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페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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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라 페일린은 1964년생으로, 알래스카의 정치인이다. 와실라 시장과 알래스카 주지사를 역임했으며, 2008년에는 존 매케인의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주지사 재임 중 윤리 개혁을 추진하고 석유 및 천연 가스 자원 개발을 지지했다. 2009년 주지사직을 사임한 후, 저술 활동과 정치 활동을 병행했다. 2010년대 이후 티 파티 운동을 지지하며, 2022년 하원 보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세라 페일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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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페일린
본명세라 루이스 히스 (Sarah Louise Heath)
출생지샌드포인트, 미국 아이다호주
정당공화당 (1982년–현재)
배우자토드 페일린 (1988년 결혼, 2020년 이혼)
자녀5명 ( 브리스톨 포함)
학력아이다호 대학교 (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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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세라 페일린 공식 웹사이트
공직 경력
알래스카 주지사order: 9대
임기 시작: 2006년 12월 4일
임기 종료: 2009년 7월 26일
부지사: 숀 파넬
이전 주지사: 프랭크 머카우스키
다음 주지사: 숀 파넬
알래스카 석유 및 가스 보존 위원회 의장주지사: 프랭크 머카우스키
부의장: 마이크 빌, 랜디 루에드리치, 대니얼 시마운트
임기 시작: 2003년 2월 19일
임기 종료: 2004년 1월 23일
이전 의장: 카밀 테일러
다음 의장: 존 노먼
와실라 시장임기 시작: 1996년 10월 14일
임기 종료: 2002년 10월 14일
이전 시장: 존 스타인
다음 시장: 다이앤 켈러
와실라 시의회 의원 (E 선거구)임기 시작: 1992년 10월 19일
임기 종료: 1996년 10월 14일
이전 의원: 도로시 스미스
다음 의원: 콜린 코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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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린 시절 및 교육

아이다호주 샌드포인트에서 태어났으며, 결혼 전 성은 히스(Heath)이다. 세라 히스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는 자녀들을 데리고 알래스카주 스캐그웨이로 옮겼고, 그 후 앵커리지 교외의 와실라에 정착하였다.

1964년 2월 11일 아이다호주 샌드포인트에서 초등학교 과학교사이자 야외 활동과 생존 기술을 가르쳤던 찰스(척)와 학교 사무원인 사라 히스의 장녀로 태어났다. 여동생으로 몰리가 있다. 페일린은 잉글랜드, 아일랜드, 독일 혈통이다.

유아 시절 부모의 사정으로 알래스카주 스캐그웨이 시로 이주했다. 아버지 찰스가 알래스카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969년에는 앵커리지이글 리버로 이사했고, 1972년에는 알래스카 주 와실라에 정착했다.

야외 활동 애호가였던 아버지 찰스의 영향으로, 그녀 또한 야외 활동 애호가이며 취미는 낚시와 수렵이다. 아버지는 네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빙상 캠프를 가기도 했다. 현재 아버지는 알래스카주 각지의 학교에서 사냥, 낚시, 눈사태 시의 생존술 및 퇴치 방법 등을 자원 봉사로 가르치고 있다. 그녀를 비롯한 아이들도 아버지로부터 낚시, 무스 사냥 등을 배웠다. 아버지로부터 사냥에서 소총 다루는 법도 배워, 전미총기협회 회원이다.

또한 가정은 열렬한 크리스천 가정으로, 4살 때부터 오순절교의 어셈블리 오브 갓 교회에 다녔고, 12살에 와실라 근교의 리틀비버 호수에서 침례를 받았다. 소녀 시절에도 예배를 드렸고, 성경 공부 모임에 다녔다.

세라 히스는 와실라에서 평범하게 성장하였다. 중학교 밴드에서 플루트를 연주했다. 와실라 고등학교에 다녔으며, 그곳에서 기독교 운동 연합의 대표였고, 여자 농구 및 크로스컨트리 육상 팀의 멤버였다. 고등학교 4학년 때, 그녀는 1982년 알래스카 주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농구팀의 공동 주장 겸 포인트 가드였으며, 경쟁적인 면모로 인해 "세라 바라쿠다"라는 별명을 얻었다.

1982년 와실라 중등학교를 졸업했다. 또한 같은 해 5월에 공화당에 유권자 등록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하와이 대학교 힐로에 입학했다. 하와이에 도착한 직후, 페일린은 1982년 가을 학기에 호놀룰루하와이 퍼시픽 대학교로 편입했다. 그녀는 본토로 돌아와 1983년 봄 및 가을 학기에 코르 달렌의 노스 아이다호 칼리지에 입학했다.

