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반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콜라 반도는 러시아 북서쪽의 유럽에서 가장 큰 반도 중 하나로, 대부분이 북극권에 속하며 바렌츠 해, 백해와 접한다. 지질학적으로 발트 해 방패의 북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약 100,000 km²의 면적을 차지한다. 최근 빙하기로 인해 다양한 광물 자원이 풍부하며, 아한대 습윤 기후를 보인다. 12세기부터 러시아인들이 진출하여 사미족과 교류하였으며, 노브고로드 공화국을 거쳐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현재 무르만스크 주에 속하며, 광업, 수산업, 에너지, 교통 등이 주요 경제 활동이다. 한국과는 북극 협력, 자원 개발, 과학 기술, 정치적 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가능성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페노스칸디아 - 핀란드
핀란드는 북유럽에 위치한 의원내각제 공화국으로, 핀란드어와 스웨덴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1917년 독립하여 1995년 유럽 연합에 가입하고 2023년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가입했으며, 노키아와 같은 첨단 기술 산업과 높은 교육 수준 및 사회 복지 시스템을 갖춘 국가이다. - 페노스칸디아 - 레닌그라드주
레닌그라드주는 러시아 북서부, 핀란드 만 연안에 위치하며 풍부한 수자원과 습윤 대륙성 기후, 다양한 역사를 가진 주로, 현재 17개의 군과 1개의 주 직할 도시로 구성, 가치나를 주도로 삼고 기계 제조, 목재 가공, 화학 공업 등이 주요 산업이다. - 무르만스크주 - 백해
백해는 러시아 북서부에 위치한 유라시아 대륙의 바다로, 4개의 주요 만으로 구성되어 바렌츠 해와 연결되며, 러시아의 주요 무역로이자 다양한 해양 생물이 서식하는 중요한 해역이다. - 무르만스크주 - 몬체고르스크
몬체고르스크는 러시아 무르만스크주에 위치한 도시로, 구리 및 니켈 채굴을 위한 거주지로 설립되어 노릴스크 니켈 공장을 중심으로 니켈, 코발트, 구리 생산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환경 오염 문제로 환경 핫스팟으로 지정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환경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밴디 팀과 예술가의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다. - 러시아의 반도 - 크림반도
크림 반도는 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에 위치한 반도로, 역사적으로 다양한 지배를 받았으며 현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영토 분쟁 지역으로, 농업, 광업, 관광업이 발달했고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는 복합적인 문화 지역이다. - 러시아의 반도 - 캄차카반도
캄차카 반도는 캄차카 지방의 일부를 형성하며, 화산 활동이 활발하고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으로,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현재는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콜라반도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콜라반도 |
현지 이름 | 러시아어: Кольский полуостров (콜스키 폴루오스트로프) 사미어: Куэлнэгк нёа̄ррк |
위치 | 러시아 북서부 |
면적 | 100,000 제곱킬로미터 |
길이 | 370 킬로미터 |
너비 | 244 킬로미터 |
최고봉 | 유디치움초르 산 |
해발고도 | 1,201 미터 |
접한 바다 | 바렌츠해 백해 |
국가 | 러시아 |
행정 구역 | 무르만스크 주 |
지리 | |
대륙 | 유라시아 대륙 |
해역 | 백해 바렌츠해 |
기타 | |
최대 도시 | 무르만스크 |
문화어 | 꼴스크 반도 |
2. 지리
콜라 반도는 러시아 북서쪽 끝, 북극권 내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바렌츠 해, 동쪽과 남동쪽으로는 흰 바다와 접한다.[2] 지질학적으로는 발트 해 방패의 북동쪽 가장자리에 해당한다.[3] 반도의 서쪽 경계는 콜라 만에서 콜라 강 계곡, 이만드라 호, 니바 강을 거쳐 칸달락샤 만까지 이어진다.[3]
콜라 반도의 면적은 약 100000km2이다.[3] 북쪽 해안은 가파르고 높지만, 남쪽 해안은 평평하다.[3] 반도의 서쪽에는 히비니 산맥과 로보제로 산괴가 있다.[3] 케이비 분수계는 반도 중앙부에 위치한다.[3]
2. 1. 자연환경
