] 간행물 Fighting the Russians in Winter: Three Case Studies https://www.armyupre[...] Combat Studies Institute, U.S. Army Command and General Staff College 1981-12
[7] 서적 Russia Against Napoleon: The True Story of the Campaigns of War and Peace https://books.google[...] Penguin 2010
[8] 서적 The German Wars: A Concise History, 1859–1945 Zenith Press
[9] 서적 One Hundred Days: The Memoirs of the Falklands Battle Group Commander Naval Institute Press 1982
[10] 웹사이트 레ファレンス事例集 - ナポレオンのロシア撤退を"General Frost(冬将軍)に負けた"と表現したイギリスの記者名を知りたい http://www.lib.tmu.a[...]
[11] 뉴스 http://www.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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