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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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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두는 인위적으로 머리 모양을 변형시키는 풍습으로,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유목 민족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지역과 문화권에서 나타났으며, 사회적 지위, 미적 기준, 집단 소속 등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두개골 변형은 둥근형, 앞-뒤통수형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으며, 아기의 머리를 묶거나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에서는 삼국 시대에 편두 풍습이 있었으며,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발견된다. 현대에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중시하며 쇠퇴하는 경향을 보이며, 윤리적인 문제와 뇌 기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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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 (풍습)
개요
칼차얀 왕자의 프로필
칼차얀의 왕자 프로필 (기원후 1세기경)
아프라시아브에서 발견된 긴 두개골
아프라시아브 박물관에 소장된, 사마르칸트에서 발굴된 긴 두개골 (기원후 600-800년)
유형신체 변형
목적미적 이유
사회적 지위 표시
종교적 이유
상세 정보
설명두개골의 의도적인 변형
방법유아의 두개골에 압력 가하기
천으로 머리 감싸기
나무 판자 사용
발생 시기신생아 또는 유아기
영구적인 변화두개골 모양의 영구적인 변화 초래
분포 지역전 세계
다른 이름인위적 두개골 변형, 두개골 평탄화
역사 및 문화
기원기원전 45,000년 전 네안데르탈인까지 거슬러 올라감
실천 시기신석기 시대부터 현대까지
관련된 문화훈족
알란족
사르마티아인
마야인
기타 여러 문화
사회적 의미아름다움의 기준
사회적 계층 표시
집단 정체성
현대의 잔재현대 사회에서도 제한적으로 시행
건강에 미치는 영향
잠재적 위험두개골 내부 압력 증가 가능성
신경학적 문제신경학적 문제 발생 가능성
연구 필요장기적인 영향에 대한 추가 연구 필요

2. 역사

의도적인 두개골 변형은 문자 역사보다 앞선다. 지리적, 연대적으로 널리 분리된 여러 문화권에서 흔히 행해졌으며, 현재도 바누아투를 포함한 몇몇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1]

가장 초기의 예시는 한때 네안데르탈인과 이라크의 샤니다르 동굴에서 발견된 원시 신석기 시대의 ''호모 사피엔스'' 구성 요소(기원전 9천년)를 포함한다고 여겨졌다.[2][3][4] 그러나 1999년 새로운 두개골 재구성을 바탕으로 한 연구에서는 이전의 연구 결과를 의심하며 "우리는 더 이상 인공적인 두개골 변형이 해당 표본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5] 서남아시아의 신석기 시대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된 길쭉한 두개골은 인위적인 두개골 변형의 결과로 여겨진다.[1][6]

두개골 변형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400년경 히포크라테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두개골 변형 관행으로 인해 이름 붙여진 거두족 또는 장두족으로 알려진 집단을 묘사했다.[7]



신생아에서 유아(아기)에 걸쳐 두개골은 출산 시 다소 변형되지만, 이는 자연스럽게 성장 과정에서 평균적인 형태로 안정되며 일정한 모양을 갖게 된다(→두개골). 신생아의 두개골은 천문 등 틈새가 있어 완전히 접합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변형이 일어난다. 뼈가 성장함에 따라 서로 결합되어 어긋남 등이 생기지 않는 상태가 된다.

두개골 변형은 아직 접합되지 않은 머리에 압력을 가하면서 키워, 그 변형된 상태로 접합을 일으켜 고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시기 신생아나 유아의 는 유연하지만, 뇌와 머리는 인간의 정신을 관장하는 중요한 기관이기에, 압력을 가하여 변형시키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또한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행해지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민족 문화인지 아동 학대인지라는 시점에서 많은 문명 사회에서는 부정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남미의 원주민 등 제한된 범위에서 보였던 풍습도 쇠퇴하는 경향이다. 이러한 변형이 뇌 기능이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현존하는 실례도 제한적이며 불분명하다.

변형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변형을 의도한 것과 그렇지 않고 유아기의 요람 등 전통적인 양육 방식의 문제로 인해 변형이 생겨나, 결국 그것이 민족 집단의 트레이드마크로 변화한 것 등이 있다고 여겨진다. 러시아의 연구자에 따르면, 후자는 중앙 아시아의 유목민에 해당된다고 한다.

