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함대 계획
1. 개요
66함대 계획은 1896년부터 1905년까지 일본이 추진한 대규모 해군 확장 계획으로, 청일 전쟁 배상금을 주요 재원으로 활용하여 전함 6척과 장갑순양함 6척을 주력으로 하는 함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계획은 삼국 간섭으로 인한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고, 일본의 해상력을 강화하여 제국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었다. 66함대 계획은 1, 2차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이후 러일 전쟁과 그 이후의 확장 계획으로 이어져 일본 해군력을 급격히 성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계획을 통해 일본은 세계 5위, 1902년에는 세계 4위의 해군력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이는 일본의 식민 지배와 관련된 역사적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명칭 | 66함대 계획 |
|---|---|
| 별칭 | 구구함대 계획 |
| 유형 | 일본 제국 해군의 함대 증강 계획 |
| 목표 | 미국 해군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함대 건설 |
| 발단 | 러일 전쟁 이후 일본 해군의 전략적 목표 변화 |
|---|---|
| 배경 |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체결 후 전력 열세 극복 필요성 대두 |
| 핵심 내용 | 8척의 전함과 8척의 순양전함으로 구성된 주력 함대 구축 이후 전함 및 항공모함 추가 계획 |
|---|---|
| 주력함 구성 (6척+6척) | 8척의 전함과 8척의 순양전함 (실제로는 4척 + 4척) |
| 주요 함선 | 나가토급 전함 가가급 전함 아마기급 순양전함 |
| 실질적 완성 | 8척 8진 체제는 완성되지 못함 |
|---|---|
| 계획 변경 | 군축 조약 및 경제 공황 등의 영향으로 계획 축소 및 변경 런던 해군 군축 조약으로 인해 대형 함선 건조 제한 |
| 계획의 결과 | 일본 해군은 항공모함 중심으로 전력 재편 |
| 해군력 강화 | 일본 해군의 전력 강화에 기여 |
|---|---|
| 군사적 긴장 | 주변국과의 군사적 긴장 고조 |
| 관련 인물 | 야마모토 이소로쿠 |
|---|
-
일본 제국 해군의 계획 -
88함대
88함대는 러일 전쟁 이후 일본 제국이 구상한 전함 8척과 장갑순양함 8척을 주축으로 하는 대규모 함대 건설 계획으로, 사토 데쓰타로의 마한주의에 영향을 받았으나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체결로 완전히 실현되지는 못했고, 이후 일본 해군 전략 및 해군력 증강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건조가 중단된 함선들은 항공모함으로 개조되기도 하였다. -
일본 제국 해군의 계획 -
84함대안
84함대안은 일본 해군이 1916년부터 1923년까지 함정 63척 건조를 목표로 추진한 대규모 군비 확장 계획으로, 항공대 정비와 다양한 함정 건조를 포함하며 나가토급 전함이 대표적이다. -
명수 6 -
6자 회담
-
명수 6 -
육분의
육분의는 존 해들리와 토마스 고드프리가 개발한 천체의 고도를 측정하는 각도 측정 도구로, 넓은 시야와 높은 정확도를 제공하며, 특히 해군에서 백업 항해 도구로 사용된다.
2. 배경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로 청일 전쟁은 끝났지만, 일본은 승리의 대가와 함께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특히 러시아의 남하 정책은 일본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삼국 간섭으로 랴오둥 반도를 청나라에 반환해야 했던 일본은, 러시아가 이 지역을 차지하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건설하며 극동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했다. 러시아는 뤼순을 군항으로 삼아 태평양 함대를 증강하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 일본 해군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이고 주도 해군대신은 '해군 확장 계획'을 제출하여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고 해군력을 증강하고자 했다. 당시 일본은 번벌 정부와 민당의 협력 하에 적극적인 국가 운영 기조를 보였고, 청나라로부터 받은 배상금 등을 바탕으로 군비 확장을 추진할 수 있었다. 와타나베 구니타케 대장대신은 재정 계획안(1896~1905년)을 제출하여 군비 확장의 재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 내 해군 숭배 열기가 일어났고, 삼국간섭으로 인해 서방에 비해 일본의 해상 약세가 강조되면서 해군 확장에 대한 대중과 입법부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2.1. 삼국 간섭과 일본의 대응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일 전쟁이 끝났지만, 삼국 간섭으로 인해 일본은 랴오둥 반도를 청나라에 반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서구 열강, 특히 러시아의 힘을 실감하고 해군력 증강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정비하고 뤼순을 군항으로 확장하여 태평양 함대를 강화하고 있었는데, 이는 일본에게 큰 위협이었다.
일본은 랴오둥 반도 반환 대가로 청나라로부터 추가 배상금 3천만 냥(약 4천 5백만 엔)을 받았고, 이를 군비 확장에 사용했다. 1896년부터 1905년까지의 군비 확장 비용은 총 3억 1,324만 엔에 달했으며, 이 중 해군 예산이 67.6%를 차지했다.
