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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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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은 1988년 7월 3일, 미국 해군의 미사일 순양함 빈센스호가 이란 항공 655편 여객기를 격추하여 승객과 승무원 290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이란-이라크 전쟁 중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했으며, 빈센스호가 이란 전투기로 오인하여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이후 미국은 유감을 표명하고 보상금을 지급했지만,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이 사건은 이란과 미국 간의 관계를 악화시켰으며, 국제 항공 안전에 대한 우려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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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
기본 정보
이란 항공 에어버스 A300 항공기, 사고기와 유사
이란 항공 에어버스 A300, 사고기와 유사함
발생 유형격추 (에서 발사된 미사일에 의해 격추); 격추 원인에 대한 논쟁 있음
발생 위치호르무즈 해협, 게슘 섬 근처, 이란
항공기 종류에어버스 A300B2-203
운영 주체이란 항공
IATAIR655
ICAOIRA655
콜사인IRANAIR 655
등록 기호EP-IBU
출발지테헤란 메흐라바드 국제공항, 이란
경유지반다르압바스 국제공항, 이란
목적지두바이 국제공항, 아랍에미리트
탑승 인원290명
승객274명
승무원16명
사망자290명
생존자0명
사건 일시
날짜1988년 7월 3일
관련 함선
배상금
금액US$ 6180만 (1996년 기준)
현재 가치약 $ ( 기준)
기타 정보

2. 배경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1984년부터는 이라크와 이란 간의 전쟁이 확대되면서, 이라크의 석유 수송을 지원하던 주변 국가들의 유조선과 상선에 대한 공습이 시작되었다. 이를 유조선 전쟁이라고 부른다.[79]

1987년에는 이라크 공군이 이란 군함으로 오인하여 미 해군 프리깃함 스타크를 공격, 미국 해군 3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페르시아 만에서 미국 유조선이 기뢰에 피격되자, 미국은 추가 군함을 파견했다. 1987년 말, 미군은 이란 전투기 2대에 대응하여 미사일을 발사하기도 했다. 1988년 4월, 미국은 프레이잉 맨티스 작전을 통해 이란의 석유 시설과 군대에 큰 피해를 입혔다.

이처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국 합동참모본부1987년 9월 8일, 페르시아 만의 모든 국가에 민간 항공기가 국제 항공 조난 주파수를 감시하고 미 해군 함정에 신원과 의도를 밝힐 준비를 하도록 경고하는 항공 고시(NOTAM)를 발령했다. 그러나 이란은 이 고시의 유효성과 정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2. 1. 이란-이라크 전쟁과 유조선 전쟁

1984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확대되면서 이라크 석유 수송을 지원하던 인접 국가들의 유조선과 상선에 대한 공습이 시작되었다.[1] 격추 사건 1년 전인 1987년, 이라크 공군은 이란 군함으로 오인하여 미 해군 프리깃함을 공격하여 미국 해군 3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페르시아 만에서 미국 유조선이 기뢰에 의해 피격된 후 추가 군함이 이 지역으로 파견되었고, 1987년 말까지 미군은 이란 전투기 2대에 대해 대응하고 미사일을 발사했다.[2] 1988년 4월, 미국은 기뢰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프레이잉 맨티스 작전에 참여하여 이란의 석유 기반 시설과 군대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3]

호르무즈 해협은 가장 좁은 지점에서 21nmi 폭이며, 해협을 통과하려면 이란과 오만영해를 통과하는 항로를 따라야 한다.[4] 페르시아 만을 출입하는 군함을 포함한 선박이 이란 영해를 통과하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이란군은 이라크로 향하는 금지 물품을 찾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중립 화물선을 빈번하게 탑승하여 검사했다. 이는 국제법상 합법이었지만, 이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켰다.[5]

선박에 대한 공격 패턴에 대응하여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1987년 9월 8일 '항공 고시'(NOTAM)를 발령하여 페르시아 만의 모든 국가에 민간 항공기가 국제 항공 조난 주파수를 감시하고 미 해군 함정에 신원을 밝히고 의도를 설명할 준비를 하도록 경고했다.[6]

당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항행하는 교전국 이외의 민간 유조선도 공격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미국 해군은 그 경호를 겸하여 호르무즈 해협 근교에서 해군의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에 대해 인접한 해역에 위치한 이란은 감시 행동을 취했으며, 이란 공군의 F-14가 연일 출격했다.

1987년에는 미국 해군의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미사일 프리깃 "스타크"가 이라크 공군의 미라주 F1에 엑조세공대함 미사일을 오사(誤射)당해 승무원 37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일어나 양국 간에는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2. 2. USS 스타크 피격 사건과 미국의 대응

1987년, 이라크 공군은 이란 군함으로 오인하여 미 해군 프리깃함 스타크를 공격해 미국 해군 37명이 사망했다.[11] 페르시아 만에서 미국 유조선이 기뢰에 의해 피격된 후 추가 군함이 이 지역으로 파견되었고, 1987년 말까지 미군은 이란 전투기 2대에 대해 대응하고 미사일을 발사했다.

1988년 4월, 미국은 기뢰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프레이잉 맨티스 작전에 참여하여 이란의 석유 기반 시설과 군대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이 사건에 앞서, 1987년에는 미국 해군의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미사일 프리깃 "스타크"가 이라크 공군의 미라주 F1에 엑조세공대함 미사일을 오사(誤射)당해 승무원 37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일어나 양국 간에는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3. 사건 발생 과정

이란-이라크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호르무즈 해협 상공에서 이란 항공 655편(기종:에어버스 A300, 등록번호:EP-IBU)이 미국 해군 이지스함 빈센스호의 스탠더드 미사일에 피격되어 탑승객 290명 전원이 사망했다.

항공기 655편의 A59 항공 회랑을 통과하는 예정 비행 경로(보라색)와 빈센스호가 추적한 경로(빨간색)


1988년 7월 3일, 이란 항공 655편은 테헤란 메흐라바드 국제공항을 출발해 반다르압바스 국제공항에 기착한 후 두바이 국제공항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륙 직후, 빈센스호는 이란 해군 전투정과의 교전 중이었고, 이란 영해에 진입한 상태였다.[74]

빈센스호는 655편을 F-14 전투기로 오인하고, 군사 및 민간 조난 신호로 여러 차례 경고했으나 응답이 없었다.[74] 655편은 민간 항공기 식별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빈센스호는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74] 결국 빈센스호는 655편을 향해 함대공 미사일 2발을 발사했고, 이 중 최소 1발이 명중하여 격추되었다.[74]

사건 당시 상황은 아래와 같이 시간 순서대로 정리할 수 있다.

시간내용
6시 33분빈센스호 함장 윌리엄 C. 로저스 3세 대령은 엘머 몽고메리호에 지원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받았다.[75]
7시 11분로저스 함장은 사령부에 엘머 몽고메리호 지원을 요청했고, 리차드 매케나 대령은 빈센스호에 탑재된 SH-60B 헬리콥터 파견을 허가했다.[75]
8시 40분매케나 대령은 빈센스호 자신도 엘머 몽고메리호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즉시 되돌아오라고 명령했다.[75]
9시 15분빈센스호에서 파견된 SH-60B가 이란군 전투정으로부터 사격을 받았기 때문에 빈센스호는 현장으로 급히 이동했고, 사이즈호도 인근으로 이동했다.[74]
9시 41분중동 기동 부대 사령관의 허가를 받아 엘머 몽고메리호와 빈센스호는 함포를 통해 이란군 전투정과 교전을 시작했다. 이란군 전투정은 반격하면서 북쪽 이란 영해를 향해 후퇴했다.[74]
9시 47분이란 항공 655편은 반다르아바스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두바이로 향했다(정시보다 30분 지연). 빈센스호의 레이더는 655편이 이륙한 직후부터 기체를 포착하고 있었다. 655편은 민간 여객기 신호를 발신했지만, 빈센스호는 655편 이륙 직후 수신한 이란 공군기의 IFF (피아 식별) 코드도 655편의 IFF 코드로 계속 추적하면서 접근하는 655편이 군용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74]
9시 50분빈센스호의 51번 포(함수 쪽)에서 장전 불량 발생. 이후 함미 쪽 52번 포 사계를 확보하기 위해 전속 항주하며 급격한 변침을 반복했다. 전투 지휘소 내는 물품과 자료가 흩어졌고, 오퍼레이터 조작 미숙으로 콘솔 키 오조작 횟수는 총 23회에 달했다. 교전 중 빈센스호는 이란 영해에 진입했다.[74]
9시 51분빈센스호 로저스 함장은 중동 기동 부대 사령관에게 "이란군 F-14 전투기"(실제로는 655편) 접근을 보고했다. 거리 였으며, 까지 접근할 경우 공격하겠다고 보고했고, 사령관도 이를 승인했다.[74] 이후 빈센스호는 655편에 군사 조난 신호(MAD)와 국제 항공 조난 신호(IAD)로 경고했지만, 655편이 자기에 대한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74]
9시 53분빈센스호에서 이란 항공에 마지막 경고를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74] 655편은 항공로 상에서 속도를 높여 상승했지만, 빈센스호는 이를 가속 및 강하하여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오판했다.[74]
9시 54분빈센스호는 거리 10마일, 고도 13,500피트의 "목표"에 대해 SM-2MR 블록 II 함대공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이 중 최소 1발이 명중하여 격추했다.[74]


