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위한 대안
1. 개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2013년 창당된 독일의 우익 정당으로, 유럽 회의주의, 반이민,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며 시작했으나, 난민 문제와 이슬람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며 지지세를 확장했다. 특히 구 동독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얻었으며, 2017년 연방 의회 선거에서 12.6%를 득표하여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이후 극우 성향 강화와 당내 분열을 겪었으며, 친러시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AfD는 202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15석을 확보하며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극우적 행보와 관련하여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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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어 이름 | Alternative für Deutschland |
|---|---|
| 약칭 | AfD |
| 설립일 | 2013년 2월 6일 |
| 분당 |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
| 본부 | 베를린 쉴스트라세 9, 10785 |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 공동 대표 | 티노 흐루팔라 알리스 바이델 |
|---|---|
| 명예 회장 | 알렉산더 가울란트 |
| 창립자 | 알렉산더 가울란트 베른트 루케 콘라트 아담 |
| 당원 수 (2023년) | 34,000명 (증가) |
|---|
| 이념 | 국민보수주의 우익대중주의 유럽회의주의 보수주의 국민보수주의 직접민주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반이슬람 반이민 정책 |
|---|---|
| 정치적 위치 | 우익 - 극우 |
| 유럽 의회 | ECR (2014–2016) EFDD (2016–2019) ID (2019–2024) 무소속 (2024-) |
| 유럽 정당 | 아이덴티티와 민주주의당(2023-) |
| 독일 연방의회 의석 (2021년 9월 26일) | 77석 / 736석 |
|---|---|
| 의석 | 282석 / 1884석 |
| 유럽 의회 의석 | 15석 / 96석 (독일 선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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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유럽회의주의 정당 -
독일 공산당 (1968년)
독일 공산당(DKP)은 1968년 서독에서 결성되어 독일 공산당(KPD)의 후신으로 여겨지나, 낮은 지지율, 재정 지원 중단, 당원 이탈 등으로 쇠퇴하여 현재는 군소 정당으로 남아있다. -
독일의 유럽회의주의 정당 -
자유보수개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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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민주의 정당 -
독일 노동자당
독일 노동자당은 1919년 뮌헨에서 창당되어 범게르만주의와 민족주의를 추구했으며, 아돌프 히틀러가 입당한 후 1920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
독일 국민주의 정당 -
하르츠부르크 전선
하르츠부르크 전선은 1931년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나치당을 포함한 우익 세력들이 브뤼닝 내각에 대한 반대를 공유하며 결성되었으나, 이념 및 정치적 목표 차이로 통합에 실패하고 1932년 와해되었지만, 이후 나치당이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독일의 보수주의 정당 -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CSU)은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 활동하며, 기독교민주연합(CDU)의 자매 정당으로 연방 차원에서 CDU/CSU 연합 의원단을 구성하며, 바이에른 주 정부를 이끌어왔다. -
독일의 보수주의 정당 -
독일 국가인민당
독일 국가인민당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활동한 보수주의 정당으로, 제정 시대 보수 정당들의 통합으로 창당되어 부유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제정 복고주의 성향을 보였으며, 나치당과의 협력을 모색하다 히틀러 내각 참여 후 해산되었다.
2. 성장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극우파 정당이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었고, 독일 연방의회에 진출한 극우 정당도 없었다. 국가사회주의 지하조직(NSU) 등의 극우 테러 활동으로 인해 극우파에 대한 인식은 더욱 악화되었다. 초기 독일대안당은 기존 정당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공략하고, 유로화, 다문화, 동성애 등에 반대하며 지지층을 확보했다.
시리아 난민 문제로 인한 독일의 경제적 부담과 쾰른 난민들의 성폭행 사건 등은 독일인들의 난민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켰고, 이는 독일대안당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특히, 동독 지역 주민들은 재통일 과정에서의 불만과 서독 지역에 비해 낮은 경제 수준으로 인해 박탈감을 느껴왔으며, 좌파에 대한 불만과 기존 정당에 대한 실망감을 느껴, 새로운 대안 정당을 찾게 되었다. 2016년 주의회 선거에서 기민당과 사민당이 모두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독일대안당의 득세가 난민 문제뿐만 아니라 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의 표출임을 보여준다.
독일대안당의 주요 지지층은 젊은 남성층으로, 이들은 전쟁을 직접 겪지 않아 극우 정당에 대한 거부감이 덜했다.
2023년 1월, Correctiv는 독일을 위한 대안 당원들이 2023년 11월 독일 및 오스트리아 극우 인사들과 비밀리에 회동하여 귀화한 독일 시민을 포함한 이민자 추방을 위한 "재이주" 계획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는 정체성 운동 활동가인 마르틴 셀너도 참석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회동에서 논의된 내용에 대해 책임이 없으며 당원들은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다고 밝히며 거리를 두었다. 알리체 바이델은 회동에 참석한 고문 롤란트 하르트비히와 결별했다.
이 계획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포함한 독일 정치인들의 비난을 받았다. 이 보도는 독일 전역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촉발시켰고, 시위대는 독일에 대한 대안의 금지를 요구했다. 그 후, 독일에 대한 대안은 ID 그룹에서 퇴출되었고, EKRE는 크라의 퇴출을 지지했지만 독일을 위한 대안 대표단 전체의 제거에는 반대했으며, FPÖ는 독일에 대한 대안의 퇴출에 반대했다.
2013년 4월, 괴란트, 베른트 뤼케, 전 독일 기독교 민주 연합(CDU)의 멤버 등에 의해, 중도 우파지만 친유럽 성향의 CDU를 대신하는 우파 성향의 온건한 유럽 회의 정당으로서, 유로존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결성 초기에는 경제적으로 자유주의적이었고, 유럽 회의적이며, 보수적인 운동을 전개했다. 그 후, 더욱 우경화하여, 역대 지도자들 아래에서 이민, 이슬람교, 유럽 연합에 대한 반대를 포함한 정책을 확대했다.
