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예레미야서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예레미야서는 아시리아 제국 멸망 이후 유다 왕국의 멸망과 바빌론 유수 시기를 배경으로, 예언자 예레미야의 활동과 예언을 기록한 성경의 한 권이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죄악을 꾸짖고 회개를 촉구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으며, 거짓 예언자들과의 투쟁, 개인적인 고뇌 등을 묘사한다. 책은 시적인 부분, 산문적인 부분, 전기적인 부분, 열방에 대한 예언, 부록으로 구성되며, 히브리어 성경과 칠십인역 간의 본문 차이, 편집과 저작 문제 등 해석과 관련된 논쟁이 존재한다. 예레미야는 언약과 심판, 회개와 새 언약, 거짓 예언자들과의 투쟁을 주요 주제로 다루며, 현대 사회에도 죄와 심판에 대한 경각심, 회개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70인역 - 동로마 기년법
    동로마 기년법은 동로마 제국에서 창조의 해를 기준으로 연도를 계산하는 기년법으로, 율리우스력과는 다른 월 이름을 사용하며 새해 첫날이 9월 1일에서 1월 1일로 변화하는 특징을 가진다.
  • 70인역 - 에스드라스 2서
    에스드라스 2서는 익명의 유대인에 의해 쓰여진 책으로, 에즈라의 환상과 기독교에 의해 추가된 부분을 포함하며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외경으로 간주된다.
  • 예레미야서 - 바빌론 유수
    기원전 6세기 초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유다 왕국이 멸망하면서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된 바빌론 유수는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 문화에 영향을 받는 동시에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유대교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유대 역사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예레미야서 - 에벳멜렉
    에벳멜렉은 성경에 등장하는 구스 출신 환관으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구해내어 불의에 맞서는 정의로운 인물로 묘사되며, 예레미야서의 핵심 주제인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실천한 사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 네비임 - 이사야서
    이사야서는 기원전 8세기 예언자 이사야의 활동과 그 이후 시대에 기록된 구약성경 예언서로, 유다 왕국의 상황을 반영하며 유일신 신앙, 사회적 정의, 고난받는 종의 모습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되어 기독교 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네비임 - 열왕기
    열왕기는 다윗 왕조의 계승과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를 다루며, 솔로몬의 통치, 엘리야와 엘리사의 활동, 남유다 왕국의 멸망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과 심판을 보여주는 성경의 한 부분이다.
예레미야서
성경 정보
종류구약성경
구분예언서
하위 분류대예언서
명칭
히브리어ספר יִרְמְיָהוּ (세페르 이르므야후)
로마자 표기Sefer Yirməyāhū
그리스어Ἱερεμίας (이에레미아스)
라틴어Ieremias
내용
저자예레미야
기록 시기기원전 626년 ~ 기원전 586년
주요 내용유다의 죄와 심판에 대한 예언
바빌론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
새 언약에 대한 약속
구성
52장
주요 등장인물예레미야
바룩
시드기야
느부갓네살 2세
신학적 의미
주제하나님의 심판과 은혜
중요성유다 백성의 죄에 대한 경고
고난 속에서의 믿음의 중요성 강조
미래에 대한 희망 제시

2. 역사적 배경

예레미야기원전 7세기 말부터 기원전 6세기 초까지 활동했다. 이 시기 유다 왕국아시리아 제국의 쇠퇴와 바빌로니아 제국의 부상이라는 국제 정세 격변 속에서 멸망의 길을 걸었다. 예레미야는 스바냐, 하박국, 다니엘, 에스겔 등과 동시대 인물로, 기원전 627년경부터 기원전 580년까지 예언 활동을 했다. 그는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을 심판했다가 다시 회복시킬 것을 기대하며, 바빌론 침공으로 유다가 몰락한 후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예레미야서에서 야훼 하나님은 인내심이 많고 거룩한 심판을 늦추시며, 너무 늦기 전에 백성들이 회개하도록 촉구하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없을 것이라고 자만하는 자들을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 경고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었다.

예레미야서 36장에는 여호야김 왕 제4년(기원전 605년)에 예레미야가 서기관 바룩에게 말씀을 받아 적게 했는데, 그 두루마리가 왕에 의해 불태워졌기 때문에 다른 두루마리에 다시 기록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18]

2. 1. 유다 왕국의 멸망과 바빌론 유수

요시야 왕이 종교 개혁을 시작했지만, 유다 왕국바빌론의 세력 확장에 맞서 이집트와 바빌론 사이에서 생존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결국 여호야김 왕이 바빌론에 반기를 들었다가 기원전 586년에 멸망당하고 말았다.[18]

예레미야는 유다가 주변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야망 속에서 독립을 유지하려 애쓰던 격동의 시기를 목격했다. 그는 애국주의, 친 바빌론계와 친 이집트계의 갈등,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의 투쟁 등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받았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13년(기원전 627년경)부터 시드기야 왕 11년(기원전 586년) 이후, 즉 "여섯째 달에 예루살렘이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예언 활동을 계속했다. 이 기간 동안 요시야의 종교 개혁, 바빌론의 아시리아 멸망, 이집트의 유다 속국화, 바빌론의 이집트 격파 및 유다의 바빌론 속국화(기원전 605년) 등의 사건이 일어났다. 유다는 두 차례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바빌론에 의해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고 왕과 많은 시민들이 추방당하면서 독립 왕국으로서의 존재를 마감하고 바빌론 유수가 시작되었다.[19][20][21][22]

