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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콥스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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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프스 재판은 1925년 미국 테네시주에서 발생한 법정 사건으로,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한 버틀러 법을 어기고 진화론을 가르친 교사 존 스코프스를 기소한 사건이다. 이 재판은 과학과 종교의 대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과 클라렌스 다로우 등 당대 최고의 법률가들이 참여하여 미국 전역에 라디오로 중계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스코프스는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법적 기술적 문제로 재판은 무효가 되었고, 이 사건은 진화론 교육 금지 법안의 위헌성을 부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스코프스 재판은 이후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소재로 활용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종교적 신념과 과학적 사실 간의 균형을 찾는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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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콥스 재판
재판 정보
재판 명칭테네시 주 대 존 토머스 스콥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과 클라렌스 데로우가 보이는 1925년 7월 20일 야외 재판 절차
재판 7일째, 과도한 열기로 인해 야외에서 재판이 진행되었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왼쪽, 착석)이 클래런스 데로우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법원테네시 주 형사 법원
날짜1925년 7월 21일
판사존 테이트 롤스턴
이전 소송해당 사항 없음
이후 소송Scopes v. State(1926)
평결유죄 (기술적인 문제로 파기)
의견해당 사항 없음
기울임꼴 제목아니오
사건 개요
피고인존 스콥스
죄목진화론 교육 금지법 위반
쟁점공립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의 합법성
결과스콥스 유죄 판결, 벌금 100달러 부과 (후에 상급 법원에서 기술적 문제로 파기됨)
주요 인물
원고테네시 주
피고존 스콥스
담당 판사존 테이트 롤스턴
검사토마스 스튜어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변호사클래런스 데로우
관련 법률
적용 법률버틀러 법 (테네시 주 진화론 교육 금지법)
영향
사회적 영향창조론 대 진화론 논쟁 심화, 과학 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대
법적 영향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에 대한 논의 촉발

2. 역사적 배경

1925년 테네시주에서는 세계 기독교 근본주의 협회의 테네시주 회장 존 W. 버틀러가 주 의회에 로비하여 공립학교 내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버틀러법이 통과되었다.[115] 이에 미국 시민 자유 연합(ACLU)은 존 스콥스와 함께 법률 불복종을 시도하였다. 과학 교사였던 존 스콥스는 1925년 5월 5일 생물 교과서에 있는 진화 이론을 가르치다 고발되었다. 재판에는 양측 모두 거물급 변호사가 동원되었는데, 원고측은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이었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었고,[7] 피고측 변호인은 ACLU의 클래런스 대로우였다.[8] 재판은 라디오로 중계되어 미국 전역에 전파되었다.[116]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 《창세기》에는 아담과 이브는 야훼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기독교 우파과학종교의 대립, 특히 미국의 반 진화론 운동을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한다. 미국은 성경을 중시하는 개신교 신자가 많으며, 그중에서도 성경 무오설을 따르는 복음주의 보수파가 활동의 중심이 되어 기독교 근본주의 조류를 형성하고 있다.

근본주의자들이 진화론을 문제 삼게 된 것은 20세기 초 미국 공립학교 교육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공립학교 생물 시간에 진화론을 다루게 되면서, 창세기의 천지 창조를 역사적 사실로 믿는 성경 무오설 신자들은 진화론이 자신들의 믿음과 상반된다고 여겼다. 이들은 창조론을 옹호하며, 자연계의 진화 결과로 인간이 탄생했다는 진화론은 용납할 수 없었다.

이전까지 진화론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던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는 것에 반대하여 학교 교육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2. 1. 모더니스트-근본주의자 논쟁 (1923-1924)

1923년부터 1924년까지 뉴욕에서 진화론 대 창조설 논쟁이 벌어졌다. 창조설을 옹호한 존 로치 스트라톤(John Roach Straton, 1875-1929)은 갈보리 침례교회 목사이자 근본주의자였고, 진화론을 옹호한 찰스 프란시스 포터(Charles Francis Potter, 1885-1962)는 웨스트사이드 유니테리언 교회의 목사이자 모더니스트였다.