다네가시마의 일본 남부 섬에서는 3세기부터 7세기까지, 집단 정체성을 표현하고 조개 상품 거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아기들의 두개골을 묶어 머리 뒤쪽을 평평하게 만드는 풍습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35]

신석기 시대중국 북동부의 후타오무가 유적지에서도 두개골 변형이 행해졌다.[36] 대부분 전두-후두 변형을 보였지만, 다른 유형의 변형도 발견되었다. 이 관행은 수천 년 동안 행해졌으며, 일부 두개골은 다른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2. 1. 한국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에 따르면, 진한에서는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돌로 머리를 눌러 납작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진한 사람들의 머리는 모두 납작하다고 기록되어 있다.[48]

이러한 기록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자료로는 경상남도 김해시 예안리(禮安里)에서 발견된 가야 고분군이 있다. 4세기대의 목곽묘인 예안리 85호와 99호 고분에서 변형된 두개골 10개가 보고되었다. 이들은 모두 일반 여성으로 추정되며, 앞이마가 뒤로 젖혀져 있어 앞이마를 돌로 눌러 편두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 두개골들의 머리둘레는 50cm 정도로, 한국인의 정상적인 머리둘레인 57.5cm보다 매우 작다. 따라서 과거 삼한 시대와 그 후의 국가, 특히 가야 지역에서 편두 풍습이 활발하게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2. 2. 유라시아

중앙아시아박트리아, 소그디아, 훈족 등 유목민족을 중심으로 두개골 변형이 널리 퍼졌다. 이 민족들에게서 편두는 귀족층과 여성 등에 국한되었다. 서기 300~600년, 훈족 등 유목민족이 통치했던 동게르만 부족은 이 관습을 받아들였으며 여성에게만 국한되었다. 서게르만 부족에서는 인공 두개골 변형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19]

알콘 훈족의 왕 킹길라의 초상화. 그의 주화에서,


구대륙에서 두개골 변형은 쿠샨 제국을 건설한 부족인 월지에 의해 박트리아소그디아로 전파되었다. 그러한 두개골을 가진 사람들은 당시의 여러 조각과 프리즈에 묘사되어 있으며, 예를 들어 할차얀의 쿠샨 왕자가 있다.[11]

어린 여성의 길쭉한 두개골, 아마도 알란인일 것이다.


알콘 왕들은 인공적인 두개골 변형의 결과로 일반적으로 머리가 길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2] 고고학자 캐머런 페트리는 "머리가 길쭉하게 묘사된 것은 알콘 왕들이 두개골 변형을 했다는 것을 시사하며, 이는 유럽에 나타난 훈족 집단에서도 행해졌다."라고 썼다. 길쭉한 두개골은 알콘 훈족의 화폐에 있는 대부분의 통치자 초상화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며, 특히 킹길라의 화폐에서 가장 잘 보인다.[12] 그들은 이 길쭉한 두개골을 자랑스럽게 드러냈으며, 그들의 전임자인 키다르족과 같은 다른 민족과 구별했다.[12] 그들의 화폐에서 이 인상적인 두개골은 이 지역의 화폐에서 통용되었던 사산 제국 스타일의 왕관을 대체했다.[12] 이 관습은 특히 훈족과 같이 스텝 지역의 다른 민족들 사이에서도 알려져 있으며, 훈족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12][13]

폰토스 스텝과 유럽의 나머지 지역에서 프로토 불가리아인을 포함한 훈족도 유사한 두개골 변형을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14] 알란인으로 알려진 사람들도 그랬다.[16] 후기 고대 시대(300–600 CE)에 훈족의 지배를 받던 게르만족게피드족, 동고트족, 헤룰리족, 루기족, 부르군트족이 이 관습을 받아들였다. 롬바르드족, 부르군트족, 튀링기안족에서는 이 관습이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17][18]