2. 2. 국제 정세의 변화

아시리아 제국의 멸망 과정에서 다른 제국들 간의 전쟁이 일어났고 그 사이에 유다 왕국도 멸망의 길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갈그미스 전투에서 느부갓네살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이후 페르시아 발흥까지 전 세계는 바벨론의 손아래에 들어가게 되었다.[1]

유다에서는 요시야에 의해서 발견된 율법책을 따라서 개혁을 시작했고, 이집트와 바벨론의 세력 확장의 틈바구니에서 요시야는 이집트의 느고에게 대항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만다.[1] 이때로부터 여러 왕들이 이집트와 바벨론 사이를 오가며 추종하며 살아남기 위한 작전을 벌였으나, 결국 여호야김이 바벨론에 반기를 든 대가로 바벨론에 의해 기원전 586년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1]

예레미야는 유다가 주변 국가들의 제국주의적인 야망의 부활과 결강(결괴) 속에서 자신의 독립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그 격동의 시절을 목도 하였다. 예레미야는 애국주의, 친 바벨론계와 친 이집트계의 갈등,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의 투쟁 등을 생생하게 잘 묘사하고 있으며, 이런 세월 속에서 예레미야 자신이 소명을 받았다.[1]

예레미야서의 배경은 책의 표제에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제13년(기원전 627년경)에 예언자 사명을 시작하여, 유다가 "여섯째 달에 예루살렘이 포로로 잡혀갈 때"인 시드기야 왕 제11년(기원전 586년) 이후까지 계속되었다.[1] 이 기간 동안 요시야는 종교 개혁을 시작했고, 바빌론은 아시리아를 멸망시켰으며, 이집트는 잠시 유다를 속국으로 삼았다. 바빌론은 이집트를 격파하고 유다를 바빌론의 속국으로 만들었으며(기원전 605년), 유다는 반란을 일으켰지만 바빌론에 의해 다시 정복되었고(기원전 597년), 유다는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1]

이 반란이 마지막이었다: 바빌론은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파괴하고, 그 왕과 많은 주요 시민들을 추방함으로써 유다가 독립 또는 준독립 왕국으로서의 존재를 끝내고 바빌론 유수를 시작했다.[1]

3. 예레미야의 생애와 예언 활동

예레미야는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요시야 왕 13년(기원전 627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 활동을 시작했다.[28] 그는 아시리아의 멸망과 바빌로니아의 부흥이라는 서아시아의 정세 변화와 이로 인한 유다 왕국의 멸망, 그리고 망명자들에 의해 강제로 이집트로 끌려간 상황 등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그의 마지막 설교이집트에서 했다.(예레미야 44장)

당시 아시리아 제국의 멸망 과정에서 다른 제국들 간의 전쟁이 일어났고, 그 사이에 유다 왕국도 멸망했다. 갈그미스 전투에서 느부갓네살이 승리한 후 페르시아 발흥 전까지 전 세계는 바빌론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요시야 왕은 율법책에 따라 개혁을 시작했지만, 이집트와 바벨론 사이에서 므깃도 전투에서 느고 2세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후 여러 왕들이 이집트와 바벨론 사이를 오가며 생존을 위한 외교를 펼쳤으나, 결국 여호야김이 바벨론에 반기를 든 대가로 기원전 586년 유다는 멸망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주변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야망 속에서 독립을 유지하려 애쓰는 격동의 시대를 목격했다. 그는 애국주의, 친 바빌론계와 친 이집트계의 갈등,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의 투쟁 등을 묘사하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명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예레미야는 스바니야, 하바꾹, 다니엘, 에제키엘 등과 동시대 인물로, 기원전 627년부터 기원전 580년경까지 활동했다. 그는 요시야 왕 치세 동안에는 비교적 순탄하게 활동했으나, 기원전 609년 요시야 왕 사후 상황이 악화되었다.

예레미야서의 표제는 예레미야가 요시야 통치 13년부터 예루살렘 함락(기원전 587년)까지 40년 동안 활동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레미야서 마지막 장에는 그가 바빌론 임명 유다 총독 게달리야 암살(기원전 582년) 이후에도 이집트에서 활동했음이 나타난다. 이는 표제가 예레미야를 모세와 비교하여 신학적 요점을 만들려는 시도로 보인다.

『열왕기기』 하 22-23장에 따르면, 요시야 왕 18년(기원전 622년)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의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신명기』의 주요 부분인 『원신명기』로 여겨진다. 이 책에 따라 요시야 왕 시대에 예루살렘 외 성소가 폐지되었다(제사 집중).

11장의 "언약의 말씀"은 『원신명기』를 뜻한다. 예레미야는 이 개혁에 호의적이었지만, 제사 집중은 지방 성소 레위인 제사장들의 지위를 위협했기에 아나돗 일족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기원전 609년, 신명기 개혁 추진자 요시야 왕은 이집트 왕 네코에 의해 므깃도에서 살해되었다. 이후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후계자로 선택되었지만, 네코는 그를 퇴위시키고 여호야김을 왕위에 앉혔다(기원전 608년).

