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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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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455년은 서기 연도, 간지, 각국의 연호, 그리고 주요 사건들을 포함하는 해이다. 주요 사건으로는 고구려의 백제 침공과 신라의 백제 구원, 서로마 제국의 발렌티니아누스 3세 암살 및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의 황제 즉위, 반달족의 로마 약탈 등이 있었다. 또한, 에일스포드 전투와 치첸이트사에서 기록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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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55년 - 로마 약탈 (455년)
    455년 로마 약탈은 서로마 제국 쇠퇴기에 반달족의 왕 가이세리크가 로마를 침공하여 약 2주간 약탈한 사건으로, 발렌티니아누스 3세 암살,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의 무능한 통치, 에우도키아의 복수 계획 등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했으며, 로마는 약탈당하고 시민들은 노예로 끌려가 서로마 제국의 몰락을 가속화하고 '반달리즘' 용어의 기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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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년
455년
그레고리력455년
간지을미년 ~ 병신년
주요 사건
반달족의 로마 약탈반달족로마를 약탈함.
탄생
중국유자업 (劉子業): 남송 (유송)의 황제.
서로마갈리아 지역의 군사령관 마기오리아누스
사망
서로마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서로마 황제.

2. 연호

3. 기년

4. 사건

고구려가 백제를 침공하자 신라가 백제를 구원하였다.

비유왕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경사가 왕의 자리에 올랐다.

개로백제의 왕이 되었다.[1]

3월 16일 - 35세의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의 두 훈족 측근에게 암살당한다. 그는 로마마르스 광장에서 훈련을 받던 중이었다. 이로써 테오도시우스 왕조는 막을 내린다. 그의 ''수석 시종''(primicerius sacri cubiculi) 헤라클리우스 또한 살해당한다.

3월 17일 - 아에티우스의 전 ''도메스티쿠스''(근위대)였던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가 (로마 원로원의 지지를 받아)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다. 그는 황궁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왕위를 확보했다. 막시무스는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미망인인 리키니아 에우독시아와 강제 결혼함으로써 권력을 공고히 했다.

막시무스는 가장 신뢰하는 장군인 아비투스를 ''군사령관''(magister militum)으로 임명하고, 툴루즈외교 사절을 보내 서고트족의 지지를 얻도록 했다. 그는 아들 팔라디우스를 ''카이사르''(Caesar)로 승격시키고, 그가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장녀인 에우도키아와 결혼하게 했다.

5월 31일 - 막시무스는 로마에서 도망치던 중 분노한 폭도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해 죽는다. 많은 시민들이 반달족이 이탈리아 본토를 약탈한다는 소식을 듣고 광범위한 공황 상태에 빠졌다.

6월 2일 - 로마 약탈: 교황 레오 1세에게 도시를 불태우거나 약탈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가이세릭 왕이 반달족을 이끌고 로마로 진입한다. 가이세릭은 2주 동안 도시를 약탈했다. 에우독시아와 그녀의 딸 에우도키아, 플라키디아가 인질로 잡혔다. 약탈품은 오스티아 항구로 보내져 배에 실렸고, 반달족은 거기서 출발해 카르타고로 돌아갔다.

7월 9일 - 아비투스가 툴루즈에서 로마 황제로 선포되었고, 이후 ''비에르눔''(아를 근처)의 갈리아 지도자들에게 인정받았다.

9월 21일 - 아비투스가 갈리아 군대를 이끌고 로마에 입성했다. 그는 노리쿰 (현대 오스트리아)에서 황제의 권위를 회복하고, 서고트족 장군인 레미스투스에게 고트족 군대를 라벤나에 남겨두게 했다.

게르만족반달족로마를 약탈하다.

갈리아서로마 제국 황제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가 암살당하다.

아비투스서로마 제국 황제가 되다.

수이고구려 침공.

물물교환 경제가 조직적인 무역을 대체한다. 로마 제국로마인들과 다른 시민들이 야만족의 습격에 덜 취약해지기 위해 도시를 버리고 시골로 이동한다(대략적인 시기).

도시 ''빈도보나'' (비엔나)에 전염병이 발생하여 로마 속주로 확산된다. 이 질병은 아마도 연쇄상구균 또는 ''폐렴 연쇄상구균''을 동반한 성홍열의 한 형태일 것이다(대략적인 날짜).

에일스포드 전투: 보티머 왕자가 아버지 보르티게른의 친앵글로색슨족 정책에 반기를 든다. 그는 켄트주 에일스포드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패배한다. 헹기스트와 그의 아들 오이스크는 켄트의 왕이 된다. 호르사와 보티머의 형제인 카티게른은 전사한다. 브리튼족은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런던으로 철수한다.

치첸이트사 (유카탄 반도, 멕시코)에서 기록된 가장 이른 시기 (대략적인 연도).

4. 1. 동아시아

454년 고구려가 백제를 침공하자 신라가 백제를 구원하였다.

비유왕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경사가 왕의 자리에 올랐다.

개로백제의 왕이 되었다.[1]

4. 2. 서로마 제국

3월 16일 - 35세의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의 두 훈족 측근에게 암살당한다. 그는 로마마르스 광장에서 훈련을 받던 중이었다. 이로써 테오도시우스 왕조는 막을 내린다. 그의 ''수석 시종''(primicerius sacri cubiculi) 헤라클리우스 또한 살해당한다.

3월 17일 - 아에티우스의 전 ''도메스티쿠스''(근위대)였던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가 (로마 원로원의 지지를 받아)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다. 그는 황궁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왕위를 확보했다. 막시무스는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미망인인 리키니아 에우독시아와 강제 결혼함으로써 권력을 공고히 했다.

막시무스는 가장 신뢰하는 장군인 아비투스를 ''군사령관''(magister militum)으로 임명하고, 툴루즈외교 사절을 보내 서고트족의 지지를 얻도록 했다. 그는 아들 팔라디우스를 ''카이사르''(Caesar)로 승격시키고, 그가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장녀인 에우도키아와 결혼하게 했다.

5월 31일 - 막시무스는 로마에서 도망치던 중 분노한 폭도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해 죽는다. 많은 시민들이 반달족이 이탈리아 본토를 약탈한다는 소식을 듣고 광범위한 공황 상태에 빠졌다.

6월 2일 - 로마 약탈: 교황 레오 1세에게 도시를 불태우거나 약탈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가이세릭 왕이 반달족을 이끌고 로마로 진입한다. 가이세릭은 2주 동안 도시를 약탈했다. 에우독시아와 그녀의 딸 에우도키아, 플라키디아가 인질로 잡혔다. 약탈품은 오스티아 항구로 보내져 배에 실렸고, 반달족은 거기서 출발해 카르타고로 돌아갔다.

7월 9일 - 아비투스가 툴루즈에서 로마 황제로 선포되었고, 이후 ''비에르눔''(아를 근처)의 갈리아 지도자들에게 인정받았다.

9월 21일 - 아비투스가 갈리아 군대를 이끌고 로마에 입성했다. 그는 노리쿰 (현대 오스트리아)에서 황제의 권위를 회복하고, 서고트족 장군인 레미스투스에게 고트족 군대를 라벤나에 남겨두게 했다.

4. 3. 기타 지역

5. 문화

치첸이트사 (유카탄 반도, 멕시코)에서 기록된 가장 이른 시기이다.(대략적인 연도)

6. 탄생



7.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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