; "성서 무오설" 논점

첫째 날에는 "성서 무오설"을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되었다. 창조설의 근거가 된 "성서 무오설"은 1880년대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생겨났으며, 성서의 모든 내용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근본주의자들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고등 비평(Higher Criticism)을 통해 성서의 오류와 모순이 발견되면서 "성서 무오설"은 비판을 받았다. 포터는 고등 비평적 관점에서 "성서 무오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성서의 초자연적 기원을 부정하며 그 취약성을 드러냈다.

; "진화론" 논점

둘째 날에는 "진화론"을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되었다. 찰스 다윈에 의해 체계화된 과학 이론인 진화론은 전통적 기독교를 현대 사회에 적응시킨 모더니스트들이 지지했다. 토론은 진화론의 과학적 타당성과 증거의 신빙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진화의 "기인"에 대한 타당성 문제[107]가 있었고, 획득 형질 유전을 주장한 라마르크 설과 자연 선택을 주장한 다윈 설 모두 확실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지질학적 증거의 신빙성 문제도 제기되었으며, 조지 프라이스는 암층 배열의 부자연스러움을 지적하며 성경의 대홍수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무수한 중간 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었다.

; 논쟁의 승패

첫 번째 토론에서는 고등 비평적 관점에서 성서 무오설을 비판한 포터가 승리했고, 두 번째 토론에서는 진화론의 불확실한 증거를 반증한 스트라톤이 승리했다.

2. 2. 반진화론법의 성립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등장으로 근본주의자들의 움직임은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브라이언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세 번이나 선출되었으며, 여성 참정권과 누진세 도입을 위해 노력한 대중 운동가였다.[7]

브라이언은 자유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진화론은 적을 제거하여 자신만이 살아남으려는 비도덕적이고 기독교에 반하는 악마의 이론으로 간주했다. 이는 찰스 다윈의 자연 선택설에 대한 전형적인 오해였지만, 당시 다윈주의의 은유를 사회에 적용하여 해석하려는 사회 다윈주의의 영향도 컸다. 사회 다윈주의는 당시 나치 독일이나 미국 등에서 인종 차별우생학의 정당화 근거가 되었다.[8]

브라이언은 사회 다윈주의에서 파생된 그러한 사상이 미국에 퍼지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반기독교적 이론(진화론)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근본주의자들과 결합하여, 미국의 각 주에서 공립학교 교육 현장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을 잇달아 성립시켰다.[5]

3. 스코프스 재판 (1925)

미국 시민 자유 연합(ACLU)은 테네시주의 반진화론법에 대항하기 위해 존 스코프스를 내세워 재판을 주도했다. ACLU는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률을 재판에 넘기기 위해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고 체포될 지원자를 모집하는 광고를 냈다.

존 스코프스


테네시주 데이턴에 있는 레이 센트럴 고등학교의 과학 및 체육 교사 John T. Scopes영어(1900년8월 3일 - 1970년10월 21일)는 ACLU의 광고에 응모했다. 스코프스는 마을의 지명도를 높이려는 유력 인사들의 부탁을 받고 임시 생물 수업 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쳤다고 증언했다. 스코프스는 켄터키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지만, 생물학이나 과학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는 않았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검찰 측 대표로, 클래런스 다로우가 변호 측 대표로 나서면서 이 재판은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1925년 7월 10일부터 7월 21일까지 테네시주 데이턴에서 열린 이 재판은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으로도 알려져 있다.

재판 후, 스코프스는 교직을 떠나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에서 지질학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지질 측량 기사로 석유 업계에서 은퇴할 때까지 근무했으며, 1970년에 사망했다.

일반적으로 이 재판은 다로우가 브라이언에게 신이 실제로 6일 만에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인정하게 한 것으로 알려져 다로우의 승리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로우가 벌금액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재판 자체가 무효가 되었고, ACLU가 이 재판을 통해 법률을 폐지하려던 시도는 무산되었다. 결국 1967년에 이 법률이 폐지될 때까지 40년 이상 반진화론법이 존속하게 된다.

