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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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웨일스는 영국에 속한 국가로, 켈트족에서 유래된 언어와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웨일스는 역사적으로 잉글랜드와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1282년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게 된 후에도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웨일스어는 공식 언어 중 하나이며, 영어와 함께 사용된다. 주요 산업으로는 서비스업, 제조업, 농업 등이 있으며, 관광 산업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웨일스는 독특한 지리적 환경과 다양한 문화적 특징을 바탕으로 스포츠, 예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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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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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현지 이름 | 웨일스 |
다른 표기 | |
공식 국명 | "" (웨일스어) "" (영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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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나의 아버지의 땅 |
국가 (원어) | Hen Wlad Fy Nhada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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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어 | 영어 (널리 사용됨) 웨일스어 (토착어) |
데모님 | 웨일스인 |
수도 | 카디프 |
최대 도시 | 카디프 |
표어 | "" (웨일스어) |
표어 설명 | 웨일스여, 영원하라 |
면적 순위 | 영국 내 3위 |
면적 | 20,761 km² |
면적 추기 | 1 |
수역 비율 | 8.5% |
인구 통계 년도 | 2021 |
인구 순위 | 영국 내 3위 |
인구 | 3,107,494명 |
인구 밀도 | 150명/km² |
인구 추기 | 2 |
통화 | 파운드 스털링 (UK 파운드) |
통화 코드 | GBP |
시간대 | 0 |
서머 타임 | +1 |
ISO 3166-1 | GB (GB-WLS) |
국제 전화 번호 | +44 |
주석 | 1. 영국 구성국 중 3위 2. 영국 구성국 중 3위 |
정치 | |
정치 체제 | 자치 의회 입법부 (의회 입헌 군주제 내) |
국왕 | 찰스 3세 |
웨일스 행정수반 | 엘루네드 모건 |
웨일스 담당 국무 장관 | 조 스티븐스 |
하원 의원 수 | 32 |
입법부 | 세네드 |
웨일스 부수반 | 휴 이르란카-데이비스 |
역사 | |
주권 형성 | 그리피드 압 르웰린에 의한 통일 |
형성일 1 | 1057년 |
주권 형성 2 | 러들란 법령 |
형성일 2 | 1284년 3월 3일 |
주권 형성 3 | 웨일스 법령 1535년 및 1542년 |
형성일 3 | 1543년 |
주권 형성 4 | 웨일스어 법 1967년 |
형성일 4 | 1967년 7월 27일 |
주권 형성 5 | 권한 이양 |
형성일 5 | 1999년 7월 1일 |
인구 | |
민족 | 93.8% 백인 2.9% 아시아인 1.6% 혼혈 0.9% 흑인 0.9% 기타 |
민족 년도 | 2021년 |
종교 | 46.5% 무종교 43.6% 기독교 2.2% 이슬람교 0.4% 힌두교 0.3% 불교 0.1% 시크교 0.1% 유대교 0.5% 기타 6.3% 미응답 |
종교 년도 | 2021년 |
경제 | |
국내 총생산 (GVA) | 745억 파운드 |
국내 총생산 (GVA) 년도 | 2022 |
1인당 국내 총생산 (GVA) | 23,804 파운드 |
명목 국내 총생산 (GDP) | 854억 파운드 |
명목 국내 총생산 (GDP) 년도 | 2022 |
1인당 명목 국내 총생산 (GDP) | 27,274 파운드 |
인간 개발 지수 (HDI) | 0.910 |
인간 개발 지수 (HDI) 년도 | 2022 |
기타 | |
최상위 도메인 | .wales .cymru |
공식 웹사이트 | 웨일스 공식 웹사이트 |
2. 어원
영어 단어 'Wales'(웨일스)와 'Welsh'(웰시)는 게르만 어근(단수형은 Walh, 복수형은 Walha)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단어는 로마인들에게 볼카이족으로 알려진 켈트 부족의 이름에서 파생되었다.[332] 앵글로색슨족은 켈트계 브리튼족을 Wælisc라고 칭했고, Wēalas는 그들의 땅을 언급할 때 사용했다.[332] 왈로니아, 왈라키아와 같은 유럽 대륙의 몇몇 지역과 올드 처치 슬라보닉으로 차용한 Vlach 같은 몇몇 민족의 현대 이름도 비슷한 어원을 가진다.[332][333][334][335]
## 고대
역사적으로 이 단어들은 현대의 웨일스인 또는 웨일스어에 제한되지 않았으며, 브리튼에 있는 앵글로색슨족이 브리튼에 있는 다른 비게르만 지역(ex. 콘월) 및 켈트 브리튼과 관련된 앵글로 색슨 족의 영토(ex. 웨스트요크셔주) 등을 포함하여 관련된 모든 것을 언급하기 위하여 이용되었다.[336]
웨일스인들은 자신들을 Cymrycy라고 부르며 웨일스는 Cymrucy라고 부른다. 이 단어들은 '동족들'을 의미하는 브리손어 표현에서 유래된 것이다.[337] Cymry라는 단어의 사용은 현대 웨일스와 북 잉글랜드, 남 스코틀랜드에서 웨일스 사람들(브리손어 화자)의 포스트-로마 시대(앵글로 색슨의 도착 이후)의 위치에서 파생되었다. 현대 웨일스와 Hen Ogledd 웨일스 지역의 웨일스 어족은 다른 민족과는 다른 하나의 민족이라고 강조했다.[338]
3. 역사
웨일스라는 국가는 중세까지 등장하지 않았지만, 웨일스 지역은 최후 빙하기 이후부터 영구적으로 정착되었다.[22] 초기 농부들은 분산된 문화를 보여주는 정착지 유적과 많은 인상적인 장례 기념물을 남겼다. 청동기 시대에 북웨일스의 그레이트 오름은 청동 제련에 중요한 구리의 영국 최대 생산지가 되었다.[23] 아마도 영국, 특히 웨일스의 풍부한 광물 자원이 로마의 침략을 불러들였을 가능성이 높다.[24] 이 무렵 섬은 뚜렷하게 켈트 문화를 지니게 되었고, 신석기 시대 인구는 대부분 대체되었다. 로마인들이 브리튼(Britons)이라고 불렀던 것은 바로 이 철기 시대 켈트 문화와 그들의 공통 언어였다.[25]
로마인들이 떠나자 브리튼은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83년 로마의 철수는 브리튼인들의 로마 이후 국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브리타니아와 갈리아에서 로마 황제로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웨일스어로 웨일스인을 뜻하는 킴리(Cymry)라는 용어가 채택되기 오래 전이었지만, 웨일스가 등장하게 될 브리튼인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만들어졌다.[26]
앵글로색슨 정착민의 침입은 점차 브리튼인들의 토착 문화와 언어를 대체했고, 이 브리튼인들 중 한 무리는 바다와 영국 이웃들에 의해 경계가 지어진 서쪽 반도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고립되었다. 바로 이 영국 이웃들이 그 땅을 발리아(Wallia)라고, 그 사람들을 웨일스인(Welsh)이라고 명명했다.[27] 웨일스의 브리튼계 주민들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앵글로색슨에게 정복당하지는 않았다. 영국의 아더왕 전설은 앵글로색슨에 저항한 브리튼인 왕의 이야기로 여겨진다.
중세 웨일스의 발리아 사람들은 서로 싸우는 만큼 영국 이웃들과도 싸우는 별개의 왕국들로 나뉘어 있었다.[27] 공동체가 동질적인 웨일스인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지명, 역사 기록 및 고고학적 증거는 스완지, 피시가드, 앵글시와 같은 곳에 바이킹/노르웨이 정착민이 해안에 정착했음을 보여주고,[28] 프레스테인과 같은 곳에는 웨일스인들 사이에 앵글로색슨인들이 정착했다.[29]
10세기, 후에 히웰 다가 된 히웰 앱 카델(Hywel ap Cadell)은 디베드와 세이실로그의 상속을 통해 데헤우바스 왕국을 형성한 후, 942년에 그위네드와 포위스 왕국을 장악했다.[30] 거의 모든 웨일스 영토를 장악하면서,[27] 그는 웨일스 법을 성문화했는데, 이 법전은 그의 왕국이 나중에 분열된 후에도 살아남았고, 국가 건설에 중요한 단계가 되었다.[27] 공통된 문화와 외부의 위협으로 웨일스 왕국들은 자신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여기기 시작했다.[27]
한 세기 후, 그위네드 왕국이 부상했고, 그러피드 앱 릴웰린은 1057년까지 모든 반대 세력을 진압하여 웨일스 전체와 국경 지대의 일부 영국 영토를 통일한 유일한 왕이 되었다. “따라서 약 1057년부터 1063년 사망할 때까지 웨일스 전체가 그러피드 앱 릴웰린의 왕권을 인정했다. 약 7년 동안 웨일스는 한 통치자 아래 하나가 되었는데, 이는 전례도 없고 후계자도 없는 위업이었다.”[31]
그러나 그 왕국은 오래가지 못했고, 그러피드는 영국 왕 해롤드의 형제 토스티그의 기습 공격으로 사망했다.[31] 그러피드 사후, 해롤드는 그의 미망인과 결혼했지만, 그녀는 1066년 노르만족의 영국 침략으로 다시 과부가 되었다.[32]
## 중세
중세 웨일스의 발리아 사람들은 서로 싸우는 만큼 영국 이웃들과도 싸우는 별개의 왕국들로 나뉘어 있었다. 공동체가 동질적인 웨일스인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지명, 역사 기록 및 고고학적 증거는 스완지, 피시가드, 앵글시와 같은 곳에 바이킹/노르웨이 정착민이 해안에 정착했음을 보여주고,[28] 프레스테인과 같은 곳에는 웨일스인들 사이에 앵글로색슨인들이 정착했다.[29]
10세기, 후에 히웰 다가 된 히웰 앱 카델(Hywel ap Cadell)은 디베드와 세이실로그의 상속을 통해 데헤우바스 왕국을 형성한 후, 942년에 그위네드와 포위스 왕국을 장악했다.[30] 거의 모든 웨일스 영토를 장악하면서, 그는 웨일스 법을 성문화했는데, 이 법전은 그의 왕국이 나중에 분열된 후에도 살아남았고, 국가 건설에 중요한 단계가 되었다. 공통된 문화와 외부의 위협으로 웨일스 왕국들은 자신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한 세기 후, 그위네드 왕국이 부상했고, 그러피드 앱 릴웰린은 1057년까지 모든 반대 세력을 진압하여 웨일스 전체와 국경 지대의 일부 영국 영토를 통일한 유일한 왕이 되었다. “따라서 약 1057년부터 1063년 사망할 때까지 웨일스 전체가 그러피드 앱 릴웰린의 왕권을 인정했다. 약 7년 동안 웨일스는 한 통치자 아래 하나가 되었는데, 이는 전례도 없고 후계자도 없는 위업이었다.”
그러나 그 왕국은 오래가지 못했고, 그러피드는 영국 왕 해롤드의 형제 토스티그의 기습 공격으로 사망했다.[31] 그러피드 사후, 해롤드는 그의 미망인과 결혼했지만, 그녀는 1066년 노르만족의 영국 침략으로 다시 과부가 되었다.[32]
노르만족은 영국 침략에 이어 웨일스에 침입하여 반독립적인 노르만 웨일스 마치 (국경 지대를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를 형성하고 정복되지 않은 순수한 웨일스(Pura Wallia)와 분리했다. 웨일스 마치 영주의 운명과 여러 웨일스 왕자들의 운명은 흘러갔다가 되돌아왔고, 릴웰린 앱 이오르웨르스(릴웰린 대왕)가 1216년 다른 모든 웨일스 왕자들을 자신에게 복종시킬 때까지 이어졌다.[33] 그러나 릴웰린의 사후 웨일스는 다시 분열되었고, 그의 손자인 릴웰린 압 그리피드가 1267년 몽고메리 조약에서 영국 왕 헨리 3세에 의해 웨일스 공으로 인정받으면서 다시 최고 권력을 확보했다.[34]
헨리의 후계자 에드워드 1세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정복 전쟁으로 이어졌고, 1283년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35] 이듬해 러들랜 법령으로 웨일스의 독립은 끝났다. 웨일스는 에드워드가 통치하는 공국과 봉건 영주가 통치하는 마치로 나뉘었다.[36] 이것은 오웬 글린드르의 웨일스 봉기 (1400-1415)에도 불구하고,[37] 웨일스의 지지를 받은 튜더 왕가의 부상까지 지속되었다.[38] 헨리 8세의 웨일스 법률로 웨일스인들은 의회 대표를 가진 영국 왕국의 완전한 시민이 되었다.[39] 웨일스 국경도 공식적으로 정의되었고 영토가 재통합되었다.[40]
## 잉글랜드 왕국에 통합
1258년에 웨일스의 사실상 통치자였던 그위네드 왕 루엘린 압 그리피드가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을 자칭하며 '''웨일스 공국'''(Principality of Wales)이 성립하였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압력과 더불어 웨일스 내부의 권력 투쟁이 심화되었고, 옥스퍼드 조항 이후 영미법의 지배로 웨일스는 약화되어 점차 잉글랜드에 복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1282년, 루엘린 압 그리피드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에게 패한 이후로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점령되어 지배를 받게 되었다(Conquest of Wales by Edward I). 웨일스는 잉글랜드의 한 지역이 되었고, 에드워드 1세는 장남 에드워드(에드워드 2세)에게 웨일스 공의 칭호를 부여하여 웨일스의 군주로 삼아 통치하게 하였다. 이후로 잉글랜드 왕세자는 대대로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의 칭호를 계승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정복되어 그 통치를 받게 되었지만, 이것이 오히려 웨일스인의 민족 의식을 강화시켰다. 웨일스인들은 잉글랜드와의 동화를 완강하게 거부했고, 이 땅에 정착한 대부분의 이민족들은 웨일스화되었다고 한다. 잉글랜드 내에서도 웨일스의 장궁(장궁) 부대는 강력한 전력으로 명성을 떨치며 잉글랜드 왕의 군대에 없어서는 안 될 전력이 되었다.
