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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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나노강은 일본 나가노현에서 발원하여 니가타현을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 일본의 주요 강이다. 지쿠마강으로도 불리며, 과거에는 물류 수송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현재는 수력 발전과 관개 시설, 어업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시나노강 유역은 댐 건설과 홍수 피해를 겪었으며, 1920년대 완공된 오코즈 분수로는 홍수를 방지하고 농경지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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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노강 | |
---|---|
지도 정보 | |
일반 정보 | |
강 이름 | 시나노 강 (信濃川, Sinano-gang) |
다른 이름 | 지쿠마 강 (千曲川, Tikuma-gang) |
어원 | 불명 |
![]() | |
지리 | |
국가 | 일본 |
현 | 나가노 현, 니가타 현 |
도시 | 니가타 시, 나가오카 시, 나가노 시, 마쓰모토 시 |
발원지 | 고부시 산 |
발원지 위치 | 일본 알프스, 나가노 현 |
발원지 좌표 | 35.913, 138.7194 |
발원지 해발고도 | 2475m |
하구 | 동해 |
하구 위치 | 니가타 현 |
하구 해발고도 | 0m |
길이 | 367km |
유역 면적 | 11900km2 |
왼쪽 지류 | 우라노 강 사이 강 (나가노) |
오른쪽 지류 | 유 강 (나가노) 호시나 강 아유 강 야기사와 강 마쓰 강 우오노 강 |
기타 지류 | 구로마타 강 하사마 강 이카라시 강 세키야 붕수로 나카노쿠치 강 시부미 강 오오코즈 붕수로 기요쓰 강 나카쓰 강 도리이 강 마쓰 강 사이 강 스소하나 강 다카세 강 나라이 강 유 강 요다 강 니시 강 |
수문 정보 | |
위치 | 오지야 시 |
최소 방류량 | 91m3/s |
평균 방류량 | 503m3/s |
최대 방류량 | 3776m3/s |
2. 명칭
시나노강은 나가노현에서는 지쿠마강(千曲川)으로 불린다. 하류 지역에서는 시나노 국에서 흘러 들어오는 강이라는 의미에서 시나노강(信濃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51] 과거에는 오오카와(大川)라고도 불렸다.
2. 1. 지쿠마강 명칭의 유래
지쿠마 강(千曲川)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51][52]- 글자 그대로, 강이 천 개의 굽이를 이루는 모습에서 유래되었다.
- 도요다 촌 하류의 지쿠마 강은 협착부가 연속되며, 양쪽 강둑은 절벽 지형을 이루고 있어, "치쿠(절벽)・마(자루 모양의 습지)의 강"이라는 설이 있다.
- 수원 지역인 가와카미 촌의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다카마가하라에 사는 신들 사이에서 큰 싸움이 있었고, 이 때 흘린 피로 생긴 강이며, 그 피가 사방에 널리 흐르는 모습에서 "지쿠마가와(血隈川)"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지쿠마 강은 만엽집 시대부터 많은 시가에 읊어졌으며, 근대에도 유역의 사쿠시・고모로시 주변을 시마자키 도손(『지쿠마 강 여정의 노래』, 『고모로의 옛 성 호토리』)이, 나가노시 주변에서 니가타 현 경계 부근의 도요다 촌(현・나카노시) 주변을 다카노 다쓰유키(『흐린 달밤』, 『고향』)가 노래했다.
도신에서는 "추우마(ちゅうま)" 또는 "치우마(ちうま)", 호쿠신에서는 "초마(ちょうま)", 사카에 촌과 니가타현 쓰난마치에서는 "치구마(ちぐま)"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53] 방언학자 마세라 오는, 『만엽집』의 동가에 "지구마노카와(知具麻能河泊)"나 "추우마나니 우키오루후네노(中麻奈尓 宇伎乎流布祢能)"라는 표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시나노의 말로는 "치구마"가 가장 오래되었고, "치구마→치우마→추우마→초마"로 변화했다고 추정하고 있다.[53] 또한, 쓰즈키 도시오는 위의 동가(3401번 노래)에 있는 "나(奈)"에 대해서, "지금의 아이누어로 강을 '나이(ナイ)'라고 하므로 '지쿠마나(チグマナ)'의 '나'는 아이누어의 강의 의미를 가진 어근이 남아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54] 이를 바탕으로, 아이누 연구가 기무라 게이이치[55]는, "지쿠마"의 어원에 대해 아이누어의 "chuk-oma"(연어가 있는 곳)라고 한다.
