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기시다 내각 (제2차 개조)는 2023년 9월 13일 임명되었으며, 내각총리대신, 국무대신, 내각관방부장관, 내각법제국 장관,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등으로 구성되었다. 2023년 12월에는 자민당 파벌의 정치 자금 스캔들로 인해 일부 각료 및 당 간부가 교체되었고, 내각 지지율이 하락했다. 2024년 1월에는 레이와 6년 노토반도 지진이 발생하여, 내각은 비상 재해 대책 본부를 설치하고 대응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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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2023년 9월 13일 개각을 단행하면서, 이 내각을 '변화를 힘으로 하는 내각'이라고 명명했다.[53][54]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대신이 겸직하던 '러시아 경제 분야 협력 담당'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일본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는 상황과 모순된다는 지적을 받았으나, 개각 후에도 유임되었다.[55]마쓰노 히로카즈 내각관방장관이 겸직하던 '백신 접종 추진 담당'은 폐지되었다.[56]
이번 개각에서는 여성 각료가 역대 최다인 5명이 기용되었으나, 부대신과 대신정무관에는 여성이 한 명도 임명되지 않았다. 이는 내각 제도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한, 전후 태생만으로 조각된 첫 내각이 되었다.
개각 석 달 후인 2023년 12월, 자유민주당 내 파벌의 정치자금 논란으로 인해 세이와 정책연구회(아베파) 소속 국무대신 4명, 부대신 5명, 대신 정무관 1명 등이 교체되었다.
2023년 12월, 자민당 내 파벌의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세이와 정책연구회(아베파) 소속 국무대신 4명, 부대신 5명, 대신 정무관 1명 등이 12월 14일에 일제히 교체(사실상 경질)되었다.[24][25]
2023년 12월, 자민당 일부 파벌이 정치 자금 파티 수입의 일부를 뒷돈으로 각 의원에게 환류했다는 정치 자금 규정법 위반 의혹이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특히 세이와 정책 연구회(아베파)는 2018~22년에 매년 1회 파티를 열어 총 약 6.6억엔의 수입을 정치 자금 수지 보고서에 보고했지만, 이 중 파벌 소속 의원에게 파티권 판매 할당량을 부과하고, 그 할당량을 초과하여 모은 일부 수입을 뒷돈으로 환류했다고 하며, 환류된 자금의 총액은 작년까지 5년간 수억 엔에 달하며, 복수의 의원이 각각 1000만엔을 초과하는 자금의 환류를 받았다고 여겨지고 있다. 내각에서는 아베파 소속의 마쓰노 히로카즈 내각관방장관이 2019년 9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약 2년간 파벌의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을 맡고 있어, 사건의 중심 인물로 여겨지고 있지만, 기자 회견이나 국회 심의 등에서의 답변에서는 "정부의 입장으로서 답변을 삼가겠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아베파에서는 그 외에 사무총장 등 파벌 실무 경험자인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대신, 하기우다 코이치 정조회장, 다카기 쓰요시 국회 대책 위원장, 세코 히로시게 참의원 간사장, 시오야 릿 전 문부과학대신(아베파 좌장) 등 주요 각료·당 간부에게도 뒷돈 의혹이 부상하고 있다. 