2013년 설립 후, 2013년 독일 연방 선거에서 연방 의회에 의석을 획득하기 위한 5%의 선거 기준을 약간 밑돌았다. 2014년 독일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유럽 보수 개혁 그룹(ECR)의 일원으로서 7석을 획득했다.
2.1.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의 정치 상황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극우파 정당이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었으며, 독일 연방의회에 진출한 극우 정당도 없었다. 국가사회주의 지하조직(NSU) 등의 극우 테러 활동으로 인해 극우파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었다.
2.2. 초기 독일대안당의 차별화 전략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극우파 정당이 성공한 경우가 거의 없었고, 독일 연방의회에 진출한 극우 정당도 없었다. 국가사회주의 지하조직 (NSU) 등의 극우 테러단체 활동으로 극우파에 대한 인식은 더욱 악화되었다. 초기 독일대안당은 이러한 독일 및 유럽의 극우 정당들과 거리를 두었다. 또한 기민당이나 사민당 등 기존 정당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공략하거나 유로화, 다문화, 동성애 등에 반대함으로써 지지층을 확보했다.
초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보수주의와 중산층을 표방하며 고학력 인구를 대상으로 삼았다. 초기 AfD 웹사이트에 등록된 지지자 중 약 3분의 2가 박사 학위를 소지하여, 초기에는 AfD를 "교수 정당"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초기 지지자의 86%가 남성이었다.
2.3. 난민 문제와 독일대안당의 지지율 상승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극우파 정당이 성공한 경우가 거의 없었고, 독일 연방의회에 입성한 극우 정당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시리아 난민 문제로 인해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대한 지지가 크게 증가하였다. 독일의 난민 수용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과 쾰른 난민들의 성폭행 사건과 같은 사회 문제 발생은 독일인들의 난민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독일대안당 지지율 상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독일대안당이 득세하고 있는 지역은 과거 동독 지역인데, 구 동독 지역 주민들은 재통일 과정에서의 불만과 서독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 수준으로 인해 박탈감을 느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좌파에 대한 불만, 기존 정당에 대한 심판, 그리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당을 희망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16년 주의회 선거 결과, 기민당뿐만 아니라 사민당도 큰 피해를 입은 것을 통해, 독일대안당의 득세가 난민 문제에 대한 반대와 더불어 과거 동독 지역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독일대안당의 주요 지지층은 젊은 남성층으로, 이들은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에 극우 정당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 이러한 요인들이 독일대안당이 극우 정당으로서 강력한 돌풍을 일으키는 데 작용하였다.
2.4. 구 동독 지역에서의 독일대안당 득세
독일 재통일 과정에서의 불만과 서독 지역에 비해 낮은 경제 수준으로 인해 동독 지역 주민들은 박탈감을 느껴왔다. 좌파에 대한 불만과 기존 정당에 대한 실망은 독일을 위한 대안 지지로 이어졌다. 2016년 주의회 선거 결과, 기민당뿐만 아니라 사민당도 큰 타격을 입었는데, 이는 독일을 위한 대안의 득세가 난민 문제뿐만 아니라 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의 표출임을 보여준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기민당은 12%, 사민당은 10.4%의 지지율 하락을 겪었으며, 작센안할트주에서는 기민당이 2.7%, 사민당이 10.9%의 지지율 하락을 보였다.
주요 지지층은 젊은 남성층이었는데, 이들은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로서 극우 정당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러한 요인들이 독일을 위한 대안이 극우 정당으로서 강력한 돌풍을 일으키는데 작용하였다.
3. 당 역사
2012년 9월, 헤센주의 전 주 사무관인 알렉산더 가울란트, 경제학자 베른트 루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전 편집자 콘라트 아담은 바트나우하임에서 '선거 대안 2013'을 창당하였다. 이들은 유로존 위기에 대한 독일 연방 정책을 비판하였고, 68명의 경제학자, 언론인, 사업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들은 경제 위기를 통해 유로존의 불안정성이 드러났으며, 남유럽 국가들이 유로화의 압박 때문에 가난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5년 7월 4일, 헤센 주 당 대회에서 프라우케 페트리가 60%의 득표율로 베른트 루케를 제치고 당의 주 대변인으로 선출되었다. 페트리는 독일을 위한 대안에서 이민 문제, 이슬람 반대 및 러시아와의 연대를 주장하는 극우 세력의 인물이었다. 이를 계기로 7월 7일에 7명의 유럽 의회 의원 중 배아트릭스 폰 스토치와 마르쿠스 프레첼을 제외한 4명(루케 제외)이 탈당했으며, 그 다음날인 7월 8일에는 루케가 당의 친러화와 외국인 혐오증에 반대하며 자신의 지지세력과 함께 탈당하였다. 루케는 7월 19일 자신이 처음 내세웠던 경제 정책을 기조로 하는 진보와 개혁 연합(ALFA)을 창당하였고, 탈당했던 유럽의회 의원들은 모두 ALFA에 입당했다.
2017년에는 프라우케 페트리 대표가 탈당해 파란당을 결성했다.
2015년 5월, 베른트 뤼케는 베클루프 2015라는 분파 집단을 만들었다. 여러 유럽 의회 의원과 약간의 주 대표자 및 간부들이 AfD의 온건파 그룹으로서 베른트 뤼케 아래에 모였다. 이들은 신우파 대표자들에 의한 권력 장악으로 AfD 당의 존립과 일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보았다. 베클루프 2015는 신당을 결성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온건파 당원들의 탈당을 막고 온건파를 강화하려 했다. 2015년 5월 말에 주 지부 결성이 시작되었고, 그 내부에서 베클루프 2015 집단이 당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베클루프 2015라는 분파 집단 결성은 뤼케 지지자들의 대량 탈당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준비라고 주변에서는 여겨졌다. AfD 지도부에 있던 프라우케 페트리와 알렉산더 가울란트는 뤼케 등의 분파 결성을 당규 위반 행위이며, 당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베클루프 2015에는 베른트 뤼케 지지자 약 4천 명이 모였으며, 뤼케의 AfD 탈당 후인 2015년 7월에 약 2,600명이 새로운 유럽 회의주의 정당 결성을 지지하고 모였다.