신명기 개혁은 예루살렘 성전의 지위를 높였지만,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선택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예루살렘 심판 언급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으나, 예레미야는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보호로 목숨을 건졌다. 사반은 요시야 왕 시대 개혁 추진자 중 한 명이었다.

3. 1. 예레미야의 소명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13년(기원전 627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자가 되었다.[28]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언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1장 5절에서 "열방의 선지자"로 부름 받았지만, 그의 예언 대부분은 유다 왕국예루살렘을 향해 있었다.

3. 2. 예레미야의 예언 활동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죄악을 지적하고, 여호와의 심판을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했다. 그는 거짓 예언자들과 타협하지 않고,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32] 예레미야는 바빌론의 침공과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으며, 70년 동안의 바빌론 유수를 예고했다.

예레미야는 스바니야, 하바꾹, 다니엘, 에제키엘 등과 동시대 인물이었다. 그의 예언 활동은 대략 기원전 627년으로부터 기원전 580년까지였다.[18][19][20][21][22]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치세 동안 순조롭게 활동했으나, 요시야 왕이 이집트의 파라오 느고에 의해 기원전 609년에 죽임을 당한 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주변 국가들의 제국주의적인 야망 속에서 독립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격동의 시대를 목격했다. 그는 애국주의, 친 바빌론계와 친 이집트계의 갈등,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의 투쟁 등을 묘사하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소명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을 불멸의 존재로 여기며 하나님 말씀을 어기던 유다를 향해 야훼의 심판을 40년 동안 선포했고, 그 대가로 박해, 폭력, 격리, 수감 등을 당했다.[32] 그는 율법을 무시하고 를 짓는다면 심판이 있을 것이라며 유다 백성들의 비위를 건드렸기 때문에, 고향인 아나돗에서 위협을 받았다.[33]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거짓 예언자들에 의해 생명을 위협받기도 했으며, 여호야김 왕에게 위협을 느껴 도피했고, 거짓 평화를 외치는 예언자 하나냐에게 모욕을 당하고 웅덩이에 던져지기도 했다. 예레미야는 예언활동 초기로부터 여호야김 왕 4년에 이르기까지의 자신의 모든 예언들을 기록하도록 그의 서기였던 바룩에게 구두로 서술했다.

예레미야서의 배경은 요시야 왕 제13년(기원전 627년경)에 예언자 사명을 시작하여, 유다 왕국가 "여섯째 달에 예루살렘이 포로로 잡혀갈 때"인 시드기야 왕 제11년(기원전 586년) 이후까지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요시야는 종교 개혁을 시작했고, 바빌론은 아시리아를 멸망시켰으며, 이집트는 잠시 유다 왕국을 속국으로 삼았다. 바빌론은 이집트를 격파하고 유다를 바빌론의 속국으로 만들었으며(기원전 605년), 유다는 반란을 일으켰지만 바빌론에 의해 다시 정복되었고(기원전 597년), 유다는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이 마지막이었다. 바빌론은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파괴하고, 그 왕과 많은 주요 시민들을 추방함으로써 유다가 독립 또는 준독립 왕국으로서의 존재를 끝내고 바빌론 유수를 시작했다.

3. 3. 예레미야의 고난

바빌론 침략을 통한 야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강력한 설교 때문에, 예레미야는 심한 박해를 겪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다윗 왕조와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 야훼의 성전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자만했다.[32] 그러나 예레미야는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를 짓는 생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유다 백성들의 비위를 건드렸다. 그는 고향 아나돗에서 위협을 받았고,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심판은 없을 것이라고 거짓 예언을 하며 대중들의 비위를 맞추는 거짓 예언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33] 또한 여호야김 왕에게 위협을 느껴 도피했고, 거짓 평화를 외치는 예언자 하나냐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했으며, 웅덩이에 던져지기도 했다. 예레미야는 예언 활동 초기부터 여호야김 왕 4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모든 예언을 기록하도록 서기관 바룩에게 구술했다.

4. 예레미야서의 구조와 내용

예레미야서는 크게 시적인 부분, 산문적인 부분, 전기적인 부분, 열방에 대한 예언, 그리고 부록으로 나눌 수 있다.


  • 시적인 부분: 주로 1장-25장에 해당하며, 예레미야가 야훼(여호와)의 말씀을 받아 선포한 예언들로 구성된다. 이스라엘의 죄악과 우상 숭배를 질책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 산문적인 부분: 7장의 성전 설교와 같이 예레미야의 설교와 신명기적 역사관을 반영하는 내용이다. 신명기 학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 전기적인 부분: 26장-29장, 32장, 34장-44장에 해당하며, 예레미야의 생애와 관련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바빌로니아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 전후의 사건들을 다룬다.
  • 열방에 대한 예언: 46장-51장에는 이집트, 블레셋, 모압, 암몬, 에돔, 다마스쿠스(시리아), 아라비아, 엘람, 바빌론 등 주변 국가들에 대한 심판이 기록되어 있다.
  • 부록: 52장은 열왕기하의 내용을 다시 서술한 것으로,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보충 설명과 성전 파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1]


예레미야서는 복잡한 편집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내용 배열이 엄격하게 연대순을 따르지는 않는다.

