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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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른하르트 리만은 1826년 독일에서 태어난 수학자로, 복소해석학, 리만 기하학, 해석적 정수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혁신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는 리만 곡면과 리만 사상 정리, 리만 적분, 리만 가설 등을 제시하며 19세기에 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업적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의 수학적 토대가 되었으며, 현대 수학과 물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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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리만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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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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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베른하르트 리만 |
출생 | 1826년 9월 17일 |
출생지 | 브레젤렌츠, 하노버 왕국 (현재의 독일) |
사망 | 1866년 7월 20일 |
사망지 | 이탈리아 왕국, 베르바니아, 셀라스카 |
국적 | 독일 |
학문 분야 | |
분야 | 수학 물리학 |
모교 | 괴팅겐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
박사 지도교수 |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
학문적 조언자 | 고트홀트 아이젠슈타인 모리츠 아브라함 슈테른 카를 W. B. 골트슈미트 |
박사 학위 논문 제목 | 하나의 변수 complexen Größe 함수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의 기초 (Grundlagen für eine allgemeine Theorie der Funktionen einer veränderlichen complexen Größe) |
박사 학위 논문 URL | 박사 학위 논문 |
박사 학위 년도 | 1851년 |
직장 | 괴팅겐 대학교 |
주목할 만한 제자 | 구스타프 로흐 에두아르트 젤링 |
영향을 준 인물 | 모리츠 아브라함 슈테른 벤야민 골트슈미트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카를 구스타프 야코프 야코비 페터 구스타프 디리클레 페르디난트 고트홀트 막스 아이젠슈타인 빌헬름 베버 게오르크 카를 울리히 요하네스 베네딕트 리스팅 |
영향을 받은 인물 | 에른스트 쿠머 레오폴트 크로네커 리하르트 데데킨트 |
주요 업적 | 참조 |
기타 정보 | |
기념 | (4167) 리만 소행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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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베른하르트 리만은 1826년 9월 17일 하노버 왕국 단넨베르크 근처의 작은 마을 브레젤렌츠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매우 내성적이었다고 한다.[21]
1847년 괴팅겐 대학교에 입학하여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를 처음 만났고, 같은 해 베를린 대학교로 옮겨 페터 구스타프 르죈 디리클레, 카를 구스타프 야코프 야코비, 페르디난트 고트홀트 막스 아이젠슈타인에게서 수학을 배웠다. 1849년 괴팅겐 대학교로 돌아와 1851년 가우스 밑에서 박사 학위를, 1854년에는 "기하학의 기초에 있는 가설에 대하여"로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가우스는 리만 기하학에 관한 강연을 높이 평가했다.
1857년 예비 교수가 되었고, 1859년 디리클레의 후임으로 정교수가 되었다. 1862년 엘리제 코흐와 결혼하여 딸을 낳았지만, 이 시기부터 결핵 증세가 악화되어 이탈리아에서 요양했다. 1866년 마조레 호수 근처에서 3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리만 전집에 게재된 리하르트 데데킨트의 소전이 있다.[22]
2. 1. 초년
베른하르트 리만은 1826년 9월 17일 하노버 왕국 다넨베르크 근처 브레젤렌츠에서 태어났다.[21] 아버지는 루터 교회 목사였고, 리만은 6명의 자녀 중 둘째였으며,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21] 그는 어릴 때부터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보였지만, 수줍음이 많고 신경쇠약에 시달렸다.[21]2. 2. 성장기