11세기 바이킹 시대의 매장지에서 세 여성의 길쭉한 두개골이 스웨덴 고틀란드에서 발견되었다.[20] 연구자들은 이들의 존재를 광범위한 무역 관계를 가진 문화에서 섬 출신이 아닌 여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21]

두개골을 의도적으로 길게 한 것, "툴루즈 변형", 프랑스


20세기에 유럽에서 아기의 머리를 묶는 관습은 당시 사라져가는 추세였지만, 프랑스와 서부 러시아, 코카서스, 스칸디나비아의 사미족 사이에서도 나타났다.[24] 머리 모양을 만드는 이유는 미적인 것에서부터 뇌의 모양에 따라 특정 유형의 생각을 담을 수 있다는 사이비 과학적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다양했다.[24] 툴루즈 지역(프랑스)에서는 이러한 두개골 변형이 20세기 초까지 산발적으로 지속되었지만;[22][23] 이전 유럽 문화에서처럼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툴루즈 변형은 프랑스 농민들 사이에서 "반도(bandeau)"라고 알려진 고대 의료 행위의 원치 않는 결과로 보였다. 이 관행에서 아기의 머리는 출생 직후 충격과 사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꽉 묶고 덧대었다. 실제로 변형을 관찰한 많은 초기 근대 시대 사람들은 구습이 지속되어 지능이 낮아졌다고 믿었던 이들 농민 아이들을 불쌍히 여겼다고 기록했다.[24]

일본야요이 시대 말기 (3세기)와 고분 시대 중기 (5세기)에 한정적이지만, 두개골 변형이 확인되고 있다. 야요이 시대의 것은, 가고시마현미나미타네정 소재의 사적 "히로타 유적" 출토의 인골이다. 히로타인은 북부 규슈의 야요이인과 비교해도 키가 작았으며, 남성이라도 평균 154cm, 여성은 평균 143cm이다 (북부 규슈의 야요이인은 남성 평균 163cm, 여성 152cm). 히로타 유적에서 출토되는 두개골의 후두부 전부가 편평한 것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두개골을 변형시키는 습속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고분 시대의 것은, 두개골뿐만 아니라 얼굴도 변형되어 있다. 구마모토현 와즈마치 마쓰자카 고분에서 1997년에 출토된 인골 6체 중 2체가 머리를 한 바퀴 도는 폭 3~4cm의 함몰을 가지고 있다. 유아기에 천을 감아 변형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2. 3. 아메리카

마야, 잉카,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특정 부족에서 두개골 변형 풍습이 있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특히 북서부의 치누크족과 남동부의 촉토족 사이에서 이 풍습이 널리 알려졌다.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플랫헤드 인디언으로 알려진 아메리카 원주민 집단이 이 관습에 참여했다는 증거는 없다. 촉토족과 같은 남동부 부족과 체할리스족, 눅삭족과 같은 북서부 부족들은 아기의 머리를 요람판에 묶어 머리 모양을 변형시켰다. 편두 풍습은 바하마의 루카얀족과 카리브해의 타이노족에게도 존재했다.[25][26][27][28][29][30]

2. 4. 동남아시아

유럽인의 식민지배 이전, 필리핀 중부 섬의 일부 민족( 비사야족, 비콜라노족 등)에서 이마를 펴는 편두가 널리 행해졌다. 이들의 미인 기준은 넓은 얼굴과 움푹 들어간 이마였으며, 이상적인 두개골 치수는 길이와 너비가 동일했다. 편두를 할 때는 붕대로 아기의 이마에 묶고 판 뒤쪽에 고정했다.[1]

이 풍습은 1604년 스페인 신부 Diego Bobadilla에 의해 처음 기록되었다. 그는 필리핀 중부 지역에서는 아이들의 머리를 두 개의 판자 사이에 놓고 두개골을 뒤쪽으로 수평으로 편평하게 펴고 이를 아름다움의 표시로 여겼다고 말했다. 다른 역사적 자료에서도 이 관행이 확인되었으며, 이것이 귀족에게만 국한되었는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사회적 지위의 표시로 귀족(투마오)이 수행하는 관행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1]