장미 전쟁(1455년 – 1485년) 당시 웨일스는 정치적 다툼의 무대가 되었고, 1485년 보즈워스 전투에서 승리한 리치먼드 백작이 헨리 7세로 즉위하여 웨일스인 웨일즈 공의 혈통을 이어 잉글랜드 왕가에 자리 잡았다(튜더 왕조). 후대의 튜더 왕가에서는 1536년 label=합병법/Laws in Wales Acts 1535–1542영어에 의한 웨일스 합병으로 단일 국가인 "잉글랜드 왕국" 또는 "잉글랜드와 웨일즈"가 되었고, 이 왕조의 신하들 중 웨일스인들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경위로 웨일스인들은 이 왕조의 헨리 8세부터 엘리자베스 1세까지의 국왕들이 추진한 잉글랜드 국교회 창설 등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 근대
1283년 러들랜 법령으로 웨일스의 독립은 끝났다.[36] 웨일스는 에드워드가 통치하는 공국과 봉건 영주가 통치하는 마치로 나뉘었다.[36] 오웬 글린드르의 웨일스 봉기(1400-1415)에도 불구하고,[37] 웨일스의 지지를 받은 튜더 왕가의 부상까지 이러한 상황은 지속되었다.[38] 장미 전쟁(1455년 – 1485년) 당시 웨일스는 정치적 다툼의 무대가 되었고, 1485년 보즈워스 전투에서 승리한 리치먼드 백작이 헨리 7세로 즉위하여 웨일스인 웨일즈 공의 혈통을 이어 잉글랜드 왕가에 튜더 왕조를 열었다. 후대의 튜더 왕가에서는 1536년 웨일스 법률(합병법)에 의한 웨일스 합병으로 단일 국가인 "잉글랜드 왕국" 또는 "잉글랜드와 웨일즈"가 되었고,[39] 이 왕조의 신하들 중 웨일스인들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 웨일스 국경도 공식적으로 정의되었고 영토가 재통합되었다.[40] 이러한 경위로 웨일스인들은 이 왕조의 헨리 8세부터 엘리자베스 1세까지의 국왕들이 추진한 잉글랜드 국교회 창설 등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크롬웰의 독재(잉글랜드 공화국) 이후 정치적 영향력은 줄었지만, 웨일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았고, 21세기인 현재에도 매우 강하다고 여겨진다.
1707년 연합 조약으로 대영제국이 성립되었다.[41] 산업혁명과 제국의 시작은 웨일스의 천연 자원(금속, 석탄, 슬레이트)의 채굴과 개발을 급속히 증가시켰다. 웨일스 인구는 급증했고,[42] 웨일스는 영국 경제의 중심으로 이동했지만, 이러한 변화는 영국 국가가 아닌 산업가들에 대한 반감을 낳았다.[47] 한편, 일련의 종교 부흥 운동은 비국교도의 전통을 시작하면서 국가의 성격을 변화시켰다.[43]
웨일스 일부 지역의 급속한 산업화는 강력하고 급진적인 웨일스 노동 계급 운동을 낳았는데, 이는 1831년 머서 봉기, 널리 퍼진 차티즘 지지, 그리고 1839년 뉴포트 봉기로 이어졌다.[44] 강력한 자유주의 전통이 형성된 후 사회주의로 대체되었다.[45] 1922년 이후 웨일스는 모든 총선에서 노동당에 투표했다.[46]
19세기 중반부터 1914년까지 웨일스는 강화된 정치 문화, 종교 및 문화 부흥, 웨일스 문학에 대한 관심 증가, 에이스테드포드의 부흥을 경험했다. 번영하는 경제, 웨일스어와 음악에 대한 관심 증가, 비국교도 기독교, 강력한 국가 정체성의 등장, 그리고 많은 국가 기관의 설립이 있었다.[47] 그러나 이 기간에는 푸른 책의 배신으로 알려진 교육 보고서가 발표되었는데, 이는 웨일스어와 비국교도를 열악한 교육 수준의 원인으로 지목했고, 이중 언어 교육을 요구하게 되었다.[48] 이는 더 큰 자치와 영국 내 웨일스 정체성의 인정을 주장하는 킴루 피드 운동에서 표현된 웨일스 민족주의 운동의 부상에 기여했다.[49] 분권에 대한 요구는 한 세기 동안 증가했고, 1998년 웨일스 정부법에 따라 최초로 분권된 웨일스 의회가 설립되었고, 현재는 세네드 또는 웨일스 의회로 이름이 바뀌었다.[50]
3. 1. 고대
웨일스라는 국가는 중세까지 등장하지 않았지만, 웨일스 지역은 최후 빙하기 이후부터 영구적으로 정착되었다.[22] 초기 농부들은 분산된 문화를 보여주는 정착지 유적과 많은 인상적인 장례 기념물을 남겼다. 청동기 시대에 북웨일스의 그레이트 오름은 청동 제련에 중요한 구리의 영국 최대 생산지가 되었다.[23] 아마도 영국, 특히 웨일스의 풍부한 광물 자원이 로마의 침략을 불러들였을 가능성이 높다.[24] 이 무렵 섬은 뚜렷하게 켈트 문화를 지니게 되었고, 신석기 시대 인구는 대부분 대체되었다. 로마인들이 브리튼(Britons)이라고 불렀던 것은 바로 이 철기 시대 켈트 문화와 그들의 공통 언어였다.[25]
로마인들이 떠나자 브리튼은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83년 로마의 철수는 브리튼인들의 로마 이후 국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브리타니아와 갈리아에서 로마 황제로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웨일스어로 웨일스인을 뜻하는 킴리(Cymry)라는 용어가 채택되기 오래 전이었지만, 웨일스가 등장하게 될 브리튼인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만들어졌다.[26]
앵글로색슨 정착민의 침입은 점차 브리튼인들의 토착 문화와 언어를 대체했고, 이 브리튼인들 중 한 무리는 바다와 영국 이웃들에 의해 경계가 지어진 서쪽 반도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고립되었다. 바로 이 영국 이웃들이 그 땅을 발리아(Wallia)라고, 그 사람들을 웨일스인(Welsh)이라고 명명했다.[27] 웨일스의 브리튼계 주민들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앵글로색슨에게 정복당하지는 않았다. 영국의 아더왕 전설은 앵글로색슨에 저항한 브리튼인 왕의 이야기로 여겨진다.
중세 웨일스의 발리아 사람들은 서로 싸우는 만큼 영국 이웃들과도 싸우는 별개의 왕국들로 나뉘어 있었다.[27] 공동체가 동질적인 웨일스인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지명, 역사 기록 및 고고학적 증거는 스완지, 피시가드, 앵글시와 같은 곳에 바이킹/노르웨이 정착민이 해안에 정착했음을 보여주고,[28] 프레스테인과 같은 곳에는 웨일스인들 사이에 앵글로색슨인들이 정착했다.[29]
10세기, 후에 히웰 다가 된 히웰 앱 카델(Hywel ap Cadell)은 디베드와 세이실로그의 상속을 통해 데헤우바스 왕국을 형성한 후, 942년에 그위네드와 포위스 왕국을 장악했다.[30] 거의 모든 웨일스 영토를 장악하면서,[27] 그는 웨일스 법을 성문화했는데, 이 법전은 그의 왕국이 나중에 분열된 후에도 살아남았고, 국가 건설에 중요한 단계가 되었다.[27] 공통된 문화와 외부의 위협으로 웨일스 왕국들은 자신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여기기 시작했다.[27]
한 세기 후, 그위네드 왕국이 부상했고, 그러피드 앱 릴웰린은 1057년까지 모든 반대 세력을 진압하여 웨일스 전체와 국경 지대의 일부 영국 영토를 통일한 유일한 왕이 되었다. “따라서 약 1057년부터 1063년 사망할 때까지 웨일스 전체가 그러피드 앱 릴웰린의 왕권을 인정했다. 약 7년 동안 웨일스는 한 통치자 아래 하나가 되었는데, 이는 전례도 없고 후계자도 없는 위업이었다.”[31]
그러나 그 왕국은 오래가지 못했고, 그러피드는 영국 왕 해롤드의 형제 토스티그의 기습 공격으로 사망했다.[31] 그러피드 사후, 해롤드는 그의 미망인과 결혼했지만, 그녀는 1066년 노르만족의 영국 침략으로 다시 과부가 되었다.[32]
3. 2. 중세
웨일스라는 국가가 중세까지 등장하지 않았지만, 웨일스 지역은 최후 빙하기 이후부터 영구적으로 정착되었다.[22] 초기 농부들은 많은 인상적인 장례 기념물과 함께 분산된 문화를 보여주는 정착지 유적을 남겼다.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북웨일스의 그레이트 오름은 청동을 제련하는 데 중요한 광석 중 하나인 구리의 영국 최대 생산지가 되었다.[23] 아마도 영국, 특히 웨일스의 풍부한 광물 자원이 로마의 침략을 불러들였을 가능성이 높다.[24]
로마인들이 브리튼(Britons)이라고 불렀던 것은 바로 이 철기 시대 켈트 문화와 그들의 공통 언어였다.[25]
로마인들이 떠나자 브리튼은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383년 로마의 철수는 브리튼인들의 로마 이후 국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브리타니아와 갈리아에서 로마 황제로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웨일스어로 웨일스인을 뜻하는 킴리(Cymry)라는 용어가 채택되기 오래 전이었지만, 웨일스가 등장하게 될 브리튼인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만들어졌다.[26]
앵글로색슨 정착민의 침입은 점차 브리튼인들의 토착 문화와 언어를 대체했고, 이 브리튼인들 중 한 무리는 바다와 영국 이웃들에 의해 경계가 지어진 서쪽 반도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고립되었다. 바로 이 영국 이웃들이 그 땅을 발리아(Wallia)라고, 그 사람들을 웨일스인(Welsh)이라고 명명했다.[27]
중세 웨일스의 발리아 사람들은 서로 싸우는 만큼 영국 이웃들과도 싸우는 별개의 왕국들로 나뉘어 있었다. 공동체가 동질적인 웨일스인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지명, 역사 기록 및 고고학적 증거는 스완지, 피시가드, 앵글시와 같은 곳에 바이킹/노르웨이 정착민이 해안에 정착했음을 보여주고,[28] 프레스테인과 같은 곳에는 웨일스인들 사이에 앵글로색슨인들이 정착했다.[29]
10세기, 후에 히웰 다가 된 히웰 앱 카델(Hywel ap Cadell)은 디베드와 세이실로그의 상속을 통해 데헤우바스 왕국을 형성한 후, 942년에 그위네드와 포위스 왕국을 장악했다.[30] 거의 모든 웨일스 영토를 장악하면서, 그는 웨일스 법을 성문화했는데, 이 법전은 그의 왕국이 나중에 분열된 후에도 살아남았고, 국가 건설에 중요한 단계가 되었다. 공통된 문화와 외부의 위협으로 웨일스 왕국들은 자신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한 세기 후, 그위네드 왕국이 부상했고, 그러피드 앱 릴웰린은 1057년까지 모든 반대 세력을 진압하여 웨일스 전체와 국경 지대의 일부 영국 영토를 통일한 유일한 왕이 되었다. “따라서 약 1057년부터 1063년 사망할 때까지 웨일스 전체가 그러피드 앱 릴웰린의 왕권을 인정했다. 약 7년 동안 웨일스는 한 통치자 아래 하나가 되었는데, 이는 전례도 없고 후계자도 없는 위업이었다.”
그러나 그 왕국은 오래가지 못했고, 그러피드는 영국 왕 해롤드의 형제 토스티그의 기습 공격으로 사망했다.[31] 그러피드 사후, 해롤드는 그의 미망인과 결혼했지만, 그녀는 1066년 노르만족의 영국 침략으로 다시 과부가 되었다.[32]
노르만족은 영국 침략에 이어 웨일스에 침입하여 반독립적인 노르만 웨일스 마치 (국경 지대를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를 형성하고 정복되지 않은 순수한 웨일스(Pura Wallia)와 분리했다. 웨일스 마치 영주의 운명과 여러 웨일스 왕자들의 운명은 흘러갔다가 되돌아왔고, 릴웰린 앱 이오르웨르스(릴웰린 대왕)가 1216년 다른 모든 웨일스 왕자들을 자신에게 복종시킬 때까지 이어졌다.[33] 그러나 릴웰린의 사후 웨일스는 다시 분열되었고, 그의 손자인 릴웰린 압 그리피드가 1267년 몽고메리 조약에서 영국 왕 헨리 3세에 의해 웨일스 공으로 인정받으면서 다시 최고 권력을 확보했다.[34]
헨리의 후계자 에드워드 1세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정복 전쟁으로 이어졌고, 1283년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35] 이듬해 러들랜 법령으로 웨일스의 독립은 끝났다. 웨일스는 에드워드가 통치하는 공국과 봉건 영주가 통치하는 마치로 나뉘었다.[36] 이것은 오웬 글린드르의 웨일스 봉기 (1400-1415)에도 불구하고,[37] 웨일스의 지지를 받은 튜더 왕가의 부상까지 지속되었다.[38] 헨리 8세의 웨일스 법률로 웨일스인들은 의회 대표를 가진 영국 왕국의 완전한 시민이 되었다.[39] 웨일스 국경도 공식적으로 정의되었고 영토가 재통합되었다.[40]
3. 3. 잉글랜드 왕국에 통합
1258년에 웨일스의 사실상 통치자였던 그위네드 왕 루엘린 압 그리피드가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을 자칭하며 '''웨일스 공국'''(Principality of Wales)이 성립하였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압력과 더불어 웨일스 내부의 권력 투쟁이 심화되었고, 옥스퍼드 조항 이후 영미법의 지배로 웨일스는 약화되어 점차 잉글랜드에 복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1282년, 루엘린 압 그리피드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에게 패한 이후로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점령되어 지배를 받게 되었다(Conquest of Wales by Edward I). 웨일스는 잉글랜드의 한 지역이 되었고, 에드워드 1세는 장남 에드워드(에드워드 2세)에게 웨일스 공의 칭호를 부여하여 웨일스의 군주로 삼아 통치하게 하였다. 이후로 잉글랜드 왕세자는 대대로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의 칭호를 계승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정복되어 그 통치를 받게 되었지만, 이것이 오히려 웨일스인의 민족 의식을 강화시켰다. 웨일스인들은 잉글랜드와의 동화를 완강하게 거부했고, 이 땅에 정착한 대부분의 이민족들은 웨일스화되었다고 한다. 잉글랜드 내에서도 웨일스의 장궁(장궁) 부대는 강력한 전력으로 명성을 떨치며 잉글랜드 왕의 군대에 없어서는 안 될 전력이 되었다.