3. 1. 재판의 진행

1925년 테네시주에서는 세계 기독교 근본주의 협회의 테네시주 회장 존 W. 버틀러가 주 의회에 로비하여 공립학교내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버틀러법이 통과되었다.[115] 이 법안에 반대하는 미국 시민 자유 연합(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는 존 스콥스와 함께 법률 불복종을 시도하였다. 과학 교사였던 존 스콥스는 1925년 5월 5일 생물 교과서에 있는 진화 이론을 가르치다 고발되었다.[116]

검찰 측 대표는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이었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었고,[7] 피고측 변호인은 미국 시민 자유 연합의 클래런스 대로우였다.[8]

1925년 재판 당시의 클래런스 대로우(Clarence Darrow)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1925년)


브라이언의 영입 이후, 클라렌스 다로우(Clarence Darrow)는 변호팀의 존 닐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서비스를 제공했다.[16]

변호팀은 다로우, ACLU 변호사 아서 가필드 헤이스(Arthur Garfield Hays), 더들리 필드 말론(Dudley Field Malone), 다로우의 법률 파트너인 W. O. 톰슨, F. B. 맥엘위로 구성되었다.[20]

검찰팀은 제18지구 지방 검사(district attorney)이자 (미래 미국 상원(United States Senate) 의원)인 톰 스튜어트가 이끌었으며, 허버트와 수 힉스 외에 벤 B. 맥켄지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포함되었다.[21]

재판은 남부와 전 세계의 기자들이 취재했으며, H. L. 멩켄(H. L. Mencken)은 ''볼티모어 선(The Baltimore Sun)''을 위해 보도했다. 멩켄은 재판에 "원숭이 재판"과 "불신자 스코프스"와 같은 이름을 붙였다. 또한 이는 전국적인 구식 라디오(Old-time radio)로 방송된 최초의 미국 재판이었다.[38]

결국, 이 재판은 진화론 교육이 이루어졌는지 여부가 아니라, "성경의 옳음을 주장하는 검찰 측과 진화론의 옳음을 주장하는 변호 측의 프로파간다 대결"이 되었다.

재판 중 대로우(왼쪽)와 브라이언(오른쪽)


재판 6일째, 변호인 측은 증인이 모두 소진되었다. 재판장은 성경에 대한 변호 측의 모든 증언은 무관하며 배심원에게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재판 7일째, 변호 측은 재판장에게 브라이언을 증인으로 불러 성경에 대해 질문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자신들의 전문가 증언이 무의미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대로우는 전날 이 계획을 세웠고 브라이언을 "성경 전문가"라고 불렀다.

재판 7일째, 클래런스 대로우는 검찰 측 변호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증인으로 소환하여, 성경의 역사적 사실과 기적에 대한 많은 기록을 믿는 것이 비합리적임을 증명하려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다.

질의 응답 영역은 이브가 실제로 아담의 갈비뼈에서 창조되었는지, 카인이 아내를 어디서 얻었는지, 그리고 고대 이집트에는 몇 명이 살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여 창세기에 관한 것이었다.

브라이언과 대로우의 대결은 재판 7일차 오후에 약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8일간의 재판 후, 배심원단은 불과 9분 만에 심의를 마쳤다. 스코프스는 7월 21일 유죄 판결을 받았고, 라울스턴은 그에게 100달러의 벌금을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3. 2. 재판의 결과와 영향

스코프스는 유죄 판결을 받고 100USD의 벌금형을 받았다.[117] 그러나 이 재판은 각 주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한 반진화론 법안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헌법에 어긋난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미국은 국가방위교육법을 제정하여 과학 교육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교육자나 교육학자가 아닌 과학자들이 직접 과학 교과서를 집필하게 되었고, 미국 생물학 연구소(American Institute of Biological Sciences)에서 제작한 교과서가 널리 보급되었다. 이 교과서는 진화론을 생물학의 핵심 이론으로 강조했다.[118]

항소심에서 법원은 법률의 모호성, 언론의 자유 침해, 테네시 주 헌법 위반 등 여러 주장을 기각했지만, 법적 기술적 문제를 이유로 유죄 판결을 무효화했다.[38]

1968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Epperson v. Arkansas'' 판결에서 진화론 교육 금지법이 수정 헌법 제1조의 국교 설립 금지 조항을 위반한다고 판결했다.[10] 테네시 주는 그 전 해에 버틀러 법을 폐지했다.[40]

스코프스 재판은 미국의 학교 과학 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다. 초기에는 진화론 교육이 위축되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진화론 교육이 강화되는 추세로 전환되었다.