3. 1. 이란 항공 655편의 운항 정보

이란 항공 655편(IR655)은 이란 반다르아바스에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가는 정기 여객기였다. 이 여객기는 에어버스 A300B2-203 기종으로, 등록번호는 EP-IBU였다.[4]

사고 당시 이란 항공 655편의 조종은 7,000시간의 비행 경력을 가진 38세의 모센 레자이안 기장이 맡았다. 부조종사는 31세의 캄란 테이모리였고, 항공 기관사는 33세의 모하마드 레자 아미니였다. 이들은 모두 최소 2,000시간의 비행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1988년 7월 3일, 이란 항공 655편은 이민 문제로 인해 예정보다 27분 늦은 오전 10시 17분(이란 표준시)에 반다르아바스를 출발했다. 이륙 전 반다르아바스 관제탑은 항공기에게 응답기를 켜고 페르시아 만 상공으로 향하도록 지시했다. 항공기는 두바이 공항으로 향하는 상업용 항공 회랑 앰버 59로 지정되었으며, 약 4267.20m까지 상승하여 순항한 후 두바이로 하강하는 일반적인 비행 경로를 따랐다. 또한 민간 항공기의 표준 "스쿼크" 코드를 전송하고, 항공 교통 관제 시설과 영어로 무선 통신을 유지했다.

3. 2. USS 빈센스호의 작전 상황

는 1988년 7월 3일, 유조선 호위 임무를 마치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었다.[74] 당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페르시아 만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미 해군은 유조선 보호를 위해 군함을 배치했다.

호에 탑재된 전투 정보 센터


는 4년 전에 취역한 타이콘데로가급 유도 미사일 순양함으로, 최신 이지스 전투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승무원은 400명이었으며, 윌리엄 C. 로저스 3세 대령이 지휘했다. 이지스 시스템은 해상과 공중의 여러 표적을 동시에 추적하고, 승무원 간 신속한 정보 공유를 가능하게 했다. 승무원들은 실전 경험은 부족했지만 훈련에서는 높은 성과를 보였다.

호르무즈 해협은 가장 좁은 곳의 폭이 21nmi이며, 해협을 통과하려면 이란과 오만영해를 지나는 항로를 따라야 했다.[1] 페르시아 만을 드나드는 군함을 포함한 선박들은 이란 영해를 통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이란군은 이라크로 가는 금지 물품을 찾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중립 화물선을 자주 검문했다. 이는 국제법상 합법이었지만, 지역 긴장을 높였다.[2]

사건 당일, 는 SH-60B 시호크 헬리콥터가 이란 순찰선으로부터 소화기 사격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고 이란 함정들과 교전을 벌였다.[74] 이 과정에서 는 이란 포함을 추격하여 이란 영해로 진입했다.

다음은 사건 당시 빈센스함의 작전 상황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시간내용
6시 33분함장 윌리엄 C. 로저스 3세 대령Elmer Montgomery에 지원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받았다.[75]
7시 11분로저스 함장은 사령부Elmer Montgomery 지원을 요청했고, 리차드 매케나 대령은 에 탑재된 SH-60B 시호크 헬리콥터 파견을 허가했다.[75]
8시 40분매케나 대령은 자신도 Elmer Montgomery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즉시 되돌아오라고 명령했다.[75]
9시 15분에서 파견된 SH-60B가 이란군 전투정으로부터 사격을 받았기 때문에 는 현장으로 급히 이동했고, Sides도 인근으로 이동했다.[74]
9시 41분중동 기동 부대 사령관의 허가를 받아 Elmer Montgomery와 는 함포를 통해 이란군 전투정과 교전을 시작했다. 이란군 전투정은 반격하면서 북쪽 이란 영해를 향해 후퇴했다.[74]
9시 50분의 51번 포(함수 쪽)에서 장전 불량 발생. 이후 함미 쪽 52번 포의 사계를 확보하기 위해 전속 항주하며 급격한 변침을 반복했다. 이로 인해 전투 지휘소 내는 물품과 자료가 흩어져 대혼란에 빠졌다. 오퍼레이터는 조작에 미숙했고, 콘솔 키 오조작 횟수는 총 23회에 달했다. 또한 교전 중 는 이란 영해에 진입했고, 이를 근거로 이란군의 공격을 받을 우려가 있었다.[74]


3. 3. 오인과 격추



1988년 7월 3일, 이란 항공 655편은 반다르아바스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두바이로 향하던 중, 미국 해군의 미사일 순양함 빈센스호에 의해 격추되었다. 이 사건은 빈센스호 승무원들이 655편을 이란 공군의 F-14 톰캣 전투기로 오인하면서 발생했다.

빈센스호는 당시 최신 이지스 전투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으며, 여러 표적을 동시에 추적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실제 분쟁 경험은 부족했다.[4]

호르무즈 해협은 좁은 해역으로,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군은 금지 물품을 찾기 위해 중립 화물선을 빈번하게 검사했다. 이는 긴장을 고조시켰다.[2]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1987년 9월 8일 항공 고시(NOTAM)를 발령하여 민간 항공기에 국제 항공 조난 주파수를 감시하고 미 해군 함정에 신원을 밝힐 것을 경고했다.

이란 항공 655편은 에어버스 A300 여객기로, 응답기를 켜고 페르시아 만 상공으로 향했다. 이 항공편은 상업용 항공 회랑 앰버 59로 지정되었으며, 올바른 "스쿼크" 코드를 전송하고 영어로 무선 통신을 유지했다.

빈센스호는 이란 순찰선과 교전 후, 655편을 IFF 모드 II 신호로 탐지하고, F-14 톰캣 전투기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있다.[4] 그러나 이지스 시스템은 해당 여객기가 상승 중이었고, 민간 주파수인 모드 III로 스쿼크를 전송하고 있음을 기록했다.[4]

빈센스호는 655편에 경고하기 위해 군용 및 민간 주파수로 총 11번의 시도를 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항공기가 무선 호출에 응답하지 않고 빈센스호를 향해 계속 이동하자, 함정 승무원은 교전 절차를 시작했다. 미사일 발사를 승인할 책임이 있는 해군 장교는 잘못된 버튼을 여러 번 눌렀고, 미사일 시스템 감독관은 "방사선 할당 요청"을 22번 눌렀지만 무효가 되었다.[14]

항공기 655편 잔해의 일부. 잔해의 대부분은 회수되지 못했다


10시 24분 22초, 빈센스호는 두 발의 SM-2MR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했다. 첫 번째 미사일은 10시 24분 43초에 여객기를 요격했고, 두 번째 미사일도 곧 여객기를 요격했다.[14] 비행기는 세 조각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물에 추락했다. 탑승한 290명 전원이 사망했다.[5]

미사일 발사 당시 빈센스호는 이란 영해 내에 있었다.[7]

1987년 훈련 중 빈센스호에서 발사된 미사일. 같은 발사대가 655편 격추에 사용되었다.


