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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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탈로니아 찬가》는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험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오웰은 파시스트 반란군에 대항하기 위해 카탈루냐로 가서 의용군에 합류했지만, 참호전의 지루함과 공화파 내부의 권력 다툼, 스탈린주의의 탄압을 겪었다. 이 책은 전쟁의 현실과 이념의 허상을 드러내며,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민주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오웰의 정치적 입장을 보여준다. 출간 당시에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스페인 내전과 전체주의에 대한 중요한 증언으로 재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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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 |
---|---|
서지 정보 | |
원제 | Homage to Catalonia |
저자 | 조지 오웰 |
삽화가 | 해당사항 없음 |
표지 미술가 | 해당사항 없음 |
국가 | 영국 |
언어 | 영어 |
장르 | 논픽션, 정치 |
출판사 | 시커 앤드 워버그 (런던) |
출판일 | 1938년 4월 |
미디어 유형 | 인쇄 (하드커버 & 페이퍼백) |
페이지 수 | 368 (페이퍼백) 248 (하드커버) |
ISBN | 해당사항 없음 |
이전 작품 |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다음 작품 | 숨 쉬러 나가다 |
2. 배경
19세기 스페인 문학에서는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파벌로 나뉜 양극화된 스페인을 묘사하는 "두 개의 스페인"이라는 주제가 나타났다.[1] 1931년 스페인 제2공화국이 수립될 당시, 유럽은 파시즘과 나치즘을 포함한 극우 정치가 부상하고 있었다.[6] 스페인 내전은 1936년 7월 18일,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의 지원을 받은 스페인 군대의 국민주의 파벌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7]
쿠데타 초기, 공화국 정부가 마비되자 전국 도시의 일반 대중이 저항을 조직했다. 이는 사회 혁명으로 이어져 무정부주의 및 사회주의 노동자들이 스페인의 산업 경제를 사회 소유로 전환시켰다.[8] 1936년 가을, 노동자 민병대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에서 국민주의 쿠데타를 격퇴하고 아라곤과 누에바 카스티야를 통과하는 전선을 형성하여 스페인을 공화국과 국민주의 구역으로 나누었다.[9]
레옹 블룸의 프랑스 정부와 네빌 체임벌린의 영국 정부는 스페인 내전에 대한 불개입 정책을 채택했다. 표면적으로는 확대를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혁명적 정서가 스페인 밖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한 측면도 있었다.[10] 국민주의자들이 나치와 파시스트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은 반면, 공화국은 경제적,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소련에서 군사 장비를 구매해야 했다.[11] 파시즘에 맞서고 사회 혁명을 방어하기 위해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스페인으로 와서 공화국 민병대에 합류했다.[12]
조지 오웰은 1903년 당시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였던 인도 모티하리에서 태어났다. 잉글랜드에서 성장한 그는 19세에 영국령 버마에서 제국 경찰에 입대하여 제국주의의 현실을 직접 경험했으며, 이는 1934년 소설 ''버마의 나날''의 주제가 되었다.[13] 유럽으로 돌아온 후, 런던과 파리에서 수년간 빈곤 속에서 살았고, 이 경험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의 기초가 되었다.[14] 스페인 내전 발발 당시, 오웰은 확고한 반자본주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15]
1930년대 오웰은 유럽에서 파시즘의 부상에 대해 우려하며 반대 행동을 취하고 싶어했다.[16] 1936년 가을, 스페인으로 가기로 결심하고,[17] 입국 허가를 위해 영국 공산당에 갔으나 해리 폴리트가 국제 여단 합류를 권유하며 도움을 거절했다.[2] 이후 독립노동당에 연락하여 주간지 ''노동 지도자'' 특파원으로 임명받아 합법적으로 스페인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2] 페너 브록웨이의 추천서로 바르셀로나의 존 맥네어와 연결되었다.[18]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마무리한 후,[19] 1936년 12월 23일 스페인으로 출발, 파리에서 헨리 밀러를 만나고 프랑스-스페인 국경을 넘어 연말까지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20]