해군 대신 사이고 주도는 1896년에 전함 4척과 순양함 4척을 추가하는 '해군 확장 계획'을 제출했다. 그는 한두 나라가 동양에 파견할 수 있는 해군력에 대응 가능한 함대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형 전함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없어 희망봉을 돌아야 하므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영일 동맹의 동맹국인 영국 외에는 연료 보급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평시에 일본 함대에 맞설 수 있는 대규모 전함을 동양 함대에 배치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비상시에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2등 전함과 순양함만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일본은 1896년부터 1905년까지 아래와 같은 해군 건설 계획을 추진했다.
| 군함 종류 | 척수 |
|---|---|
| 1급 강철 전함 | 4 |
| 1급 순양함 | 6 |
| 3급 순양함 | 3 |
| 어뢰포정 | 1 |
| 어뢰 보급함 | 1 |
| 구축함 | 23 |
| 1급 어뢰정 | 16 |
| 2급 어뢰정 | 37 |
| 3급 어뢰정 | 10 |
| 총 척수 | |
| 주력함 | 16 |
| 구축함 및 어뢰정 | 88 |
| 총 비용 | 213100964JPY |
2.2. 사이고 주도의 해군 확장 계획
사이고 주도는 러시아의 남하 정책에 대응하고, 동아시아 해역에서 일본의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해군 확장 계획을 제출했다. 그는 한두 국가가 동양에 파견할 수 있는 해군력에 대항할 수 있는 함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이고 주도는 수에즈 운하 통과 가능 여부와 석탄 보급 문제를 고려하여, 15,000t급 영국제 최신 전함 6척과 구식 전함에 대응할 수 있는 1등 순양함을 갖추는 것을 제안했다. 이는 영국 이외의 국가들은 희망봉을 돌아야 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연료 보급도 어렵기 때문이었다. 또한, 대형 전함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없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사이고 주도의 계획은 단순히 전함 건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전함을 보조할 수 있는 순양함, 구축함, 어뢰정 등 다양한 함종을 포함하는 균형 잡힌 함대 건설을 지향했다. 이는 육군에서 보병이 포병, 기병, 공병의 지원을 받는 것처럼, 전함도 다양한 유형의 군함으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했다.
구체적인 계획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군함 종류 | 척수 |
|---|---|
| 1급 강철 전함 | 4 |
| 1급 순양함 | 6 |
| 3급 순양함 | 3 |
| 어뢰포정 | 1 |
| 어뢰 보급함 | 1 |
| 구축함 | 23 |
| 1급 어뢰정 | 16 |
| 2급 어뢰정 | 37 |
| 3급 어뢰정 | 10 |
| 총 척수 | |
| 주력함 | 16 |
| 구축함 및 어뢰정 | 88 |
이 계획은 1896년부터 1902년까지 7개년 계획으로, 총 54척의 함정을 건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함정 건조 예산은 9477만 6245엔 84전 7리였다.
3. 육육함대 계획
육육함대 계획은 1896년부터 1905년까지 10개년 계획으로, 전함 6척과 장갑순양함 6척을 주력으로 하는 대규모 함대 건설을 목표로 했다. 이 계획은 청일 전쟁 승리 후 일본 내 해군력 증강에 대한 열망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확보한 청나라 배상금 213100964JPY을 주요 재원으로 활용했다.
청일 전쟁 이후 삼국간섭으로 랴오둥반도 반환을 강요받은 일본은 서구 열강에 비해 해군력이 열세임을 인식하고 해군력 증강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청일 전쟁의 승리로 확보한 배상금 중 약 139이 해군 확장 예산으로 사용되었으며, 나머지는 공공 대출과 기존 정부 수입으로 충당했다.
당시 일본의 산업 기반은 자체적으로 장갑 군함을 건조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함정은 영국 등 해외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이 계획을 통해 일본은 10년 만에 세계 4위의 해군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계획은 두 단계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단계는 1896년에 시작하여 1902년에 완료될 예정이었고, 2단계는 1897년부터 1905년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각 단계별 건조 함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을 참조)
3.1. 제1기 확장 계획 (1896~1902)
1896년부터 1902년까지 7개년 계획으로, 총 54척의 함정을 건조하고 94776245JPY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주요 건조 함정은 다음과 같다.
3.2. 제2기 확장 계획 (1897~1905)
1897년부터 1905년까지 진행된 제2기 확장 계획은 전함 3척, 1등 순양함 4척, 3등 순양함 3척, 구축함 15척 등 총 40척을 건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주요 건조 함정으로는 아사히, 하쓰세, 미카사(전함), 아사마, 도키와(1등 순양함) 등이 있다.
당초 계획에는 장갑순양함 2척이 추가되었는데, 이는 하비 장갑과 크루프 장갑 등 신형 장갑 기술이 발달하면서 장갑순양함도 전함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4. 육육함대 계획 이후의 확장 계획
1897년부터 1905년까지 9개년 계획으로 추진된 육육함대 계획 이후의 확장 계획은 함정 40척 건조를 목표로 했다. 총 예산은 112986098JPY이었으며, 제1기 계획 추가 예산으로 5338620JPY이 배정되었다.