미국 국방부는 처음에 빈센스호가 이란의 F-14를 격추했다고 밝혔지만, 몇 시간 안에 목표가 민간 에어버스였다고 정정했다.[11] 미국 정부는 빈센스호가 실수로 여객기를 공격 군용 전투기로 식별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지스 시스템은 항공기가 상승 중이었다고 기록했다.[4]

빈센스호는 접근하는 항공기에 군사 및 민간 비상 주파수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민간 항공기는 군사 주파수를 수신할 수 없었고, 민간 비상 채널의 메시지는 어떤 항공기에도 전달될 수 있었다.[13]

1988년 7월 3일, 윌리엄 포가티 제독의 보고서(포가티 보고서)는 "빈센스호의 테이프 데이터, USS 사이즈의 정보 및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이란 항공 655편]이 정상적인 상업 항공 비행 계획 프로파일에 따라 계속 고도를 상승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라고 밝혔다.[15][16]

포가티 보고서는 또한 "이란은 계속 진행 중인 적대 행위와 근접한 비교적 낮은 고도의 항공로를 비행하도록 허용하여 민간 여객기의 위험을 감수한 것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17]

2000년 BBC 다큐멘터리는 빈센스호 승무원들의 동시 심리적 상태, 즉 "시나리오 충족"이 사건의 원인일 수 있다고 밝혔다.[18]

이란 정부는 격추가 의도적인 불법 행위였다고 주장했다. 오인 식별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과실과 무모함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란은 빈센스호의 첨단 이지스 레이더가 비행과 모드 III 비콘을 정확히 추적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다른 두 척의 미국 군함도 해당 항공기를 민간 항공기로 식별했으며, 비행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항공 회랑 내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미국이 이전에 항공기에 지역 공항 허가 없이 군함으로부터 5nmi 이내, 고도 약 609.60m 미만으로 접근할 경우 "방어 조치" 위험이 있다는 ''항공 고시''(NOTAM)를 발령했으나, 655편은 그 한계를 벗어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심지어 그 비행기가 정말로 이란 F-14였다 하더라도, 이란 영공 내에서 비행했고 공격 프로필로 간주될 수 있는 경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 격추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ICAO 보고서에 따르면, 빈센스호는 이란 항공 655편에 11번의 연락을 시도했지만, 655편 승무원은 조종실 계기에서 300kn의 속도를 보았을 것이며, 이는 빈센스호가 다른 항공기에 말을 걸고 있다고 결론 내렸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 당시 이지스 시스템 소프트웨어는 디스플레이에서 추적 번호를 재사용하여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 결함을 초래했다.[38][39][40]
  • 승무원에 대한 심리 평가는 스트레스와 전쟁 경험 부족이 오판과 데이터의 무의식적인 왜곡으로 이어졌다고 결론 내렸다.[40]
  • 전술 정보 조정관은 항공 655편의 고도가 하강하고 있다고 보고했지만, 전투 승무원은 컴퓨터 시스템에 명확하게 표시된 데이터를 확인하지 않았다.
  • 항공 655편이 이륙할 때, 이란 공군 F-14 전투기도 반다르 아바스 활주로에 있었다.
  • 함장은 이란 655편이 지상 및 공중 공격에 관여한 F-14라고 생각한다.
  • 빈센스호는 마지막 몇 분 동안 민간 비상 주파수로 세 번의 무선 경고를 보냈지만, 정확히 누구에게 말하는지 식별하지 못했다.
  • 비행 중 항공 655편은 레이더에 자신이 어떤 항공기인지 알려주는 고유한 스쿼크 코드를 전송했지만, 미국 해군은 이 표준 코드를 사용하도록 훈련시키지 않는다.
  • 함정에는 특정 민간 항공 주파수에 맞춰진 무선 장비가 없다.
  • 함정의 IFF는 이란 항공 655편을 모드 3으로 표시하는데, 이는 항공기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식별하기에 불충분한 일반 주파수이다.
  • 함정의 승무원은 민간 항공기 스케줄을 효율적으로 참조하지 못했다.
  • 이란의 P-3가 공격 전에 그 지역에 있었다.
  • 빈센스호는 처음에 헬리콥터를 보내 고속정 상황을 조사하도록 승인받았다.


사건 당시 빈센스호는 중동 기동 부대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수상 전투단의 지휘함으로 행동했다.[74]
사건 발생 타임라인

시간내용
6시 33분빈센스호 함장 윌리엄 C. 로저스 3세 대령은 엘머 몽고메리호에 지원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받았다.[75]
7시 11분로저스 함장은 사령부에 엘머 몽고메리호 지원을 요청했고, 리차드 매케나 대령은 빈센스호에 탑재된 SH-60B LAMPS헬리콥터 파견을 허가했다.[75]
8시 40분매케나 대령은 빈센스호 자신도 엘머 몽고메리호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즉시 되돌아오라고 명령했다.[75]
9시 15분빈센스호에서 파견된 SH-60B가 이란군 전투정으로부터 사격을 받았기 때문에 빈센스호는 현장으로 급히 이동했고, 사이즈호도 인근으로 이동했다.[74]
9시 41분중동 기동 부대 사령관의 허가를 받아 엘머 몽고메리호와 빈센스호는 함포를 통해 이란군 전투정과 교전을 시작했다. 이란군 전투정은 반격하면서 북쪽 이란 영해를 향해 후퇴했다.[74]
9시 47분이란 항공 655편은 반다르아바스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두바이로 향했다(정시보다 30분 지연).반다르아바스는 군민 공용 공항이며, 미국군은 이 공항에 이란 공군의 F-14가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빈센스호의 레이더는 반다르아바스 공항에서 655편이 이륙한 직후부터 기체를 포착하고 있었다. 655편은 민간 여객기의 신호(ATC 트랜스폰더의 응답 전파)를 발신했지만, 우연히도 빈센스호는 655편이 이륙하기 전후에 반다르아바스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F-14의 신호를 수신하게 되었다. 655편은 관제관의 지시에 따라 ATC 트랜스폰더 모드 3으로 설정하고 비행하고 있었다. 빈센스호는 트랜스폰더의 신호(스크워크 코드)로 민간 항공기일 가능성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655편 이륙 직후 수신한 이란 공군기의 IFF (피아 식별) 코드도 655편의 IFF 코드로 그대로 추적을 계속하면서 접근해오는 655편이 군용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74]
9시 50분빈센스호의 51번 포(함수 쪽)에서 장전 불량 발생. 이후 함미 쪽 52번 포의 사계를 확보하기 위해 전속 항주하며 급격한 변침을 반복했다. 이로 인해 전투 지휘소 내는 물품과 자료가 흩어져 대혼란에 빠졌다. 오퍼레이터는 조작에 미숙했고, 콘솔 키 오조작 횟수는 총 23회에 달했다. 또한 교전 중 빈센스호는 이란 영해에 진입했고, 이를 근거로 이란군의 공격을 받을 우려가 있었다.[74]
9시 51분빈센스호의 로저스 함장은 중동 기동 부대 사령관에게 "이란군 F-14 전투기"(실제로는 655편)의 접근을 보고했다. 이 시점에서 거리는 였으며, 까지 접근할 경우 공격하겠다는 보고를 했고, 사령관도 이를 승인했다.[74]이후 빈센스호는 655편에 군사 조난 신호(MAD)와 국제 항공 조난 신호(IAD)로 경고했지만, 민간 항공기인 이란 항공기에는 MAD 수신기가 장착되어 있지 않았고, 조종사는 IAD를 모니터하지 않았거나, 모니터했다 하더라도 경고 내용은 항로, 대지 속도, 비행 고도 정도의 정보만 있었고, 편명이나 항공사명조차 포함되지 않은 막연한 경고였기에, 655편이 자기에 대한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74] 하지만 블랙 박스는 모두 회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2020년 현재도 불분명하다.[76]빈센스호는 고속으로 접근해오는 655편이 민간 항공기인지, 아니면 경비정을 미끼로 한 공동 작전에 참여하는 군용기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빈센스호 서쪽 160해리 부근에는 이란 공군의 초계기 P-3F가 해상 정찰 임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빈센스호의 함정 지휘부는 "전투정, F-14, P-3F가 연계한 공해 공동 작전이다"라는 잘못된 시나리오를 믿게 되었다. 엘머 몽고메리호 및 사이즈호에서는 목표를 민간 항공기로 식별했지만, 이지스 시스템을 탑재한 빈센스호가 두 함보다 양질의 정보를 얻고 있다고 판단했다.[74]
9시 53분빈센스호에서 이란 항공에 마지막 경고를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74]함선의 전투 지휘소 (CIC) 내에서 정보가 뒤섞이는 가운데, 655편은 항공로 상에서 속도를 높여 상승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빈센스호는 이를 가속하면서 강하하여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오판했다.[74]
9시 54분빈센스호는 거리 10마일, 고도 13,500피트의 "목표"에 대해 SM-2MR 블록 II함대공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이 중 최소 1발이 명중하여 이를 격추했다.[74] 곧 빈센스호의 승무원은 격추한 "목표"가 민간 항공기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때는 늦었다.


