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그룹의 반란
1. 개요
바그너 그룹의 반란은 2023년 6월,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끄는 러시아 민간군사기업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 국방부의 부패와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 방식을 비판하며 무장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국방부의 바그너 그룹 해체 시도에 반발하여 병력을 이끌고 로스토프나도누를 점령한 후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했으나,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의 중재로 협상이 이루어져 반란을 중단했다. 이후 프리고진은 벨라루스로 이동하고, 바그너 그룹은 해체 수순을 밟았으며, 러시아 정부는 바그너 그룹의 무기를 회수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했다. 이 사건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권위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평가되며, 러시아 국내 정치 및 군사 체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 분쟁 명칭 | 와그너 그룹 반란 |
|---|---|
| 일부 | 와그너 그룹-국방부 충돌 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일부 |
| 날짜 | 2023년 6월 23일 - 2023년 6월 24일 (1일간) |
| 장소 | 러시아 |
| 결과 | 와그너 용병들이 약 23시간 만에 진격을 멈추고 현지 시간 오후 11시에 철수 시작 |
| 교전 세력 1 | |
|---|---|
| 교전 세력 2 | 러시아 |
| 교전 세력 2 상세 | 러시아 국방부 러시아군 러시아 연방보안국 러시아 국가근위대 카디로프치 |
| 지휘관 1 | |
|---|---|
| 지휘관 2 | 블라디미르 푸틴 세르게이 쇼이구 발레리 게라시모프 빅토르 졸로토프 람잔 카디로프 |
| 병력 1 | 8,000–25,000명 |
|---|---|
| 병력 2 | 불명 |
| 손실 1 | 2명 사망, 여러 명 부상, 차량 5대 파괴 |
|---|---|
| 손실 1 상세 | 사망자: 와그너 그룹으로 전향한 러시아 군인 2명 파괴 차량: UAZ-23632-148-64 2대, AMN-590951 1대, Kamaz 6x6 1대, Ural-4320 1대 |
| 손실 2 | 13–29명 사망, 1–6대의 헬리콥터 격추, Il-22M 공중 지휘 통제기 격추, 차량 2대 노획 |
| 손실 2 상세 | 격추된 헬리콥터: 1–6대 격추된 항공기: Il-22M 노획 차량: Tigr 1대, Kamaz-435029 1대 |
| 추가 정보 1 | 프리고진은 푸틴의 군 지도자들이 러시아인에 대한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고 비난함. 푸틴은 와그너 그룹 수장을 '반역'으로 규정하고 '무력화'하겠다고 맹세함. 와그너 수장은 러시아 당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함. 프리고진은 '러시아 피를 흘리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성명을 발표함. 프리고진은 러시아를 떠나 벨라루스로 향할 것으로 알려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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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쿠데타 -
1993년 러시아 헌정위기
1993년 러시아 헌정 위기는 소련 붕괴 후 옐친 대통령과 최고 소비에트 간 권력 투쟁 심화로 발생, 옐친의 경제 개혁 반발과 대통령 권한 축소 시도에 따른 최고 소비에트 해산 및 무력 충돌로 이어져 옐친이 정국을 장악하고 대통령 중심제를 확립한 사건이다. -
우크라이나 군대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1978년 우크라이나 출생으로 코미디 배우 출신이며, 201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친서방 외교 노선을 추구하다가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이후 자국 방어에 헌신했다. -
우크라이나 군대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22년 2월 24일 시작되어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책과 NATO 가입 시도에 반발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 공격을 개시한 사건이며, 우크라이나의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국제 사회는 러시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전쟁은 장기화되고 있다. -
러시아의 전쟁 및 분쟁에 관한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1978년 우크라이나 출생으로 코미디 배우 출신이며, 201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친서방 외교 노선을 추구하다가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이후 자국 방어에 헌신했다. -
러시아의 전쟁 및 분쟁에 관한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22년 2월 24일 시작되어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책과 NATO 가입 시도에 반발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 공격을 개시한 사건이며, 우크라이나의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국제 사회는 러시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전쟁은 장기화되고 있다.
2. 배경
바그너 그룹의 반란은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러시아 국방부 및 군 수뇌부 간의 오랜 갈등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격화되면서 발생했다. 프리고진은 특히 국방부 장관 세르게이 쇼이구와 총참모장 발레리 게라시모프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해왔다.
2023년 6월 23일(모스크바 시간), 프리고진은 러시아 국방부 상층부가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을 "꾸며낸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며, 푸틴 정권이 내세운 "특수 군사 작전"의 목표인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비나치화" 자체를 부정했다. 그는 "러시아군 상층부가 초래하는 악을 막고 정의를 회복하기로 결심했다. 수만 명의 러시아군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자들은 처벌받을 것이다. 저항하는 자들은 파괴할 것이다. 이것은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정의의 행진이다"라고 선언했다. 또한 6월 24일 새벽, 바그너 부대가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로 진입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러시아 최고검찰청은 치안 기관인 연방보안청(FSB)이 프리고진을 무장 반란 선동 혐의로 입건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2.1. 바그너 그룹과 예브게니 프리고진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 10년간의 수감 생활 후 사업가로 활동을 시작한 프리고진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여러 레스토랑을 성공시키며 명성을 얻었다. 이를 통해 당시 시정에 참여하고 있던 푸틴과 관계를 맺게 되었고, 점차 푸틴의 신뢰받는 측근이자 가까운 조력자로 자리매김했다.
2014년, 프리고진은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인 바그너 그룹을 설립했다. 러시아 법상 민간군사기업은 불법이지만,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정부의 암묵적인 지원과 자금 아래에서 활동했다. 많은 분석가들은 러시아 정부가 바그너 그룹을 이용하여 부인 가능성을 확보하고, 해외 군사 개입에 따른 실제 사상자 수와 재정적 비용을 은폐하려 했다고 본다.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의 외교 및 군사 정책 도구로서 돈바스 분쟁, 시리아 내전, 말리, 리비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등 여러 분쟁 지역에서 활동하며 강력한 전투 부대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바그너 그룹은 잔혹한 전술과 전쟁 범죄 연루로 악명을 얻었으며, 특히 아프리카, 중동,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처벌 없이 잔혹 행위를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여러 아프리카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반군과의 전투를 지원하는 대가로 해당 국가의 천연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면서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의 영향력은 급격히 커졌다. 서방 정보기관에 따르면 바그너 그룹 병력은 2017-2018년 수천 명 수준에서 2023년 1월에는 5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러시아군이 초기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큰 손실을 입었음에도 푸틴 대통령이 동원령 발표를 미루면서, 러시아 정부는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용병 모집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프리고진은 상당한 자원과 함께 러시아 내 죄수들을 바그너 그룹에 모병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로써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법이나 정규군 지휘 체계 밖에 있는 프리고진의 사병 집단처럼 변모했다.
