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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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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나히타는 고대 이란 종교에서 숭배받던 물의 여신으로, 풍요, 다산, 치유를 상징한다. 아베스타어로는 '아르드비 수라 아나히타'로 불리며, '강력하고 순수한' 물의 여신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아나히타는 세계 강을 의인화한 존재로, 아름다운 처녀의 모습으로 묘사되며, 이슈타르, 아프로디테 등 다른 문화의 여신들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부터 숭배가 시작되어 사산 왕조 시대에 이르러 왕권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융성했으며, 현재 조로아스터교에서도 중요한 신으로 여겨진다.

2. 어원 및 명칭

Arədvī Sūra Anāhītaae라는 이름에서 Arədvīae는 "축축한"이라는 뜻으로, 이 신에게만 특정한 단어이다.[5] sūraae와 anāhītaae는 각각 "강력한", "순수한"을 뜻하는 일반적인 아베스타어 형용사이다.[6][7][8] 이 두 형용사는 하오마,[9] 프라바시와 같은 다른 신이나 신성한 개념의 수식어로도 나타나며, 베다 산스크리트어에서도 확인된다.[10][11]

아반(물의 신)으로서 야자타는 원시 인도-이란 종교 기원을 가지며, 롬멜에 따르면 산스크리트어 ''सरस्वती''와 관련이 있다. 이는 원시 이란어 ''*Harahwatīira''와 마찬가지로 인도-이란어 ''*Saraswatīiir''에서 파생되었다.[5][12][13] 고대 이란어 형태인 ''*Harahwatīira''에서 "그녀의 이름은 강이 풍부한 지역에 주어졌으며, 그 현대 수도는 카불이다(아베스타어 ''Haraxvaitīae'', 고대 페르시아어 ''Hara(h)uvati-peo'', 그리스어 '''')."[5] 데비 사라스바티처럼 [아레드비 수라 아나히타]는 작물과 가축을 키우며, 신이자 그녀가 의인화한 신화 속 강으로 찬양받으며, '이 땅에 흘러나오는 모든 물처럼 크다'."[14]

중세 페르시아어 사산 왕조 및 그 이후 시대의 텍스트에서 Arədvī Sūra Anāhītaae는 ''Ardwisur Anāhīdpal''로 나타난다.[5] 아나히타는 마트 시라 젬랴(젖은 대지의 어머니) 슬라브 신화의 특성과도 유사하다.[16]

하라흐바티 아르드위 수라(Harahvatī Arədvī Sūra)는 "물을 가진 자, 습윤하고 힘있는 자"라고 불렸으며, 인도 신화사라스바티와 같은 기원으로 여겨진다.

페르시아 칠요신에서는 금성신으로 여겨진다.

페르시아 칠요신대응하는 행성·칠요
미트라태양·일요일
마흐·월요일
우르스라그나화성·화요일
티르수성·수요일
아후라 마즈다목성·목요일
아나히타금성·금요일
케이완토성·토요일



아나히타는 대승 불교의 관세음보살의 기원 중 하나로 여겨지며, 페르시아(현 이란)나 박트리아(현 아프가니스탄)에서 대승 불교 발상지인 북서 인도(현 파키스탄)로 전파된 것으로 여겨진다.

3. 신화 속 역할 및 상징

아나히타는 원래 이나 물을 관장하는 물의 여신이다. 세계 중앙에 우뚝 솟은 알부르즈산 꼭대기에서 흘러나오는 강을 수호한다고 여겨지며, 이 강은 모든 수로, 강, 만, 호수의 근원이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아나히타는 널리 이들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숭배받았다.

이 강물이 생명을 육성하는 원천이라고 여겨져 아나히타는 건강, 다산, 순산, 가축의 번식·작물의 풍요를 관장하는 신으로 여겨지며, 재산과 토지의 증대 또한 관장하였다. 그 절대적인 신덕으로 인해, 사산 왕조 페르시아 시대에는 극도로 숭배받았다.

이 여신은 '''하라흐바티 아르드위 수라'''(Harahvatī Arədvī Sūrāfa, "'''물을 가진 자, 습윤하고 힘있는 자'''")라고 불렸다. 이 하라흐바티라는 이름에서, 같은 강의 여신인 인도 신화사라스바티와 같은 기원으로 여겨진다.

또한 페르시아 칠요신에서는 금성신으로 여겨진다.

페르시아 칠요신대응하는 행성·칠요
미트라태양·일요일
마흐·월요일
우르스라그나화성·화요일
티르수성·수요일
아후라 마즈다목성·목요일
아나히타금성·금요일
케이완토성·토요일



아나히타는 대승 불교의 관세음보살의 기원 중 하나로 여겨진다. 페르시아(현 이란)나 박트리아(현 아프가니스탄)에서 대승 불교 발상지인 북서 인도(현 파키스탄)로 전파된 것으로 여겨진다.

