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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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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쥐는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 주로 불 속에서 살며 불에 타지 않는 털을 가진 쥐의 일종으로 묘사된다. 불쥐는 진나라 이후의 지리서인 《신이경》에 처음 등장하며, 불쥐의 털로 짠 천은 불로 세탁할 수 있다고 묘사되어, 불에 타지 않는 성질을 가진 석면(아스베스토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불쥐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의 《다케토리 이야기》 등 다양한 문헌에 영향을 미쳤으며, 살라맨더 전설과 비교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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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쥐
전설/신화
종류상상 속 동물
기원중국
특징불에 타지 않는 털을 가진 쥐, 불을 뿜거나 불 속에서 산다고도 함
상세 정보
불쥐 (화서, 火鼠)중국의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 속의 동물
외형털이 불에 타지 않는 쥐
서식지곤륜산
염화국
적염산
습성불을 뿜음
불 속에서 삶
털의 용도화완포(불에 타지 않는 옷)의 재료
관련 고사장안소식
불쥐의 털을 얻는 방법쥐를 잡아서 재에 묻으면 털이 타지 않고 재만 묻음
박물지 기록남해에는 화서가 있는데, 불에 태워도 죽지 않는다. 털을 뽑아 옷을 지으면, 더러워지면 불에 태워 깨끗하게 한다.
등장 작품
소설김만중, 구운몽
홍만종, 몽유편
영화전우치 (영화)

2. 원전

불쥐에 해당하는 살라맨더에 대한 전승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존재했다.[8] 로마 시대에는 석면이 알려져 있었지만, 대 플리니우스(서기 79년 사망)는 이를 동물 털이 아닌 "아마포"나 "식물"로 여겼다. 서양에서도 살라맨더에서 석면을 얻을 수 있다는 전승이 나타났지만, 이는 13세기경으로 비교적 늦은 시기의 일이다. 예를 들어, 알베르투스 마그누스(1280년 사망)는 불에 타지 않는 천을 "pluma salamandri|살라맨더의 깃털la"이라고 기록했다.

독일계 미국인 학자 베르톨트 라우퍼는 살라맨더와 석면의 결합이 오래되었으며,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살라맨더 전승이 한나라 이후 중국에 전해져 불쥐 전설이 되었다고 주장했다.[8] 그러나 영국 학자 조지프 니덤은 이러한 서양 기원설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살라맨더는 도마뱀과 같은 작은 동물로 묘사되었으나, 이 전승이 중동으로 넘어가면서 페르시아나 아랍의 문헌에서는 "samandal|사만달ar"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때로는 새로(불사조), 때로는 쥐로 묘사되었다. 이 사만달의 털이나 깃털로 만든 직물은 불에 넣으면 깨끗해지는 성질을 지녔다고 여겨졌다.[8] 이러한 중동의 묘사가 중세 유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8]

이후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석면을 "살라만돌(salamander)"이라 부르면서도, 원나라에서 직접 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것이 동물의 털이 아닌 채굴되는 광물임을 명확히 밝히고 동물 유래설을 부정했다.

한편, 중국의 고대 문헌인 『주서』나 『열자』에는 주나라의 목왕에게 서융이 화완포(火浣布, 불에 빨아도 타지 않는 직물)를 헌상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라우퍼 등은 후대의 창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11] 화완포에 대한 비교적 신뢰할 만한 초기 기록은 3세기 어환의 『위략』 등에 나타나는데, 화완포의 명산지로 언급된 대진국로마 제국 치하의 동방 지역으로 해석하여 서쪽에서 중국으로 전래되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11] 그러나 『삼국지』 「위지」에 기록된 위나라 조방 시대(경초 3년, 239년) "서역"에서의 "화포(火布)" 조공 기록에서 '서역'이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불분명하다.

플리니우스가 석면을 식물성으로 본 것처럼, 중국 문헌에서도 『수신기』는 화완포가 초목에서 유래하지 않는다고 단정했지만, 『포박자』나 『본초강목』 등에서는 쥐의 털 외에 식물도 재료가 될 수 있다는 다른 설명을 제시하기도 한다.

2. 1. 중국 문헌

진나라 시대 이후의 지리서로 알려진 『신이경』[1]에 따르면, 남쪽의 화산(火山)에는 불진목(不盡木)이라는 나무가 자라는데, 이 나무는 밤낮으로 불타고 있으며 바람이나 비에도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불 속에는 불쥐가 살고 있는데, 무게는 백 근(약 25kg) 또는 천 근(약 250kg)이고, 털 길이는 2척(약 50cm) 정도로 비단실처럼 가늘고 흰 털이라고 묘사된다. 이 쥐에게 물을 부으면 죽으며, 그 털로 짠 천은 오염되어도 불에 넣으면 깨끗해진다고 한다.[2][1]

수신기』에서는 이 화산을 곤륜의 "염화지산"(炎火之山)과 동일시하며, 이 산에서는 풀이나 나무가 아닌 짐승의 털에서 화완포(火浣布, 불에 빨아도 타지 않는 직물)가 나온다고 하였다. 『오록』(吳錄)에 따르면, 불쥐는 일남군(현재의 베트남 중북부 지역)에 서식했다고 한다.