1840년 할머니와 살면서 하노버의 중학교(lyceum)에 다니기 시작했다.[6] 1842년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뤼네부르크의 요하네움 고등학교(Johanneum Lüneburg)에 진학했다.[6] 고등학교 시절,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수학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6] 1846년, 19세에 목사가 되어 가족의 재정을 돕기 위해 괴팅겐 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6]1847년,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베를린 대학교로 옮겨 카를 구스타프 야코프 야코비, 페터 구스타프 르죈 디리클레, 야코프 슈타이너 등에게서 수학을 배웠다.[6] 베를린에서 2년 동안 머물다가 1849년 괴팅겐 대학교로 돌아왔다.[6]
2. 3. 성년
리만은 짧은 일생 동안 수학의 여러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복소함수론(複素函數論)에서는 복소 로그나 제곱근처럼 1대1 대응이 아닌 함수의 역을 다룰 때 유용한 리만 면을 정의하여 복소기하학의 초기 발전에 기여했다. 리만 사상 정리를 통해 복소 평면 위에서의 해석학에서 정의역의 종류에 대한 위상 수학적인 고찰을 제시했고, 이는 앙리 푸앵카레에 의해 균일화 정리로 일반화되었다.1854년 교수 자격 취득 논문에서 리만 적분을 정의하고 삼각 급수의 수렴(收斂) 조건을 제시했는데, 이는 함수가 적분 가능하다는 것의 의미를 명확히 한 것이었다. 이후 1900년대에 H. 르베그가 르베그 적분이라는 더 포괄적인 정의를 도입했다. 같은 해 1854년 취임 강연에서는 기하학의 기초를 논하며 리만 공간의 개념과 곡률(曲率)을 정의하여 리만 기하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말년에는 W. E. 베버의 영향으로 이론 물리학에 관심을 갖고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편미분방정식(偏微分方程式)에 대해 강의했으며, 이 내용은 그가 죽은 뒤 베버에 의해 출판되었다. 1854년 첫 강의를 통해 리만 기하학 분야를 창시했고, 이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7] 1857년 괴팅겐 대학교 특별 교수 임용 시도는 실패했지만, 마침내 정규 급여를 받게 되었다. 1859년 디리클레 사망 후 가우스의 뒤를 이어 괴팅겐 대학교 수학과 학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물리적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3차원 또는 4차원 이상의 고차원을 사용할 것을 처음으로 제안했다.[8][7]
1862년 엘리제 코흐와 결혼하여 딸 이다 쉴링을 낳았다.[9]
2. 4. 사망
리만은 40세 생일 두 달 전인 1866년 7월 20일 결핵으로 사망했다.[10] 그는 세 번째 이탈리아 여행 중 마조레 호수 근처 베르바니아의 작은 마을인 셀라스카에서 사망하여 비간졸로(베르바니아) 묘지에 묻혔다.[10]
리만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개신교 목사의 아들)였으며, 수학자의 삶을 하느님을 섬기는 또 다른 방법으로 여겼다. 그는 평생 동안 기독교 신앙을 굳게 지켰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 여겼다. 사망 당시 아내와 함께 주기도문을 암송하던 중 기도를 다 마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11] 한편, 괴팅겐에서는 그의 가정부가 사무실에 있던 미출판된 많은 연구를 포함한 일부 서류를 버렸다. 리만은 미완성된 연구의 출판을 거부했기에, 깊은 통찰력이 일부 유실되었을 수도 있다.[10]
이탈리아 비간졸로에 있는 리만의 묘비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다.[12]
3. 주요 업적
베른하르트 리만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수학의 여러 분야에 걸쳐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복소해석학 분야에서는 오귀스탱 루이 코시의 연구와는 별개로, 1851년 학위 논문에서 코시-리만 방정식을 복소함수 정의의 기초로 삼고, 리만 면, 사상 등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여 복소해석학의 기반을 다졌다.[16] 리만 사상 정리는 복소 평면에서의 해석학에 대한 위상 수학적 고찰을 제시했으며, 이는 앙리 푸앵카레의 균일화 정리로 일반화되었다. 1857년 논문 "아벨 함수의 이론"에서는 타원 함수론의 야코비의 역문제를 해결하고 아벨 함수론을 완성하여, 대수기하학 연구의 시초를 열었다.
