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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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창설된 대한민국 해군의 상륙 작전 부대이다.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으며, '무적 해병'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73년 해병대 사령부가 해체되었다가 1987년 재창설되었고,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설치하여 서북도서 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현재는 해병대사령부 예하 2개 사단과 2개 여단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붉은 명찰과 팔각모를 상징으로 한다. 하지만 부대 내 가혹행위와 은폐 논란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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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대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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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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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대한민국 해병대 |
로마자 표기 | Daehanminguk Haebyeongdae |
영문 명칭 | Republic of Korea Marine Corps, ROKMC |
창설일 | 1949년 4월 15일 |
재창설일 | 1987년 11월 1일 |
소속 | 대한민국 해군 |
종류 | 해병대 |
역할 | 상륙작전 신속대응부대 강습작전 해안경계 |
규모 | 29,000명 (2022년 기준) |
본부 | 경기도 화성시 |
별칭 | 무적해병 ('Invincible Marines') 귀신 잡는 해병대 ('Ghost Killers') 신화를 남긴 해병대 ('Legend Makers') |
표어 |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For Justice and Freedom') 필승 ('Certain Victory')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Once a Marine, Always a Marine') 안되면 될 때까지 |
마스코트 | 진돗개 해병이 |
군가 | 해병대가 |
상징 | 팔각모, 붉은 명찰, 세무 전투화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지휘 체계 | |
군령권 | 합동참모본부 |
군정권 |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
사령부 | 해병대사령부 |
대통령 | 윤석열 |
국방부 장관 | 김용현 |
해군참모총장 | 양용모 |
해병대 사령관 | 김계환 |
장비 | |
주요 장비 | KAAVP7A1 M48A5K K-1 K-9 |
참전 | |
주요 전투 | 한국 전쟁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제2차 서울 전투 도솔산 전투 베트남 전쟁 연평도 포격 사건 |
기념일 | |
기념일 | 창설일 (1949년 4월 15일)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15일) 서울 수복 (1950년 9월 27일) |
기타 | |
색상 | 빨강, 노랑 |
2. 역사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현재 창원시 진해구)에서 380명 규모의 부대가 구 일본군의 구구식 경기관총 등의 무장을 사용하여 해군 예하에 창설되었다. 초대 사령관은 당시 진해 특설기지 참모장이었던 만주국군 출신의 신현준이었다.
미국 해병대의 영향을 받았으나, 해군으로부터의 독립성이 강한 미국 해병대와는 달리, 영국 해군과 유사하게 대한민국 해군 예하이다. 해군과는 달리, 육군은 조선인을 폭넓게 받아들였으므로, 육군사관학교 졸업생이나 육전 경험이 있는 조선 출신 육군 장교가 많았던 점도 영향을 주었다.
1950년 한국 전쟁에 투입되어,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해방군을 상대로 하나의 대대를 섬멸했다고 알려지며, 외국 언론에서는 무적의 해병대라고 소개되었다. 이때부터 국내 최정예 부대 중 하나가 되었다.
1964년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미국 측의 승낙을 얻어[44] 최정예 육군 수도사단(통칭: 맹호부대), 제9보병사단(통칭: 백마부대) 2개 사단과 함께, (통칭: 청룡부대)를 베트남에 파병하여 참전하였다. 미국군과 달리, 보병을 중심으로 한 부대 편성을 갖추고, 적을 포획하는 것 이외의 반격은 하지 않는 등 북베트남인민군(NVA) 및 베트콩과 유사한 게릴라 전술에 집중한 결과, 전투에서의 피해 비율은 36:1(미군 전체로는 12:1)이라는 압도적인 전과를 올렸고, NVA와 베트콩 양군을 상당히 고전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전공은 한미 관계 강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퐁니·퐁냐트 학살이나 하미 학살, 라이따이한 문제 등의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2020년 4월에는 청룡부대의 학살 행위에서 살아남았다고 주장하는 베트남 여성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45]
1973년에 해병대 사령부가 해체되고, 해병대 사령관은 제2해군참모차장이 되고 해병은 해군 상륙병이 된 적도 있지만, 1987년에 현행 해병대 사령부가 부활하여 현재에 이른다.
2010년 11월 23일의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는, 조선인민군의 포격을 받아, 연평도 수비대 제9해병포병대대 제7포병중대가 반격하였으나 2명의 전사자와 16명의 부상자를 냈다.
2016년 현재 2개 사단, 2개 여단, 연평부대, 진해 해군기지사령부 육상경비대대, 사령부, 교육훈련단, 지원부대들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해병대의 병력은 29,000명 수준이다.
2. 1. 초기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 (현 창원시 진해구) 덕산 비행장에서 대한민국 해병대가 창설되었다. 초대 해병 사령관은 신현준 중령이었고, 해병 참모장은 김성은 통제부 교육부장이었다. 초기 핵심 장교들은 대부분 일본 제국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 육군 장교 출신이었다. 부대원은 해군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병[52] 300명으로 구성되었다. 1949년 8월 1일 해군에서 장교와 부사관을 증원받고, 해군 병 14기 중에서 440명을 해병대 병 1기로 특별모집받아 2개 대대 규모로 편성되었는데, 이들은 1949년 8월 15일 광복절 4주년 기념식에서 사열하면서 최초로 모습을 대외적으로 드러내었다.[53]
초기 해병대는 미국 해병대를 모방하였으나, 일본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 제국의 육군은 조선인을 폭넓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육군사관학교 졸업생이나 육전 경험이 있는 조선 출신 육군 장교가 많았던 점도 영향을 주었다.
1949년 9월, 신영철과 김행래에 의해 작사·작곡하고 이병걸이 편곡한 〈나가자 해병대〉가 해병참모장 김성은 대령을 위원장으로 한 군가제정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해병대의 군가로 제정되었다.
1949년 8월 29일, 진주에 전개한 김성은의 대대가 4개월간 지리산 조선인민유격대를 토벌하고, 1949년 12월 29일 제주도에 상륙하여 옮겨가 이듬해 1950년 7월까지 약 7개월 동안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고 공비를 토벌하였다.