AfD의 당 조직은 지도부, 산하 단체, 주 지부로 나눌 수 있다. 2013년 2월 6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창립 당 대회에서 콘라트 아담, 베른트 뤼케, 프라우케 페트리 등 3명이 동등한 권한을 가진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2015년 7월 4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공업 도시 에센에서 개최된 임시 당 대회에서 프라우케 페트리와 요르크 모이텐이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두 사람 대표 체제). 2017년 12월 2일 하노버에서 열린 당 대회에서 요르크 모이텐과 알렉산더 가울란트가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당 창립 후 다수의 입당자가 있었다. 당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18일 만에 5천 명 이상의 당원들이 개인적인 의사로 절차를 거쳐 입당했고, 7주 후에는 이미 1만 명의 당원이 있었다. 당시 10,476명의 등록된 당원이 있었는데, 그 중 2,795명은 타당 입당 경력이 있었다.
남독일에 기반을 둔 자유 유권자당에서 입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베를린 지부 당원 중 일부는 주 지부 대표를 포함하여 타당 출신이었다. 자유 유권자당을 탈당하고 AfD의 함부르크 대표가 된 옌스 클라우제는 지지자들을 데리고 왔다. 극우 정당 디 프리하이트에서 약 350명이 당을 옮겨 입당했다. 헤센주 의회에서 소속 회파로부터 당을 옮기는 것으로 AfD 당원이 무소속 의원으로서 단기간 존재했으며, 여러 시의회에도 의원이 존재했다. 2013년 5월 AfD 당원 중 여성의 비율은 약 14%였고, 전체 당원의 평균 연령은 51세였다.
2014년 여름 이후, 많은 독일 언론은 AfD 당원들의 탈당, 특히 경제 자유주의자 그룹에 속하는 멤버들의 탈당을 빈번하게 보도했다. 그들은 소위 당의 우경화 때문에 탈당했다. 마르티나 티게스-프리드리히스는 5주 동안 니더작센주 당 부대표였지만, 당 내에서 이슬람 혐오가 증가하는 것을 이유로 탈당했다. 2014년 2월 초까지 튀링겐주의 당 대표였던 미카엘라 메르츠는 같은 해 9월에 탈당했다. 감리교 신학자 세바스티안 몰은 2014년 10월에 AfD에서 탈당했다.
베른트 루케는 2015년 7월 에센 임시 당대회 후에 AfD에서 탈당했다. 당 창립 때보다 이슬람 혐오와 외국인 혐오 감정이 당 내에서 높아지고, 반 서구적 경향, 러시아의 외교 안보 정책을 지지하는 친 푸틴파 증가,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까지 대두되고 있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AfD를 항의 정당으로 변질시키려 획책한 많은 당원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라고 밝혔다. AfD에 비판적인 논평가들은 베른트 루케의 이전 정치 자세, 즉 우파 유권자에게 눈을 돌려 우파 포퓰리스트들의 힘을 빌리려고 움직였던 것을 지적했다. 뤼케의 당수 해임 후, 탈당의 물결이 당을 덮쳐 2015년 7월 10일까지 2천 명 이상이 이 당을 떠났다. 그 중에는 IBM 유럽의 CEO(최고경영자)라는 경력을 가진 한스-올라프 헹켈도 있었다. 그는 극단적인 우경 편향, 거칠고 저항주의적 경향, 편견에 가득 찬 태도가 AfD의 다수에게 나타나고 있음을 호소했다.
2015년 8월 말까지 AfD 당원의 약 20%가 탈당했다고 당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 2015년 10월 중순에는 AfD가 다시 19,000명의 당원 수를 기록했는데, 매일 약 40명의 신규 입당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5년 11월 말 하노버 당대회 전에는 약 2만 명의 당원이 되어, 베른트 루케 지지자들의 집단 탈당 이전의 당세로 돌아갔다.
당칙에 따르면, 극우 단체나 극우 정당에 이전에 소속되었던 자의 입당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당칙에 부합하지 않는 사례가 연방 헌법 옹호청의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다. 당 지도부의 승인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극우 조직에 과거 소속되었던 자의 입당이 가능해지고 있다. 한델스블라트지의 디트마 노이엘러 기자에 따르면, AfD는 극우와 선을 그으려고 하고 있지만, 극우 정당의 당원이었던 자들에게는 입당의 문호를 넓히고 있다. 당 지도부의 몇몇 간부는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독일 부르셴샤프트의 멤버이며, 당 본부에서 조직과 기획에 관한 담당자가 우파 계열 주간지 "융에 프라이하이트"의 홍보 출신이었다. 2013년 독일 연방 의회 선거 후에 극우 정당 디 프리하이트로부터 접근이 있었지만, 당의 주변 단체로서 다른 선거에 관여하는 것은 거부되었다. 당시 당수 뤼케는 극우 소수 정당으로부터의 입당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외국인을 혐오하는 자, 인종주의자, 반유대주의자, 이슬람을 혐오하는 자 및 극우, 극좌에게는 AfD의 당원 자격은 주어지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 동독의 많은 지방 지부는 극우 정당 디 프리하이트로부터의 탈당자의 입당 요청을 심사하려 했다.