3. 지리
'''지쿠마강'''(千曲川)은 고부시가타케(사이타마현, 야마나시현, 나가노현의 경계)의 나가노현 쪽 기슭에서 발원한다. 야쓰가타케, 간토 산지 등에서 발원하는 여러 하천과 합류하며 사쿠 분지(사쿠다이라), 우에다 분지(우에다다이라)를 북쪽으로 흐른다. 나가노 분지(젠코지다이라)의 가와나카지마 북단에서 히다 산맥에서 발원하여 마쓰모토 분지(마츠모토다이라)를 북쪽으로 흘러온 사이강과 합류한다.
합류 지점에는 T자형의 오치아이 다리가 놓여 있다. 그 후, 강은 북동쪽으로 흘러 니가타현으로 들어가면서 '''시나노강'''(信濃川)으로 이름이 바뀐다.
시나노강은 도카마치 분지를 통과한 후, 군마·니가타 현 경계의 다니가와 산에서 흘러온 우오노강과 합류하여 에치고 평야(니가타 평야)로 나와, 니가타시에서 동해로 흘러든다. 하구는 아가노강의 하구와 가깝고, 과거에는 니가타에서 합류하여 하구를 공유하기도 했다.
3. 1. 지형적 특징
고부시가타케의 나가노현 측 사면(미나미사쿠군 가와카미촌)에서 발원하여, 야츠가타케, 간토 산지 등을 발원지로 하는 여러 하천과 합류하면서 사쿠 분지(사쿠다이라), 우에다 분지(우에다다이라)를 북쪽으로 흐른다. 나가노 분지(젠코지다이라)의 가와나카지마 북단에서 히다 산맥을 발원지로 하여 마쓰모토 분지(마츠모토다이라)에서 북쪽으로 흘러온 사이강과 합류한다. 합류 지점에는 T자형의 오치아이 다리가 있다. 이후 북동쪽으로 흘러 니가타현에 들어가면서 '''시나노강'''으로 이름이 바뀐다.시나노강은 도카마치 분지를 지나 다니가와 산에서 발원한 우오노강과 합류하여 에치고 평야(니가타 평야)로 나와 니가타시에서 동해로 흘러 들어간다. 아가노강 하구와 가까우며, 과거에는 니가타에서 합류하여 하구를 공유하기도 했다.
4. 유역 관리
지쿠마강(千曲川일본어) 상류 유역의 임야는 지쿠마강 상류 산림 계획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57] 하류 유역의 임야는 지쿠마강 하류 산림 계획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역의 중요한 수원지대라는 점 등으로 인해 그 총면적의 약 90%가 보안림으로 지정되어 있다.[58]
5. 수해의 역사
시나노 강 유역은 계절적 강우량 증가로 인해 잦은 홍수 피해를 겪었다. 특히 니가타 평야는 3~4년마다 침수되어 쌀을 비롯한 작물과 마을이 파괴되었다.[23]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지역 주민들은 18세기 초 교호 시대부터 우회 수로 건설을 위한 자금 지원을 시도했다.[28]
1896년 발생한 심각한 홍수와 침수 이후, 정부는 20세기 초에 우회 수로 건설을 지원하였다.[5][7] 1909년에는 10km 길이의 오코즈 분수로(大河津分水路) 건설이 시작되어 1922년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1927년 수로 바닥 침식으로 인해 수문이 붕괴되었고, 1931년까지 완전히 복구되지 못했다.[5][24][7][25]
오코즈 분수로 건설은 니가타 평야의 습지를 건조시켜 농업 생산량을 늘리고, 고속도로 및 신칸센 고속철도 네트워크와 같은 인프라 건설을 가능하게 했다.[5]
그러나 오코즈 분수로 건설 이후에도 니가타 지역의 홍수는 계속되었다. 이에 따라 홍수 위험을 줄이고 시나노 강 하구로의 염수 침입을 막기 위해 에도 시대 (1700년대~1800년대)에 계획되었던 또 다른 수로인 세키야 분수로가 니가타시 서쪽 외곽에 건설되었다. 1968년에 착공하여 1973년에 완공된 세키야 분수로는 길이 1.8km, 폭 240m~280m이며, 퇴적물을 니가타 항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이 수로 위로는 에치고선과 국도 제402호선이 지나간다.[27][28][29]
다음은 시나노 강 유역에서 발생한 주요 수해를 정리한 표이다.