그러나 프리고진의 영향력 확대는 러시아 러시아 국방부 및 러시아 대통령부와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러시아 언론 메두자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이미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부터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시리아 내전 당시 "낡은 방식"으로 작전을 수행했다고 비판하는 등 국방부와 마찰을 빚어왔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바그너 그룹의 역할이 커지자, 국방부와 총참모부는 프리고진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며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에 프리고진은 국방부, 특히 쇼이구 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거친 표현을 사용하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는 바흐무트 전투 당시 국방부가 탄약 공급 약속을 지키지 않아 바그너 용병들이 희생되었다고 주장하며 쇼이구와 게라시모프를 직접 비난했고, 심지어 바흐무트 전선에서 러시아 정규군 여단이 도주했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2023년 6월 5일에는 체포된 러시아군 중령이 술에 취해 바그너 그룹을 향해 발포했다고 자백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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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2023년 6월 더욱 격화되었다. 6월 10일, 러시아 국방부는 바그너 그룹을 포함한 모든 '자원 부대'에 7월 1일까지 국방부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사실상 바그너 그룹을 국방부 통제 하에 두어 프리고진의 독자적인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조치였다. 프리고진은 다음 날인 11일, 쇼이구 장관과는 어떤 계약도 맺지 않겠다며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6월 13일, 푸틴 대통령이 국방부의 명령을 지지하면서 프리고진은 더욱 고립되는 듯 보였다. 일부 분석가들은 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킬 경우 푸틴이 결국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고 믿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2.2.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간 중 갈등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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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4년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인 바그너 그룹을 설립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의 영향력은 급격히 커졌다. 서방 정보기관에 따르면 바그너 그룹 소속원은 2017-2018년 수천 명 수준에서 2023년 1월에는 5만 명 이상으로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러시아 독립 언론 메두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프리고진이 러시아 지도부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러시아 국방부 및 러시아 대통령부 양측과 충돌했다고 보도했다. 프리고진은 국방부 장관 세르게이 쇼이구가 시리아 내전 개입 당시 구식 방식으로 작전을 수행했다고 비판했으며, 쇼이구는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군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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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단기간에 점령하려던 초기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침공 첫 달 동안 러시아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푸틴은 동원령 선포를 오랫동안 미뤘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투에 투입할 용병 모집에 나섰고, 프리고진은 항공기를 포함한 상당한 자원과 함께 러시아 내 죄수들을 바그너 그룹 용병으로 모집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로써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법과 정규군 지휘 체계 밖에 있는 프리고진의 사병 집단으로 변모했다. 이에 러시아 국방부와 총참모부는 불만을 품고 프리고진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국방부를 거친 표현으로 공개 비난하기 시작했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국방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SNS 등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특히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주요 비판 대상으로 삼았다. 2023년 5월, 프리고진은 바흐무트 전투 당시 국방부가 약속한 탄약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아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희생되었다고 주장하며 쇼이구와 게라시모프를 맹비난했다. 그는 탄약 공급을 꺼리는 군 고위 관료들을 '행복한 노인들'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2023년 5월 9일 전승기념일 행사에서 푸틴이 전쟁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과 달리, 프리고진은 "우리는 아직 1밀리미터의 승리도 거두지 못했다"고 반박하며 러시아 정규군 여단이 바흐무트 전선에서 도주했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적군인 우크라이나군을 칭찬하는 모습까지 보이며 러시아 군 수뇌부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여갔다.
2023년 5월 말, 프리고진은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전쟁에서 계속 실패할 경우 새로운 혁명이 일어날 수 있으며 군인들의 봉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6월 5일에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체포된 러시아군 대령이 술에 취해 바그너 그룹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렸다고 자백했다는 내용의 영상을 공개했다.
갈등은 2023년 6월 중순 최고조에 달했다. 6월 10일, 러시아 국방부는 바그너 그룹을 포함한 모든 비정규 전투 부대에게 7월 1일까지 국방부와 계약을 체결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바그너 그룹을 정규군 지휘 체계 아래 두어 프리고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조치였다. 러시아 독립 언론 메두자는 이 조치가 프리고진의 바그너 그룹 장악력을 약화시키고 아프리카 등지에서의 수익 활동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프리고진은 다음 날인 11일, 쇼이구와는 어떤 계약도 맺지 않겠다며 명령 거부 의사를 밝혔고, 국방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그는 쇼이구의 처형을 주장했으며 무능한 관리들에 대한 인민 봉기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프리고진은 자신이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푸틴이 결국 국방부가 아닌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 믿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6월 13일, 푸틴 대통령이 국방부의 계약 명령을 지지하면서 프리고진과 국방부의 갈등은 결정적인 국면에 이르렀다.
2023년 6월 23일(모스크바 시간), 프리고진은 SNS에 게시한 성명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명분이 러시아 국방부 상층부가 "꾸며낸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며, 푸틴 정권이 내세운 "특수 군사 작전"의 목표인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비나치화" 자체를 부정했다. 그는 쇼이구 국방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겨냥하여 "군 수뇌부가 초래하는 악을 막고 정의를 회복하기로 결심했다. 수만 명의 러시아군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자들은 처벌받을 것이다. 저항하는 자들은 파괴할 것이다. 이것은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정의의 행진이다"라고 선언했다. 또한 바그너 부대가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에 진입했다고 밝혔으며 "우리는 전진하고 끝까지 나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러시아 최고검찰청은 연방보안청(FSB)이 프리고진에 대해 무장 반란 선동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2.3. 반란 계획
미국 정보 당국은 바그너 그룹 병력이 반란 준비를 위해 러시아 국경 근처에 점차 집결하고 장비와 자원을 비축하고 있다는 증거를 포착했다. 계획된 반란의 시기와 방법에 대한 정보는 입수했지만, 정확한 실행 시점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서방 정보 당국은 통신 감청과 위성 사진 분석을 통해 이러한 계획을 탐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반란 발생 몇 주 전부터 미국 정보 당국은 대규모 바그너 그룹의 반란 가능성을 예상했으며, 6월 21일 이전에는 임박한 반란의 확실한 증거를 확보했다. 프리고진은 6월 10일 러시아 국방부가 바그너 그룹을 정규군에 통합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이후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외국 정보 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이 반란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며, 프리고진이 6월 23일에 충동적으로 반란을 결정했다는 주장과는 배치된다.