아베파 외에도 지스이카이(니카이파), 헤이세이 연구회(모테기파), 시코카이(아소파), 고치 정책 연구회(기시다파)의 주요 파벌에도 동일한 의혹이 부상하고 있으며, 아베파 이외의 각료 중 고이즈미 류지 법무대신(니카이파)가 정치 자금 파티의 할당량 초과분에 대해 파벌로부터 자금 환류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위에 정치 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재하고 있다는 것을 같은 달 12일의 참의원 법무위원회의 답변에서 밝혔다.[27] 기시다 총리는 "당으로서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을 밝힐 때까지 개최를 자제할 것, 연말연시의 파벌 행사도 자제할 것"이라고 하며, 기시다 총리 자신도 파벌 회장 퇴임을 표명하는 사태가 되었다. 또한, 사건의 중심 인물로 여겨지는 마쓰노 관방 장관,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의 퇴임을 포함한 내각 개조도 부상하는 등 기시다 정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28][29][30][31]
임시 국회 종료 후인 12월 14일, 사실상의 내각 개조와 당 인사의 쇄신을 실시하여, 아베파 소속 각료 4명, 부대신 5명, 대신 정무관 6명의 정무 삼역 15명 및 당 간부에 대해 전원 교체할 의향을 굳혔지만,[32] 후임 인사 조정의 난항과 아베파로부터 "(정무관의) 당선 1회의 5명은 뒷돈을 받지 않았고, 그만두게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반발론이 터져 나온 것 등을 고려하여, 각료·부대신·당 간부의 교체는 진행하는 한편, 대신 정무관에 관해서는 의혹에 대한 관여 정도를 스스로 정밀 조사하여, 진퇴를 "자율 판단"하게 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33][34]
한편, 입헌민주당은 12월 11일, 마쓰노 관방 장관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중의원에 제출했지만, 12일 중의원 본회의 표결에서 자민·공명 등의 반대 다수로 부결되었다.[35][36] 회기 말인 13일에는 입헌민주당이 기시다 내각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중의원에 제출했지만,[37][38] 같은 날 중의원 본회의 표결에서 자민·공명 등의 반대 다수로 부결되었다.[39] 같은 날 임시 국회가 폐회되면서, 도쿄지검 특수부에 의한 관계자 청취가 본격화될 것이다.
12월 14일 오전, 마쓰노 관방 장관, 니시무라 경제산업대신, 스즈키 준지 총무대신, 미야시타 이치로 농림수산대신 등 아베파 소속 각 정무 삼역·보좌관이 사표를 제출했다. 또한, 당 간부에서는 하기우다 정조회장, 다카기 국회 대책 위원장, 세코 참의원 간사장이 사표를 제출했다.[40] 후임 대신과 부대신은 같은 날 인가되어, 신도 가네히코 재무 대신 정무관과 함께 각각의 직에 취임했다.[40][41]
12월 19일, 도쿄지검 특수부에 의해, 정치 자금 규정법의 혐의로 세이와 정책 연구회(아베파) 및 지스이카이(니카이파)의 사무소에 강제 수사를 받은 것에 따라, 니카이파에 소속된 정무 삼역 중 고이즈미 류지 법무대신과 나카노 히데유키 법무 대신 정무관이 다음날 20일자로 니카이파를 퇴회하여 무파벌이 되었다. 지미 에이코 국무대신도 니카이파에 퇴회계를 제출했지만, 니카이파는 퇴회를 인정하지 않았다.[42] 기시다 총리는 니카이파 소속 각료에 관해서는 속투 방침을 시사하고 있다.[43][44]
12월 31일, 당시 아베파 소속으로, 일련의 사직 때에도 정무관에 머물렀던 코모리 다쿠로 총무 대신 정무관, 가토 류쇼 국토교통 대신 정무관 겸 내각부 대신 정무관 겸 부흥 대신 정무관에 대해, 당 지부의 정치 자금 수지 보고서에 수입 미기재가 판명되었기 때문에, 사표를 제출했다. 사실상의 경질로 여겨지며, 니시다 쇼지 총무 대신 정무관, 오자키 마사나오 국토교통 대신 정무관 겸 내각부 대신 정무관 겸 부흥 대신 정무관이 후임으로 취임했다.[26]
2024년 1월 1일 16시 10분, 레이와 6년 노토반도 지진이 발생했다.