스페인 도착 후, 오웰은 맥네어에게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민병대에 합류하러 왔다고 말했다.[3] 맥네어는 오웰을 POUM(반스탈린주의 공산주의 정당)으로 데려갔다.[4] 오웰은 ILP 서류 때문에 POUM 민병대에 합류했으며, 정당들 간 차이를 몰랐다고 말했다.[5] 그는 개인적으로 아나키스트에 합류하고 싶었다고 언급했다.[21]
2. 1. 역사적 맥락
스페인 내전은 1936년 2월 스페인 총선에서 좌익 인민 전선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뒤 수개월간의 긴장 끝에 1936년 7월 군사 쿠데타로 발발했다. 반군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지도 아래 민족주의자로 뭉쳐 정부의 지배 아래 있는 도시를 빼앗으려 했다.민족주의자를 파시즘으로 간주했던 공화당 측은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를 포함한 여러 파벌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 파벌 사이에는 불화가 있었다. 19세기 동안, 스페인 문학에서 "두 개의 스페인"으로 알려진 모티프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마리아노 호세 데 라라와 같은 작가들은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파벌로 나뉜 양극화된 스페인을 묘사했다. 스페인 제2공화국이 1931년에 수립되었을 때, 유럽은 파시즘과 나치즘을 포함한 극우 정치의 부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 7월 18일에 발발했는데, 이는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의 지원을 받은 스페인 군대의 국민주의 파벌이 스페인 공화국의 선출된 정부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였다.
공화국 정부가 쿠데타로 인해 초기에 마비되자, 전국 도시의 일반 대중이 이에 대한 저항을 조직했고, 이는 사회 혁명으로 이어져 스페인 무정부주의의 무정부주의 및 사회주의 노동자들이 스페인의 산업 경제를 사회 소유로 가져왔다. 1936년 가을까지 노동자 민병대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에서 국민주의 쿠데타를 격퇴하고, 아라곤과 누에바 카스티야를 통과하는 전선을 형성하여 스페인을 공화국과 국민주의 구역으로 나누었다. 공화국 파벌은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영향력을 가진 여러 정치 정당과 노동 조합으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는 전국 노동 연합 (CNT), 무정부-생디칼리즘 무정부주의 노동 조합, 바르셀로나 광역 지역을 통제했던 마르크스주의 통일 노동자당 (POUM), 소규모 트로츠키주의 정당, 전국 노동자 연합 (UGT), 빌바오와 마드리드에서 우위를 차지한 사회주의 노동 조합, 그리고 스페인 사회주의 노동자당 (PSOE)과 스페인 공산당 (PCE)이 있었으며, 이들은 카탈루냐에서 카탈루냐 통일 사회주의자당 (PSUC)으로 합병되었다.
레옹 블룸의 프랑스 정부와 네빌 체임벌린의 영국 정부는 스페인 내전에 대한 불개입 정책을 채택했는데, 표면적으로는 어떠한 확대를 막기 위해서였지만, 스페인 밖으로 혁명적 정서가 확산될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했다. 국민주의자들이 나치와 파시스트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은 반면, 공화국은 경제적,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소련에서 군사 장비를 구매해야 했다. 파시즘의 부상에 맞서고 사회 혁명을 방어하기 위해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스페인에 와서 공화국 민병대에 합류했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인민 전선 측 의용군인 마르크스주의 통일 노동자당(POUM)에 종군했다. 그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 지휘하의 반란군(파시스트 군)과의 전투, 바르셀로나에서 일어난 인민 전선 내부의 내분 및 시가전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전쟁의 현실을 꾸밈없이 묘사하고, 인민 전선을 내분으로 이끈 스탈린주의와 비인간적인 정당 정치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동시에,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는 스페인 사람들과 카탈루냐 사람들에 대한 오웰의 애정과 존경심도 묘사하고 있다.
