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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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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민의 아편"은 종교가 사회적 고통을 일시적으로 완화하고, 지배계급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비판적 표현이다. 이 표현은 1797년 사드 후작의 저작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1843년 카를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후 레닌, 김일성 등 다양한 인물들이 이 표현을 인용하거나 비판적으로 재해석했으며, 현대에는 스포츠, 연예, 미디어 등 다양한 현상에 비유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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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아편
개념
유형은유
분야사회학, 정치학, 종교학
관련 개념가짜 뉴스, 이상주의, 선전, 대중 조작
기원 및 역사
기원헤겔의 법철학 비판
창시자칼 마르크스
어원인민의 아편
영향 및 해석
영향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 형성
해석고통을 잊게 하는 수단, 사회 구조 유지 도구
비판 및 논쟁
비판종교의 긍정적 기능 간과
논쟁종교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해석 존재

2. 유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표현은 카를 마르크스에 의해 널리 알려졌지만, 그 이전부터 여러 사상가들이 종교나 사회 통제 수단을 아편에 비유하는 표현을 사용했다. 17세기 이후 계몽주의 사상의 확산과 함께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등장했으며, 허버트 오브 처버리, 앤서니 콜린스, 라 메트리, 에르베시우스, 돌바크, 볼테르 등은 종교를 인간이 만든 것이거나 사회 통제를 위한 도구로 보았다.

루소는 1761년 소설 《줄리 또는 신 엘로이즈》에서 종교를 "영혼의 아편과 같은 것"이라 칭하며 양면성을 지적했고[33], 칸트헤르더 역시 종교(운동)를 아편과 유사하게 간주했다.[34] 사드 후작은 1797년 저서에서 통치자가 백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아편"을 사용한다고 비판했으며[35], 노발리스는 1798년 단편집에서 종교가 직접적으로 "아편 역할을 할 뿐"이라고 언급했다.[36][37][38]

이후에도 괴테는 특정 설교집을 "마약적(narkotischde)"이라고 평했으며[39], 프루동은 종교가 "빵처럼 필요하며, 독처럼 치명적"이라고 적었다.[39]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39년 종교와 브랜디를 취하게 하는 약물에 비유했고[40], 하인리히 하이네는 1840년 수필에서 종교를 "정신의 아편"이라 칭했다.[41][42][43][44] 또한 브루노 바우어는 종교를 "아편과 같은 것(opiumartigde)"이라 표현했고[45], 모제스 헤스는 1843년에 종교를 아편이나 증류주와 같은 것으로 언급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카를 마르크스는 1843년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이는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확산과 함께 널리 알려졌다. 마르크스의 발언 이후 영국 성공회 사제 찰스 킹즐리 역시 1848년 《인민을 위한 정치》에서 교회가 성경을 빈민 통제를 위한 "아편"처럼 사용한다고 비판하는 등[55], 유사한 문제의식은 다른 맥락에서도 제기되었다.

레닌이 마르크스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 ‘인민의 아편’이라는 구절은 반종교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2. 1. 사드 후작 (1797)

1797년 사드 후작의 저서 《줄리엣 이야기 - 악덕(惡德)의 번영》(Histoire de Juliette, ou les Prosperites du vice|fra)에서 처음으로 유사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 작품의 5부에서 주인공 줄리엣은 국왕 페르디낭의 통치 방식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페르디낭이 백성들의 무지를 조장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려고 '''"당신이 백성들에게 준 것은 아편(阿片)입니다"'''(C'est de l'opium que tu fais prendre à ton peuple|fra)[52]라고 지적하는 대목이다. 이는 통치자가 백성들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을 아편에 비유한 것이다.

2. 2. 노발리스 (1798)

1798년에 발표된 노발리스의 단편집 《꽃가루》(Blütenstaubde)에는 종교를 아편에 비유하는 구절이 직접적으로 등장한다.[15] 해당 구절은 "당신이 말하는 소위 그 종교라는 것은 단지 아편 역할을 할 뿐"이라며, 종교가 사람들을 매혹하고 마취시켜 나약함에서 오는 고통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53]

독일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Ihre sogenannte Religion wirkt blos, wie ein Opiat: reizend, betäubend, Schmerzen aus Schwäche stillend.de''[53]


이는 "그들의 소위 종교는 단순히 아편처럼 작용하여 자극하고, 무감각하게 만들고, 무력함으로 고통을 잠재운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15]

2. 3. 마르크스 (1843)

카를 마르크스는 1843년에 작성하여 1844년 《독불 연보》(Deutsch-Französische Jahrbücher|de)에 발표한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de) 서문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이 서문은 당시 발행 부수가 1,000부에 불과하여 19세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나,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가 확산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6][31]

마르크스는 해당 서문에서 종교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3][26]

''인간이 종교를 만들지, 종교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아직 자신을 찾지 못했거나 이미 잃어버린 인간의 자기 의식이자 자존감이다. 그러나 ''인간''은 세상 밖에 존재하는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세상'', 즉 국가와 사회 속에 존재한다. 이 국가와 사회가 바로 ''세상의 거울 이미지''인 종교를 생산한다. 종교는 이 세상의 일반 이론, 백과사전적 요약, 대중적 논리, 정신적 명예심(point d'honneur|프랑스어), 열정, 도덕적 제재, 엄숙한 보충, 위로와 정당화의 보편적 기반이다. 그것은 ''인간 본질''의 ''환상적인 실현''인데, 이는 인간 본질이 아직 진정한 현실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투쟁은 간접적으로 그 정신적 ''향기''(aroma|프랑스어)가 종교인 ''그 세상''에 대한 투쟁이다.

''종교적'' 고통은 동시에 실제 고통의 ''표현''이자 실제 고통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며, 냉혹한 세상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조건의 영혼이다. 그것은 인민의 ''아편''이다.인민의 ''환상적인'' 행복으로서의 종교 폐지는 그들의 ''진정한'' 행복에 대한 요구이다. 그들에게 그들의 상황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들에게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 비판은 종교가 ''후광''(halo|영어)인 ''눈물의 골짜기''에 대한 비판의 ''시초''이다.