『십주기』(十洲記)의 "염주"(炎洲) 항목에서는 불쥐 대신 "화광수"(火光獸)라는 생물이 등장하는데, 쥐와 비슷한 모습과 크기에 털 길이는 3~4치 정도라고 기록되어 있다.[3]

동진갈홍이 쓴 『포박자』에는 남해의 소구(蕭丘)라는 곳이 언급되는데, 이곳의 불은 봄에 일어나 가을에 꺼지며 식물도 타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에는 무게가 수 근, 털 길이가 3치인 백서(白鼠)가 살고 있으며, 이 산의 꽃(목화), 나무껍질, 쥐털 세 가지로 화완포를 만들 수 있다고 전한다.[4][5]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불쥐의 크기는 과장된 표현을 감안하더라도 작게는 수 근에서 크게는 천 근(250kg)에 달하는 등 다양하게 묘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제 시대에는 사국(史國, 현재 우즈베키스탄 샤흐리사브즈 부근의 소그드 도시 국가)에서 온 사신들이 "불쥐 털"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수서』「서역전」에 남아있다.

10세기 중반 일본의 사전인 『화명유취초』 권18 "모군류"(毛群類)의 "불쥐" 항목에는 일본식 독음인 '히네즈미'(比禰須三)가 기록되어 있으며, 『신이경』을 인용하여 불쥐 털로 짠 천은 더러워져도 불에 넣으면 깨끗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2. 2. 일본 문헌

일본의 고전 문학 『다케토리 이야기』에는 카구야히메가 구혼자 중 한 명인 아베노 미누시에게 내는 어려운 과제 중 하나로 "불쥐의 털옷(火鼠の裘)"[7]이 등장한다.

에도 시대의 국학자 다나카 오히데는 자신의 주석서에서 이 '불쥐의 털옷'을 중국 한나라 시대의 기록에 나오는 '화환포(火浣布)'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대의 『신기경(神異經)』이나 『위지(魏志)』, 『수경주』 등의 기록을 인용했다。

또한, 헤이안 시대의 소설 『겐지 이야기』의 「에아와세」 권에도 『다케토리 이야기』의 '불쥐의 털옷' 이야기를 그린 그림 두루마리가 등장한다. 이미 무로마치 시대의 주석서인 『카카이쇼』에서도 『신기경』이나 『해내십주기』에 보이는 화환포에 대한 설명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다케토리 이야기』에서 요구한 것은 '털옷(皮衣)', 즉 모피였기 때문에, 중국 기록에 보이는 직물인 '화환포'와는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아베노 미누시가 구해 온 가짜 털옷은 금색과 청색이 섞인 빛깔이었지만, 중국 기록 속 불쥐는 흰색으로 묘사된다。 『다케토리 이야기』 이야기 속에서 털옷을 찾아 나선 상인에 따르면, 이 털옷은 천축(인도)의 고승이 전해준 물건이라고 한다.

불쥐와 관련된 '불완목(不灰木)'이라는 용어는 신화 사전 등에서 '불회목(不灰木)'의 동의어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불쥐의 서식지라기보다는 식물처럼 '목(木)'이라는 이름이 붙은 광물성 석면 원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불회목'에 대해서는 명나라 시대의 약학서 『본초강목』 제9권 「석부(石部)」에 항목이 실려있다. 다만 여기서는 직물로서의 용도는 언급되지 않는다。 송나라 시대의 학자 소송이 인용한 설에 따르면, 불회목은 상당군의 택주나 노주에서 나는 돌이라고 한다. 색깔은 희고 썩은 나무와 같지만, 불에 태워도 타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본초강목』의 편찬자인 이시진은 불회목에 돌과 나무 두 종류가 있다고 보았다. 돌 종류는 단단하고 무거우며, 석뇌유(나프타)에 담가 종이에 싸서 불을 붙이면 밤새도록 타지 않고 재도 생기지 않는 등불이 된다고 설명했다。

나무 종류에 대해서는 복심(伏深)의 『제지기(斉地記)』를 인용하여, "동무성(東武城)"(현재의 산둥성 가오미 시 부근으로 추정)에서 나며 "승화목(勝火木)"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고 기록했다. 또한 『태평환우기』를 인용하여 불회목이 교주 (후의 밀주)에서 생산되며, 띳장(띠풀로 만든 물건)처럼 생겨 주형으로 사용된다고 하였다. 부들과 비슷한 잎이 달려 있어, 이를 묶어 횃불로 만들면 "만년화파(萬年火杷)"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시진이 살던 시대에도 "만년화파"라는 이름으로 팔리던 물건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풀 묶음에 송진 등을 넣은 것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험해보니 하룻밤을 태워도 1~2치(약 3cm~6cm)밖에 타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3. 근세

일본에도 시대 백과사전 『화한삼재도회』에서는 중국의 『본초강목』을 인용하여 불쥐와 그 털로 짠 화환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불쥐의 털로 짠 화환포는 불에 타지 않고 오히려 불로 세탁할 수 있는 특별한 이다. 더러워지면 불에 넣어 흔들기만 해도 때가 빠져나가 눈처럼 하얗게 된다고 전해진다(『십주기』 등).[3][10]

이 화환포는 사실 광물섬유석면으로 짠 천이다.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히라가 겐나이가 일본산 석면으로 화환포를 만들려고 시도한 일화가 유명하다.

