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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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요이인은 기원전 3세기경 한반도와 중국 산둥반도에서 일본으로 이주해 온 집단으로, 벼농사를 전파하고 현대 일본인의 형성에 기여했다.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야요이인은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인구 집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초기 야요이인은 크고 평평한 이목구비, 넓은 얼굴, 큰 치아 등의 특징을 보였다. 언어학적으로는 야요이인이 반도 일본어족 언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이들은 조몬인과 혼혈되어 일본 문화와 유전자에 영향을 미쳤다. 야요이인은 규슈 지역을 중심으로 도래계, 남규슈, 서북 규슈 야요이인으로 구분되며, 알코올 분해 효소 결핍과 같은 신체적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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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요이인 | |
|---|---|
| 지도 | |
| 개요 | |
| 명칭 | 야요이인 (弥生人) |
| 정의 | 야요이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을 지칭 |
| 기원 | 규슈 북부에서 발생 조몬인과 한반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의 혼혈로 추정 |
| 시대 배경 | |
| 시기 | 기원전 300년경 ~ 기원후 300년경 |
| 이전 시대 | 조몬 시대 |
| 다음 시대 | 고분 시대 |
| 특징 | |
| 농경 기술 | 벼농사를 중심으로 발전된 농경 기술 보유 |
| 금속기 사용 | 청동기와 철기 사용 |
| 사회 구조 | 계급 발생, 소국 형성 |
| 거주 형태 | 환호취락 건설 |
| 유적 | 요시노가리 유적 등이 대표적 |
| 인종적 특징 | |
| 형질인류학적 연구 | 조몬인과는 다른 형질적 특징 |
| 유전자 연구 |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유사한 부분 확인 |
| 논쟁 | 일본인의 직접적인 조상인지에 대한 논쟁 존재 |
| 언어 | |
| 언어 계통 | 한국어족과의 연관성 주장 존재 |
| 문화 | |
| 토기 | 야요이 토기 사용 |
| 건축 | 고상 가옥 건축 |
| 장례 | 옹관묘 사용 |
| 관련 인물 | |
| 학자 | 가토리 시게루 (香取 薫) 가네코 슌이치 (金子 俊一) |
| 참고 문헌 | |
| 서적 | 片山一道 (2015). 骨が語る日本人の歴史. 筑摩書房. |
2. 기원
야요이인은 일본 열도에 거주하며 농경과 수렵-채집을 병행했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특히 조몬인 수렵-채집민과 대륙 아시아 이주민의 혼혈 후손으로, 벼농사를 비롯한 대륙의 물질문화를 받아들인 집단을 지칭한다.[8] 야요이인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하며, 그 정의 또한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야요이인은 한반도와 산둥반도에서 벼농사를 일본에 전파한 집단으로 여겨져 왔다.[63] 사키타니 미쓰루는 Y염색체 하플로그룹 O1b2를 가진 집단이 벼농사를 전파했으며, 이들이 양쯔강 문명에서 기원하여 북동쪽으로 이동해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63] 그러나 O1b2 계통은 양쯔강 유역보다 한반도에서 더 많이 발견되므로, 최근에는 양쯔강 문명보다는 한반도에서 벼농사를 전파한 집단이 야요이인이라는 설이 더 유력하다.[63] 유전자 분석 결과 역시 야요이인이 한반도, 랴오닝성, 산둥반도 집단과 유전적으로 가깝다는 것을 뒷받침한다.[64][65]