1984년 와실라 시의 미인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미스 알래스카에서는 2위에 그쳤다. 그녀는 미스 알래스카 미인 대회에서 3위(2위 입상자)를 차지했으며, "미스 친선" 칭호를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 알래스카 원주민 에스키모 출신인 현재의 남편 토드 페일린을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이후 도피 결혼으로 1988년에 결혼했다).

같은 해 장학금을 받아 아이다호 대학교에 진학, 저널리즘을 전공하였다. 그녀는 1984년 8월부터 시작되는 학년 동안 아이다호 대학교로 편입하여 입학했다. 1985년 가을부터 그녀는 알래스카의 마타누스카-서시트나 칼리지에 다녔다. 페일린은 1986년 1월 아이다호 대학교로 돌아와 1987년 5월 저널리즘을 전공으로 하여 커뮤니케이션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앵커리지의 텔레비전 방송국의 스포츠 리포터로 일하게 되었다. 이후 토드와 함께 어부로 어업 등에 종사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와실라의 학교에서 학부모회 활동을 했다.

3. 초기 경력

1982년 와실라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5월에 공화당에 유권자 등록을 했다. 1984년 와실라 시의 미인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미스 알래스카에서는 2위에 그쳤다. 고등학교 시절, 알래스카 원주민 에스키모 출신인 현재의 남편 토드 페일린을 만나 교제를 시작했고, 1988년에 도피 결혼으로 결혼했다.

1984년 장학금을 받아 아이다호 대학교에 진학,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1987년 아이다호 대학교 졸업 후, 앵커리지의 텔레비전 방송국의 스포츠 리포터로 일하게 되었다. 이후 토드와 함께 어부로 어업 등에 종사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와실라의 학교에서 학부모회 활동을 했다.

졸업 후, 페일린은 앵커리지에서 KTUU-TV와 KTVA-TV의 스포츠 캐스터로, 그리고 Mat-Su Valley Frontiersman스포츠 기자로 활동하며 어린 시절의 포부를 실현했다.

1992년 28세의 나이로 와실라 시의원에 당선되며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 시의원으로서 2번의 임기를 역임했다.

1996년에는 보수 단체의 지원을 받아 시장 선거에서 9년 재임 중인 상대를 꺾고 32세의 나이로 와실라 시장에 취임했다. 2002년에는 주 원유 가스 관리 위원회 위원장이 되었으며, 부지사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러나 공화당 베테랑 의원의 부패 사건 등이 적발되고, 주지사 및 정치인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주 공화당 위원장을 윤리 규정 위반으로 고발하는 등 페일린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4. 정치 경력

세라 페일린은 1982년부터 공화당원으로 활동했다. 1992년, 28세의 나이로 와실라 시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정치 경력을 시작했으며, 두 번의 임기 동안 시의원으로 활동했다.

1996년, 페일린은 32세의 나이로 와실라 시장에 취임했다. 2002년에는 주 원유 가스 관리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부지사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러나 공화당 내 부패 사건과 정치인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페일린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2006년, 페일린은 42세의 나이로 현직 주지사였던 프랭크 머코스키를 꺾고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알래스카 주 역사상 최연소이자 최초의 여성 주지사였다. 주지사 당선 후, 페일린은 석유천연가스 산업과 정치권의 유착, 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했다. 또한, 불필요한 공공 사업을 거부하고, 석유 및 천연가스 관련 기업에 대한 세제를 개정하는 등 경제 개혁에도 힘썼다.

2005년, 페일린은 머코스키 전 주지사가 공금으로 구입한 호화로운 자가용 제트기를 "부패의 상징"이라며 인터넷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에 매물로 내놓았으나, 낮은 가격으로 인해 판매를 중단하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매각했다.

2007년, 페일린은 쿠웨이트에 주둔 중인 알래스카 주 방위군을 방문했다. 이전까지는 캐나다 외에는 출국한 경험이 없었다.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존 매케인 후보는 페일린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다. 미국 주요 정당에서 여성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것은 1984년 제럴딘 페라로에 이어 두 번째였다.

4.1. 와실라 시의원 및 시장

페일린은 지역 신문사에서 활동하다가 1992년 와실라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530표 대 310표로 승리했다. 1996년에는 와실라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시장이었던 존 스타인을 651표 대 440표로 꺾고 당선되었다. 그녀의 전기 작가는 그녀의 선거 운동이 낭비적인 지출과 높은 세금을 겨냥했다고 묘사했으며, 상대 후보였던 스타인은 페일린이 낙태, 총기 권리, 임기 제한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제기했다고 말했다. 선거는 무소속으로 치러졌지만, 알래스카 공화당은 페일린을 위한 광고를 게재했다.