2. 2. 6.25 전쟁
1950년 8월 17일 통영 상륙 작전에서 김성은 대령이 지휘하는 해병대 김성은 부대는 조선인민군 제7사단 예하부대를 격파하고 통영을 탈환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애칭이 생겨났다는 설이 전해지지만 정확한 유래는 밝혀지지 않았다.[54]인천 상륙 작전을 앞두고 신현준 사령관은 제주도의 해병대사령부에서 신병 3,000명을 모집하고 해병대 김성은 부대 2개 중대를 보강하여 1개 연대급으로 편성, 미 제1해병사단 5연대에 배속되어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에 참가하였고 월미도의 적색해안으로 상륙하였다.(당시 미 제1해병사단이 편의상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 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으로 실제 해병대 제1연대 창설은 1950년 12월 20일이다.)

9월 27일 서울로 진격하여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다음날 9월 28일 조선인민해방군의 잔여병력을 소탕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수도를 되찾았다.[55] 이후, 전세가 기울어 국제 연합군이 혜산진까지 진격하자, 대한민국 해병대는 각각 원산과 함흥 지역에 상륙하여 전투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10월 25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증원되어 한반도로 진입해오자, 각 지역에 있던 해병대는 일제히 철수하여 진해로 집결하였다. 12월 20일, 제5독립대대를 창설하였다.
1951년 6월 4일, 미국 제5해병연대가 도솔산을 탈환하는데 실패하자, 제1연대는 그들과 임무를 교대하여 중국 인민해방군 제5군단 예하 제12사단과 제32사단을 상대로 6월 20일까지 전투를 지속하여 2개 사단을 격파하였다. 8월 19일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여받았다. 8월 30일에는 김일성 고지에서 제3군단 예하 제1사단을 상대로부터 9월 4일까지 4일간 공방전을 벌여 제924번 "김일성" 고지와 제1026번 "모택동" 고지를 탈환하였다. 전후, 미국 측에서는 이 전투를 단장의 능선 전투로 명명하였다.
1952년 제1연대와 제5독립대대가 합병하여 제1전투단으로 재편성되었다.
1953년 한국 전쟁이 휴전되자, 해병대는 조직의 정비를 시작하였다. 제1전투단은 경기도 파주군 아동면으로 이동하고 1954년 2월 1일 제1여단으로 증편한 뒤, 3월 14일 미국으로 귀환하는 미국 제1해병사단에게서 전술책임지역(TAOR)의 작전지휘권을 인수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955년 1월 제1여단에서 해병대 제1사단으로 증편되고, 3월 26일 사령부가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남산 기슭으로 옮겨졌다.
1959년 2월 26일, 그때까지 경기도 파주군과 김포군에 주둔했던 제1사단은 제1연대에서 차출한 대원들을 근간으로 제1임시여단을 창설한 뒤 이 제1임시여단에게 김포반도의 경비를 맡기고 3월 12일 포항시로 이동하였다.
한국 전쟁 당시, 대한민국 해병대는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명을 얻었다.[3]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한 후, 고길훈 부대(해병대 소총대대)는 7월 16일 군산에 상륙했고, 김성은 부대(해병대 소총대대)는 8월 17일 통영반도에 상륙하여 조선인민군(KPA)의 진격을 지연시켰다. 해병대는 신속하게 3개 대대로 확장되었고, 목포, 창항(서천), 진동리(창원), 진주, 남원, 마산 등에서 전투에 참여했다.[3]
8월 23일 해병대는 거제도에 상륙하여 9월 15일까지 조선인민군과 전투를 벌였다.
인천 상륙 작전 전에, 대한민국 해병대 연대 규모의 부대가 편성되어 미국 해병대(USMC) 제1해병사단(1st Marine Division)에 배속되었다. 당시 제1해병사단은 이 부대를 편의상 대한민국 해병대 제1해병연대(ROKMC 1st Marine Regiment)라고 불렀다.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해병대 제1해병연대는 1950년 12월 20일에 창설되었다.)
9월 5일 연대의 작전통제권은 미국 해병대 제5해병연대(USMC 5th Marine Regiment)에 이양되었고, 부산에서 한국군 군사고문단(KMAG) 고문들의 추가 훈련을 받은 후, 9월 12일 USS 피카웨이(APA-222)에 승선하여 인천으로 출항했다.[3]
9월 15일 오후, 연대는 인천 레드비치에 상륙하여 인천의 조선인민군을 소탕하는 임무를 맡았다. 다음 날, 미국 해병대 제5해병연대와 제1해병연대는 인천-서울 고속도로를 따라 이동하여 김포비행장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대한민국 해병대 제3대대는 제5해병대의 좌측 방어를 담당하고 김포 서쪽 아스콤 시티 근처 고지를 점령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9월 17일 아침, 대한민국 해병대 제3대대는 많은 조선인민군이 은신처로 삼았던 약 5.18km2의 오두막 미로인 아스콤 시티의 정리를 시작했다. 아스콤 시티 지역은 9월 18일에 결국 확보되었다.[3] 9월 19일 서울 근처 한강까지 진격한 후, 제5해병대는 행주동 근처 한강을 건너 125고지를 점령한 다음 철도선을 따라 남동쪽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대한민국 해병대 제2대대는 상륙돌격장갑차(Amphibious Tractors)를 이용해 한강을 건너, 도하 지점을 내려다보는 95고지를 점령했다. 한편, 김포에 있던 대한민국 해병대 제3대대는 활주로를 탈환하려는 조선인민군 부대에 대한 공습을 요청했다.[3] 9월 22일, 제3대대 제5해병대와 제1대대 제5해병대와 함께 대한민국 해병대 제1대대는 서울로 진격하기 시작했지만, 조선인민군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출발점으로 후퇴해야 했다. 9월 23일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는 공격을 재개했지만, 집중 포화를 맞아 32명이 사망하고 68명이 부상당했다. 연대는 예비대로 철수하고 대한민국 해병대 제2대대가 대체되었고, 제5해병대는 결국 105S고지의 조선인민군 요새를 점령했다.[3] 9월 25일, 미국 해병대는 서울에 대한 최종 공격을 시작했고, 대한민국 해병대 제2연대는 제1해병대에 배속되어 도시 중앙을 통과하여 북동쪽으로 이동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는 제5해병대에 배속되어 국회의사당과 도시 북서쪽을 점령하는 임무를 맡았다. 굳건한 조선인민군의 방어에 맞서 제7해병연대가 9월 26일 전투에 참가했다. 9월 28일 오후까지 도시 중심부의 조선인민군이 제거되었고, 9월 29일 교외에서의 전투가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서울에서 복귀했다. 제1대대와 제3대대를 제외한 연대는 서울 동쪽 약 28.97km 지점에 배치되어 조선인민군의 후퇴를 저지했지만 산발적인 저항만 만났다.[3]