마르크스는 구조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종교를 분석했다.[27][30][31][28] 그는 종교가 사회적 고통을 일시적으로 완화하고 사람들이 현실의 어려움을 견디도록 돕는 실용적인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이는 마치 아편이 환자의 고통을 잠시 덜어주는 것과 같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32] 마르크스는 종교에 의존하는 프롤레타리아트(노동자 계급)에게 연민을 느꼈지만[28][32], 종교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는 해롭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종교는 내세의 구원을 강조하며 현세의 노동 착취사회 계급 문제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고, 지배 계급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허위 의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라고 보았다.[28] 따라서 종교는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무계급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여겼다.[28]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소외를 극복하면, 종교 역시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28]

마르크스가 "인민의 아편"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당시, 아편은 아편 전쟁(1839-1842)을 통해 유럽 사회에 알려졌고, 의료용 마취제로도 사용되고 있었다.[39] 종교를 아편에 비유하는 표현은 마르크스 이전에도 존재했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1840년 루트비히 뵈르네에 관한 글에서 종교를 "정신의 아편"이라 칭했고[41][42][43][44], 브루노 바우어는 종교를 "아편과 같은 것"(opiumartig|de)이라고 표현했으며[45], 모제스 헤스 역시 1843년에 종교를 아편이나 증류주에 비유했다. 마르크스는 이들과 교류하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2. 4. 찰스 킹즐리 (1848)

카를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성공회의 사제였던 찰스 킹즐리도 비슷한 비유를 사용했다. 킹즐리는 1848년에 발간된 《인민을 위한 정치》(Politics for the people영어)라는 간행물에 기고한 〈인민헌장주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당시 교회가 성경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55] 그는 교회가 성경을 마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고된 노동과 과도한 짐을 불평 없이 견디게 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나 마취제처럼 취급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종교가 가진 본래의 의미보다는 지배 계급의 통치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목소리였다. 킹즐리의 이러한 비판은 종교 내부에서도 종교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자각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3. 마르크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

카를 마르크스는 1843년에 작성하여 1844년 《독불 연보》에 발표한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종교에 대한 유명한 비유를 제시했다.[54] 그는 이 글에서 종교적 고통이 현실 고통의 표현이자 그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고 분석하며, "'''종교는 억압된 피조물의 탄식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고, 영혼 없는 현실의 영혼이다. 이것은 인민(人民)의 아편(阿片)이다.'''"라고 규정했다.[54] 마르크스는 종교가 제공하는 환상적 행복을 버리고 현실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며, 종교 비판은 결국 종교라는 후광에 가려진 현실 세계에 대한 비판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54]

마르크스는 이 구절을 통해 종교, 특히 조직화된 종교에 대한 구조 기능주의적 분석을 시도했다.[5][6][27][30][31][28] 그의 관점에서 종교는 비록 허구일 수 있으나, 현실 사회에서 특정한 기능을 수행한다.[7][32] 마치 아편이 환자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덜어주듯, 종교는 사람들의 즉각적인 고통을 줄여주고 힘든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유쾌한 환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2][7][28][32] 이러한 이유로 마르크스는 종교 자체에는 비판적이었지만, 고통스러운 현실 때문에 종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깊은 연민을 보였다.[2][7][28][32]

하지만 동시에 마르크스는 종교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목표 달성에는 해롭다고 보았다.[2][28] 종교가 내세와 같은 영원한 것에 초점을 맞추게 함으로써, 피억압자들이 현실의 착취와 계급 구조 문제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만든다고 비판했다.[2][28] 이 과정에서 종교는 지배 계급의 이익을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허위 의식을 조장하며,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혁명과 자본주의 철폐, 계급 없는 사회 건설을 방해한다고 분석했다.[2][28]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생산 관계의 모순이 해소되면, 소외가 사라지면서 종교에 대한 필요성 역시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2][28]

마르크스가 이 비유를 사용한 19세기 중반은 아편 전쟁(1839-1842)을 통해 유럽 사회에 아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고, 의료용 마취제로도 사용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39] 마르크스 이전에도 종교를 아편이나 마약에 비유한 사상가들이 있었다. 괴테는 특정 설교집을 "마약적(narkotisch)"이라고 평했으며,[39]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은 종교가 빵처럼 필요하지만 독처럼 치명적이라고 언급했다.[39]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39년 편지에서 종교와 브랜디를 취하게 하는 약물에 비유했고,[40] 하인리히 하이네는 1840년 수필에서 종교를 "정신의 아편"이라고 표현했다.[41][42][43][44] 마르크스는 특히 하이네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으며,[45] 브루노 바우어나 모제스 헤스 역시 종교의 "아편적" 속성을 지적한 바 있다.[45]

마르크스의 이 표현은 193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확산되면서 널리 알려졌지만, 동시에 많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영국의 보수당 총리였던 스탠리 볼드윈은 1937년, 종교를 아편으로 비난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 시민적 자유마저 부정하는 길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46] 철학자 시몬 베유는 혁명이야말로 진정한 '민중의 아편'이라고 비판하며, 혁명 사상이 초기에는 정의로운 반항일 수 있으나 권력을 잡으면 결국 억압적인 형태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47][48] 작가 이블린 워는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꼬집었고,[49] 에드먼드 윌슨은 '지식인의 아편'이라고 말했다.[50] 레이몽 아롱은 《지식인의 아편》(1955)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무신론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종교적 신념 체계와 유사하게 작동하며, 비판적 사고를 억압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독교의 아편이 사람들을 소극적으로 만든다면, 공산주의의 아편은 폭동으로 몰아간다고 지적했다.[51]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 역시 마르크스주의가 현실 분석을 왜곡하고 지지자들에게 헛된 위안을 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아편'이라고 비판했다.[51]

3. 1. 원문과 번역

칼 마르크스가 1843년에 작성하여 1844년 독불 연보에 발표한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이다.[54] 해당 구절이 포함된 문맥의 한국어 번역과 독일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한국어 번역'''[54]

:종교적 고통은, 현실의 고통의 표현이자, 현실의 고통에 대한 저항이다. '''종교는 억압된 피조물의 탄식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이고, 영혼 없는 현실의 영혼이다. 이것은 인민(人民)의 아편(阿片)이다.'''