1999년, 페일린은 스타인을 상대로 재선에 출마하여 909표 대 292표로 승리했다. 2002년에는 시 헌장에 의해 허용된 두 번의 3년 임기 중 두 번째 임기를 마쳤다. 1999년, 알래스카 시장 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와실라 시장 재임 중, 페일린은 지역 사회의 비리를 폭로하여 유명해졌으며, 적극적인 개혁 정책을 실시하여 알래스카 주의 떠오르는 젊은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2002년 연방 상원의원에서 퇴임하고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프랭크 머코스키의 상원의원 후임 또는 주지사 러닝메이트(부지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부지사 후보로는 다른 사람이 지명되었고, 상원의원 자리도 프랭크 머코스키의 딸인 리사 머코스키가 물려받았다.

4.2. 알래스카 주지사

2007년 7월 24일 페일린의 알래스카 방위군 방문
2007년 7월 24일 페일린의 알래스카 방위군 방문

고령의 남성들이 지배하는 주 정치계에서 신선한 이미지로 주목받은 페일린은 2006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 예비선거에서 프랭크 머코스키를 꺾고 주지사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는 알래스카 주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인 머코스키 지사를 꺾은 이변이었다. 11월 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의 전 주지사 토니 놀스를 큰 차이로 제치고 알래스카주 최초의 여성 주지사이자 최연소(만 42세)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주지사 재임 기간 동안 페일린은 석유 사업과 관련된 정계와 재계의 유착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했다. 전임 주지사 시절의 예산 낭비를 개선하고, 감세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며,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자 했다. 머코스키 전 주지사가 주 예산으로 구입하여 논란이 되었던 주지사 전용기를 이베이에 경매로 내놓기도 했다.

2006년 선거에서 페일린은 전 민주당 주지사 토니 놀스를 48.3% 대 41.0%로 꺾고 승리했다. 알래스카 최초의 여성 주지사이자 알래스카 역사상 가장 젊은 주지사가 되었으며, 알래스카가 미국 주가 된 이후에 태어난 최초의 주지사이기도 했다. 또한, 수도인 주노에서 취임식을 갖지 않고 페어뱅크스에서 취임식을 열었다.

2006년 12월 4일에 취임한 페일린은 임기 대부분 동안 알래스카 유권자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2007년 여론 조사에서는 93%와 89%의 지지율을 기록했으며, 앵커리지 데일리 뉴스더 위클리 스탠다드는 그녀를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지사"라고 칭했다. 그러나 2009년 5월에는 긍정적 54%, 부정적 41.6%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페일린은 자원 개발, 교육 및 인력 개발, 공중 보건 및 안전, 교통 및 기반 시설 개발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윤리 개혁을 강조했으며, 취임 후 초당적 윤리 개혁 법안을 추진하여 2007년 7월에 서명했다.

페일린은 알래스카 공화당 주류와 자주 대립했는데, 돈 영을 몰아내려는 숀 파넬의 시도를 지지했고, 테드 스티븐스에게 재정 거래에 대한 연방 조사를 "솔직하게 밝히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또한, 북극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 (ANWR)의 석유 시추를 포함한 알래스카의 석유 및 천연 가스 자원 개발을 추진했다.

2007년, 페일린은 쿠웨이트를 방문하여 알래스카 주 방위군 구성원들과 만났고, 귀국길에는 독일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방문했다.

4.2.1. 그라비나 섬 다리 건설 논란

(세라 페일린의 그라비나 섬 다리 건설 논란에 대한 내용은 주어진 원본 소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 섹션은 작성할 수 없습니다.)

4.2.2. 알래스카 가스 파이프라인

Alaska North Slope영어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은 페일린 주지사의 주요 정책 중 하나였다.

4.2.3. 공공 안전 위원 해임 논란 (트루퍼게이트)

월트 모네건 주 공안 위원장은 세라 페일린 주지사에 의해 해임되었는데, 모네건은 해임 원인이 주 경찰관이자 페일린의 전 매제인 마이크 우턴을 해고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홀리스 프렌치 의원(민주당)을 중심으로 주 의회는 페일린 주지사의 직권 남용 의혹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페일린의 여동생 몰리는 가정 폭력을 당해 우턴과 이혼했고, 아이의 친권 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페일린은 주 경찰에 우턴의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엘크 밀렵, 음주 운전 등 여러 의혹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 주 경찰은 일부 혐의를 인정한 우턴에게 5일간의 무급 정직 처분을 내렸지만, 대부분의 혐의는 기각했다. 페일린은 이 조사 결과에 불만을 품었다.