장미 전쟁(1455년 – 1485년) 당시 웨일스는 정치적 다툼의 무대가 되었고, 1485년 보즈워스 전투에서 승리한 리치먼드 백작이 헨리 7세로 즉위하여 웨일스인 웨일즈 공의 혈통을 이어 잉글랜드 왕가에 자리 잡았다(튜더 왕조). 후대의 튜더 왕가에서는 1536년 label=합병법/Laws in Wales Acts 1535–1542영어에 의한 웨일스 합병으로 단일 국가인 "잉글랜드 왕국" 또는 "잉글랜드와 웨일즈"가 되었고, 이 왕조의 신하들 중 웨일스인들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경위로 웨일스인들은 이 왕조의 헨리 8세부터 엘리자베스 1세까지의 국왕들이 추진한 잉글랜드 국교회 창설 등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3. 4. 근대
1283년 루드란 법령으로 웨일스의 독립은 끝났다.[36] 웨일스는 에드워드가 통치하는 공국과 봉건 영주가 통치하는 마치로 나뉘었다.[36] 오웬 글린드르의 웨일스 봉기(1400-1415)에도 불구하고,[37] 웨일스의 지지를 받은 튜더 왕가의 부상까지 이러한 상황은 지속되었다.[38] 장미 전쟁(1455년 – 1485년) 당시 웨일스는 정치적 다툼의 무대가 되었고, 1485년 보즈워스 전투에서 승리한 리치먼드 백작이 헨리 7세로 즉위하여 웨일스인 웨일즈 공의 혈통을 이어 잉글랜드 왕가에 튜더 왕조를 열었다. 후대의 튜더 왕가에서는 1536년 웨일스 법률(합병법)에 의한 웨일스 합병으로 단일 국가인 "잉글랜드 왕국" 또는 "잉글랜드와 웨일즈"가 되었고,[39] 이 왕조의 신하들 중 웨일스인들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 웨일스 국경도 공식적으로 정의되었고 영토가 재통합되었다.[40] 이러한 경위로 웨일스인들은 이 왕조의 헨리 8세부터 엘리자베스 1세까지의 국왕들이 추진한 잉글랜드 국교회 창설 등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크롬웰의 독재(잉글랜드 공화국) 이후 정치적 영향력은 줄었지만, 웨일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았고, 21세기인 현재에도 매우 강하다고 여겨진다.
1707년 연합 조약으로 대영제국이 성립되었다.[41] 산업혁명과 제국의 시작은 웨일스의 천연 자원(금속, 석탄, 슬레이트)의 채굴과 개발을 급속히 증가시켰다. 웨일스 인구는 급증했고,[42] 웨일스는 영국 경제의 중심으로 이동했지만, 이러한 변화는 영국 국가가 아닌 산업가들에 대한 반감을 낳았다.[47] 한편, 일련의 종교 부흥 운동은 비국교도의 전통을 시작하면서 국가의 성격을 변화시켰다.[43]
웨일스 일부 지역의 급속한 산업화는 강력하고 급진적인 웨일스 노동 계급 운동을 낳았는데, 이는 1831년 머서 봉기, 널리 퍼진 차티즘 지지, 그리고 1839년 뉴포트 봉기로 이어졌다.[44] 강력한 자유주의 전통이 형성된 후 사회주의로 대체되었다.[45] 1922년 이후 웨일스는 모든 총선에서 노동당에 투표했다.[46]
19세기 중반부터 1914년까지 웨일스는 강화된 정치 문화, 종교 및 문화 부흥, 웨일스 문학에 대한 관심 증가, 에이스테드포드의 부흥을 경험했다. 번영하는 경제, 웨일스어와 음악에 대한 관심 증가, 비국교도 기독교, 강력한 국가 정체성의 등장, 그리고 많은 국가 기관의 설립이 있었다.[47] 그러나 이 기간에는 푸른 책의 배신으로 알려진 교육 보고서가 발표되었는데, 이는 웨일스어와 비국교도를 열악한 교육 수준의 원인으로 지목했고, 이중 언어 교육을 요구하게 되었다.[48] 이는 더 큰 자치와 영국 내 웨일스 정체성의 인정을 주장하는 킴루 피드 운동에서 표현된 웨일스 민족주의 운동의 부상에 기여했다.[49] 분권에 대한 요구는 한 세기 동안 증가했고, 1998년 웨일스 정부법에 따라 최초로 분권된 웨일스 의회가 설립되었고, 현재는 세네드 또는 웨일스 의회로 이름이 바뀌었다.[50]
4. 정치
웨일스는 영국이라는 주권 국가의 일부인 국가이다.[13] 2011년 이전에는 ISO 3166-2:GB에서 웨일스를 공국으로 정의했으나, 웨일스 의회의 요청과 존 그리피스 당시 웨일스 법무장관의 발언에 따라 '국가'로 대체되었다.[51][52] 영국 정부 지명 가이드라인 역시 웨일스를 공국이 아닌 국가로 명시하고 있다.[53]
하원에는 웨일스 선거구를 대표하는 32명의 국회의원(MP)이 있다.[54][55] 웨일스 사무소는 웨일스를 담당하는 영국 정부 부처이며, 장관인 웨일스 담당 국무장관(웨일스 장관)은 영국 내각에 참여한다.[56]
웨일스는 분권된 단원제 입법부인 세네드(Senedd Cymru – 웨일스 의회)를 가지고 있으며, 예약 권한 모델을 통해 영국 의회로부터 분권된 권한을 행사한다.[57] 1997년 분권 이후, 1998년 웨일스 정부법에 따라 웨일스 국민의회가 설립되었고,[60] 2006년 웨일스 정부법으로 더 많은 권한이 부여되었다. 2011년 국민투표를 통해 세네드는 분권화된 주제 영역에 대해 영국 의회의 승인 없이 법률을 제정할 권한을 얻었으며, 세금 징수 권한도 얻었다.[61] 2020년 5월, 국민의회는 "세네드 컴리" 또는 "웨일스 의회"로 이름이 바뀌었다.[62]
분권화된 책임 영역에는 농업, 경제 개발, 교육, 보건, 주택, 지방 정부, 사회복지, 관광, 교통 및 웨일스어가 포함된다.[63] 웨일스 정부는 해외에서도 웨일스의 이익을 증진한다.[64]
지방 정부는 1996년부터 22개의 "주요 지역"으로 나뉘어 있으며,[58] 이들은 모든 지방 정부 서비스 제공을 담당한다.[59]
전통적으로 웨일스 법은 히웰 다 왕에 의해 편찬된 '히웰 다의 법'()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민법 및 관습법을 성문화한 것이다.[65] 이 법은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리웰린 압 그루피드의 사망 후 웨일스 공국을 합병하고 루들란 법령을 시행하기 전까지 웨일스에서 유효했다. 잉글랜드의 헨리 8세의 1535년과 1542년 웨일스 법령 이후에는 웨일스 전체에 영국법이 적용되었다.[66][67] 1746년 웨일스와 버윅 법령은 잉글랜드에 적용되는 모든 법률이 웨일스에도 자동 적용됨을 규정했으나, 1967년 폐지되었다. 1536년 이후로 영국법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법 체계가 되었다.[68]
영국법은 관습법 체계로, 판례가 구속력을 가진다. 영국 최고 법원이 최고 항소 법원이며, 잉글랜드와 웨일스 고등 법원은 최고의 1심 법원이자 항소 법원이다. 사소한 사건은 치안 판사 법원 또는 카운티 법원에서 심리한다. 2007년 웨일스는 독자적인 법적 단위가 되었지만, 여전히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단일 사법권의 일부로 남아 있다.[69]
세네드는 웨일스의 특수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영국 의회 체계 외부에서 법률을 초안하고 승인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국민투표에서 승인된 권한에 따라, 2006년 웨일스 정부법에 열거된 20개 항목에 관한 1차 입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70]
웨일스는 디페드-파위스 경찰, 구엔트 경찰, 노스웨일스 경찰, 사우스웨일스 경찰의 네 지역 경찰서 관할이다.[71] 웨일스에는 다섯 개의 웨일스의 교도소가 있으며, 여성 교도소는 없어 여성 수감자는 잉글랜드에 수감된다.[72]
5. 지리
웨일스의 인구는 2020년 기준 추정 3,170,000명이며 총 면적은 20,779 km2이다. 지리적으로 북온대 지대에 위치하여 변화무쌍한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웨일스 해안길의 전체 길이는 1,200km가 넘고 웨일스 전역에는 산악 지대가 널리 분포하며, 영국 중북부 지역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스노든산이 위치하고 있다.[97]
웨일스는 북온대 지역에 위치해 있다. 웨일스는 변화무쌍한 해양성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습한 국가 중 하나이다.[98][99] 웨일스의 날씨는 종종 흐리고 습하며 바람이 많이 불고, 여름은 따뜻하고 겨울은 온화하다.[98][100]
- 최고 기온: 37.1 °C (플린트셔주, 하워든에서 2022년 7월 18일 기록)[101]
- 최저 기온: -23.3 °C (래드너셔주(현재 파위스주) 레이더에서 1940년 1월 21일 기록)[102]
- 월 최대 일조시간: 354.3시간 (펨브룩셔주, 데일 포트에서 1955년 7월 기록)[103]
- 월 최소 일조시간: 2.7시간 (브레크녹셔주, Llwynon에서 1962년 1월 기록)[103]
- 일일 최대 강수량 (0900 UTC − 0900 UTC): 211 mm (글러모건주, 론다에서 1929년 11월 11일 기록)[104]
- 가장 습한 지역 – 연평균 4473 mm의 강수량을 기록하는 스노도니아의 크리브 고치 (영국에서 가장 습한 지역이기도 함).[105]

웨일스는 런던 서쪽 약 200km에 위치하며, 아일랜드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리버풀만, 카디건만, 브리스톨 해협에 둘러싸여 있다. 국토의 대부분은 산악 지대로, 남북으로 캄브리아 산맥이 뻗어 있다. 그 이름은 웨일스의 옛 이름으로, 지질 시대의 고생대 캄브리아기에도 명명되었다. 더 나아가 이 지역을 조사한 지질학자가 부족 이름에서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도 명명했다. 북쪽의 스노도니아 국립공원에는 최고봉 스노돈산(Snowdon, 표고 1085m)이 우뚝 솟아 있다. 스노도니아, 브레컨비컨스, 펨브룩셔 해안 등이 있는 고워 반도, 펨브룩셔 해안 등이 있는 카디건만은 경치가 아름다워 유산 해안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대서양에 면한 해안은 많은 난파선을 낸 곳이기도 하다. 주요 도시는 카디프, 스완지, 렉섬, 뉴포트 등이 있다.
웨일스에는 숲, 호수, 구릉, 해안 등 풍부한 자연이 남아 있다. 면적의 약 20%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5. 1. 지질학
웨일스는 고생대 초기 지질 시대인 캄브리아기 지층이 발견된 캄브리아 산맥이 있는 곳이다.[93][94] 19세기 중반, 로데릭 머치슨과 아담 세지윅은 웨일스 지질학 연구를 통해 지층학과 고생물학의 특정 원리를 확립했다. 고생대의 다음 두 시대인 오르도비스기와 실루리아기는 이 지역의 고대 켈트족 부족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95][96]5. 2. 동식물
웨일스의 야생 동물은 영국과 유사하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긴 해안선 덕분에 웨일스에는 다양한 바닷새가 서식하는데, 해안과 주변 섬에는 가넷류, 맨섬슴새, 퍼핀류, 가마우지류, 가마우지류 및 알락슴새류 군집이 있다.[106][107] 웨일스의 60%가 해발 150m 이상인 고지대이기 때문에 큰까마귀와 검은지빠귀를 포함한 다양한 고지대 서식지 조류도 서식한다.[106][107] 맹금류에는 쇠황조롱이, 개구리매 및 웨일스 야생 동물의 국가 상징인 붉은독수리가 포함된다.[108] 왕립조류보호협회(RSPB)의 콘위 보호구역에서는 계절 방문객을 포함하여 200종이 넘는 다양한 조류가 관찰되었다.[109]갈색곰, 늑대, 야생 고양이를 포함한 대형 포유류는 노르만 시대에 멸종되었다. 현재는 땃쥐, 들쥐, 오소리, 수달, 족제비, 흰족제비, 고슴도치 및 15종의 박쥐가 서식하고 있다. 목도리쥐와 개암쥐 2종의 작은 설치류는 역사적으로 방해받지 않은 국경 지역에서 발견되어 웨일스 특유의 동물로 주목받고 있다.[110] 담비는 1950년대 이후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가 2015년부터 웨일스 일부 지역에 재도입되었다.[111] 영국에서 거의 멸종 위기에 놓였던 족제비는 웨일스에서 명맥을 유지했고 현재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스노도니아에서는 들염소를 볼 수 있다.[112] 2021년 3월, 웨일스자연자원청(Natural Resources Wales)(NRW)은 웨일스 최초의 공식적인 비버 방사를 위해 디피 계곡에 최대 6마리의 비버를 방사하는 허가를 승인했다.[113]
고워, 펨브룩셔, 카디건 베이의 남서부 웨일스 해역에는 고래상어, 대서양 회색물범, 바다거북, 돌고래, 돌고래, 해파리, 게, 바닷가재 등의 해양 동물이 서식한다. 특히 펨브룩셔와 세레디기온은 큰돌고래의 국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뉴키는 영국 전역에서 큰돌고래가 여름에 유일하게 서식하는 곳이다. 주목할 만한 강어류에는 살벨리누스, 뱀장어, 연어, 섐, 빙어, 무지개송어가 있으며, 귀이빨붕어는 발라 호에서만 발견되는 웨일스 고유종이다. 웨일스는 조개, 삿갓조개, 홍합, 고둥을 포함한 조개류로 유명하다. 청어, 고등어, 대구는 웨일스의 일반적인 해양 어류이다.[115]
스노도니아의 북쪽 고지대는 상징적인 스노돈 백합 – ''가가에 세로티나'' – 및 ''돌꽃(Saxifraga cespitosa)'', ''돌꽃(Saxifraga oppositifolia)'', ''패랭이꽃(Silene acaulis)''과 같은 다른 고산 종을 포함한 빙하기 이전의 잔존 식물상을 지지한다. 웨일스에는 앵글시의 점박이 바위장미 ''튜베라리아 구타타''와 고워의 ''드라바 아이조이데스''를 포함하여 영국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식물 종이 있다.[116] 약 2,500개의 사용되지 않는 석탄 폐기장은 웨일스에서 가장 희귀한 육상 무척추동물의 서식지로 여겨지며, 웨일스 정부의 연구 대상이다.[114]
6. 경제
지난 250년 동안 웨일스는 주로 농업 국가에서 산업 국가로, 그리고 후기 산업 사회 경제로 변모했다.[117]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서비스 부문이 일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는 대부분의 선진 경제를 특징짓는 현상이다.[118] 1970년대 웨일스는 전통적인 중공업에서 경공업 또는 서비스업으로 크게 전환되었고, 외국 기업 유치에 성공했지만, 새로운 산업의 대부분은 본질적으로 분공장 역할을 했고, 컨베이어 벨트식 작업으로 숙련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19세기 중반부터 전후 시대까지 석탄 채굴과 수출이 주요 산업이었다. 1913년 생산량 정점 시에는 남웨일스 탄전에서 약 23만 3천 명의 남녀가 일하며 5,600만 톤의 석탄을 채굴했다.[127] 카디프는 한때 세계 최대 석탄 수출항이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몇 년 동안 런던이나 리버풀보다 더 많은 화물을 처리했다.[128] 1920년대 웨일스 남성 인구의 40% 이상이 중공업에 종사했다.[129] 필 윌리엄스에 따르면, 대공황은 "석탄과 강철에 대한 압도적인 의존" 때문에 남북 웨일스를 "황폐화"시켰다.[129]
18세기 중반부터 산업 개발이 진행되면서 웨일스의 풍부한 지하자원이 활용되어 산업혁명을 뒷받침하였다. 1900년대 초의 폭발적인 성장은 1920년대에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고, 여전히 오래된 중공업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영국의 더욱 풍부해지는 경공업 분야가 성장하였다.