4. 사건 원인 분석

이란-이라크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1988년 7월 3일, 호르무즈 해협 상공에서 발생한 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비극이었다.

미국 해군 이지스함 빈센스(USS Vincennes, CG-49)호에어버스 A300 여객기를 이란 공군의 F-14 전투기로 오인하여 스탠더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로 인해 탑승객 290명 전원이 사망했다.

사건 발생 8년 후인 1996년 미국이란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합의에 이르렀고, 이란 정부는 미국에 대한 소송을 취하했다. 미국 정부는 유가족들에게 6180만달러를 보상금으로 지불했으나,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고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79]

이 사건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존재한다.
미국 측 주장:


  • 미국 정부는 승조원이 에어버스 A300기를 이란 공군의 F-14로 오인했다고 주장했다.
  • ''빈센스''호는 접근하는 항공기에 군사 및 민간 비상 주파수로 여러 차례 경고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밝혔다.
  •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1987년 9월 8일, 페르시아 만의 모든 국가에 민간 항공기가 국제 항공 조난 주파수를 감시하고 미 해군 함정에 신원을 밝히도록 경고하는 '항공 고시'(NOTAM)를 발령했다.[11][13]

이란 측 주장:

  • 이란 정부는 이지스함이 항공기가 민항기임을 알고도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 ''빈센스''호의 첨단 이지스 레이더가 비행과 모드 III 비콘을 정확히 추적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오인 식별 주장에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 ''Vincennes''의 승무원은 수백 대의 적 항공기의 동시 공격에 대처하도록 훈련받았다고 언급하며, ''Vincennes''가 "그 능력을 과시할 기회를 갈망했다"는 주장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했다.[19][20]
  •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 이란 외무부 장관은 격추 사건을 "민간 항공 역사상 가장 비인간적인 군사 공격"이라고 비난했다.[21]

제3의 분석:

  • ''Americ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편집 위원회 안드레아스 로웬펠트 교수는 미국이 사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미국의 공식 입장을 비판했다.[22][23]
  • 한 법학자는 ''Yale Journal of International Law''에서 "항공기 655편 격추 사건은 ''빈센스''호의 함장이 상황을 지상 및 공중 공격으로 합리적으로 오인했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건을 실수 문제로 재개념화하는 것은 ''빈센스''호의 책임을 면제하지 않습니다."라고 언급했다.[25]
  • 국제 전략 연구 협회는 이지스 순양함 배치 자체가 무책임했으며, 이지스 순양함에 부여한 가치가 낮은 사격 개시 기준 설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28]
  • 사건 당시 ''빈센스''호에 가장 가까이 있던 USS ''사이드스''호의 지휘관 데이비드 칼슨 사령관은 항공기 파괴가 "로저스 함장의 공격성의 끔찍한 절정"을 나타냈다고 말했다.[33]
  • 1989년, 윌리엄 크로우 제독은 나이트라인에서 이란 영해 내 빈센스의 위치를 대중에게 공개했다.[22][23]
  • 국제 민간 항공 기구 (ICAO)의 1988년 12월 보고서는 ''빈센스''호가 이란 영해 안에 있었다고 밝혔다.[32]

4. 1. 기술적 요인

이지스 시스템의 소프트웨어는 디스플레이에서 추적 번호를 재사용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지스 소프트웨어는 처음에는 이란 항공 655편에 TN4474 식별자를 할당했다. ''빈센스''가 발사되기 전에, 이지스 소프트웨어는 이란 항공 655편의 추적 번호를 TN4131로 변경하고 이란 항공 655편의 이전 추적 번호인 TN4474를 110마일 떨어진 전투기에 할당했다. 함장이 TN4474의 상태를 묻자, 전투기이며 하강 중이라는 답변을 받았다.[38][39][40]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은 이를 최악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재해 중 하나로 평가했다.[41]

포가티 제독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승무원에 대한 심리 평가는 스트레스와 전쟁 경험 부족이 오판과 데이터의 무의식적인 왜곡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이지스 시스템의 데이터 오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40]

격추 직전 몇 분 동안, 전술 정보 조정관은 이란 항공 655편의 고도가 하강하고 있다고 보고했지만, 다른 전투 승무원은 전투 정보 센터의 컴퓨터 시스템에 명확하게 표시된 데이터를 사용하여 이 정보를 확인하지 않았다. ''빈센스''에 기록된 상세 데이터에 따르면, IR655는 하강하지 않았다.

이란 항공 655편이 이륙할 때, 이란 공군 F-14 전투기도 반다르 아바스 활주로에 있었다. 항공기 식별 감독관은 이란 항공 655편이 이륙할 때 이를 연결했지만, 반다르 아바스에서 볼 탭을 옮기는 것을 소홀히 하여 거의 90초 동안 연결된 상태로 두었다. 갈고리가 빈센스를 향해 이동했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반다르 아바스의 IFF 신호를 읽고 있었다.

함장은 이란 항공 655편이 지상 및 공중 공격에 관여한 F-14라고 생각했다.

''빈센스''는 마지막 몇 분 동안 민간 비상 주파수로 세 번의 무선 경고를 보냈지만, 정확히 누구에게 말하는지 식별하지 못했다. 무선 승무원은 항공기의 지상 속도를 언급했지만, 이란 항공 655편은 공중 속도로 운항하고 있었다. 항공기의 공중 속도는 ''빈센스''가 언급한 속도보다 50노트 느렸을 수 있다.

비행 중 이란 항공 655편은 레이더에 자신이 어떤 항공기인지 알려주는 고유한 스쿼크 코드를 전송했다. ''빈센스''가 이 특정 코드를 사용하여 항공 승무원에게 경고했다면, 조종사들은 즉시 위험 구역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해군은 민간 항공기와 대화할 때 이 표준 코드를 사용하도록 무선 요원을 훈련시키지 않았다.

복잡한 기술에도 불구하고, 함정에는 특정 민간 항공 주파수에 맞춰진 무선 장비가 없었다.

함정의 IFF는 이란 항공 655편을 모드 3으로 표시했는데, 이는 항공기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식별하기에 불충분한 일반 주파수였다.