아나히타가 조각된 사산 왕조 용기 (4-6세기)


아나히타는 힘차고 흰 피부의 팔을 가졌으며, 네모난 황금 귀걸이와 백 개의 별을 뿌린 황금 을 쓰고, 황금 망토를 걸치고, 목에는 황금 목걸이를 걸고, 허리띠를 높게 조인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페니키아에서는 아스타르테아나트에 해당한다.

고대 그리스·고대 로마의 역사학자들은 아나히타를 아나이티스(’Αναϊ^τις)와 동일시하며, 또한 판테온의 신들 중 한 명으로 여겼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리스에서도 숭배받게 되었고, 아프로디테와도 습합되었다.

리디아에서는 퀴벨레나 아르테미스와 동일시되었다.

소행성 번호 270 아나히타는 이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3. 1. 이슈타르와의 혼합

기원전 4세기경, 아나히타는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이슈타르와 동일시되면서 전쟁의 여신이자 금성을 관장하는 신으로서의 특징을 얻게 되었다.[8] 이러한 혼합은 서부 이란 지역에서 아나히타 신앙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추정된다.[6]

이슈타르와의 혼합을 통해 아나히타는 '여주인'을 의미하는 ''바누''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는데,[23] 이는 중기 페르시아어 비문과 문헌에 나타난다.[24] 바빌로니아에서는 이슈타르와 습합되어, 용모, 의복, 성격, 제례가 바빌로니아적이 되었다.

4. 숭배

아레드비 수라 아나히타는 아베스타어 경전인 《야스나》와 《야슈트》에 등장하는 물의 여신이다. 특히 《야슈트》 5(《아반 야슈트》)는 아나히타에게 바쳐진 찬가로, 보존 상태가 좋고 내용이 길다. 《야스나》 65는 야스나 의식의 절정에서 "물에 바치는 제물"인 아브 조르 의례 때 낭송되는 세 번째 찬가이다.

《아반 야슈트》에서 아나히타는 생명, 가축, 축사를 증진시키고 모든 나라에 번영을 가져다주는 위대한 샘으로 묘사된다.[5] 그녀는 다에바에 대항하고 아후라의 가르침에 헌신하는 강력한 존재이다.[5] 또한 풍요, 남성과 여성의 정화, 신생아의 젖 분비 등과 관련되어 있으며, 물의 신성으로서 땅과 작물의 비옥함에도 관여한다.[5]

아나히타는 아름답고 강인한 처녀의 모습으로 묘사되며, 비버 가죽 옷을 입고 금 장신구를 착용한 왕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5] 그녀는 네 마리 말(바람, 비, 구름, 진눈깨비)이 끄는 전차를 타고 다니며, 자신을 기쁘게 하는 자에게는 풍요를,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엄격함을 보인다.[5]

아나히타는 행운의 여신 아시와도 연관되어 있으며, 《아반 야슈트》의 일부 구절은 아시에게 바쳐진 《야슈트》 17(《아르드 야슈트》)에도 나타난다.[5] 또한 물의 신인 아팜 나팟의 역할도 흡수하여 무술적인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34]

《야슈트》에는 아나히타에 대한 묘사에 불일치가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녀가 입고 있는 비버 코트에 대한 설명에서 유라시아 비버가 코카서스에는 서식하지만 카스피 해 남쪽이나 아랄-카스피 대초원에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된다.[2]

4. 1. 아케메네스 왕조 시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때부터 아나히타 숭배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는 바빌론, 수사, 엑바타나, 박트리아, 페르세폴리스, 다마스쿠스, 사르디스 등 제국의 주요 도시에 아나히타 여신상을 세우고 숭배를 장려했다.[35][36] 그의 비문에는 아후라 마즈다, 아나히타, 미트라가 함께 언급되는데, 이는 이전 시기와는 다른 이례적인 현상이다.[41] 수사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비문에는 "아후라 마즈다, 아나히타, 미트라의 뜻에 따라 이 궁전을 지었다. 아후라 마즈다, 아나히타, 미트라가 나를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소서"(A²Hc 15–10)라고 적혀 있다.