같은 날 16시 11분, 총리 관저 위기 관리 센터에 관저 대책실을 설치했다[45]。
같은 날 17시 30분,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방재 담당)인 마츠무라 요시후미를 본부장으로 하는 특정 재해 대책 본부를 설치하고[46], 지진 피해 상황 파악을 위해 이시카와현청에 내각부 부대신 고가 아쓰시 등을 파견했다[47]。
같은 날 심야, 특정 재해 대책 본부를 기시다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비상 재해 대책 본부로 개편했다[48][49]。
1월 2일, 특정 재해 대책 본부를 폐지하고, 기시다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신설된 비상 재해 대책 본부로 소관 사무를 승계했다[48][50]。
1월 2일, 총리 관저에서 열린 비상 재해 대책 본부 회의
4. 1. 내각 지지율 추이
개각 직후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요미우리 신문 조사에서는 개각 전과 동일한 35%로, 3개월 연속 기시다 내각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12]교도 통신사 조사에서는 39.8%로 지난 조사보다 6.2%p 상승했다.[13]마이니치 신문 조사에서는 25%로 지난 조사보다 1%p 하락했다.[14]아사히 신문 조사에서는 지난 8월 조사 33%에서 37%로 다소 증가했지만, 내각 개조 인사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가 57%로 "평가한다" 25%를 크게 웃돌았다.[15]
2023년 12월, 자민당 파벌의 정치 자금 파티 관련 문제로 지지율이 급락했다. 지지 통신사 조사에서는 지지율이 5.3%p 급락한 22.5%로, 2개월 연속 30%를 밑돌았다. "지지하지 않음"은 처음으로 70%를 넘었다.[16] 12월 16일부터 17일까지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는 2021년 10월 정권 출범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17] 니혼게이자이 신문 조사에서는 지지율이 26%로, 2009년 7월 아소 다로 내각 이후 처음으로 20%대로 하락했다.[17] "지지하지 않음" 비율은 68%로, 2012년 정권 복귀 이후 가장 높았다.[17]마이니치 신문 조사에서는 지지율이 16%까지 떨어졌다. 이는 2011년 8월 간 나오토 정권(15%) 이후 최저치이며, "지지하지 않음" 비율은 79%로, 1947년 여론 조사 시작 이후 가장 높았다.[17]
4. 2. 정무 삼역 사임
2023년 10월부터 2024년 1월 사이에 여러 정무 삼역(대신, 부대신, 대신 정무관)이 불상사,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사임하거나 경질되었다.
2023년 10월 26일, 야마다 타로 문부과학대신 정무관 겸 부흥대신 정무관이 불륜 문제로 사임했다.[18][19] 후임으로 혼다 아키코 참의원 의원이 임명되었다.
2023년 10월 31일, 카키자와 미토 법무 부대신이 코토구 구청장 선거에서 키무라 야요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유료 광고)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 사임했다.[20] 후임으로 카도야마 히로테츠 중의원 의원이 임명되었다.[21]
2023년 11월 13일, 칸다 켄지 재무 부대신이 과거 자신의 회사가 고정 자산세를 체납하여 재산을 압류당한 사실이 밝혀져 사임했다. 사실상 경질로 평가된다.[22] 후임으로 아카자와 료세이 중의원 의원이 임명되었다.[23]
2023년 12월 14일, 자유민주당 파벌의 정치자금 규정법 위반 의혹으로 인해 마츠노 히로카즈 내각관방장관,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대신, 스즈키 쥰지 총무대신, 미야시타 이치로 농림수산대신이 사임했다. 사실상 경질로 평가된다. 후임으로 각각 하야시 요시마사, 사이토 켄, 마츠모토 타케아키, 사카모토 테츠시 의원이 임명되었다. 같은 날 부대신 5명과 대신 정무관 1명도 교체되었다.[24][25]
2024년 1월 31일, 파벌의 정치자금 문제로 코모리 타쿠로 총무대신 정무관, 카토 류쇼 국토교통대신 정무관 겸 내각부대신 정무관 겸 부흥대신 정무관이 사임했다. 사실상 경질로 평가된다. 후임으로 니시다 쇼지, 오자키 마사나오 의원이 임명되었다.[26]
4. 3. 자민당 파벌의 정치자금 스캔들