익명의 미국 관리들은 뉴욕 타임스에 세르게이 수로비킨 대장이 반란 계획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수로비킨은 프리고진과 러시아 군 수뇌부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수행했으며, 프리고진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수로비킨을 포함한 30명 이상의 러시아 고위 군 및 정보 당국자가 바그너 그룹의 비밀 VIP 회원 자격을 보유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문서를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다른 러시아 장성들이 반란을 지원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미국 관리들은 프리고진이 러시아 권력 구조 내 특정 세력의 지원에 대한 확신 없이는 반란을 감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방 관리들이 월스트리트 저널에 밝힌 바에 따르면, FSB는 반란 실행 예정일 이틀 전에 계획을 탐지했다. 이 계획의 발각으로 인해 프리고진은 반란을 예정보다 일찍 시작해야 했다. 프리고진의 초기 계획은 우크라이나 접경 러시아 남부 지역을 방문하는 쇼이구 국방장관과 게라시모프 참모총장을 체포하는 것이었다. 서방 관리들은 이 계획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며, 계획 발각으로 프리고진이 대안을 모색해야 했다고 평가했다. 서방 관리들은 정보 분석 결과, 프리고진의 계획은 일부 군 부대가 반란에 동조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했으며, 프리고진이 일부 고위 군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국가근위대 사령관 빅토르 졸로토프는 러시아 당국이 6월 22일부터 25일 사이에 실행될 예정이었던 반란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메두자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하여, 러시아 보안 당국이 "프리고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대통령에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고 보도했다. 문제를 보고하면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 결정의 부담을 피하려 했다는 것이다. 메두자의 소식통에 따르면, 프리고진이 바그너 그룹의 정규군 통합 명령을 피할 수 없게 되자 "무언가 일어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퍼졌지만, 크렘린 관리들은 회의에서 프리고진을 "규칙을 따르지 않는 대담한 기회주의자"로 결론 내리고 무장 반란의 위험성은 무시했다. 따라서 프리고진의 반란 선언을 양보를 얻기 위한 허세로 간주했고, 바그너 그룹이 로스토프나도누를 점령한 후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역시 자신과 푸틴 모두 "이 상황을 놓쳤다"며,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했을 때 저절로 사그라들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인정했다.
모스크바 타임스는 프리고진이 반란을 선포하기 몇 시간 전, 정의로운 러시아 – 진실을 위하여 당수인 세르게이 미로노프가 주최한 국가 두마 원탁토론에 비밀리에 참석할 계획이었다고 보도했다. 이 토론에서 일부 의원들은 크렘린의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을 비판할 예정이었다. 프리고진은 이 자리에서 러시아 군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함으로써 푸틴 대통령의 신임을 되찾으려 했으나, 이 계획은 설명 없이 마지막 순간에 취소되었다.
3. 반란의 전개
2023년 6월 23일,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러시아 국방부가 바그너 후방 캠프를 미사일로 공격했다고 주장하며,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처벌하기 위한 "정의의 행진"을 선언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 자체가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푸틴 정권의 정당성에 도전했다. 이에 러시아 당국은 프리고진을 무장 반란 선동 혐의로 입건했다.
6월 24일 새벽, 바그너 부대는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러시아 남부의 로스토프나도누에 진입하여 별다른 저항 없이 남부군관구 사령부 등 주요 군사 시설을 점령했다. 동시에 다른 바그너 부대는 M4 고속도로를 따라 모스크바를 향해 북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바그너 부대는 보로네시 인근에서 러시아 공군과 교전을 벌였고, 러시아군은 Il-22M 공중 지휘 통제기를 포함한 항공기와 병력 손실을 입었다.
같은 날 오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 연설을 통해 바그너 그룹의 행동을 "반역"이자 "등 뒤의 칼침"으로 규정하고, 반란 진압을 위한 강력한 조치를 천명하며 국가적 단결을 호소했다.
3.1. 프리고진의 반란 선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부터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러시아 국방부 및 러시아 대통령부와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시리아 내전 개입 당시 구식 작전을 고수했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계획 실패 후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의 영향력은 커졌고, 러시아 정부는 용병 모집에 의존하게 되었다. 프리고진은 상당한 자원과 죄수 모병 권한을 부여받아 바그너 그룹을 사실상 사병 조직으로 만들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러시아 국방부 및 총참모부와 프리고진의 갈등은 격화되었고, 프리고진은 거친 언사로 군 수뇌부를 공개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이 탄약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 바그너 용병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직접적으로 비난했다.
2023년 6월 23일, 프리고진은 바그너 그룹과 관련된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러시아 국방부가 용병들의 후방 캠프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이 공격으로 바그너 전투원 2,000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러시아 군 지도부에 대한 보복으로 무력 충돌 시작을 선언했다. 프리고진은 "군 수뇌부가 초래하는 악을 막고 정의를 회복하기로 결심했다. 수만 명의 러시아군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자들은 처벌받을 것이다. 저항하는 자들은 파괴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행동을 "군사 쿠데타가 아니라 정의의 행진"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쇼이구가 저녁 9시경 로스토프나도누에서 도망쳤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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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고진은 또한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 자체가 러시아 엘리트들의 이익을 위한 거짓말이었다고 주장하며, 푸틴 정권의 전쟁 명분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그는 국방부가 우크라이나를 NATO와 공모하여 러시아를 공격하려는 것처럼 묘사해 대중과 대통령을 속였으며, 2022년 2월 24일 이전에 우크라이나 측의 어떠한 공격적 행위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쇼이구 장관과 "올리가르히 세력"이 개인적인 동기로 전쟁을 시작했으며, 러시아군 사상자 수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고 비난했다. 프리고진은 바그너 부대가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 로스토프주에 진입했다고 밝히며 "우리는 전진하고 끝까지 나아갈 것이다. 우리를 막으려는 자들은 파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프리고진이 제시한 캠프 공격 영상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벨링캣의 기자 아리크 톨러는 영상 속 장소가 이전에 다른 영상에 나온 곳과 거의 같다고 지적했으며, 전쟁연구소(ISW)는 영상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고 정보전 목적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러시아 독립 언론 메두자와 노바야 가제타 유럽판 역시 영상이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탄착 흔적이나 사상자 증거 부족 등을 근거로 들었다.