10월 18일, 대한민국 해병대 3개 대대는 원산 상륙 작전에 참여하기 위해 함선에 승선하여 10월 25일 상륙했다. 11월 2일, 연대는 북위 39도 이남 지역의 책임을 맡았다. 11월 말, 연대는 미군 제3보병사단에 배속되었다. 장진호 전투에서 중국 인민지원군(PVA)의 공격 이후, 연대는 유엔군의 철수를 지원하기 위해 원산으로 철수했다. 12월 7일부터 9일까지 제1대대와 대한민국 해병대 제3대대는 함선으로 원산에서 철수했고, 12월 15일 제2대대와 대한민국 해병대 제5대대는 흥남 철수 작전으로 공수 철수했다. 연대는 12월 중순 진해에서 재편성되었다.[3]
휴식과 재정비 기간, 그리고 미국 해병대 고문들의 훈련을 거친 후, 연대는 1951년 1월 중순 제1해병사단에 배속되었다. 1월 24일, 연대는 조선인민군 제10사단에 대한 포항 작전(반게릴라 작전)을 수행 중이던 제1해병사단에 합류했다.[3] 2월 12일, 제5대대를 제외한 연대는 삼척에서 대한민국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 배속되었다. 한편, 제5대대는 인천으로 파견되어 김포반도를 점령했고, 1952년 3월까지 연대와는 독립적으로 작전을 수행했다.[3]
1951년 3월 17일, 연대는 립퍼 작전(Operation Ripper)에 참가하면서 제1해병사단에 영구적으로 배속되었고, 제3대대 제11해병대가 연대에 포병 지원을 제공하도록 배속되었다. 립퍼 작전에 이어 곧바로 러기드 작전(Operation Rugged)과 데온틀레스 작전(Operation Dauntless)이 이어졌으며, 이 작전에서 연대는 북한강을 건너 화천댐을 점령했다.[3] 4월 22일에 시작된 중공군 춘계 공세는 제1대대와 대한민국 해병대 제2대대, 제5해병대의 강력한 방어에 직면했고, 4월 23일까지 중국 인민지원군(PVA)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그러나 인근 부대가 철수함에 따라 해병대는 소양강과 홍천강 사이의 고지로 후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3] 5월 20일 중국 인민지원군의 공세가 꺾이자 유엔은 1951년 5월-6월 반격을 개시했고, 5월 22일 연대는 전선 북쪽 약 4.83km 지점의 목표를 점령하기 위한 초기 진격을 시작했다. 진격은 빠르게 진행되어 5월 말에는 연대가 화천저수지 남쪽에 위치했고, 6월 2일 대한민국 육군 제3연대에 의해 교대되었다.[3]
1951년 6월 4일, 연대는 예비대에서 해제되어 양구에서 1316고지(대암산)까지 이어지는 산맥을 따라 중국 인민지원군/조선인민군 주저항선 공격에 나선 제1해병사단에 합류했다. 이 지역은 조선인민군 제12사단 연대가 방어하고 있었고, 사망할 때까지 방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6월 4일부터 9일까지 연대는 조선인민군과 싸워 제한적인 전과를 거두었다. 마침내 6월 10일 연대장 김태식 대령은 조선인민군 진지에 대한 야간 공격을 결정했다. 6월 11일 02:00에 시작된 공격은 조선인민군을 허를 찔렀고, 해병대는 1122고지와 나머지 고지를 빠르게 점령했다.[3] 대암산 점령 후 해병대는 중국 인민지원군/조선인민군에 대한 공세를 계속하여 더 나은 위치를 확보했다. 6월 15일 대한민국 해병대 제2대대는 1304고지로 북상하여 다음 날 점령했다. 대한민국 해병대 제3대대는 북서쪽으로 이동하여 두솔산을 점령한 후 진지를 구축했다. 7월 7일 연대는 대우산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7월 8일 공격을 시작했다. 22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후, 7월 12일 공격이 중단되었다.[3]
연대와 제1해병사단은 예비대로 들어갔고, 연대는 미국 해병대 고문들로부터 집중적인 훈련을 받았다. 이 기간이 끝날 무렵, 연대는 3개 보병대대, 연대 본부, 4.2인치 박격포 중대, 75mm 무반동총 소대로 구성된 미국 해병대 연대와 같은 조직으로 재편되었다. 부상당한 김태식 대령을 대신하여 김동하 중령이 연대장이 되었다.[3]
8월 27일, 제1해병사단과 연대는 전선으로 복귀하여 펀치볼 전투를 주도하여 9월 21일까지 펀치볼 북쪽 고지선을 장악했다.[3]
펀치볼 전투 이후, 중국 인민지원군/조선인민군 지역 깊숙이 들어가는 다수의 도보 순찰과 중대 규모의 전차-보병 급습으로 전투가 정체전으로 변했다. 1951년 남은 기간 동안 제1해병사단은 한국 중부 동부의 X군단 방어 지역 동부를 계속 점령했다. 좌측부터 우측으로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 제7해병대, 제1해병대가 각각 2개 대대로 주저항선을 유지했다. 제5해병대는 11월 11일 제1해병대를 교대하여 예비대로 들어갈 때까지 예비대에 남았다. 해병대가 순찰과 방어 강화 노력을 계속하는 동안, 대한민국 해병대는 155mm 중포 2문과 105mm 경포 2문으로 구성된 제1한국포병대대를 추가했다.[3]
1952년 초, 김두찬 중령이 지휘하는 대한민국 해병대 제2연대와 공병대, 의무대가 편성되었다. 1952년 봄, 제1해병사단과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는 한반도 서쪽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연대는 제8군의 극좌측에 새로운 위치로 이동한 최초의 부대였으며, 서울 접근로를 제임스타운 라인(Jamestown Line)을 따라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다. 3월 24일까지 제1해병사단과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는 주저항선 좌측 지역에서 대한민국 육군 제1사단 부대를 교대하여 영연방 제1사단에 인접한 위치에 있었고, 마모전이 된 상황에서 지역 전초 기지 경계와 지상 방어를 계속할 준비가 되었다.[3]

1952년 3월 20일,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는 김포 임시연대와 제1해병대(3월 29일 제5해병대로 교체) 사이의 제임스타운 라인 일부 지역의 책임을 맡았다. 3월 25일부터 31일까지 중국 인민지원군은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에 5차례의 별도의 시험 공격을 가했다. 4월 1일, 조선인민군은 임진강의 자유의 문 다리를 점령하려고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 진지에 공격을 가했지만, 4월 2일 새벽까지 격퇴되었다. 4월 12일부터 13일까지 중국 인민지원군은 제1해병사단 지역에 대한 포격과 보병 시험 공격을 강화했고, 4월 17일 밤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 진지에 공격을 가했지만, 소화기와 포병 사격으로 격퇴되었고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는 2명이 사망한 반면 중국 인민지원군은 36명이 사망했다. 4월 23일과 24일, 제1해병사단은 대부분의 전초 기지에서 철수하여 이러한 고립된 위치의 취약성을 줄이고 주저항선을 강화했다.[3]