페일린은 주지사 당선 후 남편 토드 등과 함께 모네건 주 공안 위원장에게 재조사를 요구했으나, 모네건은 "해결 완료"를 이유로 거부했다. 이것이 모네건 해임의 원인으로 여겨진다. 페일린의 측근 중 한 명은 주 경찰 상급 기관에 전화하여 우턴의 의혹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페일린은 측근에게 지시한 것을 부인했지만, 주 의회는 직권 남용 혐의가 있다고 보고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주 인사 위원회는 "페일린 주지사를 비롯한 다른 주 당국자가 알래스카 주 행정 윤리법을 위반했다고 믿을 만한 이유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4.2.4. 주지사직 사임

2007년 6월, 페일린은 6600 규모의 역대 최대 운영 예산안에 서명했다. 동시에 그녀는 거부권을 행사하여 주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자본 예산 삭감을 단행했다. 237에 달하는 삭감액은 300개 이상의 지역 사업에 영향을 미쳤으며, 자본 예산을 1600로 축소시켰다.

2008년에는 286를 거부하여, 350개 사업에 대한 2009 회계연도 자본 예산 지원을 삭감하거나 축소했다.

페일린은 주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머코스키 행정부가 2005년 2700에 구매했던 웨스트윈드 II 제트기를 매각하겠다는 선거 공약을 이행했다. 2007년 8월, 해당 제트기는 이베이에 매물로 나왔지만 판매가 무산되었고, 이후 개인 중개 회사를 통해 2100에 판매되었다.

2007년 7월 독일에서 페일린
2007년 7월 독일에서 페일린

4.3. 2008년 부통령 선거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존 매케인 후보는 세라 페일린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다. 페일린은 인지도가 낮았지만, 낙태 반대, 정부 재정지출 축소 등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면서도 젊은 여성이라는 점이 매케인의 약점인 고령을 보완하고 젊은 층과 여성표를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존 매케인 후보와 함께 지지자들 앞에 선 세라 페일린(2008년 9월 10일)
존 매케인 후보와 함께 지지자들 앞에 선 세라 페일린(2008년 9월 10일)


미국 주요 정당에서 여성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것은 1984년 제럴딘 페라로에 이어 두 번째였다. 페일린의 지명은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고, 매케인 후보는 지명 직후 지지율 향상을 이루었다.

2008년 9월 1일,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페일린은 정식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전당대회 직전 페일린의 17살 딸의 혼전임신 사실이 보도되어 논란이 되었고, 허리케인 구스타브로 행사 규모가 축소되면서 페일린은 구설수에 올랐다. 공화당은 페일린을 옹호했고, 페일린은 전당대회 연설에서 자신을 비판한 언론에 반격했다.

10월 2일 부통령 후보 토론회 직후 여론 조사에서 토론은 조지프 바이든 후보가 승리했다는 응답이 우세했지만, 호감도는 페일린이 우위를 점했다.

티나 페이와 닮은 외모로 인해, 페이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출연하여 페일린을 풍자하는 코미디를 선보였다. 10월 18일 방송에는 페일린 본인도 출연했다.

2008년 11월 4일 선거에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후보에게 365 대 173으로 패했다.

대통령 선거 직전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을 사칭한 캐나다 코미디언과 전화로 가짜 "회담"을 한 내용이 방송되기도 했다.

4.4. 2008년 대선 이후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조 바이든 후보에게 패배한 후, 2009년 주지사직을 사임하고 2012년 대선 준비를 시작했다.

이후의 행적은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4.4.1. SarahPAC

SarahPAC영어은 페일린이 2009년 7월 3일 알래스카 주지사 사임을 발표하고, 7월 26일에 공식적으로 주지사직에서 물러난 후, 2012년 대선 출마를 준비하기 위해 시작한 정치 활동이다. 2012년 대선 공화당 후보 지명 경쟁에서 페일린은 밋 롬니, 마이크 허커비 등과 함께 3파전을 벌였다. 2009년 11월에는 회고록을 출간하여 150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2010년 2월 4일, 티 파티의 첫 전국 대회에서 기조 연설을 했고, 이후 티 파티 운동의 광고탑 역할을 수행했다. 제3회 티 파티 익스프레스에서는 네바다주 오프닝 집회에 초청되어 연설했다. 페일린은 풀뿌리 보수파의 아이돌과 같은 존재로, 반 오바마 진영의 선두 주자 중 한 명으로 미디어 노출이 증가했다. 뉴욕 그라운드 제로모스크 건설에 반대하기도 했다.