반도는 북쪽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대서양 해류(만류의 연장선)에 가깝기 때문에 겨울에는 유난히 기온이 높지만, 육지와 바렌츠해 사이의 기온 차이로 인해 강풍이 불기도 한다. 여름은 다소 쌀쌀하며 7월 평균 기온은 11°C에 불과하다. 반도는 남쪽은 타이가, 북쪽은 툰드라로 덮여 있으며 영구 동토층이 나무의 성장을 제한하여 관목과 풀이 우거진 풍경을 이루고 있다. 반도에는 소수의 포유류가 서식하고 있으며 강은 대서양 연어의 중요한 서식지이다. 참솜깃오리 개체군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칸달락샤 자연보호구역은 칸달락샤 만에 위치해 있다. 반도에는 지구에서 가장 깊은 구멍인 콜라 슈퍼딥 시추공(Kola Superdeep Borehole)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콜라 반도는 러시아 북서쪽 끝에 위치하며, 거의 전부가 북극권 내에 포함된다. 북쪽은 바렌츠 해, 동쪽과 남동쪽은 흰 바다와 접한다.[2] 지질학적으로 콜라 반도는 발트 해 방패의 북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한다.[3] 반도의 서쪽 경계는 콜라 만에서 콜라 강 계곡, 이만드라 호, 니바 강을 거쳐 칸달락샤 만까지 자오선을 따라 뻗어 있다.[3] 하지만 일부 자료에서는 핀란드와의 러시아 국경까지 서쪽으로 확장한다.[4]
좀 더 좁은 정의를 적용하면, 콜라 반도의 면적은 약 100000km2이다.[3] 북쪽 해안은 가파르고 높지만 남쪽 해안은 평평하다.[3] 반도의 서쪽에는 히비니 산맥과 로보제로 산괴의 두 산맥이 있다.[3] 히비니 산맥에는 반도의 최고봉인 유디치브움초르가 있다. 높이 1191m인 차스나초르 산은 이전에 히비니 산맥의 최고봉으로 여겨졌다.[5] 케이비 분수계는 중앙부에 위치한다.[3] 무르만과 칸달락샤 해안의 산악 지형은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있으며, 반도의 주요 지형 특징을 반영한다.[2]
최근의 빙하기로 인해 토양의 상층부 퇴적물이 제거되었기 때문에,[2] 콜라반도의 지표면에는 아파타이트와 네펠라이트, 구리, 니켈, 철광석, 운모, 규선석, 세라믹 원료,[7] 희토류 원소와 비철금속 광석 등 다양한 광석과 광물이 매우 풍부하다.[3] 화강암, 규암, 석회암과 같은 건축 자재 매장량 또한 풍부하다.[7] 호수 근처에는 규조토 매장량이 많으며, 이를 이용하여 단열재를 생산한다.[7]
2. 2. 기후
콜라 반도는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겨울철 기온이 이례적으로 높지만, 육지와 바렌츠 해 사이의 기온 차이로 인해 강풍이 불고 기온 변동이 심하다.[7] 추운 계절에는 저기압이, 따뜻한 계절에는 고기압이 일반적이다.[7] 계절풍이 흔하며, 겨울에는 남풍과 남서풍이, 여름에는 동풍이 다소 강하게 분다.[7] 강한 폭풍은 연간 80~120일 동안 발생한다.[7] 무르만 해안의 바닷물은 겨울에도 얼지 않을 정도로 따뜻하다.[8]
강수량은 상당히 높아 산악 지역은 1000mm, 무르만 해안은 600mm 에서 700mm, 다른 지역은 500mm 에서 600mm이다.[7] 가장 강수량이 많은 달은 8월부터 10월까지이며, 3월과 4월이 가장 건조하다.[7]
1월 평균 기온은 약 -10°C이며, 반도 중앙부는 더 낮다.[3] 7월 평균 기온은 약 11°C이다.[3] 최저 기온 기록은 중앙부에서 -50°C, 해안에서는 -35°C 에서 -40°C에 달한다.[7] 최고 기온 기록은 반도 전역에서 거의 30°C를 넘는다.[7] 첫 서리는 8월 초에 발생하며 5월 또는 6월까지 지속될 수 있다.[7]
콜라 반도의 대부분 지역은 아한대 습윤 기후(쾨펜 기후 구분: ''Dfc'')에 속한다. 근처 섬들은 대개 툰드라 기후(쾨펜 기후 구분: ''ET'')에 속한다.
2. 3. 동식물
콜라반도는 남쪽은 타이가, 북쪽은 툰드라[3]로 덮여 있다. 툰드라 지역은 춥고 바람이 많이 불며, 영구 동토층[10]으로 인해 나무의 성장이 제한되어 풀, 야생화, 그리고 왜성 자작나무(''Betula nana'')와 구름딸기(''Rubus chamaemorus'')와 같은 관목이 우점하는 지형을 이룬다.[10] 북부 해안 지역에서는 돌이 많고 관목과 지의류가 흔하다.[10] 남부 지역의 타이가는 주로 소나무와 가문비나무로 구성되어 있다.[3]

여름에는 순록 무리가 초원을 찾아온다.[10] 다른 동물로는 붉은여우와 북극여우, 수달, 남부 지역에는 무스,[10] 검은담비, 물범이 있다.[11] 1935년에서 1936년 사이에 올레니차 강 근처에 방사된 미국밍크는 현재 반도 전역에 흔하며 상업적으로 사냥된다.[11] 1880년 멸종 위기에 처했던 비버는 1934년에서 1957년 사이에 다시 도입되었다.[11] 총 32종의 포유류와 최대 200종의 조류가 반도에 서식한다.[11]
흰돌고래는 반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흰코돌고래, 큰돌고래, 항구돌고래[12]를 포함한 다른 돌고래류와, 북극고래, 혹등고래, 흰긴수염고래, 긴수염고래와 같은 큰 고래들도 이 지역을 찾아온다.