1952년 5월 5일, 17대의 M4 셔먼 전차와 1대의 전차 회수차를 보유한 181명으로 구성된 한국 해병대 전차 중대가 편성되었다. 이 중대는 미국 해병대 제1전차대대 A중대의 지휘 아래 전투 훈련을 받았다. 전체 중대는 7월 12일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를 지원하기 위해 A중대를 교대하기 위해 투입되었다.[3] 주저항선을 따라 소규모 부대 작전을 수행한 후, 8월부터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는 벙커힐 전투에 참가했다.[3] 1952년 10월 31일 밤, 대한민국 해병대 제5대대가 연대 위치 오른쪽에 있는 대한민국 해병대 제3대대를 교대하는 동안 중국 인민지원군이 진지를 공격했다. 두 대대 모두 진지를 유지했고, 중국 인민지원군은 11월 1일 새벽 전에 철수하여 295명 이상의 사망자를 남겼다.[3]
1953년 5월 초,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는 예비대로 들어갔고, 7월에 베를린 전초기지와 볼더 시티 전투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의 시험 공격에 대비하여 전선으로 복귀했다.[3]
1953년 7월 27일 전쟁이 끝날 무렵, 한국 해병대는 약 22,070명의 중국 인민지원군/조선인민군을 사살하고 2,529명의 사상자를 냈다.[3]
2. 3. 베트남 전쟁
1964년 베트남 전쟁 당시, 대한민국은 미국의 승인을 얻어[44] 육군 수도사단(맹호부대), 제9보병사단(백마부대)와 함께 제2해병여단(청룡부대)를 베트남에 파병하였다. 1965년 9월 20일 창설된 "청룡부대"는 1965년 10월 9일 깜라인에 상륙하여 주월한국군사령부의 통제 아래 1972년 2월 24일까지 짜빈동 전투 등 여러 전투에서 활약하였다.[56]
미군과 달리, 보병 중심의 부대 편성을 갖추고 게릴라 전술에 집중한 결과, 전투에서의 피해 비율은 36:1(미군 전체로는 12:1)이라는 높은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동시에, 퐁니·퐁냐트 학살이나 하미 학살, 라이따이한 문제 등의 전쟁범죄를 저지르기도 하였다.[45]
2. 4. 사령부 해체와 재창설
1973년 10월 10일,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마련된 "'''국방부 훈령 제157호'''"에 의거하여 해군으로 지휘통제가 통합되면서 해병대 사령부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59] 해병대 사령관은 해군 제2참모차장이 되었고, 해병대 항공대도 해체되어 장비와 인원은 모두 해군으로 이관되었다. 해군에는 보병 병과가 신설되었으며, 해병대 사령부 해체 후 남은 해병대 인원은 전원 해군 보병에 편입되었다.1987년 11월, 예산 제약으로 인해 1973년 10월 해체되었던 대한민국 해병대 사령부가 재건되었다.[5]
2. 5. 1990년대 이후 ~ 현재
대한민국 해병대는 처음에는 해상에서 육지로 전력을 투사하기 위해 창설되었으나, 현재는 헬기와 수송기를 이용한 공중 기동 능력까지 갖추면서 육해공을 아우르는 입체적인 고속 상륙 작전이 가능하도록 발전하고 있다.1987년 11월 1일, 14년간 해군에 통합되어 운영되면서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해병대 사령부가 재창설되었다. 1990년 8월 1일에는 법률 개정을 통해 해병대 사령관의 지휘권이 회복되었고, 1992년 12월 1일에는 한미연합군사령부의 예비 전력 부대 임무 수행을 위해 "'''연합 해병대 사령부'''"(Combined Marine Component Force Command; CMFC영어)가 창설되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제시한 국방개혁 2020 계획에는 제6해병여단과 연평부대 해체, 백령부대와 제주부대 창설, 정보단과 통신단 정식 편제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으나, 비용 문제와 조선인민군 제4군단의 연평도 포격으로 인한 신속 대응 문제 제기로 인해 계획이 폐지되었다.[60]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한 국방개혁 307계획에 따라 서해5도에서의 조선인민군 위협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위해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설치되었고, 해병대 사령관이 이를 겸임 지휘하게 되었다. 또한, 국방개혁 2020의 일부 계획이었던 제주부대, 정보단, 통신단 창설 계획이 부활되었고, 사령부 직할 항공단 창설이 추가되어 신속 대응 및 공중, 지상 기동 작전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되었다.

2010년 11월 23일 발생한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는 북서부 도서에 배치된 해병대 병력을 감축하려던 군 개혁 계획 2020을 취소하고, 군 개혁 계획 307(계획 307)을 수립했다. 계획 307에 따라 2011년 6월 15일 창설된 서북도서방위사령부(NWIDC) 사령관은 해병대 사령관이 겸임하며, 실제 전투 상황에서 NWIDC 예하 육군, 해군, 공군을 지휘할 수 있게 되었다.[7][8]

계획 307에는 2015년까지 북서부 5개 도서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전차, K9 자주포, K-10 장갑차 및 민간인 방공호 건설, 참호 구축, 스파이크 미사일 및 발사대 설치,[9][10] 적 포병 위치 탐지 시스템(HALO) 배치, 백령도 6여단 예하 AH-1S 코브라 부대 증설, 연평도 포병 부대 증편 및 K9 자주포 수량 증가,[11] 천마(K-SAM) 및 K-136 다연장 로켓포 배치, 해병대 병력 증강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12]
2011년 6월 23일, 대한민국 국회는 해병대 사령관이 해군참모총장 대신 해병대 인사 관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주요 내용은 해병대 부사령관 신설, 해병대 주요 작전을 '상륙 작전'으로 명시, 해병대 사령관의 합동참모회의 정식 회원 및 국방사업추진위원회 위원 임명, 제복 선택권 이관, 해병대 군수품 관리권 부여 등이다.[13][14] 이를 통해 해병대는 국가 전략 기동 부대로서의 위상을 강화했다.