웨일스 대부분 지역의 척박한 토양은 곡물 재배에 적합하지 않아, 축산업이 농업의 중심이 되었다. 토지 표면의 약 78%가 농업에 사용된다.[133] 세 개의 국립공원과 블루 플래그 해변을 갖춘 웨일스의 풍경은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여 농촌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있다.[134]
OECD와 유로스타트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웨일스의 국내총생산(GDP)은 750억 파운드였으며, 2017년 대비 3.3% 증가했다. 2018년 웨일스의 1인당 GDP는 23,866파운드로 2017년 대비 2.9% 증가했다. 이는 이탈리아의 1인당 GDP 25,000파운드, 스페인 22,000파운드, 슬로베니아 20,000파운드, 뉴질랜드 30,000파운드와 비교된다.[119][120] 2019년 웨일스는 전력 순수출국이었다. 27.9TWh의 전력을 생산했지만 14.7TWh만 소비했다.[123] 웨일스 정부는 2021년, 웨일스의 에너지 수요 절반 이상이 재생에너지로 충당되고 있으며, 그중 2%는 363개의 수력 발전 프로젝트에서 생산된다고 밝혔다.[124]
7. 교통
## 도로
웨일스 남부에서는 M4 고속도로가 해안을 따라 카디프, 뉴포트, 스완지 등의 도시들을 연결하여 잉글랜드의 런던까지 이어진다.[143] M4 고속도로의 세번 강(세번 교량)에서 종점까지의 웨일스 구간은 웨일스 의회(Welsh Assembly Government)의 관할이다.[143]
북부에서는 A55 고속도로가 홀리헤드, 뱅거, 콘위 등을 연결하여 해안을 따라 잉글랜드의 체스터로 이어진다.[144] A5 도로는 홀리헤드에서 아일랜드와 런던을 잇는 도로로 건설되었으며, 뱅거에서 산악 지대를 통과하여 잉글랜드의 슈루즈베리 등을 거쳐 런던으로 향한다.
웨일스 남북을 잇는 주요 도로로는 카디프와 스란디드노를 잇는 A470 도로가 있다.[145]
## 철도
웨일스의 철도 교통은 웨일스 정부가 감독하는 웨일스 & 보더스 프랜차이즈를 포함하며, 대부분의 여객 서비스는 웨일스 교통 철도(Transport for Wales Rail)가 운영한다.[146] 1960년대의 비칭 삭감(Beeching cuts)으로 인해 남아있는 대부분의 철도망은 아일랜드로 가는 페리를 위한 아일랜드 해 항구와 연결되는 동서 방향 여행에 맞춰져 있다.[147] 웨일스 북부와 남부를 잇는 서비스는 영국의 체스터와 헤리퍼드 도시와 슈롭셔, 오스웨스트리를 위한 고보웬 마을을 거쳐 웨일스 마치스 선(Welsh Marches Line)을 따라 운행되며, 스완지에서 란도베리, 란드린도드, 나이튼까지 웨일스 하트 선(Heart of Wales Line)의 열차가 크레이븐 암스에서 웨일스 마치스 선과 연결된다. 웨일스의 열차는 주로 디젤 동력이지만, 런던 패딩턴에서 카디프까지 운행하는 서비스가 이용하는 그레이트 웨스턴 본선(Great Western Main Line)의 남웨일스 본선(South Wales Main Line) 지선은 전철화 공사 중에 있지만, 이 프로그램은 상당한 지연과 비용 초과를 경험했다.[148] 웨일스 북부와 남부를 더 잘 연결하기 위해 북남 철도가 제안되었다.[149][150][151]
웨일스의 철도는 카디프 중앙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있다. 웨일스 의회가 철도망을 감독하고 있다. 여객 철도 회사로는 웨일스 전역을 운행하는 트랜스포트 포 웨일스 레일 서비스(Transport for Wales Rail Services) 외에, 아반티 웨스트 코스트가 북부에서 런던으로, 그레이트 웨스턴 레일웨이(브리스틀・런던 방면), 크로스컨트리(버밍엄・노팅엄 방면)가 남부로 진입하고 있다.
## 항공 및 페리
카디프 공항은 웨일스의 국제공항이다.[152] 유럽, 아프리카, 북미 지역으로의 항공편을 제공하며, 카디프 시내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약 19km 떨어진 글러머건 계곡(Vale of Glamorgan)에 위치해 있다.[153] 앵글시(밸리)와 카디프 간 웨일스 내부 항공편은 2017년부터 이스트런 에어웨이즈가 운항했으나, 2022년 현재는 운항되지 않는다. 다른 국내선은 잉글랜드 북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로 운항된다. 웨일스에는 4개의 상업용 페리 항구가 있다. 홀리헤드, 펨브룩 독, 피시가드는 아일랜드로 정기적으로 페리를 운항한다. 스완지와 코크 간 페리 서비스는 2006년에 중단되었다가 2010년 3월에 재개되었으나 2012년에 다시 중단되었다.[154]
7. 1. 도로
웨일스 남부에서는 M4 고속도로가 해안을 따라 카디프, 뉴포트, 스완지 등의 도시들을 연결하여 잉글랜드의 런던까지 이어진다.[143] M4 고속도로의 세번 강(세번 교량)에서 종점까지의 웨일스 구간은 웨일스 의회(Welsh Assembly Government)의 관할이다.[143]북부에서는 A55 고속도로가 홀리헤드, 뱅거, 콘위 등을 연결하여 해안을 따라 잉글랜드의 체스터로 이어진다.[144] A5 도로는 홀리헤드에서 아일랜드와 런던을 잇는 도로로 건설되었으며, 뱅거에서 산악 지대를 통과하여 잉글랜드의 슈루즈베리 등을 거쳐 런던으로 향한다.
웨일스 남북을 잇는 주요 도로로는 카디프와 스란디드노를 잇는 A470 도로가 있다.[145]
7. 2. 철도
웨일스의 철도 교통은 웨일스 정부가 감독하는 웨일스 & 보더스 프랜차이즈를 포함하며, 대부분의 여객 서비스는 웨일스 교통 철도(Transport for Wales Rail)가 운영한다.[146] 1960년대의 비칭 삭감(Beeching cuts)으로 인해 남아있는 대부분의 철도망은 아일랜드로 가는 페리를 위한 아일랜드 해 항구와 연결되는 동서 방향 여행에 맞춰져 있다.[147] 웨일스 북부와 남부를 잇는 서비스는 영국의 체스터와 헤리퍼드 도시와 슈롭셔, 오스웨스트리를 위한 고보웬 마을을 거쳐 웨일스 마치스 선(Welsh Marches Line)을 따라 운행되며, 스완지에서 란도베리, 란드린도드, 나이튼까지 웨일스 하트 선(Heart of Wales Line)의 열차가 크레이븐 암스에서 웨일스 마치스 선과 연결된다. 웨일스의 열차는 주로 디젤 동력이지만, 런던 패딩턴에서 카디프까지 운행하는 서비스가 이용하는 그레이트 웨스턴 본선(Great Western Main Line)의 남웨일스 본선(South Wales Main Line) 지선은 전철화 공사 중에 있지만, 이 프로그램은 상당한 지연과 비용 초과를 경험했다.[148] 웨일스 북부와 남부를 더 잘 연결하기 위해 북남 철도가 제안되었다.[149][150][151]
웨일스의 철도는 카디프 중앙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있다. 웨일스 의회가 철도망을 감독하고 있다. 여객 철도 회사로는 웨일스 전역을 운행하는 트랜스포트 포 웨일스 레일 서비스(Transport for Wales Rail Services) 외에, 아반티 웨스트 코스트가 북부에서 런던으로, 그레이트 웨스턴 레일웨이(브리스틀・런던 방면), 크로스컨트리(버밍엄・노팅엄 방면)가 남부로 진입하고 있다.
7. 3. 항공 및 페리
카디프 공항은 웨일스의 국제공항이다.[152] 유럽, 아프리카, 북미 지역으로의 항공편을 제공하며, 카디프 시내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약 19km 떨어진 글러머건 계곡(Vale of Glamorgan)에 위치해 있다.[153] 앵글시(밸리)와 카디프 간 웨일스 내부 항공편은 2017년부터 이스트런 에어웨이즈가 운항했으나, 2022년 현재는 운항되지 않는다. 다른 국내선은 잉글랜드 북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로 운항된다. 웨일스에는 4개의 상업용 페리 항구가 있다. 홀리헤드, 펨브룩 독, 피시가드는 아일랜드로 정기적으로 페리를 운항한다. 스완지와 코크 간 페리 서비스는 2006년에 중단되었다가 2010년 3월에 재개되었으나 2012년에 다시 중단되었다.[154]8. 교육
웨일스에는 독자적인 교육 시스템이 발전해 왔다.[156] 18세기 이전의 정규 교육은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최초의 문법학교는 루딘, 브레컨, 카우브리지와 같은 웨일즈 도시에 설립되었다.[156] 최초의 성공적인 학교 시스템 중 하나는 그리피스 존스가 1730년대에 도입한 순회학교였는데, 이는 당시 국가 인구의 절반에게 읽기 교육을 제공한 것으로 여겨진다.[157]
19세기 초, 영어는 웨일즈 학교의 일반적인 교육 언어가 되었다. 당시 웨일즈 노동 계급은 대부분 웨일스어를 사용했지만, 웨일즈 여론은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기를 원했다. 19세기 전반 많은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웨일스어를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체벌을 사용했다. 이러한 관행은 19세기 후반 감소했다. 영국 정부는 학교에서 웨일스어 사용을 금지한 적은 없지만, 영어를 가정된 교육 언어로 간주했다. 19세기 중후반 웨일스어 사용 지역의 학교에서는 점진적으로 웨일스어가 더 많이 사용되었고, 19세기 후반부터 웨일스어 교육이 중간 정도의 정부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웨일즈 대학교가 1872년 아베리스트위스에 문을 열었다. 카디프와 뱅거가 뒤이어 설립되었고, 세 대학은 1893년에 통합하여 웨일즈 대학교를 설립했다.[157] 1889년 웨일즈 중등 교육법에 따라 95개의 중등학교가 설립되었다. 1907년에는 교육위원회 웨일즈 부서가 설립되어 웨일스에 최초의 중요한 교육 분권화가 이루어졌다.[157] 20세기 후반 유치원 및 초등학교 수준에서 웨일스어 학교가 부활하면서 웨일스어 교육에 대한 태도가 변화했다.[158] 웨일스어는 웨일즈의 모든 국립학교에서 5세부터 16세까지의 학생들에게 필수 과목이다.[159] 웨일스어 전용 대학은 없었지만, 웨일스어 중등 교육은 개별 대학교를 통해 제공되며, 2011년부터는 분산형 연방 기관인 콜레그 킴라에그 케네드라에톨(웨일스어 국립 대학)의 지원을 받고 있다.