다른 한편으로, 도이가하마 유적에서 발견된 야요이 인골의 북방 몽골로이드적 특징과 일본인에게 나타나는 북방계 유전자 등을 근거로 야요이인의 기원지를 연해주 남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지역에서는 야요이 시대의 새김무늬토기와 유사한 토기가 발견되기도 한다.[66] 민족학자 오카 마사오나 도리이 류조 등도 북동아시아 또는 연해주에서 한반도를 거쳐 온 북방계 민족을 야요이인의 기원과 연결 짓기도 했다.[67][68][69]
언어학적으로는 한반도의 민무늬토기 시대를 이끈 집단이 반도 일본어를 사용했으며, 이후 북쪽에서 확장한 원시 한국어족 집단에 밀려 남하하여 일본 열도로 건너가 야요이인의 조상이 되었다는 가설이 제기된다.[72][73][74][75][76]
후쿠오카현 안토쿠다이 유적의 야요이인 인골 분석 결과, 야요이 시대 중기에는 이미 조몬인과의 혼혈이 진행되었음이 밝혀졌다.[70] 또한, 한반도 남해안 신석기 시대 인골에서도 조몬인 계통과의 혼혈 흔적이 발견되어, 야요이인이 일본 열도에 오기 전부터 이미 혼혈된 집단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71] 이처럼 야요이인은 단일 계통이 아닌 여러 집단이 혼합되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67][77][78]
야요이인과 왜인이라는 용어는 때로 혼용되기도 하지만, '왜인'(倭人)은 고대 왜 지역 사람들을, '화인'(和人)은 현대의 야마토 민족을 지칭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7]
2. 1. 유전적 증거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현대 일본인의 주요 유전적 구성 요소는 야요이인으로부터 유래했으며, 야요이인은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인구 집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22][23][24][25][28]
Y염색체 하플로그룹 분석사키타니 미츠루는 일본에 벼농사를 전파한 집단이 하플로그룹 O1b2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O1b2 계통은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민족에게서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O1b1 계통의 자매 계통으로, 주로 만주와 한반도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 분포한다.[63][29] 사키타니는 O1b 계통(O1b1/O1b2)이 과거 양쯔강 문명의 주역이었으나 문명 쇠퇴 후 O1b1과 일부 O1b2는 남쪽으로 이동해 백월(百越)이 되었고, 나머지 O1b2는 북동쪽으로 이동해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도달했다고 보았다.[63] 그러나 양쯔강 유역이나 강남 지방 같은 화중 지역에서는 O1b2 계통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야요이인의 조상이 양쯔강 문명의 주역이었다는 설은 설득력이 약하다. 오히려 O1b2는 한반도에서 높은 빈도로 발견되므로, 최근 연구에서는 야요이인이 양쯔강 문명이 아닌 한반도에서 벼농사를 가지고 온 집단이라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도이가하마 유적에서 발견된 야요이인의 북방 몽골로이드적 특징, 일본인에게서 나타나는 미토콘드리아 DNA 하플로그룹과 Gm 유전자의 북방형 특징 등을 근거로 야요이인의 기원을 연해주 남부(러시아)로 보는 견해도 있다. 유전적으로도 동아시아 북동부에서는 하플로그룹 O1b2가 비교적 높은 빈도로 확인되며, 야요이 시대에 널리 보이는 새김무늬토기와 유사한 토기가 연해주 남서부의 시니 가이 문화에서도 발견된다.[66][31] 민족학적으로도 오카 마사오는 부계 중심의 밭농사-수렵 문화 집단(북동아시아-퉁구스 방면)을,[67][68][32][33] 도리이 류조는 한반도를 경유하거나 연해주에서 온 북방계 민족을 고유 일본인의 기원으로 추정했다.[69][34]
한편, 일본인의 약 20%에서 보이는 O2 계통 역시 야요이인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O1b2와 O2는 기원이 다른 것으로 보이며 일본 도래 시기와 경로는 불명확하다.