2010년 11월 14일, TLC는 "세라 페일린의 알래스카"라는 리얼리티 쇼를 시작하여 페일린과 가족이 알래스카를 여행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8주 동안 일요일 밤에 방송되었으며, 마지막 회가 방송된 다음 해 1월 중순은 대선 출마를 고려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결정을 내리는 시기였기 때문에,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위한 사전 준비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2011년 1월 8일,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 의원이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9세 소녀가 사망하는 사건(2011년 투손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페일린은 민주당 의원 선거구를 소총 마크로 표시하는 웹 페이지를 올렸고, 사건과 관련하여 부적절한 발언을 반복하여 인기가 급락했다. 또한 지지 기반이었던 티 파티 운동도 2010년 중간 선거 이후 쇠퇴했다.

2011년 10월 5일, 페일린은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4.4.2. 저술 활동

2009년 11월, 페일린은 자신의 회고록을 출판하여 15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4.4.3. 티 파티 운동

2010년 2월 4일 티 파티 첫 전국 대회에서 기조 연설을 했으며, 이후 티 파티 운동의 광고탑 역할을 했다. 제3회 티 파티 익스프레스에서도 네바다주에서의 오프닝 집회에 초청되어 선두에 섰다. 페일린은 풀뿌리 보수파의 아이돌적 존재이자 반 오바마의 선두 주자 중 한 명으로서, 미디어 노출도 늘어나고 있었다. 뉴욕그라운드 제로에서의 모스크 건설에도 반대했다.

2011년 1월 8일, 애리조나주투손에서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 의원이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9살 소녀가 사망하는 사건(2011년 투손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페일린은 민주당 의원의 선거구를 라이플 마크로 표시하는 웹 페이지를 올렸으며, 사건과 관련하여 부적절한 발언을 반복하는 등 인기가 급락했다. 더불어 지지 기반인 티 파티 운동도 2010년 중간 선거 이후 퇴조를 보였다.

4.4.4. 2010년대 이후 정치 활동

페일린은 2010년 중간 선거에서 "분홍색 코끼리 떼"를 외치며 보수 공화당 여성 후보들을 지지하는 등, 여성 정치인들의 옹호자로 나섰다. 카렌 핸들 등 여러 여성 공화당 후보들을 예비 선거에서 지지했다. 2010년 5월에는 반 낙태 정치 옹호 단체이자 정치 행동 위원회인 수전 B. 앤서니 리스트를 위한 기금 모금 행사에서 연설하며 "엄마 그리즐리"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다.

2010년 미국 선거를 앞두고 페일린은 64명의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으며, 이들에게 상당한 자금 지원을 제공했다. 그녀의 후보 지명 기준은 티파티 운동과 수잔 B. 앤서니 리스트의 지지 여부였다. 페일린은 조 밀러를 지지하여 현직 공화당 상원 의원 리사 머코스키를 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데일리 비스트의 슈샤나 월쉬는 크리스틴 오도넬이 기득권 공화당 후보를 꺾은 것이 페일린의 지지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보수 논평가 찰스 크라우트해머는 이 지지를 "무모하고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조 스칼버러는 페일린에게 당과 결별할 것을 촉구했고, 칼 로브는 페일린의 지지가 공화당에 델라웨어 상원 의석을 잃게 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페일린은 네바다의 샤론 앵글을 지지하여 예비 선거에서 승리하도록 도왔지만, 앵글은 해리 리드에게 패배했다.

2014년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연설하는 페일린, 메릴랜드주 내셔널 하버
2014년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연설하는 페일린, 메릴랜드주 내셔널 하버

2015년 내셔널 하버에서 열린 CPAC에서 연설하는 페일린
2015년 내셔널 하버에서 열린 CPAC에서 연설하는 페일린


2008년 대선 이후 페일린 추대 운동이 시작되었고, 2010년에는 2012년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2011년 10월 5일, 페일린은 대통령 공화당 후보 지명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2014년에는 숀 파넬에 맞서 무소속 빌 워커와 민주당원 바이런 맬럿의 "연합 후보"를 지지했다. 이는 파넬의 석유 및 가스 산업 감세 정책 때문이었다.

2016년, 페일린은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했다. 또한 폴 라이언 하원 의장을 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폴 네흘렌을 지지했다.

2021년, 페일린은 리사 머코스키에게 도전하여 상원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돈 영의 사망 이후에는 공석이 된 하원 의석을 위한 2022년 보궐 선거에 출마했고,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를 받았다.