이 경험은 사회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였던 오웰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더욱 인간적인 사회주의를 지향하게 되었고, 비인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스탈린주의와 소련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다. 이 경험은 훗날 스탈린 비판 우화인 『동물농장』과 전체주의 국가를 비판하는 SF 소설 『1984년』을 집필하는 동기가 되었다.
또한, 이 책은 스탈린과 공산당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어, 당시 오웰이 속했던 좌익·자유주의 지식인들로부터 비난받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이 책의 평가는 높아졌다. 20세기 후반의 저널리즘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는 르포르타주 문학의 금자탑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2. 2. 오웰의 참전
조지 오웰은 1936년 크리스마스 직전,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최초의 도서인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출판사에 제출하고 곧바로 스페인으로 떠났다.[51] 그는 신문 기사를 쓸 생각으로 스페인에 왔지만, 대부분 곧 민병대에 가담하게 되었다고 카탈루냐 찬가 서문에 썼다.[51]오웰은 영국 좌익 단체에서 증빙 서류 없이는 스페인 입국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처음에는 영국 공산당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당수 해리 폴리트에게 직접 요청했지만, 폴리트는 국제여단 합류 여부를 묻고는 오웰이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싶다고 하자 지원을 거절했다. 이후 오웰은 독립노동당에 연락했고, 그곳의 관리들은 그를 돕기로 했다. 독립노동당은 그를 노동 지도자(New Leader) 특파원으로 승인하여 스페인에 합법적으로 갈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다.[52] 또한, 독립노동당은 바르셀로나 대표 존 맥네어에게 소개장을 써 주었다.
스페인에 도착하자마자 오웰은 맥네어에게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민병대에 합류하러 왔다고 말했다.[3] 그는 또한 영국과 프랑스 노동자 계급의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뉴 스테이츠먼(New Statesman and Nation)에 기사를 기고하고 싶다고 했지만, 주된 이유는 파시즘에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밝혔다. 맥네어는 오웰을 마르크스주의 통일 노동자당(POUM, 반스탈린주의 공산주의 정당)으로 데려갔다.[52]
오웰은 자신이 POUM에 합류한 것은 다소 우연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ILP 서류를 가지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했기 때문에 POUM 민병대에 합류했지만, 정당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밝혔다.[5] 그는 개인적인 선호로는 아나키스트에 합류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3. 전개
스페인 내전 발발 소식을 듣고 조지 오웰은 파시스트 반란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으로 가 의용군에 지원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겪은 것은 낭만적인 영웅담과는 거리가 먼, 지루하고 물자가 부족하며 비참하고 악취에 휩싸인 참호전이었다.[8]
수개월 만에 휴가를 받아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오웰은, 파시스트에 맞서 싸워야 할 후방의 인민 정부(공화국 정부)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을 목격한다. 소련 코민테른의 지지 아래 정부 주도권을 잡은 공산당은 다른 정당을 트로츠키주의자로 몰아 탄압했다.
휴가 후 전선에 복귀한 오웰은 부상으로 바르셀로나로 후송된다. 그곳에서 소속 부대 POUM이 인민 정부에 의해 비합법화되고, 공산당과 POUM 및 아나키스트 간의 시가전, 체포, 투옥 등 공포 정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오웰 자신에게도 그 손길이 뻗치려 했다.[16]
3. 1. 전선에서의 경험
오웰은 1936년 12월 바르셀로나의 분위기를 묘사한다. "노동 계급이 지배하는 도시에 처음 가본 것이었다... 모든 벽에는 낫과 망치가 낙서되어 있었고... 모든 상점과 카페에는 집산화되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6] 민병대원들은 레닌 막사(구 레판토 막사)에서 "가장 구식의 어리석은 종류의 열병식 훈련"을 받았다.[6]
그는 POUM 노동자 민병대의 부족함, 무기의 부재, 전쟁의 의미를 모르는 16, 17세 소년들이 대부분인 신병들을 묘사하고, 스페인 사람들이 때때로 "''마냐나''"(내일)까지 일을 미루는 경향에 대해 불평한다.