프리고진의 반란 선언에 대해 러시아 국방부는 바그너 캠프 공격 주장을 즉각 부인하며 "정보 도발"이라고 반박했다. 러시아 연방보안청(FSB)과 러시아의 검찰총장은 프리고진에 대해 러시아 형법 제279조(무장 반란 선동) 위반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세르게이 수로비킨 장군과 블라디미르 알렉세예프 중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바그너 그룹에게 적대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러시아 국영 제1채널은 긴급 뉴스를 통해 프리고진의 주장이 거짓이며 푸틴 대통령이 상황을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모스크바와 로스토프나도누 등 주요 도시에는 군과 러시아 국가근위군 병력 및 장갑차가 배치되어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한편, 많은 바그너 그룹 대원들은 프리고진의 반란 계획을 사전에 알지 못해 혼란스러워했으며, 어느 편에 서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3.2. 로스토프나도누 점령
6월 23일부터 24일 밤 사이,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바그너 그룹 부대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부대가 로스토프나도누로 향하고 있으며, 저항하는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프리고진은 또한 러시아 공군 조종사 일부가 민간인 차량 사이를 이동하는 바그너 부대를 공격하라는 러시아군 총참모부의 명령을 거부했다고 주장하며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6월 24일 이른 아침, 바그너 그룹 병력은 별다른 저항 없이 로스토프나도누를 신속하게 점령했다. 이들은 남부군관구 사령부 건물을 포함한 도시의 주요 군사 시설을 장악하고, 사령부 인근 거리에 방어선을 구축했으며 시 중심부에는 지뢰를 매설하고 검문소를 설치했다. 바그너 용병들은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은색 완장을 착용했다.
프리고진은 남부군관구 사령부 안마당에서 유누스벡 예브쿠로프 국방차관과 블라디미르 알렉세예프 참모차장과 회담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공개되었다. 회담에서 예브쿠로프 차관 등은 프리고진에게 병력 철수를 요구했으나, 프리고진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프리고진은 시내 지하 벙커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바그너 부대의 진격을 지휘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스토프나도누 시 당국은 주민들에게 집에 머물 것을 권고했지만, 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와 바그너 병력을 지켜보았다. 일부 시민들은 바그너 병력에게 지지를 표하기도 했으나, 일부는 그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바그너 병력은 시민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이후 안전을 위해 거리에서 물러날 것을 요청했고, 시내에서는 총격과 폭발음이 들리기도 했다. 로스텔레콤 건물이 공격받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고도 있었다. 일부 상점은 영업 시간을 단축했고, 주유소에는 긴 줄이 늘어섰으며, 기차역이 붐비는 등 도시를 떠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한편, 체첸의 카디로프치 병력이 로스토프나도누 외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목격되었으나, 이들이 시내 중심부로 진입하거나 바그너 그룹과 직접 교전을 벌이지는 않았다. 체첸군 사령관은 나중에 일부 부대가 "바그너 병력으로부터 500m~700m 거리"에 있었다고 밝혔다.
3.3. 모스크바로의 진군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로스토프나도누에서 반란을 지휘하는 동안, 바그너 그룹 부대의 차량 행렬은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했다. 탱크, 장갑차, 대공무기, 민간 트럭 등을 갖춘 수천 명의 병력으로 구성된 이 장갑차 대열은 6월 24일 새벽부터 모스크바를 향해 빠르게 북상하기 시작했다. 한 대열은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출발하여 밀레로보 공군기지를 점령한 것으로 알려졌고, 다른 대열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넘어왔다. 차량들은 M4 고속도로를 따라 보로네시주를 가로질러 진격했으며, 거의 저항을 받지 않았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지도부와 가까운 소식통에 따르면, 모스크바로 향하는 차량 행렬에는 바그너 최고 사령관 드미트리 우트킨의 지휘 아래 약 5,000명의 전투원이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 군사 블로거들은 모스크바로 향하는 병력 수가 4,000명이라고 주장했으며, 영국 정보당국은 반란에 참여한 바그너 용병을 (모스크바로 이동하지 않은 병력 포함) 약 8,000명으로 추산했다. 프리고진 자신은 반란군 규모를 25,000명이라고 주장했다. 차량 행렬은 통과하는 도시를 점령하려 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공군 기지를 장악했을 가능성이 있다.
로스토프나도누와 모스크바의 중간 지점인 보로네시 지역 수도 외곽에서 바그너 부대는 러시아 공군 헬리콥터의 공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프리고진은 자신의 부대가 호송대에 발포한 군용 헬리콥터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러시아 공군은 바그너 부대와의 충돌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었으며, 최소 한 대의 헬리콥터와 Il-22M 공중 지휘 통제기가 격추되었다. 영국 국방부는 Il-22M의 손실이 특히 심각하다고 평가했는데,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12대의 항공기 중 하나였으며, 우크라이나군은 전쟁 내내 이 항공기의 격추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교전으로 최소 13명의 러시아 군인이 사망했으며, 제인스는 파괴된 장비 운용에 필요한 인원을 추산하여 사망자 수가 최대 29명에 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소셜 미디어에는 보로네시 시내에서 바그너 부대와 러시아군 간의 전투 장면 영상이 게시되었고, 로이터 통신 등은 바그너 그룹이 보로네시 내의 군사 시설을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바그너의 방공 시스템이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두 발이 보로네시의 유류 저장소와 주택 단지에 떨어지기도 했다.
바그너 부대는 보로네시를 지나쳐 모스크바에서 약 400km 떨어진 리페츠크주로 진입했다. 그들은 예례츠 마을을 지나 M4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진격했다. 이에 러시아 당국은 바그너 부대의 진격을 막기 위해 대응에 나섰다. 리페츠크주에서는 당국이 굴착기를 동원해 고속도로를 파괴했으며, 일부 도로는 트럭과 스쿨버스로 막혔다. 러시아군은 모스크바 남쪽을 흐르는 오카 강을 따라 방어선을 구축하고 다리 통행을 봉쇄했다. 리페츠크주와 보로네시주 주지사는 M4 고속도로를 따라 군 대열과 충돌이 발생했다는 보고에 따라 모든 민간인에게 실내에 머물 것을 촉구했다. 바그너 부대가 모스크바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지점은 모스크바 남쪽 95km 지점의 카시라 마을이라는 보고가 있으나, 시각적으로 확인된 가장 가까운 지점은 모스크바 남쪽 330km 지점인 리페츠크주 북부의 크라스노예였다.
모스크바에서는 세르게이 소뱌닌 시장이 대테러 작전 체제를 선포했다. 시 당국은 월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시민들에게 불필요한 외출 자제를 당부했으며, 시내 곳곳에 장갑차와 증강된 경찰 병력이 배치되었다. 통행금지 조치도 고려되었고, 시내에 설치되었던 바그너 용병 모집 광고판이 서둘러 철거되는 모습도 목격되었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모스크바를 떠나는 모든 항공편이 매진되었다고 보도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용하는 항공기가 모스크바를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는 보도도 나왔으나,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푸틴 대통령이 크렘린에 남아 있었다고 부인했다.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주에도 여행 제한 조치가 발표되었다.