칸달락샤만과 바렌츠해 연안은 수염물범과 얼룩물범의 중요한 번식지이다. 바렌츠해는 희귀한 회색물범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다.[13] 그린란드 물범도 가끔 볼 수 있다.[14]
반도 지역에서는 송어, 갯돌고기, 파이크, 유럽농어를 포함하여 29종의 담수어가 서식한다.[11] 강은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에서 산란을 위해 돌아오는 대서양연어의 중요한 서식지이다. 이 때문에 스포츠 낚시꾼을 위한 여러 외딴 롯지와 캠프를 갖춘 레크리에이션 어업이 발전했다.[15] 1932년에 큰가마우지 개체수 보호를 위해 설립된 칸달락샤 자연보호구역[16]은 콜라반도 칸달락샤만과 바렌츠해 연안에 위치한 13개의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17]
2. 4. 수문
콜라 반도에는 급류가 있는 작지만 빠르게 흐르는 강이 많다.[7] 그중 가장 중요한 강은 포노이 강, 바르주가 강, 움바 강, 테리베르카 강, 보로냐 강, 요캉가 강이다.[3] 대부분의 강은 호수와 습지에서 발원하며 녹는 눈에서 물을 모은다.[7] 강은 겨울 동안 얼어붙지만, 급류가 강한 지역은 나중에 얼거나 전혀 얼지 않는다.[7]
주요 호수로는 이만드라 호, 움보제로 호, 로보제로 호가 있다.[3] 면적이 0.01km2 미만인 호수는 없다.[7] 이 지역에서는 레크리에이션 어업이 발달되어 있다.[15]
3. 역사
콜라반도는 러시아 북서쪽에 있는 반도로, 유럽에서 가장 큰 반도 중 하나이다. 무르만스크 주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대부분 지역이 북극권 내에 위치한다. 북쪽으로는 바렌츠 해, 동쪽과 남동쪽으로는 백해와 접해 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 경제는 쇠퇴했다. 인구는 1989년 115만 명에서 2010년 79만 5천 명으로 감소했지만, 21세기 초반에 어느 정도 회복되어 북부 러시아에서 가장 산업적으로 발전되고 도시화된 지역으로 간주된다. 반도에는 지구에서 가장 깊은 구멍인 콜라 초심도 시추공이 있다.
3. 1. 초기 역사
콜라반도 북쪽의 라이바치 반도는 이미 기원전 7천년–기원전 5천년에 정착이 이루어졌다.[25] 기원전 3천년–기원전 2천년에는 현대 카렐리야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남쪽에서 이곳으로 와서 정착했다.[25] 바렌츠 해의 콜라 만에 있는 볼쇼이 올레니 섬은 고대 DNA가 발견된 중요한 청동기 시대 고고학 유적지이다.[26]서기 1천년 말까지 콜라 반도에는 사미족만이 정착해 살았는데, 이들은 국가가 없었고, 장로가 다스리는 씨족 사회에서 살았으며,[27] 주로 순록 사육과 어업에 종사했다.[28] 12세기에 오네가 만 연안과 북드비나 강 하류에 살던 러시아의 포모르인들이 콜라 반도와 그곳의 풍부한 사냥감과 물고기를 발견했다.[27] 포모르인들은 정기적인 사냥과 어업을 하고 사미족과 물물교환 무역을 시작했다.[27] 또한 그들은 콜라 반도의 백해 연안을 '''테르스키 해안''' (Те́рский бе́рег|테르스키 베레크ru) 또는 '''테르스카야 땅''' (Те́рская земля́|테르스카야 제믈랴ru)이라고 불렀다.[27]
12세기 말까지 포모르인들은 콜라 반도의 북쪽 해안 전체를 탐험하고 노르웨이 북부 지역인 핀마르크에 도달했고, 이로 인해 노르웨이인들은 이 지역에 해군 경비대를 지원해야 했다.[27] 포모르인들이 콜라 반도 북쪽 해안에 붙인 이름은 '무르만'이었는데, 이는 '노르웨이인'을 의미하는 '노르만'의 변형된 형태이다.[27]
3. 2. 노브고로드 공화국
12세기에 러시아 포모르족이 반도의 풍부한 사냥감과 어류 자원을 발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포모르족 뒤에는 노브고로드 공화국의 공물 징수자들이 뒤따랐고, 콜라반도는 점차 노브고로드의 영토가 되었다.[27] 1265년 야로슬라프 야로슬라비치와 노브고로드 간의 조약에는 트레 폴로스트(волость Треru)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1471년까지 작성된 다른 문서에도 언급되어 있다.[27] 13세기에서 15세기 노브고로드 문서에는 트레 외에도 콜로 폴로스트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킬딘 섬과 투리이 곶(투리이 반도) 사이의 선을 따라 트레와 경계를 이루었다.[27] 콜로 폴로스트는 그 선의 서쪽에, 트레는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27]13세기가 되자 노브고로드 공화국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사이의 국경을 공식화할 필요성이 분명해졌다.[29] 노브고로드인들은 남쪽에서 온 카렐인들과 함께 현재 페첸스키 군과 바랑게르 피오르 연안의 야곱 강 부근(현재 노르웨이 지역) 해안에 도달했다.