2023년 12월, 자민당 내 파벌의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세이와 정책연구회(아베파) 소속 국무대신 4명, 부대신 5명, 대신 정무관 1명 등이 12월 14일에 일제히 교체(사실상 경질)되었다.[24][25]
2023년 12월, 자민당 일부 파벌이 정치 자금 파티 수입의 일부를 뒷돈으로 각 의원에게 환류했다는 정치 자금 규정법 위반 의혹이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특히 세이와 정책 연구회(아베파)는 2018~22년에 매년 1회 파티를 열어 총 약 6.6억엔의 수입을 정치 자금 수지 보고서에 보고했지만, 이 중 파벌 소속 의원에게 파티권 판매 할당량을 부과하고, 그 할당량을 초과하여 모은 일부 수입을 뒷돈으로 환류했다고 하며, 환류된 자금의 총액은 작년까지 5년간 수억 엔에 달하며, 복수의 의원이 각각 1000만엔을 초과하는 자금의 환류를 받았다고 여겨지고 있다. 내각에서는 아베파 소속의 마쓰노 히로카즈 내각관방장관이 2019년 9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약 2년간 파벌의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을 맡고 있어, 사건의 중심 인물로 여겨지고 있지만, 기자 회견이나 국회 심의 등에서의 답변에서는 "정부의 입장으로서 답변을 삼가겠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아베파에서는 그 외에 사무총장 등 파벌 실무 경험자인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대신, 하기우다 코이치 정조회장, 다카기 쓰요시 국회 대책 위원장, 세코 히로시게 참의원 간사장, 시오야 릿 전 문부과학대신(아베파 좌장) 등 주요 각료·당 간부에게도 뒷돈 의혹이 부상하고 있다. 아베파 외에도 지스이카이(니카이파), 헤이세이 연구회(모테기파), 시코카이(아소파), 고치 정책 연구회(기시다파)의 주요 파벌에도 동일한 의혹이 부상하고 있으며, 아베파 이외의 각료 중 고이즈미 류지 법무대신(니카이파)가 정치 자금 파티의 할당량 초과분에 대해 파벌로부터 자금 환류를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위에 정치 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재하고 있다는 것을 같은 달 12일의 참의원 법무위원회의 답변에서 밝혔다.[27] 기시다 총리는 "당으로서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을 밝힐 때까지 개최를 자제할 것, 연말연시의 파벌 행사도 자제할 것"이라고 하며, 기시다 총리 자신도 파벌 회장 퇴임을 표명하는 사태가 되었다. 또한, 사건의 중심 인물로 여겨지는 마쓰노 관방 장관,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의 퇴임을 포함한 내각 개조도 부상하는 등 기시다 정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28][29][30][31] 그 후, 임시 국회 종료 후인 같은 달 14일에도 사실상의 내각 개조와 당 인사의 쇄신을 실시하여, 아베파 소속 각료 4명, 부대신 5명, 대신 정무관 6명의 정무 삼역 15명 및 당 간부에 대해 전원 교체할 의향을 굳혔지만,[32] 후임 인사 조정의 난항과 아베파로부터 "(정무관의) 당선 1회의 5명은 뒷돈을 받지 않았고, 그만두게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반발론이 터져 나온 것 등을 고려하여, 각료·부대신·당 간부의 교체는 진행하는 한편, 대신 정무관에 관해서는 의혹에 대한 관여 정도를 스스로 정밀 조사하여, 진퇴를 "자율 판단"하게 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33][34]
한편, 입헌민주당은 같은 달 11일, 마쓰노 관방 장관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중의원에 제출했지만, 같은 달 12일의 중의원 본회의 표결에서 자민·공명 등의 반대 다수로 부결되었다.[35][36] 게다가 회기 말인 같은 달 13일에는 입헌민주당이 기시다 내각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중의원에 제출했지만,[37][38] 같은 날 중의원 본회의 표결에서 자민·공명 등의 반대 다수로 부결되었다.[39] 같은 날 임시 국회가 폐회되면서, 도쿄지검 특수부에 의한 관계자 청취가 본격화될 것이다.