:인민에게 있어서 환각적(幻覺的) 행복인 종교를 버리라는 것은, 곧 현실의 행복을 지향(志向)하라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환각을 버리라는 요구는, 환각을 필요로 하는 현실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종교에 대한 비판은 곧 종교라는 후광을 업은 속세에 대한 맹아적(萌芽的)인 비판이다.

'''독일어 원문'''[54]

:''Das religiöse Elend ist in einem der Ausdruck des wirklichen Elendes und in einem die Protestation gegen das wirklichen Elend. '''Die Religion ist der Seufzer der bedrängten Kreatur, das Gemüth einer herzlosen Welt, wie sie der Geist geistloser Zustände ist. Sie ist das Opium des Volks.'''|de''

:''Die Aufhebung der Religion als des illusorischen Glücks des Volkes ist die Forderung seines wirklichen Glücks. Die Forderung, die Illusionen über seinen Zustand aufzugeben, ist die Forderung, einen Zustand aufzugeben, der der Illusionen bedarf. Die Kritik der Religion ist also im Keim die Kritik des Jammertales, dessen Heiligenschein die Religion ist.|de''

이 구절은 해당 서문이 실린 잡지의 발행 부수가 적어 19세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나, 마르크스주의가 대중적인 영향력을 얻기 시작한 1930년대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6]

3. 2. 구조 기능주의적 해석

마르크스종교, 특히 조직화된 종교를 구조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했다.[5][6][30][31] 그는 종교가 현실의 고통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에 대한 저항이며, "억압된 피조물의 탄식",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 "영혼 없는 현실의 영혼"이라고 표현하며, 이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규정했다.[54]

마르크스에게 종교는 비록 허구일 수 있으나 사회 내에서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다.[7][32] 아편이 환자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덜어주는 것처럼, 종교 역시 사람들의 즉각적인 고통을 줄여주고 힘든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환상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2][7][28][32] 이런 맥락에서 마르크스는 종교 자체에는 비판적이었지만, 종교에 기댈 수밖에 없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처지에는 깊은 동정심을 보였다.[2][7][28][32]

하지만 동시에 종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에는 해롭다고 판단했다.[2][28] 종교가 내세와 같은 영원한 가치에 초점을 맞추게 함으로써, 피억압자들이 현실의 착취와 계급 구조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들기 때문이다.[2][28] 이 과정에서 종교는 지배 계급의 이익을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허위 의식을 조장하며,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혁명과 자본주의 철폐, 계급 없는 사회 건설을 방해한다고 보았다.[2][28]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생산 관계의 모순이 해소되면, 소외가 사라지면서 종교에 대한 필요성 역시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2][28] "인민의 아편"이라는 표현은 마르크스가 1843년에 쓴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 등장하며, 이 서문은 1844년 《독불 연보》에 실렸다.[54][31] 이 구절의 원래 맥락과 의미는 종종 간과되기도 한다.[29]

3. 3. 프롤레타리아 혁명과의 관계

마르크스는 종교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목표 달성에 해롭다고 보았다.[2][28] 그는 종교가 일시적인 현실 문제보다는 영원한 것에 초점을 맞추게 함으로써, 피억압자들이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노동 착취와 계급 구조의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든다고 비판했다.[2][28]

이 과정에서 종교는 일종의 허위 의식을 조장한다고 보았다. 즉, 종교가 지배 계급의 지속적인 지배를 지지하고 정당화하는 문화적 가치와 신념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종교는 사회주의 혁명, 자본주의 타도, 그리고 계급 없는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보았다.[2][28]

마르크스는 만약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타도한다면, 불평등한 생산 관계는 더 이상 정당화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사람들의 소외 문제 역시 해결되면서 종교에 대한 필요성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보았다.[2][28] 마르크스는 종교 자체에는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지만, 현실의 고통 때문에 종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깊은 연민을 보였다.[2][7][28][32]

4. "종교는 인민의 아편"에 대한 다양한 해석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표현은 카를 마르크스가 사용하기 이전에도 존재했다. 1797년 사드 후작의 《줄리엣 이야기 - 악덕(惡德)의 번영》에는 "''당신이 백성들에게 먹인 것은 아편''"이라는 구절이 등장하며, 1798년 노발리스의 단편집 《꽃가루》에서는 "''당신이 말하는 소위 그 종교라는 것은 단지 아편 역할을 할 뿐''"이라며 종교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카를 마르크스는 1843년,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법철학』을 비판한 저서 『헤겔 법철학 비판』의 서문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서문은 1844년 『독불 연보』라는 소규모 저널에 실렸으나, 『헤겔 법철학 비판』 본문은 마르크스 사후에 출판되었다. 『독불 연보』는 1000부만 인쇄되어 19세기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고, 이 표현은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가 부상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31]

독일어 원문은 “Die Religion ist der Seufzer der bedrangten Kreatur, das Gemuth einer herzlosen Welt, wie sie der Geist geistloser Zustande ist. Sie ist das Opium des Volksde” 이며, 이는 "종교는 억압받는 존재의 한숨이며, 마음 없는 세상의 마음이며, 영혼 없는 상태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로 번역될 수 있다.[26] 마르크스가 이 표현을 사용한 전체적인 맥락은 다음과 같다.[26]



종교에 대한 비판의 기초는 "종교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종교가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의 종교는 사람들이 아직 자신을 얻지 못했거나 이미 잃어버린 자아의식과 자기감정이다. 그러나 "인간"은 세상 밖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은 "세상 안의 인간"이며 국가, 사회이다.

이 국가와 사회는 "전도된 세계 의식"인 종교를 생산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전도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이 세계의 일반 이론이며, 그 백과사전적 개요이며, 대중적 형식의 논리이며, 그 정신적 "명예점(point d'honneur프랑스어)", 그 열광이며, 그 도덕적 제재이며, 그 엄숙한 보완이며, 위안과 정당화의 보편적 근거이다. 종교는 인간 본질의 "환상적 실현"이다. 왜냐하면 "인간 본질"은 어떠한 진정한 현실성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투쟁은 간접적으로, 정신적 "향기(aroma)"가 종교인 저 "세계에 대한" 투쟁이다.