1937년 1월, 오웰의 센투리아는 사라고사 전선 바로 뒤, 알쿠비에르에 도착한다. 그는 이 지역 마을의 참상과 구별이 되지 않는 "파시스트 탈영병"에 대해 묘사한다. 사흘째 되는 날 지급된 오웰의 소총은 "1896년산 독일 마우저... 부식되어 손 쓸 방법이 없었다."[6] 그의 센투리아가 사라고사 인근 참호에 도착하고 총알이 처음으로 그를 거의 맞힐 뻔했을 때,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고, 이에 실망했다.
사라고사 인근 언덕에서 오웰은 "고착전의 따분함과 불편함이 뒤섞인" 경험을 한다.[8] 그는 스페인 민병대의 상대적인 사회적 평등을 칭찬한다. "'혁명적' 규율은 정치적 의식에 달려 있으며, 명령을 '왜'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다."[8]
오웰은 장작, 식량, 양초, 담배, 적절한 탄약 등 전선에서의 다양한 부족과 문제, 그리고 훈련 부족과 무장 불량 상태의 군인 집단에 내재된 사고 위험에 대해 묘사한다.[8]
약 3주간 전선에 머문 후, 오웰과 그의 부대에서 함께 있던 다른 영국인 민병대원 윌리엄스는 사라고사가 보이는 몬테 오스쿠로의 위치로 독립노동당에서 보낸 다른 영국인들과 합류한다. "아마도 그들 중 최고는 로버트 스밀리의 손자인 밥 스밀리였을 것이다. 그는 나중에 발렌시아에서 끔찍하고 무의미한 죽음을 맞이했다."[9] 이 새로운 위치에서 그는 반군과 공화파 참호 사이의 때때로 선전적인 외침을 목격하고, 말라가 함락 소식을 듣는다.[10] 2월, 그는 다른 POUM 민병대원들과 함께 우에스카를 포위하는 군대의 일부를 만들기 위해 50마일을 이동한다.

오웰은 자신이 주둔했던 우에스카의 동쪽에서는 봄의 맹공과 그에 따른 이를 제외하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는 1937년 3월 말 열흘 동안 독이 오른 손을 째서 붕대로 감아야 하는 "소위" 병원인 몬플로리테에 있었다. 그는 "정말로 고양이만큼, 아니 거의 고양이만큼 컸던" 쥐들에 대해 묘사한다.[11]
3. 2. 바르셀로나의 5월 사건
오웰은 3개월 후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사회적, 정치적 분위기가 크게 변화했음을 상세히 설명한다. 그는 혁명적 분위기가 사라지고, 빈부 격차가 다시 나타나고 비굴한 언어가 부활하는 등 그가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계급 분열이 나타났다고 묘사한다. 오웰은 POUM을 떠나 국제 대열에 합류하여 마드리드 전선으로 가기 위해 추천서를 구한다. 그는 "아나키스트에 합류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13]이 장의 후반부에서는 아나키스트 CNT와 사회주의 UGT 간의 갈등, 그 결과로 5월 1일 시위가 취소되고 "바르셀로나 5월 사건"으로 이어진 거리 전투를 묘사한다. "그것은 혁명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그것을 막거나 방지하려는 사람들 간의 대립, 궁극적으로는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 간의 대립이었다."[13]
오웰은 5월 3일에 시작된 "5월의 날" 바르셀로나 시가전에 참여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시가전은 정부 돌격 경비대가 CNT 노동자들이 장악하고 있던 전화 교환소를 점거하려 하면서 시작되었다. 오웰은 POUM의 일원으로서 POUM이 통제하는 건물을 경비했다. 그는 자신이 노동 계급의 편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최전선에서 휴가를 받아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시가전에 휘말린 것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냈다. 발렌시아에서 온 돌격 경비대는 "그들 모두는 신형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 우리가 최전선에서 가지고 있던 끔찍한 낡은 총통보다 훨씬 좋았다."[14] 공산당이 통제하는 카탈루냐 통일 사회당 신문들은 POUM을 위장된 파시스트 조직이라고 선언했다. "당시 바르셀로나에 있었거나 그 이후 몇 달 동안 있었던 사람은 공포, 의심, 증오, 검열된 신문, 꽉 찬 감옥, 엄청난 음식 줄, 무장한 남자들의 배회하는 갱단에 의해 조성된 끔찍한 분위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14]
3. 3. 부상과 귀환