1854년 교수 자격 취득 강연 "기하학의 기초에 있는 가설에 대하여"에서 리만은 다양체 개념을 처음 도입하여 리만 기하학을 확립했다.[7] 리만 공간과 곡률(曲率) 개념을 정의하고, 미분 기하학을 고차원으로 확장하여, 훗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의 수학적 토대를 제공했다.[7]
해석적 정수론 분야에서는 1859년 논문 "주어진 수보다 작은 소수의 개수에 관하여"에서 제타 함수와 소수 분포의 관계를 연구하고, 리만 가설을 제시했다.[4] 리만 가설은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은 수학계의 중요한 난제로 남아있다.[8]
이 외에도, 리만은 1854년 교수 자격 취득 논문에서 리만 적분을 정의하고, 삼각 급수의 수렴(收斂) 조건을 제시하여 실해석학의 기초를 다졌다. 또한, 반정분(半積分)의 정의를 처음으로 제창했다.[4]
3. 1. 복소해석학
베른하르트 리만은 박사 학위 논문에서 리만 곡면을 통해 복소 해석의 기하학적 기초를 확립했다. 이를 통해 로그 함수(무한히 많은 시트) 또는 제곱근 (두 개의 시트)과 같은 다가 함수가 일대일 함수가 될 수 있었다.[16] 복소 함수는 이러한 곡면에서 조화 함수(라플라스 방정식과 코시-리만 방정식을 만족)이며, 특이점의 위치와 곡면의 위상으로 설명된다. 리만 곡면의 위상학적 "종수"는 로 주어지며, 여기서 곡면은 개의 분기점에서 함께 모이는 개의 잎을 갖는다. 에 대해 리만 곡면은 개의 매개변수("모듈리")를 갖는다.리만은 리만 사상 정리를 통해 복소 평면에서 단일 연결 영역이 또는 단위 원 내부와 "쌍정형 동치"(정칙 역을 갖는 정칙 전단사)라고 밝혔다. 이 정리를 리만 곡면으로 일반화한 것이 균등화 정리이며, 19세기에 앙리 푸앵카레와 펠릭스 클라인이 증명했다. 엄밀한 증명은 풍부한 수학적 도구(위상 수학)의 개발 후에 제시되었다. 리만은 리만 곡면에 대한 함수의 존재성을 증명하기 위해 디리클레 원리를 사용했다. 카를 바이어슈트라스는 리만의 증명에서 함수 공간이 완비되지 않아 최소의 존재가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틈새를 발견했다. 다비트 힐베르트의 변분법을 통해 디리클레 원리가 확립되었다. 바이어슈트라스는 아벨 함수 이론에 대한 리만의 연구에 감명을 받았다. 리만의 작업이 나타났을 때 바이어슈트라스는 자신의 논문을 ''크렐레 저널''에서 철회했다. 1859년 리만이 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좋은 이해를 가졌다. 바이어슈트라스는 제자 헤르만 아마두스 슈바르츠에게 복소 해석에서 디리클레 원리에 대한 대안을 찾도록 권했고, 슈바르츠는 성공했다. 아르놀트 조머펠트[16]는 동시대 수학자들이 리만의 아이디어를 이해하기 어려워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를 전한다. 1870년, 바이어슈트라스는 리만의 박사 학위 논문을 리기에 휴가로 가져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불평했다. 헤르만 폰 헬름홀츠가 하룻밤 사이에 그를 도와 "자연스럽고" "이해할 수 있다"는 평을 받으며 돌아왔다.
리만은 리만 곡면에서의 아벨 함수 및 세타 함수에 대한 연구를 했다. 1857년부터 타원 적분의 일반화인 아벨 적분에 대한 야코비 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이어슈트라스와 경쟁했다. 리만은 여러 변수의 세타 함수를 사용하고 이 문제를 세타 함수의 영점 결정으로 축소했다. 또한 주기 행렬을 연구하고 "리만 주기 관계"(대칭, 음의 실수 부분)를 통해 특징지었다. 페르디난트 게오르크 프로베니우스와 솔로몬 레프셰츠는 이 관계의 타당성이 세타 함수를 사용하여 사영 공간에 (는 주기 행렬의 격자)를 임베딩하는 것과 동등함을 보였다. 의 특정 값의 경우, 이것은 리만 곡면의 야코비 다양체이며, 아벨 다양체의 예이다.
알프레트 클레브슈 등 많은 수학자들이 대수 곡선에 대한 리만의 연구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이론은 리만 곡면에서 정의된 함수의 속성에 의존했다. 리만-로흐 정리(로흐는 리만의 제자)는 리만 곡면의 선형 독립적인 미분 형식의 수(영점과 극점에 대한 조건 포함)를 설명한다.