미토콘드리아 DNA 및 핵 DNA 분석



시노다의 미토콘드리아 DNA 연구에 따르면, 도래계 야요이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집단은 한반도, 랴오닝성, 산둥반도 사람들이다. 핵 DNA의 주성분 분석 결과에서도 야요이인은 현대 일본인과 함께 베이징의 중국인과 조몬인 사이에 위치하며, 오로촌족이나 울치인과 같은 고대 북동아시아인과 관련된 연해주 및 아무르강 유역 민족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64][65][30]
혼혈 증거후쿠오카현 안토쿠다이 유적에서 출토된 전형적인 도래계 야요이인 인골의 핵 유전체 분석 결과, 야요이 시대 중기 단계에서 이미 조몬인과의 혼혈이 진행되었으며, 이들은 현대 한국인이나 중국인 집단보다 현대 일본인 집단에 더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졌다.[70][35]
또한, 조몬인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집단(고대 동아시아 연안 집단)이 과거 동아시아 연안부에 널리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한반도 남해안의 신석기 시대 인골에서도 이 고대 동아시아 연안 집단 또는 조몬인과의 혼혈 흔적이 나타나는데, 이는 도래계 야요이인이 일본 열도로 건너오기 전 한반도 등지에서 이미 선주민과 혼혈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71][36]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야요이 시대가 한반도에서 온 이주민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 일본이 한반도로부터 수백만 명 규모의 이주민을 받아들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대규모 이주민 유입이 당시 약 7만 5천 명으로 추정되던 조몬인의 유전적 기여를 상당 부분 희석시켰을 것으로 보았다.[21]
2. 2. 언어학적 증거
언어학적으로는 한반도에서 민무늬토기 시대를 주도한 집단이 반도 일본어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설이 여러 학자에 의해 제안되고 있다.[72][73][74][75][76] 이 설에 따르면, 원시 한국어족에 속하는 언어는 고대 만주 남부에서 한반도 북부에 걸쳐 형성되었고, 이후 이 한국어족 집단이 북방에서 남방으로 확장하며, 한반도 중부에서 남부에 존재하던 반도 일본어족 집단을 대체해 나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남쪽으로 밀려난 이들이 야요이인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도래한 야요이인은 단일 민족이 아닌 여러 계통이 존재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67][77][78]2. 3. 도래 경로 및 시기
야요이인의 일본 열도 도래 경로와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한반도를 거쳐 이주해 온 집단으로 추정된다. 도래 시기는 야요이 시대 초기(기원전 3세기경)로 여겨진다. 이들은 주로 벼농사 기술을 일본 열도에 전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1]
유전학적 분석유전학적 연구는 야요이인의 기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 Y염색체 하플로그룹: 사키타니 미쓰루(崎谷満)는 일본에 벼농사를 전파한 집단이 Y염색체 하플로그룹 O1b2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O1b2는 만주와 한반도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 많이 분포하며, 오스트로아시아어족과 관련된 O1b1과는 자매 계통이다. 사키타니는 O1b 계통이 양쯔강 문명의 주역이었으나, 문명 쇠퇴 후 O1b2 일부가 북동쪽으로 이동해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도달했다고 보았다.[63][29] 그러나 O1b2가 양쯔강 유역이나 강남 지방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아, 이 가설은 의문시되고 있다. 오히려 한반도에서 높은 빈도로 발견되기 때문에, 최근에는 양쯔강 문명이 아닌 한반도에서 벼농사를 전파한 집단이 야요이인이라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 미토콘드리아 DNA 및 핵 DNA: 시노다(篠田)의 미토콘드리아 DNA 연구에 따르면, 도래계 야요이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집단은 한반도, 랴오닝성, 산둥반도 주민들이다. 또한 핵 DNA의 주성분 분석 결과, 야요이인은 현대 일본인과 함께 베이징의 중국인과 조몬인 사이에 위치하며, 연해주 및 아무르강 유역의 오로촌족이나 울치와 같은 고대 북동아시아인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64][65][30]
고고학 및 인류학적 분석도이가하마 유적에서 발견된 야요이 인골은 북방 몽골로이드의 특징을 보인다. 또한 일본인에게서 나타나는 미토콘드리아 DNA 하플로그룹과 Gm 유전자가 북방형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야요이인의 기원지를 연해주 남부(러시아)로 보는 견해도 있다. 유전적으로도 동아시아 북동부에서는 하플로그룹 O1b2가 비교적 높은 빈도로 확인되며, 야요이 시대에 널리 보이는 새김무늬토기(각목돌대문 토기)와 유사한 토기가 연해주 남서부의 시니-가이 문화(Синий Гай культура)에서도 발견된다.[66][31] 민족학자 오카 마사오(岡正雄)는 부계 중심의 밭농사-수렵 문화 집단(북동아시아-퉁구스 방면)[67][68][32][33], 도리이 류조(鳥居龍蔵)는 한반도를 경유하거나 연해주에서 온 북방계 민족을[69][34] 야요이인의 기원과 관련된 집단으로 추정했다.