4. 1. 시적인 부분 (1-25장)

예레미야서 1장부터 25장까지는 주로 예레미야의 초기 예언과 심판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시적인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하나님의 심판 선포: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와 하나님의 언약(계약)을 어기는 행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1]
  • 회개 촉구: 예레미야는 백성에게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하지만, 그들의 죄가 너무 깊어 슬퍼한다.[1]
  • 종교 및 정치 지도자 비판: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들과 타락한 왕들을 비판하며, 이들이 백성을 속이고 진실을 외면한다고 질책한다.[1]
  • 거짓 평화에 대한 경고: 예레미야는 거짓 예언자들이 주장하는 거짓 평화와 달리, 바빌론에 의한 70년 포로 생활이 닥칠 것이라고 예언한다.[1]


이러한 메시지 때문에 예레미야는 많은 반대와 고난을 겪었다.[1]

예레미야서의 구조는 복잡하고 긴 편집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1] 1장부터 25장은 예레미야 메시지의 가장 초기이자 핵심 부분으로 여겨진다.[1] 이 부분은 대부분 날짜가 없고 명확한 맥락이 없지만, 예레미야의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1]

25장 13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가 언급되는데, 이 두루마리의 내용이 예레미야서 25장까지의 기본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고 추정된다.[1] 그러나 21장과 같이 시드기야 왕 시대에 대한 언급도 있어, 신명기 학파의 편집을 거쳤다고 여겨진다.[1]

1914년에 S. 모빈켈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예레미야서는 다음과 같이 구분될 수 있다.[1]

  • A - 시문으로 된 예언
  • B - 예레미야에 관한 이야기
  • C - 신명기적인 양식과 매우 유사한 산문의 설교
  • D - 기타


초기 예언은 호세아서의 예언과 매우 흡사하다.[1]

4. 2. 산문적인 부분

예레미야서의 산문 부분은 예레미야의 설교와 상징적 행동, 그리고 신명기적 역사관을 반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7장의 성전 설교는 예루살렘 성전의 불멸성을 맹신하는 유다 백성들의 잘못된 신앙을 비판하는 중요한 내용이다.[32]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했다.[32]

예레미야서에는 책 전체에 걸쳐 비전기적인 산문 구절들이 흩어져 있다. 7장의 성전 설교와 11장 1-17절의 언약 구절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산문 구절들은 판관기부터 열왕기까지의 역사서를 편집한 신명기학파와 유사성을 보인다. 학자들은 이러한 구절들이 예레미야가 직접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말과 행동에 대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신명기 학파는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수 시기에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를 편집하여 이스라엘 역사를 만든 학파 또는 운동이었다. 이들은 예레미야서 제작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25장에는 신명기적 언어가 나타나는데, 신명기 학파는 예언자의 역할을 모세의 율법과 언약에 대한 관심으로 해석했다. 이들은 예레미야를 하나님께 불충실한 행위에 대한 결과를 경고하기 위해 보내진 예언자 계열의 마지막 인물로 보았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회개를 촉구하는 신명기 학파와 달리, 어느 시점부터는 더 이상의 중재가 무의미하며 이스라엘의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판단한 듯하다.

예레미야서 후반부에는 산문 부분이 많이 나타난다. 1914년 S. 모빈켈의 연구 이후, 예레미야서는 다음과 같이 구분되기도 한다.

  • A - 시문으로 된 예언
  • B - 예레미야에 관한 이야기
  • C - 신명기적인 양식과 매우 유사한 산문의 설교
  • D - 기타


이 중 C는 신명기 사가적인 편집자에 의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예레미야 자신의 말을 바꿔 표현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4. 3. 전기적인 부분 (26-45장)

예레미야 26-29장은 예레미야의 생애 관련 자료와 다른 예언자들과의 교류를 다루고 있다. 예레미야 32장, 34-44장은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예루살렘 함락 전후 사건에 초점을 맞추며, 기원전 609년부터 시작되는 예레미야의 활동에 대한 정확한 날짜를 제공한다.[1]

예레미야의 서기관이었던 바룩이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많다. 예레미야 36장에는 여호야김 왕 4년(기원전 605년)에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말씀을 받아 적게 했는데, 그 두루마리가 왕에 의해 불태워졌기 때문에 다른 두루마리에 다시 기록했다는 내용이 있다.[18]

예레미야는 여호와(야훼)를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에 의해 멸망할 것을 예언했다.[19][20][21][22]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달갑지 않은 내용이었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심한 고초를 겪었다.[23][24][25][26]

1914년에 공표된 S. 모빈켈의 연구에 따르면, 예레미야서는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 A - 시문으로 된 예언
  • B - 예레미야에 관한 이야기
  • C - 신명기적인 양식과 매우 유사한 산문의 설교
  • D - 기타


이 중 B 부분이 예레미야에 관한 이야기로, 그의 서기였던 바룩에게 귀속되는 경우가 많지만, 신명기 사가적인 편집이 어느 정도인지는 불분명하다.