미디아의 엑바타나(하마단)에 있는 아나히타 신전은 한때 매우 영광스러운 성소였다.[35][36] 기원전 209년 안티오코스 3세가 엑바타나를 습격했을 때, 신전 기둥은 금으로 칠해져 있었고, 은색 타일과 금, 은 벽돌이 남아 있었다.[35][36]

플루타르코스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가 그의 첩 아스파시아를 "엑바타나의 디아나 신전, 즉 아나이티스라고 불리는 신전의 여사제로서, 그녀가 남은 생을 엄격한 정숙함 속에서 보낼 수 있도록" 헌정했다고 기록했다.[35][36]

카라쿠스의 이시도르는 엑바타나와 콩코바르(오늘날의 캉가바르)에 아나히타 신전이 있다고 기록했다.[35][36] 캉가바르에는 기원전 2세기 헬레니즘 양식 건물의 잔해가 남아있다.[35][36]

4. 2. 헬레니즘 및 파르티아 시기

헬레니즘 시대에 아나히타는 그리스에서 '아나이티스'라는 이름으로 숭배되었으며, 아프로디테와 동일시되기도 했다.[23] 리디아에서는 퀴벨레나 아르테미스와 동일시되었다.[23] 소아시아와 레반트 지역에서도 아나히타 신앙이 널리 퍼져나갔다. 2세기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히파이파와 히에로카이사레아에서 아나히타 숭배 의식을 직접 목격했다고 기록했다.[23] 스트라보에 따르면, 아나히타는 폰토스의 젤라에서 오마노스와 함께 숭배되었고, 카스타발라에서는 '아르테미스 페라시아'로 불렸다.

카라쿠스의 이시도르는 엑바타나(오늘날의 하마단)의 신전 외에도 콩코바르(오늘날의 캉가바르)에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다고 기록했다.

파르티아 시대에는 엘리마이스(지금의 이란 후제스탄 주)에 아나히타에게 헌정된 신전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43] 스트라보는 엘리마이스에 "''Ta Azara''"라고 알려진 또 다른 신전이 아테나/아르테미스에게 헌정되었고 사나운 사자들이 그 주변을 배회했다고 기록했다.

4. 3. 사산 왕조 시기

나크세-로스타에서 나르세스(293-302년)의 즉위 장면. 사산 왕(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아나히타(오른쪽)에게서 왕권의 반지를 받고 있다.


사산 왕조 시대에 아나히타 숭배는 더욱 융성했으며, 왕권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파르사 (본래의 페르시아)에서 숭배의 중심지는 스타크르(Istakhr)였으며, 이곳에서 아나히타는 무술적인 역할로 계속 숭배받았다.[44] 사산 왕조의 이름을 딴 사산이 이스타크르에 있는 아나히타 신전의 대사제로 섬겼고, 그의 아들 파파크 또한 그 신전의 사제였다.[44] 파파크는 이스타크르의 왕(아르사케스의 봉신)을 전복시키고, 그 자리에 스스로 왕관을 썼다. 아르다시르 1세(226-241년)는 정복한 소왕들의 머리를 아나히타 신전에 전시하기 위해 보냈다.[45]

나크세-로스타의 즉위 장면에서 나르세스(293-302년)는 아나히타로 확인된 여성 신에게서 왕관을 받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나르세스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처럼 아나히타에게 매우 헌신적이었는데, 파이쿨리(현재 이라크 카니킨 근처)의 즉위 비문에서 "오르무즈드와 모든 야자타와 숙녀라고 불리는 아나히드"를 소환한다.[47]

바흐람 1세(272-273년) 통치 기간 동안, 성소 숭배 운동과 거의 동시에 시작된 우상 파괴 운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 특정 신에게 헌정된 성소는 법에 따라 조각상을 제거하고 버려지거나 화재 제단으로 개조되어 그 신과 분리되었다.[46] 메르/미트라에게 헌정된 인기 있는 신전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오늘날 조로아스터교 화재 신전을 가리키는 기술 용어 중 하나인 '다르-에 메르'(미트라의 문)라는 이름을 유지했다. 이스타크르의 신전도 개조되었고, 카르티르 비문에 따르면, 이후 "여신 아나히드의 불"로 알려졌다.[47]

아나히타는 타크-에 보스탄에서 코스로 파르베즈(코스로 2세, 590-628년)의 즉위 장면에서도 인물로 확인되었지만, 이 경우에는 나르세스의 경우만큼 설득력이 있지는 않다.[49] 나크세-로스타와 타크-에 보스탄의 두 암석 조각 외에는 "그 여신을 의심할 여지 없이 나타내는 그림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49]

4. 4. 아르메니아와 캅카스 지역

아르메니아에서는 아나히트(Anahit)라는 이름으로 숭배되었으며, 아라마즈, 바하그와 함께 3대 신으로 여겨졌다.[53] 아르메니아 왕들은 아나히트 신앙의 확고한 지지자였다.[43] 티리다테스 3세는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에 "온 인류의 은인이며, 모든 지식의 어머니이며, 위대한 아라마즈의 딸인 위대한 여인 아나히트"에게 특별한 헌신을 보였다고 전해진다.[53]

아가탄젤로스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왕들은 신의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1년에 한 번 아킬리세네의 에리자(에레즈) 사원으로 여행해야 했다. 티리다테스는 즉위 첫 해에 이 여행을 하여 희생과 화환, 나뭇가지를 바쳤다. 에리자 사원은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존경받는" 곳으로 유명했으며, 사제와 여사제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후자는 저명한 가문 출신으로 결혼하기 전에 사원에서 봉사했다. 플리니우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군인들이 순금으로 만든 신의 거대한 조각상을 부수고 그 조각들을 서로 나누었다고 보고한다. 플리니우스와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아킬리세네는 결국 아나이티카로 알려지게 되었다.