중국의 고대 문헌인 『주서』나 『열자』에는 주나라의 목왕에게 서융이 화환포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학자 라우퍼는 이 기록들이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석면이 서양에서 중국으로 전래되었다고 주장했다.[11] 반면, 조지프 니덤과 같은 후대 학자들은 라우퍼의 주장에 회의적이며, 주나라 시대의 기록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 (기원전 287년 사망)가 불 속에 사는 살라만다에 대해 기록했으며, 다른 저작에서는 불에 타지 않는 광물(일설에는 석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니덤에 따르면 기원전 4세기경 테오프라스토스나 동시대 중국 춘추 시대 월나라의 신하 모두 석면에 대한 명확한 지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대 로마 시대의 스트라본 (기원전 24년 사망)이나 대 플리니우스의 저술에는 석면(불연포)에 대한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어, 서양에서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석면이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환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는 3세기 어환의 『위략』인데, 여기서는 화환포의 명산지로 대진국(로마 제국 치하의 동방 지역)을 언급한다. 이를 근거로 라우퍼는 화환포가 서쪽에서 교역을 통해 중국으로 전해졌다고 주장했다.[11]삼국지』 "위지"에는 위나라 조방 황제 때(경초 3년, 239년) 서역에서 '화포(火布)'를 조공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 '서역'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불분명하며, 로마 제국인지 중앙아시아 지역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위나라 초대 황제 문제는 화포의 존재를 의심하여 그의 저서 『전론』에 기록했지만, 2대 황제 명제 때 실제로 화포가 외국에서 조공되자 아버지의 글이 새겨진 비석에서 해당 부분을 깎아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후 『진서』에는 부견(385년 사망)이 천축(인도의 굽타 왕조)에서 화환포를 헌상받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남북조 시대의 『송서』에는 대명 연간(457–464)에 소그디아나에서 온 사신이 화환포와 한혈마 등을 헌상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3. 1. 본초강목

일본에도 시대 백과사전인 『화한삼재도회』는 중국의 『본초강목』을 인용하여 불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불쥐는 중국 서역 및 남해의 화주(火州, 불의 섬)에 있는 산의 들불 속에서 서식하며, 이 불은 봄과 여름에는 타오르고 가을과 겨울에는 꺼진다고 한다.

명나라 시대 이시진이 편찬한 원전 『본초강목』에는 이시진 본인의 짧은 설명이 실려 있다. 그는 다른 문헌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갈홍의 『포박자』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시진은 불쥐가 "서역과 남해의 화주"에서 나온다고 기록했다.

이 '화주'의 지리적 위치에 대한 후대의 연구가 있다. "남해의 화주"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화산 지형 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서역의 화주"는 위구르 지역의 고창(카라호자)에 해당한다는 해석이 있다. 이는 마르코 폴로석면 채굴을 목격했다고 기록한 '칭긴타라스 주'를 헨리 율이 고창으로 비정한 것과 일치하는 견해이다.[6]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화환포(불에 타지 않는 천)가 불쥐 서식지의 동물 털이나 초목의 껍질 섬유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포박자』의 내용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시진은 화환포의 재료가 되는 "불회목(不灰木)"을 설명할 때는 이를 식물성 재료가 아닌 석면과 같은 광물성 재료, 즉 석재류로 분류하였다. 이는 당시에도 화환포의 재료가 광물이라는 인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4. 다케토리 이야기

일본의 설화 문학인 『다케토리 이야기』에는 주인공 카구야히메가 구혼자 중 한 명인 아베노 미누시에게 난제로 "불쥐의 털옷(火鼠の裘)"을 가져오도록 요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7].

에도 시대의 국학자 다나카 오히데는 그의 주석서 『다케토리 오키나 이야기 해(竹取翁物語解)』에서 이 '불쥐의 털옷'을 중국 고문헌에 등장하는 불에 타지 않는 직물인 "화환포(火浣布)"와 동일시하며, 한(漢)대의 『신기경(神異經)』이나 『위지(魏志)』, 『수경주』 등의 기록을 인용했다.

하지만 『다케토리 이야기』에서 요구된 것은 '털옷(皮衣)', 즉 모피이지, 중국 문헌에 보이는 '화환포', 즉 불로 정련한 직물과는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아베노 미누시가 속아서 가져온 가짜 털옷은 금색과 청색이 섞인 빛깔이었지만, 중국 문헌 속 불쥐는 흰색으로 묘사된다. 이야기 속에서 아베노 미누시에게 가짜 털옷을 찾아준 상인에 따르면, 이 털옷은 천축(인도)의 고승이 전해준 물건이라고 한다.

불쥐와 관련하여 '불진목(不尽木 또는 不燼木)'이라는 것이 있는데, 신화 사전에서는 이것이 '불회목(不灰木)'의 동의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는 불쥐의 서식지라기보다는, '목(木)'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식물보다는 광물성 석면 원료에 가까운 것으로 묘사된다.