이 계획에 따라 건조된 함정은 다음과 같다.
4.1. 제3기 확장 계획 (1903~1913)
러일 전쟁 직전에 새롭게 추가된 건함 계획이다.
* 기간: 1903년 ~ 1913년까지 11개년 계획
* 건조: 함정 7척 건조
* 예산: 115
건조된 함정은 다음과 같다.
* '에카제'함은 원문에 에카제로 표기되어 있으나, 이는 이탈리아 해군의 구축함으로, 일본 해군에서 사용된 기록이 없어 오기로 판단, 제외한다.
4.2. 군함 2척 추가 구입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해군력 증강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아르헨티나가 이탈리아에서 장갑순양함 4척을 구입한 후 추가로 2척을 발주한 상태였다. 일본은 이탈리아에서 건조 중이던 순양함 가스가, 닛신을 아르헨티나로부터 구입했다. 이 두 군함은 러일 전쟁 개전 직후인 1904년 3월 16일 일본에 도착하여 주력함 부족을 보충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일 동맹에 따라 영국 정부가 이 두 군함의 회항을 전면적으로 지원하여 러시아의 방해나 나포, 공격 시도로부터 지켜주었다.
4.3. 러일 전쟁 군사비에 의한 건조 계획 (1904)
1904년 3월, 러일 전쟁으로 인해 임시 군사비가 할당되면서, 함정 건조와 기타 비용에 사용할 '함정 추가 비용'을 재원으로 하는 전시 건함 계획이 수립 및 실행되었다.
| 함종 | 척수 | 주요 함선 |
|---|---|---|
| 전함 | 2 | 아키, 사쓰마 |
| 장갑순양함 | 4 | 쓰쿠바, 이코마, 구라마, 히에이 |
| 2등순양함 | 1 | 도네 |
| 통보함 | 2 | 요도, 모가미 |
| 대형구축함 | 1 | 야마카제 |
| 중형구축함 | 2 | 사쿠라, 다치바나 |
| 구축함 | 28 | 가미카제, 하쓰시모, 야요이, 기사라기, 시라쓰유, 시라유키, 마쓰카제, 아사카제, 하루카제, 시구레, 아사쓰유, 하야테, 오이테, 유나기, 유구레, 유다치, 미카즈키, 노와키, 우시오, 네노히, 히비키, 시로타에, 하츠하루, 와카바, 하쓰유키, 우라나미, 이소나미, 아야나미 |
| 구축함 (추가 건조) | 4 | 우즈키, 미나즈키, 나가쓰키, 기쿠즈키 |
| 특호 어뢰정 (잠수정) | 13 | 제1호 ~ 제13호 |
4.4. 러일 전쟁 종전 직후의 건조 계획 (1907~1913)
1907년부터 1913년까지 7개년 계획으로 함정 31척을 건조하고, 예산 76을 투입하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을 통해 가와치, 셋쓰 전함 2척과 곤고 장갑순양함 1척이 건조되었다. 또한 지쿠마, 야하기, 히라토와 같은 2등 순양함 3척, 우미카제 대형 구축함 1척, 파호 제 9, 10과 같은 잠수정 2척이 건조되었다.
5. 계획 실시 결과
66함대 계획의 추진으로 일본 제국 해군은 이전보다 4배 이상 확장된 해군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 해군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에 이어 미국과 독일을 능가하는 세계 5위의 해군력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1902년에는 세계 4위로 올라섰다. 이후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동아시아의 주요 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5.1. 일본 해군력의 특징
66함대 계획으로 일본 제국 해군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에 이어 미국과 독일을 능가하는 세계 5위의 해군력을 갖추게 되었다. 1902년에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 이어 세계 4위의 해군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1만 톤급 대형 장갑순양함 6척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녔다.
* 크기: 약 1만 톤으로 당시 순양함 중에서는 대형이었다.
* 공격력: 주포는 8인치 4문, 부포는 6인치 14문(아즈마와 야쿠모는 12문)을 장착했다. 이는 당시 전함의 주포(12인치 4문)를 제외하면 동일한 수준으로, 순양함으로서는 상당한 무장이었다.
* 함선: 영국 외 국가에서 주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건조된 아즈마와 독일에서 건조된 야쿠모는 부포가 6인치 12문으로 약간 적었지만, 동일 전대에 편입되어 전술 운용을 위해 함형과 무장을 통일하여 실제로는 동형함에 가까웠다.
* 방어력: 전함에 사용되는 하비 강철 9인치와 거의 비슷한 하비 강철 7인치를 채용했다.
* 속력: 20노트로 당시 전함의 18노트보다 빨랐지만, 영국이나 프랑스의 장갑순양함보다는 느렸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일본 해군의 장갑순양함은 구식 전함에 대응하고 신식 전함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개념은 이후 순양전함 또는 고속 전함과 유사하며, 러일 전쟁의 결과를 본 영국은 순양전함을 건조하기 시작했고, 각국도 경쟁적으로 대형에 중무장한 장갑순양함을 건조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