연도 | 사건 | 피해 내용 |
---|---|---|
1620년 (겐나 6년) | 나가오카시 서북 지방 범람 | - |
1868년 (메이지 원년) | - | 유출 가옥 10채 |
1896년 (메이지 29년) | 요코타 절단 | 유출 가옥 2500채, 오오카와즈 수위 4.4m |
1913년 (다이쇼 2년) | 키즈 연못 붕괴 ("키즈 절단") | 침수 1440채, 사망자 2명[78] |
1914년 (다이쇼 3년) | - | 사망자 55명, 침수 7154채, 침수 1881채 |
1917년 (다이쇼 6년) | 소카와 절단 | 사망자 76명, 유출 가옥 19채, 오오카와즈 수위 4.5m |
1926년 (다이쇼 15년) | - | 사망자 1명, 유출 가옥 3채, 침수 250채, 침수 120채 |
1935년 (쇼와 10년) | - | 가옥 침수 425채 |
1949년 (쇼와 24년) | 키티 태풍 | 가옥 전파 1채, 침수 45채, 침수 307채 |
1952년 (쇼와 27년) | - | 사망자 3명, 유출 가옥 1채, 침수 156채, 침수 1858채, 히가시다이 통천 붕괴 |
1956년 (쇼와 31년) | - | 사망자 7명, 침수 730채, 침수 1605채 |
1958년 (쇼와 33년) | - | 사망자 9명, 유출 가옥 19채, 침수 4429채, 침수 7723채 |
1959년 (쇼와 34년) | - | 사망자 3명, 침수 44채, 침수 859채 |
1960년 (쇼와 35년) | - | 사망자 4명, 전파 가옥 2채, 반파 가옥 2채, 침수 1474채, 침수 4602채 |
1961년 (쇼와 36년) | 8월 태풍 | 사망자 3명, 전파 가옥 2채, 반파 가옥 2채, 침수 1474채, 침수 4602채 |
1964년 (쇼와 39년) | - | 전파 가옥 20채, 반파·침수 2730채, 침수 13970채 |
1967년 (쇼와 42년) | - | 전파 가옥 21채, 반파·침수 5072채, 침수 12496채 |
1969년 (쇼와 44년) | 타카야기 강 붕괴 | 사망자 9명, 전파 가옥 122채, 반파·침수 839채, 침수 7447채 |
1978년 (쇼와 53년) | - | 전파 가옥 21채, 반파·침수 4217채, 침수 9035채 |
1981년 (쇼와 56년) | 우오노 강 (무이카마치) 붕괴 | 사망자 2명, 침수 1446채, 침수 1502채 |
1982년 (쇼와 57년) | - | 반파 가옥 1채, 침수 52채, 침수 322채 |
1983년 (쇼와 58년) | - | 침수 12채 |
1985년 (쇼와 60년) | - | 침수 1채, 침수 13채 |
1998년 (헤이세이 10년) | 8월 장마전선[79], 9월 태풍 | 반파 가옥 3채, 침수 1422채, 침수 8842채 (8월), 침수 3채, 침수 183채 (9월) |
2004년 (헤이세이 16년) | 2004년 7월 니가타·후쿠시마 호우 (7·13 수해) | 이가라시 강과 카리야타 강 붕괴, 사망자 15명, 전파 가옥 169채, 반파 가옥 810채, 침수 10712채, 침수 6359채 |
2011년 (헤이세이 23년) | 2011년 7월 니가타·후쿠시마 호우 | 시나노 강 수계 이가라시 강 붕괴, 산조시 중심 피해 |
2019년 (레이와 원년) | 레이와 원년 동일본 태풍 (태풍 19호) | 나가오카시 이마이 지구 침수, 오지야시·쓰난마치 침수, 오코즈 분수 과거 최고 수위 (17.06m) 기록[73] |
5. 1. 나가노현의 수해
仁和|닌나일본어 지진으로 산사태가 발생하여 형성된 천연 댐이 붕괴되면서 大月川|오쓰키 강일본어에서 홍수가 발생했다.[1] 1543년 지쿠마 강 대홍수로 후네야마 성(船山城)이 유실되었다.[1] 1742년 간포(寛保) 2년, 지쿠마 강 사상 최대의 대홍수(술의 만수)로 2,800명이 사망했다.[1] 1847년 젠코지 지진(善光寺地震)으로 토사가 붕괴되어 사이 강을 막았다가 붕괴되면서 하류에 큰 피해를 입혔다.[1] 1959년 태풍 7호로 사망·실종자 65명, 가옥 유실 및 파손 5,482채가 발생했다.[1] 1983년 이야마 시(飯山市) 지쿠마 강 본류 붕괴로 사망자 9명, 가옥 유실 및 파손 3,906채가 발생, 다테가하나(立ヶ花)에서 최고 수위를 기록했다.[1] 2019년 레이와(令和) 원년 동일본 태풍(태풍 19호)으로 나가노 시 호보(穂保) (좌안)에서 지쿠마 강 본류가 붕괴되어 호쿠리쿠 신칸센(北陸新幹線) 나가노 신칸센 차량 센터(長野新幹線車両センター) 등에 큰 피해를 입었고, 우에다 시 스와가타(諏訪形)에서 우에다 전철 벳쇼 선(上田電鉄別所線) 지쿠마 강 교량이 붕괴되었으며, 다테가하나에서 과거 최고 수위를 경신했다.[1]5. 2. 니가타현의 수해