4. 4. 열방에 대한 예언 (46-51장)

예레미야서 46장부터 51장까지는 이스라엘 주변의 여러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이집트, 블레셋, 모압, 암몬, 에돔, 다마스쿠스(시리아), 아라비아, 엘람, 바빌론 등 아홉 개 국가가 포함된다.[1] 이 부분은 책의 복잡하고 긴 편집 과정 때문에 구조 파악이 어렵지만, 대체로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루고 있다.[1]

4. 5. 부록 (52장)

52장은 40년에 걸친 예레미야의 심판 선포가 마침내 확증된 사건을 보여준다. 열왕기하 25장, 역대하 36장, 예레미야 39장, 52장[1]에서 반복되는 내용으로, 예루살렘은 포위되고 파괴되었으며 약탈당했다. 지도자들은 죽임을 당했고,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갔다.[27]

5. 예레미야서의 주요 주제

예레미야서는 언약, 심판, 회개, 새 언약, 거짓 예언자와의 투쟁, 예레미야의 고백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 관계를 강조한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만 섬기면 그들을 보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조건적이며 다른 신을 숭배하면 깨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32] 이스라엘 백성을 불성실한 아내와 반항적인 자녀에 비유하며, 그들의 불충실함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32]

회개와 갱신도 언급되지만, 회개를 통해 심판을 막을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31장 32절에서는 깨지지 않을 새 언약을 예견하며,[17] 31장 31-34절은 시내 산 언약을 바탕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새로운 미래를 제시한다.

예레미야는 거짓 평화를 외치는 거짓 예언자들과 투쟁하며,[33]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행위를 비판했다. 예언자 하나냐와의 대결에서 그의 거짓됨을 밝히고 죽음을 예언했다.[33]

예레미야는 메시지에 대한 불만과 신적인 부르심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는 고백을 남겼다.[4] 이는 시편욥기에서도 발견되는 개인적인 탄식의 한 유형이다.[8]

5. 1. 언약과 심판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 관계를 강조하며, 이 언약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만을 섬기는 대가로 그들을 보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32] 하지만 예레미야는 이 언약이 조건적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가 아닌 다른 신을 숭배하는 배교 행위를 통해 언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성실한 아내와 반항적인 자녀에 비유하며, 그들의 불충실함과 반항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고 말한다.[32]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당시 사람들의 믿음과 달리,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40년 동안 야훼의 심판을 선포했고, 그 대가로 박해, 폭력, 격리, 수감 등을 당했다. [32]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무시하고 를 짓는다면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그들의 비위를 건드렸다. 그는 고향 아나돗에서 위협을 받았고,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거짓 예언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33]

신명기 학파는 예레미야서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예레미야를 모세의 율법과 언약에 대한 경고를 이스라엘에게 전달하는 예언자 계열의 마지막 인물로 보았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신명기 학파와 달리, 더 이상의 중재는 무의미하며 이스라엘의 운명은 정해졌다고 결정한 듯하다.

회개와 갱신에 대한 언급도 있지만, 예레미야가 회개를 통해 심판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심판 후에 회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불분명하다. 31장 32절에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와 맺을 새 언약이 깨지지 않을 미래를 예견한다. 31장 31–34절의 "새 언약" 구절은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할 새로운 미래를 제시한다.

예레미야는 신명기 개혁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기원전 609년 요시야 왕이 사망하고 여호야김 왕이 즉위한 후,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의 지위를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고, 백성이 죄를 뉘우치지 않으면 예루살렘도 폐허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5. 2. 회개와 새 언약

예레미야의 예언 설교는 대부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만을 섬기는 대가로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할 것이라는 내용에 기초한다. 예레미야는 이 언약이 조건적이며, 이스라엘이 야훼가 아닌 다른 신을 숭배하는 배교 행위를 하면 깨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성실한 아내와 반항적인 자녀에 비유하며, 그들의 불충실함과 반항 때문에 심판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17]

이와 함께 회개와 갱신에 대한 언급도 있지만, 예레미야가 회개를 통해 심판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심판 후에 회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회복의 주제는 31장 32절에서 가장 강력하게 나타나는데, 이 구절은 이스라엘과 유다와 맺을 새 언약이 깨지지 않을 미래를 예견한다.[17]

31장 31-34절은 "새 언약" 구절의 주제이다. 이 구절은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을 통해 하나님과의 이스라엘의 과거 관계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할 새로운 미래를 예견한다.[17]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새 언약"의 대표자로 이해했는데,[17] 이는 예레미야 31장 31-34절에 근거한다. 이 구절에서 미래의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순종을 보일 것이다.[17]

5. 3. 거짓 예언자들과의 투쟁

예레미야는 거짓 평화를 외치며 백성들을 기만하는 거짓 예언자들과 끊임없이 투쟁했다.[33]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행위를 비판했다. 특히 예레미야 28장에서는 예언자 하나냐와의 대결이 자세히 묘사된다. 하나냐는 빼앗긴 성전 제구의 탈환과 포로 민족의 귀환을 예언하며 거짓 평화를 주장했다.