함정의 승무원은 민간 항공기 스케줄을 효율적으로 참조하지 못했는데, 스케줄이 어느 시간대를 참조하는지에 대한 혼란 때문이었다. 스케줄 비행 시간은 반다르 아바스 공항 시간을 사용한 반면 ''빈센스''는 바레인 시간을 사용했다. 항공기의 출발 시간은 예정보다 27분 늦었다. 전투 정보 센터(CIC)도 매우 어두웠고, 몇 안 되는 조명은 ''빈센스''가 고속정에 발포할 때마다 깜박거렸다.[42]

이란의 P-3가 공격 전에 그 지역에 있었고, 일부 보고서는 이란 항공 655편에서 레이더 신호가 감지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43] 다른 보고서는 에어버스가 이륙 직후 순양함의 AN/SPY-1 레이더에 의해 즉시 감지되었다고 주장한다.[2]

4. 2. 인적 요인

USS 빈센스호의 함장 윌리엄 C. 로저스 3세


윌리엄 C. 로저스 3세 대령은 격추 당시 400명의 승무원으로 구성된 타이콘데로가급 유도 미사일 순양함 USS ''빈센스''의 함장이었다. ''빈센스''에는 당시 최신 이지스 전투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었으며, 승무원들은 실제 분쟁 경험은 부족했지만 훈련 시나리오에서는 매우 높은 성과를 보였다.[29][30] ''빈센스''는 승무원과 다른 미국 해군 함정에 의해 이지스 시스템과 함장의 공격적인 성향을 언급하며 "''로보크루저''"라는 별명을 얻었다.[29][30]

국제 전략 연구 협회의 사건 분석은 이 지역에 이지스 순양함을 배치한 것은 무책임하다고 묘사했으며, 미국 해군이 이지스 순양함에 부여한 가치가 사격 개시의 낮은 기준 설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다.[28]

USS ''사이드스''호의 지휘관 데이비드 칼슨 사령관은 항공기 파괴가 "4주 전에 처음 보였던 로저스 함장의 공격성의 끔찍한 절정"을 나타냈다고 말했다.[33] 칼슨은 ''빈센스''호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로저스가 비행기가 급강하하고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칼슨은 미국 해군 회보에 ''빈센스''호의 의도를 듣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큰 소리로 궁금해했다"고 적었다. 사건으로 이어진 "분위기"에 대해 추측하면서, 칼슨은 ''빈센스''호의 승무원들이 "페르시아 만에서 이지스의 실행 가능성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그들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를 갈망했다"고 말했다.[35]

1992년 7월 13일 ''Newsweek'' 잡지에 실린 기사에서 존 배리와 로저 찰스는 로저스가 부주의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8]

포가티 제독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승무원에 대한 심리 평가는 스트레스와 전쟁 경험 부족이 오판과 데이터의 무의식적인 왜곡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이지스 시스템의 데이터 오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40]

2000년 BBC 다큐멘터리에서 질문을 받았을 때, 미국 정부는 서면 답변을 통해 "시나리오 충족"이라고 불리는, ''빈센스''의 18명 승무원 사이의 동시 심리적 상태가 이 사건의 원인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한 상황에서, 승무원은 시나리오에 반하는 감각 정보를 무시하면서 현실이라고 믿고 훈련 시나리오를 수행한다. 이 사건의 경우, 시나리오는 단독 군용기의 공격이었다.[18]

미사일 발사를 승인할 책임이 있는 해군 장교, 즉 당직의 대공전 조정관(AAWC)은 무기를 선택하라는 시스템 메시지에 대한 응답으로 적어도 다섯 번이나 잘못된 버튼을 눌렀다. 그동안 미사일 발사 책임자인 당직의 미사일 시스템 감독관(MSS)은 "방사선 할당 요청"을 최소 22번이나 눌렀지만, AAWC가 해당 콘솔에서 적절한 절차를 완료하지 않아 모두 무효가 되었다.[14]

4. 3. 통신 및 정보 공유 문제



스타크호 사건 이후, 이라크 공군기가 적기로 오인되어 미 해군 군함을 공격한 사건 이후, 이 지역의 모든 항공기는 국제 항공 조난(IAD) 주파수(121.5 MHz)를 감시해야 했다.[4] 이 여객기에 경고하기 위해 총 11번의 시도가 있었는데, 7번은 군용 항공 조난(MAD) 주파수에서, 4번은 IAD 주파수에서였다. 그러나 응답은 없었다.[4]

ICAO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빈센스''는 이란 항공 655편에 군사 주파수 8회, 상업 주파수 3회로 총 11번의 연락을 시도했다. 이 연락은 "미확인 이란 항공기"를 대상으로 했으며, 항공기의 속도를 레이더에 보고된 지상 속도로 지칭했다.[29] 그러나 655편의 승무원은 조종실 계기에서 지시 대기 속도를 보았을 것이며, 이는 ''빈센스''가 다른 항공기에 말을 걸고 있다고 결론 내렸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사이드''와 ''빈센스'' 모두 655편에 여러 민간 및 군사 주파수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다. 국제 조사 결과 655편의 승무원은 미사일이 발사되기 전 받은 세 번의 호출이 이란의 P-3 오리온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추정했다.

격추 당시 승무원들은 민간 IAD 주파수를 감시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36] ICAO는 보고서에서 "걸프 해역의 미국 군함은 민간 항공 교통 관제 무선 주파수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그러한 능력이 있었다면 항공 교통 관제 전송이 항공기를 식별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37] 이란은 국제사법재판소(ICJ) 성명에서 국방부 보고서가 ''빈센스''가 민간 항공 교통 관제 주파수를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하는 VHF 무선 장비를 명시적으로 언급했으며, 페르시아만 지역의 다른 미국 감시 활동도 항공기의 특성을 경고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이의를 제기했다. 미국은 이 주장에 반대하며 자국 군함의 대부분이 IAD 주파수를 청취할 수 있는 VHR 라디오만 장착하고 있다고 밝혔다.[36]

''빈센스''는 마지막 몇 분 동안 민간 비상 주파수로 세 번의 무선 경고를 보냈지만, 정확히 누구에게 말하는지 식별하지 못했다. 무선 승무원은 항공기의 지상 속도를 언급했지만, 항공 655편은 공중 속도로 운항하고 있었다. 항공기의 공중 속도는 ''빈센스''가 언급한 속도보다 50노트 느렸을 수 있다.[42]

비행 중 항공 655편은 레이더에 자신이 어떤 항공기인지 알려주는 고유한 스쿼크 코드를 전송했다. ''빈센스''가 이 특정 코드를 사용하여 항공 승무원에게 말을 걸었다면, 조종사들은 즉시 위험 구역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해군은 민간 항공기와 대화할 때 이 표준 코드를 사용하도록 무선 요원을 훈련시키지 않았다.[42]

복잡한 기술에도 불구하고, 함정에는 특정 민간 항공 주파수에 맞춰진 무선 장비가 없었다.[42]

5. 각국의 반응과 외교적 노력

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 이후, 이란은 이 사건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하며 국제사회에 미국의 책임을 물을 것을 호소했다. 미국은 유감을 표명하고 보상금을 지급했지만, 공식적인 사과는 거부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안 616을 채택하여 사건에 대한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하고, 이란-이라크 전쟁 종식을 촉구했다.[50]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 이란 외무 장관은 유엔에서 미국의 행위를 "범죄 행위", "학살"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21] 반면, 당시 조지 H. W. 부시 미국 부통령은 이 사건이 전시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며, 빈센스호 승무원들의 대응이 적절했다고 옹호했다.[48] 소련은 미국에 해당 지역 철수를 요구하며 이란-이라크 전쟁 종식을 위한 안전보장이사회의 노력을 지지했고, 발언한 13명의 대표자 중 대부분은 미국의 입장을 지지했다.[49]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란이 제기한 소송은 1996년 미국과 이란의 합의로 종결되었다.[31] 미국은 이란에 1.318억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으며, 이 중 6180만달러가 희생자 보상금으로 사용되었다.[31]

''Americ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편집 위원회 소속 안드레아스 로웬펠트 교수는 미국이 사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미국의 공식 입장을 비판했다.[22][23] 그는 이란 희생자들에게 지불된 배상금이 USS ''스타크''호에 탑승한 미국인 사망자들에 대해 이라크에 요구한 금액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24]

''Yale Journal of International Law''의 한 법학자는 "항공기 655편 격추 사건은 ''빈센스''호의 함장이 상황을 지상 및 공중 공격으로 합리적으로 오인했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을 실수 문제로 재개념화하는 것은 ''빈센스''호의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다.[25]