1896년 요코타 절단(横田切れ)으로 가옥 약 2,500채가 유실되었다.[5][7][23][28]1917년에는 소카와 절단(曽川切れ)이 발생하여 소카와 수문 보수 지점에서 붕괴가 발생했고, 76명이 사망했다.[5][7][23][24][25][28]
2004년 니가타·후쿠시마 호우(7·13 수해) 때는 이가라시 강(五十嵐川)과 가리야타 강(刈谷田川)이 붕괴되어 15명이 사망하고, 가옥 11,691채가 유실되거나 파손되었다.[5][7][23][24][25][28]
2019년 레이와 원년 동일본 태풍(태풍 19호)으로 시나노 강이 불어나 나가오카시 내를 흐르는 죠도 강(浄土川)이 범람했다. 오지야시와 쓰난정에서도 시나노 강의 범람으로 침수 피해가 발생했으며, 오코즈 분수(大河津分水路)는 과거 최고 수위를 기록했다.[5][7][23][24][25][28]
6. 생태계
시나노강 유역은 강둑, 강바닥 또는 더 넓은 지역에서 자라는 1,100종 이상의 식물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식물 생태계를 지원하며, 강 안팎에서 다양한 동물 생태계도 지원한다. 그러나 강의 개발은 여러 종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협해 왔다. 전국적으로 멸종 위기 종의 30~50%가 담수 하천 시스템에서 발생하며, 시나노강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도 분명하다. 이는 주로 강에 의존하는 어류와 양서류에 영향을 미친다.[39][40] 농업과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보와 댐 건설, 외래종 도입 및 오염은 생태계 파괴의 주요 원인이었다. 시나노강 유역은 고유종 담수어 및 역이동 어류를 포함하여 일본 어류 종의 약 25%(일본에 서식하는 200종의 어류 중 약 55종)에 서식지를 제공한다.[39][40]
특히 시스템의 중상류 지역에 대규모 댐을 건설하면서 물고기가 강을 따라 상하로 이동하여 동해로 들어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시스템에서 이루어지는 어획량도 크게 증가했으며, 이는 외래 어종과 수생 조류의 유입과 관련이 있다. 강의 개발과 인간 정착은 주요 어류 서식지의 환경 파괴를 초래했다. 시스템의 변화는 강 고유 어종을 지원하고 유지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번식기 연어 낚시 금지, 츠케바 낚시 시설(강둑을 따라 설치된 임시 상점)이 정기적으로 설치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특정 지역의 낚시를 위한 어류 방류 등 몇 가지 조치가 취해졌다.[41][42]
강 시스템은 오랫동안 조류의 서식지였다. 인간 개발의 부정적인 영향은 조류 서식지 변화가 제한적이기 때문에(주변 산에 여전히 남아 있는 숲 포함) 물고기에 비해 조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강 시스템을 자주 찾는 조류는 130종이 넘으며, 여기에는 찌르레기와 오리, 두루미와 따오기와 같은 철새가 포함된다.[39][40]
7. 시나노강 수계 개발사
조몬 시대에는 니가타시를 중심으로 한 에치고 평야의 일부가 동해였다. 그 후, 서서히 시나노강과 아가노강이 운반해 온 토사가 에치고 사구를 형성하여 퇴적되었다. 현재의 에치고 평야를 형성했지만 저습지여서 곳곳에 석호가 존재하고, 물 빠짐이 좋지 않은 지역이었다. 또한 홍수로 인해 여러 번 유로가 바뀌었다.[5][6][11]
1597년(게이초 2년), 에치고국 가스가야마성 성주 우에스기 가게카쓰의 집정으로 명장으로 칭송받은 나오에 가네츠구는 쓰바메・산조 부근의 홍수 조절을 위해 나카노쿠치강을 개삭했다. 이것이 근세 시나노강 치수 역사의 시작이다. 이후 에도 시대에는 신바타번의 번주 미조구치씨와 나가오카번 제9대 번주 마키노 다다키요등이 시나노강의 하천 개수에 힘을 쏟았다. 마키노 다다키요는 신카와 개삭이라는 대사업을 벌여 간바라 평야에 존재했던 3개의 갯벌의 악수를 동해로 배수하여, 간바라 평야의 신전 개발을 성공시켰다.