이에 맞서 예레미야는 과거의 예언자들이 재앙을 예언했던 것을 언급하며(예레미야 28:8), 하나냐의 주장이 거짓임을 지적했다.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멍에를 부수었지만, 예레미야는 다시 나타나 부서진 나무 멍에 대신 쇠 멍에가 열국에 씌워지고, 그 나라들은 바빌로니아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더 나아가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죽음을 예언했고, 실제로 그해 7월에 하나냐는 죽음을 맞이했다.[33]

5. 4. 예레미야의 고백

하인리히 에발트 이후의 학자들은 예레미야서의 여러 구절을 "고백"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4] 이러한 구절들은 책의 첫 부분(1–25장)에 나타나며, 일반적으로 예레미야 11:18–12:6, 15:10–21, 17:14–18, 18:18–23, 그리고 20:7–18로 확인된다.[5][6] 이 다섯 구절에서 예레미야는 자신이 전해야 할 메시지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가 애써 찾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적인 부르심에 대한 확고한 헌신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고백" 중 몇몇에서 예레미야는 주님께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에게 복수해 달라고 기도한다(예: 예레미야 12:3).[7]

예레미야의 "고백"은 개인적인 탄식의 한 유형이다. 이러한 탄식은 시편욥기에서도 발견된다. 과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는 자신의 탄생일을 저주한다(예레미야 20:14–18 및 욥기 3:3–10).[8] 마찬가지로, 예레미야의 외침 "나는 많은 사람들의 속삭임을 듣습니다. 사방에 공포가 있습니다!" [9]시편 31:13과 정확히 일치한다.[10] 그러나 예레미야의 탄식은 그가 야훼로부터 그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부름받았다는 그의 주장을 통해 독특해진다. 이러한 탄식은 "예언자의 신앙, 박해, 그리고 인간 고통에 대한 내면의 갈등을 독특하게 보여준다."

6. 예레미야서의 신학적 의미와 현대적 적용

영남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오택현은 예레미야서의 신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35]


  • 사회적 약자를 외면한 채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셨으므로 심판받지 않는다"라면서 기복신앙과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 교회는 "우리는 야훼를 섬기므로, 교회에 다니므로 안전하다"라며 스스로 성역화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성역화되어버린 교회에 대해 "나의 교회를 도적의 소굴로 만들었다"라며 책망하실 것이다.
  • 갈등 해소를 위해 기도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은 예레미야 시대의 종교 귀족들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다.
  •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 대상은 없다. 교회도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심판받는다. 하나님은 죄를 묵인하는 분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과 실로 성소를 파괴하는 심판으로 유다 백성의 죄를 심판하신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율리우스 슈노어 폰 카롤스펠트가 그린 이 1860년 목판화에는 예레미야의 소명이 묘사되어 있다.

6. 1. 죄와 심판에 대한 경고

여호와의 심판은 없을 것이라며 마음놓고 죄를 짓던 사람들 앞에서 외롭게 외친 심판설교가 예레미야서의 주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라고 해도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경고하는 것이다.[32]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을 불멸의 존재로 여기며 하나님 말씀을 마음놓고 어기던 유다를 향해 있을 야훼의 심판을 40년 동안 충실하게 선포했다. 그 대가로 박해, 폭력, 격리, 수감 등을 당했다. 흔히 예레미야에 대해 유다의 타락과 임박한 운명을 슬퍼한 '눈물의 예언자', '섬세한 여성적인 예언자'라고 해석하는데, 이는 오해이다. 히브리 성서에 나오는 예레미야는 잘못된 성역에 맞선 역동적인 예언자,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 성전을 불멸의 존재로 여기던 잘못된 통념에 성전설교로 도전한 용감한 예언자였다.[32]

다윗 이후로 예루살렘으로 예배를 집중시킨 조치는, 야훼께서 자신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토라는 경건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방법으로 전락했으며, 현상을 유지하는 방책으로 사용되었다. 예레미야는 이 거짓된 지혜를 규탄했다. 그리고 모세에게 주어졌던 신명기적 계약 신앙의 부활을 꾀했다.

바빌론 침략을 통한 야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그의 강력한 설교 내용 때문에, 심한 박해를 겪어야 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다윗 왕조와 맺으셨다는 언약에 근거, 야훼의 성전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자만했는데,[32] 이에 대해 예레미야는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를 짓는 생활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심판이 있을 것이라며 유다 백성들의 비위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향인 아나돗에서 위협을 받았고,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심판은 없다는 거짓 예언을 하면서 대중들의 비위를 맞추는 거짓 예언자들에 의해서 생명을 위협받기도 했으며[33], 여호야김 왕에게 위협을 느껴 도피했고, 거짓 평화를 외치는 예언자인 하나냐에 의해서 공적으로 모욕을 받았으며 웅덩이에 던져지기도 했다. 예레미야는 예언활동 초기로부터 여호야김 왕 4년에 이르기까지의 자신의 모든 예언들을 기록하도록 그의 서기였던 바룩에게 구두로 서술했다.