한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바그너 그룹 본부를 급습했다. 러시아 언론은 사무실 인근 차량에서 4 (약 47) 상당의 현금이 든 상자가 발견되었다고 보도했으며, 미국 달러, 권총, 금괴, 정체불명의 흰색 가루 등도 압수되었다. 프리고진은 이 돈이 직원 급여, 전사자 유족 보상 및 기타 회사 경비에 사용될 예정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프리카와 미국 등지에서의 비밀 작전을 암시하며 현금 사용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7월 4일, 압수되었던 현금 10는 프리고진에게 공식적으로 반환되었으나, 금괴와 흰색 가루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FSB가 바그너에 모집된 죄수들의 친척들에게 협박을 가했다는 주장(올가 로마노바)과 영국 정보기관이 러시아 정보기관이 바그너 지도자들의 가족에게 해를 입힐 것이라고 위협한 사실을 확인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프리고진은 이후 바그너와 함께 싸우다 사망한 러시아군 탈영병 두 명에 대해 언급했다. 네덜란드 OSINT 웹사이트 오릭스는 반란군 측에서 파괴된 차량 5대와 정부군 측에서 노획된 차량 2대를 기록했다.
3.4. 푸틴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월 24일, TV 연설을 통해 반란 발생 이후 처음으로 대국민 연설을 했다. 푸틴은 바그너 그룹의 행동을 '반역'이라고 부르며,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엄중한 조치'(소스에서는 '엄격한 조치', '강력한 조치'로도 언급됨)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푸틴은 이 상황이 러시아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벌어진 반란을 '배후중상'(등 뒤의 칼침)이자 '치명적 타격'으로 규정했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 제국이 참전하던 시기에 발생하여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체결과 영토 상실로 이어진 1917년 러시아 혁명과의 역사적 유사성을 언급하며 영토 상실 가능성을 경고했다. 또한 1917년과 1923년 사이에 벌어진 러시아 내전의 '비극'을 인용하기도 했다.
연설에서 푸틴은 예브게니 프리고진이나 바그너 그룹의 이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의 주장은 러시아가 국방부의 잘못된 관리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영토를 잃고 있으며, 국방부에 대한 바그너 그룹의 행동은 러시아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프리고진의 이전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었다. 푸틴은 또한 "속임수나 위협"으로 반란에 참여하게 된 바그너 부대원들에게 호소했다. 푸틴의 연설이 방영된 후 TV 방송국들은 정규 방송으로 돌아갔다.
4. 반란의 해결
반란이 격화되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요청으로 벨라루스의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가 중재에 나섰다. 루카셴코는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직접 대화하며 협상을 진행했다. 프리고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의 해임을 요구했으나, 루카셴코는 푸틴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직접 대화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프리고진은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협상에 동의했다.
프리고진은 모스크바를 약 200km 앞둔 지점에서 진격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음성 메시지를 통해 "러시아인의 피가 흘려지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부대를 되돌려 야전 캠프로 복귀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번 봉기가 바그너 그룹 해체 시도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군사 쿠데타가 아닌 '정의의 행진'이었음을 재차 강조했다.
루카셴코의 중재로 타결된 합의에 따라, 바그너 그룹은 모스크바 진격을 중단하고 점령지에서 철수하는 대신 프리고진과 반란 가담 병사들의 안전을 보장받았다.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프리고진에 대한 형사 입건이 취소될 것이며 그가 벨라루스로 망명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반란에 가담했던 바그너 병사들 역시 기소되지 않으며, 반란에 참여하지 않은 병사들은 러시아 국방부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게 되었다. 바그너 그룹은 기존에 주둔하던 우크라이나 전선 등의 야전 캠프로 복귀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 정부는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다.
합의 발표 후, 6월 24일 오후 11시경(모스크바 시간) 바그너 그룹 부대는 점령했던 로스토프나도누의 남부 군관구 사령부 등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일부 로스토프나도누 시민들은 철수하는 바그너 부대를 향해 환호했고, 프리고진과 악수하는 모습도 보였다. 6월 25일에는 보로네시에서도 철수가 시작되었으며, 이후 바그너 부대는 우크라이나 동부 점령 지역의 기지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5. 반란의 영향 및 여파
반란 과정에서 바그너 그룹은 로스토프나도누와 모스크바 중간 지점에 위치한 보로네시로 진격했다. 소셜미디어에는 바그너 그룹과 러시아군 간의 전투 영상이 게시되었고, 로이터 통신은 러시아 군사 정보 출처를 인용하여 바그너가 보로네시의 군사 시설을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언론들은 바그너가 보로네시의 모든 군사 시설을 점령했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반란 발생 후 첫 TV 연설에서 바그너 그룹의 행동을 "반역"으로 규정하고 진압을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푸틴은 이 사태가 러시아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며,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중에 발생한 "등 뒤의 칼침"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언급하며 영토 상실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는 국방부의 실책으로 러시아가 영토를 잃고 있다는 프리고진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었다.
5.1. 러시아 국내 반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월 24일 긴급 TV 연설을 통해 바그너 그룹의 행동을 '반역'으로 규정하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엄격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푸틴은 이 상황이 러시아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 '배후중상'이자 '치명적 타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러시아 혁명 당시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인한 영토 상실과 러시아 내전의 비극을 언급하며 역사적 유사성을 강조했다. 푸틴은 연설에서 예브게니 프리고진이나 바그너 그룹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속임수나 위협"으로 반란에 가담하게 된 바그너 부대원들에게 호소했다. 이는 국방부의 실책으로 영토를 잃고 있으며, 바그너 그룹의 행동은 상황 개선을 위한 것이라는 프리고진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었다. 푸틴의 연설 이후 TV 방송은 정규 방송으로 돌아갔다. 대통령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푸틴 대통령이 "필요한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프리고진은 자신의 주요 목표가 국방장관 세르게이 쇼이구와 총참모장 발레리 게라시모프의 해임이라고 밝히며, 국방부가 우크라이나에서 그룹을 배신하고 전쟁 중 부패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바그너는 대통령이나 FSB에 복종하기를 거부한다"며 "러시아가 부패와 관료주의에 의해 운영되는 것에 지쳤다"고 응수했다. 러시아 최고검찰청은 FSB가 프리고진에 대해 무장 반란 선동 혐의로 수사를 시작했으며, 유죄 판결 시 12년에서 2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권력층의 주요 인사들은 프리고진을 비난하고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 체첸 공화국 수장 람잔 카디로프는 반란을 '반역'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군대가 "러시아 부대를 보존하고 국가 지위를 방어하기 위해 '긴장 지역'으로 이동 중"이라고 밝혔다.