시나노국・지쿠마강에서도 에도 시대를 통해 64번의 홍수를 기록했고, 사이강과의 동시 홍수조차 11번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후쿠시마 마사노리나 마쓰시로번 번주 마쓰다이라 다다테루의 가로하나이씨 부자, 그리고 마쓰시로번으로 국替え가 된 사나다씨 역대가 제방 축조나 굴착, 하도 변경 등을 여러 번 실시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치수 사업에도 불구하고, 시나노강은 범람을 반복하여 위정자들의 골머리를 앓게 했다. 이러한 가운데 부상한 것이 오코즈 분수루 계획이다.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 공사가 시작된 오오코즈 분수는, 시나노강의 유량을 줄이기 위해 에도 시대부터 계획되었으며, 시나노강을 에치고 평야 중앙부에서 갈라 일본해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1909년(메이지 42년)에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어 1922년(다이쇼 11년)에 물길이 트였고, 2년 뒤인 1924년(다이쇼 13년)에 완성되었다.[80]
1918년(다이쇼 7년)부터 1941년(쇼와 16년)까지는 지쿠마강 제1기 보수 사업이 내무성에 의해 진행되었으나, 홍수는 끊이지 않아 근본적인 해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시나노강은 수량이 풍부하고 상류는 간토 산지, 히다 산맥, 기소 산맥으로 급류를 이루어 수력 발전에 최적이었다. 쇼와 시대 초기에는 구 철도성 (현 JR 동일본)은 시나노강에 대규모 수력 발전소를 건설했다. 1938년 (쇼와 13년)에 시나노강 본류에 미야나카 취수 댐을 건설하고, 신야마모토·아사카와라 조정지 및 센쥬·오지야·신오지야 발전소를 건설하여 수도권의 철도 운전을 위한 전력을 공급했다. (자세한 내용은 시나노강 발전소 참조). 제2차 세계 대전 후, 대규모 양수 발전소가 각지에 건설되었다.
1948년(쇼와 23년)부터 건설성(현재의 국토교통성 호쿠리쿠 지방정비국) 주도로 지쿠마강 제2기 보수 사업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19] 1960년(쇼와 35년), 건설성은 세키야 분수로 건설을 계획했지만, 1964년 니가타 지진(쇼와 39년)으로 니가타 시내가 광범위하게 침수되면서 도야노가타 배수 계획에 착수했다.[19]
1969년(쇼와 44년), 구로카와 방수로가 완성되었고, 1972년(쇼와 47년)에는 세키야 분수로가 통수되었으며, 가마하라 오제키와 나카노쿠치강 수문 건설도 시작되었다.[19] 1974년(쇼와 49년), 건설성은 '''시나노강 수계 공사 실시 기본 계획'''을 개정하고 다목적 댐 건설을 계획했다. 오마치 댐(다카세강)은 1986년(쇼와 61년)에, 미쿠니가와 댐(미쿠니강)은 1993년(헤이세이 5년)에 완공되었다.[19]
1990년대 이후 공공 사업 재검토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높아지면서, 톤강, 요도가와 등 주요 하천에서 댐 건설 중단이 잇따랐다. 시나노강 수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2년에는 키요쓰강 댐(키요쓰강) 건설이 중단되었다. 2003년에는 '타다미 특정 지역 종합 개발 계획'의 일환이었던 '유노타니 양수 발전 계획'과 그 기반인 사나시강 댐(사나시강) 건설이 중단되면서 니가타 분수안은 좌절되었다. 같은 해 미요 강 댐(미요강) 건설도 중단되었다.
2004년 나가노 현 지사 다나카 야스오의 '탈 댐 선언'으로 나가노 현 내 시나노 강 수계 댐 계획이 일괄 중단되었다. 아사카와 댐(아사카와) 등이 대상이 되었으며, 중단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2006년 나가노현 지사 선거에서 다나카는 낙선하고, 무라이 진이 지사로 취임했다. 무라이 진은 '탈 댐 선언'에 대해 처음에는 비판적이었으나, 취임 후에는 댐 건설에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2007년 2월, 하천 내 유수지(구멍 댐) 건설을 긍정하는 판단을 내렸다.[28]
2010년대에도 댐 건설은 계속되어, 히로가미 댐(와다 강. 2011년 준공), 사라시카와 댐(사라시나 강. 2012년 중단) 등이 거론되었다.[28]
2019년 10월, 레이와 원년 동일본 태풍 (태풍 19호)으로 인해 시나노 강 유역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이 태풍을 계기로, 2020년대에는 '시나노강 수계 긴급 치수 대책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28]
7. 1. 선사 시대
조몬 시대에는 니가타시를 중심으로 한 에치고 평야의 일부가 동해였다. 그 후, 서서히 시나노강과 아가노강이 운반해 온 토사가 에치고 사구를 형성하여 퇴적되었다. 현재의 에치고 평야를 형성했지만 저습지여서 곳곳에 석호가 존재하고, 물 빠짐이 좋지 않은 지역이었다. 또한 홍수로 인해 여러 번 유로가 바뀌었다.[5][6][11]7. 2. 중세부터 근세의 치수
1597년(게이초 2년), 에치고국 가스가야마성 성주 우에스기 가게카쓰의 집정으로 명장으로 칭송받은 나오에 가네츠구는 쓰바메・산조 부근의 홍수 조절을 위해 나카노쿠치강을 개삭했다. 이것이 근세 시나노강 치수 역사의 시작이다.우에스기씨 전봉 후 에도 시대, 신바타번의 번주가 된 미조구치씨는 나카노쿠치 부근도 영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역대 번주는 하천 개수를 실시했다.