4. 스코프스 재판 이후의 논쟁

이 재판은 미국 기독교 내의 심화되는 갈등, 즉 성경적 방법과 진화론적 방법 사이의 갈등을 드러냈다.[41] 당시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진화론을 비난했다.[41]

스콥스 재판 이후 근본주의가 정치, 문화적 배경으로 물러났다는 통념이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근본주의의 퇴각은 지도자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죽음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근본주의자들은 재판을 승리로 여겼지만, 브라이언의 죽음으로 인해 리더십 공백이 발생했다. 브라이언은 반진화론적 입장을 옹호하고 다양한 종교 단체를 연합하는 능력을 갖춘 유일한 인물이었다.

아담 샤피로는 스콥스 재판이 종교와 과학 사이의 필연적인 갈등이었다는 견해를 비판하며, 이는 "자기 정당화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이 새로운 교과서 채택을 연기한 정치적 상황과 같은 특정한 상황의 결과였다고 강조한다.[42]

스콥스 재판은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에서 과학 수업에서 진화론 교육을 둘러싼 갈등을 심화시켰다. 스콥스 유죄 판결 이후, 미국 전역의 창조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에서도 유사한 반진화론 법안을 추진했다.

1927년까지 미국 북부와 남부 13개 주에서 반진화론 법안이 심의되었다. 41개 이상의 법안 또는 결의안이 주 의회에 상정되었으며, 일부 주에서는 반복적으로 다루어졌다. 대부분은 거부되었지만, 미시시피와 아칸소는 반진화론 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재판과 브라이언의 죽음 이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영향력은 감소했고, 1970년대 후반 기독교 우파가 부상하면서 다시 정치적으로 강력해졌다.

남서부 지역에서는 목사 R. S. 빌, 오브리 L. 무어, 창조연구학회 회원들이 반진화론 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은 학교에서 진화론을 금지하거나, 성경적 창조론과 함께 가르치는 입증되지 않은 가설로 격하시키려 했다. 교육자, 과학자 및 기타 평신도들은 진화론을 지지했다. 이러한 갈등은 1957년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전국적인 분위기가 과학, 특히 진화론에 대한 신뢰를 높이면서 종식되었다.

진화론 반대자들은 1920년대의 반진화론 운동에서 1960년대의 창조 과학 운동으로 전환했다. 두 운동은 유사점이 있지만, 창조 과학 운동은 진화론에 대한 명백한 종교적 반대에서 은밀한 종교적 반대로의 전환을 나타냈으며, 쐐기 전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창조 과학은 대중적 지도력, 수사적 어조, 분파적 초점 면에서 달랐다. 브라이언과 같은 권위 있는 지도자가 없었고, 종교적 수사 대신 유사 과학적 수사를 사용했으며, 남부가 아닌 캘리포니아와 미시간에서 시작되었다.

4. 1. 아칸소 주 반진화론법 재판 (1968)

1957년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미국에서는 과학 교육 재검토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1968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Epperson v. Arkansas'' 판결에서 진화론 교육 금지법이 종교적인 이유로 특정 이론을 삭제하려는 시도이며, 미국 수정 헌법 제1조의 국교 설립 금지 조항을 위반한다고 판결했다.[10] 이는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최초의 연방 대법원 판결이었다. 테네시 주는 이보다 앞선 1967년에 버틀러 법을 폐지했다.[40]

4. 2. 아칸소 주 수업시간 균등법 재판 (1982)