오웰은 전선으로 돌아가 저격수의 총에 목을 맞고[15] 전쟁에서 물러나게 된다. 레이다의 병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후, 타라고나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전선을 떠난 지 일주일이 넘어서야 마침내 상처를 검사받았다.의학적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은 후, 오웰은 퇴원 서류에 도장을 받기 위해 시에타모, 바르바스트로, 몬손의 병원을 전전했다.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 POUM이 "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가 퇴원 서류를 받으러 떠난 바로 그날 POUM은 불법으로 선언되었고, POUM 당원들은 기소 없이 체포되고 있었다. "우에스카 공격이 시작되었고... 배후의 신문들이 그들을 파시스트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죽어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일은 용서하기가 약간 어렵다."[16] 아내는 호텔로 돌아갔고, 그는 그날 밤 교회의 폐허에서 잠을 잤다. 체포될 위험 때문에 호텔로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아내와 함께 조지 코프(ILP 분견대)의 부대 지휘관인 코프가 스페인 임시 감옥("사실상 상점의 1층")에 갇혀 있는 동안 그를 방문한 내용을 설명한다. 오웰은 코프를 석방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효과가 없었고 큰 개인적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그는 스페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아내와 함께 피레네 산맥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아무 일 없이" 도착했다.
휴가를 마치고 다시 전선으로 돌아간 오웰은 부상으로 인해 바르셀로나로 후송되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소속 부대 POUM(마르크스주의 통일 노동자당)이 인민 정부에 의해 비합법화되고, 공산당과 POUM 및 아나키스트 사이에서 벌어지는 시가전과 정부에 의한 체포, 투옥 등의 공포 정치였다. 오웰 자신에게도 그 손길이 뻗치려 했다.
4. 주요 쟁점
스페인 내전 당시 조지 오웰은 인민 전선 측 의용군인 POUM에 종군하면서 전쟁의 참혹함과 이념 대립의 허상을 목격했다. 이는 『카탈로니아 찬가』의 주요 쟁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오웰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 지휘하의 반란군과의 전투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에서 벌어진 인민 전선 내부의 갈등과 시가전을 직접 경험했다. 그는 전쟁의 현실을 미화 없이 묘사하며, 특히 인민 전선을 내부 분열로 몰고 간 스탈린주의와 비인간적인 정당 정치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40] 이러한 경험은 훗날 오웰이 스탈린 비판 우화인 『동물농장』을 집필하는 계기가 된다.[41][42]
오웰은 카탈루냐와 아라곤에서 가톨릭 교회가 사람들에게 사기로 여겨졌으며, 기독교 신앙 대신 아나키즘이 그 자리를 대체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정통적인 의미에서의 종교적 감정"의 부재를 지적한다.[11]
4. 1. 공화파 내부의 갈등
스페인 내전은 1936년 7월 군사 쿠데타로 시작되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반군(민족주의자, 파시즘)에 맞서 공화파는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등 다양한 파벌로 구성되었다. 오웰은 바르셀로나 노동절에 관한 글에서 이들 파벌 사이의 불화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쿠데타로 인해 공화국 정부가 초기에 마비되자, 전국 도시의 일반 대중이 저항을 조직했다. 이는 사회 혁명으로 이어져 스페인 무정부주의의 무정부주의 및 사회주의 노동자들이 스페인 산업 경제를 사회 소유로 가져왔다.[9] 1936년 가을, 노동자 민병대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에서 국민주의 쿠데타를 격퇴하고, 아라곤과 누에바 카스티야를 통과하는 전선을 형성하여 스페인을 공화국과 국민주의 구역으로 나누었다.[9] 공화국 파벌은 전국 노동 연합 (CNT, 바르셀로나 광역 지역을 통제한 무정부-생디칼리즘 무정부주의 노동 조합), 마르크스주의 통일 노동자당 (POUM, 소규모 트로츠키주의 정당), 전국 노동자 연합 (UGT, 빌바오와 마드리드에서 우위를 차지한 사회주의 노동 조합), 스페인 사회주의 노동자당 (PSOE), 스페인 공산당 (PCE, 카탈루냐에서 카탈루냐 통일 사회주의자당 (PSUC)으로 합병) 등 다양한 정치적 입장과 영향력을 가진 여러 정치 정당과 노동 조합으로 구성되었다.[9]