같은 달 14일 오전, 마쓰노 관방 장관, 니시무라 경제산업대신, 스즈키 준지 총무대신, 미야시타 이치로 농림수산대신, 호리이 마나부 내각부 부대신, 호리이 이와오 외무 부대신, 아오야마 슈헤이 문부과학 부대신, 사카이 요시유키 경제산업 부대신, 미야자와 히로유키 방위 부대신, 사토 게이 재무 대신 정무관, 우에노 미치코 내각 총리대신 보좌관, 와다 요시아키 방위 대신 보좌관의 아베파 소속 각 정무 삼역·보좌관이 사표를 제출했다. 또한, 당 간부에서는 하기우다 정조회장, 다카기 국회 대책 위원장, 세코 참의원 간사장이 사표를 제출했다.[40] 후임이 된 4명의 대신(하야시 요시마사 내각 관방 장관, 사이토 겐 경제산업대신, 마쓰모토 다케아키 총무대신, 사카모토 데쓰시 농림수산대신)과 5명의 부대신(고가 아쓰시 내각부 부대신, 쓰게 요시후미 외무 부대신, 아베 도시코 문부과학 부대신, 가미쓰키 료스케 경제산업 부대신, 오니키 마코토 방위 부대신)은 같은 날 인가되어, 신도 가네히코 재무 대신 정무관과 함께 각각의 직에 취임했다.[40][41]
같은 달 19일, 도쿄지검 특수부에 의해, 정치 자금 규정법의 혐의로 세이와 정책 연구회(아베파) 및 지스이카이(니카이파)의 사무소에 강제 수사를 받은 것에 따라, 니카이파에 소속된 정무 삼역 중 고이즈미 류지 법무대신과 나카노 히데유키 법무 대신 정무관이 다음날 20일자로 니카이파를 퇴회하여 무파벌이 되었다. 지미 에이코 국무대신도 니카이파에 퇴회계를 제출했지만, 니카이파는 퇴회를 인정하지 않았다.[42] 기시다 총리는 니카이파 소속 각료에 관해서는 속투 방침을 시사하고 있다.[43][44]
같은 달 31일, 당시 아베파 소속으로, 일련의 사직 때에도 정무관에 머물렀던 고모리 다쿠로 총무 대신 정무관, 가토 류쇼 국토교통 대신 정무관 겸 내각부 대신 정무관 겸 부흥 대신 정무관에 대해, 당 지부의 정치 자금 수지 보고서에 수입 미기재가 판명되었기 때문에, 사표를 제출했다. 사실상의 경질로 여겨지며, 후임이 된 니시다 쇼지 총무 대신 정무관, 오자키 마사나오 국토교통 대신 정무관 겸 내각부 대신 정무관 겸 부흥 대신 정무관은 같은 날짜로 각각의 직에 취임했다.[26]
4. 4. 2024년 노토반도 지진 대응
2024년 1월 1일 16시 10분, 레이와 6년 노토반도 지진이 발생했다.
같은 날 16시 11분, 총리 관저 위기 관리 센터에 관저 대책실을 설치했다[45]。
같은 날 17시 30분,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방재 담당)인 마츠무라 요시후미를 본부장으로 하는 특정 재해 대책 본부를 설치하고[46], 지진 피해 상황 파악을 위해 이시카와현청에 내각부 부대신 고가 아쓰시 등을 파견했다[47]。
같은 날 심야, 특정 재해 대책 본부를 기시다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비상 재해 대책 본부로 개편했다[48][49]。
1월 2일, 특정 재해 대책 본부를 폐지하고, 기시다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신설된 비상 재해 대책 본부로 소관 사무를 승계했다[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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