'불회목'에 대해서는 명나라 때의 본초학 서적인 『본초강목』 제9권 "석부(石部)"에 항목이 실려 있다. 송나라 때의 학자 소송이 인용한 설에 따르면, 상당군(上黨郡)의 택주(澤州)나 노주(潞州)에서 생산되는 돌의 일종이다. 색깔은 희고 썩은 나무처럼 생겼지만, 불에 태워도 타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본초강목』의 편저자인 이시진은 불회목에는 돌과 나무의 두 종류가 있다고 보았다. 돌 종류는 단단하고 무거우며, 석뇌유(나프타)에 담가 종이에 싸서 불을 붙이면 밤새도록 타면서도 재가 생기지 않는 등불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나무 종류는 복심(伏深)의 『제지기(斉地記)』에 따르면 "동무성(東武城)"(현재의 산둥성 가오미 부근)에서 생산되며 "승화목(勝火木)"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또한 『태평환우기』에 따르면 불회목은 교주(胶州, 후의 밀주(密州))에서 생산되며, 띠풀처럼 생겨 주형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부들과 비슷한 잎이 달려 있어, 이를 묶어 횃불로 만들어 "만년 화파(万年火把)"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시진의 시대에 실제로 팔리던 "만년 화파"는 풀 묶음에 송진 등을 넣은 것에 불과했지만, 시험해보니 실제로 하룻밤을 태워도 한두 치 정도밖에 타지 않았다고 한다.

4. 1. 겐지 이야기

『겐지 이야기』의 에아와세 권에는 『다케토리 이야기』에 나오는 '불쥐의 털옷' 이야기를 그린 그림 두루마리가 등장한다. 이미 무로마치 시대의 주석서인 『카카이쇼』에서는 이 그림 두루마리를 설명하면서, 중국 고문헌인 신기경(神異經)이나 『해내십주기』에 기록된 화환포(火浣布, 불에 타지 않는 천)에 대한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5. 살라맨더와의 비교

동양의 불쥐 전설과 서양의 살라맨더 전설은 모두 불 속에서 살거나 불에 타지 않는 동물을 묘사하며, 이 동물에게서 얻는 물질(털, 깃털)로 불에 타지 않는 천(화완포)을 만들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는 두 문화권에서 석면이라는 실제 물질에 대한 신비화된 설명이 동물 전설과 결합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8]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살라맨더는 주로 도마뱀과 같은 작은 동물로 묘사되었으나[8], 중동 지역으로 전승되면서 '사만달'(الـسـمـنـدلar)이라는 이름으로 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8] 서양에서 살라맨더와 석면이 본격적으로 연결된 것은 13세기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기록 등 비교적 후대의 일이다. 반면 동양의 불쥐는 처음부터 쥐의 형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

두 전설 모두 시간이 흐르면서 석면의 정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변화를 겪었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석면을 '살라만돌'이라 부르면서도, 이것이 동물이 아닌 광물임을 명확히 밝혀 오랜 속설을 부정하기도 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서양의 살라맨더 전설이 동양의 불쥐 전설에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으나([8] 베르톨트 라우퍼 주장, 조지프 니덤 반박), 두 전설은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발전하며 유사한 모티프를 공유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5. 1. 살라맨더 전설

불쥐에 해당하는 살라맨더에 대한 전승은 고대 그리스고대 로마 시대부터 존재했다.[8] 로마 시대에는 석면이 알려져 있었으나, 대 플리니우스(서기 79년 사망)는 이를 "아마포"나 식물의 일종으로 여겼고, 동물의 털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서양에서도 살라맨더에서 석면을 얻을 수 있다는 전승이 나중에 발생(또는 전파)되었는데, 이는 비교적 늦은 시기인 13세기경 문헌에서 확인된다.

베르톨트 라우퍼는 살라맨더와 석면의 결합이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에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한나라 이후 중국에 불쥐 전설로 전해졌다고 주장했다.[8] 그러나 조지프 니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묘사된 살라맨더는 도마뱀과 같은 작은 동물이었으나, 근동으로 전해지면서 페르시아아랍의 문헌에서는 "사만달"(samandal|사만달ar; الـسـمـنـدلar)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때로는 불사조와 같은 새로, 때로는 로 여겨졌다. 페르시아의 자카리야 알 카즈위니(1283년 사망)는 쥐로, 알 다미리(1405년 사망)의 『동물의 생애』에서는 새로 묘사했다. 이 새나 쥐로부터 얻은 모직물이나 깃털 등은 불에 던져 넣으면 깨끗해지는 성질을 가졌다고 믿어졌다.[8] 이러한 근동의 묘사가 중세 유럽에 다시 전해졌다는 가설도 존재한다.[8]

전파 경로와 관계없이, 알베르투스 마그누스(1280년 사망)의 저서에는 불에 타지 않는 천을 "살라맨더의 깃털"(pluma salamandrila)이라고 기록했다. 이후 마르코 폴로는 그의 저서 『동방견문록』에서 석면을 "살라만돌"이라고 부르며, 원나라 몽골 제국에서 직접 본 경험을 바탕으로 석면이 실제로는 채굴되는 광물임을 설명하고, 동물의 털이 원료라는 당시의 통념을 부정했다.