데틀레프 라우그비츠에 따르면,[17] 자동형 함수는 전하를 띤 실린더에 대한 라플라스 방정식에 대한 에세이에서 처음 등장했다. 리만은 1859년 초 기하 함수에 대한 강의 또는 최소 곡면에 대한 논문에서 등각 사상(위상 삼각형을 원으로 매핑)에 그러한 함수를 사용했다.
1857년 논문 "아벨 함수의 이론"에서 타원 함수론의 야코비의 역문제를 해결하고 아벨 함수론을 완성했다. 리만은 타원형 편미분 방정식에 의한 모듈라이 이론 연구의 선구자였으며, 쌍유리 동치, 야코비 다양체, 세타 함수론 등은 대수기하학 연구의 시초가 되었다.
3. 2. 리만 기하학
1854년 교수 자격 취득 강연에서, 리만은 기하학의 기초를 논하면서 리만 공간의 개념을 도입하고 곡률(曲率)을 정의하였다. 이는 리만 기하학으로 불린다.[7] 리만은 이 강연을 통해 미분 기하학을 고차원으로 확장하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의 수학적 토대를 제공했다.[7]리만은 가우스가 그의 ''theorema egregium''에서 증명한 곡면의 미분 기하학을 ''n'' 차원으로 확장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연구를 통해 리만 기하학이 탄생했다. 리만 기하학의 기본 대상은 리만 계량과 리만 곡률 텐서이다.[13][14][15] 리만 계량은 공간의 모든 점에서 텐서 형태로 주어지며, 이를 통해 궤적의 속도 측정이 가능하고, 그 적분은 궤적의 끝점 사이의 거리를 제공한다. 곡면(2차원)의 경우, 각 점에서의 곡률은 하나의 숫자(스칼라)로 나타낼 수 있으며, 상수 양 또는 음의 곡률을 가진 곡면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모델이 된다.
예를 들어, 리만은 4차원 공간에서 다양체의 거리와 곡률을 설명하기 위해 각 점에서 10개의 숫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3. 3. 해석적 정수론
제타 함수를 연구하여 소수의 분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4] 그는 제타 함수의 함수 방정식을 증명했는데(이미 레온하르트 오일러에게 알려져 있었음), 그 뒤에는 세타 함수가 놓여 있었다.[5] 실수 부분이 1/2인 선에 있는 비자명 영점에 대한 이 근사 함수의 합을 통해 에 대한 정확한 "명시적 공식"을 제시했다.[5] 리만 가설은 그가 함수의 속성에 대해 제시한 일련의 추측 중 하나였다.[4] 이 가설은 21세기에도 중요한 미해결 문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8]리만은 파프누티 체비쇼프의 소수 정리에 대한 연구를 알고 있었으며, 1852년에 디리클레를 방문했다.[6]
3. 4. 기타 업적
리만은 짧은 일생 동안 많은 논문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수학의 여러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1854년 교수 자격 취득 논문에서 리만 적분을 정의하고, 삼각 급수의 수렴 조건을 제시하여 함수가 적분된다는 것의 의미를 명확히 했다. 이후 1900년대에 H. 르베그가 르베그 적분이라는 더 포괄적인 정의를 도입했다.리만은 삼각 급수 표현에 관한 논문에서 리만 적분 개념을 제시하여 실해석학의 기초를 다졌으며,[5] 반정분(半積分)의 정의를 처음으로 제창했다.[4]
4. 리만의 영향
베른하르트 리만은 19세기 수학자로, 그의 업적은 당대에는 완전히 이해받지 못했지만,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복소해석학, 리만 기하학, 해석적 정수론 등 다양한 분야의 발전에 기여했다.
카를 바이어슈트라스는 리만이 복소해석학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사용한 디리클레 원리에 틈새가 있음을 지적했다.[16] 그러나 바이어슈트라스 학파의 수학자들은 리만의 연구를 검토했고, 헤르만 아마두스 슈바르츠는 기하학적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1900년, 다비트 힐베르트가 디리클레 원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후 헤르만 바일이 리만 곡면을 엄밀하게 정의하고 디리클레 원리를 재정식화하면서, 리만의 복소해석학 업적은 재평가받게 되었다.