2011년 10월 15일, 해당 법률이 시행되면서 해병대는 해군으로부터 병적 기록을 인계받고 새로운 제복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1973년 이전 자체 제복을 착용했던 해병대는 해군과 유사한 제복을 착용해야 했으나, 새로운 제복은 육해공군과 다른 디자인으로, 해변, 모래, 해초 색상을 사용하여 상륙 작전 시 위장 효과를 높였다.[15]

2012년 6월 4일, 국방부는 해병대에 32대의 수륙양용 기동헬기를 배치할 계획을 확정했다. 해병대는 2017년에서 2020년 사이에 수륙양용 기동헬기 2개 대대와 공격 헬기 1개 대대를 포함한 항공단을 창설할 예정이었다.[16]
2016년 현재 해병대는 2개 사단, 2개 여단, 연평부대, 진해 해군기지사령부 육상경비대대, 사령부, 교육훈련단, 지원부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병력은 29,000명 수준이다. 해병대사령부는 2개 사단과 2개 여단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해병대사령관은 중장 계급이다. 연평도 포격 이후 해병대사령관은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사령관직을 겸임하고 있다. 제1해병사단은 해상, 공중, 육상 작전 수행이 가능하며, 예하 3개 보병대대는 공정, 상륙돌격, 유격 부대로 전문화되어 있다. 해병대 정찰부대는 스쿠버 다이빙, 낙하산 훈련 등 다양한 특수전 훈련을 받는다.
해병대는 부상병 치료를 대한민국 해군에 의존하며, 특수 훈련을 받은 해군 의무병이 해병대 부대에 배치되어 신병들에게 응급처치 기본 교육을 실시한다.
3. 해군과의 관계
해병대는 해군에 소속되어 필요한 장비나 무기에 대한 소요를 해군을 통해서만 제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3년 방위사업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예고되면서, 해병대도 독자적인 예산권을 확보하고 무기체계 소요를 직접 제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17] 2016년에는 신속기동부대 창설을 통해 24시간 이내에 한반도 전역에 배치될 수 있는 전투 준비태세를 갖추게 되었다.[18]
2016년 5월 2일, 신속기동부대는 "대한민국 해군·해병대 신속기동부대"라는 공식 명칭과 "제승부대"(制勝, 승리를 보장한다는 의미)라는 별칭으로 발족했다.[19][20][21] 현재 공식 명칭은 "대한민국 해병대 신속기동부대"이며, 제1사단 예하 2개 여단이 순차적으로 신속기동부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22]
3. 1. 예산권 분리
해병대가 2013년 하반기부터 예산 관련 권한을 해군으로부터 넘겨받을 예정이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방위사업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국방부에 따르면 2013년 4월 4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위원에 해병대 부사령관을 포함하고, 무기체계 등의 '소요요청기관'에 해병대를 해군과 분리해 명시하는 방위사업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개정되면 해병대 사령관이 직접 방위사업청장이나 합참의장에게 필요한 무기체계 소요를 제출할 수 있게 된다. 이전까지 해병대는 법적으로 해군에 소속되어 해군을 통해서만 장비나 무기에 대한 소요를 제기할 수 있었다. 또한 2012년 6월 국방장관은 군무회의에서 상륙기동헬기 32대를 해병대에서 운영하도록 결정했다.


4. 편제
대한민국 해병대는 처음에는 해상에서 육지로 전력을 투사하기 위해 창설되었으나, 현재는 헬기와 수송기를 이용한 공중 기동 능력까지 갖추어 육해공을 아우르는 입체적인 고속 상륙작전이 가능하도록 편성, 훈련 및 발전하고 있다.
2016년 현재 해병대는 2개 사단, 2개 여단, 연평부대, 진해 해군기지사령부 육상경비대대, 사령부, 교육훈련단, 지원부대들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해병대 병력은 29,000명 수준이다.
- 사령부 - 경기도 화성시
- 해병대 교육훈련단 - 경상북도 포항시
- 본부대대
- 상륙전교육대대
- 제15해병교육연대
- 제16예비군관리연대
- 동원지원단
- 해병대 항공단 - 경상북도 포항시
- 해병대 군수단 - 경상북도 포항시
- 기동군수대대
- 상륙지원대대
- 보급근무대대
- 수송대대
- 정비대대
- 정보통신중대
- 본부대
- 해병대 제1사단 "해룡" - 경상북도 포항시
- 신속기동부대[65]
- 제2해병여단 "황룡"
- 제3해병여단 "킹콩"
- 제7해병여단 "맷돼지"
- 제1해병포병여단 "불사조"
- 제1공병대대
- 제1상륙돌격장갑차대대
- 제1수색대대
- 제1전차대대 “백사자”
- 제1정보통신대대
- 제1지원대대
- 제1화생방지원대
- 제1의무대대
- 제1본부대대
- 제1항공대
- 해병대 제2사단 "청룡" - 경기도 김포시
- 제1해병여단 "선봉"
- 제5해병여단 "상승"
- 제8해병여단 "백호"
- 제2해병포병여단 "백상아리"
- 제2수색대대
- 제2상륙돌격장갑차대대
- 제2전차대대
- 제2공병대대
- 제2정보통신대대
- 제2의무대대
- 제2본부대대
- 제2군사경찰대
- 제2항공대
- 제2군수대대
- 제1예비군관리대대
- 제2예비군관리대대
- 해병대 제6여단 "흑룡" - 인천광역시 옹진군
- 서해5도 주둔지
- 제61대대
- 제62대대
- 제63대대
- 제65대대
- 포병대대
- 제6수색중대
- 전차중대
- 제6군수지원대대
- 정보중대
- 해병대 제9여단 "백룡"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제91대대
- 제92대대
- 제93대대
- 포병대대
- 신속대응대대
- 연평부대 "공룡" -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66]
- 제90보병대대
- 제9포병대대
- 우도경비대
- 군수지원대
- 전차중대
- 방공중대
- 정보통신중대
- 본부중대
해군 진해기지사령부를 방어하기 위해 사령부 예하 해병부대인 육상경비대대가 주둔하고 있다.