국제 전략 연구 협회의 사건 분석은 이 지역에 이지스 순양함을 배치한 것은 무책임하다고 묘사했으며, 미국 해군이 이지스 순양함에 부여한 가치가 사격 개시의 낮은 기준 설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28]

5. 1. 이란의 반응

이란 정부는 이 사건을 의도적인 불법 행위로 규정하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란은 오인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설령 오인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단순 사고가 아닌 국제 범죄에 해당하는 과실 및 무모함이라고 주장했다.[10] 이란은 빈센스함의 첨단 레이더가 항공기의 비행 경로와 식별 신호를 정확히 추적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근처에 있던 다른 미군 함선들이 해당 항공기를 민간 항공기로 식별했다는 점과, 격추 당시 항공기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항공로 내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10]

이란은 미국이 이전에 발령한 항공 고시(NOTAM)에 따르면, 655편은 허가받은 상태였고 공격 당시 안전 고시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고 주장했다.[10] 또한, 설령 655편이 이란 F-14 전투기였다 하더라도, 이란 영공 내에서 비행 중이었고 공격적인 경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 격추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사건 당시 빈센스함은 이란 영해 내에 있었으며, 미사일 발사 시에도 이 수역 안에 있었다.[10]

이란은 엘알 항공 402편, 리비아 아랍 항공 114편, 대한항공 007편 등 과거 미국이 다른 국가의 민간 항공기 격추를 비난했던 사례들을 언급하며 미국의 이중 잣대를 지적했다.[10]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이란 외무부 장관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는 이 사건을 "민간 항공 역사상 가장 비인간적인 군사 공격"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21]

이 사건으로 인해 이란 국민들 사이에서 반미 감정이 고조되었으며, 이란은 이 사건을 미국이 이라크 편에서 이란을 공격하려는 의도적인 행위로 간주했다.[51]

1988년 8월 11일, 이란은 사건을 묘사한 45리알 우표(이미지)를 발행하여 추모했다.[78]

이 사건은 수년간 이란-미국 관계를 악화시켰다. 전 중앙 정보국(CIA) 분석가 케네스 M. 폴락은 "이란 항공 655편 격추는 사고였지만, 테헤란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라고 언급했다.[62]

5. 2. 미국의 반응

미국 정부는 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지만, 인명 피해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53]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유감을 표명했고, 이 발언이 사과냐는 질문에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54]

미국 국방부 관계자는 처음에는 ''빈센스''가 이란의 F-14를 격추했다고 발표했지만, 몇 시간 후 정정 발표를 통해 민간 에어버스기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11] 미국 정부는 ''빈센스''가 여객기를 공격기로 오인했으며, 공격기와 유사한 비행 프로파일을 가진 것으로 잘못 판단했다고 밝혔다.[4] 그러나 ''빈센스''의 이지스 전투 시스템 기록에 따르면, 사고 당시 항공기는 공격 비행처럼 하강하지 않고 상승하고 있었다.[4]

1988년 7월 윌리엄 포가티 제독의 보고서("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의 상황에 대한 공식 조사")는 USS ''빈센스''의 테이프 데이터, USS ''사이드''의 정보 등을 통해 이란 항공 655편이 반다르아바스에서 이륙하여 격추될 때까지 할당된 항로에서 정상적인 상업 항공 비행 계획 프로파일에 따라 고도를 상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15][16] 포가티 보고서는 또한 이란이 진행 중인 적대 행위와 근접한 비교적 낮은 고도의 항공로를 비행하도록 허용하여 민간 여객기의 위험을 감수한 것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17]

2000년 BBC 다큐멘터리에서 미국 정부는 ''빈센스''의 승무원 18명이 압박을 받을 때 발생하는 "시나리오 충족"이라는 동시 심리적 상태가 사건의 원인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상황에서 승무원은 현실과 다른 훈련 시나리오를 수행하게 된다.[18]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는 "나는 미국에 대해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저는 미국에 사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발언했다.[55] 이 발언은 이란 여객기 격추 사건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지만, 오해를 받아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56][57]

1996년 2월, 미국은 이란이 제기한 소송을 중단하기 위해 이란-미국 청구 재판소에 제기된 다른 청구와 함께 1.318억달러를 이란에 지불하기로 합의했다.[31] 이 중 6180만달러는 격추 사건으로 사망한 248명의 이란인에 대한 보상금으로 사용되었으며, 임금을 받는 희생자에게는 300000USD, 임금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150000USD가 지급되었다.[52]

5. 3. 국제사회의 반응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1988년 7월 20일 결의안 616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여 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 희생자에게 애도를 표하고, 사건의 조사와 재발 방지 조치를 촉구했다.[50] 이 결의안은 미국의 공격에 대한 "깊은 고통"과 인명 손실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1987년에 결의된 이란-이라크 전쟁 종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사건은 격렬한 국제적 논란을 촉발시켰고, 미국은 그 설명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47] 알리 아크바르 벨라야티 이란 외무 장관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 미국을 규탄할 것을 요청하며, 이 공격은 "실수일 수 없으며", "범죄 행위", "학살", 그리고 "잔학 행위"라고 말했다.[21]

당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는 유엔에서 미국의 공격이 전시 중 발생한 사건이었고, ''빈센스''호의 승무원들이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했다고 주장하며 자국을 옹호했다.[48] 소련은 미국에 해당 지역에서 철수할 것을 요청했고, 이란-이라크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안전 보장 이사회의 노력을 지지했다. 발언한 13명의 대표자 중 대부분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문제 중 하나는 1987년 이란-이라크 전쟁 종식을 위한 결의안이 무시되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49]

1996년 2월, 미국은 이란이 1989년에 이 사건과 관련하여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기한 소송을 중단하기 위해, 이란-미국 청구 재판소에 제기된 다른 이전 청구와 함께 1.318억달러를 이란에 지불하기로 합의했다.[31] 이 청구액 중 6180만달러는 격추 사건으로 사망한 248명의 이란인에 대한 보상으로 사용되었으며, 임금을 받는 희생자에게는 30만달러, 임금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15만달러가 지급되었다.[52] 미국 정부는 인명 손실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명했지만, 공식적으로 사과하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53]

6. 사건의 장기적 영향

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은 미국-이란 관계, 국제 항공 안전, 그리고 한국에까지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1996년 미국은 이란인 희생자 248명에 대한 보상금 6180만달러를 지급하며 사실상 과실을 인정했지만,[79] 항공기 자체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안 616을 채택해 애도를 표하고 재발 방지 조치를 촉구했다.

사건 당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은 긴장 상태였다. 미국 해군은 군사 훈련 중이었고, 이란은 F-14를 출격시켜 감시했다. 1987년에는 미국 군함 스타크가 이라크 미라주 F1의 엑조세 공대함 미사일 오사(誤射)로 피해를 입기도 했다.

빈센스는 전투정 추격 중 이란 영해를 침범했고, 항공로 아래로 들어갔다.[78] 이란은 격추에 격분하여 각국 보도진에 현장을 공개하고 사건을 묘사한 우표를 발행했다. 빈센스 함내 모습이 촬영된 영상에는 상층부가 655편을 전투기로 판단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지만, 민항기와 전투기의 레이더 반사 면적 차이를 고려할 때 오인 가능성은 낮다는 의문이 제기된다.