2021-2022년 웨일즈에는 1,470개의 공립학교가 있었다.[160] 2021-22년 웨일즈에는 25,210명의 정규직 교사가 471,131명의 학생을 가르쳤다.[161][162]
9. 보건
웨일스의 공공 의료 서비스는 웨일스 국민보건서비스(NHS Wales) (GIG Cymrucy)를 통해 제공된다.[163] 이는 1946년 국민보건법(National Health Service Act 1946)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위한 NHS 구조의 일부로 설립되었지만, 1969년 웨일스 장관에게 NHS에 대한 권한이 이관되었다.[163] 1999년 분권화에 따라 웨일스 NHS에 대한 책임은 웨일스 의회로 이관되었으며, 현재는 보건 및 사회복지부 장관(Minister for Health and Social Services)의 책임이다.[164]
역사적으로 웨일스는 자발적인 기관으로 건설된 소규모 병원들에 의해 운영되었다.[165] 그러나 더 새롭고, 더 비싸고, 진단 기술과 치료법이 이용 가능해짐에 따라, 임상 업무는 새롭고 더 큰 지역 병원에 집중되었다.[165] 2006년에는 웨일스에 17개의 지역 병원이 있었다.[165]
웨일스 국민보건서비스(NHS Wales)는 9만 명이 넘는 직원을 직접 고용하여 웨일스에서 가장 큰 고용주이다.[166] 2021-22년 웨일스 전국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성인의 72%가 양호하거나 매우 양호한 일반 건강 상태를, 19%가 보통의 일반 건강 상태를, 8%가 불량하거나 매우 불량한 일반 건강 상태를 보고했다.[167] 이 조사는 웨일스 성인의 46%가 관절염, 천식, 당뇨병 또는 심장병과 같은 장기간 질병을 앓고 있다고 기록했다.[168] 또한 성인 인구의 13%가 흡연자이며, 16%가 주간 권장 기준치를 초과하는 음주를 인정했고, 56%가 매주 권장되는 150분의 신체 활동을 했다고 보고했다.[169] 웨일스 성인의 30%가 전날 과일이나 채소를 5인분 이상 먹었다고 보고했고, 36%가 건강한 체중이라고 보고했다.[170]
10. 인구
|영국 인구 통계}}
== 인구 변화 ==
웨일스의 인구는 1536년 278,000명에서 2021년 3,107,500명으로 증가했다.[173] 1801년 587,000명이었던 인구는 1851년 1,163,000명으로 두 배가 되었고, 1911년에는 2,421,000명에 달했다.[171] 인구 증가의 대부분은 글러머건셔를 비롯한 석탄 채굴 지역에서 발생했다.[174] 이러한 증가는 인구 전환과 산업혁명 기간 동안 웨일스로의 대규모 이주로 설명할 수 있다. 영국인이 가장 큰 집단이었고, 아일랜드인도 상당수 유입되었으며, 이탈리아인을 포함한 다른 소수 민족도 남부 웨일스로 이주했다.[175][176]
20세기에 웨일스는 영국 연방의 여러 지역에서 이민을 받았고, 아프리카-카리브해 및 아시아계 공동체는 특히 도시 웨일스에서 민족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다.[177] 1972년 인구는 274만 명이었고, 그 후 10년 동안 대체로 정체되었으나, 1980년대 초반에는 순 이동으로 인해 인구가 감소했다. 1980년대 이후 순이동은 일반적으로 유입되었으며, 자연 변화보다 인구 증가에 더 많이 기여했다.[178]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웨일스의 거주 인구는 3,107,500명이었으며, 2011년 대비 1.4% 증가했다.[179] 2021년 웨일스는 잉글랜드와 웨일스 인구의 5.2%를 차지했다.[180]
== 주요 도시 ==
웨일스의 지방 행정은 1996년 4월 1일 이후 22개의 단일 행정체(유니터리)로 나뉘어 있으며, 9개 주(county), 3개 시(city)*, 10개 주 자치구(county borough)†로 구성되어 있다. 각 행정체는 대등한 관계를 가지며 상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 1 머서 티드필 (Merthyr Tudfulcy) †
- 2 케어필리 (Caerffilicy) †
- 3 블레나우 그웬트 (Blaenau Gwentcy) †
- 4 토르파엔 (Tor-faency) †
- 5 몬머스셔 (Sir Fynwycy)
- 6 뉴포트 (Casnewyddcy) *
- 7 카디프 (Caerdyddcy) *
- 8 베일 오브 글라모건 (Bro Morgannwgcy) †
- 9 브리젠드 (Pen-y-bont ar Ogwrcy) †
- 10 론다 커넌 타프 (Rhondda Cynon Tâfcy) †
- 11 니스 포트 탈봇 (Castell-nedd Port Talbotcy) †
- 12 스완지 (Abertawecy) *
- 13 카마르선 (Sir Gaerfyrddincy)
- 14 세레디기온 (Sir Ceredigioncy)
- 15 파위스 (Powyscy)
- 16 렉섬 (Wrecsamcy) †
- 17 플린트셔 (Sir y Fflintcy)
- 18 덴비셔 (Sir Ddinbychcy)
- 19 콘위 (Conwycy) †
- 20 그위네드 (Gwyneddcy)
- 21 앵글시 (Ynys Môncy)
- 22 펨브룩셔 (Sir Benfrocy)
== 언어 ==
웨일스어는 오랫동안 웨일스 지역에서 사용되었으나 16세기부터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17세기 중반에는 영어에 밀려 시골 노인들이나 쓰는 방언으로 치부되기도 하였다.[339][340][341][342][343] 그러나 18세기 후반 웨일스 문화 복고 열풍이 불면서 웨일스어는 일부 학자들에게 '가장 멋진 언어'로 숭배되기도 하였다. 19세기 초반에는 웨일스어의 우수성을 찬양하는 서적과 논문들이 출판되었으나, 이는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쇠퇴하여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약 70만 명이 웨일스어를 사용한다.[339][340][341][342][343]

2011년 웨일스어(웨일스) 조치에 따라 웨일스어는 웨일스의 공식 언어가 되었다.[183] 웨일스어와 영어는 모두 세네드의 공식 언어이기도 하다.[184] 1901년에는 웨일스 인구의 거의 절반(50%) 가량이 웨일스어를 사용했지만, 1911년에는 43.5%로 감소했고, 1981년에는 18.9%까지 떨어졌다.[185] 그러나 2001년 인구 조사에서 3세 이상 인구 중 웨일스어 사용자 수가 21%로 증가했는데, 이는 1991년 18.7%, 1981년 19%와 비교하면 증가한 수치이다.[186] 2011년 인구 조사에서는 웨일스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이 19%로 감소했지만(1991년보다 여전히 높음), 웨일스 인구의 전반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웨일스어 사용자 수는 2001년 58만 2000명에서 2011년 56만 2000명으로 감소했다.[187] 2021년 인구 조사에서는 3세 이상 웨일스 인구 중 17.8%(53만 8300명)가 웨일스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188]
현재 웨일스에서는 웨일스어가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된다. 도로 표지판과 공문서에는 두 언어로 표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웨일스로 들어오는 국경 근처 표지판에는 "Welcome to Wales"와 "Croeso i Cymru"(크로이소 이 쿰리)라고 쓰여 있다. 웨일스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며, 대부분 지역에서 주요 언어이다. 웨일스 전역에서 코드 전환이 일반적이다.[190] "Wenglish"는 영어의 웨일스 방언이며, 웨일스어 문법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191]
폴란드가 유럽 연합에 가입한 이후 웨일스에서는 폴란드 이민자가 크게 증가하여 폴란드어가 영어와 웨일스어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가 되었으며, 인구의 0.7%를 차지한다.[193]
북부와 서부에서는 웨일스어가 제1언어로 사용되고 영어는 제2언어이다. 특히 스노돈산 부근의 구이네드 지방에서 웨일스어 사용자가 많다. 이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가족이나 이웃과 웨일스어로 대화하며 영어를 배우는 것은 그 이후이다. 2001년 당시 웨일스 인구의 21.7%가 웨일스어를 읽거나 쓸 수 있으며, 16%만이 어려움 없이 대화, 읽기, 쓰기가 가능하다고 응답했다.[326]
== 종교 ==
1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웨일스의 종교 생활은 여러 형태의 기독교가 지배해 왔다.[194][195]
웨일스의 수호성인은 세인트 데이비드(Dewi Santcy)이며, 세인트 데이비드의 날(Dydd Gŵyl Dewi Santcy)은 매년 3월 1일에 기념된다.[197]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46.5%가 "무종교"라고 응답하여 단일 종교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며, 2011년 32.1%에서 증가했다.[196] 웨일스에서 가장 큰 종교는 기독교이며, 2021년 인구 조사에서 43.6%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혔다.[196] 20세기 초에는 1904~1905년 웨일스 부흥이라는 종교 부흥 운동이 있었는데, Evan Roberts의 전도 활동을 통해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 때로는 전체 공동체가 비국교 기독교로 개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198]
웨일스 교회는 5만 6천 명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으며, 가장 많은 출석률을 기록하고 있다.[199] 웨일스 교회는 앵글리칸 공동체의 일부이며, 1920년 1914년 웨일스 교회법에 따라 국교에서 분리될 때까지 영국국교회의 일부였다. 웨일스 최초의 독립 교회는 1638년 William Wroth에 의해 Llanvaches에 설립되었다. 웨일스 장로교회는 18세기 웨일스 감리교 부흥에서 시작되었고 1811년 영국국교회에서 분리되었다.[200] 웨일스에서 두 번째로 많은 신도 수를 가진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며, 약 4만 3천 명의 신도가 있다고 추산된다.[199]
웨일스의 비기독교 종교는 소규모이며, 인구의 약 2.7%를 차지한다.[201] 이슬람교가 가장 큰 비기독교 종교이며, 2011년 인구 조사에서 2만 4천 명(0.8%)의 무슬림이 보고되었다.[201] 뉴포트, 카디프, 스완지 등 남웨일스 도시에는 힌두교와 시크교 신자 공동체도 있으며, 불교도는 서부 농촌 카운티인 세레디기온에 가장 많이 거주한다.[202] 유대교는 로마 시대 이후 웨일스에 처음으로 정착한 비기독교 종교였지만, 2001년에는 약 2,000명으로 감소했고,[203] 2019년에는 수백 명에 불과했다.[204]
== 민족 ==
웨일스는 영국의 다른 지역과 정치적, 사회적 역사를 밀접하게 공유하며, 공식적으로 웨일스어와 영어를 사용하는 이중 언어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영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웨일스는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웨일스 내에는 560,000명 이상이 웨일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이들은 주로 웨일스 북부와 서부에 거주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약 70만 명이 웨일스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웨일스는 노래, 춤, 시 낭송, 문학, 악기 연주 등을 겨루는 대회인 이스테드보드를 통해 '노래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이스테드보드는 1176년에 최초로 개최된 유서 깊은 전통을 지니고 있다. 전통적으로 웨일스인들은 활기차고 경쾌하며, 이웃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즐겼다. 하프 음악 문화가 발달했고, 음유시인들은 웨일스어로 시를 썼으며 정기적인 경연 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부터 잉글랜드 문화가 유입되면서 웨일스 고유 문화는 점차 사라졌고, 18세기 초반에는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18세기 초반 웨일스어 서적은 자취를 감추었고 하프 가락에 맞춰 노래하는 것은 저급한 것으로 여겨졌다. 현대 웨일스 문화는 잉글랜드 문화와 융합되어 큰 차이가 없어졌다.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웨일스 인구의 93.8%가 "백인"으로, 2011년 95.6%에 비해 감소했다.[205] 2021년 인구의 90.6%는 "웨일스인, 잉글랜드인, 스코틀랜드인, 북아일랜드인 또는 영국인 백인"으로 나타났다.[205] 두 번째로 많은 민족은 인구의 2.9%를 차지하는 "아시아계, 아시아계 웨일스인 또는 아시아계 영국인"이었으며, 2011년에는 2.3%였다.[205] 인구의 1.6%는 "혼혈 또는 다민족"(2011년 1.0%), 0.9%는 "흑인, 흑인 웨일스인, 흑인 영국인, 카리브해인 또는 아프리카인"(2011년 0.6%), 0.9%는 "기타 민족"(2011년 0.5%)으로 나타났다.[205] "백인"을 제외한 "다민족"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주로 카디프, 뉴포트, 스완지와 같은 도시 지역이었다.[205] 웨일스 가구의 5.3%는 다민족 가구였으며, 이는 2011년 4.2%에서 증가한 수치다.[205]
2021년, 웨일스 최초의 흑인 교장인 베티 캠벨(Betty Campbell)을 기리는 최초의 여성 실존 인물 야외 동상이 세워졌다.[206] 2023년, 타이거 베이(Tiger Bay) 출신으로 셜리 베이시(Shirley Bassey)와 동시대 인물인 패티 플린(Patti Flynn)이 퍼플 플라크(보라색 명판)를 받은 최초의 흑인 웨일스 여성이 되었다.[206] 2024년, 보건부 장관(Vaughan Gething)이 웨일스의 수상으로 선출되어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후 유럽 최초의 흑인 정부 수반이 되었다.[207]
== 국가 정체성 ==
2021년 인구조사에서 웨일스인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55.2%가 "웨일스인만"으로, 8.1%가 "웨일스인이자 영국인"으로 응답하여, 총 63.3%가 웨일스인으로 식별되었다.[208] 2022년 연례 인구 조사에서는 62.3%가 웨일스인으로 식별되었는데, 이는 2001년의 69.2%에 비해 감소한 수치이다.[209] 2022년 YouGov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7%가 어느 정도 자신을 웨일스인으로 여긴다고 답했다.[210]
웨일스는 현대 켈트 민족으로 여겨지며,[238][239] 웨일스 예술가들은 켈트 축제에 정기적으로 참가한다.[240] 붉은 용은 국가 정체성과 자부심의 주요 상징이며, 웨일스 민족의 용감함을 의인화한다.[241]
웨일스의 붉은 용은 카드왈라드르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1959년에 공식 깃발이 되었다.[244] 오웬 글린더의 깃발은 웨일스 국민성과 관련이 있으며, 리웰린 압 그루피드의 문장과 유사하다.[245] 오웬 글린더의 날은 9월 16일에 기념되며, 국가 공휴일 지정 요청이 있었다.[246][247][248] 웨일스 공의 깃털 또한 웨일스에서 사용되며, 여러 웨일스 대표팀과 영국 육군의 웨일스 연대가 이 배지를 사용한다.[249][250]
3월 1일은 웨일스 사람들이 수호성인 성 데이비드의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252] 이 날은 공식 공휴일은 아니지만, 공휴일 지정 요청이 있었다.[253][254][255] 웨일스 전역의 학교와 문화 단체에서 기념되며, 마늘이나 수선화를 착용하고, 어린이들은 전통 의상을 입는다.[256] 수선화는 19세기에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장려로 인기를 얻었다.[257] 다른 웨일스 축제로는 Mabsant가 있지만 현재는 거의 지켜지지 않으며,[258] Dydd Santes Dwynwen은 1월 25일에 발렌타인 데이와 유사하게 지켜진다.[259]