아나히트는 아르메니아 왕국의 수도인 아르타샤트(아르탁사타)에서도 숭배받았는데, 그곳의 사원은 예언의 신인 티우르의 사원과 가까웠다. 바하그 숭배의 중심지인 아스티샤트에서 그녀는 '황금 어머니'라는 뜻의 ''voskimayr''로 숭배받았다. 티리다테스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아나히트 숭배는 비난받았고 신의 상징적 표현은 파괴되었다.[43]

디오 카시우스는 쿠라강을 따라 캅카스 알바니아와 캅카스 이베리아의 경계에 있는 또 다른 지역을 "아나이티스의 땅"이라고 불렀다고 언급한다. 캅카스 알바니아에서 아나히타를 주요 세 신 중 하나로 동일시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는 의문스럽다. 그러나 콜키스의 모스키 영토에서 스트라보는 레우코테아 숭배를 언급하는데, 베젠도르크 등은 이를 아나히타의 유사물로 식별했다.[43] 아나히트 숭배는 중세 조지아 연대기에 언급된 아이니아와 다이나라는 캅카스 이베리아의 쌍둥이 신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54]

5. 현대의 아나히타 신앙

조로아스터교에서 아나히타는 아반(물)의 대표자로서 매우 중요한 신이며, 예배의 주요 행위인 ''야스나''가 향하는 신이다.[55] 오늘날까지 물에 대한 경외심은 조로아스터교인들에게 깊이 스며들어 있으며, 정통 공동체에서는 정기적으로 가정의 우물이나 인근의 시냇물에 공물을 바치고 있다.[55]

이란 야즈드의 조로아스터교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산 사당 중 하나는 '바누-파르스'(페르시아의 여인)에게 헌정된 곳으로, 살아있는 샘과 거대한 물줄기가 합류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56][57]

6. 다른 문화와의 연관성



아나히타는 힘찬, 흰 피부의 팔을 가졌으며, 네모난 황금 귀걸이와 백 개의 별을 뿌린 황금 을 쓰고, 황금 망토를 걸치고, 목에는 황금 목걸이를 걸고, 허리띠를 높게 조인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이슈타르와 습합되었고, 페니키아에서는 아스타르테아나트에 해당한다. 고대 그리스·고대 로마의 역사학자들은 아나히타를 아나이티스(’Αναϊ^τις)와 동일시하며, 판테온의 신들 중 한 명으로 여겼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리스에서 아프로디테와 습합되어 숭배받았고, 리디아에서는 퀴벨레나 아르테미스와 동일시되었다.

소행성 번호 270 아나히타는 이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6. 1. 불교

اردویسور آناهیتا|Arədvī Sūrā Anāhitāfa는 대승 불교의 관세음보살의 기원 중 하나로 여겨진다. 페르시아(현 이란)나 박트리아(현 아프가니스탄)에서 대승 불교 발상지인 북서 인도(현 파키스탄)로 전파된 것으로 여겨진다.

6. 2. 만다야교

일부 만다교 축사는 나나이 또는 나나이아(아나히타의 셈족 형태)의 이름을 언급하며, 과거 만다교도와 아나히타 숭배 사이에 연관성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60]

참조

[1] 서적 미상
[2] 서적 An Introduction to Ancient Iranian Religion: Readings from the Avesta and Achaemenid Inscriptions https://archive.org/[...]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3] 간행물 "Anahita-Sarasvati," Asiatica, Festschrift F. Weller Leipzig
[4] 웹사이트 Anahid http://www.iranicaon[...]
[5] 서적 미상
[6] 서적 미상
[7] 서적 미상
[8] 서적 미상
[9] 서적 미상
[10] 서적 미상
[11] 서적 미상
[12] 서적 미상
[13] 서적 미상
[14] 서적 Ritual, State, and History in South Asia: Essays in Honour of J.C. Heesterman BRILL
[15] 서적 미상
[16] 서적 "ANCIENT SLAVIC RELIGION: A SYNOPSIS" https://doi.org/10.1[...] De Gruyter Mouton, Berlin, Boston
[17] 서적 미상
[18] 서적 미상
[19] 서적 미상
[20] 서적 Papers in Honour of Professor Mary Boyce BR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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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서적 King and Court in Ancient Persia 559 to 331 BCE Edinburgh University Press Ltd.
[23] 서적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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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웹사이트 DB 4.59-67 http://www.avesta.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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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간행물 "Anahita-Sarasvati," Asiatica, Festschrift F. W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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