1981년 아칸소 주에서 제정된 Arkansas Act 590 of 1981영어에 대한 재판에서, 연방 판사 윌리엄 오버턴은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니며 특정 종교 교리를 돕는다는 이유로 1982년 1월 5일 아칸소 주 법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108] 오버턴 판사는 판결문에서 "과학 이론은 불변의 것이 아니며, 그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 사실이나 반증 등에 의해 항상 수정 또는 파기될 수 있다. 그 이론의 용어로 교리화되고, 절대적이며, 결코 수정될 수 없는 것은 과학 이론이 아니다."라고 명시했다.[108]

오버턴 판사는 학교 교육에서 가르쳐야 할 과학 이론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 자연 법칙에 의해 도출된다.
  • 자연 법칙에 대한 언급으로 설명된다.
  • 경험 가능한 세계에 대해 검증 가능하다.
  • 그 결론은 가설적인 것이다. (최종적인 결론일 필요는 없다.)
  • 반증 가능하다.


오버턴 판사의 판결문은 과학의 정의에 관한 훌륭한 논문으로 평가받아, 이후 미국의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 전문이 게재되었다.

4. 3. 루이지애나 주 수업시간 균등법 재판 (1987)

1987년 연방 대법원은 7대 2의 표차로 루이지애나 주 법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판사 2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이 판결로 1920년대에 시작된 진화론 재판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117]

5. 현대의 논쟁

이 재판은 미국 기독교 내에서 심화되는 갈등과, 진실을 찾는 두 가지 방법, 즉 "성경적" 방법과 "진화론적" 방법을 드러냈다.[41] 당시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진화론을 비난했다.[41]

마크 에드워즈는 스콥스 재판 이후 굴욕감을 느낀 근본주의가 정치적, 문화적 배경으로 물러났다는 통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러한 관점은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1960)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현대 역사적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오히려 근본주의의 퇴각 원인은 지도자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죽음이었다. 대부분의 근본주의자들은 재판을 패배가 아닌 승리로 여겼지만, 재판 직후 브라이언의 죽음은 다른 근본주의 지도자가 채울 수 없는 리더십 공백을 만들었다. 브라이언은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인지도, 존경, 그리고 반진화론적 입장을 옹호하는 광범위한 근본주의 및 주류 종교 단체의 연합을 구축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담 샤피로는 스콥스 재판이 종교와 과학 사이의 필수불가결한 갈등이었다는 시각을 비판하며, 이러한 견해가 "자기 정당화적"이라고 주장했다. 대신 샤피로는 스콥스 재판이 새로운 교과서 채택을 연기한 정치적 상황과 같은 특정한 상황의 결과였다는 점을 강조한다.[42]

스콥스 재판은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의 과학 수업에서 진화론 교육을 두고 엄격한 창조론자와 과학자 간의 정치적, 법적 갈등을 심화시켰다. 데이턴 재판 이전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오클라호마, 켄터키 주 의회만이 반진화론 법안 또는 교육 예산 법안에 대한 수정안을 다루었다. 스코프스가 유죄 판결을 받은 후, 미국 전역의 창조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에서도 유사한 반진화론 법안을 추구했다.

1927년까지 미국 북부미국 남부 모두 13개 주에서 어떤 형태의 반진화론 법안을 심의했다. 최소 41개의 법안 또는 결의안이 주 의회에 상정되었으며, 일부 주에서는 이 문제를 반복적으로 다루었다. 거의 모든 노력이 거부되었지만, 미시시피와 아칸소는 스콥스 재판 이후 반진화론 법을 제정했으며, 이는 버틀러 법(1967년까지 유지됨)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나 재판과 브라이언의 죽음 이후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영향력은 감소했고, 1970년대 후반 기독교 우파의 부상 이후에야 보수적인 근본주의자들이 다시 정치적으로 강력해졌다.