"종교적" 고통은 동시에 현실적 고통의 "표현"이자 현실적 고통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억눌린 피조물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며, 또한 영혼 없는 상태의 영혼이다. 그것은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의 환상적 행복으로서의 종교를 폐지하는 것은 그들의 "현실적" 행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들의 상태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라는 요구는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태를 포기하라"는 요구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잠재적으로, 종교가 그 "후광(halo)"인 저 "눈물의 골짜기에 대한 비판"이다.



마르크스의 발언 이후, 영국 성공회의전사제였던 찰스 킹즐리도 1848년 《인민을 위한 정치》에서 교계를 비판하며 "''성경을 마치 짐 나르는 짐승에게 과다적재를 견디게 하려고 투여하는 아편인 양''" 다룬다고 지적했다.

이후 레닌이 마르크스의 표현을 인용하면서 ‘인민의 아편’이라는 구절은 반종교의 대표적인 표어처럼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의 이러한 분석과 '인민의 아편'이라는 표현에 대한 더 깊은 해석 및 후대의 논쟁은 이어지는 내용에서 자세히 다룬다.

4. 1. 레닌 (1905)

블라디미르 레닌은 1905년 Новая Жизнь|노바야 즈닌ru에서 종교에 관해 언급하며, 칼 마르크스의 이전 발언("인민의 아편")을 인용했다.[8][9][10] 레닌은 종교가 착취당하는 노동자 계급의 현실적 고통을 외면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는 종교가 평생 일하며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현세에서의 순종과 인내를 가르치며 천상의 보상이라는 희망으로 위안을 주는 반면, 다른 이들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자본가 계급에게는 자선을 통해 착취를 정당화하고 '천국행 티켓'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수단이라고 비판했다. 레닌은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를 "일종의 정신적 술(род духовной сивухи|로트 두호브노이 시부히ru)"에 비유하며, 자본의 노예들이 종교에 빠져 인간다운 삶에 대한 요구를 잊게 된다고 주장했다.[56][57]

4. 2. 김일성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일성은 자신의 저술에서 "인민의 아편"이라는 비유를 두 차례 언급했다. 두 경우 모두 불교천도교 같은 종교 단체와의 협력을 반대하는 동지들의 의견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11]

첫 번째 언급에서 김일성은 마르크스의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이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종교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신성한 처벌을 기도하고 한국 민족을 축복한다"면, 그것은 "애국 종교"이며 그 신자들 역시 애국자라고 설명했다.[11] 이는 당시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항일 투쟁에 기여하는 종교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두 번째 언급에서는 마르크스의 비유를 "급진적이고 일방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일성은 마르크스가 "종교적 신기루의 유혹을 경고한 것이지, 일반 신자들을 반대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11] 당시 한국의 공산주의 운동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 구원"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기에, 김일성은 비슷한 목표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투쟁에 함께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는 "심지어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주저 없이 우리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민족 해방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종교인과의 연대 필요성을 역설했다.[11]

4. 3. 학문적 논쟁

롤랑 부어는 마르크스가 종교를 묘사할 때 사용한 '아편'이라는 표현이 종종 잘못 해석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당시 아편은 약효와 중독성이라는 양면성 때문에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동시에 비난받기도 하는 복합적인 대상이었다.[12] 즉, 마르크스의 비유는 단순히 종교를 부정적으로만 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마르크스 자신은 구조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종교를 분석했다. 그는 종교가 사람들이 세상과 사회 속 자신의 위치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았다.[27][30][31][28] 이러한 생각은 1843년에 쓰여 마르크스 사후 출판된 『헤겔 법철학 비판』의 서론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서론은 1844년 마르크스와 아르놀트 루게가 함께 편집한 독불 연감에 먼저 실렸는데,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바로 여기에 나온다. 하지만 이 구절은 종종 전체 문맥과 분리되어 인용되면서 그 본래 의미가 왜곡되곤 한다.[29]

마르크스는 특히 organized religion|조직 종교영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30][31] 종교가 사회 내에서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비록 그것이 환상에 기반한 것일지라도 말이다.[32] 그는 아편이 환자나 부상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처럼, 종교 역시 사람들의 당장의 고통을 완화하고 위안을 주는 환상을 제공함으로써 현실의 어려움을 견딜 힘을 준다고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는 종교 자체에는 공감하지 않았지만, 고통스러운 현실 때문에 종교에 기댈 수밖에 없는 프롤레타리아트(노동자 계급)에 대해서는 깊은 연민을 느꼈다.[28][32]

그러나 동시에 마르크스는 종교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가로막는 해로운 역할을 한다고 비판했다. 종교는 현실 세계의 문제보다는 내세나 영원한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게 함으로써,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처한 Exploitation of labour|노동 착취영어의 현실과 사회 계급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종교는 지배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가치관과 신념을 퍼뜨림으로써 일종의 허위 의식을 심어준다고 보았다. 결국 종교는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무계급 사회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었다.[28]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나면, 불평등한 생산 관계를 정당화할 필요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의 소외감 역시 해소될 것이며, 그 결과 종교에 대한 필요성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28]

한편, 현대의 학문 연구에서는 마르크스의 '아편' 비유를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집단적인 종교 행위가 뇌에서 자연적인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는 종교가 실제로 사람들에게 위안과 안정감을 주는 생리적인 메커니즘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13] 이러한 엔도르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들도 진행되었는데, 사라 찰스 등의 연구자들은 종교 의식이 실제로 엔도르핀 분비를 유도하며, 이것이 종교 집단 내 참가자들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발견하기도 했다.[14]

5. "종교는 인민의 아편"과 유사한 표현들

카를 마르크스가 남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표현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부터 여러 사상가와 작가들이 종교나 특정 사상을 아편에 비유하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18세기 말부터 사드 후작, 노발리스, 루소, 칸트, 헤르더 등이 종교나 특정 개념을 아편에 빗대어 언급한 바 있다.[35][15][36][33][34]

19세기에도 하인리히 하이네는 종교를 "정신적인 아편"으로,[16][41] 브루노 바우어는 "아편과 같은 무감각"을 유발하는 것으로[17] 묘사하는 등 유사한 비유가 이어졌다. 모제스 헤스 역시 종교를 아편이나 술과 같은 마취제에 비유했다.