영남신학대학교 오택현 구약성서 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35]

  • 사회적 약자를 외면한 채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셨으므로 심판받지 않는다"라면서 기복신앙과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 교회는 "우리는 야훼를 섬기므로, 교회에 다니므로 안전하다"라며 스스로 성역화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성역화되어버린 교회에 대해 "나의 교회를 도적의 소굴로 만들었다"라며 책망하실 것이다.
  • 갈등해소를 위해 기도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은 예레미야 시대의 종교 귀족들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다.
  •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 대상은 없다. 교회도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심판받는다. 하나님은 죄를 묵인하는 분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과 실로 성소를 파괴하는 심판으로 유다 백성의 죄를 심판하신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6. 2. 회개와 구원의 메시지

오택현 영남신학대학교[34] 구약학 교수는 예레미야서를 해석하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강조했다.[35]

  • 사회적 약자를 외면한 채 기복신앙과 자아도취에 빠져서는 안 된다.
  • "우리는 야훼를 섬기므로 안전하다"라며 교회를 성역화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성역화된 교회에 대해 "나의 교회를 도적의 소굴로 만들었다"라며 책망하실 것이다.
  • 갈등 해소를 위해 기도해야 할 교회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예레미야 시대의 종교 귀족들과 비슷하다.
  •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 대상은 없다. 교회도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심판받는다. 하나님은 죄를 묵인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과 실로 성소를 파괴하는 심판으로 유다 백성의 죄를 심판하신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레미야 31:31–34에 근거하여 예수를 "새 언약"의 대표자로 이해했다.[17] 이 구절에서 미래의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순종을 보일 것이다. 복음서가 예수님을 박해받는 예언자로 묘사하는 것은 37장–44장에 나오는 예레미야의 고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종의 노래"에도 크게 영향을 받았다.

6. 3. 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쟁

오택현 영남신학대학교[34] 구약학 교수는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예레미야의 투쟁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35]

  • 사회적 약자를 외면한 채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셨으므로 심판받지 않는다"라면서 기복신앙과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 교회는 "우리는 야훼를 섬기므로, 교회에 다니므로 안전하다"라며 스스로 성역화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성역화되어버린 교회에 대해 "나의 교회를 도적의 소굴로 만들었다"라며 책망하실 것이다.
  • 갈등 해소를 위해 기도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은 예레미야 시대의 종교 귀족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는 대상은 없다. 교회도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심판받는다. 하나님은 죄를 묵인하는 분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과 실로 성소를 파괴하는 심판으로 유다 백성의 죄를 심판하신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6. 4. 한국적 상황과의 연관성

예레미야서의 메시지는 일제강점기와 분단, 독재정권 등 역사의 아픔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억압과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정의와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예레미야의 외침은, 한국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일깨운다. 특히 예레미야가 비판했던 거짓 예언자들의 행태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부패한 정치인, 종교 지도자, 언론인 등의 모습과 연결되어,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32]

오택현 영남신학대학교[34] 구약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35]

  • 사회적 약자를 외면한 채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셨으므로 심판받지 않는다"라면서 기복신앙과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 교회는 "우리는 야훼를 섬기므로, 교회에 다니므로 안전하다"라며 스스로 성역화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성역화되어버린 교회에 대해 "나의 교회를 도적의 소굴로 만들었다"라며 책망하실 것이다.
  • 갈등 해소를 위해 기도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은 예레미야 시대의 종교 귀족들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다.
  •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대상은 없다. 교회도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심판받는다. 하나님은 죄를 묵인하는 분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과 실로 성소를 파괴하는 심판으로 유다 백성의 죄를 심판하신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7. 예레미야서의 해석과 관련된 논쟁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 한 사람이 쓴 것인지, 아니면 여러 사람이 함께 편집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예레미야의 진정한 예언은 아마도 1장–25장의 시적 부분에서 찾을 수 있지만, 책 전체는 예레미야의 추종자들(예언자의 동료이자 서기관인 바룩 포함)과 후대의 신명기 학파에 의해 대대적으로 편집되고 추가되었다.[3]

예레미야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가 다시 회복시키실 날을 기대하며 땅을 샀다고 말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바빌론의 침공으로 멸망한 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바룩이 내용을 받아 적었고, 보관한 기록들이 훗날 책으로 엮일 만큼의 권위를 얻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책 전체에 흩어져 있는 시적, 서사적, 전기적 자료는 서로 다른 출처나 집단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3] 예레미야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했다. 바빌론의 몰락을 예상하고, 일부 내용이 이사야서 2부와 일치하는 헬라어 단계에서 이미 전반적인 구조, 표제어(하나님 또는 예레미야의 말씀을 나타내는 문장), 역사적 배경 설정, 자료 배열 등에서 대대적인 수정(편집)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포로기 말(기원전 6세기 후반)에 완료되었을 수 있다. 맛소라 히브리어 버전의 초기 단계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기록되었을 수 있지만, 예레미야서 33장 14-26절[3]은 포로기 이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7. 1. 히브리어 성경과 칠십인역의 차이

예레미야서는 히브리어 성경(마소라 본문)과 칠십인역(그리스어 번역본)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성경보다 약 8분의 1 정도 짧고, 내용의 배열 순서도 다르다.[2] 이러한 차이는 사해 문서에서도 발견되는데,[2] 이는 본문 전달의 중요한 단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칠십인역의 기반이 된 히브리어 본문이 마소라 본문보다 오래되었으며, 마소라 본문이 이 본문이나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판본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2] 짧은 판본은 결국 그리스 정교회에서 정경이 되었고, 더 긴 판본은 유대교와 서방 기독교 교회에서 채택되었다.