2022년 독일 쿠데타 모의에 AfD 전직 국회의원과 현직 시의원을 포함한 다수의 당원이 연루되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 해산 주장까지 제기되었으나, 독일 기민당의 회의적인 입장으로 인해 해산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3.1. 설립 (2012-2013)
2012년 9월, 헤센주의 전 주 사무관인 알렉산더 가울란트, 경제학자 베른트 루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전 편집자 콘라트 아담은 바트나우하임에서 '선거 대안 2013'(Wahlalternative 2013독일어)을 창당했다. 이들의 목적은 유로존 위기에 대한 독일 연방 정책을 비판하고, 남유럽 빈곤 국가에 대한 구제 금융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68명의 경제학자, 언론인, 사업가들이 이들의 주장을 지지했으며, 이들 중 절반은 교수였다. 이들은 경제 위기를 통해 유로존의 불안정성이 드러났으며, 남유럽 국가들이 유로화의 압박 때문에 가난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될 일부 후보들은 니더작센주 선거에서 자유 유권자와 연합하여 '선거 대안 2013'으로 출마했지만, 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3년 2월, 이 단체는 2013년 연방 선거를 위해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기로 결정했지만, 베른트 루케의 이메일 유출 사건으로 인해 자유 유권자 지도부의 협조를 얻지 못했다.
결국 2013년 2월 6일,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창당되었다. 2013년 4월 14일, AfD는 베를린에서 첫 번째 전당대회를 열고 베른트 루케, 프라우케 페트리, 콘라트 아담을 대변인으로 선출하며 당 지도부를 구성했다. AfD는 유로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 유권자보다 더 급진적인 입장을 취했다. 2013년 3월 31일부터 5월 12일까지 AfD는 연방 선거 참여를 위해 독일 16개 주 모두에 지부를 설립했고, 2013년 6월 15일에는 다름슈타트에서 청년 조직인 독일을 위한 젊은 대안을 창립했다.
3.2. 초기 활동 (2013-2015)
독일대안당은 2013년 2월 6일 정책에 대한 충분한 토론을 거치지 못한 채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만들어졌다. 2013년 4월 14일, 베를린에서 첫 전당대회를 열고 베른트 루케, 콘라트 아담, 프라우케 페트리를 대변인으로 선출했다. 같은 해 9월 연방 의회 선거에서는 저지 조항(득표율 5%)을 밑돌아 의석 획득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연립 여당인 자유민주당에 육박하는 득표율 4.7%를 기록하며 일정 부분 존재감을 보였다.
| 선거 | 지역구 | 정당 명부 | 의석 | +/– | 상태 | ||
|---|---|---|---|---|---|---|---|
| 득표 | % | 득표 | % | ||||
| 2013년 | 810,915 | 1.9 (#8) | 2,056,985 | 4.7 (#7) | 신규 | ||
2013년 3월 31일과 5월 12일 사이에는 독일 주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16개 주 모두에 지부를 설치했고, 6월 15일에는 다름슈타트에서 소년 정당으로 독일청소년대안당을 창당했다.
2013년 4월, 유럽 보수와 개혁(European Conservatives and Reformists)의 지도 하에 영국 보수당과 접촉을 시도했고, 6월에는 루케가 런던의 포트컬리스에서 청문회를 하였다.
2014년 5월에 치러진 유럽 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득표율 7.05%로 7석을 획득했다. 유럽 의회에서는 영국 보수당이 이끄는 그룹 "유럽 보수 개혁 그룹(ECR)"에 속해 있었지만, 국경 관리를 둘러싸고 의견 차이가 발생한 결과 2016년에 그룹을 탈퇴했다.
| 선거 | 목록 대표 | 득표수 | % | 의석 | +/– | 유럽 의회 그룹 |
|---|---|---|---|---|---|---|
| 2014년 | 베른트 루케 | 2,070,014 | 7.05 (#5) | 신규 | ECR |
2014년 8월 작센 주 의회 의원 선거(득표율 9.7%)에서 처음으로 주 의회의 의석을 얻었고, 다음 해 9월의 브란덴부르크(12.2%), 튀링겐(10.6%) 주 의회 의원 선거에서도 저지 조항을 돌파하며 주 의회 진출을 달성했다.
3.3. 당의 극우화와 분열 (2015-2017)
2015년 7월 4일, 헤센 주 당 대회에서 프라우케 페트리가 60%의 득표율로 베른트 루케를 제치고 당의 주 대변인으로 선출되었다. 페트리는 독일을 위한 대안에서 이민 문제, 이슬람 반대 및 러시아와의 연대를 주장하는 극우 세력의 인물이었다. 이를 계기로 7월 7일에 7명의 유럽 의회 의원 중 배아트릭스 폰 스토치(Beatrix von Storch)와 마르쿠스 프레첼(Marcus Pretzell)을 제외한 4명(루케 제외)이 탈당했으며, 그 다음날인 7월 8일에는 루케가 당의 친러화와 외국인 혐오증에 반대하며 자신의 지지세력과 함께 독일대안당을 탈당하였다. 탈당한 루케는 7월 19일 자신이 처음 내세웠던 경제 정책을 기조로 하는 진보와 개혁 연합(ALFA)을 창당하였다. 루케를 포함해서 탈당했던 유럽의회 의원들은 모두 ALFA에 입당했다.
2017년에는 프라우케 페트리 대표가 탈당해 파란당을 결성했다.
3.4. 2022년 독일 쿠데타 모의 연계 논란
2022년 독일 쿠데타 모의에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전직 국회의원과 현직 시의원을 포함한 다수의 당원이 연루되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 해산 주장까지 제기되었으나, 독일 기민당의 회의적인 입장으로 인해 해산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4. 사상 및 정책
독일대안당은 주로 극우 정당으로 묘사되며, 이탈리아의 형제들보다도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당 내부에는 국민보수주의나 강성한 사회보수주의 성향을 보이는 보수파와 네오나치 성향을 보이는 나치파가 공존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연방헌법수호청은 보수파보다 나치파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으로 평가하고 있다. 극우 진영 내에서 네오나치파인 독일 국민민주당과는 라이벌 관계로, 네오나치 지지자들이 독일대안당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정치학자들과 언론인들은 AfD를 이민 반대, 유로회의주의, 민족주의 성향과 동의어로 묘사했으며, 정당 내에서 시민 민족주의부터 강경한 정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뉘앙스의 독일 민족주의가 나타난다고 평가한다. 다른 평론가들은 AfD를 극우 포퓰리즘 정당 또는 토착주의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급진적인 우익 포퓰리즘 정당"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AfD는 처음에는 중산층의 자유 보수주의 정당으로 설립되었으며, 온건한 유로회의주의 성향을 보였다. 독일의 유럽 연합 가입을 지지하지만, 추가적인 유럽 통합, 유로 통화의 존재 및 유로존이 그리스와 같은 국가에 제공하는 구제 금융에는 비판적이었다. 당시 이 정당은 또한 스위스식 반 직접 민주주의, 유로존의 주요 개혁, 이민 반대를 옹호하고 동성 결혼에 반대했다.