"Hen Wlad Fy Nhadaucy" ()는 웨일스의 사실상 국가이며, 공식 행사에서 연주된다.[260] "Cymru am bythcy" ("웨일스 영원히")는 인기 있는 웨일스 모토이다.[261] 또 다른 웨일스 모토인 "Y Ddraig Goch Ddyry Cychwyn"("붉은 용은 행동을 고무시킨다")는 웨일스 왕실 배지에 사용되었다.[262]
10. 1. 인구 변화
웨일스의 인구는 1536년 278,000명에서 2021년 3,107,500명으로 증가했다.[173] 1801년 587,000명이었던 인구는 1851년 1,163,000명으로 두 배가 되었고, 1911년에는 2,421,000명에 달했다.[171] 인구 증가의 대부분은 글러머건셔를 비롯한 석탄 채굴 지역에서 발생했다.[174] 이러한 증가는 인구 전환과 산업혁명 기간 동안 웨일스로의 대규모 이주로 설명할 수 있다. 영국인이 가장 큰 집단이었고, 아일랜드인도 상당수 유입되었으며, 이탈리아인을 포함한 다른 소수 민족도 남부 웨일스로 이주했다.[175][176]20세기에 웨일스는 영국 연방의 여러 지역에서 이민을 받았고, 아프리카-카리브해 및 아시아계 공동체는 특히 도시 웨일스에서 민족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다.[177] 1972년 인구는 274만 명이었고, 그 후 10년 동안 대체로 정체되었으나, 1980년대 초반에는 순 이동으로 인해 인구가 감소했다. 1980년대 이후 순이동은 일반적으로 유입되었으며, 자연 변화보다 인구 증가에 더 많이 기여했다.[178]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웨일스의 거주 인구는 3,107,500명이었으며, 2011년 대비 1.4% 증가했다.[179] 2021년 웨일스는 잉글랜드와 웨일스 인구의 5.2%를 차지했다.[180]
10. 2. 주요 도시
웨일스의 지방 행정은 1996년 4월 1일 이후 22개의 단일 행정체(유니터리)로 나뉘어 있으며, 9개 주(county), 3개 시(city)*, 10개 주 자치구(county borough)†로 구성되어 있다. 각 행정체는 대등한 관계를 가지며 상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1 머서 티드필 (Merthyr Tudfulcy) †
- 2 케어필리 (Caerffilicy) †
- 3 블레나우 그웬트 (Blaenau Gwentcy) †
- 4 토르파엔 (Tor-faency) †
- 5 몬머스셔 (Sir Fynwycy)
- 6 뉴포트 (Casnewyddcy) *
- 7 카디프 (Caerdyddcy) *
- 8 베일 오브 글라모건 (Bro Morgannwgcy) †
- 9 브리젠드 (Pen-y-bont ar Ogwrcy) †
- 10 론다 커넌 타프 (Rhondda Cynon Tâfcy) †
- 11 니스 포트 탈봇 (Castell-nedd Port Talbotcy) †
- 12 스완지 (Abertawecy) *
- 13 카마르선 (Sir Gaerfyrddincy)
- 14 세레디기온 (Sir Ceredigioncy)
- 15 파위스 (Powyscy)
- 16 렉섬 (Wrecsamcy) †
- 17 플린트셔 (Sir y Fflintcy)
- 18 덴비셔 (Sir Ddinbychcy)
- 19 콘위 (Conwycy) †
- 20 그위네드 (Gwyneddcy)
- 21 앵글시 (Ynys Môncy)
- 22 펨브룩셔 (Sir Benfrocy)
10. 3. 언어
웨일스어는 오랫동안 웨일스 지역에서 사용되었으나 16세기부터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17세기 중반에는 영어에 밀려 시골 노인들이나 쓰는 방언으로 치부되기도 하였다.[339][340][341][342][343] 그러나 18세기 후반 웨일스 문화 복고 열풍이 불면서 웨일스어는 일부 학자들에게 '가장 멋진 언어'로 숭배되기도 하였다. 19세기 초반에는 웨일스어의 우수성을 찬양하는 서적과 논문들이 출판되었으나, 이는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쇠퇴하여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약 70만 명이 웨일스어를 사용한다.[339][340][341][342][343]2011년 웨일스어(웨일스) 조치에 따라 웨일스어는 웨일스의 공식 언어가 되었다.[183] 웨일스어와 영어는 모두 세네드의 공식 언어이기도 하다.[184] 1901년에는 웨일스 인구의 거의 절반(50%) 가량이 웨일스어를 사용했지만, 1911년에는 43.5%로 감소했고, 1981년에는 18.9%까지 떨어졌다.[185] 그러나 2001년 인구 조사에서 3세 이상 인구 중 웨일스어 사용자 수가 21%로 증가했는데, 이는 1991년 18.7%, 1981년 19%와 비교하면 증가한 수치이다.[186] 2011년 인구 조사에서는 웨일스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이 19%로 감소했지만(1991년보다 여전히 높음), 웨일스 인구의 전반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웨일스어 사용자 수는 2001년 58만 2000명에서 2011년 56만 2000명으로 감소했다.[187] 2021년 인구 조사에서는 3세 이상 웨일스 인구 중 17.8%(53만 8300명)가 웨일스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188]
현재 웨일스에서는 웨일스어가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된다. 도로 표지판과 공문서에는 두 언어로 표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웨일스로 들어오는 국경 근처 표지판에는 "Welcome to Wales"와 "Croeso i Cymru"(크로이소 이 쿰리)라고 쓰여 있다. 웨일스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며, 대부분 지역에서 주요 언어이다. 웨일스 전역에서 코드 전환이 일반적이다.[190] "Wenglish"는 영어의 웨일스 방언이며, 웨일스어 문법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191]
폴란드가 유럽 연합에 가입한 이후 웨일스에서는 폴란드 이민자가 크게 증가하여 폴란드어가 영어와 웨일스어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가 되었으며, 인구의 0.7%를 차지한다.[193]
북부와 서부에서는 웨일스어가 제1언어로 사용되고 영어는 제2언어이다. 특히 스노돈산 부근의 구이네드 지방에서 웨일스어 사용자가 많다. 이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가족이나 이웃과 웨일스어로 대화하며 영어를 배우는 것은 그 이후이다. 2001년 당시 웨일스 인구의 21.7%가 웨일스어를 읽거나 쓸 수 있으며, 16%만이 어려움 없이 대화, 읽기, 쓰기가 가능하다고 응답했다.[326]
10. 4. 종교
1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웨일스의 종교 생활은 여러 형태의 기독교가 지배해 왔다.[194][195] 웨일스의 수호성인은 세인트 데이비드(Dewi Santcy)이며, 세인트 데이비드의 날(Dydd Gŵyl Dewi Santcy)은 매년 3월 1일에 기념된다.[197]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46.5%가 "무종교"라고 응답하여 단일 종교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며, 2011년 32.1%에서 증가했다.[196] 웨일스에서 가장 큰 종교는 기독교이며, 2021년 인구 조사에서 43.6%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혔다.[196] 20세기 초에는 1904~1905년 웨일스 부흥이라는 종교 부흥 운동이 있었는데, Evan Roberts의 전도 활동을 통해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 때로는 전체 공동체가 비국교 기독교로 개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198]
웨일스 교회는 5만 6천 명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으며, 가장 많은 출석률을 기록하고 있다.[199] 웨일스 교회는 앵글리칸 공동체의 일부이며, 1920년 1914년 웨일스 교회법에 따라 국교에서 분리될 때까지 영국국교회의 일부였다. 웨일스 최초의 독립 교회는 1638년 William Wroth에 의해 Llanvaches에 설립되었다. 웨일스 장로교회는 18세기 웨일스 감리교 부흥에서 시작되었고 1811년 영국국교회에서 분리되었다.[200] 웨일스에서 두 번째로 많은 신도 수를 가진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며, 약 4만 3천 명의 신도가 있다고 추산된다.[199]
웨일스의 비기독교 종교는 소규모이며, 인구의 약 2.7%를 차지한다.[201] 이슬람교가 가장 큰 비기독교 종교이며, 2011년 인구 조사에서 2만 4천 명(0.8%)의 무슬림이 보고되었다.[201] 뉴포트, 카디프, 스완지 등 남웨일스 도시에는 힌두교와 시크교 신자 공동체도 있으며, 불교도는 서부 농촌 카운티인 세레디기온에 가장 많이 거주한다.[202] 유대교는 로마 시대 이후 웨일스에 처음으로 정착한 비기독교 종교였지만, 2001년에는 약 2,000명으로 감소했고,[203] 2019년에는 수백 명에 불과했다.[204]
10. 5. 민족
웨일스는 영국의 다른 지역과 정치적, 사회적 역사를 밀접하게 공유하며, 공식적으로 웨일스어와 영어를 사용하는 이중 언어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영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웨일스는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웨일스 내에는 560,000명 이상이 웨일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이들은 주로 웨일스 북부와 서부에 거주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약 70만 명이 웨일스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9세기 후반부터 웨일스는 노래, 춤, 시 낭송, 문학, 악기 연주 등을 겨루는 대회인 이스테드보드를 통해 '노래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이스테드보드는 1176년에 최초로 개최된 유서 깊은 전통을 지니고 있다. 전통적으로 웨일스인들은 활기차고 경쾌하며, 이웃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즐겼다. 하프 음악 문화가 발달했고, 음유시인들은 웨일스어로 시를 썼으며 정기적인 경연 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부터 잉글랜드 문화가 유입되면서 웨일스 고유 문화는 점차 사라졌고, 18세기 초반에는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18세기 초반 웨일스어 서적은 자취를 감추었고 하프 가락에 맞춰 노래하는 것은 저급한 것으로 여겨졌다. 현대 웨일스 문화는 잉글랜드 문화와 융합되어 큰 차이가 없어졌다.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웨일스 인구의 93.8%가 "백인"으로, 2011년 95.6%에 비해 감소했다.[205] 2021년 인구의 90.6%는 "웨일스인, 잉글랜드인, 스코틀랜드인, 북아일랜드인 또는 영국인 백인"으로 나타났다.[205] 두 번째로 많은 민족은 인구의 2.9%를 차지하는 "아시아계, 아시아계 웨일스인 또는 아시아계 영국인"이었으며, 2011년에는 2.3%였다.[205] 인구의 1.6%는 "혼혈 또는 다민족"(2011년 1.0%), 0.9%는 "흑인, 흑인 웨일스인, 흑인 영국인, 카리브해인 또는 아프리카인"(2011년 0.6%), 0.9%는 "기타 민족"(2011년 0.5%)으로 나타났다.[205] "백인"을 제외한 "다민족"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주로 카디프, 뉴포트, 스완지와 같은 도시 지역이었다.[205] 웨일스 가구의 5.3%는 다민족 가구였으며, 이는 2011년 4.2%에서 증가한 수치다.[205]
2021년, 웨일스 최초의 흑인 교장인 베티 캠벨(Betty Campbell)을 기리는 최초의 여성 실존 인물 야외 동상이 세워졌다.[206] 2023년, 타이거 베이(Tiger Bay) 출신으로 셜리 베이시(Shirley Bassey)와 동시대 인물인 패티 플린(Patti Flynn)이 퍼플 플라크(보라색 명판)를 받은 최초의 흑인 웨일스 여성이 되었다.[206] 2024년, 보건부 장관(Vaughan Gething)이 웨일스의 수상으로 선출되어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후 유럽 최초의 흑인 정부 수반이 되었다.[207]
10. 6. 국가 정체성
2021년 인구조사에서 웨일스인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55.2%가 "웨일스인만"으로, 8.1%가 "웨일스인이자 영국인"으로 응답하여, 총 63.3%가 웨일스인으로 식별되었다.[208] 2022년 연례 인구 조사에서는 62.3%가 웨일스인으로 식별되었는데, 이는 2001년의 69.2%에 비해 감소한 수치이다.[209] 2022년 YouGov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7%가 어느 정도 자신을 웨일스인으로 여긴다고 답했다.[210]웨일스는 현대 켈트 민족으로 여겨지며,[238][239] 웨일스 예술가들은 켈트 축제에 정기적으로 참가한다.[240] 붉은 용은 국가 정체성과 자부심의 주요 상징이며, 웨일스 민족의 용감함을 의인화한다.[241] 용은 히스토리아 브리토눔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의 상징으로 언급되었다. 보르티gern() 왕은 디나스 에므리스에서 요새를 짓던 중 암브로시우스에게 성 아래에서 두 마리의 용, 즉 켈트 브리튼을 나타내는 붉은 용과 앵글로색슨족을 나타내는 흰 용을 파내라고 한다. 암브로시우스는 켈트 브리튼이 섬을 되찾고 앵글로색슨족을 몰아낼 것이라고 예언한다.[243]
웨일스의 붉은 용은 카드왈라드르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1959년에 공식 깃발이 되었다.[244] 오웬 글린더의 깃발은 웨일스 국민성과 관련이 있으며, 리웰린 압 그루피드의 문장과 유사하다.[245] 오웬 글린더의 날은 9월 16일에 기념되며, 국가 공휴일 지정 요청이 있었다.[246][247][248] 웨일스 공의 깃털 또한 웨일스에서 사용되며, 여러 웨일스 대표팀과 영국 육군의 웨일스 연대가 이 배지를 사용한다.[249][250]
3월 1일은 웨일스 사람들이 수호성인 성 데이비드의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252] 이 날은 공식 공휴일은 아니지만, 공휴일 지정 요청이 있었다.[253][254][255] 웨일스 전역의 학교와 문화 단체에서 기념되며, 마늘이나 수선화를 착용하고, 어린이들은 전통 의상을 입는다.[256] 수선화는 19세기에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장려로 인기를 얻었다.[257] 다른 웨일스 축제로는 Mabsant가 있지만 현재는 거의 지켜지지 않으며,[258] Dydd Santes Dwynwen은 1월 25일에 발렌타인 데이와 유사하게 지켜진다.[259]
"Hen Wlad Fy Nhadaucy" ()는 웨일스의 사실상 국가이며, 공식 행사에서 연주된다.[260] "Cymru am bythcy" ("웨일스 영원히")는 인기 있는 웨일스 모토이다.[261] 또 다른 웨일스 모토인 "Y Ddraig Goch Ddyry Cychwyn"("붉은 용은 행동을 고무시킨다")는 웨일스 왕실 배지에 사용되었다.[262]
11. 문화
웨일스는 영국의 다른 지역과 정치적, 사회적 역사를 밀접하게 공유하고 있다. 웨일스는 공식적으로 이중 언어 체제이며, 토착 언어는 웨일스어이고 공용어는 영어다. 주민 대부분이 영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웨일스는 여전히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다. 웨일스 내에는 560,000명 이상이 웨일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이들은 주로 웨일스 북부와 서부에 거주하며, 전 세계적으로는 웨일스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70만 명 정도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노래, 춤, 시 낭송, 문학, 악기, 작곡, 뮤지컬, 연극 등 겨루는 대회인 이스테드보드를 통해 웨일스는 '노래의 나라' 이미지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스테드보드는 1176년에 최초 대회를 개최했고 현재에 이르는 유구한 전통 있다.