6. 1. 미국-이란 관계에 미친 영향

이란 내부에서는 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이 미국이 이라크 편에서 이란에 대한 직접적인 전쟁을 시작하려는 의도적인 공격으로 인식되었다.[51] 이 사건은 격렬한 국제적 논란을 촉발시켰고, 미국은 그 설명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47] 1988년 7월 중순, 알리 악바르 벨라야티 이란 외무 장관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 미국을 규탄할 것을 요청하며, 이 공격은 "실수일 수 없으며", "범죄 행위", "학살", 그리고 "잔학 행위"라고 말했다.[21]

당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는 유엔에서 미국의 공격이 전시 중 발생한 사건이었고, ''빈센스''호의 승무원들이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했다고 주장하며 자국을 옹호했다.[48] 소련은 미국에 해당 지역에서 철수할 것을 요청했고, 이란-이라크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안전 보장 이사회의 노력을 지지했다.[49] 토론 후,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 616이 통과되어 미국의 공격에 대한 "깊은 고통"과 인명 손실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1987년에 결의된 이란-이라크 전쟁 종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50]

이란 항공기가 미국 국기가 겹쳐진 군함에 의해 격추되는 모습이 담긴 페르시아어 문구의 우표
1988년 8월 11일 발행된 이란 우표


1996년 2월, 미국은 이란이 1989년에 이 사건과 관련하여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기한 소송을 중단하기 위해, 이란-미국 청구 재판소에 제기된 다른 이전 청구와 함께 1.318억달러를 이란에 지불하기로 합의했다.[31] 이 청구액 중 6180만달러는 격추 사건으로 사망한 248명의 이란인에 대한 보상으로 사용되었으며, 임금을 받는 희생자에게는 30만달러, 임금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15만달러가 지급되었다.[52]

미국 정부는 인명 손실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명했지만, 공식적으로 사과하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53] 1988년 7월 5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유감을 표명했고, 그 발언이 사과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레이건은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54] 당시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는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공화당의 민족 지도자 그룹을 상대로 한 텔레비전 녹화에서 "나는 미국에 대해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저는 미국에 사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언급했다.[55] 이 인용문은 이란 여객기 격추 사건과 관련이 없고 어떤 공식적인 역할도 하지 않았지만, 오해를 받아 그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56][57]

이 사건은 수년간 이란-미국 관계를 어둡게 했다. 전 CIA 분석가인 케네스 M. 폴락은 "이란 항공 655편 격추는 사고였지만, 테헤란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라고 썼다.[62] 5개월 후 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폭파 사건이 발생한 후, 미국 정부는 처음에는 PFLP-GC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를 비난했으며, 시리아의 지원을 받았고 이란이 655편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추측이 있었다.[63][64] 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으로 인해 미국과 이란 사이에 발생한 불신은 2015년 7월 14일에 합의된 공동 포괄적 행동 계획 (JCPOA), 즉 이란 핵 협정의 개발에 어려움으로 작용했다.[65]

6. 2. 국제 항공 안전에 대한 영향

이 사건은 격렬한 국제적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미국은 그들의 설명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47] 이란은 이 공격을 "범죄 행위", "학살" 및 "잔학 행위"라고 비난하며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 미국을 규탄할 것을 요청했다.[21] 당시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는 이 공격이 전시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며, ''빈센스''호 승무원들이 적절하게 대응했다고 주장하며 미국을 옹호했다.[48]

소련은 미국에 해당 지역에서 철수할 것을 요청했고, 이란-이라크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안전 보장 이사회의 노력을 지지했다.[49] 발언한 대표자들 대부분은 미국의 입장을 지지했으며, 1987년 이란-이라크 전쟁 종식을 위한 결의안이 무시되었다는 점을 문제 중 하나로 지적했다.[49] 토론 후,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 616이 통과되어 미국의 공격에 대한 "깊은 고통"과 인명 손실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1987년에 결의된 이란-이라크 전쟁 종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50]

이 사건은 민간 항공기 보호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증대시켰고, 교전 규칙 및 항공 안전 규정 강화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또한 이 사건은 수년간 이란-미국 관계를 악화시켰다.[62] 전 CIA 분석가 케네스 M. 폴락은 "이란 항공 655편 격추는 사고였지만, 테헤란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고 언급했다.[62]

6. 3. 한국에 주는 교훈

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은 강대국 간 갈등 속에서 중립 유지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민간인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 사건은 한반도에서 유사시 민간 항공 안전 확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62]

이 사건은 이란-미국 관계를 수년간 악화시켰다. 이란은 이 사건을 미국의 의도적인 공격으로 인식했다.[51] 미국은 인명 피해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지만, 공식 사과나 잘못을 인정하지는 않았다.[53] 조지 H. W. 부시 당시 미국 부통령은 "나는 미국에 대해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저는 미국에 사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55] 이러한 불신은 2015년 이란 핵 협정(공동 포괄적 행동 계획) 개발에도 어려움을 초래했다.[65]

7. 언론 보도와 논란

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은 이란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큰 논란을 불러왔다. 특히 언론 보도와 관련하여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빈센스는 전투정을 추격하여 4km 이상 이란의 영해를 침범했으며, 스스로 항공로 바로 아래로 들어갔다.[78] 이란 당국은 자국 민간기 격추에 격분하여 각국 보도진을 현장 해역으로 안내하여 유해까지 촬영하게 했으며, 사건의 모습을 그린 45리알 우표(이미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격추 전후의 "빈센스" 함내 모습이 텔레비전 카메라로 촬영되었는데, 일반 민간 여객기와 레이더 반사 면적이 현저히 적은 전투기를 오인할 가능성은 낮다는 점이 의문시되고 있다.

1989년, 윌리엄 크로우 제독은 나이트라인에서 빈센스가 이란 영해 내에 있었다고 공개했다.[22][23] 이는 이전 미국의 공식 입장과 상반된다. ''Americ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편집 위원회 안드레아스 로웬펠트 교수는 미국이 사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입장을 비판하며,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과 같이 명확하게 원인이 밝혀지는 한 과실과 관계없이 책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로웬펠트는 또한 이란 희생자들에게 지불된 배상금이 USS ''스타크''호 사건의 미국인 사망자에게 요구한 금액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24]

1996년 2월 22일, 미국은 이란인 희생자 248명에게 6180만달러 지급에 동의하여 사실상 과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항공기 자체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안 616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여 사건 희생자에게 애도를 표하고, 사건 조사와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7. 1. 미국 언론의 보도 경향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정치학자 로버트 엔트먼은 1991년, 5년 전 소련의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과 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를 비교 연구했다.[66] 그는 ''타임(Time)'', ''뉴스위크(Newsweek)'',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 ''CBS 이브닝 뉴스(CBS Evening News)''의 자료를 분석했다. 엔트먼은 프레이밍 기법을 사용하여 대한항공 사건은 의도적인 사보타주로, 이란 항공 사건은 비극적인 실수로 묘사했다고 지적했다.[66]

엔트먼은 "미국 언론이 취한 각도는 범행 국가의 도덕적 파산과 죄책감을 강조했다. 이란 항공 655편의 경우, 프레임은 죄책감을 약화시키고 군사적 첨단 기술 운영의 복잡한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라고 설명했다.[67] 그는 이란 여객기 격추 사건에 대한 뉴스 기사는 이를 기술적인 문제로 묘사했지만, 소련이 한국 여객기를 격추한 사건은 도덕적 분노로 묘사했다고 덧붙였다.[67]

엔트먼은 이러한 불균형한 보도가 소련과 이란에 대한 여론에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는 여론 조사를 제시했다.[68] 2014년 7월, 말레이시아 항공 17편이 우크라이나에서 격추되었을 때, 일부 평론가들은 두 개의 유사한 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과 언론 보도 사이의 불일치를 지적하기도 했다.[35][69][70]

두 개의 뉴스위크 표지를 병치시켰다. 왼쪽에는 KAL007편이 과녁 안에 있고

7. 2. 은폐 의혹과 진실 규명 요구

미국 정부는 사건 초기 ''빈센스''함이 이란의 F-14 전투기를 격추했다고 발표했다가 곧 민간 여객기임을 인정했다.[11] ''빈센스''함은 여객기를 군용 전투기로 오인하고 공격했으나, 이지스 전투 시스템 기록에는 여객기가 상승 중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4] ''빈센스''함은 군사 및 민간 비상 주파수로 여러 차례 경고했으나, 여객기는 군사 주파수를 수신할 수 없었고 민간 채널의 메시지는 모호했다.[13] 또한 호출된 속도와 조종사 계기판의 속도 표시에 50kn 차이가 있어 혼란을 야기했다.[13]