남서부 지역에서 반진화론 운동가들은 애리조나의 목사 R. S. 빌과 오브리 L. 무어, 캘리포니아의 창조연구학회 회원들을 포함했다. 그들은 학교에서 진화론을 연구 주제로 금지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성경적 창조론과 함께 가르치는 입증되지 않은 가설의 지위로 격하시키려 했다. 교육자, 과학자 및 기타 저명한 평신도들은 진화론을 지지했다. 이러한 갈등은 다른 지역보다 남서부에서 늦게 발생했으며, 1957년 이후 스푸트니크 시대에 이르러 전국적인 분위기가 과학 전반과 특히 진화론에 대한 신뢰를 높이면서 마침내 종식되었다.

진화론 반대자들은 1920년대의 반진화론 운동에서 1960년대의 창조 과학 운동으로 전환했다. 이 두 운동 사이에는 몇 가지 유사점이 있지만, 창조 과학 운동은 진화론에 대한 명백한 종교적 반대에서 은밀한 종교적 반대로의 전환을 나타냈으며, 때로는 쐐기 전략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창조 과학은 또한 대중적 지도력, 수사적 어조, 분파적 초점 면에서 달랐다. 브라이언과 같은 권위 있는 지도자가 부재했고, 종교적 수사 대신 유사 과학적 수사를 사용했으며, 남부가 아닌 캘리포니아와 미시간의 산물이었다.

스콥스 재판은 미국의 학교 과학 교육에 단기적, 장기적인 영향을 모두 미쳤다. 종종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여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묘사되지만, 그 승리는 완전하지 않았다.[51] 미국 시민 자유 연맹(ACLU)은 이 재판을 대의로 삼았지만, 스코프스의 유죄 판결 이후 버틀러 법을 담당할 자원 봉사자를 더 찾을 수 없었고, 1932년까지 포기했다.[52] 반진화 법안은 1965년까지 다시 제기되지 않았고, 그동안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대의는 브라이언 성서 연맹과 기독교 신앙 수호자를 포함한 여러 단체에 의해 이어졌다.[52]

스콥스 재판이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만장일치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판 이후 가장 널리 사용된 교과서 중 단 하나만이 색인에 '진화'라는 단어를 포함했으며, 해당 페이지에는 성경 인용문이 포함되어 있었다.[51]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스콥스 재판의 결과라고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스코프스가 가르치는 혐의로 재판을 받은 생물 교과서의 저자인 헌터는 스콥스 재판 논란에 대응하여 1926년까지 교과서를 수정했다.[51] 그러나 조지 게일로드 심슨은 이 개념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다고 반박하며, 스콥스 재판을 촉발한 반진화 운동과 법률의 추세 또한 생물 교과서에서 진화가 삭제된 원인이며, 재판 자체가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53] 근본주의자들의 표적은 1930년대 중반에 서서히 진화에서 벗어났다. 밀러와 그라비너는 반진화론 운동이 쇠퇴하면서 생물 교과서에 이전에 삭제되었던 진화론이 포함되기 시작했다고 제안한다.[52] 이는 또한 과학 교과서가 교육자나 교육 전문가가 아닌 과학자에 의해 쓰여야 한다는 요구가 나타난 것과도 일치한다.[51]

이러한 역사적 설명에 대해서도 이의가 제기되었다. 로버트 샤피로는 그의 저서 ''생물학 시도''에서 1910~1920년대의 많은 저명한 생물 교과서를 검토하여 반진화론자들을 달래기 위해 '진화'라는 단어를 피했을 수 있지만, 해당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초점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고, 그 책들은 여전히 암묵적으로 진화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발견했다.[42] 또한 진화가 종교적 압력으로 인해 교과서에서 삭제되었다가 수십 년 후에 복원되었다는 이야기는 휘그사관의 예이며, 이는 생물 과학 커리큘럼 연구에 의해 전파되었고, 생물 교과서가 진화를 논하는 방식의 변화는 다른 인종 및 계급 기반 요인에 기인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54]