마르크스는 1843년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Die Religion ... ist das Opium des Volksd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글은 1844년 『독불 연보』에 실렸으나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20세기 마르크스주의가 부상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31] 마르크스 이후, 영국 성공회 사제였던 찰스 킹즐리는 1847년, 성경이 현실의 고통을 견디게 하려는 '아편 투여'처럼 이용되고 있다고 교계를 비판했다.[18][19]

이후 레닌이 마르크스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 '인민의 아편'이라는 구절은 반종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어로 굳어졌다.

한편, 현대에 와서 마르크스의 비유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등장했다. 롤랑 부어는 당시 아편이 약효와 중독성 때문에 긍정적 및 부정적 의미를 동시에 지녔다며, 마르크스의 의도가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해석되어 왔다고 주장했다.[12] 또한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집단적인 종교 활동이 뇌에서 자연적인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시켜 고통을 완화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즉 '아편'과 유사한 생리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13] 사라 찰스 등의 후속 연구는 종교 의식이 실제로 엔도르핀 분비 및 참가자 간의 유대감 강화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며 이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14]

5. 1. 계몽주의 사상가들

17세기 이후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허버트 오브 처버리(1582-1648)는 종교를 사제에 의한 사기라고 비판했고, 앤서니 콜린스(1676-1729)는 모든 종교가 기만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여러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 라 메트리는 무신론만이 종교 전쟁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인류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에르베시우스는 종교를, 속은 사람들이 계속 눈먼 상태로 있기를 원하는 상상 속의 이익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 돌바크는 무신론자가 인류에게 해로운 환상, 즉 종교를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 볼테르는 종교 지도자들을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사기꾼으로 보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에 대한 믿음이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루소는 그의 소설 『줄리 또는 신 엘로이즈』(1761년)에서 종교를 "영혼의 아편과 같은 것"에 비유하며, 적절히 사용하면 기분을 좋게 하지만 과도하게 사용하면 격분이나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33]

칸트(1724-1804)와 헤르더(1744-1803) 역시 종교(또는 종교 운동)를 아편과 유사한 것으로 간주했다.[34]

5. 2.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혁명에서 반종교 정책이 시행된 이후, 종교가 가진 사회 질서 유지 기능의 양면성은 계몽주의 시대보다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 여러 작가와 사상가들이 종교를 '아편'에 비유하며 그 기능을 논했다.

루소는 이미 혁명 이전인 1761년 소설 『줄리 또는 신 엘로이즈』에서 종교를 "영혼의 아편과 같은 것"으로 묘사하며, 적절히 사용하면 기분을 좋게 하지만 과도하면 해로울 수 있다고 보았다.[33] 칸트(1724-1804)와 헤르더(1744-1803) 역시 종교(운동)를 아편과 유사하게 간주했다.[34]

소설가 마르키 드 사드는 『쥘리에트 이야기 또는 악덕의 번영』(1797년)에서 "이 아편을 너희 국민에게 주어라"라고 쓰며 종교의 마취적 속성을 언급했다.[35]

1798년 독일의 낭만주의 작가 노발리스는 단상집 『Blüthenstaub|꽃가루de』에서 종교가 아편처럼 자극하고 마비시키며 고통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다고 언급했다.[15][36][37][38] 그는 종교뿐 아니라 혁명적 움직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38]

1840년, 하인리히 하이네루트비히 뵈르네에 관한 에세이에서 종교를 고통받는 인류에게 주어지는 '정신적인 아편'에 비유했다.[16]

청년 헤겔주의자였던 브루노 바우어는 그의 저작에서 종교를 "아편과 같은 무감각"의 원인으로, 신학을 "아편과 같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언급하며 카를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주었다.[17]

잉글랜드 교회의 사제였던 찰스 킹즐리는 1847년에 성경이 가난한 사람들을 통제하고 현실의 고통을 참게 만드는 '아편 투여'처럼 사용되어 왔다고 비판했다.[18][19]

카를 마르크스는 1843년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Die Religion ... ist das Opium des Volksde)"라는 유명한 문구를 남겼다. 이 글은 1844년 『독불 연보』에 실렸으나[31], 당시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26]



종교에 대한 비판의 기초는 ''종교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종교가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의 종교는 사람들이 아직 얻을 수 없거나, 잃어버린 자아 의식과 자기 긍정이다. 그러나 ''인간''은 세상 밖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은 ''세상 안에 존재하는 인간''이며 국가, 사회이다.

이 국가와 사회에 의해 ''전도된 세계에 대한 의식''인 종교가 만들어진다. 왜냐하면 종교는 ''전도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이 세상에 대한 일반 이론, 포괄적인 설명, 보편적인 논리, 정신적인 ''자존심 (point d'honneur)'', 열중, 열광, 도덕적 의무, 책임, 장엄함, 안식과 정당화의 보편적인 기초가 되는 것이다. 종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공상적인 인식''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직 어떠한 진실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싸움은 간접적으로 정신적인 ''분위기 (aroma)''가 종교인 ''세상에 대한'' 싸움이다.

''종교적'' 고통은 동시에 현실의 고통의 ''표현''이며, 현실의 고통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종교는 억압받는 존재의 한숨이며, 마음 없는 세상의 마음이며, 영혼 없는 상황에서의 영혼이다. 종교는 대중의 ''아편''이다'''.