페일린은 2022년 알래스카 전 지역구 연방 하원 보궐 선거 결선 투표에서 메리 페톨라에게 패했다. 이후 닉 베기치 3세에게 사퇴를 촉구했지만 거부당했고, 11월 총선에서도 패배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조 바이든에게 패배한 후, 페일린은 2009년 주지사직을 사임하고 2012년 대선 준비를 시작했다. 2009년에는 회고록을 출판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2010년에는 티 파티 운동의 광고탑 역할을 하며 반 오바마 진영의 선두 주자로 나섰다. 또한 뉴욕 그라운드 제로모스크 건설에 반대했다.

2011년, 가브리엘 기퍼즈 의원 총격 사건과 관련하여 부적절한 발언으로 인기가 급락하고, 티 파티 운동도 퇴조하면서, 결국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으며, 트럼프 당선 시 에너지 장관으로 정계 진출을 목표로 했다.

2022년에는 돈 영 하원 의원 사망으로 인한 보궐 선거에 출마했으나, 메리 페톨라에게 패배했다.

4.4.5. 뉴욕 타임스 명예 훼손 소송

2017년 6월, 페일린은 2011년 민주당 하원의원 가브리엘 기퍼즈 총격 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을 "정치적 선동" 혐의로 비난한 사설에 대해 뉴욕 타임스를 상대로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타임스는 페일린의 정치 행동 위원회 광고에 기퍼즈를 포함한 20명의 민주당원들이 대표하는 선거구에 스타일화된 조준선이 표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타임스는 이후 정정 보도를 내고, 페일린의 광고와 기퍼즈 총격 사건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도 확립되지 않았으며 광고의 조준선에 묘사된 것은 "개별 민주당 의원이 아닌 선거구"라고 밝혔다. 이후 증거 심문에서 타임스 사설 편집장 제임스 베넷은 사설이 격렬한 정치적 수사에 대한 요점을 제시하려는 것이었으며 기퍼즈에 대한 공격에 대해 페일린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페일린의 소송은 2017년 8월 미국 뉴욕 남부 지방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판사 제드 S. 라코프는 페일린이 타임스 측의 실질적 악의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결했다. 2019년 8월, 미국 제2 순회 항소 법원은 지방 법원이 신문의 기각 신청을 플리딩이 아닌 증거 심리를 개최하여 오류를 범했다고 판결하여 페일린의 소송을 복원했다. 2020년 8월, 라코프는 양측의 약식 판결 신청을 모두 기각하고 배심원 재판을 명령했다. 18년 만에 미국에서 타임스를 상대로 한 첫 번째 명예 훼손 사건으로서, 이 소송은 수정 헌법 제1조 학자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았다. 2022년 2월 15일, 배심원들은 페일린이 실질적 악의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만장일치 평결을 내리고 뉴욕 타임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일부 배심원들이 스마트폰으로 푸시 알림을 받은 후, 라코프가 전날 배심원 평결에 관계없이 사건을 기각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배심원들은 그것이 심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24년 8월, 맨해튼에 있는 제2 미국 순회 항소 법원은 판사의 실수, 특히 배심원 심의 동안 사건을 기각하겠다고 발표한 점을 지적하며 사건을 다시 살렸다.

5. 정치적 입장

페일린은 1982년부터 공화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2010년 건강 관리 개혁안에 반대하며, 관료주의에 의한 의료 서비스 배급, 즉 "죽음의 패널"이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간, 근친상간, 배아 줄기 세포 연구를 포함한 낙태에 반대하지만,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한다. 또한 낙태를 원하는 미성년자에게 부모 동의를 요구하는 것을 지지한다.

페일린은 동성 결혼에 반대하고, 사형을 지지한다. 마리화나 사용을 "미미한 문제"로 보았고, 마리화나 사용자 체포는 경찰의 낮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완전한 합법화에는 반대하며, 알래스카에서 합법이었을 때 오락 목적으로 마리화나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인정한다.

페일린은 공립학교에서 피임 교육과 함께 성적 금욕을 장려하는 성교육을 지지하며, 공립학교 진화 수업에서 창조론에 대한 논의도 지지한다.

전미 총기 협회(NRA) 종신 회원인 페일린은 수정 헌법 제2조를 권총 소유를 포함하는 권리로 해석하며, 반자동 화기 돌격 소총 금지에 반대한다.

페일린은 북극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Arctic National Wildlife Refuge)에서의 해상 및 육상 시추를 지지하며, 기후 변화에 대해서는 "사기"라고 주장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을 지지했고, 이스라엘의 강력한 지지자이다. 2008년,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NATO 가입을 지지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동안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원조 축소를 옹호했다.