5. 2. 불쥐 전설과의 관계

진나라 이후의 지리서로 알려진 『신이경』(『神異經』)에 따르면[1], 남쪽의 화산(火山)은 길이가 40리에 달하며, 밤낮으로 타오르는 불진목(不盡木)이라는 나무가 자란다고 한다. 이 나무의 불은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비에도 약해지지 않으며, 그 불 속에 쥐가 살고 있다고 묘사된다. 이 불쥐는 무게가 백 (약 25kg) 또는 천 근(약 250kg)에 달하며, 털 길이는 2척(약 50cm 미만) 정도로 비단실처럼 가늘고 흰 털을 가졌다고 한다. 물을 부으면 죽기 때문에, 그 털을 모아 천을 짜면 오염되더라도 불에 태우면 다시 깨끗해진다고 전해진다.[1][2]

수신기』(『搜神記』)에서는 곤륜산의 '염화지산'(炎火之山)을 『신이경』의 화산과 동일시하며, 이 산에서는 동식물이 아닌 짐승의 털에서 화완포(火浣布, 불에 빨아도 타지 않는 직물)가 생산된다고 언급한다. 또한 『오록』(『吳錄』)에 따르면 불쥐는 일남군(현재의 베트남 중북부 및 하이난 섬 부근)에 서식했다고 한다.

『십주기』(『十洲記』)의 "염주"(炎洲) 항목에서는 불쥐 자체가 아닌, 쥐와 비슷한 모습과 크기의 "화광수"(火光獸)라는 생물이 등장하며, 털 길이는 3~4치라고 기록되어 있다.[3]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에 따르면, 남해의 소구(蕭丘)라는 곳은 천 리에 달하며, 봄에 불이 일어나 가을에 꺼지는데, 그곳의 식물은 타지 않고 백서(白鼠, 흰쥐)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쥐는 무게가 수 근에 달하고 털 길이는 3치 정도이며, 그 산의 꽃(목화), 나무껍질, 쥐털 세 가지로 화완포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4][5]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하면, 불쥐의 크기는 과장된 표현을 감안하더라도 수 에서 크게는 천 근(250kg)에 달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작은 설치류부터 대형 포유류(수컷 호랑이 또는 북극곰에 비견될 정도)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역사 기록에서도 불쥐와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 『수서』(『隋書』) 「서역전」에는 수 문제 시대에 사국(史國, 현재 우즈베키스탄 샤흐리사브즈 지역의 소그드 도시 국가)에서 온 사신들이 '불쥐 털'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당시 중국과 서역 간 교류를 통해 불쥐 또는 석면과 관련된 지식이나 물품이 전파되었음을 시사한다.

일본에서도 불쥐 전설이 수용되고 변용되었다. 10세기 중반의 사전인 『화명류취초』(『和名類聚抄』) 권18 「모군류」(毛群類)의 "불쥐" 항목에는 일본식 발음인 '히네즈미'(比禰須三)가 기록되어 있으며, 『신이전』(『신이경』으로 추정)을 인용하여 불쥐 털로 짠 천은 불에 넣으면 깨끗해진다고 설명한다.

가장 유명한 예는 일본 고전 문학 『다케토리 이야기』(『竹取物語』)이다. 작중 카구야히메는 구혼자 중 한 명인 아베노 미우시에게 난제 중 하나로 "불쥐의 털옷"(火鼠の裘)을 가져오도록 요구한다.[7] 에도 시대 국학자 다나카 오히데는 이를 중국 문헌의 '화완포'와 동일시하며 『신이경』 등의 기록을 인용했다. 또한,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에아와세」(絵合) 권에는 『다케토리 이야기』의 불쥐 털옷 장면을 그린 그림 두루마리가 등장하며, 이미 무로마치 시대의 주석서 『카카이쇼』(『河海抄』)에서 『신이경』이나 『십주기』의 화완포 관련 기술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다케토리 이야기』의 '털옷'(裘, 가와기누)은 모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 문헌의 '화완포'(짠 천)와는 차이가 있다. 또한 아베노 미우시가 구해 온 가짜 털옷은 금청색(푸른빛이 도는 금색)이었으나, 중국 기록 속 불쥐는 흰색이다. 작중에서는 이 털옷이 천축(인도)의 고승에게서 전래된 물품이라고 언급된다.

서양에도 불쥐와 유사한 전설이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불 속에 사는 살라맨더 전설이 있었으며[8], 로마 시대에는 석면이 알려졌으나 대 플리니우스는 이를 식물성 섬유("아마포")로 여겼다. 서양에서 살라맨더와 석면이 연결된 것은 비교적 늦은 13세기경으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불연성 천을 "살라맨더의 깃털"(pluma salamandrila)이라고 기록했다. 이후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석면을 "살라만돌"이라 부르며, 원나라에서 직접 보고 이것이 광물임을 확인하고 동물의 털이라는 속설을 부정했다.