2015년, 창립자이자 전 의장인 베른트 루케를 포함한 온건파 구성원들은 프라우케 페트리가 의장으로 선출된 후 AfD를 떠나 자유 보수 개혁가로 개명된 새로운 정당인 '진보와 갱신을 위한 동맹'을 창당했다. 2015년 유럽 난민 위기로 인해 2015년 후반에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유로존 관련 문제에서 이주 반대, 특히 무슬림과 무슬림 이민에 집중하게 되었다.
AfD는 2017년 페트리가 AfD의 보다 강경한 이슬람 혐오, 반이민 입장 채택 및 AfD 지도부의 역사 수정주의 발언 이후 더 블루 정당을 결성하면서 우익으로의 추가적인 전환을 겪었다. 이 정당은 스웨덴 민주당, 덴마크 인민당, 오스트리아 자유당을 포함한 다른 많은 유럽 우익 포퓰리즘 정당보다 더 급진적인 것으로 묘사되었다.
2020년 3월, 연방 헌법 보호청은 AfD의 극우 민족주의 파벌인 데어 플뤼겔을 "자유 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반하는 우익 극단주의 노력"으로 분류하고 "기본법과 양립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정부 감시 대상에 올렸다. 2022년에는 BfV가 전체 정당을 극우 극단주의 혐의 단체로 분류하고 감시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정치 평론가들은 이 정당에 온건하고 온화한 민족 보수주의 대안 중도 파벌과 강경 정체성 데어 플뤼겔 파벌의 두 가지 주요 파벌이 있다고 설명했다.
4.1. 경제 정책
독일대안당은 남유럽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EU 회원국에 대한 재정 지원에 반대했다. 유로화 폐지 및 마르크화 복귀를 주장했으나, 베른트 루케 탈당 이후로는 크게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범대서양 무역 투자 동반자 협정(TTIP)에 반대하며, 중소기업 보호를 강조한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유럽 단일 시장(공동 시장)을 지지하며,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의 지속 가능한 경제 정책 및 사회 정책 실현을 추구한다. 노동 정책과 사회 정책은 유럽 연합 가맹국의 국내 문제로 간주하며,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 보장 제도 확충을 지지한다. 법으로 정해진 최저 임금 제도를 통해 사회 보장을 실현하지만, 이것이 독일 노동 시장에 부담을 주거나 위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소득 보조 형태의 국가 지원을 요구한다.
재정 적자 해소를 위한 금융 정책을 추진하며, 유로 구제 및 은행 구제 심사 시 국민 부담 리스크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키르히호프 모델에 따라 조세법 간소화를 추구한다.
4.2. 난민 정책
독일대안당은 반(反)이민, 특히 최근 난민 문제에 대해 강경한 반대 입장을 취한다. 당수 프라우케 페트리는 난민 문제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난민 정책에 대해 과격한 발언을 여러 번 했다. 페트리 뿐만 아니라 부당수인 배아트릭스도 난민과 관련해 부정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다.
2016년,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 유럽 의회 의원인 마르쿠스 프레첼은 독일 국경을 난민의 침입으로부터 "최후의 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하여" 방어해야 한다고 말한 후 당에서 제명되었다. 같은 해, AfD의 전 당 대표이자 유럽 의회 의원인 프라우케 페트리는 지역 신문 만하이머 모르겐독일어의 기자에게 독일 국경 경찰이 "난민의 불법 입국을 막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며, "불법 국경 침입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페트리는 이후 어떤 경찰도 "난민에게 총을 쏘고 싶어하지 않으며 나도 원치 않는다"면서 국경 경찰은 유럽 국경의 무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법을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퀼른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과 같은 범죄들과 유럽 지역에서 발생하는 테러들이 반(反)난민 정서를 부추기고 있으며, 특히 과거 동독 지역에서는 자신들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외국인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에 이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AfD(독일을 위한 대안)는 유럽 통합과 독일 내 이민자 및 난민의 존재 및 수용 모두에서 독일 국가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전 대표 페트리는 2016년 3월에 "저는 이민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민이 본국과 수용국 모두에 미치는 경제적, 사회적 결과는 똑같이 중대하다... 이렇게 많은 무슬림의 이민은 우리의 문화를 바꿀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변화를 원한다면, 그것은 광범위한 다수가 지지하는 민주적 결정의 산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메르켈은 단순히 국경을 열고 의회나 국민과 상의도 없이 모든 사람을 초대했습니다."
AfD는 대량 이민을 종식시키고 사회에 통합되고 독일어를 구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소수의 숙련된 이민자를 받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AfD는 외국 이민을 통해 독일 인구를 늘리려 하기보다는 독일 국민이 더 많은 자녀를 갖도록 장려한다. 이 정당은 EU의 이동의 자유 규칙을 검토하고 이민자가 4년 이상 고용되어 세금을 납부하여 사회 보장에 기여해야 국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한다. AfD는 복수 국적자 또는 영주권을 가진 외국 출생 범죄자의 대량 추방을 요구한다. 이 정당은 난민에 관한 제네바 협약을 "구식"이라고 묘사하고 난민에 대한 더 엄격한 심사를 요구하며, 독일 정부가 배경 조사를 거치지 않고 많은 수의 망명 신청자를 받아들이는 대신 제3세계 국가에 특별 경제 및 안전 구역에 투자해야 한다고 믿는다.