나가오카번 제9대 번주 마키노 다다키요는 시나노강의 하천 개수에 특히 힘을 쏟았다. 신카와 개삭이라는 대사업을 벌여 간바라 평야에 존재했던 3개의 갯벌의 악수를 동해로 배수하여, 간바라 평야의 신전 개발을 성공시켰다.
시나노국・지쿠마강에서도 에도 시대를 통해 64번의 홍수를 기록했고, 사이강과의 동시 홍수조차 11번을 기록했다. 이 기간 동안 후쿠시마 마사노리나 마쓰시로번 번주 마쓰다이라 다다테루의 가로하나이씨 부자, 그리고 마쓰시로번으로 국替え가 된 사나다씨 역대가 제방 축조나 굴착, 하도 변경 등을 여러 번 실시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치수 사업에도 불구하고, 시나노강은 범람을 반복하여 위정자들의 골머리를 앓게 했다. 이러한 가운데 부상한 것이 오코즈 분수루 계획이다.
7. 3. 근대의 치수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 공사가 시작된 오오코즈 분수는, 시나노강의 유량을 줄이기 위해 에도 시대부터 계획되었으며, 시나노강을 에치고 평야 중앙부에서 갈라 일본해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1909년(메이지 42년)에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어 1922년(다이쇼 11년)에 물길이 트였고, 2년 뒤인 1924년(다이쇼 13년)에 완성되었다.[80]이로 인해 시나노강 하류부의 하천 폭이 대폭 좁아지는 등의 영향이 있었다.
1918년(다이쇼 7년)부터 1941년(쇼와 16년)까지는 지쿠마강 제1기 보수 사업이 내무성에 의해 진행되었으나, 홍수는 끊이지 않아 근본적인 해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7. 4. 일본 굴지의 수력 발전 지대화
시나노강은 수량이 풍부하고 상류는 간토 산지, 히다 산맥, 기소 산맥으로 급류를 이루어 수력 발전에 최적이었다. 다이쇼 시대에는 다카세강의 다카세강 발전소가 건설되었지만, 쇼와 시대 초기에 각지에서 수로식 발전소가 건설되었다.특히, 구 철도성 (현 JR 동일본)은 시나노강에 대규모 수력 발전소를 건설했다. 1938년 (쇼와 13년)에 시나노강 본류에 미야나카 취수 댐을 건설하고, 신야마모토·아사카와라 조정지 및 센쥬·오지야·신오지야 발전소를 건설하여 수도권의 철도 운전을 위한 전력을 공급했다. (자세한 내용은 시나노강 발전소 참조).