중동 지역에서는 살라맨더에 해당하는 "사만달"( الـسـمـنـدلar)이 새로 묘사되거나(불사조와 유사) 쥐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이들의 털이나 깃털로 만든 직물은 불에 넣으면 깨끗해진다고 여겨졌다.[8] 이러한 중동의 전승이 중세 유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8] 베르톨트 라우퍼는 살라맨더 전설과 석면의 결합이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시작되어 중국의 불쥐 전설로 전해졌다고 주장했으나[8], 조지프 니덤은 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불쥐 전설과 관련된 '불진목'(不盡木) 또는 그 동의어로 여겨지는 '불회목'(不灰木) 역시 석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초강목』(『本草綱目』) 제9권 「석부」(石部)에는 '불회목' 항목이 있는데, 소송(蘇頌)의 설을 인용하여 상당군의 택주나 노주에서 생산되는 돌로, 색이 희고 썩은 나무 같으며 태워도 타지 않아 붙은 이름이라고 설명한다. 편자인 이시진은 돌과 나무 두 종류가 있다고 보았는데, 돌 종류는 단단하고 무거우며 석뇌유(나프타)에 적셔 불을 붙이면 밤새도록 타지 않는 등불이 된다고 하였다. 나무 종류는 "동무성"(현재 산둥성 가오미시 부근)에서 생산되는 "승화목"(勝火木)으로도 불렸으며, 『태평환우기』에 따르면 교주(후의 밀주)에서 나는 불회목은 부들과 비슷한 잎이 달린 식물처럼 묘사되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석면 섬유를 지칭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묶어 횃불로 만든 것을 "만년화파"(萬年火把)라고 불렀다고 한다.

6. 화완포

화완포(火浣布)는 고대 중국 문헌 등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으로, 불 속에 넣어도 타지 않고 오히려 깨끗해지는 특성을 지녔다고 전해진다.[1][3] '불로 빨래하는 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주로 불쥐의 털을 모아 짰다고 알려져 있다.[1] 하지만 문헌에 따라서는 석면과 같은 광물성 섬유나 특정 식물의 섬유로 만들어진다는 기록도 존재한다.[4] 화완포의 실체로 여겨지는 석면, 문헌 속 역사적 기록, 그리고 식물성 재료나 불회목 등 다양한 재료에 대한 논의는 하위 문단에서 자세히 다룬다.

6. 1. 석면

한적(漢籍)에 따르면 불쥐의 털로 짠 화한포(火浣布)는 불에 타지 않고 "불로 세탁할 수 있는" 특별한 이다. 『해내십주기』(十洲記) 등에 따르면, 이 천은 더러워져도 불 속에 넣고 흔들면 때가 빠져나가 "결백함이 눈과 같다"고 한다.[3][10]

이 화한포는 실제로는 광물섬유석면(아스베스토스)을 짜서 만든 천이다. 일본 에도 시대히라가 겐나이가 일본산 석면을 이용하여 화한포를 만들려고 시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의 고대 문헌인 『주서』(周書)나 『열자』(列子)에는 주나라의 목왕에게 서융(西戎)이 화한포를 헌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베르톨트 라우퍼는 이러한 기록의 신빙성이 낮다고 보며[11], 석면이 서양에서 중국으로 전래되었다는 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후대의 학자 조지프 니덤은 이러한 전래설에 회의적이었고, 주나라 시대의 기록 역시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 (기원전 287년 사망)가 불 속에 사는 살라맨더에 대해 기술했다. 그는 다른 저작에서 불에 타지 않는 광물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석면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지만 다른 견해도 존재한다. 니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의 테오프라스토스나 중국 춘추 시대 월나라의 구천의 중신 모두 석면에 대한 지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양에서 석면(불연포)에 대한 확실한 문헌 기록은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스트라본 (기원전 24년 사망)과 대 플리니우스 (서기 79년 사망)의 저술에서 확인된다. 다만 대 플리니우스는 석면을 "아마포"나 "식물"로 여겼다.

중국에서 화한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주나라 시대의 고사를 제외하면) 어환의 『위략』(3세기) 등이다. 이 문헌에서는 화한포의 명산지로 대진국(大秦國)을 언급하는데, 라우퍼는 이를 로마 제국 치하의 오리엔트 지역으로 해석하여 석면이 서쪽에서 중국으로 교역을 통해 전해졌다고 주장했다.[11] 그러나 『삼국지』 "위지"에 따르면, 위나라 황제 조방이 즉위한 경초 3년(239년)에 "서역"에서 "화포"(火布)를 조공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서역"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불분명하다는 견해 또는 중앙아시아 지역이라는 견해가 있다. 또한, 위나라 초대 황제 문제는 화포의 존재를 의심하여 그의 저서 『전론』(典論)에 기록했는데, 2대 황제인 명제 때 외국에서 화한포가 조공되자 아버지의 글이 새겨진 비석에서 해당 부분을 깎아내야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진서』(晉書)에 따르면, 전진의 황제 부견 (385년 사망)은 천축(天竺, 고대 인도)의 찬드라굽타 2세로부터 화한포를 헌상받았다.

남북조 시대의 『송서』(宋書)에 따르면, 유송 효무제의 대명 연간(457–464년)에 속특(粟特, 즉 소그디아나)에서 온 사신이 "생사자화한포한혈마"(生師子·火浣布·汗血馬)를 헌상했다.

문제 시대에는 사신들이 소그드 도시 국가 중 하나인 사국(史國, 현 우즈베키스탄 샤흐리사브즈)에서 "불쥐 털"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수서』 서역전에 남아 있다.

서양에서는 살라맨더에서 석면을 얻을 수 있다는 전승이 비교적 늦게 나타났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대 알베르투스", 1280년 사망)는 그의 저서에서 불에 타지 않는 천을 "살라맨더의 깃털"이라고 기록했다. 이후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석면을 "살라만돌"이라 부르며, 원나라 몽골 제국에서 직접 보고 그것이 동물의 털이 아닌 채굴되는 광물임을 밝히고 속설을 부정했다.