종교를 ''환상적인'' 사람들의 행복으로 폐지하는 것은 그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들의 상황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환상이 필요한 상황을 포기/없애는''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종교가 ''후광 (halo)''인 ''고통으로 가득 찬 현세에 대한 비판의 싹''이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현실의 고통에서 비롯된 한숨이자 그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보면서도, 동시에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고 체념하게 만드는 아편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종교 비판이 현실 비판으로 이어져야 하며, 환상(종교)이 필요한 사회 구조 자체를 변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 3. 아편 전쟁 이후

마약으로서 아편은 1839년부터 1842년까지 영국과 중국 간의 아편 전쟁을 통해 유럽에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39] 또한, 1846년 수술에 마취가 도입되면서 의료용으로 아편이 널리 퍼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39]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종교를 아편에 비유하는 표현이 여러 사상가와 작가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괴테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크루마허의 설교집을 두고 '마약 같다(narkotischde)'고 평가했다.[39]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은 숙부의 말을 인용하여 "인간에게 종교는 빵처럼 필요하며, 독처럼 치명적이다."라고 기록했다.[39]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39년 편지에서 종교와 브랜디를 사람을 취하게 하는 약물에 비유했다.[40]

하인리히 하이네는 1840년 루트비히 뵈르네에 관한 에세이에서 같은 비유를 사용했다.[41][42][43][44] 그는 "고통받는 인류의 쓴 잔에 정신적인 아편의 달콤하고 최면성 방울, 사랑, 희망, 믿음의 방울을 쏟는 종교를 환영한다."고 썼다.[16]

브루노 바우어는 종교를 "아편과 같은 것(opiumartigde)"[45] 또는 "아편과 같은 무감각"의 원인[17]으로 언급했으며, 그의 저술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다. 모제스 헤스 역시 1843년에 종교를 아편이나 증류주와 같은 것으로 언급했다.

잉글랜드 교회의 캐논이었던 찰스 킹즐리는 1847년에 "우리는 성경을 마치 가난한 사람들을 질서 속에 묶어두기 위한 아편 투여처럼 사용해 왔다"고 비판하며 종교가 사회 통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18][19].

6. "종교는 인민의 아편"에 대한 비판적 언급

카를 마르크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표현은 193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일반 대중에게도 알려졌지만, 동시에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논쟁도 함께 증가했다.

다양한 사상가와 정치인들이 이 표현과 마르크스주의 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영국보수당 정치인 스탠리 볼드윈은 종교 비판이 결국 자유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46]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혁명 사상이야말로 진정한 '인민의 아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47][48] 작가 이블린 워는 "인민의 아편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라는 제목의 서평을 발표했고,[49] 작가 에드먼드 윌슨은 "마르크스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50] 프랑스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은 저서 《지식인의 아편》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종교적 성격과 지식인에 대한 영향력을 비판했으며, 미국의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마르크스주의가 현실을 왜곡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아편'이라고 지적했다.[51] 이러한 비판들은 마르크스의 주장이 갖는 의미와 영향력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반론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6. 1. 스탠리 볼드윈

영국보수당 당수이자 총리를 지낸 스탠리 볼드윈은 1937년, 마르크스주의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주장을 비판했다. 그는 기독교적 가치를 따르는 국가는 인간 개성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이를 부정하는 국가는 야만과 오만한 지배, 잔혹한 전제 정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46] 볼드윈은 종교를 아편으로 비난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 자유와 시민적 자유마저 아편으로 치부하는 것과 같으며, 이는 언론의 자유, 관용, 그리고 정의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46]

6. 2. 시몬 베유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는 혁명 감정이 처음에는 사회적 부정에 대한 건전한 반항으로 시작하지만, 권력을 추구하게 되면서 점차 전체주의적인 지배욕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보았다.[47] 특히 노동자 계급이 겪는 본질적인 불행은 어떤 혁명으로도 해결될 수 없으며, 이러한 해결 불가능한 고통에 대한 반항심이 혁명 사상을 강력하지만 허위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카를 마르크스가 종교를 비판하며 사용했던 '인민의 아편'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혁명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베유는 "사회적 부정에 대한 반항인 한, 혁명 사상은 바람직하고 건전하다. 그러나 노동자의 조건 그 자체의 본질적인 불행에 대한 반항인 한, 허위이다. 왜냐하면, 어떤 혁명도 이 불행을 근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마르크스가 종교에 부여한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은, 종교가 스스로를 배신하고 있는 동안에는 적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혁명에야말로 어울리는 말이다. 혁명의 희망은 항상 마약인 것이다."라고 말했다.[47]

또한 베유는 힘없는 피해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정의롭게 사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흔한 착각이며, 권력을 쥔 피해자 역시 힘에 의해 타락하여 결국 악을 행하게 된다고 비판했다.[48] 이러한 맥락에서 그녀는 "민중의 아편은 종교가 아니라, 혁명이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48]

6. 3. 레이몽 아롱

프랑스의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은 1955년 저서 《지식인의 아편》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했다. 그는 세계를 구제하려 하는 마르크스주의가 무신론임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같은 성격을 띤다고 지적했다. 아롱에 따르면, 공산당은 마치 구원의 말씀을 위임받아 이를 지키는 교회와 같은 존재이며, 공산당에 가입하는 것은 세례를 받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그러나 신앙을 거부하고 교회(공산당)를 따르지 않는 노동자는 '선택받은 계급'에서 제외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산주의가 지식인들의 종교이며, 이로 인해 탐구의 자유, 논쟁의 자유, 비판의 자유, 그리고 다수에 의한 결정 원칙이 희생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아롱은 "기독교아편은 사람들을 소극적으로 만들지만, 공산주의의 아편은 폭동으로 몰아간다"고 비판하며 두 이념의 차이를 강조했다.

6. 4. 폴 새뮤얼슨

미국의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며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아편이다"라고 말했다.[51] 그는 혁명이 불가피하다는 마르크스주의의 견해가 지지자들에게 위안을 주고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 고통의 진통제이기도 하며, 마르크스주의의 범주를 사용하는 것이 경제 현실의 운동을 이해하려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했다고 비판했다.[51]

7. 현대 사회에서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

카를 마르크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표현은 193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확산되면서 널리 알려졌다.[31] 이 말은 종교가 현실의 고통과 모순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고 위안을 주는 환상과 같다는 비판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마르크스는 종교를 "억압받는 존재의 한숨이며, 마음 없는 세상의 마음이며, 영혼 없는 상황에서의 영혼"이라고 묘사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대중의 "아편"이라고 규정했다.[26]

마르크스의 이 명제는 발표 이후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비판받거나 재해석되어 왔다.