오웰은 전선에서 3개월을 보낸 후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혁명적 분위기가 사라지고 계급 분열이 다시 나타난 것에 주목한다. 그는 POUM을 떠나 국제 대열에 합류하여 마드리드 전선으로 가고자 했다. 이 장의 후반부는 아나키스트 CNT와 사회주의 UGT 간의 갈등과 그 결과로 5월 1일 시위가 취소되고 "바르셀로나 5월 사건"의 거리 전투로 이어지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것은 혁명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그것을 막거나 방지하려는 사람들 간의 대립, 궁극적으로는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 간의 대립이었다."[13]
오웰은 공화파 내부의 분열에 대해 "한쪽에는 노동자 통제를 지지하는 CNT-FAI, POUM, 그리고 사회주의자 일부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중앙 정부와 군대화를 지지하는 우익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있었다."라고 설명한다.[18] 그는 또한 "이 전쟁의 가장 끔찍한 결과 중 하나는 좌익 언론이 우익 언론만큼이나 가짜이고 부정직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라고 적었다.[19]
당시 외국 언론(주로 친공산주의 언론)에서 보도된 "5월 사태"는 1937년 5월 초 혁명적 카탈루냐에서 발생한 가두 시위로, 아나키스트와 POUM(노동자통일마르크스주의당) 당원들이 공산주의/정부군에 맞서 싸운 사건이다. 이 사건은 지방 경찰이 그 전까지 CNT(전국노동연맹) 노동자들이 통제하던 전화 교환소를 점령하면서 촉발되었다. 오웰은 1937년 6월 15~16일에 POUM이 탄압받은 사건을 언급하고, 세계 공산주의 언론의 사례(예: ''데일리 워커(Daily Worker)'' 6월 21일자 "스페인 트로츠키주의자, 프랑코와 공모")를 제시하며, 인다레시오 프리예토가 "러시아가 무기를 공급하는 동안 정부는 공산당을 화나게 할 여유가 없다는 점을 대표단에게 상당히 광범위하게 암시했다"고 지적한다.[20] 그는 훌리안 수가사고이티아 내무부 장관의 "우리는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았고,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특정 행동을 허용해야만 했다."라는 말을 인용한다.[20]
4. 2. 스탈린주의 비판
오웰은 1937년 5월 초 혁명적 카탈루냐에서 발생한 가두 시위인 "5월 사태"에 대해 당시 외국 언론, 특히 친공산주의 언론의 보도에 나타난 몇 가지 오해를 풀려고 시도한다. 이 사건은 아나키스트와 POUM(노동자통일마르크스주의당) 당원들이 공산주의/정부군에 맞서 싸운 사건으로, 지방 경찰이 그 전까지 CNT(전국노동연맹) 노동자들이 통제하던 전화 교환소를 점령하면서 촉발되었다.[20] 그는 1937년 6월 15~16일에 POUM이 탄압받은 사건을 언급하고, 세계 공산주의 언론의 사례(예: ''데일리 워커''(Daily Worker) 6월 21일자 "스페인 트로츠키주의자, 프랑코와 공모")를 제시한다.[20] 인다레시오 프리예토가 "러시아가 무기를 공급하는 동안 정부는 공산당을 화나게 할 여유가 없다는 점을 대표단에게 상당히 광범위하게 암시했다"고 지적하며,[20] 훌리안 수가사고이티아 내무부 장관의 말("우리는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았고,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특정 행동을 허용해야만 했다.")을 인용한다.[20]오웰은 바르셀로나에서 공산주의 숙청에서 그와 그의 아내 에일린 오쇼네시가 간신히 탈출한 경험은[26] POUM에 대한 그의 공감을 크게 증가시켰고, 그를 평생 반 스탈린주의자로 만들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스탈린주의와 비인간적인 정당 정치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담았으며,[40] 훗날 스탈린 비판 우화인 『동물농장』을 쓰게 된다.[41][42]