칠십인역과 히브리어 성경(마소라 본문)의 장별 대응 관계는 다음과 같다.

칠십인역히브리어 성경 (마소라 본문)
25장 13절까지25장 13절까지
32장25장 나머지 부분
33장-50장26장-43장
51장44장, 45장
52장52장
26장46장
29장47장
31장48장
30장, 25장 14절 이후49장
27장50장
28장51장



사해 문서 발견 이전에는 칠십인역이 그리스어로 번역될 때 단축되었다고 추측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해 문서에 포함된 예레미야서 단편은 칠십인역과 대응하며, 오히려 마소라 본문이 편집과 가필에 의해 길어졌음이 밝혀졌다.

7. 2. 예레미야서의 편집과 저작 문제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 한 사람이 쓴 것인지, 아니면 여러 사람이 함께 편집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예레미야의 진정한 예언은 아마도 1장–25장의 시적 부분에서 찾을 수 있지만, 책 전체는 예레미야의 추종자들(예언자의 동료이자 서기관인 바룩을 포함)과 후대의 신명기 학파에 의해 대대적으로 편집되고 추가되었다.[3]

예레미야서에는 예레미야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가 다시 회복시키실 날을 기대하며 땅을 샀다고 말하는 내용이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바빌론의 침공으로 멸망한 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바룩이 내용을 받아 적었고, 보관한 기록들이 훗날 책으로 엮일 만큼의 권위를 얻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책 전체에 흩어져 있는 시적, 서사적, 전기적 자료는 서로 다른 출처나 집단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3] 예레미야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했다. 바빌론의 몰락을 예상하고, 일부 내용이 이사야서 2부와 일치하는 헬라어 단계에서 이미 전반적인 구조, 표제어(하나님 또는 예레미야의 말씀을 나타내는 문장), 역사적 배경 설정, 자료 배열 등에서 대대적인 수정(편집)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포로기 말(기원전 6세기 후반)에 완료되었을 수 있다. 맛소라 히브리어 버전의 초기 단계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기록되었을 수 있지만, 예레미야서 33장 14-26절[3]은 포로기 이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참조

[1] 성경 열왕기하 24:18–25:30
[2] 서적 The Oxford Handbook of the Prophets Oxford University Press
[3] 성경 예레미야 33:14–26
[4] 서적 Die Propheten des Alten Bundes, II: Jeremja und Hezeqiel mit ihren Zeitgenossen Vandenhoeck & Ruprecht
[5] 성경 예레미야 11:18–12:6, 15:10–21, 17:14–18, 18:18–23, 20:7–18
[6] 웹사이트 The Confessions of Jeremiah in Context https://epdf.tips/qu[...] JSOTSup
[7] 성경 예레미야 12:3
[8] 성경 예레미야 20:14–18, 욥기 3:3–10
[9] 성경 예레미야 20:10
[10] 성경 시편 31:13
[11] 성경 에스겔 4:4–8
[12] 성경 예레미야 13:1–11
[13] 성경 예레미야 16:1–9
[14] 성경 예레미야 19:1–13
[15] 성경 예레미야 32:6–15
[16] 성경 예레미야 35:1–19
[17] 성경 고린도전서 11:25, 히브리서 8:6–13
[18] 문서 エレミヤ書(口語訳)#第36章 s:エレミヤ書(口語訳)#第36章
[19] 문서 エレミヤ書(口語訳)#2:1-5 s:エレミヤ書(口語訳)#2:1
[20] 문서 エレミヤ書(口語訳)#9:7-11 s:エレミヤ書(口語訳)#9:7
[21] 문서 エレミヤ書(口語訳)#11:9-12 s:エレミヤ書(口語訳)#11:9
[22] 문서 エレミヤ書(口語訳)#20:1-6 s:エレミヤ書(口語訳)#20:1
[23] 문서 エレミヤ書(口語訳)#20:1,2 s:エレミヤ書(口語訳)#20:1
[24] 문서 エレミヤ書(口語訳)#26:7-11 s:エレミヤ書(口語訳)#26:7
[25] 문서 エレミヤ書(口語訳)#32:2 s:エレミヤ書(口語訳)#32:2
[26] 문서 エレミヤ書(口語訳)#38:6 s:エレミヤ書(口語訳)#38:6
[27] 문서 エレミヤ書(口語訳)#第52章 s:エレミヤ書(口語訳)#第52章
[28] 문서 エレミヤ書(口語訳)#1:2 s:エレミヤ書(口語訳)#1:2
[29] 성경 예레미야 15:10-21, 17:14-18, 18:18-23, 20:7-18
[30] 문서 예레미야의 이름에 대한 설명
[31] 간행물 구약성서의 숨결_사회의 잘못된 성역에 대한 도전:예레미야 7장 1-15절 대한 기독교서회
[32] 간행물 (위와 같은 책)
[33] 문서 예레미야 5:12,31 새번역 인용
[34] 기관 예장 통합 신학교
[35] 간행물 (위와 같은 책)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