[29] 사미족 인구는 공물을 바치도록 강요받았다.[29] 노르웨이인들 또한 이 지역을 장악하려고 시도했고,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29] 1251년, 카렐인, 노브고로드인, 그리고 노르웨이 국왕의 신하들 사이의 갈등으로 노르웨이에 노브고로드 사절단이 파견되었다.[29] 같은 해, 사미족 지역과 공물 징수 체계에 관한 첫 번째 노르웨이와의 조약이 노브고로드에서 체결되어, 사미족은 노브고로드와 노르웨이 모두에게 공물을 바치게 되었다.[29] 조약 조항에 따라 노브고로드인들은 서쪽의 링겐 피오르드까지 사미족에게서 공물을 징수할 수 있었고, 노르웨이인들은 테르스키 해안 동부를 제외한 콜라 반도 전체 영토에서 공물을 징수할 수 있었다.[29] 1251년 조약으로는 국가 간 경계가 설정되지 않았다.[29]
이 조약은 짧은 평화 기간을 가져왔지만, 그 후 곧 무력 충돌이 재개되었다.[29] 연대기에는 1271년 이후로 14세기까지 노브고로드인과 카렐인이 핀마르크와 노르웨이 북부를 공격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29] 노브고로드 영토와 스웨덴 및 노르웨이 영토 사이의 공식적인 국경은 1323년 8월 12일 뇌테보르그 조약에 의해 설정되었다.[29] 이 조약은 주로 카렐리아 지협 국경과 라도가 호 북쪽 국경에 초점을 맞추었다.[29]
북부 국경 문제를 다룬 또 다른 조약은 1326년 노르웨이와 체결된 노브고로드 조약으로, 핀마르크에서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노르웨이-노브고로드 국경 분쟁을 종식시켰다.[30] 이 조약에 따라 노르웨이는 콜라 반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30] 이 조약은 노르웨이와 노브고로드 모두에게 공물을 바치는 사미족의 상황을 다루지 않았고, 이 관행은 1602년까지 계속되었다.[30] 1326년 조약은 국경을 상세히 정의하지 않았지만, 1323년 국경 획정을 확인했고, 이는 1920년까지 약 60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30]
15세기에 노브고로드인들은 반도에 영구 정착지를 세우기 시작했다.[30] 노브고로드인들의 최초의 기록된 영구 정착지인 움바와 바르주가는 14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30] 시간이 지남에 따라 피얄리차 강 서쪽의 모든 해안 지역이 정착되었고, 인구가 대부분 노브고로드인인 지역이 생겨났다.[30] 행정적으로 이 지역은 바르주즈스카야 폴로스트와 움브스카야 폴로스트로 나뉘었고, 북부 드비나 지역 출신의 포사드니크가 통치했다.[30] 노브고로드 공화국은 1471년 셸론 전투 이후 모스크바 대공국에 이 두 폴로스트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고,[30] 공화국 자체는 1478년 이반 3세가 노브고로드를 점령하면서 멸망했다. 콜라 반도에 있는 지역을 포함한 모든 노브고로드 영토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일부가 되었다.[30]
3. 3. 러시아 정착
16세기에도 러시아인들의 반도 이주는 계속되어, 칸달락샤(Kandalaksha)와 포랴구바(Porya-Guba)와 같은 새로운 정착지가 건설되었다.[30] 1565년에는 콜라가 처음 언급되었다.[30] 15세기 말, 폼모르인들과 사미인들은 대부분 수도원에 의해 농노 상태로 강제되었다.[25] 수도원의 ''보치나''는 17세기에 크게 확장되었지만, 1764년에 콜라 반도의 모든 농민들이 국가 농민이 되면서 폐지되었다.[25]16세기 후반, 덴마크-노르웨이의 프리드리히 2세 국왕은 러시아 차르국에 반도를 할양할 것을 요구했다.[30] 러시아는 이를 거절하고, 적절한 방어를 위해 보예보다 직책을 설립했다.[31] 보예보다는 콜라에 자리 잡았고, 이곳은 지역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31] 그 이전에는 칸달락샤의 세금 징수원들이 행정 업무를 수행했다.[31] 새로 설립된 콜스키 우예즈드(Kolsky Uyezd)는 바르주시스카야와 움브스카야 폴로스트(Volosts)가 드빈스키 우예즈드(Dvinsky Uyezd)에 속했던 것을 제외하고, 반도의 대부분 지역과 렌데리(Lendery)까지 카렐리야 북부 지역을 포함했다.[31]
경제 활동에도 불구하고, 반도의 영구적인 정착은 1860년대까지 활성화되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1917년까지 산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28] 예를 들어, 1582년에는 콜라에 300가구, 1,900명이 거주했지만, 1880년에는 80가구에 약 500명만이 거주했다. 교통 시설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고, 러시아 다른 지역과의 소통은 불규칙적이었다. 1887년에는 고향의 순록 질병 전염병을 피해 반도로 이주한 이즈마 코미(Izhma Komi)와 네네츠족(Nenets people)이 유입되어 방목지 경쟁이 심화되고, 코미족과 사미족 간의 갈등이 발생하여 현지 사미족 인구가 소외되었다.[32] 19세기 말까지 사미족 인구는 대부분 북쪽으로 밀려났고, 러시아인들은 반도 남쪽에 정착했다.[32]