4. 3. 전쟁의 현실과 이념의 허상
오웰은 1937년 5월 3일에 시작된 "5월의 날" 바르셀로나 시가전에 참여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 시가전은 정부 돌격 경비대가 CNT 노동자들이 장악하고 있던 전화 교환소를 점거하려 하면서 시작되었다. 오웰은 POUM의 일원으로서 POUM이 통제하는 건물을 경비했다. 그는 자신이 노동계급의 편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최전선에서 휴가를 받아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시가전에 휘말린 것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냈다. 발렌시아에서 온 돌격 경비대는 "그들 모두는 신형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 우리가 최전선에서 가지고 있던 끔찍한 낡은 총통보다 훨씬 좋았다."[14] 공산당이 통제하는 카탈루냐 통일 사회당 신문들은 POUM을 위장된 파시스트 조직이라고 선언했다. "당시 바르셀로나에 있었거나 그 이후 몇 달 동안 있었던 사람은 공포, 의심, 증오, 검열된 신문, 꽉 찬 감옥, 엄청난 음식 줄, 무장한 남자들의 배회하는 갱단에 의해 조성된 끔찍한 분위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14]오웰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 지휘하의 반란군(파시스트 군)과의 전투, 바르셀로나에서 일어난 인민 전선 내부의 내분 및 시가전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전쟁의 현실을 꾸밈없이 묘사하고, 인민 전선을 내분으로 이끈 스탈린주의와 비인간적인 정당 정치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5. 영향 및 평가
Homage to Catalonia영어는 출간 초기에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출판 후 6개월 동안 1,500부 중 683부만 판매되었고, 1950년 오웰이 사망할 당시 초판의 많은 부수가 팔리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21][22][23][24][25][4] 오웰은 영국 언론이 이 책을 보이콧했는지 의문을 가졌고, 출판인 프레데릭 워버그는 책이 "무시당하고 실패로 내몰렸다"고 믿었다.[25][26][4]
그러나 오웰의 후기 저서인 동물 농장과 1984의 성공으로, Homage to Catalonia영어는 사후에 "잃어버린 명작"으로 재조명되었다.[21][22][23][24][25] 1952년 미국 초판이 출판되면서 판매량이 증가했고, 문학 평론가 라이오넬 트리링의 서문이 실렸다.[25][26][4] 영국에서는 1951년에 새 판이 출판되었고, 1962년에는 펭귄 북스가 출판을 인수하여 그 이후로 절판되지 않고 있다.[25][26][4] 1960년대 후반, 반문화와 뉴 레프트의 관심에 힘입어 판매량이 다시 한번 증가했다.[25][26][4] 역사학자 폴 프레스턴은 2017년에 이 책이 스페인 내전에 관한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힌 책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27]
초기 평가는 엇갈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웰의 진실성과 저널리즘적 객관성에 대한 헌신이 높이 평가받았다. 특히 라이오넬 트리링은 오웰을 세속 성자로 칭송하며, 그가 진실에 전적으로 헌신했다고 말했다.[25][26][4]
1970년대 스페인 민주주의 전환 이후, 스페인 내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면서 Homage to Catalonia영어는 1차 사료로서의 가치를 재평가받았다. 여러 역사가들이 이 책을 통해 스페인 내전의 복잡한 정치 상황과 오웰의 시각을 분석했다.[27]
Homage to Catalonia영어는 켄 로치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 (1995) 등 다양한 예술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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