1958년, 많은 입법자들이 미국 교육 시스템이 소련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국가 방위 교육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은 미국 생물 과학 연구소와 협력하여 제작된 교과서를 산출했으며, 이 교과서는 진화를 생물학의 통일 원리로 강조했다.[52] 새로운 교육 체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장 큰 반발은 설교와 언론에서 공격이 시작된 텍사스에서 일어났다.[51] 불만이 주 교과서 위원회에 제기되었다. 그러나 연방 정부의 지원 외에도 여러 사회적 추세가 진화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돌렸다. 여기에는 공교육 개선에 대한 관심 증가, 종교와 공교육의 분리를 명시하는 법적 선례, 남부의 지속적인 도시화가 포함되었다. 이는 텍사스에서의 반발 약화, 1967년 테네시에서 버틀러 법의 폐지로 이어졌다.[51]

이후 창조과학은 주장의 일부를 변경하여 지적 설계라는 형태로 바뀌었으며, 최근까지도 다양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5. 1. 지적 설계론의 등장

1982년 오버턴 판사가 과학이 아니라고 부정했던 창조과학은 이후 주장의 일부를 변경하여 현재는 지적 설계(인텔리전트 디자인)라는 형태로 바뀌었다. 생물은 우연히 창조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므로 어떤 고도의 지성이 작용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즉, 세계를 창조한 것은 신이 아니라 어떤 지적인 존재(디자이너)라고 한다. 이 생각은 1802년 영국의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가 『자연 신학』에서 저술한 것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1989년에 출판된 『판다와 인간에 관하여』라는 아동용 도서는 이 지적 설계론의 입문서로 알려져 있는데, 그 안에서는 성경의 사건은 일절 언급되지 않는다.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책을 교과서로 채택하도록 교육 위원회에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2005년 8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적 설계론이 학교에서 가르쳐지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발언했다. 다음 날, 대통령 대변인은 전날 대통령의 발언에 관해 "진화론을 학교 교육에서 배제하려거나 창조론을 가르치려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같은 해 펜실베이니아 주 도버 학군이 고등학교 생물 수업에 지적 설계론을 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학부모의 소송으로 일어난 재판(도버 재판)에서 동 주 연방지법은 12월 20일 해당 교육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존스 판사는 지적 설계론은 "과학 이론이 아닌 종교적 견해"라고 판단했으며, 해당 론의 목적은 "공립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치는 데 있다. 믿을 수 없는 어리석은 행위다"라고 말했다.[109]

5. 2. 현재의 움직임

이 재판은 미국 기독교 내의 심화되는 갈등과, 성경적 방법 및 진화론적 방법이라는 두 가지 진실을 찾는 방법을 드러냈다.[41]

스콥스 재판 이후, 시간이 흘러 창조과학은 주장의 일부를 변경하여 지적 설계(인텔리전트 디자인)라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는 생물이 우연히 창조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므로, 어떤 고도의 지성이 작용했음에 틀림없다는 주장이다. 즉, 세계를 창조한 것은 신이 아니라 어떤 지적인 존재(디자이너)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1802년 영국의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가 『자연 신학』에서 저술한 것을 모방한 것이다.

1987년 대법원에서 공립학교에서의 "창조 과학" 교육에 대해 위헌 판결이 내려진 이후, 1990년대에는 "창조론 운동"이 선거를 통해 교육위원을 배출함으로써 생물 진화 교육을 저지하려 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생물 진화 교육을 둘러싸고 주(州) 차원의 교육위원회에서 논쟁이 일어났다.

1991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7%(대학 졸업자 중 1/4)는 "신이 이 만 년의 어느 시점에서 인간을 거의 현재의 형태로 만들었다"고 믿고 있었다. 2004년 CBS의 조사에서는 55%의 미국인이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2005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적 설계론이 학교에서 가르쳐지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발언했다. 같은 해 펜실베이니아 주 도버 학군에서 고등학교 생물 수업에 지적 설계론을 도입하려 했으나, 도버 재판에서 연방지법은 해당 교육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존스 판사는 지적 설계론은 "과학 이론이 아닌 종교적 견해"이며, 그 목적은 "공립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치는 데 있다. 믿을 수 없는 어리석은 행위다"라고 말했다.