* 쿠르스크주 주지사 로만 스타로보이트는 프리고진에게 "계획을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 리페츠크주 주지사 이고리 아르타모노프는 주민들에게 자택에 머물고 이동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수반 데니스 푸실린,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수반 레오니드 파세치니크, 러시아 점령하 헤르손주 주지사 블라디미르 살도, 러시아 점령하 자포리자주 주지사 예브게니 발리츠키 등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의 지도자들도 푸틴 지지를 표명했다.
* 러시아 자유민주당 당수 레오니드 슬루츠키는 프리고진을 반역자라고 부르며 내분 방지를 촉구했다.
* 러시아 연방 공산당 사무총장 겐나디 쥬가노프는 프리고진에게 "개인적인 야망을 버리고 조국을 수호하라"고 말했다.
* 러시아 통합당 대표이자 전 대통령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바그너 그룹이 정부를 장악하고 핵무기에 접근하면 "세계가 멸망 직전에 놓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 러시아 국가두마 의장 뱌체슬라프 볼로딘도 푸틴 지지를 표명했다.
*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모스크바와 전 러시아의 총대주교 키릴은 러시아인들에게 푸틴을 위해 기도할 것을 촉구했다.
러시아 내 반정부 세력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 러시아 의용군단 지도자 데니스 카푸스틴은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프리고진을 "러시아의 애국자"라고 칭찬했으며, 나중에는 반란 참여를 촉구했다.
* 망명 중인 전 석유 재벌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는 처음에는 크렘린에 맞서는 프리고진을 "악마라도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지를 촉구했으나, 이후 "프리고진은 우리의 친구도 동맹도 아니다"라며 러시아인들에게 무장할 것을 촉구했다.
* 투옥된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푸틴의 전쟁이 러시아를 파괴하고 있다며 사건과 푸틴의 대응을 비판했고, 정부가 프리고진과 자신 및 반부패재단을 다르게 대우한다고 지적했다.
* 아나르코-공산주의자 전투조직(BOAK)과 자율행동은 성명을 통해 푸틴과 프리고진 모두 지지할 대상이 아니며, 아나키스트들은 거리를 두고 양측이 서로 피를 흘리게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BOAK은 "무장 갈등을 준비하는 데 이 시간을 보내라"고 촉구했다.
* 러시아 자유 군단은 사건을 러시아 혁명에 비유하면서도, 바그너 그룹의 전쟁 범죄를 상기시키며 프리고진에게 군사적 명예를 부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전쟁 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 친전쟁 극우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반란 이후 프리고진 측으로 넘어가려는 움직임과, 반란으로 드러난 안보 취약점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나뉘었다. 이고르 기르킨은 프리고진이 러시아 장교들을 살해했다며 "러시아를 국가로서 보존하기 위해" 그의 처형을 요구했다.
반란 기간 동안 푸틴 정부에 대한 대규모 자발적인 공개 지지 표현은 나타나지 않았다. 러시아 국민들은 대체로 "침묵"하며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 분석가 안나 마트베예바는 이를 2016년 터키 쿠데타 시도 당시 쿠데타 반대 시위에 적극 참여했던 터키 국민들의 반응과 비교했다. 바그너 그룹이 점령했던 로스토프나도누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반란군을 환영하고 편의를 제공하며 환호하는 모습이 영상에 담기기도 했다.
모스크바 소재 여론조사 회사 '러시안 필드'가 7월 3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프리고진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반란 실패 후 며칠 만에 26퍼센트 포인트 하락했지만, 응답자의 29%는 여전히 프리고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러시아의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운데, 러시안 필드가 전화로 접촉한 사람 중 최소 70%가 설문조사 응답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기관의 프리고진 지지율 급락 결과는 러시아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댓글에 대한 별도의 감정 분석 연구 결과와 일치했다.
보로네시 인근에서 러시아 포병 사격으로 인한 폭발이 발생한 후, 러시아 정부의 자멸적인 실수를 가리키는 기존의 인터넷 밈 "보로네시를 폭격하다"가 러시아 소셜 미디어에 다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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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국제 사회의 반응
서방 국가 지도자들은 반란 초기 직접적인 논평을 자제했는데, 이는 푸틴이 서방의 개입이나 음모라고 주장할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와 함께 러시아의 핵무기 통제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은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 영국 총리 리시 수낵과 통화하며 상황을 논의했다. 반란이 끝난 후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이 이번 사태로 인해 "분명히 약화되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국가안보회의(NSC)는 상황을 주시하며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에서는 리시 수낵 총리가 긴급 코브라 회의를 소집했으며, 영국 국방부는 이번 사태가 러시아 정부에 최근 몇 년간 가장 중대한 도전이라고 분석했다. 프랑스 대통령실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반란을 러시아 내부의 혼란과 약점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의 고문 미하일로 포돌랴크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관리들은 이 사태가 러시아의 본질적인 정치적 불안정과 "전면적인 약점"의 증거이며 엘리트 간 내분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트위터를 통해 "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은 국제 사회가 러시아에 대한 "거짓 중립성을 버리고"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몰아낼 수 있도록 모든 무기를 제공할 기회라고 주장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측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의용군단은 프리고진에 대해 "비록 우리는 바리케이드의 반대편에 서 있고 러시아 연방의 미래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를 비꼬거나 어떠한 역설도 없이 러시아의 애국자라고 부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주 러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을 통해 6월 24일 현지 교민들에게 안전 공지를 전달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러시아 주변국들은 안보 불안을 느끼며 경계를 강화했다. 에스토니아는 국경 보안을 강화했고, 라트비아는 러시아와의 국경을 폐쇄하고 러시아 시민의 입국을 중단했다.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는 벨라루스에 바그너 그룹 병력이 주둔할 가능성에 대비해 NATO에 동부 국경 병력 증강을 공동으로 요청했다. 이에 독일 국방장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는 리투아니아에 4,000명 규모의 여단을 영구 주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폴란드는 벨라루스와의 국경에 경찰 및 대테러 부대 500명과 추가 병력 1,000명 및 장비를 배치하며 경계를 강화했다. 조지아에서는 러시아와의 국경 폐쇄 요구가 있었으나, 조지아 내무부는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몰도바 외무장관 니쿠 포페스쿠는 이번 사태가 몰도바가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유럽 연합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벨라루스는 이번 사태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프리고진 사이를 중재하여 유혈 사태를 막았다고 주장했으며, 프리고진을 암살하려는 푸틴을 설득했다고 밝혔다. 벨라루스 국가안보회의는 러시아와의 동맹을 강조하며 이번 사태가 서방에만 이롭다고 주장했고, 한 외무부 관리는 이를 "집단 서방에 대한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벨라루스 반대파 지도자 스베틀라나 티하노프스카야는 반란이 푸틴 정권의 약점을 드러냈다며 "이 순간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칼리노프스키 연대 등 반정부 세력은 벨라루스 군의 불개입과 독립적인 행동을 촉구했다.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평화적 해결을 위한 중재 의사를 밝히며 신중한 행동을 촉구했다. 이란은 이를 러시아 내정 문제로 규정하며 러시아의 법치주의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상황을 계속 주시하겠다며 G7과의 연대를 강조했고,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도 중대한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카자흐스탄의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군사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북한과 중국은 푸틴 정권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으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 세르비아 공화국의 밀로라드 도딕 대통령도 푸틴 지지 의사를 밝혔다.