앙리 푸앵카레는 리만의 위치 해석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위상수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했으며, 파울 쾨베와 함께 균등화 정리를 증명하여 리만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아르놀트 조머펠트[16]의 일화는 동시대 수학자들이 리만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음을 보여준다. 헤르만 폰 헬름홀츠의 도움으로 리만의 박사 학위 논문이 "자연스럽고", "매우 이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은, 리만 이론의 혁신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펠릭스 클라인은 리만의 복소해석학을 지지했지만, 에를랑겐 프로그램과의 차이로 리만 기하학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리만 기하학은 이탈리아에서 텐서 해석으로 발전되었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등장으로 주목받게 된다.
리만의 삼각 급수에 관한 논문은 르베그 적분과 게오르크 칸토어의 집합론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4. 1. 후대 수학자들에게의 영향
베른하르트 리만은 후대 수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리만-로흐 정리를 만든 구스타프 로흐와 대수 곡선론을 발전시킨 알프레드 클렙슈는 리만의 직계 후계자로 알려져 있다.[17] 그러나 이들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리만의 영향은 펠릭스 클라인, 앙리 푸앵카레, 다비트 힐베르트 등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던 다음 세대에게도 이어져 다양한 수학적 성과로 나타났다.카를 바이어슈트라스는 리만이 복소해석의 기초 확립에 사용한 디리클레 원리에 틈새가 있음을 지적하여, 많은 수학자들이 리만의 이론에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16] 하지만, 바이어슈트라스가 주도하던 베를린 학파의 수학자들은 리만의 복소해석과 타원 함수 연구를 검토하게 되었고, 헤르만 아마두스 슈바르츠는 기하학적 방법으로 리만의 틈새를 해소하는 교호 처리법을 도입했다. 1900년, 힐베르트는 디리클레 원리의 문제를 해결했고, 그 후 헤르만 바일이 리만 곡면을 1차원 복소 다양체로 엄밀하게 정의하고, 디리클레 원리를 직교 사영의 원리로 재정식화함으로써, 리만의 복소해석에서의 업적은 재평가받게 되었다.
푸앵카레는 리만이 제시한 위치 해석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위상수학(토폴로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또한 푸앵카레와 파울 쾨베는 사상 정리를 일반화한 균등화 정리를 각각 독립적으로 증명했다.
아르놀트 조머펠트[16]의 일화에 따르면, 1870년 바이어슈트라스는 리만의 박사 학위 논문을 휴가지에 가져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불평했지만, 물리학자 헤르만 폰 헬름홀츠의 도움으로 "자연스럽고", "매우 이해할 수 있다"는 평을 받으며 돌아왔다고 한다. 이는 동시대 수학자들이 리만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가졌던 어려움을 보여준다.
클라인은 리만의 복소해석을 지지했지만, 에를랑겐 프로그램과의 차이로 인해 리만 기하학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리만 기하학 연구는 리만이 만년에 체류했던 이탈리아에서 에우제니오 벨트라미, 투리오 레비-치비타에 의해 텐서 해석으로 발전되었으며, 이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등장으로 주목받게 된다.
리만의 삼각 급수에 관한 논문은 르베그 적분과 게오르크 칸토어의 집합론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4. 2. 현대 수학과 물리학에서의 중요성
리만 기하학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의 핵심적인 수학적 도구가 되었다.[7] 1854년 리만의 첫 강의는 리만 기하학 분야를 창시했고, 이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7] 그는 3차원 또는 4차원 이상의 차원을 사용하여 물리적 현실을 설명할 것을 처음으로 제안한 인물이기도 하다.[8][7]리만은 오귀스탱 루이 코시의 연구를 기반으로 코시-리만 미분 방정식을 복소함수의 정의로 삼아 사상, 리만 곡면 등의 개념을 도입하여 복소해석학의 기초를 다지고 이론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1857년 논문 "아벨 함수의 이론"에서는 타원 함수론에서 미해결 문제였던 야코비의 역문제를 해결하고 아벨 함수론을 완성하여 당시 수학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대수기하학 연구의 시초가 되었다.