제2차 세계 대전 후, 대규모 양수 발전소가 각지에 건설되었다. 특히 아즈사가와의 아즈미·미즈노 발전소 및 다카세강의 신다카세강 발전소, 미나미아이키강의 칸나가와 발전소, 기요쓰강의 오쿠키요쓰·오쿠키요쓰 제2발전소는 일본 유수의 규모를 자랑하며,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는 데 있어 그 중요성이 크다.[43]
7. 5. 전후의 치수 - 댐과 방수로
유역은 수년에 한 번씩 홍수 피해를 입어, 근본적인 치수 대책으로 댐을 이용한 홍수 조절이 추진되었다. 1948년(쇼와 23년)부터 건설성(현재의 국토교통성 호쿠리쿠 지방정비국) 주도로 지쿠마강 제2기 보수 사업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19]
시나노강 수계에서는 건설성 직할 사업보다 먼저 니가타현과 나가노현이 현영 댐 사업을 추진하여 스소바나 댐(스소바나강), 가사보리 댐(가사보리강) 등을 건설했다. 1960년(쇼와 35년), 건설성은 세키야 분수로 건설을 계획했지만, 1964년 니가타 지진(쇼와 39년)으로 니가타 시내가 광범위하게 침수되면서 도야노가타 배수 계획에 착수했다.[19]
1969년(쇼와 44년), 구로카와 방수로가 완성되었고, 1972년(쇼와 47년)에는 세키야 분수로가 통수되었으며, 가마하라 오제키와 나카노쿠치강 수문 건설도 시작되었다.[19]
1969년 8월 집중호우는 유역에 큰 피해를 입혔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1974년(쇼와 49년), 건설성은 '''시나노강 수계 공사 실시 기본 계획'''을 개정하고 다목적 댐 건설을 계획했다. 오마치 댐(다카세강)은 1986년(쇼와 61년)에, 미쿠니가와 댐(미쿠니강)은 1993년(헤이세이 5년)에 완공되었다.[19]
니가타현은 오야 댐(이카라시강)과 하마가와 댐(하마가와)을, 나가노현은 나라이 댐(나라이강)과 오쿠스소바나 댐(스소바나강)을 완공했다. 1990년(헤이세이 2년)에는 나가오카시에 상수도를 공급하기 위해 묘켄 제방(시나노강)이 완공되었다.[19]
7. 6. 공공 사업 재검토와 '탈 댐 선언'
1990년대 이후 공공 사업 재검토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높아지면서, 톤강, 요도가와 등 주요 하천에서 댐 건설 중단이 잇따랐다. 시나노강 수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2년에는 키요쓰강 댐(키요쓰강) 건설이 중단되었다. 2003년에는 '타다미 특정 지역 종합 개발 계획'의 일환이었던 '유노타니 양수 발전 계획'과 그 기반인 사나시강 댐(사나시강) 건설이 중단되면서 니가타 분수안은 좌절되었다. 같은 해 미요 강 댐(미요강) 건설도 중단되었다.1981년 시나노 강 홍수를 계기로 1954년부터 구상했던 ''''지쿠마 강 상류 댐 계획''''이 미나미사쿠군미나미마키무라에 계획되었다. 이 계획은 홍수 조절, 상수도 등을 목적으로 하는 다목적 댐 건설이었으나, 1984년 실시 계획 조사를 위한 예산 책정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미나미마키무라를 비롯한 미나미사쿠군 5개 촌이 건설 추진을 철회하고 반대로 돌아서면서 계획이 동결되었고, 2002년 백지 철회되었다.
2004년 나가노 현 지사 다나카 야스오의 '탈 댐 선언'으로 나가노 현 내 시나노 강 수계 댐 계획이 일괄 중단되었다. 아사카와 댐(아사카와) 등이 대상이 되었으며, 중단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같은 해 7월, 헤이세이 16년 7월 니가타・후쿠시마 호우로 산조시 등이 피해를 입었다. 2006년 7월에는 헤이세이 18년 7월 호우로 덴류 강 유역이 피해를 입으면서, '탈 댐 선언'과 관련된 논란이 다시 불거지기도 했다.
7. 7. 탈・탈 댐 선언 후
2006년 나가노현 지사 선거에서 다나카는 낙선하고, 무라이 진이 지사로 취임했다. 무라이 진은 '탈 댐 선언'에 대해 처음에는 비판적이었으나, 취임 후에는 댐 건설에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2007년 2월, 하천 내 유수지(구멍 댐) 건설을 긍정하는 판단을 내렸다.[28]2010년대에도 댐 건설은 계속되어, 히로가미 댐(와다 강. 2011년 준공), 사라시카와 댐(사라시나 강. 2012년 중단) 등이 거론되었다.[28]
2019년 10월, 레이와 원년 동일본 태풍 (태풍 19호)으로 인해 시나노 강 유역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이 태풍을 계기로, 2020년대에는 '시나노강 수계 긴급 치수 대책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28]
8. 시나노강 수계의 주요 하천
해설 없는 이미지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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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쿠마강은 고부시산 북동쪽 기슭, 사이타마현, 야마나시현, 나가노현 경계에 있는 일본 알프스에서 발원하며, 일부는 지치부 타마 카이 국립공원에 위치한다.[19][20]
요치강과 합류하여 대략 북쪽으로 흘러 유강과 합류한 후, 나가노시 분지로 방향을 틀어 마쓰모토시에서 흘러온 사이강과 호시나강과 합류한다. 지쿠마강은 방향을 바꿔 나가노현에서 니가타현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이름이 시나노강으로 바뀐다.[21] 시나노강은 북동쪽으로 계속 흘러 오지야시와 우오누마시 사이에서 우오노강과 합류한다.