6. 2. 역사적 기록

진나라 이후의 지리서로 알려진 『신이경』[1]에 따르면, 남쪽에 있는 화산(火山)은 길이가 40리에 달하며, 그곳에는 밤낮없이 불타는 불진목(不盡木)이라는 나무가 자란다고 한다. 이 나무의 불은 바람이 불어도 더 거세지지 않고 비가 와도 꺼지지 않으며, 그 불 속에는 불쥐가 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불쥐의 무게는 백 근(약 25kg)이며, 다른 기록에는 천 근(약 250kg)이라고도 한다.한대의 1근은 약 250g이다. 따라서 100근은 약 25kg, 1000근은 약 250kg에 해당하며, 이는 쿠사노 타쿠미의 기록과 일치한다. 털의 길이는 두 척(약 50cm) 남짓이고 비단실처럼 가늘고 흰색이다.한대의 1척은 약 25cm이므로, 2척은 약 50cm이다. 불쥐는 물을 뿌리면 죽기 때문에, 그 털을 모아 천으로 짜면 오염되더라도 불 속에 넣어 태우는 것만으로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1]『예문류취』에 인용된 『신이경』

위에서 언급된 '화산'은 『수신기』에 나오는 곤륜의 '염화지산(炎火之山)'과 같은 곳으로 여겨지며, 이 책에서는 해당 산에서 식물이 아닌 짐승의 털로부터 화한포가 생산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오록(吳錄)』에 따르면 불쥐는 일남군야마오카는 일남군을 현재의 하이난섬 부근에서 통킹만, 베트남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보았다.에도 서식했다고 한다.

다른 문헌인 『십주기』의 '염주(炎洲)' 항목에서는 불쥐 자체가 아니라 '화광수(火光獸)'라는, 쥐와 비슷한 모습과 크기를 가진 생물이 등장한다. 이 생물의 털 길이는 3~4치 정도라고 기록되어 있다.[3]

갈홍이 저술한 『포박자』에 따르면, 남해(南海)의 소구(蕭丘)라는 곳은 사방 천 리에 달하며, 봄에 불이 일어나 가을에 꺼진다고 한다. 이곳의 식물은 불에 타지 않으며, 무게가 수 근이고 털 길이가 3치인 백서(白鼠, 흰쥐)가 살고 있다. 이 산의 꽃(목화), 나무껍질, 쥐의 털 세 가지 재료로 화한포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예문류취』에 인용된 『포박자』[5]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문헌에 나타난 숫자에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불쥐의 크기는 작게는 수 근에서 크게는 천 근(약 250kg)에 달하는 등 다양하게 묘사되어, 큰 것은 대형 포유류에 버금가는 크기로 그려지기도 했다.

대의 역사서 『수서』「서역전」에는 수 문제 시대에 사신들이 사국(소그드 도시 국가 중 하나로, 케슈라고도 하며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샤흐리사브즈 지역이다.)에서 '불쥐 털'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에서는 10세기 중반에 편찬된 『화명유취초』 권18 「모군류(毛群類)」의 '화서(火鼠)' 항목에서 불쥐를 '히네즈미(比禰須三)'라고 음차하여 표기했다. 또한 『신이전』(『신이경』으로 추정)을 인용하여, 불쥐의 털을 모아 짠 천은 더러워져도 불에 넣으면 깨끗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에도 시대의 백과사전인 『화한삼재도회』에서는 중국의 『본초강목』을 인용하여, 중국 서역 및 남해의 화주(火州, 불의 섬)에 있는 산에서 봄여름에는 불타고 가을겨울에는 꺼지는 들불 속에 불쥐가 서식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원전인 의 『본초강목』에서 편자 이시진은 불쥐가 서식하는 장소를 "서역과 남해의 화주"라고 언급했다. '남해 화주'과거 번역에서는 "남해의 화주"를 자바섬으로 추정하기도 했다.동남아시아 일대의 화산 지형 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며, '서역의 화주'"화주(火州)"는 위구르어 이름 "카라 호자"의 음차이다.위구르고창(카라 호자) 지역을 의미할 수 있다. 이는 마르코 폴로가 석면 채굴을 목격했다고 기록한 '칭긴타라스 주'를 헨리 율이 카라 호자로 비정한 것과 일치한다.[6] 이시진은 화한포가 동물 털이나 식물 섬유로 만들어진다고 하면서도(화한포 참조), 그 재료 중 하나인 '불회목(不灰木)'을 광물성인 석면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불회목 참조)

서양에서는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불 속에 사는 살라맨더 전승이 있었으나,[8] 로마 시대의 대 플리니우스는 석면을 식물성 아마포로 여겼다. 서양에서 살라맨더와 석면이 연결된 것은 비교적 늦은 13세기경으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불연성 천을 pluma salamandri|플루마 살라만드리la('살라맨더의 깃털')이라고 기록했다.라우퍼는 더 후대의 인물인 바르텔레미 데르벨로(Barthélemy d'Herbelot, 1695년 사망)를 예로 들지만, 데르벨로는 페르시아 사전 등을 인용한 것이어서 일반적인 서양 전승으로 보기는 어렵다. 루트풀라 할리미(Lutfullah Halimi)의 사전에 따르면 살라맨더는 족제비와 비슷하나 털 색깔(노랑, 녹색, 빨강)이 다르며, 그 털로 짠 튼튼한 천은 불에 넣으면 깨끗해진다고 한다.[9] 데르벨로는 동양 서적 중에는 살라맨더를 서양처럼 도마뱀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후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석면을 '살라만돌'이라 부르며, 원나라 몽골 제국에서 직접 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것이 광물임을 밝히고 동물의 털이라는 속설을 부정했다.