삼각 급수에 관한 논문에서는 리만 적분 개념을 제시하여 실수 해석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수론에서는 1859년 논문 "주어진 수보다 작은 소수의 개수에 관하여"에서 제타 함수에 대한 리만 가설을 제시하여 해석적 정수론의 중요한 미해결 문제로 남게 되었다.
리만은 자신의 수학 이론을 물리학에 응용하고자 했으나 생전에 발표하지는 못했다. 그의 연구는 구스타프 로흐(리만-로흐 정리), 알프레드 클렙슈(대수 곡선론) 등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펠릭스 클라인, 앙리 푸앵카레, 다비트 힐베르트 등 후대 수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세기에는 리만의 업적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20세기에 들어 헤르만 바일이 리만 곡면을 엄밀하게 정의하고 직교 사영의 원리로 디리클레 원리를 재정식화하면서 리만의 복소해석학 연구는 재평가받게 되었다. 앙리 푸앵카레는 리만의 위치 해석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위상수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했으며, 파울 쾨베와 함께 단일화 정리를 증명했다. 카를 지겔은 리만의 유고를 분석하여 리만 가설에 관한 리만의 연구가 후대의 연구를 앞서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리만 기하학은 리만이 만년에 체류했던 이탈리아에서 에우제니오 벨트라미, 투리오 레비-치비타 등에 의해 텐서 해석으로 발전되었으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장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리만의 삼각 급수에 관한 논문은 르베그 적분과 게오르크 칸토어의 집합론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5. 리만에 대한 일화
가우스는 리만의 박사 학위 논문을 보고 "박사 학위 논문이라고 볼 수가 없는 대논문"이라는 찬사를 쉴 틈 없이 보냈다고 한다. 가우스가 말을 별로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리만의 논문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21] 가우스는 젊은 수학자를 거의 평가하지 않았지만, 리만 기하학에 관한 강연은 높이 평가했다.[22]
6. 저작
- 1851 – 가변 복소 변수 함수의 일반 이론의 기초, 1851년 괴팅겐의 취임 논문.
- 1857 – 아벨 함수 이론, Journal für die reine und angewandte Mathematik, Bd. 54. S. 101–155.[1]
- 1859 – ''Über die Anzahl der Primzahlen unter einer gegebenen Größe'', in: ''Monatsberichte der Preuß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Berlin, 1859년 11월, S. 671ff. 리만 가설 포함. ''Über die Anzahl der Primzahlen unter einer gegebenen Grösse.'' (위키문헌), [http://www.claymath.org/sites/default/files/riemann1859.pdf 원고의 팩시밀리][2]
- 1861 – ''[https://www.maths.tcd.ie/pub/HistMath/People/Riemann/Paris/ Commentatio mathematica, qua respondere tentatur quaestioni ab Illma Academia Parisiensi propositae]'', 파리 아카데미에 상금 경쟁을 위해 제출됨[3]
- 1867 – 삼각 급수를 이용한 함수의 표현에 관하여, Aus dem dreizehnten Bande der Abhandlungen der Königlichen Gesellschaft der Wissenschaften zu Göttingen.[4]
- 1868 – [http://resolver.sub.uni-goettingen.de/purl?GDZPPN002019213 ''Über die Hypothesen, welche der Geometrie zugrunde liegen''.] Abh. Kgl. Ges. Wiss., Göttingen 1868. 번역 [http://www.emis.de/classics/Riemann/Geom.pdf EMIS, pdf] ''On the hypotheses which lie at the foundation of geometry'', 번역 W.K.Clifford, Nature 8 1873 183 – 재인쇄: Clifford's Collected Mathematical Papers, London 1882 (MacMillan); New York 1968 (Chelsea) http://www.emis.de/classics/Riemann/. 또한 Ewald, William B., ed., 1996 "From Kant to Hilbert: A Source Book in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 2 vols. Oxford Uni. Press: 652–61.[5]
- 1876 – ''Bernhard Riemann's Gesammelte Mathematische Werke und wissenschaftlicher Nachlass. herausgegeben von Heinrich Weber unter Mitwirkung von Richard Dedekind'', Leipzig, B. G. Teubner 1876, 2. Auflage 1892, Nachdruck bei Dover 1953 (with contributions by Max Noether and Wilhelm Wirtinger, Teubner 1902). 후기 판 ''The collected Works of Bernhard Riemann: The Complete German Texts.'' 편집자: Heinrich Weber; Richard Dedekind; M Noether; Wilhelm Wirtinger; Hans Lewy. Mineola, New York: Dover Publications, Inc., 1953, 1981, 2017[6]
- 1876 – ''Schwere, Elektrizität und Magnetismus'', Hannover: Karl Hattendorff.[7]
- 1882 – ''Vorlesungen über Partielle Differentialgleichungen'' 3. Auflage. Braunschweig 1882.[8]
- 1901 – ''Die partiellen Differential-Gleichungen der mathematischen Physik nach Riemann's Vorlesungen''.[9]
- 2004 – [10]
다음은 한국어로 번역된 리만의 저작이다.