우오노강과 합류한 후, 시나노강은 고시지 다리와 신에츠 본선을 지나 산조시에서 니가타현 에치고 평야로 흘러 들어간다. 에치고 평야에 들어선 후 강은 경사가 매우 완만하여(평균 1/4000) 삼각주를 이루고 습지화된다.[19][21][28][7]
1920년대에 완공된 오코즈 분수로|大河津分水路|Ōkōzu Bunsuiro일본어는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 북서쪽으로 바다로 물길을 돌리고, 강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북동쪽으로 계속 흐른다. 강어귀에서 남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지점에서 강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니가타로 흘러간다.[5]
세키야 분수로는 오코즈 수로 건설 후에도 니가타에서 홍수가 계속 발생함에 따라 1960년대에 완공되었다. 이 수로는 홍수를 완화하기 위해 홍수 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로 물길을 돌리도록 설계되었다. 강은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니가타시를 약 6km 통과한 후 마침내 동해로 흘러 들어간다.[28][19][21]
강은 니가타를 구불구불 흐르면서 여러 번 다리를 지나는데, 1886년에 처음 건설되었을 때 일본에서 가장 긴 다리였던 반다이 다리도 그중 하나로, 당시 길이는 782m였다. 현재 반다이 다리는 1929년에 건설되었으며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길이는 306.9m에 불과하다. 이는 오코즈 우회 수로의 720m 너비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5][22]
시나노강 수계의 주요 하천은 다음과 같다.
현 | 하천 이름 | 지류 및 상세 |
---|---|---|
나가노현 (지쿠마강) | 유카와 (미나미마키촌) | |
아이키강 | ||
누키이강 | ||
나메쓰강 | ||
유카와 (기타사쿠군) | 도로강, 야가사키강, 쇼진바강 | |
시카마게강 | ||
요다강 | 오몬강, 다케시강, 우치무라강 | |
진강 | ||
우라노강 | 구쓰카케강, 유카와 (아오키촌), 산카와, 유카와 (우에다시) | |
세이강 | ||
오카다강 | ||
히루강 | ||
호시나강 | ||
사이강 (아즈사강) | 고오노강 | |
시마시마타니강 | ||
나라이강 | 사사와강, 다강, 우스강, 메도리바강 | |
호타카강 | ||
다카세강 | 노구강 | |
가시마강 | ||
아이다강, 가네구마강, 오미강, 쓰치지리강, 스소바나강 | ||
모모강 | ||
마쓰카와 | ||
아사강 | ||
도리이강 | ||
야마세강 | ||
다루강 | ||
나카쓰강 | 자코강 | |
니가타현 (시나노강) | 기요쓰강 | |
우오노강 | 노보리강, 니시야고강, 후타고사와강, 진지강, 우바사와강, 이치노사와강, 고마쓰자와강 | |
다카다나강, 기타노이리강 | ||
산고쿠강 | ||
미즈나시강 | ||
사나시강, 하마강, 스에자와강, 구로마타강, 니시카와, 와다가와, 하네강, 이모강 | ||
시부우미강 | 고시치강 | |
오타강 | ||
스기시강 | ||
구로강 | ||
오코즈 분수 (신시나노강) | ||
니시카와 | ||
사루하시강 | ||
가리야타강 | ||
나카노쿠치강 | ||
이가라시강 | ||
가모강 | ||
세키야 분수로 | ||
고아가노강 | 노시로강 | |
와시노키오도리강 | ||
쓰센강 | ||
구리노키강 |
9. 시나노강 수계의 하천 시설
시나노강의 물 이용은 본류와 지류에서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인다. 시나노강 본류에는 높이 50m를 넘는 댐이나 다목적 댐은 없지만, 방수로가 많다. 하나의 하천에 방수로가 2곳이나 건설된 것은 시나노강뿐이다. 이는 시나노강의 치수(治水)에 많은 노력이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도네강, 기소강, 요도강만큼 수자원 확보를 위한 체계적인 물 이용 시설이 많지 않고, 주로 치수와 관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반면 지류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치수, 치산, 이수 댐이 건설되어 있다.
수력 발전 시설은 전국적으로도 손꼽힐 만큼 발전량과 발전 시설이 많다. 양수 발전소만 해도 아즈사가와, 아이키가와, 타카세가와, 쿠로마타가와, 키요츠가와 5곳에 건설되었다. JR 동일본은 수도권 철도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전력을 시나노강에서 얻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JR 동일본 시나노강 발전소의 부정 취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9. 1. 댐
지류명(본류)
지류명
지류명
(m)
용량
(천 m3)
동일본 여객철도
등록 유형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