5.3. 바그너 그룹과 프리고진의 운명
반란 이후, 러시아 당국은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숙청을 진행했다.
6월 26일, 프리고진은 반란을 옹호하는 녹음 성명을 발표하며, 반란의 목적이 바그너 그룹을 구하고 무능한 정부 관리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 전복이 목표가 아니었음을 강조하며, 정규군이 바그너 부대를 포격한 것이 반란의 도화선이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같은 날 푸틴 대통령은 다시 연설하여 반란 주도자들을 비난하고 배신 행위라고 규정했지만, 바그너 전투원 대부분은 애국자이며 "동료 병사들에 대해 은밀히 이용당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정규군 계약을 원치 않는 바그너 대원들은 벨라루스로 이동할 수 있다고 밝혔다.
6월 27일, 러시아 당국은 프리고진과 반란 가담자에 대한 형사 수사를 종결하고 기소를 취하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바그너 그룹의 중장비는 러시아군에 인계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국은 반란군이 "범죄 행위를 직접적으로 저지르는 행위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그가 "얼마 동안" 머물 수 있다고 환영했다.
또한 6월 27일, 푸틴 대통령은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 정부로부터 "전액 지원"받았다고 처음으로 인정하며, 이는 수년간 크렘린의 부인을 뒤집는 발언이었다. 푸틴은 2022년 5월부터 2023년 5월까지 러시아 정부가 바그너 그룹에 86 (당시 환율로 약 940) 이상을 지불했다고 밝혔다. 푸틴의 이러한 인정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등지에서 바그너 그룹 요원이 저지른 잔혹 행위에 대한 러시아의 법적 책임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란 이후 푸틴 정권은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이 통제하던 기업 네트워크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프리고진의 미디어 제국은 해체되었고, 선전 활동은 정부가 장악했으며, 그의 케이터링 사업은 정부 계약을 잃기 시작했다. 군 내부에서도 숙청이 진행되었다. 6월 29일, 군사 블로거 리바르(Rybar)는 국방부 내에서 바그너 관련 "결단력 부족"을 보인 장성들을 대상으로 한 숙청이 진행 중이라고 주장했다. 세르게이 수로비킨 장군은 반란 이후 체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고, 8월 22일 러시아 항공 우주군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었다. 그의 부사령관 안드레이 유딘 중장도 해임되었으며, 유누스벡 예브쿠로프 장군도 공식 석상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7월 5일에는 국영 통신사 타스 사장 세르게이 미하일로프가 2018년 푸틴 재선 캠프 언론 비서였던 안드레이 콘드라쇼프로 교체되었는데, 이는 반란 보도에 대한 크렘린의 불만 때문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7월 21일에는 푸틴과 군 지휘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이고르 기르킨이 극단주의 혐의로 FSB에 구금되었다. 7월 5일, 국영 방송 로시야 1은 프리고진을 반역자라고 부르며 그의 호화 저택과 변장 사진 등을 공개하는 등 비판적인 보도를 내보냈다.
한편, 바그너 그룹의 해외 활동에도 변화가 감지되었다. 시리아에서는 러시아군 지휘부가 바그너 그룹에 대한 단속을 시작하여 통신을 차단하고 러시아 국방부와의 계약을 강요했으며, 거부자는 추방되었다. 아프리카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상반된 보도가 나왔다. 7월 6일 가디언은 비정상적인 이동이 없다고 보도했지만, 같은 날 주네 아프리크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서 600명 이상의 바그너 대원이 철수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실은 이를 정기적인 순환이라고 주장했다. 6월 29일 BBC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내 여러 지역의 바그너 모병 센터는 여전히 국방부가 아닌 바그너 그룹과의 계약을 통해 모병 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다.
7월 12일, 러시아 국방부는 바그너 그룹으로부터 전차, 로켓 발사기 등 2,000여 개의 군사 장비와 2,500톤 이상의 탄약, 2만여 개의 소형 무기를 인계받았다고 발표했다. 7월 13일, 미국 국방부는 바그너 그룹이 더 이상 우크라이나 군사 작전에 의미 있는 수준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7월 14일, 벨라루스 국방부는 바그너 그룹이 벨라루스 오시포비치 인근 군사 훈련장에서 자국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가 국경 경비대는 7월 15일 바그너 그룹의 벨라루스 도착을 확인했으며, 수백 명 규모로 추산되지만 우크라이나에 즉각적인 위협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프리고진의 행방은 한동안 불분명했다. 6월 27일 루카셴코는 그가 벨라루스에 도착했다고 확인했지만, 7월 6일에는 프리고진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은 프리고진이 7월 1일 이후 모스크바에서 푸틴 및 고위 관리들과 바그너 그룹의 운명에 대해 협상했다고 보도했다. 7월 10일, 크렘린은 푸틴이 6월 29일 프리고진을 포함한 바그너 지휘관 35명을 만났다고 공식 확인했다. 이 자리에서 푸틴은 반란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향후 고용 방안을 제시했으며, 프리고진은 푸틴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전해졌다. 푸틴은 이후 인터뷰에서 바그너 그룹을 러시아 군대의 독립 부대로 유지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프리고진이 거절했다고 밝혔으며, 사설 군사 조직에 대한 법률을 언급하며 바그너 그룹이 현재 형태로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7월 19일, 프리고진은 반란 이후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벨라루스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영상에서 그는 부하들에게 연설하며, 바그너 부대가 더 이상 우크라이나에서 싸우지 않고 벨라루스군 훈련과 아프리카 활동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7월 말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2023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관련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3년 8월 23일, 프리고진과 바그너 그룹 공동 창업자 드미트리 우트킨을 포함한 10명이 탑승한 전용기가 모스크바 북서부 트베리주 상공에서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러시아 당국은 프리고진이 승객 명단에 있었다고 확인했으며, 바그너 그룹과 연계된 텔레그램 채널은 해당 항공기가 러시아 방공망에 의해 격추되었다고 주장했다. 미국 국방부 역시 프리고진이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암살설에 무게를 실었다. 러시아 당국은 8월 27일, 잔해에서 수습된 유해에 대한 유전자 분석 결과를 토대로 프리고진을 포함한 탑승자 전원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바그너 센터 앞에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6. 분석
바그너 그룹의 반란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권력 기반과 러시아 사회의 안정성에 대한 중대한 질문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 푸틴의 리더십에 대한 도전과 러시아 엘리트 내부의 균열을 드러냈으며, 군사적으로는 러시아 정규군과 용병 그룹 간의 갈등 및 지휘 체계의 취약성을 노출시켰다. 반란의 파장은 러시아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로 평가된다.