근동 지역에서는 페르시아와 아랍 문헌에서 samandal|사만달ar (الـسـمـنـدلar)이라는 생물이 새로 묘사되거나 쥐로 묘사되기도 했으며, 이 생물에게서 얻은 털이나 깃털로 만든 직물은 불에 넣으면 깨끗해진다고 여겨졌다.[8] 이러한 인식이 중세 유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8]

베르톨트 라우퍼는 살라맨더 전승과 석면의 결합이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시작되어 한나라 이후 중국에 불쥐 이야기로 전해졌다고 주장했으나,[8] 조지프 니덤은 이러한 서양 기원설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편, 중국의 고대 문헌인 『주서』나 『열자』에는 의 목왕에게 서융이 화한포를 헌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라우퍼는 이 기록의 신빙성을 낮게 보았지만,[11] 니덤은 주나라 시대의 기록이 후대에 편집되었더라도 고대의 사실을 포함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테오프라스토스(기원전 287년 사망)는 불의 살라맨더에 대해 기술했으며,테오프라스토스, ''de Igne''(「불에 대하여」) 제60절 다른 저작에서는 불연성 광물(석면으로 추정되기도 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de Lapidibus''(「돌에 대하여」) 제2장 제17절에는 트라키아의 스카프테 힐레에서 나는 썩은 나무 같은 광물이 불에 타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과거 너새니얼 피시 무어(Nathaniel Fish Moore)는 이를 석면으로 보았으나, 다른 학자들은 갈탄이나 팔리고르스카이트로 추정하기도 했다. 니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의 테오프라스토스나 동시대 월나라의 중신 계연 모두 석면에 대한 지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니덤에 따르면 기원전 4세기 테오프라스토스나 동시대 월나라의 계연(計𥓋중국어) 모두 석면을 몰랐다고 한다. 니덤은 계연을 계연(計燃중국어) 또는 계예자(計倪子중국어)와 동일 인물로 보았다. 따라서 서양에서 석면(불연포)에 대한 확실한 문헌 기록은 고대 로마스트라본(기원전 24년 사망)이나 대 플리니우스 시대부터 나타난다.

화한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는 (주나라 시대 고사를 제외하면) 3세기 어환의 『위략』 등이며, 여기서는 화한포의 명산지로 언급된 대진국로마 제국 치하의 오리엔트로 해석하여 서쪽에서 중국으로 교역을 통해 전해졌다는 것이 라우퍼의 주장이다.이후 『후한서』 등에도 유사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그러나 『삼국지』 「위지」에는 위나라 조방의 즉위 연도인 경초 3년(239년)에 "서역"에서 "화포(火布)"가 조공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서역"이 로마를 의미하는지는

6. 3. 식물성 화완포

고대 로마의 대 플리니우스는 석면으로 만든 천, 즉 화완포(불환포)에 대해 기록하면서 이것이 동물의 털이 아니라 인도에서 자라는 식물의 섬유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11] 그는 이 천을 불 속에 던져 넣으면 물로 빤 것보다 더 깨끗하게 세탁할 수 있으며, 보통 때는 붉은색을 띠지만 불에 넣으면 진주색으로 변한다고 묘사했다.

한편, 조지프 니덤은 화완포가 식물에서 유래했다는 설의 기원을 로마의 플리니우스가 아닌 고대 그리스로 보았다. 그는 그 가장 오래된 예로 위(僞)칼리스테네스가 쓴 『알렉산드로스 로망스』(2~3세기경 성립 추정)를 들었다.

중국의 고문헌(한적, 漢籍)에서도 화완포의 재료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 나타난다. 『수신기』에서는 화완포가 초목(草木)의 껍질로 만들어진다는 설을 부정했지만, 『포박자』나 『본초강목』 등에서는 불쥐의 털뿐만 아니라 식물 섬유 역시 화완포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다른 견해(이설, 異說)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

6. 3. 1. 불회목

명나라의 의학서 『본초강목』을 편찬한 이시진은 화한포의 재료에 대해 설명하면서 '불회목(不灰木)'을 언급했다. 이시진은 화한포를 만드는 재료로 동물의 털이나 초목의 껍질 섬유 등을 이야기하면서도, 이와는 별개로 '불회목'을 다루었다. 특히 그는 불회목을 일반적인 나무(목재류)가 아닌 돌의 일종(석재류)으로 분류했다. 이는 불회목이 실제로는 광물석면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참조

[1] wikisource 藝文類聚
[2] wikisource 海內十洲記
[3] wikisource 海內十洲記
[4] wikisource 藝文類聚
[5] 논문 1959
[6] 서적 Yule tr. https://books.google[...] 1921
[7] 문서 ひねずみのかはぎぬ、~のかはごろも
[8] 논문 1917
[9] 간행물 Samandar https://books.google[...] 1778
[10] wikisource 雲笈七籤
[11] 논문 1917
[12] 서적 '[1956]' https://books.google[...]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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