영국 보수당 출신 총리였던 스탠리 볼드윈은 1937년 연설에서, 마르크스처럼 종교를 아편으로 비난하는 논리는 결국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기독교적 가치를 부정하고, 나아가 정치적 자유와 시민적 자유마저 아편으로 매도하여 잔혹한 전제 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46] 이는 개인의 존엄성보다 국가나 특정 이념을 앞세우는 전체주의적 경향에 대한 경고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는 혁명 사상 자체에 주목했다. 그는 혁명이 처음에는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정당한 반항으로 시작하지만, 권력을 획득한 이후에는 본래의 이상을 잃고 새로운 형태의 억압(노동자 제국주의)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47] 베유는 노동의 근본적인 고통은 어떤 혁명으로도 완전히 해소될 수 없으며, 오히려 혁명에 대한 헛된 희망이야말로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만드는 진정한 의미의 '민중의 아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중의 아편은 종교가 아니라, 혁명이다"라고 말하며, 혁명 역시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47][48]

한편,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아편'에 비유하는 시각도 제기되었다. 영국의 작가 이블린 워는 1944년 "인민의 아편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라는 제목의 서평을 썼고,[49] 미국의 문학 비평가 에드먼드 윌슨은 1946년 소설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다"라고 언급했다.[50] 프랑스의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은 그의 저서 『지식인의 아편』(1955)에서 마르크스주의무신론을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교회와 같은 위계적인 조직 구조와 맹목적인 신념 체계를 통해 지식인들을 사로잡는다고 분석했다. 아롱은 마르크스주의가 비판적 사고와 자유로운 토론을 억압하며, 때로는 신봉자들을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아편'과 같다고 비판했다.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 역시 마르크스주의의 경제 이론이 현실 분석에 혼란을 야기하며, 혁명의 필연성에 대한 믿음은 지지자들에게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하는 진통제 역할을 한다고 지적하면서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아편이다"라고 평가했다.[51]

이처럼 "인민의 아편"이라는 개념은 원래의 종교 비판을 넘어, 정치 이데올로기, 사회 운동, 심지어 특정 사상 체계 자체의 잠재적 위험성을 분석하고 경고하는 은유로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이는 특정 신념이나 현상이 현실 문제에 대한 직시를 방해하고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7. 1. 스포츠, 연예, 미디어

일부 작가들은 "인민의 아편"이라는 구절을 현대적으로 스포츠 팬덤, 유명인, 텔레비전, 인터넷의 오락적 요소 등과 비교한다.[6][21] 이는 빵과 서커스의 개념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7. 2. J.D. 밴스와 도널드 트럼프

2016년, 상원의원 당선 및 도널드 트럼프러닝메이트 지명 이전에 J.D. 밴스는 ''애틀랜틱'' 기고문과 찰리 로즈가 진행하는 PBS 쇼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문화적 헤로인"[22][23]이자 "대중의 아편"이라고 칭했다.[24][25]

8. 한국 사회와 "종교는 인민의 아편"

마르크스헤겔의 『법철학』(1820)을 비판한 『헤겔 법철학 비판』의 서문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서문은 1843년에 작성되어 1844년 『독불 연보』에 실렸으나, 『헤겔 법철학 비판』 본문은 마르크스 사후에 출판되었다. 『독불 연보』는 발행 부수가 적어(1000부) 19세기 당시 대중적 영향력은 미미했고, 이 구절은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가 확산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31]

독일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Die Religion ist der Seufzer der bedrangten Kreatur, das Gemuth einer herzlosen Welt, wie sie der Geist geistloser Zustande ist. Sie ist das Opium des Volksde

이를 번역하면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며, 마음 없는 세상의 마음이고, 영혼 없는 상태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의미이다.[26]

마르크스가 이 말을 한 맥락은 다음과 같다.[26]



종교 비판의 기초는: ''인간이 종교를 만들지, 종교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이다.

실로 종교는, 아직 자기 자신을 획득하지 못했거나 혹은 이미 다시 상실해버린 인간의 자기의식이고 자기감정이다. 그러나 ''인간''은 세계 밖에 웅크리고 있는 추상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 그것은 ''인간의 세계''이며, 국가, 사회이다.

이 국가, 이 사회가 종교, 즉 하나의 ''전도된 세계의식''을 생산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하나의 ''전도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이 세계의 일반적 이론이고, 그 백과사전적 개요이며, 그 대중적 형식의 논리학이고, 그 정신주의적 ''명예심''(point d'honneur)이며, 그 열광이고, 그 도덕적 제재(制裁)이며, 그 엄숙한 보충이고, 그 위안과 정당화의 보편적 기초이다. 종교는 인간 본질의 ''환상적 현실화''이다. 왜냐하면 ''인간 본질''은 어떠한 참된 현실성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투쟁은 간접적으로, 종교가 그 정신적 ''아로마''(aroma)인 저 ''세계에 대한'' 투쟁이다.

''종교적'' 고뇌는 현실적 고뇌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현실적 고뇌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한숨이고,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며, 또 정신 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의 환상적 행복으로서의 종교를 지양하는 것은 인민의 ''현실적'' 행복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들의 상태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태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비판은 종교가 ''후광''(halo)인 저 ''눈물의 골짜기에 대한 비판의 싹''이다.



마르크스에게 종교 비판은 단순히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종교라는 환상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비참한 현실, 즉 '전도된 세계'를 비판하고 변혁하려는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종교가 현실의 고통을 반영하는 동시에 그 고통에 대한 항의의 성격도 지니지만, 궁극적으로는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고 체념하게 만드는 '아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8. 1.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종교의 역할

8. 2. 진보적 관점에서의 종교 비판

마르크스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언급은 널리 알려졌지만, 동시에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함께 증가했다.