혼혈 과정후쿠오카현 안토쿠다이 유적에서 출토된 전형적인 도래계 야요이인 인골의 핵 유전체 분석 결과, 야요이 시대 중기에는 이미 토착 조몬인과의 혼혈이 진행되었으며, 이들은 현대 한국인이나 중국인 집단보다 현대 일본인 집단에 더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70][35] 한편, 조몬인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고대 동아시아 연안 집단'이 과거 동아시아 연안부에 널리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한반도 남해안의 신석기 시대 인골에서도 이 집단 혹은 조몬인과의 혼혈 흔적이 발견됨에 따라, 도래계 야요이인이 일본 열도에 오기 전부터 이미 혼혈이 이루어진 집단이었을 가능성도 고려되고 있다.[71][36]
언어학적 접근언어학적으로는 한반도의 민무늬토기 시대를 주도한 집단이 반도 일본어(Peninsular Japonic)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여러 학자에 의해 제기되었다.[72][73][74][75][76][37][38][39][40][41] 이 가설에 따르면, 원시 한국어족 언어는 고대 만주 남부에서 한반도 북부에 걸쳐 형성되었고, 이후 한국어족 집단이 남하하면서 한반도 중남부에 있던 반도 일본어족 집단을 대체했다. 이 과정에서 남쪽으로 밀려나 일본 열도로 건너간 집단이 야요이인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보빈은 야요이인이 한반도 중남부에 존재했으나 이후 도래한 원시 한국인에 의해 대체, 동화되었다고 보았다.[18][19] Whitman (2012) 역시 야요이인이 원시 한국어 화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기원전 300년경 만주에서 한반도로 이주한 한국어 화자들이 기존의 일본어 화자들과 공존하며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주장했다.[20]
기타 가설 및 종합야요이인의 기원에 대해서는 ▲한반도 중남부 기원설[9][10][11], ▲중국 양쯔강 삼각주 부근의 강남 기원설[12],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의 다중 기원설[13][14][15][16][17] 등 다양한 가설이 존재한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야요이 시대가 한반도에서 온 이주민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이들이 당시 일본 열도의 조몬인 인구를 압도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21]
또한, 현대 일본인의 약 20%에서 나타나는 Y염색체 하플로그룹 O2 계통 역시 야요이인 집단에 포함되었을 수 있으나, O1b2와는 기원이 다른 것으로 보이며 도래 시기와 경로 등은 명확하지 않다. 도래한 야요이인이 단일 민족 집단이 아닌 여러 계통으로 구성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67][77][78][32][42][43]
3. 특징
야요이인은 조몬인과는 구별되는 신체적 및 문화적 특징을 지닌 집단이다. 머리뼈 형태 등 신체적 특징 분석 결과, 신석기 시대 한반도 남부인, 중국 하남성, 청동기 시대 장쑤성 및 산둥성 등지의 고대 주민들과 유사성이 나타난다.[79] 일반적으로 야요이인은 조몬인에 비해 평균 신장이 약 162cm~163cm로 더 컸으며, 얼굴이 상대적으로 평평하고 눈구멍이 둥근 형태를 띠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은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경 문화를 발전시켰으며[80], 청동기와 철기 같은 금속기를 사용했다. 이러한 문화적 요소 역시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야요이인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었으며,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크게 보아 기존 조몬인의 특징을 많이 가진 집단(조몬계 야요이인), 대륙에서 유래한 특징이 강한 집단(도래계 야요이인), 그리고 이 두 집단이 혼혈된 집단(혼혈계 야요이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27] 초기 벼농사 중심지에서도 조몬계 인골이 도래계 인골보다 많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어[80], 소수의 도래인이 다수의 조몬인과 협력하며 농경 사회로 이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80]
유전학적 연구 또한 야요이 시대 이후 대륙으로부터 인구 유입이 있었음을 시사하지만, 이것이 선주민인 조몬인의 완전한 대체나 대립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상호 융화와 혼혈 과정을 거쳤음을 보여준다.[28] 즉, 야요이인은 일본 열도의 선주민인 조몬인과 한반도를 비롯한 대륙에서 건너온 도래인 집단 간의 복합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 집단으로 이해된다.