2. 5. 아프리카

아프리카의 망베투족은 머리를 길게 만드는 편두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림폼보(Limpombo)"라고 불리는 천으로 아기의 머리를 단단히 감싸 독특한 외형을 만들었다. 이러한 관행은 1950년대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1]

2. 6. 오세아니아

오세아니아에서는 타히티, 사모아, 하와이, 파우모투 군도, 바누아투 등에서 두개골 변형이 발견되었다. 파푸아뉴기니비스마르크 제도에서는 적어도 1930년대까지 이 풍습이 행해졌다.[1]

3. 변형의 유형 및 방법

두개골 변형은 보통 출생 직후부터 몇 년 동안 지속되며, 원하는 모양이 되거나 아이가 장치를 거부할 때까지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24][3][37] 변형의 유형은 다양하며, 1940년대 유럽과 아시아에서 발생한 인위적인 두개골 변형을 연구한 E. V. Zhirov는 둥근형, 앞-뒤통수형, 시상형의 세 가지 주요 유형으로 설명했다.[39]

마야인들은 아이의 머리 모양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으며,[25][26][27] 치누칸 부족들은 아기의 머리를 요람판에 묶어 머리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4. 동기 및 이론

두개골 변형의 동기는 다양하게 추정된다.


  • 집단 소속: 특정 집단에 소속됨을 나타내는 표식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38][40][41]
  • 사회적 지위: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40] 마야 사회에서는 미적으로 더 보기 좋거나 바람직한 문화적 속성과 관련된 두개골 모양을 만들려고 했다.
  • 미적 기준: 특정 문화권에서는 머리가 길쭉한 형태가 더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 종교적 의미: 톰만 섬과 말라쿨라 남서부 (오스트랄라시아)에서 나아이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머리가 길쭉한 사람이 더 지적이고 높은 지위를 가지며, 영적 세계에 더 가깝다고 여겨졌다.[42]
  • 모방: 자연적으로 머리가 길쭉한 집단을 모방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일부 고대 이집트인의 두개골은 자연스럽게 길쭉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거대두증이 가족적인 특징일 수 있다.

5. 뇌 기능 및 건강에 미치는 영향

인위적으로 변형된 두개골과 정상적인 두개골을 비교했을 때, 두개골 용적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46]

두개골 변형이 뇌 기능, 더 나아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현재까지 확인된 사례도 제한적이다.

6. 윤리적 문제 및 현대적 관점

신생아 및 유아(아기)의 두개골은 천문 등 틈새가 있어 완전히 접합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변형되었다가 안정된다. 두개골 변형은 이러한 시기에 머리에 압력을 가해 변형된 상태로 고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두개골 변형은 뇌와 정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이 있으며,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행해지는 경우가 많아 아동 학대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문명 사회에서는 부정적으로 여겨지며, 남미 원주민 등 일부 지역에서 행해지던 풍습도 쇠퇴하고 있다. 뇌 기능 및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사례로 인해 불분명하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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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논문 Artificial Cranial Deformation in the Shanidar 1 and 5 Neandertals 1982-04
[4] 논문 The Shanidar Cave Proto-Neolithic Human Population: Aspects of Demography and Paleopathology
[5] 논문 A New Reconstruction of the Shanidar 5 Cranium https://www.jsto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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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문서 吉岡(1989)pp.152-171
[48] 문서 그러나 신생아의 머리를 돌로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었다는 기록은 예전부터 의문이 많았는데 청나라 때 편찬된 흠정만주원류고는 건륭제가 직접 집필한 <어제삼한정류(御製三韓正謬)>를 인용해 머리를 돌로 누르는 것은 어른도 감내하기 힘든 것인데 하물며 어린아이의 머리를 돌로 누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하며 이는 동이족의 풍습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범울종이 제멋대로 기록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건륭제는 만주족의 풍습에 아기가 태어나면 요람을 장만하여 아기를 하늘을 바라보도록 반듯하게 오래 눕혀두는데 그렇게 하면 아기의 머리가 저절로 평평해져서 편두가 된다고 기록했다. 즉, 정말로 신생아의 머리를 돌로 눌러서 편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생아를 요람에 오랫동안 하늘을 바라보도록 눕혀서 재웠기 때문에 머리가 평평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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