1988년 윌리엄 포가티 제독의 보고서는 ''빈센스''함의 데이터와 USS ''사이드''함의 정보를 근거로 이란 항공 655편이 정상적인 비행 계획에 따라 상승 중이었다고 밝혔다.[15][16] 포가티 보고서는 이란이 진행 중인 교전 지역 인근의 저고도 항공로를 민간 항공기가 비행하도록 허용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17]

2000년 BBC 다큐멘터리에서 미국 정부는 ''빈센스''함 승무원 18명이 압박감 속에서 현실과 훈련 시나리오를 혼동하는 "시나리오 충족"이라는 심리 상태를 겪었을 수 있다고 밝혔다.[18]

1989년 윌리엄 크로우 제독은 ''빈센스''함이 이란 영해 내에 있었다고 공개했고,[22][23] 이는 이전 미국의 공식 입장과 상반된다. 안드레아스 로웬펠트 교수는 미국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입장을 비판하며,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22][23] 그는 또한 미국이 이란 희생자에게 지불한 배상금이 USS ''스타크''호 사건의 미국인 사망자에게 요구한 금액보다 훨씬 적다고 지적했다.[24]

한 법학자는 ''Yale Journal of International Law''에서 ''빈센스''함 함장의 오판을 이유로 책임을 면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25] 1992년 ''Newsweek'' 기사는 로저스 함장의 부주의와 미국 정부의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8][26] 국제 전략 연구 협회는 이지스 순양함 배치가 무책임했으며, 이지스 시스템에 대한 가치가 낮은 사격 기준 설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28] ''빈센스''함은 승무원들 사이에서 "로보크루저"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다.[29][30]

국제 사법 재판소 사건은 1996년 미국의 보상 합의로 종결되었다.[31] 사건 3년 후, 크로우 제독은 ''빈센스''함이 이란 영해 내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인정했으며,[9] 국제 민간 항공 기구 보고서도 이를 확인했다.[32]

USS ''사이드''함의 데이비드 칼슨 함장은 로저스 함장의 공격성을 비판하며, 사건 한 달 전 이란군이 위협적이지 않고 전문적이었다고 언급했다.[34] 칼슨은 ''빈센스''함 승무원들이 이지스 시스템의 성능을 입증하려는 압박감을 느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35]

1991년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정치학자 로버트 엔트먼은 미국 언론이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과 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을 다르게 프레이밍했다고 분석했다.[66] 대한항공 사건은 사보타주로, 이란 항공 사건은 비극적 실수로 묘사하여 불균형한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67] 2014년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격추 사건 당시, 일부 평론가들은 유사한 두 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와 언론의 불일치를 지적했다.[35][69][70]

; 보도

: 빈센스는 전투정을 추격하여 이란 영해에 이상 침입했고, 항공로 아래에 위치했다.[78] 이란은 자국 민간기 격추에 격분하여 각국 보도진을 현장에 안내하고, 사건을 묘사한 우표를 발행했다. 격추 전후 ''빈센스''함 내부 모습이 촬영되었는데, 민간 여객기와 전투기의 레이더 반사 면적 차이가 커 오인 가능성이 낮다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 보상

: 1996년 미국은 이란인 희생자 248명에게 6,180만 달러를 지급하여 사실상 과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항공기 자체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 국제 연합

: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안 616을 채택하여 애도를 표하고, 사건 조사와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8. 관련자 처벌 및 명예 회복

미 해군 빈센스호는 전투정을 추격하여 4km 이상 이란의 영해에 침입했으며, 스스로 항공로 바로 아래로 들어갔다.[78] 이란 당국은 자국 민간기 격추에 격분하여 미국을 포함한 각국의 보도진(일본에서는 TBS의 쓰쿠시 데쓰야가 리포트를 진행)을 현장 해역으로 안내하여 유해까지 촬영하게 했다. 불과 1개월 뒤인 8월 11일에는 사건의 모습을 그린 ۴۵|45fa 리알 우표(이미지)를 발행하는 등 큰 반응을 보였다. 격추 전후의 "빈센스" 함내 모습은 텔레비전 카메라로 촬영되었으며, 상층부가 655편의 기체를 전투기로 판단하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이 영상은 이후 공개되었지만, 일반 민간 여객기와 레이더 반사 면적이 현저히 적은 전투기를 오인할 가능성은 낮다는 점이 의문시되고 있다.

1996년 2월 22일, 미국은 격추로 인한 이란인 희생자 248명에 대한 보상금 6180만달러 지급에 동의하여 사실상 자국 군의 과실을 인정하는 형식이 되었다. 그러나 3,000만 달러 이상으로 추산되는 항공기 자체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31]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는 7월 20일 결의안 616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여 사건 희생자에게 애도를 표하고, 사건의 조사와 재발 방지 조치를 촉구했다.

8. 1. 빈센스호 승무원들에 대한 조치

이란 항공 655편 격추 사건에도 불구하고, 미 해군 빈센스 호의 승무원들은 전투 지역에서의 임무 완수를 이유로 전투 행동 리본을 수여받았다. 당시 근무 중이던 항공 작전 조정관은 해군 표창장을 받았다.[12] 1990년 ''워싱턴 포스트''는 이 상이 이란 소형 함정과의 교전뿐 아니라, 1984년부터 1988년까지의 전체 복무 기간에 대한 공로라고 보도했다.[71]

1990년, 윌리엄 C. 로저스 3세 함장은 "1987년 4월부터 1989년 5월까지 [...] 지휘관으로서 뛰어난 임무 수행에 대한 매우 훌륭한 행위"를 이유로 공로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 훈장은 ''빈센스'' 호 지휘관으로서의 임무 수행에 대한 것이었으며, 이란 항공 655편 격추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72][73]

8. 2. 책임자 처벌 문제

1989년, 윌리엄 크로우 제독이 나이트라인에서 빈센스의 위치를 대중에게 공개하기 전에, ''Americ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편집 위원회의 안드레아스 로웬펠트 교수는 미국이 사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미국의 공식 입장을 비판했다.[22][23] 로웬펠트는 또한 이란 희생자들에게 지불된 배상금이 USS ''스타크''호에 탑승한 미국인 사망자들에 대해 이라크에 요구한 금액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24]

한 법학자는 ''Yale Journal of International Law''에 "항공기 655편 격추 사건은 ''빈센스''호의 함장이 상황을 지상 및 공중 공격으로 합리적으로 오인했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건을 실수 문제로 재개념화하는 것은 ''빈센스''호의 책임을 면제하지 않습니다."라고 언급했다.[25]

1992년 7월 13일 ''Newsweek'' 잡지에 실린 기사에서 존 배리와 로저 찰스는 윌리엄 C. 로저스 3세 함장이 부주의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8] 해당 기사는 또한 미국 정부가 은폐를 시도했다고 비난했다;[26] 크로우 제독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부인했다.[27] 국제 전략 연구 협회의 사건 분석은 이 지역에 이지스 순양함을 배치한 것은 무책임하다고 묘사했으며, 미국 해군이 이지스 순양함에 부여한 가치가 사격 개시의 낮은 기준 설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다.[28]

사건 당시 ''빈센스''호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 군함인 USS ''사이드스''호의 지휘관 데이비드 칼슨 사령관은 항공기 파괴가 "4주 전에 처음 보였던 로저스 함장의 공격성의 끔찍한 절정"을 나타냈다고 말했다.[33] 칼슨은 사건 한 달 전에 그 지역에서 만난 이란군이 "명백하게 위협적이지 않았고" 전문적이었다고 말했다.[34]

1996년 2월 22일, 미국은 격추로 인한 이란인 희생자 248명에 대한 보상금 6180만달러 지급에 동의하여 사실상 자국 군의 과실을 인정하는 형식이 되었다. 그러나 3,000만 달러 이상으로 추산되는 항공기 자체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3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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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문서 Provision verbatim record of 2818th meeting https://digitallibra[...] 198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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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간행물 The Downing of Iran Air Flight 655: Looking Back and Looking Ahead "1989"
[24] 간행물 Notes and Comments 1989-07-24
[25] 간행물 Iran Air Flight 655 and Beyond: Free Passage, Mistaken Self-Defense, and State Responsibility https://digitalcommo[...] 20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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