3. 1. 신체적 특징
야요이인의 머리뼈 계측치는 신석기 시대 한반도 남부, 허난성, 청동기 시대 장쑤성 동주 및 산둥성 臨淄|린쯔중국어 지역 사람들과 가장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79][44] 초기 야요이 이주민들은 전반적으로 크고 평평한 이목구비, 넓은 얼굴, 둥근 눈구멍을 가졌으며[26], 특히 눈구멍은 콧대가 낮고 세로로 길며 둥글고 전체적으로 평탄한 형태를 띤다. 치아 크기도 조몬인보다 컸으며[26], 평균 신장은 약 162cm~163cm로 조몬인보다 컸다.이러한 인골 자료 대부분은 규슈 북부에서 야마구치현, 시마네현에 이르는 일본해 연안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이다. 미나미큐슈에서 홋카이도까지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특징을 가진 야요이 시대 인골이 발견되었으나, 지역 간 형태 차이나 그 빈도를 확정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다. 예를 들어, 후쿠오카현 이토시마 반도 신마치 유적의 고인돌(대륙식 묘제)에서 발견된 인골에서는 조몬인의 관습인 발치(拔齒) 흔적이 확인되었다. 또한 나가사키현 오토모(大友) 유적의 고인돌군과 세토 내해 지역 고베시 신가타 유적의 인골에서도 조몬인의 특징이 나타났다. 반면, 후쿠오카시 사사이(雀居) 유적이나 나라 분지의 타라코-카기(唐古・鍵) 유적에서 출토된 초기 야요이인은 도래계 인골로 판정되었다. 이는 도래인이 먼저 정착했다고 여겨지는 규슈 북부, 세토 내해, 긴키 지방에서도 야요이 시대 초기에는 조몬계 인골이 도래계 인골보다 더 많이 발견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를 통해 벼농사 중심지에서도 다수의 조몬인이 소수의 대륙계 도래인과 함께 농경 사회로 이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80][45]
1960년대 가나세키 다케오(金関丈夫)는 야마구치현 도이가하마(土井ヶ浜) 유적과 사가현 미쓰나가타(三津永田) 유적 등에서 발굴된 야요이인 인골 연구를 통해, 야요이인이 조몬인보다 신장이 크고 머리 길이와 얼굴 너비 등이 한반도 및 발해만 주변 중국 동북 지역의 인골과 유사하며 조몬인과는 큰 차이가 있음을 지적했다.[81][46] 그는 이러한 차이를 근거로 조몬인과 다른 집단이 한반도나 대륙에서 이주하여 조몬인과 혼혈하면서 야요이인이 형성되었다고 보았다.[82][47] 이후 연구에서도 중국 산둥성 유적 인골과의 유사성이 언급되고 있다.