5.1. 사회 문제

페일린은 동성 결혼에 반대하며 사형을 지지한다. 그녀는 마리화나 사용을 "미미한 문제"라고 칭하며, 마리화나 사용자 체포는 지역 경찰의 낮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일린은 완전한 합법화에는 반대하지만, 알래스카에서 합법이었을 때 오락 목적으로 마리화나를 피웠다고 인정한다.

5.2. 교육

페일린은 공립학교에서 피임 교육과 함께 성적 금욕을 장려하는 성교육을 지지한다. 또한 공립학교 진화 수업에서 창조론에 대한 논의도 지지한다. 페일린은 진화가 "받아들여진 원리로서 가르쳐져야 한다"고 믿으며, 지구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믿음은 "학교 구역의 주 정책이나 지역 교육 과정의 일부가 아니다. 과학은 과학 수업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창조-진화 논쟁 참조)

5.3. 총기 규제

전미 총기 협회(NRA) 종신 회원인 페일린은 수정 헌법 제2조를 권총 소유를 포함하는 권리로 해석하며, 반자동 화기 돌격 소총 금지에 반대한다. 그녀는 청소년을 위한 총기 안전 교육을 지지한다.

5.4. 환경

페일린은 북극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Arctic National Wildlife Refuge)에서의 해상 및 육상 시추를 지지한다. 걸프 연안 유류 재해에 대해 "나는 '여기서, 지금 시추하라'는 슬로건을 반복한다. 그녀는 "나는 우리나라가 석유 산업을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페일린은 지지자들에게 토마스 소웰(Thomas Sowell)이 쓴 기사를 읽도록 요청했는데, 그 기사는 버락 오바마가 BP에게 에스크로(escrow) 펀드에 돈을 지불하게 한 것을 비판했다.

페일린은 스스로를 보존 운동(Conservation movement)가라고 생각하며, 2008년 선거 운동 중 "지구 온난화, 기후 변화가 전적으로 또는 완전히 인간의 활동에 의해 발생했는지, 아니면 지구의 주기적인 본성의 일부인지에 관계없이... 존 매케인과 나는 우리가 오염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직 부결되지 않은 미국 청정 에너지 및 안보법(ACES 에너지 법안)에 포함된 배출권 거래제(cap-and-trade) 제안에 반대했다. 2009년 내무부 청문회에서 페일린은 온실 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녀는 "국내 에너지 생산을 선호하는 연료로 중단하는 것은 지구 온난화 및 멸종 위기종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용한 연료는 녹색 에너지 대안으로 전환하는 동안 국가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는 데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기후 연구 부서 이메일 논란(Climatic Research Unit email controversy) 이후, 페일린은 2010년 캘리포니아 벌목 회의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과학적 합의(scientific consensus on climate change)를 지지하는 연구를 "사기 과학"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자신이 "강압적인" 환경법이라고 부르는 것을 공격하고, 알래스카 주지사로서 2008년에 연방 정부를 상대로 북극곰(Polar bear#Conservation status)을 멸종 위협 종으로 지정하는 것을 뒤집기 위한 소송을 제기한 것을 언급했다. 그녀는 환경 규제를 경기 침체에서 회복하려는 기업에 대한 경제적 부담으로, 환경 운동가들을 "땅을 묶어두려는" 사람들로 간주했다.

기후 변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며, "사기", "거대한 음모"라고 말한다. 2016년에는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영화 『Climate Hustle』과 관련된 패널 토론에 참가했다.

주지사로서, 알래스카의 자연 보호 구역에서의 유전 개발 해제를 요구하며, 이를 지지하지 않는 매케인 후보를 당시 비판했다. 하지만, 현재 알래스카 유전 개발을 전면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5.5. 외교 정책

페일린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을 지지했지만, "외국 에너지 의존"이 "출구 전략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방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녀는 임박한 위협에 대한 선제적 군사 행동을 지지하며, 파키스탄에서의 미국의 군사 작전을 지지했다. 또한 이라크 증파 전략, 아프가니스탄의 추가 지상군 투입, 그리고 일반적으로 국방 예산을 증액하여 강력한 방어 태세를 유지하는 것을 지지했다.