1973년 해병대사령부 해체 이후에는 '해병대'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해군 제1해병(상륙)사단", "해군 00해병대대" 등으로 불렸으나, 1987년 해병대사령부 재창설 이후 '해병대' 명칭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고, 예하 부대명도 "해병 제1사단", "해병 제00대대" 등으로 변경되었다.
5. 병과
대한민국 해병대는 처음에는 해상에서 육지로 전력을 투사하기 위해 창설되었으나, 현재는 헬기와 수송기를 이용한 공중 기동도 가능해져 육, 해, 공 모든 영역에서 입체적인 고속 상륙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편성, 훈련 및 발전하고 있다.
2016년 현재 해병대는 2개 사단, 2개 여단, 연평부대, 진해 해군기지사령부 육상경비대대, 사령부, 교육훈련단, 지원부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해병대 병력은 29,000명 수준이다.
해병대의 병과는 다음과 같다.
병과 |
---|
보병과 |
포병과 |
기갑과 |
정보과 |
공병과 |
항공과 |
정보통신과 |
군수과 |
재정과 |
정훈과 |
군사경찰과 |
6. 인사
2016년 현재 대한민국 해병대는 2개 사단, 2개 여단, 연평부대, 진해 해군기지사령부 육상경비대대, 사령부, 교육훈련단, 지원부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병력은 29,000명 수준이다.[62]
대한민국 국군의 계급은 권한에 따라 장교, 준사관, 부사관, 병으로 나뉜다.
- 장교
장교 계급은 장성급(장성), 영관급(영관), 위관급(위관)으로 세분된다.
계급 | 장성 | 영관 | 위관 | ||||||||
---|---|---|---|---|---|---|---|---|---|---|---|
대한민국 해병대 | |||||||||||
대장|Daejang한국어 | 중장|Jungjang한국어 | 소장|Sojang한국어 | 준장|Junjang한국어 | 대령|Daeryeong한국어 | 중령|Jungnyeong한국어 | 소령|Soryeong한국어 | 대위|Daewi한국어 | 중위|Jungwi한국어 | 소위|Sowi한국어 |
- 준사관
대한민국 국군 전 군에서 준위 계급이 사용된다. 준사관은 부사관과 장교의 중간에 위치하며, 금색 소위 계급장을 착용한다.
계급 | 준사관 |
---|---|
대한민국 해병대 | |
준위|Junwi한국어 |
- 병
대한민국 국군에서 하사부터 원사까지의 계급은 부사관으로 간주된다. 영어로는 "상병"과 "병장"이라는 병 계급이 있지만, 부사관 계급은 아니지만 부사관 직책을 맡는 경우 부사관으로 대우받는다. 이등병, 일등병, 상등병은 각각 이병, 일병, 상병으로 통칭된다.
계급 | 부사관 | 병 | ||||||||
---|---|---|---|---|---|---|---|---|---|---|
대한민국 해병대 | colspan=1 rowspan=2| | |||||||||
원사|Wonsa한국어 | 상사|Sangsa한국어 | 중사|Jungsa한국어 | 하사|Hasa한국어 | 병장|Byeongjang한국어 | 상등병|Sangdeungbyeong한국어 | 일등병|Ildeungbyeong한국어 | 이등병|Ideungbyeong한국어 |
6. 1. 사령관
해병대 사령관은 중장 계급의 고위 장교로, 국군조직법 제10조 3항에 따라 해군참모총장의 명령을 받아 해병대를 지휘통제한다. 현재 사령관은 주일석 중장이며, 서북도서방위사령관과 평시 한미연합해병구성군사령관을 겸임한다. 과거에는 해병대사령관이 중장까지만 진급할 수 있었으나, 군인사법 개정 이후 대장 진급도 가능해졌다.[62]6. 2. 장교 양성
해병대 장교는 해군사관학교 졸업, ROTC(학군사관후보생), OCS(사관후보생) 3가지 경로를 통해 임관하게 된다. 해군사관생도는 졸업 시 해군(항해), 해병대(상륙) 중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선택하여 소위로 임관한다. ROTC의 경우 전국대 ROTC 임관자는 졸업 전 해병대 장교 임관을 신청할 경우 모집인원 내 경쟁을 거쳐 일부 인원이 해병 소위로 임관하게 되며, 한국해양대학교와 제주대학교 ROTC는 졸업과 함께 해병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OCS는 4년제 대학과정을 수료한 뒤 해병대 장교로 지원하여 12주간의 군사훈련 후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는 경우이다.[63]2012년 6월 27일, 해병대는 단국대학교와 해병대군사학과의 신설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여, 2013년 해병대 장교 양성의 폭을 넓혔다.[63] 해병대군사학과 학생은 4년간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는 것은 물론,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기숙사비 역시 면제를 받고, 졸업 후 OCS 해병대 소위로 임관해 의무복무기간(7년)을 거치게 된다.[64]
7. 문화와 전통
대한민국 해병대는 붉은 명찰과 팔각모로 상징된다. 붉은 명찰은 피와 정열, 용기, 신의, 약동하는 젊음을 의미하며, 글자색인 황색은 땀과 인내를 의미한다.[82] 미 해군과 해병대 작업모에서 유래한 팔각모는 신라 화랑도의 오계와 세 가지 금기를 포함하여 ‘팔계’의 뜻을 가진다.[83]
7. 1. 복장 및 상징
해병대는 붉은 명찰과 팔각모로 상징된다. 붉은 명찰은 피와 정열, 용기, 신의, 약동하는 젊음을 의미하며, 글자색인 황색은 땀과 인내를 의미한다.[82] 미 해군과 해병대 작업모에서 유래한 팔각모는 신라시대 신라인의 정신이기도 하였던 화랑도 정신인 오계와 세 가지 ‘금기’를 포함하며 ‘팔계’의 뜻을 가지고 있다.[83]팔각모의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사군이충(事君以忠): 국가에 충성하라.
- 살생유택(殺生有擇): 뜻 없이 죽이지 말라.
- 사친이효(事親以孝): 효도하라.
- 교우이신(交友以信): 벗에게 믿음으로 대하라.
- 임전무퇴(臨戰無退): 전투에 후퇴하지 말라.
또한 세 가지 금기는 다음과 같다.