2009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진화론"을 믿는 사람은 39%에 불과했으며,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이 25%,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36%였다.

6.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

스콥스 재판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에서도 종교와 과학 간의 갈등이 존재하며, 특히 교육 현장에서의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일부 종교 단체는 진화론 교육에 반대하며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콥스 재판은 과학 교육의 중요성과 함께, 종교적 신념과 과학적 사실 간의 균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이지만, 종교적 신념 역시 개인의 삶에 중요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학교 교육에서는 과학적 사실을 정확하게 가르치면서도, 다양한 종교적 관점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7. 대중 문화

스코프스 재판은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1955년 연극 '바람의 상속자'와 이를 바탕으로 한 1960년 영화 '바람의 상속자'가 유명하다.[78] 이 작품은 스코프스 재판을 매카시즘에 대한 비판으로 활용하며, 실제 사건을 일부 각색했다.[79][80][81][82][83][84][85][86][87]

스펜서 트레이시(왼쪽)는 클라렌스 다로우를 모델로 한 헨리 드러먼드 역을, 프레드릭 마치(오른쪽)는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모델로 한 매튜 해리슨 브레이디 역을 맡았고, 해리 모건(배경)은 판사 역을 연기한 영화 ''바람의 상속자'' 예고편의 한 장면

  • 영화 및 연극:
  • 연극 ''바람의 상속자''(1955): 매카시 재판을 비판하기 위해 스코프스 재판을 허구화했다.[78] 클라렌스 다로우와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각각 헨리 드러먼드와 매튜 브래디라는 인물로 묘사되었다.[78]
  • 영화 ''바람의 상속자''(1960):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 스펜서 트레이시프레드릭 마치 주연.[78]
  • TV 영화 ''바람의 상속자''(1965): 멜빈 더글러스에드 베글리 주연.
  • TV 영화 ''바람의 상속자''(1988): 제이슨 로바즈와 커크 더글러스 주연.
  • TV 영화 ''바람의 상속자''(1999): 잭 레몬과 조지 C. 스콧 주연.
  • 희곡 ''위대한 테네시 원숭이 재판''(1993): 피터 굿차일드 작품으로, 역사적 정확성을 위해 재판 기록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88]
  • 희곡 ''진실을 상속하다''(1987): 게일 존슨 작품으로, 실제 사건 기록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데이턴 주민들은 이 작품이 1955년 희곡과 1960년 영화보다 재판과 브라이언을 더 정확하게 묘사한다고 평가했다.[92][94]
  • 영화 ''얼레지드''(2010): 브라이언 데니히와 프레드 톰슨 주연으로, 실제 재판 기록을 충실히 반영했다.[97]

  • 기타:
  • ''심슨 가족'' 에피소드 "리사, 회의론자가 되다"(1997): 스코프스 재판에서 영감을 받았다.[97]
  • ''드렁크 히스토리'' "내슈빌" 에피소드(2013): 재판의 일부를 재현했다.[98]
  • 뮤지컬 "볼 것이 아무것도 없다"(2018): 스코프스 재판을 각색했다.[99]
  • 로널드 키드의 소설 ''몽키 타운''(2006): 스코프스 재판을 배경으로 한다.[101][102]
  •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 "부분적 인간, 부분적 원숭이": 스코프스 재판을 언급한다.[105]
  • ''갤러리: 몽키 재판'': 재판에 대한 반응으로 만들어진 만화를 보여준다.[100]

  • 음악:
  • PBS ''아메리칸 익스피리언스'' 관련 민요:[103]
  • "브라이언의 마지막 싸움"
  • "나를 원숭이로 만들 수 없어"
  • "원숭이 사업"
  • "나에게서 원숭이"
  • "존 스코프스 재판 (결국 옛 종교가 더 낫다)"
  • "벌레는 없어"
  • 빌리 머레이의 "원숭이 비즈니스(테네시 다운)": 스코프스 재판에 관한 코미디 곡이다.[104]


스코프스 재판은 이처럼 다양한 예술 작품의 소재로 활용되며, 대중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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