1894년, 러시아 재무장관 세르게이 비테(Sergei Witte)가 반도를 방문하여 이 지역의 경제적 잠재력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결과, 1896년에 콜라에 전화와 전신 통신이 확장되어 본토와의 연결이 개선되었다. 철도 건설 가능성도 고려되었지만, 당시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같은 해, 알렉산드로프스크(현재 폴랴르니)가 설립되어 급속도로 성장하여 1899년에 도시 지위를 부여받았고, 이때 콜스키 우예즈드는 알렉산드로프스키 우예즈드로 개명되었다.[33]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 동안, 발전이 미흡했던 반도는 발트해와 흑해를 통한 러시아와 연합국 간의 소통이 끊기면서 갑자기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영국은 연합군의 군수품을 동부 전선으로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실용적인 수단으로 무르만 해안의 결빙되지 않는 항구 개발을 지원했다.[34] 1915년 3월, 철도 건설이 서둘러 진행되어 1916년에 부분적으로만 완공되고 부실하게 건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철도가 개통되었다. 1916년, 새로운 철도의 종착역으로 로마노프-나-무르마네(무르만의 로마노프: 현재 무르만스크(Murmansk))가 설립되었다.[33] 이 도시는 빠르게 성장하여 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3. 4. 소비에트 시대와 현대
소련의 지배는 1917년 10월 26일(율리우스력 11월 9일) 콜라반도에 확립되었지만, 1918년 3월부터 1920년 3월까지는 러시아의 종전 동맹국 세력이 이 지역을 점령했다.[35] 1921년 6월, 알렉산드로프스키군(Alexandrovsky Uyezd)은 소비에트 정부에 의해 무르만스크 주(Murmansk Governorate)로 개편되었다.[36] 1927년 8월 1일,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VTsIK)는 "레닌그라드 주 설립에 관한 결의"와 "레닌그라드 주의 구역 경계와 구성에 관한 결의"라는 두 개의 결의안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라 무르만스크 주는 6개 지역으로 나뉜 무르만스크 구(Murmansk Okrug)로 개편되어 레닌그라드 주에 포함되었다.[36] 1938년 5월 28일, 구(okrug)는 레닌그라드 주에서 분리되어 카렐리야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칸달락샤 구(Kandalakshsky District)와 합병되어 현대의 무르만스크주로 개편되었다.[37]소비에트 시대에 인구는 크게 증가했지만(1913년 15,000명에서 1989년 1,150,000명), 대부분은 철도와 해안을 따라 위치한 도시 지역에 집중되었다.[28] 도시화된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은 사슴 방목에 사용되었다. 이 지역에는 콜라 초심도 시추공(Kola Superdeep Borehole)이 있다.[28]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콜라반도에는 키롭스크와 여러 노동 정착촌이 세워졌다.[35]
사미족은 강제적인 집단화를 당했고, 1928년부터 1930년 사이에 사슴 떼의 절반 이상이 집단화되었다.[32] 또한, 전통적인 사미족의 방목 관행은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 되는 코미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대체되었는데, 이 방식은 자유로운 방목보다 영구적인 정착촌을 강조했다.[32] 사미 문화는 방목 관행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사미족은 점차 언어와 전통적인 방목 지식을 잃게 되었다.[32] 대부분의 사미족은 로보제로 마을에 정착하도록 강요받았는데, 이곳은 러시아 사미족의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32] 집단화에 저항한 사미족은 강제 노역이나 사형을 당했다.[32] 스탈린이 1953년 사망할 때까지 사미족에 대한 여러 형태의 탄압은 계속되었다.[32] 1990년대에는 사미족의 40%가 도시 지역에 살았지만,[32] 일부는 여전히 이 지역 대부분에서 사슴을 방목했다.