전통적으로 웨일스인들은 매우 활발하고 경쾌한 사람들로 알려졌으며, 그들은 이웃과 어울려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즐겼다. 또한 하프 음악문화가 매우 발달했고, 음유시인들은 웨일스어로 시를 썼다. 정기적으로 음유시인 경연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이러한 웨일스 고유 문화는 17세기 후반부터 잉글랜드 문화가 들어오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특히 18세기 초반에는 엄청난 속도로 웨일스 전통문화가 퇴색했다.
18세기 초반 웨일스어 서적은 자취를 감추었고 하프 가락에 맞춰 노래하는 것은 저급스런 것으로 인식이 만연해졌다. 현대 웨일스 문화는 18세기 초반 이후 잉글랜드 문화와 섞임에 따라 잉글랜드 문화와 큰 차이가 없어졌다.
웨일스는 고유한 언어, 관습, 축제, 음악을 포함한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웨일스에는 네 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다. 그위네드의 에드워드 1세 왕의 성과 도시 성벽, 폰트키실테 수로와 운하, 블래너본 산업 경관, 그리고 북서 웨일스 슬레이트 경관이다.[211]
== 미술 ==
웨일스에서는 켈트 미술 작품들이 발견되었다.[229] 초기 중세 시대에 웨일스의 켈트 기독교는 영국 제도의 섬 미술의 일부였다. 웨일스 출신의 여러 삽화 사본들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는 8세기의 헤리퍼드 복음서와 리치필드 복음서가 포함된다. 11세기의 리체마르크 시편집(현재 더블린에 소장되어 있음)은 확실히 웨일스에서, 세인트 데이비드에서 제작된 것으로, 특이한 바이킹의 영향을 받은 후기 섬 미술 양식을 보여준다.[230]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일부 웨일스 예술가들은 일자리를 찾아 런던이나 이탈리아로 이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리처드 윌슨 (1714~1782)은 아마도 최초의 주요 영국 풍경화가일 것이다. 그의 이탈리아 풍경화가 더 유명하지만, 그는 런던에서 방문했을 때 몇몇 웨일스 풍경을 그렸다. 18세기 후반에는 풍경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웨일스의 더 큰 도시들에서 고객을 확보하게 되어 더 많은 웨일스 예술가들이 고향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웨일스 외부의 예술가들도 처음에는 켈트 부흥 때문에 웨일스의 풍경을 그리게 되었다.[231]
1857년 의회법은 영국 전역에 여러 미술학교를 설립하도록 규정했으며, 카디프 미술학교는 1865년에 개교했다. 졸업생들은 여전히 웨일스를 떠나 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벳위스이코에드는 예술가들에게 인기 있는 중심지가 되었고, 그곳의 예술가 집단은 1881년에 왕립 캠브리안 미술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232] 조각가인 윌리엄 고스콤 존 경은 런던에 정착했지만 웨일스 의뢰 작품을 제작했다. 주제가 대부분 웨일스에 국한되었던 크리스토퍼 윌리엄스도 런던에 거주했다. 토마스 E. 스티븐스[233]와 앤드류 비카리는 각각 미국과 프랑스를 거점으로 초상화가로서 매우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234]
웨일스 화가들은 유럽의 미술 중심지로 몰려들었다. 어거스터스 존과 그의 누이 그웬 존은 대부분 런던과 파리에 살았다. 그러나 풍경화가인 카핀 윌리엄스 경과 피터 프렌더가스트는 대부분의 생애를 웨일스에서 보냈지만, 더 넓은 예술계와도 교류했다. 세리 리차드스는 카디프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런던으로 이주한 후에도 웨일스 예술계에 깊이 관여했으며, 초현실주의를 포함한 국제적인 양식으로 정물화가를 그렸다. 에릭 길, 런던 출신의 웨일스인 데이비드 존스, 그리고 조각가 조나 존스를 포함한 여러 예술가들이 웨일스로 이주했다. 카르도마 갱은 스완지의 지식인 모임으로, 시인 딜런 토머스와 시인이자 예술가인 버넌 왓킨스를 중심으로 화가 알프레드 제인스도 포함되어 있었다.[235]
남웨일스에는 여러 개의 주목할 만한 도자기 공방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는 17세기에 토기 제작을 시작한 브리전드의 이웨니 도자기 공방이다.[236] 18세기와 19세기에 더욱 과학적인 방법들이 이용 가능해짐에 따라 더욱 정교한 도자기들이 생산되었는데, 이는 캠브리안 도자기(1764~1870, "스완지 도자기"로도 알려짐)가 이끌었고, 나중에는 카디프 근처의 낸트가르 도자기가 1813년부터 1820년까지 고급 자기를 생산하고, 1833년부터 1920년까지는 실용적인 도자기를 생산했다.[236] 포트메리온 도자기는 1960년 수전 윌리엄스-엘리스(이탈리아풍 마을 포트메리온, 그위네드의 창조자인 클로 윌리엄스-엘리스의 딸)가 설립했으며, 잉글랜드 스토크온트렌트에 위치해 있다.[237]
== 국가 상징 ==
웨일스는 현대 켈트 민족으로 여겨지며, 이는 웨일스의 국가 정체성에 기여하고 있으며,[238][239] 웨일스 예술가들은 켈트 축제에 정기적으로 참가한다.[240] 붉은 용은 국가 정체성과 자부심의 주요 상징이며, 웨일스 민족의 용감함을 의인화한다.[241] 용은 최초로 문헌에서 히스토리아 브리토눔에서 사람들의 상징으로 언급된다. 보르티gern, 켈트 브리튼의 왕은 디나스 에므리스에서 요새를 짓던 중 방해를 받는다. 그는 암브로시우스.[242] 엠브레이스 굴레틱은 아마도 엠리스 굴레딕일 것이다.}}에게 성 아래에서 두 마리의 용을 파내라고 한다. 그는 켈트 브리튼을 나타내는 붉은 용과 앵글로색슨족을 나타내는 흰 용을 발견한다. 암브로시우스는 켈트 브리튼이 섬을 되찾고 앵글로색슨족을 바다로 몰아낼 것이라고 예언한다.[243]
상징으로서 웨일스의 붉은 용은 카드왈라드르(약 655년경 귀네드 왕) 시대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1959년에 공식 깃발이 된 국가 웨일스의 깃발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244] 오웬 글린더의 깃발은 웨일스 국민성과 관련이 있으며; 영국에 대한 글린더의 전투 동안 웨일스군이 전투에 사용했으며, 붉은색과 금색 바탕에 네 마리의 사자가 포함되어 있다.[245] 이 깃발은 리웰린 압 그루피드(최후의 리웰린), 웨일스가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에 의해 정복되기 전 마지막 웨일스 공의 문장과 유사하다. 디자인은 글린더의 부모의 문장에도 영향을 받았을 수 있는데, 두 사람 모두 문장에 사자를 가지고 있었다. 오웬 글린더의 날은 웨일스에서 9월 16일에 기념되며, 이를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요청이 있었다.[246][247][248] 웨일스 공의 깃털 또한 웨일스에서 사용된다. 이것은 금관에서 나오는 세 개의 흰 깃털로 구성되며, 독일어 모토인 ''Ich dien''(나는 섬긴다)가 있다. 웨일스 럭비 유니온을 포함한 여러 웨일스 대표팀과 영국 육군의 웨일스 연대, 로열 웰시를 포함한 연대가 이 배지를 사용하거나 변형된 버전을 사용한다.[249][250]
3월 1일, 웨일스 사람들은 589년에 사망한 국가의 수호성인을 기념하는 성 데이비드의 날을 기념한다.[252] 이 날은 공식적인 공휴일은 아니지만,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요청이 있었다.[253][254][255] 이 날은 웨일스 전역의 학교와 문화 단체에서 기념되며, 관습에는 웨일스의 두 가지 국가 상징인 마늘이나 수선화를 착용하는 것이 포함된다. 어린이들은 또한 전통 의상을 입는다.[256] 마늘의 기원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반면, 수선화는 19세기에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장려로 인기를 얻었다.[257] 이것은 웨일스어로 마늘을 의미하는 cennincy과 수선화를 의미하는 cennin Pedrcy 또는 성 베드로의 마늘을 혼동(또는 연관)하기 때문이다.[73] 1916년의 보고서는 영국 파운드 동전에 등장한 마늘을 선호했다.[257] 다른 웨일스 축제로는 교구가 지역 교회의 수호성인을 기념하는 Mabsant이 있지만, 현재는 거의 지켜지지 않으며,[258] 보다 현대적인 축제인 Dydd Santes Dwynwen(성 드윈웬의 날)은 1월 25일에 발렌타인 데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지켜진다.[259]
"Hen Wlad Fy Nhadaucy" ()는 웨일스의 사실상 국가 국가이며, 웨일스 국가대표팀이 참여하는 축구 또는 럭비 경기와 세네드 개회식 및 기타 공식 행사에서 연주된다.[260] "Cymru am bythcy" ("웨일스 영원히")는 인기 있는 웨일스 모토이다.[261] 또 다른 웨일스 모토인 "Y Ddraig Goch Ddyry Cychwyn"("붉은 용은 행동을 고무시킨다")는 1953년에 만들어졌을 때 웨일스 왕실 배지에 사용되었다.[262]
== 스포츠 ==
50개 이상의 국가 지배 기구가 웨일스에서 스포츠를 규제하고 조직한다.[263] 경쟁 스포츠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국가와의 국제 행사 또는 경기에서 자국을 대표하는 개인이나 팀을 선발, 조직 및 관리한다. 웨일스는 FIFA 월드컵, 럭비 월드컵, 럭비 리그 월드컵 및 코먼웰스 게임과 같은 주요 세계 스포츠 행사에 참가한다. 올림픽에서는 웨일스 선수들이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북아일랜드 선수들과 함께 그레이트브리튼 팀의 일원으로 경쟁한다. 웨일스는 여러 국제 스포츠 행사를 개최했다.[264] 여기에는 1958년 코먼웰스 게임,[265] 1999 럭비 월드컵, 2010 라이더컵 및 2017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포함된다.[264][266]
축구는 전통적으로 북웨일스에서 더 인기 있는 스포츠였지만, 럭비 유니온은 웨일스 정체성의 상징이자 국가 의식의 표현으로 여겨진다.[267] 웨일스 럭비 유니온 국가대표팀은 매년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십에 참가하며, 모든 럭비 월드컵에도 참가했고, 1999년에는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2003년 주요 대회에서 전통적인 클럽 팀을 대체한 5개의 프로 팀은 2004년에 4개 지역으로 대체되었다. 카디프 블루스, 드래곤스, 오스프레이스, 스칼렛스이다.[268] 웨일스 지역 팀들은 유나이티드 럭비 챔피언십에서 경기하며,[269] 자격을 갖춘 경우 하이네켄 챔피언스컵[270] 과 자격에 따라 유러피언 럭비 챌린지컵에서 경기한다.[271] 웨일스의 럭비 리그의 역사는 19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8년부터 1910년까지 프로 웨일스 리그가 존재했다.[272]
웨일스는 1992년부터 자체 축구 리그인 웨일스 프리미어리그를 운영해 왔다.[273] 역사적인 이유로 5개의 웨일스 클럽이 잉글랜드 축구 리그 시스템에서 활동한다. 카디프 시티, 스완지 시티, 뉴포트 카운티, 렉섬, 머서타운이다.[274] 이 나라는 국제적인 수준에서 활동한 많은 축구 선수들을 배출했다.[275] UEFA 유로 2016에서 웨일스 국가대표팀은 사상 최고 성적을 거두며 준결승에 진출했다.[276]
국제 크리켓에서 웨일스와 잉글랜드는 잉글랜드와 웨일스 크리켓 위원회(ECB)가 관리하는 단일 대표팀인 잉글랜드 크리켓팀 또는 간단히 '잉글랜드'를 구성한다.[277] 때때로 별도의 웨일스 팀이 제한된 오버 경기에 참가한다. 글라모건 카운티 크리켓 클럽은 잉글랜드와 웨일스 카운티 챔피언십에 참가하는 유일한 웨일스 팀이다.[278] 웨일스는 스누커,[279] 육상,[280] 사이클링,[281][282] 권투[283][284] 등 개인 스포츠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선수들을 배출했다.