AfD는 독일의 다문화주의에 대해 비판적이며 "다문화 사회의 개념은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이 정당은 부르카, 공공 장소에서의 이슬람식 기도 소리, 새로운 미나렛 건설을 금지하고, 모스크에 대한 외국 자금 지원을 중단하며, 이맘에게 국가 심사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을 선호한다.
AfD는 파우케 페트리의 지도력 아래 반무슬림 수사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당과 페기다의 비교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2016년에 이 정당은 여러 반무슬림 입장을 채택하고, 강령에서 "이슬람은 독일에 속하지 않습니다. 국가 내 이슬람의 확장과 무슬림의 증가하는 수는 AfD에 의해 우리 국가, 사회 및 가치에 대한 위험으로 간주됩니다."라고 밝혔다. 이 정당은 극우 유라비아 음모론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광고판 캠페인을 벌였으며, 반지하드 운동에 크게 영향을 받았고, 그 일부인 것으로 여겨진다.
4.3. 친러시아 성향
독일대안당은 2014년 크림반도 사태에 대해 묵인하는 입장을 취해왔으며, 최근에는 친(親)러시아 성향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유럽의 극우파 정당들이 대체로 친러시아 성향을 띠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대안당도 난민 문제 해결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의 시리아 내전 개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로 인한 유럽의 경제적 손실을 우려한다. 과거 동독 지역 주민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로 인해 친러시아 성향을 보이는데, 이는 독일대안당의 지지 기반과도 연결된다.
독일대안당은 역사적으로 친NATO 및 친미국 성향이었으나,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러시아 지지 여부에 대해서는 당내 의견 차이가 존재하며, NATO와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에는 반대한다. 2019년 알렉산더 가울란트 당 대표는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돈바스 전쟁을 우크라이나 내부 문제로 규정하고, 독일은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내정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독일대안당은 러시아에 대한 국제 제재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일부 당원들은 미국으로부터 더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2022년 노르트 스트림 가스관 폭파 사건에 미국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독일대안당은 NATO의 반러시아 입장이 지나치게 이념적이며 독일의 국익에 해롭다고 비판한다.
2023년 OCCRP 조사에 따르면, 독일대안당은 국제 현재 정책 기구의 핵심 동맹으로 간주된다. 해당 보고서는 Zuerst!에 친러시아 선전을 게재하는 대가로 금전적 지원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2023년 The Insider는 모스크바로부터 독일대안당 정치인들에게 자금이 흘러 들어가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에 반대하는 독일 헌법 소송을 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대부분의 구성원은 러시아와 그 외교 정책을 지지한다. 연방 헌법 수호청은 러시아가 다양한 수준에서 독일의 민주주의 체제를 불안정하게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해당 기관의 토마스 할덴왕 청장에 따르면, 러시아의 주장은 AfD의 일부 구성원에 의해 퍼져나가고 있으며, 우익 과격주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AfD 구성원은 러시아 정치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OCCRP의 조사에서 금전적 이익을 받은 것으로 목록에 올랐다。
4.4. 기타 정책
독일대안당은 기존 보수당이 가지고 있는 반동성애 정책에 찬성하며, 의무교육 폐지 및 홈스쿨링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망명을 허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AfD는 기후 변화 부정을 주장하며, 기후 변화가 인간의 영향이 아닌 자연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본다.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지구의 "녹화"에 기여하는 등 유익하다고 주장하며, 에너지벤데를 포함한 광범위한 기후 정책에 반대한다.
5. 관련 단체
독일대안당은 2013년 2월 6일 정책에 대한 충분한 토론을 거치지 못한 채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만들어졌다. 2013년 4월 14일 베를린에서 첫 전당대회를 열고 베른트 루케, 콘라트 아담, 프라우케 페트리를 대변인으로 선출했다.
2016년 9월 4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의회 선거에서 20.8%를 얻어 주 의회 제2당이 되었다. 주 의회 선거 전, 당 전국 대표 외르크 모이텐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의회에서 독일 국가민주당(NPD)과의 연대를 시사했으나, 독일 국가민주당이 저지 조항에 의해 주 의회에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현실화되지 못했다.
5.1. Desiderius-Erasmus-Stiftung
독일을 위한 대안은 2015년 3월에 정당 지원 재단인 "Desiderius-Erasmus-Stiftung"을 설립했다.
5.2. 페기다(PEGIDA)
페기다(PEGIDA)는 드레스덴에서 설립된 단체로, 반이슬람(난민) 및 반외국인 정책을 주장하며 메르켈 총리의 퇴진을 요구한다. 이들은 활동 지역명의 앞글자를 따서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예: 라이프치히 = LEGIDA, 튀링겐 = THÜGIDA)
독일대안당은 페기다와 유사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페기다와 연합하지는 않고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페기다 지지자들 대부분은 독일대안당을 지지한다.
독일대안당 당원들은 페기다 운동과 시위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보였다. 베른트 루케는 이 운동을 "사람들이 정치인들에게 자신들의 우려를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신호"라고 묘사했다. 토마스 데 메지에르 기독교민주연합(CDU) 내무부 장관이 페기다 집회와 독일대안당 간의 "겹침"을 주장하자, 알렉산더 가울란트는 독일대안당이 "이 운동의 자연스러운 동맹"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스-올라프 헨켈은 당원들에게 시위에 참여하지 말 것을 요청하며, [[Der Tagesspiegel]]독일어에 그들이 "외국인 혐오적이거나 심지어 인종차별적인 의미"를 가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의 여론 조사에서는 페기다 시위 참가자 10명 중 9명이 독일대안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5.3. 독일청소년대안당
독일청소년대안당(Junge Alternative für Deutschland)은 2013년 6월 다름슈타트에서 설립되었다. 표면상으로는 독일을 위한 대안에 부속된 청소년 정당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적, 구조적으로 별개의 정당이다. 14세부터 35세까지 활동이 가능하지만, 그 외 연령대의 사람들도 회원으로 허용되며, 현재 900명 정도가 소속되어 있다. '이념보다는 상식'을 슬로건으로 삼고, 토론 및 교육 활동을 제공한다.