영국의 보수당 당수이자 총리였던 스탠리 볼드윈은 1937년 연설에서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을 반박하며, 종교를 아편으로 비난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 자유와 시민적 자유마저 아편으로 비난하게 될 것이며, 이는 언론의 자유, 관용, 정의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46] 그는 기독교 국가가 개인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반면, 노예 국가는 이를 부정하며, 인간 영혼의 가치를 타협하는 것은 결국 야만적인 전제 정치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46]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는 혁명 사상이 초기에는 사회적 부정에 대한 정당한 반항일 수 있으나, 권력을 장악한 후에는 국가 제국주의와 유사한 '노동자 제국주의'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고 보았다.[47] 그는 혁명이 노동 조건의 본질적인 불행 자체를 해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불행에 대한 반항심을 자극하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지적했다. 베유는 마르크스가 종교에 부여한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이 특정 상황에서는 적절했을지 모르나, 본질적으로는 혁명이야말로 희망이라는 이름의 마약과 같다고 주장했다.[47]

:사회적 부정에 대한 반항인 한, 혁명 사상은 바람직하고 건전하다. 그러나 노동자의 조건 그 자체의 본질적인 불행에 대한 반항인 한, 허위이다. 왜냐하면, 어떤 혁명도 이 불행을 근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허위는 최대의 힘을 가진다. 그러한 본질적인 불행이야말로, 부정 그 자체보다 생생하고 깊이, 비통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종교에 부여한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은, 종교가 스스로를 배신하고 있는 동안에는 적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혁명에야말로 어울리는 말이다. 혁명의 희망은 항상 마약인 것이다.[47]

또한 베유는 혁명에 대해 사람들이 항상 변함없이 품고 있는 착각으로서, 힘의 피해자들은 폭력에 대해서는 깨끗하므로, 그들이 힘을 장악하면 그것을 올바르게 행사할 것이라는 생각, 그러나 이윽고 피해자들은 힘에 의해 더럽혀지고, 권세의 자리에 올라타, 변천에 취하여, 악을 행한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48]

:민중의 아편은 종교가 아니라, 혁명이다.[48]

작가 이블린 워는 1944년에 "인민의 아편(마약)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라는 서평을 발표했다.[49]

작가 에드먼드 윌슨은 1946년 소설 '헤카테 지방의 기록'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다"라고 말했다.[50]

레이몽 아롱은 '지식인의 아편'(1955)에서 세계를 구제하려는 마르크스주의는 무신론이지만 신앙에 물들어 있다고 지적한다. 아롱에 따르면, 공산당은 "구제의 말씀을 위임받아 이를 지킬 사명을 띤 교회와 같은 존재"이며, "교회의 문을 들어서는 자는 누구든지 즉시 세례를 받는다" 하지만 신앙을 거부하고 교회에 따르지 않는 노동자는 "선택받은 계급"에서 배제된다. 공산주의는 지식인의 종교이며, "탐구의 자유, 논쟁의 자유, 비판의 자유, 다수에 의한 결정을 희생한다". 아롱은 "기독교아편은 사람들을 소극적으로 만들지만, 공산주의의 아편은 폭동으로 몰아간다"라고 비판했다.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혁명은 불가피하다는 견해는 지지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기대가 충족되지 않는 고통의 진통제이기도 하며, 마르크스주의의 범주를 사용하는 것은 경제 현실의 운동을 이해하려고 했던 사람들을 혼란시켜 왔다고 비판하면서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아편이다"라고 말했다.[51]

8. 3. 종교와 사회 변화

마르크스의 이 말은 1930년대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널리 퍼지면서 일반적인 것이 되었지만, 동시에 마르크스주의 비판도 확산되면서 이 말에 대한 비판적 언급도 증가했다.

보수당 당수이자 영국 총리였던 스탠리 볼드윈은 1937년에 "기독교 국가는 인간의 개성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노예 국가는 이를 부정한다. 인간 영혼의 무한한 가치와의 타협은 야만으로 직행하여 오만한 지배와 잔혹한 전제 정치로 귀결될 것이다. (마르크스처럼) 종교를 아편으로 비난한다면, 정치적 자유와 시민적 자유를 아편으로 비난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사라지고, 관용이 이어서 사라지며, 정의도 사라진다."라고 비판했다[46]

철학자 시몬 베유는 혁명 감정은 처음에는 부정에 대한 반항이지만, 권력을 탈취하면 이윽고 국가적 제국주의와 유사한 노동자 제국주의로 변모하며, 그 목적은 하나의 집단에 의한 인류 전체, 인류 생활의 전면에 대한 전적인 무제한의 지배라고 논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47]

: 사회적 부정에 대한 반항인 한, 혁명 사상은 바람직하고 건전하다. 그러나 노동자의 조건 그 자체의 본질적인 불행에 대한 반항인 한, 허위이다. 왜냐하면, 어떤 혁명도 이 불행을 근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허위는 최대의 힘을 가진다. 그러한 본질적인 불행이야말로, 부정 그 자체보다 생생하고 깊이, 비통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종교에 부여한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은, 종교가 스스로를 배신하고 있는 동안에는 적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혁명에야말로 어울리는 말이다. 혁명의 희망은 항상 마약인 것이다.[47]

또한 베유는 혁명에 대해 사람들이 항상 변함없이 품고 있는 착각으로서, 힘의 피해자들은 폭력에 대해서는 깨끗하므로, 그들이 힘을 장악하면 그것을 올바르게 행사할 것이라는 생각, 그러나 이윽고 피해자들은 힘에 의해 더럽혀지고, 권세의 자리에 올라타, 변천에 취하여, 악을 행한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48]

: 민중의 아편은 종교가 아니라, 혁명이다.[48]

작가 이블린 워는 1944년에 "인민의 아편(마약)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라는 서평을 발표했다[49]

작가 에드먼드 윌슨은 1946년 소설 '헤카테 지방의 기록'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다"라고 말했다[50]

레이몽 아롱은 '지식인의 아편'(1955)에서 세계를 구제하려는 마르크스주의는 무신론이지만 신앙에 물들어 있다고 지적한다. 아롱에 따르면, 공산당은 "구제의 말씀을 위임받아 이를 지킬 사명을 띤 교회와 같은 존재"이며, "교회의 문을 들어서는 자는 누구든지 즉시 세례를 받는다" 하지만 신앙을 거부하고 교회에 따르지 않는 노동자는 "선택받은 계급"에서 배제된다. 공산주의는 지식인의 종교이며, "탐구의 자유, 논쟁의 자유, 비판의 자유, 다수에 의한 결정을 희생한다". 아롱은 "기독교아편은 사람들을 소극적으로 만들지만, 공산주의의 아편은 폭동으로 몰아간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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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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