6.1. 정치적 분석
1993년 러시아 헌법 위기 이후 처음 발생한 이 반란은 이후 며칠 동안 푸틴의 23년 장기 집권에 대한 가장 중요한 도전으로 널리 여겨졌다. 여러 언론은 이 반란이 푸틴의 대중적 이미지를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안드레이 콜레즈니코프는 반란이 푸틴의 이미지를 훼손했지만, 러시아 국민들은 프리고진의 기득권에 대한 도전을 신뢰할 만한 대안으로 보지 않았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따라서 그들은 푸틴 정권에 대한 진심 어린 것이든 가짜든 지지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바그너 그룹의 행동을 '반역'이라고 부르며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엄격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하며 반란 시작 이후 처음으로 대국민 연설을 했다. 푸틴은 이 상황이 러시아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반란에 대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배후중상'과 '치명적 타격'으로 규정하며, 러시아 혁명과 유사하다 주장했고 영토 상실에 대해 경고했다. 푸틴은 또한 1917년과 1923년 사이에 벌어진 러시아 내전의 '비극'을 인용했다. 그러나 푸틴은 프리고진이나 바그너 그룹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푸틴의 주장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국방부의 잘못된 관리 때문에 영토를 잃고 있으며, 국방부에 대한 바그너 그룹의 행동은 러시아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프리고진의 이전 주장에 대한 반박이었다.
프리고진은 푸틴의 선언에, 국방부가 우크라이나에서 그룹을 배신하고, 전쟁 중 부패한 계획을 통해 자신을 부유하게 만든 것에 대해 '바그너는 대통령이나 FSB에 복종하기를 거부한다'며 비난했고, "러시아가 부패와 관료주의에 의해 운영되는 것에 지쳤다"고 말하며 응수했다. 프리고진은 자신의 주요 목표가 쇼이구와 참모총장 발레리 게라시모프의 해임이라고 말했다.
일부 분석가에 따르면, 이 반란은 경쟁하는 권력 중심의 지배 연합과 종속적인 "명목상의" 기관의 구조 위에 세워진 푸틴 권력 시스템의 고유한 약점을 드러냈으며, 군사화된 국가와 사회로의 하락에 의해 긴장이 고조되었다. 뉴욕 타임스 분석에 따르면, 이 반란은 안정과 안보의 보장자로 여겨지는 데 의존하는 푸틴의 정통성을 훼손하여 러시아 권력 엘리트들 사이에서 지지의 지속적인 침식을 야기할 수 있다. 러시아의 언론 메두자에 따르면, 이 반란은 프리고진의 급진적인 포퓰리즘적 수사가 러시아 보안 기관들 사이에서 진정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보여주기에 충분히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프리고진의 실패한 반란은 그가 혐오했던 러시아 기득권 내부의 세력들과의 패배하는 권력 투쟁에서 필사적인 최후의 수단으로 묘사되었다. 일부 해설가들에 따르면, 이 반란은 푸틴에 의해 반역자로 낙인찍힌 가해자들에게 비교적 적은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끝났는데, 이는 푸틴의 통치가 도전받을 만큼 약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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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가 근위대 사령관인 빅토르 졸로토프는 반란에서 승리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졸로토프는 와그너 그룹으로부터 수도 모스크바를 방어했다며 공을 세웠고 푸틴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6월 27일, 푸틴은 러시아 국가 근위대가 잠재적인 미래의 봉기를 진압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에서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전차를 포함한 중화기를 장착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타임지에 따르면, 졸로토프의 권한 강화는 푸틴의 반대자들에 대한 숙청의 시작을 의미할 수 있다.
전쟁 연구소는 루카셴코가 반란 해결에서의 역할을 이용하여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영향력과 지렛대를 얻고 있으며, 와그너의 존재를 이용하여 벨라루스 군대의 러시아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6.2. 군사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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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당국자들은 프리고진이 모스크바 점령을 시도했다면 결정적인 패배를 맞았을 것이며, 이것이 그가 결국 협상된 해결책에 동의한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서방 정보 분석에 따르면,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반란은 모스크바에서의 격렬한 충돌로 이어져 수천 명의 사상자를 냈을 수 있다. 한편, 가디언 분석은 이 사건이 쿠데타 시도라기보다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된 충동적인 시위에 가까웠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바그너 부대에 대한 공습은 이들을 저지할 지상 방어 부대가 없었고 모스크바의 방어가 허술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바그너 부대가 오카 강에 급조된 방어선을 돌파하여 모스크바 외곽 순환 도로에 도달하고 수도를 점령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반란 성공에 필수적인 외부 지원 확보에 실패하면서 이는 무의미한 시도가 되었을 수 있다. 전쟁연구소(ISW)는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군 정규군 일부로부터 신속하게 충분한 지원을 얻어 국방부에 충성하는 군대와 무력 충돌을 벌일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다고 평가했다. 프리고진이 공개적으로 강하게 비판했던 국방장관 세르게이 쇼이구와 총참모장 발레리 게라시모프는 이러한 군 내부 갈등의 중심에 있었다.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에 따르면, 미 정보 기관은 러시아 군인들이 상관의 지시를 어기고 바그너 그룹에 합류하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이 당국자는 또한 바그너 그룹이 수행한 작전이 우크라이나 내부와 러시아 영토,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 기지에 배치된 병사 및 장교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뉴욕 타임스가 인터뷰한 미국 및 동맹국 당국자들과 독립 전문가들은 프리고진이 반란 당시 러시아 군의 상당 부분이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ISW는 "반란은 러시아 보안군의 약점을 드러냈고, 푸틴 대통령이 내부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음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그의 폭력 독점력을 더욱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다만, 러시아 군의 직접적인 전투 능력 자체는 반란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CNN에 따르면,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 측에 이번 반란을 이용하여 러시아 영토 내에서 공격을 감행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가 자문한 분석가들은 프리고진이 강하게 비판했고 병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았던 러시아 군 내부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반란 이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군의 사기 저하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내부 분열과 사기 저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 능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으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