- 금욕(禁慾): 욕심을 버려라.
- 진유흥(愼遊興): 유흥을 삼가라.
- 진허식(愼虛飾): 허식을 삼가라.
8. 논란
2011년 군인권센터 조사에 따르면 해병대에는 특유의 은어들이 존재했다.[84] 2011년 강화도 해병대 2사단 총기난사 사고 이후, 국방부는 병영 내 악습 근절을 위한 교육 및 점검을 실시했다.[85] 해병대는 가혹행위 병사의 '빨간 명찰'을 회수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86] 그러나 국방부 특별검열단의 설문조사 결과, 여전히 상당수의 해병대원이 구타 및 가혹행위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추가적인 구타·가혹행위자가 적발되기도 했다. 또한, 구타·가혹행위에 대한 처벌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85]
8. 1. 병영 내 가혹행위 및 은폐
해병대는 임무 특성상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지만, 때때로 과도한 괴롭힘과 폭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11년 7월 4일에는 제2사단 해안부대 상등병과 이등병이 공모하여 강화도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켜 4명이 사망했는데, 그 원인 또한 부대 내 괴롭힘으로 지적되고 있다.[46][47][48] 2017년 1월에는 초코파이 180개를 먹도록 강요하거나, 알몸 마사지를 강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50] 8월에는 해병대 사령부 감찰실이 전 부대를 대상으로 한 특별 부대 진단에서 휴양 시설에서 젓가락으로 혀를 잡아당기거나 병따개로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등의 폭행 상해가 자행되었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은폐했던 사실이 밝혀졌다.[49]8. 2. 은유적 표현
2011년 군인권센터 조사 결과 해병대에는 해병대에 관한 은유적 표현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해병대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해병대는 밤에 맞으면서 교육받는다"는 뜻이며, '해병대는 말이 없다'는 "내부 고발하는 해병은 해병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통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84]8. 3. 대처
2011년 7월 강화도 해병대 2사단 총기난사 사고 직후 국방부는 7월 11일부터 7월 29일까지 전 부대를 대상으로 병영 내 악·폐습 근절을 위한 교육과 자체 점검을 실시하였다.[85]해병대는 2011년부터 구타 등으로 빨간 명찰이 회수된 병사는 징계 절차 등을 마치고 빨간 명찰이 없는 상태로 타부대로 전출 뒤 재활교육을 거쳐 명찰 회복식을 갖도록 하였다.
국방부는 구타행위가 계속 적발됨에 따라 향후 인성결함자들의 입영을 차단하기 위해 인성검사 절차를 '병무청→교육단→자대'의 3단계에서 '병무청→교육단→교육대→실무'로 한 단계 강화했다.
2011년 7월 해병 2사단의 강화도 총기 난사 사건 이후 해병대는 가혹행위를 한 병사의 군복에서 해병대원의 상징인 '빨간 명찰'을 떼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후 해병 2사단이 특별명령을 예하부대에 내려 자체 조사한 결과 구타와 가혹행위, 병영 부조리 행위 등으로 35명이 적발돼 징계조치를 받았거나 진행 중이며, 징계 조치와는 별도로 군복에 부착된 '빨간 명찰'을 회수당했다.[86]
8. 4. 대처에 따른 효과
국방부 특별검열단이 2011년 8월 23일부터 9월 1일까지 해병대 장병 8,025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구타 및 가혹행위가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22.2%(1,813명)가 '필요하다'고 답했다.[85] 이는 병영 내 악·폐습 근절을 위한 교육과 자체 점검을 실시한 이후의 결과였다.특별검열단의 특별점검 결과, 구타·가혹행위자 63명이 추가로 적발되었다. 이 중 장교는 2명, 부사관은 13명, 일반 병은 48명이었다.[85]
구타·가혹행위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0사단의 경우, 자세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뺨, 뒤통수, 허벅지, 정강이 등을 5~6회씩 때리고 목조르기를 실시한 해병에 대한 징계는 휴가 제한이 전부였다. 00사단에서는 중사 진급 예정자인 하사관이 진단 6주가 나올 정도로 머리 박기, 군화발 폭행, 뺨 때리기 등의 가혹행위를 했는데도 벌금 200만원에 견책 처분만 내려졌다.[85]
임무 특성상 부대 내에는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지만, 때때로 과도한 괴롭힘과 폭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11년 7월 4일에는 강화도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여 4명이 사망했는데, 그 원인 또한 부대 내 괴롭힘으로 지적되고 있다.[46][47][48] 2017년 1월에는 초코파이 180개를 먹도록 강요하거나, 알몸 마사지를 강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50] 해병대 사령부 감찰실은 전 부대를 대상으로 한 특별 부대 진단에서 휴양 시설에서 젓가락으로 혀를 잡아당기거나, 병따개로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폭행 상해가 자행되었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은폐했던 사실이 같은 해 8월에 밝혀졌다.[49]
9. 주요 해병대 출신 인물
이름 | 복무 분야 | 비고 |
---|---|---|
감스트 | ||
이동현 | ||
김봉준 | ||
민호 | ||
박찬종 | ||
안병훈 | ||
김호 | ||
정병국 | ||
박명기 | ||
신학용 | ||
중광 | ||
황석영 | ||
임혁필 | ||
임채무 | ||
김흥국 | ||
김상중 | ||
이정 | ||
이후 | ||
남진 | ||
윤항기 | ||
최희준 | ||
홍성철 | ||
김기덕 | ||
정석원 | ||
홍사덕 | ||
현빈 | ||
전태규 | ||
오종혁 | ||
윤시윤 | ||
송재희 | ||
허정무 | ||
최희암 | ||
우범곤 | ||
최철원 | ||
윤요섭 | ||
권오준 | ||
민태호 | ||
류형우 | ||
김한원 | ||
윤태웅 | ||
최필립 | ||
김원일 | ||
김동현 | ||
강성태 | ||
황라열 | ||
오기택 | ||
홍훤 | ||
이찬혁 | ||
최민 | ||
로이킴 |
참조
[1]
웹사이트
대한민국 해병대
http://www.rokmc.mil[...]
2019-02-08
[2]
웹사이트
대한민국 해병대
http://www.rokmc.mil[...]
[3]
서적
Train Wreckers and Ghost Killers: Allied Marines in the Korean War
https://www.usmcu.ed[...]