== 미디어 ==
웨일스는 2010년 영국 최초의 디지털 텔레비전 국가가 되었다.[285] BBC 웨일스는 공영 방송국[286]이며, 웨일스어와 영어로 텔레비전 및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한다.[287] 또한 영국 전역의 BBC 네트워크 시청자를 위해 《화성인》, 《닥터 후》, 《토치우드》와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했다.[286][288] 영국의 주요 상업 방송국인 ITV는 웨일스 중심의 서비스인 ITV 웨일스를 운영한다.[289] S4C는 1982년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 시간대의 대부분은 웨일스어로 방송되었지만, 다른 시간에는 채널 4와 영어 콘텐츠를 공유했다. 디지털 전환 이후로는 웨일스어로만 방송하고 있다.[290] BBC 라디오 킴루는 BBC의 웨일스어 라디오 서비스이며, 웨일스 전역에서 방송된다.[286] 여러 독립 라디오 방송국이 웨일스 지역에서 주로 영어로 방송된다. 2006년에는 여러 지역 라디오 방송국이 웨일스어로 방송되었다. 방송량은 평일 2분짜리 뉴스 속보 두 개(라디오 말드윈)에서부터 웨일스어 프로그램 주간 14시간 이상(스완지 사운드)까지 다양했으며, 하트 킴루와 라디오 케레디기온과 같이 본질적으로 이중 언어 방송국도 있었다.[291]
웨일스에서 판매되고 읽히는 신문의 대부분은 영국 전역에서 이용 가능한 전국 신문이다. 웨스턴 메일은 웨일스 유일의 인쇄 전국 일간 신문이다.[292] 웨일스 지역 일간 신문으로는 데일리 포스트(북웨일스를 다룸), 사우스 웨일스 이브닝 포스트(스완지), 사우스 웨일스 에코(카디프), 사우스 웨일스 아거스(뉴포트)가 있다.[292] Y Cymro는 주간으로 발행되는 웨일스어 신문이다.[293] ''Wales on Sunday''는 웨일스 전역을 다루는 유일한 웨일스 일요 신문이다.[294] 웨일스 도서위원회는 웨일스어와 영어로 웨일스 문학을 홍보하는 웨일스 정부 지원 기관이다.[295] BCW는 자격을 갖춘 영어 및 웨일스어 출판물에 출판 보조금을 제공한다.[296] 웨일스의 수십 개 출판사에서 매년 약 650권의 책이 출판된다.[297][298] 웨일스의 주요 출판사로는 고머 프레스, 그와스크 카렉 그왈크, 호노, 웨일스 대학교 출판부, Y Lolfa가 있다.[297] 웨일스에 중점을 둔 저널로는 영어로 격월간 발행되는 웨일스 관련 잡지인 ''Cambria''[299], ''Planet'', ''포에트리 웨일스''가 있다.[300] 웨일스어 잡지로는 주간으로 발행되는 시사 주간지 ''골로그''("전망"), 월간으로 발행되는 ''반''("의견")이 있다.[293] 여성을 위한 전국 조직인 ''메르케드 이 와르''에서 분기별로 발행하는 ''Y Wawr''("새벽")이 있다.[293] 웨일스 장로교회에서 분기별로 발행하는 ''Y Traethodydd''("수필가")는 1845년에 처음 발행되어 현재까지 인쇄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웨일스어 출판물이다.[293]
== 음식 ==
전통적인 웨일스 요리에는 래버브레드 (식용 해조류인 ''포르피라 움빌리칼리스''로 만든 음식), 바라 브리트 (과일빵), 카울 (양고기 스튜), 카울 켄닌 (부추 수프), 그리고 웨일스 케이크가 포함됩니다.[301] 가무락조개는 때때로 베이컨과 래버브레드와 함께 전통적인 아침 식사로 제공됩니다.[302] 웨일스는 자체적인 전통 음식을 가지고 있으며 영국의 요리 문화를 많이 수용했지만, 현재 웨일스의 식단은 인도, 중국, 그리고 미국의 요리 문화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치킨 티카 마살라는 이 나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요리이며, 햄버거와 중국 음식은 테이크아웃으로 피시 앤 칩스보다 더 많이 팔립니다.[303]
== 음악 ==
[[File:Sir_Tom_Jones_at_The_Queen's_Birthday_Party_(cropped-2).jpg|thumb|233x233px|가수 톰 존스
"노래의 땅"으로 알려진 웨일스는 솔로 아티스트, 남성 합창단, 그리고 하프 연주자로 유명하다.[304] 매년 열리는 ''국립 에이스테드보드''는 웨일스의 주요 공연 축제이다. ''랑골렌 국제 에이스테드보드''는 전 세계 가수와 음악가들에게 공연할 기회를 제공한다. 웨일스 민요 협회는 역사적인 노래와 곡들을 모아 출판한다.[305] 웨일스의 전통 악기에는 ''텔린 데이레스''(삼중 하프), 바이올린, ''크루스''(활로 연주하는 현악기), 그리고 ''피프고른''(호른파이프)이 있다.[306] 남성 합창단은 19세기에 교회 합창단의 테너와 베이스 파트로 형성되어 당시 인기 있던 세속적인 찬송가를 불렀다.[307] 웨일스의 교회와 합창단은 열정적인 4성부 합창으로 유명하며, 이는 웨일스의 특징이 되었다.[308] 많은 역사적인 합창단들이 현대 웨일스에서 전통 음악과 대중 음악을 섞어 부르며 활동하고 있다.[307]
웨일스 BBC 국립 오케스트라는 웨일스와 국제적으로 공연한다. 웨일스 국립 오페라단은 카디프 베이의 웨일스 밀레니엄 센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웨일스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세계 최초의 이러한 유형의 오케스트라였다.[309] 웨일스는 클래식과 팝 분야 모두에서 주목할 만한 가수들을 배출하는 전통이 있으며,[310] 인기 밴드들도 있다.[311][312][313] 웨일스 민속 음악계는 21세기에 부흥기를 맞았다.[314]
== 영화 ==
가장 오래된 웨일스 연극으로는 중세 기적극인 ''Y Tri Brenin o Gwlen''("쾰른의 세 왕")과 ''Y Dioddefaint a'r Atgyfodiad''("수난과 부활")이 있다.[315] 18세기에는 박람회와 시장에서 공연되는 운문극인, 막간극의 형태로 웨일스 연극의 전통이 자리 잡았다.[316] 20세기 초에는 연극이 번창했지만, 웨일스는 웨일스 국립극장이나 국립발레단을 설립하지 못했다.[321]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마추어 연극 단체의 수가 3분의 2로 줄었다.[317] 20세기 중반에는 텔레비전과의 경쟁으로 인해 연극의 전문성이 높아졌다.[317] 에밀린 윌리엄스와 알룬 오웬 등의 희곡이 무대에 올랐고, 리처드 버튼과 앤서니 홉킨스를 포함한 웨일스 배우들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317][318][319] 웨일스는 또한 유명한 코미디언들을 배출했다.[320]
== 춤 ==
전통 춤에는 웨일스 민속 무용과 클로그 댄스가 포함됩니다. 웨일스에서 춤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12세기 기랄두스 캄브렌시스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지만, 19세기까지는 종교적 반대 때문에 전통 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321] 20세기에 로이스 블레이크(1890~1974)가 주도하여 부흥이 일어났습니다.[321] 클로그 댄스는 하이웰 우드(1882~1967)와 다른 사람들이 지역 및 전국 무대에서 이 예술을 계승하면서 보존되고 발전했습니다.[322] 웨일스 민속 무용 협회는 1949년에 설립되었습니다.[322] 현대 무용은 1970년대 카디프에서 시작되었습니다.[322] 1983년에 설립된 웨일스 국립 무용단은 현재 웨일스 밀레니엄 센터에 상주하고 있습니다.[323]
== 신화 ==
기독교 이전 시대 브리튼인들의 고대 켈트 신화는 초기 시인인 킨페르드에 의해 구전으로 전해졌다.[212] 이들의 작품 중 일부는 중세 웨일스어 필사본에 남아있다. 카마르선의 흑서와 아네이린의 책(둘 다 13세기), 탈리에신의 책과 리더치의 백서(둘 다 14세기), 그리고 허거스트의 적서(약 1400년) 등이다.[212] 백서와 적서의 산문 이야기는 마비노기온으로 알려져 있다.[213] 나무들의 전투와 같은 시와 웨일스 삼련시 및 브리튼 섬의 13가지 보물과 같은 연상 기억 목록 문헌 또한 신화적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214] 이러한 문헌에는 아서왕 전설의 초기 형태와 로마 점령 이후 브리튼의 전통적인 역사가 포함되어 있다.[212] 웨일스 민속의 다른 자료로는 9세기 라틴어 역사 편찬인 브리튼인의 역사와 제프리 가우프리의 12세기 라틴어 연대기인 브리튼 왕들의 역사, 그리고 W. 젠킨 토마스의 웨일스 요정 이야기와 같은 후대의 민속 이야기가 있다.[215]
== 문학 ==
웨일스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216] 제프리 몽머스와 제럴드 오브 웨일스는 중세 최고의 라틴 작가로 여겨진다.[216] 초기 웨일스 시는 탈리에신과 아네이린이 지었지만, 원형이 아닌 변형된 중세 버전으로 남아있다.[216] 13세기 카마르덴의 검은 책에는 웨일스 시가 실려있다.
웨일스 시와 고유한 전승 및 학문은
11. 1. 신화
기독교 이전 시대 브리튼인들의 고대 켈트 신화는 초기 시인인 킨페르드에 의해 구전으로 전해졌다.[212] 이들의 작품 중 일부는 중세 웨일스어 필사본에 남아있다. 카마르선의 흑서와 아네이린의 책(둘 다 13세기), 탈리에신의 책과 리더치의 백서(둘 다 14세기), 그리고 허거스트의 적서(약 1400년) 등이다.[212] 백서와 적서의 산문 이야기는 마비노기온으로 알려져 있다.[213] 나무들의 전투와 같은 시와 웨일스 삼련시 및 브리튼 섬의 13가지 보물과 같은 연상 기억 목록 문헌 또한 신화적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214] 이러한 문헌에는 아서왕 전설의 초기 형태와 로마 점령 이후 브리튼의 전통적인 역사가 포함되어 있다.[212] 웨일스 민속의 다른 자료로는 9세기 라틴어 역사 편찬인 브리튼인의 역사와 제프리 가우프리의 12세기 라틴어 연대기인 브리튼 왕들의 역사, 그리고 W. 젠킨 토마스의 웨일스 요정 이야기와 같은 후대의 민속 이야기가 있다.[215]11. 2. 문학
웨일스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216] 제프리 몽머스와 제럴드 오브 웨일스는 중세 최고의 라틴 작가로 여겨진다.[216] 초기 웨일스 시는 탈리에신과 아네이린이 지었지만, 원형이 아닌 변형된 중세 버전으로 남아있다.[216] 13세기 카마르덴의 검은 책에는 웨일스 시가 실려있다.웨일스 시와 고유한 전승 및 학문은 왕자 시대의 시인들 (–1280)과 귀족 시대의 시인들 (–1650) 시대를 거치며 살아남았다.[217] 전자는 후원자를 위해 찬사와 애가를 짓는 전문 시인이었고, 후자는 키위드 운율을 선호했다.[217] 이 시대는 웨일스의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인 다피드 압 귈림을 배출했다.[218] 귀족 계층의 영국화 이후 이 전통은 쇠퇴했다.[217]
전문 시인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토착 엘리트의 더 넓은 문화 세계로의 통합은 다른 문학적 이점을 가져왔다.[219] 윌리엄 샐즈베리와 존 데이비스와 같은 르네상스 학자들은 영국 대학에서 인문주의 이상을 가져왔다.[219] 1588년 윌리엄 모건은 성경을 웨일스어로 번역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219] 16세기부터 '자유 운율' 시의 확산이 웨일스 시의 가장 중요한 발전이 되었지만, 17세기 중반부터 영국에서 수입된 여러 강세 운율이 매우 인기를 얻었다.[219] 19세기에는 에이스테드보드에 의해 촉진된 웨일스 서사시의 창작이 웨일스어 작가들의 집착이 되었다.[220] 이 시대의 산출량은 방대했지만 질적으로는 고르지 않았다.[221] 처음에는 제외되었던 종교 단체들이 대회를 지배하게 되었고, 바드적 주제는 성경적이고 교훈적으로 되었다.[221]
19세기 웨일스 문학의 발전에는 켈트 신화의 가장 중요한 중세 웨일스 산문 작품 중 하나인 마비노기온을 영어로 번역한 샬롯 게스트 여사의 업적이 포함된다. 1885년에는 다니엘 오웬이 쓴 ''리스 루이스''가 출판되었는데, 이는 웨일스어로 쓰인 최초의 소설로 여겨진다. 20세기에는 토마스 귄 존스의 ''이마다위아드 아서''와 같은 작품을 통해 장황한 빅토리아 시대 웨일스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 있었다.[220] 제1차 세계 대전은 T. H. 페리-윌리엄스와 R. 윌리엄스 페리가 주창한 더 비관적인 스타일을 통해 웨일스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220] 남웨일스의 산업화는 리드웬 윌리엄스와 같은 작가들을 통해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전간기에는 소더스 루이스가 그의 연극, 시, 비평만큼이나 정치적이고 반동적인 견해로 주도했다.[220]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귄 토마스, 버논 왓킨스, 딜런 토마스 등 1930년대 작가들의 활동이 계속되었다. 딜런 토마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밀크 우드 아래''는 1954년에 처음 방송되었다. 토마스는 20세기 가장 주목할 만하고 인기 있는 웨일스 작가 중 한 명이자 당대 가장 혁신적인 시인 중 한 명이었다.[222] 영어로 웨일스 작가들을 향한 전후 세대의 태도는 이전 세대와 달리 웨일스 민족주의와 웨일스어에 대한 공감대가 더 컸다. 이러한 변화는 소더스 루이스의 민족주의와 1936년 르인 반도의 폭격 학교 방화 사건과 관련이 있다.[223] 시에서는 R. S. 토마스 (1913–2000)가 20세기 후반 내내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30세가 될 때까지 웨일스어를 배우지 못했고 모든 시를 영어로 썼다".[224] 20세기 후반의 주요 작가로는 에미르 험프리스 (1919–2020)[225]와 레이먼드 윌리엄스 (1921–1988)가 있다.[226]
11. 3. 박물관 및 도서관
암구에드파 슘리 – 뮤지엄 웨일스는 1907년 왕실 칙허장에 의해 웨일스 국립박물관으로 설립되었다. 카디프 국립박물관, 세인트 파간스 국립역사박물관, 빅핏 국립석탄박물관, 국립 양모 박물관, 국립 슬레이트 박물관, 국립 로마 군단 박물관, 국립 해안 박물관의 7개 장소에서 운영되며 모든 장소의 입장료는 무료이다.[227] 아베리스트위스에 위치한 웨일스 국립도서관은 존 윌리엄스 경 소장품과 셔번 성 소장품[228]을 포함한 중요한 인쇄물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228] 초상화와 사진, 일시적 자료 및 군사측량국 지도를 포함한 미술품 컬렉션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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