독일 언론은 독일청소년대안당이 극우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미숙하고 반여성주의적 성향을 보인다고 평가한다.
6. 선거 결과
독일대안당은 2013년 창당 이후 여러 선거에서 다양한 결과를 얻었다.
2017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독일대안당은 정당 명부 투표(비례대표)에서 12.6%를 획득하여 94석을 얻었고, 작센 주에서는 직접 투표(소선거구)에서 3명이 당선되었다. 작센 주에서 독일대안당은 제2투표(비례대표)에서도 27%를 획득하여 독일 내에서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독일대안당은 구 동독 지역에서 서독 주보다 강한 지지를 얻고 있으며, 특히 폴란드, 체코와의 국경에 인접한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대도시보다는 지방의 소도시나 군부 자치 단체에서 더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으며, 주 지지층은 중년 남성이다. 사회학자 홀거 렝펠트는 이러한 현상이 개별적인 경제적, 사회적 상황보다는 세계화에 대한 염증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총선거 직후, 당 공동 대표였던 프라우케 페트리가 탈당했고, 2017년 12월 2일에 열린 당대회에서 요르크 모이텐과 알렉산더 가울란트가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6.1. 독일 연방의회 선거
2013년 9월 22일 시행된 제18대 독일 연방의회 총선거에서 유로존 탈퇴라는 공약을 내걸고 등장했다. 이 선거에서 4.7%의 지지율을 획득하였으나 0.3% 차이로 5%를 넘지 못해 의회에 진입하지는 못하였다.
2017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는 정당 명부 투표(간접 투표의 비례대표)에서 12.6%를 획득하여 94석을 얻었다. 구 동독 남부의 작센 주에서는 직접 투표의 소선거구에서 3명이 당선되었다.
2021년 총선에서는 10.4%를 획득하여 83석을 획득하였다.
6.2. 유럽의회 선거
| 선거 | 목록 대표 | 득표수 | % | 의석 | +/– | 유럽 의회 그룹 |
|---|---|---|---|---|---|---|
| 2014년 | 베른트 루케 | 2,070,014 | 7.05 (#5) | 7 | 신규 | ECR |
| 2019년 | 요르크 모이텐 | 4,103,453 | 10.98 (#4) | 11 | 4 | ID |
| 2024년 | 막시밀리안 크라 | 6,324,008 | 15.89 (#2) | 15 | 4 | ESN |
2014년 5월 25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독일대안당은 7.1%의 지지율로 7석을 획득하였다.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10.98%의 지지율로 11석을 획득했다. 2024년 6월 9일에 실시된 2024년 독일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15.89%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CDU/CSU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6.3. 주의회 선거
2016년 선거에서는 메르켈 총리의 난민 정책에 대한 반발로 기민당 표가 분산되어 독일대안당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 주 의회 | 선거 | 득표수 | % | 의석 | +/– | 상태 |
|---|---|---|---|---|---|---|
| 바덴뷔르템베르크 | 2021 | 473,309 | 9.7 (#5) | 6 | 야당 | |
| 바이에른 | 2023 | 1,999,924 | 14.6 (#3) | 10 | 야당 | |
| 베를린 | 2023 | 137,810 | 9.1 (#5) | 4 | 야당 | |
| 브란덴부르크 | 2024 | 438,811 | 29.23 (#2) | 7 | 야당 | |
| 브레멘 | 2023 | 출마하지 않음 | – | – | 의석 없음 | |
| 함부르크 | 2020 | 211,327 | 5.3 (#5) | 1 | 야당 | |
| 헤센 | 2023 | 518,674 | 18.4 (#2) | 9 | 야당 | |
| 니더작센 | 2022 | 396,839 | 11.0 (#4) | 9 | 야당 | |
|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 2021 | 152,747 | 16.7 (#2) | 4 | 야당 | |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 2022 | 388,768 | 5.4 (#5) | 4 | 야당 | |
| 라인란트-팔츠 | 2021 | 160,273 | 8.3 (#4) | 5 | 야당 | |
| 자르 | 2022 | 25,718 | 5.7 (#3) | 0 | 야당 | |
| 작센 | 2024 | 719,274 | 30.6 (#2) | 2 | 야당 | |
| 작센-안할트 | 2021 | 221,487 | 20.8 (#2) | 2 | 야당 | |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 2022 | 61,169 | 4.4 (#6) | 5 | 의석 없음 | |
| 튀링겐 | 2024 | 396,704 | 32.8 (#1) | 10 | 야당 |
AfD는 독일 전역의 주 의회에서 야당으로서 의석을 가지고 있다.
7. 비판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사회경제적 및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우익 및 민족 보수주의 운동으로 간주된다. 정치학자들과 언론인들은 AfD를 이민 반대, 유로회의주의, 민족주의 성향과 동의어로 묘사했으며, 정당 내에서 시민 민족주의부터 강경한 정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뉘앙스의 독일 민족주의가 나타난다고 평가한다. 다른 평론가들은 AfD를 극우 포퓰리즘 정당 또는 토착주의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급진적인 우익 포퓰리즘 정당"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AfD는 초기에는 중산층의 자유 보수주의 정당으로 설립되었으며, 온건한 유로회의주의 성향을 보였다. 그러나 2015년 프라우케 페트리가 의장으로 선출된 후, 당은 2015년 유럽 난민 위기를 계기로 이주 반대, 특히 무슬림과 무슬림 이민에 집중하며 우경화되었다. 이후 AfD는 이슬람 혐오, 반이민 입장을 채택하고, 지도부의 역사 수정주의 발언 등으로 더욱 극단적인 노선을 걷게 되었다. 정체성 운동 및 페기다에 동조하는 구성원을 포함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2020년 3월, 연방 헌법 보호청은 AfD의 극우 민족주의 파벌인 데어 플뤼겔을 "자유 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반하는 우익 극단주의 노력"으로 분류하고 감시 대상에 올렸다. 2022년에는 연방 헌법 보호청이 전체 정당을 극우 극단주의 혐의 단체로 분류하고 감시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내려졌으며, 2024년 5월에 유지되었다. 2023년 4월 26일에는 독일을 위한 젊은 대안이 극단주의 조직으로 분류되었다.