1991년 하니하라 가즈오(埴原和郎)는 남아시아 기원의 조몬인이 살던 일본 열도에 중국 동북부의 퉁구스계 사람들이 유입되어 야요이 문화를 형성했다는 '이중 구조 모델'을 제안했다. 그러나 아무르강 하류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오호츠크 문화인(고대 북동아시아인과 밀접하게 관련된 퉁구스계 민족이나 니브흐인 등)은 치아 크기나 광대뼈 돌출 등에서 도래계 야요이인이나 현대 일본인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83][84][48][49] 이후 가쿠하리 등은 서북 규슈 야요이인이 고대 북동아시아인과 관련된 바이칼호 주변 고인골과 혼혈되었으며, 고훈 시대 인골은 중국 등 동아시아 집단과의 혼혈이 더해져 일본인은 삼중 구조를 가진다고 주장했다.[85][86][50][51]
하니하라는 야요이 시대부터 고훈 시대까지의 급격한 인구 증가가 일반적인 농경 사회의 인구 증가율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아, 이 기간에 약 100만 명 규모의 도래인이 유입되었다는 '대량 도래설'을 주장했다.[87][52] 반면 나카하시 등은 소수의 도래와 높은 인구 증가율의 조합으로도 인구 증가를 설명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88][53] 이 논쟁은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연구팀이 야요이 시대 시작 연대를 약 500년 앞당긴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소수의 도래만으로도 높은 인구 증가율을 가정하지 않고 인구 증가를 설명할 수 있게 되어 종결되었다.[89][54]
사하라 마코토(佐原真)는 후쿠오카 평야와 사가 평야 등 규슈 북부 일부에서 조몬인과 도래인이 혼혈하여 야요이 문화를 형성한 뒤 동쪽으로 확산되었으며, 이 혼혈 집단이 나고야와 단고반도를 잇는 선까지 진출하면서 논농사가 정착했다고 보았다.[90][55]
또한, 야요이인과 관련된 유전적 특징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 결핍 유전자(술을 잘 못 마시는 체질)가 있다. 이 유전자는 중국 남부와 일본에 집중되어 나타나는데, 벼농사의 발상지로 추정되는 중국 남부의 특정 감염병에 대한 자연 선택의 결과일 수 있다는 가설이 있다.[56][57]
3. 2. 조몬인과의 관계
머리뼈 계측 결과, 도래계 야요이인과 가장 유사한 집단은 신석기 시대의 한반도 남부인, 허난성 주민, 청동기 시대의 장쑤성 동주 및 산둥성 린쯔(臨淄) 주민으로 나타났다.[79][44] 도래계 야요이인은 조몬인에 비해 콧대가 낮고 세로로 길며 둥근 눈구멍, 평탄한 얼굴 형태를 가졌으며, 치아 크기가 더 크고 평균 신장도 약 162cm~163cm로 더 컸다. 그러나 이러한 인골 자료는 대부분 규슈 북부에서 야마구치현, 시마네현에 이르는 일본해 연안 유적에서 발굴된 것이며,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유사 특징의 인골만으로는 구체적인 형태 차이나 빈도를 확정하기 어렵다.후쿠오카현 이토시마 신마치 유적의 고인돌에서는 조몬인의 관습인 발치(拔齒) 흔적이 있는 인골이, 나가사키현 오토모(大友) 유적의 고인돌군에서는 조몬인의 특징을 가진 인골이 다수 발견되었다. 세토 내해 지역인 고베시 신가타 유적의 인골 역시 조몬적 특징을 보였다. 반면, 후쿠오카시 사사이(雀居) 유적이나 나라 분지의 타라코-카기(唐古・鍵) 유적에서 출토된 초기 야요이인은 도래계 인골로 판정되었다. 즉, 도래인이 먼저 정착했다고 여겨지는 규슈 북부, 세토 내해, 긴키 지방에서도 야요이 시대 초기 유적에서는 도래계보다 조몬계로 판정된 인골이 더 많이 발견된다. 이는 수도(水稻) 벼농사의 선진 지대에서도 기존의 조몬인들이 벼농사를 받아들였으며, 다수의 조몬인과 소수의 대륙계 도래인이 협력하여 농경 사회로 이행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80][45]
1960년대 가나세키 다케오(金関丈夫)는 야마구치현 도이가하마(土井ヶ浜) 유적과 사가현 미쓰나가타(三津永田) 유적 등 후쿠오카 평야의 초기 및 중기 야요이인 인골 연구를 통해, 야요이인이 조몬인보다 신장이 크고, 머리 길이와 얼굴 너비 등이 한반도 및 발해만 주변 중국 동북 지역의 인골과 유사함을 지적했다.[81][46] 그는 이를 근거로 조몬인과 다른 집단이 한반도나 대륙에서 이주하여 조몬인과 혼혈하며 야요이인이 형성되었다고 보았다.[82][47] 이후 연구에서도 중국 산둥성 유적 인골과의 유사성이 언급되었다.