페일린은 이스라엘의 강력한 지지자이다. 그녀는 이란의 이스라엘 위협에 대해 "오바마가 전쟁 카드를 사용한다면 재선될 것이다. 그가 이란에 선전포고를 하거나,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결정한다면, 나는 그가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2008년, 페일린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NATO 가입을 지지했으며, 러시아가 NATO 회원국을 침공할 경우 미국은 조약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동안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원조 축소를 옹호하며 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비판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2013년 시리아 내전 군사 개입 제안에는 반대하며, 시리아 내전에서 "알라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자"고 제안했다.

페일린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포괄적 공동 행동 계획이 충분히 엄격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2015년 9월 9일 연설에서 그녀는 "오직 오웰식 오바마의 세상, 그가 예쁜 분홍색 만화경을 통해 엿보면서 그의 유니콘 위에서 반짝이는 요정 가루를 날리는 세상에서만 그는 이 조약에서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승리나 안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6. 개인 생활

1988년 8월, 페일린은 고등학교 시절 연인이었던 토드 페일린과 도피 결혼을 했다. 슬하에 아들 트랙 찰스 제임스(1989년생), 트리그 팍슨 반(2008년생), 딸 브리스톨 셰런 마리(1990년생), 윌로우 비앙카 페이(1994년생), 파이퍼 인디 그레이스(2001년생)를 두었다. 막내 트리그는 산전 검사에서 다운 증후군 진단을 받고 2008년에 태어났다.

토드 페일린은 석유 회사 BP에서 유전 생산 운영자로 일하다 2009년 은퇴했으며, 상업적 어업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페일린은 어머니가 가톨릭 신자였기에 "신생아 때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헤스 가족은 이후 "비교단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후 페일린 가족은 와실라 하나님의 성회(오순절주의 교회)에 합류했고, 2002년까지 그곳에 다녔다. 그 후 와실라 성경 교회로 옮겼다. 매케인이 그녀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직후, 몇몇 뉴스 보도에서는 그녀를 주요 정당 후보로 등장한 최초의 오순절/은사 운동 신자라고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페일린은 스스로를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이라 칭하며, "오순절"이나 "은사"라는 꼬리표는 꺼린다.

2019년 8월 29일, 토드는 "성격 불일치"를 이유로 세라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부채와 자산의 균등 분할, 아들 트리그의 공동 양육권을 요구했다. 이혼은 2020년 3월 23일에 확정되었다.

7. 대중적 이미지

2008년 선거 유세 중인 페일린
2008년 선거 유세 중인 페일린

2008년 공화당 전당대회 이전, 갤럽 여론조사는 대다수의 유권자들이 세라 페일린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부통령 후보 지명 후, 언론은 그녀의 공적 생활에 대한 종교적 관점, 사회적 보수 견해, 그리고 경험 부족에 대한 인식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페일린의 외교 및 국내 정치 경험 부족은 자유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보수주의자들에게도 비판받았다. 그러나 페일린은 공화당원들 사이에서 존 매케인보다 더 높은 인기를 얻었다.

매케인의 러닝메이트로 소개된 지 한 달 후, 페일린은 민주당 상대 후보였던 조 바이든 상원의원보다 더 호의적, 비호의적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텔레비전 시청자 대다수는 2008년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 바이든의 연설을 더 높게 평가했다.

언론은 페일린이 알래스카 석유 및 가스 보존 위원회 위원장직에서 11개월 만에 사임하면서 "거대 석유 기업에 맞섰다"라고 한 발언을 반복했다. 페일린은 다른 공화당 위원들과 에너지 회사 및 로비스트 간의 유착을 목격하고 사임했다고 주장했으며, 주지사 시절 석유 회사에 세금을 인상했을 때 업계에 맞섰다고 말했다. 반면, 페일린이 북극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 시추를 포함한 석유 개발을 옹호하고 북극곰을 멸종 위기 종에서 해제하는 것을 지지했기 때문에 "거대 석유 기업의 친구"라는 비판도 있었다.

2017년 이후, 페일린은 줄리안 아산지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으며, 2020년에는 "몇 년 전에 줄리안 아산지를 지지하지 않은 실수를 인정한다. 그는 나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라며 아산지의 사면을 촉구했다.

2008년 12월, 바바라 월터스는 ABC 특별 방송에서 페일린을 "2008년 가장 매력적인 1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2010년 4월, 타임은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8. 저서

* 나는 반역한다: 미국인의 삶Going Rogue: An American Life영어, 하퍼콜린스, 2009
* 마음으로 본 미국America by Heart: Reflections on Family, Faith, and Flag영어, 하퍼콜린스, 2010
* Good Tidings and Great Joy: Protecting the Heart of Christmas영어, 하퍼콜린스, 2013
* Sweet Freedom: A Devotional영어, 레그너리 출판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