AfD는 친러시아 성향과 관련해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제 제재에 반대하며,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2022년 노르트 스트림 가스관 폭파 사건에 미국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지지하기도 한다. 2023년에는 AfD 정치인들이 모스크바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당내에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문제들이 발생했다.
* 2018년, 알리스 바이델을 포함한 여러 AfD 당 정치인들이 부동산 재벌 헤닝 콘레로부터 불법 정치 자금을 수수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 2020년, 크리스티안 로이트는 파시스트를 자칭하고 아리아인 조부를 칭찬했다는 이유로 당에서 정직 처분을 받았다.
* 2022년, 쿠데타를 계획한 혐의로 AfD 전 의원을 포함한 25명이 체포되었다.
* 2024년, 당 간부들이 이민자 대규모 추방 계획을 협의했다는 의혹, 유럽 의회 정보를 중국 측에 넘긴 스파이 행위 혐의로 AfD 소속 유럽 의회 의원의 직원이 구속, AfD 지방 지부 대표의 나치 구호 사용 혐의로 벌금형, 막시밀리안 크라 유럽 의원의 나치 친위대 옹호 발언으로 인한 유럽 의회 극우파 그룹 "정체성과 민주주의(ID)" 제명 등의 사건이 있었다.
7.1. 청소년 정당의 문제
독일을 위한 젊은 대안(Junge Alternative für Deutschland독일어, JA)은 2013년 6월 다름슈타트에서 설립되었으며, 표면상으로는 독일대안당에 부속된 청소년 정당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독일대안당과는 별개의 정당이다. 14세부터 35세까지 활동이 가능하지만, 그 외의 연령대의 사람들도 회원으로 허용되며, 현재는 900명 정도가 소속되어 있다. '이념보다는 상식'을 슬로건으로 삼고 있으며, 토론이나 교육활동 등도 제공하고 있다.
2014년 3월, 독일청소년대안당은 쾰른에 있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의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를 초청했으나, 이는 독일대안당의 정책에 반하는 것이었다. 독일대안당의 연방 위원들에 의해서만 외부 인사에 대한 초청이 결정될 수 있다는 정책 때문이었다. 베른트 루케를 비롯한 독일대안당의 지도자들은 이를 ‘정치적인 미숙함’이라고 비판하였다.
독일청소년대안당은 국제 여성의 날에 대한 지지를 보인 젊은 사회 민주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평일화 대신 평등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하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여성주의를 좌익사상에 따른 행동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저지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독일에 있는 여성 할당제의 철폐를 주장했다.
2014년 5월, 독일청소년대안당은 범죄에 대한 자경단 활동을 옹호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는 폭력행위에 대한 옹호와도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독일대안당의 지도자들과도 충돌하였다.
독일 주류 언론은 독일청소년대안당이 극우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미숙하며 반여성주의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한다.
7.2. 극우 논란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여러 극우 논란에 휩싸여 왔다. 일부 당원들은 네오 나치,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역사 수정주의적 발언으로 비판받아 왔다.
2017년 1월, 비외른 회케는 드레스덴에서 연설하면서 유럽 학살 유대인 기념비를 "수치스러운 기념비"라고 칭하고, 독일인들이 "기념 정치에서 180도 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반유대주의 또는 네오 나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프라우케 페트리는 회케를 "당의 부담"이라고 묘사했다. 2018년 5월, 독일을 위한 대안 재판소는 회케의 당 잔류를 허용했다.
2024년 1월에는 롤란트 하르트비히를 포함한 당 고위 관계자들이 포츠담 극우 회의에 참석하여 수백만 명의 이민자 추방 계획을 논의한 사실이 드러나 큰 논란이 되었다. 이 사건은 2024년 독일 반극단주의 시위를 촉발시켰다.
2024년 5월, 회케는 2021년 5월 선거 유세에서 나치 돌격대의 금지된 구호(Alles für Deutschland독일어)를 사용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13000EUR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7.3. 기타
2016년 1월, 독일을 위한 대안의 부당수이자 유럽 의회 의원인 베아트릭스 폰 스토르흐는 국경 침입자에 대한 총기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 2016년 3월, 네덜란드 기독교민주당의 페터 판 데렌은 이를 문제 삼아 독일을 위한 대안 소속 유럽 의회 의원들에게 "유럽 보수 개혁 그룹"(EKR, EKR독일어)에서 3월 31일까지 탈퇴할 것을 요구했고, 불응 시 의원단에서 제명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2016년 4월 8일, 베아트릭스 폰 스토르흐 의원은 유럽 보수 개혁 그룹을 탈퇴하고 유럽 회의론자들의 유럽 의회 내 정치 회파인 "자유와 민주주의의 유럽"에 합류했다. 3일 후, 마르쿠스 프레첼 당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지부 대표도 유럽 보수 개혁 그룹에서 제명되었고, 2016년 5월 1일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유럽" 회파에 합류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공동 통화 유로의 폐지와 각국 독자 통화의 재도입, 또는 보다 소규모로 안정적인 통화 동맹의 재결성을 핵심 요구 사항으로 삼고 있다. 또한 유럽 연합 기본 조약을 개정하여 모든 유로 가맹국이 통화 동맹에서 자발적으로 탈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요구한다. 독일 연방 의회에 유럽 안정 메커니즘(ESM)으로부터의 보조금 대출 중단을 압박하고, 부채가 계속 증가하는 채무국에는 채무 삭감을 실시하고, 이 경우 다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