- 리만 논문집일본어, 아다치 츠네오・스기우라 미츠오・나가오카 료스케 번역, 아사쿠라 서점, 2004년 2월 20일[17]
- 「복소 변수 함수의 일반 이론의 기초」, 카사하라 겐키치 역[11]
- 「임의 함수의 삼각 급수에 의한 표현의 가능성에 대하여」, 나가오카 료스케・카노 켄 역[12]
- 「기하학의 기초에 있는 가설에 대하여」, 야마모토 아츠시 역[13]
- 「아벨 함수의 이론」, 타카세 마사히토 역[14]
- 「가우스의 급수 F(α, β, γ, x)로 표시 가능한 함수의 이론에 대한 기여」, 테라다 토시아키 역[15]
- 「주어진 한계 이하의 소수의 개수에 관하여」, 스기우라 미츠오 역[16]
- 기하학의 기초를 이루는 가설에 관하여일본어, 헤르만 민코프스키 공저, 헤르만 바일 서문・해설, 스가와라 마사미 번역, 시미즈 코분도 서방, 1970년 6월 10일[18]
- 세계의 명저 65 현대의 과학 1일본어, 콘도 요이치 번역, 주오코론샤, 1973년 9월 10일[1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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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Das Aussprachewörterbuch
https://books.google[...]
Dudenverlag
[2]
서적
Deutsches Aussprachewörterbuch
https://books.google[...]
Walter de Gruy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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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hard Riemann Laid the Foundations for Einstein's Theory of Relativity
https://interestinge[...]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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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metry from a Differentiable Viewpoi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6]
서적
God Created The Integers
https://books.google[...]
Running Press
2005-10-0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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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nterestinge[...]
2020-09-23
[8]
문서
Werke
[9]
웹사이트
Ida Schilling
https://www.geni.com[...]
1862-12-22
[10]
서적
The Music of the Primes: Searching to Solve the Greatest Mystery in Mathematics
HarperCollins
[11]
웹사이트
Christian Mathematician – Riemann
http://godandmath.co[...]
2012-04-24
[12]
웹사이트
Riemann's Tomb
http://mihai-caragiu[...]
2009-09-18
[13]
문서
Ueber die Hypothesen, welche der Geometrie zu Grunde liegen
https://www.deutsche[...]
[14]
문서
"On the Hypotheses which lie at the Bases of Geometry"
http://www.emis.de/c[...]
[15]
서적
On the Hypotheses Which Lie at the Bases of Geometry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 Imprint: Birkhäuser
2016
[16]
문서
Vorlesungen über theoretische Physik
Harri Deutsch
[17]
서적
Bernhard Riemann 1826–1866
Birkhäuser
[18]
문서
[19]
문서
[20]
웹사이트
"(4167) Riemann = 1968 DR = 1978 TQ7 = 1986 TO1"
https://minorplanetc[...]
MPC
2021-10-05
[21]
웹사이트
ベルンハルト・リーマンの伝記-事実、子供時代、家族生活、ドイツ数学者の業績。 - 科学者
https://ja.celeb-tru[...]
2023-01-0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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