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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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허자는 남중(南仲)이라는 자(字)를 가진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김안국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523년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승문원 박사, 홍문관 수찬 등을 거쳐 이조 정랑을 지냈으나, 김안로가 실각한 후 외직으로 나가 양근군수 등을 역임했다. 이후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병조참지를 거쳐 형조참판, 예조판서, 한성부 판윤 등을 역임했다.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위사공신에 책록되었지만,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유배되어 사망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증손 허목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 《동애유고》가 있다.
허자는 허준의 친척으로, 김종직의 제자인 김안국에게서 배웠다.[1] 1516년(중종 11) 생원이 되고, 1523년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승문원 박사, 홍문관 수찬 등을 거쳐 사가독서를 했고, 홍문관 응교, 사간원 사간, 이조 정랑 등을 역임했다.[1]
2. 생애
1534년 외척 김안로가 집권하자 외직으로 나가 군수, 목사 등을 지냈다. 1537년 김안로 일파가 실각한 후 동부승지, 병조참지 등 내직으로 복귀했다. 본래 사림파였으나, 관직 생활 중 문정왕후의 측근인 윤원형 편에 섰다.[1]
1538년 이후 이조참의, 충청도 관찰사, 형조 참판, 동지사 등을 역임했다. 1542년 명나라에서 귀국 후 예조판서, 사헌부 대사헌 등을 지냈다. 1543년 한성부 판윤, 형조판서를 거쳐 의정부 우참찬이 되었다. 1545년(인종 1) 공조판서를 거쳐 호조판서가 되었다.[1]
1545년 을사사화 때 대사헌으로서 윤원형, 이기 등과 함께 윤임 일파 등을 제거하는 데 가담하여 위사공신 1등에 오르고 양천군에 봉해졌다. 이후 의정부좌참찬 겸 동지경연사를 거쳐 의정부우찬성에 올랐다.[1]
1547년 좌찬성이 되었으나, 윤원형의 일파로 활동하다 이기 등 강경파와 대립하여 판중추부사로 좌천되었다. 1549년 이조판서가 되었다.[1]
이듬해 의정부좌찬성에 이르렀으나, 대윤 일파의 신원을 주장하다 유배당한 민제인의 동생 민제영을 당진현감으로 임명하는 데 동의했다가 이기[1]의 심복 등의 탄핵을 받고 홍원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병사했다.
사후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에 안장되었다. 윤원형, 이기 등이 몰락하면서 관작이 복구되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아들 허강이 그의 유작 《역대사감 歷代史鑑》을 완성했다.[2]
2. 1. 초기 생애
자는 남중(南仲), 호는 동애(東崖)이다. 허준의 친척으로, 허비(許扉)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합천군수 허훈(許薰)이고, 아버지는 의영고영(義盈庫令) 증 좌찬성 허원(許瑗)이며, 어머니 김씨는 김수온(金粹溫)의 딸이다. 할아버지 허훈(許薰)의 동생 허지(許芝)는 어의 허준의 증조할아버지가 된다.[1]
김종직의 제자인 김안국(金安國)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1]
2. 2. 관료 생활
1516년(중종 11) 생원이 되고, 1523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25년 저작이 되고, 1526년 승문원 박사·홍문관 수찬을 역임한 뒤 사가독서하였다. 1531년 부교리가 되고, 이후 홍문관 응교(應敎)·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검상(檢詳)·홍문관 전한(典翰) 등을 역임한 뒤 이조 정랑(吏曹正郞)이 되었으나, 1534년 외척 김안로(金安老)가 집권하자 외직으로 나가 양근군수·황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537년 김안로 일파가 실각당하자 내직으로 돌아와 동부승지를 거쳐 병조참지에 올랐다. 본래 사림파 인사였으나 외조부 김수온은 세조 때의 공신이었고, 그도 관직생활 중 문정왕후의 측근인 윤원형의 편에 붙게 된다.
1538년 이조참의를 거쳐 1539년 충청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형조 참판으로 내직에 복직한다. 1541년 형조 참판으로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1542년 초 귀국하였다. 이후 예조판서, 사헌부 대사헌을 거쳐 다시 예조판서가 되었다. 1543년 한성부 판윤, 형조판서, 이듬해 의정부 우참찬(議政府右參贊)이 되고, 1545년(인종 1)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어 공조판서가 되었다. 1545년 인종이 갑자기 죽고 명종이 즉위하자 호조판서로 전임되었다.
2. 3. 을사사화와 정치적 부침
1545년(을사사화) 대사헌이 되어 윤원형, 이기 등과 함께 소윤으로서 대윤인 윤임 일파와 유관, 유인숙 등을 제거하는 데 가담, 위사공신 1등으로 양천군에 봉해졌다.[1] 이후 의정부좌참찬 겸 동지경연사를 거쳐 의정부우찬성에 올랐다.[1]
1547년 좌찬성에 올랐으나 윤원형의 일파로 활동하다가 이기 등 강경파와 대립하여 그들의 미움을 받아 한직인 판중추부사로 좌천되었다. 1549년 이조판서가 되었다.[1]
2. 4. 유배와 최후
이듬해 의정부좌찬성에 이르렀으나, 대윤 일파의 신원(伸寃)을 주장하다 유배당한 민제인의 동생 민제영을 당진현감으로 임명하는 데 동의했다가 이기[1]의 심복인 언관 진복창, 이무강 등과 그들의 영향을 받은 양사의 탄핵과 공격을 받고 홍원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병을 얻어 죽었다.
2. 5. 사후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에 안장되었다. 뒤에 윤원형, 이기 등이 몰락하면서 홍문관에서 그의 무죄를 상주하자 명종이 관작을 복구시키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에 추증하였다.
그의 아들 허강이 그의 유작 《역대사감 歷代史鑑》을 완성시켰다.[2] 그의 손자 허교는 효행으로 김명원의 추천을 받아 관직에 올라 포천 현감에 이르렀고, 그의 증손 허목은 이황과 조식의 문인인 정구의 제자가 되어 성리학과 실학의 대가이자 예송논쟁 당시 남인의 영수가 되었다.
3. 가계
관계 이름 비고 부인 광산 김씨 부인 전주 이씨 양녕대군의 증손 징파수(澄波守) 종엄(終嚴)의 딸 아들 허강 며느리 진주 강씨 손자 허교(許僑) 손부 나주 임씨 임제의 딸 증손 허목(許穆) 호는 미수, 1595년 - 1682년 손자 허양(許亮) 증손 허후(許厚) 호는 관설 첩 이름 미상 서자 허첨(許檐) 서자 허난(許欄)
4. 저술
5. 기타
참조
[1]
문서
율곡 이이의 재종조부
[2]
웹인용
허강: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http://people.aks.ac[...]
201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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