사미족만 탄압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수천 명이 콜라반도로 강제 이주되었고, 2007년에는 강제 이주된 사람들의 후손 2,000명 이상이 여전히 콜라반도에 살고 있다.[38] 콜라반도로 강제 이주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남부 러시아의 농민들로, 농민 몰락을 당했다.[39] 새로운 공장 건설에는 죄수 노동이 자주 사용되었고,[40] 운영 중인 공장에도 죄수 노동이 투입되었다. 예를 들어 1940년에는 세베로니켈 제련 광업 단지 전체가 NKVD 체제에 넘겨졌다.[41]
4. 인구
1800년대까지 콜라반도는 인구 밀도가 매우 낮아 1858년에는 5,200명에 불과했다. 1868년 러시아 정부는 정착을 위한 유인책을 만들었고, 러시아인뿐만 아니라 핀란드인, 노르웨이인, 카렐인도 반도로 이주했다. 1897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콜라군(uyezd)에는 9,291명이 거주했으며, 그중 63%가 러시아인, 19%가 사미인, 11%가 핀란드인, 3%가 카렐인이었다.[42]
1913년에는 약 13,000~15,000명이 주로 해안가에 거주했다.[28][43] 하지만, 풍부한 천연자원 매장량의 발견과 산업화 노력으로 소비에트 시대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43] 1970년에는 반도 인구가 약 799,000명에 달했다.[28]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인 1990년대에는 이러한 추세가 역전되었다.[40] 무르만스크주 전체 인구는 1989년 1,150,000명[44]에서 2002년 890,000명[45], 2010년 795,000명으로 감소했다.[46]
20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인구는 주로 러시아인(89.0%), 우크라이나인(4.8%), 벨라루스인(1.7%)으로 구성되었다.[46] 그 외 주목할 만한 집단으로는 코미인(약 1,600명), 사미인(약 1,600명), 카렐인(약 1,400명)이 있다.[46] 토착 사미인들은 주로 로보제르스키군에 집중되어 있다.[19]
5. 경제
콜라반도는 최근 빙하기로 인해 토양 상층부의 퇴적물이 제거되어[2] 지표면에 다양한 광물 자원이 풍부하게 분포한다. 주요 광물로는 아파타이트(인회석)와 네펠라이트(하석), 구리, 니켈, 철광석, 운모, 규선석, 세라믹 원료,[7] 희토류 원소 및 비철금속 광석 등이 있다.[3] 화강암, 규암, 석회암과 같은 건축 자재도 풍부하며,[7] 호수 근처에는 규조토 매장량이 많아 단열재 생산에 활용된다.[7]
15~16세기 콜라 반도 주민들의 주요 산업은 대서양 연어잡이, 바다표범 사냥, 해수 소금 채취였다.[25] 특히 칸달락샤와 콜라의 소금 채취는 페첸가와 솔로브키 수도원에서 주로 이루어졌으며, 오랫동안 반도 유일의 "산업"이었다.[47] 16세기 중반에는 북쪽 무르만 해안에서 대서양 대구잡이가 발달했고,[25] 1560년대에는 국제 무역이 활발해져 러시아와 서유럽 상인들이 반도에서 교역했다.[25] 1585년 무역 중심지는 아르한겔로 옮겨졌지만, 콜라 정착지는 여전히 지역 생산품 거래 중심지로 남았다.[25]
17세기에는 카마 강 지역의 저렴한 소금 유입으로 소금 채취 산업이 쇠퇴했고,[25] 광범위한 밀렵으로 진주 채취 생산량도 감소했다.[25] 상업적 사슴 방목이 성장했지만, 19세기까지 경제적 비중은 크지 않았다.[25] 17세기 말에는 반도 북부에 계절별 어업 및 사냥 정착촌이 일반화되었다.[28]
표트르 대제는 콜라 반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산업과 상업을 장려했지만, 17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 후 해상 무역이 이동하면서 쇠퇴했다. 1732년 칸달락샤 만 메드베지 섬에서 대규모 은 매장지가, 포노이 강 하류에서 구리, 은, 금 매장지가 발견되었으나,[47]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47] 18세기 말에는 노르웨이에서 이탄 생산 기술을 도입해 난방에 활용했고,[47] 19세기 말에는 코브다와 움바를 중심으로 목재 산업이 발전했다.[25]
소련 시대에는 급격한 산업화와 군사화가 진행되었다. 1925~1926년 히비니 산맥에서 대규모 아파타이트(인회석) 매장지가 발견되어,[47] 1929년 첫 아파타이트가 선적되었다.[47] 1930년에는 몬차 지역에서 황화물, 1932~1933년 이오나 강 상류에서 철광석, 1935년 아프리칸다 지역에서 티타늄 광석 매장지가 발견되었다.[47] 1930년대에는 순록 떼를 콜호즈(집단 농장)에 집중시키는 집단화가 이루어졌고, 이후 대규모 국영 농장으로 통합되었다.[48] 이는 목축업자들을 군사 시설에서 격리하고 수력 발전소 건설을 위한 조치였다.[48]
20세기 초까지 어업 생산량은 미미했지만,[49] 1920~1930년대 무르만스크 트롤 선단이 만들어지고 어업 인프라가 개발되면서 크게 성장했다.[49] 냉전 시기 콜라 반도는 소련 해군과 공군 전략 부대의 해군 기지 지역으로, 북부 노르웨이에 대한 방어와 위협을 제공했다.[50] 러시아 해군의 ELF 송신기 ZEVS도 이곳에 위치한다.