하니하라 가즈오(埴原和郎)는 1991년 남아시아 기원의 조몬인이 살던 일본 열도에 중국 동북부의 퉁구스계 사람들이 유입되어 야요이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이중 구조 모델'을 제안했다. 그러나 아무르강 하류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오호츠크 문화인(고대 북동아시아인과 밀접한 퉁구스계 민족이나 니브흐인 등)은 치아 크기나 광대뼈 돌출 등에서 도래계 야요이인이나 현대 일본인과는 다른 특징을 보였다.[83][84][48][49] 이후 가쿠하리(覚張) 등은 서북 규슈 야요이인 표본 분석을 통해, 이들에게 고대 북동아시아인과 관련된 바이칼 호수 주변 고인골과의 혼혈이 나타나며, 고훈 시대 인골 표본에는 중국 등 동아시아 집단과의 혼혈이 더해져 일본인은 삼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85][86][50][51]
하니하라는 또한 야요이 시대에서 고훈 시대에 걸쳐 일반적인 농경 사회의 인구 증가율을 넘어서는 급격한 인구 증가가 있었다며, 약 100만 명 규모의 도래인 유입을 주장하는 대량 도래설을 제기했다.[87][52] 반면 나카하시(中橋) 등은 소수의 도래인과 높은 인구 증가율의 조합으로도 설명 가능하다고 보았다.[88][53] 이 논쟁은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연구팀이 야요이 시대 시작 연대를 약 500년 앞당기면서, 소수의 도래인만으로도 인구 증가 설명이 가능해져 대량 도래나 높은 인구 증가율을 가정할 필요가 없어지며 일단락되었다.[89][54]
사하라 마코토(佐原真)는 후쿠오카 평야·사가 평야 등 규슈 북부 일부에서 조몬인이 도래인과 혼혈하여 야요이 문화를 형성한 뒤 동쪽으로 이동했으며, 이 혼혈 집단이 나고야와 단고반도를 잇는 선까지 확산되면서 논농사가 정착되었다고 주장했다.[90][55]
조몬인의 신체적 특징은 비교적 균일하지만, 야요이인의 골격은 다양하여 지역 및 시기별 차이가 크다. 야요이인은 조몬인과 거의 같은 사람(조몬계 야요이인), 대륙(한반도, 중국 동북부)에서 온 사람들과 유사한 사람(도래계 야요이인), 그리고 이 두 집단이 혼혈된 사람(혼혈계 야요이인)으로 나뉜다.[27]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현대 일본인과 조선인, 중국인의 Y 염색체에는 차이가 있다. 야요이 시대 이후 단속적으로 도래인이 유입되었지만, 선주민인 조몬인과 완전히 대립하기보다는 서로 융화하고 혼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28] 일본 열도에는 조몬 시대 이전부터 여러 경로로 다양한 집단이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야요이인 역시 단일 계통이 아닌 여러 계통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종류 (규슈)
규슈의 야요이인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북부 규슈에는 대륙에서 건너온 "도래계 야요이인"이 있었고, 가고시마현 부근에는 극단적인 단두형(短頭型) 두개골을 지닌 "남규슈 야요이인"이 살았다. 또한 나가사키현 부근에는 "서북 규슈 야요이인"이 거주했다.[91][58] 이 중 남규슈 야요이인과 서북 규슈 야요이인은 형질적으로 조몬인의 후손으로 여겨져 왔다.[92][59]
그러나 최근의 핵 게놈 분석 결과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서북 규슈 야요이인의 경우, 도래계 야요이인과 상당한 수준의 혼혈이 이루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93][60] 반면, 같은 표본을 사용한 다른 분석에서는 서북 규슈 야요이인이 도래계 야요이인이 아니라 고대 북동아시아인 계통과 혼혈되었다는 상반된 결과도 있다.[94]
5. 게코(下戸)
야요이인의 신체적 특징 중 하나로 '게코(下戸)'가 있다. 게코는 체질적으로 술이나 알코올 음료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 즉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을 의미한다.[95] 이러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중국 남부와 일본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논농사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남부의 농경 지대에서 특정 감염증에 대한 자연 선택이 이루어진 결과일 수 있다는 가설이 있다.[96][97][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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