History and Museums Division, Headquarters, U.S. Marine Corps
[4]
뉴스
[토요뒷談] "난 '빨갱이' 잡으려 훈련받은 '인간병기' 였다
http://news.donga.co[...]
2013-05-04
[5]
웹사이트
해병대 사령부의 해체
https://news.joins.c[...]
2019-02-09
[6]
웹사이트
<'국방개혁 307계획' 뭘 담았나>-2(끝)
http://news.naver.co[...]
[7]
웹사이트
'서북도서 방위사령부' 창설..."도발하면 주저 없이 응징
http://www.ytn.co.kr[...]
2011-06-15
[8]
웹사이트
국방개혁 '307계획'발표... 서북도서방위사령부 6월 창설
http://www.asiae.co.[...]
201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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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포격 2년..서북도서 전력증강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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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뉴스 :: 리다이렉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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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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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0 # 추정 날짜. 정확한 날짜가 없어 0으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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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찮은 서해… 軍 "北 도발 땐 초토화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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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인사·예산 해군서 독립된다 - 머니투데이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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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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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독립'..38년만에 해군에 통폐합 이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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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201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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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독립' 38년 만에 이뤄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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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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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상륙기동헬기 2개 대대 창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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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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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arine Corps launches expanded mobile unit for N.K. contingen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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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hap News Agency
201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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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해병대, 연대급 '신속기동부대' 편성…유사시 北 침투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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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hap News Agency
201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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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Launching ceremony of Navy·Marine Quick Maneuver Fo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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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해군·해병대 신속기동부대 발전 방향 - 창설 5주년, 기반구축을 넘어 재도약으로 1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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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ublic of Korea Marine Corps Laboratory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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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해병대 신속기동부대‘제승부대' 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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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해병대교육훈련단, 개선 방안 토의 신속기동부대 계획수립절차 재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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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n Ministry of National Defence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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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송영무 "北지도부 참수작전 수행부대 12월1일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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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hap News Agency
2017-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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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seeks to develop 'Frankenmissile' targeting North Korea: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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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 Herald
20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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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Plans'Decapitation Unit' to Try to Scare North's Lea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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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Times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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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rtan 3000: South Korea's elite decapitation un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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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Zealand Herald
2017-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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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s an interesting reason South Korea is publicly talking about a 'decapitation unit' for Kim Jong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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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Insider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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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Corps launches expanded mobile unit for N.K. contingen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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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hap News Agency
201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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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연대급 '신속기동부대' 편성…유사시 北 침투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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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hap News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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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allocates budget for'Decapitation Un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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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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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Decapitation Unit' Will Use Suicide Drones and Grenade Machine Guns to Eliminate Kim Jong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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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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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봉쇄 놓고 청와대-국방부 엇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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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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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텍스트만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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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교육훈련단, 개선 방안 토의 신속기동부대 계획수립절차 재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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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n Ministry of National Defence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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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장의 제식(제7조제2항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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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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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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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n Marine Corps has test fire Spike NLOS anti-tank guided missile from SandCat veh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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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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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guided rocket to target N. Korean vessels to be deployed in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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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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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Korea to deploy guided missile against N.K. hovercr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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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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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Korea's Marine Corps to deploy new guided missiles to counter N.K. th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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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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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K Marine Corps Showcasing Bigung for the 1s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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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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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조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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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軍も企業もベトナム参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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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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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軍が住民を殺害」…ベトナム人が韓国の法廷で初証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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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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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韓国軍:海兵隊部隊で銃乱射、4人死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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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201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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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軍:海兵隊乱射事件、動機はいじめか(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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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201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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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軍:キム上等兵、共犯に見張り台の爆破を指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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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201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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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韓国軍:海兵隊施設でいじめ行為発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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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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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ョコパイ180個 強制飲食 裸のマッサージも…韓国軍隊のいじめに衝撃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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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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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해병대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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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200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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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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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기념관
201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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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60년 역사-월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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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대 공보부
201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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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最終兵力(최종병력) 오늘撤收(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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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7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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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力(주력) 오늘凱旋(개선) 青龍(청룡),西部前線(서부전선)에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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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7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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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兵隊(해병대),海軍(해군)에 統合(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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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7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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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군단, 기동 2·지역 5개로 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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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일보
200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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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날개단다'…상륙기동헬기 32대 운용권 갖게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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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201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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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무적해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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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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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에서 해병대 장교 키운다. 단국대 해병대군사학과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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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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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 "리더십 갖춘 엘리트 해병대 장교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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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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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서해 5도서 군비 경쟁… 우리 군, 전략적 딜레마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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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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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연대급 '신속기동부대' 편성…유사시 北 침투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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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unveils elite 'Spartan 3000' force as Kim Jong-un threatens to 'bury our enemies at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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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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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Unveils New Elite Unit Of Mar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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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北지도부 참수작전 수행부대 12월1일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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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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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seeks to develop ‘Frankenmissile’ targeting North Korea: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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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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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Plans‘Decapitation Unit' to Try to Scare North's Lea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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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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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rtan 3000: South Korea's elite decapitation un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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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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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s an interesting reason South Korea is publicly talking about a 'decapitation unit' for Kim Jong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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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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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Corps launches expanded mobile unit for N.K. contingen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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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연대급 '신속기동부대' 편성…유사시 북 침투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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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allocates budget for‘Decapitation Un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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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apitation Unit' Will Use Suicide Drones and Grenade Machine Guns to Eliminate Kim Jong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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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봉쇄 놓고 청와대-국방부 엇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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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신문고 공개답변 - 네이버 지식인 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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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Plans ‘Decapitation Unit’ to Try to Scare North’s Lea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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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의 상징, 붉은 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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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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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상징, 팔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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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달군 숟가락으로 엉덩이 지져" 해병대 충격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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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201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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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장병 20% "구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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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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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명찰 떼인 해병 3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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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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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채상병 특검, 수사기간 30일 연장…9월 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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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순직 두 달도 안 돼서…600억짜리 지으려다 '2천억 호텔' 받은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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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해병대 독립해 준4군 체제…사령관 위상 격상”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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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파면 선고에…전군·재외공관, 윤석열 사진 철거하기로
군, 산불 현장에 장병 1350명·헬기 35대 투입…“장병 안전 최우선”
한미 해병대, 연합 소대 편성해 산악작전 등 훈련 실시
“왜 뒷담화해” 후임병 폭행한 선임병 징역형 집행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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