5. 1. 역사적 배경
기원전 7~5천년에 인간이 콜라반도 북쪽에 정착했지만, 기원전 3천년까지는 남쪽에서 여러 민족이 이주해 오기 전까지 다른 지역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서기 1천년까지는 사미족만이 이 지역에 남았다. 12세기에 러시아 포모르족이 반도의 풍부한 사냥감과 어류 자원을 발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곧이어 포모르족 뒤를 노브고로드 공화국의 공물 수집가들이 따랐고, 콜라반도는 점차 노브고로드 땅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노브고로드는 15세기까지 영구적인 정착지를 건설하지 않았다.[25]소련 시대(1917~1991)에 콜라반도는 급격한 인구 증가를 겪었지만,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은 대부분 해안과 철도를 따라 도시화된 지역에 국한되었다. 사미족은 강제 집단화를 겪었다. 콜라반도는 전략적 위치와 1920년대에 발견된 방대한 인회석 퇴적물 때문에 산업화, 군사화되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경제는 쇠퇴했다. 인구는 1989년 1,150,000명에서 2010년 795,000명으로 감소했다. 콜라반도는 21세기 초반에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며, 북부 러시아에서 가장 산업적으로 발전되고 도시화된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5. 2. 현대 경제
1990년대 경제 침체 이후, 무르만스크주(Murmansk Oblast)의 경제는 2000년대 첫 10년 동안 회복세를 보였지만, 러시아 평균보다는 낮은 수준이었다.[19] 현재 콜라 반도는 러시아 북부에서 가장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지역이다.[22] 반도의 주요 항구는 무르만스크주의 행정 중심지[53]이자 겨울에도 얼지 않는 무르만스크(Murmansk) 항이다.
냉전 이후 콜라 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은 감소했지만,[50] 여전히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 원자로 및 시설이 집중되어 있으며, 원자로 수만 해도 세계 어느 지역보다 많다.[18]
무르만스크주의 경제 기반은 광업이며, 아파티티(Apatity), 키로프스크(Kirovsk, Murmansk Oblast), 자폴랴르니(Zapolyarny, Murmansk Oblast), 니켈(Nikel), 몬체고르스크(Monchegorsk) 등의 소도시에서 광산 기업들이 주요 고용주이다.[54] 노릴스크 니켈(Norilsk Nickel)의 자회사인 콜라 광산 및 제련 회사는 반도에서 니켈(nickel)-, 구리(copper)-, 백금족 금속(platinum-group-metals)-광산 작업을 수행한다.[55] 다른 대규모 광산 회사로는 유럽 최대의 인산염(phosphate) 생산업체인 주식회사(OAO) 아파티트(Apatit), 러시아 최대의 철광석(iron ore) 농축물 생산업체 중 하나인 주식회사(OAO) 올콘(Olcon), 광산 및 가공 기업인 주식회사(OAO) 코브도르스키 고크(Kovdorsky GOK)가 있다.[54]

수산업은 소련 시대 생산량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지만,[19] 여전히 수익성이 있으며, 2006년 러시아 어획량의 20%를 공급했고,[49]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생산량이 꾸준히 증가했다.[56] 무르만스크는 러시아 최대 어선단인 무르만스크 트롤 어선단을 포함한 3개의 어선단의 주요 기지이다.[50] 연어와 송어 등의 양식업은 성장하는 산업이다.[50]
에너지 부문은 폴랴르니예 조리(Polyarnye Zori) 근처의 콜라 원자력 발전소(Kola Nuclear Power Plant)가 전체 에너지의 약 절반을 생산하고, 나머지 절반은 17개의 수력 발전(hydroelectric)소와 2개의 화력 발전소(thermal power station) 네트워크가 생산한다.[57] 총 발전량의 약 20%에 해당하는 에너지 잉여분은 러시아 통합 에너지 시스템(unified energy system of Russia)에 전달되고, 유럽 전력 송전 시스템 운영자 네트워크(European Network of Transmission System Operators for Electricity)의 노르딕(NORDEL) 시스템을 통해 노르웨이와 핀란드로 수출된다.[57]
무르만스크주의 경제가 대부분 수출 중심이기 때문에 교통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지역 총생산(Gross Regional Product)의 11%를 차지한다.[59] 콜라 반도의 교통망에는 선박 운송(ship transport), 항공 운송(air transport), 자동차 운송, 전철화된 대중교통, 그리고 주로 무르만스크주의 다른 지역을 통과하는 철도 접근이 포함된다.[59] 무르만스크는 북해 항로(Northern Sea Route)의 중요한 항구이다.[59] 가장 큰 공항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로의 국제선을 운항하는 무르만스크 공항(Murmansk Airport)과 아파티티 남동쪽에 위치한 군민 합동 키로프스크-아파티티 공항(Kirovsk-Apatity Airport)이다.[59]
5. 3. 교통
무르만스크주의 경제는 대부분 수출 중심이기 때문에 교통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지역 총생산(Gross Regional Product)의 11%를 차지한다.[59] 콜라 반도의 교통망에는 선박 운송(ship transport), 항공 운송(air transport), 자동차 운송, 전철화된 대중교통, 그리고 주로 무르만스크주의 다른 지역을 통과하는 철도 접근이 포함된다.[59] 무르만스크는 북해 항로(Northern Sea Route)의 중요한 항구이다.[59] 가장 큰 공항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로의 국제선을 운항하는 무르만스크 공항(Murmansk Airport)과 아파티티 남동쪽 15km에 위치한 군민 합동 키로프스크-아파티티 공항(Kirovsk-Apatity Airport)이다.[59]6. 한국과의 관계 (별도 추가)
(주어진 원본 소스가 없으므로, 섹션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참조
[1]
문서
2021 Census of Russian Federation
[2]
서적
1971 Atlas of Murmansk Oblast
[3]
웹사이트
Кольский полуостров
http://bse.sci-lib.c[...]
2020-06-22
[4]
서적
Bartold
[5]
웹사이트
Физико-географическая статистика России (Physical and geographical statistics of Russia) - Yudychvumchorr
https://web.archive.[...]
2014-01-28
[6]
서적
2007 Atlas of Murmansk Oblast
[7]
서적
1971 Atlas of Murmansk Oblast
[8]
문서
Field
[9]
웹사이트
Climate of Murmansk
http://www.pogodaikl[...]
2019-11-03
[10]
웹사이트
Kola Peninsula tundra
[11]
서적
1971 Atlas of Murmansk Oblast
[12]
웹사이트
Report of the Nordic sub-Group on Research Priorities for ASCOBANS, Charlottenlund
http://www.ascobans.[...]
2001-02-14
[13]
웹사이트
Seals
https://www.nature.s[...]
2019-05-01
[14]
웹사이트
Harp seals harping on in Greenland
https://oceanwide-ex[...]
2019-05-01
[15]
서적
Richmond
[16]
웹사이트
Overview
http://kandalaksha-r[...]
2011-07-26
[17]
서적
Tersky District
[18]
서적
Avenhaus et al
[19]
웹사이트
«Стратегия социально-экономического развития Мурманской области до 2020 года и на период до 2025 года» (Socioeconomic Development Strategy of Murmansk Oblast Until 2020 and for the Period Until 2025)
http://economics.gov[...]
2012-08-10
[20]
뉴스
Nuclear waste removal starts in Andreeva Bay
https://thebarentsob[...]
2017-05-18
[21]
뉴스
Russia's Last Cold War-Era Reactor Lifted Onshore in the Arctic
https://www.themosco[...]
2019-08-20
[22]
서적
Rigina
[23]
웹사이트
Strategy
https://www.nornicke[...]
2018-03-05
[24]
웹사이트
Nornickel to clean up its act
https://www.miningma[...]
2020-02-26
[25]
서적
1971 Atlas of Murmansk Oblast
[26]
웹사이트
Paleoanthropology and paleogenetics: MAE RAS collections research finding and further study potential
http://arctic-arc.ru[...]
2017-11-23
[27]
서적
Administrative-Territorial Divisions of Murmansk Oblast
[28]
서적
1971 Atlas of Murmansk Oblast
[29]
서적
Administrative-Territorial Divisions of Murmansk Oblast
[30]
서적
Administrative-Territorial Divisions of Murmansk Oblast
[31]
서적
Administrative-Territorial Divisions of Murmansk Oblast
[32]
서적
Robinson & Kassam
[33]
서적
Administrative-Territorial Divisions of Murmansk Oblast
[34]
서적
Churchill's Secret War With Lenin: British and Commonwealth Military Intervention in the Russian Civil War, 1918–20
https://books.google[...]
Helion and Company
2024-07-15
[35]
서적
1971 Atlas of Murmansk Oblast
[36]
문서
Administrative-Territorial Divisions of Murmansk Oblast
[37]
법령
Decree of May 28, 1938
1938-05-28
[38]
뉴스
A Monument to the Victims of Political Repressions Is Planned to Open in Murmansk by October 30
http://nw.rian.ru/so[...]
RIA Novosti
2007-09-26
[39]
웹사이트
Kola Krai in 1920–1939
http://kolaenc.gov-m[...]
[40]
문서
Richmond
[41]
문서
Ivanova
[42]
논문
Ethnogeographic metamorphosis of East Karelia during the 20th century CSABA HORVÁTH
http://www.grotius.h[...]
2019-03-05
[43]
문서
Kozlov et al.
[44]
참고자료
1989Census
[45]
참고자료
2002Census
[46]
참고자료
2010Census
[47]
문서
Natural Resources of the Kola Peninsula
[48]
문서
Costlow & Nelson
[49]
웹사이트
Fishing Industry
http://kolaenc.gov-m[...]
[50]
웹사이트
Murmansk Oblast
http://www.globalsec[...]
[51]
웹사이트
The Sandbaggers Set 1 - IGN
https://www.ign.com/[...]
2002-08-22
[52]
웹사이트
The Last Front of the Cold War - 93.11
https://www.theatlan[...]
2020-12-19
[53]
법령
Charter of Murmansk Oblast, Article 8.1
[54]
웹사이트
Mining Industry
http://kolaenc.gov-m[...]
[55]
웹사이트
About Norilsk Nickel
http://www.nornik.ru[...]
[56]
웹사이트
Fishing industry of Murmansk Oblast
http://economics.gov[...]
[57]
웹사이트
Energy Sector
http://kolaenc.gov-m[...]
[58]
웹사이트
Overview of the Economy
http://kolaenc.gov-m[...]
[59]
웹사이트
Transportation, Communications, Trade, Customs
http://kolaenc.gov-m[...]
[60]
웹사이트
Laplandskiy Biosphere Reserve, Russian Federation
https://en.unesco.or[...]
2019-04-2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